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1 - 권학 - 10 - 공부에 대한 마음이 일관되어야 군자다(끝)

2021. 9. 24. 09:17순자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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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李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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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5월 1일 16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76

 

순자 - 1 - 권학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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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86

 

<하단 주석> 순자 - 1 - 권학 - 10 - 공부에 대한 마음이 굳건해야 성인이다(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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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發失一,不足謂善射;千里蹞步不至,不足謂善御;倫類不通,仁義不一,不足謂善學。學也者,固學一之也。一出焉,一入焉,涂巷之人也。其善者少,不善者多,桀、紂、盜跖也。全之盡之,然後學者也。

君子知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也,故誦數以貫之,思索以通之,爲其人以處之,除其害者以持養之,使目非是無欲見也,使口非是無欲言也,使心非是無欲慮也。及至其致好之也,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心利之有天下。是故權利不能傾也,羣衆不能移也,天下不能蕩也。生乎由是,死乎由是,夫是之謂德操。

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能定能應,夫是之謂成人。天見其明,地見其光,君子貴其全也。

 

 

[활을] 백 번 쏘더라도 한 발을 놓치면 [활을] 잘 쏜다고 할 만하지 않고, [수레로] 천 리를 가는데 반걸음을 덜 갔다면 [수레를] 잘 몬다고 할 만하지 않다.(百發失一/不足謂善射/千里蹞步不至/不足謂善御, ◈ 百은 부사어로, ‘백 번’이다. ◈ 發은 용언으로, ‘쏘다’는 말이다. 활을 ‘쏘다’는 뜻이다. ◈ 失은 용언으로, ‘실수하다’, ‘놓치다’는 말이다. 一을 받는다. ◈ 一은 체언으로, ‘한 발’이다. ◈ 不足은 ‘충분하지 않다’라는 말이다. 謂를 받는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표현하다’는 말이다. 善射와 善御를 각각 받는다. ◈ 善射의 善은 부사어로, ‘잘’이다. 善御의 善도 그렇다. 射와 御를 각각 한정한다. ◈ 射는 용언으로, ‘쏘다’는 말이다. 활을 ‘쏘다’는 뜻이다. ◈ 千里는 ‘천 리를 가다’처럼 용언으로 해석된다. 앞부분에 騏驥一躍/不能十步, ‘騏驥가 한 번 뛰더라도 十步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十步 역시 용언처럼 해석되었었다. ◈ 蹞步는 체언으로, ‘반걸음’이다. ◈ 不至의 不는 부정어다. 至를 한정한다. ◈ 至는 용언으로, ‘이르다’는 말이다. ‘가다’는 뜻이다. ◈ 御는 용언으로, ‘수레를 몰다’라는 말이다. ◈◈ 楊倞은 未能全盡,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이 문단의 초점은 완전함, 완벽함이 아니라, 일관성에 있다. 뒤의 句에 仁義不一, ‘仁義를 일관되게 행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볼 때 그렇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관행에 통달하지 못하고, 인의를 일관되게 행하지 못한다면, 잘 배웠다고 할 만하지 않다.(倫類不通/仁義不一/不足謂善學, ◈ 倫類는 체언으로, 아마 ‘대체적인 것’, ‘관행’, ‘규약’을 이를 것이다. 禮法과 비슷하지만, 禮法 보다 의미가 좁다. 앞에 禮者/法之大分/類之綱紀也라는 말이 있었고, 物類之起라는 말이 있었는데, 본문의 類는 類之綱紀의 類와는 같고, 物類之起의 類와는 다르다. 이 類는 法과 같이, ‘규칙’을 이른다. 荀子는 法과 類를 대칭적으로 사용하였다. 法은 좀 더 좁은 의미로, 類는 좀 더 넓은 의미로 간주한 듯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禮者/法之大分/類之綱紀也의 類 부분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겠다. 「臣道」에 倫類以爲理, ‘倫類를 理로 간주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倫類의 의미가 본문의 倫類와 같은 듯하다. 주석을 참고하면, 楊倞은 等倫比類라고 하고 있는데, 아마 ‘禮法과 비슷한 규범’을 이르는 말로 해석한 듯하다. 한편, 宋基采는 梁啓雄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倫類를 어떻게 풀이했는지 소개해 두었는데, 이 역시 언급해 둔다. 梁啓雄은 倫을 ‘이치’, 類를 ‘법’이라고 하였다. 熊公哲은 禮法을 이른다고 하였다. 楊柳橋는 事理와 같다고 하였다. 王天海는 《孟子》에 근거하여 ‘인륜과 사리’라고 해석하였다. 王天海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孟子》 「公孫丑 下」에 內則父子/外則君臣/人之大倫也, ‘안으로는 父子, 밖으로는 君臣이야말로 사람의 大倫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孟子》 「告子 下」에 此之謂不知類也, ‘이런 꼴을 두고 類를 모른다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宋基采는 仁義와 倫類가 대구를 이룬다는 점을 근거로, 王天海의 설이 타당하다고 간주하였고, ‘사리’라고 번역하였다. ◈ 不通의 不은 부정어다. 通을 한정한다. 不一, 不足謂의 不도 모두 부정어다. ◈ 通은 용언으로, ‘통달하다’라는 말이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通倫類/謂雖禮法所未該/以其等倫比類而通之/謂一以貫之/觸類而長也, ‘通倫類라는 말은, 禮法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禮法과 비슷한 규범들에 통달했다는 뜻이다. 이는 한 가지을 깨우쳐서, 비슷한 것들로 확장해 나간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宋基采는 久保愛가 楊倞의 주석 중 謂一 위에 一이라는 글자가 하나 더 있다고 추측했다는 설을 소개해 두었다. 그러면 一謂一以貫之/觸類而長也이 되어, 이 말은 仁義不一의 一을 설명하는 표현이 된다. 그러나 楊倞이 倫類를 等倫比類, ‘禮法과 비슷한 규범들’라고 풀이한 점을 보면, 謂一以貫之/觸類而長也가 倫類를 풀이한 말이라는 점이 분명하므로, 久保愛의 설은 틀렸다. 仁義不一의 一은 ‘일관되게 하다’라는 표현인데, 이를 어찌 一以貫之/觸類而長也라고 풀이할 수 있겠는가. ◈ 仁義는 체언으로, ‘仁義’다. ◈ 一은 용언으로, 아마 ‘일관되게 지키다’, ‘일관되게 실천하다’는 말일 것이다. 楊倞은 一仁義/謂造次不離/他術不能亂也, ‘一仁義라는 말은, 仁義와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아, 다른 술수가 이 사람을 어지럽히지 못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不足은 ‘~할 만하지 않다’는 말이다. 謂를 받는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표현하다’는 말이다. 善學을 받는다. ◈ 善學의 善은 부사어로, ‘잘’이다. 學을 한정한다. ◈ 學은 용언으로, ‘공부하다’, ‘학문을 하다’, ‘배우다’는 말이다. ◈◈ 蜀虎案 : 반대로 보자면, 공부를 잘했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의 관행에 통달하고, 仁義를 일관되게 지킨다는 뜻이다. 다만, 이 문단의 초점은 일관되게 지키고 행한다는 데에 있다.) 학문이라는 것은 원래 배우면서, 배운 바를 일관되게 행하는 일이다.(學也者/固學一之也, ◈ 學也者의 學은 체언으로, ‘공부’, ‘학문’이다. ◈ 也者는 ‘~라는 것’이다. 也는 者와 같다. 즉, 也者는 者者이고, 곧 者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옛날에는 冠을 세로로 꿰맸는데, 요즘은 가로로 꿰맨다’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옛날에는 백성들에게 문제가 세 가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듯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固는 부사어로, 아마 ‘원래’일 것이다. ◈ 學一之는 아마 學而一之 혹은 學以一之라고 보아야 하겠다. 學과 一이 모두 용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學而一之로 간주하였다. 그러면 ‘學하면서 之를 一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一을 ‘일관되게’처럼 부사어로 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어순이 學一之가 아니라 一學之여야 한다. ◈ 學一之의 學은 용언으로, ‘공부하다’, ‘배우다’는 말이다. ◈ 一은 용언으로, ‘일관되게 행하다’, ‘일관되게 지키다’는 말이다. ◈ 一之의 之는 學一之의 學, 즉 ‘배운 바’를 가리킨다. ◈ 學一之也의 也는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者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學也者의 也者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蜀虎案 : 일관되게 지켜야 제대로 배웠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제는 지키고, 언제는 지키지 않는다면, 개나 소나 모두 배우지 않았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면 개도, 돼지도, 소도, 말도, 다 학자고, 모두 교수며, 검사나 판사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부한 바를] 어기기도 하고, 지키기도 한다면, [이런 자는] 길거리에 [흔하게] 있는 사람 정도라 하겠다.(一出焉/一入焉/涂巷之人也, ◈ 一은 부사어로, ‘한 번’, ‘어쩌다가’, ‘어떤 경우에’다. ◈ 出과 入은 용언으로, 아마 각각 仁義와 倫類를 ‘못 지키다’, ‘지키다’는 말일 것이다. 出은 ‘나가다’는 말로, 어떤 테두리 바깥으로 나간다는 뜻이고, 入은 ‘들어 오다’, ‘들다’는 말로, 어떤 범위 안에 ‘들다’는 뜻이다. 仁義와 倫類는 곧 사람들이 지켜야 할 ‘선’이므로, 이를 비유해 出과 入을 사용한 듯하다. 즉, 一出焉/一入焉은 仁義와 倫類를 ‘어기기도 하고, 지키기도 한다’는 뜻이다. 楊倞은 或善或否, ‘잘 하기도 하고, 잘 못하기도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涂巷은 체언으로, ‘길거리’를 뜻한다. 涂는 塗와 같은 말로, ‘길’을 이른다. 巷은 마을의 ‘거리’다. ◈ 涂巷之人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라고 해석된다. ◈ 人은 체언으로, ‘사람’이다. 즉, 涂巷之人은 ‘길거리의 사람’으로, 곧 ‘평범한 사람’을 이른다. ◈◈ 蜀虎案 : 이 경우에서 荀子는 문맥상 반은 지키고, 반은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仁義와 倫類를 반 정도는 지키고, 반 정도는 지키지 않을 수 있지만, 공부하는 사람은 일관되게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공부한 바를] 잘 지키는 경우는 적고,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이런 놈은] 걸이나 주, 도척 같은 놈일 것이다.(其善者少/不善者多/桀紂盜跖也, ◈ 其는 ‘만약’이다. 若과 같다. 《詩》 「小雅 小旻之什」의 「小旻」에 謀之其臧/則具是違//謀之不臧/則具是依, ‘謀가 其 臧하다면 모두 어기고, 謀가 臧하지 않다면 모두 의지한다’라는 말이 있다. 《禮記》 「文王世子」에 公族其有死罪/則磬于甸人, ‘公族이 其 죽을 죄를 졌다면, 甸人에게 磬한다’라는 말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9년에 其濟/君之靈也//不濟/則以死繼之, ‘其 濟한다면 君의 靈이다. 濟하지 못한다면 죽음으로 따르겠다’라는 말이 있다. 또, 《春秋左氏傳》 「襄公」 23년에 其然/將具敝車而行, ‘其 그렇게 한다면, 이제 敝車를 具해서 行하겠다’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其는 모두 ‘만약’이라는 말이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善者는 ‘잘하는 경우’, ‘잘 지키는 경우’를 이른다. 善은 관형어로, ‘잘하는’이다. 者를 한정한다. 者는 ‘~하는 경우’다. ◈ 少는 용언으로, ‘적다’는 말이다. ◈ 不善者는 ‘잘하지 못하는 경우’,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이른다. 不善은 관형어구로, ‘잘하지 못하는’이다. 者를 한정한다. 者는 ‘~하는 경우’다. ◈ 多는 용언으로, ‘많다’는 말이다. ◈ 桀은 夏나라의 마지막 왕이다. 폭군으로 유명하다. 《史記》 「夏本紀」 등에 그 행적이 전한다. ◈ 紂는 殷나라의 마지막 왕이다. 폭군으로 유명하다. 《史記》 「殷本紀」 등에 그 행적이 전한다. ◈ 盜跖은 春秋戰國時代의 유명한 도적으로, 魯나라 大夫인 柳下惠의 동생이다. 여러 책들에 그 행적이 간략하게 나온다. 《莊子》 「盜跖」에서는 盜跖이 달변으로 孔子를 궁지에 몰아 버리는데, 《莊子》의 이야기가 대체로 그렇듯이, 盜跖의 실제 행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盜跖/柳下季之弟/聚徒九千人於太山之傍/侵諸侯/孔子說之而不入者也, ‘盜跖은 柳下季의 동생이다. 太山 근처에서 9천 명을 모아 제후들을 침략하고 다녔다. 孔子가 유세해 보았지만, 설득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柳下季는 柳下惠의 별칭이다. 盧文弨는 案柳下季在魯僖公時/與孔子年數懸遠//莊子所載/亦寓言耳, ‘柳下季는 魯나라 僖公 때 사람이다. 孔子와는 연대가 상당히 멀다. 《莊子》에 실려 있는 이야기도 寓言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楊倞은 《莊子》 「盜跖」에 근거하여 풀이하였고, 盧文弨는 역사적으로 孔子와 柳下季가 연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盜跖」에 나오는 이야기가 寓言일 것이라고 하고 있다. 아마 盧文弨의 말이 맞을 것이다. 《莊子》 「盜跖」에는 孔子與柳下季爲友, ‘孔子는 柳下季와 친구가 되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成玄英은 姓展/名禽/字季/食采柳下/故謂之柳下季//亦言居柳樹之下/故以爲號//展禽是魯莊公時/孔子相去百餘歲/而言友者/蓋寓言也//跖者/禽之弟名也/常爲巨盜/故名盜跖, ‘姓은 展이고, 이름은 禽이다. 字는 季다. 식읍이 柳下였기 때문에, 柳下季라고 했다. 또, 버드나무 아래에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 말도 있다. 展禽은 魯나라 莊公 때 사람이고, 孔子와는 100여 년 차이가 난다. 그런데 친구가 되었다고 했으나, 아마 寓言일 것이다. 跖이라는 것은 禽의 동생의 이름이다. 일찍이 大盜가 되었으므로, 그래서 이름을 盜跖이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또, 陸德明은 柳下惠姓展/名獲/字季禽//一云/字子禽/居柳下而施德惠//一云/惠/諡也//一云/柳下/邑名//案左傳云/展禽是魯僖公時人/至孔子生八十餘年/若至子路之死百五六十歲/不得爲友/是寄言也, ‘柳下惠의 姓은 展이고, 이름은 獲이며, 字는 季禽이다. 어떤 사람은 字가 子禽이라고 하고, 버드나무 아래에 살면서 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惠가 시호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柳下가 邑의 이름이라고 했다. 《左傳》의 말을 살펴 보면, 展禽은 魯나라 僖公 때 사람이고, 孔子가 태어날 때면 80여 살이 된다. 子路가 죽을 때까지라면 150, 160살이 된다. 그러니 친구가 될 수가 없다. 寄言이다’라고 하였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또, 盜跖에 대해서 陸德明은 李奇注漢書云/跖/秦之大盜也, ‘《漢書》에 대한 李奇의 주석에서는 “跖은 秦나라의 大盜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또, 이에 대해 俞樾은 史記伯夷傳正義又云/蹠者/黃帝時大盜之名///是跖之爲何時人/竟無定說//孔子與柳下惠不同時/柳下惠與盜跖亦不同時/讀者勿以寓言爲實也, ‘《史記》 「伯夷傳」에 대해 《正義》에는 또 “蹠은 黃帝 때 있던 大盜의 이름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렇듯 跖이 어느 시대 사람인지 끝내 확정할 수가 없다. 孔子와 柳下惠는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니다. 柳下惠와 盜跖도 마찬가지로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니다. 독자들은 寓言을 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伯夷傳」은 《史記》 「伯夷列傳」이다. 《正義》는 張守節의 《史記正義》를 이른다. 이 주석은 盜蹠日殺不辜, ‘盜蹠은 매일 죽이고도 辜하지 않았다’라는 말에 붙어 있다. 여러 주석들에 드러나 있듯, 애초에 盜跖의 생몰년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자면 楊倞처럼 설명해서는 안 된다. ◈◈ 蜀虎案 : 桀과 紂, 盜跖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혔던 악인들이다. 공부를 했는데, 어쩌다 지키기도 하고, 못 지키기도 한 정도가 아니라, 지킨 경우 보다 지키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경우, 荀子는 이를 桀, 紂, 盜跖에 비견할 만하다고 하고 있다.) 공부한 바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극진하게 실천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배우는 자라고 할 만하겠다.(全之盡之/然後學者也, ◈ 全은 용언으로, 아마 ‘완전하게 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는 ‘완전하게 이해하다’라고 의역하였다. ◈ 全之의 之는 ‘배운 바’, ‘공부한 바’를 가리킨다. ‘仁義와 倫類’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겠다. 盡之의 之도 그렇다. ◈ 盡은 용언으로, 아마 ‘극진하게 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는 ‘극진하게 실천하다’라고 의역하였다. ◈ 然後는 ‘그러한 뒤에’다. ◈ 學者는 ‘배우는 자’, ‘공부하는 자’다. 學은 관형어로, ‘배우는’, ‘공부하는’이다. 者를 한정한다. 者는 ‘~하는 사람’이다. 여기서는 ‘배우는 자라고 할 만하다’처럼 의역하였다. ◈◈ 楊倞은 學然後全盡, ‘배운 뒤에 완전하게 하고, 극진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한 번 배웠으면, 완벽하게 이해하고, 주저 없이 실천하라는 뜻이다.)

 

군자는 이렇듯 [배운 바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일관되게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 수준을] 훌륭하다고 할 만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君子知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也, ◈ 君子는 체언으로, ‘君子’다. ◈ 知는 용언으로, ‘알다’는 말이다. 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를 받는다. ◈ 夫는 ‘이러한’, ‘이렇듯’이라는 말이다. 此와 같다. 《禮記》 「檀弓 上」에 夫夫也/爲習於禮者, ‘夫 夫는 禮를 習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이에 대해 夫夫/猶言此丈夫也, ‘夫夫라는 말은 이 장부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즉, 앞의 夫는 此와 같이 ‘이’라는 말이고, 뒤의 夫는 ‘장부’, ‘남자’라는 말이다. 또, 《禮記》 「檀弓 上」에 從母之夫/舅之妻/夫二人相爲服, ‘母의 夫, 舅의 妻를 從하여, 夫 두 사람이 모두 상복을 입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夫二人猶言此二人也, ‘夫二人이라는 말은 이 두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즉, 夫는 此와 같다. 이 글은 지금 판본에는 二夫人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보면 말이 안 되고, 夫二人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 《禮記》 「祭義」에 忌日不用/非不祥也//言夫日志有所至/而不敢盡其私也, ‘忌日에는 用하지 않으니, 상서로운 것이 아니면 하지 않아야 한다. 夫日에는 뜻을 극진하게 먹어야 하고, 감히 사사로운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志有所至/至於親以此日亡/其哀心如喪時, ‘志有所至라는 말은 부모가 이 날에 돌아가셨으므로, 슬퍼하는 마음을 돌아가셨을 때처럼 먹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夫는 此와 같다. 《春秋左氏傳》 「昭公」 12년에, 且夫易/不可以占險/將何事也, ‘또 夫 《易》으로는 險을 점칠 수 없는데, 앞으로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 것이냐’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夫易/猶此易, ‘夫易은 이 《易》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夫는 此와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夫」에 수록되어 있다. ◈ 不全의 不는 부정어다. 不粹, 不足의 不도 그렇다. 각각 全, 粹, 足을 한정한다. ◈ 全은 용언으로, ‘완전하게 하다’는 말이다. ◈ 粹는 용언으로, ‘일관되게 하다’, ‘전일하게 하다’는 말이다. 《說文解字》 「米部」에 粹/不雜也//从米卒聲, ‘粹는 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米가 들어 있고, 卒이라고 발음한다’라고 되어 있다. 잡다하게 하지 않으니, 곧 한 가지만 한다는 뜻이다. 또, 《荀子》 「非相」에 粹而能容雜, ‘粹하면서도 雜을 용인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粹/專一也, ‘粹는 전일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의 之는 ‘그러면’, ‘~하면’이라고 해석된다. 則과 같다. 즉, 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는 ‘夫不全不粹하면 不足以爲美하다’라는 말이 된다. 之와 則은 통용되었다. 《春秋左氏傳》 「僖公」 9년에 東略之不知/西則否矣, ‘동쪽을 정벌하는 일은 모르겠으나, 서쪽은 정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고, 《國語》 「晉語」에 華則榮矣/實之不知, ‘겉은 화려하였지만, 실체는 모르겠다’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之과 則은 모두 ‘~는’과 같이 사용되었으며, 같은 형식의 句에서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다. 則과 之가 옛날에 서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之」에 수록되어 있다. ◈ 足은 ‘~할 만하다’라는 말이다. ◈ 以爲는 ‘~라고 생각하다’, ‘~라고 여기다’, ‘~라고 간주하다’, ‘~라고 하다’라는 말이다. 美를 받는다. ◈ 美는 ‘훌륭하다’는 말이다. ◈◈ 蜀虎案 : 배웠으면, 완전하게 이해하고, 일관되게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君子는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일관되게 실천하지 못하면, 학문의 경지를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운 바를 완전하고 일관되게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바로 君子가 완전하고 일관되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군자는] 읽고 말하면서 배운 바를 익히고(故誦數以貫之, ◈ 故는 ‘그래서’, ‘따라서’다. ◈ 誦數는 용언으로, ‘읽고 말하다’라는 말이다. 誦은 ‘읽다’, 數는 ‘말하다’는 뜻이다. 誦數는 誦說과 같다. 數는 說로 풀이될 수 있다. 《禮記》 「儒行」에, 哀公이 孔子에게 儒行, ‘儒學者의 행동거지’에 대해 묻자, 孔子는 遽數之不能終其物/悉數之乃留/更仆未可終也, ‘갑자기 數하려면 그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고, 모두 數하려면 留할 것이니, 仆를 更해도 끝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孔穎達은 數/說也, ‘數는 말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荀子》 「正名」에 今聖王沒/名守慢/奇辭起/名實亂/是非之形不明/則雖守法之吏/誦數之儒/亦皆亂也, ‘지금은 聖王도 죽고, 名守는 태만해져서, 괴이한 설들이 생겨나고, 名實이 어지러워졌으며, 是非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즉, 법도를 견지하는 관리나, 誦數하는 劉生이더라도 마찬가지로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誦數 역시 책을 ‘읽고 말하다’라는 의미에서 誦說과 같다. 살펴 보면, 誦說이라는 말이 나오는 문헌은 많지만, 誦數는 《荀子》의 「勸學」과 「正名」에만 나온다. 아마 說을 가차해서 數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俞樾이 상세하게 해설해 두었다. 주석을 보면, 楊倞은 誦數를 習禮樂詩書之數, ‘《禮》, 《樂》, 《詩》, 《書》의 數를 익힌다’라고 풀이하였는데, 여기서 數는 아마 ‘이치’일 것이다. 俞樾은 誦數/猶誦說也//詩擊鼓篇/與子成說///毛傳曰/說/數也///說爲數/故數亦爲說//禮記儒行篇/遽數之不能終其物///正義曰/數/說也///荀子王霸篇曰/不足數於大君子之前///仲尼篇曰/固曷足稱乎大君子之門哉///稱與數/文異而義同//凡稱說必一一數之/故即謂之數//誦數以貫之/猶云誦說以貫之/與下句思索以通之一律//誦數思索/皆兩字平列//楊注非//隱十一年穀梁傳/犆言/同時也/累數/皆至也///范注曰/累數/總言之也///言/即說也, ‘誦數는 誦說과 같다. 《詩》 「擊鼓」에 “너와 說을 成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傳에서 “說은 數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說이 數로 풀이되니, 마찬가지로 數도 說로 풀이될 수 있다. 《禮記》 「儒行」에 “갑자기 之를 數하면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正義》에서는 “數는 說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荀子》 「王霸」에 “위대한 君子 앞에 數할 만하지는 않다”라는 말이 있고, 「仲尼」에는 “진정 어찌 위대한 君子의 문하에서 稱할 만하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稱과 數는, 글자는 다르더라도 의미는 같다. 보통 稱說할 때는, 일일이 數하므로, 이에 數라고 표현한 것이다. 誦數以貫之라는 말은, 誦說以貫之라는 말과 같다. 이 다음에 있는 句思索以通之와 같은 방식이다. 誦數와 思索은 모두 두 글자가 병렬된 표현이다. 楊倞의 주석은 틀렸다. 「隱」 11년의 《穀梁傳》에 “犆言한 것은 같은 때라는 뜻이고, 여러 차례 數한 것은 모두 이르렀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范宁는 “累數라는 말은 종합해서 言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言은 곧 說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擊鼓」는 「國風 邶風」에 속해 있다. 《正義》란, 孔穎達의 《禮記正義》를 이른다. 「隱」은 「隱公」이다. 《穀梁傳》은 《春秋穀梁傳》이다. 王先謙은 俞說是//正名篇亦云/誦數之儒, ‘俞樾의 설이 타당하다. 「正名」에도 “誦數하는 유생”이라는 표현이 있다’라고 하였다. 俞樾은 數가 說로 풀이되므로, 본문의 誦數도 誦說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 俞樾은 誦說은 誦과 說이라는 두 개의 용언이 붙어서 한 단어처럼 표현된 말이라고 보았다. ◈ 以는 ‘~함으로써’, ‘~하여서’다. 誦數를 받는다. ◈ 貫은 용언으로, ‘익히다’는 말일 것이다. 《孟子》 「滕文公 下」에 我不貫與小人乘, ‘나는 小人과 타는 데 貫하지 않다’라는 말이 있는데, 趙技와 朱熹는 貫/習也, ‘貫은 익숙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孫奭 또한 貫習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 《國語》 「魯語」에 晝而講貫/夕而習復, ‘낮에는 講하며 貫하고, 저녁에는 익히며 복습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貫/習也, ‘貫은 익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본문의 貫은 이치를 ‘꿰뚫다’, ‘통달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一貫이라는 말처럼 ‘일관되게 다잡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며, ‘익숙해지다’, ‘익히다’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꿰뚫다’, ‘통달하다’라고는 해석해선 안 될 것 같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思索以通之의 通이 ‘통달하다’는 뜻이므로, 의미가 겹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貫은 ‘통달’의 전 단계로, ‘익히다’ 혹은 ‘일관되게 다잡다’처럼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다시 이 둘 중 문맥에 보다 정합되는 표현은 ‘익히다’이다. 일관되게 지키는 일은 荀子의 목표이지,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익혀야 통달할 수 있고, 통달해야 일관되게 지킬 수 있다. ◈ 貫之의 之는 全之盡之의 之처럼 ‘공부한 바’, ‘배운 바’를 가리킨다. ◈◈ 楊倞은 使習禮樂詩書之數/以貫穿之, ‘《禮》, 《樂》, 《詩》, 《書》의 이치를 익혀서 통달하게 하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눈으로 읽고, 또 소리를 내며 읽으며, 배운 바를 익힌다는 뜻이다.), 생각하고 탐구하면서 배운 바를 깨우치며(思索以通之, ◈ 思索은 용언으로, ‘생각하고 탐구하다’라는 말이다. 思는 ‘생각하다’, 索은 ‘탐구하다’는 말이다. 思索 역시 誦說처럼 思와 索이란 두 가지 용언이 한 단어처럼 붙어 있는 표현이다. ◈ 以는 ‘~함으로써’, ‘~하여서’다. 思索을 받는다. ◈ 通은 용언으로, ‘환하게 알다’, ‘깨닫다’, ‘통달하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깨우치다’라고 번역하였다. ◈ 通之의 之는 全之盡之의 之처럼 ‘공부한 바’, ‘배운 바’를 가리킨다. ◈◈ 楊倞은 思求其意也, ‘그 의미를 탐구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생각하고 탐구하면서 깨우쳐 간다는 뜻이다. 《論語》 「爲政」에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공부만 하고 思하지 않으면 罔하고, 思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殆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과 합치된다. 앞의 句인 誦數以貫之은 學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句인 思索以通之는 思에 대한 이야기이다.), 탁월한 사람[의 학문]을 공부하면서 배운 바를 일관되게 지켜 나가고(爲其人以處之, ◈ 爲는 용언으로, ‘공부하다’, ‘배우다’는 말일 것이다. 其人을 받는다. 爲其人은 ‘其人을 배우다’, ‘其人의 학문을 배우다’는 말이다. 《論語》 「述而」에 抑爲之不厭, ‘다만 爲하면서 싫증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邢昺은 爲/猶學也, ‘爲는 배우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고, 또 學先王之道, ‘先王의 도리를 배운다’라고 풀이하였다. 또, 《論語》 「述而」에 女爲周南召南矣乎, ‘너는 「周南」과 「召南」을 爲했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邢昺과 朱熹는 모두 爲/猶學也, ‘爲는 배우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爲를 ‘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면 爲其人은 ‘其人이 되다’가 된다. 劉台拱, 郭嵩燾가 모두 이렇게 해석하고 있고, 王先謙도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爲其人을 ‘其人이 되다’라고 번역하면, 어감이 다소 어색하고, 또 그 자체로 학문을 ‘완성’하는 꼴이 되므로, 나는 글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따르지 않았다. 한편, 楊倞은 爲擇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아마 ‘가리다’, ‘분별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爲其人은 爲擇賢人, ‘현명한 사람을 분별한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면 앞에 나왔던 近其人이나 好其人과 의미가 같아진다. 두 설 중 하나를 택한다면, ‘되다’ 보다는 ‘가리다’가 낫겠다. ◈ 其人은 學莫便乎近其人과 學之經莫速乎好其人의 其人과 같이,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이를 것이다. 綦人, 至人과 같은 말이다. ◈ 以는 ‘~함으로써’, ‘~하여서’다. 爲其人을 받는다. ◈ 處는 용언으로, ‘머무르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어떠한 상태에 ‘머무르다’는 말로, 곧 爲其人하는 데에 ‘머무른다’는 뜻이다. 머무른다는 말은 곧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이므로, 나는 ‘일관되게 따르다’, ‘일관되게 지키다’처럼 의역하였다. ◈ 處之의 之는 全之盡之의 之처럼 ‘공부한 바’, ‘배운 바’를 가리킨다. ◈◈ 楊倞은 爲擇賢人與之處也, ‘현명한 사람을 爲擇하여 함께 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爲擇은 아마 ‘가리다’, ‘분별하다’는 말인 것 같다. ◈◈ 劉台拱은 雖誦數思索/而不體之於身/則無以居之//故必自爲其人/以居其道也, ‘읽고, 말하며, 생각하고, 탐구하더라도 자기 자신에 체화시키지 않으면 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반드시 스스로 其人이 되어, 그 도리에 居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부한 바를 체화하여, 자기 자신이 학문에 탁월한 자가 되고, 이로써 학문의 도리를 따른다는 말이다. 郭嵩燾의 설과 대체가 같다. ◈◈ 郭嵩燾는 爲其人以處之/猶言設身處地/取古人所已行者/爲之程式/而得其所處之方也, ‘爲其人以處之라는 말은 자신이 處할 곳을 마련한다는 말과 같다. 옛 사람이 이미 실천하였던 바에서 취하여, 따라야 할 규범으로 삼고, 자신이 處해야 할 곳을 깨닫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先學의 공부를 좇으면서, 이를 자신에게 체화하고, 자신이 따라야 할 도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劉台拱의 설과 대체가 같다. ◈◈ 王先謙은 劉郭說是, ‘劉台拱과 郭嵩燾의 설이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이 節은 ‘탁월한 사람이 되다’가 아니라, ‘탁월한 사람의 학문을 배운다’는 말일 것이다. 그 학문을 배우고, 언제나 이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방해되는 것들을 털어 버리면서 학식을 기른다.(除其害者以持養之, ◈ 除는 용언으로, ‘없애다’는 말이다. 나는 ‘털어 버리다’처럼 의역하였다. ◈ 其害者는 아마 ‘공부하는 데 방해되는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其는 ‘공부’, ‘배우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害는 용언으로, ‘방해되다’는 말이다. 者는 ‘~한 것’이다. 관형어구인 其害가 者를 한정한다. ◈ 以는 ‘~함으로써’다. 除其害者를 받는다. ◈ 持養은 용언으로, ‘배양하다’, ‘키우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학식을 ‘기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持와 養은 같은 의미의 글자 두 개가 붙어서 구성된 단어다. 《荀子》 「議兵」에 高爵豐祿以持養之, ‘높은 작위와 넉넉한 녹봉으로 之를 持養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王念孫은 持養二字平列//持/亦養也/非持此以養之之謂//臣道篇云/偷合苟容/以持祿養交而已耳///管子明法篇云/小臣持祿養交///晏子春秋問篇云/仕者持祿/游者養交///皆以持祿養交對文//荀子正論篇/又以持老養衰對文/故呂氏春秋異用篇/仁人之得飴/以養疾持老也///高注曰/持/亦養也[今本/持誤作侍]///又勸學篇云/除其害者以持養之///榮辱篇云/以相群居/以相持養///墨子天志篇云/內有以食飢息勞/持養其萬民///非命篇云/上以事天鬼/下以持養百姓[今本/持誤作侍]///呂氏春秋長見篇云/申侯伯善持養吾意/亦皆以持養對文, ‘持養은 두 글자가 병렬된 단어다. 持 또한 養이란 의미다. 持함으로써 養한다는 뜻이 아니다. 「臣道」에 “구차하게 영합해서 봉록을 持하고 交를 養할 뿐이다”라는 말이 있고, 《管子》 「明法」에 “小臣은 봉록을 持하고 交를 養한다”라는 말이 있으며, 《晏子春秋》 「問」에는 “仕者는 봉록을 持하고, 游者는 交를 養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모두 持祿과 養交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荀子》 「正論」에는 또 持老와 養衰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呂氏春秋》 「異用」에는 “어진 사람에게 엿이 생기면 병든 자를 養하고, 나이든 자를 持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持 역시 養이라는 뜻이다”[王先謙의 부연 : 지금 판본에는 持가 侍로 잘못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또, 「勸學」에는 “방해되는 것을 털어 버림으로써 之를 持養한다”라는 말이 있고, 「榮辱」에는 “서로 群居하고, 서로 持養한다”라는 말이 있으며, 《墨子》 「天志」에는 “안으로는 굶주린 자를 먹이고, 피곤한 자를 쉬게 하며, 萬民을 持養한다”라는 말이 있고, 「非命」에는 “위로는 天鬼를 섬기고, 아래로는 百姓을 持養한다”[王先謙의 부연 : 지금 판본에는 持가 侍로 잘못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呂氏春秋》 「長見」에는 “申侯 伯은 내 의향을 잘 持養하였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글에서 역시 모두 持와 養이 대구를 이루고 있다’라고 하였다. 《晏子春秋》 「問」에는 士者持祿/游者養交라고 되어 있다. 「問」은 「內篇」에 속한다. 「異用」은 「孟冬紀」에 속해 있다. 지금 판본에는 본문과 高誘의 주석에 모두 持가 아니라 侍로 되어 있다. 《墨子》 「天志」는 「天志 中」을 이른다. 「非命」은 「非命 下」를 이른다. 「非命 下」에는 上以事天鬼/天鬼不使/下以持養百姓/百姓不利라고 되어 있다. 「長見」은 「仲冬紀」에 속해 있다. ◈ 持養之의 之는 全之盡之의 之처럼 ‘공부한 바’, ‘배운 바’를 가리킨다. 곧, ‘학식’이다. ◈◈ 蜀虎案 : 공부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는 말이다.) [군자는 이처럼] 학문에 관한 것이 아니면 눈으로 보려 하지조차 않았고, 학문에 관한 것이 아니면 입으로 말하려 하지조차 않았으며, 학문에 관한 것이 아니면 마음 속으로 생각하려 하지조차 않았다.(使目非是無欲見也/使口非是無欲言也/使心非是無欲慮也, ◈ 使는 ‘~하게 하다’는 말이다. 目, 口, 心을 받는다. 여기서는 以처럼 ‘~로써’, ‘~를 가지고’처럼 의역하였다. ◈ 目은 체언으로, ‘눈’이다. ◈ 非는 용언으로, ‘~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 是는 ‘학문에 관한 것’을 가리킬 것이다. 是는 ‘올바른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학문에 관한 것’처럼 대명사로 해석할 수도 있다. 金學主와 李止漢은 ‘올바른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宋基采는 ‘이것’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무엇을 지칭하도록 번역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듯하다. 내 생각에는 ‘올바른 것’이라고 번역해서는 안 될 듯하다. 이 부분에서 荀子는 학문적 태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楊倞은 是/猶此也/謂學也//或曰/是/謂正道也, ‘是는 대명사이니, 學을 이른다. 어떤 사람은 是가 올바른 도리라는 뜻이라고 했다’라고 하며, 두 가지 입장을 모두 소개해 두었다. ◈ 無는 부정어로, ‘~하지 않다’는 말이다. 不과 같다. 欲見, 欲言, 欲慮를 받는다. ◈ 欲은 ‘~하려 하다’는 말이다. 見, 言, 慮를 받는다. ◈ 見은 용언으로, ‘보다’는 말이다. ◈ 言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 慮는 용언으로, ‘생각하다’는 말이다. ◈◈ 蜀虎案 : 《論語》 「顏淵」에 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 ‘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禮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禮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禮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마라’라는 말이 나온다. 顔淵이 공자에게 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克己復禮爲仁, ‘자신을 극복하고 禮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며 뒤이어 하는 말이다. 荀子가 이 말을 한 것은 학문 때문이고, 孔子가 이 말을 한 것은 仁 때문이지만, 모두 ‘일관되게 하나의 목표를 두고 정진할 것’을 뜻하는 말이므로 의미가 통한다 하겠다.) [그러다가] 군자가 학문을 극진하게 좋아하기에 이르면, 눈은 오색 보다 [학문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요, 귀는 오성 보다 [학문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요, 입은 오미 보다 [학문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요, 마음은 [학문을] 천하를 [다] 가지는 일 보다 더 이롭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及至其致好之也/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心利之有天下, ◈ 及至는 용언으로, 어떤 상태에 ‘이르다’는 말이다. 其致好之를 받는다. 及과 至는 모두 ‘이르다’, ‘미치다’라는 말로, 及至는 같은 의미의 글자가 모여 구성된 단어다. 《孟子》 「滕文公 上」에 及至葬/四方來觀之/顏色之戚/哭泣之哀/弔者大悅, ‘장례에 及至하여, 사방에서 사람들이 와서 살펴 보았는데, 顏色은 수척하고, 곡소리는 슬프니, 조문온 사람들이 크게 감동하였다’라는 말이 있고, 《史記》 「伯夷列傳」에 及至西伯卒, ‘西伯이 죽기에 及至하자’라는 말이 있으며, 《漢書》 「儒林傳」에는 及至秦始皇兼天下/燔詩書/殺術士/六學從此缺矣, ‘秦始皇이 天下를 겸병하기에 及至하자, 《詩》와 《書》를 불태우고, 術士들을 죽였으니, 이에 따라 六學도 쇠퇴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이 외에도 及至라는 표현이 사용된 사례는 아주 많다. ◈ 其는 아마 君子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일 것이다. 다만, 先秦 시대 문헌에서 其를 대명사로 사용할 때는, 대부분 ‘~의’처럼 해석되며, 뒤에 체언이 딸려 오는데, 이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의뭉스럽다. 이렇게 주어처럼 사용된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其를 致와 붙여서 其致를 부사어로 보고, ‘지극하게’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其는 綦의 가차자다. 혹은, 若처럼 ‘만약’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엔 其가 문장 첫 머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어순이 어색하다. 나는 대명사로 보고 번역하였다. ◈ 致는 부사어로, ‘지극하게’라는 말이다. 好를 한정한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致/極也, ‘致는 지극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好는 용언으로, ‘좋아하다’, ‘즐기다’는 말이다. ◈ 及至其致好之也의 之는 ‘공부’, ‘학문’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 目은 체언으로, ‘눈’이다. ◈ 目好之五色의 之는 於와 같은 말로, ‘~보다 더’처럼 비교하는 말이다. 耳好之五聲, 口好之五味, 心利之有天下의 之도 모두 그렇다. 각각 五色, 五聲, 五味, 有天下를 받는다. 之와 於는 통용되었다. 《春秋左氏傳》 「昭公」 11년에 王貪而無信/唯蔡於感, ‘王은 탐욕스럽고, 믿을 만하지도 않으니, 다만 蔡나라의 感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於는 관형격 조사 之처럼 사용되었다. 感은 恨을 뜻한다. 이 사례는 王引之의 《經傳釋詞》 「之」에 수록되어 있다. 之가 於처럼 사용되듯, 반대로, 於가 之처럼 사용된 예도 있다. 《大戴禮記》 「曾子事父母」에 養之內/不養於外/則是越之也//養之外/不養於內/則是疏之也, ‘안으로만 養하고 밖으로 養하지 않으면, 이는 越하는 것이다. 밖으로만 養하고 안으로 養하지 않으면, 이는 疏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養之內와 不養於外, 그리고 養之外와 不養於內는 모두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고, 之가 於의 의미라고 해석되고 있다. 《大戴禮記》의 사례는 王引之의 《經傳釋詞》 「於」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대해, 俞樾은 古之字於字通用//大戴禮事父母篇曰/養之内/不養於外/則是越之也/養之外/不養於内/則是疏之也///之内之外/即於内於外也//廣雅釋言曰/諸/之也///又曰/諸/於也///則之與於/義固得通矣//此文四之字/竝猶於也, ‘옛날엔 之와 於가 통용되었다. 《大戴禮》 「事父母」에 “안 之 養하고, 밖으로 養하지 않으면, 越하는 것이요, 밖 之 養하고, 안으로 養하지 않으면 疏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之内와 之外는 於内, 於外라는 뜻이다. 《廣雅》 「釋言」에는 “諸는 之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고, 또 “諸는 於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으니, 之와 於의 의미는 본래 통용되었을 것이다. 본문의 네 之들도 모두 於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大戴禮》 「事父母」는 《大戴禮記》 「曾子事父母」다. 四之란, 目好之五色, 耳好之五聲, 口好之五味, 心利之有天下의 之를 이른다. ◈ 五色은 ‘다섯 가지 색깔’이다. 五는 관형어로, ‘다섯의’다. 色을 한정한다. 色은 체언으로, ‘색깔’이다. 宋基采는 파랑, 노랑, 빨강, 하양, 검정을 이른다고 하였다. ◈ 耳는 체언으로, ‘귀’다. ◈ 五聲은 ‘다섯 가지 소리’다. 五는 관형어로, ‘다섯의’다. 聲을 한정한다. 聲은 체언으로, ‘소리’다. 宋基采는 宮, 商, 角, 徵, 羽를 이른다고 했다. ◈ 口는 체언으로, ‘입’이다. ◈ 五味는 ‘다섯 가지 맛’이다. 五는 관형어로, ‘다섯의’다. 味를 한정한다. 味는 체언으로, ‘맛’이다. 宋基采는 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이라고 하였다. ◈ 心은 체언으로, ‘마음’이다. ◈ 利는 용언으로, ‘이롭게 여기다’는 말이다. ◈ 有는 용언으로, ‘소유하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天下를 받는다. ◈ 天下는 체언으로, ‘온세상’이다. ◈◈ 楊倞은 謂不學/極恣其性/欲不可禁也/心利之有天下之富也//或曰/學成之後/必受榮貴/故能盡其欲也, ‘공부하지 않으면 성품이 아주 방자해져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할 테니, 그 마음이 天下의 부를 가진 것처럼 이롭게 여긴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학문을 이룬 뒤에는 반드시 영화를 누리게 되니, 욕망을 다 이룰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楊倞과 楊倞이 소개한 의견에서는 공부하지 않았을 때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아마 글의 뜻을 오해한 듯하다. 致好之를 ‘학문을 지극하게 좋아한다’가 아니라, ‘공부하지 않아서, 극단적으로 무절제하게 산다’라고 풀이한 듯하다. 俞樾 또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 劉台拱은 言耳目口之好之/與五色五聲五味同/心利之與有天下同, ‘귀와 눈, 입이 학문을 좋아하는 정도가 五色, 五聲, 五味를 좋아하는 정도와 같으니, 마음 속으로는 이를 온천하를 가진 것과 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俞樾은 楊倞의 주석에 대해 文皆言君子爲學之道/及至其三字直接上文/安得云謂不學者乎//若云學成榮貴/義更粗矣, ‘이 글에서는 君子가 학문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及至其 세 글자는 앞의 글에서 바로 이어지는데, 어떻게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학문을 이룬 뒤에 영화를 누리게 된다고 해석한다면 의미가 더욱 조잡해질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目好於五色/耳好於五聲/口好於五味/心利於有天下/言所得於學者深/他物不足以尙之也//下文曰/是故權利不能傾也/群眾不能移也/天下不能蕩也/生乎由是/死乎由是///正申明此數句之誼, ‘눈은 五色 보다 좋아하고, 귀는 五聲 보다 좋아하고, 입은 五味 보다 좋아하고, 마음은 天下를 가지는 것 보다 이롭게 여긴다는 말은 배우고 깨닫는 바가 깊어, 학문 외의 다른 것으로는 만족할 만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 다음 글에서 “이런 이유로, 권세와 이익도 무너뜨릴 수는 없고, 뭇사람들도 변질시킬 수는 없으며, 천하도 흔들어 놓을 수가 없다. 살아 있을 때도 배운 바에 근거하고, 죽을 때도 배운 바에 근거한다”이라고 함으로써, 이 몇 句의 의미를 바로 다시 밝혔다’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俞說是, ‘俞樾의 설이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五色, 五聲, 五味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바이고, 有天下, 즉 ‘세상을 다 가지는 일’은 누구나 마다하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君子는 오로지 학문에 전념하기 때문에,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자는 세상 그 무엇 보다도 학문을 더 좋아한다.] 이런 이유로, [배우고자 하는 군자의 뜻은] 권세와 이익[을 가지고]도 무너뜨릴 수는 없고, 뭇사람들[이 함께 입을 모아]도 변질시킬 수는 없으며, 천하[가 모두 달려 든다고 해]도 흔들어 놓을 수가 없다.(是故權利不能傾也/群衆不能移也/天下不能蕩也, ◈ 是故는 ‘이러한 까닭으로’, ‘이런 이유로’, ‘이에’라는 말이다. ◈ 權은 체언으로, ‘권세’다. ◈ 利는 체언으로, ‘이익’이다. ◈ 不能은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각각 傾, 移, 蕩을 받는다. ◈ 傾은 용언으로, ‘기울이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무너뜨리다’라고 번역하였다. ◈ 群衆은 체언으로, ‘사람들’, ‘많은 사람들’, ‘뭇사람들’이다. ◈ 移는 용언으로, ‘옮기다’, ‘움직이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변질시키다’라고 번역하였다. ◈ 天下는 체언으로, ‘온세상’이다. ◈ 蕩은 용언으로, ‘쓸어 없애다’, ‘흩트리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흔들어 놓다’라고 번역하였다. 楊倞은 蕩/動也, ‘蕩은 움직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楊倞은 覆說爲學/學則物不能傾移矣, ‘학문에 대해 다시 설명하였다. 학문을 이루면, 외물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앞의 句에서와 마찬가지로 君子가 학문에 전념하기 때문에 外物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다만 앞의 句에서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일을 소재로 하였고, 이 句에서는 外物이 개입해서 君子의 마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군자는] 살아 있을 때도 배운 바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죽을 때도 배운 바에 근거하여 행동하니, 이를 덕조라고 한다.(生乎由是/死乎由是/夫是之謂德操, ◈ 生은 체언으로, ‘살아 있을 때’다. ◈ 乎는 아마 용언으로, ‘행동하다’는 말 같다. 그러면 生乎由是/死乎由是는 ‘살아 있을 때에는 是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죽을 때에도 是에 근거하여 행동한다’는 말이 된다. 乎는 於와 같은데, 於는 爲와 통용된다. 《禮記》 「郊特牲」에 埽地而祭/於其質也, ‘땅을 쓸고 제사를 지내서, 其質을 於한다’라는 말이 있고, 「郊特牲」에 또 祭天/埽地而祭焉/於其質而已矣,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는 땅을 쓸고 제사를 지내서 其質을 於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於는 아마 ‘생각하다’는 말로, 爲와 같을 것이다. 《春秋穀梁傳》 「文公」 6년에는 閏月者/附月之餘日也/積分而成於月者也, ‘윤달이란, 남는 날들을 붙인 달로, 남는 날들을 나누고 합해서 달을 成於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成於는 ‘이루다’는 말로, 於는 爲와 같다. 또, 《孟子》 「離婁 下」에 寇至則先去以爲民望/寇退則反/殆於不可, ‘적들이 오니 먼저 떠나서 백성들의 望을 爲하였는데, 적이 물러나니 돌아 왔으니, 아마 不可하다고 於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於는 ‘생각되다’는 말로, 爲와 같다. 於와 爲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같은 글인데 글자가 바뀌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戰國策》 「東周策」에 夫秦之爲無道也, ‘저 秦나라가 無道한 짓을 爲하여’라는 말이 있고, 「秦策」에 楚亦何以軫爲忠乎, ‘楚나라 또한 무슨 까닭으로 軫을 충성스럽다고 爲하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姚宏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고, 《鮑彪本》에는 爲가 모두 於로 되어 있다. 또, 《史記》 「張儀列傳」에는 韓梁稱爲東藩之臣, ‘韓나라와 梁나라가 동쪽 변방의 신하라고 稱爲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戰國策》 「趙策」에는 爲가 於로 되어 있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於」에 수록되어 있다. 다만, 夫秦之爲無道也와 楚亦何以軫爲忠乎의 경우, 지금 《鮑彪本》에는 모두 爲로 되어 있는데, 아마 옛 판본에는 於로 되어 있었던 듯하다. 韓梁稱爲東藩之臣의 경우, 「趙策」에는 韓魏稱於東藩이라고만 되어 있다. 鮑彪는 一本東藩之臣/史同, ‘어떤 판본에는 東藩之臣이라고 되어 있다. 《史記》와 같다’라고 하였다. ◈ 由는 용언으로, ‘근거하다’, ‘따르다’는 말이다. 是를 받는다. ◈ 由是의 是는 아마 使目非是無欲見也/使口非是無欲言也/使心非是無欲慮也의 是처럼, ‘공부한 바’, ‘배운 바’, ‘학문에 관한 것’을 가리킬 것이다. ◈ 夫是는 아마 한 단어로, ‘이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是는 ‘이것’이다. 夫는 여기서 此와 같다. 따라서 夫 역시 ‘이것’이다. 夫를 발어사나, 아니면 ‘그런데’처럼 해석할 수는 없는데, 이는 이 문장에서 앞의 내용이 총괄되기 때문이다. 夫是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학문 만을 추구하는 君子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면 夫를 어떻게 此로 해석할 수 있을까. 《禮記》 「檀弓 上」에 夫夫也/爲習於禮者, ‘夫 夫는 禮를 習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이에 대해 夫夫/猶言此丈夫也, ‘夫夫라는 말은 이 장부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즉, 앞의 夫는 此와 같이 ‘이’라는 말이고, 뒤의 夫는 ‘장부’, ‘남자’라는 말이다. 또, 《禮記》 「檀弓 上」에 從母之夫/舅之妻/夫二人相爲服, ‘母의 夫, 舅의 妻를 從하여, 夫 두 사람이 모두 상복을 입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夫二人猶言此二人也, ‘夫二人이라는 말은 이 두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즉, 夫는 此와 같다. 이 글은 지금 판본에는 二夫人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보면 말이 안 되고, 夫二人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 《禮記》 「祭義」에 忌日不用/非不祥也//言夫日志有所至/而不敢盡其私也, ‘忌日에는 用하지 않으니, 상서로운 것이 아니면 하지 않아야 한다. 夫日에는 뜻을 극진하게 먹어야 하고, 감히 사사로운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志有所至/至於親以此日亡/其哀心如喪時, ‘志有所至라는 말은 부모가 이 날에 돌아가셨으므로, 슬퍼하는 마음을 돌아가셨을 때처럼 먹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夫는 此와 같다. 《春秋左氏傳》 「昭公」 12년에, 且夫易/不可以占險/將何事也, ‘또 夫 《易》으로는 險을 점칠 수 없는데, 앞으로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 것이냐’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夫易/猶此易, ‘夫易은 이 《易》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夫는 此와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夫」에 수록되어 있다. ◈ 夫是之謂德操의 之는 도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본래는 謂夫是德操일 것이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표현하다’는 말이다. ◈ 德操는 아마, ‘어진 지조’, ‘훌륭한 지조’라는 말일 것이다. 상기하였듯, 일관되게 학문 만을 추구하는 君子의 태도를 가리킨다. 楊倞은 德之操行, ‘어진 품행’이라고 풀이하였다. 郝懿行은 德操/謂有德而能操持也, ‘德操란, 德을 품은 사람이어야 견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楊倞은 死生必由於學/是乃德之操行, ‘죽든 살든 언제나 배운 바에 근거하니, 이 것이 어진 품행이로다’라고 하였다. ◈◈ 郝懿行은 生死由乎是/所謂國有道/不變塞/國無道/至死不變者/庶幾近之//故云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 ‘살든 죽든 배운 바에 근거한다는 말은, 소위 나라에 道가 있을 때는 변치 않으면서 塞하고, 나라에 道가 없을 때는 죽게 되었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과 아마 비슷할 듯하다. 그래서 德操한 뒤에 定할 수 있고, 定한 뒤에 應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國有道/不變塞/國無道/至死不變이라는 말은 《禮記》 「中庸」에 나오는 말이다. 「中庸」에는 國有道/不變塞焉/強哉矯//國無道/至死不變/強哉矯, ‘나라에 道가 있을 때는 변치 않아 塞한다. 굳건하구나, 씩씩한 모습이여. 나라에 道가 없을 때는 죽게 되었어도 변치 않는다. 굳건하구나, 씩씩한 모습이여’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塞은 아마 ‘충실하다’는 말일 것이다. 鄭玄은 塞/猶實也, ‘塞은 충실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德行充實, ‘德行이 충실하다’라고 풀이하였다. 한편 朱熹는 塞/未達也, ‘塞은 영달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다’라고 하고, 國有道/不變未達之所守/國無道/不變平生之所守也, ‘나라에 道가 있을 때는 영달하지 못했을 때 지키던 바를 바꾸지 않아야 하고, 나라에 道가 없을 때에는 평생토록 지키던 바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라고 풀이하였다. 塞을 鄭玄과 孔穎達처럼 ‘충실하다’라고 해석해야 郝懿行이 인용한 의미와 훨씬 더 잘 맞아 들어간다. 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은 본문 뒤에 이어지는 말이다. ◈◈ 蜀虎案 : 살게 되었든, 죽게 되었든, 君子는 학문에 대한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荀子는 이를 德操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 德操는, 학문의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일종의 ‘결론’일지 몰라도, 삶 전체에서 조망했을 때에는 ‘결론’이 아니라 ‘원칙’이 된다. 德操가 학문에 임하는 태도를 뜻하기 때문이다. 德操를 갖추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학문에 임할 수 있게 되고, 제대로 학문에 매진할 줄 알아야 살아 가는 ‘원칙’을 정할 수 있게 되며, 살아 가는 ‘원칙’을 정할 줄 알아야 세상사에 ‘응’할 수 있게 된다. 郝懿行이 인용하였듯, 이 글 뒤에는 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이라는 말이 이어지는데, 바로 이 定과 應이 그 점을 뜻한다.)

 

덕조를 갖춘 뒤에야 [살아 가는 원칙을] 정할 수 있고, [원칙을] 정한 뒤에야 [세상사에] 응할 수 있다.(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 ◈ 德操는 본래 체언으로, 학문을 일관되게 닦는 君子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용언처럼 사용되었다. 나는 ‘德操를 갖추다’라고 번역하였다. ◈ 然後는 ‘그러한 뒤’다. ◈ 能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각각 定, 定, 應을 받는다. ◈ 定은 용언으로, ‘정하다’는 말이다. 아마 살아 가는 원칙을 ‘정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바로 앞 節에 대한 주석에서 설명하였다. 楊倞은 我能定이라고 보았는데, 아마 자신을 ‘바로잡다’는 의미로 해석한 듯하다. ◈ 應은 용언으로, ‘응하다’, ‘대응하다’는 말이다. 세상일에 ‘응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바로 앞 節에 대한 주석에서 설명하였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 출사해서 벼슬하는 일, 爲政者의 입장에서 정치에 임하는 일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할 것이다. 楊倞은 應物이라고 하여, ‘外物에 對應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였다. ◈◈ 楊倞은 我能定/故能應物也, ‘자신이 바로잡힐 수 있어야, 外物에도 應할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莊子는 《內篇》의 일곱 가지 편들을 통해, 일곱 가지 단계로 나누어 道를 설명하였다. 이 중, 첫 편인 「逍遙遊」는 莊子의 道論이 일반적인 이야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기술하였다. 두 번째 편인 「齊物論」에서부터 莊子는 본격적으로 道論을 펼친다. 莊子가 道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齊物論」에서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 하였던 첫 번째 명제는 바로 ‘萬物은 모두 道 앞에 동일하다’라는 것이었다. 《莊子》를 어떤 책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예컨대 수양서로 해석한다면, 이 명제는 ‘道를 닦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받아 들이고, 또 전제하며, 그리고 깨우쳐야 하는 말인 것이다. 荀子가 설명하고자 하는 학문의 길이, 莊子의 道와 같지는 않겠지만, 荀子에게 학문은, 곧 莊子에게 道와 같은 대상인지라, 이에 類比하여 설명해 보았다. ◈◈ 蜀虎又案 : 굳이 「大學」에 비유해 보자면, 德操는 格物과 致知, 定은 誠意, 正心, 應은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에 해당하겠다. 「大學」의 이 구절은 갖다 붙일 데가 많아서 마음에 든다.) [원칙을] 정할 수도 있고, [세상사에] 응할 수도 있다면, 이런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다.(能定能應/夫是之謂成人, ◈ 能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각각 定, 應을 받는다. ◈ 定은 용언으로, 살아 가는 원칙을 ‘정하다’는 말일 것이다. ◈ 應은 용언으로, 세상일에 ‘응하다’는 말일 것이다. ◈ 夫是는 ‘이 것’이다. 能定能應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夫와 是는 모두 ‘이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夫是之謂德操의 夫是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夫是之謂成人의 之는 도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원래는 謂夫是成人이어야 한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표현하다’는 말이다. ◈ 成人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가장 타당할 듯하다. 成은 관형어로, ‘성숙한’이다. 人을 한정한다. 人은 체언으로, ‘사람’이다. 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완성’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성취’라고 할 수도 있으며, ‘성숙’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완성’이나 ‘성공’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德操를 갖추는 일은, 곧 학문의 시작일 뿐, 儒家적 인간으로써의 완성이라 할 수는 없다. 또, 成功, 즉 ‘功을 이룬다’는 말도 맞지 않다. 功을 세우려면, 출사해서 뜻을 펴야 할 텐데, 이제 겨우 학문을 시작한 일을 두고 어떻게 功이 있다고 하겠는가. 따라서, 이 成은 ‘성숙’이나 ‘성취’가 되어야 한다. 주석을 보면, 楊倞은 成을, 定과 應이라는 태도를 ‘성취했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성취라고 본다면, 能定能應/夫是之謂成人이라는 節이 말 그대로 동어반복이 되므로, 의미가 통하기는 하나, 풀이가 충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성숙’이라고 보았다. 德操를 갖추어, 살아 가기 위한 원칙을 定하고, 세상사에 應하게 되었으니, 바로 사람이 ‘성숙해진’ 모습이다. ◈◈ 楊倞은 內自定而外應物/乃爲成就之人也, ‘안으로는 자신을 定하고, 밖으로는 外物에 應하니, 이에 성취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定은 ‘자기 수양’을 이루고, 應은 ‘외부 세계에 대한 대응’을 이른다. 따라서 能定能應, 즉 成人은 ‘자신을 수양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정치를 펼 준비가 될 사람’을 이를 것이다. ◈◈ 蜀虎又案 : 成을 誠으로 보고, ‘성실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德操는 일관되게 학문에 임하는 자세를 이르는 말이었다. 이 것이 ‘성실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근거 또한 있다. 이 편의 마지막 句인 君子貴其全也를 보면, 이 成이 마찬가지로 全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全은 ‘완전하다’, ‘완벽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은 君子가 완벽하고, 완전한 사람이라는 점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학문에 대한 君子의 자세가 ‘철두철미하다’, ‘완벽하다’는 뜻이다. 이 역시 ‘성실하다’는 의미와 통한다.) 하늘에게는 하늘이 거대하다는 점이 중요하고, 대지에게는 대지가 광활하다는 점이 중요하며, 군자에게는 군자가 철저하[게 학문을 닦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니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언제나 꾸준하고 일관되게 학문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天見其明/地見其光/君子貴其全也, ◈ 이 節은 於天貴其明/於地貴其光/於君子貴其全也처럼 보고 번역하는 편이 좋겠다. ◈ 天은 체언으로, ‘하늘’이다. 여기서는 於天으로 보고, ‘하늘에게는’으로 번역하였다. ◈ 見은 아마 貴가 잘못된 글자일 것이다. 天見其明, 地見其光의 見이 모두 그렇다. 貴는 용언으로, ‘귀하다’, ‘중요하다’, ‘핵심적이다’라는 뜻이다. 見을 모두 貴로 바꾸면, 句들 역시 天貴其明, 地貴其光, 君子貴其全이 되어 대구가 맞게 된다. 이 점은 俞樾이 잘 설명해 두었다. 見을 見 그대로 두고, ‘드러내다’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때 見은 ‘현’이라고 읽는다. 楊倞이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見을 ‘드러내다’라고 풀이하면, 天見其明과 地見其光은 나름 말이 되지만, 君子貴其全와는 용언이 달라 대구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君子貴其全의 貴를 見으로 바꾸면 어떨까. 이 경우, 대구는 맞지만, 君子見其全의 의미가 君子貴其全의 의미 보다 못하게 된다. 德操란, 철두철미하고 일관되게 학문에 임하는 자세를 이르는 말이었다. 이 말을 고려할 때, ‘君子는 그 완벽함을 드러낸다’ 보다 ‘君子는 완벽함을 귀하게 여긴다’ 혹은 ‘君子에게는 완벽함이 중요하다’가 훨씬 본문의 주제와 정합된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見/顯也, ‘見은 드러내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俞樾은 按兩見字竝當作貴//蓋貴字漫漶/止存其下半之貝/因誤爲見耳//光與廣通/言天貴其明/地貴其廣/君子貴其全. ‘생각해 보건대, 見 두 자는 모두 貴가 되어야 한다. 아마 貴가 어중간하게 쓰였는데, 그러다가 글자 아랫쪽 부분의 貝만 겨우 남아서, 이 때문에 見으로 오인되었을 것이다. 光과 廣은 통용된다. 따라서 이 말은, 하늘에는 明이 貴하고, 땅에는 廣이 貴하며, 君子에게는 全이 貴하다는 의미다’라고 하였다. 俞樾은 또, 貴誤作見/則與君子句不一律/失荀子語意矣, ‘貴를 見으로 잘못 보면, 君子에 대한 句만 대구가 맞지 않아, 荀子가 의도한 글 뜻을 놓치게 된다’라고 하였다. ◈ 其明의 其는 天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明을 받는다. ‘天의’처럼 해석된다. ◈ 明은 체언으로, ‘거대한 모습’이다. 고대에는 明이 大처럼, ‘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王念孫이 잘 설명해 두었다. 明은 아니지만, 名이 ‘크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莊子》 「人間世」에 三圍四圍/求高名之麗者斬之, ‘세 아름이나 네 아름 되는 것들은, 高하고 名한 마룻대를 구하는 자들이 베어 버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名에 대해 郭慶藩은 名/大也//謂求高大之麗者/用三圍四圍之木也[謂大爲名/說見天下篇名山三百下], '名은 크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높고 커다란 麗를 구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세네 아름이나 되는 나무를 쓰는 것이다.[郭慶藩의 부연 : 名이 大를 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天下」의 名山三百에 대한 주석을 보라]'라고 하였다. 《雜篇》 「天下」에 名山三百/支川三千/小者無數, '名山이 300개요, 支川이 3천 개다. 작은 것은 셀 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名과 支는 小와 대구를 이루는 글자로, 문맥상 大, '크다'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郭慶藩은 名川/大川也//禮禮器///因名山升中於天///鄭注/名/猶大也//高注淮南墬形篇亦曰//名山/大山也//王制言名山大川/月令言大山名源/其義一也//魯語取名魚/韋注/名魚/大魚也//秦策///賂之一名都///高注/名/大也[魏策/大都數百/名都數十也]//此皆訓名爲大之證, '名川은 큰 강이라는 뜻이다. 《禮》 「禮器」에 "名山에 의지하여 하늘에 오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名은 大와 같다"라고 주석하였으며, 《淮南》 「墬形」에 대한 高誘의 注에서도 또한 命山을 大山라고 하였다. 「王制」에 名山大川이라는 말이 있고, 「月令」에는 大山名源이라는 말이 있으니, 그 뜻은 모두 같다. 「魯語」에 "名魚를 잡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名魚를 大魚라고 주석하였다. 「秦策」에는 "名都 하나를 뇌물로 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名을 大라고 주석하였다. [郭慶藩의 부연 : 「魏策」에는 "大都는 수 백 개요, 名都는 십수 개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 모두가 名이 大라는 뜻임을 증명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禮》는 《禮記》다. 지금 「禮器」에는 因名山升中於天이 아니라 因名山升中于天으로 되어 있다. 의미는 같다. 《淮南》 「墬形」은 《淮南子》 「墬形訓」을 이른다. 「墬形訓」에 대한 高誘의 注는 禹乃以息土塡洪水以爲名山, '禹는 이에 息土를 가지고 洪水를 메워서 名山을 만들었다'라는 구절에 대한 注를 이른다. 「王制」와 「月令」은 《禮記》의 편이다. 「月令」에는 大山名源은 없고, 大川名源이라는 말이 있다. 「魯語」는 《國語》의 편이다. 「秦策」과 「魏策」은 《戰國策》의 편이다. 「魏策」 인용문의 경우, 본문이 大都數百/名都數十가 아니라 大縣數百/名都數十이라고 되어 있다. 郭慶藩이 잘못 옮긴 모양이다. 明과 名이 비록 다른 글자이기는 하나, 의미가 비슷비슷하니, 아마 이 두 글자를 통용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두 글자 모두 ‘크다’는 의미로도 사용된 듯 보인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明/謂日月, ‘明은 해와 달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한편 王念孫은 明者/大也//小雅車舝/正義曰/明/亦大也///中庸曰/高明所以覆物也///成十六年左傳/夏書曰/怨豈在明/不見是圖/將愼其細也//今而明之/其可乎///是明與大同義//大者/天之全體/廣者/地之全體[繫辭傳/廣大配天地///承上文大生廣生而言/謂大配天/廣配地也//中庸言/博厚配地/高明配天///博亦廣也/明亦大也]//故君子之德/貴其全也//儒效篇曰/至高謂之天/至下謂之地/宇中六指謂之極/塗之人百姓積善而全盡謂之聖人///語意略與此同//楊注皆失之, ‘明은 크다는 말이다. 「小雅」의 「車舝」에 대한 《正義》에서는 “明도 크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中庸」에는 “高明하다는 점은 物을 덮을 수 있는 까닭이다”라는 말이 있고, 「成」 19년에 대한 《左傳》에는 “「夏書」에 ‘원망이 어찌 明한 데에 있겠느냐. 안 보이는 곳에서 꾀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세세한 부분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之를 明하였으니, 어찌 될 일이겠느냐”라는 말이 있다. 이 글들에서 明은 大와 의미가 같다. 大는 하늘의 全體요, 廣이라는 것은 대지의 全體이니[王先謙의 부연 : 「繫辭傳」에 “광대함은 天地와 配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글 앞부분의 大生과 廣生을 이어서 한 말이니, 大는 天과 짝을 이루고, 廣은 地와 짝을 이룬다. 「中庸」에 “博厚함은 대지와 짝하고, 高明함은 하늘과 짝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博 또한 넓다는 뜻이요, 明 또한 크다는 뜻이다.], 이처럼 君子의 德에는 全이 중요한 것이다. 「儒效」에 “지극히 높은 것을 天이라 하고, 지극히 낮은 것을 地라 한다. 세상의 여섯 방향을 極이라 하고, 보통 사람들이 善을 이어 나가 완전하고, 극진해지면, 이를 聖人이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말의 의미가 이 부분과 대체로 같다. 楊倞의 주석은 모두 틀렸다’라고 하였다. 「車舝」은 《詩》 「小雅 桑扈之什」에 속해 있다. 《正義》는 孔穎達의 《毛詩正義》를 이른다. 「車舝」에는 景行行止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景/明也, ‘景은 明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孔穎達은 다시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明/亦大也, ‘明 또한 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詩》 「大雅 生民之什」의 「既醉」에 대해서도 孔穎達이 明/亦大也, ‘明 또한 크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한 말이 있다. 참고차 기재해 둔다. 「中庸」은 《禮記》의 편이다. 「成」은 「成公」이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繫辭傳」은 《易》의 「繫辭 上」을 이른다. ◈ 地는 체언으로, ‘땅’, ‘대지’다. 여기서는 於地로 보고, ‘대지에게는’으로 번역하였다. ◈ 其光의 其는 地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光을 받는다. ‘地의’처럼 해석된다. ◈ 光은 체언으로, ‘광대한 모습’이다. 고대에는 光이 廣과 통용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劉台拱, 王念孫, 俞樾 모두 의견이 같다. 王念孫은 明에 대한 주석에서 언급하였고, 또 이 부분에서도 짧게 언급하고 있다. 俞樾은 見에 대한 주석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하나 같이 통용되었다고 하였을 뿐, 사례를 들지는 않았다. 나는 사례를 세 가지 찾을 수 있었다. 《詩》 「頌 周頌」의 「敬之」에 日就月將/學有緝熙於光明, ‘나날이 就하고, 다달이 將하니, 학문은 또한 빛나 光해지고, 明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毛亨은 光/廣也, ‘光은 넓어지다는 말이다’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以光之照耀/所及廣遠/故以光爲廣, ‘빛으로 비추어, 廣遠한 데에 이르니, 이에 毛亨은 光을 廣으로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國語》 「周語」에 叔父若能光裕大德/更姓改物/以創制天下/自顯庸也, ‘叔父가 만약 大德을 光裕하여, 姓을 고치고, 物을 고쳐서, 天下를 創制한다면, 저절로 쓰임새가 드러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光/廣也//裕/寬也, ‘光은 넓히다는 뜻이고, 裕은 너그럽게 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光裕는 아마 大德을 ‘넓히다’, ‘키우다’는 의미의 용언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荀子》이다. 《荀子》 「儒效」에는 大雅之所以爲大雅者/取是而光之也, ‘「大雅」가 「大雅」라고 불리는 까닭은 是를 取해서 光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郝懿行은 光/猶廣也//光廣古通用, ‘光은 넓히다는 말과 같다. 光과 廣은 고대에 통용되었다’라고 하였다. 郝懿行 또한 그 사례를 들어 논증하고 있지는 않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光/謂水火金玉, ‘光은 水, 火, 金, 玉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아마 楊倞은 光을 ‘빛’으로 보고, 땅에서 나는 물품 중, 빛나는 물품을 이른다고 해석한 듯하다. 劉台拱은 光廣/古通用, ‘光과 廣은 옛날에 통용되었다’라고 하였다. 王念孫은 劉讀光爲廣/是也, ‘劉台拱은 光을 廣으로 보았는데,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 君子는 체언으로, ‘君子’다. 여기서는 於君子로 보고, ‘君子에게는’처럼 번역하였다. ◈ 其全의 其는 君子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全을 받는다. ‘君子의’처럼 해석된다. ◈ 全은 체언으로, ‘완전함’, ‘완벽함’, ‘철저함’이다. 德操와 定, 應처럼, 빈 틈 없이 학문에 임하고, 세상을 살아 가는 君子의 자세를 뜻한다. ◈◈ 楊倞은 天顯其日月之明/而地顯其水火金玉之光/君子則貴其德之全也, ‘하늘은 해와 달의 광채를 드러내고, 대지는 물, 불, 금, 옥의 및깔을 드러내니, 이처럼 君子는 德이 완전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하늘이 하늘이기 위해서는 거대해야 하고, 대지가 대지이기 위해서는 광활해야 한다. 반대로 보자면, 거대하지 않으면 하늘이라 할 수가 없고, 광활하지 않으면 대지라고 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君子가 君子이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고 완벽하게 학문을 닦아야 하니, 학문을 닦는 자세가 완벽하지, 즉 全하지 않다면, 君子라고 할 수가 없다. 荀子는 이처럼 君子가 되기 위해 공부에 열심히 매진하라고 하면서 「勸學」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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