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2 - 도를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1. 9. 10. 11:37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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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12일 9시 53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8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0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2 - 도를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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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6-2

 

死生,命也,其有夜旦之常,天也。人之有所不得與,皆物之情也。彼特以天爲父,而身猶愛之,而況其卓乎!人特以有君爲愈乎己,而身猶死之,而況其眞乎!

 

泉涸,魚相與處於陸,相呴以濕,相濡以沫,不如相忘於江湖。與其譽堯而非桀也,不如兩忘而化其道。

 

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故善吾生者,乃所以善吾死也。

 

夫藏舟於壑,藏山於澤,謂之固矣。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昧者不知也。藏小大有宜,猶有所遯。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是恆物之大情也。

 

特犯人之形而猶喜之。若人之形者萬化,而未始有極也,其爲樂可勝計邪!故聖人將遊於物之所不得遯而皆存。善妖善老,善始善終,人猶效之,又況萬物之所係,而一化之所待乎!

 

夫道,有情有信,無爲無形;可傳而不可受,可得而不可見;自本自根,未有天地,自古以固存;神鬼神帝,生天生地;在太極之先而不爲高,在六極之下而不爲深,先天地生而不爲久,長於上古而不爲老。

 

狶韋氏得之,以挈天地;伏戲氏得之,以襲氣母;維斗得之,終古不忒;日月得之,終古不息;堪坏得之,以襲崑崙;馮夷得之,以遊大川;肩吾得之,以處大山;黃帝得之,以登雲天;顓頊得之,以處玄宮;禺強得之,立乎北極;西王母得之,坐乎少廣,莫知其始,莫知其終;彭祖得之,上及有虞,下及五伯;傅說得之,以相武丁,奄有天下,乘東維,騎箕尾,而比於列星。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도가 내린 운]명이니, 밤낮이 언제나 돌고 도는 것처럼 하늘의 이치라고 하겠다.[각주:1]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밤과 낮이 바뀌는 것처럼]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바가 있으니, [이러한] 모든 것이 만물의 본질이로다.[각주:2] 사람들은 [자기] 아비를 유독 하늘처럼 여기면서, 마땅히 몸소 아비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그 아비 보다 위대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어찌 해야 하겠느냐.[각주:3] [또한] 사람들은 [자기] 군주를 유독 자기 자신 보다 소중하다고 여기면서, 마땅히 몸소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그 군주 보다 참된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어찌 해야 하겠느냐.[각주:4]

 

샘의 물이 마르면 [그 샘에 있던] 물고기들은 함께 [물 없는] 땅바닥에 남은 처지가 된다. [그러면 물고기들은 살아남겠답시고] 서로 습기를 내뿜고, 서로를 물방울로 적셔 준다. [하지만 아무리 습기를 내뿜는들 물고기들은] 강과 호수에 있으면서 서로서로를 잊고 사는 것만 못한 법이다.[각주:5] [마찬가지로] 요를 기리고 걸을 비판하는 것은 요와 걸을 모두 잊고 도를 따르는 것만 못하다 하겠다.[각주:6]

 

저 대괴는 우리에게 형체를 내려 [우리를] 이루어 주었고, 우리에게 삶을 내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수고를 겪게 하였으며, 우리를 늙게 하여 [우리가] 한가롭게 있도록 해 주었고, 우리에게 죽음을 내려 쉴 수 있게 해 주었다.[각주:7] [이처럼 우리의 형체, 삶, 늙음, 죽음 모두가 대괴가 내린 것이요, 우리는 대괴가 내린 바를 똑같이 따라야 할 것이므로] 따라서 우리가 삶을 좋아한다는 말은 곧 우리가 죽음을 좋아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하겠다.[각주:8]

 

대저 [사람들은] 도랑에다가 배를 두고, 연못에다가 오구를 두고는, 확실히 잘 보관해 두었다고 말한다.[각주:9] 하지만 한밤중에 힘이 [아주] 센 사람이 보관해 둔 것들을 [등에] 지고 도망가 버린다면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은 [보관해 둔 것들을 도둑맞은 줄도] 모를 것이다.[각주:10] [어떤 것을] 보관해 두는 데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보관하기에] 적합한 데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훔쳐서] 달아날 구석은 있다.[각주:11] 그런데 [배를 도랑에, 오구를 연못에 두는 것처럼 만물의 뜻을 다른 곳에 두지 말고] 천하 만물[의 뜻]을 천하 만물에 [그대로] 간직해 둔다면, [누구도 훔쳐서]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천하] 만물의 변치 않는 대정[에 접근할 방법]이라 하겠다.[각주:12]

 

[그런데 천하 만물의 대정에 접근할 방법이 이러한데도, 사람들은] 고작 사람의 형체를 타고 났다고 도리어 만족한다. [하지만]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은 [도에 따라] 언제나 변해 나가는 것이고, [그 변화의] 끝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각주:13] 그러니 [천하 만물의 대정을 좇는 것에 비해, 상변하는 사람의 형체에 만족하는 것으로써, 어찌 진정한] 즐거움을 헤아려 낼 수 있겠느냐.[각주:14] 따라서 성인들은 장차 [천하] 만물[의 대정]이 흐려지지 않고, [만물] 모두가 [본질 그대로] 온전할 [수 있는] 경지에서 노닐려 했던 것이다.[각주:15] [그래서 성인들은] 일찍 죽는 것도 긍정하였고, 늙어 죽는 것도 긍정하였으며, 태어나는 것도 긍정하였고, 죽는 것도 긍정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성인의 모습조차도 본받으려 하는데[각주:16], 하물며 더욱이 [천하] 만물이 [모두] 엮여 있고, [만물의] 변화 양상이 모두 의지하고 있는 [도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어찌 대해야 하겠느냐.[각주:17]

 

저 도에게는 [드러나 보이는] 작용도 있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증거도 있으나, 행위는 없고, 형체도 없다.[각주:18] [그러니 도를] 전해 나갈 수는 있지만 받아 쥘 수는 없으며[각주:19], [도를]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다.[각주:20] [도는] 자기 자신으로서 [천하 만물의] 본질이요, 뿌리이니, 하늘과 땅이 생기기조차 이전의 옛날부터 이미 원래 존재했었다.[각주:21] [그 옛적에 도는] 귀신과 [옛] 제왕들을 신비하게 만들었고, 하늘과 땅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각주:22] [도는] 태극 보다 위에 있었지만 높은 척 하지 않았고, 육극 보다 아래에 있었지만 깊은 척하지 않았으며, 천지 보다 앞서 있었지만 오래된 척 하지 않았고, 상고 보다도 오래 되었지만 나이 든 체 하지 않았다.[각주:23]

 

시위씨는 도를 터득하고서 천지를 거느렸고[각주:24], 복희씨는 도를 터득하고서 기모를 얻었으며[각주:25], 유두는 도를 터득하고서 [모양을] 영원히 흐트리지 않게 되었고[각주:26], 일월은 도를 터득하고서 [운행을] 영원히 쉬지 않게 되었다.[각주:27] [또한] 감배는 도를 터득하고서 곤륜을 얻었고[각주:28], 풍이는 도를 터득하고서 대천에서 노닐게 되었으며[각주:29], 견오는 도를 터득하고서 태산에 기거하게 되었고[각주:30], 황제는 도를 터득하고서 운천에 올랐으며[각주:31], 전욱은 도를 터득하고서 현궁에 기거하게 되었다.[각주:32] 우강은 도를 터득하고서 북극에 우뚝 섰고[각주:33], 서왕모는 도를 터득하고서 소광에 앉았는데, [사람들은] 우강과 서왕모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고 하고,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각주:34] 팽조는 도를 터득하고서 [그 수명이] 위로는 유우와 견줄 정도였고, 아래로는 오패와 견줄 정도가 되었다.[각주:35] 부열은 도를 터득하고서 무정과 함께 천하를 다스렸는데, [그 뒤에 부열은] 동유를 타고 기와 미를 달렸으니, 별들과 나란히 하게 되었다.[각주:36]

 

 

  1. 死生/命也/其有夜旦之常/天也, ◈ 死生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命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其는 아마 如나 若처럼 '{...}'이라는 말인 듯하다. 有夜旦之常을 받는다. 其는 若처럼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 其가 '{...}'처럼 사용될 수도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참고차 소개해 둔다. 《詩》 「小雅 小旻之什」의 「小旻」에 謀之其臧/則具是違//謀之不臧/則具是依, '{...}'라는 말이 있다. 《禮記》 「文王世子」에 公族其有死罪/則磬于甸人, '{...}'라는 말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9년에 其濟/君之靈也//不濟/則以死繼之, '{...}'라는 말이 있다. 또, 《春秋左氏傳》 「襄公」 23년에 其然/將具敝車而行, '{...}'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其는 모두 '{...}'이라는 말이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夜旦之常을 받는다. ◈ 夜旦은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如字//崔本作靼/音怛, '{...}'라고 하였다. 怛은 '{...}'는 말로, 의미에 맞지 않다. 원문처럼 旦으로 보고, '{...}'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 之는 {...}다. ◈ 常은 체언으로, '{...}'이다. ◈ 天은 체언으로, 단순히 '{...}'이 아니라, '{...}'를 뜻한다. ◈◈ 郭象은 其有晝夜之常/天之道也//故知死生者命之極/非妄然也/若夜旦耳/奚所係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旦明夜闇/天之常道//死生來去/人之分命//天不能無晝夜/人焉能無死生//故任變隨流/我將於何係哉,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 人之有所不得與/皆物之情也,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人之의 之는 {...}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所不得與를 받는다. ◈ 所는 '{...}'이다. 不得與를 받는다. ◈ 不得은 '{...}'는 말이다. ◈ 與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春秋穀梁傳》 「僖公」 19년에, 因邾以求與之盟, '{...}'라는 말이 있는데, 范宁는 與를 廁豫, '{...}'라고 풀이하였고, 陸德明은 與音豫/注及下文同, '{...}'라고 하였다. ◈ 皆는 부사어로, '{...}'다. 死生과 夜旦之常 같은 것들을 이른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 物之情의 之는 {...}다. ◈ 情은 체언으로, 性처럼 '{...}'이라는 뜻이다. 《呂氏春秋》 「離俗覽 上德」에 小民皆之其之敵而不知其所以然/此之謂順天//敎變容改俗而莫得其所受之/此之謂順情,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情/性也//順其天性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夫眞人在晝得晝/在夜得夜//以死生爲晝夜/豈有所不得//人之有所不得而憂娛在懷/皆物情耳/非理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死生晝夜/人天常道/未始非我/何所係哉//而流俗之徒/逆於造化/不能安時處順/與變俱往/而欣生惡死/哀樂存懷//斯乃凡物之滯情/豈是眞人之通智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死生與夜旦等/皆由天命/不可更以人與//此物之情/實無足係戀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 彼特以天爲父/而身猶愛之/而況其卓乎, ◈ 彼는 人, 즉 '{...}'을 가리킨다. ◈ 特은 부사어로, '{...}'이다. ◈ 以天爲父는 以父爲天, '{...}'가 잘못된 말일 것이다. 以는 '{...}'이다. 天을 받는다. 天은 '{...}'이다. 爲는 '{...}'라는 말이다. 父는 '{...}'다. 따라서 以天爲父는 '{...}'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은 {...}는 뒷문장에서 人特以有君爲愈乎己, '{...}'라고 하고 있다. 뒷문장에는 君이 앞에 와 {...} 할 것이다. ◈ 而身猶愛之의 而는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身은 아마 체언으로, '{...}'을 뜻하는 듯하다. 뒤의 猶를 부사어로 본다면 身 역시 부사어로, '{...}'가 되어야 한다. ◈ 猶는 아마 以처럼, '{...}'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身을 받는다. ◈ 愛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父를 가리킨다. ◈ 而況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況은 '{...}'다. ◈ 其는 父를 가리킨다. ◈ 卓은 체언으로, '{...}'이라는 뜻이다. 卓은 본래 卓越이라는 말처럼, '{...}'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대로 보아도 좋고, '{...}'라고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郭象은 卓者/獨化之謂也, '{...}'라고 하였고, 成玄英도 卓者/獨化之謂也,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卓之言超也/絕也/獨也//字同趠/廣雅/趠絕//一作逴/玉篇/敕角切/蹇也///蹇者獨任一足/故謂之逴//李善西都賦注/逴躒/猶超絕也///匡謬正俗/逴者/謂超踰不依次第///又作踔//漢書河間獻王傳踔爾不群/說苑君道篇踔然獨立//依說文當作𥢔//禾部/𥢔/特止//徐鍇曰/特止/卓止也//卓趠逴踔𥢔/古同聲通用, '{...}'라고 하였다. 「西都賦」에 대한 李善의 注는 《文選》에 있다. 「西都賦」는 班孟堅, 즉 班固가 지은 「兩都賦」 중 하나다. 郭慶藩이 인용한 주석은 「西都賦」의 封畿之內/厥土千里//逴躒諸夏/兼其所有, '{...}' 중 逴躒에 붙어 있는 주석이다. 《匡謬正俗》은 顏師古가 지은 책으로, 《經典釋文》처럼 경전들의 의미와 글자의 음을 정리하고, 속어 같은 말들을 바로잡은 글이다. 「河間獻王傳」은 「景十三王傳」을 뜻하는 듯하다. 「景十三王傳」에는 踔爾不群이 아니라 卓爾不群으로 되어 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徐鍇는 5대 10국 시대, 南唐의 학자다. 陸德明은 中學反, '{...}'라고 하였다. ◈ 乎는 {...}다. ◈◈ 郭象은 夫相因之功/莫若獨化之至也//故人之所因者/天也//天之所生者/獨化也//人皆以天爲父/故晝夜之變/寒暑之節/猶不敢惡/隨天安之//況乎卓爾獨化/至於玄冥之境/又安得而不任之哉//既任之/則死生變化/惟命之從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彼之眾人/稟氣蒼旻/而獨以天爲父/身猶愛而重之/至於晝夜寒溫/不能返逆//況乎至道窈冥之鄉/獨化自然之竟/生天生地/開闢陰陽/適可安而任之/何得拒而不順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身知愛天/而況卓然出於天者乎,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4. 人特以有君爲愈乎己/而身猶死之/而況其眞乎,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特은 부사어로, '{...}'이다. ◈ 以는 '{...}'이다. 有君을 받는다. ◈ 有君은 君, '{...}'을 이른다. 君은 체언으로, '{...}'다. 有는 {...}인 듯하다. 《書》 「周書 召誥」에 嗚呼//有王雖小/元子哉,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僖公」 21년에는 實司大皥與有濟之祀, '{...}'라는 말이 있다. 有王은 王, 곧 '{...}'이고, 有濟는 濟, 곧 '{...}'를 이른다. 이 예들과 다른 예시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有」에서 찾아 볼 수 있다. 王引之는 有/語助也//一字不成詞/則加有字以配之, '{...}'라고 하였다. ◈ 爲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愈乎己를 받는다. ◈ 愈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論語》 「公冶長」에 女與回也孰愈,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과 邢昺은 모두 愈/猶勝也, '{...}'라고 하였다. 勝은 '{...}'는 말이다. 成玄英도 愈/猶勝也, '{...}'라고 하였다. ◈ 愈乎己의 乎는 於와 같다. 비교하는 표현으로, '{...}'라는 말이다. ◈ 己는 체언으로, '{...}'이다. 人을 가리킨다. 즉, 人特以有君爲愈乎己는 {...}는 말이다. 宣穎은 勢分勝乎己, '{...}'라고 하였다. ◈ 而身의 而는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彼特以天爲父/而身猶愛之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身은 아마 체언으로, '{...}'을 뜻하는 듯하다. 뒤의 猶를 부사어로 본다면 身 역시 부사어로, '{...}'가 되어야 한다. ◈ 猶는 아마 以처럼, '{...}'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身을 받는다. ◈ 死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後漢書》 「吳延史盧趙列傳」 중, 出行/乃得死友,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死는 '{...}'는 말이다. ◈ 之는 君을 가리킨다. 즉, 身猶死之는 {...}는 뜻이다. 宣穎은 效忠, '{...}'라고 하였다. ◈ 而況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況은 '{...}'다. ◈ 其는 君을 가리킬 것이다. ◈ 眞은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 眞乎의 乎는 {...}다. ◈◈ 郭象은 夫眞者/不假於物而自然也//夫自然之不可避/豈直君命而已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其眞則向之獨化者也//人獨以君王爲勝己尊貴/尙殞身致命/不敢有避/而況玄道至極/自然之理/欲不從順/其可得乎//安排委化/固其宜矣,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身知愛君/而況確然切於君者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卓과 眞은 {...}는 말이다. [본문으로]
  5. 泉涸/魚相與處於陸/相呴以濕/相濡以沫/不如相忘於江湖, ◈ 泉은 체언으로, '{...}'이다. ◈ 涸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이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戶各反/郭戶格反//爾雅云/竭也, '{...}'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 揮/盝/歇/涸/竭也, '{...}'라는 말이 있다. ◈ 魚는 체언으로, '{...}'다. ◈ 相與는 부사어로, '{...}'다. 相과 與는 {...}라는 말이다. ◈ 處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陸의 於는 '{...}'다. 陸을 받는다. ◈ 陸은 체언으로, '{...}'다. 여기서는 '{...}'을 이른다. ◈ 相呴의 相은 부사어로, '{...}'다. 相濡, 相忘의 相도 그렇다. ◈ 呴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陸德明은 況于況付二反, '{...}'라고 하였다. ◈ 呴以濕의 以는 '{...}'다. 濡以沫의 以도 그렇다. 각각 濕과 沫을 받는다. ◈ 濕은 체언으로, '{...}'이다. 이 글자는 《莊子集解》에는 溼이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濕이라고 되어 있다. ◈ 濡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이 글자는 《莊子集釋》과 《莊子集釋》에 모두 濡라고 되어 있고, 《經典釋文》에는 瀉라고 되어 있다. 陸德明은 本又作濡/音儒/或一音如戍反, '{...}'라고 하였다. 瀉는 '{...}'는 의미다. 郭慶藩은 趙諫議本作濡, '{...}'라고 하였다. ◈ 沫은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音末, '{...}'라고 하였다. ◈ 不如는 '{...}'라는 뜻이다. 명사구인 相忘於江湖를 받는다. ◈ 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音亡//下同, '{...}'라고 하였다. ◈ 於江湖의 於는 '{...}'다. 江湖를 받는다. ◈ 江湖는 체언으로, '{...}'다. 江湖는 모두 물고기가 살기에 적합하다. 江은 '{...}', 湖는 '{...}'다. ◈◈ 郭象은 與其不足而相愛/豈若有餘而相忘,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此起譬也//江湖浩瀚/游泳自在/各足深水/無復往還/彼此相忘/恩情斷絕//洎乎泉源旱涸/鱣鮪困苦/共處陸地/頳尾曝腮//於是吐沫相濡/呴氣相濕/恩愛往來/更相親附/比之江湖/去之遠矣//亦猶大道之世/物各逍遙/雞犬聲聞/不相來往//淳風既散/澆浪漸興/從理生教/聖跡斯起//矜蹩躠以爲仁/踶跂以爲義/父子兄弟/懷情相欺//聖人羞之/良有以也//故知魚失水所以呴濡/人喪道所以親愛之者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이 비유를 완전히 거꾸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 王先謙은 喩貪生懼死/不如相忘於自然//「泉涸」四語/又見天運篇, '{...}'라고 하였다. 「天運」은 《外篇》에 속한다. 「天運」에는 泉涸/魚相與處於陸/相呴以溼/相濡以沫/不若相忘於江湖라고 되어 있다. 不如가 不若으로 되어 있을 뿐, 나머지 글자들은 모두 동일하다. 「天運」의 이 문장은 孔子가 老聃에게 仁義에 대해 묻자, 老聃이 孔子에게 대답해 준 말이다. [본문으로]
  6. 與其譽堯而非桀也/不如兩忘而化其道, ◈ 與는 아마 {...}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與와 寧이 함께 사용되면서, 與 A 寧 B, '{...}'는 구문으로 사용된다. 《論語》 「八佾」에 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는 寧의 자리에 不如가 들어가 있는데, 寧은 '{...}'는 말이고, 不如는 '{...}'라는 말이므로, 의미는 동일하다 하겠다. 즉, 본문의 문장은 譽堯而非桀也 보다 兩忘而化其道가 낫다는 뜻이다. ◈ 其는 {...} 같다. ◈ 譽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音餘//注同, '{...}'라고 하였다. ◈ 堯는 고대의 聖王이다. ◈ 譽堯而非桀의 而는 與와 같다. '{...}'라는 말이다. 《論語》 「雍也」에 不有祝鮀之佞/而有宋朝之美/難乎免於今之世矣, '{...}'라는 말이 있고, 《墨子》 「尙賢 上」에 聞善而不善/皆以告其上, '{...}'라는 말이 있으며, 《韓非子》 「說林 上」에는 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 '{...}'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而는 '{...}'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非는 誹와 같다.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桀은 고대의 폭군이다. 夏나라의 마지막 왕이다. ◈ 也는 아마 者와 같이, '{...}'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듯하다. 관형어구인 譽堯而非桀을 받는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수록되어 있다. ◈ 不如는 '{...}'라는 말이다. 兩忘而化其道를 받는다. ◈ 兩은 아마 부사어로, '{...}'라는 말 같다. 譽堯와 非桀를 가리킨다. 만약 兩을 '{...}'라는 체언으로 해석한다면, 어순이 {...}이 되어야 할 것이다. ◈ 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忘而化의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化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道는 이치로써의 '{...}'다. 그러면 其는 무슨 뜻일까. {...} 아마 以처럼, '{...}'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化其道는 化以道가 되고, 이는 '{...}'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면 문맥에도 어울리고, 「大宗師」의 주제와도 합치된다. 王引之는 《經傳釋詞》 「其」에서 其/猶之也, '{...}'라고 하였다. 예컨대 이렇다. 《春秋公羊傳》에서는 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풀이할 때, 한 번에 모든 사실을 풀이하지 않고, 한 단계씩 질문을 해 나가면서 풀어 나간다. 《春秋公羊傳》 「成公」 15년에 爲兄後則曷爲謂之仲嬰齊//爲人後者爲之子也//爲人後者爲其子/則其稱仲何, '{...}'라는 말이 나오는데, 《春秋公羊傳》의 형식상 爲人後者爲之子와 爲人後者爲其子는 같은 의미가 되어야 한다. 이 두 句는 앞 {...} 대해 王引之는 其與之同義/故其可訓爲之/之亦可訓爲其, '{...}'라고 하였다. 그런데 다시, 之는 以처럼 사용될 때가 있다. 「齊物論」에 化聲之相待/若其不相待, '{...}'라는 말이 있었는데, 여기서 之는 以, '{...}'처럼 해석되었다. 따라서 其는 之이고, 다시 之는 以가 된다. 其, 之, 以는 아마 발음이 비슷해서 이렇게 혼용된 경우가 있었던 듯하다. 한편, 安東林은 馬敍倫이 《莊子義證》에서 {...}와 田好根은 憨山이 與道爲一, '{...}'라고 풀이했다는 사례를 소개해 놓았다. 그러나 莊子는 언제나 '{...}'라고 하였지, '{...}'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이 두 설이 의뭉스럽다. ◈◈ 郭象은 夫非譽皆生於不足//故至足者/忘善惡/遺死生/與變化爲一/曠然無不適矣/又安知堯桀之所在耶,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此合喻//夫唐堯聖君/夏桀庸主/故譽堯善而非桀惡/祖述堯舜以勗將來/仁義之興/自茲爲本也//豈若無善無惡/善惡兩忘//不是不非/是非雙遣//然後出生入死/隨變化而遨遊//莫往莫來/履玄道而自得//豈與夫呴濡聖跡/同年而語哉, '{...}'라고 하였다. ◈◈ 宣穎은 此道字輕/謂是非之道//言譽堯非桀/不如兩忘其道//好生惡死/不如兩忘其累,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二語又見外物篇/下三字作閉其所譽, '{...}'라고 하였다. 「外物」은 《雜篇》에 속한다. 「外物」에는 與其譽堯而非桀/不如兩忘而閉其所譽. '{...}'라고 되어 있다. 즉, 王先謙이 下三字라고 한 것은 化其道를 이른다. 이 말은 老萊子가 孔子를 비판하는 대목의 일부이며, 그 주제는 仁과 名을 비판하는 데 있다. [본문으로]
  7. 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 ◈ 夫는 '{...}'와 같이 {...}이다. ◈ 大塊는 명사구로, '{...}'를 이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뜻이다. 塊는 체언으로, '{...}'다. 成玄英은 大塊者/自然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苦怪反/又苦對反/徐胡罪反,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文選郭景純江賦注引司馬云/大塊/自然也///釋文闕, '{...}'라고 하였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한편, 大塊는 「齊物論」 첫 부분에도 夫大塊噫氣/其名爲風, '{...}'라고 하며 나온 적이 {...}하면 도움이 되겠다. ◈ 載는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라고 보면 大塊가 말 그대로 '{...}'로만 해석되어야 할 것이고, '{...}'라고 보면 大塊는 '{...}'로 해석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書》 「虞書 益稷」에 乃賡載歌, '{...}'이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은 載를 成, '{...}'라고 풀이하였다. ◈ 我는 체언으로, '{...}'를 뜻한다. 즉, '{...}'이다. ◈ 載我以形의 以는 '{...}'다.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의 以가 모두 그렇다. ◈ 形은 체언으로, 아마 '{...}'이라는 말일 것이다. ◈ 勞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生은 체언으로, '{...}'이라는 뜻이다. ◈ 佚은 용언으로, '{...}'는 말로 보인다. 陸德明은 音逸, '{...}'라고 하였다. ◈ 老는 체언으로, '{...}'이다. ◈ 息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死는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夫形生老死/皆我也//故形爲我載/生爲我勞/老爲我佚/死爲我息/四者雖變/未始非我/我奚惜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形是構造之物/生是誕育之始/老是耆艾之年/死是氣散之日//但運載有形/生必勞苦//老既無能/暫時閒逸//死滅還無/理歸停憩//四者雖變而未始非我/而我坦然何所惜耶,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載, 勞, 佚, 息은 사람의 {...}을 뜻한다. [본문으로]
  8. 故善吾生者/乃所以善吾死也, ◈ 故는 '{...}'다. ◈ 善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吾는 관형어로, '{...}'다. {...}을 가리킨다. ◈ 生은 체언으로, '{...}'이다. ◈ 者는 '{...}'이다. 善吾生을 받는다. ◈ 乃는 卽처럼 '{...}'이라고 해석된다. 아니면 역접으로 '{...}'처럼 해석해도 좋겠다. ◈ 所以는 '{...}'이다. 善吾死를 받는다. ◈ 死는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死與生/皆命也//無善則死/有善則生/不獨善也//故若以吾生爲善乎//則吾死亦善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形生老死/皆我也//故以善吾生爲善者/吾死亦可以爲善矣,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純任自然/所以善吾生也//如是/則死亦不苦矣,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六語又見後//列子天瑞篇/人胥知生之樂/未知生之苦//知老之憊/未知老之逸//知死之惡/未知死之息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이 이야기한 六語란 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故善吾生者/乃所以善吾死也를 이른다. 이 말은 뒷부분의 {...} 이야기다. ◈◈ 孃破案 : 삶과 죽음, 형체 {...}과 같다. 「養生主」에 安時而處順/哀樂不能入也, '{...}'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과 의미가 같다. ◈◈ 孃破又案 : 夫大塊부터 乃所以善吾死也까지는 이 편 {...}에도 앞의 故聖人之用兵也 부분에도 분명 錯簡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9. 夫藏舟於壑/藏山於澤/謂之固矣, ◈ 夫는 {...}다. ◈ 藏은 용언으로, '{...}'라고 보아도 좋고, '{...}'라고 보아도 좋겠다. 《山海經》 「西山經」에 其上多青雄黃/多藏琅玕黃金玉, '{...}'라는 말이 있다. 郭璞은 藏/猶隱也, '{...}'라고 하였다. ◈ 舟는 체언으로, '{...}'다. ◈ 於壑의 於는 '{...}'다. 於澤의 於도 그렇다. ◈ 壑은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火各反, '{...}'라고 하였다. ◈ 山은 체언이다. 본래 '{...}'이지만, 藏山於澤의 의미를 {...} 汕의 가차자로, '{...}'를 뜻하는 듯하다. {...}는 {...}의 일종이다. 俞樾은 山非可藏於澤/且亦非有力者所能負之而走/其義難通//山/疑當讀爲汕//爾雅釋器/罺謂之汕//詩南有嘉魚篇毛傳曰/汕汕/樔也//箋云/今之撩罟也///藏舟藏汕/疑皆以漁者言/恐爲人所竊/故藏之/乃世俗常有之事/故莊子以爲喻耳, '{...}'라고 하였다. 罺은 '{...}'로, {...}이다. 汕은 '{...}'로, 마찬가지로 {...}이다. 「南有嘉魚」는 《詩》 「小雅 白華之什」에 속해 있다. 箋은 鄭玄의 주석을 뜻한다. 撩罟도 아마 '{...}'을 뜻하는 말 같다. 郭象과 成玄英, 司馬彪, 郭嵩燾는 山을 그대로 '{...}'으로 보고 있고, 王先謙은 山을 島, '{...}'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莊子는 이 문장을 통해 보통 {...}에서 俞樾의 설이 가장 타당하다. ◈ 澤은 체언으로, '{...}'다. ◈ 謂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之는 藏舟於壑과 藏山於澤을 가리킨다. ◈ 固는 체언으로, '{...}'이다. 즉, {...}는 뜻이다. ◈◈ 郭象은 方言死生變化之不可逃/故先舉無逃之極/然後明之以必變之符/將任化而無係也, '{...}'라고 하였다. ◈◈ 郭慶藩은 文選江文通雜禮詩注引司馬云/舟/水物//山/陸居者//藏之壑澤/非人意所求/謂之固//有力者或能取之///釋文闕, '{...}'라고 하였다. 《文選》에 대한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孃破案 : 莊子는 眞人이 萬物의 본질, 즉 大情에 {...} 있다. [본문으로]
  10.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昧者不知也, ◈ 然而는 역접으로, '{...}'이라는 말이다. ◈ 夜半은 부사어구로, '{...}'다. 郭嵩燾는 夜半者/惟行於無象無兆之中/而人莫之見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夜半闇冥/以譬眞理玄邃也, '{...}'라고 하였다. ◈ 有力者는 명사구로, '{...}'을 이른다.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力은 체언으로, '{...}'이다. 有力者의 者는 '{...}'이다. ◈ 負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負之의 之는 앞에서 藏하였던 舟와 山을 가리킨다. ◈ 負之而走의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走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孟子》 「梁惠王 上」에 棄甲曳兵而走,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走는 '{...}'는 말이다. ◈ 昧는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관형어로, '{...}'이란 의미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에 兼弱攻昧/武之善經也,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昧를 昏亂, '{...}'라고 하였다. 사람에 대해서는 '{...}'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 昧者의 者는 '{...}'이다. 昧를 받는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不知는 {...}는 말이다. ◈◈ 郭象은 夫無力之力/莫大於變化者也//故乃揭天地以趨新/負山岳以舍故//故不暫停/忽已涉新/則天地萬物無時而不移也//世皆新矣/而自以爲故//舟日易矣/而視之若舊//山日更矣/而視之若前//今交一臂而失之/皆在冥中去矣//故向者之我/非復今我也//我與今俱往/豈常守故哉//而世莫之覺/橫謂今之所遇可係而在/豈不昧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藏舟船於海壑/正合其宜//隱山岳於澤中/謂之得所//然而造化之力/擔負而趨//變故日新/驟如逝水//凡惑之徒/心靈愚昧/眞謂山舟牢固/不動巋然//豈知冥中貿遷/無時暫息//昨我今我/其義亦然也, '{...}'라고 하였다. ◈◈ 郭嵩燾는 壑可以藏舟/澤之大可以藏山//然而大化之運行無窮/舉天地萬物/日夜推移/以舍故而即新/而未稍有止息//水負舟而立/水移即舟移矣//氣負山而行/氣運即山運矣,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舟可負/山可移, '{...}'라고 하였다. ◈◈ 宣穎은 造化默運/而藏者猶謂在其故處,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1. 藏小大有宜/猶有所遯, ◈ 藏小大有宜는 有宜於藏小大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 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小大는 체언으로, '{...}'이다. 곧, {...}을 이른다. ◈ 有宜의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宜를 받는다. ◈ 宜는 체언으로, '{...}'이다. ◈ 猶는 부사어로, '{...}'처럼 해석된다. ◈ 有所遯의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所遯을 받는다. ◈ 所遯은 {...}를 뜻한다. 所는 '{...}'다. 遯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遁을 變化, '{...}'라고 하였다. 주석을 보면 郭象 역시 變化라고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 郭象은 不知與化爲體/而思藏之使不化/則雖至深至固/各得其所宜/而無以禁其日變也//故夫藏而有之者/不能止其遯也//無藏而任化者/變不能變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藏舟於壑/藏山於澤/此藏大也//藏人於室/藏物於器/此藏小也//然小大雖異而藏皆得宜/猶念念遷流/新新移改//是知變化之道/無處可逃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郭象과 成玄英은 그러나 遯을 道가 일으키는 變化라고 {...} 있다. 郭象과 成玄英의 설은 틀렸다. [본문으로]
  12. 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是恆物之大情也, ◈ 若夫는 '{...}'처럼 해석된다. ◈ 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藏天下의 天下를 받는다. ◈ 於는 '{...}'다. 於天下의 天下를 받는다. ◈ 而는 '{...}'처럼 해석된다. 則과 같다. 《禮記》 「喪服小記」에 士妾有子而爲之緦/無子則已, '{...}'라는 말이 있고, 《墨子》 「明鬼 下」에 非父則母/非兄而姒也,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季布欒布列傳」에 與楚則漢破/與漢而楚破, '{...}'라는 말이 있다. 예문들에서 而는 모두 '{...}'으로, 則과 의미가 같다. 而가 則과 서로 교차되어 쓰인 사례도 있다. 《禮記》 「樂記」에 喜則天下和之/怒則暴亂者畏之,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荀子》 「樂論」에는 喜而天下和之/怒而曓亂畏之라고 되어 있다. 《孟子》 「公孫丑 上」에 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 '{...}'라는 말이 있는데, 《孟子》 「萬章 下」에는 이 말이 可以速而速/可以久而久/可以處而處/可以仕而仕라고 되어 있다. 而와 則이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소개되어 있다. ◈ 不得은 '{...}'는 말이다. ◈ 所遯은 遯이 잘못된 표현 같다. 遯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즉, 所가 {...} 있어야 한다. ◈ 是는 藏天下於天下를 가리킬 것이다. ◈ 恆은 恒, 常과 같다.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物之大情을 한정하는 말 같다. 成玄英은 常, '{...}'라고 하였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 之는 {...}다. ◈ 大情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이는 곧 {...}과 같다.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情은 체언으로, 앞의 人之有所不得與/皆物之情也에서처럼 性, 즉 '{...}'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王先謙은 恆物之大情/猶言常物之通理, '{...}'라고 하였다. ◈◈ 郭象은 無所藏而都任之/則與物無不冥/與化無不一//故無外無內/無死無生/體天地而合變化/索所遯而不得矣//此乃常存之大情/非一曲之小意,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藏天下於天下者/豈藏之哉//蓋無所藏也//故能一死生/冥變化/放縱寰宇之中/乘造物以遨遊者/斯藏天下於天下也//既變所不能變/何所遯之有哉//此乃體凝寂之人物/達大道之眞情/豈流俗之迷徒/運人間之小智耶, '{...}'라고 하였다. ◈◈ 宣穎은 遯生於藏之過/若悟天下之理/非我所得私/而因而付之天下/則此理隨在與我共之/又烏所遯哉//此物理之實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藏無大小/各有所宜/然無不變之理,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사실 藏은 이 문단에서 {...}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본문으로]
  13. 特犯人之形而猶喜之//若人之形者萬化/而未始有極也, ◈ 이 문장은 《淮南子》 「俶眞訓」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俶眞訓」에는 一範人之形而猶喜//若人者/千變萬化而未始有極也라고 되어 있다. 이 두 문장의 의미는 같거나 거의 같을 것이므로, 「大宗師」 본문의 문장과 「俶眞訓」의 이 문장을 대조해서 의미를 역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문장의 주어는 {...}이다. 생략되어 있다. ◈ 特은 부사어로, '{...}'이다. 成玄英은 獨, '{...}'이라고 하였다. 「俶眞訓」에는 一, '{...}'이라고 되어 있다. ◈ 犯은 용언으로, 본래 '{...}'는 뜻이다. 그러나 본래 의미로 보면 말이 안 된다. 成玄英은 遇,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犯與笵同, '{...}'라고 하였다. 笵은 '{...}'이라는 뜻이다. 의미로 보면 王先謙이 타당하다. 「俶眞訓」에는 範이라고 되어 있는데, 範 역시 '{...}'이라는 뜻이다. 高誘는 「俶眞訓」의 範을 다시 範/猶遇也/遭也//說範/法也, '{...}'라고 하였다. 遇와 遭는 모두 '{...}'는 말로, 成玄英의 풀이와 같다. 法은 아마 '{...}'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곧 笵과 같으므로, 이 설은 王先謙의 풀이와 같다. 나는 王先謙과 高誘를 따라 '{...}'라고 이해하였다. 人之形을 받는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人之形의 之는 {...}다. ◈ 形은 체언으로, '{...}'이다. ◈ 而猶喜之의 而猶는 부사어로, 아마 '{...}'라는 말 같다. 猶는 본래 '{...}'라는 말이다. 而는 乃와 통용되는데, 乃에 '{...}'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而 역시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墨子》 「脩身」에 華髮隳顚/而猶弗舍者/其唯聖人乎, '{...}'라는 말이 있고, 《呂氏春秋》 「孟冬紀 安死」에 故宋未亡而東冢抇/齊未亡而莊公冢抇/國安寧而猶若此/又況百世之後而國已亡乎, '{...}'라는 말이 있으며, 또, 《呂氏春秋》 「季冬紀 不侵」에 豫讓/國士也/而猶以人之於己也爲念/又況於中人乎, '{...}'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而猶는 모두 '{...}'처럼 해석된다. ◈ 喜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주체는 '{...}'이다. ◈ 喜之의 之는 犯人之形, 즉 {...}을 가리킨다. ◈ 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人之形을 받는다. ◈ 者는 '{...}'이다. 若人之形을 받는다. 즉, 若人之形者는 '{...}'이 된다. ◈ 萬化는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萬은 아마 부사어로, 恒처럼 '{...}'라는 뜻일 것이다. 化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한편 「俶眞訓」에는 萬化가 千變萬化, '{...}'라고 되어 있다. 참고할 만하다. ◈ 萬化而의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未始는 아마 '{...}'라는 말이다. 有를 한정한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極은 체언으로, '{...}'이다. {...}을 뜻한다. ◈◈ 郭象은 人形乃是萬化之一遇耳/未足獨喜也//無極之中/所遇者皆若人耳/豈特人形可喜而餘物無樂耶, '{...}'라고 하였다. ◈◈ 郭慶藩은 文選賈長沙鵩鳥賦注引司馬云/當復化而爲無///釋文闕, '{...}'라고 하였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淮南子》 「俶眞訓」에 인용되어 있는 위 문장에 대해, 高誘는 言物一法效人形而猶善也//言死生變化而夢故曰未始有極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4. 其爲樂可勝計邪, ◈ 其는 부사어로,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禮記》 「月令」에 五者備當/上帝其饗,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僖公」 5년에 鶉之賁賁/天策焞焞/火中成軍/虢公其奔, '{...}'라는 말이 있으며, 《春秋左氏傳》 「宣公」 2년에 非馬也/其人也, '{...}'라는 말이 있고, 《國語》 「晉語」에 喪田不懲/禍亂其興,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其는 모두 乃처럼 '{...}'라고 해석된다. ◈ 爲는 아마 以처럼, '{...}'이라고 해석된다. 樂을 받는다. 爲는 以와 통용되었다. 《春秋公羊傳》 「隱公」 원년에 王正月이라는 말을 해석하며, 曷爲先言王而後言正月, '{...}'라는 말이 있고, 《春秋穀梁傳》 「隱公」 4년과 「文公」 4년에 何爲貶之也, '{...}'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先進」에 由之瑟奚爲於丘之門, '{...}'라는 말이 있다. 이 글들에서 爲는 모두 以와 같다. 王引之는 胡爲/曷爲/何爲/奚爲/皆言何以也, '{...}'라고 하였다. 爲와 以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以 대신 爲가 사용된 것이다. 또, 《戰國策》 「趙策」과 《史記》 「魯仲連鄒陽列傳」에는 所爲見將軍者/欲以助趙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所爲는 곧 所以와 같다. 이 역시 爲와 以가 통용되었다는 증거다. 또, 《史記》 「楚世家」에 秦之所爲重王者,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戰國策》 「秦策」에는 夫秦所以重王者, '{...}'이라고 되어 있고, 《史記》 「魯仲連鄒陽列傳」에 秦所爲急圍趙者,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戰國策》 「趙策」에는 秦所以急圍趙者, '{...}'이라고 되어 있다. 이 역시 爲와 以가 통용되었다는 증거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爲」에 수록되어 있다. ◈ 樂은 체언으로, '{...}'이다. ◈ 可는 '{...}'는 말이다. ◈ 勝은 可와 함께 쓰여서 '{...}'라고 해석되는 표현이다. 《論語》 「憲問」의 陳成子弒簡公, '{...}' 부분에 대해 《論語集註》를 보면 可勝惜哉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직역하면 '{...}'가 되고, 이는 곧 '{...}'라는 의미가 된다. 본문의 可勝 역시 이렇게 해석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音升, '{...}'라고 하였다. ◈ 計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 郭象은 本非人而化爲人/化爲人/失於故矣//失故而喜/喜所遇也//變化無窮/何所不遇//所遇而樂/樂豈有極乎,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大冶洪鑪/陶鑄群品/獨遇人形/遂以爲樂//如人形者/其貌類無窮/所遇即喜/喜亦何極//是以唯形與喜/不可勝計,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見笵人形猶喜之/若人之生無窮/孰不自喜其身者,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5. 故聖人將遊於物之所不得遯而皆存, ◈ 故는 '{...}'다. ◈ 聖人은 {...}이다. ◈ 將은 부사어로, '{...}'는 말이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명사구인 物之所不得遯而皆存을 받는다. ◈ 物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 物之의 之는 {...}다. ◈ 所는 '{...}'를 이른다. 不得遯而皆存 전체를 받는다. ◈ 不得은 '{...}'는 말이다. ◈ 遯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存의 반의어로 사용되었으므로, 遯을 虧로 보고,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皆는 '{...}'다. ◈ 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夫聖人遊於變化之塗/放於日新之流/萬物萬化/亦與之萬化/化者無極/亦與之無極/誰得遯之哉//夫於生爲亡而於死爲存/則何時而非存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物不得遯者/自然也/孰能逃於自然之道乎//是故聖人遊心變化之塗/放任日新之境/未始非我/何往不存耶, '{...}'라고 하였다. ◈◈ 宣穎은 聖人全體造化/形有生死/而此理已與天地同流/故曰皆存,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6. 善妖善老/善始善終/人猶效之, ◈ 善은 용언으로, '{...}'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 妖는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老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처럼 해석해야 하겠다. 아마 夭의 가차자일 것이다. 夭는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다만, 이 말은 본래 {...}는 뜻이 아니다. 《釋名》에서는 少壯而死曰夭, '{...}'라고 하였다. 少壯은 '{...}'는 말이다. 夭를 '{...}'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禮記》 「曲禮 上」에서 三十曰壯, '{...}'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崔本作狡/同//古卯反//本又作夭/於表反//簡文於橋反/云/異也, '{...}'라고 했다. 狡는 '{...}'는 뜻이다. 盧文弨는 今本作夭,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妖字/正作夭//夭妖古通用//史記周本紀後宮童妾所棄妖子/徐廣曰/妖/一作夭///崔氏作狡/非也, '{...}'라고 하였다. 徐廣의 말은 裴駰의 《史記集解》에 인용되어 있다. 郭慶藩은 또, 世德堂本妖作夭/闕誤引張君房本作少, '{...}'라고 하였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다. ◈ 老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始는 체언으로, 본래 '{...}'을 뜻한다. 여기서 始는 終에 대조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終이 '{...}'을 의미하므로, 始는 '{...}'을 의미해야 한다. ◈ 終은 체언으로, '{...}'을 의미한다. 《禮記》 「檀弓 上」에 子張病/召申祥而語之曰/君子曰終/小人曰死/吾今日其庶几乎, '{...}'라는 말이 있다. 鄭玄은 死之言澌也/事卒爲終/消盡爲澌, '{...}'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終에 대해 言但身終/功名尙在, '{...}'라고 하였고, 또 死에 대해서는 無功名可錄/但形骸澌盡也, '{...}'라고 하였다. 즉, 終은 {...}로 사용되었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猶는 부사어로, '{...}'다. ◈ 效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善妖善老와 善始善終을 가리키는 말 같다. ◈◈ 郭象은 此自均於百年之內/不善少而否老/未能體變化/齊死生也//然其平粹/猶足以師人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善妖, 善老, 善始, 善終은 모두 {...}는 말이다. [본문으로]
  17. 又況萬物之所係/而一化之所待乎, ◈ 又는 부사어로, '{...}'다. ◈ 況은 '{...}'다. ◈ 萬物之所係의 之는 {...}다. 一化之所待의 之도 그렇다. ◈ 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屬, '{...}'라고 하였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一은 아마 관형어로, '{...}'이라는 말인 듯하다. ◈ 化는 체언으로, '{...}'다. ◈ 待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乎는 {...}다. ◈◈ 郭象은 此玄同萬物而與化爲體/故其爲天下之所宗也/不亦宜乎,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人之識性/明暗不同//自有百年之中/一生之內/從容平淡/鮮有欣慼/至於壽夭老少/都不介懷//雖未能忘生死/但復無嫌惡/猶足以爲物師傅/人放效之//而況混同萬物/冥一變化//屬在至人/必資聖知/爲物宗匠/不亦宜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萬物之所係, 一化之所待는 道를 {...}는 말이다. [본문으로]
  18. 夫道/有情有信/無爲無形, ◈ 夫는 '{...}'와 같이 {...}이다. ◈ 道는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情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孟子》 「離婁 下」에 故聲聞過情/君子恥之, '{...}'라는 말이 있는데, 朱熹는 情을 實, 즉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宣穎은 情者/靜之動也, '{...}'라고 하였다. ◈ 信은 체언으로, '{...}'를 이른다. 宣穎은 信者/動之符也, '{...}'라고 하였다. ◈ 無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爲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形은 체언으로, '{...}'다. ◈◈ 郭象은 有無情之情/故無爲也//有無常之信/故無形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明鑒洞照/有情也//趣機若響/有信也//恬淡寂寞/無爲也//視之不見/無形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9. 可傳而不可受, ◈ 可는 '{...}'는 말이다. ◈ 傳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直專反//注同, '{...}'라고 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受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古今傳而宅之/莫能受而有之,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0. 可得而不可見, ◈ 可는 '{...}'는 말이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咸得自容/而莫見其狀,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寄言詮理/可傳也//體非量數/不可受也//方寸獨悟/可得也//離於形色/不可見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莊子는 「齊物論」에서 眞宰에 대해 可形已信/而不見其形/有情而無形, '{...}'라고 한 적이 있었다. 眞宰는 道와 같다. [본문으로]
  21. 自本自根/未有天地/自古以固存, ◈ 自本自根의 自는 自以,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成玄英은 從, '{...}'라고 하였다. ◈ 本은 체언으로, '{...}'이다. ◈ 根은 체언으로, '{...}'다. ◈ 未는 부정어다. 有를 한정한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天地를 받는다. ◈ 自古의 自는 부사어로, '{...}'다. 古를 받는다. ◈ 古는 체언으로, '{...}'이다. ◈ 以는 아마 부사어로, '{...}'일 것이다. 已와 같다. 《禮記》 「檀弓 下」에 則豈不得以,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以與已字本同爾//㠯/古以字, '{...}'라고 하였다. 즉, 以는 已, '{...}'라는 뜻이다. 이 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㠯以已」에 수록되어 있다. ◈ 固는 부사어로, '{...}'다. ◈ 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有, '{...}'라고 하였다. ◈◈ 郭象은 明無不待有而無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虛通至道/無始無終//從古以來/未有天地/五氣未兆/大道存焉//故老經云有物混成/先天地生//又云迎之不見其首/隨之不見其後者也, '{...}'라고 하였다. 《老經》은 《道德經》을 이른다. 인용문은 《道德經》 25장과 14장이다. ◈◈ 宣穎은 道爲事物根本/更無有爲道之根本者/自本自根耳,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2. 神鬼神帝/生天生地, ◈ 神은 아마 용언으로, '{...}'는 말 같다. ◈ 鬼는 체언으로, '{...}'이다. 鬼는 뒤에 나오는 堪坏와 馮夷 등을 이른다. ◈ 帝는 체언으로, '{...}'이다. 帝는 뒤에 나오는 狶韋氏와 伏戲氏 등을 이른다. ◈ 生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좋겠다. 《禮記》 「中庸」에 故天之生物/必因其材而篤焉,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生은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郭象은 無也/豈能生神哉//不神鬼帝而鬼帝自神/斯乃不神之神也//不生天地而天地自生/斯乃不生之生也//故夫神之果不足以神/而不神則神矣/功何足有/事何足恃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大道能神於鬼靈/神於天帝/開明三景/生立二儀/至無之力/有茲功用//斯乃不神而神/不生而生/非神之而神/生之而生者也//故老經云天得一以清/神得一以靈也, '{...}'라고 하였다. 生之而生者也는 문맥상 非生之而生者也로 보고 번역하였다. 《老經》은 《道德經》을 이른다. 인용문은 《道德經》 39장이다. 39장에는 天得一以清과 神得一以靈 사이에 地得一以寧, '{...}'라는 말이 더 있다. ◈◈ 王先謙은 下文堪坏馮夷等/鬼也//豨韋伏羲等/帝也//其神/皆道神之, '{...}'라고 하였다. 《莊子集解》에는 豨韋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狶韋라고 되어 있다. [본문으로]
  23. 在太極之先而不爲高/在六極之下而不爲深/先天地生而不爲久/長於上古而不爲老, ◈ 在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太極은 체언으로, '{...}'이다. 成玄英은 五氣, '{...}'라고 하였다. 五氣는 아마 {...}을 이르는 듯하다. 太는 《經典釋文》에는 大로 되어 있다. 陸德明은 音泰,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陰陽未判/是爲太極, '{...}'라고 하였다. ◈ 太極之先의 之는 {...}다. 六極之下의 之도 그러하다. ◈ 太極之先의 先은 체언으로, '{...}'이다. 즉, '{...}' 있었다는 뜻이다. 陸德明은 一本作之先未/崔本同,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今本作一本作先之/無未字, '{...}'라고 하였다. ◈ 而不爲高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而不爲深, 而不爲久, 而不爲老의 而도 그렇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禮記》 「檀弓 下」에 夫子爲弗聞也者而過之, '{...}'라는 말이 있고, 《史記》 「范睢蔡澤列傳」에는 於是范睢乃得見於離宮/詳爲不知永巷而入其中, '{...}'라는 말이 있다. 두 문장에서 爲는 모두 '{...}'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 六極은 체언으로, {...}를 합한 말이다. '{...}'을 이른다. 成玄英은 六合, '{...}'이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天地四方/謂之六極, '{...}'라고 하였다. 또, 「齊物論」에 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成玄英은 六合者/謂天地四方也//六合之外/謂眾生性分之表/重玄至道之鄉也, '{...}'라고 하였었다. ◈ 下는 체언으로, 아마 '{...}'을 뜻하는 것 같다. ◈ 深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先天地生의 先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天地生을 받는다. 陸德明은 悉薦反, '{...}'라고 하였다. ◈ 先天地生의 生은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 久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長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久와 같다. 《國語》 「吳語」에 以民生之不長,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長을 久, '{...}'라고 풀이하였다. 陸德明은 丁丈反, '{...}'라고 하였다. ◈ 於는 비교하는 표현으로, '{...}'라는 뜻이다. 上古를 받는다. ◈ 上古은 '{...}'을 뜻한다. ◈ 不爲老의 爲에 대해 郭慶藩은 世德堂本無爲字, '{...}'라고 하였다. 그러나 형식이나 대구, 그리고 내용을 감안할 때, 爲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 老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言道之無所不在也/故在高爲無高/在深爲無深/在久爲無久/在老爲無老/無所不在/而所在皆無也//且上下無不格者/不得以高卑稱也//外內無不至者/不得以表裏名也//與化俱移者/不得言久也//終始常無者/不可謂老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且道在五氣之上/不爲高遠//在六合之下/不爲深邃//先天地生/不爲長久//長於敻古/不爲耆艾//言非高非深/非久非老/故道無不在而所在皆無者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長於上古而不爲老에 대해, 此語又見後, '{...}'라고 하였다. 이 말은 {...}에 다시 등장한다. [본문으로]
  24. 狶韋氏得之/以挈天地, ◈ 狶韋氏는 고대 중국의 제왕일 것이다. 「人間世」의 顏回 이야기에, 道를 닦은 제왕으로 伏戲와 几蘧가 함께 등장하는데, 혹시 几蘧가 이 狶韋氏가 아닌가 의뭉스럽다. 成玄英은 狶韋氏/文字已前遠古帝王號也//得靈通之道/故能驅馭群品/提挈二儀,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許豈反/郭褚伊反//李音豕//司馬云/上古帝王名, '{...}'라고 했다. 王先謙은 豨韋/即豕韋/蓋古帝王也, '{...}'라고 하였다. 《莊子集解》에는 豨韋라고 되어 있고, 《經典釋文》과 《莊子集釋》에는 狶韋라고 되어 있다. 한편, 《外篇》 「知北遊」에 狶韋氏之囿, '{...}'이라는 말이 있고, 《雜篇》 「外物」에는 且以豨韋氏之流觀今之世/夫孰能不波, '{...}'라는 말이 있다. 《雜篇》 「則陽」에는 仲尼問於大史大弢/伯常騫/狶韋,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문맥을 따져 보면, 「大宗師」, 「知北遊」, 「外物」에 나온 狶韋氏 또는 豨韋氏는 모두 제왕을 가리키는 이름이겠지만, 「則陽」에 나오는 狶韋는 그렇지 않다. 「則陽」의 狶韋는 大史, 즉 태사의 이름이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道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論語》 「爲政」에 使民敬忠以勸/如之何, '{...}'라는 말이 있다. 《禮記》 「爲政」에 治世之音安以樂/亂世之音怨以怒/亡國之音哀以思,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以는 모두 而, '{...}'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 예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㠯以已」에 수록되어 있다. ◈ 挈은 용언이다.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天地를 받는다. 《春秋穀梁傳》 「僖公」 2년에 挈其妻子以奔曹, '{...}'라는 말이 있고, 《春秋公羊傳》 「襄公」 27년에 公子鱄挈其妻子而去之, '{...}'라는 말이 있다. 두 문장에서 挈은 모두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成玄英은 又作契字者/契/合也/言能混同萬物/符合二儀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苦結反/郭苦係反//司馬云/要也/得天地要也///崔云/成也, '{...}'라고 했다. [본문으로]
  25. 伏戲氏得之/以襲氣母, ◈ 伏戲는 곧 三皇 중 伏羲를 이른다. 伏犧, 宓羲, 虙犧, 庖犧, 炮犧, 太皞, 泰皞라고 하기도 한다. 「應帝王」 중 蒲衣子의 말 속에 泰氏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泰氏 역시 伏羲를 이른다. 《易》 「繫辭 下」에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仰則觀象於天/俯則觀法於地/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遠取諸物/於是始作八卦/以通神明之德/以類萬物之情, '{...}'라는 말이 있다. 이로써 보자면 八卦를 처음 만든 사람도 伏羲가 된다. 成玄英은 伏戲/三皇也/能伏牛乘馬/養伏犧牲/故謂之伏犧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羲//崔本作伏戲氏, '{...}'라고 하였다. 이미 본문에 伏戲氏得之라고 하여 伏戲氏라고 되어 있는데, 왜 《崔譔本》에도 伏戲氏라고 되어 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을까. 《崔譔本》에 伏戲氏가 아니라 伏羲氏로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의뭉스럽다. 《經典釋文》에는 伏戲라고 되어 있다. ◈ 得은 용언으로, '얻다', '깨닫다'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以挈天地의 以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襲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 같다. 《春秋左氏傳》 「昭公」 28년에 故襲天祿/子孫賴之,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襲을 受, '{...}'라고 풀이하였다. 成玄英은 合,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襲/入也, '{...}'라고 하였다. ◈ 氣母는 체언으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氣는 관형어로, '{...}'다. 母는 체언으로, '{...}'로, 아마 '{...}'이라는 뜻일 것이다. 《管子》 「五行」, 《文子》 「九守」, 《淮南子》 「精神訓」에 모두 以天爲父/以地爲母,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父와 母는 모두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後漢書》 「隗囂公孫述列傳」에도 天爲父/地爲母, '{...}'라는 말이 있는데, 李賢은 尙書曰/惟天地/萬物父母, '{...}'라고 하였다. 이 말은 《書》 「周書 泰誓 上」에 나온다. 이 문장에서의 父와 母 역시 '{...}'이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氣母者/元氣之母/應道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氣母/元氣之母也//崔云/取元氣之本, '{...}'라고 했다. ◈◈ 成玄英은 爲得至道/故能畫八卦/演六爻/調陰陽/合元氣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6. 維斗得之/終古不忒, ◈ 維斗는 '{...}'이다. 維는 '{...}'고, 斗는 {...}이다. 成玄英은 維斗/北斗也/爲眾星綱維/故謂之維斗,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北斗/所以爲天下綱維, '{...}'라고 했다. 盧文弨는 今本天下作天之, '{...}'라고 하였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終古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古를 始,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崔云/終古/久也///鄭玄注周禮云/終古/猶言常也, '{...}'라고 하였다. 鄭玄의 이 주석은 《周禮》 「冬官考工記」의 輪已崇/則人不能登也, '{...}'는 말에 달려 있다. 문맥상 鄭玄의 설이 가장 잘 맞다. ◈ 忒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不忒은 '{...}'는 말이 된다. 이 말은 北斗星이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差,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它得反/差也//崔本作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得於至道/故歷於終始/維持天地/心無差忒,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韓非子》 「解老」에는 維斗得之以成其威, '{...}'라는 말이 있다. [본문으로]
  27. 日月得之/終古不息, ◈ 日은 '{...}'이다. ◈ 月은 '{...}'이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終古는 부사어로, '{...}'이라는 말이다. 앞의 終古不忒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 息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成玄英은 日月光證於一道/故得終始照臨/竟無休息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韓非子》 「解老」에는 日月得之以恆其光, '{...}'라는 말이 있다. [본문으로]
  28. 堪坏得之/以襲崑崙, ◈ 堪坏는 고대의 괴물을 이르는 말 같다. 成玄英은 堪坏/崑崙山神名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扶眉反/郭孚杯反//崔作邳//司馬云/堪坏/神名/人面獸形//淮南作欽負, '{...}'라고 하였다. 《淮南》은 《淮南子》다. 그런데 《淮南子》 안에 欽負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듯하다. 다만 《淮南子》 「齊俗訓」에 鉗且得道/以處昆侖, '{...}'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 鉗且가 陸德明이 든 欽負로 보인다. 鉗且는 《淮南子》 「覽冥訓」에도 나온다. 또, 《山海經》 「西山經」에 又西北四百二十里/曰鍾山/其子曰鼓/其狀如人面而龍身/是與欽䲹殺葆江于崑崙之陽,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또 《後漢書》 「列傳第四十九」, 즉 「張衡傳」에 대한 李賢의 注에서도 보이는데, 李賢은 鍾山/其子曰鼓/其狀人面而龍身/是與欽駓殺祖江于崐崘之陽, '{...}'라고 인용해 두었다. 崐崘 운운하는 말을 보면, 欽䲹와 欽駓는 모두 본문의 堪坏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일 듯하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以挈天地의 以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襲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 같다. 《春秋左氏傳》 「昭公」 28년에 故襲天祿/子孫賴之,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襲을 受, '{...}'라고 풀이하였다. 成玄英은 入, '{...}'라고 하였다. 이 문장은 문맥상 {...}가 되어야 하므로, 成玄英처럼 해석해도 뜻이 잘 통하겠다. ◈ 崑崙은 전설 속 산 이름이다. 《山海經》 「西山經」에 西南四百里/曰崑崙之丘/是實惟帝之下都/神陸吾司之, '{...}'라는 말이 있다. 이 외에도 《山海經》에 崑崙이라는 말이 나온 곳은 많지만, 취신할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史記》 「大宛列傳」에 而漢使窮河源/河源出于窴/其山多玉石/采來//天子案古圖書/名河所出山曰崑崙云, '{...}'라는 말이 있고, 또 그 뒷부분에는 禹本紀言/河出崑崙//崑崙其高二千五百餘里/日月所相避隱爲光明也//其上有醴泉/瑤池, '{...}'라는 말이 또 있다. 《禹本紀》는 《史記》 「夏本紀」가 아니라 별도의 책인 듯하다. 다만 《史記》 「大宛列傳」에 나온 崑崙은 {...}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成玄英은 崑崙/山名也/在北海之北,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崑/或作岷/同//音昆//下力門反//崑崙/山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堪坏人面獸身/得道入崑崙山爲神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9. 馮夷得之/以遊大川, ◈ 馮夷는 아마 黃河의 神으로 보인다. 《淮南子》 「原道訓」에 昔者馮夷大丙之御也/乘雲車/入雲霓/遊微霧/鶩怳忽/歷遠彌高以極往//經霜雪而無跡/照日光而無景//扶搖抮抱羊角而上/經紀山川/蹈騰昆侖/排閶闔/淪天門,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夷/或作遲//丙/或作白//皆古之得道/能御陰陽者也, '{...}'라고 하였다. 또, 《淮南子》 「齊俗訓」에는 馮夷得道/以潛大川,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高誘는 馮夷/河伯也//華陰潼郷隄首里人//服八石得水仙, '{...}'라고 하였다. 《漢書》 「禮樂志」에는 馮蠵切和疏寫平, '{...}'라는 말이 있는데, 晉灼은 馮/馮夷/河伯也//觿/觜觿/龜屬也, '{...}'라고 하였고, 顏師古는 言馮夷命靈觿/使切厲諧和水神/令之疏導川潦/寫散平均/無災害也//觿音弋隨反/又音攜, '{...}'라고 하였다. 또, 《史記》 「司馬相如列傳」에는 使靈媧鼓瑟而舞馮夷, '{...}'라는 말이 있으며, 《漢書》 「司馬相如傳」에는 使靈媧鼓琴而舞馮夷라고 인용되어 있다. 裴駰은 漢書音義曰/靈媧/女媧也//馮夷/河伯字也///淮南子曰/馮夷得道/以潛大川, '{...}'라고 하였다. 張守節은 姓馮名夷/以庚日溺死//河常以庚日好溺死人, '{...}'라고 하였다. 服虔은 靈媧/女媧也//伏犧作琴/使女媧鼓之//馮夷/河伯字也/淮南子曰馮夷得道以潛大川, '{...}'라고 하였다. 《後漢書》 「張衡列傳」에는 張衡이 지은 「思玄賦」가 인용되어 있는데, 그 중에 號馮夷俾清津兮, '{...}'라는 말이 있다. 李賢은 聖賢冢墓記曰///馮夷者/弘農華陰潼鄉隄首里人/服八石/得水仙/爲河伯///龍魚河圖曰///河伯姓呂名公子/夫人姓馮名夷, '{...}'라고 하였다. 「思玄賦」는 《文選》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누가 지은 지 알 수 없는 舊注에는 青令傳曰/河伯/華陰潼鄉人也//姓馮氏/名夷/浴於河中而溺死/是爲河伯///太公金匱曰/河伯姓馮名脩//裴氏新語謂爲馮夷///淮南子曰/馮夷服夷石而水仙, '{...}'라고 하였다. 李善은 馮夷/河伯也/華陰潼鄉隄首人/服八石而水仙, '{...}'라고 했다. 《後漢書》 「馬融列傳 上」에는 撫馮夷, '{...}'라는 말이 있는데, 李賢은 馮夷/河伯也, '{...}'라고 하였다. 한편, 《山海經》 「海內北經」에 從極之淵深三百仞/維冰夷恒都焉/冰夷人面/乘兩龍//一曰忠極之淵,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郭璞은 冰夷/馮夷也//淮南云/馮夷得道/以潛大川///即河伯也//穆天子傳所謂河伯無夷者/竹書作馮夷/字或作冰也, '{...}'라고 하였다. 《淮南》은 《淮南子》다. 인용문은 위에 인용하였듯 「齊俗訓」에 있다. 《竹書》는 《竹書紀年》일 것이다. 《竹書紀年》 「帝芬」에 十六年/洛伯用與河伯馮夷鬭, '{...}'라는 말이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姓馮/名夷/弘農華陰潼鄉堤首里人也/服八石/得水仙,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清泠傳曰/馮夷/華陰潼鄉堤首人也//服八石/得水仙/是爲河伯///一云以八月庚子浴於河而溺死/一云渡河溺死, '{...}'라고 하였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빠져 죽었는데 나중에 신격화되었을 것이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以挈天地의 以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大川은 체언으로, 아마 {...}할 수 있겠다. 成玄英은 黃河,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河也//崔本作泰川,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天帝錫馮夷爲河伯/故游處盟津大川之中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0. 肩吾得之/以處大山, ◈ 肩吾는 太山의 神이다. 「逍遙遊」에 {...}으로 나올 뿐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肩吾/神名也//得道/故處東岳爲太山之神,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山神/不死/至孔子時, '{...}'라고 하였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道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以挈天地의 以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處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大山은 체언으로, 곧 {...}되었다. 成玄英은 太山, '{...}'이라고 풀이하였다. 陸德明은 音泰/又如字,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1. 黃帝得之/以登雲天, ◈ 黃帝는 五帝 중 하나인 公孫軒轅이다. 《史記》 「五帝本紀」에 그 전설이 전한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道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以挈天地의 以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登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德充符」 王駘 이야기, 그리고 「大宗師」 앞부분에 登假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의 의미와 같다. ◈ 雲天은 체언으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雲은 '{...}', 天은 '{...}'이다. ◈◈ 成玄英은 黃帝/軒轅也//採首山之銅/鑄鼎於荊山之下/鼎成/有龍垂於鼎以迎帝/帝遂將群臣及後宮七十二人/白日乘雲駕龍/以登上天/仙化而去,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崔云/得道而上天也, '{...}'라고 했다. ◈◈ 孃破案 : 이 이야기는 《史記》 「封禪書」에 나온다. 「封禪書」에는 黃帝采首山銅/鑄鼎於荊山下//鼎既成/有龍垂胡髯下迎黃帝//黃帝上騎/群臣後宮從上者七十餘人/龍乃上去, '{...}'라고 되어 있다. [본문으로]
  32. 顓頊得之/以處玄宮, ◈ 顓頊은 五帝 중 하나인 高陽氏를 이른다. 黃帝의 증손자다. 《史記》 「五帝本紀」에 그 전설이 전한다. 成玄英은 顓頊/黃帝之孫/即帝高陽也/亦曰玄帝//年十二而冠/十五佐少昊/二十即位//採羽山之銅爲鼎/能召四海之神/有靈異//年九十七崩/得道/爲北方之帝,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專//下許玉反, '{...}'라고 하였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以挈天地의 以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處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玄宮은 궁궐 이름이다. 成玄英은 玄者/北方之色/故處於玄宮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顓頊/帝高陽氏//玄宮/北方宮也//月令曰/其帝顓頊/其神玄冥, '{...}'라고 하였다. 「月令」은 《禮記》의 「月令」이다. [본문으로]
  33. 禺強得之/立乎北極, ◈ 禺強은 아마 북쪽의 神일 것이다. 成玄英은 禺強/水神名也/亦曰禺京//人面鳥身/乘龍而行/與顓頊並軒轅之胤也//雖復得道/不居帝位而爲水神//水位北方/故位號北極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虞/郭語龍反//司馬云/山海經曰/北海之渚有神/人面鳥身/珥兩青蛇/踐兩赤蛇/名禺強///崔云/大荒經曰/北海之神/名曰禺強/靈龜爲之使//歸藏曰/昔穆王子筮卦於禺強///案海外經云/北方禺強/黑身手足/乘兩龍//郭璞以爲水神/人面鳥身///簡文云/北海神也/一名禺京/是黃帝之孫也, '{...}'라고 하였다. 司馬彪가 인용한 구절은 아마 《山海經》 「大荒東經」의 東海之渚中/有神/人面鳥身/珥兩黃蛇/踐兩黃蛇/名曰禺䝞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말은 司馬彪가 인용한 글과는 조금 다른데, 北海가 아니라 東海로 되어 있고, 그 이름도 禺強이 아니라 禺䝞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海外北經」에는 北方禺彊/人面鳥身/珥兩青蛇/踐兩青蛇, '{...}'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참고할 만할 듯하다. 崔譔이 인용한 「大荒經」은 아마 「大荒東經」일 것 같다. 다만 「大荒東經」에는 저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歸藏》은 아마 殷나라의 《歸藏易》을 뜻하는 듯하다. 陸德明이 인용한 「海外經」은 아마 《山海經》의 「海外南經」, 「海外西經」, 「海外北經」, 「海外東經」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네 글 중 어디에도 저런 말은 없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立은 용언으로, {...}는 표현인 듯하다. 坐乎少廣의 坐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 乎는 於와 같다. '{...}'다. 北極을 받는다. ◈ 北極은 체언으로, '{...}'이다. 北은 관형어로, '{...}'다. 極은 체언으로, '{...}'이다. [본문으로]
  34. 西王母得之/坐乎少廣/莫知其始/莫知其終, ◈ 西王母는 전설 속의 사람 이름이다. 西王母가 등장하는 최초의 글은 아마 《山海經》일 것이다. 《山海經》에는 西王母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西山經」에는 又西三百五十里/曰玉山/是西王母所居也//西王母其狀如人/豹尾虎齒而善嘯/蓬髮戴勝/是司天之厲及五殘, '{...}'라고 되어 있다. 戴勝은 여자가 머리에 하는 장식의 일종으로 보인다. 「海內北經」에는 西王母梯几而戴勝杖/其南有三青鳥/爲西王母取食//在崑崙虛北, '{...}'라는 말이 있다. 「大荒西經」에는 西海之南/流沙之濱/赤水之後/黑水之前/有大山/名曰崑崙之丘//有神/人面虎身/有文有尾/皆白/處之//其下有弱水之淵環之/其外有炎火之山/投物輒然//有人戴勝/虎齒/有豹尾/穴處/名曰西王母//此山萬物盡有, '{...}'라고 되어 있다. 이에 西王母에 대한 전설들도 생겨났다. 《列子》 「周穆王」에는 遂賓于西王母觴于瑤池之上//西王母爲王謠/王和之/其辭哀焉, '{...}'라고 되어 있다. 張湛은 西王母에 대해 人𩔖也//虎齒蓬髮/戴勝菩嘯也//出山海經, '{...}'라고 하였다. 또, 《史記》 「趙世家」에는 繆王使造父御/西巡狩/見西王母/樂之忘歸, '{...}'라는 말이 나온다. 《列子》 「周穆王」과 같은 일화를 이를 것이다. 繆王은 곧 穆王이다. 繆과 穆은 고대에 통용되었다. 繆은 '{...}'이라고 읽는다. 이처럼 중국인의 전설 속에서 西王母는 유명인이었기에, 漢代에 서쪽으로 가는 길이 열리자 西王母를 찾아 보려고 하는 경우도 생겼다. 《史記》 「大宛列傳」에는 安息長老傳聞條枝有弱水西王母/而未嘗見, '{...}'라는 말이 있다. 《漢書》 「西域傳 上」에도 安息長老傳聞條支有弱水西王母//亦未嘗見也, '{...}'라는 말이 있다. 한편, 《大戴禮記》 「少閒」에는 昔虞舜以天德嗣堯/布功散德制禮/朔方幽都來服//南撫交趾/出入日月/莫不率俾/西王母來獻其白琯//粒食之民昭然明視/民明教/通于四海/海外肅愼北發渠搜氐羌來服, '{...}'라는 말이 있다. 成玄英은 王母/太陰之精也/豹尾/虎齒/善笑//舜時/王母遣使獻玉環/漢武帝時/獻青桃//顏容若十六七女子/甚端正/常坐西方少廣之山/不復生死/故莫知始終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山海經云/狀如人/狗尾/蓬頭/戴勝/善嘯/居海水之涯//漢武內傳云/西王母與上元夫人降帝/美容貌/神仙人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이 인용한 《山海經》은 아마 「西山經」인 듯하다. 「西山經」의 내용은 위에 이미 인용해 두었다. 《漢武內傳》은 소설인데, 아마도 東晉 이후에 쓰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坐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立乎北極의 立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處와 같이 '{...}'라고 보아도 좋겠다. ◈ 乎는 於와 같다. '{...}'다. 少廣을 받는다. ◈ 少廣은 지명이다. 아마 산 이름일 것이다. 成玄英은 少廣/西極山名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穴名///崔云/山名///或云/西方空界之名, '{...}'라고 하였다. ◈ 莫은 부정어다. 知를 한정한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其는 西王母를 가리킨다. ◈ 始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終은 체언으로, '{...}'를 이른다. [본문으로]
  35. 彭祖得之/上及有虞/下及五伯, ◈ 彭祖는 사람 이름이다. 堯의 신하였다. 7~800살을 살았던 일로 유명하였다. 「逍遙遊」에 而彭祖乃今以久特聞/眾人匹之/不亦悲乎, '{...}라는 말이 있었다. 「逍遙遊」의 이 부분에 달려 있는 주석이 훨씬 상세하므로, 彭祖에 대해 읽고 싶으면 「逍遙遊」의 주석을 참고하길 바란다. 成玄英은 彭祖/帝顓頊之玄孫也//封於彭城/其道可祖/故稱彭祖/善養性/得道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解見逍遙篇//崔云/壽七百歲//或以爲仙/不死, '{...}'라고 하였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上는 부사어로, '{...}'다. ◈ 及은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德이 '{...}'처럼 의역할 수도 있겠다. ◈ 有虞는 舜을 이른다. 有虞의 有는 {...}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人特以有君爲愈乎己의 有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下는 부사어로, '{...}'다. ◈ 伯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라고 읽는다. 霸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五伯는 '{...}'가 된다. 그러나 이 五伯는 春秋五霸를 뜻하지 않는다. 成玄英은 五伯者/昆吾爲夏伯/大彭豕韋爲殷伯/齊桓晉文爲周伯/合爲五伯,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如字//又音霸//崔李云/夏伯昆吾/殷大彭豕韋/周齊桓晉文, '{...}'라고 했다. ◈◈ 成玄英은 而彭祖得道/所以長年/上至有虞/下及殷周/凡八百年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6. 傅說得之/以相武丁/奄有天下/乘東維/騎箕尾/而比於列星, ◈ 傅說은 사람 이름이다. 殷나라 때 王이었던 武丁을 보좌하여 殷나라를 부흥시킨 재상이었다. 說은 '{...}'로 읽는다. 그 행적은 《史記》 「殷本紀」, 《書》의 「商書 說命 上」, 「商書 說命 中」, 「商書 說命 下」 등에 전한다. 《書》의 세 편은 모두 武丁이 傅說을 찾거나 傅說과 武丁이 서로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데 내용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史記》 「殷本紀」에는 《書》 「商書 說命 上」에서 武丁이 傅說을 찾는 과정이 약술되어 있는데, 이 말만 인용해 보겠다. 「殷本紀」에는 帝小乙崩/子帝武丁立//帝武丁即位/思復興殷/而未得其佐//三年不言/政事決定於冢宰/以觀國風//武丁夜夢得聖人/名曰說//以夢所見視群臣百吏/皆非也//於是乃使百工營求之野/得說於傅險中//是時說爲胥靡/筑於傅險//見於武丁/武丁曰是也//得而與之語/果聖人/舉以爲相/殷國大治//故遂以傅險姓之/號曰傅說, '{...}'라고 되어 있다. 成玄英은 傅說/星精也//而傅說一星在箕尾上/然箕尾則是二十八宿之數/維持東方/故言乘東維騎箕尾//而與角亢等星比並行列/故言比於列星也, '{...}'라고 하였다. 傅說은 죽은 뒤에 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 고사를 이르는 듯하다. 陸德明은 音悅, '{...}'라고 하였고, 또 司馬云/傅說/殷相也//武丁/殷王高宗也//東維/箕斗之間/天漢津之東維也//星經曰/傅說一星在尾上/言其乘東維/騎箕尾之間也///崔云/傅說死/其精神乘東維/託龍尾/乃列宿//今尾上有傅說星//崔本此下更有其生無父母/死登假三年而形遯/此言神之無能名者也/凡二十二字, '{...}'라고 하였다. 《崔譔本》에 더 있다는 말은 '{...}'라는 의미 같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를 가리킨다. ◈ 以는 '{...}'처럼 해석된다. 而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以挈天地의 以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相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禮記》 「檀弓 上」에 天不遺耆老/莫相予位焉,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과 孔穎達은 相을 佐,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息亮反, '{...}'라고 하였다. ◈ 武丁은 사람 이름이다. 殷나라의 王인 高宗을 이른다. 傅說과 함께 殷나라를 다시 일으켰던 사람이다. 그 행적은 《史記》 「殷本紀」, 《書》의 「商書 說命 上」, 「商書 說命 中」, 「商書 說命 下」, 「商書 高宗肜日」에 전한다. 成玄英은 武丁/殷王名也/號曰高宗//高宗夢得傅說/使求之天下/於陝州河北縣傅巖板築之所而得之/相於武丁/奄然清泰, '{...}'라고 하였다. 한편, 傅說에 대한 陸德明의 주석을 보면, 司馬彪가 武丁/殷王高宗也, '{...}'라고 하였다고 한다. ◈ 奄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본래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는 뜻이니, 아마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詩》 「頌 周頌」의 「執競」에 自彼成康/奄有四方, '{...}'라는 말이 있고, 《詩》 「頌 商頌」의 「玄鳥」에는 方命厥后/奄有九有,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奄은 모두 '{...}'는 뜻이다. ◈ 奄有天下의 有는 {...}다. 奄에 대한 주석에 인용한 「玄鳥」에 奄有九有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 따 온 것으로 보인다. ◈ 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東維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傅說에 대한 陸德明의 주석을 보면, 司馬彪가 東維/箕斗之間/天漢津之東維也, '{...}'라고 하였다고 한다. ◈ 騎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箕尾는 체언으로, 별 이름이다. 28수 중 箕와 尾를 뜻한다. 傅說에 대한 陸德明의 주석을 보면, 星經曰/傅說一星在尾上/言其乘東維/騎箕尾之間也, '{...}'라고 했다고 한다. ◈ 而는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彼特以天爲父/而身猶愛之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比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於는 '{...}'다. 列星을 받는다. ◈ 列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列星은 체언으로, '{...}'이 되고, 이는 곧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라고 해석하였다. ◈◈ 郭象은 道/無能也//此言得之於道/乃所以明其自得耳//自得耳/道不能使之得也//我之未得/又不能爲得也//然則凡得之者/外不資於道/內不由於己/掘然自得而獨化也//夫生之難也/猶獨化而自得之矣/既得其生/又何患於生之不得而爲之哉//故夫爲生果不足以全生/以其生之不由於己爲也/而爲之則傷其眞生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下引七事以明之,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莊子는 「大宗師」 첫 부분에서 먼저 {...}하여 읽어야 하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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