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9. 13:30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12일 9시 53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8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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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55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7 - 의이자가 허유에게 도를 묻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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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6-7
意而子見許由,
許由曰:「堯何以資汝?」
意而子曰:「堯謂我:『汝必躬服仁義而明言是非。』」
許由曰:「而奚來爲軹?夫堯既已黥汝以仁義,而劓汝以是非矣,汝將何以遊夫遙蕩恣睢轉徙之塗乎?」
意而子曰:「雖然,吾願遊於其藩。」
許由曰:「不然。夫盲者無以與乎眉目顏色之好,瞽者無以與乎青黃黼黻之觀。」
意而子曰:「夫無莊之失其美,據梁之失其力,黃帝之亡其知,皆在鑪捶之間耳。庸詎知夫造物者之不息我黥而補我劓,使我乘成以隨先生邪?」
許由曰:「噫!未可知也。我爲汝言其大略,吾師乎!吾師乎!𩐈萬物而不爲義,澤及萬世而不爲仁,長於上古而不爲老,覆載天地刻彫衆形而不爲巧。此所遊已。」
의이자가 허유를 만났다. 허유가 말했다.(意而子見許由//許由曰, ◈ 意而子는 사람 이름이다. 아마 莊子가 {...}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莊子는 「齊物論」에서 아무것도 구분하지 {...}한 적이 있다. 成玄英은 意而/古之賢人,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賢士也, '{...}'라고 했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 許由는 {...}이다. 이미 「逍遙遊」 등 여러 편에서 등장하였었다.)
"요가 너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더냐.(堯何以資汝, ◈ 堯는 고대의 聖王이다. ◈ 何는 의문사로, '{...}'이다. ◈ 以는 '{...}'이다. 何를 받는다. ◈ 資는 용언으로, '{...}'는 말인 것 같다.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戰國策》 「秦策」에 王資臣萬金而遊,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資를 給, '{...}'라고 풀이하였다. 본문에 대해, 郭象은 資者/給濟之謂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資/給濟之謂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도 資/給也, '{...}'라고 하였다. ◈ 汝는 2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 成玄英은 意而先謁帝堯/後見仲武//問云/帝堯大聖/道德甚高/汝既謁見/有何敬授資濟之術/幸請陳說耳, '{...}'라고 하였다. 仲武는 許由의 字다. ◈◈ 孃破案 : 意而子는 許由를 {...} 묻고 있다.)"
의이자가 말했다.(意而子曰)
"요는 내게 '너는 반드시 인의에 몸소 복종하고, 옳고 그런 것을 명백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堯謂我/汝必躬服仁義而明言是非, ◈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 汝는 2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汝必躬服仁義而明言是非는 {...}해 주고 있는 것이다. ◈ 必은 부사어로, '{...}'다. ◈ 躬은 아마 부사어로, '{...}'이라는 말 같다. 成玄英은 身, '{...}'라고 하였다. ◈ 服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仁義는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다. {...}을 뜻한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明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是非는 체언으로, '{...}'다. ◈◈ 成玄英은 仁則恩慈育物/義則斷割裁非/是則明賞其善/非則明懲其惡//此之四者/人倫所貴/汝必須己身服行/亦須明言示物//此是意而述堯教語之辭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나는 평소에 成玄英의 {...}도 없다.)"
허유가 말했다.(許由曰)
"[그러면] 너는 [내게] 왜 온 것이냐.(而奚來爲軹, ◈ 而는 2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成玄英은 汝, '{...}'라고 했다. 王先謙도 汝, '{...}'라고 했다. ◈ 奚는 의문사로, '{...}'다. 成玄英은 何, '{...}'라고 하였다. ◈ 來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는 말이다. ◈ 爲는 {...}다. 《春秋左氏傳》 「襄公」 17년에 而何以田爲, '{...}'라는 말이 있고, 「襄公」 22년에는 我將飮酒/而己雨行/何以聖爲, '{...}'라는 말이 있다. 또, 《國語》 「楚語」에 亡人得生/又何不來爲,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서 爲는 모두 乎처럼, {...}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爲」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볼 만한 점이 하나 더 있다. 來爲軹는 《莊子集釋》과 《經典釋文》에는 來爲軹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解》에는 爲來軹라고 되어 있다. 만약 {...}를 바꾼 듯하다. ◈ 軹는 아마 只의 가차자로, 只와 같은 {...}일 것이다. 爲처럼 {...}에 사용된다. {...}로 전용된 듯 보인다. 그러면 只는 어떻게 사용될까. 예를 들어 《楚辭》 「大招」의 모든 句는 只로 종결된다. 또, 《詩》 「國風 鄘風」의 「柏舟」에 母也天只/不諒人只,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只는 모두 {...}로 사용되었다. 게다가 《毛詩正義》에서 毛亨은 母也天只를 母也天也라고 인용해 두었으니, 이렇게 인용한 까닭은 {...}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只旨咫軹」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之是反/郭之忍反//崔云/軹/辭也///李云/是也, '{...}'라고 했다. 王先謙은 軹同只,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軹/語助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堯將教跡刑害於汝/瘡痕已大/何爲更來矣, '{...}'라고 하였다.) 저 요는 이미 네게 인의를 자자해 버렸고, 시비를 따져서 네 코를 베어 버렸다. [벌써 이 지경까지 와 버렸는데] 앞으로 니가 요탕하고, 자휴하며, 전사한 [도의] 경지를 어떻게 거닐 수 있다 하겠느냐.(夫堯既已黥汝以仁義/而劓汝以是非矣/汝將何以遊夫遙蕩恣睢轉徙之塗乎, ◈ 夫堯의 夫는 '{...}'처럼 {...}이다. ◈ 既已는 부사어로, '{...}'다. 既와 已는 모두 '{...}'다. ◈ 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說文解字》 「黑部」에 黥/墨刑在面也//从黑京聲, '{...}'라고 되어 있다. 즉, 堯가 {...}는 뜻이다. 成玄英은 鑿額,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其京反, '{...}'라고 하였다. ◈ 汝는 2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 以仁義의 以는 '{...}'다. 仁義를 받는다. 以是非의 以도 그렇다. 是非를 받는다. 그런데 以仁義의 以는 {...}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 仁義는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다. {...}을 뜻한다. ◈ 而는 순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劓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割鼻,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魚器反//李云/毀道德以爲仁義/不似黥乎//破玄同以爲是非/不似劓乎, '{...}'라고 했다. ◈ 是非는 체언으로, '{...}'다. ◈ 將은 부사어로, '{...}'라는 뜻이다. ◈ 何는 아마 체언으로, '{...}'일 것이다. 何以의 以는 '{...}'다. 따라서 何以는 아마 '{...}'와 같은 말일 것이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夫遙蕩恣睢轉徙之塗를 받는다. ◈ 夫遙蕩의 夫는 '{...}'라고 보면 좋겠다. ◈ 遙蕩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遙는 逍遙라는 말처럼 '{...}'는 말이다. 蕩은 '{...}'는 말이다. 《論語》 「陽貨」에 古之狂也肆/今之狂也蕩, '{...}'라는 말이 있다. 孔安國은 蕩/無所據, '{...}'라고 하였고, 邢昺은 忿怒而多咈戾/惡理多怒, '{...}'라고 하였다. 朱熹는 蕩則踰大閑矣, '{...}'라고 하였다. 이처럼 법도를 {...}일 것이다. 陸德明은 王云/縱散也, '{...}'라고 하였다. ◈ 恣睢도 용언으로, 遙蕩처럼 '{...}'라는 말이다. 恣는 '{...}'는 말이다. 睢는 {...}는 말이다. 《史記》 「伯夷列傳」에 暴戾恣睢, '{...}'라는 말이 있는데, 司馬貞은 恣睢謂恣行爲睢惡之貌也, '{...}'라고 하였고, 張守節은 睢/仰白目/怒貌也, '{...}'라고 하였다. 아마 눈을 {...}일 것이다. 成玄英은 縱任,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七咨反/又如字//郭李云/許維反/徐許鼻反//李王皆云/恣睢/自得貌, '{...}'라고 했다. ◈ 轉徙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일 것이다. 轉은 '{...}'는 말이고, 徙 역시 '{...}'는 말이다. 《淮南子》 「脩務訓」에 百里奚轉鬻, '{...}'이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轉을 轉行, '{...}'라고 풀이하였다. 이처럼 轉은 '{...}'는 의미로 사용된다. 成玄英은 變化, '{...}'라고 하였다. ◈ 之는 {...}로, '{...}'이라는 말이다. ◈ 塗는 체언으로, '{...}'이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成玄英은 道, '{...}'이라고 했다. ◈ 乎는 {...}다. ◈◈ 郭象은 言其將以刑教自虧殘/而不能復遊夫自得之場/無係之塗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仁義是非/損傷眞性/其爲殘害/譬之刑戮//汝既被堯黥劓/拘束性情/如何復能遨遊自得/逍遙放蕩/從容自適於變化之道乎//言其不復能如是, '{...}'라고 하였다. ◈◈ 宣穎은 如加之以刑然,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汝既爲堯所誤/何以遊乎逍遙放蕩縱任變化之境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遙蕩과 恣睢, 轉徙는 모두 道를 {...}지도 모르겠다.)"
의이자가 말했다.(意而子曰)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도의 경계에서라도 거닐고 싶다.(雖然/吾願遊於其藩, ◈ 雖然은 역접으로, '{...}'이라는 말이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 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遊於其藩을 받는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其藩를 받는다. ◈ 其는 遙蕩恣睢轉徙之塗를 가리킨다. 즉, 道를 뜻한다. ◈ 藩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陸德明은 甫煩反/李音煩//司馬向皆云/崖也///崔云/域也, '{...}'라고 했다. ◈◈ 郭象은 不敢復求涉中道也/且願遊其藩傍而已,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我雖遭此虧殘/而庶幾之心靡替/不復敢當中路/願涉道之藩傍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言雖不能遵途/願涉其藩籬,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意而子는 堯가 자신에게 {...} 것이다.)"
허유가 말했다.(許由曰)
"안 된다. 저 맹자는 [여자의] 생김새와 안색이 아름다워도 [보고] 즐거워할 수가 없고, 고자는 색깔과 무늬가 멋져도 [보고] 즐거워할 수가 없는 법이[다. 이처럼 너도 인의와 시비로 재단당했으니 도와 함께할 수는 없]다.(不然//夫盲者無以與乎眉目顏色之好/瞽者無以與乎青黃黼黻之觀, ◈ 不然은 '{...}'는 말이다. 不은 부정어다. 然을 한정한다. 然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然은 遊於其藩을 가리킨다. 意而子에게 '{...}'라고 하는 말이다. ◈ 夫는 '{...}'처럼 {...}이다. ◈ 盲은 '{...}'이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盲者는 '{...}'이 된다. 그런데 대구를 이루고 있는 瞽 역시 '{...}'이라는 말이다. 그럼 이 둘은 뭐가 다르길래 莊子가 따로 언급하고 있을까. 成玄英은 盲者/有眼睛而不見物//瞽者/眼無眹縫如鼓皮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本又作眇//崔本作目/云/目/或作刑//刑/黥劓也, '{...}'라고 했다. 眇에는 '{...}'이라는 의미도 있고, '{...}'라는 의미도 있다. 아마 잘 안 보이는 {...}는 사람일 것이다. ◈ 無以는 '{...}'라는 말이다. 여기서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以는 用과 같다. '{...}'이다. 그런데 有以와 無以는 내가 알기로,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로, 본문의 無以처럼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때 以는 用, '{...}'을 뜻한다. 《禮記》 「檀弓 下」에는 生無以爲養/死無以爲禮也, '{...}'라는 말이 있다. 두 번째로, '{...}'처럼 해석될 수 있다. 이 때 以는 所以, '{...}'과 같다. 《孟子》 「梁惠王 上」에 無以異也, '{...}'라는 말이 있고, 《荀子》 「彊國」에는 則無以異於桀紂/而求有湯武之功名/可乎, '{...}'라는 말이 있다. 세 번째로, '{...}'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 때 以는 아마 能, '{...}' 또는 爲, '{...}'라는 뜻인 듯하다. 《論語》 「季氏」에 不學詩/無以言, '{...}'라는 말이 있고, 또 不學禮/無以立, '{...}'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子張」에 無以爲也, '{...}'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堯曰」에는 不知命/無以爲君子也//不知禮/無以立也//不知言/無以知人也, '{...}'라는 말이 있다. 《荀子》 「勸學」에는 故不積蹞步/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 '{...}'라는 말이 있다. 한편 《內篇》 「逍遙遊」에는 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 '{...}'라는 말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처럼 해석될 수도 있다. 이 때 以는 '{...}'라는 뜻이다. 《孟子》 「公孫丑 下」에는 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 '{...}'라는 말이 있고, 또 《孟子》 「告子 上」에는 無以小害大/無以賤害貴, '{...}'라는 말이 있다. ◈ 與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것 같다. 원래 의미 그대로 '{...}'라고 보아도 의미가 통한다. 《淮南子》 「天文訓」에 聖人不與也,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與/猶說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豫//下同, '{...}'라고 하였다. ◈ 與乎眉目顏色之好의 乎는 於와 같은데, 於는 다시 以와 같다. '{...}'이라는 뜻이다. 《論語》 「雍也」에 君子博學於文,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於는 以처럼 '{...}'라고 사용되었다. 乎는 眉目顏色之好를 받는다. 與乎青黃黼黻之觀의 乎도 그렇다. 이 乎는 青黃黼黻之觀을 받는다. ◈ 眉目은 체언으로, '{...}'이다. 眉는 '{...}', 目은 '{...}'이다. ◈ 顏色 역시 체언으로, '{...}'을 이른다. 顏은 '{...}'이고, 色은 '{...}'이다. ◈ 之好의 之는 {...}다. 之觀의 之도 그렇다. ◈ 好는 체언으로, '{...}'이라고 보면 타당하겠다. 《國語》 「晉語」에 雖好色/必惡心/不可謂好,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好/美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如字/又呼報反, '{...}'라고 하였다. ◈ 瞽는 '{...}'이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즉, 瞽者는 '{...}'이 된다. 盲 부분에서 설명하였듯, 盲이 '{...}'는 말이라면, 瞽는 '{...}'는 말이다. 盲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길 바란다. ◈ 青黃은 체언으로, {...}들을 뜻한다. 青은 '{...}', 黃은 '{...}'이다. ◈ 黼黻은 체언으로, {...}들을 뜻한다. 黼와 黻은 모두 {...}다. 《禮記》 「月令」에 是月也/命婦官染採/黼黻文章/必以法故, '{...}'라는 말이 있다. 鄭玄은 白與黑謂之黼/黑與青謂之黻/青與赤謂之文/赤與白謂之章, '{...}'라고 하였다. 「月令」에 대해 陸德明은 黼音甫//黻音弗,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作斧形謂之黼/兩己相背謂之黻, '{...}'라고 했다. 이 말은 {...}을 뜻한다. 陸德明은 上音甫/下音弗, '{...}'라고 하였다. ◈ 觀은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古亂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而盲瞽之人/眼睛已敗/既不能觀文彩青黃/亦不愛好眉目顏色//譬意而遭堯黥劓/情智已傷/豈能愛慕深玄/觀覽眾妙邪,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意而子가 堯 때문에 {...}도 하다. ◈◈ 孃破又案 : 상기하였듯, 盲者는 눈 앞이 {...}이 있다. 또, 莊子는 「逍遙遊」 중 連叔과 肩吾 이야기 중 이 말과 비슷하게 비유한 적이 있었다. 「逍遙遊」에서는 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 '{...}'라고 하였었다.)"
의이자가 말했다.(意而子曰)
"저 무장이 자기 미모를 잃었던 일, 거량이 자기 용력을 잃었던 일, 황제가 자기 지혜를 잊었던 일은 모두 [조물이] 화로와 망치[를 어떻게 써서 만물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에 달린 일이었을 뿐이다.(夫無莊之失其美/據梁之失其力/黃帝之亡其知/皆在鑪捶之間耳,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 無莊은 사람 이름이다. 고대의 美人이라는데, 「大宗師」 외에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成玄英은 無莊/古之美人/爲聞道故/不復莊飾/而自忘其美色也, '{...}'라고 했는데, 成玄英이 무엇에 근거해서 이렇게 설명하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陸德明은 無莊과 據梁에 대해 司馬云/皆人名///李云/無莊/無莊飾也///據梁/強梁也, '{...}'라고 했다. ◈ 無莊之의 之는 {...}일 것 같다. 據梁之, 黃帝之의 之도 모두 그렇다. ◈ 失은 용언이다. '{...}'라기 보다는, '{...}'는 말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는 말이기 때문이다. 失은 逸과 통용되는데, 逸에는 '{...}'라는 의미가 있다. 아마 그런 맥락에서 失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다. 失과 대구를 이루는 亡 역시 '{...}'는 말임을 감안하면, 이 설이 또한 타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春秋左氏傳》 「成公」 16년에 明日復戰/乃逸楚囚,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逸/縱也, '{...}'라고 하였다. ◈ 其美의 其는 無莊을 가리킨다. ◈ 美는 체언으로, '{...}'이다. ◈ 據梁은 사람 이름이다. 고대의 壯士라고 하는데, 「大宗師」 외에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成玄英은 據梁/古之多力人/爲聞道守雌/故不勇其力也, '{...}'라고 하였다. 그러나 成玄英이 무엇을 보고 이렇게 설명하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無莊에 대한 陸德明의 주석을 참고하면, 據梁은 사람 이름일 수도 있고, 난폭하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 其力의 其는 據梁을 가리킨다. ◈ 力은 체언으로, '{...}'이다. ◈ 黃帝는 五帝 중 한 사람인 公孫軒轅이다. 成玄英은 黃帝/軒轅也/有聖知/亦爲聞道/故能忘遣其知也, '{...}'라고 하였다. ◈ 亡은 아마 忘의 가차자일 것이다. 용언으로, '{...}'는 말이다. 《列子》 「仲尼」에 知而亡情/能而不爲/眞知眞能也,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亡은 忘, '{...}'는 말이다. ◈ 其知의 其는 黃帝를 가리킨다. ◈ 知는 체언으로, '{...}'이다. ◈ 皆는 '{...}'다. 無莊之失其美, 據梁之失其力, 黃帝之亡其知를 이른다. ◈ 在는 용언으로, {...}는 말로 보아야 하겠다. ◈ 鑪는 체언으로, '{...}'이고, 捶는 체언으로, '{...}'다. 이미 子來 이야기에서 莊子는 {...}을 뜻한다. 成玄英은 鑪는 灶, '{...}'이라고 하였고, 錘는 鍛,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盧//本又作錘//徐之睡反/又之蘂反/一音時蘂反//李云/錘/鴟頭頗口/句鐵以吹火也///崔云/盧謂之瓮//捶當作甀//盧甀之間/言小處也///甀音丈僞反,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趙諫議本捶作錘, '{...}'라고 하였다. 錘는 '{...}'다. 쇠를 {...} 도구다. ◈ 鑪捶之間의 之는 {...}다. ◈ 間은 체언으로, 본래 '{...}'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이라고 보아야 한다. ◈ 耳는 '{...}'라는 말이다. ◈◈ 郭象은 言天下之物/未必皆自成也/自然之理/亦有須冶鍛而爲器者耳//故此之三人/亦皆聞道而後忘其所務也//此皆寄言/以遣云爲之累耳,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以上三人/皆因聞道/然後忘其所務以契其眞/猶如世間器物/假於鑪冶打鍛以成其用者耳//今何妨自然之理/令夫子教示於我/以成其道耶//故知自然造物/在鑪冶之間/則是有修學冶鍛之義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를 따르게 {...}는 뜻이다.) [그러니] 저 조물이 내게 자자된 글자를 지우고 내 코를 [다시] 붙여서, 내 몸을 [새로] 갖춰 주고, 나를 [새로운 몸에] 오르게 하고는 [날 더러] 선생을 따르게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어찌 알겠느냐.(庸詎知夫造物者之不息我黥而補我劓/使我乘成以隨先生邪, ◈ 庸詎는 의문사로, '{...}'라는 말이다. ◈ 知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夫는 '{...}'처럼 {...}이다. ◈ 造物은 명사구로, '{...}'이다. {...}를 이른다. 成玄英은 造物/猶造化也, '{...}'라고 하였다. ◈ 造物者의 者는 '{...}'이다. '{...}'이라고 보고, 造物과 붙여서 造物者라고 해도 좋겠다. ◈ 夫造物者之의 之는 {...}다. ◈ 息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는 말이다. 《禮記》 「中庸」에 其人存則其政舉/其人亡則其政息,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과 朱熹는 모두 息/猶滅也, '{...}'라고 하였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처럼 해석된다. ◈ 黥은 체언으로, '{...}'다. ◈ 而는 순접이다. '{...}'다. ◈ 補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는 말이다. 이는 곧, {...}는 뜻이다. ◈ 劓는 체언으로, '{...}'다. ◈ 使는 '{...}'는 말이다. ◈ 乘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郭慶藩은 載, '{...}'는 말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보아도 좋겠다. 成은 아마 체언으로, '{...}'이 아닌가 하다. 그러면 乘成는 '{...}'는 말이 되고, 使我乘成은 '{...}'는 말이 된다. 使의 주체는, 즉 {...}다. 이 말은 곧 {...}가 되겠다. 郭慶藩은 乘과 成을 모두 용언으로 본 것 같은데, 그 설 보다는 내 설이 낫겠다. 郭慶藩은 乘/猶載也//成/猶僃也//與詩儀既成兮義同//黥劓則形體不備/息之補之/復完成矣//言造物者使我得遇先生/安知不使我載一成體以相隨耶//此兼采宣氏說/較郭訓爲長, '{...}'라고 하였다. 인용된 《詩》는 「國風 鄭風」의 「猗嗟」다. 鄭玄은 成猶備也, '{...}'라고 하였다. 兼采 宣氏는 宣穎을 이르는 듯하다. 宣穎의 말은 《莊子集解》에 인용되어 있다. 宣穎은 乘/猶載也//黥劓則體不備/息之補之/復完成矣//天今使我遇先生/安知不使我載一成體以相隨邪, '{...}'라고 하였다. ◈ 以는 '{...}'다. 使我乘成을 받는다. ◈ 隨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先生은 명사구로, '{...}'이다. 先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生은 蒼生이라는 말처럼 '{...}'을 뜻한다. 許由를 가리킨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 郭象은 夫率性直往者/自然也//往而傷性/性傷而能改者/亦自然也//庸詎知我之自然當不息黥補劓/而乘可成之道以隨夫子耶//而欲棄而勿告/恐非造物之至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我雖遭仁義是非殘傷情性/焉知造化之內/不補劓息黥/令我改過自新/乘可成之道/隨夫子以請益耶//乃欲棄而不教/恐乖造物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意而子의 말을 보면, 無莊, 據梁, 黃帝는 {...}는 뜻이다.)"
허유가 말했다.(許由曰)
"아아, [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너에게 도의 대체를 말해 주겠다.(噫//未可知也//我爲汝言其大略, ◈ 噫는 독립어로, '{...}'처럼 탄식하는 소리다. 《論語》 「子張」에 噫/言游過矣,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은 噫/心不平之聲, '{...}'라고 하였다. 직접적인 탄성은 아니지만, 그러한 정황에서 사용된 예도 있다. 《後漢書》 「袁張韓周列傳」에 及與公卿言國家事/未嘗不噫嗚流涕, '{...}'라는 말이 있는데, 李賢은 噫音醫/又乙戒反//嗚音一故反//歎傷之貌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嘆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音醫//李云/歎聲也///崔云/亂也///本亦作意/音同//又如字/謂呼意而名也, '{...}'라고 하였다. ◈ 未는 부정어다. ◈ 可는 '{...}'는 말이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未可知는 '{...}'라는 뜻이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許由를 이른다. ◈ 爲는 '{...}'라는 말이다. 汝를 받는다. 陸德明은 于僞反//注同, '{...}'라고 하였다. ◈ 汝는 2인칭 대명사로, 意而子를 이른다. ◈ 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其는 道를 가리킨다. ◈ 大略은 명사구로, '{...}'라는 말이다. 大는 '{...}'라는 뜻이고, 略은 '{...}'는 말이다. ◈◈ 成玄英은 至道深玄/絕於言象/不可以心慮測/故嘆云未可知也//既請益慇懃/亦無容杜默/雖復不可言盡/爲汝梗概陳之, '{...}'라고 하였다.) 나의 스승이여, 나의 스승이여. [도는] 만물을 뒤섞으면서도 의로운 체하지 않고, 만세에 걸쳐 [온세상에] 은택을 베풀면서도 어진 체 하지 않으며(吾師乎//吾師乎//𩐈萬物而不爲義/澤及萬世而不爲仁, ◈ 吾師乎는 '{...}'라는 말이다. {...}고 있다. 吾은 1인칭 대명사로, 許由를 이른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좋겠다. 師는 체언으로, '{...}'이다. {...}를 뜻한다. 乎는 '{...}'처럼 상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成玄英은 吾師乎者/至道也//然至道不可心知/爲汝略言其要/即吾師是也, '{...}'라고 하였다. ◈ 𩐈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것 같다. 그러면 𩐈萬物은 '{...}'라는 말이 된다. 이 글자는 《莊子集解》에는 䪢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𩐈라고 되어 있다. 《經典釋文》에는 𩐎라고 되어 있다. 모두 같은 글자일 것이다. 盧文弨는 說文作𩐎/亦作兗//陸每從敕/訛//今從隸省作𩐈//下並同,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나는 盧文弨를 따라 𩐈라고 썼다. 成玄英은 碎,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子兮反//司馬云/碎也, '{...}'라고 했다. 이처럼 司馬彪와 成玄英은 𩐈를 碎, '{...}'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처럼 보는 편이 타당할 듯하다. 《外篇》 「知北遊」에 𩐎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知北遊」에는 君子之人/若儒墨者師/故以是非相𩐎也/而況今之人乎,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郭象, 成玄英은 𩐎/和也,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子兮反/和也, '{...}'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맥상 和가 '{...}'처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여기서는 '{...}'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이 부분 본문의 𩐈 역시 {...}지 의뭉스럽다. ◈ 萬物은 체언으로, '{...}'이다. ◈ 𩐈萬物而의 而는 역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澤及萬世而의 而도 그렇다. ◈ 不은 부정어다. 爲를 한정한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보아도 좋겠다. 《禮記》 「檀弓 下」에 夫子爲弗聞也者而過之, '{...}'라는 말이 있고, 《史記》 「范睢蔡澤列傳」에는 於是范睢乃得見於離宮/詳爲不知永巷而入其中, '{...}'라는 말이 있다. 두 문장에서 爲는 모두 '{...}'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 義는 아마 체언으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爲義는 '{...}'라는 말이 된다. ◈ 澤은 체언으로, '{...}'다. ◈ 及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仁은 체언으로, '{...}'이다. 따라서 爲仁은 '{...}'라는 말이 된다. ◈◈ 郭象은 皆自爾耳/亦無愛爲於其間也/安所寄其仁義,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至如素秋霜降/碎落萬物/豈有情斷割而爲義哉//青春和氣/生育萬物/豈有情恩愛而爲仁哉//蓋不然而然也//而許由師於至道/至道既其如是/汝何得躬服仁義耶//此略爲意而說息黥補劓之方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이론 부분에 在太極之先而不爲高/在六極之下而不爲深/先天地生而不爲久/長於上古而不爲老, ' {...}'라는 말이 있었다. 王先謙은 長於上古而不爲老에 대해 語又見前,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맞다.), 상고 보다도 오래 되었으면서도 오래 되었다고 유세 부리지 않는다.(長於上古而不爲老, ◈ 長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長은 {...}는 말이다. 久와 같다. 《國語》 「吳語」에 以民生之不長,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長을 久, '{...}'라고 풀이하였다. 陸德明은 丁丈反, '{...}'라고 하였다. ◈ 於는 비교하는 말로, '{...}'라는 뜻이다. 上古를 받는다. ◈ 上古는 명사구로, 아마 '{...}'를 뜻할 것이다. ◈ 而는 역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不는 부정어다. 爲를 한정한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보아도 좋겠다. 《禮記》 「檀弓 下」에 夫子爲弗聞也者而過之, '{...}'라는 말이 있고, 《史記》 「范睢蔡澤列傳」에는 於是范睢乃得見於離宮/詳爲不知永巷而入其中, '{...}'라는 말이 있다. 두 문장에서 爲는 모두 '{...}'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 老는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 郭象은 日新也, '{...}'라고 하였다.) [도는] 천지를 떠받들고, [세상] 만물의 형체를 [지금처럼] 조각했지만 재주가 좋다고 자랑하지 않는다.(覆載天地刻彫眾形而不爲巧, ◈ 覆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읽는다. ◈ 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天地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刻과 彫는 모두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眾은 관형어로, '{...}'이다. ◈ 形은 체언으로, {...}를 이른다. ◈ 而는 역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不는 부정어다. 爲를 한정한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보아도 좋겠다. 《禮記》 「檀弓 下」에 夫子爲弗聞也者而過之, '{...}'라는 말이 있고, 《史記》 「范睢蔡澤列傳」에는 於是范睢乃得見於離宮/詳爲不知永巷而入其中, '{...}'라는 말이 있다. 두 문장에서 爲는 모두 '{...}'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 巧는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 郭象은 自然/故非巧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萬象之前/先有此道/智德具足/故義說爲長而實無長也//長既無矣/老豈有耶//欲明不長而長/老而不老/故長於上古而不爲老也//雖復天覆地載/而以道爲源/眾形彫刻/咸資造化/同稟自然/故巧名斯滅//既其無老無巧/無是無非/汝何所明言耶, '{...}'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도가] 거니는 경지로다.(此所遊已, ◈ 此는 𩐈萬物而不爲義, 澤及萬世而不爲仁, 長於上古而不爲老, 覆載天地刻彫眾形而不爲巧를 가리킨다. 바로 {...}이다. ◈ 所는 '{...}'이다. 遊는 '{...}'는 말이다. 따라서 所遊는 '{...}'가 된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나는 전자를 따른다. 宣穎은 應上遊, '{...}'라고 하였다. 앞에 나왔던 遊란, 許由의 말 중 汝將何以遊夫遙蕩恣睢轉徙之塗乎, 그리고 意而子의 말 중 吾願遊於其藩에 나오는 遊를 이른다. 모두 '{...}'는 뜻이다. ◈ 已는 {...}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游於不爲而師於無師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吾師之所遊心/止如此說而已//此則總結以前吾師之義是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는 萬物을 어우러지게 {...}들지 않는다. 「德充符」에서 哀駘它를 두고 和而不唱, '{...}'라고 하였는데, 이 말과 의미가 같다. 그러나 그러한 道를 따르려면, {...}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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