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3 - 여우가 자규에게 도의 계보를 알려 주다

2021. 9. 10. 11:39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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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12일 9시 53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8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1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3 - 여우가 자규에게 도의 계보를 알려 주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7?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2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6-3

 

南伯子葵問乎女偊曰:

 

「子之年長矣,而色若孺子,何也?」

 

曰:「吾聞道矣。」

 

南伯子葵曰:「道可得學邪?」

 

曰:「惡!惡可!子非其人也。夫卜梁倚有聖人之才而無聖人之道,我有聖人之道而無聖人之才,吾欲以教之,庶幾其果爲聖人乎!不然,以聖人之道告聖人之才,亦易矣。

 

吾猶守而告之,參日而後能外天下;已外天下矣,吾又守之,七日而後能外物;已外物矣,吾又守之,九日而後能外生;已外生矣,而後能朝徹;朝徹,而後能見獨;見獨,而後能無古今;無古今,而後能入於不死不生。殺生者不死,生生者不生。

 

其爲物,無不將也,無不迎也;無不毀也,無不成也。其名爲攖寧。攖寧也者,攖而後成者也。」

 

南伯子葵曰:「子獨惡乎聞之?」

 

曰:「聞諸副墨之子,副墨之子聞諸洛誦之孫,洛誦之孫聞之瞻明,瞻明聞之聶許,聶許聞之需役,需役聞之於謳,於謳聞之玄冥,玄冥聞之參寥,參寥聞之疑始。」

 

 

남백 자규가 여우에게 물었다.[각주:1]

 

"너는 나이도 많으면서 얼굴빛은 어린아이 같구나. 어찌 그렇느냐.[각주:2]"

 

[여우가] 말했다.[각주:3]

 

"내가 도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각주:4]"

 

남백 자규가 말했다.[각주:5]

 

"도는 배울 수 있느냐.[각주:6]"

 

[여우가] 말했다.[각주:7]

 

"어허, 어찌 그렇겠느냐. [도를 내게 배우려고 물었겠지만] 너는 도를 배워서 터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각주:8]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이미 복량의에게 도를 가르쳐 주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저 복량의에게는 성인으로써의 본바탕이 있었지만, 성인의 도는 없었고, [반면] 내게는 성인의 도는 있었지만, 성인으로써의 본바탕은 없었다.[각주:9] [그래도] 나는 [복량의에게] 도를 가르쳐 주려고 하였으니, [복량의가] 장차 진정 성인이 되기를 바랬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못 되더라도, [내가] 성인의 도를 깨우친 입장에서 성인으로써의 본바탕이 있는 자를 깨우쳐 주기는 또한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각주:10]"

 

<여우의 말 이어짐>

 

"그래도 나는 신중한 자세로 복량의를 깨우쳐 주었다.[각주:11] [그러자 복량의는] 사흘 뒤에 천하를 잊을 수 있게 되었다.[각주:12] [복량의가] 이미 천하를 잊었지만, 나는 [복량의를] 다시 신중하게 깨우쳐 주었다. [그러자 복량의는] 이레 뒤에 만물을 잊을 수 있게 되었다.[각주:13] [복량의가] 이미 만물을 잊었지만, 나는 [복량의를] 다시 신중하게 깨우쳐 주었다. [그러자 복량의는] 아흐레 뒤에 [자기 자신기가] 살아있다는 점조차 잊을 수 있게 되었다.[각주:14] 이미 [자기] 삶조차 잊었지만 [복량의는 더욱 정진하여] 그 다음으로 조철할 수 있게 되었다.[각주:15] [복량의는] 조철한 뒤에는 견독할 수 있게 되었고[각주:16], 견독한 뒤에는 무고금할 수 있게 되었으며[각주:17], 무고금한 뒤에는 불사불생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각주:18] [불사불생의 경지란 무엇인가. 무릇] 삶을 내려 놓은 자는 [오히려] 죽지 않는 법이요, 삶에 매달리는 자는 [오히려] 살 수가 없는 법이[니, 이것이 불사불생의 경지이]다.[각주:19]"

 

<여우의 말 이어짐>

 

"[복량의는 불사불생의 경지에 오르더니,] 이에 만물에 대해 [떠나려 하는 것을] 보내지 않은 적이 없었고[각주:20], [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맞아 들이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각주:21], [죽어 가는 것에 대해서는] 죽지 못하게 한 적이 없었고[각주:22],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태어나지 못하게 한 적이 없게 되었다.[각주:23] 이러한 경지를 영녕이라 한다.[각주:24] 영녕이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도를 따라 변화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도를 거스르지 않고 도를 따라 만물과 함께] 얽힌 뒤에야 편안하게 된다는 말이다.[각주:25]"

 

[이에] 남백 자규가 말했다.[각주:26]

 

"[그러면] 너는 도대체 어디에서 도에 대해 들었느냐.[각주:27]"

 

[여우가] 말했다.[각주:28]

 

"[나는] 부묵의 아들에게서 들었다.[각주:29] 부묵의 아들은 낙송의 손자에게서 들었다.[각주:30] 낙송의 손자는 첨명에게서 들었다.[각주:31] [그리고] 첨명은 섭허에게서 들었고[각주:32], 섭허는 수역에게서 들었으며[각주:33], 수역은 오구에게서 들었고[각주:34], 오구는 현명에게서 들었으며[각주:35], 현명은 삼료에게서 들었고[각주:36], 삼료는 의시에게서 들었다.[각주:37]"

 

 

  1. 南伯子葵問乎女偊曰, ◈ 南伯子葵는 아마 「齊物論」에 나왔던 南郭子綦, 「人間世」에 나왔던 南伯子綦와 동일인일 것이다. 成玄英은 葵當爲綦字之誤/猶人間世篇中南郭子綦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葵當爲綦/聲之誤也, '{...}'라고 했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乎는 於와 같다. '{...}'다. 女偊를 받는다. ◈ 女偊는 사람 이름이다. 다른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成玄英은 女偊/古之懷道人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音禹/李音矩//一云/是婦人也, '{...}'라고 했다. [본문으로]
  2. 子之年長矣/而色若孺子/何也,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가리킨다. ◈ 之는 {...}다. ◈ 年長은 '{...}'라는 말일 것이다. 年은 체언으로, '{...}'이고, 長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國語》 「吳語」에 以民生之不長,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長을 久, '{...}'라고 풀이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張丈反,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今本作丁丈反/與前後同, '{...}'라고 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色은 체언으로, '{...}'이다. ◈ 若은 '{...}'는 말이다. ◈ 孺子는 체언으로, '{...}'다. 孺는 '{...}'를 이른다. 子는 '{...}'다. 成玄英은 孺子/猶稚子也, '{...}'라고 하였다. 孺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는 孺로 되어 있고, 《經典釋文》에는 𡦗라고 되어 있다. 陸德明은 本亦作孺/如喻反//李云/弱子也, '{...}'라고 했다. 盧文弨는 今本作孺/是正體, '{...}'라고 하였다. ◈ 何는 의문사로, '{...}'라는 말이다. {...}인지 묻는 말이다. ◈◈ 成玄英은 女偊久聞至道/故能攝衛養生/年雖老/猶有童顏之色/駐彩之狀//既異凡人/是故子葵問其何以致此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 [본문으로]
  4. 子之年長矣/而色若孺子/何也,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가리킨다. ◈ 之는 {...}다. ◈ 年長은 '{...}'라는 말일 것이다. 年은 체언으로, '{...}'이고, 長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國語》 「吳語」에 以民生之不長,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長을 久, '{...}'라고 풀이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張丈反,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今本作丁丈反/與前後同, '{...}'라고 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色은 체언으로, '{...}'이다. ◈ 若은 '{...}'는 말이다. ◈ 孺子는 체언으로, '{...}'다. 孺는 '{...}'를 이른다. 子는 '{...}'다. 成玄英은 孺子/猶稚子也, '{...}'라고 하였다. 孺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는 孺로 되어 있고, 《經典釋文》에는 𡦗라고 되어 있다. 陸德明은 本亦作孺/如喻反//李云/弱子也, '{...}'라고 했다. 盧文弨는 今本作孺/是正體, '{...}'라고 하였다. ◈ 何는 의문사로, '{...}'라는 말이다. {...}인지 묻는 말이다. ◈◈ 成玄英은 女偊久聞至道/故能攝衛養生/年雖老/猶有童顏之色/駐彩之狀//既異凡人/是故子葵問其何以致此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5. 南伯子葵曰 [본문으로]
  6. 道可得學邪, ◈ 道는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다. 郭慶藩은 趙諫議本無道字, '{...}'라고 하였다. ◈ 可는 '{...}'는 말이다. ◈ 得學은 아마 한 단어의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得은 '{...}'라는 말이고, 學은 '{...}'라는 말이다. ◈ 邪는 의문사다. '{...}'라고 읽는다. ◈◈ 成玄英은 睹其容色/既異常人/心懷景慕/故詢其方術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이어지는 {...}고 하는 질문 같다. [본문으로]
  7. [본문으로]
  8. 惡/惡可//子非其人也, ◈ 惡/惡可는 「人間世」에도 나왔던 표현이다. 惡는 둘 다 '{...}'라고 읽는다. 앞의 惡는 감탄사다. 뒤의 惡는 의문사로, '{...}'라는 말이다. 可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惡/惡可는 '{...}'라는 표현이다. 成玄英은 惡惡可/言不可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並音烏//下惡乎同, '{...}'라고 하였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南伯子葵를 이른다. ◈ 非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其人을 받는다. ◈ 其는 '{...}'처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道可得學, 즉 '{...}'는 말을 가리킬 것이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成玄英은 女偊心神內靜/形色外彰//子葵見其容貌/欣然請學//嫌其所問/故抑之謂非其人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9. 夫卜梁倚有聖人之才而無聖人之道/我有聖人之道而無聖人之才, ◈ 夫는 '{...}'처럼 {...}이다. ◈ 卜梁倚는 사람 이름이다. 「大宗師」 외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成玄英은 卜梁/姬姓也/倚/名也, '{...}'라고 하였다. 姬姓이면 周나라의 왕족일 텐데, 成玄英이 무엇을 근거로 姬姓이라고 하였는지 모르겠다. 卜梁이라는 姓 또한 「大宗師」 외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陸德明은 魚綺反/又其綺反//李云/卜梁/姓//倚/名, '{...}'라고 하였다. ◈ 有聖人之才의 有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聖人之才를 받는다. ◈ 聖人은 {...}이다. ◈ 聖人之才의 之는 {...}다. 聖人之道의 之도 그렇다. ◈ 才는 체언으로, '{...}'이다. 「德充符」 哀駘它 이야기에 才全,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글에서 才는 '{...}'을 뜻하였었다. 이 이야기에서도 '{...}'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成玄英은 智用明敏爲才, '{...}'라고 하였다. ◈ 有聖人之才而無聖人之道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有聖人之道而無聖人之才의 而도 그렇다. ◈ 無聖人之道의 無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聖人之道를 받는다. ◈ 道는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다. 成玄英은 虛心凝淡爲道, '{...}'라고 하였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이른다. ◈ 有聖人之道의 有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聖人之道를 받는다. ◈ 無聖人之才의 無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聖人之才를 받는다. ◈◈ 成玄英은 言梁有外用之才而無內凝之道/女偊有虛淡之道而無明敏之才/各滯一邊/未爲通美//然以才方道/才劣道勝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倚聰明/似子貢//偊忘聰明/似顏子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卜梁倚에게 聖人之才가 있었다는 {...}일 것이다. [본문으로]
  10. 吾欲以敎之/庶幾其果爲聖人乎//不然/以聖人之道告聖人之才/亦易矣,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이른다. ◈ 欲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欲以의 以는 所以처럼 '{...}'이라는 말 같다. 敎之를 받는다. ◈ 敎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敎之의 之는 {...}라고 보았다. ◈ 庶幾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唐나라 玄宗이 지은 《孝經》의 「序」에 庶幾廣愛形於四海, '{...}'라고 하였는데, 邢昺은 庶幾/猶幸望, '{...}'라고 하였다. 幸望은 '{...}'는 말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庶를 慕, '{...}'라고 하고, 幾는 近, '{...}'라고 하였다. ◈ 其는 부사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將과 같다. 《書》 「虞書 皋陶謨」에 天工人其代之, '{...}'라는 말이 있고, 《書》 「商書 湯誓」에 予其大賚汝, '{...}'라는 말이 있으며, 《書》 「商書 盤庚 上」에 天其永我命于玆新邑,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隱公」 11년에 吾子孫其覆亡之不暇/而況能禋祀許乎,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其는 모두 將, '{...}'라는 뜻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果는 부사어로, '{...}'이다. 成玄英은 決, '{...}'라고 하였다. ◈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聖人은 {...}이다. ◈ 乎는 哉와 같은 {...}로 보아야 할 듯하다. {...}가 아니다. ◈ 不然은 '{...}'라는 말이다. 然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라는 의미일 듯하다. ◈ 以는 '{...}'다. 聖人之道를 받는다. ◈ 聖人之道의 之는 {...}다. ◈ 聖人之道의 道는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를 이른다. ◈ 告는 용언이다. 본래 '{...}'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禮記》 「玉藻」에 燕居/告/溫溫,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告/謂教使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教人使人, '{...}'이라고 풀이하였다. ◈ 亦은 부사어로, '{...}'이다. ◈ 易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 같다. '{...}'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以豉反,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1. 吾猶守而告之,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이른다. ◈ 猶는 부사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아마 '{...}'라고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 守而는 아마 守然과 같을 것이다. {...}다. 而는 然과 통용된다. 然은 {...}이다. 守는 '{...}'는 말이므로, 守然은 아마 '{...}'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면 而를 어떻게 然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書》 「虞書 益稷」에 啟呱呱而泣, '{...}'라는 말이 있고, 《詩》 「國風 召南」에 舒而脫脫兮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이를 脫脫然舒也, '{...}'라고 풀이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 17년에는 鋌而走/險急何能擇,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鋌/疾走貌, '{...}'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然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守而不去/與爲諄復, '{...}'라고 하였다. ◈ 告는 용언으로, 앞의 告聖人之才에서처럼 '{...}'라고 해석해야 한다. ◈ 之는 {...}를 가리키는 것 같다. ◈◈ 成玄英은 夫上士聞道/猶藉勤行/若不勤行/道無由致//是故雖蒙教誨/必須修學/慕近玄道/決成聖人//若其不然/告示甚易/爲須修守/所以成難//然女偊久聞至道/內心凝寂/今欲傳告/猶自守之//況在初學/無容懈怠/假令口說耳聞/蓋亦何益//是以非知之難/行之難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2. 參日而後能外天下, ◈ 參日은 '{...}'이다. 參은 '{...}'이라고 읽는다. 參은 三의 가차자일 것이다. '{...}'이다. 陸德明은 音三, '{...}'라고 하였다. ◈ 而後는 '{...}'다. ◈ 能은 '{...}'는 말이다. ◈ 外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天下를 받는다. 《淮南子》 「精神訓」에 外此/其餘無足利矣,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外/猶除也, '{...}'라고 하였다. 《呂氏春秋》 「似順論 有度」에는 有所通則貪汙之利外矣,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外/棄也, '{...}'라고 하였다. 모두 같은 의미다. 郭象은 外/猶遺也, '{...}'라고 하였고, 成玄英은 外/遺忘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爲師不易/傳道極難//方欲教人/故凝神靜慮/修而守之/凡經三日//心既虛寂/萬境皆空/是以天下地上/悉皆非有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3. 已外天下矣/吾又守之/七日而後能外物, ◈ 已는 부사어로, '{...}'다. ◈ 外天下의 外는 能外天下에서 설명하였듯, '{...}'라는 의미의 용언이다. 外物의 外도 그렇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이른다. ◈ 又는 부사어로, '{...}'다. ◈ 守는 용언으로, '{...}'는 의미로 해석해야겠다. ◈ 守之의 之는 告之, 즉 {...}을 가리킨다. ◈ 而後는 '{...}'다. ◈ 能은 '{...}'는 말이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物者/朝夕所須/切己難忘,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天下萬境疏遠/所以易忘//資身之物親近/所以難遺//守經七日/然後遺之//故郭注云/物者朝夕所須/切己難忘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4. 已外物矣/吾又守之/九日而後能外生, ◈ 已는 부사어로, '{...}'다. ◈ 外物의 外는 能外天下에서 설명하였듯, '{...}'라는 의미의 용언이다. 外生의 外도 그렇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이른다. ◈ 又는 부사어로, '{...}'다. ◈ 守는 용언으로, '{...}'는 의미로 해석해야겠다. ◈ 守之의 之는 告之, 즉 {...}을 가리킨다. ◈ 而後는 '{...}'다. ◈ 能은 '{...}'는 말이다. ◈ 生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郭象은 都遺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隳體離形/坐忘我喪/運心既久/遺遣漸深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5. 已外生矣/而後能朝徹, ◈ 已는 부사어로, '{...}'다. ◈ 外는 能外天下에서 설명하였듯, '{...}'라는 의미의 용언이다. ◈ 生은 체언으로, '{...}'이다. ◈ 而後는 '{...}'다. ◈ 能은 '{...}'는 말이다. ◈ 朝徹은 '{...}'는 말로 보인다. 朝는 부사어로, 용언인 徹을 한정한다. 朝는 본래 '{...}'이므로, 역시 {...}을 뜻하는 旦과 통용된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문헌적인 근거도 있다. 《詩》 「國風 衛風」의 「氓」에 信誓旦旦/不思其反, '{...}'라는 말이 있는데, 朱熹는 旦旦/明也, '{...}'라고 하였다. 한편, 徹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國語》 「楚語」에 攝而不徹,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徹을 通, '{...}'라고 하였다. 또, 《國語》 「周語」에 其何事不徹,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徹을 達, '{...}'라고 풀이하였다. 이 역시 같은 뜻이다. 그러면 상기하였듯 朝徹은 '{...}'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이 아닐까 하다. 郭象은 遺生則不惡死/不惡死故所遇即安/豁然無滯/見機而作/斯朝徹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朝를 旦, '{...}', 徹을 明, '{...}'라고 풀이하고는, 死生一觀/物我兼忘/惠照豁然/如朝陽初啟/故謂之朝徹也, '{...}'라고 하였다. 宣穎은 朝徹/如平旦之淸明, '{...}'라고 하였다. 平旦은 {...}이다. 陸德明은 朝에 대해 如字//李除遙反//下同, '{...}'라고 하였고, 徹에 대해 如字/郭司馬云/朝/旦也//徹/達妙之道///李云/夫能洞照/不崇朝而遠徹也, '{...}'라고 했다. [본문으로]
  16. 朝徹/而後能見獨, ◈ 而後는 '{...}'다. ◈ 能은 {...}'는 말이다. ◈ 見獨은 '{...}'를 이른다.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인 것 같다. 《三國志》 「魏志 鍾繇華歆王朗傳」에 明帝時大司農弘農董遇等/亦歷注經傳/頗傳於世,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한 裴松之의 주석에 讀書百徧/而義自見, '{...}'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見은 '{...}'는 말로 사용되었다. 獨은 체언이다. 獨은 본래 '{...}'라는 의미이므로, 체언으로는 아마 '{...}'를 뜻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다. 즉, 獨은 '{...}'를 뜻한다. 그렇다면 見獨은 {...}가 된다. 郭象은 當所遇而安之/忘先後之所接/斯見獨者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夫至道凝然/妙絕言象/非無非有/不古不今/獨往獨來/絕待絕對//睹斯勝境/謂之見獨//故老經云寂寞而不改, '{...}'라고 하였다. 《老經》은 《道德經》이다. 인용문은 아마 《道德經》 25장인 듯하다. 25장에서는 寂兮寥兮/獨立而不改, '{...}'라고 하였다. 寂寥가 寂寞인 듯하다. 王先謙은 見一而已,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이 시점에서 卜梁倚는 {...}과 같다. [본문으로]
  17. 見獨/而後能無古今, ◈ 而後는 '{...}'다. ◈ 能은 '{...}'는 말이다. ◈ 無古今은 '{...}'라는 말 같다. 無는 '{...}'는 말이고, 古는 '{...}', 今은 '{...}'를 뜻한다. 따라서 無古今은 '{...}'는 뜻이 된다. 이렇게 보면 '{...}'라고 해석할 수도 있어 보이지만, {...}라고 이해하였다. 成玄英은 古今을 會, '{...}'라고 하였다. ◈◈ 郭象은 與獨俱往,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任造物之日新/隨變化而俱往/不爲物境所遷/故無古今之異,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8. 無古今/而後能入於不死不生, ◈ 而後는 '{...}'다. ◈ 能은 '{...}'는 말이다. ◈ 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명사구인 不死不生을 받는다. ◈ 不死不生은 명사구로, '{...}'라는 말일 것이다. 不은 부정어다. 死는 '{...}'는 말이고, 生은 '{...}'는 말이다. 따라서 不死不生는 직역하자면, '{...}'를 뜻한다. 그러나 이를 '{...}'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養生主」에 適來/夫子時也//適去/夫子順也//安時而處順/哀樂不能入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주제와 같다. 즉, '{...}'이기도 하고, 반대로 '{...}'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을 {...} 유지되고 있다. ◈◈ 郭象은 夫係生故有死/惡死故有生//是以無係無惡/然後能無死無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時有古今之異/法有生死之殊者/此蓋迷徒倒置之見也//時既運運新新/無今無古/故法亦不去不來/無死無生者也//會斯理者/其唯女偊之子耶,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生死一也//至此/則道在我矣,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不死不生의 의미는 {...}을 통해 부연하고 있다. [본문으로]
  19. 殺生者不死/生生者不生, ◈ 郭慶藩은 闕誤引江南古藏本殺上有故字, '{...}'라고 했다. 내가 상술한 것처럼, 殺生者不死/生生者不生은 不死不生의 경지에 대한 부연이므로, 故가 있어도 타당하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를 이른다. ◈ 殺은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앞에서 外天下, 外物의 外처럼, '{...}'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앞의 句에서는 {...} 있겠다. 殺은 '{...}' 그대로 읽는다. 成玄英은 殺/滅也//死/亦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殺/猶亡也/亡生者不死也///崔云/除其營生爲殺生, '{...}'라고 했다. ◈ 殺生의 生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生生 중 뒤의 生 역시 그렇다. ◈ 殺生者의 者는 '{...}'이다. 관형어구인 殺生을 받는다. 生生者의 者도 그렇다. 관형어구인 生生을 받는다. ◈ 不死는 앞문장에 나왔던 不死不生 중 不死를 이른다. 이 句는 {...}하였듯, 成玄英은 死를 滅, '{...}'라고 풀이하였다. ◈ 生生 중 앞의 生은 용언이다. 生은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外의 반의어로, 內, 즉 '{...}'라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呂氏春秋》 「孟秋紀 懷寵」에 今有人於此/能生死一人,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生을 活,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矜生者不生也///崔云/常營其生爲生生, '{...}'라고 했다. ◈ 不生은 앞문장에 나왔던 不死不生 중 不生를 이른다. 이 句는 不生을 부연하는 말이다. ◈◈ 成玄英은 謂此死者未曾滅/謂此生者未曾生//既死既生/能入於無死無生/故體於法/無生滅也//法既不生不滅/而情亦何欣何惡耶//任之而無不適也, '{...}'라고 하였다. ◈◈ 蘇輿는 殺生二語/申釋上文//絕貪生之妄覬/故曰殺生//安性命之自然/故曰生生//死生順受/是不死不生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0. 其爲物/無不將也, ◈ 其는 부사어로,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禮記》 「月令」에 五者備當/上帝其饗,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僖公」 5년에 鶉之賁賁/天策焞焞/火中成軍/虢公其奔, '{...}'라는 말이 있으며, 《春秋左氏傳》 「宣公」 2년에 非馬也/其人也, '{...}'라는 말이 있고, 《國語》 「晉語」에 喪田不懲/禍亂其興,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其는 모두 乃처럼 '{...}'라고 해석된다. 李民樹, 安東林, 安炳周, 田好根은 모두 其가 道를 가리킨다고 보았는데, 나는 따르지 않는다. ◈ 爲는 '{...}'라는 말이다. 物을 받는다. 따라서 爲物은 '{...}'라는 말이 된다. 그러면 '{...}' 어떻게 한다는 말일까. 뒤에 이어지는 {...}이다. 상기하였듯 李民樹, 安東林, 安炳周, 田好根은 其爲物의 其를 {...} 나는 모두 따르지 않았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 無와 不은 모두 부정어다. 無不은 '{...}'는 말이다. ◈ 將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迎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詩》 「國風 召南」의 「鵲巢」에 之子於歸/百兩將之,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將/送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夫人將之/謂送夫人, '{...}'라고 하였다. 朱熹 역시 將/送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送, '{...}'라고 하였다. ◈◈ 郭象은 任其自將/故無不將,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1. 無不迎也, ◈ 無와 不은 모두 부정어다. 無不은 '{...}'는 말이다. ◈ 迎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將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 郭象은 任其自迎/故無不迎,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道之爲物/拯濟無方/雖復不滅不生/亦而生而滅/是以迎無窮之生/送無量之死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이 구절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 孃破案 : 오면 오는 대로 받아 {...} 대한 준칙으로 無門無毒이라고 한 적이 있다. '{...}'라는 뜻이다. 「應帝王」에서는 至人이 만물을 {...} 不將不迎이라 하였다. [본문으로]
  22. 無不毀也, ◈ 無와 不은 모두 부정어다. 無不은 '{...}'는 말이다. ◈ 毀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 郭象은 任其自毀/故無不毀,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3. 無不成也, ◈ 無와 不은 모두 부정어다. 無不은 '{...}'는 말이다. ◈ 成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毀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 郭象은 任其自成/故無不成,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不送而送/無不毀滅//不迎而迎/無不生成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가 내린 {...}는 뜻이다. 「齊物論」에 凡物無成與毀/復通爲一, '{...}'라는 말이 있었다. [본문으로]
  24. 其名爲攖寧, ◈ 其는 '{...}'처럼 {...}일 것이다. 無不將也/無不迎也/無不毀也/無不成也를 가리킨다. {...}를 이른다. ◈ 名은 체언으로, '{...}'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攖寧은 명사구로, 아마 '{...}'를 뜻할 것이다. 攖은 아마 纓의 가차자일 것이다. 纓은 '{...}'라는 말이다. 《淮南子》 「繆稱訓」에 勿驚勿駭/萬物將自理//勿撓勿攖/萬物將自清, '{...}'라는 말이 있다. 이 중 攖은 어떤 판본에는 櫻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高誘는 攖을 纓이라고 하였다. 纓은 '{...}'는 뜻이다. 撓 역시 '{...}'는 말이므로, 그 뜻이 纓과 {...}는 攖寧의 의미 역시 秦失의 주장에 합치된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攖은 이 부분에서는 和, '{...}'는 말과 같다. 成玄英은 攖을 擾動, '{...}'라고 하였고, 寧은 寂靜,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郭音縈/徐於營反/李於盈反//崔云/有所繫著也, '{...}'라고 하였다. 한편 郭嵩燾는 趙岐孟子注/攖/迫也///物我生死之見迫於中/將迎成毀之機迫於外/而一無所動其心/乃謂之攖寧//置身紛紜蕃變交爭互觸之地/而心固寧焉/則幾於成矣/故曰攖而後成, '{...}'라고 하였다. 趙岐의 이 주석은 《孟子》 「盡心 下」의 虎負嵎/莫之敢攖, '{...}'라는 말에 달려 있다. ◈◈ 郭象은 夫與物冥者/物縈亦縈/而未始不寧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聖人慈惠/道濟蒼生/妙本無名/隨物立稱/動而常寂/雖攖而寧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5. 攖寧也者/攖而後成者也, ◈ 攖寧也者의 也는 '{...}'이라는 뜻이다. 者와 같다. 즉, 也者는 者者와 같고, 이는 곧 者와 같다. 攖寧을 받는다. 그러면, 也를 어떻게 者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攖而後의 攖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상기하였듯 纓의 가차자일 것이다. ◈ 而後는 '{...}'다. ◈ 成은 용언으로, '{...}'는 말인데, 문맥상 寧, '{...}'라는 말로 보아야 할 듯하다. 이 문장에서 莊子는 攖寧이 무슨 말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 攖이라고 하였으니, 이번에는 寧이 나와야 한다. '{...}'라고 풀이한다면, 아마 {...}라고 풀이해야 할 것이다. ◈ 攖而後成者의 者는 '{...}'이라는 말이다. 攖而後成을 받는다. ◈◈ 郭象은 物縈而獨不縈/則敗矣//故縈而任之/則莫不曲成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能和光同塵/動而常寂/然後隨物攖擾/善貸生成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6. 南伯子葵曰 [본문으로]
  27. 子獨惡乎聞之,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女偊를 이른다. ◈ 獨은 부사어로, 아마 '{...}' 같은 말인 것 같다. ◈ 惡는 의문사로, '{...}'라는 뜻이다. '{...}'라고 읽는다. 乎는 於와 같다. '{...}'라는 뜻이다. 惡乎는 '{...}'라는 표현일 것이다. 「逍遙遊」에 彼且惡乎待哉, '{...}'와 같이, 惡乎라는 표현이 사용된 적이 있었다. ◈ 聞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타당하겠다. 《禮記》 「哀公問」에 愿聞所以行三言之道/可得聞乎,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聞은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成玄英은 子葵怪女偊之談/其道高妙/故問/子於何處獨得聞之///自斯已下/凡有九重/前六約教/後三據理/並是女偊告示子葵之辭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이 질문을 매개로 하여 {...}하기 시작한다. [본문으로]
  28. [본문으로]
  29. 聞諸副墨之子,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諸는 之於의 줄임말로, '{...}'라는 표현이다. '{...}'라고 읽는다. 成玄英은 之, '{...}'라고 풀이하였다. ◈ 副墨은 체언으로, {...}이다. 之는 {...}다. 子는 체언으로, '{...}'이다. 子를 마지막에 붙인 것은 아마도 {...}기 때문일 것이다. 成玄英은 副/副貳也//墨/翰墨也//翰墨/文字也//理能生教/故謂文字爲副貳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可以副貳玄墨也//崔云/此已下皆古人姓名/或寓之耳/無其人, '{...}'라고 했다. 宣穎은 文字是翰墨爲之/然文字非道/不過傳道之助/故謂之副墨//又對初作之文字言/則後之文字/皆其孳生者/故曰副墨之子,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魚必因筌而得/理亦因教而明/故聞之翰墨/以明先因文字得解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莊子가 살고 {...}되고 있었다. [본문으로]
  30. 副墨之子聞諸洛誦之孫,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諸는 之於의 줄임말로, '{...}'라는 표현이다. '{...}'라고 읽는다. ◈ 洛誦은 {...}이다. 之는 {...}다. 孫은 체언으로, '{...}'다. 끝에 孫이 붙은 것은 아마도 {...}기 때문일 것이다. 成玄英은 臨本謂之副墨/背文謂之洛誦,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誦/通也//苞洛無所不通也, '{...}'라고 했다. 苞洛은 아마 '{...}'는 의미 같다. 王先謙은 謂連絡誦之/猶言反復讀之也//洛絡同音借字//對古先讀書者言/故曰洛誦之孫//古書先口授而後著之竹帛/故云然,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初既依文生解/所以執持披讀//次則漸悟其理/是故羅洛誦之//且教從理生/故稱爲子//而誦因教起/名之曰孫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문자가 생기기 {...}하였다. [본문으로]
  31. 洛誦之孫聞之瞻明,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聞之의 之는 之於와 같다. 之於는 '{...}'라는 뜻이다. 《禮記》 「少儀」에 仆者右帶劍/負良綏/申之面/拖諸幦,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申之面/拖諸幦는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다. 즉, 申之面의 之는 拖諸幦의 諸와 같이 해석되어야 한다. 《孟子》 「滕文公 上」에는 禹疏九河/瀹濟漯/而注諸海//決汝漢/排淮泗/而注之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 역시 而注諸海와 而注之江은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諸와 之의 역할은 동일해야 한다. 이 사례들이 之가 諸의 의미로 사용된 사례들이다. 王引之는 之/猶諸也//諸之/一聲之轉, '{...}'라고 하였다. 之가 於를 대신하여 사용된 경우도 있다. 《大戴禮記》 「曾子事父母」에 養之內/不養於外/則是越之也//養之外/不養於內/則是疏之也, '{...}'라는 말이 있는데, 養之內와 不養於外, 그리고 養之外와 不養於內는 모두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고, 之가 於의 의미라고 해석되고 있다. 《荀子》 「勸學」에 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도 之는 於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王引之는 之/猶於也//諸之/一聲之轉//諸訓爲於/故之亦訓爲於, '{...}'라고 하였다. 이 예시와 설명들은 《荀子》의 예를 제외하면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之」에 기술되어 있다. ◈ 瞻明은 아마 {...}이 아닐까 하다. 瞻은 본래 '{...}'는 말이다. 明은 아마 '{...}'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을 형용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成玄英도 瞻/視也/亦至也,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 매끄럽지 않다. 즉, 聶許와 洛誦之孫 {...}니까 말이다. 따라서 나는 瞻을 '{...}'는 의미로 생각해서, 瞻明을 '{...}'라고 해석했다. 《詩》 「國風 魏風」 「陟岵」에 陟彼岵兮/瞻望父兮, '{...}'라는 말이 있고, 陟彼屺兮/瞻望母兮, '{...}'라는 말이 있으며, 또 陟彼岡兮/瞻望兄兮, '{...}'라는 말이 있다. 瞻望은 '{...}'는 뜻이다. 《詩》 「國風 邶風」 「雄雉」에 瞻彼日月/悠悠我思,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孔穎達은 大夫久役/其妻思之, '{...}'라고 하였다. 瞻은 이처럼 일반적으로 '{...}'는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할 때 瞻望의 의미로 사용된 듯하다. 陸德明은 音占//李云/神明洞徹也, '{...}'라고 했다. 王先謙은 見解洞徹,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讀誦精熟/功勞積久/漸見至理/靈府分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암송해서라도 道를 {...}가 생겼다. [본문으로]
  32. 瞻明聞之聶許,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聞之의 之는 之於와 같다. 之於는 '{...}'라는 뜻이다. 之가 之於와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聞之瞻明의 之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聶許는 道에 대해 {...}를 뜻하는 말 같다. 聶은 본래 '{...}'는 말이다. 許는 본래 '{...}'는 말이지만, {...}라고 할 때 의미가 중복되듯, '{...}'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렇게 보면 聶許는 '{...}'이 되니, 瞻明을 '{...}'이라고 한 것처럼 聶許를 '{...}'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成玄英은 聶/登也/亦是附耳私語也, '{...}'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래서는 瞻明의 경우에서처럼 {...} 사이에 {...}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듯하다. 陸德明은 徐乃攝反//李云/許/與也//攝而保之/無所施與也, '{...}'라고 했다. 施與는 {...}는 뜻이다. 그런데 無所施與라고 했으니, '{...}'는 말이 되는데, {...}은 무슨 의미일까. 王先謙은 聶許/小語/猶囁嚅,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誦之稍深/因教悟理/心生歡悅/私自許當/附耳竊私語也//既聞於道/未敢公行/亦是漸登勝妙玄情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아직 사제 관계가 {...} 나가고 있다. [본문으로]
  33. 聶許聞之需役,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聞之의 之는 之於와 같다. 之於는 '{...}'라는 뜻이다. 之가 之於와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聞之瞻明의 之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需는 '{...}'라는 말이고, 役은 '{...}'라는 말이다. 즉 需役은 {...}을 뜻한다. 成玄英은 需는 須, '{...}', 役은 用이나 行,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音須/李音儒/云/儒弱爲役也///王云/需/待也//役/亭毒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雖復私心自許/智照漸明/必須依教遵循/勤行勿怠//懈而不行/道無由致,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는 아직 {...} 실천하고 있다. [본문으로]
  34. 需役聞之於謳,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聞之의 之는 之於와 같다. 之於는 '{...}'라는 뜻이다. 之가 之於와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聞之瞻明의 之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於謳의 於와 {...} 자체를 한 단어로 해석해야 한다. ◈ 於謳는 아마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於는 감탄사로, '{...}'라고 읽는다. {...}다. 《詩》 「大雅 文王之什」 「文王」에 文王在上/於昭于天,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於/嘆辭, '{...}'라고 하였다. 같은 시에는 穆穆文王/於緝熙敬止, '{...}'라는 말도 있다. 이 於 역시 {...}다. 「文王」의 於에 대해 陸德明은 於音烏//注及下於緝並注皆同, '{...}'라고 하였다. 한편 謳는 '{...}'는 말이다. 따라서 於謳는 {...}이 된다. 成玄英은 謳/歌謠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於에 대해 音烏/又如字, '{...}'라고 하였고, 謳에 대해서는 徐烏侯反//李香于反/云/謳/煦也/欲化之貌///王云/謳/歌謠也, '{...}'라고 했다. {...}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다. 宣穎은 詠歎歌吟/寄趣之深,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因教悟理/依解而行/遂使盛惠顯彰/謳歌滿路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를 최초로 {...}하지 못했다. [본문으로]
  35. 於謳聞之玄冥,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聞之의 之는 之於와 같다. 之於는 '{...}'라는 뜻이다. 之가 之於와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聞之瞻明의 之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玄은 '{...}'는 말이고, 冥은 '{...}'는 말이다. 즉, 玄冥은 '{...}'를 표현한 말이다. 《道德經》에서는 道를 수식하는 말로 玄이 12번, 冥이 1번 사용되었다. 郭象은 玄冥者/所以名無而非無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玄者/深遠之名也//冥者/幽寂之稱,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強名曰玄/視之冥然///向郭云/所以名無而非無也, '{...}'라고 했다. 宣穎은 玄冥/寂寞之地,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德行內融/芳聲外顯/故漸階虛極/以至於玄冥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玄冥은 道의 {...} 수 있겠다. 參寥에 대한 成玄英의 설을 따른다면, {...}라 하겠다. 「齊物論」에 其次以爲有封焉/而未始有是非也, '{...}'라는 말이 있었다. 이 경지는 莊子가 「齊物論」에서 뽑은 {...} 만다. [본문으로]
  36. 玄冥聞之參寥,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聞之의 之는 之於와 같다. 之於는 '{...}'라는 뜻이다. 之가 之於와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聞之瞻明의 之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參寥는 '{...}'라는 말이다. 이는 成玄英의 설인데, 내 생각에는 {...} 參은 '{...}'는 뜻이다. '{...}'이라고 읽는다. 寥는 '{...}'다. 즉 參寥는 '{...}'을 뜻한다. 뒷쪽 孟孫才 이야기에서 나온 寥天이 道와 동격이듯, 參寥는 '{...}'을 의미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成玄英은 參/三也//寥/絕也//一者絕有/二者絕無/三者非有非無/故謂之三絕也, '{...}'라고 하였다. 「齊物論」에서 莊子가 이런 이야기를 이미 했던 것을 보면 成玄英의 의견에 {...} 이렇다. 莊子는 道에 대해 在六極之下, 先天地生, 長於上古라고 하였을 정도로 道를 始原 그 자체로 {...}에 모순된다. 따라서 나는 成玄英을 따른다. 陸德明은 參에 대해서는 七南反, '{...}'라고 하였고, 寥에 대해서는 徐力彫反//李云/參/高也//高邈寥曠/不可名也, '{...}'라고 했다. 宣穎은 參悟空虛,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夫階名以至無者/必得無於名表//故雖玄冥猶未極/而又推寄於參寥/亦是玄之又玄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玄冥之境/雖妙未極/故至乎三絕/方造重玄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有, 無,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닌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작이라는 관념은 존재한다. 「齊物論」에 其次以爲有物矣/而未始有封也, '{...}'라는 말이 있었다. 이 경지는 莊子가 「齊物論」에서 뽑은 두 번째 수준의 경지였다. [본문으로]
  37. 參寥聞之疑始,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聞之의 之는 之於와 같다. 之於는 '{...}'라는 뜻이다. 之가 之於와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聞之瞻明의 之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疑는 '{...}'라는 말이다. 始는 '{...}'이다. 따라서 疑始는 '{...}'라는 뜻이 된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王闓運과 赤塚忠이 疑를 凝으로 보고, '{...}'이라고 해석했다고 하는 설을 소개해 두었다. 그러면 疑始는 '{...}'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결국 疑始가 {...}은 분명하다. 成玄英은 始를 本,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又疑無是始/則始非無名也, '{...}'라고 했다. 宣穎은 至於無端倪/乃聞道也//疑始者/似有始而未嘗有始,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夫自然之理/有積習而成者//蓋階近以至遠/研粗以至精/故乃七重而後及無之名/九重而後疑無是始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道/超此四句/離彼百非/名言道斷/心知處滅/雖復三絕/未窮其妙//而三絕之外//道之根本/所謂重玄之域/眾妙之門/意亦難得而差言之矣//是以不本而本/本無所本/疑名爲本/亦無的可本/故謂之疑始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無, 有, 無도 有도 아닌 것조차 {...}에까지 이르렀다. 「齊物論」에 有以爲未始有物者/至矣盡矣/不可以加矣, '{...}'라는 말이 있었다. 이 경지는 莊子가 「齊物論」에서 뽑은 최고 수준의 경지였다. ◈◈ 孃破又案 : 이상의 疑始, 參寥, 玄冥, 於謳, 需役, 聶許, 瞻明, 洛誦之孫, 副墨之子까지의 아홉 단계는 {...}으로 매끄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본문의 관점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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