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1 - 권학 - 해설(재작성 예정)

2021. 9. 24. 09:22순자 이야기(** 수신편 번역 중 잠정 중단)/원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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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李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1일 16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원문과 번역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6

 

순자 - 1 - 권학 - 1 - 공부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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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67

 

순자 - 1 - 권학 - 2 - 군자의 본성이라고 특별하지는 않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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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68

 

순자 - 1 - 권학 - 3 -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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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69

 

순자 - 1 - 권학 - 4 - 끼리끼리 모인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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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70

 

순자 - 1 - 권학 - 5 - 한 길만 꾸준히 걸으면 명망이 천하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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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71

 

순자 - 1 - 권학 - 6 - 공부는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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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 1 - 권학 - 7 - 군자는 왜 공부하고, 소인은 왜 공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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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 1 - 권학 - 8 - 학문을 이루기 위해서는 탁월한 사람을 따르거나, 예법을 갈고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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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 1 - 권학 - 9 - 《예》는 인간 관계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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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 1 - 권학 - 10 - 공부에 대한 마음이 굳건해야 성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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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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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이 거저 오는 것이었다면 석가가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면서 온갖 번뇌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석가는 왕자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고, 결혼하기도 했고, 자식도 낳았습니다. 고행에 들기도 했고,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습니다. 그 종착점에서야 비로소 석가는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석가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수행'이라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물론 석가는 불도의 창시자이고, 선구자였던 만큼 누가 어떻게 수행하라고 교재를 만들어 두거나 지침을 만들어 둔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석가는 스스로 이것저것 해 보면서 자기의 길을 찾았고, 석가 자신의 바탕, 자질과, 운이 잘 맞아 들어갔기 때문에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장자는 도를 깨닫기 위해 「제물론」 에서 유가, 묵가, 명가를 순서대로 비판하면서 어떤 경지가 더 나은지에 대해 논증을 폈었습니다. 그리고 '도 앞에서 만물은 모두 같다'는 원칙을 이끌어내고, 이로써 도를 실천하면서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지, 도를 가지고 펴는 정치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나가기도 했습니다. 「제물론」에서 「응제왕」에 이르기까지, '도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서 '도를 가지고 어떻게 정치를 펴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때까지 장자는 치밀하고 빈 틈 없이 글을 구성했습니다. 만약 「제물론」에서 「응제왕」까지의 여섯 편 중 단 한 편이라도 없다면 장자의 주장, 장자의 이론은 불완전하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석가의 깨달음과 장자의 도가 같은지, 다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완수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구조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불가도 같고, 도가도 같고, 마찬가지로 유가도 같습니다. 아마 우리가 '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게 무엇에 대한 학문이든 간에 구조적으로 이 과정을 동일하게 밟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學'이기 때문입니다.

 

유가는 공부의 목표와 전망을 백가 중 다른 어떤 학파 보다도 우리가 지금 '공부'와 '입신양명'이라고 하는 '인생 모형'에 가깝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공부해서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살자'라고 생각하고, 옛 유학자들은 '공부해서 인간이 되고, 출사해서 정치를 올바르게 바로잡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학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치를 올바르게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척(盜跖)이나 걸(桀), 주(紂) 같은 개망나니들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걸, 주, 도척은 오히려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왜 세상이 혼란스러워졌을까요?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 정치에 나서니까 그렇습니다. 따라서 유학자들은 정치에 나서되, 먼저 '인간'이 되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자가 가장 저서의 가장 첫 편을 「권학」, 즉 '勸學'으로 지은 이유입니다. 앞으로 뒷편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해 나갈 것인데,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 정치적 기술만 얻어서 정치판에 나간다면, 결국 제 2의 걸, 주, 도척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편이 「수신」, 즉 '修身'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만하겠습니다.

 

 

 

상기한 것처럼 「권학」은 순자가 '공부해라'라는 동기를 독자에게 주기 위해 적은 글입니다. 그런데 사실 '공부해라'라는 말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자체로 감동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12년 동안의 교과 과정과, 그 이후 2~4년 동안의 대학 교육, 그리고 그 이후 대학원 과정, 혹은 취업 공부를 뜻하는 것에 비해, 순자가 이야기하는 공부, 즉 '學'은 철저하게 유가적 정치 목표를 위해 설정된 개념입니다. 따라서 제가 「권학」을 해설한답시고, 「권학」을 '현대적 관점에 맞게 재해석'해서 여러분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놓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해설문이 의미가 있으려면, 「권학」에 드러난 순자의 생각을 잘 분석해서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글에서 순자가 「권학」에서 공부, 즉 학문이라는 것을 어떤 개념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어떻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위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예를 들어 '공부한다'고 하면 우리는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서 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순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순자는 '공부한다'는 개념을 유학과 끝까지 분리하지 않습니다. 즉, 유학적 수양 과정에서 공부 또는 학문을 고려하는 것이지, 공부와 유학이 별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순자는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익히고,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또한 공부를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이 공부하는 데 가장 유용한지 등의 다각적인 입장에서 공부를 뜯어 보고, 씹어 봅니다. 다만 「권학」 본문에는 이 점들이 다소 복잡하게 열거되어 있는데, 저는 이 점들을 잘 따져서, 가급적 알아 보기 쉽게 정리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순자》의 「권학」과 《대대례기》의 「권학」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권학」 내부적인 이야기가 아니기는 하지만요. 《대대례기》에도 「권학」이라는 편이 있는데, 그 내용이 《순자》의 「권학」과 일부 겹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왕염손(王念孫), 노문초(盧文弨), 유월(俞樾) 같은 학자들은 《대대례기》 「권학」 중 《순자》 「권학」과 겹치는 부분을 이용해서 《순자》 「권학」에서 해석이 난해한 부분들을 풀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왜 겹칠까요? 그리고 왜 서로 다른 책임에도 교차해서 검증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기법은 앞으로의 번역과 주석 과정에도 많이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첫 편인 「권학」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공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순자가 어떤 방식으로 공부에 대해 분석해 나가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순자는 공부가 올바르게 된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를 대조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에 사용되는 개념이 바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입니다. 군자는 원래 춘추시대의 경(卿)이나 대부(大夫) 같은 귀족, 관리들을 이르던 말이었습니다. 춘추시대는 봉건적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가장 위에 주나라의 왕족이자 그 친척 제후들인 희성(姬姓)들이 있고, 그 다음으로 이성(異姓) 제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희성과 이성 제후들 사이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정도로 위계 질서가 확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제후는 제후니까요. 그리고 천자와 제후들 아래에는 경(卿)과 대부(大夫)가 있었습니다. 당대에는 과거제 같은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사유 영토를 갖고 있는 귀족들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갔습니다. 경(卿)과 대부(大夫)가 바로 '사유 영토를 갖고 있는 귀족'이었습니다. 천자나 제후는 대부 중 유력한 사람을 경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경은 일종의 '귀족 대표'입니다. 그런데 대부 자체가 귀족 가문이었기 때문에 대부 자리는 세습되었습니다. 봉건 귀족과 같았습니다. 제후들과 경, 대부 사이의 알력 다툼이 당대의 '정치'였던 것이죠. 제후들이 강하면 경과 대부는 약해지고, 경과 대부가 강해지면 제후들은 '쩌리'가 되었습니다. 춘추시대 말기에는 아예 경, 대부 가문들이 제후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경우도 생겼습니다. 제나라에서 전씨(田氏)가 여씨(呂氏)를 축출하고 자기가 제후 자리에 올라서 왕을 참칭한 사건이 있었고, 진나라(晉)의 여섯 대부 집안이 내란을 일으켜서, 그 중 지씨(智氏), 범씨(范氏), 중항씨(中行氏)를 멸문하고 조씨(趙氏), 한씨(韓氏), 위씨(魏氏)가 아예 새로 나라를 세워 버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경과 대부 아래에는 사(士)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적 영토가 없었던 하급 관리들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를 서인(庶人)이라고 했는데, 평민들이었습니다.

 

'君子'라는 말은 이 계급 중 경과 대부 이상의 귀족, 관료들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원래 그랬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유학을 일으키고, 군자의 의미를 재정의해 버립니다. 공자는 기본적으로 주나라의 봉건 질서와 신분제를 잘 다듬어서 세상을 유지하는 것을 '옳은 정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자는 《논어》 「안연」에서 '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앞의 두 구만 떼어서 '君君/臣臣', 즉 천자와 제후는 자기 노릇을 잘하고, 귀족과 관료들도 자기 노릇을 잘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명제인데, 사실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잘 지켜지지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자가 살아있을 당시, 노나라는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노나라 환공에서 갈라져 나온 공족(公族) 대부 집안들인 삼환(三桓), 즉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이 노나라 정계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제후가 나라에서 쫓겨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자 입장에서는 애초에 삼환이 대부로서의 자기 역할과 본분을 잘 맡아 했다면 노나라가 혼란스러워질 이유도 없고, 이웃인 제나라에게 위협 받을 일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묵가는 신분 질서를 없애자는 것처럼 급진적으로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공자는 절대 그러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현행 체제를 잘 유지하고 다듬어서 세상이 유지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렇기에 '정치인' 자리에 있는 제후와 대부들, 혹은 그 아래 관리들이 자기 역할을 잘해서 정치의 중심을 굳건하게 다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귀족, 관료를 의미했던 '군자'라는 말을, '유가적 소양을 충실하게 갖춘 사람'이라는 뜻으로 재정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堯)나 순(舜) 같은 사람처럼 되라고 하면 더 간단하지 않았을까요? 왜 굳이 '군자'라는 개념을 새로 정의해야 했을까요? 요, 순은 '너무' 위대해서 현실적으로 모방하기도 어려웠고, 그리고 춘추 말기를 기준으로도 너무 옛날 사람이기도 해서 실천적으로 좇으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도 달라지니까요. 순자가 《시》와 《서》가 너무 옛날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현재' 실정에 맞지 않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와 순은 '聖人'이 되었고, 현실 정치의 중추를 이룰 사람은 '군자'로써 따로 정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유학자로써의 공부 목표는 기본적으로 군자가 되는 것이 됩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멀고 먼 일입니다. 순자는 평생 공부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긴 하지만, 공부가 그 자체로써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지는 않기 때문에, 성인이 되었다 한들, 배운 것을 세상에 실천해 볼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면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성인이 아니라 군자가 '현실적 목표'인 것입니다.

 

반대로 군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小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인은 딱 뭐라고 정의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소인은 그 자체로 군자의 반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했다'라는 말이 나오면, 대개 '소인은 ~하지 않다'는 말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말을 보면 소인이 무능력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소인은 공부해서 입신양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공부도 안하고, 입신양명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凡人'입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소인은 공부를 하고, 명망을 얻으며, 벼슬자리에 오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유가적 정치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즉, 소인은 개인적 이익이나 영달만을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애초에 대부들이 모두 '유가적 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춘추 말기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꼭 인품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관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다고 인품이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고만고만한 사람이 제후가 되기도 하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놈이 경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군자'이기 보다는 '소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혁명을 일으켜서 다 때려 부수고, 군자가 될 만한 사람을 대부에 임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미 대부가 된 사람들, 또는 대부가 될 사람들, 그리고 제후들에게 군자의 길을 걸어야 세상이 똑바로 선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인을 있는 그대로, 혹은 군자에 비해 나쁘게 묘사하면, 그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소인 보다 군자가 되고 싶지 않겠어요?

 

군자와 소인을 대비해서 그 명과 암을 드러내는 서술 기법은 이미 《논어》에서부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맹자》에도 많이 나옵니다. 순자 역시 군자와 소인을 대비하면서 주로 자기 논지를 전개해 나갑니다. 「권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권하긴 하는데, 군자처럼 해야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됩니다. 소인처럼 하면 공부를 해도 '못'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순자》를 비롯해서 유가에 관한 서적을 읽으면서 군자와 소인을 대조하는 문구가 등장한다면, '이러한 배경에서 군자와 소인을 대조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면 이해를 더 잘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순자는 크게 세 가치 측면에서 공부, 즉 '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부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공부의 '방법',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방법'이란 '교육 과정'입니다. 순자는 어떤 책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공부의 '자세'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순자는 꾸준하고 일관된 자세가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적 분석이죠. 교육의 '중요성'은 말 그대로 교육과 환경이 사람에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외적 분석입니다. 이제 이 아래에서부터는 순자가 「권학」에서 이상의 꼭지들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짚어 보겠습니다.

 

 

 

상기한 것처럼 군자는 공자 이후로 유가적으로 이상적인 정치인을 지칭하는 말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선진(先秦) 유학자라면 누구나 군자가 되어라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순자는 유독 '후천적 노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지요. 순자는 '君子生非異也', 즉 군자의 본성이 평범한 사람과 다른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異'는 여기서 '다르다', 혹은 '특별하다'는 뜻이고, '生'은 '性'으로 볼 때 가장 문맥이 자연스럽습니다. 본성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순자는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순자가 본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순자》 전반에 고루 등장합니다. 아예 편 제목을 「성악」, 즉 '性惡'으로 짓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나쁘다'라는 뜻이죠. 구체적인 사례도 찾을 수 있습니다. 순자는 「영욕」에서 '食欲有芻豢/衣欲有文繡/行欲有輿馬/又欲夫餘財蓄積之富也/然而窮年累世不知不足/是人之情也', 즉 '먹어야 할 때는 고기를 먹길 바라고, 입어야 할 때는 수 놓은 옷을 입길 바라며, 움직여야 할 때는 마차를 타길 바란다. 게다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기를 궁년누세 동안 하면서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욕심을 부리되, 만족할 줄 몰라서 끝이 없다'는 것이 바로 순자가 인간의 본성을 바라 본 방향입니다.

 

그런데 순자는 동시에 군자의 본성이 특별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 군자의 본성도 이럴까요? 그렇습니다. 군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군자는 공부하여 자기 본성을 극복하고, 자신을 바로잡습니다. 그럼 군자는 무엇을 공부할까요? 주판을 튕기는 법을 공부한다고 군자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순자는 간나라와 월나라(干越), 그리고 이와 맥(夷貉)으로 예를 듭니다. 간나라와 월나라는 지금의 강소, 절강 일대에 있던 나라들입니다. 중원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중원 사람들은 오랑캐라고 멸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맥은 지금의 산동, 요서 및 요동 이동 지역에 살던 민족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원 사람들은 오랑캐라고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중원의 아이나, 이와 맥의 아이나, 간나라, 월나라의 아이나 모두 태어나면 빽빽 울기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자라나면서 쓰는 말도 달라지고, 습속도 달라집니다. 심하게는 같은 지역 사람인데도 어떤 사람은 선하게 자라고, 어떤 사람은 악하게 자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배우는 것', 혹은 '가르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한이라도 20년 내내 《논어》만 읽게 하면 공자를 닮게 될 것이고, 《장자》를 읽게 하면 장자를 닮게 될 것입니다. 즉, 공부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공부하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군자는 무엇을 공부했길래 군자가 되었을까요? 군자는 바로 선왕이 남긴 말을(先王之遺言) 공부합니다. 선왕(先王)은 고대의 명군을 뜻합니다. 고대의 명군들은 이미 정치를 잘 폈기 때문에 '현재' 사람들이 '명군'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정치를 올바르게 펴기 위해 선왕의 행적을 분석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선왕의 말을 배우기만 하면 모두 군자가 될까요?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편하겠지만, 우리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버리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버리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거리낌 없이 쓰레기를 버리기도 합니다. 똑같이 12년 동안 도덕을 배웠는데, 누구는 쓰레기가 되었고, 누구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골초가 되고, 누구는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데 본 적이 없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라난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몽구(蒙鳩)라는 새는 집을 견고하게 짓긴 하는데, 흔들리는 갈대에다가 집을 매달아 두기 때문에, 집이 아무리 견고해도 바람만 불면 알이고 뭐고 다 떨어져 버린다고 합니다. 사간(射干)이라는 풀은 그 길이가 10cm도 안 되는데, 온 세상을 내려다 보며 살아 갑니다. 사간이 뿌리를 내리는 곳이 바로 산 정상 부근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주변 놈들 싹수가 전부 샛노랗다면 본인도 노래집니다.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커도 주변 사람들이 전부 공부에 혈안이 되어 있다면, 본인도 그 분위기에 휩쓸리게 됩니다. 순자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자가 될 만한 사람은 사는 곳도 가리고, 만나는 사람도 가린다고 했습니다. 묵을 만지면 손도 검어지죠?

 

나쁜 짓에 손을 데지 않고, 언제나 선행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순자는 세상 만사에는 모두 그에 대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인과율'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순자는 원인과 결과를 묶는 '고리'를 비슷한 부류(類)라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끼리끼리 모인다'라고 하는 것처럼, 원인에 따라 결과가 일어난다면, 그 두 현상은 서로 같은 부류(類)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무가 다 비슷해 보여도, 불을 지르면 젖은 것 보다 마른 것이 더 먼저 타 들어갑니다. 순자는 이런 현상을 '불', 혹은 '불에 타는 것'과 '마른 것'이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는데, '썩는 것'과 '벌레'가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순자는 이 이야기를 우리의 태도와도 연관지었습니다. 태만하고 게을러서 학문으로 자신을 갈고 닦을 줄 모르면, 그 태만함 때문에 화와 재앙이 일어난다고 했거든요. 마찬가지로 좋은 마음을 품지 않고, 삿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결국 남에게 원한이나 사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태만함'과 '禍', '災'가 같은 부류이고, '邪穢'와 원한(怨)이 또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는 선행을 쌓고, 선심을 품고 살아 가야 합니다. 말과 행동을 삼가고 또 삼가서, '응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자의 이런 '인과론'은 불교적인 '업보'와 닮은 면이 많은데, 두 이론 모두 선행을 유도하고, 자신을 삼갈 것을 권장한다는 면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배우는지, 어떤 환경에 사는지도 다 중요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순자의 논지 중 가장 기저에 있는 '전제'입니다. '공부하면 본성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 만큼 중요한 말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마차를 타면 먼 거리도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걸어 봤자 마차를 따라잡지는 못할 겁니다. 팔공산 위에 오르면 대구 시내가 보이는데, 우리가 서변동에서 아무리 발꿈치를 돋워 봤자 산 위에 올라간 만큼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 점들을 알고 있습니다. 경험해 보기도 했고, 이론적으로도 '그렇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순자는 이런 명제들처럼 사람들이 '공부하면 본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성을 극복하고, 군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혹은 군자들은 바로 이 명제가 옳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부에 매진합니다. 사람들이 멀리 갈 때 마차를 구해야 한다는 점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순자가 공부가, 혹은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외적 분석'이죠.

 

 

 

위와 같은 요인들, '배우는 것', 그리고 '사는 환경',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행위'가 모두 충족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군자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평양 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듯이, 떠 먹여 주더라도 싫다고 뱉어 버리면 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배우는 본인의 '자세'입니다. 순자는 그 무엇 보다도 꾸준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흙이 조금씩이라도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산이 됩니다. 물이 조금씩이라도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깊은 연못이 되어서 교룡이(蛟龍)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천릿길을 가는데 하루에 반걸음씩이라도 가면 언젠가는 도착합니다. 느리더라도요.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제자리에 멈춰 있을 뿐입니다.

 

흙이 쌓이면 산이 되듯, 공부가 쌓이면 언젠가는 신명(神明)을 체득하기도 하고, 성심(聖心)을 갖추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신명은 '영험한 통찰력'을 뜻합니다. 성심은 '성인의 마음가짐'을 뜻하죠. 성심을 갖춘다는 것은 성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꾸준히 공부를 하기만 하면 요(堯)나 순(舜) 같은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성인은 먼 이야기죠? 순자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성인이 된다'라기 보다는 '공적을 세울 수 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무나 돌에 조각하는 일을 한다고 합시다. 하다가 그만두고 방치하면 썩은 나무라도 조각할 수 없을 겁니다. 기술이 수련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몇 달, 몇 년, 수십 년이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돌에 글자를 새기거나 돌 그 자체를 조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렁이는 연약한 벌레에 불과하지만, 꾸준히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기 때문에 살아 남아 귀감이 됩니다. 그러나 게는 발도 많고, 집게도 있으면서 자기가 집을 지을 생각은 안 하고 남이 파 놓은 구멍에 들어가 살기만 합니다. 지렁이와 게를 위정자에 비유한다면, 누가 공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지렁이일 것입니다. 누가 더 나라에 도움이 될까요? 지렁이가 도움이 더 될 것입니다. 게 같은 놈들는 민간 자본 고속도로나 유치해서 남의 배만 불려 주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꾸준하고 일관되게 해야 한다는 말은 한 길을 꾸준히 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길 저 길 들쑤시고 다니면 그 만큼 힘과 노력, 재능이 분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주가 많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갈림길에서 양쪽 길로 모두 가려고 하면 결국 양쪽 다 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두 군주를 섬기려 하면, 둘 모두에게 원망을 들을 뿐입니다. 두 여자,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려 하면 결국 둘 모두에게 뺨이나 맞게 되겠죠. 오서(梧鼠)는 재주가 다섯 가지나 있어도, 그 재주 때문에 방심하다가 오히려 궁지에 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등사(螣蛇)는 발이 없지만, 심기일전해서 마음을 전일하게 갖추기 때문에 구름 속을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순자는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으면(無冥冥之志) 명성을 빛낼 수 없고(無昭昭之明), 자기 일을 가지고 고민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無惛惛之事) 공적을 혁혁하게 세울 수 없다고(無赫赫之功) 했습니다. 꾸준하고 한결 같이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노력한다고 남이 알아 줄까요? 어쨌건 남이 내 공부 성과를 알아 줘야 출사해서 정치를 하든, 다른 사람을 구하든 할 것이니까요. 순자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순자는 이 점을 호파(瓠巴)와 백아(伯牙)의 연주에 비유했습니다. 이 둘은 각각 슬(瑟)과 금(琴)을 잘 타기로 유명했습니다. 백아야 절현(絶絃)이라는 말로 유명한 사람이고, 호파는 천 년 도 더 뒤의 글인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에 나올 정도로 고명했습니다. 김안로는 조선 중종 때 사람입니다. 순자는 호파가 연주를 하면 물고기도 나와서 연주를 듣고, 백아가 금을 타면 육마(六馬)라도 그 연주를 우러르면서 꼴을 씹었다고 했습니다. '六馬'는 천자나 제후의 수레를 모는 말을 뜻합니다. 물고기와 육마는 본래 연주의 가치를 모르는 동물들입니다. 그런데 물고기와 육마가 호파와 백아의 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호파와 백아의 연주 수준이 극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금이나 슬에 관심이 없는 동물들조차도 호파와 백아의 연주를 알아 볼 정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순자의 진의는 호파와 백아가 그 간 끝도 없이 연습하고, 연주하였다는 데 있겠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도 이 연주 이야기와 같고, 사람들이 선행을 이루는 것도 연주 이야기와 같습니다. 선행을 쌓아가다 보면, 미미하더라도 언젠가는 세상에 그 선행이 드러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다 보면, 아무리 조금씩 해도 그 효험이 드러나 군자가 될 수도 있고, 멀리 본다면 성인도 될 수 있습니다.

 

군자는 학문에 한결같이 뜻을 두기 때문에, 완전하고(全) 무결한(粹) 경지에 오르기를 추구합니다. 읽고 스스로 해설해 보기도 하고(誦數), 사색하기도 하며(思索), 언제나 마음 속에 공부할 뜻을 품고, 공부에 방해되는 것들은 치워 버립니다. 그렇게 자기 자세를 견지합니다. 그래서 공부가 아니면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마음 속에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극치에 이르면, 오색(五色), 오미(五味), 오성(五聲) 같은 것도 공부 보다 우선이 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천하 만물 보다도 학문을 더 가까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군자의 마음이 그렇게 굳게 다져지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달려 들어도, 강력한 권세로도 무너뜨릴 수가 없게 됩니다. 순자는 이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상태를 덕조(德操)라고 합니다. '학문에 대한 군자의 덕이 아주 굳건하고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이걸로 끝일까요? 아닙니다. 순자는 '德操'한 다음에야 '能定能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순자는 왜 공부하라고 했을까요? '修身'하기 위해서 했습니다. 왜 수신하라고 했을까요? 바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바로 '定'은 '修身'을 뜻하고, '應'은 출사, 즉 정치에 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출사할 수 있게 되었다면, 비로소 성인(成人)이 됩니다. '인간 되었다', '인간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꾸준하게 하는 것, 전일하게 하는 것, 한결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순자가 「권학」에서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핵심이자 요점입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순자의 '내적 분석'이기도 합니다. 기억합시다. 반걸음씩이라도 가면, 언젠가는 천 리를 갑니다.

 

 

 

순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앞에서 선왕이 남긴 말(先王之遺言)을 배운다고 했지만, 그냥 선왕의 말이라고 하면 너무 모호하겠죠. 기본 교과서는 유가의 경(經)이었습니다. 유가에는 경이 여섯 가지 있었습니다. 《시》, 《서》, 《예》, 《악》, 《역》, 《춘추》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을 6경이라고 합니다. 이 중 《악》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개를 5경이라고 하죠. 순자가 '교재'로써 이 경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 책들이 어떤 책인지를 간단히 살펴 봅시다.

 

《시》는 주나라 초기부터 춘추시대 초기까지 내려 오던 노래들을 모아 놓은 모음집입니다. 원래 3천여 수나 되었다고 하는데, 공자가 유가적 이념에 맞춰서, '잡다'하고 '음란'한 것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 남은 것은 305편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逸詩'라고 해서 《시》에 수록되지 않은 '詩'가 간혹 인용되는 것을 보면, 아마 공자가 정리한 이후로도 조금 변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순자》에도 「왕패」, 「신도」, 「천륜」에 일시(逸詩)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서》는 '상고 시대'의 정치를 기록해 둔 책입니다. 요(堯)와 순(舜)에서 시작해서 하(夏), 상(商), 주(周) 3대의 정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나라 때부터는 《서》를 《상서》라고도 불렀습니다. 《서》 역시 공자가 편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는 《예기》를 뜻합니다. 그런데 《예》는 한 시대에 모두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아마 공자의 시대 즈음해서부터 서한 시대까지 꾸준히 편찬되었고, 그 130여 편 되는 《예》를 유향(劉向)이 214편으로 정리했으며, 다시 서한 무제 때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이 각각 85, 49편으로 추렸습니다. 대덕, 대성은 형제들입니다. 그래서 각각이 추린 《예기》를 《대대례기》, 《소대례기》라고 부릅니다. 《악》은 음악에 대한 책이었다고 하는데, 진나라(秦)를 거치면서 소실되어 버려서 지금 전하지 않습니다. 6경에서 《악》을 빼고 5경 운운하는 것은 《악》이 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은 자연 현상의 원리를 해설한 책입니다.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상고의 복희씨(伏羲氏)라고 하기도 하고, 주나라의 문왕(文王)이라고 하기도 하며, 주공(周公)이라고 하기도 하고, 공자(孔子)라고 하기도 합니다. 《역》을 《주역》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하나라 때 《連山易》, 상나라 때 《歸藏易》이라는 책이 또 있었다는 것을 보면, 주나라 이전부터 이런 부류의 역서들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지막으로 《춘추》는 공자가 노나라의 기록을 토대로 직접 엮은 역사서입니다. 노나라 은공(隱公) 때부터 애공(哀公) 때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유가적 가치관에 철저히 입각하여 역사를 기록했는데, 예를 들어서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할 때에도, '공격했다', '치다'는 식으로 용어를 획일적으로 쓰지 않고, 명분이나 서열 관계 등을 고려해서 '侵', '伐', '入', '取'처럼 구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춘추》의 기록은 너무 간략해서, 《사기》처럼 읽는 맛이 없습니다. 읽어 보시면 압니다. 저는 우리 사서 중에 《삼국사기》가 《춘추》와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럼 이 책들을 왜 '經'이라고 부를까요? 성인(聖人)이 지은 글을 '經'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을 해설하는 글을 '傳'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진(西晉) 시대 장화(張華)가 지은 《박물지》 「권6」에 '文籍考/聖人制作曰經/賢者著述曰傳'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책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 중 성인이 지은 것을 경이라고 하고, 현자가 지은 것을 전이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이 보다 후대인 남북조시대에도 비슷한 글이 있었습니다. 양나라, 제나라 사람인 유협(劉勰)은 《문심조룡》 「논설」에서 '聖哲彝訓曰經/述經敘理曰論', 즉 '성인이 남긴 변치 않는 교훈을 경이라고 하고, 경의 이치를 설명한 글을 논이라고 한다'라고 했거든요. 그리고는 뒤에서 '釋經則與傳注參體'이라고 하여, '傳'도 '經'에 대한 설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聖經賢傳'이라는 말이 있는데, 분명 '經'과 '傳'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말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출전이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한 초엽에 이미 '經'이라는 말을 썼으므로, '經'과 '傳' 같은 '글의 분류'가 서진 시대 이후에 생겼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참 이전부터 그 개념은 있었으되, 명문화되고 체계화된 시점이 늦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상기한 《시》, 《서》, 《예》, 《악》, 《역》, 그리고 《춘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공자의 손을 거쳤습니다. 공자는 유가에서 절대불변할 성인입니다. 공자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여섯 가지 책을 '經'으로 높여 부릅니다.

 

중국에는 박사(博士)라는 관직이 있어서,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토대로 정치에 힘을 보태도록 했습니다. 박사 제도가 언제 시작된 것인지는 제 식견이 일천하여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황제 때부터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직후, '皇帝'라는 칭호를 만들 때, '臣等謹與博士議曰'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한나라(漢)에 등용되어서 한나라 제도의 기틀을 닦은 숙손통(叔孫通) 역시 진나라의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박사가 상기한 유가의 경들을 공부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한 초에도 박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사기》 「효문본기」에 '天子乃復召魯公孫臣/以為博士'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사기》 「유림열전」에서 '及今上即位'부터 '則/公卿大夫士吏/斌斌多文學之士矣'까지의 내용을 보면, 무제 때 5경에 박식한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었고, 또 공손홍(公孫弘)의 요청으로 박사 제도가 크게 증원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한서》 「무제기」를 보면, 건원(建元) 5년 초에 '置五經博士'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경박사는 바로 《악》을 제외한 나머지 5경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정치에 자문하도록 한 직책입니다. 바로 이 때부터 유가의 다섯 경전들이 중국 정치의 중심으로 파고 들게 된 것이죠. 이 시대부터 유학은 중국의 국시가 됩니다. 물론 서한 무제 때는 순자 보다 150여 년 뒤이긴 하지만, 순자가 기본 교재로 이 '經'들을 꼽은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순자는 《역》을 제외하고 《시》, 《서》, 《예》, 《악》, 《춘추》만을 교재로 꼽았습니다. 《역》은 점을 위한 책이니까 어쩌면 정치를 공부하는 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순자는 각 경서들을 평하기도 했습니다. 《서》는 정사의 요점을 적어 둔 글이라고(政事之紀) 했고, 《시》는 올바른 가락을 기록해 둔 글이라고(中聲之所止) 했습니다. 《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법도의 요체와(法之大分) 관행의 기율을(類之綱紀) 적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악》과 《춘추》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평론이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경을 모두 배운다고 치면, 《예》의 예법과 제도(敬文), 《악》의 중화(中和), 《춘추》의 숨은 뜻, 그리고 《시》와 《서》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두 깨우치게 될 것인데, 순자는 이것을 '天地之間者畢', 즉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경서들을 모두 배우면 세상 만사를 다 깨우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도와 덕이 극진해진다고(道德之極)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이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기 마련입니다. 순자는 각 경들의 단점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와 《악》에는 법도만 있지 설명이 없다고 했고(法而不說), 《시》와 《서》는 너무 옛날 이야기라서 '지금' 실정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故而不切) 《춘추》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축약되어 있어서, 신속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죠.(約而不速) 정말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맹자 같았으면 '미욱해도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현의 말씀을 깨달을 것이다'처럼 고루한 말이나 했을 텐데, 순자는 확실히 '현실적'으로 과감하게 진단을 내려 버립니다. 실제로 《춘추》의 경우, 공자가 쳐 낼 사건을 쳐 내고, 남길 사건은 남기며, '번잡'하게 말을 붙이지 않겠다고 방침을 세운 결과, 정말 간결하게 사건들을 나열하기만 해서, 우리 입장에서는 그 사건들의 전후 사정을 《춘추좌씨전》 같은 다른 주석서가 없으면 이해할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당대 대부들이야 자기네 귀족들 이야기이므로 줄거리를 알겠지만, 우리처럼 미욱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시》도 그렇습니다. 한자가 사용되는 방식이나 조사가 지금은커녕 전국 시대 문헌들과 비교해도 너무 다릅니다. 그 만큼 옛날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적'을 뜻하는 '匪'가 '彼'의 뜻으로 쓰인 예를 《시》 밖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순자는 그래서 무턱대고 이 경서들을 읽는 것도 별로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읽는다면, 적당한 순서가 있습니다. 순자는 《시》와 《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예》를 읽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시》와 《서》는 옛 일들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현재' 세상에 바로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에는 반대로 '현재 세상'에서 사람들이 지키는 법의 요점과 관행의 기율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서》를 읽는 것은 옛 사람들의 도리와 정치 기강을 배우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예》를 읽음으로써 《시》와 《서》에서 배운 것들 가다듬고, 지금 세상에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배워서 '적용'하는 것이니까요. 써 먹을 수 없는 지식들을 배워 봤자, 공부 많이 했다는 고루한 명망이나 얻게 되지 않을까요? 만약 《예》를 배우지 않고 《시》, 《서》만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은 《시》와 《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행동하려고만 들 것입니다. 그런데 《시》와 《서》의 내용은 '현실'과 잘 맞지가 않습니다. 결국 써 먹을 데 없는 지식만 배우고는, 많이 배웠다고 자위만 하게 되겠지요. 순자는 이런 사람을 누유(陋儒), 즉 '비루한 유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읽는 것도 별로지만, 경서들을 혼자서 독파하는 것도 나쁩니다. 《예》와 《악》에는 법도, 즉 커다란 명제만 있지 상세한 설명이 없고, 《시》와 《서》는 누차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실정에 맞지 않으며, 《춘추》는 글이 너무 축약되어 있어서 재빨리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양생주」에서 장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삶에는 끝이 있는데, 지식에는 끝이 없'죠. 혼자 공부해서 어느 세월에 경서들의 뜻을 깨우칠 수 있을까요? 유학은 항상 현실 정치를 지향합니다. 정치를 바로잡아야 할 대부들은 보통 사람들이지, 날 때부터 모두 성인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大聖'의 손을 거친 경서라지만, '小聖'이나 '君子'급에도 못 들 우리들이 경서를 혼자 독파하기는 어렵습니다. 팔 십 평생을 바쳐 독파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야 100살이 다 되어서 어디에 출사하며, 어떻게 정치를 펴겠습니까? 그래서 순자는 공부를 혼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학문에 이미 뛰어난 사람(其人)을 가까이 해야(親)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편한(便)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편하고, 가장 빠른(經) 방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혼자 공부하기 보다는 항상 남에게 묻습니다. 누가 보면 '게으르다' 혹은 '거저 먹으려 든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가장 빠르고, 쉽고, 편하며,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요? 순자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맹자는 부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뛰어난 사람(其人)을 가까이 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예》를 숭상하는 것(隆禮)입니다. 《예》를 읽는 것으로 공부를 마쳐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예》는 현실 정치로 가는 주춧돌이자 디딤돌입니다. 《시》, 《서》, 《춘추》, 《악》 같은 다른 경서들을 아무리 공부하든, 배운 바를 《예》로 갈무리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순자는 《예》를 공부를 마무리하는 단계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소통의 전제 조건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지키지 않는 놈과는 상대하지도 말라고 했죠. 《예》를 따르지 않으면 경박해지고(傲), 예의 없게 무언가를 숨기려 들기도 하며(隱), 남의 눈치도 볼 줄 모르게 되기(瞽) 때문입니다. 《논어》 「안연」에서 공자는 '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라고 하였는데, 결국 공자 역시 '禮'를 '사람의 행동에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순자는 관계성 속에서 '禮'를 보고, 공자는 개인의 행위라는 관점에서 '禮'를 보고 있지만, 그 뜻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래서 순자는 뛰어난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더라도, 《예》를 숭상하기만 하면, 아무리 못 되어도 세상의 법도에 맞는 선비(法士)는 될 것이라고 했고, 반대로 《예》를 숭상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 되어도 쓰잘 데기 없는 유생(散儒)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는 그런 것입니다.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순자가 제안한 '공부 방법'입니다. 유학자들의 교육론이야 사실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고, 꼰대 같은 이야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루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 만큼 많이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왜 많이 들었을까요? 정석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골방에 앉아 있더니 갑자기 불성을 깨우쳤다' 같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그 중에서도 순자는 《예》에 대해 특별히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예》는 상기한 것처럼, 현실 정치로 가는 주춧돌이자 디딤돌입니다. 순자는 직접 진나라(秦)에 유세하기도 할 정도로 정치를 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순자가 살았던 시점이 바로 전국 시대가 극단으로 치닫던 시절이니, 시대에 맞는 '속성 교육 과정'을 고안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화제가 두 가지 남았습니다. 순자는 「권학」에서 군자와 소인을 대조하기도 합니다. 큰 주제는 '공부', '학문'으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상기한 공부의 자세, 방법론 같은 것과는 같이 묶어 설명하기가 까다로워서 저는 분리해서 따로 설명하려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대대례기》 「권학」과 《순자》의 「권학」 내용이 일부 겹친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해 볼 것입니다.

 

 

 

상기한 것처럼, '君子'라는 표현은 공자 이후 재정의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경(卿)이나 대부(大夫) 같은 귀족 및 관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자 이후로는 '유가적 덕목을 충실히 지키는 위정자', 혹은 '자기 역할과 본분에 충실한 위정자'라는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군자에 대비되는 말로는 소인(小人)이 있습니다. 소인은 '자기 본분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가 경전에서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키며 논지를 전개하는 기법은 특별한 방법이 아닙니다. 순자 역시 그런 식으로 논지를 곧잘 전개합니다. 순자는 「권학」에서 '學'이라는 주제와 결부하여 군자와 소인을 비교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그 점을 조명해 보려 합니다. 물론 순자가 드는 사례들이 쉽고, 또 유가 경전이다 보니 '군자'의 행위만 따라 가면 만사형통임이 자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되짚어 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자와 소인은 공부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릅니다. 군자는 귀로 학문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간직해 두어서 온몸이 학문을 체화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군자의 온갖 모습(動静)에는 어느 것 하나 '學'에 위배된 것이 없게 됩니다. 배운 것을 충분히 음미해서 이론과 행위가 일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배운 대로 실천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소인은 귀로 받아서는 입으로 내뱉습니다. 즉, 소인은 입으로 학문에 대해 떠들 뿐, 배운 것이 행동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본인 스스로 실천하지도 않습니다.

 

군자와 소인은 공부하는 목적도 다릅니다. 유학에서 공부하라고 권하는 이유는 출사해서 정치를 바로잡으라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첫 단추가 공부입니다. 공부를 통해 '개인적 수양'을 이루게 되죠. 수양을 이루면 마침내 출사할 만하게 됩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야 출사해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1차적으로는 공부해서 자기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순자는 옛날에 공부하던 사람들은(古之學者) 자신을 바로잡기 위해(爲己) 공부했지만,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今之學者)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爲人)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남에게 보여 준다는 말은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청탁하는 짓을 이릅니다. 순자는 '古之學者'를 군자에, '今之學者'를 소인에 대응시키며, 군자는 '古之學者'처럼 자기 자신을 바로잡기 위해 공부하지만, 소인은 금독(禽犢)을 남에게 바치기 위해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禽犢'은 '새'와 '송아지'로, 남에게 바치는 예물을 뜻합니다. 공부해서 남에게 청탁이나 넣으며 자기 영달을 꿈꾸는 것이죠. 군자가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군자가 위정자로서 자기 직분에 충실하게 종사하면서 세상의 정치를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세할 수 있죠. 재물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고관대작에 올라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지, 이런 것 자체가 목적이어선 안 됩니다. 공부를 통해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 군자이고, 공부를 통해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 것이 소인입니다.

 

소인의 목표는 자기 영달이자 안위입니다. 그래서 소인이 하는 행위의 초점도 모두 영달과 안위에 맞춰져 있습니다. 《장자 내편》 「인간세」에서 공자는 섭공(葉公)에게 '원래 맡은 일을 그대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은 공적에 눈이 멀어서 필요 이상으로 잘하려 하기도 하고, 혹은 벌을 받을까봐 필요 이하로 몸을 사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소인들은 공적을 세워서 영달을 이루기 위해 눈이 뒤집혀 있습니다. 그래서 상식을 벗어난 짓을 하기도 합니다. 앞에서 순자가 《예》에 어긋나면 상종도 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소인이 영달을 이루기 위해 하는 짓도 모두 《예》에서 벗어난 짓입니다. 소인들은 묻지 않은데도 공을 세우기 위해 대답하기도 합니다. 순자는 이것을 '傲'라고 했습니다. '傲'는 '躁'와 같습니다. '경박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를 물었는데 공을 세우려고 둘을 답하기도 합니다. 순자는 이것을 '囋'이라고 했습니다. '囋'은 '지껄이다', '조잘대다'는 말입니다. 순자는 '傲'와 '囋'을 모두 잘못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역할과 직분에 충실하면 됩니다. 물으면 대답해 주고, 묻지 않으면 대답해 주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쉽죠? 앞으로도 이런 대조 구문들은 많이 보게 될 겁니다.

 

 

 

마지막 이야깃거리는 《대대례기》의 「권학」과 《순자》 「권학」이 '일부' 중복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중복되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대대례기》, 즉 《예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다시 짧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기》, 즉 《예》가 '經'으로 분류되어 있는 만큼, 공자를 거쳤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춘추》가 공자의 손에서 완성되었던 점에 비해, 《예》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는 계속 '증보'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중용」은 모두 《예》의 한 편이었습니다. 이설이야 있지만, 대체로 증자(曾子)나 자사(子思)가 지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멀리 보아도 전국시대가 끝나기 전에는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예》가 공자의 손에서 편찬이 끝났다면, 아무리 빨리 잡아도 공자의 제자, 손자 대에 작성된 「대학」, 「중용」이 《예》에 들어 있을 수가 없겠죠.

 

순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예》라는 글은 '현재' 사람들이 지키는 법도와 관습의 기강을 적어 둔 글이니, 그 시대에 맞게 적당한 글이 있다면 집어 넣고, 혹은 빼기도 하고, 그러면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 '편찬' 작업은 서한 시대에까지 이어졌을 것이고, 아마 판본도 다양했을 것 같습니다. 중앙 기관이 있어서, 그 기관이 《예》를 도맡아 편찬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서한 사람인 유향(劉向)이 당시 130여 편이었다는 《예》를 214편으로 정리하였고,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이 각각 85, 49편으로 다시 추렸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순자》 「권학」과 《대대례기》 「권학」이 일부 겹치는 것은, 서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가 편찬되는 과정에서 순자의 제자들이나, 혹은 당대 유학자들이 순자가 지은 「권학」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에 「권학」의 일부 내용을 《예》에다가 집어 넣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보아야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勸學'이라는 말이 '공부해라!'라는 뜻이고, 공부하라는 말이 나쁜 말인 것도 아닌데다가 순자는 유학자이기까지 합니다. 아마 순자가 유가가 아니라 도가나 묵가 사람이었으면 《순자》 「권학」이 일부라도 《예》에 흘러 들어갔을 일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순자의 입지가 유가 학자 치고는 비주류적이기 때문에 《순자》 「권학」을 《예》에 편찬시켰을지가 의뭉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따져 보기 위해서는 순자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찾아 봐야 합니다. 비주류라는 것은 우리 시점에서 비주류라는 말입니다. 전국시대나 서한, 동한 시대 사람들도 비주류라고 생각했을지는 알 수가 없죠. 《사기》 「맹자순경열전」에는 순자의 행적이 담담하게 기술되어 있을 뿐, 순자를 포폄하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직하에서 '三爲祭酒焉', 즉 '세 번이나 좨주를 맡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좨주(祭酒)는 의식을 총괄하는 직책인데, 어중이떠중이에게 그런 자리를 맡겼을 리 없습니다. 분명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사마천 생전에도 남아 있던 걸 보면, 순자가 뛰어났다는 말은 서한 초기, 중기에도 남아 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순자가 우리에게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죠. '性惡'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순자는 '性惡'이라고 했기 때문에 교과서에도 나오고,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맹자는 '性善'이라고 했습니다. 후대 유학자들은 증자와 자사, 맹자를 정통으로 봤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논지가 맹자와 정반대되는 순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비십이자」를 보면, 순자는 자사와 맹자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유학의 초점이 '性'으로 옮겨간 것은 한대의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송대의 일입니다. 그래서 송대 유학을 보고 '性理學'이라고 하잖아요? 송대에 이르러 순자의 평판이 아주 나빠졌다는 점은 분명한데, 사실 그게 언제부터인지를 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왕선겸(王先謙)이 《순자집해》 서문에서 '唐韓愈氏/以/荀子書/爲大醇小疵'이라고 해서 '당나라의 한유가 《순자》에 흠이 있다고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고, 또 '逮宋/攻者益衆/推其由/以言性惡故'이라고 하여, '송대에 이르러서 순자를 비난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는데, 생각해 보면 순자가 성악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선겸을 따르자면, 순자가 비난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당대 이전이고, 그리고 그 비난이 본격화된 것이 송대라고 하겠습니다. 아주 멀리 가서 남북조라고 쳐도, 서한 시대와는 아주 멀고 멉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마 서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가 편찬되는 과정에서 《순자》의 글이 《예》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현전하는 《순자》 「권학」과 《대대례기》 「권학」이 일부 겹치기는 하는데, 겹치는 부분에서 글자가 간혹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지금 우리가 보는 《순자》의 판본 자체가 훨씬 나중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선겸(王先謙)이 주석을 모아서 《순자집해》를 만들었지만, 《순자집해》 또한 당나라 때 학자인 양경(楊倞)이 주석을 단 《순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전하는 《순자》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당나라 때 판본인 것입니다. 《대대례기》는 서한 시대에 만들어졌고, 양경의 《순자》 당나라 때이니까, 600여 년 정도나 차이가 납니다. 옛날에는 책을 손으로 다 베꼈으니까, 베끼는 와중에 글자가 잘못되기도 하고, 당시 쓰던 뜻이 같은 다른 글자로 바뀌기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왕염손(王念孫)이나 유월(俞樾), 노문초(盧文弨) 같은 학자들이 《순자》 「권학」이 이해가 안 되면 《대대례기》 「권학」을 가지고 와서 '고증'하기도 했던 것이죠. 《대대례기》와는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당나라 때 위징(魏徵)이 엮은 《군서치요》에도 《순자》가 「孫卿子」라는 이름으로 인용되어 있고, 서한 사람인 한영(韓嬰)이 지은 《한시외전》에도 《순자》가 곳곳에 인용되어 있기에, 필요할 때에는 《군서치요》와 《한시외전》을 가지고 《순자》를 바로잡기도 합니다.

 

다만 이것은 번역에 필요한 기술입니다. 제 번역에서 주석을 보시는 분들은 《한시외전》, 《군서치요》, 《대대례기》를 들어서 왕염손이나 유월이 '어떠어떠하게 이 글자를 다른 글자로 보았더라'라고 적힌 말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전혀 다른 책인 것 같은데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할 수 있다는 말을 한 번쯤 이야기를 해 드리면 앞으로 제 번역과 해설을 읽으실 때 도움이 더 되리라고 생각해서 정리했습니다.

 

 

 

저는 이 블로그에서 《순자》를 가장 처음 번역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뒤이어 《장자 내편》을 병행했습니다. 《순자》의 첫 삽을 뜬 것이 2020년 5월 4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순자》 보다 오히려 《장자 내편》을 먼저 완역하고 이제 예전에 했던 《순자》를 수정하고 있을 뿐이지만, 처음 《순자》를 읽을 때 보았던 '꾸준함'이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 작업을 그냥 내팽겨쳐 두었을 것입니다. 저는 한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한문을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루에 한 문단, 한 문장씩이라도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었습니다. 중간에 몇 달 놀기도 했지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천 리를 가겠지 생각했었는데, 정말 천 리를 가더라고요. 아무리 노둔하든, 아무리 기민하든, 어쨌건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걸어 가야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순자는 「권학」의 7할 이상을 '꾸준히 하는 것', 즉 '一'에 대한 기술로 할애해 두었습니다. 순자가 저처럼 노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순자는 분명 꾸준히 해서 무언가를 이룬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았나 저는 생각합니다. 꾸준히 해서 이루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핵심적인지를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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