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8 - 성심과 성의를 다하면 천덕을 얻는다(재번역 예정)

2021. 12. 3. 13:57순자 이야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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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李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10월 5일 10시 32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0

 

순자 - 3 - 불구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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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34

 

순자 - 3 - 불구 - 8 - 성심과 성의를 다하면 천덕을 얻는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君子養心莫善於誠,致誠則無它事矣,唯仁之爲守,唯義之爲行。誠心守仁則形,形則神,神則能化矣;誠心行義則理,理則明,明則能變矣。變化代興,謂之天德。天不言而人推高焉,地不言而人推厚焉,四時不言而百姓期焉。夫此有常,以至其誠者也。君子至德,嘿然而喻,未施而親,不怒而威。夫此順命,以其獨者也。善之爲道者,不誠則不獨,不獨則不形,不形則雖作於心,見於色,出於言,民猶若未從也,雖從必疑。天地爲大矣,不誠則不能化萬物;聖人爲知矣,不誠則不能化萬民;父子爲親矣,不誠則疏;君上爲尊矣,不誠則卑。夫誠者,君子之所守也,而政事之本也。唯所居以其類至,操之則得之,舍之則失之。操而得之則輕,輕則獨行,獨行而不舍則濟矣。濟而材盡,長遷而不反其初則化矣。

 

군자가 마음[가짐]을 길러 내는 방법으로는[각주:1] 정성을 쏟는 것[각주:2] 만큼 좋은 것이 없다.[각주:3] [마음가짐을 기르기 위해] 정성을 극진하게 쏟는 방법에는[각주:4]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고[각주:5], 다만[각주:6] [성심껏] 인을 지키고[각주:7], 의를 실천하면[각주:8] 될 뿐이다.[각주:9]

성심껏[각주:10] 인을 지키면[각주:11] [인이 겉모습에] 드러날 것이요[각주:12], [인이 겉모습에] 드러나면 신명스러워질 것이요[각주:13], 신명스러워지면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게 된다.[각주:14] [또한] 성심껏 의를 실천하면[각주:15]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요[각주:16], [이치를] 깨달으면 명철해질 것이요[각주:17], 명철해지면 [사람들을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각주:18] [성심껏 인을 지키고, 의를 실천하여서 마침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도 하고, [마음을] 교화시킬 수도 있[는 도리를 터득하]게 된다면[각주:19] 이를 일러 천덕[각주:20]이라고 한다.

[정성을 다하면 정말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을까.] 하늘은 [자기가 얼마나 높은지] 말하지 않지만[각주:21] 사람들은[각주:22] [하늘이] 높다고 [하늘을] 떠받들고[각주:23], 땅은 [자기가 얼마나 두터운지] 말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땅이] 두텁다고 [땅을] 추앙하며[각주:24], 사시는[각주:25] [계절이 언제 바뀔지] 말하지 않지만 백성들은[각주:26]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알고 있다.[각주:27] [왜 그럴까.] 무릇[각주:28] 하늘과 땅, 사시는[각주:29] 정성을 쏟아 인을 지키고 의를 실천하기를 지극히 하였기 때문에[각주:30] 불변하는 도리를 갖추게 되었[고, 불변적인 도리를 갖추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이치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각주:31]

군자는 [하늘과 땅, 사시처럼 성심을 다해 인을 지키고, 의를 실천하여] 덕이 지극하[게 되었으]니[각주:32], [군자가] 아무 말을 않아도 [사람들은 군자의 뜻을] 알아 차리고[각주:33], [군자가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아도 [사람들은 군자를] 가깝게 모시며[각주:34], [군자가] 화를 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군자에게] 위엄이 있다고 생각한다.[각주:35] 대저[각주:36] 사람들이 군자를 이렇게 대하게 되는 것은[각주:37], 군자가[각주:38] 일관된 자세로[각주:39] 성실하게[각주:40] [사]명을 따랐기[각주:41]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가짐을 기르기 가장] 좋은 방법은 정성을 쏟는 것이다.[각주:42] 정성을 쏟지 않으면 [자세가] 일관되지 않을 것이요[각주:43], [자세가] 일관되지 않으면 [인과 의가 겉모습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각주:44] [인과 의가 겉모습에] 드러나지 않으면 [인과 의가] 비록[각주:45] 마음에 생겨나고[각주:46], 낯빛에 보이며[각주:47], 말로 표현된다[각주:48] 하더라도 백성들은 따르지 않을 것이요[각주:49], [백성들이] 설사[각주:50] 따른다 하더라도 분명[각주:51] 의심을 품을 것이다.[각주:52]

천지가 위대하다고 하지만[각주:53] [그 천지조차도] 정성을 쏟지 않으면 만물을 길러낼 수 없고[각주:54], 성인이 지혜롭다고 하지만[각주:55], [그 성인조차도] 정성을 쏟지 않으면 만백성들을 교화할 수 없다.[각주:56] 아비와 아들이 가깝다고 하지만[각주:57], [그 부자지간조차도] 정성을 쏟지 않으면 멀어지고 말 것이요[각주:58], 군상이[각주:59] 존귀[할 만]하다고 하지만[각주:60], [그 군상조차도] 정성을 쏟지 않으면 무시받게 될 것이다.[각주:61] 대저[각주:62] 정성이라는 것은[각주:63], [이처럼] 군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요[각주:64], 정사의 본바탕이다.[각주:65] [그러니] 오직[각주:66] [자신이] 정성을 쏟아야지만[각주:67] 성실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게 된다.[각주:68]

성실하기로 노력하면 성실하게 될 것이요[각주:69], 성실하기를 포기하면 성실함을 잃을 것이다.[각주:70] 노력하여 성실하게 되었다면 [인과 의의]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요[각주:71], [인과 의의] 이치를 깨달으면 [인과 의를] 일관되게 실천하게 될 것이다.[각주:72] [인과 의를] 일관되게 실천하면서 그만두지 않는다면[각주:73] [덕이] 왕성해질 될 것이다.[각주:74] [덕이] 왕성한 채로 [올바른] 도리를 극진히 지키는 데다가[각주:75],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각주:76] 처음 먹은 마음을[각주:77] 져 버리지 않는다면[각주:78] [비로소 천하 만민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79] 

 

 

 

  1. 養心, 養은 '기르다' [본문으로]
  2. 誠, '정성을 다하다', '마음을 진실하고 참되게 가지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정성을 다하다'로 봐야 타당하겠다. 「권학」에서 一, 즉 '전일하다', '일관되게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본문으로]
  3. 莫善 [본문으로]
  4. 致誠, 致는 極, '치성을 드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순자가 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養心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誠은 수단이고, 養心이 목적이다. 즉, '誠하기 위해 養心하는 것'이 아니라, '養心하기 위해 誠'한다. [본문으로]
  5. 無它事矣, 事는 '방법', '행위', '지침'을 뜻한다. 它는 他, '다르다'는 말이다. 즉, 無它事矣는 '它한 事가 無하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楊倞은 이 말을 極其誠/則外物不能害, '誠을 극진히 하면 외물이 군자를 해칠 수가 없다'라고 해석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보면 外物不能害라고 이해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본문으로]
  6. [본문으로]
  7. 仁之爲守 [본문으로]
  8. 義之爲行 [본문으로]
  9. 王先謙이 언급했듯, 《군서치요》 「손경자」에는 致誠無他/唯仁之守/唯義之行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본문으로]
  10. 誠心 [본문으로]
  11. 守仁 [본문으로]
  12. [본문으로]
  13. 神, '신비하다', '신비한 힘을 얻는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14. 能化, 化는 뒤의 문맥을 고려할 때 '변화시키다', '교화시키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뒤의 變과 유사하다. 守仁에서 시작하여 化에 이르므로, 化는 아마 '마음을 교화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楊倞은 馴致於善/謂之化, '차차 나아지는 것을 化라고 한다'고 설명했으나, 그러면 化와 變이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15. 行義 [본문으로]
  16. [본문으로]
  17. [본문으로]
  18. 能變, 變은 '변화시키다', '습속을 바꾸다'는 뜻이다. 앞의 化에 가깝다. 《사기》 「흉노열전」과 《한서》 「흉노전 상」에 夏道衰/而公劉失其稷官/變于西戎, '하나라의 도가 쇠하니, 公劉는 稷官을 잃고 서융의 습속을 따르게 되었다.'라는 구절에서 變은 '습속이 바뀌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行義에서 시작해서 變에 이르렀으므로, 變은 아마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楊倞은 改其舊質/謂之變, '오래된 기질을 고치는 것을 變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본문으로]
  19. 變化代興, 代는 '번갈아', 興은 '행하다', '이루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變과 化를 번갈아 행할 수 있다면'이 된다. [본문으로]
  20. 天德, 宋基采는 '덕이 하늘과 같다'라고 해석하였고, 金學主와 李止漢은 '하늘의 덕'이라고 해석했다. 楊倞은 德同於天, '덕이 하늘과 같아진다'라고 하면서, 言/始於化/終於變也//猶/天道陰陽運行則爲化/春生冬落則爲變也, '化로 시작해서 變으로 끝난다는 말이니, 天道와 陰陽이 운행하는 것을 化라고 하고, 봄에 움직이고 겨울에 시드는 것을 變이라 했다'라고 했으나, 이 설명은 守仁이나 行義의 뜻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나는 化와 變을 '마음을 교화시키는 것',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나는 化와 變의 초점이 모두 '교화'나 '교정'에 있다고 본다. 君子의 본분은 '정치를 바로잡는 것'인데, '정치를 바로잡는다'는 말에는 '사람들을 교화한다', '사람들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그런데 순자가 이 문단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도 君子의 수양 방법이다. 그러므로 天德은 이에 따라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힘',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덕'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21. 不言 [본문으로]
  22. [본문으로]
  23. 推高, 推는 '받들다', '추앙하다' [본문으로]
  24. 推厚 [본문으로]
  25. 四時, 네 계절을 뜻한다. [본문으로]
  26. 百姓 [본문으로]
  27. 期, '시기', '때' [본문으로]
  28. [본문으로]
  29. 此, 天과 地, 四時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30. 以至其誠, 其는 아마 守仁과 行義를 가리킨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문맥상 至其誠이 有常의 원인이어야 한다. 즉, 誠이 至하여서 有常하게 된 것이지, 有常하여서 誠이 至하게 된 것은 아니다. 순자가 天, 地, 四時의 예를 든 것은 誠이 至, '지극했을 때' 어떤 효용이 따라 오는지를 보이기 위해서이다. [본문으로]
  31. 有常, 常은 '항상되다', '불변적이다', '일정하다', '변하지 않다' [본문으로]
  32. 君子至德 [본문으로]
  33. 嘿然而喻, 喻는 '깨우치다', '알다', 嘿은 默, '조용하다', '아무 말도 않다'는 뜻이다. 앞의 不言과 같다. [본문으로]
  34. 未施而親, 施는 '은혜를 베풀다', 親은 '가까이 지내다' [본문으로]
  35. 不怒而威 [본문으로]
  36. [본문으로]
  37. 此, 앞의 嘿然而喻/未施而親/不怒而威를 뜻한다. 앞에 나왔던 變, 化와 같다. [본문으로]
  38. 其, 君子를 지칭한다. [본문으로]
  39. 獨, 이견이 있다. 楊倞은 '홀로 있는 모습'으로 보았다. 郝懿行과 王念孫도 楊倞과 유사하게 본 듯하다. 그런데 俞樾, 熊公哲, 王天海는 獨을 一, '한 가지 일'로 보고, 唯仁之爲守/唯義之爲行를 뜻한다고 보았다. 이 설도 타당하기는 하지만, 唯仁之爲守/唯義之爲行은 두 가지 일이지, 한 가지 일이 아니며, 뜻이 獨과도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獨을 一로 보고, '전일하다', '일관되다'라고 해석하였다. 순자는 「권학」에서 一을 '전일하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므로, 이렇게 보면 전례에도 맞고, 愼其獨, '君子는 일관된 자세로 愼한다'라는 말이 되니, 글의 의미에도 맞다. 獨을 '전일하다'로 보면, 바로 뒤의 不誠則不獨도 '정성을 쏟지 않으면 전일할 수가 없다'로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본문으로]
  40. 愼, 뜻에 대해 이견이 있다. 본래 愼은 謹, '삼가다', '신중하게 처신하다'는 뜻이다. 楊倞은 이 뜻으로 보았다. 그런데 郝懿行과 王念孫은 《爾雅》를 근거로 愼을 誠, '정성을 다하다'는 뜻으로 보았다. '삼가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의 주제가 誠이라는 점은 명백하기 때문에, 郝懿行과 王念孫의 설이 타당할 수밖에 없다. 俞樾, 熊公哲, 王天海도 誠을 따랐다. [본문으로]
  41. 順命, 命은 '유학자로서의 사명'이다. 郝懿行은 天地四時之命이라고 하였고, 宋基采도 이를 따라 '천지 사계절의 운행인 자연의 규율'이라고 했지만, 말이 안 된다. 天地四時之命이라고 하면 백성들이 期를 자연스레 알듯, 君子도 자연스레 알 뿐일 텐데, 그것을 따르는 데 誠하니 뭐니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순자가 天, 地, 四時에 대해 기술한 것은 誠의 효용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지, 그 자체가 君子가 따라야 할 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본문으로]
  42. 善之爲道者, 道는 '방법', '수단', 이 말을 직역하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인데,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不誠, 즉 誠하지 않았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이다. 따라서 본문 대로만 해석한다면 뒷부분과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아마 善之爲道者/誠也처럼, 誠也 같은 글자가 있다가 빠지지 않았을까 한다. 誠也가 있다고 보고 번역했다. [본문으로]
  43. 不誠則不獨 [본문으로]
  44. 不獨則不形 [본문으로]
  45. [본문으로]
  46. 作於心 [본문으로]
  47. 見於色 [본문으로]
  48. 出於言 [본문으로]
  49. 民猶若未從也, 楊倞은 若을 如, '같다'고 보았으나, 王念孫은 《經傳釋詞》를 인용해 然으로 보았다. 그러면 猶若은 '오히려', '그래도'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본문으로]
  50. [본문으로]
  51. [본문으로]
  52. [본문으로]
  53. 爲大, 爲는 '~라고 하다', '~라고 일컫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54. 不能化萬物, 化는 養, '기르다'는 말이다. 《예기》 「중용」에서 化育, '기르다'는 말로 쓰였다. [본문으로]
  55. 爲知 [본문으로]
  56. 不能化萬民, 化는 '교화하다' [본문으로]
  57. 爲親 [본문으로]
  58. [본문으로]
  59. 君上, '군주', '군왕' [본문으로]
  60. 爲尊 [본문으로]
  61. 卑, '비루하다', '천하다' [본문으로]
  62. [본문으로]
  63. 誠者 [본문으로]
  64. 所守, 所는 '~하는 것'이다. 나는 문맥상 '원칙'이라고 의역했다. [본문으로]
  65. 政事之本 [본문으로]
  66. [본문으로]
  67. 所居, 居는 處, '~하다', '~하게 행동하다'는 뜻이다. 誠이라는 말이 없지만, 문맥상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본문으로]
  68. 其類至, 其는 誠을 지칭한다. 類는 '부류', '집단'이다. '사람들'이라고 의역하였다. 至는 '이르다'인데, 앞의 '所居한 사람에게 이르다', 즉 '모이다', '모여 들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69. 操之則得之, 之는 둘 다 誠을 가리킨다. 操는 '잡다', '쥐다'는 말이니, '誠을 잡다', 즉 '誠하기 위해 노력하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70. 舍之則失之, 之는 둘 다 誠이다. 舍는 '버리다', '놓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71. 操而得之則輕, 之는 誠을 가리킨다. 輕은 본래 '가볍다'는 말이다. '경박하다', '생각이나 행동이 가볍다', '처신이 가볍다', '업신여기다'처럼 부정적인 말에 주로 사용된다. 楊倞은 《시》 「대아 탕지십」 중 「烝民」을 인용하여, '가볍기 때문에 易舉하다', 즉 '실천하기 쉽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楊倞이 인용하였듯이, 「烝民」에서도 德輶如毛, '덕은 가볍기가 터럭 같다'라고 하였을 뿐, 輕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문맥을 고려할 때, 輕 보다는 오히려 經이 타당하다. 經을 理로 해석하여 '이치를 깨닫다'라고 본다면, 操而得之라는 전제에도 타당하고, 뒷구절의 獨行이라는 결과에도 잘 들어 맞는다. 앞에서 '行義하면 理한다'고 하였으니 그 말과도 잘 합치된다. 經과 輕이 통용된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오기이거나, 글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와전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본문으로]
  72. 輕則獨行, 獨은 앞에서와 같이 一로 보고, '전일하다', '일관되다'라고 해석했다. [본문으로]
  73. 不舍 [본문으로]
  74. 獨行而不舍則濟矣, 濟는 보통 '이루다', '성공하다', '성취하다'라고 보고, 목적어를 '일'이나 '업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시》에 濟濟가 盛, '왕성한 모양'으로 사용된 예가 있다. 《시》 「대아 문왕지십」 중 「文王」에 濟濟多士, '많고 많은 士들'이라는 말이 있고, 《시》 「주송 청묘지십」 중 「淸廟」, 「노송 경지십」 중 「泮水」에도 濟濟多士라는 말이 있다. 士의 의미만 조금 다를 뿐, 濟濟는 「文王」과 같이 '많다', '성하다'는 뜻이다. 이곳의 濟도 盛으로 보고, 그 주체를 天德내지 德이라고 본다면 뜻이 본문과 잘 어울리게 된다. [본문으로]
  75. 濟而材盡, 材는 '도리' [본문으로]
  76. 長遷 [본문으로]
  77. 其初, 其는 操之則得之 이래로 상정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에서 직접 지칭한 적은 없다. 初는 '초심'이다. '처음에 誠하겠다고 먹은 마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78. 不反, 反은 '돌이키다', '되돌리다', '져 버리다' [본문으로]
  79. 化, 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誠의 목적은 化와 變이었다. 앞에서 化와 變은 守仁에서 기인하느냐, 行義에서 기인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 둘 모두 사람을 '교화한다',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같았다. 지금 나온 化는 앞의 化와 變을 포괄하고 종합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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