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1 - 권학 - 8 - 학문을 이루기 위해서는 탁월한 사람을 따르거나, 예법을 갈고 닦아야 한다

2021. 9. 24. 09:08순자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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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李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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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5월 1일 16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76

 

순자 - 1 - 권학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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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84

 

<하단 주석> 순자 - 1 - 권학 - 8 - 학문을 이루기 위해서는 탁월한 사람을 따르거나, 예법을 갈고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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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莫便乎近其人。禮、樂法而不說,詩、書故而不切,春秋約而不速。方其人之習君子之說,則尊以徧矣,周於世矣。故曰學莫便乎近其人。

學之經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上不能好其人,下不能隆禮,安特將學雜識志,順詩、書而已耳,則末世窮年,不免爲陋儒而已。

將原先王,本仁義,則禮正其經緯蹊徑也。若挈裘領,詘五指而頓之,順者不可勝數也。

不道禮憲,以詩、書爲之,譬之猶以指測河也,以戈舂黍也,以錐飡壺也,不可以得之矣。

故隆禮,雖未明,法士也;不隆禮,雖察辯,散儒也。

 

 

공부에는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 만큼 편한 방법이 없다.(學莫便乎近其人, ◈ 學은 체언으로, ‘공부’, ‘공부하는 것’, ‘학문을 닦는 것’을 이른다. 문맥을 고려할 때, 사실은 ‘공부 방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莫은 용언으로, ‘없다’는 말이다. 便을 받는다. ◈ 便은 아마 체언으로, ‘편한 길’, ‘편한 방법’을 이를 것이다. 便은 본래 ‘편하다’는 말이다. ◈ 乎는 於와 같다. ‘~보다’처럼 비교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명사구인 近其人을 받는다. 따라서 莫便乎近其人은 ‘近其人 乎 便이 莫하다’, 즉 ‘其人을 近하는 것 보다 便이 없다’는 말이 된다. ◈ 近은 용언으로, ‘가까이 하다’는 말이다. 其人을 받는다. ◈ 其人은 아마 ‘지극한 사람’, ‘탁월한 사람’을 이르는 말 같다.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이른다. 人은 체언으로, ‘사람’이다. 其는 관형어인데, 아마 至나 綦의 가차자로, ‘지극한’, ‘탁월한’이라는 말 같다. 人을 한정한다. 其人는 글자 그대로 보면 ‘그 사람’이 되는데, 이래서는 말이 안 된다. 이 節이 이 문단의 첫 문장인데, 其가 지시대명사라면, 무엇을 지칭한단 말인가. 또, 문맥상, 이 其人은 ‘학문에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어야 하는데, 其를 至나 綦의 가차자로 해석하면, 그 내용에도 마찬가지로 합치된다. 《荀子》에서 綦가 ‘지극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仲尼」에 彼非本政教也/非致隆高也/非綦文理也/非服人之心也, '저들은 政教에 근본을 두지 않았고, 隆高한 이치를 다하지 않았으며, 文理를 綦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복종시키지 못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綦는 '지극하다', '다하다'는 말이다. 또, 「仲尼」에 故聖王之誅也綦省矣, '그래서 聖王이 주벌하였던 일은 綦 적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綦는 '아주', '지극히'라는 말이다. 「王制」에는 全道德/致隆高/綦文理/一天下, '道德을 보전하고, 隆高한 이치를 다하며, 文理를 綦하고, 天下를 합친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綦는 '지극하다', '다하다'는 말이다. 「王霸」에는 及其綦也/索爲匹夫不可得也, '군주의 무도함이 綦하게 되게 이르면, 그 때 군주가 필부로 돌아가기를 원하더라도 그럴 수 없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綦는 '심하다', '극단으로 치닫다'는 말이다. 이처럼 綦는 가 至와 같기 때문에, 綦人은 다시 至人과 같게 된다. 즉, 其人은 綦人이고, 綦人은 至人이다. 특이하게도, 《莊子》에도 其가 이런 방식으로 사용된 사례가 있다. 「養生主」에 始也/吾以爲其人也/而今非也, ‘처음에 나는 노자를 其人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其人은 곧 至人, 즉 ‘道를 깨우친 사람’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헌적 증거도 있다. 「養生主」의 이 節에 대해, 郭慶藩은 闕誤引文如海本其作至, ‘《闕誤》에서는 《文如海本》에 其가 至로 되어 있다는 점을 인용해 두었다’라고 하였으니, 其人의 其가 至의 가차자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를 이른다. 또, 「養生主」의 節에 대해 王先謙은 謂眞人不死, ‘眞人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즉, 王先謙은 其人을 眞人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眞人 역시 ‘道를 깨우친 사람’을 이르는 말로, 至人과 같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謂賢師也, ‘현명한 스승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혼자 끙끙대면서 학문을 닦기 보다, 학문에 탁월한 사람, 즉 이미 성취를 이룬 스승을 가까이 모시면서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낫다.) [경서들에는 각자 단점이 있어서, 혼자 공부하기 힘들다.] 《예》와 《악》은 규칙을 기술한 글이라서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시》와 《서》는 옛 일에 대한 글이기에 [지금 세상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또,] 《춘추》는 축약된 글이라서 신속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禮樂法而不說/詩書故而不切/春秋約而不速, ◈ 이 節에서 法而不說, 故而不切, 約而不速은 모두 ‘A 而 不 B’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내 생각에 A 자리에 오는 法, 故, 約은 용언이 아니라 체언으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而는 乃와 같은 말로, ‘이에’, ‘그래서’, ‘~이기에’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法而不說은 ‘法이기에 說하지 않다’는 뜻이 된다. 이에 따라 해설하고, 번역하였다. 만약 法이 용언이라면, 而는 ‘하지만’처럼 역접이 되어야 하고, 法而不說은 ‘法하지만 說하지 않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엔 체언으로 간주할 때 보다 문장이 다소 너저분해지고, 또 의미도 훨씬 모호해진다. ◈ 禮는 체언으로, ‘《예》’다. 《儀禮》나 지금 《禮記》의 편들일 것이다. ◈ 樂은 체언으로, ‘《악》’이다. 본래 六經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西漢 때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 法은 아마 체언으로, 아마 ‘법도’, ‘규칙’이라는 말일 것이다. ◈ 法而不說의 而는 ‘이에’, ‘그래서’, ‘~이기에’, ‘~라서’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故而不切, 約而不速의 而도 그렇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이와 같다면 而 孝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이에’, ‘그러면’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而는 乃와 같다’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而는 乃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이미 음식을 치우고 물러나서는, 얼굴에 삼가는 빛이 없다면, 而 근본을 잊은 짓아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에’, ‘그러면’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될 만한지 써 보고 乃 그만 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안 될지 써 보고 而 그만 둔다’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哭이 끝나고 乃 諱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僖負羈를 기용하지 않은 일, 而 乘軒하는 사람이 300명인 일을 數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내가 曹나라의 共公이 僖負羈를 기용하지 않은 일, 乃 乘軒하는 사람이 300명이었다는 일을 尋해 보니’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釐負羈를 기용하지 않은 일, 而 美女로 乘軒하는 사람을 300명 쓴 일을 數했다’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君의 등의 관상을 보니, 귀하여서 乃 말로 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不說의 不은 부정어로, 說을 한정한다. 不切, 不速의 不도 그렇다. 切과 速을 한정한다. ◈ 說은 용언으로, 아마 ‘설명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不說은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설명이 부족하다’는 말이 된다. 《儀禮》에는 지켜야 할 조목들만 있지, 그 조목들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鄭玄의 주석이 인기를 끌었던 까닭은, 바로 그런 조목들을 잘 풀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楊倞은 有大法而不曲說也, ‘대체적인 규칙만 있고,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다’라고 하였다. 金學主는 于省吾의 설을 따라, 說을 脫처럼 ‘빠지다’, ‘빠트리다’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면 法而不說은 ‘법도를 보여 주는데 빠진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荀子는 經文의 단점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 詩는 체언으로, ‘《시》’다. ◈ 書는 체언으로, ‘《서》’다. ◈ 故는 아마 체언으로, ‘옛 일에 대한 글’이라는 말일 것이다. 金學主는 于省吾의 설을 따라 故를 ‘고고하다’라고 해석했다. ◈ 切은 용언으로, 適切이나 緊切이라는 말처럼, 아마 ‘적절하다’, ‘적당하다’, ‘요긴하다’는 뜻일 것이다. 《詩》와 《書》는 荀子가 살던 시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아주 오래 전의 노래요, 글이기 때문에, 아마 당대의 실정과 맞지 않는 내용이 많았을 것이다. 즉, 切은 지금 세상에 ‘적합하다’는 말이 되고, 不切은 지금 세상에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주석을 보면, 楊倞은 適切이 아니라 曲切, 즉 ‘상세하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楊倞은 詩書但論先王故事/而不委曲切近於人//故曰/學詩三百/使於四方/不能專對也, ‘《詩》와 《書》는 先王의 고사들을 논한 글이기에, 세세한 일들이 지금 사람들 입장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지가 않다. 그래서 “詩 300수를 배워도, 다른 나라로 보내 專對시킬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近於人은 아마 於近人의 오기인 듯하다. 於近人으로 보고 번역하였다. 專對는 諸侯나 王과 독대하는 것을 이른다. 宋基采도 언급하였듯, 이 말은 《論語》 「子路」에 나온다. 「子路」에는 誦詩三百/授之以政不達/使於四方不能專對//雖多/亦奚以爲, ‘詩 300편을 암송하여도, 정무를 받아서 이행하지 못하거나, 다른 나라에 보내도 專對할 수 없다면, 많이 외웠다고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되어 있다. 한편, 金學主는 于省吾의 설을 따라 切을 ‘淺近하다’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면 故而不切은 ‘고고하지만 천근하지는 않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상기하였듯, 荀子는 經文의 단점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 春秋는 체언으로, ‘《춘추》’다. ◈ 約은 아마 체언으로, ‘축약된 글’, ‘생략된 글’이라는 말일 것이다. ◈ 速은 용언으로, 아마 ‘빠르게 이해하다’, ‘신속하게 이해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不速은 ‘신속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孔子는 《春秋》를 명분론에 입각해서 기술하였지만, 그 필법은 전후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孔子의 기준에 맞춘 필법이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기준에 맞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건 전후의 맥락, 대의 등을 밝힌 《春秋左氏傳》, 《春秋穀梁傳》, 《春秋公羊傳》이 유행했던 것이다. 애초에 기재된 사건에 대해 전후 맥락, 대의, 그리고 孔子 본인의 의견이 《春秋》에 모두 실려 있었다면, 왜 그런 점들을 밝힌 주석서가 나왔겠는가. 楊倞은 文義隱約/襃貶難明/不能使人速曉其意也, ‘《春秋》는 글의 의미가 숨겨져 았고, 축약되어 있으며, 사건들에 대한 평가는 난해하게 드러나 있어, 사람들이 의미를 빠르게 깨우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한편, 金學主는 于省吾의 설을 따라 速을 數으로 보고, ‘繁數하다’라고 해석하였다. 여기서 數은 ‘삭’이라고 읽는다. 繁數이란, ‘많다’, ‘번거롭다’는 뜻이다. 그러면 約而不速은 ‘간략하지만 번잡하지는 않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상기하였듯, 荀子는 經文의 단점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 蜀虎案 : 이 글에는 荀子가 儒學者로서 經文을 숭상하긴 하더라도, 經文의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혼자 經文을 공부하기 보다는, 탁월한 스승에게 배우는 편이 낫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서들을 혼자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 탁월한 사람을 모심으로써 군자의 학설을 익힌다면, 전반적인 식견이 향상되고, 세상사에 고루 통달하게 될 것이다.(方其人之習君子之說/則尊以徧矣/周於世矣, ◈ 方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내 생각에는 傍의 가차자로, 곁에서 ‘모시다’는 말일 듯하다. 앞에서 近其人, ‘其人을 가까이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傍과 의미가 통한다. 郝懿行도 나와 같이 해석하였다. 주석을 참고할 때, 楊倞은 當이라고 풀이했는데, 이 當은 아마 ‘마주하다’, ‘마주 대하다’라는 말일 듯하다. 王先謙은 近처럼 ‘가까이 하다’라고 풀이했다. 한편, 宋基采는 方을 仿으로 보았는데, 仿은 ‘모방하다’, ‘본받다’는 말이다. 이렇게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近其人이라는 말에 傍 보다 의미가 덜 정합된다. 학자들의 설은 다음과 같다. 郝懿行은 案方/古讀如旁/亦讀如傍/此方當讀爲依傍之傍//言親近其人而習聞其說/則稟仰師承/周徧於世務矣//故曰/學莫便乎近其人, ‘살펴 보면, 方은 옛날엔 旁과 같이 읽었고, 또 傍처럼 읽기도 했다. 이 方도 依傍의 傍처럼 읽어야 할 것이다.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서 그 학설을 익히면, 스승을 우러러 보면서 세상일에 두루 통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데에는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 만큼 편한 방법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依傍은 ‘의지하다’는 표현이다. 王先謙은 郝讀方爲傍/則習上之字不可通//習有積貫之義/非近其人/則不能常習其說//呂覽任數篇/習者曰///高注/習近習///是習與近義亦相通//言習其說/即知是近其人/不必讀方爲傍/轉致文義支離也, ‘郝懿行은 方을 傍으로 읽었다. 그런데 그러면 習과, 앞의 之의 뜻이 통하지 않는다. 習에는 습관처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즉,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그 학설을 항상 익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呂覽》 「任數」에 “習者가 말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高誘는 “習은 가까이서 習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렇듯 習은 近과 의미가 서로 통한다. 荀子가 그 사람의 說을 習한다고 하였으니, 其人을 가까이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方을 傍처럼 읽어서, 글의 뜻을 꼭 전치하여, 지리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라고 하였다. 《呂覽》 「任數」는 《呂氏春秋》 「審分覽 任數」를 이른다. 高誘는 習/近習/所親臣也, ‘習은 가까이서 習한다는 말로, 친근한 신하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其人은 앞에서 설명하였듯,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이른다. 아마 綦人이나 至人과 같은 표현일 것이다. ◈ 方其人之의 之는 아마 以처럼, ‘~로써’, ‘~함으로써’라는 말일 것이다. 方其人을 받는다. 方其人之習君子之說은 方其人以習君子之說, 즉 ‘其人을 方함으로써 君子之說을 習한다’라는 말이 된다. 《莊子》 「逍遙遊」에 之人也/之德也/將旁礡萬物以爲一, ‘이러한 사람들은 덕을 가지고 만물을 널리 품어 하나로 만들려 한다’라는 말이 있다. 之德의 之가 以처럼 해석된다. 또, 《莊子》 「齊物論」에 化聲之相待/若其不相待, ‘화성에 서로 의지한다는 말은, 장차 의지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라는 말이 있고, 《莊子》 「德充符」에 遊心乎德之和, ‘덕으로 조화시키는 데 마음을 쓴다’라는 말이 있다. 한편, 方 부분의 주석을 보면, 郝懿行은 이 之를 而로 해석하고 있고, 宋基采도 而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 ‘~하고서’, ‘그리고’처럼 풀이된다. 이 설도 말이 되지만, 이렇게 해석한다면 方其人과 習君子之說의 인과 관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 習은 용언으로, ‘익히다’, ‘배우다’는 말이다. 君子之說을 받는다. ◈ 君子之說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라고 해석된다. ◈ 說은 체언으로, 아마 ‘학설’을 이를 것이다. ◈ 則은 ‘그러면’이다. ◈ 尊은 용언으로, 아마 ‘높이다’, ‘향상시키다’는 말 같다. 수준을 ‘높이다’는 말일 것이다. 方 부분의 주석을 보면, 郝懿行은 尊을 스승을 ‘높이다’처럼 해석하고 있다. ◈ 以는 ‘~를’이다. 徧을 받는다. ◈ 徧은 본래 ‘두루두루’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체언으로 ‘다양한 분야’, ‘전반적인 수준’을 이르는 말 같다. 그러면 尊以徧은 ‘徧을 尊한다’, 즉 ‘전반적인 수준을 향상시키다’는 말이 된다. 나는 ‘전반적인 식견이 향상되다’처럼 의역하였다. 金學主는 뒤의 周까지 붙여서 尊以徧矣周로 보고, 徧矣周가 徧周를 강조한 표현이라고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矣가 그런 식으로 사용된 예가 없다. ◈ 周는 용언으로, ‘두루 미치다’, ‘두루 잘 알다’는 말이다. ◈ 於는 ‘~에 대해’다. 世를 받는다. ◈ 世는 체언으로, ‘세상사’, ‘세상의 이치’를 이른다. ◈◈ 楊倞은 當其人習說之時/則尊高而徧周於世事矣/六經則不能然矣, ‘탁월한 사람을 마주하고, 학설을 익힌다면, 윗사람을 숭상하게 되고, 세상사에 두루 통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六經을 배운다고 그렇게 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학문에 탁월한 사람, 즉 스승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는 일의 효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공부하는 데에는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 만큼 편한 방법이 없다’라고 했던 것이다.(故曰學莫便乎近其人, ◈ 故는 ‘그래서’, ‘따라서’다. ◈ 曰은 용언으로, ‘~라고 하였다’처럼 해석된다. ◈ 學莫便乎近其人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또,] 공부를 빠르게 성취하는 방법으로는,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따르는 것 보다 신속한 방식이 없다. 예법을 갈고 닦는 일은 그 다음이다.(學之經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 ◈ 學은 체언으로, ‘학문’, ‘공부’다. ◈ 學之經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처럼 해석된다. ◈ 經은 체언으로, ‘빠른 방법’을 이른다. ‘지름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 역시 ‘빠른 길’을 뜻한다. 그러면 學之經은 ‘공부의 빠른 방법’, ‘공부를 성취하는 빠른 방법’이 된다. 나는 ‘공부를 빠르게 성취하는 방법’처럼 의역하였다. 아래에 인용한 주석 중, 王先謙이 인용한 바와 같이, 《史記》 「大宛列傳」과 《漢書》 「張騫李廣利傳」에 從蜀宜徑/又無寇, ‘蜀을 경유하면 마땅히 徑할 것이요, 또 도적도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徑은 ‘빠르다’는 말이다. 裴駰은 如淳曰/徑/疾也//或曰/徑/直, ‘如淳은 “徑은 빠르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徑을 곧다는 뜻이라고 했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顏師古는 徑/直也, ‘徑은 곧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直은 아마 ‘질러 간다’는 말일 것이다. 또, 《新唐書》 「列傳第四十八」에 仕宦之捷徑, ‘벼슬을 하는 捷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捷徑은 ‘지름길’, ‘빠른 길’이라는 뜻이다. 즉, 徑은 ‘빠르다’는 말이다. 王念孫은 經을 蹊徑, 즉 ‘지름길’이라고 해석하였고, 王先謙은 이에 반대하면서 道, 즉 ‘방법’이라고 풀이하였다. 그 설들은 다음과 같다. 王念孫은 經/讀爲徑/即下文所謂蹊徑//言入學之蹊徑/莫速乎好賢/而隆禮次之//修身篇云/治氣養心之術/莫徑由禮[此徑字/訓爲疾/莫徑/即本篇所謂莫速也//漢書張騫傳/從蜀宜徑///如淳曰/徑/疾也///見史記大宛傳集解]/莫要得師/莫神一好///語意略與此同//學之經/即學之徑//古讀徑如經/故與經通[賈子立後義篇/其道莫經於此///莫經/即荀子之莫徑]//楊以爲學之大經/失之, ‘經은 徑이라고 읽는다. 아랫쪽 글에 나오는 蹊徑과 같다. 이 문장은 학문을 시작하는 빠른 길에는 현명한 사람을 따르는 것 만큼 빠른 방법이 없고, 禮를 숭상하는 것은 그 다음 방법이라는 뜻이다. 「修身」에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을 길러 내는 방법으로는 禮를 따르는 일 만큼 徑한 것이 없고[王先謙의 부연 : 이 徑은 빠르다는 뜻이니, 莫徑은 곧 이 편에서 莫速이라고 한 말과 같다. 《漢書》 「張騫傳」에 “蜀을 경유하면 마땅히 徑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如淳은 “徑은 빠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주석은 《史記》 「大宛傳」에 대한 《集解》에 나온다.], 스승을 얻는 일 만큼 중요한 것이 없고, 한 가지에 전념하는 일 만큼 탁월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말의 뜻이 이 부분과 대체적으로 같다. 따라서 學之經이란, 곧 학문의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徑을 經과 같이 읽었기 때문에, 徑을 經과 통용해서 썼다.[王先謙의 부연 : 《賈子》 「立後」에 “그 도리로는 이 것 보다 經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莫經이 곧 《荀子》의 莫徑과 같다.] 楊倞은 學之經을 學之大經이라고 풀이했는데, 틀렸다’라고 하였다. 下文이란, 이 뒷부분에 있는 禮正其經緯蹊徑也, ‘《禮》야말로 선왕을 본받고 인의를 좇을 체계적인 방법이요, 빠른 방법이다’를 이른다. 蹊徑은 ‘지름길’, ‘빠른 길’이다. 「修身」은 《荀子》의 편이다. 「勸學」 다음 편이다. 《漢書》 「張騫傳」은 《漢書》 「張騫李廣利傳」이다. 《史記》 「大宛傳」은 《史記》 「大宛列傳」이다. 《集解》란, 裴駰의 《史記集解》를 이른다. 《賈子》는 西漢 賈誼의 《新書》를 이른다. 王先謙은 王讀經爲徑/引修身篇之莫徑/謂即本篇所謂莫速/是學之速莫速乎好其人/於詞爲複//上文/學莫便乎近其人///亦無此複語/其說非也//呂覽當染有始知分驕恣諸篇/高注竝云/經/道也///學之經/猶言學之道耳//成相篇云/治之經/禮與刑///又云/聽之經/明其請///治之經/聽之經/猶言治之道/聽之道//與此學之經一例/是荀書自有此文法, ‘王念孫은 經을 徑이라고 보았다. 「修身」에 나오는 莫徑을 가져다가 이 편에 있는 莫速과 같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배우기가 빠르기로는, 탁월한 사람을 따르는 것 만큼 빠른 방법이 없다”라는 뜻이 되어, 말이 중복된다. 앞의 글에서, “공부하는 데에는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 만큼 편한 방법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이처럼 말이 중복되지 않으니, 아마도 王念孫의 설은 틀렸을 것이다. 《呂覽》의 「當染」, 「有始」, 「知分」, 「驕恣」 같은 여러 편들에서, 高誘는 모두 “經은 道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즉, “공부의 經”이란, “공부의 방법”과 같은 말인 것이다. 「成相」에는 “治하는 經은 禮와 刑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聽하는 經은 請을 明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治之經과 聽之經은 모두 治하는 방법, 聽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이 부분의 學之經이란 표현과 같은 사례라 하겠다. 荀子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呂覽》은 《呂氏春秋》다. 「當染」, 「有始」, 「知分」, 「驕恣」는 모두 《呂氏春秋》의 편 이름으로, 각각 「仲春紀」, 「有始覽」, 「恃君覽」, 「恃君覽」에 속해 있다. 「當染」에는 故古之善爲君者/勞於論人/而佚於官事/得其經也, ‘따라서, 옛날 군주의 일을 잘 하던 사람들은 사람을 가리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래서 정무는 편안하게 볼 수 있었으니, 정사에 대한 經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經/遺, ‘經은 遺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有始」에는 天地合和/生之大經也, ‘天地가 어우러지는 것이 生의 大經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經/猶道也, ‘經은 道와 같다’라고 하였다. 「知分」 則禹達乎死生之分/利害之經也, ‘즉, 禹는 생사의 요체, 이해의 經에 통달했던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經/道, ‘經은 도리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驕恣」에는 三者人君之大經也, ‘세 가지는 군주의 大經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高誘는 經/道也, ‘經은 도리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當染」의 經 역시 ‘도리’, ‘이치’라는 의미임이 분명한데, 유독 高誘는 저 부분에서만 道라고 풀이하지 않았으니 의뭉스럽다. 「成相」은 《荀子》의 편이다. 王先謙은 말이 중복되기 때문에 經을 王念孫처럼 풀이해선 안 된다고 했으나, 내 생각에는 문제가 없다. 經을 ‘빠른 방법’ 혹은 ‘지름길’이라고 해석한다면, 이 節은 ‘공부를 성취하는 빠른 방법 중에는 이 방법이 제일 빠르다’, 즉 ‘공부를 성취하는 빠른 방법 중에는 이 방법이 제일 낫다’라는 말이 되므로,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만약 經을 道, ‘방법’이라고 풀이한다면, 이 節인 學之經莫速乎好其人에서는 學之經이라고 하고, 앞의 節인 學莫便乎近其人에서는 왜 그냥 學이라고 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왜 앞에서는 學之經이라 하지 않고 그냥 學이라고만 했을까. 앞의 學이 그 자체로 이미 ‘공부 방법’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뒤에서도 學이라고 하면 되지, 왜 學之經이라고 표현했을까. ‘공부 방법’ 중 ‘속도’에 초점을 맞춰서, 其人을 모시는 일이 왜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 한 번 더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經을 ‘방법’ 보다는, ‘빠른 방법’ 혹은 ‘지름길’이라고 풀이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 莫은 용언으로, ‘없다’는 말이다. 速을 받는다. ◈ 速은 체언으로, ‘신속한 방식’, ‘빠른 방식’이다. ◈ 乎는 於와 같다. ‘~보다’처럼 비교하는 말이다. 好其人을 받는다. ◈ 好는 용언으로, ‘좇다’, ‘따르다’는 말이다. 其人을 받는다. 「勸學」 앞 부분 및 「小雅」 「小明」에 靖共爾位/好是正直, ‘너희들의 직무를 올곧게 처리하고, 정직한 태도를 好해라’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好/猶與也, ‘好는 與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 與는 ‘따르다’, ‘좇다’라는 뜻이다. 그러면 與는 어떻게 ‘따르다’처럼 풀이할 수 있을까. 《國語》 「齊語」에 桓公知天下諸侯多與己也, ‘桓公은 天下의 諸侯이 자신을 與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았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無不從也//與/從也,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與는 따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莊子》 「養生主」에 臣之所好者道也, ‘臣이 好하는 바는 道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好 역시 ‘따르다’는 말일 것이다. ◈ 其人는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이른다. 綦人, 至人과 같다. ◈ 隆은 용언으로, 禮를 받는다. 隆은 본래 ‘높이다’, ‘숭상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마 ‘성하게 하다’, ‘키우다’, ‘두텁게 하다’, 즉 ‘기르다’, ‘갈고 닦다’, ‘수양하다’라고 번역해야 할 듯하다. 隆을 본래 의미로 보면, 隆禮는 ‘禮를 숭상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荀子는 어떤 방법이 학문을 성취하는 빠른 방식인지에 대해 따지고 있다. 禮를 그냥 숭상하고 있기만 하면 학문을 이룰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禮, 즉 禮儀凡節을 ‘갈고 닦아야’ 학문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漢書》 「王莽傳 上」에 臣莽夙夜養育隆就孺子, ‘臣 莽은 조석으로 孺子를 養育하고, 隆就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隆/長也, ‘隆은 기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禮는 체언으로, ‘예법’, ‘예의범절’을 이른다. 隆禮는 명사구로, ‘예법을 갈고 닦는 일’이 된다. ◈ 次는 용언으로, ‘다음 순서다’, ‘다음 차례다’, ‘다음이다’라는 말이다. 次之의 之를 받는다. ◈ 次之의 之는 好其人을 가리킨다. ◈◈ 楊倞은 學之大經/無速於好近賢人//若無其人/則隆禮爲次之, ‘공부의 大經으로는, 賢人을 가까이 하는 일 보다 빠른 것이 없다. 그러나 其人이 없다면, 禮를 隆하는 일이 그 다음 순서다’라고 하였다. ◈◈ 郭嵩燾는 近其人/謂得其人而師之//好其人/則是中心悅而誠服/親炙之深者也//隆禮/謂自以禮檢束其身, ‘近其人이라는 말은 其人을 얻고, 스승으로 모신다는 뜻이요, 好其人이라는 말은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진심으로 따라서, 깊이 감화된다는 뜻이요, 隆禮라는 말은 禮를 가지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단속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학문을 이루는 제일 편한 방법도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이요, 학문을 이루는 가장 빠른 방법도 탁월한 사람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은 진보하고, 지식은 쌓여 가는데, 왜 無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쌓인 연구를 받고, 그 다음 과정을 밟아 나가면 될 뿐이다. 내가 《荀子》를 번역하고 있지만, 楊倞이 주석을 달지 않았거나, 盧文弨가 저본을 교정해 두지 않았거나, 郝懿行, 王念孫, 王引之, 俞樾, 郭嵩燾 같은 학자들이 글을 분석해 놓지 않았거나, 王先謙이 그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서 《荀子集解》로 엮지 않았거나, 또 宋基采, 李止漢, 金學主 같은 학자들이 먼저 번역서를 내지 않았다면, 나는 작업을 가장 첫 단계부터 진행해야 했을 것이다. 나처럼 비루하고 천근한 사람이 어떻게 그 작업을 이뤄 낼 수 있겠는가. 선행 연구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고, 또 인용하기도 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제시하거나, 새로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荀子가 지적하고 있는 논지는 바로 이런 점이다.) [만약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실천하지 못해서,] 위로는 [학문에] 탁월한 자를 따르지 못하고, 아래로는 예법을 갈고 닦지도 못한다고 해 보자.(上不能好其人/下不能隆禮, ◈ 上은 부사어로, ‘위로는’, ‘위로’라는 말이다. ◈ 不能은 ‘~할 수 없다’는 말이다. 好其人, 隆禮를 받는다. ◈ 好는 용언으로, ‘좇다’, ‘따르다’는 말이다. 其人을 받는다. ◈ 其人은 학문에 ‘탁월한 사람’이다. 綦人, 至人과 같다. ◈ 下는 부사어로, ‘아래로는’, ‘아래로’라는 말이다. ◈ 隆은 용언으로, ‘기르다’, ‘갈고 닦다’, ‘수양하다’라는 말이다.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예법’, ‘예의범절’이다. ◈◈ 蜀虎案 : 好其人과 隆禮를 각각 上, 下라고 표현한 것은, 앞에서 好其人을 가장 빠른 방법으로 꼽고, 隆禮를 그 다음이라고 꼽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딴에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 봤자, 겨우] 잡다한 글이나 공부하고, 《시》와 《서》를 [곧이곧대로] 따르다가, [학업을] 접고 말 것이요, 죽을 때까지 누유[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安特將學雜識志/順詩書而已耳/則末世窮年/不免爲陋儒而已, ◈ 安은 ‘그렇다면’, ‘그러면’이라고 해석된다. 則, 乃, 於是와 같다. 이 安은 案, 焉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지만, 의미는 모두 동일하다. 《國語》 「吳語」에 王安挺志/一日惕/一日留/以安步王志, ‘王은 安 마음을 관대하게 먹고, 하루는 빠르게, 하루는 천천히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편안하게 王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安은 乃처럼 ‘이에’라고 해석된다. 《道德經》에는 往而不害/安平大, ‘往하고 害를 끼치지 않으면, 安 태평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때 安도 乃처럼 ‘이에’라고 해석된다. 《管子》 「地員」에는 群木安逐/鳥獸安施, ‘나무들은 安 우거지고, 짐승들은 安 施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安은 모두 ‘이에’라는 말이다. 또, 《管子》 「山國軌」에 民衣食而繇/下安無怨咎, ‘백성들이 입고 먹으면서 요역에 동원된다면, 아랫사람들은 安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安은 여기서도 ‘이에’라고 해석된다. 《荀子》 「臣道」에는 是案曰是/非案曰非, ‘옳다 案 맞다고 하고, 그르다 案 그르다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案은 ‘그러면’, 즉 則과 같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安案」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抑이라고 풀이했는데, 宋基采는 이 抑을 ‘이에’라고 하였다. 郝懿行은 然, 焉이라고 풀이했는데, 然은 然則으로, ‘그렇다면’이라는 말이고, 焉은 ‘이에’라고 풀이될 수 있다. 王先謙은 則, ‘그러면’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모두 의견이 같다. 학자들의 설은 다음과 같다. 楊倞은 安/語助/猶言抑也//或作安/或作案/荀子多用此字//禮記三年問作焉//戰國策/謂趙王曰 秦與韓爲上交/秦禍案移於梁矣//秦與梁爲上交/秦禍案攘於趙矣///呂氏春秋/吳起謂商文曰/今置質爲臣/其主安重//釋璽辭官/其主安輕///蓋當時人通以安爲語助/或方言耳, ‘安은 어조사로, 抑이라는 말과 같다. 安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고, 案이라고 되어 있기도 한데, 《荀子》에는 이 글자를 사용한 사례가 많다. 《禮記》 「三年問」에는 焉이라고 되어 있다. 《戰國策》에는 “趙王에게 말했다. ‘秦나라와 韓나라가 上交하면, 秦나라의 兵禍는 案 梁나라로 옮겨 갈 것이요, 秦나라와 梁나라가 上交하면, 秦나라의 兵禍는 案 趙나라로 攘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고, 《呂氏春秋》에는 “吳起가 商文에게 말했다. ‘지금 置質하여 신하가 된다면, 그 군주는 安 重해질 것이고, 釋璽하고 관직을 사양한다면, 그 군주는 安 輕해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安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어조사였거나, 아니면 方言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楊倞이 든 《禮記》 「三年問」의 예시는 아마 故先王焉爲之立中制節, ‘그러므로, 先王은 焉 之를 위해 적당한 制節을 세워서’를 이를 것이다. 여기서 焉은 乃처럼 ‘이에’라고 해석된다. 《戰國策》 인용문은 「趙策」에 나온다. 《呂氏春秋》 인용문은 「審分覽 執一」에 나온다. 「執一」에는 今이 今日이라고 되어 있다. 郝懿行은 安/猶然也/焉也, ‘安은 然 및 焉과 같은 말이다’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安/猶案也//此云/安特將學雜志/順詩書///猶解蔽篇云/案直將治怪說/玩奇辭也///安案/竝猶則也//荀書用安案字/或爲語詞/或作則字用/其用則字亦然//彊國篇云/秦使左案左/使右案右[使楚也]///謂使左則左/使右則右也//臣道篇云/是案曰是/非案曰非///謂是則曰是/非則曰非也//正論篇云/暴國獨侈/安能誅之[能字衍]///謂暴國獨侈則誅之也//又云/今子宋子案不然///謂子宋子則不然也//解蔽篇云/學者以聖王爲師/案以聖王之制爲法///謂以聖王爲師/則以聖制爲法也//此竝以安案代則字/餘皆語詞//富國篇/則案以爲利也///仲尼篇云/至於成王/則安以無誅已///大略篇云/至成康則案無誅已///臣道篇云/凡人非賢則案不肖也///以則案則安連用/安案亦語詞//彊國篇云/是何也/則小事之至也數///又云/是何也/則其殆無儒邪///天論篇/生於今而志乎古/則是其在我者也///數則字語詞/則亦猶安案也, ‘安은 案과 같다. 이 글에서 “安 特 將 雜志를 學하고, 詩書를 順한다”라고 한 말은 「解蔽」의 “案 直 將 怪說을 治하고, 奇辭를 玩한다”라는 말과 같다. 安과 案은 모두 則과 같다. 荀子의 글에서 사용된 安과 案은 어조사일 경우도 있고, 則처럼 사용된 경우도 있다. 則이 사용된 용례도 마찬가지다. 「彊國」에 “秦나라가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案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라고 한다 案 오른쪽으로 간다[王先謙의 부연 : 楚나라에게 시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왼쪽으로 가라고 하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간다는 뜻이다. 「臣道」에는 “옳다 案 옳다고 하고, 그르다 案 그르다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옳으면 옳다고 하고, 그르면 그르다고 한다는 뜻이다. 「正論」에는 “暴國이 유독 사치한다 安 벌한다[王先謙의 부연 : 能은 잘못 들어간 글자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暴國이 유독 사치하면, 벌한다”라는 뜻이다. 또, “지금 子宋子 案 그렇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지금 子宋子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解蔽」에는 “공부하는 자가 聖王을 스승으로 여긴다 案 聖王의 제도를 본받을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聖王을 스승으로 여긴다면, 聖王의 제도를 본받을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글들에 있는 安과 案은 모두 則으로 대신할 수 있다. 나머지 부분의 安과 案은 모두 어조사다. 「富國」의 “則案 이익을 위하는 것”, 「仲尼」의 “成王에 이르기까지 則安 誅하지 않았다”, 「大略」의 “成王과 康王에 이르기까지 則案 誅하지 않았다”, 「臣道」의 “대개 사람은 賢이 아니면 則案 不肖다”의 경우, 則과 案, 則과 安이 연달아 사용되었는데, 이 때 安과 案은 마찬가지로 어조사다. 「彊國」에 “이는 왜 그럴까. 則 작은 일이 빈번하게 닥쳐 온다”라는 말이 있고, 또 “이는 왜 그럴까. 則 아마도 儒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라는 말이 있으며, 「天論」에 “현재를 살면서 옛날에 뜻을 두는데, 則 이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상기한 몇 가지 則들은 어조사로, 則도 마찬가지로 安, 案와 같다’라고 하였다. 「解蔽」, 「彊國」, 「臣道」, 「正論」, 「富國」, 「仲尼」, 「大略」, 「天論」은 모두 《荀子》의 편 이름이다. 「仲尼」 인용문인 則安以無誅已는 「仲尼」 본문에는 則安以無誅矣라고 되어 있다. 安과 案이 어조사라고 든 예 중, 「富國」의 則案以爲利也, 「臣道」의 凡人非賢則案不肖也는 문장 형식이 같고, 則案 또한 분명하게 ‘그러면’이라고 해석된다. 나머지 경우인 「仲尼」의 至於成王/則安以無誅矣, 「大略」의 至成康則案無誅已의 則安과 則案은 문장 속에서 ‘~는’처럼 주격 조사로 해석된다. 번역한 뒤에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楊倞, 王先謙 등이 ‘어조사’라고 부르는 말의 범주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어떤 경우에는 ‘의미 없는 조사’만을 ‘어조사’라고 부르는 것 같고, 어떤 경우에는 속칭 ‘虛辭’들을 모두 ‘어조사’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 特은 부사어로, ‘다만’, ‘단지’다. 楊倞, 郝懿行, 王先謙 모두 ‘다만’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니면, 特을 ‘도리어’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인 ‘다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히 통하고, 또 다른 학자들의 의견 또한 같으므로, 나도 ‘다만’으로 해석하였다. ‘도리어’라고 해석되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莊子》 「齊物論」에 必有眞宰/而特不得其眹, ‘眞宰가 존재한다고 할 수는 있겠다. 而特 眞宰의 낌새를 알아 낼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而特는 ‘하지만’, ‘그러나’, ‘도리어’처럼 해석된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特/猶言直也, ‘特은 다만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郝懿行은 特/直也/猶言但也, ‘特은 直이라는 말이니, 다만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特/猶直也, ‘特은 다만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將은 부사어로, ‘장차’, ‘앞으로’, ‘~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 學은 용언으로, ‘배우다’, ‘공부하다’는 말이다. 雜識志을 받는다. ◈ 雜은 관형어로, ‘잡다한’이다. 識志를 한정한다. ◈ 識志는 체언으로, ‘글’을 이른다. 따라서 雜識志은 ‘잡다한 글’이 된다. 荀子의 논조를 고려할 때, 道家, 名家, 墨家 같은 다른 학파나, 子思나 孟子 같은 유심론, 형이상학적 경향을 추종하는 儒家의 글들을 이르는 말 같다. 「非十二子」 첫 부분에 諸家에 대한 荀子의 비판이 특히 집중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읽어 볼 만하다. 글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선 志는 誌와 통용되는 글자로, ‘기록하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체언이므로, ‘기록한 것’, 즉 ‘글’이 된다. 예를 들어 《三國志》는 ‘세 나라에 대한 글’이고, 《水滸志》는 물가 사람들, 즉 ‘梁山泊 비적놈들 대한 글’이며, 《博物志》는 ‘폭넓은 物들에 대한 글’이다. 識 또한 ‘기록하다’는 말이다. 체언으로는 ‘기록한 것’, 즉 ‘글’을 뜻한다. 이 때는 ‘지’라고 읽는다. 《釋名》 「釋典藝」에 記/紀也/紀識之也, ‘記는 紀라는 뜻이니, 紀識하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記, 紀, 識는 모두 ‘기록하다’는 말이다. 《論語》 「衛靈公」에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너는 너 자신을 많이 알고, 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識를 記識라고 풀이하고 있다. 記와 識가 같기 때문이다. 또, 《漢書》 「匈奴傳 上」 於是說教單于左右疏記/以計識其人眾畜牧, ‘이에 說은 單于의 측근에게 疏記를 가르쳐서, 사람들의 가축들을 計識하게 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識亦記/音式志反, ‘識 또한 기록하다는 말이다. 式과 志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즉, 識志는 識와 志가 모두 ‘글’이므로, 이 또한 ‘글’을 이른다. 같은 의미의 글자들이 모여 구성된 단어인 것이다. 그런데 識志라는 표현은 《荀子》의 이 부분에 등장할 뿐, 그 외의 문헌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王引之는 識는 잘못 들어간 글자고, 본래는 志만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王引之는 識를 없애 버리고, 學雜志라고 읽었다. 學雜志, 順詩書처럼 세 글자씩 句가 끊기고, 또 識와 志의 의미가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王引之는 본래 志만 있었을 것이고, 識는 주석처럼 기술해 둔 글자였을 텐데, 나중 사람이 옮기다가 識을 본문으로 편입해 버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王先謙 역시 이 설에 동의하고 있다. 내 생각에도 王引之의 설이 타당해 보인다. 번역문이 달라 지지는 않겠으나, 이 점을 밝혀 두고 지나간다. 학자들의 설은 다음과 같다. 楊倞은 雜識志/謂雜志記之書/百家之說也, ‘雜識志라는 말은 잡다한 志나 記 같은 글들과, 百家의 학설들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郝懿行은 學雜識者/識/記也/所謂記醜而博也//志順詩書者/志與幟同/謂幖題也//如今學僮課讀/用紙爲號記也, ‘識는 기록하다는 말이니, 學雜識라는 말은 소위 醜한 것을 기록하고, 널리 알린다는 말과 같다. 志順詩書라는 말은 이렇다. 志는 幟와 같으니, 표제를 이른다. 요즘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종이를 사용해 번호를 매기는 행동과 같다’라고 하였다. 郝懿行처럼 본다면, 志는 順과 같은 용언이 된다. 記醜而博이라는 말은 《荀子》 「宥坐」에 나오고, 또 《孔子家語》 「始誅」에도 나온다. 孔子가 司寇가 되었을 때, 少正卯라는 자를 잡아 죽인 일이 있었는데, 孔子는 少正卯에게 다섯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이 문제들이 「宥坐」에는 心達而險, 行辟而堅, 言僞而辯, 記醜而博, 順非而澤이라고 되어 있고, 「始誅」에는 心逆而險, 行辟而堅, 言僞而辯, 記醜而博, 順非而澤이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此文本作安特將學雜志順詩書而已耳//志/即古識字也//今本竝出識志二字者/校書者旁記識字/而寫者因誤入正文耳//學雜志順詩書/皆三字爲句/多一識字/則重複而累於詞矣//楊注本作/雜志/謂雜記之書/百家之說///今作/雜識志/謂雜志記之書/百家之說///皆後人據已誤之正文加之//下注云/直學雜說/順詩書而已///文義甚明/足正後人竄改之謬, ‘이 글은 본래 安特將學雜志順詩書而已耳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 志는 곧 옛날의 識와 같다. 지금 판본에는 識志이라고 병기되어 있는데, 글을 교정하는 사람이 識를 옆에 적어 둔 것을, 베껴 적는 사람이 본문이라고 오해하여서 본문처럼 기재해 두었을 것이다. 學雜志와 順詩書는 모두 句가 세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識 한 글자가 많다면, 말이 반복되어, 의미가 중복되고 말 것이다. 楊倞의 주석도 본래 “雜志라는 말은 말은 잡다한 記 같은 글들과, 百家의 학설들을 이른다”라고 되어 있었을 텐데, 지금 판본에는 “雜識志라는 말은 잡다한 志나 記 같은 글들과, 百家의 학설들을 이른다”라고 되어 있으니, 전부 나중 사람들이, 이미 잘못된 본문에 근거해서 글자를 더 집어 넣어 생긴 문제일 것이다. 아랫쪽에 있는 주석에서는 “다만 잡다한 학설이나 배우고, 《詩》와 《書》를 따르기만 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으니, 글의 의미도 아주 분명하고, 또 이 오류를 바로 잡기에도 충분하다’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學雜識志/王說是, ‘學雜識志에 대해서는 王引之의 설이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 順은 용언으로, ‘따르다’는 말이다. 《詩》와 《書》를 글자 그대로, 곧이 곧대로 ‘따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郝懿行은 順者/順其文也, ‘順은 글을 그대로 따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詩는 체언으로, ‘《詩》’다. ◈ 書는 체언으로, ‘《書》’다. ◈ 順詩書而已耳의 而는 아마도 ‘~하면서’, ‘~하다가’라는 말일 것 같다. ◈ 順詩書而已耳의 已는 아마 용언으로, ‘멈추다’, ‘그치다’는 말일 것이다. 아마 학업을 ‘그만 두다’, ‘때려 치우다’는 의미일 것이다. ◈ 順詩書而已耳의 耳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로, ‘~할 따름이다’, ‘~일 뿐이다’라는 말이다. 而已와 같다. 而已를 줄여서 耳로 사용한다. 順詩書而已耳의 而已는 이 而已와 다르다. ◈ 則은 ‘그러다가’, ‘그리고’, ‘그러면서’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安特將學雜識志順詩書而已耳/則末世窮年/不免爲陋儒而已는 ‘安 特 將 雜志를 學하고, 《詩》와 《書》를 順하다가 已할 것이요, 則 末世窮年하더라도 陋儒에서 免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인데, 安이 이미 ‘그러면’이라는 의미이므로, 이 則도 ‘그러면’이라고 해석한다면 ‘그러면 特 將 雜志를 學하고, 《詩》와 《書》를 順하다가 已할 것이요, 그러면 末世窮年하더라도 陋儒에서 免하지 못할 것이다’가 되어, 의미가 번잡해지고, 지저분해진다. 차라리 則을 而로 보고, 앞뒤의 節을 순접으로 이어 준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러면 則을 어떻게 而로 풀이할 수 있을까. 《春秋左氏傳》 「文公」 2년에 勇則害上/不登於明堂, ‘용력을 부리면서 윗사람을 해치면, 明堂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則은 ‘~하면서’라고 해석된다. 而와 같다. 또, 《春秋左氏傳》 「昭公」 3년에는 寡人願事君/朝夕不倦/將奉質幣/以無失時/則國家多難/是以不獲, ‘寡人은 君을 섬기고자 해서, 조석으로 倦하지 않고, 장차 質幣를 奉하고자 하면서 때를 맞추려 했다. 그러나 나라에 일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則은 ‘그러나’, ‘하지만’처럼 해석된다. 이 역시 而와 같다. 또, 《荀子》 「榮辱」에 夫貴爲天子/富有天下/是人情之所同欲也//然則從人之欲/則埶不能容/物不能贍也, ‘대저 貴하여 天子가 되고, 부유해서 천하를 가지는 것은 사람의 정리상 모두 바라는 바이다. 然則 사람의 욕구를 따르자면, 형세상 용인될 수가 없고, 物로도 贍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然則은 역접으로 해석된다. 즉, 然而와 같다. 이 경우에서도 則과 而는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則」에 수록되어 있다. ◈ 末世窮年은 ‘죽을 때까지도’, 혹은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라는 말이다. 世는 生과 같다. 즉 ‘삶’이다. 末은 ‘끝나다’는 말이다. 즉, 末世는 ‘삶이 끝나다’는 뜻이 된다. 年은 ‘나이’, ‘연세’를 이른다. 窮은 ‘다하다’, ‘끝나다’는 말이다. 즉, 窮年은 ‘나이가 다하다’, 곧 ‘삶이 끝나다’라는 말이 된다. 「榮辱」에 窮年累世라는 말이 있고, 「解蔽」에 沒世窮年라는 말이 있다. 다들 의미가 비슷하다. 그러면 世를 어떻게 生처럼 해석할 수 있을까. 《列子》 「天瑞」에 亦如人自世至老/貌色智態/亡日不異//皮膚爪髮/隨世隨落, ‘또한, 사람이 世하고부터 늙을 때까지, 용모, 안색, 식견, 태도가 나날이 변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皮膚와 爪髮도 이에 따라 世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世에 대해 張湛은 音生, ‘生이라고 읽는다’라고 하였고, 殷敬順도 世音生, ‘世는 生이라고 읽는다’라고 하였다. 또, 같은 편에 損盈成虧/隨世隨死, ‘줄기도 하고, 차기도 하며,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하는데, 이에 따라 世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張湛은 此世亦宜言生, ‘이 世 역시 生을 뜻한다’라고 하였고, 殷敬順은 世音生/下同, ‘世는 生이라고 읽는다. 아래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不免은 ‘면하지 못하다’, ‘벗어나지 못하다’는 말이다. 不은 부정어로, 免을 한정한다. 免은 용언으로, ‘면하다’, ‘벗어나다’는 말이다. ◈ 爲陋儒의 爲는 於와 같다. ‘~에서’라는 말이다. 陋儒를 받는다. 不免이라는 표현은 ‘~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은 ‘~를 면하지 못한다’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於와 함께 사용된다. 《孟子》 「梁惠王 上」에 行政不免於率獸而食人, ‘정무를 보면서 率獸하여 食人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고, 같은 편에 또 凶年不免於死亡, ‘흉년이 들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으며, 《禮記》 「檀弓 下」에 君之臣不免於罪, ‘군주의 신하가 죄를 면하지 못한다면’이라는 말이 있다. 또 《莊子》 「逍遙遊」에 或不免於洴澼絖, ‘어떤 사람은 솜 빠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는 말이 있고, 《莊子》 「胠篋」에도 故四子之賢而身不免乎戮, ‘그래서 네 사람은 현명했지만, 그 자신들은 형벌을 면하지 못했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경우는 아니겠으나, 이처럼 不免은 대부분 於와 함께 사용된다. 乎는 於와 같다. 고대 중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爲 또한 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爲를 어떻게 於로 간주할 수 있을까. 《春秋左氏傳》 「莊公」 22년에 並于正卿, ‘正卿에 並해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陸德明은 並于/本或作並爲/誤, ‘並于는 판본에 따라 並爲라고 되어 있기도 한데, 틀렸다’라고 하였다. 于는 於와 같으므로, 이 예는 於가 爲로 되어 있기도 하다는 예시가 된다. 《戰國策》 「西周策」에 令弊邑陰合於秦, ‘우리 나라가 秦나라와 몰래 연합하게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鮑彪本》에는 於秦이 爲秦이라고 되어 있다. 於와 爲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글자를 바꾸어서 사용한 것이다. 또, 《戰國策》 「秦策」에 朝爲天子, ‘天子에게 조회하다’라는 말이 있고, 《竹書紀年》 「襄王」에 皆降爲秦師, ‘모두 秦나라 군대에게 항복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爲는 모두 ‘~에’, ‘~에게’라는 의미로, 於와 같다. 《竹書紀年》의 저 말은 酈道元의 《水經注》 「涑水」에는 皆降于秦師라고 인용되어 있다. 《竹書紀年》의 爲가 于, 즉 於라는 뜻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水經注》를 제외한 모든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爲」에 수록되어 있다. ◈ 陋儒는 ‘비루한 유생’이다. 陋는 관형어로, ‘비루한’, ‘천한’이라는 말이다. 儒를 한정한다. 儒는 체언으로, ‘유생’이다. ◈ 陋儒而已의 而已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로, ‘~할 따름이다’, ‘~할 뿐이다’라는 말이다. 順詩書而已耳의 而已와는 다르고, 耳와는 같다. ◈◈ 楊倞은 言既不能好其人/又不能隆禮/直學雜說順詩書而已/豈免爲陋乎, ‘이미 탁월한 사람을 따르지도 못하고, 또 예법을 갈고 닦지도 못하니, 다만 잡다한 학설이나 배우고, 《詩》와 《書》를 따르기만 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비루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고, 또 言不知通變也, ‘응변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郝懿行은 謂陋儒但能幖志順讀詩書/末世窮年/不知理解也, ‘陋儒는 단지 필기나 하며 《詩》와 《書》를 곧대로 따를 줄만 아니, 죽을 때까지도 속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荀子》를 읽다 보면, 나 같은 사람을 비판하는 구절이 많아서 내심 부끄러울 때가 많다. 이 글에서 荀子는 학문을 성취하려면, 탁월한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거나, 그렇지 않다면 차선책으로 禮法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이행하지 못한다면, 百家의 학설들에 매몰되거나, 고루한 옛 글이나 곧이곧대로 좇으면서, 해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연하지도 않은, 비루한 유생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 때문에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왕을 본받고, 인의를 따르려 한다면, [《예》를 배우고 좇아야 한다.] 《예》야말로 [선왕을 본받고 인의를 좇을] 체계적인 방법이요,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將原先王/本仁義/則禮正其經緯蹊徑也, ◈ 將은 부사어로, ‘장차’, ‘앞으로’, ‘~하려 하다’는 말이다. ◈ 原은 용언으로, 아마 ‘근본을 두다’, 곧 ‘본받다’, ‘근거하다’, ‘따르다’, ‘좇다’, ‘말미암다’라는 말일 것이다. 由나 因과 같다. 先王을 받는다. 本仁義의 本도 그렇다. 本은 仁義를 받는다. ◈ 先王은 ‘옛 왕’이다. 고대의 聖王들을 이른다. 荀子는 옛 聖王들을 先王이라고 하기도 하고, 後王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둘은 논조나 필요에 따라 사용된 단어일 뿐, 荀子가 둘의 범주를 엄격하게 나누어서, ‘이 왕은 先王이지 後王이 아니고,, 저 왕은 後王이지 先王이 아니다’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仁義는 체언으로, ‘仁義’다. 儒學의 근본 이념이자 정신이다. ◈ 則은 ‘그렇다면’, ‘그러면’이다. ◈ 禮는 체언으로, 아마 ‘《禮》’일 것이다. ◈ 正은 부사어로, ‘바로’다. ◈ 其經緯蹊徑의 其는 原先王과 本仁義를 가리킨다. 즉, ‘先王을 原하고, 仁義를 本하는 일의’라고 해석된다. 經緯와 蹊徑을 받는다. ◈ 經緯와 蹊徑은 아마 각각 ‘체계적인 방법’과 ‘빠른 방법’을 이르는 말 같다. 王念孫은 앞에 나온 學之經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 부분에서 經/讀爲徑/即下文所謂蹊徑, ‘經은 徑이라고 읽어야 한다. 아랫부분에 나오는 蹊徑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 일리가 있다. 荀子는 학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學莫便乎近其人에서는 ‘편한 방법’을, 學之經莫速乎好其人에서는 ‘빠른 방법’을 들었다. 이와 같이, 原先王, 本仁義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經緯와 蹊徑이라는 《禮》의 두 가지 ‘장점’을 제안한 것이다. 經과 緯는 베를 짤 때, 즉 ‘조직’할 때 사용하는 씨줄과 날줄을 뜻하는데, 씨줄과 날줄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면서 천을 얽게 되므로, 본문의 經緯는 아마 ‘조직적인 방법’, ‘체계적인 방법’을 이르는 말로 보인다. 蹊徑은 ‘지름길’로, 곧 ‘빠른 방법’을 이른다. 經緯와 蹊徑은 이 점에 입각하여 번역해야 하겠다. ◈ 經緯는 체언으로, ‘체계적인 방법’, ‘조직적인 방법’을 이른다. 바로 윗부분의 주석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周禮》 「冬官考工記」에 國中九經九緯/經塗九軌, ‘나라에 九經과 九緯가 있는데, 經塗의 폭은 9軌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經緯謂塗也, ‘經과 緯는 塗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塗는 ‘길’이다. 孔穎達은 南北之道爲經/東西之道爲緯, ‘남북 방향으로 난 道를 經이라고 하고, 동서 방향으로 난 道를 緯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길이 씨줄과 날줄처럼 여러 방향으로, 조직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길을 經, 緯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 《孔子家語》 「正論解」에 夫晉國將守唐叔之所受法度/以經緯其民者也, ‘저 晉나라는 앞으로 唐叔이 내린 法度를 지키고, 이로써 백성들을 經緯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王肅은 經緯/猶織以成文也, ‘經緯는 조직해서 모습을 구성한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고대 중국인들은 經緯를 ‘조직적’, ‘체계적’이라는 맥락에서 자주 사용하였다. 한편 宋基采는 其經緯蹊徑을 ‘그곳으로 들어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번역하였는데, 蹊徑은 아마 ‘길’일 것이므로, 經緯는 ‘올바른’에 대응될 것이다. 그러나 《周禮》에서처럼, 經緯를 차라리 蹊徑처럼 ‘길’이라고 번역할지언정, ‘올바르다’라고 풀이할 수 있을까. ◈ 蹊徑은 체언으로, ‘빠른 방법’이다. 蹊와 徑은 모두 ‘지름길’을 뜻한다. 蹊와 徑은 본래 모두 ‘작은 길’, ‘샛길’을 이른다. 소위 ‘지름길’이라는 길들은 보통 주요 도로 보다 작기 때문에, ‘작은 길’이라고 사용하다가 ‘지름길’로 의미가 파생된 듯하다. 《釋名》 「釋道」에 步所用道曰蹊//蹊/係也//射疾則用之/故還係於正道也, ‘걸어 갈 때 사용하는 길을 蹊라고 한다. 蹊는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빨리 가야 할 때 사용하므로, 주요한 길로 빠르게 연결되어 있다’라고 되어 있으니, 곧 ‘지름길’을 이른다. 徑 역시 ‘빠른 길’, ‘지름길’을 이른다. 徑에 대해서는 學之經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의 徑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楊倞은 所成所出/皆在於禮也, ‘학문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 《禮》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제일 좋은 방법은 其人, 즉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禮》를 공부해야 한다. 이 글은 바로 두 번째 단계에 대한 기술이다. 그러면 其人도 가까이 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禮》도 공부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점에 대해서는 이 뒤에 나오는 不道禮憲 부분에 설명되어 있다. 荀子의 글은 이처럼 구성적이고, 체계적이다. ◈◈ 蜀虎又案 : 經과 緯는 일반적으로, ‘불변적인 대상’과 ‘가변적인 대상’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앞에 있던 其數則始乎誦經/終乎讀禮 부분에서 설명하였듯, ‘씨줄’인 經은 위치가 바뀌지 않으므로 불변적인 ‘經文’에, ‘날줄’인 緯는 위치가 변하지만, 씨줄과 함께 대상을 조직하고, 구성하므로, ‘傳文’에 빗댄다. 《春秋左氏傳》 「襄公」 28년에 나오는 梓愼의 말에 대해, 孔穎達은 故謂二十八宿爲經/五星爲緯//言若織之經緯然也, ‘따라서 28宿를 經이라 생각하고, 5星을 緯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이 말은 별들의 모습이 베를 짤 때 씨줄과 날줄 같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28宿는 위치가 변하지 않는 恒星이고, 5星은 움직이는 行星인데, 이 둘이 함께 하늘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經과 緯가 따로 나뉘어 풀이되지 않고,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고 있고, 따라서 그 의미도 그에 맞추어 유추해야 한다.) [《예》를 배운다면, 학문을 이루는 일은] 갖옷의 깃을 들어 올릴 때, 다섯 손가락을 [모두] 구부려서 잡아 당기는 것과 같이, 아주 손쉬울 것이다.(若挈裘領/詘五指而頓之/順者不可勝數也, ◈ 若은 용언으로, ‘~와 같다’는 말이다. 명사구인 挈裘領/詘五指而頓之를 받는다. ◈ 挈은 용언으로, ‘들다’는 말이다. 손으로 물건을 ‘들다’는 뜻이다. 《禮記》 「王制」와 《漢書》 「食貨志」에 班白不提挈, '班白은 提挈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提挈은 ‘손으로 들다’, ‘손으로 옮기다’라는 말이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挈/舉也, ‘挈은 들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裘領은 ‘갖옷의 옷깃’이다. 裘는 ‘갖옷’, ‘가죽옷’이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갖옷의’라고 해석된다. 領을 한정한다. 領은 체언으로, ‘옷깃’이다. 따라서 挈裘領은 ‘갖옷의 옷깃을 들다’는 말이 된다. 아마도 털이 빠지거나 가죽이 상하는 문제가 생길까봐 다른 부분이 아니라 옷깃을 들지 않았나 싶다. 頓에 대한 주석에서 王念孫은 言挈裘領者詘五指而引之/則全裘之毛皆順也, ‘이 말은 갖옷의 깃을 드는데,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서 잡아 당긴다는 말이니, 곧 갖옷의 털을 모두 가지런하게 보전한다는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 詘은 용언으로 ‘굽히다’, ‘구부리다’는 말이다. 五指를 받는다. 楊倞은 詘/與屈同, ‘詘은 屈과 같다’라고 하였다. 屈 역시 ‘구부리다’는 말이다. ◈ 五指는 ‘다섯 손가락’이다. 五는 관형어로, ‘다섯 개의’다. 指를 한정한다. 指는 체언으로, ‘손가락’이다. ◈ 詘五指而頓之의 而는 ‘~함으로써’라고 해석된다. 以와 같다. 즉, 詘五指而頓之는 ‘다섯 손가락을 詘함으로써 之를 頓한다’라는 말이 된다. 而는 以와 같다. 《墨子》 「尙賢 下」에 使天下之爲善者可而勸也/爲暴者可而沮也, ‘온세상의 善한 사람들을 더욱 권면할 수 있고, 暴한 사람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같은 편에 上可而利天/中可而利鬼/下可而利人, ‘위로는 하늘을 이롭게 할 수 있고, 중간으로는 鬼를 이롭게 할 수 있으며, 아래로는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呂氏春秋》 「孟春紀 去私」에는 南陽無令/其誰可而爲之, ‘南陽에 令이 없는데, 누가 맡을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可而는 모두 可以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할 수 있다’는 뜻이다. 而가 以와 통용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용된 것이다. 또, 《荀子》 「成相」에는 進諫不聽/剄而獨鹿/棄之江, ‘간언을 올려도 듣지 않으니, 獨鹿을 가지고 목을 베어 강에 버렸다’라는 말이 있는데, 剄而獨鹿의 而는 以, 즉 ‘獨鹿을 가지고’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고, 또 《荀子》 「成相」의 剄而獨鹿에 대한 王念孫의 주석에도 들어 있다. ◈ 頓은 용언으로, 아마 ‘잡아 당기다’는 말일 것이다. 頓之의 之를 받는다. 楊倞은 ‘들다’라고 보았고, 盧文弨는 ‘꺾다’라고 보았으며, 王念孫은 ‘잡아 당기다’라고 보았다. 나는 王念孫의 설을 따랐다. 학자들의 설은 다음과 같다. 楊倞은 頓/挈也, ‘頓은 들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頓/猶頓挫//提舉高下之狀/若頓首然//注/挈也///疑誤, ‘頓는 꺾다는 말과 같다. 들린 갖옷이 위에서 밑으로 늘어져 있는 모습이 고가 꺾인 것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楊倞은 들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는데, 아마 틀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王念孫은 楊訓頓爲挈/於古無據/且上文已有挈字/此不得復訓爲挈//盧以頓爲頓挫/於義尤迂//頓者/引也//言挈裘領者詘五指而引之/則全裘之毛皆順也//廣雅曰/扽/引也///曹憲/音頓///古無扽字/借頓爲之//鹽鐵論詔聖篇曰/今之治民者/若拙御馬/行則頓之/止則擊之///頓之/引之也//釋名曰/掣/制也/制頓之使順己也///掣/亦引也//鹽鐵論散不足篇曰/吏捕索掣頓/不以道理///褚少孫續史記滑稽傳曰/當道掣頓人車馬, ‘楊倞은 頓을 들어 올리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는데, 옛 글에 근거가 없다. 또, 앞의 글에 이미 挈이 있으니, 이 부분에서 들다는 의미로 頓을 다시 풀이해선 안 된다. 盧文弨는 頓을 꺾이다는 의미로 간주하였는데, 의미가 더 이상하다. 頓은 끌어 당기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말은 갖옷의 깃을 드는데,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서 잡아 당긴다는 말이니, 곧 갖옷의 털을 모두 가지런하게 보전한다는 말일 것이다. 《廣雅》에 “扽은 끌어 당기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曹憲은 “頓이라고 읽는다”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扽이 없었기 때문에, 頓으로 가차해 사용했을 것이다. 《鹽鐵論》 「詔聖」에는 “요즘은 말을 옹졸하게 몰듯 백성을 다스린다. 움직이면 頓하고, 멈추면 때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頓은 잡아 당긴다는 뜻이다. 《釋名》에 “掣은 制라는 말이다. 制頓하여서 자신을 따르도록 만든다는 말이다”되어 있으니, 掣 또한 끌어 당긴다는 말이다. 《鹽鐵論》 「散不足」에 “관리들리 捕索하고 掣頓하는데, 道理 대로 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고, 褚少孫이 이어서 쓴 《史記》 「滑稽傳」에 “길을 점거하고 사람과 수레를 掣頓했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廣雅》는 曹魏의 張揖이 만든 자전이다. 나는 《廣雅》에서 扽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釋詁」에 扥이 ‘끌어 당기다’라는 의미로 풀이되어 있는데, 혹시 王念孫이 扥을 扽이라고 본 것이 아닌지 의뭉스럽다. 曹憲은 隋唐 시대 揚州 사람으로, 隋나라 煬帝의 명을 받고 《廣雅》에 주석을 달았다. 《鹽鐵論》 「詔聖」에는 今之治民者/若拙御之御馬也/行則頓之/止則擊之라고 되어 있다. 내용은 같으나 글자가 조금 다르다. 《史記》 「滑稽傳」은 「滑稽列傳」을 이른다. 한편 宋基采는 ‘흔들다’처럼 번역했는데, 무엇에 근거한 말인지 알 수 없다. ◈ 頓之의 之는 裘領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 順者는 ‘순조로운 것’, ‘순조롭기’다. 이 글에서는 《禮》를 공부하면 先王과 仁義를 따르기가 ‘순조롭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갖옷 이야기를 고려하여, 갖옷을 들어 올리는 일이 ‘순조롭다’라는 의미가 포괄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順은 관형어로, ‘순조로운’이다. 者를 한정한다. 者는 ‘~하는 것’이다. ◈ 不可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勝을 받는다. ◈ 勝은 용언으로, ‘감당하다’는 말이다. 數를 받는다. 《詩》 「小雅 祈父之什」의 「正月」에 靡人弗勝, '勝하지 못할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勝은 '감당하다'라는 뜻이다. 勝은 任이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說文解字》 「力部」에는 勝/任也//从力朕聲, '勝은 任이라는 뜻이다. 力이 들어 있고, 朕이라고 읽는다'라는 말이 있고, 《詩》 「頌 商頌」의 「正月」에 武王靡不勝, '武王은 勝하지 못한 적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勝을 任이라고 풀이했다. 여기서 任 역시 '감당하다'라는 뜻이다. 《文選》에 수록되어 있는 王粲의 「登樓賦」에 孰憂思之可任, '누가 근심을 任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李善은 杜預左氏傳注曰/任/當也, '《左氏傳》에 대한 杜預의 주석을 보면 任을 감당하다는 뜻이라고 해 놓았다'라고 하였다. 《左氏傳》은 《春秋左氏傳》이다. 그러면 李善이 인용한 글은 어느 부분일까.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 重怒難任/背天不祥/必歸晉君, '怒가 거듭되면 任하기 어렵고, 하늘을 배신하는 짓은 상서롭지 않으니, 반드시 晉君을 되돌려 보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杜預는 任/當也, '任은 감당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이를 것이다. 《莊子》 「大宗師」 마지막 부분에 不任其聲, '자기가 내는 소리도 任하지 못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任 역시 '감당하다'라는 뜻이다. 즉, 勝은 任이라는 뜻인데, 任은 '감당하다'라는 말이다. 따라서 勝도 '감당하다'라는 뜻이 된다. ◈ 數는 체언으로, ‘헤아리는 것’, ‘가늠하는 것’이다. 즉, 順者不可勝數也는 ‘順者가 數를 勝할 수가 없다’, ‘순조롭기가 가늠하기를 감당할 수가 없다’, 곧 ‘순조롭기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는 ‘아주 손쉬울 것이다’와 같이 의역하였다. 楊倞은 順者不可勝數/言禮皆順矣, ‘順者不可勝數라는 말은 《禮》를 따르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順者不可勝數/言全裘之毛皆順矣, ‘順者不可勝數라는 말은 갖옷의 털이 모두 정리되어 온전하게 보전될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宋其采와 李止漢은 盧文弨처럼 順者不可勝數也를 ‘裘의 털들이 가지런해지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갖옷 이야기는 《禮》가 先王과 仁義를 좇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든 예시이므로, 順者不可勝數也를 그런 식으로 해석해선 안 될 것이다. 설령 그렇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順 부분에서 내가 언급하였듯, 반드시 ‘《禮》가 原先王하고 本仁義하는 데 유용하다’라는 의미를 함께 포괄하여 풀이해야 할 것이다. ◈◈ 楊倞은 言禮亦爲人之綱領, ‘《禮》 역시 사람이 지켜야 할 綱領임을 설명하였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갖옷을 드는데, 털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면 옷깃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두 손가락으로 옷깃을 든다면, 무거워서 들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면, 조금 무겁더라도 손쉽게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先王을 본받고, 仁義를 따르려는 일에 대해, 《禮》 공부의 역할이 바로 갖옷 이야기에서 다섯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행위의 역할과 동일하다. 《禮》를 공부하면, 《禮》를 공부하지 않을 때 보다, 훨씬 쉽게 先王을 본받고 仁義를 따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학문에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도 못하고, 《예》를 갈고 닦을 줄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놈은] 예법을 따르지 않고, 《시》와 《서》[에 적힌] 대로 행할 것인데(不道禮憲/以詩書爲之, ◈ 不道의 不은 부정어다. 道를 한정한다. ◈ 道는 용언으로, 行으로 보고 ‘이행하다’, ‘실천하다’라고 할 수도 있고, 由로 보고 ‘따르다’, ‘근거하다’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王念孫의 설을 따라 ‘따르다’라고 번역하였다. 王念孫의 설은 아래에 인용해 두었다. 《禮記》 「中庸」에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 ‘그래서 君子는 德性을 尊하고 問學을 道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道/猶由也, ‘道는 좇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고, 朱熹도 道/由也, ‘道는 좇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孔穎達 역시 由, ‘좇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 《禮記》 「禮器」에 茍無忠信之人/則禮不虛道, ‘진정 忠信한 사람이 없다면, 禮는 虛하게 道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道/猶由也/從也, ‘道는 좇다, 따르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道/猶從也, ‘道는 따르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은, 아래에 인용해 둔 王念孫의 주석에 대한 王先謙의 부연 중 언급되어 있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道/言說也, ‘道는 말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王念孫은 道者/由也[見禮器中庸注]/言作事不由禮法/而以詩書爲之/則不可以得之也//故修身篇曰/由禮則治通/不由禮則勃亂提僈///楊云道言說也/失之//又富國篇/不足以持國安身/明君不道也///道亦由也//楊云明君不言/亦失之, ‘道는 좇다는 말이다.[王先謙의 부연 : 「禮器」와 「中庸」의 주석에 나온다.] 이 말은 일을 벌일 때 禮法에 근거하지 않고, 《詩》와 《書》에 근거하여 실행한다면,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修身」에 “예법을 좇는다면 治通할 것이요, 예법을 좇지 않는다면 勃亂하고 提僈해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楊倞은 “道는 말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틀렸다. 또, 「富國」에 “국가와 자신을 보전할 만하지 않으니, 明君은 道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道 역시 좇다는 말이다. 楊倞은 “明君은 말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하였으니, 마찬가지로 틀렸다’라고 하였다. 王先謙이 언급한 「禮器」와 「中庸」의 본문과, 그 주석은 이 주석 앞부분에 근거로써 인용해 두었다. 「修身」, 「富國」은 《荀子》의 편 이름이다. ◈ 禮憲은 체언으로, ‘예법’을 이른다. 憲法이라는 말처럼, 憲은 곧 ‘법’이다. 《爾雅》 「釋詁」에 柯/憲/刑/範/辟/律/矩/則/法也, ‘柯, 憲, 刑, 範, 辟, 律, 矩, 則은 法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楊倞은 憲/標表也, ‘憲은 標表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標表는 아마 ‘드러내다’는 말 같은데, 楊倞은 ‘드러난 것’, 즉 禮의 ‘형식’, ‘규정’을 의도한 것 같다. ◈ 以는 ‘~를’이다. 詩와 書, 즉 《詩》와 《書》를 받는다. ◈ 詩書는 체언으로, ‘《詩》와 《書》’다. ◈ 爲之의 爲는 용언으로, ‘이행하다’, ‘행하다’, ‘하다’는 말이다. 爲之의 之를 받는다. ◈ 爲之의 之는 사람이 하는 ‘일’을 의미한다. 지칭 대상이 이 節에 드러나 있지 않다. ◈◈ 蜀虎案 : 이번에는 陋儒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其人을 가까이하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禮法을 갈고 닦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荀子는 이미 《詩》와 《書》가 당대의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하였었다. 실정에 맞지 않으니, 곧이곧대로 따라서는 안 되고, 반드시 《禮》를 먼저 공부해서, 실정에 맞게 적용시킬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禮法을 갈고 닦을 줄 모른다면, 맞지도 않는 《詩》와 《書》를 어거지로 맹신하게 될 것인데, 그러면 제대로 해낼 수 있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荀子는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짓을 비유해 보자면, 손가락으로 황하[의 깊이]를 재고, 창으로 기장을 찧으며, 송곳으로 밥을 떠 먹는 짓과 같으니, [아무리 노력한들, 이 놈이 하고자 한 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譬之猶以指測河也/以戈舂黍也/以錐飡壺也/不可以得之矣, ◈ 譬는 용언으로, ‘비유하다’, ‘빗대다’라는 말이다. 譬之의 之를 받는다. ◈ 譬之의 之는 앞 句인 不道禮憲/以詩書爲之, ‘禮法을 따르지 않고 《詩》와 《書》 대로 이행하는 짓’을 가리킨다. ◈ 猶는 용언으로, ‘같다’는 말이다. 以指測河也, 以戈舂黍也, 以錐飡壺也를 받는다. ◈ 以指의 以는 ‘~를 가지고’, ‘~로써’다. 以戈, 以錐의 以도 모두 그렇다. 각각 指, 戈, 錐를 받는다. ◈ 指는 체언으로, ‘손가락’이다. ◈ 測은 용언으로, ‘측량하다’, ‘재다’는 말이다. 河를 받는다. 아마 문맥상 河의 깊이를 ‘재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 河는 체언으로, ‘黃河’를 이른다. ◈ 以指測河也의 也는 ‘~하는 것’, ‘~하는 일’, ‘~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者와 같다. 관형어구인 以指測河가 也를 한정하고 있다. 以戈舂黍也, 以錐飡壺也의 也도 모두 그렇다. 관형어구인 以戈舂黍, 以錐飡壺가 也들을 각각 한정한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옛날에는 冠을 세로로 꿰맸는데, 요즘은 가로로 꿰맨다’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옛날에는 백성들에게 문제가 세 가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듯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戈는 체언으로, ‘창’이다. ◈ 舂은 용언으로, 곡식을 ‘찧다’는 말이다. 黍를 받는다. ◈ 黍는 체언으로, ‘기장’이다. 곡식인 ‘기장’을 이른다. ◈ 錐는 체언으로, ‘송곳’이다. ◈ 飡壺는 아마 ‘壺의 밥을 떠 먹다’는 말 같다. 여기서는 ‘밥을 떠 먹다’라고 의역하였다. 飡은 용언으로, ‘먹다’는 말이다. ‘찬’이라고 읽는다. 壺는 체언으로, 본래는 壺라는 禮器를 이르지만, 여기서는 ‘壺에 담긴 밥’이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飡과 壺에 대해 모두 설들이 있다. 飡은, 판본에 따라 飱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王念孫이 飱은 틀렸고, 飡이 맞다고 논증해 두었다. 壺에 대해서는, ‘壺에 담긴 밥’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고, 그냥 ‘박’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이라고 한다면, 飡壺는 ‘박을 파 먹다’는 말이 될 것이다. 먼저 飡에 대한 설부터 살펴 보자. 우선 王先謙은 謝本從盧校/飡作飱, ‘《謝本》에서는 盧文弨의 교정을 따라, 飡을 飱이라고 해 두었다’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飱同餐, ‘飱은 餐과 같다’라고 하였다. 王念孫은 呂錢本作飡/元刻作𩛈//案說文/𩚏/餔也/從夕食/思魂切///餐/呑也/從食𣦼聲/或從水作湌/七安切///玉篇/廣韻/𩚏作飧/而飧餐二字/皆異音異義//古音餐屬寒部/飧屬魂部//故魏風伐檀首章之餐/與檀干漣廛貆爲韻/三章之飧/與輪漘淪困鶉爲韻/兩字判然不同//自爾雅釋文始誤以餐爲飧/而集韻遂合餐飧爲一字矣//今俗書飧字作𩛈/而錢本作飡/自是湌之俗字/非飧字也//盧從元刻作飱/云/𩛈同餐///非是, ‘《呂本》과 《錢本》에는 飡으로 되어 있고, 《元刻》에는 𩛈으로 되어 있다. 생각해 보자. 《說文》에는 “𩚏은 저녁밥이라는 뜻이다. 夕과 食가 들어 가 있다. 思와 魂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되어 있고, 또 “餐은 삼키다는 말이다. 食이 들어가 있고, 𣦼이라고 발음한다. 水가 붙어서 湌이라고 쓰여 있는 경우도 있다. 七과 安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되어 있다. 《玉篇》과 《廣韻》에는 𩚏이 飧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飧과 餐 두 글자는 모두 발음도 다르고, 뜻도 다를 것이다. 옛날 餐의 발음은 寒과 같은 부류였고, 飧의 발음은 魂과 같은 부류였다. 그래서 「魏風」의 「伐檀」 첫 장의 餐은 檀, 干, 漣, 廛, 貆과 韻을 이루고 있고, 3장에서는 飧과 輪, 漘, 淪, 困, 鶉이 韻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餐과 飧은 구분되니, 같지 않다. 그런데 《爾雅》의 본문에서 餐을 처음 飧으로 오인하고서부터, 마침내 《集韻》에서조차 餐과 飧을 한 글자로 간주하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飧을 𩛈이라고 쓰는데, 《錢本》에는 飡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飡은 원래 湌의 속자이지, 飧의 속자는 아니다. 盧文弨는 《元刻》을 따라 飱이라고 고치면서 “𩛈은 餐과 같다”라고 하였으나,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說文解字》에는 𩚏에 대해 𩚏/餔也//从夕食라고만 되어 있다. 餐에 대해서는 餐/吞也/从食𣦼聲이라고만 되어 있다. 「魏風」은 《詩》 「國風」에 속해 있다. 王念孫의 설에 대해 王先謙은 王說是//今依呂錢本正作飡, ‘王念孫의 주장이 타당하다. 나는 《呂本》과 《錢本》에 따라 飡으로 바로잡았다’라고 하였다. 이 논쟁은 飡과 飱이 같은 글자인지, 다른 글자인지에 대한 논증으로, 글자의 의미가 ‘먹다’라는 데 이의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번에는 壺에 대한 설을 살펴 보자. 王先謙은 壺를 壺飡이라고 해석했다. 王先謙은 以錐飡壺/言以錐代箸也//古人貯食以壺//中山策/君下壺飡臣父///韓非子/晉文公出亡/箕鄭挈壺飡以從///皆其證, ‘以錐飡壺라는 말은 밥을 먹을 때 젓가락 대신 송곳을 쓴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壺에다 밥을 담아 두었다. 「中山策」에 “君이 臣의 父에게 壺飡을 내렸다”라는 말이 있고, 《韓非子》에는 “晉나라 文公이 도망갔는데, 箕鄭이 壺飡을 들고 따랐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들로 증명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中山策」은 《戰國策》 「中山策」을 이른다. 宋基采가 지적하였듯, 「中山策」에는 臣有父/嘗餓且死/君下壺飡餌之, ‘臣에게는 父가 있었는데, 배가 고파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君이 壺飡을 내려서 먹여 주었다’라고 되어 있다. 《韓非子》 인용문은 「外儲說 左下」에 나온다. 王先謙은 이를 근거로 壺를 壺飡, 즉 ‘壺의 밥’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宋基采는 鍾泰와 王天海의 설을 인용하면서, ‘박’이라고 해석했다. 鍾泰는 《荀註訂補》에서 《詩經》 「國風 豳風」의 「七月」에 八月斷壺, ‘8월에는 壺를 딴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이 글에서 壺는 ‘박’이다. 毛亨은 壺/瓠也, ‘壺는 박이다’라고 하였다. 王天海는 《鶡冠子》 「學問」의 中河失船/一壺千金, ‘강 위에서 배를 잃으면, 壺 하나가 千金 값어치를 한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이 壺 역시 ‘박’이다. 박은 물에 뜨니까, 배가 없을 때 붙잡고 있으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설 다 타당하지만, 나는 王先謙의 설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壺는 요즘 사용하는 ‘병’이 아니라, ‘그릇’이나 ‘통’의 일종이었다. 《說文解字》 「壺部」에는 壺/昆吾圜器也//象形//从大/象其蓋也//凡壺之屬皆从壺, ‘昆吾가 만든 둥근 그릇이다. 상형자다. 大가 들어 있으니, 뚜껑의 형태를 본딴 것이다. 壺의 부류에는 모두 壺가 들어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徐鍇는 昆吾/紂臣/作瓦器大掩之也//魂孤反, ‘昆吾는 紂의 신하로, 질그릇을 만들어서 紂를 크게 掩했다. 魂과 孤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즉, 壺는 본래 그릇이나 통의 일종이었고, 이 의미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禮記》 「喪大記」에 大夫容壺, ‘大夫는 壺를 容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壺是漏水之器/大夫所掌, ‘壺는 물이 새는 그릇으로, 大夫가 관장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릇의 일종이다. 投壺는 ‘통에 막대기를 던져 놓는 놀이’이니, 이 壺 역시 통의 일종을 뜻한다. 《禮記》 「投壺」에 投壺之禮, ‘投壺에 대한 禮는 이렇다’라는 말에 대해, 陸德明은 投壺/壺/器名/以矢投其中/射之類, ‘投壺에 대해, 壺는 통의 이름이다. 화살을 壺 속에다가 던진다. 射의 일종이다’라고 하였다. 또, 壺飡 혹은 壺餐 같은 표현은 고대에 널리 사용된 표현이었다. 劉向의 《新序》 「節士」에는 下壺餐以與之, ‘壺餐을 내려서 주었다’라는 말이 있고, 《淮南子》 「齊俗訓」에는 故厘負羈之壺餐/愈于晉獻公之垂棘, ‘따라서 厘負羈의 壺餐이 晉나라 獻公의 垂棘 보다 더 나았던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國語》 「越語」에도 觥飯不及壺飧, ‘觥飯이 壺飧 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壺飡, 壺餐 같은 표현은 고대에 널리 사용되었던 말이다. 아마 당시에는 ‘한 그릇의 밥’, 즉 ‘밥 한 그릇’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던 듯하다. 그러면, 《荀子》에는 왜 壺飡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헷갈리게 壺로 되어 있을까. 아마 以指測河也, 以戈舂黍也, 以錐飡壺也의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서 飡을 빼고 壺만 쓴 것 같다. 또, 壺가 ‘박’으로 사용된 사례가 존재하는데도 壺를 ‘박’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박을 파 먹을 때는 보통 숟가락을 썼을 텐데, 숟가락이 없을 때는 아마 아쉬운 대로 젓가락이나 송곳처럼 뾰족한 물건으로 속을 긁어 냈을 것이다. 즉, ‘송곳으로 박을 파 먹는다’는 말은 일상적이지는 않더라도, 아주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荀子가 말이 안 되는 짓을 한다는 사례로 이 예를 들 이유가 없다. 이처럼 壺를 壺飡이라고 해석하면 여지가 없고, ‘박’이라고 해석하면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壺飡이 낫다. ◈ 不은 부정어다. ◈ 可以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可能과 같다. 得을 받는다. 이 以는 能과 같다. 《論語》 「季氏」에 不學詩/無以言, ‘詩를 배우지 않으면 言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고, 또 不學禮/無以立, ‘禮를 배우지 않으면 立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子張」에 無以爲也, ‘爲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堯曰」에는 不知命/無以爲君子也//不知禮/無以立也//不知言/無以知人也, ‘命을 모르면 君子라고 爲할 수가 없고, 禮를 모르면 立할 수가 없으며, 言을 모르면 사람을 知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荀子》 「勸學」에는 故不積蹞步/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 ‘이처럼, 반걸음이라도 나아가지 않으면 천릿길을 갈 수가 없고, 실개천들을 합치지 않고서는 강이나 바다를 만들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한편 《莊子》 「逍遙遊」에는 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 ‘瞽者는 文章의 경관에 기뻐할 수가 없고, 聾者는 鍾鼓의 소리에 기뻐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 得은 용언으로, ‘해 내다’, ‘성공하다’, ‘이루다’는 말이다. 得之의 之를 받는다. ◈ 得之의 之는 앞 句의 以詩書爲之의 之와 같다. 이 사람이 하려는 ‘일’을 이른다. ◈◈ 蜀虎案 : 탁월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도 않고, 禮法을 갈고 닦을 줄도 모른다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제대로 성공시킬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예법을 갈고 닦는다면, [사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더라도 법사는 될 것이요, 예법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사리를 잘] 분별하더라도 산유에 그칠 것이다.(故隆禮/雖未明/法士也//不隆禮/雖察辯/散儒也, ◈ 故는 ‘이와 같이’, ‘이처럼’이라고 해석된다. 是故와 같다. ◈ 隆은 용언으로, ‘성하게 하다’, ‘키우다’, ‘두텁게 하다’, 즉 ‘기르다’, ‘갈고 닦다’, ‘수양하다’라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學之經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의 隆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禮法이다. ‘《예》’라고 볼 수도 있겠다. ◈ 雖는 ‘비록’, ‘~한다고 하더라도’라는 말이다. ◈ 未明의 未는 부정어다. 明을 한정한다. ◈ 明은 용언으로, 아마 사리를 ‘분별하다’, ‘밝히다’는 말일 것이다. 未明은 뒤의 察辯과 대구를 이루고 있고, 또 의미상으로도 대조되고 있다. 察辯은 사리를 ‘분별하다’라는 말이다. 따라서 未明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다’처럼 해석되어야 한다. ◈ 法士는 ‘본받을 만한 선비’다. 나는 ‘법사’로 음역하고, ‘법사가 되다’처럼 의역하였다. 法은 관형어로, ‘본받을’, ‘본받을 만한’이라는 말이다. 士를 한정한다. 士는 체언으로, ‘선비’다. 王先謙은 好禮之士, ‘禮를 좋아하는 선비’라고 풀이했다. 그러면 ‘본받을 만한 선비’와 ‘禮를 좋아하는 선비’ 중 어느 말이 法士의 의미로 더 타당할까. 法士는 뒤의 散儒와 대구를 이루고 있고, 의미 또한 대조되고 있다. 散儒는 散儒 부분에 설명하였듯, ‘쓸 데 없는 유생’이다. 그러면 두 가지 의미 중, ‘쓸 데 없는 유생’과 더 잘 대조되는 말은 무엇일까. 바로 ‘본받을 만한 선비’다. 散儒가 ‘쓸 데 없는 유생’이기 때문에, 法士는 ‘쓸 모 있는 선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쓸 모 있다’는 의미와 통하는 말은 ‘본받을 만하다’이다. 선비가 禮法을 갈고 닦으면, 고고해지고, 또 우아해질 것이요, 그러면 사람들의 모범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모범이 되면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 뭐가 선비의 ‘쓸 모’겠는가. 이 것이야말로 곧 ‘선비의 쓸 모’다. 《莊子》 「人間世」에서 莊子는 ‘쓸 모 없는 나무’를 散木이라고 하고, ‘쓸 모 있는 나무’를 文木이라고 하였는데, 法士를 ‘본받을 만한 선비’라고 한다면, 文木의 文과도 의미가 합치된다. 文에는 ‘우아하다’, ‘아름답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바로 禮法을 닦아 고고해지고, 우아해진 선비의 모습과 통한다. 王先謙은 이 문단의 내용을 가지고 法士의 의미를 끼워 맞췄기 때문에 法士를 ‘禮를 좋아하는 선비’라고 풀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禮를 좋아하는 선비’라고 풀이하면, 이 節 자체가 동어 반복이 되어 버린다. 荀子가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면, 禮士라고 표현했지, 뭐하러 法士라고 했겠는가. 王先謙의 설은 다음과 같다. 王先謙은 法士/即好禮之士//修身篇云/學也者/禮法也///非禮/是無法也///又云/好法而行/士也///皆可互證//下文散儒/楊注云/散/謂不自檢束///是以散儒爲無禮法之儒//正與法士對文, ‘法士는 곧 禮를 좋아하는 선비라는 뜻이다. 「修身」에 “배움이라는 것은 禮法을 따르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고, “禮를 부정하는 일은, 法을 無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으며, 또 “法을 好하고 이행하는 자는 선비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문장들을 가지고 서로 검증할 수 있다. 다음 부분에 있는 散儒에 대해, 楊倞은 “散은 자신을 단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散儒를 禮法을 지키지 않는 유생이라는 뜻이니, 法士와 바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라고 하였다. 「修身」은 《荀子》의 편 이름이다. ◈ 不隆의 不은 부정어다. 隆을 한정한다. ◈ 察辯은 용언으로, ‘따지다’, ‘분별하다’라는 말이다. 아마 이치를 ‘따지다’, 사리를 ‘분별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察辯은 같은 의미의 글자들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다. 즉, 察과 辯 모두 ‘따지다’, ‘분별하다’, ‘밝히다’라는 말이다. 察은 이렇다. 《禮記》 「中庸」에 言其上下察也, ‘上下의 이치를 察한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察/猶著也, ‘察은 드러내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明察, 즉 ‘밝히다’라고 풀이해 두었다. 또, 《大戴禮記》 「子張問入官」, 《孔子家語》 「入官」, 《漢書》 「東方朔傳」에 모두 人至察則無徒, ‘사람이 너무 察하면 어울릴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察도 ‘따지다’는 뜻이다. 辯은 본래 ‘말을 잘하다’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분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辨과 같다. 《荀子》에는 辯이 ‘분별하다’, ‘변별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不苟」에 辯而不爭/察而不激, ‘辯하더라도 爭하지 않고, 察하더라도 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고, 「儒效」에 君子之所謂辯者/非能徧辯人之所辯之謂也//君子之所謂察者/非能徧察人之所察之謂也, ‘君子가 辯하다는 말은 사람들이 辯한다는 것을 모두 辯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요, 君子가 察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察한다는 것을 모두 察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으며, 또 「儒效」에 辯其談說/明其辟稱, ‘談說을 辯하고, 辟稱을 明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辯들은 모두 ‘분별하다’, ‘밝히다’는 의미다. 또, 이 예문들에서, 辯은 항상 察이나 明과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대구를 이루고 있는 察과 明 또한 ‘분별하다’, ‘밝히다’는 뜻이다. ◈ 散儒는 ‘쓸 모 없는 유생’이다. 나는 ‘산유’로 음역하고, ‘산유에 그치다’처럼 의역하였다. 散은 관형어로, ‘쓸 모가 없는’이라는 말이고, 儒는 체언으로, ‘유생’이다. 法士와 대구를 이루고 있고, 의미는 대조된다. 《莊子》 「人間世」의 匠石 이야기에 散木也/以爲舟則沈/以爲棺槨則速腐, ‘散木이다. 그 상수리를 가지고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고, 관이나 곽을 만들면 금새 썩어 버릴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散木은 ‘쓸 데 없는 나무’라는 뜻이다. 郭象은 不在可用之數/故曰散木, ‘써 먹을 방법이 없으니, 散木이라고 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人間世」에서 散木은 文木과 대조를 이루는데, 文木은 물론 ‘쓸 모 있는 나무’를 뜻한다. 郭象은 凡可用之木爲文木, ‘대저, 쓸 모가 있는 나무를 文木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可用之木爲文木也, ‘쓸 모가 있는 나무를 文木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荀子》 본문에서는 散儒가 法士와 대구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散이라는 말은, 아마 고대에 사용되었던 표현일 것이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散/謂不自檢束/莊子以不材木爲散木也, ‘散은 자신을 단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莊子는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를 散木이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莊子 이야기는 앞에 인용한 《莊子》 「人間世」를 이른다. ◈◈ 蜀虎案 : 其人 이야기가 빠져 있기는 하나, 이 節을 통해 문단 전체의 내용이 정리된다. 좀 우둔하더라도, 禮法을 갈고 닦으면 法士, 즉 ‘본받을 만한 선비’는 될 수 있고, 명민하더라도, 禮法을 갈고 닦지 않으면 散儒, 즉 ‘쓸 데 없는 유생’으로 그칠 뿐이다. 荀子가 禮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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