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30. 11:06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30일 11시 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16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58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1 - 포의자가 설결을 깨우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7-1
內篇 應帝王第七
齧缺問於王倪,四問而四不知。齧缺因躍而大喜,行以告蒲衣子。
蒲衣子曰:「而乃今知之乎?有虞氏不及泰氏。有虞氏,其猶藏仁以要人;亦得人矣,而未始出於非人。
泰氏,其臥徐徐,其覺于于;一以己爲馬,一以己爲牛;其知情信,其德甚眞,而未始入於非人。」
내편 응제왕 제7(內篇應帝王第七, ◈◈ 郭象은 夫無心而任乎自化者/應爲帝王也,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崔云/行不言之教/使天下自以爲牛馬/應爲帝王者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應帝王」에 대해서는 따로 序를 붙이지 않고, 郭象의 말을 재인용하기만 해 두었다. ◈◈ 孃破案 : 儒學者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학문의 시작은 {...}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해 줄 수 있는 통치자야말로 帝王이라 부를 만하다. 이 점이 바로 이 편의 제목인 應帝王의 의미다.)
설결이 왕예에게 네 번 물었지만 [왕예는] 네 번 다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설결은 그런 대답을 듣고는 방방 뛰며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는] 포의자에게 가서 이야기했다.(齧缺問於王倪/四問而四不知//齧缺因躍而大喜/行以告蒲衣子, ◈ 齧缺은 사람 이름이다. 「齊物論」에 齧缺과 王倪가 대화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본문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에서 내용이 이어진다. 《外篇》 「天地」, 「知北遊」, 《雜篇》 「徐無鬼」에도 나온다. 《淮南子》 「原道訓」에도 등장하는데, 「原道訓」에 나오는 이야기는 「知北遊」의 내용과 같다. 이 외의 문헌에는 나와 있지 않다. 「天地」에는 堯之師曰許由/許由之師曰齧缺/齧缺之師曰王倪/王倪之師曰被衣, '{...}'라는 말이 있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五結反//下丘悅反, '{...}'라고 하였다. ◈ 問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於는 '{...}'라는 말이다. 王倪를 받는다. ◈ 王倪는 사람 이름이다. 齧缺과 함께 「齊物論」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외에는 《外篇》 「天地」에 언급될 뿐이다. 다른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陸德明은 五兮反, '{...}'라고 하였다. ◈ 四問은 '{...}'라는 말이다. 四는 '{...}'이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不는 부정어다.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不知는 '{...}'는 말이다. 따라서, 四問而四不知는 '{...}'는 말이 된다. 이 이야기는 「齊物論」에서 齧缺과 王倪가 나눈 이야기를 뜻한다. 成玄英은 四問而四不知/則齊物篇中四問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向云/事在齊物論中, '{...}'라고 했다. 王先謙도 見齊物論, '{...}'라고 하였다. ◈ 因는 '{...}'라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因是, '{...}'처럼 해석된다. ◈ 躍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躍而는 아마 躍然, '{...}'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而는 然과 같다. 然은 {...}이다. 《書》 「虞書 益稷」에 啟呱呱而泣, '{...}'라는 말이 있고, 《詩》 「國風 召南」에 舒而脫脫兮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이를 脫脫然舒也, '{...}'라고 풀이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 17년에는 鋌而走/險急何能擇,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鋌/疾走貌, '{...}'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然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예시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 大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喜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行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行以告의 以는 而와 같다. '{...}'라고 해석된다. 《論語》 「爲政」에 使民敬忠以勸/如之何, '{...}'라는 말이 있다. 《禮記》 「爲政」에 治世之音安以樂/亂世之音怨以怒/亡國之音哀以思,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以는 모두 而, '{...}'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 예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㠯以已」에 수록되어 있다. ◈ 蒲衣子는 사람 이름이다. 《外篇》 「天地」에는 堯之師曰許由/許由之師曰齧缺/齧缺之師曰王倪/王倪之師曰被衣,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被衣가 아마 이 蒲衣子일 것이다. 즉, 王倪의 스승이 된다. 《外篇》 「知北遊」, 《淮南子》 「原道訓」에 齧缺과 함께 등장하지만, 「原道訓」의 이야기는 「知北遊」를 베낀 것이다. 《尸子》의 逸文 중에 蒲衣生八年/舜讓以天下,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蒲衣는 蒲衣子가 아니거나, {...} 천하를 양위했다고 했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 8년이 아니라 80년이면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成玄英은 蒲衣子/堯時賢人/年八歲/舜師之/讓位不受/即被衣子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尸子云/蒲衣八歲/舜讓以天下///崔云/即被衣/王倪之師也///淮南子曰/齧缺問道於被衣, '{...}'라고 하였다. 《尸子》 인용문은 위에 설명하였듯 逸文이다. 王繼培가 낸 《尸子校正》의 「散見諸書文匯輯」에 수록되어 있다. 《淮南子》 인용문은 「道應訓」에 나온다. ◈◈ 成玄英은 夫帝王之道/莫若忘知/故以此義而爲篇首//老子云不以智治國國之德者也, '{...}'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아마 《道德經》 65장을 인용한 듯한데, 65장에는 國之德이 아니라 國之福, '{...}'라고 되어 있다. ◈◈ 孃破案 : 「齊物論」에 나왔던 齧缺과 王倪의 문답에서 {...}하고 번역하였다.) 포의자가 말했다.(蒲衣子曰)
"너는 이제서야 도 앞에서 만물이 모두 같다는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느냐.(而乃今知之乎, ◈ 而는 2인칭 대명사로, 齧缺을 이른다. 王先謙은 汝, '{...}'라고 하였다. ◈ 乃今는 한 단어로, '{...}'라는 말이다. 《韓非子》 「外儲說 左上」에 寡人出亡二十年/乃今得反國, '{...}'라는 말이 있고, 《韓非子》 「難 三」에 始吾不知水可以滅人之國/吾乃今知之, '{...}'라는 말이 있다. 《春秋左氏傳》 「昭公」 2년에 吾乃今知周公之德與周之所以王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서 乃今은 모두 '{...}'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齊物論」에 나왔던 物之所同是, '{...}'을 가리킨다. ◈ 乎는 {...}다. ◈◈ 成玄英은 齧缺得不知之妙旨/仍踴躍而喜歡/走以告於蒲衣子/述王倪之深義//蒲衣是方外之大賢/達忘言之至道/理無知而固久/汝今日乃知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齧缺이 王倪와 {...}하고 있다.) 유우씨는 태씨 만하지는 못했다.(有虞氏不及泰氏, ◈ 有虞氏는 舜이다. 虞라는 것은 舜의 氏다. 《書》 「虞書 堯典」에 有鰥在下/曰虞舜,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孔安國은 虞/氏//舜/名, '{...}'라고 하였다. 또 孔穎達은 舜之爲虞/猶禹之爲夏/外傳稱禹氏曰有夏/則此舜氏曰有虞//顓頊已來/地爲國號/而舜有天下/號曰有虞氏/是地名也//王肅云/虞/地名也///皇甫謐云/堯以二女妻舜/封之於虞/今河東太陽山西虞地是也///然則舜居虞地/以虞爲氏/堯封之虞爲諸侯/及王天下/遂爲天子之號/故從微至著/常稱虞氏, '{...}'라고 하였다. 《外傳》은 《春秋外傳》인데, 이는 곧 《國語》다. 이처럼 舜의 氏가 虞이므로, 虞氏라고 한 듯하다. 그러면 虞氏면 虞氏지, 왜 有를 붙여서 有虞氏라고 했을까. 여기서 有는 {...}다. 王引之는 《經傳釋詞》 「有」에서 有/語助也//一字不成詞/則加有字以配之//若虞夏殷周/皆國名/而曰有虞有夏有殷有周/是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舜, '{...}'이라고 하였다. ◈ 不은 부정어다. 及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따라서 不及는 '{...}'는 말이 된다. 不如와 같다. ◈ 泰氏는 사람 이름이다. 고대의 제왕일 것이다. 成玄英은 太昊伏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上古帝王也///崔云/帝王也///李云/大庭氏//又云/無名之君也, '{...}'라고 했다. 郭慶藩은 路史前紀七引司馬云/上古之帝王/無名之稱///與釋文所引小異, '{...}'라고 하였다. 《路史》는 趙宋의 羅泌이 지은 책이다. 《山海經》의 「海內經」을 토대로 상고사를 기술한 책이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郭象은 夫有虞氏之與泰氏/皆世事之跡耳/非所以跡者也//所以跡者/無跡也/世孰名之哉//未之嘗名/何勝負之有耶//然無跡者/乘群變/履萬世/世有夷險/故跡有不及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三皇之世/其俗淳和//五帝之時/其風澆競//澆競則運知而養物/淳和則任眞而馭宇/不及之義/騐此可知也, '{...}'라고 하였다.) [왜 미치지 못하는가.] 유우씨는 도리어 [마음 속에] 인을 품고는 사람들을 끌어 들이려 하였는데, 어찌하여 [인을 가지고] 사람을 얻기는 하였으나, 결국 남의 시비를 가리는 수준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有虞氏/其猶藏仁以要人//亦得人矣/而未始出於非人, ◈ 有虞氏는 舜이다. ◈ 其猶는 부사어로, '{...}'라는 표현 같다. 猶는 본래 그러한 뜻이고, 其 역시 아마 그런 뜻인 듯하다. 《論語》 「雍也」와 《論語》 「憲問」에 堯舜其猶病諸, '{...}'라는 말이 있고, 《外篇》 「田子方」에 文王其猶未邪, '{...}'라는 말이 있으며, 《尹文子》 「大道 上」에 天下萬事不可備能/責其備能於一人/則賢聖其猶病諸, '{...}'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其猶는 모두 '{...}'처럼 해석된다. ◈ 藏은 용언으로, '{...}'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는 말로 보아야 타당하겠다. 《呂氏春秋》 「季秋紀 知士」에 藏怒以待之,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藏을 懷,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才剛反//崔云/懷仁心以結人也//本亦作臧/作剛反/善也//簡文同,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趙諫議本藏作臧, '{...}'라고 하였다. 臧 역시 藏의 가차자일 것이다. ◈ 仁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 其猶藏仁以要人의 以는 '{...}'다. 藏仁을 받는다. ◈ 要는 용언으로, 要求라는 말처럼 '{...}'라는 말일 것이다. 《孟子》 「告子 上」에 今之人修其天爵/以要人爵, '{...}'라는 말이 있는데, 趙技는 要/求也, '{...}'라고 하였고, 孫奭도 要求, '{...}'라고 풀이하였다. 朱熹는 要音邀//要/求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一遙反//注同, '{...}'라고 하였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要人이라는 말은 아마 '{...}'는 말 같다. ◈ 亦은 부사어로, '{...}' 같은 말로 보인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未始는 '{...}'라는 말이다. ◈ 出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것 같다. ◈ 於는 '{...}'다. 명사구인 非人을 받는다. ◈ 非人은 명사구로, '{...}'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非는 誹, '{...}'는 뜻이다. 宣穎은 非人者/物也//有心要人/猶擊於物/是未能超出於物之外,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夫以所好爲是人/所惡爲非人者/唯以是非爲域者也//夫能出於非人之域者/必入於無非人之境矣/故無得無失/無可無不可/豈直藏仁而要人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舜/包藏仁義/要求士庶/以得百姓之心/未是忘懷/自合天下/故未出於是非之域//亦有作臧字者//臧/善也//善於仁義/要求人心者也, '{...}'라고 하였다. ◈◈ 郭嵩燾는 有人之見存/而要人之仁行焉//無人之見存/出入鳥獸之群而不亂//其與人也汎乎相遇泯泯之中/而奚以要人爲//出於非人/忘非我之分矣//入於非人/人我之分之兩忘者/不以心應焉//爲馬爲牛/非獨忘人也/亦忘己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非人이라는 말은 「齊物論」에 있는 齧缺과 王倪의 대화를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이야기를 「齊物論」의 {...}을 구별하고 분별한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 「齊物論」 이론 부분에 有以爲未始有物者/至矣盡矣/不可以加矣//其次以爲有物矣/而未始有封也//其次以爲有封焉/而未始有是非也//是非之彰也/道之所以虧也, '{...}'라는 말이 있었다. 이처럼, 是非가 {...}를 가리는 행위다.)"
<포의자의 말 이어짐>
"[그러나] 태씨는 [유우씨 같지 않았다.] 장차 누워 잘 때는 안온했고, 깨 있을 때는 편안했다.(泰氏/其臥徐徐/其覺于于, ◈ 其臥의 其는 아마 부사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將과 같다. 其覺의 其도 그렇다. 《書》 「虞書 皋陶謨」에 天工人其代之, '{...}'라는 말이 있고, 《書》 「商書 湯誓」에 予其大賚汝, '{...}'라는 말이 있으며, 《書》 「商書 盤庚 上」에 天其永我命于玆新邑,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隱公」 11년에 吾子孫其覆亡之不暇/而況能禋祀許乎,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其는 모두 將, '{...}'라는 뜻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臥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徐徐는 '{...}'을 뜻하는 것 같다. 徐은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는 말로 보아야 한다. 《國語》 「越語」에 安徐而重固, '{...}'라는 말이 있다. 安徐는 安과 徐가 같은 의미로 사용된 한 단어일 것이다. 安이 '{...}'는 말이므로, 徐 역시 '{...}'라고 보아야 한다. 다른 단서도 있다. 「大宗師」에 其寢不夢/其覺無憂,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句와 {...}처럼 해석해야 할 것이다. 成玄英은 寬緩之貌,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如字//崔本作袪袪, '{...}'라고 하였다. 《說文解字》에서는 袪에 대해 一曰袪/褱也//褱者/袌也, '{...}'라고 하였는데, 褱에 '{...}'는 뜻이 있으므로, 아마 이렇게 의미가 와전되어 袪袪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다. 褱는 懷와 같다. 《詩》 「國風 邶風」의 「終風」에 寤言不寐/願言則懷, '{...}'라는 말이 있다. 鄭玄은 安, '{...}'라고 하였다. 그러니 褱도 安,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于于에 대한 陸德明의 주석을 보면, 徐徐에 대해 司馬彪는 安穩貌, '{...}'이라고 하였고, 簡文帝는 寐之狀, '{...}'이라고 했다고 한다. ◈ 覺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古孝反, '{...}'라고 하였다. ◈ 于于는 아마 '{...}'을 뜻하는 것 같다. 《禮記》 「檀弓 下」에 易則易/于則于/易于雜者未之有也,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于는 於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鄭玄은 易謂臣禮/于謂君禮, '{...}'라고 하였다. 그런데 孔穎達은 於/謂廣大, '{...}'라고 하였고, 또 於音近迂/迂是廣大之義/故論語云/子之迂也///與此同也, '{...}'라고 하였다. 인용문은 《論語》 「子路」다. 迂는 '{...}'는 말이다. 즉, '{...}'는 뜻과 통한다. 《論語》 인용문에서는 {...}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니, 문맥은 孔穎達이 같다고 지적한 점과는 아주 상이하다. 그러나 본의는 '{...}'와 '{...}'로 서로 통한다. 于가 '{...}'는 말이라면, 于于는 '{...}'이 되는데, 이는 곧 '{...}'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于于를 '{...}'이라고 한 것이다. 다른 단서도 있다. 徐徐 부분에 기술하였듯, 「大宗師」에 其寢不夢/其覺無憂,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句는 其覺無憂에 대응된다. 근심이 없다는 말은 {...}해야 한다. 成玄英은 自得之貌,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如字//司馬云/徐徐/安穩貌//于于/無所知貌//簡文云/徐徐于于/寐之狀也, '{...}'라고 했다. 郭慶藩은 于于/即盱盱也//說文/盱/張目也///于與盱/聲近義同//淮南俶眞篇/萬民睢睢盱盱然//魯靈光殿賦鴻荒朴略/厥狀睢盱/張載曰/睢盱/質朴之形///正與司馬注無所知意相合//淮南覽冥篇臥倨倨/興盱盱/高注曰/盱盱/無智巧貌也///又淮南盱盱作眄眄//王氏讀書雜志據諸書證爲盱盱之僞/亦正與質朴無知同義,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淮南》 「俶眞」은 《淮南子》 「俶眞訓」이다. 「魯靈光殿賦」에서 魯는 前漢의 제후국인 魯나라를 뜻한다. 靈光殿은 魯나라의 궁궐 이름이다. 「魯靈光殿賦」은 後漢의 王延壽가 靈光殿을 소재로 지은 賦다. 「魯靈光殿賦」는 《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淮南》 「覽冥」은 《淮南子》 「覽冥訓」이다. 지금 「覽冥訓」에는 興盱盱가 아니라 興眄眄으로 되어 있다. ◈◈ 成玄英은 伏犧之時/淳風尙在/故臥則安閒而徐緩/覺則歡娛而自得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泰氏의 모습은 「大宗師」 이론 부분에 {...}과 같다.) [태씨는 만물이 도 앞에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만물을 분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을 말이라고 하기도 했고, 가끔은 자신을 소라고 하기도 했다.(一以己爲馬/一以己爲牛, ◈ 一은 아마 부사어로, '{...}'이라는 말 같다. ◈ 以는 '{...}'이다. 己를 받는다. ◈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馬는 체언으로, {...}이다. ◈ 牛는 체언으로, '{...}'다. ◈◈ 郭象은 夫如是/又奚是人非人之有哉//斯可謂出於非人之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忘物我/遺是非/或馬或牛/隨人呼召//人獸尙且無主/何是非之有哉,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 앞에 {...}으로 보인다. 《外篇》 「天道」에 子呼我牛也/而謂之牛/呼我馬也/而謂之馬,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과 의미가 같다. 士成綺가 老子를 만났는데 {...}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듯] 태씨의 식견은 정말 믿을 만했고(其知情信, ◈ 其는 泰氏를 가리킨다. ◈ 知는 체언으로, '{...}'다. ◈ 情은 부사어로, '{...}' 같은 말이다. 《論語》 「子路」에 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 '{...}'라는 말이 있다. 孔安國은 情/情實也, '{...}'라고 하였고, 邢昺 역시 情猶情實也, '{...}'라고 하였다. 朱熹는 情/誠實也, '{...}'라고 하였다. 주석들을 참고하면, 情은 實이나 誠과 통용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情은 부사어였다. 實과 誠은 부사어로 모두 '{...}'라는 말이다. 따라서 情 역시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 ◈ 信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任其自知/故情信,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率其眞知/情無虛矯/故實信也, '{...}'라고 하였다.), 태씨의 덕은 진정 참되었으니(其德甚眞, ◈ 其는 泰氏를 가리킨다. ◈ 德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 甚은 부사어로, '{...}'이라는 말이다. ◈ 眞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任其自得/故無僞,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以不德爲德/德無所德/故不僞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泰氏가 道를 깨닫고 {...}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서 [태씨는] 남의 시비를 가리는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았던 것이다.(而未始入於非人, ◈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未始는 '{...}'라는 말이다. ◈ 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나는 '{...}'라고 의역했다. ◈ 於는 '{...}'다. 명사구인 非人을 받는다. ◈ 非人은 명사구로, 상기하였듯, '{...}'이라고 보아야 한다. ◈◈ 郭象은 不入乎是非之域/所以絕於有虞之世,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率其情/其德不僞/故能超出心知之境/不入是非之域者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渾同自然/毫無物累/未始陷入於物之中,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有虞氏가 是非에 아직 {...}는 말이다.)"
'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 > 원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3 - 천근이 무명인에게 천하를 다스릴 방법을 묻다 (0) | 2021.09.09 |
---|---|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2 - 접여가 견오와 중시를 힐난하다 (0) | 2021.09.09 |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9 - 자여가 자상을 문병하다(끝) (0) | 2021.08.29 |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8 - 안회가 좌망하여 중니가 놀라다 (0) | 2021.08.29 |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7 - 의이자가 허유에게 도를 묻다 (0) | 202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