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 6 - 대종사 - 8 - 안회가 좌망하여 중니가 놀라다

2021. 8. 29. 13:32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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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12일 9시 53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8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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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56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8 - 안회가 좌망하여 중니가 놀라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7?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2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6-8

 

顏回曰:「回益矣。」

 

仲尼曰:「何謂也?」

 

曰:「回忘仁義矣。」

 

曰:「可矣,猶未也。」

 

他日,復見,曰:「回益矣。」

 

曰:「何謂也?」

 

曰:「回忘禮樂矣。」

 

曰:「可矣,猶未也。」

 

他日,復見,曰:「回益矣。」

 

曰:「何謂也?」

 

曰:「回坐忘矣。」

 

仲尼蹵然曰:「何謂坐忘?」

 

顏回曰:「墮肢體,黜聰明,離形去知,同於大通,此謂坐忘。」

 

仲尼曰:「同則無好也,化則無常也。而果其賢乎!丘也請從而後也。」

 

 

안회가 말했다.(顏回曰, ◈ 顏回는 孔子의 제자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顏回者/魯人也/字子淵//少孔子三十歲, '{...}'라고 되어 있다. 「人間世」에도 등장한 적이 있었고, 이 앞의 孟孫才 이야기에서도 등장하였었다.)

 

"회는 정진했도다.(回益矣, ◈ 回는 顏回를 이른다. ◈ 益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여기서는 '{...}'는 말로 사용되었다. 《廣韻》에서는 益을 增과 進으로 풀이했는데, 增은 '{...}'는 말이고, 進은 '{...}'는 말이다. 이 풀이가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역설적이다. 이 이야기에서 {...} 것이다. 郭象은 以損之爲益也, '{...}'라고 하였고, 成玄英은 顏子稟教孔氏/服膺問道/覺己進益/呈解於師//損有益空/故以損爲益也, '{...}'라고 하였는데, 이 내용을 감안한 설명이라 하겠다.)"

 

중니가 말했다.(仲尼曰, ◈ 仲尼는 孔子를 이른다. 孔子의 字가 仲尼다.)

 

"무슨 말이냐.(何謂也, ◈ 何謂는 '{...}'라는 말이다. 何는 의문사로, '{...}'이다. 謂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 也는 邪처럼 {...}로 해석해야 하겠다. ◈◈ 成玄英은 既言益矣/有何意謂, '{...}'라고 하였다.)"

 

[안회가] 말했다.(曰)

 

"회는 인과 의를 잊었다.(回忘仁義矣, ◈ 回는 顏回다. ◈ 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해석하면 타당하겠다. 仁義를 받는다. ◈ 仁義는 체언으로, {...}다. {...}이기도 하다. ◈◈ 成玄英은 忘兼愛之仁/遣裁非之義/所言益者/此之謂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仁義는 {...}에 대응된다.)"

 

[중니가] 말했다.(曰)

 

"좋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可矣/猶未也, ◈ 可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猶는 부사어로, '{...}'이라고 해석된다. ◈ 未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는 말일 것이다. 보통 未는 {...}가 있을까. 《論語》 「季氏」에 陳亢問於伯魚曰/子亦有異聞乎///對曰/未也,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未는 '{...}'라는 뜻이다. 또, 《論語》 「陽貨」에 子曰/由也/女聞六言六蔽矣乎///對曰/未也,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도 未는 '{...}'라는 뜻이다. 《管子》 「地數」에 桓公問於管子曰/事盡於此乎///管子對曰/未也, '{...}'라는 말이 있고, 《管子》 「輕重 乙」에 桓公曰/壤數盡於此乎///管子對曰/未也, '{...}'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未는 '{...}'라는 뜻이다. 《史記》 「春申君列傳」에는 春申君曰/娉入乎///對曰/未也,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도 未는 '{...}'라는 말이다. 그러면 반대로 {...} 可라고 한다. 可는 '{...}'는 뜻이다. ◈◈ 郭象은 仁者/兼愛之跡//義者/成物之功//愛之非仁/仁跡行焉//成之非義/義功見焉//存夫仁義/不足以知愛利之由無心/故忘之可也//但忘功跡/故猶未玄達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仁義已忘/於理漸可//解心尙淺/所以猶未, '{...}'라고 하였다.)"

 

다른 날에 [안회가 중니를] 다시 뵙고 말했다.(他日/復見/曰, ◈ 他日은 명사구로, '{...}'이다. 他는 관형어로, '{...}'이다. 日은 '{...}'을 이른다. 成玄英은 他日/猶異日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崔本作異日//下亦然, '{...}'라고 하였다. 아마 고대나 {...}했던 것 같다. ◈ 復는 부사어로, '{...}'이다. '{...}'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扶又反//下同, '{...}'라고 하였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이라고 읽는다. {...}는 말이다.)

 

"회는 정진했도다.(回益矣, ◈ 回는 顏回다. ◈ 益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進과 같다. ◈◈ 成玄英은 空解日新/時更復見//所言進益/列在下文, '{...}'라고 하였다.)"

 

[중니가] 말했다.(曰)

 

"무슨 말이냐.(何謂也, ◈ 何謂는 '{...}'라는 말이다. 何는 의문사로, '{...}'이다. 謂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 也는 邪처럼 {...}로 해석해야 하겠다. ◈◈ 成玄英은 所言益者/是何意謂也, '{...}'라고 하였다.)"

 

[안회가] 말했다.(曰)

 

"회는 예와 악을 잊었다.(回忘禮樂矣, ◈ 回는 顏回다. ◈ 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禮樂은 체언으로, {...}이다. {...}이기도 하다. ◈◈ 成玄英은 禮者/荒亂之首/樂者/淫蕩之具/爲累更重/次忘之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禮樂은 사회적인 {...}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니가] 말했다.(曰)

 

"좋다, 그러나 아직 모자라다.(可矣/猶未也, ◈ 可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猶는 부사어로, '{...}'이라고 해석된다. ◈ 未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는 말일 것이다. ◈◈ 郭象은 禮者/形體之用/樂者/樂生之具//忘其具/未若忘其所以具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虛心漸可/猶未至極也, '{...}'라고 하였다.)"

 

[다시] 다른 날에 [안회가 중니를] 또 만나서는 말했다.(他日/復見/曰, ◈ 他日은 명사구로, '{...}'이다. 他는 관형어로, '{...}'이다. 日은 '{...}'을 이른다. ◈ 復은 부사어로, '{...}'이다. '{...}'라고 읽는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이라고 읽는다. {...}는 말이다.)

 

"회는 정진했도다.(回益矣, ◈ 回는 顏回다. ◈ 益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進과 같다. ◈◈ 成玄英은 並不異前解也, '{...}'라고 하였다.)"

 

[중니가] 말했다.(曰)

 

"무슨 말이냐.(何謂也, ◈ 何謂는 '{...}'라는 말이다. 何는 의문사로, '{...}'이다. 謂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 也는 邪처럼 {...}로 해석해야 하겠다. ◈◈ 成玄英은 並不異前解也, '{...}'라고 하였다.)"

 

[안회가] 말했다.(曰)

 

"회는 좌망하였다.(回坐忘矣, ◈ 回는 顏回다. ◈ 坐忘은 아마 '{...}'는 말이 아닐까 한다. 앞에서 仁, 義, 禮, 樂을 잊었다고 했으니 忘은 '{...}'는 뜻이 분명하다. 坐에 해석의 여지가 있다. 坐는 본래 '{...}'라는 말이며, 일반적으로 {...} 坐의 의미 중에서 이 이야기에 어울릴 만한 사례를 찾아 보면, 크게 두 가지가 가능할 것 같다. 하나는 '{...}'다. 西晉의 張華가 지은 「雜詩」에 蘭膏坐自凝, '{...}'라는 말이 있다. 이 시는 《文選》에 수록되어 있는데, 李善은 《楚辭》에 대한 王逸의 주석을 인용해서 無故自凝曰坐, '{...}'라고 하였다. 즉, 坐는 '{...}'가 된다. 그러면 坐忘은 '{...}'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顏回가 {...} 하나는 '{...}'이다. 唐나라 사람인 柳宗元이 지은 「早梅」에 寒英坐銷落, '{...}'라는 말이 있고, 마찬가지로 唐나라 사람인 杜甫의 「答楊梓州」에 坐逢楊子鎭東州, '{...}'라는 말이 있다. 또, 朝鮮 후기 사람인 金三宜堂이 지은 「擣衣詞」에 强對淸砧坐夜闌,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坐는 모두 '{...}'라는 말이다. 坐가 '{...}'라면, 坐忘은 '{...}'는 말이 된다. 이 관점이 문맥과 가장 잘 어울린다. 仁義와 禮樂을 잊고, {...}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 있다. 郭慶藩은 文選賈長沙鵩鳥賦注引司馬云/坐而自忘其身///釋文闕, '{...}'라고 하였다. 注는 李善의 注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한편 陸德明은 崔云/端坐而忘, '{...}'라고 했다. ◈◈ 成玄英은 虛心無著/故能端坐而忘//坐忘之義/具列在下文,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坐忘이란, {...}를 뜻한다. 「養生主」 庖丁 이야기에 官知止而神欲行, '{...}'라는 말이 있었다.)"

 

[이에] 중니가 낯빛을 고치고 말했다.(仲尼蹵然曰, ◈ 仲尼는 孔子의 字다. ◈ 蹵然은 《莊子集解》에는 蹵然으로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蹴然으로 되어 있다. 《經典釋文》에는 蹵으로 되어 있다. 蹵은 본래 '{...}'는 말인데, 이 문장에서 蹵然은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마 愀의 가차자로 쓰인 듯하다. 愀는 '{...}'는 말로, 이 부분의 蹵과 의미가 동일하다. 《荀子》의 「修身」에 見不善/愀然必以自省也,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愀然/憂懼貌, '{...}'라고 하였다. 《史記》의 「蘇秦列傳」에는 齊王愀然變色, '{...}'라는 말이 있다. 《禮記》의 「哀公問」에는 孔子愀然作色, '{...}'라는 말이 있고, 《大戴禮記》의 「哀公問於孔子」에도 孔子愀然作色, '{...}'라는 말이 똑같이 있다. 鄭玄은 愀然/變動貌也//作/猶變也, '{...}'라고 하였다. 이 말들을 종합해 보면, 愀然은 '{...}'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본문의 蹵然과 의미가 일치한다. 《內篇》에는 蹵然이라는 말이 몇 차례 등장한다. 「德充符」에서 申徒嘉에게 한 소리를 듣고 子產蹵然改容更貌曰, '{...}'라는 말이 있고, 「應帝王」에서 老聃의 비판을 듣고 陽子居蹴然曰, '{...}'라는 말이 있다. 모두 문맥이 동일하다. 발음도 비슷했던 것 같다. 陸德明은 蹵에 대해 子六反//崔云/變色貌, '{...}'라고 하였는데, 《禮記》 「哀公問」의 愀에 대해서는 愀/七小反/舊慈糾反/又在由反/又音秋/又子了反/下同, '{...}'라고 하였다. 子와 六의 반절이면 {...}나 생각된다. 成玄英은 蹴然/驚悚貌也/忘遺既深/故悚然驚歎, '{...}'라고 하였다.)

 

"좌망이란 무엇이냐.(何謂坐忘, ◈ 何는 의문사로, '{...}'이다.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何謂坐忘은 '{...}'가 된다. ◈◈ 成玄英은 坐忘之謂/厥義云何也, '{...}'라고 하였다.)"

 

안회가 말했다.(顏回曰)

 

"[감각적으로는] 지체를 내버려 두고, 총명을 쫓아 버려야 하고(墮肢體/黜聰明, ◈ 墮는 용언이다. 본래 '{...}'는 말이다. 여기서는 '{...}'처럼 해석해야 한다. 肢體를 받는다. 《淮南子》 「說林訓」에 虎有子/不能搏攫者/輒殺之/爲墮武也,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墮/廢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許規反//徐又待果反,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毀廢,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許規反//徐又待果反, '{...}'라고 하였다. ◈ 肢는 체언으로, '{...}'를 뜻하고, 體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즉, 肢體는 '{...}'을 뜻한다. ◈ 黜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成玄英은 退除, '{...}'라고 하였다. ◈ 聰은 '{...}'라는 말이고, 明은 '{...}'는 뜻이다. 즉, 聰明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孟子》 「離婁 上」에 離婁之明, '{...}'라는 말이 있는데, 朱熹는 離婁/古之明目者, '{...}'라고 하였다. 즉, 「離婁 上」 본문에서 明은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成玄英은 雖聰屬於耳/明關於目/而聰明之用/本乎心靈//既悟一身非有/萬境皆空/故能毀廢四肢百體/屏黜聰明心智者也, '{...}'라고 하였다. ◈◈ 盧文弨는 依次當在蹴然之前, '{...}'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아마 墮肢體/黜聰明이라는 말이 仲尼蹵然曰 앞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 같다. ◈◈ 孃破案 : 仁義과 禮樂을 내려 {...}는 뜻이다.), [의식적으로는] 육신을 멀리하고, 식견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는 천지 만물과] 대통하는 [도의] 경지에 함께 하는 것, 이것을 좌망이라고 한다.(離形去知/同於大通/此謂坐忘, ◈ 離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앞의 墮에 대응된다. ◈ 形은 체언으로, '{...}'다. 앞의 肢體에 대응된다. ◈ 去는 용언으로, '{...}' 혹은 '{...}'는 말이다. 앞의 黜에 대응된다. 《孟子》 「滕文公 下」에 去關市之征,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去는 '{...}'는 뜻이다. 《管子》 「山至數」에는 泰秋/國穀去參之一, '{...}'라는 말이 있는데, 房玄齡은 去/減也//丘呂反, '{...}'라고 하였다. 또, 《漢書》 「五行志 下之上」에 夏帝卜殺之/去之/止之/莫吉,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은 去謂驅逐也/止謂拘留也//去音丘呂反,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起呂反, '{...}'라고 하였다. ◈ 知는 체언이다. '{...}'이 아니라 '{...}'이이라고 보아야 한다. 앞의 聰明에 대응된다. 「養生主」에 官知止而神欲行, '{...}'라는 말이 있었다. 여기서 官은 '{...}', 知는 '{...}'을 뜻했었다. 陸德明은 音智, '{...}'라고 하였다. ◈ 同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呂氏春秋》 「審分覽 君守」에 離世別群/而無不同,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同을 和, '{...}'라고 설명하였다. ◈ 於는 '{...}'다. 명사구인 大通을 받는다. ◈ 大通은 명사구로, '{...}'을 뜻한다. 道를 이른다. 成玄英은 大通/猶大道也//道能通生萬物/故謂道爲大通也, '{...}'라고 하였다. ◈ 此는 離形去知/同於大通을 가리킨다. 물론 {...}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此謂는 옳게 쓰자면 此之謂 혹은 謂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 {...} 듯하다. ◈◈ 郭象은 夫坐忘者/奚所不忘哉//既忘其跡/又忘其所以跡者/內不覺其一身/外不識有天地/然後曠然與變化爲體而無不通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外則離析於形體/一一虛假/此解墮肢體也//內則除去心識/悗然無知/此解黜聰明也//既而枯木死灰/冥同大道/如此之益/謂之坐忘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總上二句, '{...}'라고 하였다. 上二句는 {...}을 이른다.)"

 

중니가 말했다.(仲尼曰)

 

"[대통하는 도의 경지와] 함께 하면 [인과 의처럼] 좋[고 싫]은 [점으로 분별하려는] 행태가 없게 될 것이요(同則無好也, ◈ 同은 용언이다. 同於大通의 同처럼 '{...}'는 말이다. ◈ 則은 '{...}'이라는 말이다. ◈ 無는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好를 받는다. ◈ 好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仁義에 대응된다. 「德充符」 말미에서 莊子는 惠子에게 {...}가 道라고 하였다. 「齊物論」의 愛와도 의미가 같다. 陸德明은 呼報反//注同, '{...}'라고 하였다. ◈◈ 郭象은 無物不同/則未嘗不適/未嘗不適/何好何惡哉,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無私心, '{...}'라고 하였다.), [도의 뜻을 따라서] 변해 가면 [예와 악처럼 사람들을 얽어 매는] 규범도 없게 될 것이다.(化則無常也, ◈ 化는 {...}는 말이다. ◈ 則은 '{...}'이라는 말이다. ◈ 無는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常을 받는다. ◈ 常은 法과 같다. 체언으로, '{...}'이라는 뜻이다. {...}에 해당된다. {...}이란 곧 '{...}'와 같다. 즉, 常의 의미와 통한다. 郭象은 '{...}'이라고 해석한 듯하고, 成玄英, 李民樹, 安東林, 安炳周와 田好根은 모두 常을 '{...}'이라고 해석하였다. 변화에 {...}과 합치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 ◈◈ 郭象은 同於化者/唯化所適/故無常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同於大道/則無是非好惡//冥於變化/故不執滯守常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無滯理, '{...}'라고 하였다.) 너는 과연 지극히 현명하구나. 구는 [너를] 좇아 뒤따르고 싶도다.(而果其賢乎//丘也請從而後也, ◈ 而는 아마 2인칭 대명사일 것이다. 顏回를 이른다. 成玄英은 汝, '{...}'라고 하였다. ◈ 果는 부사어로, '{...}'이다. 成玄英은 決, '{...}'라고 하였다. ◈ 其는 아마 綦의 가차자인 듯하다. 부사어로, '{...}'라는 뜻이다. ◈ 賢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乎는 {...}다. ◈ 丘는 孔子의 이름이다. ◈ 丘也의 也는 {...}다. ◈ 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從而後를 받는다. ◈ 從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而後의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後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成玄英은 忘遺如此/定是大賢//丘雖汝師/遂落汝後//從而學之/是丘所願///撝謙退己/以進顏回者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爾誠賢乎//吾亦願學//極贊以進回,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仁義를 {...}를 뿐이다. 이것이 坐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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