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2. 18:59ㆍ시 이야기/대아 문왕지십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시》 번역에는 특별히 고정적으로 참고한 번역서가 없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때는 기타 블로그들을 참고하였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毛詩正義》와 《詩經集傳》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毛詩正義》에는 毛亨, 鄭玄, 孔穎達의 주석이 수록되어 있고, 陸德明의 주석 역시 부분적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毛亨의 주석을 傳이라고 하고, 鄭玄의 주석을 箋, 孔穎達의 주석을 疏라고 합니다. 陸德明의 경우, 音義라고 합니다. 다만 상기하였듯, 《毛詩正義》에는 陸德明의 音義가 부분적으로만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經典釋文》을 직접 참고하여, 陸德明의 音義를 모두 인용해 두었습니다. 《詩經集傳》에는 朱熹의 주석이 수록되어 있는데, 朱熹의 주석 역시 傳이라고 합니다. 毛亨과 鄭玄, 朱熹의 주석은 모두 번역하였고, 孔穎達의 주석은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본문을 한 쪽만 따라 번역하지는 않았습니다. 더 나은 설을 택하였고,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제 의견에 따라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추후에 呂祖謙의 《呂氏家塾讀詩記》, 王引之의 《經義述聞》,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그리고 孔穎達의 疏도 번역하여 반영하고 싶은데,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 첫 부분에는 시 전체의 본문과 번역문을 기재하였습니다. 그 뒷부분에는 본문과 번역문, 그리고 주석을 기재해 두었습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毛亨의 설을 소개하고, 또 鄭玄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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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5년 3월 22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詩》 「大雅 文王之什」의 「靈臺」
靈臺
靈臺
영대
經始靈臺、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
靈臺로다, 經하고, 營하자. 庶民이 之를 攻하니, 日하지 않아서 之를 成하였도다.
영대로다, 재 보고, 달아 보자. 백성들이 공사를 도우니, 몇 일 되지 않아 완성하였도다.
經始勿亟、庶民子來。
亟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庶民이 子처럼 來하였도다.
서두르지 말라고 하였지만, 백성들은 자식처럼 찾아 왔도다.
王在靈囿、麀鹿攸伏、
王이 靈囿에 在하니, [영유는] 麀와 鹿이 伏하는 攸로다.
왕이 영유에 있으니, [영유는] 암수 사슴 뛰어 노는 곳이로다.
麀鹿濯濯、白鳥翯翯。
麀鹿은 濯濯하고, 白鳥는 翯翯하였구나.
사슴들은 즐겁게 놀고, 하얀 새는 토실토실하구나.
王在靈沼、於牣魚躍。
王이 靈沼에 在하니, [영소는 물고기 헤엄치는 곳이로다.] 於는 牣하고, 魚는 躍하는구나.
왕이 영소에 있으니, [영소는 물고기 헤엄치는 곳이로다.] 미꾸라지는 가득하고, 물고기는 뛰어 오르는구나.
虡業維樅、賁鼓維鏞。於論鼓鐘、於樂辟廱。
虡와 業은 樅하고, 賁과 鼓는 鏞하도다. 於, 論한 鼓鐘여, 於, 樂한 辟廱이여.
북걸이와 널빤지는 들쭉날쭉하고, 큰 북과 [작은] 북은 둥둥 울리는도다. 아아, 이치에 맞는 북소리여, 아아, 즐거운 벽옹이여.
於論鼓鐘、於樂辟廱。鼉鼓逢逢、矇瞍奏公。
於, 論한 鼓鐘여, 於, 樂한 辟廱이여. 鼉鼓는 逢逢하고, 矇瞍는 公을 奏하는도다.
아아, 이치에 맞는 북소리여, 아아, 즐거운 벽옹이여. 타고는 봉봉 울리고, 맹인들은 고사를 노래하는도다.
《詩》 「大雅 文王之什」의 「靈臺」
靈臺
靈臺
영대
◈◈ 毛亨은 靈臺/民始附也//文王受命/而民樂其有靈德/以及鳥獸昆蟲焉, ‘「靈臺」는 백성들이 처음 귀부해 왔다는 내용이다. 文王이 命을 받았는데, 백성들은 文王이 靈德을 품고 있다는 점에 즐거워하였으니, 이 즐거움은 새나 짐승, 곤충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昆/古門反//鄭注禮記云/明也///蟲/直弓反/本或作虫/非, ‘昆은 古와 門의 반절로 읽는다. 《禮記》에 대한 鄭玄의 주석에 “밝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蟲은 直과 弓의 반절로 읽는다. 판본에 따라 虫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틀렸다’라고 하였다. 虫도 ‘벌레’인데, 왜 틀렸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 鄭玄은 民者/冥也//其見仁道遲/故於是乃附也//天子有靈臺者/所以觀祲象/察氣之妖祥也//文王受命/而作邑于豐/立靈臺//春秋傳曰/公旣視朔/遂登觀臺以望而書雲物/爲備故也, ‘民은 어리석다는 뜻이다. 백성들은 仁道를 느리게 깨달으니, 그래서 이에 귀부해 온 것이다. 天子가 靈臺를 소유하는 까닭은 재앙의 조짐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天子는 靈臺에서 氣의 妖祥을 살핀다. 文王은 命을 받아서 豐에다 邑을 만들고, 靈臺를 세웠다. 《春秋傳》에 “公은 朔을 살핀 뒤, 마침내 觀臺에 올라 바라 보면서 雲物을 기록하였으니, 이는 대비하기 위한 까닭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春秋傳》은 《春秋左氏傳》으로, 인용문은 「僖公」 5년에 나온다. 「僖公」 5년에는 公旣視朔/遂登觀臺以望而書/禮也//凡分至啓閉/必書雲物/爲備故也, ‘公은 朔을 살핀 뒤, 마침내 觀臺에 올라 바라 보면서 기록하였으니, 이는 예법에 맞았다. 대저, 分, 至, 啓, 閉에는 반드시 雲物을 기록하였으니, 이는 대비하기 위한 까닭이다’라고 되어 있다. 鄭玄의 주석에 대해 陸德明은 冥/亡丁反//冥冥/無知貌//字林云/幽也///又亡定反//祲/子鴆反/隂陽氣相侵/漸成祥//觀/古亂反//下觀臺節觀同, ‘冥은 亡과 丁의 반절로 읽는다. 冥冥은 멍청한 모습이다. 《字林》에는 “幽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亡과 定의 반절로 읽기도 한다. 祲은 子와 鴆의 반절로 읽는다. 음양의 기운이 서로 침범하여, 점차 祥을 이룬다는 뜻이다. 觀은 古와 亂의 반절로 읽는다. 뒤에 나오는 觀臺, 節觀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幽는 ‘그윽하다’, ‘깊다’, ‘어둡다’는 말이다. 隂은 陰과 같다.
◈◈ 陸德明은 神之精明者稱靈//四方而高曰臺//靈臺/所以觀祲象/察氣之妖祥也//杜預注左傳云/靈臺在始平鄠縣///今屬京兆府所管, ‘정신이 명철한 상태를 靈이라고 하고, 네모나면서 높은 것을 臺라고 한다. 靈臺란, 재앙의 조짐을 펴서, 氣의 妖祥함을 살피는 것이다. 杜預의 《左傳》에 대한 주석에, “靈臺는 처음에 平鄠縣에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은 京兆府 관할에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아마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 대한 주석을 이르는 듯하다. 「僖公」 15년에 乃舍諸靈臺, ‘이에 靈臺에 舍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杜預는 在京兆鄠縣/周之故臺/亦所以抗絶/令不得通外內, ‘京兆 鄠縣에 있는 周나라의 옛 臺인데, 抗絶하여서 안팎으로 통하지 않도록 하였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靈臺란, 陸德明이 인용하였듯, 본래 재앙의 조짐을 살피기 위해 지은 누대였다. 그러나 누대란, 높이 쌓은 건물이다. 아마 먼 곳을 정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백성이나 다른 제후들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僖公」 15년의 기사에 대해, 孔穎達은 禮/天子曰靈臺/諸侯曰觀臺//釋宮云/四方而高曰臺///臺上構屋/可以遠觀望/故謂之觀臺也, ‘예법에, 天子의 것을 靈臺라고 하였고, 제후의 것을 觀臺라고 하였다. 「釋宮」에 “네모나면서 높은 것을 臺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臺 위에는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니, 멀리 바라 볼 수 있다. 그래서 觀臺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釋宮」은 《爾雅》의 편이다. 즉, 觀臺든, 靈臺든, 모두 ‘臺’로 같다. 天子의 경우, 天下를 다스린다는 명분을 쥐고 있으니, 길흉을 살핀다는 말이 붙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백성들이 文王을 도와서 누대 공역에 기쁘게 협조하였다고 하고 있다. 孟子는 《孟子》 「梁惠王 上」에서 이 시를 인용하면서, 제후가 백성들과 같이 즐겁게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孟子의 말처럼 백성들이 공역에 협조한 이유가 바로 文王이 백성들을 잘 대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은 ‘靈臺’이지만, 靈臺 그 자체의 의미가 중요하지는 않다 하겠다.
經始靈臺、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
靈臺로다, 經하고, 營하자. 庶民이 之를 攻하니, 日하지 않아서 之를 成하였도다.
영대로다, 재 보고, 달아 보자. 백성들이 공사를 도우니, 몇 일 되지 않아 완성하였도다.
◈ 經始는 아마 의미 없는 조사 같다. 운율을 맞추기 위해 넣은 글자인 듯하다. 經을 ‘짓다’ 같은 용언으로 보고, 始를 ‘처음’ 같은 부사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經始靈臺는 ‘靈臺를 처음 짓는데’처럼 해석될 것인데, 어순이 맞지 않다. 始經靈臺가 되어야 한다. 또, 뒷부분에 經始勿亟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經始勿亟의 勿亟은 經始靈臺의 靈臺처럼 목적어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관성을 지키려면 經始靈臺의 經始를 의미 없는 글자로 보아야 한다. 바로 뒤에 나오는 經之營之의 經에는 의미가 있다. 毛亨은 이 經을 해석하지 않고, 經之營之의 經에 주석을 달았다. 鄭玄과 朱熹의 경우, 이 經始靈臺의 經을 度 ‘측량하다’라고 풀이하였는데, 이는 틀렸다. ▼ 주석을 참고하면, 鄭玄은 이 經을 度, ‘측량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 역시 이 經에 대해, 經/度也, ‘經은 측량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靈臺는 ‘靈臺’다. 經始를 의미 없는 조사로 보았기 때문에, 이 靈臺는 ‘靈臺로다’처럼 번역해야 할 듯하다. 제목 부분에 설명하였듯, 靈臺는 ‘누대’다. 누대란, 본래 여흥을 즐기기 위해 높이 쌓은 건물이다.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폭군들이 누대를 많이 지어서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이 시에서처럼 군주가 누대를 짓자 백성들이 와서 기쁘게 도왔다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毛亨은 靈臺의 본래 의미 대로 풀이한 듯하다. 朱熹는 이 靈臺가 靈臺의 본래적 의미로 기능한 것이 아니라, 이 누대를 짓는 모습이 신명이 한 것과 같다고 하여서 靈臺라고 하였다고 보았다. ▼ 毛亨은 神之精明者稱靈/四方而高曰臺, ‘정신이 명철한 상태를 靈이라고 하고, 네모나면서 높은 것을 臺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靈臺/文王所作//謂之靈者/言其倐然而成/如神靈之所爲也, ‘靈臺는 文王이 지은 건물이다. 靈이라고 명명한 까닭은, 순식간에 완성되었으니, 신령이 행한 바와 같았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倐然은 아마 ‘순식간’이라는 말 같다.
◈ 經之營之의 經과 營은 모두 용언으로, ‘재다’, ‘측량하다’, ‘달다’ 같은 표현이다. 모두 건물을 짓다는 의미이다. 나는 ‘재고 달다’처럼 번역하였다. 毛亨, 鄭玄, 朱熹는 모두 經을 度이라고 풀이했다. 度은 ‘재다’, ‘측량하다’는 말이다. 營 역시 度과 같다. 한편, 鄭玄과 朱熹는 營을 ‘표시하다’라고 하였는데, 아마 공사하면서 땅에 ‘표시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 역시 나쁘지 않다. 《呂氏春秋》 「孟冬紀 十月紀」에 營丘壟之小大, ‘언덕의 크기를 營한다’라는 말이 있고, 《淮南子》 「時則訓」에는 營丘壟之小大高庳, ‘언덕의 크기나 고도를 營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두 곳 모두에서 高誘는 營/度也, ‘營은 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經/度之也, ‘經은 측량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度/待洛反/下同, ‘度은 待와 洛의 반절로 읽는다. 아래로도 그렇게 읽는다’라고 하였다. ▼ 經始靈臺의 經에 대해, 鄭玄은 주석에서 度, ‘측량하다’라고 풀이하였다. 營에 대해서는, 주석에서 表, ‘표시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經始靈臺의 經에 대해, 朱熹는 度, ‘측량하다’라고 풀이하였다. 營에 대해서는 營/表, ‘營은 표시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經之營之의 之들은 모두 의미 없는 조사 같다. 운율을 맞추기 위해 넣었을 것이다. 之를 靈臺 혹은 靈臺를 지을 도구나 그 지반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로 볼 수도 있겠다.
◈ 庶民은 체언으로, ‘백성들’, ‘평민들’을 이른다. 民은 ‘백성’이다. 庶 역시 庶人이라는 말처럼 ‘백성’을 이른다. 아마 士 아래의 일반 백성 계급을 이르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 攻은 용언으로, ‘짓다’는 말이다. 毛亨, 鄭玄, 朱熹 모두 그렇게 풀이하였다. 나는 ‘공사를 돕다’처럼 풀이하였다. 주석을 보면, 鄭玄과 朱熹는 經之營之를 靈臺를 짓기 위해 준비하는 기초 공사라고 보았고, 攻을 본격적인 건축 작업이라고 보았다. 즉, 文王은 기초 작업만 하였는데, 백성들이 다 지었다는 것이 鄭玄과 朱熹의 설이다. ▼ 毛亨은 攻/作也, ‘攻은 짓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鄭玄은 攻을 築作이라고 풀이하였다. 築作은 ‘짓다’는 말일 것이다. ▼ 朱熹 역시 攻/作也, ‘攻은 짓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攻之의 之는 靈臺 공사를 가리킨다.
◈ 不日은 아마 ‘몇 일이 지나지 않아’라는 말일 것이다. 不은 부정어다. 日을 한정한다. 日은 용언으로, ‘몇 일이 지나다’는 말일 것이다. 朱熹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처럼 풀이하였다. 그러나 중국인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누대를 어떻게 하루 만에 짓겠는가. 그래서 따르지 않았다. ▼ 朱熹는 不日/不終日也, ‘不日은 하루를 마치지 않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成은 용언으로, ‘완성하다’는 말이다. 靈臺를 ‘완성했다’는 뜻이다.
◈ 成之의 之는 靈臺를 가리킨다.
◈◈ 毛亨은 不日有成也, ‘몇 일이 지나지 않아서 완성하였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文王應天命/度始靈臺之基趾/營表其位//衆民則築作/不設期日而成之//言說文王之德/勸其事/忘己勞也//觀臺而曰靈者/文王化行/似神之精明/故以名焉, ‘文王이 天命에 응하여 靈臺를 지을 땅을 측량하고, 그 위치를 표시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靈臺를 지었으니, 몇 일도 기약하지 않고 완성하였다. 백성들은 文王이 덕망에 기뻐하여, 공역에 힘껏 응하였고, 자기 힘든 줄도 몰랐다는 뜻이다. 觀臺를 靈이라고 한 까닭은, 文王이 교화가 神明이 신이하게 행하는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應/應對之應//說音恱, ‘應은 應對라고 할 때의 應이다. 說은 恱이라고 읽는다’라고 하였다. 恱은 悅과 같다.
◈◈ 亡亡案 : 文王의 德望 덕분에 백성들이 토목 공사를 도왔다는 말이다.
經始勿亟、庶民子來。
亟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庶民이 子처럼 來하였도다.
서두르지 말라고 하였지만, 백성들이 자식처럼 찾아 왔도다.
◈ 經始勿亟의 經始는 經始靈臺의 經始처럼 의미 없는 글자로 보아야 하겠다.
◈ 勿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亟을 받는다.
◈ 亟은 용언으로, ‘서두르다’, ‘빠르게 하다’는 말이다. 《說文解字》 「二部」에 亟/敏疾也, ‘亟은 민첩하고 빠르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爾雅》 「釋詁」에는 肅/齊/遄/速/亟/屢/數/迅/疾也, ‘肅, 齊, 遄, 速, 亟, 屢, 數, 迅은 빠르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같은 글에 寁/駿/肅/亟/遄/速也, ‘寁, 駿, 肅, 亟, 遄은 빠르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鄭玄은 亟/急也, ‘亟은 빠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亟/居力反//亟/急也, ‘亟은 居와 力의 반절로 읽는다. 亟은 빠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亟/急也, ‘亟은 빠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庶民은 체언으로, ‘백성들’이다.
◈ 子는 如子처럼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자식처럼’, ‘자식 같이’가 된다. 子는 글자 그대로 ‘자식’이라고 볼 수도 있고, 용언으로 보고 ‘사랑하다’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鄭玄과 朱熹는 모두 ‘자식’이라고 하였는데, 상기하였듯 如子, ‘자식처럼’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庶民子來는 ‘백성들이 자식처럼 왔다’는 말이 된다. 나는 이 설을 따랐다. ‘사랑한다’라고 볼 경우에는, ‘백성들이 文王을 사랑하여서 왔다’처럼 해석될 것이다. 《禮記》 「中庸」에 子庶民也, ‘백성들을 子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子/猶愛也, ‘子는 사랑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鄭玄은 子를 그대로 ‘자식’이라고 풀이하였다. 鄭玄은 以子成父事, ‘자식으로써 부모의 일을 이루다’처럼 설명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朱熹는 子를 그대로 ‘자식’이라고 풀이하였다. 朱熹는 如子趣父事, ‘자식아 부모의 일을 이루듯’처럼 설명하였다.
◈ 來는 용언으로, ‘오다’, ‘왔다’는 말이다.
◈◈ 鄭玄은 度始靈臺之基趾/非有急成之意//衆民各以子成父事而來攻之, ‘靈臺의 터를 처음 측량하였을 때는 서두를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자식이 부모의 일을 이루듯이 와서 공사를 도왔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經始靈臺/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經始勿亟/庶民子來를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한 시문이다. 朱熹는 또, 國之有臺/所以望氛祲/察災祥/時觀遊/節勞佚也//文王之臺/方其經度營表之際/而庶民已來作之/所以不終日而成也//雖文王心恐煩民/戒令勿亟/而民心樂之/如子趣父事/不召自來也//孟子曰/文王以民力爲臺爲沼/而民歡樂之/謂其臺曰靈臺/謂其沼曰靈沼///此之謂也, ‘나라에서 臺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미묘한 징조를 관측하고, 재앙이나 복록을 살피며, 가끔 경치를 보며 놀기도 하면서 일과 휴식을 조절하기 위해서이다. 文王의 臺의 경우, 터를 측량하고, 표시할 때, 백성들이 이미 와서 공사를 도왔으니,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완성되었던 것이다. 文王이 백성들을 고생시킬까 신경을 써서 서두르지 말라고 경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마음 속으로 이를 좋아하여, 자식이 부모의 일에 달려 가듯,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갔기 때문이다. 《孟子》에 “文王은 백성들의 힘을 사용하여 臺와 沼를 만들었는데, 그래도 백성들은 좋아하여, 臺를 靈臺라고 불렀고, 沼를 靈沼라고 불렀다”라는 말이 있으니, 바로 이런 뜻이다’라고 하였다. 인용문은 《孟子》 「梁惠王 上」에 나온다.
◈◈ 亡亡案 : 文王은 서두르고자 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이 文王의 德望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文王을 도우려고 文王의 자식인 양 몰려 와서 도왔다는 말이다.
王在靈囿、麀鹿攸伏、
王이 靈囿에 在하니, [영유는] 麀와 鹿이 伏하는 攸로다.
왕이 영유에 있으니, [영유는] 암수 사슴 뛰어 노는 곳이로다.
◈ 王은 체언으로, ‘王’이다. 文王을 이른다.
◈ 在는 용언으로, ‘~에 있다’라는 말이다.
◈ 靈囿은 체언으로, ‘靈臺의 囿’다. 앞에서 靈臺를 지었다는 말만 있지, 靈囿를 지었다는 말은 없다. 아마 靈囿는 靈臺에 딸린 부속 시설일 것이다. 그래서 ‘靈囿’라고 하였을 것이다. 뒤에 靈沼도 나오는데, 이 역시 같은 원리일 것이다. 囿는 ‘동산’, ‘정원’이다. 囿는 苑과 같다. 아마 동물을 기르는 ‘정원’을 이르는 말 같다. 《說文解字》 「囗部」에 囿/苑有垣也/从囗有聲//一曰/禽獸曰囿, ‘囿는 담이 있는 정원이다. 囗이 들어 있고, 有라고 발음한다. 어떤 사람은 동물이 있는 정원을 囿라고 한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이 시에는 麀, 鹿, 白鳥 같은 동물들이 나오는데, 이 점을 감안하면 禽獸曰囿가 본문 내용에 합치될 것이다. 《周禮》 「地官司徒」에 囿人/掌囿游之獸禁//牧百獸, ‘囿人은 囿游에 있는 동물들의 울타리를 담당한다. 온갖 동물들을 방목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鄭玄은 鄭司農云/囿游之獸/游牧之獸, ‘鄭司農은 “囿游에 있는 동물은 방목하는 동물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또, 이 앞에 표제어 囿人에 대해, 賈公彦은 古謂之囿/漢家謂之苑, ‘고대에는 囿라고 하였고, 漢나라에서는 苑이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 毛亨은 囿/所以域養禽獸也//天子百里/諸侯四十里//靈囿/言靈道行於囿也, ‘囿는 영역 안에서 금수를 기르는 곳이다. 天子의 경우 100리, 제후의 경우 40리다. 靈囿라고 한 것은, 신령스러운 道가 그 囿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囿音又/徐于目反, ‘囿는 又라고 발음한다. 徐邈은 于와 目의 반절로 읽는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靈囿/臺之下有囿//所以域養禽獸也, ‘靈囿는 누대 아래에 있는 囿일 것이다. 영역 안에서 짐승을 키우는 시설이다’라고 하였다. 朱熹의 설이 타당하다.
◈ 麀鹿은 체언으로, ‘사슴’이다. 鹿은 ‘사슴’이고, 麀는 ‘암컷 사슴’이다. 나는 ‘암수 사슴’이라고 번역하였다. 《說文解字》 「鹿部」에 麀/牝鹿也, ‘麀는 암컷 사슴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爾雅》 「釋獸」에 鹿/牡麚/牝麀/其子麛, ‘사슴의 경우, 수컷은 麚, 암컷은 麀, 새끼는 麛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麀/牝也, ‘麀는 암컷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麀音憂/鹿牝//牝/頻忍反, ‘麀는 憂라고 발음한다. 사슴의 암컷이다. 牝은 頻과 忍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麀/牝鹿也, ‘麀는 암컷 사슴이다’라고 하였다.
◈ 攸는 所와 같다. ‘~하는 곳’이다. 伏을 받는다. 《爾雅》 「釋言」에 攸/所也, ‘攸는 所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 鄭玄은 攸/所也, ‘攸는 所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伏은 아마 ‘뛰어 논다’는 말 같다. 뛰어 놀다 보면 숨기도 하고, 찾기도 하는 법이다. 伏은 본래 ‘엎드리다’, ‘숨다’는 말이다. 鄭玄의 설이다. ▼ 주석을 참고할 때, 鄭玄은 伏을 遊伏이라고 하였는데, 遊伏은 아마 뛰어 노는 모습을 이르는 말 같다. ▼ 朱熹는 伏/言安其所處/不驚擾也, ‘伏이란, 자기 있을 곳에 편안히 있어서, 동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朱熹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이야기하였는지 모르겠다.
◈◈ 鄭玄은 文王親至靈囿/視牝鹿所遊伏之處/言愛物也, ‘文王이 친히 靈囿에 가서, 암수 사슴들이 뛰어 노는 곳을 살펴 보았다. 이는 文王이 동물들을 좋아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處/昌慮反, ‘處는 昌과 慮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文王이 자애롭고 평화롭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麀鹿濯濯、白鳥翯翯。
麀鹿은 濯濯하고, 白鳥는 翯翯하였구나.
사슴들은 즐겁게 놀고, 하얀 새는 토실토실하구나.
◈ 麀鹿은 체언으로, ‘암수 사슴’이다. 여기서는 ‘사슴들’이라고 번역하였다.
◈ 濯濯은 아마 ‘즐겁게 노는 모습’을 이를 것이다. 濯濯에는 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즐겁게 노는 모습’이라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살이 토실토실 찐 모습’이다. 毛亨과 陸德明은 모두 ‘노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朱熹는 ‘살찐 모습’이라고 하였다. 한 번 생각해 보자. 濯濯이라는 표현은 이 시에 나오고, 또 司馬相如가 쓴 「封禪文」에 나온다. 「封禪文」에는 濯濯之麟/遊彼靈畤, ‘濯濯한 기린이 저 靈畤에서 논다’라는 말이 있다. 이 「封禪文」은 《史記》 「司馬相如列傳」, 《漢書》 「司馬相如傳」, 그리고 《文選》에 인용되어 있고, 각각 주석이 존재한다. 《史記》의 경우, 司馬貞이 詩人云/麀鹿濯濯//注云/濯濯/嬉遊貌///也, ‘詩人은 “사슴들이 濯濯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濯濯은 희롱하면서 노는 모습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아마 注란, 毛亨을 이를 것이다. 《漢書》의 경우, 顏師古가 文穎曰/濯濯/肥也//武帝冬幸雍/祠五畤/獲白麟也, ‘文穎이 말했다. “濯濯은 살찐 모습이다. 武帝가 겨울에 雍으로 행차했는데, 五畤에 제사를 지내고, 하얀 기린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顏師古는 또, 濯音直角反//大雅靈臺之詩云/麀鹿濯濯, ‘濯은 直과 角의 반절로 읽는다. 《大雅》의 「靈臺」에 “사슴들이 濯濯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文選》의 경우엔 李善이 漢書音義曰/武帝祠五畤/獲白麟/故言遊靈畤也///毛詩曰/麀鹿濯濯, ‘《漢書音義》에 “武帝가 五畤에 제사를 지내고, 하얀 기린을 얻었다. 그래서 靈畤에서 논다고 한 것이다. 《毛詩》에 사슴이 濯濯한다는 말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즉, ‘즐겁게 논다’는 설은 毛亨이 원류이고, ‘살이 쪘다’는 설은 文穎이 원류인 것이다. 나는 毛亨의 설을 따랐다. 麀鹿濯濯/白鳥翯翯을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翯翯의 경우에도 설이 두 개 있는데, 毛亨은 ‘살이 찐 모습’이라고 하였고, 朱熹는 ‘깨끗하고 하얀 모습’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白鳥는 ‘하얀 새’이므로, 朱熹의 설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얀 새’가 ‘하얗다’는 말일까. 따라서 翯翯은 ‘살이 찐 모습’이 되어야 한다. 翯翯이 ‘살이 찐 모습’이라면, 濯濯은 ‘노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사슴도 뒤룩뒤룩하고, 흰 새도 뒤룩뒤룩하면, 그 꼴이 예비 도살장이지, 靈囿겠는가. 따라서 문맥을 살필 때, 毛亨의 설이 더 낫다. ▼ 毛亨은 濯濯/娛遊也은 ‘즐겁게 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濯/直角反/娛遊也, ‘濯은 直과 角의 반절로 읽는다. 즐겁게 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濯濯/肥澤貌, ‘濯濯은 살이 찐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 白鳥는 아마 ‘하얀 새’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백조’를 뜻하는지, 그냥 단순한 ‘하얀 새’인지 모르겠다. ‘하얀 새’일 경우, 白은 관형어로, ‘흰’이라는 말이 된다. 鳥를 한정한다. 鳥는 체언으로, ‘새’다.
◈ 翯翯은 아마 ‘살이 토실토실 쪘다’는 말일 것이다. 翯翯에도 설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설은 ‘살이 찐 모습’이다. 다른 설은 ‘하얗고 깨끗한 모습’이다. 毛亨, 陸德明이 ‘살찐 모습’을 따랐다. 朱熹는 ‘하얗고 깨끗하다’라고 하였다. 《說文解字》 「羽部」에 翯/鳥白肥澤皃, ‘翯은 새가 하얗고 살이 찐 모습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글에는 ‘하얗다’는 설과 ‘살이 쪘다’는 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글만으로는 어느 설이 나은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司馬相如의 「上林賦」에 翯이 등장한다. 「上林賦」에는 翯乎滈滈라는 말이 있다. 「上林賦」는 《史記》 「司馬相如列傳」, 《漢書》 「司馬相如傳」, 그리고 《文選》에 인용되어 있고, 각각 주석이 존재하므로, 이를 참고할 수 있겠다. 《史記》의 경우, 司馬貞이 翯音鶴/滈音鎬//詩曰/白鳥翯翯///郭璞云/水白光貌/翯音皛/滈音昊也, ‘翯은 鶴이라고 발음하고, 滈는 鎬로 발음한다. 《詩》에 “白鳥가 翯翯한다”라는 말이 있다. 郭璞은 “물이 하얗고 빛나는 모습이다. 翯는 皛라고 발음하고, 滈는 昊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漢書》의 경우, 顏師古가 郭璞曰/水白光貌也, ‘郭璞은 “물이 하얗고 빛나는 모습이다”라고 했다’라고 하였고, 또 翯音胡角反//滈音鎬, ‘翯는 胡와 角의 반절로 읽는다. 滈는 鎬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文選》의 경우, 李善이 郭璞曰/水白光貌也///翯/胡角切//滈音鎬, ‘郭璞은 “물이 하얗고 빛나는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翯는 胡와 角의 반절로 읽는다. 滈는 鎬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발음이야 차치하더라도, 司馬貞, 顏師古, 李善은 모두 「上林賦」에 대한 郭璞의 주석에 의존하여 풀이하였을 뿐, 다른 견해는 없다. 이 郭璞의 주석은 《說文解字》의 설과는 다르고, 朱熹의 설과는 일치한다. 朱熹는 郭璞의 말을 근거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郭璞의 주석에는 문제가 있다. 郭璞은 「上林賦」의 翯乎滈滈에서, 翯과 滈 중에 무엇을 水白光貌라고 풀이하였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翯가 물이 하얗고 빛나는 모습이라는 것인지, 滈가 그렇다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翯乎滈滈는, 翯乎도 翯然으로 보고 의태어로 해석될 수 있고, 滈滈 역시 의태어로 해석될 수 있으니, 더욱 혼란스럽다. 이제 본문을 살펴 보자. 白鳥翯翯이니, ‘하얀 새는 翯翯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翯翯이 郭璞이나 朱熹의 설처럼 ‘하얗고 깨끗한 모습’이라면, 이 말은 ‘하얀 새는 하얗게 빛난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하얀 새가 하얗게 빛나지, 하얀 새가 검게 빛나겠는가. 이는 동어반복이라서, 아무 의미가 없다. 毛亨의 설을 따른다면, ‘하얀 새가 토실토실하다’는 말이 되니, 하얀 새가 靈囿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동어반복이 아니다. 따라서 본문을 고려한다면, 毛亨의 설이 훨씬 낫다. ▼ 毛亨은 翯翯/肥澤也, ‘翯翯은 살이 찐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翯/戶角反/肥澤也//字林云/鳥白肥澤曰翯/下沃反, ‘翯은 戶와 角의 반절로 읽는다. 살이 쪘다는 뜻이다. 《字林》에는 “새가 하얗고 살찐 모습을 翯이라고 한다. 下와 沃의 반절로 읽는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翯翯/潔白貌, ‘翯翯은 깨끗하고 하얀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鳥獸肥盛喜樂/言得其所, ‘금수들이 살이 올라 즐겁게 노니, 금수들이 자기 있을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樂音洛//下文於樂/注喜樂/皆同, ‘樂은 洛이라고 발음한다. 아랫쪽의 於樂과, 주석의 喜樂에서도 모두 그렇게 읽는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동물들이 靈囿에서 행복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모두 文王의 德을 선전하는 말이다.
王在靈沼、於牣魚躍。
王이 靈沼에 在하니, [영소는 물고기 헤엄치는 곳이로다.] 於는 牣하고, 魚는 躍하는구나.
왕이 영소에 있으니, [영소는 물고기 헤엄치는 곳이로다.] 미꾸라지는 가득하고, 물고기는 뛰어 오르는구나.
◈ 王은 체언으로, ‘王’이다. 文王을 이른다.
◈ 在는 용언으로, ‘~에 있다’는 말이다. 靈沼를 받는다.
◈ 靈沼는 체언으로, ‘靈臺의 沼’일 것이다. 靈囿의 경우처럼, ‘靈臺에 딸린 沼’를 이른다. 沼는 ‘못’, ‘연못’을 이른다. 《說文解字》 「水部」에 沼/池也, ‘沼는 못이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沼/池也//靈沼/言靈道行於沼也, ‘沼는 못이다. 靈沼란, 신령스러운 道가 沼에 행해진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沼/之邵反/池也, ‘沼는 之와 邵의 반절로 읽는다. 못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靈沼/囿之中有沼也, ‘靈沼는 靈囿 영역 안에 있는 못이다’라고 하였다. 朱熹의 설이 타당하다.
◈ 於牣魚躍은 다소 이상하다. 於牣魚躍에서, 於는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이를 감탄사로 보고, ‘오’라고 읽는다. 牣은 ‘가득하다’는 말이다. 魚는 ‘물고기’다. 躍은 ‘도약하다’, ‘뛰어 오르다’는 말이다. 따라서, 於牣魚躍은 ‘아아, 가득한 물고기는 뛰어 오른다’는 말이 된다. 말이야 되지만, 앞의 句들과 대구가 맞지 않다. 靈囿에 대한 글을 돌아 보면, 王在靈囿/麀鹿攸伏/麀鹿濯濯/白鳥翯翯이었다. 靈沼에 대한 글은 王在靈沼/於牣魚躍이었다. 王在靈囿와 王在靈沼는 대구를 이룬다. 그런데 於牣魚躍은 麀鹿攸伏과도 대구가 안 되고, 麀鹿濯濯/白鳥翯翯과도 대구가 안 된다. 麀鹿攸伏과 麀鹿濯濯, 白鳥翯翯은 모두 첫 머리에 동물이 나오고, 그 뒤에 그 동물의 상태가 나온다. 그래서 ‘~는 ~하다’처럼 해석된다. 그러나 於牣魚躍은 첫 머리에 감탄사 於가 있다. 게다가, 魚만 체언이기 때문에, 앞의 牣은 관형어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牣한 魚가 躍한다’, 즉 ‘가득한 물고기가 뛰어 오른다’가 된다. 이처럼 의미 구조도 대구를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좀 뒤집어 보았다. 대구를 고려해서 생각한다면, 於가 물고기로 해석되어야 한다. 於가 물고기라면, 於牣魚躍은 ‘於는 가득하고, 魚는 뛰어 오른다’처럼 해석된다. 이렇게 보면, 글의 형식은 좀 다르지만, 의미는 대구를 이룬다. 於가 물고기라면, 무슨 물고기일까. 잘 모르겠다. 於가 포함된 글자 중, ‘물고기’를 뜻하는 것은 鯲밖에 없다. 사전상, 鯲는 ‘미꾸라지’를 뜻한다. 그러나 鯲에 대해서는 내력이나 용례를 알 수가 없다. 사전에는 나오는데, 사용된 문헌도, 풀이한 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鯲가 본문의 於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편, ‘오징어’로 볼 수도 있다. 於는 본래 烏에서 나온 글자인데, 烏를 포함한 글자 중에 물고기를 이르는 글자로는 鰞가 있다. 鰞는 ‘오징어’를 이른다. 그런데 알다시피 오징어는 바다에 살고, 周나라는 關中에 있었으므로, 미꾸라지보다도 더 말이 되지 않는다. 자라나 거북이로도 추측해 보았으나, 鼈이나 龜에는 於가 들어 있지 않다. 미꾸라지 보다 나은 설이 없다. 본문의 於가 설령 鯲, 즉 ‘미꾸라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구를 생각하면 수중 생물의 일종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鯲를 취해서 ‘미꾸라지’라고 번역하였지만,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명시해 둔다.
◈ 於는 아마 체언으로, ‘미꾸라지’일 것이다. 於는 鯲의 가차자일 듯하다. 鯲는 ‘미꾸라지’다. 이유는 위에 기술해 두었다. 상기하였듯, 이 於는 ‘미꾸라지’가 아니더라도, 수중 생물의 일종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朱熹는 音烏, ‘烏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 牣은 용언으로, ‘가득하다’, ‘가득 차다’는 말이다. 滿과 같다. 《說文解字》 「牛部」에 牣/滿也, ‘牣은 가득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毛亨, 鄭玄, 陸德明, 朱熹 모두 의견이 같다. ▼ 毛亨은 牣/滿也, ‘牣은 가득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鄭玄은 牣을 盈滿, ‘가득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陸德明은 牣音刃/滿也, ‘牣은 刃이라고 발음한다. 가득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牣/滿也, ‘牣은 가득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또, 音刃, ‘刃이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 魚는 체언으로, ‘물고기’다.
◈ 躍은 용언으로, ‘뛰어 오르다’는 말이다. ‘跳躍하다’, ‘踊躍하다’는 말과 같다. ▼ 陸德明은 躍/羊略反, ‘躍은 羊과 略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靈沼之水/魚盈滿其中/皆跳躍/亦言得其所, ‘靈沼의 물에는 물고기가 가득하고, 모두 뛰어 오른다. 이 역시 물고기들이 자신이 있을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跳/徒彫反, ‘跳는 徒와 彫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王在靈囿/麀鹿攸伏/麀鹿濯濯/白鳥翯翯/王在靈沼/於牣魚躍을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한 시문이다. 朱熹는 또, 魚滿而躍/言多而得其所也, ‘물고기가 가득 차 있고, 또 도약한다. 이는 물고기가, 그 수효가 많으면서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점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 亡亡案 : 靈臺, 靈囿에 이어, 이 번에는 靈沼를 소재로 해 文王의 德을 선전하고 있다.
虡業維樅、賁鼓維鏞。於論鼓鐘、於樂辟廱。
虡와 業은 樅하고, 賁과 鼓는 鏞하도다. 於, 論한 鼓鐘여, 於, 樂한 辟廱이여.
북걸이와 널빤지는 들쭉날쭉하고, 큰 북과 [작은] 북은 둥둥 울리는도다. 아아, 이치에 맞는 북소리여, 아아, 즐거운 벽옹이여.
◈ 虡業維樅과 賁鼓維鏞는 아마 ‘虡와 業은 樅하고, 賁과 鼓는 鏞하다’라는 의미일 듯하다. 여기서 樅과 鏞은 사물을 지칭하는 체언이 아니라, 어떤 모양이나 소리를 형용하는 표현일 듯하다. 예를 들어, 1차적인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賁과 鼓는 ‘큰 북’과 ‘북’을 뜻하고, 鏞은 ‘큰 종’을 뜻한다. 그러면 賁鼓維鏞은 ‘큰 북과 북은 큰 종이다’ 같은 말이 되는가.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虡業維樅의 경우, 虡는 종과 북을 걸어 두는 ‘세로틀’이고, 은 그 틀을 받치는 ‘판자’이며, 樅은 그 위의 ‘장식’인데, 그러면 虡業維樅은 ‘틀과 판자는 장식이다’가 되는가. 이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朱熹는 樅을 풀이하면서, 樅/業上懸鍾磬處/以綵色爲崇牙/其狀樅樅然者也, ‘樅은 業 위에 鍾磬을 매달아 두는 곳이다. 색깔을 칠해서 崇牙를 만든다. 그 모양이 들쭉날쭉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樅樅然, 즉 ‘들쭉날쭉하다’라는 의미를 따 와서, 樅을 풀이한다면, 虡業維樅은 ‘틀과 판자는 들쭉날쭉하다’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虡業維樅과 賁鼓維鏞은 경관이 어떤지를 풀이하는 말이 되어,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풀이하였다.
◈ 虡는 체언으로, ‘북을 걸어 두는 세로틀’, ‘걸이’다. 《釋名》 「釋樂器」에 所以懸鼓者/橫曰簨/簨/峻也/在上高峻也//從曰虡/虡/舉也/在旁舉簨也//簨上之板曰業/刻爲牙/捷業如鋸齒也, ‘북을 걸어 두는 틀이다. 가로로 된 것을 簨이라고 한다. 簨은 높다는 뜻이다. 북 위에 높이 있다. 세로로 된 것을 虡라고 한다. 虡는 들다는 뜻이다. 옆에 있으면서 북을 받치고 있다. 簨 위에 있는 판자를 業이라고 한다. 조각해 둔 것을 牙라고 한다. 널빤지를 이어 놓은 모습이 들쭉날쭉하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植者曰虡/橫者曰栒, ‘세워져 있는 것을 虡라고 하고, 가로로 되어 있는 것을 栒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植/恃職反//栒/旬尹反//橫者曰栒/所以縣鍾鼓, ‘植은 恃와 職의 반절로 읽고, 栒은 旬과 尹의 반절로 읽는다. 가로로 된 것이 栒이다. 종이나 북을 걸어 두는 틀이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虡也/栒也/所以懸鐘鼓也//設大版於上/刻畫以爲飾, ‘虡와 栒은 종과 북을 걸어 드는 털이다. 큰 널빤지 위에 설치해 두고, 그림을 새겨서 장식해 둔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縣音玄, ‘縣은 玄이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經典釋文》에는 懸이 縣으로 인용되어 있다. ▼ 陸德明은 虡音巨//植曰虡, ‘虡는 巨라고 발음한다. 세워져 있는 것을 虡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虡/植木以懸鍾磬//其橫者曰栒, ‘虡는 나무를 세워서 鍾磬을 걸어 두는 것이다. 가로로 된 것은 栒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植는 ‘세우다’는 말일 때는 ‘치’로 읽는다.
◈ 業은 ‘큰 널빤지’로, 가로틀 위에 있는 판자를 이른다. 虡 부분에 인용해 둔 《釋名》 「釋樂器」에 簨上之板曰業, ‘簨 위에 있는 판자를 業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說文解字》 「丵部」에는 業/大版也/所以飾縣鍾鼓//捷業如鋸齒/以白畫之//象其鉏鋙相承也, ‘業은 큰 널빤지다. 종과 북을 매달아 두거나 꾸미는 틀이다. 널빤지를 이어 둔 모습이 들쭉날쭉하다. 하얀 색으로 그림을 그려 둔다. 어긋나서 이어져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業/大版也, ‘業은 큰 널빤지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業/栒上大版/刻之/𣓉業如鋸齒者也, ‘業은 栒위에 있는 큰 널빤지다. 무늬를 새긴다. 널빤지가 이어져 있는 모양이 들쭉날쭉하다’라고 하였다. 𣓉業은 아마 捷業으로 보인다. 《詩經集傳》에만 𣓉業이라고 되어 있고, 나머지 문헌들에는 모두 捷業이라고 되어 있다.
◈ 維는 아마 의미 없는 조사 같다.
◈ 樅은 아마 용언으로, ‘들쭉날쭉하다’는 말 같다. 毛亨은 崇牙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衝牙라고 하였다. 崇牙와 衝牙는 모두 ‘장식’일 것이다. 朱熹 역시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런데 朱熹는 樅의 모습을 樅樅然, 즉 ‘들쭉날쭉하다’라고 묘사하였는데, 본문의 樅이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虡와 業, 즉 세로틀과 널빤지가 교차하는 지점의 장식이 본래 樅인데, 그 모양이 들쭉날쭉해 보이므로, 그 모습을 가지고 樅이라고 한 듯하다. 이렇게 풀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첫 부분에 설명하였다. ▼ 毛亨은 樅/崇牙也, ‘樅은 崇牙다’라고 하였다. 牙는 새긴 그림으로, 일종의 장식이다. 虡 부분에 인용해 둔 《釋名》 「釋樂器」에 刻爲牙/捷業如鋸齒也, ‘조각해 둔 것을 牙라고 한다. 널빤지를 이어 놓은 모습이 들쭉날쭉하다’라는 말이 있었다. ▼ 陸德明은 樅/徐七凶反/又音衝/衝牙也//沈又音子容反, ‘樅에 대해, 徐邈은 七과 凶의 반절로 읽는다고 했다. 衝이라고도 읽는다. 衝牙다. 沈은 子와 容의 반절로 읽는다고도 하였다’라고 했다. 衝牙는 일종의 장식품 같다. 沈은 아마 沈旋, 沈重 중 하나인 듯하다. ▼ 朱熹는 樅/業上懸鍾磬處/以綵色爲崇牙/其狀樅樅然者也, ‘樅은 業 위에 鍾磬을 매달아 두는 곳이다. 색깔을 칠해서 崇牙를 만든다. 그 모양이 들쭉날쭉하다’라고 하였다. 樅樅然은 아마 ‘들쭉날쭉한 모양’을 이르는 듯하다. 《釋名》 「釋樂器」에 ‘톱니처럼 생겼다’라고 하였으니, 진술이 합치된다.
◈ 賁은 체언으로, ‘큰 북’일 것이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북이다. 陸德明은 鼖이라고 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고 하였는데, 鼖이 아마 본래 글자일 듯하다. 賁에 대해서는 《說文解字》 「貝部」에 賁/飾也, ‘賁은 꾸미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鼖의 경우엔, 《說文解字》 「鼓部」에 鼖/大鼓謂之鼖//鼖八尺而兩面/以鼓軍事, ‘鼖은 이렇다. 큰 북을 鼖이라고 한다. 鼖은 여덟 자에 면이 두 개다. 북을 쳐서 軍事를 행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鼖가 본래 ‘북’이고, 賁은 아마 가차자일 듯하다. 한편, 《周禮》 「地官司徒」에 以鼖鼓鼓軍事, ‘鼖鼓를 가지고 군대의 일을 鼓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大鼓謂之鼖/鼓長八尺, ‘큰 북을 鼖라고 한다. 북의 길이는 여덟 자다’라고 하였고, 또 《周禮》 「冬官考工記」에는 鼓長八尺/鼓四尺/中圍加三之一/謂之鼖鼓, ‘북의 길이는 여덟 자다. 鼓는 네 자인데, 중심의 둘레가 3분의 1 더 크다. 이를 鼖鼓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大鼓謂之鼖//以鼖鼓鼓軍事//鄭司農云/鼓四尺/謂革所蒙者廣四尺, ‘큰 북을 鼖라고 한다. 鼖鼓를 가지고 군대의 일에 사용한다. 鄭司農은 “鼓는 네 자인데, 가죽으로 덮어 놓은 부분의 넓이가 네 자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鄭司農은 鄭衆을 이른다. ▼ 毛亨은 賁/大鼓也, ‘賁은 큰 북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賁/符云反/字亦作鼖//大鼓也, ‘賁은 符와 云의 반절로 읽는다. 이 글자는 鼖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큰 북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賁/大鼓也/長八尺//鼓四尺/中圍加三之一, ‘賁은 크 큰 북이다. 길이가 여덟 자다. 鼓는 네 자다. 중심의 둘레는 3분의 1 더 크다’라고 하였다.
◈ 鼓는 체언으로, ‘북’이다. 賁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면, 鼓의 길이는 네 자다.
◈ 鏞은 아마 용언으로, ‘둥둥 울린다’처럼 북이 울리는 소리를 묘사한 말일 듯하다. 《說文解字》나 《爾雅》에서는 鏞을 모두 ‘큰 종’이라고 풀이하였으나, 賁과 鼓가 모두 ‘북’이었으므로, 鏞 역시 ‘둥둥’처럼 북소리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鏞을 ‘큰 종’처럼 체언이 아니라, ‘둥둥 울리다’ 같은 용언으로 보는 까닭에 대해서는 첫 부분에서 설명하였다. 《說文解字》 「金部」에 鏞/大鐘謂之鏞, ‘鏞은 이렇다. 큰 종을 鏞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고, 《爾雅》 「釋樂」에는 大鐘謂之鏞/其中謂之剽/小者謂之棧, ‘큰 종은 鏞이라고 한다. 중간 정도는 剽라고 한다. 작은 것은 棧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 毛亨은 鏞/大鐘也, ‘鏞은 큰 종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鏞音容/大鐘也, ‘鏞은 容이라고 발음한다. 큰 종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鏞/大鍾也, ‘鏞은 큰 종이다’라고 하였다.
◈ 於는 감탄사다. ‘오’라고 읽는다. ‘아’처럼 해석된다. ▼ 陸德明은 於音烏/鄭如字//下於樂於論/皆同, ‘於는 烏라고 발음한다. 鄭玄처럼 해석할 경우엔 글자 그대로 읽는다. 뒤에 나오는 於樂, 於論에서도 모두 烏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 論는 아마 관형어일 것이다. 아마 倫과 같은 글자로, ‘이치에 맞는’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鼓鐘을 한정한다. 《釋名》 「釋典藝」에 論/倫也/有倫理也, ‘論은 倫이라는 뜻이다. 이치가 있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다. 論에는 설이 두 개 있다. 毛亨과 陸德明은 思라고 풀이했는데, 이 思는 아마 ‘마음 속의’ 같은 말일 듯하다. 鄭玄과 朱熹는 倫이라고 풀이했는데, 이는 곧 倫理로, ‘이치에 맞는’이라는 뜻이다. 나는 鄭玄과 朱熹의 설을 따랐다. ▼ 毛亨은 論/思也, ‘論은 思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思는 아마 ‘마음 속의’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한다. 孔穎達은 이 思를 思念이라고 풀이하였다. ▼ 鄭玄은 論之言倫也, ‘論은 倫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倫은 아마 倫理, 즉 ‘이치에 맞는’ 같은 의미일 것이다. 鄭玄의 이 주석은 虡에 대한 주석 보다 먼저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 陸德明은 論音盧門反/思也//一云/鄭音倫///下同, ‘論은 盧와 門의 반절로 읽는다. 思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鄭玄처럼 해석할 경우 倫이라고 읽는다고 하였다. 아래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論/倫也/言得其倫理也, ‘論은 倫이라는 뜻이니, 그 이치에 합치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於論鼓鐘의 鼓鐘은 체언으로, 아마 ‘북소리’일 것이다.
◈ 樂은 관형어로, ‘즐거운’일 것이다. 辟廱을 한정한다.
◈ 辟廱은 체언으로, 宮의 일종이다. 《蔡中郞集》 「明堂月令論」에 取其四面周水圜如璧/則曰辟廱, ‘네 면이 물을 둘러싼 모습이 구슬 같기 때문에 辟廱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朱熹는 天子가 공부하고, 大射禮를 행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 毛亨은 水旋丘如璧曰辟廱//以節觀者, ‘물이 언덕을 돌아 나가는 모습이 璧 같아서 辟廱이라고 한다. 자세를 절제해서 경치를 보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𨐓音璧//水旋丘如璧//注同, ‘𨐓은 璧이라고 발음한다. 물이 언덕을 돌아 나가는 모습이 璧 같다는 뜻이다. 주석에서도 그렇게 읽는다’라고 하였다. 《經典釋文》에는 辟이 𨐓으로 되어 있다. 같은 글자다. ▼ 朱熹는 辟/璧通//廱/澤也//辟廱/天子之學/大射行禮之處也//水旋丘如璧/以節觀者/故曰辟廱, ‘辟은 璧과 통용된다. 廱은 연못이다. 辟廱은 天子가 배우는 곳으로, 大射의 禮를 행하는 곳이다. 물이 언덕을 돌아 나가는 모습이 璧과 같아, 태도를 절제하여 경치를 보기 때문에 辟廱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文王立靈臺/而知民之歸附//作靈囿靈沼/而知鳥獸之得其所//以爲音聲之道與政通/故合樂以詳之//於得其倫理乎/鼓與鐘也//於喜樂乎/諸在辟廱中者//言感於中和之至, ‘文王은 靈臺를 세우고, 백성들이 귀부해 올 것을 알았다. 靈囿와 靈沼를 만들고는, 금수들이 편안하게 거처할 것을 알았다. 음악 소리의 도리와 정사가 통하리라 생각하였기에, 음악을 이치에 맞게 연주함으로써 상세하게 갖추었던 것이다. 그럼 이로써 이치에 합치되었는가. 북과 종으로 그리하였다. 즐거웠는가. 辟廱에 있으면서 그리하였다. 이는 지극한 中和의 이치에 감동하였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虡業維樅/賁鼓維鏞/於論鼓鐘/於樂辟廱을 한 章으로 보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賦는 사실을 나열하는 시문이다. 朱熹는 지 章에 대해, 이 외의 주석을 남기지 않았다.
◈◈ 亡亡案 : 북이 매달려 있는 모습과 북소리, 辟廱宮의 풍광을 묘사하고 있다.
於論鼓鐘、於樂辟廱。鼉鼓逢逢、矇瞍奏公。
於, 論한 鼓鐘여, 於, 樂한 辟廱이여. 鼉鼓는 逢逢하고, 矇瞍는 公을 奏하는도다.
아아, 이치에 맞는 북소리여, 아아, 즐거운 벽옹이여. 타고는 봉봉 울리고, 맹인들은 고사를 노래하는도다.
◈ 於論鼓鐘/於樂辟廱은 앞의 章과 의미가 같기 때문에 따로 풀이하지 않았다.
◈ 鼉鼓는 아마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을 이를 것이다. 나는 ‘타고’라고 음역하였다. 鼉는 ‘악어’다. 長江 이남 지역은 고대에 거의 미개발 상태였고, 코끼리나 악어가 살았다. 아마 冠이나 북을 만들었을 것이다. 《說文解字》 「黽部」에 鼉/水蟲//似蜥易/長丈所, ‘鼉는 물에 사는 짐승이다. 蜥易과 비슷하게 생겼다. 길이는 한 丈이 넘는다’라는 말이 있다. 蜥易은 곧 蜥蜴으로, ‘도마뱀’을 이른다. 丈所란, 丈許와 같다. ▼ 毛亨은 鼉/魚屬, ‘鼉는 물고기의 일종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鼉/徒河反/沈又音檀//毛云/魚屬//草木䟽云/形似蜥蜴/四足長丈餘/甲如鎧/皮堅厚/冝冒鼓, ‘鼉는 徒와 河의 반절로 읽는다. 沈은 檀으로 읽기도 한다고 하였다. 毛亨은 물고기의 일종이라고 하였다. 《草木䟽》에서는 “외형은 蜥蜴과 비슷하게 생겼고, 발이 네 개이며, 길이는 한 丈이 넘는다. 외피는 갑옷 같고, 가죽은 단단하고 두껍다. 북에 씌우기 적합하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沈은 沈重이나 沈旋을 이를 것이다. 《草木䟽》는 陸機의 《毛詩草木鳥獸蟲魚疏》를 이른다. ▼ 朱熹는 鼉/似蜥蜴/長丈餘/皮可冒鼓, ‘鼉는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겼다. 길이는 한 丈이 넘었다. 가죽은 북에 씌일 수 있다’라고 하였다.
◈ 逢逢은 아마 ‘봉봉’처럼 북이 울리는 소리를 형용한 표현 같다. 䩼이나 韼의 가차자일 것이다. 䩼과 韼은 모두 ‘북소리’를 뜻한다. 陸德明은 韸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는데, 韸 역시 ‘북소리’다. 毛亨, 陸德明, 朱熹는 모두 和라고 풀이했는데, 이 和는 아마 북소리로 ‘화답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북소리로 보고 번역하였다. ▼ 毛亨은 逢逢/和也, ‘逢逢은 화답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逢/薄紅反/和也//𡌨蒼云/鼓聲也///亦作韸/徐音豐, ‘逢은 薄과 紅의 반절로 읽는다. 화답하다는 뜻이다. 《𡌨蒼》에서는 “북소리다”라고 하였다. 이 글자는 韸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徐邈은 豐으로 읽는다고 하였다’라고 했다. 𡌨는 埤와 같다. 《𡌨蒼》은 곧 《埤蒼》이다. 漢나라 때 편찬된 사전이다. ▼ 朱熹는 逢逢/和也, ‘逢逢은 화답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矇瞍는 ‘장님’이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을 이른다. 고대에는 맹인들에게 시나 잠언을 외우고 암송하게 하였다. 矇과 瞍는 모두 ‘장님’이다. 瞍는 눈동자가 없는 ‘장님’을 이른다. 이는 아래에 인용한 韋昭의 주석에 나온다. 본래 글자는 𥈃다. 𥈃에 대해서는 《說文解字》 「目部」에 𥈃/無目也, ‘𥈃는 시력이 없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矇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說文解字》 「目部」에 矇/童矇也//一曰/不明也, ‘矇은 어린 아이다. 일설에는 눈이 밝지 않다는 뜻이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釋名》 「釋疾病」에는 矇/有眸子而失明/蒙蒙無所別也, ‘矇은 눈동자가 있는데 시력을 잃은 것을 이른다. 눈 앞이 캄캄하여 분별을 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呂氏春秋》 「恃君覽 達鬱」에 矇箴師誦, ‘矇은 箴하고, 師는 誦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目不見曰/矇師瞽師//詩云/矇叟奏功,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矇師나 瞽師라고 한다. 《詩》에 “矇叟奏功”이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인용된 시가 바로 이 「靈臺」다. 이처럼, 矇과 瞍는 모두 ‘장님’인데, 세세한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또, 瞍는 叟로 가차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 ‘장님’들이 무슨 일을 했을까. 《國語》 「周語」에 故天子聽政/使公卿至于列士獻詩/瞽獻曲/史獻書/師箴/瞍賦/矇誦/百工諫/庶人傳語/近臣盡規/親戚補察/瞽史教誨/耆艾修之/而後王斟酌焉/是以事行而不悖, ‘그러므로 天子가 정치를 돌볼 때는, 公卿에서 列士에 이르기까지는 시를 바치고, 瞽는 曲을 바치며, 史는 書를 바치고, 師는 箴하며, 瞍는 賦를 낭송하고, 矇은 외운다’라는 말이 있다. 韋昭는 無眸子曰瞍//賦/公卿列士所獻詩也//有眸子而無見曰矇//周禮/矇主弦歌諷誦//誦/謂箴諫之語也, ‘눈동자가 없는 사람을 瞍라고 한다. 賦란, 公卿과 列士들이 바친 시들을 이른다. 눈동자가 있는데 보지 못하는 사람을 矇이라고 한다. 《周禮》에 “矇은 弦歌와 諷誦를 주관한다. 誦이란, 잠언이나 간언하는 말을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나라에서는 맹인들에게 시나 잠언을 외우도록 시켰던 것이다. 같은 말이 《史記》 「周本紀」에도 나오는데, 裴駰 역시 韋昭의 주석을 인용해서 설명해 두었다. ▼ 毛亨은 有眸子而無見曰矇//無眸子曰瞍, ‘눈동자가 있는데 못 보는 사람을 矇이라고 한다. 눈동자가 없는 사람을 瞍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陸德明은 眸/莫侯反, ‘眸는 莫과 侯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鄭玄은 凡聲/使瞽矇爲之, ‘모든 소리들은 瞽와 矇을 시켜서 암송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瞽 역시 ‘장님’이다. ▼ 陸德明은 矇에 대해 矇音蒙/有眸子而無見, ‘矇은 蒙이라고 발음한다. 눈동자가 있지만 보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瞍에 대해서는 瞍/依字作叟/蘇口反/無眸子也//字亦作𥈃//說文云/無目也//字林/先幺反/云/目有朕/無珠子也, ‘瞍는 字에 근거하여 叟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蘇와 口의 반절로 읽는다. 눈동자가 없다는 뜻이다. 이 글자는 𥈃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𥈃에 대해 《說文》에 “시력이 없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字林》에서는 “先과 幺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고, 또 “눈에 朕은 있으나, 珠子는 없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依字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字는 《字林》일까. 《說文》은 《說文解字》다. 인용문은 「目部」에 나온다. 朕과 珠子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 朱熹는 有眸子而無見曰矇/無眸子曰瞍//古者/樂師皆以瞽者爲之/以其善聽而審於音也, ‘눈동자가 있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을 矇이라 한다. 눈동자가 없는 사람을 瞍라고 한다. 옛날에는 장님들에게 樂師를 전부 시켰으니, 장님들이 잘 듣고 音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奏는 용언으로, ‘아뢰다’, ‘상주하다’는 말이다. 公을 받는다. 여기서는 登歌를 이른다. 登歌란, ‘樂師가 堂에 올라서 노래를 부르던 일’을 이른다. 登謌라고도 한다. 矇瞍 부분에서 설명하였듯, 고대에는 장님들을 樂師로 고용하여서, 잠언이나 시를 읊도록 했다. 登歌 역시 장님들의 일이었을 것이다. 《說文解字》 「夲部」의 皋 중, 禮/祝曰皋/登謌曰奏, ‘《禮》에 비는 것을 皋라고 하고, 登謌하는 것을 奏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禮》는 어떤 책인지 알 수가 없다. 이에 대해 段玉裁는 謌/或歌字也//登歌/堂上歌也//禮經或言歌或言樂或言奏/實皆奏也, ‘謌는 歌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登歌란, 堂 위에 올라 가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다. 《禮經》에 歌라는 말이 나올 때도 있고, 樂이나 奏라는 말이 나올 때도 있는데, 실제로는 모두 奏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 公은 체언으로, ‘일’, ‘고사’다. 맹인 樂師들은 잠언과 시를 읊었는데, 이것이 바로 ‘고사들’이다. 公은 이 ‘고사’를 뜻한다. ▼ 毛亨은 公/事也, ‘公은 일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 역시 公/事也, ‘公은 일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於論鼓鐘/於樂辟廱/鼉鼓逢逢/朦瞍奏公을 한 章으로 보았고, 賦也, ‘賦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또, 聞鼉鼓之聲/而知矇瞍方奏其事也, ‘鼉鼓 소리를 듣고서, 맹인들이 그 일을 아뢴 것을 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주석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 亡亡案 : 鼉鼓가 울리고, 맹인들이 시를 읊는 장면으로 文王의 德을 선전하고 있다.
◈◈ 《毛詩正義》에서는 「靈臺」의 편제에 대해, 靈臺五章/章四句, ‘「靈臺」는 다섯 章이다. 章마다 네 句다’라고 하였다.
◈◈ 《詩經集傳》에서는 「靈臺」의 편제에 대해, 靈臺四章/二章章六句/二章章四句, ‘「靈臺」는 네 章인데, 두 章은 章마다 여섯 句이고, 두 章은 章마다 네 句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또, 東萊呂氏曰/前二章/樂文王有臺池鳥獸之樂也//後二章/樂文王有鍾鼓之樂也//皆述民樂之辭也, ‘東萊 呂氏는 이렇게 말했다. “앞의 두 章은 文王이 臺, 池, 鳥, 獸를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즐거워한다는 뜻이요, 뒤의 두 章은 文王이 북을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모두 백성들이 즐거워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東萊呂氏는 趙宋의 呂祖謙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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