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 번외편 - 소학서제(주희)

2025. 2. 24. 17:29잡서/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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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小學》은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원문은 학민문화사에서 나온 영인본을 참고하기도 하고, 또 동양고전종합DB에 업로드되어 있는 글을 참고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현토는 뺐습니다.

 

* 《小學》은 朱熹와 劉子澄이 여러 글들을 짜깁기하여 만든 책입니다. 필요할 때는 그 글의 원전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한 만큼, 주석을 달 때 《莊子》나 《荀子》에서처럼 복잡한 방식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 《小學》에는 여러 사람이 주석을 달았습니다. 何士信이 《小學集成》을, 吳訥이 《小學集解》를, 陳祚가 《小學集解正誤》를, 陳選이 《小學增註》를, 程愈가 《小學集說》을 지었습니다. 모두 明代 학자들입니다. 朝鮮의 李珥는 이 책들을 참고하여 《小學諸家集註》를 저술했습니다. 《小學諸家集註》에는 상기된 주석서들의 내용과, 李珥 본인의 의견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본 번역에서는 이 《小學諸家集註》를 번역합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小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5년 2월 24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小學書題>, 朱熹

 

 

<소학서제>

古者小學/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皆所以爲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

옛날 소학에서는 물을 뿌리고, 바닥을 쓸며, [다른 사람에게] 응대하고, 행동거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절도와,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따르고, 친구와 잘 지내는 방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이는] 모두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바로잡으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일을 이루는 바의 근본이었다.

** 灑 : 물을 ‘뿌리다’는 말이다.

** 掃 : 바닥을 ‘쓸다’는 말이다.

 

 

<집해>

小學/小子所入之學也//三代盛時/人生八歲/皆入小學而受敎焉//灑/謂播水於地/以浥塵//掃/謂運帚於地/以去塵//應/謂唯諾//對/謂答述//節/禮節也//親/父母也//長/尊長也//隆/尊也//親/近也//道則講習之方也

小學은 어린 아이들이 들어가는 학교다. 삼대가 흥성했을 때는 사람이 태어나 여덟 살이 되면, 모두 소학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灑는 땅에 물을 뿌려서 먼지를 적신다는 뜻이다. 掃는 땅에 빗자루를 움직여서 먼지를 쓸어 낸다는 뜻이다. 應은 예하고 승낙한다는 뜻이다. 對는 답하여 언술한다는 뜻이다. 節은 예절이다. 親은 부모다. 長은 웃어른이다. 隆은 높이다는 뜻이다. 親은 가까이 하다는 뜻이다. 道는 강습하는 방식이다.

 

 

此言小學之敎/所以爲他日大學修齊治平之根本也

이 부분에서는 소학에서 했던 교육이 언젠가 大學에서 수양하고, 바로잡으며, 다스리고, 평정할 일의 근본을 위해서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소학서제>

而必使其講而習之於幼穉之時/欲其習與智長/化與心成/而無扞格不勝之患也

그러므로 꼭 어릴 때 이런 것들을 논하고, 익히게 하여, 사람들의 습관이 지식과 함께 자라나고, 교화가 마음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여, [상규에] 맞서거나 [상규를] 감당하지 못할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而必의 而 : ‘이에’, ‘그러므로’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 其講의 其 : 왜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 講 : ‘논하다’는 말이다.

** 扞格 : ‘반항하다’, ‘맞서다’는 말이다. ‘한핵’이라고 읽는다. 《禮記》 「學記」에는 捍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본문의 扞格과 같다.

 

 

<정오>

扞格/牴牾不相入也

扞格은 어긋나서 서로 들어 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李珥] 按/格如民莫敢格之格/卽拒逆之意//讀如字

李珥의 주 : 생각해 보건대, 格은 民莫敢格이라고 할 때의 格과 같으니, 곧 거스르다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읽는다.

 

 

<집설>

陳氏曰/不勝/不能勝當其敎也

陳氏가 말했다. 不勝은 그 교육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言人於幼穉之時/心智未有所主/及時而敎之/欲其習與智俱長/化與心俱成/而無扞格難入/不勝其敎之患也

사람이 어릴 때에는 마음가짐과 식견에 아직 줏대가 생기지 않았으니, 때에 맞게 가르쳐서, 그 습관이 식견과 함께 성장하고, 교화가 마음가짐과 함께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 반항하다가 [사회에] 들어가기 어려워지거나, 교육을 감당하지 못할 우려가 없도록 한다는 뜻이다.

 

 

 

 

<소학서제>

今其全書雖不可見/而雜出於傳記者亦多/讀者往往直以古今異宜而莫之行/殊不知其無古今之異者/固未始不可行也

지금은 소학에서 썼던 책 전체가 비록 보이지 않지만, 전(傳)과 기(記)들에 뒤섞여서 나오는 글들은 또 많다. [그러나] 독자들은 가끔 다만 옛날과 지금의 도리가 다르기 때문에 실천하지 않기도 하는데, [정작] 옛날과 지금의 도리에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은 전혀 알지 못하니, 진정 애초에 실천할 수 없던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 雜 : ‘뒤섞이다’는 뜻이다.

** 殊 : ‘전혀’라는 뜻이다.

 

 

<증주>

直/猶但也//殊/猶絶也

直은 다만이라는 말과 같다. 殊는 전혀라는 말과 같다.

 

 

<집해>

全書/謂三代小學敎人之書//傳記/謂今所存曲禮內則諸篇也

全書란, 삼대 때 소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던 책을 이른다. 傳記는 지금 존재하는 「曲禮」나 「內則」 같은 여러 편들을 이른다.

 

 

夫自坑焚之後/載籍不全//其幸存者/世人直以時世不同/莫之能行/蓋絶不知其中無古今之異者/實可行也//無古今之異/卽朱子蒐輯以成此書者/是也

대저, 유생을 파묻고, 책을 불태운 뒤로부터, 서적들은 온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 요행히도 보존된 책들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다만 [고대와 현대의] 시기가 같지 않기에, 실천할 수 없다고만 생각하였는데, [사람들은] 대체로 그 내용에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서, 실제로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점이 없으니, 곧 朱子가 [글을] 수집하여서 이 책을 완성한 것이다. 이러한 뜻이다.

 

 

 

 

<소학서제>

今頗蒐輯以爲此書/授之童蒙/資其講習/庶幾有補於風化之萬一云爾

[이러한 까닭에, 자료들을] 지금 꽤 수집하여서 이 책을 만들었으니, 아이들에게 이 책을 가르치고, 강습을 도와서, 약간이나마 교화에 도움이 되는 바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 蒐輯 : ‘모으다’, ‘수집하다’는 말이다.

** 頗 : ‘자못’, ‘꽤’라는 뜻이다.

** 爲 : ‘만들다’는 뜻이다.

** 童蒙 : ‘아이들’이다.

** 資 : ‘돕다’는 말이다.

** 云爾 : 아마 ‘~할 뿐이다’, ‘따름이다’ 같은 표현 같다.

 

 

<집설>

陳氏曰/蒐/索也//輯/聚也//授/付也//童蒙/童幼而蒙昧也//資/助也//庶幾/近辭//風化/詩序謂/風/風也/敎也/風以動之/敎以化之也//萬一/萬分之一也//云爾/語辭

陳氏가 말했다. 蒐는 찾다는 뜻이다. 輯은 모으다는 뜻이다. 授는 주다는 뜻이다. 童蒙은 어려서 어리석다는 뜻이다. 資는 돕다는 뜻이다. 庶幾는 가깝다는 말이다. 風化에 대해서는, 《詩》 「序」에 ‘風은 風이요, 敎이니, 바람으로 움직이고, 가르쳐서 교화한다’라는 말이 있다. 萬一은 만 분의 일이라는 뜻이다. 云爾는 어조사다.

 

 

朱子此書/續古者小學之敎/其有補於國家之風化/大矣//曰庶幾/曰萬一/皆謙辭耳

朱子는 이 책을 가지고 옛 소학의 교육을 이어서, 나라의 풍속에 도움이 되는 바가 있도록 하였으니, 위대하도다. 庶幾라고 하거나, 萬一이라고 한 것은 모두 겸손하는 표현일 뿐이다.

 

 

吳氏曰/朱子之於世敎/豈惟有補於當時/實則有功於萬世也

吳氏가 말했다. 세상의 교화에 대해, 朱子가 어찌 다만 당시 세상에 대해서만 도움이 되었겠는가. 실제로는 만세에 공적이 있다 하겠다.

 

 

 

 

<소학서제>

淳熙丁未三月朔旦/晦菴題

순희 정미년 3월 초하루 아침, 회암이 머릿말을 짓다.

** 淳熙丁未 : 淳熙는 南宋 孝宗 때의 연호다. 1174년부터 1189년까지다. 丁未年은 1187년이다.

** 晦菴 : 朱熹의 號다.

 

 

<집설>

陳氏曰/淳熙丁未/宋孝宗十四年也//晦菴/朱子別號也

陳氏가 말했다. 淳熙丁未는 宋나라 孝宗 14년이다. 晦菴은 朱子의 별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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