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0. 11:52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30일 11시 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16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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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11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3 - 천근이 무명인에게 천하를 다스릴 방법을 묻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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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7-3
天根遊於殷陽,至蓼水之上,適遭無名人而問焉,
曰:「請問爲天下。」
無名人曰:「去!汝鄙人也!何問之不豫也?予方將與造物者爲人,厭則又乘夫莽眇之鳥,以出六極之外,而遊無何有之鄉,以處壙埌之野。汝又何帠以治天下感予之心爲?」
又復問。
無名人曰:「汝遊心於淡,合氣於漠,順物自然而無容私,焉而天下治矣。」
천근이 은양에서 놀다가 요수 물가까지 갔는데, 마침 무명인을 만나, 이에 질문하였다. [천근이] 말했다. 1
"꺼져라. 너는 비루한 놈이구나. 어떻게 [그렇게] 불쾌하게 묻느냐. 나는 이제 조물과 한 몸이 되어 4, 편안한 마음으로 또한 저 멀리 아득하게 날아가는 새에 올라 탈 것이요, 이로써 육극 밖으로 나가서 아무것도 없는 교외를 거닐고, 이렇게 하면서 허허벌판에 머무르려 한다. 5 그런데 너는 무슨 이유 때문에 천하를 다스리[니 마]니 하는 말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느냐. 6" 7
[하지만 천근은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다시 물었다. 무명인이 말했다. 8 9
"[알겠다. 이야기해 주겠다.] 너는 마음을 옅게 먹고, 기도 훤하게 열어 두어라. 10 [그리고는 천하] 만물이 원래 그러한 바를 따르고, [너의] 사사로운 감정이 [만물이 원래 그러한 바에] 끼어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천하는 다스려지리라. 11" 12
- 天根遊於殷陽/至蓼水之上/適遭無名人而問焉/曰, ◈ 天根은 본래 별의 이름이다. 여기서는 사람에 비유한 듯하다. 《國語》 「周語」에 夫辰角見而雨畢/天根見而水涸/本見而草木節解/駟見而隕霜/火見而清風戒寒,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辰, 天根, 本, 駟, 火는 모두 별의 이름이다. 韋昭는 天根/亢氐之閒//涸/竭也//謂寒露雨畢之後五日/天根朝見/水潦盡竭也//月令/仲秋/水始涸///天根見/乃盡竭也, '{...}'라고 하였다. 《史記》 「天官書」와 《漢書》 「天文志」에는 모두 氐爲天根/主疫, '{...}'라는 말이 있다. 《爾雅》 「釋天」에는 天根/氐也, '{...}'라는 말이 있다. 成玄英은 天根無名/並爲姓字/寓言問答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崔云/人姓名也, '{...}'라고 했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殷陽을 받는다. ◈ 殷陽은 지명이다.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殷陽은 {...}을 이를 것이다. 《春秋穀梁傳》 「僖公」 28년에 水北爲陽/山南爲陽, '{...}'라는 말이 있는데, 范宁는 日之所昭曰陽, '{...}'라고 하였다. 반대로, 陰에 대해서는 《說文解字》 「𨸏部」에 陰/闇也//水之南/山之北也, {...}'라는 말이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殷山之陽,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李云/殷/山名//陽/山之陽///崔云/殷陽/地名///司馬云/殷/眾也/言向南遊也//或作殷湯, '{...}'라고 했다. ◈ 至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蓼水之上을 받는다. ◈ 蓼水는 강 이름이다. 《列仙傳》 「務光」에 遂負石自沉於蓼水/已而自匿,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呂氏春秋》 「離俗覽 離俗」에는 乃負石而沈於募水, '{...}'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蓼水와 募水는 같은 곳일 것이다. 한편 《水經注》 「河水」에는 蓼水出襄山蓼谷/西南注于河, '{...}'라는 말이 있고, 또 今診蓼水/川流所趣/與共水相扶, '{...}'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이 맞다면 蓼水는 黃河 이북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在趙國界內, '{...}'라고 하였는데, 趙나라가 河北에 있었으니, 成玄英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陸德明은 音了//李云/水名也, '{...}'라고 했다. ◈ 蓼水之上의 之는 {...}다. ◈ 上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上은 본래 '{...}'다. 그러나, {...}라고 해석해야 한다. 《論語》 「子罕」에 子在川上, '{...}'라는 말이 있다. ◈ 適은 부사어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17년에 我高祖少皞摯之立也/鳳鳥適至, '{...}'라는 말이 있다. 適은 '{...}'이다. ◈ 遭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無名人을 받는다. 成玄英은 遇, '{...}'라고 하였다. ◈ 無名人은 사람 이름이다. 無는 '{...}'는 말이므로, 無名人은 '{...}'이 된다. 그러나 名을 '{...}'이라고 하면, 말장난밖에 되지 않는다. 名은 '{...}'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無名人은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天根에 대한 成玄英의 주석을 보면, 成玄英은 無名人을 {...}하고 있다. ◈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問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본문으로]
- 請問爲天下, ◈ 請은 '{...}'는 말이다. 요청하는 표현이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爲天下를 받는다. ◈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治와 같다. 天下를 받는다. 《春秋左氏傳》 「文公」 6년에 何以爲民, '{...}'라는 말이 있다. 爲는 '{...}'는 말이다. 爲는 {...}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 역시 治와 같다. 《國語》 「晉語」에 疾不可爲也,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爲를 治, '{...}'라고 풀이하였다. ◈ 天下는 체언으로, '{...}'이다. ◈◈ 成玄英은 天根遨遊於山水之側/適遇無名人而問之/請問之意/在乎天下,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無名人曰 [본문으로]
- 去//汝鄙人也//何問之不豫也, ◈ 去는 용언으로, '{...}' 같은 말일 것이다. ◈ 汝는 2인칭 대명사로, 天根을 이른다. ◈ 鄙人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鄙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 何는 의문사로, '{...}'다. ◈ 問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之는 아마 {...} 같다. 何問之不豫는 본래 何不豫問이었을 것이다. ◈ 不豫는 아마 부사어구로, '{...}'라는 말인 것 같다. 不은 부정어다. 豫를 한정한다. 豫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 같다. 그러면 不豫는 '{...}'라는 말이 된다. 《詩》 「小雅 祈父之什」의 「白駒」에 逸豫無期, '{...}'라는 말이 있는데, 逸은 '{...}'는 말이다. 逸豫는 같은 의미의 글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단어일 것이므로, 豫 역시 '{...}'라는 의미일 것이다. 唐나라 승려 慧苑의 《新譯大方廣佛華嚴經音義》에는 珠叢曰/心安和悅謂之豫也, '{...}'라는 말이 있다. 珠叢도 아마 승려일 텐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이설도 있다. 陸德明은 司馬云/嫌不漸豫/太倉卒也///簡文云/豫/悅也,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今本作不預, '{...}'라고 하였다. 한편 俞樾은 爾雅釋詁/豫/厭也///楚詞惜誦篇行婞直而不豫兮/王逸注亦曰/豫/厭也///是豫之訓厭/乃是古義//無名人深怪天根之多問/故曰何問之不豫/猶云何許子之不憚煩也//簡文云/豫/悅也/殊失其義, '{...}'라고 하였다. 「惜誦」은 「九章」에 속해 있다. 지금 「惜誦」에는 行婞直而不豫兮가 아니라 行幸直而不豫兮로 되어 있다. 何許子之不憚煩은 《孟子》 「滕文公 上」에 나오는 말이다. 또, 郭慶藩은 世德堂本作預, '{...}'라고 하였다. 盧文弨와 郭慶藩은 預라고 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고 했는데, 아마 預는 豫의 가차자일 것이다. 이설 중에서는 簡文帝의 설이 내 의견과 합치된다. ◈◈ 郭象은 問爲天下/則非起於大初/止於玄冥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汝是鄙陋之人/宜其速去//所問之旨/甚不悅豫我心,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無名人은 天根의 {...} 있다. [본문으로]
- 予方將與造物者爲人, ◈ 予는 1인칭 대명사로, 無名人을 이른다. ◈ 方將은 부사어다. 한 단어로 '{...}'이라는 말이다. ◈ 與는 '{...}'다. ◈ 造物은 명사구로, '{...}'이다. {...}와 같다. ◈ 者는 '{...}'이다. 造物을 받는다. 造物과 붙여서 造物者라고 해도 좋겠다. ◈ 爲人은 爲偶가 된다. '{...}'는 말일 것이다.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偶와 같다. 與造物者爲人은 '{...}'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은 「大宗師」의 子桑戶 이야기 중에서도 彼方且與造物者爲人/而遊乎天地之一氣라고 하며 나온 적이 있었다. 「大宗師」에서 王引之는 人이 偶라는 점을 설명하였었는데, 그 말을 다시 옮기지는 않겠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人/偶也/詳大宗師篇, '{...}'라고 하였는데, 이는 王引之의 주석을 이른다. ◈◈ 郭象은 任人之自爲,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造物爲人/素分各足/何勞作法/措意治之//既同於大通/故任而不助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厭則又乘夫莽眇之鳥/以出六極之外/而遊無何有之鄉/以處壙埌之野, ◈ 厭則은 厭然과 같다. '{...}'라는 뜻이다. 厭則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로, 厭을 '{...}'라고 보고, 則을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厭則은 '{...}'이 된다. 즉, {...}는 뜻이다. 아마 이 방식이 통설인 것 같다. 李民樹, 安東林, 安炳周와 田好根 모두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두 번째로, 厭을 '{...}'라는 의미로 보고, 則을 然처럼 볼 수가 있다. 그러면 厭則은 厭然이 되고, 이는 '{...}'라는 뜻이 된다. 즉, {...}는 말이 된다. 각 설들에는 장단점이 있다. 첫 번째 설의 경우, 厭則을 글자 그대로 {...}을 따를 것이다. 그러면 厭이 '{...}'라고 쓰인 예는 어디에 있을까. 《詩》 「小雅 白華之什」의 「湛露」에 厭厭夜飲,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厭厭을 安, '{...}'라고 풀이하였고, 孔穎達도 厭厭을 安閑, '{...}'라고 풀이하였다. 朱熹는 厭厭/安也/亦久也/足也, '{...}'라고 하였다. ◈ 又는 부사어로, '{...}'이다. ◈ 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夫莽眇之鳥를 받는다.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陸德明은 音符, '{...}'라고 하였다. ◈ 莽眇는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문맥을 따져 볼 때, 본문의 莽眇는 '{...}'라는 말일 것이다. 莽은 '{...}'는 말이다. 《小爾雅》 「廣詁」에 封/巨/莫/莾/艾/祁/大也, '{...}'라고 하였다. 여기서 莾은 莽의 俗字다. 즉, 莽 역시 '{...}'는 뜻이다. 또, 《呂氏春秋》 「先識覽 知接」에 何以爲之莽莽也,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莽莽/長大貌也, '{...}'라고 하였다. 眇는 '{...}'는 말이다. 《漢書》 「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下」에 眇然絕俗離世哉,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眇然/高遠之意也, '{...}'라고 하였다. 《文選》에 수록된 陸機의 「文賦」에 志眇眇而臨雲, '{...}'라는 말이 있는데, 李善은 眇眇/高遠貌, '{...}'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文選》에 수록된 張衡의 「思玄賦」에 風眇眇兮震余旟, '{...}'라는 말이 있는데, 李善은 眇眇/遠貌, '{...}'라고 하였다. 또, 《文選》에 수록된 南平穆王 劉鑠의 「擬行行重行行」에는 眇眇陵長道, '{...}'이라는 말이 있는데, 李善은 廣雅曰/眇眇/遠也, '{...}'라고 하였다. 《廣雅》는 魏나라의 張揖이 지은 字典이다. 《荀子》 「王制」에 仁眇天下/義眇天下/威眇天下, '{...}'라는 말이 있는데, 王念孫은 余謂眇者/高遠之稱, '{...}'라고 하였다. 이처럼 眇는 모두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본문에 대해 郭象은 莽眇/群碎之謂耳,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深遠之謂,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莽에 대해서는 莫蕩反//崔本作猛, '{...}'라고 하였고, 眇에 대해서는 妙小反, '{...}'라고 하였다. 그리고 莽眇에 대해서는 莽眇/輕虛之狀也//崔云/猛眇之鳥首也/取其行而無跡, '{...}'라고 했다. ◈ 莽眇之鳥의 之는 {...}로, '{...}'이라고 해석된다. ◈ 鳥는 체언으로, '{...}'다. 成玄英은 鳥則取其無跡輕昇,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淸虛之氣若鳥然, '{...}'라고 하였다. ◈ 以出의 以는 '{...}'다. 乘夫莽眇之鳥를 받는다. ◈ 出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六極은 명사구로, {...}이다. '{...}'을 이른다. 「大宗師」 이론 부분에 在六極之下而不爲深, '{...}'라는 말이 있었다. 「大宗師」에서 成玄英은 六合, '{...}'이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天地四方/謂之六極, '{...}'라고 하였다. 또, 「齊物論」에 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成玄英은 六合者/謂天地四方也//六合之外/謂眾生性分之表/重玄至道之鄉也, '{...}'라고 하였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六極/猶六合也, '{...}'라고 하였다. ◈ 六極之外의 之는 {...}다. ◈ 外는 체언으로, '{...}'이다. ◈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適遭無名人而問焉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無何有之鄉을 받는다. ◈ 無何有之鄉은 명사구로, '{...}'라는 말이다. 無何有는 '{...}'는 말이다. 何는 '{...}'이고, 有는 '{...}'는 말이다. 따라서 何有는 '{...}'는 말이 된다. 無는 부정어이므로, 無何有는 '{...}'는 말이 된다. 之는 {...}로, '{...}'이라고 해석된다. 鄉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이 말은 「逍遙遊」 중 莊子와 惠子의 두 번째 대화에 나왔던 적이 있었다. 王先謙은 說見逍遙遊篇, '{...}'라고 하였다. ◈ 以處의 以는 '{...}'다. 遊無何有之鄉을 받는다. ◈ 處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 좋겠다. 壙埌之野를 받는다. ◈ 壙埌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일 것이다. 「逍遙遊」에 廣莫之野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곳의 壙埌之野와 의미가 같을 것이다. 壙은 廣의 가차자일 것이다. 埌은 莫의 가차자일 것이다. 埌은 본래 '{...}'이라는 의미인데, 글자의 {...}가 아닌가 생각된다. 「逍遙遊」에서 논증하였듯, 莫은 大, 즉 '{...}'는 말이었다. 따라서 壙埌을 廣莫으로 본다면, '광{...}'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成玄英은 弘博之名,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壙에 대해 徐苦廣反, '{...}'라고 하였고, 埌에 대해서는 徐力黨反//李音浪, '{...}'라고 하였다. 그리고 壙埌에 대해서는 壙埌/無滯爲名也//崔云/猶曠蕩也, '{...}'라고 했다. 曠蕩은 '{...}'을 이른다. ◈ 壙埌之野의 之는 {...}다. '{...}'이라고 해석된다. ◈ 野는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乘群碎/馳萬物/故能出處常通/而無狹滯之地,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聖人馭世/恬淡無爲/大順物情/有同造化//若其息用歸本/厭離世間/則乘深遠之大道/凌虛空而滅跡/超六合以放任/遊無有以逍遙/凝神智於射山/處清虛於曠野//如是/則何天下之可爲哉//蓋無爲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無名人은 道를 {...}을 내비쳤다. [본문으로]
- 汝又何帠以治天下感予之心爲, ◈ 汝는 2인칭 대명사로, 天根을 가리킨다. ◈ 又는 부사어로, '{...}'다. ◈ 何는 의문사로, '{...}'이다. ◈ 帠는 체언으로, 아마 '{...}'를 뜻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何帠는 '{...}' 같은 말이 된다. 그런데 帠가 아주 의뭉스럽다. 帠가 사용된 옛 문헌은 「應帝王」의 이 부분 외에는 없다. 아마 다른 글자의 모양이 잘못되어서 만들어진 글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陸德明은 徐音藝/又魚例反//司馬云/法也///一本作寱/牛世反//崔本作爲, '{...}'라고 하였다. 《說文解字》에서는 寱/瞑言也, '{...}'라고 하였다. {...}을 이른다. 王先謙은 帠/徐音藝/未詳何字//崔本作爲/當從之, '{...}'라고 하였다. 한편 俞樾은 帠/未詳何字/以諸說參考之/疑帠乃臬字之誤/故有魚例反之音//而司馬訓法/亦即臬之義也//然字雖是臬/而義則非臬/當讀爲寱//寱/本從臬聲/古文以聲爲主/故或止作臬也//一本作寱者/破假字而爲正字耳//一切經音義引通俗文曰/夢語謂之寱//無名人蓋謂天根所問皆夢語也/故曰汝又何寱以治天下感予之心爲, '{...}'라고 하였다. 《通俗文》은 東漢의 服虔이 지은 자서다. 또, 郭慶藩은 一切經音義四分律卷三十二引三蒼云/寱/牛歲反/謊言也///謊言即與夢語無異, '{...}'라고 하였다. 《三蒼》에 대해서는 설이 두 개 있는데, 李斯의 《蒼詰篇》, 趙高의 《爰歷篇》, 胡母敬의 《博學篇》을 이르기도 하고, 또 李斯의 《蒼詰篇》, 楊雄의 《訓纂篇》, 賈訪의 《滂喜篇》을 이르기도 한다. 모두 字書, 즉 글자의 의미에 대한 책이다. 한편, 安東林은 孫詒譲이 《莊子札迻》에서 帠를 叚가 잘못된 글자라고 했다는 설, 王叔岷이 《莊子校釋》에서 帠를 暇가 잘못된 글자라고 했다는 설을 소개해 두었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林希逸이 何帠를 何故로 풀이했다는 설을 소개해 두었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何帠를 何以로 풀이했다. ◈ 以는 '{...}'다. 명사구인 治天下를 받는다. ◈ 治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感은 용언으로, 感動이라는 말처럼, '{...}'라는 의미로 보아야 하겠다. 《詩》 「國風 召南」의 「野有死麕」에 無感我帨兮,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과 朱熹는 모두 感을 動, '{...}'라고 풀이하였다. ◈ 予는 1인칭 대명사로, 無名人을 이른다. ◈ 予之心의 之는 {...}다. ◈ 心은 체언으로, '{...}'이다. ◈ 爲는 {...}다. 《春秋左氏傳》 「襄公」 17년에 而何以田爲, '{...}'라는 말이 있고, 「襄公」 22년에는 我將飮酒/而己雨行/何以聖爲, '{...}'라는 말이 있다. 또, 《國語》 「楚語」에 亡人得生/又何不來爲,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서 爲는 모두 乎처럼, {...}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爲」에 수록되어 있다. ◈◈ 郭象은 言皆放之自得之場/則不治而自治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放而任之/則物皆自化//有何帠術/輒欲治之//感動我心/何爲如此,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又復問, ◈ 又復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又도 '{...}', 復도 '{...}'다. 復는 '{...}'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扶又反, '{...}'라고 하였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成玄英은 天根未達/更請決疑,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天根이 다시 한 {...}는 말이다. [본문으로]
- 無名人曰 [본문으로]
- 汝遊心於淡, ◈ 汝는 2인칭 대명사로, 天根을 이른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心은 체언으로, '{...}'이다. ◈ 於는 '{...}'다. 체언인 淡을 받는다. ◈ 淡은 본래 '{...}'는 말이다. 여기서는 체언으로,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그러면 遊心於淡은 직역하면 '{...}'가 되니, 즉 '{...}'라는 뜻이 되겠다. 《外篇》 「山木」에 且君子之交淡若水/小人之交甘若醴//君子淡以親/小人甘以絕, '{...}'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淡은 물과 같은 것이고, 감주의 달콤한 맛과 대조되고 있다. 즉, 淡은 {...}는 뜻이다. 「山木」에서 郭象은 無利故淡/道合故親, '{...}'라고 하였다. 「齊物論」에 大言炎炎/小言詹詹, '{...}'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炎도 이 淡과 의미가 같을 것이다. 「應帝王」 본문의 淡 역시 같은 의미일 것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徒暫反/徐大敢反, '{...}'라고 하였다. 郭象은 其任性而無所飾焉則淡矣,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合氣於漠, ◈ 合은 용언으로, 符合이라는 말처럼 '{...}'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孟子》 「離婁 下」, 《荀子》 「儒效」, 《淮南子》 「兵略訓」, 「人間訓」, 《漢書》 「杜周傳」 등에 若合符節, '{...}'라는 말이 있는데, 이 合은 '{...}'는 뜻이다. ◈ 氣는 체언으로, '{...}'다. ◈ 於는 '{...}'다. 체언인 漠을 받는다. ◈ 漠은 체언이다. 漠은 본래 '{...}'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莫의 가차자로, 「逍遙遊」에 나왔던 廣莫之野의 莫처럼 '{...}'는 뜻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사막은 크니까 漠을 廣漠이라는 말처럼 '{...}'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뜻은 아마 後世에 파생된 의미일 것이다. 陸德明은 音莫, '{...}'라고 하였다. ◈◈ 郭象은 漠然靜於性而止,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可遊汝心神於恬淡之域/合汝形氣於寂寞之鄉/唯形與神/二皆虛靜//如是/則天下不待治而自化者耳,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遊心於淡과 合氣於漠은 {...}일 것이다. 앞의 接輿와 肩吾, 中始 이야기와 연결해서 분석해 볼 수도 있다. 中始는 經式義度를 가지고 사람들을 제어하려 하였다. 이에 대해 接輿는 正而後行/確乎能其事者而已矣, '{...}'라고 하였다. 이 말이 바로 遊心於淡과 合氣於漠에 해당할 것이다. [본문으로]
- 順物自然而無容私/焉而天下治矣, ◈ 順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物自然을 받는다. ◈ 物은 관형어로, '{...}의'다. ◈ 自然은 명사구로, '{...}'를 뜻한다. {...}을 뜻한다. 「大宗師」에 大情이나 物之情이라는 말이 있었다. 모두 같다. ◈ 而無容私焉의 而는 순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無는 부정어다. 容을 한정하낟. '{...}'라고 해석된다. ◈ 容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私는 체언으로, '{...}'이다. 「齊物論」에 나왔던 愛, 「德充符」에 나왔던 好와 의미가 같다. 즉, 無容私라는 것은 {...}는 말이다. 郭象은 任性自生/公也//心欲益之/私也, '{...}'라고 하였다. ◈ 焉而는 아마 '{...}'이라는 말인 것 같다. 則과 같다. 焉은 順物自然而無容私에 붙여서, 句를 {...}될 수 있다. 而는 이렇다. 《禮記》 「喪服小記」에 士妾有子而爲之緦/無子則已, '{...}'라는 말이 있고, 《墨子》 「明鬼 下」에 則先死者/非父則母/非兄而姒也,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季布欒布列傳」에 與楚則漢破/與漢而楚破, '{...}'라는 말이 있다. 예문들에서 而는 모두 '{...}'으로, 則과 의미가 같다. 而가 則과 서로 교차되어 쓰인 사례도 있다. 《禮記》 「樂記」에 喜則天下和之/怒則暴亂者畏之,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荀子》 「樂論」에는 喜而天下和之/怒而曓亂畏之라고 되어 있다. 《孟子》 「公孫丑 上」에 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 '{...}'라는 말이 있는데, 《孟子》 「萬章 下」에는 이 말이 可以速而速/可以久而久/可以處而處/可以仕而仕라고 되어 있다. 而와 則이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소개되어 있다. 한편, 焉은 이렇다. 《國語》 「晉語」에 盡逐群公子/乃立奚齊/焉始爲令/國無公族焉, '{...}'라는 말이 있고, 《墨子》 「魯問」에 公輸子自魯南游楚/焉始爲舟戰之器, '{...}'라는 말이 있으며, 또, 《國語》 「齊語」에 五家爲軌/軌爲之長//十軌爲里/里有司//四里爲連/連爲之長//十連爲鄉/鄉有良人//焉以爲軍令, '{...}'라는 말이 있다. 또,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 晉於是乎作爰田, '{...}'라는 말이 있고, 또 晉於是乎作州兵, '{...}'라는 말이 있는데, 《國語》 「晉語」에는 焉作轅田, '{...}'라고 되어 있고, 또 焉作州兵, '{...}'라고 되어 있다. 焉이 於是, 즉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글자가 바뀌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즉, 焉은 於是와 같고, 또 乃와 같으며, 또 則과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焉」에 수록되어 있다. ◈ 天下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 天下治의 治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容私果不足以生生/而順公乃全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隨造化之物情/順自然之本性/無容私作法術/措意治之//放而任之/則物我全之矣, '{...}'라고 하였다. ◈◈ 宣穎은 不用我智,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天根은 爲天下, 治天下, 즉 '{...}'에 대해 물었다. 여기서 爲와 治는 모두 '{...}'는 말로, {...}를 담고 있다. 그러나 無名人은 天下治, 즉 '{...}'라고 대답한다. 天下治의 治는 '{...}'는 뜻으로, {...}한 점이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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