2021. 12. 3. 12:12ㆍ순자 이야기(** 수신편 번역 중 잠정 중단)/원문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10월 5일 10시 32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원문과 번역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36
순자 - 3 - 불구 - 1 - 군자는 구차한 길을 걷지 않는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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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28
순자 - 3 - 불구 - 2 - 군자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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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29
순자 - 3 - 불구 - 3 - 군자는 지문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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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0
순자 - 3 - 불구 - 4 - 군자는 세상일에 따라 태도를 변응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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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1
순자 - 3 - 불구 - 5 -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나아지고, 소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못해진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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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2
순자 - 3 - 불구 - 6 - 군자는 올바른 방법으로만 다스린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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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3
순자 - 3 - 불구 - 7 - 군자 주변엔 사람들이 모여 든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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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4
순자 - 3 - 불구 - 8 - 성심과 성의를 다하면 천덕을 얻는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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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5
순자 - 3 - 불구 - 9 - 군자는 자리에 앉아서도 천하를 헤아린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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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6
순자 - 3 - 불구 - 10 - 통사, 공사, 직사, 각사가 되기를 지향해야 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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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7
순자 - 3 - 불구 - 11 - 군자는 태도에 따라 우가 될 수도 있고, 걸이 될 수도 있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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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8
순자 - 3 - 불구 - 12 - 한 쪽만 보지 말고 양면을 모두 살펴야 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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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9
순자 - 3 - 불구 - 13 - 전중과 사추는 구차한 놈들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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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1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1 - 군자는 구차한 길을 걷지 않는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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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2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2 - 군자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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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3 - 군자는 지문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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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4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4 - 군자는 세상일에 따라 태도를 변응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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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5 -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나아지고, 소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못해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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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6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6 - 군자는 올바른 방법으로만 다스린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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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7 - 군자 주변엔 사람들이 모여 든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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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8 - 성심과 성의를 다하면 천덕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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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9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9 - 군자는 자리에 앉아서도 천하를 헤아린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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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10 - 통사, 공사, 직사, 각사가 되기를 지향해야 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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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11 - 군자는 태도에 따라 우가 될 수도 있고, 걸이 될 수도 있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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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52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12 - 한 쪽만 보지 말고 양면을 모두 살펴야 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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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53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13 - 전중과 사추는 구차한 놈들이다(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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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는 '不苟'라고 씁니다. 표현 그대로 '구차하게 살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不苟'는 명백하게 「불구」의 주제임에도, 「불구」에는 '不苟'에 대한 내용만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순자》의 다른 편들처럼, 「불구」에도 여러 주제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본 해설문에서는 주요 주제인 '不苟'와, '不苟'에서 파생되었다고 간주할 만한 문단들을 먼저 설명하고, 뒤이어 그 주제가 '不苟'와 무관하거나 유리되어 있는 문단들을 설명하려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글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은 '목표', '목표를 이루는 것'을 이릅니다. '가는 행위'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의미합니다. 즉, 이 말은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쓰더라도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속담이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할 때, 목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목표를 이루는 것 만큼이나 수단을 공정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지는 오래된 문제입니다. 고풍스럽게 표현하자면, '명분이 우선이냐, 실리가 우선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것이 우선일까요? 사례를 몇 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1388년 5월 22일, 이성계는 명나라의 요동을 치러 가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했습니다. 이성계는 명나라를 칠 수 없는 '명분'을 네 가지 들고, 말머리를 돌려 최영 등을 숙청해 버렸습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이성계는 '무의미한 명분'을 내세워서 정권을 찬탈한 역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명분이라는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핑계'에 불과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같은 해 4월, 명나라의 대장군(大將軍) 남옥(藍玉)은 15만 대군을 이끌고, 쿨룬 및 부이르 지역을 급습해서 북원을 크게 깨트렸습니다. 이 사건의 여파는 어마어마했습니다. 황제였던 도쿠스 테무르는 겨우 도망쳤지만, 왕자, 비빈 이하 남녀 7만여 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 이후로 북원 정권은 '중원 왕조'로써 재기하지 못하고, 막북의 '유목민'으로 남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고려 조정이 요동을 치기로 했던 것은 북원과의 연계가 전제된 행위였습니다. 요즘이야 통신망 덕분에 지구 반대편에서 코끼리가 당뇨로 죽으면, 몇 초도 안 되어서 알 수 있지만, 14세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성계가 회군하지 않고 요동으로 진격했다면, 요동은 빼앗았을지 몰라도, 고려는 중국 전체를 통일한 명나라와 북원과의 연계 없이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성계는 쿨룬과 부이르 지역의 전투 결과를 알고 회군하려 했던 것이죠. 즉, 이성계는 입으로는 '명분'을 외쳤지만, '실리' 역시 마음 속에 품고 있었고, 챙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깝게는 조정에서 실세가 되었고, 멀리는 새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일화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사례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와 조선은 여진, 특히 건주여진을 점차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르후에서 명과 조선의 연합군이 대패한 뒤, 여진은 급속하게 만주를 잠식해 나갔고, 명나라는 요동에서 영향력을 잃어 갔습니다. 1626년에는 산해관 이북을 포기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고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원숭환(袁崇煥)이 영원성(寧遠城)을 사수한 덕분에, 겨우 산해관 이북 지역으로 숨통을 남겨 둘 수 있었죠. 조선 조정의 입장은 다소 곤란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하고 있었고, 무엇 보다도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의 지원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겉보기 형세는 여진족에 기울고 있었지만, 대세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1624년에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당하면서 북방 방어 체계가 무너졌습니다. 여진족은 1627년에 조선을 공격했지만, 조선은 여진족을 평안도에 묶어 두고, '형제의 맹약'을 맺는 것으로 적당히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묘호란입니다. 그러나 1636년엔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악재가 연이어 터졌거든요.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에서 여진족에 항복할지, 남쪽에서 근왕병을 기다릴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조정은 항복하여, 여진족과 '군신의 맹약'을 맺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 정책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정이 명나라를 사대하는 것으로 일관한 것도 아니었고, 여진족을 야만족이라고 무시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여진족은 인구가 명나라 내지의 인구를 어느 정도 흡수한 것에 비해, 생산 기반이 형편 없었기 때문에 물자 사정이 아주 위태로웠습니다. 그러나 여진족은 병자년에 조선을 침공하면서 '명나라 대신 자신들을 사대하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마무리도 그런 명분으로 지어졌습니다. 여진족은 병자호란 이후 물자를 막대하게 빼앗았고, 이로써 겨우 자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이것이 조선과 여진족 사이의 '맹약'에 드러나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례는 조선의 입장에서, 명분 때문에 실리를 잃은, 즉 명분은 얻고 실리를 잃은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반대로 여진족 입장에서는 명분도 얻고, 실리도 얻은 사례겠지요.
명분 때문에 실리를 잃은 사례는 또 있습니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자였던 제나라의 환공이 죽은 뒤, 송나라의 양공이(宋襄公) 그 자리를 이어 받아 패자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환공은 생전에 힘으로만 제후를 규합하지 않고, '회맹'을 여러 차례 열어서, 제나라가 국제 질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부드럽게' 천하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환공이 죽은 뒤 제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송나라의 양공이 회맹을 물려 받아 주도했던 것이죠. 양공은 몇 차례 회맹을 주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남방의 대국인 초나라와 점차 마찰을 빚었고, 양공 본인이 초나라에 억류되기도 했으며, 결국에는 초나라와 전쟁을 벌이게까지 되었습니다. 문제는 정나라(鄭) 때문에 터졌습니다. 정나라는 초나라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송나라가 정나라를 치고,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려 하면서 송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던 것입니다. 두 나라는 홍수(泓水)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에 비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송나라 입장에서는 초군이 홍수를 건널 즈음에 공격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양공은 적과 동등한 입장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다고 하면서 초군을 치지 않았고, 결국 도하를 모두 끝낸 초군에게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양공은 이 때 입은 상처 때문에 나중에 죽기까지 했습니다. 명분을 따지다가 실리를 잃어 버린 예입니다.
3세기 초반, 고구려와 위나라(魏)는 모두 요동의 공손씨를 증오했습니다. 공손씨는 위나라에 신속하지도 않았고, 고구려와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손씨는 어느 입장도 취하지 않고 박쥐처럼 굴었는데, 그런 태도가 끝내 화를 불렀습니다. 결국 위나라와 고구려는 238년에 힘을 합쳐 양평(襄平)을 함락시키고, 공손씨를 멸문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접경하게 된 고구려와 위나라가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242년에 동천왕은 위나라의 서안평(西安平)을 선제 공격했습니다. 244년에는 위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했죠. 정황을 볼 때, 위나라는 대군으로 공격하고, 고구려는 적은 군대로 응전했던 것 같습니다. 동천왕은 선전했으나, 결국 반격을 받고 패하고 말았죠. 고구려는 이 때 수도가 함락되었고, 약탈당했으며, 동천왕 본인 역시 남쪽의 죽령(竹嶺)까지 도망갔습니다. 이 전쟁은 작은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위나라 본국의 군대뿐만 아니라, 낙랑군(樂浪郡)과 대방군(帶方郡)의 군대까지 동원해서 동예(東濊)와 옥저(沃沮), 혹은 그 너머에 이르던 고구려의 영향력을 박살내기 위한 대규모 전쟁이었죠. 동천왕은 도망가고, 환도성은 불탔지만, 그래도 고구려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동천왕도 살았죠. 민심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여전히 동천왕을 사랑했습니다. 위나라는 265년에 망했지만, 나라를 보존한 고구려는 이로부터 400여 년을 더 이어 갔습니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선조 역시 빠르게 한양을 버리고 평양, 의주로 몽진했습니다. 수도를 버렸다고 욕은 먹었을지언정, 그러나 선조는 나라를 잃지 않았고, 조선 자체적인 역량과 명나라의 원군에 힘입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모두 왕으로써의 체면은 잃었지만 나라를 존속시킨, 즉 명분은 잃었지만, 실리는 챙긴 사례입니다.
이처럼 명분과 실리는 모두 중요합니다. 대개 유학자들, 혹은 '학자들'은 실리 보다 명분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명분에만 매달리다가 실리를 챙기지 못한다면, 송나라의 양공처럼 비웃음거리가 될 뿐, 훌륭한 선례로 남지는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명분은 도외시한 채 실리만 구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간혹 알아 줄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비판을 받게 됩니다. 선조는 몽진해서 정부가 붕괴하지 않게 할 수는 있었지만, '왕답지 않게' 줄행랑이나 쳤다고 오랜 시간 동안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선조가 실제로 요동으로 도주하려고 했던 것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경우야 말할 것도 없겠죠?
그렇다면 명분과 실리를 '상보적', 즉 어느 한 쪽만 있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둘 다 함께 가야 하는 것들이라고 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학자들은 실리 보다는 명분이 우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일까요? 유학자들에게는 인, 의, 충, 효 같은 덕목들이 사람으로써 지켜야 할 가장 우선적인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학에 인, 의, 충, 효가 있는 것이지, '학문'이라면 다들 이런 '도덕적 의무' 몇 개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법가라면 법, 술, 세, 묵가라면 겸상애, 겸교리, 도가라면 도, 덕이 그렇습니다. 아타나시우스파라면 삼위일체가 그렇겠습니다. 그 학파의 학자라면 이 덕목들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못하면 그 학파의 학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학자라면 누구나 명분을 우선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다소 고루하죠? 그러면 유학자들이, 혹은 학자들이 '명분이 실리에 앞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단지 고루하기 때문일 뿐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자들처럼 복잡하고 도덕적이지는 않더라도, 보통 사람들에게도 '명분'은 존재합니다.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이긴 병신이 되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실하다면, 적어도 명분이라도 챙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숭고'하거나 '고루'한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명분이 충분하게 제 역할을 한다는 사례이겠지요. 명분은 빈 껍데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없으면 비루하고, 천박해지죠. 그래서 대체로 명분이 실리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자가 「불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주요 주제가 바로 이 점과 일맥상통합니다. 편명인 「불구」는 한자로 '不苟'라고 씁니다. 여기서 '不'은 물론 '~가 아니다'라는 부정어입니다. '苟'는 문어체에서 일반적으로 '진실로', '정말', '참으로'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구차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不苟'는 '구차하게 살지 마라'라는 말입니다. 저는 「불구」를 12개 문단으로 나누었는데, 이 중 '不苟'라는 편명과 일치하는 문단은 가장 첫 문단 하나와, 가장 마지막 문단 하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10개 문단은 '不苟'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일반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은 '不苟'라는 주제를 잘 드러낼 뿐만 아니라, 순자가 '명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주목해서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순자는 우선 세 가지 덕목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行', 하나는 '說',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名'입니다. '行'은 '행위', '說'은 '말', '名'은 '명망', '명성'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단순히 '행위', '말', '명성'인 것은 아닙니다. 순자는 '사람들이 우러르는 것'으로써 '行', '說', '名'을 간주했습니다. 즉, '사람들이 우러를 만한 행동', '사람들이 우러를 만한 말재주', '사람들이 우러를 만한 명성'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러를 만하다고 해서 그 점이 올바르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 돈을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도, 그 사람을 경멸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우러른다'라는 개념과 '올바르다', '부정하지 않다'라는 개념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行'이 우러를 만하다고 해도 법도에 맞지 않을 수 있고, '說'이 우러를 만하다고 해도 사리에 맞지 않을 수 있으며, '名'이 우러를 만하다고 해도 추잡할 수 있습니다. 순자는 이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行', '說', '名'이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구차하다'는 뜻의 '苟'를 사용해서 각각 '苟難', '苟察', '苟傳'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苟難'은 하기 어렵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행위, '苟察'은 뛰어나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말재주, '苟傳'은 세상에 널리 퍼져 있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명성을 뜻합니다. 순자는 '苟難', '苟察', '苟傳'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었습니다.
옛날에 신도적(申徒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요(堯)의 양위를 거절하고 자살했다', 혹은 '자신에게 양위할까봐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에게도 양위해 올까봐 지레 겁먹고 돌을 품고 강에 뛰어 들어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자 잡편》 「외물」에 등장합니다. 이상하죠? 양위 제안을 받았는데, 그 제안이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하고 귀나 한 번 씻으면 그만이지, 강에 뛰어들어서 자살을 하다니요. 품에 돌을 안고 강에 뛰어들기는 분명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리에 맞다고 볼 수도 없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苟難', '구차하게 어려운 짓'입니다.
아열, 등석자, 혜자, 공손룡자를 비롯한 명가의 학설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명가 사람들은 산과 연못이 똑같이 평탄하다고 하고, 하늘과 땅이 똑같이 낮다고 했습니다. 제나라와 진나라(秦)가 같은 곳에 있다고 하기도 하고, 입에서 나가야 할 말이 귀로 들어오고, 귀로 들어와야 할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고 하기도 합니다. 잠박에 수염이 있고, 알에도 털이 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제나라는 열국 중 가장 동쪽에 있었고, 진나라는 열국 중 가장 서쪽에 있었습니다. 실제로 위치가 같지 않고, 같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명가, 특히 혜자는 만물이 상대적으로 모두 같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제나라와 진나라가 같은 곳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혜자 이야기는 《장자 잡편》 「천하」 가장 말미에 상대적으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논변들은 분명 정교하고,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이해하기도 어렵죠. 설명할 수 있으니 어떤 입장에서는 '참'이라고 할 수야 있겠습니다. 그러나 상식이나 도리에 맞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순자는 이런 논증을 보고 '苟察', '구차하게 정교한 논변'이라고 했습니다.
도척(盜跖)은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도적입니다. 《장자 잡편》 「도척」, 《장자 외편》 「거협」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내용에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에 도척은 이미 '전설적인 도적'이었다는 것이죠. 정치를 잘해서 이름이 남기도 어려운데, 도척은 도적질을 크게 해서 이름이 남아 버렸습니다. 지금도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민원을 성실하게 처리하는 공무원들은 청사에 이름이 남지 않고, 오히려 나랏돈을 훔치거나 적성국가에 기밀을 판 놈들이 '이름'을 남깁니다. 이름이 남았으니, 명성은 분명 명성입니다. 하지만 도척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노자나 공자, 장자 같은 사람들의 명성과 도척의 명성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명성', '명망'이라는 말이 있고, 또 '악명'이라는 말이 이 말들과 구별되게 존재하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죠. 도척처럼 명성이 아무리 높아봤자, 도리에도 맞지 않고, 부정하며, 비루하기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래서 순자는 이런 명성을 보고 '苟傳', '구차하게 이름이 전해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목이 말라도 수챗구멍에 흘러 들어간 물을 받아 마실 수는 없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도 못하는 쇳덩이를 주워 삼킬 수는 없습니다. 생리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도덕적인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뭔가 지켜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남의 것을 부정하게 빼앗아서는 안 되고, 아무리 처지가 나쁘더라도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도적, 혜자, 등석, 도척은 모두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行', '說', '名'에 대한 자기 자신의 입지를 다졌지만, 네 사람이 쌓아 둔 '行', '說', '名'이라는 것은, 모두 도리에 맞지 않아서 '苟', '구차한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짓들이었습니다. 그래서 '苟難'이라고 하고, 그래서 '苟察'이라고 하며, 그래서 '苟傳'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순자의 논지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 '명제를 기가 막히게 증명해냈다', '명성이 태양처럼 드높다'라는 명망을 얻는 데 눈이 뒤집혀서, 사람이 사람으로써의 본분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었습니다. 지킬 것을 지키지 않고서 명망을 얻어 보았자 치욕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순자의 입장에서 올바른 유학자라면, 명망 때문에 자신을 팔지 않고 올바른 길을 올곧게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不苟'입니다.
그러나 순자는 '苟難', '苟察', '苟傳'을 정의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불구」 말미에서 이 이론을 가지고 직접 전중(田仲)과 사추(史鰌)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순자는 왜 전중과 사추를 비판했을까요? 순자는 일종의 제유(提喩)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제유란,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순자는 어떤 특성을 들고, 그 특성을 사람 전체의 것이라고 확장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모두 게으르다'나 '사람은 모두 악하다'처럼 말입니다. 이 명제를 증명하려면,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람에 대해 이 명제가 타당한지 검증해야 하지만, 순자는 자기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사람의 특성을 들고, 이것을 사람 전체의 모습이라고 확장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순자는 '人之所惡者/吾亦惡之', 즉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나 또한 싫어한다'고 하면서, '부귀한 사람은 좋아하고, 빈천한 사람은 싫어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전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전중과 사추가 '부귀한 사람은 편파적으로 굴면서까지 멸시하려 하고, 빈천한 사람들은 애를 써서라도 사랑하려 한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를 가지고는 '盜名於晻世者', 즉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기만해서 명성을 도둑질하려 한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즉, 두 사람이 진심이 아님에도 '강직한 체'하며 사람들을 기만한다는 말입니다. 「불구」 첫 부분에서 '苟難', '苟察', '苟傳'이라고 한 점과 일맥상통하죠?
그러면 순자는 전중과 사추가 무슨 짓을 했길래 비판했을까요? 전중은 진중(陳仲)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제나라의 왕족으로, 당대에 아주 청렴하다는 평판이 있었습니다. 전중에 대한 사적은 《맹자》 「등문공 하」와 《한비자》 「외저설 좌상」에 등장합니다. 다만 《한비자》의 경우, 전중과 굴곡(屈穀)이라는 사람의 대화문이 짧게 기재되어 있을 뿐입니다. 한비자는 '無益人之國', 즉 '나라에 도움 되는 바 없는 놈'이라고 평했다는 점만 소개드리겠습니다. 《맹자》는 훨씬 상세합니다. 본문 주석에도 기술하였으나, 다시 한 번 풀어 적어 보겠습니다.
진중(陳仲)은 오릉(於陵)에 살고 있었습니다. 진중의 형은 부귀했습니다. 그러나 진중은 형의 재산이 부정하다고 생각해서 형에게서 나오는 부귀를 받아 먹지 않았습니다. 내외가 짚신을 엮고, 길쌈을 하고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 형네 집에 갔다가 거위를 보았는데, 진중은 거위가 꽥꽥거리기만 하지 쓸 모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모친이 거위를 잡아서 함께 먹었는데, 먹는 중에 형이 들어와서는 그 고기가 전의 꽥꽥거리던 거위 고기라고 하니, 진중은 밖에 나가서 거위를 모조리 토해 버리고는 다음부터 모친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중은 거위를 이미 쓸 모 없다고 스스로 '규정'했는데, 자기가 그 고기를 먹음으로써 자기 말에 대해 '이율배반적'으로 행동을 저지르게 되어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고기를 토했던 것입니다.
지나치죠? 왜 지나치다고 느껴질까요?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규정'한 것은 좋은데, 자기 자신이 그 규칙에 발이 걸려서 넘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진중을 '정도에 지나치다'고 했습니다. 진중은 부정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취하지 않으려 했고,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홀로 서려고 했지만, 정작 진중이 살고 있는 집은 진중이 직접 짓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진중, 즉 전중에게는 모순점이 많았습니다. 맹자는 열정이 있었지만, 머리 회전이 빠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맹자조차도 '전중은 지나치다'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머리가 팽팽 돌아갔던 순자에게 전중이 어떻게 보였는지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양경(楊倞)은 전중을 '賣直', '강직한 체 했다'라고 평했는데, 순자의 평가와 통합니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전중을 청렴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오릉중자(於陵仲子)라고 높여 불렀습니다.
한편 사추(史鰌)는 위나라(衛)의 대부였습니다. 행적은 전중 보다 더 많이 보입니다. 《설원》의 「정리」, 「존현」, 「봉사」, 「잡언」, 《장자 잡편》의 「즉양」, 《여씨춘추》 「시군람 소류」, 《춘추좌씨전》 「양공」, 「정공」, 《新書》의 「胎教」, 《新序》의 「雜事 一」에 모두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추는 위나라 영공(靈公)에게 미자하(彌子瑕)를 내쫓고 거백옥(蘧伯玉)을 등용하라고 여러 차례 간했습니다. 그러나 영공은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추가 늙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추는 자기 아들에게 '生不能正君/死無以成禮', '내가 살아서 군주를 바로잡지 못했으니, 죽어서 예를 갖추지 마라'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영공은 이 꼴을 보고, 결국 거백옥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죠. 이것을 '屍諫', '죽어서도 간한다'라고 합니다.
이 '屍諫' 덕분에 사추는 일찍부터 강직하다고 명성을 얻었습니다. 전중이 맹자, 순자 등에게 비난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논어》 「위령공」에는 '直哉史魚', 즉 '사어여, 강직하구나!'라고 하여, 공자가 이 모습을 두고 사어(史魚)를 강직하다고 칭찬했다는 말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사어는 사추와 같습니다. 《여씨춘추》, 《장자 잡편》, 《설원》 등 여러 사료들에서도 사추를 강직하고, 현명하다고 평가, 혹은 그런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전중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게 갈라진 것에 비해, 사추는 당대 대체로 일관되게 '강직하다'고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순자와 양경이 '강직한 체 했다'라고 평가가 일치한 데에 상반되죠. 《순자》에 주석을 단 학의행(郝懿行)은 '荀之此論將無苛歟'라고 하여, 전중과 사추에 대한 '순자의 이 논변이 너무 가혹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죽어서까지 간한다는 점은 분명 지나치지만, '屍諫' 덕분에 영공은 거백옥을 등용했으니, 사추는 자기 목적을 이루었고, 그 목적이 도리에 맞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사추의 목적이 부정하지 않았음은 《논어》, 《여씨춘추》, 《장자 잡편》, 《설원》에서 칭찬 일색인 점을 고려하면 납득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순자는 사추를 비판하고 있죠. 그러면 순자의 입장에서 사추를 비판할만한 지점은 무엇일까요? 결과는 용인할 만하더라도, 과정이 지나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모르지만, 순자는 아는 행적이 존재해서, 그 행적 때문에 순자에게 비판을 들은 것일까요? 아마 모두 아닐 것입니다. 순자는 유학자이긴 하지만,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잡다한 원칙에 얽매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정과 결과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맹자라면 아마 비판했겠지만요. 우리가 알 수 없는 행적이 존재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순자는 사추를 전중과 함께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전중은 '도에 지나친' 행적, 혹은 '강직한 척'으로 비판을 받았죠. 사추가 비판을 받는다면, 전중과 같거나 비슷한 이유여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자가 사추를 '屍諫'으로 비판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양경이 '賣直'라고 한 말과도 잘 통하죠. 살아야 도를 이루든, 정치를 바로 세우든 할 텐데, 죽음을 감안하면서까지 고작 거백옥 한 사람을 등용하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순자의 입장에서는 앞뒤가 좀 안 맞지 않지 않았나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순자는 전중과 사추를 두고 '盜名於晻世者'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살펴 볼 때, 사추는 몰라도 전중은 그 행적에 지나치다고 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학의행(郝懿行)이야 순자의 비판이 가혹하다고 했지만, 저는 순자가 《순자》 전반에서 '인간성'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순자는 인간은 아주 게으르고 못됐지만, 교육과 교화, 수양을 통해 바로잡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순자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깨우치기 보다는, '원수가 비록 원수이더라도 어떻게 법도에 맞게 사랑하고 미워할 점들을 구별해야 할지'를 따지려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중과 사추의 행적은 순자에게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사추의 행적을 유가의 대성(大聖)인 공자가 칭찬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전중과 사추의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순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不苟'는 명성이나 재주를 좇더라도 올바른 방법, 올바른 방향으로만 해야 하며, 명망을 얻기 위해, 즉 명망이 그 행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만약 올바른 방법, 방향이 아닐 경우, 명망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 명망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 없으며, 다만 '苟', 구차할 뿐이기 때문에 대수롭지도 않고, 요긴하지도 않으며, 대단할 것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망각하고, 명망을 얻기 위해서, 즉 남의 관심이나 받기 위해서 어질지 않은데도 어진 척하고, 강직하지 않은데도 강직한 척하는 짓은 '도둑질보다 너 나쁜 짓'에 불과합니다. 순자의 '不苟'란, 유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자, 수양해야 할 방향입니다. 내용의 절대량은 다소 짧지만, 순자 특유의 강직한 어조 때문에 제게는 더 크게 부각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 '不苟'의 큰 주제, 즉 '어떤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살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비십이자」에서 다시 이야기됩니다. 전중과 사추도 「비십이자」에 다시 등장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고 싶은 분들은 「비십이자」를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상기하였듯 '원래 평범하더라도 잘 배워서 올바르게 될 수 있다'는 명제는 《순자》 전체에 퍼져 있는 논지입니다. 이 말은 '평범한 사람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성인도 본바탕은 평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석가는 태어날 때부터 두 발로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고 합니다. 보통 갓난아이는 '엄마' 발음조차 하지 못해서 시끄럽게 우는 것으로 부모를 고생시키는데, 석가는 어떻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또박또박 발음했을까요? 석가도 보통 사람과 같았을 것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아마 후대 불교도들이 윤색한 말이었겠지요. 작정하고 놀래키려 하면, 보통 사람들은 대개 놀래킬 수 있습니다. 담력이 아주 센 사람은 어떨까요? 그런 사람도 분명 놀라는 수준이 있을 겁니다. 유가적 성인은 어떨까요? 성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理)를 따라 기(氣)를 올바르게 다듬으면, 삼라만상이 변하더라도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순자도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사람인 이상, 놀랄 수도 있고, 남과 사귈 수도 있으며, 때에 따라 두려워하거나, 이익을 내길 바라기도 합니다. 말도 잘하고, 남들과 가까이 지내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과 같죠? 그러나 순자는 군자가 보통 사람들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보았습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군자는 올바릅니다. 예를 들어, 이익을 바라기는 하지만, 부정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고 싶을 수야 있지만, 남의 것을 빼앗거나, 부정한 방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부를 모으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남과 사귀더라도 예의를 지키고, 말을 잘하더라도 도의를 어기지는 않습니다. 겁내기는 하지만, 의기가 꺾이지는 않고, 해를 당할까봐 조심하기는 하지만, 옳은 일을 위해 죽음을 피하려 들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군자입니다. 손이 네 개, 발가락이 18개, 췌장이 32개라서 군자인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지키기 때문에 군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순자는 '其有以殊於世', 즉 '군자는 세속 사람들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순자가 군자가 죽음을 감수하고 의를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의미 없이 고집을 세우다가 죽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일을 이룰 수 있을 때가 있고, 이룰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능력이 되더라도 굽혀야 할 때가 있고,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기세를 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만사는 끝 없이 변화합니다. 오늘 저녁에 국이 없었다고 숟가락을 버린다면, 내일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일이 변화하기 때문에, 세상일에 응(應)하는 우리 태도도 그에 따라 바뀌어야 합니다. 이른바 '임기응변', 또는 '융통성'입니다. 순자는 임기응변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임기응변이 유가적 정치를 이루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순자는 군자가 남을 칭찬하지만 아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직설적으로 남의 잘못을 지적하지만 비방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군자가 자기 자신을 추켜 세우기도 하지만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니고, 형세에 맞춰서 몸을 사리기도 하고, 발을 뻗기도 하지만 시세가 두려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며, 간혹 강경한 모습으로 태도를 절대 굽히지 않지만 교만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상기하였듯, 세상 만사가 변하기 때문에, 군자도 세상 만사에 맞춰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을 순자는 변응(變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파도에 비하면, 뜻을 잠시 굽히거나 세우는 일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뜻을 '굽힌다'는 말이, 유가적 근본을 배신하여 변절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其有以殊於世'라는 말이 있었죠? 응변하더라도 올바른 길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정도를 벗어나는 듯 보이더라도, 적어도 그 목적과 속내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수레를 왼쪽으로 틀든, 오른쪽으로 틀든, 어쨌거나 수레는 앞으로 가야지, 뒤로 돌아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군자는 조금 틀더라도 군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군자'는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문단은 '不苟'와 아주 직접 이어지지는 않지만, '不苟'의 의미가 확장된 글이라고 충분히 간주할 수 있습니다. '不苟'는 본래 '구차하게 살지 마라'는 말이지만, 문맥상 '유학자로서 올바른 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不苟'를 설명하면서 주지하였듯, 순자의 주요한 논점은 올바른 길, 즉 정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점이 바로 '其有以殊於世', 즉 군자가 보통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더라도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점은 군자가 소인(小人)과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드러내서 군자의 길을 걷도록 유도하는 논법은 《순자》에 전반적으로 드러나지만, 「불구」에서는 주제인 '不苟'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특기할 만하겠습니다.
군자도 재주가 있을 수 있고, 소인도 재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재주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순자는 군자는 재주가 있든 없든 아름답고(好), 소인은 재주가 있든 없든 흉하다고(醜) 합니다. 왜일까요? 순자는 재능이 있으면 군자는 너그러운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주고, 재능이 없다면 군자는 공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반면 소인은, 재능이 있으면 교만하게 굴고, 재능이 없다면 남을 시기하고, 해치려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재주가 있든 없든 군자는 아름답고, 재주가 있든 없든 소인은 흉한 것입니다. 유가적 정치, 수양 이론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법도를 바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잘 알고 똑똑하면 남을 잘 가르쳐서 남도 나와 같은 길을 걷게 해야 합니다. 조금 우쭐댈 수야 있더라도, 본질적인 뜻은 항상 '유가적 정치'에 두어야 합니다. 교만하게 굴 이유가 없죠. 똑똑하다고 명성이 드높아지더라도, 교만하다면 결국 그 명성은 '苟傳', 즉 지촐하고 비루하다는 악명에 지나지 않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알든 모르든 적당한 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마찬가지로 적당한 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서 느긋한 듯 보여도 태만해서는 안 되고, 청렴하기는 해도 융통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말을 잘하긴 하지만 그 재주를 가지고 남을 공격하는 데 쓰지는 않고, 깊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생각에 매몰되지는 않습니다. 올곧긴 하지만 남을 이기려고 올곧은 것은 아니고, 강건하지만 난폭하게 굴려고 강건한 것은 아닙니다. 부드럽지만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정중하고 공손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그럽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당한 도리'입니다. 그리고 이 도리를 잘 따르는 모습, 즉 군자의 모습을 보고 '至文'이라고 했습니다. '至'는 '지극하다', '극진하다'는 말입니다. '文'은 지금은 '글', '문구'를 가리키지만, 고대에는 '무늬'나 '그림'을 뜻하기도 했고, 이에서 파생되어 '법도', '형식', '제도'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법도'라고 본다면, 지문(至文)은 군자가 '법도에 지극한 모습', '올바른 법도를 지극히 잘 지키는 모습', '법도를 지극히 올바르게 잘 따르는 모습'을 묘사한 말이 됩니다. 상기하였듯, '적당한 도리를 따르는 모습'이야말로 '至文'인 것입니다.
이처럼 군자는 법도를 따르고, 소인은 법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자와 소인은 대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탕이 훌륭하면, 군자는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만 소인은 오만해집니다. 바탕이 시원찮으면, 군자는 자기 행동이 올바르지 않을까 신중하게 생각하지만 소인은 자기 멋대로 굴기만 합니다. 군자는 똑똑하면 사람들의 관습을 잘 따르고, 어리석더라도 법도를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려 합니다. 그러나 소인은 똑똑하면 남을 기만하고, 어리석으면 남을 해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군자는 관직에 등용되면 삼가고, 관직을 그만두더라도 조심스레 처신합니다. 그러나 소인은 등용되면 약삭빠르고 교만하게 굴고, 관직을 그만두게 되면 원망이나 해댑니다. 군자는 즐거울 때는 만물과 조화를 이루고, 걱정거리가 있을 때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소인은 즐거울 때는 경박하게 굴고, 걱정거리가 있을 대는 두려워 벌벌 떱니다. 끝으로, 군자는 만사가 잘 풀릴 때는 세상의 도리를 밝힐 만하고, 빈궁하더라도 도리를 소박하게나마 설명하려 할 것이지만, 소인은 형통하면 교만해지고 빈궁하면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이와 같이 군자는 올바른 길을 걸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나아질 수 있고, 소인은 그렇지 않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못해집니다.
「권학」에 '近中正', 즉 '중정(中正)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 역시 '至文'과 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中正'을 따르는 모습, 법도를 따르는 모습이야말로 순자가 유학자가 항상 염두에 두고 따라야 할 길로 간주하고 있는 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상기하였듯, 군자는 올바른 길을 걷습니다. 말주변도 좋고, 세상의 이치에도 통달해 있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군자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소나 말들은 가만히 있다가도,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울기 시작합니다. 처음 운 놈의 기세에 다른 놈들도 올라 타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처신을 올바르게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그 기세 때문에 군자에게 모여 든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단순하게 기세로만 설명한다면, 행실이 나쁜 소인의 입장에서도 이 이야기를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게으르게 누워 있기를 좋아하니, 수십 명이 앉아 있는데, 한 사람이 누워서 다리를 뻗기 시작한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누워 다리를 뻗게 되지, 눕기 시작한 사람을 바로잡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순자는 예를 한 가지 더 들었습니다. 몸을 씻고 왔는데, 지저분한 옷을 입고 싶을까요? 아니면, 머리를 감았는데, 더러운 모자를 쓰고 싶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게 사람의 일반적인 생각이니까요. 그러므로 목욕한 사람은 옷을 털고 입으려 들고,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을 털고 쓰려 합니다. 사람은 지저분하기 보다는 깨끗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자가 올바른 길을 걷고, 말주변도 좋으며, 세상의 이치에 통달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군자 주변에 모여 들게 되는 것입니다.
순자는 「권학」에서 성질이 비슷한 부류끼리 모여 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화와 재앙을 불러 올 만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었죠. 이 문단의 논증과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부분까지 「불구」에서 '不苟'와 최대한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불구」에서 '不苟'과 상관이 없는 내용들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나머지 내용들을 추려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정치에 대한 논증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군자의 조술(操術)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술이란, '항상 마음에 두면서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조술 역시 넓게 보면 정치론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마음을 길러 내는 방법으로, '誠', 즉 '정성 들이기'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誠'은 단독 주제로는 본 주제인 '不苟'와 맞먹거나, '不苟'와 길어 보일 정도로 그 내용이 상세합니다.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종의 처세술로 '偏傷之患'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비가 어떻게 분류되는지, 군자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순자의 유학'이라는 틀 안에서는 일체성이 담보됩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비상」 같은 편에도, 주요 주제인 관상을 비판하는 내용은 적고, 다른 '유학 일반'에 대한 글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아마도 순자 본인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순자》 편찬 과정에 얽힌 다른 사정 때문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구차함'에 대한 글을 모아 보았더니 한 편을 이루기엔 길이가 너무 짧아서, 다른 글들을 병합해서 편을 구성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우선 정치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불구」에 제시되어 있는 정치 이론은 겉보기에 다소 난해합니다. 순자는 '君子治治/非治亂也//曷謂邪'라고 하며 이 문단을 시작합니다. '治'는 '다스리다', 혹은 '다스림'이므로, 직역하면 '군자는 다스림을 다스리지, 어지러움을 다스리지는 않는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가 됩니다.
난해하죠? '曷謂邪'라고 되묻는 말이 본문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순자 자신도 이 구문이 아주 난해하게 읽힐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 '君子治治/非治亂也'를 읽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할 반응이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구문을 해석하려면, 글의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문단에서 '治'는 '禮義'와 같습니다. 그리고 '亂'은 '非禮義'와 같습니다. 따라서, '다스려진 상태'라는 것은 '예와 의로 다스려진 상태', 혹은 '예와 의에 맞는 방법'이고, '어지러운 상태'라는 것은 '예와 의가 서지 않은 상태', '예와 의에 맞지 않는 방법'을 뜻합니다. 이에 의거하여, '君子治治'에서 앞의 '治'는 '다스리다'는 용언으로, 뒤의 '治'는 '예와 의에 맞는 방법', 혹은 '正'으로 보아서 '올바른 방법'이라는 체언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그러면 '亂'은 '예와 의에 맞지 않은 방법', 혹은 '邪', '삿된 방법'이라고 해석해야 하겠지요. 이렇게 해석하고 보면, '군자는 올바른 방법으로 다슬지, 삿된 방법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방법으로만 다스리고, 그릇된 방법으로는 다스리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곳에서 순자의 초점은 정치의 '과정'에 있습니다. 즉, 군자의 정치는 그 과정 역시 올바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와 의에 따라서만 나라를 다스려야지, 예와 의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는 나라를 다스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나라가 문란하여서 군자가 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 나라가 문란한 까닭은, 아마 그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제대로 서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군자는 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기존의 방법을 개량해서 다스려야 할까요? 순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군자는 예와 의에 맞는 방법으로만 다스리니까요. 즉, 군자는 문란한 나라의 통치 방법을 그대로 두고 그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기존 통치 방법을 폐기하고, 예와 의에 맞는 통치 방법을 새로 세워서 그 나라를 다스립니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행실이 지저분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자기 행실을 바로잡으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래 갖고 있던 행실, 즉 지저분한 행실을 가지고 자기 행실을 고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저분한 행실을 바로잡으려면, 지저분한 행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공부하고 수양해서, 뜻을 예와 의에 맞게, 즉 '올바르게' 세우고서야 비로소 자기 행실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예와 의에 맞지 않으면 애초에 올바르게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넓게 보면, 순자는 '유학적 방법' 외의 다른 방법, 즉 '예와 의에 맞지 않는 통치 방법'을 이 글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한 번 정리해서 그렇지, 실제로 「불구」 본문을 보면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이 부분에서 유독 '治'와 '亂'이 중의적으로 사용되어서 문단 전체를 읽기 전까지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학자들이나 번역가들의 번역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읽어 보면 순자의 초점이 예와 의에 맞지 않는 정치를 혁파하는 데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 점을 초점으로 두고 번역하고, 해설했습니다. 글자 단위에서 이 글자를 왜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는 본문의 주석으로 설명해 두었으니, 본문을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操'는 '쥐다', '잡다', '잡고 있다', '장악하고 있다',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조술(操術)이라는 것은 '지니고 있는 방법', 즉 '항상 지니고 있으면서 참고하는 방법'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말은 생소한데, 사실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하나씩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심한 사람들은 '전화를 받을 때는 심호흡을 한 번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이런 것이 조술입니다. 물론 순자는 소심하지 않은 유학자이기 때문에, 순자의 조술 역시 '자신을 어떻게 수양할지',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순자는 군자가 처한 상황이 제한적이더라도, 군자가 사리에 통달해 있으며, 뜻을 올바르게 품고 있을 수 있다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군자는 대청이나 방에서 내려 오지도 않고서도 온세상의 실정을 낱낱이 헤아리고 있을 수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것이지요.
순자는 또 다시 제유에 근거하여 주장을 폈습니다. 순자는 사람의 정리(情)는 한 사람이든, 천 사람이든, 만 사람이든 모두 같고, 상고 시대의 저 옛날도 지금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여기나 저기나 모두 사람 사는 세상이니, 다를 게 무엇 있겠냐는 뜻입니다. 지금도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죠? 아마 몇 십 억 년은 지금과 같았을 겁니다. 그런데 순자는 자연 현상 뿐만 아니라, 사람 역시 같았다고 보았습니다. 순자가 착안한 점은 정치의 원리입니다. 지금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나, 옛날에 세상을 다스렸던 방법이나, 모두 원리가 같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저 상고의 요(堯)나 순(舜)이 세상을 다스렸던 방법이나, 비교적 '최근'인 주나라의 문왕이나 주공이 세상을 다스렸던 방법도 같을까요? 순자는 같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가까운 문왕이나 주공을 본받아서, 요나 순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순자는 이 원리를 '百王之道/後王是也', 즉 '백왕의 도리는 후왕의 도리와 같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백왕(百王)은 요나 순처럼 저 상고 시대의 제왕을, 후왕(後王)은 문왕이나 주공처럼 비교적 '최근'의 제왕을 뜻합니다. 학자들은 순자의 이 논법을 후왕론(後王論)이라고 합니다. 기억해 둘 만합니다.
그래서 순자는 군자가 후왕의 도리를 살피고(審後王之道), 이로써 백왕의 자취를 헤아릴 수 있으며(論百王之前), 그렇게 하면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의견을 내는 것처럼(若端拜而議) 세상의 이치를 따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의견을 낸다(端拜而議)는 말은, 한 자리에 앉아서 정치를 펴는 모습을 뜻합니다. 원리를 깨우치고 있으면 굳이 발품을 팔 필요가 없겠죠? 그래서 군자는 방이나 대청에서 내려 오지도 않고, 천하의 이치를 깨닫고, 사해의 백성들을 모두 다스리며, 세상 구석구석의 실정을 헤아리고 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다섯 척밖에 되지 않는 구로도(五寸之矩) 천하 구석구석을 빈 틈 없이 살필 수 있다고(盡天下之方也)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군자의 조술(操術)이요, 이치를 궁구하는 방식입니다.
순자의 후왕론(後王論)은 「불구」 외에도 여러 편에 등장합니다. 순자는 「권학」에서 이미 《시》나 《서》 같은 경서들을 무작정 읽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말씀드린 것처럼, 경서들을 바라 보는 순자의 시각은 당대 다른 유학자들에 비하면 아주 독특합니다. 후왕론 역시 순자만의 독특한 견해입니다. 그러면 순자는 왜 후왕론을 주장하게 되었을까요? 요나 순은 기년으로 따지면 기원전 2300년 경의 사람들입니다. 순자는 기원전 250년 경에 살았죠. 요와 순이 살았던 시기는 지금을 기준으로 4300여 년 전으로, 정말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순자를 기준으로 해도 여전히 약 2000여 년 전이나 됩니다. 주나라 문왕은 기원전 1150년 즈음 사람들이니, 그래도 천여 년이 줍니다. 게다가 유명무실해졌다고 할지라도 순자 생전에는 주나라가 남아 있었고, 요나 순에 대한 《서》의 단편적인 기록 보다야 문왕, 주공에 대한 기록이 훨씬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왕으로써 으뜸이야 요와 순이긴 하지만, 요와 순에 대해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이상, 누구를 지침으로 삼아야 할까요? 요와 순의 정신을 문왕과 주공이 이어 받았다고 하고, 문왕과 주공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다면, 문왕과 주공을 기준으로 하여 요와 순의 정치를 이어서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순자도 이 점에 착안했습니다. 「비상」에는 '欲觀聖王之跡/則於其粲然者矣/後王是也', 즉 '성왕의 발자취를 살피고자 한다면 그 치적이 환하게 드러난 것을 살펴야 한다. 이것이 후왕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후왕론의 취지가 순자 본인의 글로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죠. 나중에 다시 상술하겠으나, 순자가 후왕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던 이유는 아주 현실적인 동기에 기인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 혹은 그 이전 시대의 기록을 보완하려면, 《삼국지》, 《한서》, 《후한서》, 《사기》 같은 다른 사서들을 참고해야 합니다. 삼국 건국 이전 시대의 기록이 한국에서는 정사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자는 사료를 분석할 때 필요한 이 기본적인 원칙을 '유학자'로써 '후왕론'을 가지고 충실히 지킨 셈입니다.
「불구」에서 순자가 상세하게 논하면서 따지는 또 하나의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誠'입니다. '誠'은 '정성 들이기', '노력하기'라는 의미입니다. 공부하거나 수양할 때 멈추지 말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권학」이나 「수신」에 이미 등장했었습니다. 순자는 이 이야기들을 「불구」에서 구체화하고, 체계화해서, 정성 들여 노력함으로써 어떻게 유가적 정치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문단에서는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하늘을 보고는 숭배하고, 땅을 보고는 경외하며, 사계절이 바뀌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 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순자는 하늘과 땅, 사계가 일관되기(有常)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하늘은 언제나 드높이 하늘이요, 땅은 언제나 거대한 땅입니다. 새까맣게 까먹고 있어도 사계절은 돌아오죠. 그 불변성, 일관성, 항상성이야말로 사람들이 하늘과 땅, 사계를 숭상하는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순자는 군자가 사람들에게 숭상을 받는 이유 역시 이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군자는 언제나 세상을 교화하고, 변화시킬 만한 덕을 품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군자는 어떻게 덕을 일관되게 품고 있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순자는 그 근거를 바로 '誠'에서 찾았습니다.
순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군자가 일관되게 마음 가짐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성심껏(誠) 인(仁)과 의(義)를 닦기를 뜻을 두고 매진하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과 의는 모두 정치의 원리와 연결됩니다. 인을 닦기에(守仁) 정성을 들이면(誠) 인이 겉모습에 드러나게 되고(形), 겉모습에 드러나면 신명스러운 힘이 생깁니다.(神) 그리고 그 신비한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게(能化) 됩니다. 교화(化)가 유가 정치의 목표라는 점은 따로 설명드릴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편, 의를 닦으면, 즉 의를 실천하면(行義) 이치를 깨닫게 되고(理), 이치를 깨달으면 사리에 명철해집니다.(明) 사리에 명철해지면 사람들을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게(能變) 됩니다. 즉, 인하기를(仁) '誠'하면 사람들을 교화시킬(化) 수 있게 되고, 의하기를(義) '誠'하면 사람들을 변화시킬(變)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순자는 사람들을 '化'하고 '變'할 수 있게 된 상태를(變化代興) 천덕(天德)이라고 했습니다. 천덕이란, 아마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힘'이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유가적 정치의 목표는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므로, '誠'의 결과인 '天德'과도 잘 부합한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상기한 것처럼 군자가 인과 의에 '誠'하였기 때문에 군자는 천덕을 갖추게 되었고, 이 덕분에 사람들은 군자를 하늘과 땅을 보듯 우러르게 됩니다. 아무 말을 않아도 뜻을 알아 차리고, 은혜를 베풀지 않아도 군자를 가까이 모시려 들며, 화를 내지 않아도 군자에게 위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반면 '誠'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백성들이 군자를 따른 것은, 군자가 '誠'하여서 일정한 덕, 즉 천덕을 갖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誠'하지 않으면 군자는 덕을 잃을 것이요, 그러면 백성들도 군자를 우러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誠'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순자는 그 근거를 일상적인 관계성에서 찾았습니다. 하늘과 땅, 사계가 높고, 거대하며, 일정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그 형체를 유지하기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듯이, 아비와 자식의 관계, 왕과 신하의 관계도, 그 사이에 사랑이나 존경, 위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誠'하기 때문에 유지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신하라고 모두 자기 군주를 존경하는 것은 아니고, 자식이라고 모두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모는 멸시받기도 하고, 어떤 군주는 시역당하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순자는 부모와 군주가 자기 역할에 대해 '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역할을 다했다면 마땅히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합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까닭은, 그렇다면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은 곧 자기 본분에 대해 '誠'하지 못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군자는 천하 만민을 다스릴 포부와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니 아비와 군주는 차치하더라도, 군자는 '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誠'한 마음으로, 초지일관 인을 지키고 의를 실천하면, 언젠가 군자는 천하 만민을 교화하게 될 것입니다.
「수신」에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을 길러내는 방법(治氣養心之術)이 소개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수신」을 다시 읽어 보면, 이 방법은 예(禮)를 따라야 한다는 말로 귀결되었었습니다. 순자가 이 문단에서 '誠'을 소개할 때도 '君子養心莫善於誠', '군자가 마음을 기르는 방법에는 誠하는 것 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라고 운을 띄웠었죠. 둘 다 '養心', '마음을 기른다'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혹시 같은 개념이 아닌가 혼동되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治氣養心之術'에서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일상적인 마음가짐'을 다루고 있는 반면, '君子養心莫善於誠'에서는 '정치에 임하기 위한 제반 조건'을 다루고 있음이 명백합니다. 서로 지칭하는 바가 다르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편상지환(偏傷之患)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수신」에 만사가 두루두루 잘 풀릴 방법(扁善之度)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어 보면, 상기한 '治氣養心之術'처럼 결국 예(禮)를 따르라는 말로 귀결되지만, 겉보기에는 약을 파는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순자》에는 이처럼 본문 문맥과는 별 상관 없지만, 처세술처럼 보이거나, 실제로 처세술과 연관된 문단이 글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 소개할 편상지환 역시, '不苟'라는 편의 주제와는 별 상관 없는 처세술입니다. 이 점을 감안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患'은 '걱정거리', '근심거리', '걱정할 만한 일'을 뜻합니다. 지금이야 '고라니를 못 볼 위험이 있다'처럼 '위험'이라고 표현하지만, 고대에는 '患'이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장자 내편》 「인간세」에 인도지환(人道之患)과 음양지환(陰陽之患)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患'의 용법이 이 부분과 같습니다. 따라서 '偏傷之患'은, '偏'하여 '傷'할 수 있는 '患'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偏'은 '편파적이다', '편벽하다'는 뜻입니다. 판단 기재가 한 쪽에 치우쳐 있음을 의미합니다. '傷'은 말할 것도 없이 '다치다'는 뜻입니다. 해를 입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편상지환이란, '판단이 치우쳐 있어서 해를 입을 수 있어서 위험함'과 같은 말이 됩니다.
순자는 사람들이 좋은 것을 볼 때는 좋은 점만 보기 때문에 해를 입는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익을 기대하고 대상을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일이 잘 되어서 돈을 벌 생각만 하지, 잘못되어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측면은 보려 하지 않습니다. 주식이나 선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일단 스스로 확신하면 위험은 배제하고 잘 될 일만 기대합니다. 고백하는 사람들은, 잘 되어서 증손자를 볼 생각부터 하지, 잘 안 되어서 괴로워할 자기 자신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죠. 앞뒤 안 보고 덤비니 까딱만 해도 수렁에 빠지고, 하나가 잘못되면 뒷통수가 깨져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편상지환(偏傷之患)입니다.
편상지환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대 급부를 고려하면 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익이 될 만한 거리가 보인다면, 해가 될 만한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앞뒤로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양면을 충실히 살펴서 이해 관계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충분히 검토하고, 판단하여서야 비로소 그 대상을 취할지, 버릴지를 결정할 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처럼, 양면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두 가지 남았습니다. 순자는 선비를 여러 종류로 구분하여서 학자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군자가 경계하고 주의할 여러 요소들에 대한 짦은 글입니다.
순자는 선비(士)를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을 논했습니다. 그 분류는 통사(通士), 공사(公士), 직사(直士), 각사(慤士), 소인(小人)입니다. 각각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통사(通士)에서 '通'은 《순자》에서 주로 '窮'의 반의어로 사용됩니다. '窮'은 '가난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通'은 '막힘 없이 일이 잘 풀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에 따라 통사(通士)는 일을 순조롭게 처리하는 '탁월한 선비'를 뜻합니다. 군주를 공경할 줄도 알고, 백성을 아낄 줄도 알며,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을 맞닥뜨리더라도 순조롭게 응대하고, 바로잡습니다. 이런 선비가 통사입니다.
공사(公士)에서 '公'은 '공평'하고 '공정'한 모습을 뜻합니다. 즉, 공사(公士)는 '공정한 선비', 혹은 '공명정대한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하들끼리 결탁해서 군왕의 판단력을 흐리지 않고, 군주의 비위를 맞춰서 다른 신하들을 비방하지도 않습니다. 정쟁이 일어나도 중립을 견지하고, 사사로운 마음으로 다른 신료들을 해치지도 않습니다. 이런 선비가 공사입니다.
직사(直士)에서 '直'은 '강직'하고 '올곧'은 모습을 뜻합니다. 즉, 직사(直士)는 '강직한 선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윗사람이 자기 장점을 몰라 줘도 원망하지 않고, 자기 단점을 눈치 채지 못하더라도 부당하게 상을 받으려 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하거나 못하는 점들을 꾸미지도 않고, 그 점들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이런 선비가 직사입니다.
각사(慤士)에서 '慤'은 '성실'하고 '착실'하며 '정성'스러운 모습을 뜻합니다. 따라서 각사(慤士)는 '신실한 선비'라고 하겠습니다. 예사롭게 하는 말도 신실하게 하고, 평범하게 하는 행동에도 정성을 기울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풍속은 본받지 않고, 자기 혼자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선비가 각사입니다.
소인(小人)은 군자(君子)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통사(通士), 공사(公士), 직사(直士), 각사(慤士)가 본받고 지향할 만한 '귀감'이라면, 소인은 물론 본받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입니다. 무엇을 해도 신실하지 않고, 정성도 없습니다. 이익이 보이는 일에는 귀신 같이 매달립니다. 이런 놈이 소인입니다.
그러나 소인(小人)을 제외하면, 《순자》 안에서 통사(通士), 공사(公士), 직사(直士), 각사(慤士) 같은 표현들이 일반명사처럼 자주 쓰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자가 체계적으로 군자의 종류를 분류하기 위해서 이렇게 분류했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 순자는 군자의 모습에 여러 형태가 있고, 자신에게 맞는 모습을 지향하도록 일종의 지침을 보이고 싶었다고 생각하면 타당하겠습니다.
통사도 좋고, 직사도 좋으며, 각사도 좋지만, 소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따르면 어진 정치인이 되는 덕목도 있고, 따르면 나라를 망칠 놈이 될 금기도 있습니다. 앞의 선비 이야기에서는 통사, 직사, 각사, 공사가 좇아야 할 권장 사항이라면, 소인은 피해야 할 금기였습니다. 순자는 이번에는 여섯 가지 경우를 나누어서 이 점들을 따졌습니다. 잘 따르면 우(禹)와 같은 명군이 되고, 잘못 따르면 걸(桀)과 같은 폭군이 됩니다. 따라서 군자는 이 지침들을 신중하게 숙고해야 합니다.
공정하면(公) 총명하게 되고(明), 편협하면(偏) 어리석게 됩니다.(闇) 공정하다는 말은 앞의 편상지환(偏傷之患)처럼, 세상일의 양면을 객관적으로 잘 판단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편협하다는 말의 반의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협하다는 말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한 쪽 면만 바라 보는 모습을 뜻합니다. 편상지환(偏傷之患)에서 순자가 논의했듯이, 좋은 점만 보고 나쁜 면을 살피지 않고, 이익 되는 점만 살피고 해를 입을 수 있는 면을 살피지 않는다면,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편협하면 어리석게 되고, 반대로 공정하면 총명하게 된다고 합니다.
올바르고 성실하게 처신하면(端慤) 만사가 잘 풀리고(通), 남을 기만하고 속이기나 하면(詐僞) 일이 풀리지 않게 됩니다.(塞) '通'은 《순자》 안에서 다양하게 쓰이지만, '窮'과 대조될 때는 '일이 잘 풀리는 모습', 쉽게 말해 '만사가 형통함'을 뜻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通'이 '塞'의 반의어로 쓰였습니다. '塞'은 '새'로 읽어서 '요새'나 '변방'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通'과 대조되므로 '색'으로 읽고 '꽉 막혀 있다', '일이 풀리지 않는다', 즉 '窮'과 같다고 보아야 타당하겠습니다. 즉, 이 말의 요지는 정도를 걷지 않으면 어떤 일도 풀리지 않을 것이고, 정도를 걸으면 만사가 다 잘 풀릴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순자가 평소에 하던 주장과 잘 맞습니다.
정성을 다해 마음을 쏟으면(誠信) 통찰력이 생기고(神), 허세를 부리면서 우쭐대기나 하면(夸誕) 미혹됩니다.(惑) 정성을 다한다는 말은 무슨 일이건 대충대충 하지 않고 '誠'을 쏟는다는 뜻입니다. '神'은 원래 '신명하다', '신비롭다'는 말이지만, 이 문장에서는 '惑'의 반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惑'은 '미혹되다', '현혹되다'는 말로, '판단을 그르치다',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神'도 이에 맞춰서 '올바르게 판단한다', '판단을 올바르게 할 힘이 있다', 즉 '통찰력이 있다'는 뜻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입니다. 즉 이 문장은, 자기 자신을 절제하지 않고,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우쭐대면 옳게 판단을 내릴 수 없고, 자신을 절제하고 모든 일에 성의를 쏟아 열심히 하면 만사를 옳게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誠'에 대해 순자가 따로 논술한 글도 있었으니,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이렇듯 「불구」에는 본 주제인 '不苟' 외에도 유학 일반에 해당하는 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인 주제는, 항상 정도를 걸어야 하고, 올바른 목표를 따라야 하지, 정도를 걷지 않고, 목표도 올바르지 않다면,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일을 이룬다 하더라도 '苟', 즉 구차하다, 천박하다, 비루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순자는 맹자 보다 훨씬 유연하고, 합리적이지만, 그래도 유학자입니다. 따라서 명분(名分)이나 정명(正名)이 순자에게 어떤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더라도, 결국 이론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배제될 수는 없습니다. 「불구」는 《순자》 첫 부분에 나온 편들 중, 이 점을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드러내는 데 의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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