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4 - 양자거와 노담이 명왕에 대해 이야기하다

2021. 9. 10. 12:19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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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30일 11시 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16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12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4 - 양자거와 노담이 명왕에 대해 이야기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7?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2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7-4

 

陽子居見老聃,曰:

 

「有人於此,嚮疾強梁,物徹疏明,學道不勌。如是者,可比明王乎?」

 

老聃曰:「是於聖人也,胥易技係,勞形怵心者也。且也虎豹之文來田,猨狙之便執斄之狗來藉。如是者,可比明王乎?」

 

陽子居蹵然曰:「敢問明王之治。」

 

老聃曰:「明王之治:功蓋天下而似不自己,化貸萬物而民弗恃;有莫舉名,使物自喜;立乎不測,而遊於無有者也。」

 

 

양자거가 노담을 만났다. [양자거가] 말했다.[각주:1]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민첩하고, 굳건하며, 만물에 대해 통찰력도 있고, 총명하며, 도를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도 않는다고 하자. 이런 사람은 명왕과 비견할 만하겠느냐.[각주:2]"

 

노담이 말했다.[각주:3]

 

"그런 놈은 성인에 비하면 재주는 하찮은데다 [그 보잘것 없는 잔]기술에 [마음이] 얽매여 있는 자일 뿐이다. [그러니] 몸은 [몸대로] 고생하고, 마음은 [마음대로] 졸이기만 한다.[각주:4] [예를 들어 보자. 이런 놈들은 호표나 원저 같은데,] 호표는 또한 [그 가죽의] 무늬 때문에 사냥당하게 되고, 원저는 재빠르기 때문에 살쾡이 사냥개에게 잡혀서 우리에 갇히게 된다. [어찌] 이런 놈을 명왕과 비견할 수 있겠느냐.[각주:5]"

 

양자거가 짜져서 말했다.[각주:6]

 

"삼가 명왕의 정치에 대해 묻고자 한다.[각주:7]"

 

노담이 말했다.[각주:8]

 

"명왕의 정치는 [이러하다.] 공적이 천하를 [모두] 덮을 정도일지라도, [그 공적은 명왕] 자신에게서 비롯된 바가 아닌 듯하여야 하고[각주:9], [위정자의] 교화가 만물에 미치더라도 백성들은 [명왕을]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각주:10] [다시 말해서,] 치적은 있더라도 [명왕의] 명망이 드러나는 일은 없어야 하고, 만백성들이 [명왕의 정치에 의지하지 않고] 그 자체로 기뻐해야 한다.[각주:11] [명왕의 정치라는 것은 이렇듯 정치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경지에 올라서[각주:12] 무유의 세계에서 거니는 일이로다.[각주:13]"

 

 

  1. 陽子居見老聃/曰, ◈ 陽子居는 楊子, 즉 楊朱를 이른다. 成玄英은 姓陽/名朱/字子居, '{...}'라고 했다. 陸德明은 李云/居/名也//子/男子通稱, '{...}'라고 했다. 王先謙은 即楊朱/見寓言篇注, '{...}'라고 하였다. 「寓言」은 《雜篇》에 속한다. 「寓言」에 陽子居南之沛,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陸德明은 姓楊/名朱/字子居, '{...}'라고 하였고, 王先謙은 列子黃帝篇作楊朱, '{...}'라고 하였다. 실제로 「寓言」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黃帝」에도 나오는데, 「黃帝」에는 이 구절이 王先謙의 말처럼 楊朱南之沛, '{...}'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에 대해 顧炎武는, 列子///楊朱南之沛///莊子///楊子居南之沛///子居正切朱, '{...}'라고 하였다. 顧炎武는 淸初의 학자다. 《外篇》의 「山木」에서는 제자들에게 {...}라고 나온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 老聃은 老子를 이른다. 「養生主」의 문상 {...}이 있었다. [본문으로]
  2. 有人於此/嚮疾強梁/物徹疏明/學道不勌//如是者/可比明王乎,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처럼 일종의 {...}이라고 보면 좋겠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於는 '{...}'다. 此를 받는다. ◈ 此는 '{...}'를 뜻한다. 즉, 有人於此는 '{...}'라는 의미가 된다. ◈ 嚮疾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嚮疾強梁에서 強梁이 한 단어로 '{...}'는 말이므로, 嚮疾 역시 한 단어로 의미가 표현되어야 한다. 嚮은 잘 모르겠지만, 疾은 疾風이나 疾走라는 말처럼 '{...}'는 말이다. 따라서 嚮도 '{...}'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억측해 보자면, 嚮은 아마 響의 가차자로, '{...}'는 말인 것 같다. 메아리는 빠르다. 그래서 嚮도 '{...}'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陸德明은 許亮反//李許兩反, '{...}'라고 하였다. 嚮疾에 대한 설명은 強梁에 대한 주석에 섞여 있으니 참고 바란다. ◈ 強梁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道德經》 42장에 強梁者不得其死,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強梁은 '{...}'는 뜻이다. 河上公은 強粱者/謂不信玄妙/背叛道德/不從經教/尙勢任力也, '{...}'라고 하였다. 즉, 強梁이라는 말은 {...}는 의미라 하겠다. 強梁은 본래 '{...}'는 말이다. 梁은 '{...}'를 뜻한다. {...}는 의미가 파생되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強梁者不得其死라는 말은 《孔子家語》 「觀周」, 《說苑》 「敬愼」에도 나온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崔云/所在疾強梁之人也///李云/敏疾如嚮也///簡文云/如嚮/應聲之疾/故是強梁之貌,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嚮을 '{...}'처럼 이해하고, 嚮疾強梁/嚮往敏疾/強幹果決, '{...}'라고 하였다. ◈ 物徹疏明은 아마 '{...}'라는 말 같다. 物은 '{...}'를 뜻한다. 徹은 '{...}'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疏明이 용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徹은 疏明을 받는 부사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徹은 '{...}'라는 뜻이 될 것이다. 疏明은 한 단어로 '{...}'는 말일 것이다. 疏는 '{...}'는 뜻이다. 明은 '{...}'는 말이다. 따라서 疏明은 '{...}'는 말이 된다. 즉, 物徹疏明은 {...}는 말이라 하겠다. 陸德明은 司馬云/物/事也//徹/通也//事能通而開明也///崔云/無物不達/無物不明, '{...}'라고 했다. 王先謙은 事物洞徹/疏通明達, '{...}'라고 하였다. ◈ 學道는 명사구로, '{...}'이다. 學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道는 이치로써의 '{...}'를 이른다. ◈ 不勌은 '{...}'는 말이다. 不은 부정어다. 勌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其眷反, '{...}'라고 하였다. ◈ 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是를 받는다. ◈ 是는 嚮疾強梁/物徹疏明/學道不勌을 가리킨다. ◈ 者는 '{...}'이다. 관형어구인 如是를 받는다. ◈ 可는 '{...}'는 말이다. ◈ 比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明王은 명사구로, '{...}'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본래 明은 {...}되는 표현이다. 따라서 어떤 학파에서건 {...}으로 사용된다. 《禮記》 「樂記」에 禮樂之情同/故明王以相沿也, '{...}'라는 말이 있고, 《禮記》 「仲尼燕居」에는 昔聖帝明王諸侯/辨貴賤長幼遠近男女外內莫敢相逾越/皆由此涂出也, '{...}'라는 말이 있다. 《荀子》 「非相」에는 上不足以順明王/下不足以和齊百姓, '{...}'라는 말이 있고, 《荀子》 「王制」에는 有天有地/而上下有差//明王始立/而處國有制, '{...}'라는 말이 있다. 《孝經》 「孝治」에는 昔者明王之以孝治天下也, '{...}'라는 말도 있다. 이 사례들은 모두 儒家의 서적들이다. 그러나 明王이라는 말이 儒家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墨子》 「節用 中」에는 古者明王聖人/所以王天下/正諸侯者, '{...}'이라는 말이 있다. 《莊子》 「應帝王」에도 본문과 같이 등장하고, 《淮南子》 「兵略訓」에는 故明王之用兵也/爲天下除害/而與萬民共用其利, '{...}'라는 말이 있다. 또 《韓非子》 「備內」에는 是故明王不舉不參之事, '{...}'라는 말이 있고, 「外儲說 左上」에는 故明王論李疵視中山也, '{...}'라는 말이 있으며, 「說疑」에는 古之所謂聖君明王者/非長幼弱也及以次序也, '{...}'라는 말이 있다. 《商君書》 「君臣」에는 明王之治天下也/緣法而治/按功而賞, '{...}'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는 《公孫龍子》 「名實論」에조차도 至矣哉/古之明王//審其名實/甚其所謂//至矣哉/古之明王, '{...}'라는 말이 있고, 《鄧析子》 「無厚」에는 循名責實/察法立威/是明王也, '{...}'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明王이라는 표현은 {...}할 때 사용되었다. ◈ 乎는 {...}다. ◈◈ 成玄英은 問老子明王之道//假且有人/素性聰達/神智捷疾/猶如響應/涉事理務/強幹果決/鑒物洞徹/疏通明敏/學道精勤/曾無懈倦//如是之人/可得將明王聖帝比德否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陽子居는 老聃에게 {...}라고 할 수 있는지 물었다. ◈◈ 孃破又案 : 《外篇》 「天地」의 夫子問於老聃曰, '{...}' 부분에 이 이야기와 {...} 있겠다. [본문으로]
  3. 老聃曰 [본문으로]
  4. 是於聖人也/胥易技係/勞形怵心者也, ◈ 是는 앞문장의 如是者, 즉 嚮疾強梁/物徹疏明/學道不勌한 사람을 이른다. ◈ 於는 '{...}'이다. 聖人也를 받는다. ◈ 聖人은 {...}이다. ◈ 也는 者로 보아야 하겠다. '{...}'이라는 뜻이다. 聖人을 받는다. 즉, 是於聖人也는 是於聖人者, 즉 '{...}'이 될 것이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胥易技係는 胥易而係於技, '{...}'라는 말일 것이다. 易는 '{...}'라고 읽는다. 胥는 '{...}'라는 뜻이다. 《周禮》 「天官冢宰」에 府六人/史十有二人/胥十有二人/徒百有二十人, '{...}'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胥讀如住/謂其有才知/爲什長, '{...}'라고 하였다. 賈公彦은 周室之內稱胥者/多謂若大胥小胥胥師之類/雖不爲什長/皆是有才智之稱, '{...}'라고 하였다. 아마 고대에는 그렇게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이 점은 郭慶藩도 지적해 두었다. 易는 '{...}'는 뜻인 것 같다. '{...}'는 의미로 보면 더 적합하겠다. 《史記》 「禮書」에 能慮勿易/謂之能固, '{...}'라는 말이 있는데, 張守節은 易謂輕易也, '{...}'라고 하였다. 《春秋公羊傳》 「文公」 12년에 俾君子易怠, '{...}'라는 말이 있는데, 何休는 易怠/猶輕惰也, '{...}'라고 하였고, 徐彦 역시 輕惰라고 풀이해 두었다. 怠와 惰는 모두 '{...}'는 말이므로, 惰가 怠를 풀이한 말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輕이 易를 풀이한 말일 것이다. 즉, 易는 '{...}'는 뜻이다. 技는 技巧라는 말처럼, '{...}'을 뜻한다. 《書》 「周書 秦誓」에 斷斷猗無他技,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은 伎藝, '{...}'라고 풀이해 두었고, 孔穎達도 技藝, '{...}'라고 풀이해 두었다. 係는 {...}는 말이다. {...}을 뜻한다. 胥, 易, 技, 係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陸德明은 如字//司馬云/疏也///簡文云/相也, '{...}'라고 했고, 또 音亦//崔以豉反/云/相輕易也///簡文同, '{...}'라고 하였다. 또, 徐其綺反//簡文云/藝也, '{...}'라고 했고, 또 如字//崔本作繫/或作𣪠//簡文云/音繫, '{...}'라고 했다. 盧文弨는 𣪠/舊作繫/與上複//今定作𣪠/見漢書, '{...}'라고 하였다. 盧文弨가 《漢書》 운운한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한편 郭慶藩은 鄭注周禮/胥徒/民給徭役者///易/讀如孟子易其田疇之易//胥易/謂胥徒供役治事//鄭注檀弓/易墓/謂治草木//易/猶治也//技係/若王制凡執技以事上者/不貳事/不移官/謂爲技所繫也//釋文云/司馬云/胥/疏也//簡文云/胥/相也//並誤, '{...}'라고 했다. 鄭玄의 주석은 「天官冢宰」의 胥十有二人/徒百有二十人, '{...}'에 달려 있다. 易其田疇는 《孟子》 「盡心 上」에 나온다. 趙技는 易/治也, '{...}'라고 하였다. 「檀弓」은 《禮記》의 편이다. 이 주석은 「檀弓 上」의 易墓/非古也, '{...}'라는 말에 달려 있다. 郭慶藩이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주석 원문은 易謂芟治草木, '{...}'라고 되어 있다. 郭慶藩을 따른다면, 胥와 易를 '{...}'라는 의미로 보고, 技는 '{...}'라고 볼 수 있겠다. ◈ 勞는 용언으로, 勞苦라는 말처럼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좋겠다. ◈ 形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 怵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좋겠다. 陸德明은 敕律反, '{...}'라고 하였다. ◈ 心은 체언으로, '{...}'이다. ◈ 者는 '{...}'이라는 말이다. 관형어구인 勞形怵心을 받는다. ◈◈ 郭象은 言此功夫/容身不得/不足以比聖王,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若將彼人比聖王/無異胥徒勞苦/改易形容//技術工巧/神慮劬勞/故形容變改//係累/故心靈怵惕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此其學聖人/如胥之易/如技之係/徒役其形心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聖人에 {...}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5. 且也虎豹之文來田/猿狙之便執斄之狗來藉//如是者/可比明王乎, ◈ 且는 '{...}'라는 말이다. ◈ 也는 아마 {...}일 것이다. 郭慶藩은 也字惟覆宋本作曰/今依各本改, '{...}'라고 하였다. 이 글자는 《莊子集解》에도 也로 되어 있다. ◈ 虎는 체언으로, '{...}'다. ◈ 豹는 체언으로, '{...}'이다. ◈ 虎豹之文의 之는 {...}다. 猿狙之便의 之도 그렇다. ◈ 文은 체언으로, '{...}'다. ◈ 來田의 來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來藉의 來도 그러하다. 《論語》 「季氏」에 則修文德以來之,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來는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禮記》 「中庸」에 凡爲天下國家有九經/曰/脩身也/尊賢也/親親也/敬大臣也/體群臣也/子庶民也/來百工也/柔遠人也/懷諸侯也, '{...}'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來를 招來, '{...}'라고 풀이하였다. ◈ 田은 체언으로, '{...}'이다. 《周禮》 「地官司徒」에 若國作民而師/田/行/役之事, '{...}'이라는 말이 있는데, 賈公彦은 田謂田獵, '{...}'라고 하였다. 田獵은 동의어가 연용되어 형성된 단어일 것이므로, 獵이 '{...}'이니, 田도 '{...}'이 되어야 한다. 또, 《春秋穀梁傳》 「桓公」 4년에 四時之田/皆爲宗廟之事也//春曰田/取獸於田, '{...}'라는 말이 있는데, 范宁는 四時之田을 四時田獵, '{...}'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田獵은 상기하였듯 '{...}'이므로, 田도 '{...}'이라는 말이 된다. 《春秋穀梁傳》에 나와 있듯, {...}했던 듯하다. 陸德明은 李云/虎豹以皮有文章見獵也//田/獵也, '{...}'라고 했다. ◈ 虎豹之文來田은 직역하면 '{...}'가 될 것이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王先謙은 以文致獵, '{...}'라고 하였다. ◈ 猿狙는 체언으로, '{...}'다. 猿과 狙는 모두 '{...}'다. 成玄英은 獮猴,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袁//七餘反, '{...}'라고 하였다. ◈ 便은 '{...}'는 말이다. 여기서는 체언으로,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荀子》 「修身」에 齊給便利/則節之以動止,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齊給便利/皆捷速也, '{...}'라고 하였다. 《荀子》 「君道」에는 其應變故也/齊給便捷而不惑, '{...}'라는 말이 있는데, 齊給便捷 역시 '{...}'는 말로 사용되었다. 상기하였듯 「修身」에서 齊給이 '{...}'는 말임은 확인할 수 있었다. 捷 역시 '{...}'는 말이다. 그러면 한 단어를 이루고 있는 便 역시 '{...}'는 의미일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呲肩反/舊扶面反,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捷, '{...}'라고 하였다. ◈ 執斄之狗는 명사구로, 아마 '{...}'일 것이다. 執은 '{...}'는 말이다. 之는 {...}이라는 말이다. 狗는 '{...}'다. 斄는 본래 {...}를 뜻한다. 陸德明은 音來/李音狸//崔云/旄牛也, '{...}'라고 했다. 旄牛는 {...}할 듯하다. 狸는 '{...}'다. {...}은 그럭저럭 합리적일 듯하다. 정황 증거가 하나 더 있다. 상기하였듯, 《外篇》 「天地」에는 이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또 나오는데, 그 이야기에는 執斄之狗가 아니라 執狸之狗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藉는 체언으로, 아마 '{...}'이라는 말인 것 같다. 문맥상 이러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 成玄英은 繩,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藉/繩也/由捷見結縛也///崔云/藉/繫也, '{...}'라고 했다. 王先謙은 猴狗以能致繫, '{...}'라고 하였다. ◈ 猿狙之便執斄之狗來藉는 猿狙之便來藉於執斄之狗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직역하면, '{...}'라는 말이 된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王先謙은 猴狗以能致繫, '{...}'라고 하였다. ◈ 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是를 받는다. ◈ 是는 앞 문장의 胥易技係/勞形怵心者와 이 문장의 虎豹之文來田/猿狙之便執斄之狗來藉를 가리킬 것이다. ◈ 者는 '{...}'이다. 관형어구인 如是를 받는다. ◈ 可는 '{...}'는 말이다. ◈ 比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明王을 받는다. ◈ 乎는 {...}다. ◈◈ 郭象은 此皆以其文章技能係累其身/非涉虛以御乎無方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虎豹之皮有文章/故來田獵//獮猴以跳躍便捷/恆被繩拘//狗以執捉狐狸/每遭係頸//若以響疾之人類於聖帝/則此之三物/可比明王乎,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二語亦見天地篇, '{...}'라고 하였다. 二語는 且也虎豹之文來田/猿狙之便執斄之狗來藉를 가리킬 것이다. 「天地」는 《外篇》에 속한다. 「天地」에는 老聃이 孔子에게 하는 말 중, 是胥易技係/勞形怵心者也//執留之狗成思/猿狙之便自山林來, '{...}'라는 말이 있다. 王先謙은 아마 이 문장을 지칭한 듯하다. 그러나 보다시피 「天地」와 「應帝王」은 문맥은 비슷한 듯한데, 글자까지 모두 같지는 않다. ◈◈ 孃破案 : 老聃은 陽子居가 {...}을 풀이한 것이다. [본문으로]
  6. 陽子居蹵然曰, ◈ 蹵然은 '{...}'이다. 蹵은 《莊子集釋》에는 蹴으로 되어 있고, 《莊子集解》와 《經典釋文》에는 蹵으로 되어 있다. 나는 蹵을 따랐다. 蹵은 본래 '{...}'는 말이지만, 이 문장에서는 愀의 가차자로 쓰인 듯하다. 愀는 '{...}'는 말로, 이 부분의 蹵과 의미가 동일하다. 《荀子》의 「修身」에 見不善/愀然必以自省也,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愀然/憂懼貌, '{...}'라고 하였다. 《史記》의 「蘇秦列傳」에는 齊王愀然變色, '{...}'라는 말이 있다. 《禮記》의 「哀公問」에는 孔子愀然作色, '{...}'라는 말이 있고, 《大戴禮記》의 「哀公問於孔子」에도 孔子愀然作色, '{...}'라는 말이 똑같이 있다. 鄭玄은 愀然/變動貌也//作/猶變也, '{...}'라고 하였다. 이 말들을 종합해 보면, 愀然은 '{...}'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본문의 蹵然과 의미가 일치한다. 《內篇》에는 蹵然이라는 말이 몇 차례 등장한다. 「德充符」에서 申徒嘉의 비난을 듣다가 子產蹵然改容更貌曰, '{...}'라는 말이 있었고, 「大宗師」에서 顏回가 坐忘하였다는 말을 듣고 仲尼蹴然曰, '{...}'라고 한 말이 있다. 모두 문맥이 동일하다. 발음도 비슷했던 것 같다. 陸德明은 子六反/改容之貌, '{...}'라고 하였는데, 《禮記》 「哀公問」의 愀에 대해서는 愀/七小反/舊慈糾反/又在由反/又音秋/又子了反/下同, '{...}'라고 하였다. 子와 六의 반절이면 {...}해서 쓰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본문으로]
  7. 敢問明王之治, ◈ 敢은 부사어로, '{...}'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다. ◈ 治는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直吏反//下同,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其失問/故驚悚變容/重請明王爲政/其義安在,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陽子居는 자신이 {...}가 비슷해 보인다. [본문으로]
  8. 老聃曰 [본문으로]
  9. 明王之治功蓋天下而似不自己, ◈ 之는 {...}다. ◈ 治는 체언으로, '{...}'를 뜻한다. ◈ 功은 체언으로, '{...}'이다. ◈ 蓋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似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不自己를 받는다. 《論語》 「鄉黨」에 孔子於鄉黨/恂恂如也/似不能言者,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似는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不은 부정어다. 自를 한정한다. ◈ 自는 아마 용언으로, '{...}'는 말일 것이다. 己를 받는다. 自는 부사어로 '{...}'라는 의미로 사용되기에, 용언으로는 '{...}'처럼 사용될 수 있을 듯하다. 《論語》 「憲問」에 奚自, '{...}'라는 말이 있는데, 邢昺과 朱熹는 모두 自를 從이라고 풀이했다. 여기서 從은 아마 '{...}'는 의미로, 奚自는 '{...}'는 말이 된다. ◈ 己는 체언으로, '{...}'이다. 不自己는 不自於己, '{...}'는 말이다. 즉, 似不自己는 '{...}'라는 말이 된다. ◈◈ 郭象은 天下若無明王/則莫能自得//令之自得/實明王之功也//然功在無爲而還任天下//天下皆得自任/故似非明王之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聖人爲政/功侔造化/覆等玄天/載周厚地/而功成不處/故非己爲之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이 말의 초점은, 위정자가 공적을 {...}도 하다. 뒤에 나오는 有莫舉名, '{...}'와 같은 말이다. [본문으로]
  10. 化貸萬物而民弗恃, ◈ 化는 체언으로, 일반적으로 {...}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 부분에서 莊子는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 貸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萬物을 받는다. 陸德明은 吐代反, '{...}'라고 하였고, 宣穎은 貸/施也, '{...}'라고 하였다. 《說文解字》 「貝部」에도 貸/施也/从貝代聲, '{...}'라고 되어 있는데, 施는 '{...}'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는 의미일 때 施는 '{...}'라고 읽는다. 앞의 句에 있는 功蓋天下가 '{...}'라고 해석되는 점을 참고할 때, 化貸萬物 역시 '{...}'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면 貸는 '{...}'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와 별개로, 貸가 '{...}'라는 의미로 《道德經》에 사용된 예가 있으니, 이를 소개해 둔다. 《道德經》 41장에 道隱無名/夫唯道/善貸且成, '{...}'라는 말이 있다. 河上公은 言道善稟貸人精氣/且成就之也, '{...}'라고 하였고, 王弼은 貸之非唯供其乏而已/一貸之則足以永終其德/故曰善貸也, '{...}'라고 했다. 貸는 모두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民은 체언으로, '{...}'이다. ◈ 弗은 부정어다. 恃를 한정한다. ◈ 恃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夫明王皆就足物性/故人人皆云我自爾/而莫知恃賴於明王,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誘化蒼生/令其去惡//貸借萬物/與其福善//而玄功潛被/日用不知/百姓謂我自然/不賴君之能,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세상에 道를 펴서, 道가 일으키는 {...}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使物自喜, '{...}'와 같은 말이다. [본문으로]
  11. 有莫舉名/使物自喜, ◈ 有莫舉名은 有功而莫舉名, '{...}'라는 말일 것이다. 글자 수를 맞추려고 功而 같은 말을 생략하였을 것이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앞의 功蓋天下를 뜻한다. ◈ 莫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舉名을 받는다. 成玄英은 無, '{...}'라고 하였다. ◈ 舉는 용언이다. 본래 '{...}'는 말이다. 여기서는 見이나 顯처럼 '{...}'라고 보면 좋겠다. 成玄英은 顯, '{...}'라고 하였다. ◈ 名은 체언으로, '{...}'이다. ◈ 使는 '{...}'라는 말이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아마 '{...}'을 이를 것이다. ◈ 自는 부사어로, '{...}'다. '{...}'라고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 喜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雖有蓋天下之功/而不舉以爲己名/故物皆自以爲得而喜,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推功於物/不顯其名/使物各自得而懽喜適悅者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似有/而無能名,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有莫舉名은 앞의 功蓋天下而似不自己를 다시 설명하는 말이고, 使物自喜은 앞의 化貸萬物而民弗恃를 다시 설명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12. 立乎不測, ◈ 立은 용언으로, {...}라고 보면 좋겠다. 立의 주체는 明王이다. ◈ 乎는 於와 같다. '{...}'다. 명사구인 不測을 받는다. ◈ 不測은 '{...}'를 이른다. 앞에 나왔던 有莫舉名을 표현하는 말인 듯하다. 즉, 不測은 {...}를 뜻한다. {...}날 수가 없다. 不은 부정어로, 測을 한정한다. 測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居變化之塗/日新而無方者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所存者神,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3. 而遊於無有者也, ◈ 而는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명사구인 無有를 받는다. ◈ 無有는 명사구로, '{...}'를 뜻한다. 글 안에서만 판단하자면, 有는 功과 名, 즉 '{...}'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李民樹는 無有를 '{...}'라고 했다. 安東林은 {...}이라고 하였는데, 너무 추상적이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無功, 無名, 無己라고 했다. 「逍遙遊」에 至人無己/神人無功/聖人無名이라는 말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安炳周와 田好根의 설이 가장 타당할 듯하다. 成玄英은 無有/妙本也, '{...}'라고 하였다. ◈ 者는 '{...}'이다. 遊於無有를 받는다. ◈◈ 郭象은 與萬物爲體/則所遊者虛也//不能冥物/則迕物不暇/何暇遊虛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樹德立功/神妙不測/而即跡即本/故常遊心於至極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行所無事,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이 이야기의 老聃도, 앞의 無名人도, 모두 같은 {...} 없다. 그래서 老聃이 陽子居를 비판하였던 것이다. 「應帝王」 뒷부분에 至人之用心若鏡/不將不迎/應而不藏, '{...}'라는 말이 있다. 참고할 만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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