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대아 - 문왕지십 - 1 - 문왕

2025. 3. 21. 11:25시 이야기/대아 문왕지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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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시》 번역에는 특별히 고정적으로 참고한 번역서가 없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때는 기타 블로그들을 참고하였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毛詩正義와 詩經集傳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毛詩正義에는 毛亨鄭玄孔穎達의 주석이 수록되어 있고陸德明의 주석 역시 부분적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毛亨의 주석을 이라고 하고鄭玄의 주석을 孔穎達의 주석을 라고 합니다陸德明의 경우音義라고 합니다다만 상기하였듯毛詩正義에는 陸德明의 音義가 부분적으로만 인용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저는 經典釋文을 직접 참고하여陸德明의 音義를 모두 인용해 두었습니다詩經集傳에는 朱熹의 주석이 수록되어 있는데朱熹의 주석 역시 이라고 합니다毛亨과 鄭玄朱熹의 주석은 모두 번역하였고孔穎達의 주석은 번역하지 않았습니다다만본문을 한 쪽만 따라 번역하지는 않았습니다더 나은 설을 택하였고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제 의견에 따라 번역하였습니다본문은 몰라도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추후에 呂祖謙의 《呂氏家塾讀詩記》, 王引之의 《經義述聞》,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그리고 孔穎達의 疏도 번역하여 반영하고 싶은데,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 첫 부분에는 시 전체의 본문과 번역문을 기재하였습니다. 그 뒷부분에는 본문과 번역문, 그리고 주석을 기재해 두었습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毛亨의 설을 소개하고, 또 鄭玄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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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5년 4월 10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詩》 「大雅 文王之什」의 「文王」

 

 

 

 

文王

文王

문왕

 

文王在上、於昭于天。

文王이 上에 在하니, 於, [그 덕이] 天에까지 昭하도다.

문왕이 군위에 있으니, 아아, [그 덕이] 하늘에까지 드러났도다.

 

周雖舊邦、其命維新。

周가 雖 舊한 邦이지만, 其 命은 維 新하니,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주나라가 받은 명은 도리어 새로우니,

 

有周不顯、帝命不時。

[명을 받은] 周는 不 顯하도다. 帝의 命은 不 時하도다.

[명을 받은] 주나라는 위대하게 빛나도다. 상제가 내린 명은 진정 올바르도다.

 

文王陟降、在帝左右。

[명을 이행하기 위하여] 文王은 陟降하면서, 帝의 左右를 在하였도다.

[명을 이행하기 위하여] 문왕은 신명을 잘 섬기고 백성을 잘 다스리면서, 상제의 뜻을 살폈도다.

 

亹亹文王、令聞不已。陳錫哉周、侯文王孫子。文王孫子、本支百世。

亹亹한 文王이여, 令한 聞이 已하지 않는구나. [그 덕망이] 周에 陳錫해져서, 文王의 孫子들을 侯하였도다. 文王의 孫子들은 本支가 [모두] 百世하였도다.

근면한 문왕이여, 훌륭하다는 평판이 그치지 않는구나. [그 덕망이] 주나라에 베풀어져서, 문왕의 자손들을 훌륭하게 만들었도다. 문왕의 자손들은 직계와 방계가 [모두] 백 대나 이어졌도다.

 

世之不顯、厥猶翼翼。思皇多士、生此王國。王國克生、維周之楨。

[주나라의 사들은] 世로 不하게 顯였으니, 厥 猶는 翼翼하였도다. 皇하도다, 多한 士여. 此 王國에 生하였구나. 王國에 生할 수 있었으니, 周의 楨을 維해야 할 것이다.

[주나라의 사들은] 대대로 크게 빛났으니, 그 슬기는 신실하였도다. 대단하도다, 훌륭한 사들이여. 왕이 다스리는 이 나라에 태어났구나. 왕의 나라에 태어날 수 있었으니, 주나라의 기둥을 지탱해야 할 것이다.

 

濟濟多士、文王以寧。

濟濟하는구나, 多한 士여. 文王은 이 덕분에 寧하였도다.

열심히 하는구나, 훌륭한 사들이여. 문왕은 이 덕분에 안녕하였도다.

 

穆穆文王、於緝熙敬止。假哉天命、有商孫子、

穆穆한 文王이여, 아아, 緝熙하게 敬하도다. 假하도다, 天命이여. [천명은 본래] 商의 孫子에게 有하였다.

훌륭한 문왕이여, 아아, 눈부시게 신실하였도다. 위대하도다, 천명이여. [천명은 본래] 상나라의 후손에게 있었도다.

 

商之孫子、其麗不億。上帝旣命、侯于周服。

商의 孫子들은 其 麗가 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上帝가 [주나라에] 命한 뒤에는 [모두] 周服에서 侯하였도다.

상나라의 자손들은 그 수가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상제가 [주나라에] 천명을 내린 뒤에는 [모두] 주나라 땅에서 제후가 되었도다.

 

侯服于周、天命靡常。

[상나라 사람들조차] 侯하여서 周에 服하였으니, 天命은 常하지 않구나.

[상나라 사람들조차] 제후가 되어서 주나라에 복종하였으니, 천명은 영원하지 않구나.

 

殷士膚敏、祼將于京。厥作祼將、常服黼𠳲。

殷士는 膚하고 敏하였는데, 京에서 祼將하였도다. 厥은 祼將을 作하면서도, 常 黼𠳲를 服하였도다.

은사는 훌륭하고 명민하였는데, 경사에서 관장하였도다. 그 자는 제사를 도우면서도, 늘 은나라의 옷과 관을 갖추고 있었도다.

 

王之藎臣、無念爾祖。

王의 藎한 臣이여, 爾 祖[의 사례]를 念하라.

왕의 충실한 신하여, 니 선조[의 사례]를 마음에 새겨라.

 

無念爾祖、聿脩厥德。永言配命、自求多福。

爾 祖를 念하고, 厥 德을 脩하라. [덕정을 펴서] 命에 永하게 配한다면, 自하게 多福을 求할 것이다.

니 선조[의 사례]를 마음에 새기고, 너의 덕을 수양하라. [덕정을 펴서] 하늘의 뜻에 영원히 어우러진다면, 저절로 복록을 얻을 것이다.

 

殷之未喪師、克配上帝。

殷이 師를 喪하지 않았을 때엔, [은나라는] 上帝에 配할 수 있었도다.

은나라가 민심을 잃지 않았을 때엔, [은나라는] 상제[의 뜻]에 화합할 수 있었도다.

 

宜鑒于殷、駿命不易。

宜하게 殷에 鑒해야 할 것이니, 駿한 命은 [유지하기가] 易하지 않도다.

마땅히 은나라[의 사례]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니, 위대한 천명은 [유지하기가] 쉽지 않도다.

 

上天之載、無聲無臭、儀刑文王、萬邦作孚。

上天의 載에는 聲도 無하고, 臭도 無하다. [그러니 다르게 생각하지 말고, 오직] 文王을 儀刑한다면, 萬邦이 [주나라를] 作 孚할 것이로다.

상제의 뜻에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러니 다르게 생각하지 말고, 오직] 문왕을 본받는다면, 만국이 [주나라를] 비로소 믿게 될 것이로다.

 

 

 

 


 

 

 

 

《詩》 「大雅 文王之什」의 「文王」

 

 

 

 

◈◈ 陸德明은 《經典釋文》에서 「文王之什」에 대해 自此以下至卷阿十八篇/是文王武王成王周公之正大雅/據盛隆之時而推序天命/上述祖考之美/皆國之大事/故爲正大雅焉//文王至靈臺八篇/是文王之大雅//下武文王有聲二篇/是武王之大雅, ‘이 시부터 「卷阿」까지, 열 여덟 편은 文王, 武王, 成王, 周公의 「正大雅」다. 周나라가 융성했을 시기의 일을 가지고 天命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위로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을 기술하였으니, 모두 나라의 큰 일들이었다. 그래서 「正大雅」라고 한다. 「文王」에서 「靈臺」까지 여덟 편은 文王의 「大雅」다. 「下武」와 「文王有聲」 두 편은 武王의 「大雅」다’라고 하였다. 「卷阿」는 「生民之什」에 속해 있다. 마지막 시는 아니다. 이 말은 《毛詩正義》에는 들어 있지 않다.

 

 

 

 

文王

文王

문왕

◈◈ 毛亨은 文王/文王受命作周也, ‘「文王」은 文王이 命을 받아 周나라를 세운 이야기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受命/受天命而王天下/制立周邦, ‘受命이란, 天命을 받아 天下를 다스리고, 周나라를 세웠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王/于況反, ‘王은 于와 況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文王」과 「大雅」에 대해, 自此以下/至卷阿十八篇/是文王武王成王周公之正大雅/據盛隆之時而推序天命/上述祖考之美/皆國之大事/故爲正大雅焉//文王至靈臺八篇/是文王之大雅/下武文王有聲二篇/是武王之大雅, ‘이 시에서부터 「卷阿」에 이르기까지 열 여덟 편은 文王, 武王, 成王, 周公에 대한 「正大雅」다. 周나라가 흥성할 시기에서 시작하여, 天命에 대해 서술하고, 조상의 시대에 있었던 훌륭한 일들을 기술하였으니, 모두 나라의 大事였다. 그래서 「正大雅」라고 하는 것이다. 「文王」에서 「靈臺」까지의 여덟 편은 文王의 「大雅」요, 「下武」와 「文王有聲」 두 편은 武王의 「大雅」다’라고 하였다. 「卷阿」는 「大雅 生民之什」에 속해 있다. 「正大雅」란, 「文王之什」의 「文王」, 「大明」, 「緜」, 「棫樸」, 「旱麓」, 「思齊」, 「皇矣」, 「靈臺」, 「下武」, 「文王有聲」과, 「生民之什」의 「生民」, 「行葦」, 「旣醉」, 「鳧鷖」, 「假樂」, 「公劉」, 「泂酌」, 「卷阿」를 이른다.

◈◈ 朱熹는 大雅三/說見小雅//文王之什/三之一, ‘세 번째, 「大雅」다. 이에 대한 설명은 「小雅」에 기재해 두었다. 「文王之什」 셋 중의 첫 번째다’라고 하였다. 「大雅」가 세 번째인 까닭은, 「國風」, 「小雅」, 「大雅」, 「頌」의 순서로 《詩》를 읽기 때문이다. 說見小雅의 說이란, 「雅」와 「頌」에 대한 朱熹의 설명을 이른다. 이 설명은 《詩經集傳》의 「小雅」 첫 번째 시인 「鹿鳴」에 기재되어 있다. 「鹿鳴」에서 朱熹는 雅者/正也/正樂之歌也//其篇本有大小之殊/而先儒說又各有正變之別//以今考之/正小雅/燕饗之樂也//正大雅/會朝之樂/受釐陳戒之辭也//故/或歡欣和說/以盡群下之情/或恭敬齊莊/以發先王之德//辭氣不同/音節亦異/多周公制作時所定也//及其變也/則事未必同/而各以其聲附之/其次序時世/則有不可考者矣, ‘雅는 바르다는 뜻으로, 正樂에서 부르는 노래다. 그 편들에는 본래 大와 小의 구분이 있었다. 옛 유생들은 또 正과 變으로 구분하였다. 이제 생각해 보건대, 「正小雅」는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樂이다. 「正大雅」는 조회할 때 사용했던 樂이니, 복을 내리고 경계시키는 말이로다. 이에, 기쁘고 온화한 어조로 신하의 정리를 다하기도 하고, 공경스럽고 정결한 어조로 先王의 德을 노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어조가 같지 않고, 음절 역시 다른데, 대부분 主公이 제작하고, 시절에 따라 정한 바이다. 그런데, 시들의 變을 생각해 보면, 事가 꼭 같다고 할 수는 없고, 각각 음조에 따라 덧붙이기도 하였으니, 시들의 순서나, 배경은 추론하기 어렵다 하겠다’라고 하였다. 또 朱熹는, 雅頌無諸國別/故以十篇爲一卷/而謂之什//猶軍法以十人爲什也, ‘「雅」와 「頌」은 각국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시 열 篇을 한 卷으로 묶고, 什이라 한 것이다. 이는 軍法에서, 열 사람을 什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大小之殊란, 아마 「大雅」와 「小雅」의 분류를 이를 것이다. 正變之別은 아마 「正大雅」, 「正小雅」 같은 분류를 이를 것이다. 諸國別이란 국가별로 나뉜다는 말이다. 「國風」이 「秦風」, 「豳風」처럼 국가별로 나뉘는 것과 같다. 「雅」와 「頌」은 「大雅」와 「小雅」, 그리고 「周頌」, 「商頌」, 「魯頌」으로 나뉠 뿐, 국가별로 분류되지 않는다. 「大雅」와 「小雅」, 「周頌」, 「商頌」, 「魯頌」은 다시 「鹿鳴之什」, 「文王之什」, 「蕩之什」 같은 ‘什’들로 분류되는데, 이 什은, 열 개의 시를 묶은 ‘묶음’이다.

◈◈ 亡亡案 : 이 시는 周公 旦이 작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을 볼 때, 처음부터 常服黼𠳲까지는 文王의 德을 노래하는 내용이고, 王之藎臣/無念爾祖부터 끝까지는 어떤 사람이 王에게 文王의 선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는 내용이다. 훈계하는 사람이 周公 旦이고, 훈계를 받는 王이 成王 誦인 것이다. 周公은 文王의 아들이자, 武王의 동생이며, 成王의 삼촌이다. 文王에게 文王의 德을 가지고 조언하였을 리는 없다. 武王은 자기 형인데다, 이미 장성해서 殷나라에 반역을 일으키고, 성공하였으니, 이런 조언을 하였을 리가 또한 없다. 成王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고, 그 즉위 초기에는 반란이 일어나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였다. 그러므로 周公이 누군가에게 간언한다면, 그 대상은 成王밖에 없다. 《呂氏春秋》 「仲夏紀 古樂」에 周公旦乃作詩曰/文王在上/於昭于天/周雖舊邦/其命維新///以繩文王之德, ‘周公 旦이 이에 “文王이 군위에 있으니, 아아, 그 德이 하늘에까지 드러났도다. 周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周나라가 받은 命은 오히려 새롭다”라는 시를 지어서 文王의 德을 기렸다’라는 말이 있다. 이 시가 바로 「文王」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國語》 「魯語」에는 夫歌文王大明綿則兩君相見之樂也, ‘저 「文王」, 「大明」, 「綿」이라는 노래들은 두 군주가 서로 만날 때 사용하는 악곡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韋昭는 文王大明綿/大雅之首/文王之三也//三篇皆美文王武王有聖德/天所輔祚/其徵應符驗著見於天/乃天命非人力也//周公欲昭先王之德於天下/故兩君相見/得以爲樂也, ‘「文王」, 「大明」, 「綿」은 「大雅」의 처음에 있으며, 「文王」에 속해 있는 세 편이다. 이 세 편은 모두 文王과 武王이 聖德을 지녔고, 하늘이 이들을 도와, 이들의 공덕이 하늘에까지 드러났으니, 이는 天命이지, 사람의 힘으로 이룬 바가 아니라는 점을 찬미하였다. 周公은 天下에 옛 왕들의 德望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군주가 만날 때, 이 악곡을 사용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又案 : 「大雅」의 내용은 대부분 周나라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선전하는 것이다. 周나라는 關中을 재패하고, 牧野에서 紂를 무찔러서 天子가 되었는데, 이 모두 天命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周나라의 天命을 선전하는 노래이니, 朱熹의 말처럼 朝會할 때 불렀을 것이다. 「大雅」에는 역사적 사실과 선전 문구가 뒤섞여 있다. 이 점을 잘 고려하여 번역해야 하겠다.

 

 

 

 

文王在上、於昭于天。

文王이 上에 在하니, 於, [그 덕이] 天에까지 昭하도다.

문왕이 군위에 있으니, 아아, [그 덕이] 하늘에까지 드러났도다.

◈ 이 시 안에서 文王이 살아 있다고 보느냐, 죽었다고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두 가지로 나뉜다. 예를 들어 上은, ‘군주의 지위’라고 할 수도 있고, ‘하늘 위’라고 할 수도 있다. 昭于天 역시, ‘하늘에까지 드러났다’라고 할 수도 있고, ‘하늘에서 빛났다’라고 할 수도 있다. 毛亨과 鄭玄은 文王이 살아 있다고 보았고, 朱熹는 이미 죽었다고 보았다. 나는 毛亨과 鄭玄처럼, 文王 생전의 일이라고 보고 대체로 번역하였다. 周公이 이 시를 지었다고 한들, 꼭 文王을 귀신으로 간주했다고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文王은 周나라의 文王 昌이다.

◈ 在는 용언으로, ‘~에 있다’는 말이다. 上을 받는다.

◈ 上은 체언으로, 아마 ‘君位’를 이를 것이다. 上은 ‘위’, ‘윗사람’, ‘윗자리’로, 王, 君主를 이르기도 한다. 文王이 죽은 뒤라고 가정하고, ‘하늘 위’라고 할 수도 있다. ▼ 毛亨은 在上/在民上也, ‘在上이란, 백성의 위에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朱熹는 文王旣沒而其神在上, ‘文王은 이미 죽었고, 그 신명은 上에 있다’라고 하였다. 이 때 上은 ‘하늘 위’가 된다.

◈ 於는 독립어로, ‘아아’ 같은 감탄사다. ‘오’라고 읽는다. ▼ 毛亨은 於/歎辭, ‘於는 감탄하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於音烏/歎辭也//注及下於緝并注皆同, ‘於는 烏라고 발음한다. 감탄하는 말이다. 주석 및 뒤에 나오는 於緝, 그리고 모든 주석들에서도 그렇게 읽는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於/歎辭, ‘於는 감탄하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昭는 용언으로, ‘드러나다’는 말로 보인다. 이는 毛亨과 鄭玄의 설이다. 朱熹의 설처럼 ‘밝다’, ‘빛나다’라고 할 수도 있다. 《爾雅》 「釋詁」에 顯/昭/覲/釗/覿/見也, ‘顯, 昭, 覲, 釗, 覿은 드러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毛亨과 鄭玄의 설에 합치된다. 같은 편에 緝/熙/烈/顯/昭/皓/熲/光也, ‘緝, 熙, 烈, 顯, 昭, 皓, 熲은 빛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朱熹의 설에 합치된다. ▼ 毛亨은 昭/見也, ‘昭는 드러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때 見은 ‘현’이라고 읽는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見/賢遍反/下著見同, ‘見은 賢과 遍의 반절로 읽는다. 뒤에 나오는 著見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著見은 鄭玄의 주석에 나온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昭를 著見, ‘드러나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昭/明也, ‘昭는 밝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아마 하늘에 ‘밝게 빛난다’는 의미일 듯하다.

◈ 于는 ‘~에’다. 天을 받는다. 나는 ‘天에까지’라고 번역하였다.

◈ 天은 체언으로, ‘하늘’이다.

◈◈ 鄭玄은 文王初爲西伯/有功於民/其德著見於天/故天命之以爲王/使君天下也//崩/謚曰文, ‘文王이 처음 西伯이 되었을 때, 백성들에게 잘하였으니, 그 德이 하늘에도 드러날 정도였다. 이에 하늘이 文王에게 命을 내려서 王이 되어 天下를 다스리게 하였다. 붕어하고서 시호는 文으로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著/珍慮反//謚音示/愼也/悉也//生存之行/終始悉錄之/以爲謚也, ‘著는 珍과 慮의 반절로 읽는다. 謚는 示라고 발음한다. 愼, 悉이라는 뜻이다. 살아 있을 때의 행적을 죽었을 때 모두 취합하여, 謚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愼은 아마 ‘진정’이라는 말일 듯하고, 悉은 ‘모두’일 것이다.

◈◈ 亡亡案 : 周나라가 天子가 된 시기는 武王 發 때였고, 사방 국가들에 대해 패권을 확립하였을 시기는 成王 때였다. 그러나, 周나라가 武王과 成王 때 패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文王 때 關中을 재패하고, 착실하게 기초를 닦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周나라를 선전할 때는 文王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周雖舊邦、其命維新。

周가 雖 舊한 邦이지만, 其 命은 維 新하니,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주나라가 받은 명은 도리어 새로우니,

◈ 周는 체언으로, ‘周나라’다.

◈ 雖는 부사어로, ‘비록’이다.

◈ 舊邦은 ‘오래된 나라’다. 舊는 관형어로, ‘오래된’이다. 邦을 한정한다. 邦은 체언으로, ‘나라’다. 《說文解字》 「囗部」에 國/邦也, ‘國은 邦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같은 책 「邑部」에는 邦/國也, ‘邦은 國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즉, 邦과 國은 모두 ‘나라’다. 그러면 두 글자는 뭐가 다를까. 《周禮》 「天官冢宰」에 以佐王治邦國, ‘王을 보좌함으로써 邦國을 다스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大曰邦/小曰國, ‘크면 邦이라고 하고, 작으면 國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釋名》 「釋州國」에 大曰邦, ‘큰 것을 邦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 其命의 其는 周나라를 가리킨다. ‘周나라의’, ‘周나라가 받은’처럼 해석된다.

◈ 命은 체언으로, ‘命’, ‘天命’이다. ▼ 朱熹는 命/天命也, ‘命은 天命이다’라고 하였다.

◈ 維는 부사어로, ‘도리어’, ‘오히려’처럼 해석된다. 維는 乃와 같다. ‘도리어’라는 뜻이다. 維는 惟, 唯, 雖와 통용된다. 惟, 唯, 雖 역시 乃로 풀이될 수 있다. 《書》 「商書 盤庚 上」에 非予自荒玆德/惟汝含德/不惕予一人, ‘내가 스스로 德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惟 니가 품은 德이 나 한 사람을 惕하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惟는 역접으로, ‘도리어’처럼 해석된다. 이 사례는 王引之의 《經傳釋詞》 「惟唯維雖」에 수록되어 있다. 《經傳釋詞》에는 이 시의 이 句 역시 사례로 언급되어 있다. ▼ 주석을 참고할 때, 毛亨은 維를 乃, ‘도리어’라고 해석한 듯하다.

◈ 新은 용언으로, ‘새롭다’는 말이다. 文王의 代에 이르러, 天子가 될 天命을 얻었다는 뜻이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言新者/美之也, ‘新이라고 한 것은 周나라를 찬미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乃新/在文王也, ‘도리어 새로워졌으니, 文王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大王聿來胥宇而國於周/王迹起矣/而未有天命/至文王而受命//言新者/美之也, ‘大王이 聿來胥宇하고, 周에 나라를 세웠으니, 王業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 天命을 받지는 못했었다. 文王의 代에 이르러서 命을 받았다. 新이라고 한 것은 周나라를 찬미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聿來胥宇는 《詩》 「大雅 文王之什」의 「緜」에 나오는 말로, 아마 ‘大王이 大姜과 함께 와서 거처하였다’는 말 같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大音泰//後大王皆同, ‘大는 泰로 읽는다. 뒤에 나오는 大王들에서도 모두 그렇게 읽는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왜 周나라는 오래된 나라일까. 周나라에서는 棄를 시조로 본다. 棄는 바로 后稷으로, 기록상 舜의 신하였다. 기록들을 맞다고 전제해 보면, 舜은 대략 기원전 2000년 정도 때의 사람이다. 后稷 역시 그 때 사람이었을 것이다. 后稷의 후손인 文王 昌은 기원전 1100년 즈음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周나라를 后稷 때부터 센다면, 文王에 이르기까지 900에서 1000여 년 정도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면 ‘오래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왜 命은 새로울까. 文王의 代에 이르러, 周나라는 關中의 패권을 잡고, 商나라의 天命을 대체할 국력을 갖추었고, 武王 發 때에는 실제로 天子가 되었다. 文王 이전까지, 周나라의 命은 제후였다. 그러나, 商나라가 실정하자, 周나라의 命은 天子로 바뀌었다. 그래서 命이 ‘새롭다’고 한 것이다.

 

 

 

 

有周不顯、帝命不時。

[명을 받은] 周는 不 顯하도다. 帝의 命은 不 時하도다.

[명을 받은] 주나라는 위대하게 빛나도다. 상제가 내린 명은 진정 올바르도다.

◈ 有周는 周와 같다. ‘周나라’다. 有는 한 글자로 된 나라 이름 앞에 관습적으로 붙이던 말이었다. 일종의 의미 없는 접두어라고 할 수 있겠다. 《書》 「周書 召誥」에 嗚呼//有王雖小/元子哉, ‘아아, 有王이 어리다고는 하지만 元子로다’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僖公」 21년에는 實司大皥與有濟之祀, ‘진정 大皥와 有濟의 제사를 주관해서’라는 말이 있다. 有王은 王, 곧 ‘王’이고, 有濟는 濟, 곧 ‘濟水’를 이른다. 이 예들과 다른 예시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有」에서 찾아 볼 수 있다. 王引之는 有/語助也//一字不成詞/則加有字以配之, ‘有는 조사다. 한 글자로는 단어가 되지 않기 때문에, 有를 덧붙여서 짝을 지었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有周/周也, ‘有周는 周다’라고 하였다.

◈ 不顯은 아마 ‘위대하게 빛나다’는 말 같다. 不은 아마 丕의 가차자가 아닌가 의뭉스럽다. 有周不顯/帝命不時에서, 不顯과 不時는, 顯과 時를 어떻게 풀이하든, 不을 부정어로 해석할 경우 말이 되지 않는다. 顯은 ‘빛나다’는 말이고, 時는 是와 같은 말로, ‘바르다’는 뜻이다. 不을 不 그대로 부정어로 해석할 경우, ‘周나라는 빛나지 않고, 帝命은 바르지 않다’가 되는데, 이는 周나라를 선전한다는 주제과도 합치되지 않고, 문맥상으로도 이상하다. 오히려 不을 해석하지 않고, ‘周나라는 빛나고, 帝命은 바르다’라고 해석해야 말이 된다. 丕는 大라는 뜻이다. 大는 부사어로, ‘아주’, ‘크게’ 따위의 뜻이다. 不를 丕로 보면, ‘周나라는 위대하게 빛나고, 帝命은 심히 바르도다’처럼 해석된다. 이렇게 보면 타당하다. 不은 丕와 통용된다. 丕에 대해서는 《說文解字》 「一部」에 丕/大也, ‘丕는 大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 《爾雅》 「釋詁」에 弘/廓/宏/溥/介/純/夏/幠/厖/墳/嘏/丕/弈/洪/誕/戎/駿/假/京/碩/濯/訏/宇/穹/壬/路/淫/甫/景/廢/壯/冢/簡/箌/昄/晊/將/業/席/大也, ‘弘, 廓, 宏, 溥, 介, 純, 夏, 幠, 厖, 墳, 嘏, 丕, 弈, 洪, 誕, 戎, 駿, 假, 京, 碩, 濯, 訏, 宇, 穹, 壬, 路, 淫, 甫, 景, 廢, 壯, 冢, 簡, 箌, 昄、晊, 將, 業, 席은 大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같은 책의 「釋訓」에는 丕丕簡簡/大也, ‘丕丕와 簡簡은 大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顯은 ‘빛나다’는 말이다. 《爾雅》 「釋詁」에 緝/熙/烈/顯/昭/皓/熲/光也, ‘緝, 熙, 烈, 顯, 昭, 皓, 熲은 빛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毛亨은 不을 아예 해석하지 않았고, 鄭玄과 朱熹는 각각 不光明乎, ‘光明하지 않겠는가’, 豈不顯也, ‘어찌 顯하지 않겠는가’처럼 반문으로 풀이하였다. 이처럼 세 사람 모두 不을 본래적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 毛亨은 不顯/顯也//顯/光也, ‘不顯은 顯이다. 顯은 빛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不顯을 不光明乎, ‘光明하지 않겠는가’처럼 풀이하였다. ▼ 朱熹는 不顯/猶言豈不顯也, ‘不顯은 어찌 드러나지 않겠냐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帝는 ‘上帝’, ‘하느님’이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上帝의’, ‘上帝가 내린’처럼 해석된다. 命을 한정한다. ▼ 朱熹는 帝/上帝也, ‘帝는 上帝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命은 체언으로, ‘命’, ‘天命’이다.

◈ 不時는 ‘진정 올바르다’는 말일 것이다. 不은 不顯에서 그러하였듯, 丕와 같다. 大라는 뜻이다. ‘아주’, ‘진정’, ‘크게’처럼 해석된다. 時는 是와 같다. ‘올바르다’, ‘바르다’는 말이다. 《爾雅》 「釋詁」에 時/寔/是也, ‘時, 寔는 是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是는 ‘옳다’, ‘타당하다’, ‘긍정하다’, ‘바르다’는 따위의 말이다. 毛亨과 鄭玄은 時를 是로 풀이하였다. 朱熹는 時 그대로 보았는데, 아마 ‘때에 맞다’, ‘시의적절하다’는 말일 것이다. ▼ 毛亨은 不時/時也//時/是也, ‘不時는 時다. 時는 옳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不時를 不是乎, ‘是하지 않겠는가’처럼 풀이하였다. ▼ 朱熹는 不時/猶言豈不時也, ‘不時는 時하지 않느냐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時는 아마 ‘때에 맞다’, ‘시의적절하다’는 말일 것이다.

◈◈ 鄭玄은 周之德不光明乎/光明矣//天命之不是乎/又是矣, ‘周나라의 德이 빛나지 않겠는가. 빛났도다. 天命이 옳지 않겠는가. 역시 옳도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周나라가 天命을 받아서 더욱 빛나게 되었으며, 周나라가 받은 天命은 진정 타당하다고 선전하는 말이다.

 

 

 

 

文王陟降、在帝左右。

[명을 이행하기 위하여] 文王은 陟降하면서, 帝의 左右를 在하였도다.

[명을 이행하기 위하여] 문왕은 신명을 잘 섬기고 백성을 잘 다스리면서, 상제의 뜻을 살폈도다.

◈ 文王은 周나라의 文王 昌이다.

◈ 陟降은 용언으로, 아마 ‘위와 아래를 잘 대하다’는 따위의 말이 아닐까 하다. 나는 ‘신명을 잘 섬기고 백성을 잘 다스리다’처럼 의역하였다. 陟은 ‘오르다’는 말이고, 降은 ‘내려 가다’는 말이다. 降은 ‘강’이라고 읽는다. 따라서 陟은 ‘위’를 뜻하고, 降은 ‘아래’를 이른다. 즉, 陟降은 ‘위와 아래에 어떤 행위를 하다’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 이어지는 在帝左右가 ‘上帝의 뜻을 살피다’는 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陟降은 上帝의 뜻을 살피기 위해 文王이 ‘위와 아래를 잘 보살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위는 곧 ‘귀신’이나 ‘신명’이고, 아래는 곧 ‘사람’, ‘백성’이 된다. 그래서 내가 ‘신명을 잘 섬기고 백성을 잘 다스리다’라고 의역한 것이다. 毛亨은 升接天/下接人, ‘위로는 하늘에 화합하고, 아래로는 사람에 화합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설이 타당하다. ▼ 주석을 참고할 때, 毛亨은 陟降을 升接天/下接人, ‘위로는 하늘에 화합하고, 아래로는 사람에 화합한다’라고 풀이하였다. 接은 아마 ‘화합하다’는 말일 것이다.

◈ 在는 용언으로, ‘살피다’는 말이다. 帝左右를 받는다. 察과 같다. 《爾雅》 「釋詁」에 在/存/省/士/察也, ‘在, 存, 省, 士는 살피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즉, 在는 ‘살피다’는 말이다. 《書》 「虞書 舜典」에 在璿璣玉衡, ‘璿璣와 玉衡을 在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과 蔡沈은 모두 在/察也, ‘在는 살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在/察也, ‘在는 살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朱熹는 在를 ‘있다’라고 풀이한 듯하다. 文王의 귀신이 上帝의 곁에 ‘있다’는 말이 된다.

◈ 帝左右는 아마 ‘상제의 뜻’일 것이다. 鄭玄의 설을 따랐다. 朱熹는 文王이 죽은 뒤라고 전제하고, 文王의 귀신이 上帝의 ‘곁’에 있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帝左右를 天意, ‘하늘의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左右/旁側也, ‘左右는 곁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言文王升接天/下接人也, ‘文王이 위로는 하늘에 화합하고, 아래로는 사람에 화합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文王能觀知天意/順其所爲/從而行之, ‘文王은 하늘의 뜻을 살펴서 이해할 수 있었으니, 하늘이 행하는 바를 따라, 이를 좇고 실천하였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文王在上부터 在帝左右까지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한 시문이다. 朱熹는 또, 周公追述文王之德/明周家所以受命而代商者/皆由於此/以戒成王//此章言文王旣沒而其神在上/昭明于天/是以周邦雖自后稷始封千有餘年/而其受天命/則自今始也//夫文王在上而昭于天/則其德顯矣//周雖舊邦而命則新/則其命時矣//故又曰/有周豈不顯乎/帝命豈不時乎//蓋以文王之神在天/一升一降/無時不在上帝之左右/是以子孫蒙其福澤而君有天下也//春秋傳/天王追命諸侯之詞曰/叔父陟恪/在我先王之左右/以佐事上帝///語意與此正相似/或疑恪亦降字之誤/理或然也, ‘周公이 文王의 德을 추모하고, 기술하면서, 周나라가 天命을 받아서 商나라를 대신한 일이 모두 이 일화 덕분이라는 점을 밝히고, 이로써 成王을 경계하였다. 이 章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文王이 죽은 뒤에, 그 귀신은 하늘에 있으면서, 하늘을 빛냈다. 이에, 周나라가 后稷이 분봉받았을 때부터 천여 년이나 되었지만, 天命을 받은 것은 지금 이제 시작되었도다. 저 文王이 하늘에 있으며, 하늘에서 빛나니, 그 德은 분명히 드러났도다. 周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命은 새로우니, 周나라의 命은 때에 맞도다. 그래서 다시 周나라가 어찌 드러나지 않겠으며, 上帝의 命이 어찌 때에 맞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것이다. 아마도 文王의 귀신이 하늘에 있으면서, 올라 가기도 하고, 내려 가기도 하면서, 上帝의 곁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니, 이에 그 자손들이 복록을 받아 군주로서 天下를 다스리게 되었을 것이다. 《春秋傳》에서 天王이 제후를 追命하면서, “叔父가 하늘에 올라, 우리 先王의 곁에 있으면서, 上帝를 보좌하고, 섬길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말의 의미가 이 글과 곧 비슷하니, 恪 역시 降의 오기가 아닐까 의뭉스럽다. 의미를 따져 볼 때, 혹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春秋傳》은 《春秋左氏傳》으로, 인용문은 「昭公」 7년에 나온다. 天王은 아마 天子, 즉 周나라의 王을 이를 것이다. 追命은 ‘추모한다’는 말로, 죽은 뒤에 그 사람을 기린다는 뜻이다.

◈◈ 亡亡案 : 商나라를 대신하여 天子가 되어라는 天命을 文王의 代에 새로 받았고, 文王은 이를 이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는 말이다.

◈◈ 亡亡又案 : 첫 부분에 밝혔듯, 朱熹는 이 「文王」에, 文王이 이미 죽었다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위의 주석을 보면, 朱熹는 《春秋左氏傳》 「昭公」 7년의 기록을 들며, 그 내용이 「文王」과 상당히 합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내 생각에는 朱熹의 설에 설득력이 있다. 이 설이 타당하다면, 文王이 죽은 뒤에 文王의 귀신을 가지고 지은 시라는 점은 타당할 듯하다. 그러나 《春秋左氏傳》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해서 朱熹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인과가 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文王」이 먼저 존재하였고, 魯나라 昭公 7년, 혹은 《春秋左氏傳》 저술 연대는 그 보다 한참 뒤이므로, 「文王」의 본래 의미와는 무관하게, 후대 사람들이 「文王」을 이렇게 풀이하였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毛亨과 鄭玄의 설이 전체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朱熹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朱熹의 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하다고는 분명 생각한다.

 

 

 

 

亹亹文王、令聞不已。陳錫哉周、侯文王孫子。文王孫子、本支百世。

亹亹한 文王이여, 令한 聞이 已하지 않는구나. [그 덕망이] 周에 陳錫해져서, 文王의 孫子들을 侯하였도다. 文王의 孫子들은 本支가 [모두] 百世하리라.

근면한 문왕이여, 훌륭하다는 평판이 그치지 않는구나. [그 덕망이] 주나라에 베풀어져서, 문왕의 자손들을 훌륭하게 만들었도다. 문왕의 자손들은 직계와 방계가 [모두] 백 대나 이어질 것이리라.

◈ 亹亹는 관형어로, ‘근면한’이다. 文王을 한정한다. 亹는 ‘근면하다’, ‘노력하다’, ‘힘쓰다’ 따위의 표현인 듯한데, 이상하게도 《說文解字》에는 나오지 않는다. 《爾雅》 「釋詁」에 亹亹/蠠沒/孟/敦/勗/釗/茂/劭/勔/勉也, ‘亹亹, 蠠沒, 孟, 敦, 勗, 釗, 茂, 劭, 勔은 근면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國語》 「周語」에 亹亹怵惕, ‘亹亹하고 怵惕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韋昭는 亹亹/勉勉也, ‘亹亹는 노력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亹亹/勉也, ‘亹亹는 근면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亹亹를 勉勉乎不倦, ‘근면하여서 게으르게 굴지 않는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亹音尾/勉也, ‘亹는 尾라고 발음한다. 근면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亹亹/强勉之貌, ‘亹亹는 열심히 힘을 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令聞은 ‘훌륭한 평판’, ‘좋은 평판’, ‘훌륭하다는 평판’이다. 令은 관형어로, ‘좋은’, ‘훌륭한’, ‘훌륭하다는’이라는 말이다. 聞을 한정한다. 聞은 체언으로, ‘평판’, ‘명성’이다. 《孟子》 「告子 上」에 令聞廣譽施於身, ‘令聞과 廣譽가 身에 施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令聞이 본문의 令聞과 같다. 《孟子》에 대해 朱熹는 令/善也//聞/亦譽也, ‘令은 훌륭하다는 뜻이고, 聞 역시 명예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爾雅》 「釋詁」에 儀/若/祥/淑/鮮/省/臧/嘉/令/類/綝/彀/攻/穀/介/徽/善也, ‘儀, 若, 祥, 淑, 鮮, 省, 臧, 嘉, 令, 類, 綝, 彀, 攻, 穀, 介, 徽는 善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善은 곧 ‘좋다’, ‘훌륭하다’는 말이다. ▼ 鄭玄은 令/善, ‘令은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주석에서는 令聞을 善聲聞, ‘훌륭한 평판’이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聞音問/注同, ‘聞은 問이라고 발음한다. 주석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令聞/善譽也, ‘令聞이란, 훌륭한 명예다’라고 하였다.

◈ 不已는 ‘멈추지 않는다’, ‘그치지 않는다’, 즉 ‘계속 이어진다’는 말이다. 不은 부정어다. 已를 한정한다. 已는 용언으로, ‘멈추다’, ‘그치다’는 말이다. 止와 같다.

◈ 陳錫哉周는 《春秋左氏傳》 「宣公」 15년과 「昭公」 10년에 陳錫載周로 인용되어 있고, 또 《國語》 「周語」에도 陳錫載周로 인용되어 있다. 「宣公」 15년에 대해 杜預는 錫/賜也//詩大雅/言文王布陳大利/以賜天下/故能載行周道/福流子孫, ‘錫는 주다는 뜻이다. 《詩》 「大雅」의 말로, 文王이 大利를 베풀어서 天下에 주었으므로, 周나라의 道를 載行할 수 있었고, 자손에게까지 복록이 흘러 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昭公」 10년에 대해 杜預는 詩大雅/言文王能布陳大利/以賜天下/行之周徧, ‘《詩》 「大雅」의 말로, 文王이 大利를 베풀어서 天下에 줄고, 모든 곳에 행하였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國語》에 대해 韋昭는 大雅文王之二章也//陳/布也//錫/賜也//言文王布賜施利/以載成周道也, ‘「大雅」 「文王」의 둘째 章이다. 陳은 펴다는 뜻이고, 錫는 주다는 뜻이다. 文王이 利를 펴고 베품으로써, 周나라의 道를 이루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풀이할 때 참고할 수 있겠다.

◈ 陳錫는 용언으로, 아마 ‘베풀어지다’라는 말 같다. 陳은 본래 ‘베풀다’는 말이다. 錫 역시 ‘베풀다’는 뜻이다. 이 때 錫는 賜와 같고, ‘사’라고 읽는다. 아마도 文王의 德望이 ‘베풀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陳錫를 敷, ‘펴다’, ‘베풀다’라고 풀이하였다. ▼ 《春秋左氏傳》에 대해 杜預는 錫/賜也, ‘錫는 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國語》에 대해 韋昭는 陳/布也//錫/賜也, ‘陳은 펴다는 뜻이고, 錫는 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陳/猶敷也, ‘陳은 敷와 같다’라고 하였다. 敷는 ‘펴다’, ‘베풀다’는 말이다.

◈ 哉周의 哉는 아마 於나 乎처럼, ‘~에’라는 말 같다. 그러면 哉周는 ‘周나라에’가 된다. 周나라‘에’ 文王의 德望이 베풀어졌다는 뜻이다. 상기하였듯, 《春秋左氏傳》과 《國語》에는 哉가 載로 기재되어 있는데, 풀이는 제각각이다. ▼ 毛亨은 哉/載, ‘哉는 載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아마 이 載는 ‘싣다’가 아니라, ‘시작하다’는 말 같다. 鄭玄의 설과 같다. ▼ 鄭玄은 哉/始, ‘哉는 시작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 初/哉/首/基/肇/祖/元/胎/俶/落/權/輿/始也, ‘初, 哉, 首, 基, 肇, 祖, 元, 胎, 俶, 落, 權, 輿는 始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國語》에 대해 韋昭는 載成, ‘이루다’라고 풀이하였다. ▼ 《春秋左氏傳》에 대해 杜預는 載行, ‘행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哉如字/毛載也/鄭始也//左傳作載/本又作載/同, ‘哉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 毛亨은 載라고 풀이하였고, 鄭玄은 始라고 풀이하였다. 《左傳》에는 載라고 되어 있고, 판본에 따라 載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발음은 같다’라고 하였다. 《左傳》이란 《春秋左氏傳》이다. ▼ 朱熹는 哉/語辭, ‘哉는 어조사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哉가 의미 없는 조사라면, 陳錫와 周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朱熹의 설은 틀렸다.

◈ 周는 아마 ‘周나라’일 것이다. ▼ 《國語》에 대해 韋昭는 周道, ‘周나라의 道’라고 풀이하였다. ▼ 《春秋左氏傳》 「宣公」 15년에서 杜預는 周道, ‘周나라의 道’라고 풀이하였다. ▼ 《春秋左氏傳》 「昭公」 10년에서 杜預는 周徧, ‘두루’, ‘모든 곳’처럼 풀이하였다. 왜 「宣公」 15년과는 다르게 풀이하였는지 모르겠다.

◈ 侯는 용언으로, 아마 ‘훌륭하게 만들다’, ‘고귀하게 하다’는 말일 것이다. 文王孫子을 받는다. 이 侯는 美와 같다. 毛亨과 朱熹는 維로 풀이하였는데, 아마 ‘오직’을 의도한 듯하다. 鄭玄은 君이라고 풀이했는데, 이는 ‘군림하다’는 뜻이다. 《詩》 「國風 鄭風」의 「羔裘」에 洵直且侯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陸德明은 韓詩云/侯/美也, ‘《韓詩》에서는 “侯는 美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고, 朱熹 역시 侯/美也, ‘侯는 美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美는 ‘훌륭하다’는 뜻이다. ▼ 毛亨은 侯/維也, ‘侯는 오직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侯/君也, ‘侯는 군림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侯/維也, ‘侯는 오직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孫子는 체언으로, ‘子孫’이다. 도치해서 쓴 단어다. 《論語》 「學而」에 弟子入則孝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弟子가 바로 子弟, 즉 ‘젊은이’와 같은 말이다. 고대에는 이처럼 단어를 도치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孫子를 子孫, ‘자손’이라고 풀이하였다.

◈ 本支는 ‘직계와 방계’를 이른다. 本은 ‘직계’로, 武王 이하 周나라의 왕실을 이른다. 支는 ‘방계’로, 周公 旦을 비롯해, 武王의 방계 형제들을 이른다. 文王의 장남은 伯邑 考인데, 일찍 죽었다. 차남이 바로 武王 發이다. 發의 자손들이 대를 이었다. 삼남이 管叔 鮮, 사남이 周公 旦, 오남이 蔡叔 度, 육남이 衛康叔 封, 칠남이 郕叔 武, 팔남이 霍叔 處, 구남이 毛叔 鄭, 십남이 冉季 載, 십일남이 郜叔, 십이남이 雍伯, 십삽남이 曹叔 振鐸, 십사남이 錯叔 繡, 십오남이 畢公 高, 십육남이 原伯, 십칠남이 豐侯, 십팔남이 郇伯이었다. 武王 發이 周나라의 대를 이었으므로 직계에 해당하고, 그 외의 아들들과 그 집안이 바로 방계에 해당한다. 방계 형제들은 기타 제후국들을 분봉 받아서 제후가 되었다. ▼ 毛亨은 本/本宗也//支/支子也, ‘本은 종가고, 支는 나머지 아들들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本/宗子也//支/庶子也, ‘本은 대를 이은 아들이고, 支는 서자다’라고 하였다. 庶子는 첩의 아들이 아니라, 대를 이은 아들 외의 아들들을 이른다.

◈ 百世는 용언으로, ‘백 대를 이어 가다’, ‘백 대 동안 이어지다’는 말일 것이다. 이 시는 周나라 초기에 작성되었을 것이므로, ‘이어졌다’가 아니라 ‘이어질 것이다’처럼 번역해야 하겠다. 世는 代와 같다. 본래 고대에는 世를 더 많이 사용하였는데, 唐의 李世民 이후로 世를 피휘한답시고 代를 더 많이 쓰게 되었다.

◈◈ 鄭玄은 勉勉乎不倦/文王之勤/用明德也//其善聲聞/曰見稱歌無止時也//乃由能敷恩惠之施以受命/造始周國/故天下君之//其子孫/適爲天子/庶爲諸侯/皆百世,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니, 文王의 근면함이 德을 밝히고 있도다. 文王의 훌륭한 명망은 文王을 칭송하는 노래가 멈추지 않기에 이르렀도다. 은혜를 베풀 줄 알았고, 이로써 命을 받아 周나라를 개창하여, 天下에 군림하였다. 그 자손들 중, 적자는 天子가 되었고, 서자는 제후가 되어, 모두 백 代나 이어졌도다’라고 하였다. 造始는 ‘열다’, ‘시작하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敷音孚//施/始豉反//適音的/字或作嫡, ‘敷는 孚라고 발음한다. 施는 始와 豉의 반절로 읽는다. 適은 的이라고 발음한다. 이 글자는 嫡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였다. 嫡은 ‘적자’, ‘정실이 나은 아들’이라는 뜻이다.

◈◈ 亡亡案 : 文王의 자손들이 王과 제후로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말이다. 周나라는 37대인 赧王 때 망했으니, 百世를 이어 가지 못했다.

 

 

 

 

凡周之士、不顯亦世。

[또한,] 凡 周의 士도 [그 명망이] 世에 顯하였도다.

[또한,] 주나라의 모든 사들도 [그 명망이] 세상에 빛났도다.

◈ 凡은 부사어로, 아마 ‘모든’일 것이다.

◈ 周는 ‘周나라’다.

◈ 周之士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처럼 해석된다.

◈ 士는 체언으로, ‘士’다. ‘선비’가 아니라, 卿, 大夫, 士라고 할 때의 ‘士’다. 실무를 담당하던 하위 계급이었다.

◈ 不顯亦世는 不亦顯世 혹은 不亦顯世乎의 오기가 아닐까 의뭉스럽다. 不亦이라는 표현은 乎와 함께, 不亦 A 乎의 형식으로, 말을 강조하는 용도로 옛날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중 亦은 강조를 위한 표현일 뿐,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莊子》 「逍遙遊」에 而彭祖乃今以久特聞/眾人匹之/不亦悲乎, ‘그런데 요즘에는 彭祖가 장수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며, 뭇사람들도 나이를 가지고 자신을 彭祖에 비기려 드니, 悲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있고, 「齊物論」에 偃/不亦善乎而問之也, ‘偃아, 善하지 않는가, 니가 그 점을 물은 점이’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역시 亦을 따로 번역하지 않아도 의미가 잘 표현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論語》 「學而」의 不亦說乎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곧, 不亦 A 乎는 ‘A가 아니지 않은가’, 즉 ‘A다’라는 의미가 된다. 본문의 不顯亦世 역시 顯과 亦의 위치를 바꿔서, 不亦顯世라고 보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乎는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생략하였을 것이다. 不顯亦世 그대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곧 ‘顯世하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 顯은 용언으로, ‘드러나다’는 말이다. 아마 ‘名望이 드러났다’는 말일 것이다. 文王을 보좌했다는 명망이 청사에 ‘빛났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빛났다’라고 의역하였다.

◈ 世는 체언으로, ‘세상’, ‘天下’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世를 世世, ‘대대로’처럼 풀이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朱熹 역시 世를 世世, ‘대대로’처럼 풀이하였다.

◈◈ 毛亨은 不世顯德乎/士者世祿也, ‘대대로 德이 드러나지 않았겠는가. 士는 대대로 祿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凡周之士/謂其臣有光明之德者/亦得世世在位/重其功也, ‘凡周之士란, 신하로써, 빛나는 德을 갖춘 자이니, 이들 역시 대대로 자리를 견지하고, 공적을 더욱 크게 세웠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亹亹文王부터 不顯亦世까지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또, 文王非有所勉也/純亦不已/而人見其若有所勉耳//其德不已/故今旣沒而其令聞猶不已也//令聞不已/是以上帝敷錫于周/維文王孫子/則使之本宗百世爲天子/支庶百世爲諸侯/而又及其臣子/使凡周之士/亦世世脩德/與周匹休焉, ‘文王은 노력하였던 것이 아니라, 타고난 대로 하고 멈추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들이 文王이 노력한 것처럼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 德望이 그치지 않았으니, 文王은 지금 이미 죽었지만, 그 훌륭한 평판은 오히려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훌륭판 평판이 멈추지 않으니, 이에 上帝가 周나라에 베풀어서, 오직 文王의 자손들만이, 직계의 경우 백 대 동안이나 天子가 되게 하였고, 방계의 경우 백 대 동안이나 제후가 되게 한 것이다. 또, 그 신하들에 대해서도, 周나라의 士로서, 대대로 德을 닦게 하였으니, 周나라와 함게 흥망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周나라를 위해 일했던 士 역시, 공적이 청사에 빛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뒤의 句에도 士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世之不顯、厥猶翼翼。思皇多士、生此王國。王國克生、維周之楨。

[주나라의 사들은] 世로 不하게 顯였으니, 厥 猶는 翼翼하였도다. 皇하도다, 多한 士여. 此 王國에 生하였구나. 王國에 生할 수 있었으니, 周의 楨을 維해야 할 것이다.

[주나라의 사들은] 대대로 크게 빛났으니, 그 슬기는 신실하였도다. 대단하도다, 훌륭한 사들이여. 왕이 다스리는 이 나라에 태어났구나. 왕의 나라에 태어날 수 있었으니, 주나라의 기둥을 지탱해야 할 것이다.

◈ 世之不顯의 世之는 아마 世以와 같은 말로, ‘대대로’라는 뜻일 것이다. 世는 代와 같다. 之는 以와 통용될 때가 있다. 《莊子》 「逍遙遊」에 之人也/之德也라는 말이 있는데, 앞의 之는 是와 같고, 뒤의 之는 以와 같다. 之人也,之德也는 ‘이러한 사람들은 德을 가지고’라는 뜻이다.

◈ 不顯은 아마 ‘크게 빛나다’는 말 같다. 不은 丕의 가차자일 듯하다. 부사어로, ‘크게’처럼 해석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有周不顯/帝命不時의 不 부분에서 설명하였다. 顯은 용언으로, ‘빛나다’는 말이다. ▼ 주석을 참고할 때, 朱熹는 豈不顯乎처럼, 반문하는 표현으로 풀이하였다. ‘어찌 빛나지 않겠는가’, 즉 ‘빛난다’는 뜻이다.

◈ 厥은 지시하는 말이다. ‘그’라고 해석된다.

◈ 猶는 체언으로, ‘꾀’, ‘책모’다. 猷와 같다. 犭은 犬과 같다. 부수의 위치가 다를 뿐이다. 여기서는 ‘슬기’라고 번역하였다. 鄭玄과 朱熹는 모두 謀로 풀이하였다. ▼ 鄭玄은 猶/謀, ‘猶는 꾀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역시 猶/謀, ‘猶는 꾀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翼翼은 ‘신실한 모습’이다. 《爾雅》 「釋訓」에 肅肅/翼翼/恭也, ‘肅肅과 翼翼은 恭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恭은 단순히 ‘공경스럽다’가 아니라, ‘신실하다’, ‘직분을 다하다’는 의미이다. 朱熹의 주석에 그 점에 잘 드러나 있다. ▼ 毛亨은 翼翼/恭敬, ‘翼翼은 恭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恭은 ‘신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 朱熹는 翼翼/勉敬也, ‘翼翼은 노력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思皇多士는 ‘思皇하도다, 多士들이여’처럼 해석해야 하겠다. 이 句는 뒤에 나오는 濟濟多士와 구조가 같은데, 濟濟多士 역시 ‘濟濟하도다, 多士들이여’처럼 해석된다.

◈ 思는 아마 의미 없는 조사일 것이다. 뒤에 나오는 「思齊」에서도 思가 의미 없는 조사로 사용되었다. 이 시가 만들어질 때 즈음 사람들이 思를 의미 없는 조사로 자주 사용하였던 모양이다. 毛亨과 朱熹 모두 의미 없는 조사로 풀이하였다. 그런데 鄭玄은 思를 願, ‘바라다’라고 보고, 思皇多士/生此王國을 ‘바라건대 皇多士가 이 王國에 태어나도록 해 달라’처럼 풀이하였다. 그러나 「思齊」를 고려할 때, 思는 조사로 보는 편이 좋겠다. ▼ 毛亨은 思/辭也, ‘思는 조사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思/願也, ‘思는 바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思/語辭, ‘思는 어조사다’라고 하였다.

◈ 皇은 용언으로, ‘크다’, ‘위대하다’, ‘대단하다’는 말이다. 皇은 大와 같다. 《說文解字》 「王部」에 皇/大也, ‘皇은 위대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뒤에 나오는 「皇矣」에서도 皇은 ‘위대하다’처럼 해석된다. 毛亨은 ‘하늘’이라고 보았고, 朱熹는 ‘훌륭하다’라고 하였는데, 朱熹의 설이 더 타당하다. ▼ 毛亨은 皇/天, ‘皇은 하늘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皇/美, ‘皇은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多는 아마 관형어로, ‘훌륭한’, ‘뛰어난’이라는 말 같다. 士를 한정한다. 《史記》 「高祖本紀」와 《漢書》 「高帝紀 下」에 今某之業所就/孰與仲多, ‘지금 某의 業이 성취된 바를 생각할 때, 仲과 나 중 누가 多한가’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多는 ‘낫다’, ‘훌륭하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 士는 체언으로, ‘士’다. 大夫 아래에서 실무를 보던 하급 관리들을 이른다.

◈ 生此王國의 生은 용언으로, ‘태어나다’는 말이다. 王國克生의 生도 그렇다.

◈ 生此王國은 生於此王國, ‘此王國에 生하다’처럼 풀이해야 할 듯하다.

◈ 此는 ‘이’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王國을 받는다.

◈ 王國은 체언으로, ‘왕국’, ‘왕의 나라’,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周나라를 이른다. 王國은 ‘王의 나라’로, 周나라의 ‘제후’였던 文王이 王, 즉 天子로의 직분을 잘 이해하고, 세상을 잘 다스릴 사람이라는 점을 뜻한다.

◈ 王國克生의 王國은 ‘王國이’처럼 주어로 해석하기 보다는, ‘王國에서’처럼 부사어로 보아야 하겠다.

◈ 克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能과 같다. 王國克生의 生을 받는다.

◈ 維는 용언으로, 아마 ‘지탱하다’는 말 같다. 周之楨을 받는다. 維는 본래 ‘줄’을 뜻하고, ‘묶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묶다’로 사용되었다고 봐야 할 듯하다. 維周之楨이므로, ‘周의 楨을 維하다’, 곧 ‘周나라의 기둥을 묶다’는 말이 되는데, 여기서 ‘묶다’는 말은, 곧 기둥을 ‘지탱해 준다’, ‘안정적으로 고정시킨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나는 ‘지탱하다’라고 의역하였다. 周나라의 실무를 담당하던 士들 덕분에 周나라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는 뜻이다.

◈ 周는 ‘周나라’다.

◈ 周之楨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처럼 해석된다.

◈ 楨은 체언으로, ‘줄기’다. 나는 ‘기둥’이라고 의역하였다. 《爾雅》 「釋詁」에 楨/翰/儀/榦也, ‘楨, 翰, 儀는 줄기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楨/幹也, ‘楨은 줄기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楨音貞/榦也, ‘楨은 貞이라고 발음한다. 줄기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楨/榦也, ‘楨은 줄기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周之臣旣世世光明/其爲君之謀事/忠敬翼翼然//又願天多生賢人於此邦/此邦能生之/則是我周家幹事之臣, ‘周나라의 신하들은 이미 대대로 빛났으니, 군주를 위한 계책은 충성스럽고 신실하였다. 신하들은 또, 하늘이 이 나라에 현명한 사람들을 많이 나게 하기를 바랐다. 이에 이 나라에 현명한 사람들이 태어났으니, 곧 우리 周나라의 중추가 될 신하였도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爲/于僞反//下天爲此同, ‘爲는 于와 僞의 반절로 읽는다. 밑에 나오는 天爲此에서도 그렇게 읽는다’라고 하였다. 이 때 爲는 ‘~를 위해’, ‘~에 대해’처럼 해석된다.

◈◈ 亡亡案 : 周나라의 士들도 周나라가 天命을 받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점을 선전하고 있다.

 

 

 

 

濟濟多士、文王以寧。

濟濟하는구나, 多한 士여. 文王은 이 덕분에 寧하였도다.

열심히 하는구나, 훌륭한 사들이여. 문왕은 이 덕분에 안녕하였도다.

◈ 濟濟多士는 ‘濟濟하도다, 多士들이여’라고 해석된다. 思皇多士의 경우와 같다.

◈ 濟濟는 아마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혹은 자기 직무에 ‘충실한 모습’인 듯하다. 《爾雅》 「釋言」에 濟/成也, ‘濟는 成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같은 편에 또 濟/益也, ‘濟는 益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成은 글자 그대로 보고, ‘이루다’라고 할 수도 있고, 誠처럼 ‘정성을 들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益은 ‘더하다’는 말이니, ‘더 해 나가다’는 뜻이다. 모두 자기 직무를 ‘열심히 하다’라고 풀이할 여지가 있다. 《禮記》 「曲禮 下」에는 大夫濟濟, ‘大夫는 濟濟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濟濟/徐行有節//大夫降於諸侯/不得自莊盛/但徐行而已也, ‘濟濟는 천천히 다니면서도 절도가 있다는 뜻이다. 大夫가 제후에게 降할 때는, 자기 체면을 차릴 수 없으니, 다만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 앞에서 자신을 절제하고, 잘 보인다는 의미이므로, 이 역시 자기 ‘직분에 충실하다’는 의미와 통하겠다. 한편, 《爾雅》 「釋訓」에 藹藹/濟濟/止也, ‘藹藹와 濟濟는 止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郭璞은 皆賢士盛多之容止, ‘모두 賢士들이 많은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郭璞은 止를 容止, ‘모습’, ‘태도’라고 풀이했는데, 왜 止 자체로 풀이하지 않고, 盛多之容止라고 말을 더 붙여서 해설하였는지 모르겠다. 「釋訓」의 止는 무슨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 毛亨과 陸德明, 朱熹는 모두 ‘위엄이 있는 모습’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士들은 아무리 잘 봐 줘도 大夫 아래의 계급인데, 위엄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는가. 나는 이 설들을 따르지 않았다. ▼ 毛亨은 濟濟/多威儀也, ‘濟濟는 훌륭하고 위엄이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濟/子禮反/多威儀也//後濟濟皆同, ‘濟은 子와 禮의 반절로 읽는다. 훌륭하고 위엄이 있다는 뜻이다. 뒤에 나오는 濟濟에서도 모두 그렇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濟濟/多貌, ‘濟濟는 훌륭한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 多士는 ‘훌륭한 士’다. 多는 관형어로, ‘훌륭하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士를 한정한다.

◈ 文王은 周나라의 文王 昌이다.

◈ 以는 是以와 같다. ‘이로써’, ‘이 덕분에’처럼 해석된다.

◈ 寧은 용언으로, ‘편안하다’, ‘안녕하다’는 말이다. 《爾雅》 「釋詁」에 豫/寧/綏/康/柔/安也, ‘豫, 寧, 綏, 康, 柔는 편안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朱熹는 世之不顯부터 文王以寧까지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하는 시문이다. 朱熹는 또, 此承上章而言/其傳世豈不顯乎/而其謀猷皆能勉敬如此也/美哉//此衆多之賢士/而生於此文王之國也//文王之國能生此衆多之士/則足以爲國之榦/而文王亦賴以爲安矣//蓋言文王得人之盛/而宜其傳世之顯也, ‘이 글에서는 앞의 章의 내용을 이어 이야기하고 있다. 대대로 이어지는데, 어찌 빛나지 않겠는가. 그 책모는 모두 이와 같이 신실하였으나, 훌륭하였도다. 이렇게 많은 賢士들이 이 文王의 나라에 태어났도다. 文王의 나라는 이렇듯 많은 士를 낳을 수 있었으니, 이 士들을 나라의 중추로 삼기에 충분하였고, 文王 역시 이 士들에 의지하여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文王이 사람을 얻는 모습이 도타웠기에, 대대로 빛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이 역시 士들이 실무를 잘 처리했기 때문에 周나라가 평안했다는 말이다.

 

 

 

 

穆穆文王、於緝熙敬止。假哉天命、有商孫子、

穆穆한 文王이여, 아아, 緝熙하게 敬하도다. 假하도다, 天命이여. [천명은 본래] 商의 孫子에게 有하였다.

훌륭한 문왕이여, 아아, 눈부시게 신실하였도다. 위대하도다, 천명이여. [천명은 본래] 상나라의 후손에게 있었도다.

◈ 穆穆은 아마 ‘훌륭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설들이 몇 가지 있다. 《爾雅》 「釋詁」에 暀暀/皇皇/藐藐/穆穆/休/嘉/珍/褘/懿/鑠/美也, ‘暀暀, 皇皇, 藐藐, 穆穆, 休, 嘉, 珍, 褘, 懿, 鑠은 美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美는 ‘아름답다’는 말이거나, ‘훌륭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爾雅》 「釋訓」에는 穆穆/肅肅/敬也, ‘穆穆, 肅肅은 敬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敬은 ‘공경스럽다’는 말이거나, ‘신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方言》에는 允/訦/恂/展/諒/穆/信也, ‘允, 訦, 恂, 展, 諒, 穆은 信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信은 ‘신실하다’는 의미이므로, 「釋訓」의 풀이와 통한다. 이런 의견도 있다. 《禮記》 「曲禮 下」에 天子穆穆, ‘天子는 穆穆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威儀多貌也//天子尊重/故行止威儀多也,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天子는 존귀하므로, 위엄이 넘치게 행동한다’라고 하였다. 이 중, ‘신실하다’는 설은 뒤에 이어지는 於緝熙敬止의 敬과 의미가 같기 때문에 나는 택하지 않았다. 敬 역시 ‘신실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신실한 문왕이여, 신실하구나’처럼 해석할 수는 없겠다. 그러면 ‘훌륭하다’와 ‘위엄이 넘친다’가 남는다. 그러나 ‘위엄이 넘친다’는 뜻은 뒤의 敬, 즉 ‘신실하다’ 혹은 ‘공경스럽다’라는 말과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신실하거나 공경스럽다는 말은 자신을 삼가는 양태인데, 어떻게 위엄이 넘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나는 ‘훌륭하다’는 설을 택하였다. 毛亨은 ‘훌륭하다’라고 하였고, 朱熹는 ‘심원하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穆穆/美也, ‘穆穆은 美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美가 ‘아름답다’인지, ‘훌륭하다’인지는 모르겠다. ▼ 朱熹는 穆穆/深遠之意, ‘穆穆은 심원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文王은 周나라의 文王 昌이다.

◈ 於는 아마 독립어로, ‘아아’ 같은 감탄사일 것이다. 이 때는 ‘오’라고 읽는다.

◈ 緝熙는 아마 부사어로, ‘환하게’라는 말일 것이다. 나는 ‘눈부시게’라고 번역하였다. 緝과 熙는 모두 ‘빛나다’. ‘환하다’라는 뜻이다. 《爾雅》 「釋詁」에 緝/熙/烈/顯/昭/皓/熲/光也, ‘緝, 熙, 烈, 顯, 昭, 皓, 熲은 光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光은 ‘빛나다’, ‘환하다’는 뜻이다. ▼ 毛亨은 緝熙/光明也, ‘緝熙는 빛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緝/七入反//熙/許其反//緝熙/光明也, ‘緝은 七과 入의 반절로 읽는다. 熙는 許와 其의 반절로 읽는다. 緝熙는 빛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緝/續//熙/明//亦不已之意, ‘緝은 이어지다는 뜻이고, 熙는 밝다는 뜻인데, 역시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敬은 아마 용언으로, ‘신실하다’는 말일 것이다.

◈ 止는 아마 의미 없는 조사 같다. 《詩》에는 句를 끝내는 조사로 止가 사용된 경우가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 「國風 召南」의 「草蟲」에 亦旣見止/亦旣覯止라는 말이 나오는데, 毛亨은 止/辭也, ‘止는 辭다’라고 하였다. 辭는 의미 없는 조사를 이른다. 朱熹 역시 止/語辭, ‘止는 어조사다’라고 하였다. 이 사례는 王引之의 《經傳釋詞》 「止」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禮記》 「大學」에 止於至善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止는 至善한 경지에 ‘머문다’는 뜻이다. 이처럼 ‘머물다’로 보고, 於를 ‘~에’로 해석한다면, 於緝熙敬止는 ‘緝熙하게 敬한 경지에 머문다’처럼 풀이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아, 가능한 설의 하나로 언급해 둔다. 나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 朱熹는 止/語辭, ‘止는 어조사다’라고 하였다.

◈ 假는 용언으로, 아마 ‘위대하다’는 말일 것이다. 假는 大와 같다. 이 점은 有周不顯/帝命不時의 不을 논의할 때 인용하였던 《爾雅》에 포함되어 있다. 毛亨, 鄭玄, 陸德明은 모두 ‘확고하다’라고 풀이했는데, 나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朱熹는 大로 풀이하였다. ▼ 毛亨은 假/固也, ‘假는 확고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假를 堅固, ‘확고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假/古雅反/固也, ‘假는 古와 雅의 반절로 읽는다. 확고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假/大, ‘假는 위대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穆穆文王、於緝熙敬止。假哉天命、有商孫子。

◈ 哉는 ‘~하도다’처럼 해석된다.

◈ 天命은 체언으로, ‘天命’이다. 上帝가 내린 ‘天命’을 이른다. 이 天命은 ‘天子가 되어 天下를 다스릴 命’을 이른다.

◈ 有는 용언으로, ‘~에 있다’는 말이다. 商孫子를 받는다.

◈ 商은 관형어로, ‘商나라의’라는 뜻이다. 孫子를 한정한다.

◈ 孫子는 체언으로, ‘子孫’, ‘후손’이다. 도치한 표현이다. 고대에는 이처럼 글자의 순서를 바꾸어 사용하기도 했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孫子을 子孫, ‘자손’이라고 풀이하였다.

◈◈ 鄭玄은 穆穆乎文王/有天子之容/於美乎//又能敬其光明之德//堅固哉/天爲此命之/使臣有殷之子孫, ‘훌륭한 文王은 天子로서의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아아, 아름답도다. 또, 그 빛나는 德을 신실하게 할 수 있었다. 확고하도다, 하늘은 이를 위해 文王에게 命을 내려서, 신하로 殷나라의 후손을 데리고 있게 하였도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여기서 의미가 끊기지 않는다. 《毛詩正義》에서 왜 有商孫子에서 내용을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이 부분의 주제는 商나라, 즉 殷나라가 가지고 있던 天命이 周나라 文王에게 옮겨 왔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뒤로 이어지고, 有商孫子에서 의미의 단락이 나뉘지도 않는다.

 

 

 

 

商之孫子、其麗不億。上帝旣命、侯于周服。

商의 孫子들은 其 麗가 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上帝가 [주나라에] 命한 뒤에는 [모두] 周服에서 侯하였도다.

상나라의 자손들은 그 수가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상제가 [주나라에] 천명을 내린 뒤에는 [모두] 주나라 땅에서 제후가 되었도다.

◈ 商은 체언으로, ‘商나라’를 이른다. 곧, 殷나라다.

◈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처럼 해석된다.

◈ 孫子는 체언으로, ‘子孫’, ‘후손’이다. 도치된 표현이다.

◈ 其는 아마 商之孫子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 麗는 체언으로, ‘수’, ‘수효’다. 이 麗는 아마 𣀷의 가차자일 것이다. 《說文解字》 「攴部」에 𣀷/數也, ‘𣀷는 數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方言》에도 𣀷/數也, ‘𣀷는 數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數는 ‘수’이기도 하고, ‘헤아리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說文解字》 내용에 대해 段玉裁는 大雅/其麗不億///毛曰/麗/數也///方言作≪麗攵≫/亦云數也//葢≪麗攵≫是正字/麗是假借字//從麗者/麗/㒳也//㒳㒳而數之也, ‘「大雅」에 其麗不億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毛亨은 “麗는 數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方言》에는 ≪麗攵≫라고 되어 있는데, 《方言》에서도 數라고 풀이하였다. 아마도 ≪麗攵≫가 정자일 것이고, 麗가 가차자일 것이다. 글자에 麗가 들어 있는 까닭은, 麗가 㒳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쌍으로 헤아린다는 의미다’라고 하였다. 攴과 攵은 같은 글자다. 따라서 ≪麗攵≫는 곧 𣀷와 같다. 㒳은 兩과 같다. 즉, 㒳㒳은 兩兩과 같은데, 이는 아마 ‘둘씩’, ‘쌍으로’라는 듯 같다. ▼ 毛亨은 麗/數也, ‘麗는 수효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麗를 數, ‘수효’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麗/力計反/沈又力知反//數也, ‘麗는 力과 計의 반절로 읽는다. 沈은 力과 知의 반절로 읽는다고도 하였다. 수효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沈은 沈重이나 沈旋 중 하나일 것이다. ▼ 朱熹는 麗/數也, ‘麗는 수효다’라고 하였다.

◈ 不億은 ‘헤아리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많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처럼 번역하였다. 不은 부정어다. 億을 한정한다. 여기서는 不能처럼 보면 좋겠다. 億은 용언으로, ‘헤아리다’는 말이다. 《論語》 「憲問」에 不億不信, ‘不信하다고 億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億을 億度, ‘헤아리다’라고 풀이하였고, 朱熹는 億/未見而意之也, ‘億은 알지 못하면서도 의견이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臆測이라고 풀이한 듯하다. 곧, 풀이에서 모두 億은 ‘헤아리다’처럼 해석된다. 한편, 본문에 대해 朱熹는 億을 숫자 ‘억’으로 보고, 不億을 ‘억에 그치지 않는다’처럼 풀이했다. 곧, 억 보다 많다는 뜻이다. 鄭玄도 이렇게 본 듯하다. 나는 이 설들을 따르지 않았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不億을 不徒億, ‘다만 억일 뿐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억 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 朱熹는 不億/不止於億也, ‘不億은 수효가 억에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억 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 旣는 ‘~한 뒤에’, ‘이윽고’라는 말이다. 命을 받는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旣를 已, ‘이미’라고 풀이하였다.

◈ 命은 용언으로, ‘命하다’, ‘命을 내리다’는 말이다.

◈ 侯는 아마 용언으로, ‘제후가 되다’는 말 같다. 鄭玄이 이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侯를 ‘이에’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乃와 같다. 《爾雅》 「釋詁」에 郡/臻/仍/迺/侯/乃也, ‘郡, 臻, 仍, 迺, 侯는 乃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乃는 ‘이에’다. 王引之 역시 《經傳釋詞》 「侯」에서 이 대목의 侯를 乃로 풀이하였다. 王引之는 王肅訓侯爲維/義得兩通, ‘王肅은 侯를 維로 풀이했는데, 두 설 모두 의미가 통한다’라고 하였다. 維는 ‘오직’이다. 王肅의 설은 朱熹의 설과 같다. 그런데 侯를 乃나 維 같은 부사어로 해석한다면, 侯于周服에서 服을 용언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侯를 ‘제후가 되다’처럼 용언으로 본다면, 鄭玄의 설처럼 周服을 붙여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장단점이 있고, 또 어떤 식으로든 해석할 수 있으니, 숙고해 보아야 하겠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侯를 爲君, ‘군주가 되다’라고 풀이하였다. 周나라의 제후가 되었다는 뜻이다. ▼ 朱熹는 侯/維也, ‘侯는 維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維는 아마 ‘오직’이라는 뜻 같다. 상기하였듯, 王肅은 維로 풀이하였는데, 朱熹는 이 설을 베꼈을 것이다. 《爾雅》 「釋詁」에 伊/維/侯也, ‘伊, 維는 侯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侯를 維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설을 따르지 않았다.

◈ 于는 ‘~에서’다. 周服을 받는다. ▼ 鄭玄은 于/於也, ‘于는 於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於는 ‘~에서’다.

◈ 周服은 체언으로, 周나라의 형식적 강역을 이른다. 즉, 周나라 본토와, 周나라 제후국의 영토를 모두 합친 영역이다. 《周禮》에 服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이를 것이다. 그러면 侯于周服은 ‘周服에서 제후가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商나라 사람들이 周나라의 天命을 인정하고, 周나라에 굴복했다는 뜻이다. 이는 鄭玄의 설이다. 朱熹의 경우엔, 于周를 묶고, 服을 용언으로 보아, ‘周나라에 복종하다’처럼 해석하였다. 이 설도 타당하지만, 그러면 侯于周服에서, 왜 굳이 于周를 句 중간에 위치시켰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句의 형식을 생각하면, 차라리 鄭玄처럼 于周服을 한 데 붙여서 풀이하는 편이 좋겠다. 다만, 뒤에 이어지는 侯服于周에서는 周服이 붙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으며, 服은 용언으로, 周는 체언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朱熹의 설과 통한다. 왜 앞의 句에서는 侯于周服이라고 하고, 바로 뒤의 句에서는 侯服于周라고 하였을까. 단순한 실수일까. 아니면, 天下가 ‘周나라 땅’이라는 점을 명시하기 위해, 일부러 周服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숙고해 볼 만하겠다. 상기하였듯, 이 이야기는 《周禮》에 기재되어 있다. 《周禮》 「夏官司馬」에 乃辨九服之邦國/方千里曰王畿/其外方五百里曰侯服/又其外方五百里曰甸服/又其外方五百里曰男服/又其外方五百里曰采服/又其外方五百里曰衛服/又其外方五百里曰蠻服/又其外方五百里曰夷服/又其外方五百里曰鎮服/又其外方五百里曰藩服, ‘이에 九服의 나라들을 구분한다. 반경 천 里는 王畿라고 한다. 그 밖 500里는 侯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甸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男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采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衛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蠻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夷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鎮服이라 하고, 또 그 밖 500里는 藩服이라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한편, 《周禮》 「秋官司寇」에는 邦畿方千里//其外方五百里謂之侯服/歲壹見/其貢祀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甸服/二歲壹見/其貢嬪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男服/三歲壹見/其貢器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采服/四歲壹見/其貢服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衛服/五歲壹見/其貢材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要服/六歲壹見/其貢貨物//九州之外謂之蕃國/世壹見/各以其所貴寶爲摯, ‘邦畿는 반경 천 里다. 그 바깥 500里는 侯服이라고 하는데, 1년에 한 번 조현하고, 공물은 祀物이다. 또 그 바깥 500里는 甸服이라고 하는데, 2년에 한 번 조현하고, 공물은 嬪物이다. 또 그 바깥 500里는 男服이라고 하는데, 3년에 한 번 조현하고, 공물은 器物이다. 또 그 바깥 500里는 采服인데, 4년에 한 번 조현하고, 공물은 服物이다. 또 그 바깥 500里는 衛服이라고 하는데, 5년에 한 번 조현하고, 공물은 材物이다. 또 그 바깥 500里는 要服인데, 6년에 한 번 조현하고, 공물은 貨物이다. 九州 바깥은 蕃國이라고 하는데, 한 대 마다 한 번 조현하고, 각자 귀중하게 취급하는 것들을 바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夏官司馬」와 다르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服을 九服이라고 풀이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朱熹는 周는 ‘周나라’, 服은 ‘복종하다’처럼 풀이하였다.

◈◈ 毛亨은 盛德不可爲衆也, ‘德을 갖춘 사람에 대해서는 숫자가 많아도 대적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爲는 아마 ‘대적하다’는 말 같다.

◈◈ 鄭玄은 商之孫子/其數不徒億/多言之也//至天已命文王之後/乃爲君於周之九服之中//言衆之不如德也, ‘商나라의 자손들은 그 수효가 억을 넘으니, 이는 많다는 말이다. 하늘이 이미 文王에게 命을 내리기까지에 이르자, 이에 周나라의 九服에 들어 와 제후가 되었다. 이는 숫자가 많더라도 德望만 못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穆穆文王부터 侯于周服까지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한 시문이다. 朱熹는 또, 言穆穆然文王之德不已其敬如此//是以天命集焉/以有商孫子觀之/則可見矣//蓋商之孫子/其數不止於億/然以上帝之命集於文王/而今皆維服于周矣, ‘심원한 文王의 德은, 공경스러운 태도가 끝나지 않기가 이와 같았다. 이런 까닭에 文王에게 天命이 모여 들었을 것이니, 이에 商나라의 후손들이 이를 살펴 보았을 것이라는 점을 알 만하다. 아마도 商나라의 후손들은 그 수가 억 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上帝의 命이 文王에게 모여 들자, 자손들이 모두 오직 周나라에게만 복종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한 때 天子로서 天下를 다스리던 殷나라 사람들도 周나라에 복종했다고 선전하는 말이다.

 

 

 

 

侯服于周、天命靡常。

[상나라 사람들조차] 侯하여서 周에 服하였으니, 天命은 常하지 않구나.

[상나라 사람들조차] 제후가 되어서 주나라에 복종하였으니, 천명은 영원하지 않구나.

◈ 侯는 용언으로, ‘제후가 되다’는 말인 듯하다.

◈ 服은 용언으로, ‘복종하다’는 말이다.

◈ 于는 ‘~에’다. 周를 받는다.

◈ 周는 체언으로, ‘周나라’다.

◈ 天命은 체언으로, ‘天命’이다. 周나라의 ‘天命’을 이른다.

◈ 靡는 無로 보아도 좋고, 不로 보아도 좋다. 無로 본다면 ‘常이 없다’는 뜻이 되고, 不이라면 ‘常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나는 不로 보았다. 《爾雅》 「釋言」에 靡/罔/無也, ‘靡와 罔은 無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주석을 참고할 때, 毛亨은 靡를 無, ‘없다’로 풀이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 역시 靡를 無, ‘없다’로 풀이하였다.

◈ 常은 용언으로, ‘일정하다’, ‘영원하다’는 말이다. 靡를 無로 본다면, 常은 체언이 되고, ‘일정함’, ‘영원함’처럼 해석될 것이다. 따라서 天命靡常이란, ‘天命이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다. 天子의 자리는, 속설대로라면 堯에서 舜으로 전해졌고, 堯에서 禹로 전해졌다. 禹는 夏나라를 세웠는데, 夏나라의 제위는 나중에 成湯에게 넘어 갔다. 成湯은 殷나라, 즉 商나라를 세웠는데, 그 제위는 나중에 周나라에 넘어 갔다. 이처럼, 天命, 즉 天子가 되어서 天下를 다스릴 ‘권리’는 계속 주인을 옮겨 다녔다. 이를 이른다. ▼ 鄭玄은 無常者/善則就之/惡則去之, ‘無常이라는 말은, 선하면 따르고, 악하면 떠나 보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則見天命之無常也, ‘곧, 天命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周나라로 天命이 옮겨 왔다는 점을 선전하고 있다.

 

 

 

 

殷士膚敏、祼將于京。厥作祼將、常服黼𠳲。

殷士는 膚하고 敏하였는데, 京에서 祼將하였도다. 厥은 祼將을 作하면서도, 常 黼𠳲를 服하였도다.

은사는 훌륭하고 명민하였는데, 경사에서 관장하였도다. 그 자는 제사를 도우면서도, 늘 은나라의 옷과 관을 갖추고 있었도다.

◈ 殷士는 殷나라 大夫로서 周나라에 투항해 온 자를 이르는 말 같다. 나는 ‘은사’라고 음역하였다. 朱熹의 설이 가장 타당하다. 《禮記》 「曲禮 下」에 列國之大夫/入天子之國曰某士/自稱曰陪臣某, ‘열국의 大夫가 天子의 나라에 들어갔을 때는 “어느 나라의 士”라고 한다. 자신을 부를 때는 “陪臣 누구누구”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鄭玄은 亦謂諸侯之卿也//三命以下/於天子爲士//曰某士者/如晉韓起聘於周/擯者曰/晉土起, ‘제후의 卿에 대해서도 그렇다. 三命 이하의 大夫는 天子에게는 士가 된다. “어느 나라의 士”라고 한다는 말은, 晉나라의 韓起가 周나라에 초대되었을 때, 韓起를 안내하던 자가 “晉土 起다”라고 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周나라가 天命을 받았으니, 周나라가 天子의 나라가 된다. 殷나라는 天命을 잃고, 周나라의 제후국이 된다. 이 때, 제후국 殷나라에서 大夫를 周나라에 사신으로 보낸다면, 이 大夫가 바로 天子의 나라에 들어간 열국의 大夫가 된다. 그래서 殷士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좀 이상하다. 殷나라가 멸망한 것은 武王 發 때이지, 文王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某士의 ‘정의’에 맞추려면 위와 같이 설명할 수 있겠지만, 殷나라가 실제적으로는 天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周나라의 제후 운운할 수가 있었겠는가. 아마 殷나라에서 周나라에 투항해 온 卿이나 大夫가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을 周나라에서 환대하였으며, 祼將于京의 내용을 참고하면 周나라의 제사까지 돕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앞에서는 商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殷이라고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 毛亨은 殷士/殷侯也, ‘殷士는 殷侯다’라고 하였다. 殷侯는 아마 殷나라 사람으로, 周나라의 제후가 된 자를 이를 것이다. ▼ 朱熹는 諸侯之大夫/入天子之國/曰某士//則殷士者/商孫子之臣屬也, ‘제후의 大夫는 天子의 나라에 들어 갔을 때 “어떠한 나라의 士”라고 부른다. 그러나 殷士라는 말은, 商나라의 후손 같은 부류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 膚는 용언으로, ‘훌륭하다’는 말이다. 《爾雅》나 《方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詩》 「國風 豳風」의 「狼跋」에 公孫碩膚, ‘公孫은 碩하고 膚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膚/美也, ‘膚는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鄭玄 역시 美로 풀이하였다. 朱熹 역시 膚/美也, ‘膚는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아마 고대에 이렇게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 毛亨은 膚/美, ‘膚는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膚를 壯美, ‘훌륭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 역시 膚/美, ‘膚는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敏은 용언으로, ‘똑똑하다’, ‘명민하다’는 말이다. 毛亨과 朱熹는 疾이라고 풀이했는데, 疾은 ‘빠르다’, ‘민첩하다’,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말로, 곧 ‘명민하다’는 뜻이다. ▼ 毛亨은 敏/疾也, ‘敏은 민첩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敏/疾也, ‘敏은 민첩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祼將이란, ‘鬱鬯을 부어서 神位에 바치는 일을 돕는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관장하다’처럼 음역하였다. 祼란, ‘鬱鬯을 붓다’는 말이다. 將이란, ‘보내다’, ‘전하다’는 말로, 送과 같다. 아마 제사를 지낼 때, 鬱鬯을 붓고, 이 술잔을 神位에 바치는데, 이 바치는 행위를 ‘보내다’, ‘전하다’처럼 표현한 듯하다. 《周禮》 「天官冢宰」에 凡祭祀/贊玉幣爵之事/祼將之事, ‘모든 제사들은 贊玉하고 幣爵하는 일이요, 祼將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將/送也//祼送/送祼/謂贊王酌鬱鬯以獻尸謂之祼, ‘將은 送이라는 뜻이다. 祼送은 送祼로, 王을 도와서 鬱鬯을 붓고, 神位에 바친다는 뜻이니, 이를 祼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鄭玄은 또, 祼之言灌也/明不爲飲/主以祭祀//唯人道宗廟有祼/天地大神至尊不祼/莫稱焉, ‘祼는 붓는다는 뜻이다. 밝히되, 마시기 이한 것은 아니고, 이를 주관함으로써 제사를 지낸다. 오직 宗廟에 있는 사람에게만 祼하고, 天地나 大神, 至尊에게는 祼하지 않으니, 설명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言」에도 媵/將/送也, ‘媵, 將은 送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送은 ‘보내다’는 말이다. 毛亨과 朱熹는 將을 모두 行이라고 풀이했는데, 상기한 내용을 감안하면, 行 역시 ‘보내다’, 혹은 ‘전하다’는 의미인 듯 보인다. ▼ 毛亨은 祼/灌鬯也//周人尙臭//將/行, ‘祼은 울창주를 붓는다는 말이다. 周나라 사람들은 그 냄새를 숭상하였다. 將은 行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行은 아마 ‘보내다’, ‘전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鬯/勅𠅙反, ‘鬯은 勅과 𠅙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祼/古亂反/灌也, ‘祼는 古와 亂의 반절로 읽는다. 붓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祼/灌鬯也//將/行也//酌而送之也, ‘祼는 울창주를 붓는다는 뜻이다. 將은 行이라는 뜻이다. 술을 부어서 보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行과 送은 아마 ‘전달하다’, ‘보내다’는 의미 같다.

◈ 于는 ‘~에서’처럼 해석된다. 京을 받는다.

◈ 京은 아마 周나라의 수도를 이를 것이다. 朱熹의 설이다. 毛亨은 大라고 풀이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 毛亨은 京/大也, ‘京은 大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大는 ‘위대하다’나 ‘크다’는 말일 것이다. ▼ 朱熹는 京/周之京師也, ‘京은 周나라의 수도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厥은 ‘그’처럼 가리키는 말이다. 殷士를 이른다.

◈ 作은 용언으로, ‘하다’, ‘행하다’는 말이다. 行, 爲와 같다. 作祼將의 祼將을 받는다. 作祼將은 곧, ‘祼將을 행하다’, ‘祼將을 돕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제사를 돕다’라고 의역하였다. 《爾雅》 「釋言」에 作/造/爲也, ‘作, 造는 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常은 부사어로, ‘언제나’, ‘늘’, ‘항상’이라는 말이다.

◈ 服은 용언으로, 옷을 ‘입고 있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黼𠳲를 받는다.

◈ 黼는 체언으로, 아마 ‘수를 놓은 옷’을 이를 것이다. 黼는 본래 ‘하얗고 검은 색의 수’를 이른다. 수는 옷에 놓는 장식이다. 문맥을 고려할 때, 黼는 殷나라에서 입던 복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殷나라의 옷’이라고 번역하였다. 《禮記》 「月令」에 是月也/命婦官染採/黼黻文章/必以法故, ‘이 달에는 婦官에게 무늬를 물들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黼黻과 文章은 반드시 옛 법도를 본받아 물들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白與黑謂之黼/黑與青謂之黻/青與赤謂之文/赤與白謂之章, ‘하얗고 검은 것을 黼라고 하고, 검고 푸른 것을 黻이라 하며, 푸르고 붉은 것을 文이라 하고, 붉고 하얀 것을 章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黼/白與黑也, ‘黼는 하얗고 검은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수의 색깔을 뜻한다. ▼ 陸德明은 黼音甫, ‘黼는 甫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黼/黼裳也, ‘黼는 수를 놓은 바지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𠳲는 체언으로, ‘관’이다. 관의 일종인데, 殷나라에서 사용하였다. 나는 ‘殷나라의 관’이라고 번역하였다. 𠳲는 冔와 같다. 《儀禮》 「士冠禮」에 委貌/周道也//章甫/殷道也//毋追/夏后氏之道也//周弁/殷冔/夏收, ‘委貌는 周나라의 방식이고, 章甫는 殷나라의 방식이며, 毋追는 夏后氏의 방식이었다. 周나라에서는 弁이라고 하였고, 殷나라에서는 冔라고 하였으며, 夏나라에서는 收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鄭玄은 冔名出於幠//幠/覆也//言所以自覆飾也, ‘冔라는 이름은 幠에서 나왔다. 幠는 덮다는 뜻이다. 자신을 덮어 꾸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𠳲/殷冠也//夏后氏曰收/周曰冕, ‘𠳲는 殷나라의 冠이다. 夏后氏의 경우엔 收라고 하였고, 周나라의 경우엔 冕이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夏/戶雅反, ‘夏는 戶와 雅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𠳲/況甫反/殷冠名//字林作𦀒//又火于反, ‘𠳲는 況과 甫의 반절로 읽는다. 殷나라 冠의 이름이다. 《字林》에는 𦀒라고 되어 있다. 火와 于의 반절로 읽기도 한다’라고 했다. ▼ 朱熹는 𠳲/殷冠也//蓋先代之後/統承先王/脩其禮物//作賓於王家/時王不敢變焉//而亦所以爲戒也, ‘𠳲는 殷나라의 冠이다. 아마도 殷나라의 후손이 옛 왕들을 이어서, 그 예법들을 정리해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에 이르러서는 周나라 왕실의 손님이 되었으나, 그 때의 王이 감히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역시 훈계하기 위한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훈계란, 周公이 成王을 훈계하였다는 뜻이다.

◈◈ 鄭玄은 殷之臣壯美而敏/來助周祭//其助祭自服殷之服/明文王以德不以彊, ‘殷나라의 신하는 훌륭하고 명민하였는데, 周나라에 와서는 周나라의 제사를 도왔다. 그 자는 제사를 도우면서 殷나라의 복식을 갖추고 있었으니, 文王이 德望으로 殷나라의 후손들을 복속시킨 것이지, 강제력을 사용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 말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고대의 기준에서, 새로 패권을 장악한 국가가 이전의 패권국을 존치시켜 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周나라는 殷나라를 멸망시킨 뒤, 殷나라의 微子 啟를 제후로 분봉해 주었다. 그 나라가 바로 宋나라다. 이처럼 周나라는 天子가 되었음에도, 선대의 天子였던 殷나라를 멸문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殷士는 물론 微子나 微子의 후손이 아닐 것이다. 殷士는 아직 殷나라가 무너지지 않았음에도, 周나라에 투항해 온 殷나라의 大夫일 것이다. 투항해 오기는 하였지만, 적국의 大夫인데, 周나라에서 제사에 참여할 정도로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鄭玄은 이러한 점들을 文王의 德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내 생각에는, 文王의 德도 德이겠지만, 殷나라가 아직 멸망하지 않은 상황에서, 殷나라의 大夫들을 괄대한다면, 殷나라를 오히려 단합시킬 수 있기 때문에 후대하였을 듯하다. 殷나라가 망한 이후의 일은 어떨까. 周나라가 殷나라에 반역을 일으켜서 天子의 지위를 탈취한 이후에는, 殷나라를 멸문시킬 만큼 周나라가 압도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유민들을 宋나라에 존치시켜 주었을 것이다. 아마 이것이 실제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王之藎臣、無念爾祖。

王의 藎한 臣이여, 爾 祖[의 사례]를 念하라.

왕의 충실한 신하여, 니 선조[의 사례]를 마음에 새겨라.

◈ 이 句에서부터 내용이 바뀐다. 常服黼𠳲까지는 文王이 德望으로 정치를 돌봐서, 殷나라의 天命이 周나라로 옮겨 왔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이 句에서부터는 周公 旦이 周나라 成王에게 직접 훈계하기 시작한다. 본래 天命은 殷나라에 있었는데, 文王이 德을 폈기 때문에 周나라로 옮겨 왔으니, 이처럼 天命은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周公은 그러므로 成王이 文王처럼 德을 펴지 않는다면, 周나라에 있던 天命은 다시 다른 나라로 옮겨 갈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無念爾祖는, 無를 그래도 살려서 ‘너의 선조를 마음에 두지 말라’라고 할 수도 있고, 無를 무시하고는 ‘너의 선조를 생각하라’, 혹은 ‘너의 선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할 수도 있다. 전자처럼 해석한다면, 이는 앞에 나왔던 殷士에게 하는 말이 된다. 天命을 가지고 있었던 殷나라의 선조들을 그리워하지 말고, 周나라에게 쭉 충성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후자처럼 해석한다면, 成王에게 하는 훈계가 된다. 文王의 代에 天命이 바뀌었던 사건을 成王이 어떻게 마음에 새겨 두지 않을 수가 있겠냐는 뜻이다. 이 句만 전자처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뒤에 이어지는 말을 감안하면, 殷士에게 하는 말이라고 볼 수가 없다. 無念爾祖를 殷士에게 하는 말이라고 본다면, 사실 그 뒤에서부터는 다른 내용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목을 「文王」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 끝까지 無念爾祖의 기조가 이어지므로, 제목을 「殷士」로 바꾸지 않는 한, 전자처럼 해석해서는 시를 정합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점을 감안하여 번역해야 하겠다.

◈ 王은 아마 周나라 成王 誦을 가리킬 것이다. ▼ 鄭玄은 王/斥成王, ‘王은 成王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王/指成王也, ‘王은 成王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처럼 해석된다.

◈ 藎은 관형어로, ‘노력하는’, ‘열심히 하는’, ‘충실한’이라는 말이다. 臣을 한정한다. 藎은 進과 같은데, 進은 ‘노력하다’는 말이다. 《爾雅》 「釋詁」에 肅/延/誘/薦/餤/晉/寅/藎/進也, ‘肅, 延, 誘, 薦, 餤, 晉, 寅, 藎은 進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藎/進也, ‘藎은 충실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 역시 藎를 進, ‘충실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藎/才刃反, ‘藎은 才와 刃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藎/進也//言其忠愛之篤/進進無已也, ‘藎은 충실하다는 뜻이다. 신하의 충성스러운 마음이 돈독하여, 정진하고,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臣은 체언으로, ‘신하’다. 藎臣은 ‘충실한 신하’가 된다. 王은 成王이었으므로, 藎臣은 成王의 신하가 된다. 그런데 周公이 成王에게 훈계해야 하는데, 왜 成王의 신하에게 말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을까. 고대에는 王이나 제후를 직접 부르면서 간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변 사람을 부르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말미의 주석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 두었다. 毛亨, 鄭玄, 朱熹는 모두 成王의 신하를 이른다고 보았다. 이 설들이 타당하다.

◈ 無念은 아마 ‘염두에 두어라’, ‘생각해라’, 혹은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겠느냐’처럼 보아야 할 듯하다. 맥락상 無는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해석한다면 毋 같이, ‘~하지 말아라’라고 보아야 할 텐데, 상기하였듯, 뒤의 내용을 감안하면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成王에게 하는 훈계이므로, ‘文王의 일을 늘 염두에 두어라’처럼 해석되어야 한다. 毛亨, 鄭玄, 朱熹 모두 그렇게 보고 있다. 특히 朱熹의 경우, ‘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처럼 반문으로 풀이했는데, 이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無의 의미를 살리려면, 殷士에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시의 전체적인 정합성이 무너져 버린다. ▼ 毛亨은 無念/念也, ‘無念은 念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毛亨은 無를 무시하고, 念으로 곧장 풀이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 역시 無를 무시하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無念/猶言豈得無念也, ‘無念은 어찌 念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朱熹 역시 반어로 보고, 無를 무시하고서 풀이하였다.

◈ 爾祖는 ‘너의 선조’, ‘너의 조상’이다. 爾는 2인칭 대명사다. ‘너’를 이른다. 成王의 조상, 즉 文王을 이른다. 毛亨, 鄭玄, 朱熹 모두 文王으로 보았다. ▼ 朱熹는 爾祖/文王也, ‘爾祖는 文王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今王之進用臣/當念女祖爲之法//王/斥成王, ‘지금 王의 進用한 신하에게 하는 말로, 마땅히 니 선조를 마음에 두고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王은 成王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進用은 문맥상 ‘중요하다’, ‘소중하다’는 말 같은데,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爲之法/一本作爲之法度, ‘爲之法은 어떤 판본에는 爲之法度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法이 곧 法度이므로, 어떤 판본이든 의미는 같다. 鄭玄의 말은 아마, 이 말이 周公이 成王에게 하는 경계이지만, 王이 아니라 王의 측근에게 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취하였다는 뜻 같다. 이 점은 朱熹 부분에 더 상세하게 설명해 두었다.

◈◈ 朱熹는 侯服于周부터 無念爾祖까지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한 시문이다. 朱熹는 또, 言商之孫子而侯服于周/以天命之不可常也//故殷之士/助祭于周京/而服商之服也//於是呼王之藎臣而告之曰/得無念爾祖文王之德乎//蓋以戒王而不敢斥言/猶所謂敢告僕夫云爾//劉向曰/孔子論詩/至於殷士膚敏祼將于京/喟然歎曰/大哉天命/善不可不傳於後嗣/是以富貴無常///蓋傷微子之事周而痛殷之亡也, ‘이러한 뜻이다. 商나라의 후손이 周나라에 복종한 까닭은, 天命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殷나라의 士가 周나라의 수도에서 제사를 도우면서 商나라의 복식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에, 王의 藎臣을 부르면서, “너의 선조인 文王의 德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王을 경계시키면서 직접 지시해 말하지 않은 것은, “삼가 僕夫에게 말한다”라고 한 이치와 같다. 劉向은 “孔子는 《詩》에 대해 이야기할 때, 殷士膚敏/祼將于京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한숨을 쉬고 탄식하면서, ‘위대하도다, 天命이여. 善은 뒷세대에 전해지지 않을 수가 없으니, 이에 부귀도 영원하지 않은 것이로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아마도 微子가 周나라를 섬기고, 殷나라의 멸망을 한탄하였던 점을 안타까워하였던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敢告僕夫는 《春秋左氏傳》 「襄公」 4년에 나오는 말이다. 신하로서 제후에게, ‘니가 어떠어떠해야 한다’라고 직간하기 어려우므로, 제후 주변 사람을 지목하여, 그 사람에게 제후에게 올려야 할 간언을 대신 한다는 뜻이다. 고대의 관습이었을 것이다. 朱熹는 王之藎臣/無念爾祖을, 周公 旦이 成王에게 하는 훈계라고 보았지만, 旦이 成王을 직접 지칭할 수 없어서 藎臣에게 대신 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劉向의 말은 《漢書》 「楚元王傳」에 인용되어 있다.

◈◈ 亡亡案 : 天命은 옮겨 갈 수 있으므로, 위정자는 늘 德望을 펴서 天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無念爾祖、聿脩厥德。永言配命、自求多福。

爾 祖를 念하고, 厥 德을 脩하라. [덕정을 펴서] 命에 永하게 配한다면, 自하게 多福을 求할 것이다.

니 선조[의 사례]를 마음에 새기고, 너의 덕을 수양하라. [덕정을 펴서] 하늘의 뜻에 영원히 어우러진다면, 저절로 복록을 얻을 것이다.

◈ 無念爾祖는 앞에서 풀이하였듯, ‘너의 선조를 마음에 새겨라’는 말이다. 無는 해석하지 않는다.

◈ 聿은 아마 의미 없는 조사 같다. 朱熹의 설이 옳다. 毛亨, 鄭玄, 陸德明은 述이라고 하였는데, 述은 아마 ‘닦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脩와 의미가 통하므로, 聿脩를 한 단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聿이 다른 글들에서도 의미 없는 조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聿 역시 의미 없는 조사로 보는 편이 좋겠다. 예를 들면, 「大雅 文王之什」의 「緜」에 聿來胥宇, ‘와서 집을 胥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聿 역시 해석되지 않는다. 王引之 역시 《經傳釋詞》 「欠聿遹曰」에서 여러 사례를 들면서 皆以爲辭助, ‘모든 사례에서 聿을 조사로 간주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聿/述, ‘聿은 닦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聿을 述, ‘닦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聿/于必反/述也, ‘聿은 于와 必의 반절로 읽는다. 닦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聿/發語辭, ‘聿은 발어사다’라고 하였다.

◈ 脩는 용언으로, ‘닦다’, ‘수양하다’는 말이다. 厥德을 받는다.

◈ 厥은 ‘그’다. 其와 같다. 여기서는 훈계를 듣는 成王을 이를 것이다.

◈ 德은 체언으로, ‘德’, ‘德望’이다.

◈ 永은 부사어로, ‘오랫동안’, 혹은 ‘영원히’라는 말일 것이다. ▼ 毛亨은 永/長, ‘永은 長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鄭玄은 長/猶常也, ‘長은 常과 같다’라고 하였다. 常은 ‘영원하다’는 말이다. ▼ 朱熹 역시 永/長, ‘永은 長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言은 아마 의미 없는 조사일 것이다. 永言配命은 ‘永하게 命에 配한다’처럼 해석되므로, 言은 풀이되지 않는다. 王引之는 《經傳釋詞》 「言」에서 이 言이 의미 없는 조사로 사용되는 云과 같다고 보았다. 毛亨은 我, 즉 ‘나’로 보았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 毛亨은 言/我也, ‘言은 나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 卬/吾/台/予/朕/身/甫/余/言/我也, ‘卬, 吾, 台, 予, 朕, 身, 甫, 余, 言은 我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配는 용언으로, 아마 ‘어우러지다’, ‘화합하다’는 말일 듯하다. 配는 본래 ‘짝을 짓다’는 말이다. 그런데 짝을 짓다는 말은 곧 함께 한다는 뜻이고, 이는 ‘조화를 이룬다’는 말과 같다. 朱熹는 合이라고 풀이했는데, 이 설이 타당하다. ▼ 朱熹는 配/合也, ‘配는 화합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命은 체언으로, 곧 ‘天命’, ‘하늘의 뜻’이다. ▼ 朱熹는 命/天理也, ‘命은 天理다’라고 하였다.

◈ 自는 부사어로, ‘저절로’다.

◈ 求는 용언으로, ‘불러 들이다’, ‘얻다’, ‘초래하다’는 말 같다. 《孟子》 「公孫丑 上」에 是自求禍也, ‘이는 스스로 禍를 求하는 꼴이다’는 말이 있는데, 이 求가 바로 그러한 뜻이다.

◈ 多는 관형어로, ‘많은’이다. 福을 한정한다.

◈ 福은 체언으로, ‘福’, ‘福祿’이다. 그래서 多福은 ‘많은 福’이 되는데, 여기서는 그냥 ‘福祿’이라고만 번역하였다.

◈◈ 毛亨은 我長配天命而行/爾庶國亦當自求多福, ‘나는 天命에 맞게끔 영원히 다스릴 것이니, 너의 나라도 분명 저절로 복록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長은 常으로 보고 풀이하였다.

◈◈ 鄭玄은 長/猶常也//王旣述脩祖德/常言當配天命而行/則福祿自來, ‘毛亨의 주석에서 長은 常과 같다. 王이 선조의 德望을 수양한다면, 그 뒤에는 언제나 天命에 맞게 다스릴 것이니, 그러면 복록이 저절로 찾아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成王 역시 文王의 선례를 따라 德望을 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殷之未喪師、克配上帝。

殷이 師를 喪하지 않았을 때엔, [은나라는] 上帝에 配할 수 있었도다.

은나라가 민심을 잃지 않았을 때엔, [은나라는] 상제[의 뜻]에 화합할 수 있었도다.

◈ 殷은 체언으로, ‘殷나라’다.

◈ 之는 주격 조사 같다. ‘~가’, ‘~이’처럼 해석된다.

◈ 未는 부정어다. ‘아직 ~하지 않다’처럼 해석된다. 喪을 한정한다.

◈ 喪은 용언으로, ‘잃다’는 말이다. 《莊子》 「齊物論」에 今者吾喪我/汝知之乎, ‘지금 나는 나를 喪하였다. 너는 이를 알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이 喪이 ‘잃다’는 말이다. ▼ 陸德明은 喪/息浪反/注同, ‘喪은 息과 浪의 반절로 읽는다. 주석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師는 체언으로, 아마 ‘민심’을 이르는 말 같다. 師는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문맥상 ‘많은 사람’이란, ‘민심’을 이른다. 민심이 곧 天命이다. 《爾雅》 「釋詁」에 黎/庶/烝/多/醜/師/旅/衆也, ‘黎, 庶, 烝, 多, 醜, 師, 旅는 많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같은 책 「釋言」에 師/人也, ‘師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釋言」에 대해 郭璞은 謂人衆,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師/衆也, ‘師는 많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師/衆也, ‘師는 많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克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能과 같다. 配를 받는다.

◈ 配는 용언으로, 아마 ‘어우러지다’, ‘화합하다’는 말일 것이다. 上帝를 받는다. 앞에 나온 永言配命의 配와 같다.

◈ 上帝는 체언으로, ‘上帝’, ‘上帝의 뜻’, 곧 ‘天命’을 이른다. ▼ 朱熹는 上帝/天之主宰也, ‘上帝는 하늘의 주재자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帝乙已上也, ‘帝乙 이전의 시대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已/時掌反/本作以//紂/直乆反, ‘已는 時와 掌의 반절로 읽는다. 판본에 따라 以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紂는 直과 乆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殷나라의 마지막 王은 紂인데, 紂의 諡號는 본래 帝辛이다. 그 바로 선대의 王이 바로 帝乙이다. 帝乙까지는 殷나라가 天命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 鄭玄은 殷自紂父之前/未喪天下之時/皆能配天而行/故不忘也, ‘殷나라는 紂의 아버지 대 전에는 天下 사람들의 마음을 잃지 않았으니, 언제나 하늘의 뜻에 화합하여 다스렸다. 그래서 망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忘은 亡으로 보고 번역하였다.

◈◈ 亡亡案 : 文王이 天命을 얻기 전까지, 天命은 殷나라에 있었다. 帝乙의 시기까지 殷나라는 天命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天下를 잘 다스릴 수 있었지만, 紂 때 天命을 잃어 버렸으므로 망하고 말았다는 뜻이다.

 

 

 

 

宜鑒于殷、駿命不易。

宜하게 殷에 鑒해야 할 것이니, 駿한 命은 [유지하기가] 易하지 않도다.

마땅히 은나라[의 사례]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니, 위대한 천명은 [유지하기가] 쉽지 않도다.

◈ 宜는 부사어로, ‘마땅히’라는 뜻이다. 鑒을 한정한다.

◈ 鑒은 용언으로, ‘비추어 보다’, ‘귀감으로 삼다’는 말이다. 앞의 사례에 ‘비추어 보다’, 옛 일에 ‘비추어 보다’는 뜻이다.

◈ 于는 ‘~에’다. 殷을 받는다.

◈ 殷은 체언으로, ‘殷나라’다. ‘殷나라의 사례’라고 하면 좋겠다.

◈ 駿은 관형어로, ‘위대하다’는 뜻이다. 大와 같다. 有周不顯/帝命不時의 不을 설명할 때 인용한 《爾雅》 내용에 駿이 大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다. 駿을 용언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命을 ‘극진하게 지키다’처럼 해석된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命之不易를 감안하면, 관형어로 보는 편이 더 낫겠다. 毛亨, 鄭玄, 陸德明, 朱熹 모두 관형어로 보았다. ▼ 毛亨은 駿/大也, ‘駿은 위대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駿을 大, ‘위대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駿音峻/又音俊/大也, ‘駿은 峻이라고 읽는다. 俊으로 읽기도 한다. 위대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駿/大也, ‘駿은 위대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命은 체언으로, ‘命’, ‘天命’이다.

◈ 不易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不은 부정어다. 易를 한정한다. 易는 용언으로, ‘쉽다’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毛亨과 朱熹는 ‘쉽다’라고 풀이하였고, 鄭玄은 ‘바꾸다’라고 보았다. 鄭玄처럼 해석할 때는 ‘역’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바로 뒤에 이어지는 命之不易를 감안할 때, ‘쉽다’라고 보는 편이 더 낫겠다. 不易는 天命을 받는 일이, 혹은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라고 볼 수도 있고, 天命 자체가 ‘쉽지 않다’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처럼 번역하였다. 朱熹의 경우, 주석을 보면, 難保, ‘保하기가 어렵다’라고 하였는데, 이 설이 타당하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易을 改易, ‘바꾸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易/毛以豉反//不易/言甚難也//鄭音亦/言不可改易也//下文及後不易維王同, ‘易에 대해, 毛亨은 以와 豉의 반절로 읽는다고 했다. 이 때 不易는 아주 어렵다는 뜻이다. 鄭玄의 경우에는 亦이라고 발음한다. 고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래의 글 및 뒤에 나오는 不易, 維王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不易는 命之不易의 不易일 텐데, 維王은 무엇을 이르는지 모르겠다. ▼ 朱熹는 不易/言其難也, ‘不易는 어렵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宜以殷王賢愚爲鏡//天之大命/不可改易, ‘마땅히 殷王의 賢愚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늘의 위대한 命은 고쳐질 수가 없도다’라고 하였다. 상기하였듯, 鄭玄은 易을 ‘바꾸다’, ‘고치다’라고 풀이했는데, 이는 天命이 옮겨 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德政을 펴는 자가 天命을 받는다는 ‘원칙’이 바뀌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 朱熹는 無念爾祖/聿脩厥德부터 駿命不易까지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한 시문이다. 朱熹는 또, 言/欲念爾祖/在於自脩其德/而又常自省察/使其所行無不合於天理/則盛大之福/自我致之/有不外求而得矣//又言/殷未失天下之時/其德足以配乎上帝矣//今其子孫乃如此/宜以爲鑒而自省焉/則知天命之難保矣//大學傳曰/得衆則得國/失衆則失國///此之謂也, ‘이러한 뜻이다. 니 선조의 일을 마음에 새겨서, 너 자신의 德을 수양해야 할 것이다. 또 언제나 자신을 반성하여, 행동거지가 天理에 합치되지 않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성대한 복록에 저절로 이르게 될 것이니, 따로 복록을 구하지 않아도 얻게 될 것이다. 다음의 말은 이러한 뜻이다. 殷나라가 天下 사람들의 마음을 잃지 않았을 때는, 殷나라의 德이 上帝에 화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후손에 이르러 天命을 잃고 말았으니, 마땅히 이를 귀감으로 삼아서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天命을 보존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겠노라. 「大學」의 傳에 “민심을 얻으면 나라를 얻게 되고, 민심을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된다”라는 말이 있으니, 바로 이러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大學」은 《禮記》의 편이다.

◈◈ 亡亡案 : 成王이 殷나라의 사례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命之不易、無遏爾躬。宣昭義問、有虞殷自天。

命은 [유지하기] 易하지 않으니, 爾의 躬에서 遏하지 않도록 하라. 義한 問을 宣 昭할 것이요, 有 殷을 虞하여서 天을 自해야 할 것이다.

천명은 [유지하기] 쉽지 않으니, 너의 대에서 끊기지 않도록 하라. 훌륭한 평판을 널리 빛낼 것이요, 또 은나라[의 사례]를 헤아려서 하늘의 뜻을 좇아야 할 것이다.

◈ 命은 체언으로, ‘天命’이다.

◈ 命之不易의 之는 주격 조사다. ‘~는’, ‘~은’처럼 해석된다.

◈ 不易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不은 부정어다. 易를 한정한다. 易는 용언으로, ‘쉽다’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상기하였듯,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 無는 ‘~하지 말라’는 말이다. 毋와 같다. 遏을 받는다. 無遏爾躬은 ‘遏爾躬하지 말라’는 말이다.

◈ 遏은 용언으로, 아마 ‘끊기게 하다’, ‘멈추다’, ‘끝나다’는 말 같다. 文王이 얻은 天命을 成王 역시 잘 이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遏은 止와 같다. 《爾雅》 「釋詁」에 訖/徽/妥/懷/安/按/替/戾/底/廢/尼/定/曷/遏/止也, ‘訖, 徽, 妥, 懷, 安, 按, 替, 戾, 底, 廢, 尼, 定, 曷, 遏은 止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止는 ‘멈추다’, ‘그치다’, ‘끝나다’는 말이다. 毛亨, 鄭玄, 陸德明은 모두 止로 풀이했고, 朱熹는 絶이라고 하였는데, 의미는 모두 같다. 陸德明은 《韓詩》에 病이라고 풀이되어 있다는 설을 소개해 두었는데, 病은 ‘문제가 생기다’는 말이므로, 이 역시 타당하다. ▼ 毛亨은 遏/止, ‘遏은 끝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鄭玄은 遏을 止, ‘끝나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遏/於葛反/或作謁/音同//止也//韓詩/遏/病也, ‘遏은 於와 葛의 반절로 읽는다. 謁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발음은 같다. 끝나다는 뜻이다. 《韓詩》에서는 “遏은 病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謁은 아마 遏의 가차자일 것이다. 病은 ‘문제가 생기다’는 뜻이다. ▼ 朱熹는 遏/絶, ‘遏은 끊기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無遏爾躬은 無遏於爾躬처럼 번역해야 하겠다. ‘爾躬에서 遏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 爾躬은 ‘너 자신’이라는 말 같다. 여기서는 ‘너의 代’라고 의역하였다. 爾는 2인칭 대명사다. 成王 誦을 이른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사용되었다. 躬은 체언으로, ‘자신’이다. 《爾雅》 「釋詁」에 朕/余/躬/身也, ‘朕, 余, 躬은 자신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너 자신’에서 끝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은, 곧 成王 이후로도 周나라가 天命을 이어 가도록 하라는 의미이므로, ‘너의 代’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 宣는 부사어로, ‘두루두루’, ‘널리’라는 말일 것이다. 宣는 徧과 같다. 鄭玄이 이렇게 보았다. 朱熹는 布라고 하였는데, 이는 ‘펴다’는 말이다. 즉, 朱熹는 宣를 부사어가 아니라 용언으로 보았다. 《爾雅》 「釋言」에 宣/徇/遍也, ‘宣, 徇은 遍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遍은 ‘두루두루’라는 뜻이다. ▼ 鄭玄은 宣/徧, ‘宣은 두루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徧音遍/下同, ‘徧은 遍으로 읽는다. 뒤의 글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遍 역시 ‘두루’라는 뜻이다. ▼ 朱熹는 宣/布, ‘宣은 펴다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朱熹처럼 보면 宣昭義問은 ‘昭한 義問을 宣한다’처럼 해석해야 한다. 나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 昭는 용언으로, ‘빛내다’는 말이다. 文王在上/於昭于天의 昭가 ‘빛나다’는 의미였다. 鄭玄은 明이라고 풀이했는데, 이 역시 ‘밝히다’, ‘빛내다’는 말이다. 朱熹 역시 明이라고 했는데, 朱熹는 宣를 용언으로 보았으므로, 昭는 관형어가 되어야 한다. 즉, 朱熹의 明은 ‘밝은’이라는 뜻이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昭을 明, ‘빛내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昭/明, ‘昭는 밝은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義는 관형어로, ‘훌륭한’이라는 말일 것이다. 義는 글자 그대로 ‘의롭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儀로 보고 ‘훌륭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글의 맥락을 볼 때, 나는 ‘훌륭하다’가 더 낫다고 보았다. 鄭玄은 ‘의롭다’라고 보았고, 毛亨과 朱熹는 ‘훌륭하다’라고 보았다. 앞에 나온 令聞不已 중 令을 풀이할 때 인용한 《爾雅》 내용에 儀가 善이라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다. ▼ 毛亨은 義/善, ‘義는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義를 禮義, ‘예의에 맞는’처럼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義/毛音儀/善也//鄭如字, ‘義에 대해, 毛亨의 경우에는 儀라고 읽는다. 휼륭하다는 뜻이다. 鄭玄의 경우에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義/善也, ‘義는 훌륭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問은 체언으로, ‘명성’, ‘명망’, ‘평판’이다. 問은 聞과 통용되는데, 聞은 곧 ‘명성’이라는 뜻이다. ▼ 朱熹는 問/聞通, ‘問은 聞과 통용된다’라고 하였다.

◈ 有는 부사어로, ‘또’, ‘또한’이라는 말이다. 又와 같다. 숫자를 이야기할 때, 예를 들면 15를 十有五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런 有가 바로 又와 같다. ‘10에다 또 5’라는 뜻이다. 鄭玄과 朱熹 모두 又로 풀이하였다. ▼ 鄭玄은 有/又也, ‘有는 또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有/又通, ‘有는 又와 통용된다’라고 하였다.

◈ 虞는 용언으로, ‘헤아리다’는 말이다. 《爾雅》 「釋言」에 茹/虞/度也, ‘茹와 虞는 헤아리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度은 ‘탁’이라고 읽는다. ▼ 毛亨은 虞/度也, ‘虞는 헤아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度/待洛反/下同, ‘度은 待와 洛의 반절로 읽는다. 뒤의 글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 역시 虞를 度, ‘헤아리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 역시 虞/度, ‘虞는 헤아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殷은 체언으로, ‘殷나라’, ‘殷나라의 사례’를 이른다. 殷나라가 天命을 갖고 있다가 잃었던 일을 이를 것이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殷을 殷所以順天之事, ‘殷나라가 하늘의 뜻을 따랐던 일’이라고 풀이하였다.

◈ 自는 아마 용언으로, ‘따르다’, ‘좇다’는 말일 것이다. 天을 받는다. 《爾雅》 「釋詁」에 遹/遵/率/循/由/從/自也, ‘遹, 遵, 率, 循, 由, 從은 自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예컨대, 循, 由, 從이 自로 풀이될 수 있으므로, 自 역시 循, 由, 從처럼 풀이될 수 있을 듯하다.

◈ 天은 체언으로, ‘天命’, ‘하늘의 뜻’이다.

◈◈ 鄭玄은 天之大命已不可改易矣/當使子孫長行之/無終女身則止//徧明以禮義問老成人/又度殷所以順天之事而施行之, ‘하늘의 위대한 命은 이미 바꿀 수가 없으니, 마땅히 너의 자손에 이르기까지 이행하게 하여, 너의 代에서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禮義를 두루 밝혀서, 노인에게 안부를 묻고, 다른 사람을 이루어 줄 것이요, 또 殷나라가 하늘의 뜻을 따랐던 일을 헤아려, 이를 계속 이행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이 句에서도 成王이 殷나라의 사례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上天之載、無聲無臭、儀刑文王、萬邦作孚。

上天의 載에는 聲도 無하고, 臭도 無하다. [그러니 다르게 생각하지 말고, 오직] 文王을 儀刑한다면, 萬邦이 [주나라를] 作 孚할 것이로다.

상제의 뜻에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러니 다르게 생각하지 말고, 오직] 문왕을 본받는다면, 만국이 [주나라를] 비로소 의지할 것이로다.

◈ 上天은 체언으로, ‘上帝’를 이른다.

◈ 上天之載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처럼 해석된다.

◈ 載는 체언으로, 아마 ‘뜻’, ‘의향’ 같다. 《爾雅》 「釋詁」에 話/猷/載/行/訛/言也, ‘話, 猷, 載, 行, 訛는 言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言은 곧 ‘뜻’을 이른다. 鄭玄은 ‘도리’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좋다. 毛亨과 朱熹는 事라고 하였는데, 이는 ‘일’이다. 하늘이 벌이는 ‘일’을 이를 것이다. 이 역시 좋다. ▼ 毛亨은 載/事, ‘載는 일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載를 道, ‘도리’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 역시 載/事, ‘載는 일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上天之載는 주어가 아니라 부사어로 보아야 하겠다. ‘하늘의 뜻에는’처럼 해석된다.

◈ 無는 용언으로, ‘없다’는 말이다.

◈ 聲은 체언으로, ‘소리’다.

◈ 臭는 체언으로, ‘냄새’다.

◈ 儀刑은 용언으로, ‘본받다’는 말이다. 儀와 刑은 모두 ‘본받다’는 말이다. 儀는 본래 ‘거둥’, ‘모습’이라는 말이니, ‘모습대로 하다’처럼 해석될 수 있다. 곧, ‘본받다’는 말이다. 刑에 대해서는 《爾雅》 「釋詁」에 柯/憲/刑/範/辟/律/矩/則/法也, ‘柯, 憲, 刑, 範, 辟, 律, 矩, 則은 본받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刑/法, ‘刑은 본받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儀刑을 儀法, ‘본받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儀/象//刑/法, ‘儀는 모방하다는 뜻이고, 刑은 본받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文王은 周나라의 文王 昌이다.

◈ 萬邦은 체언으로, ‘萬國’이다. 세상의 모든 나라를 이른다.

◈ 作은 부사어로, ‘비로소’다. 이 作은 乍와 같다. 乍는 ‘비로소’라는 말이다. 《詩》 「頌 魯頌」의 「駉」에 思馬斯作, ‘말을 作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毛亨은 作/始也, ‘作은 始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書》 「虞書 益稷」에 烝民乃粒/萬邦作乂, ‘백성들은 쌀밥을 먹고, 萬邦은 作 잘 다스려졌다’라는 말이 있으니, 여기서 作은 ‘비로소’라는 뜻이다. 또, 《書》 「夏書 禹貢」에 萊夷作牧, ‘萊夷가 作 방목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作은 ‘비로소’라는 뜻이다. 또, 《書》 「夏書 禹貢」에 沱潛既道/雲土夢作乂, ‘沱와 潛에 길이 난 뒤에, 雲土와 夢이 作 다스려졌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作은 ‘비로소’라는 뜻이다. 王引之는 作/始也//家大人曰/作之言乍也//乍者/始也, ‘作은 비로소라는 뜻이다. 家大人은 “作은 乍라는 뜻이다. 乍는 비로소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家大人이란, 부친인 王念孫을 이른다. 王引之는 또, 《書》 예문에 대해, 史記夏本紀/皆以爲字代之/於文義稍疏矣, ‘《史記》 「夏本紀」에는 예문들의 作을 모두 爲로 바꿔 놓았는데, 글의 원래 의미와 다소 멀어지고 말았다’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作」에 기재되어 있다.

◈ 孚는 용언으로, ‘믿다’, ‘신뢰하다’는 말이다. 周나라를 ‘신뢰하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의지하다’처럼 의역하였다. 《爾雅》 「釋詁」에 允/孚/亶/展/諶/誠/亮/詢/信也, ‘允, 孚, 亶, 展, 諶, 誠, 亮, 詢은 믿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孚/信也, ‘孚는 믿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 역시 孚를 信, ‘믿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 역시 孚/信也, ‘孚는 믿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天之道/難知也//耳不聞聲音/鼻不聞香臭/儀法文王之事/則天下咸信而順之, ‘하늘의 도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귀로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코로는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으니, 다만 文王의 고사를 본받아야, 天下 사람들이 모두 周나라를 믿고 따를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命之不易부터 萬邦作孚까지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한 시문이다. 朱熹는 또, 言/天命之不易保/故告之使無若紂之自絶於天/而布明其善譽於天下//又度殷之所以廢興者/而折之於天//然上天之事/無聲無臭/不可得而度也//惟取法於文王 則萬邦作而信之矣//子思子曰/維天之命/於穆不已///蓋曰天之所以爲天也//於乎不顯/文王之德之純///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純亦不已///夫知天之所以爲天/又知文王之所以爲文/則夫與天同德者/可得而言矣//是詩首言文王在上於昭于天/文王陟降在帝左右/而終之以此/其㫖深矣, ‘이런 뜻이다. 天命은 유지하기 쉽지 않으니, 紂처럼 하늘의 뜻을 잃어서는 안 되고, 훌륭한 평판을 天下에 떨쳐야 할 것이요, 또, 殷나라가 망하여서 하늘에게 버려졌던 일을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上帝의 뜻은 소리도 들리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아, 깨닫거나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니 오직 文王을 본받아야만 만국에게서 신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成王에게 일러 주고 있다. 子思 선생은 “‘하늘의 命은 부지런하여 멈추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하늘이 하늘인 까닭을 설명한 말일 것이요, ‘아아, 분명하게 빛나도다, 文王의 순수한 德이여’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文王의 시호가 文인 까닭을 설명한 말일 것이다. 순수하고도 멈추지 않는구나”라고 하였다. 대저, 하늘이 하늘인 까닭을 알고, 또 文王의 시호가 文인 까닭을 안다면, 저 하늘과 德을 함께 하는 자라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이 시 첫 부분에서는 文王이 하늘에 있으면서 하늘에 빛나고 있으며, 文王이 上帝의 좌우로 올라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맺었으니, 의미가 심원하도다’라고 하였다. 子思는 孔子의 손자로, 이름은 及이다. 子思 뒤에 붙은 子는 높이는 표현이다. 朱熹는 子思를 숭앙하기 때문에, 子思子라고 참칭한 것이다. 인용문은 《禮記》 「中庸」에 나온다. 於乎不顯의 不은 丕로 보고 번역하였다.

◈◈ 亡亡案 : 마지막 句에 뼈가 있다. 成王 시기 周나라는 불안정했다. 文王과 武王을 거치면서 殷나라의 패권을 찬탈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殷나라의 유민들은 여전히 강성하였고, 또 무엇 보다도 成王이 너무 어렸다. 殷나라를 멸망시킨 뒤, 武王은 紂의 아들인 武庚禄父를 옛 殷나라 땅에 봉작하였고, 이를 감독하기 위해 자기 형제인 管叔, 蔡叔, 그리고 霍叔 역시 그 주변에 봉작하였다. 이 세 사람을 三監이라고 한다. 그런데 武王이 죽고 成王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管叔과 蔡叔, 霍叔은 오히려 武庚과 힘을 합쳐서 周나라에 반역을 일으켰다. 이를 三監의 난이라고 한다. 이 반란을 진압한 사람이 바로 周公 旦이다. 이 시가 ‘만국이 周나라를 비로소 믿게 될 것이로다’처럼 끝나는 이유가, 바로 成王 초기의 반란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周나라는 패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새 왕은 어렸으며, 또 연이어 반란까지 일어났다. 제후들이 周나라를 믿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成王은 周公에게 어떻게 하면 제후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물었을 것이고, 周公은 이 시를 지어서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 《毛詩正義》에서는 「文王」의 편제에 대해, 文王七章/章八句, ‘「文王」은 일곱 章이요, 章마다 여덟 句다’라고 하였다.

◈◈ 《詩經集傳》에서는 「文王」의 편제에 대해, 文王七章/章八句, ‘「文王」은 일곱 章이요, 章마다 여덟 句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또, 東萊呂氏曰/呂氏春秋/引此詩/以爲周公所作//味其詞意/信非周公/不能作也, ‘東萊 呂氏는 이렇게 말했다. “《呂氏春秋》에서는 이 시를 인용하면서, 周公이 지었다고 하였다. 시를 음미해 보면, 周公이 아니면 지을 수 없다 하겠다.”’라고 하였다. 東萊 呂氏는 趙宋의 呂祖謙을 이른다. 《呂氏春秋》는 내가 첫 부분에 인용해 둔 「仲夏紀 古樂」을 이를 것이다. 朱熹는 이에 대해, 今按此詩//一章言文王有顯德而上帝有成命也//二章言天命集於文王/則不唯尊榮其身/又使其子孫百世爲天子諸侯也//三章言命周之福/不唯及其子孫/而又及其羣臣之後嗣也//四章言天命旣絶於商/則不唯誅罰其身/又使其子孫/亦來臣服于周也//五章言絶商之禍/不唯及其子孫/而又及其羣臣之後嗣也//六章言周之子孫臣庶/當以文王爲法而以商爲監也//七章又言當以商爲監而以文王爲法也//其於天人之際/興亡之理/丁寧反覆/至深切矣/故立之樂官/而因以爲天子諸侯朝會之樂//蓋將以戒乎後世之君臣/而又以昭先王之德於天下也//國語以爲兩君相見之樂/特擧其一端而言耳//然/此詩之首章言文王之昭于天而不言其所以昭/次章言其令聞不已而不言其所以聞/至於四章然後/所以昭明而不已者/乃可得而見焉//然亦多詠歎之言/而語其所以爲德之實/則不越乎敬之一字而已//然則後章所謂脩厥德而儀刑之者/豈可以他求哉/亦勉於此而已矣, ‘이 시를 한 번 살펴 보자. 첫 번째 章에서는 文王이 빛나는 德을, 上帝는 成命을 품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 章에서는 天命이 文王에게 모여 들었는데, 그 天命이 文王 본인을 영예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文王의 자손들도 백 代 동안이나 天子나 제후 자리에 오르도록 해 주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 번째 章에서는 周나라가 복록을 누리도록 命하였는데, 다만 周나라의 자손에게 그 복록이 미쳤을 뿐만 아니라, 신하들과 그 후사들에까지 미쳤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네 번째 章에서는 商나라의 天命이 끊긴 뒤, 그 代에서 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商나라의 자손들이 周나라에 와서 신하로서 복종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섯 번째 章에서는 商나라에서 天命이 사라져서 생긴 재앙이 다만 그 자손에게까지 미쳤을 뿐만 아니라, 商나라의 신하들과 자손에게까지 미쳤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섯 번째 章에서는 周나라의 자손들과 신하들이 마땅히 文王을 본받고, 商나라의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곱 번째 章에서는 마땅히 商나라의 사례를 귀감으로 삼고, 文王을 본받아야 한다는 점을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하늘과 사람의 관계와, 흥망의 이치에 대해, 충실한 태도로써,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의미가 아주 깊다. 그래서 樂官을 세워 두고는 天子와 제후가 만날 때의 음악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아마도 후대의 군주와 신하들에게 경계하고, 또 先王의 德望을 天下에 밝히기 위해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國語》에서는 이 시를 두 군주가 서로 만날 때 사용하는 음악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용처의 하나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첫 章에서는 文王이 하늘에 빛난다고 하였을 뿐, 왜 빛나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두 번째 章에서는 文王의 훌륭한 평판이 멈추지 않는다고만 하였고, 왜 평판이 좋은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네 번째 章 이후가 되어서야 왜 文王이 빛나고, 평판이 멈추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또, 영탄하는 말이 많은 것은 文王의 德이 충실하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敬이라는 한 글자의 의미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즉, 뒤의 章에서 “그 德을 수양하라”나, “본받아라”라고 한 말들도, 다른 데에서 찾으라는 말이 아니요, 다만 敬에 매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國語》 내용은 「魯語」에 나온다. 이 시 첫 부분에 내가 인용해 두었다. 내 생각에 朱熹는 敬의 의미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의미를 잘 설명하다가 왜 敬을 가지고 글을 망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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