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 기타 - 어제소학서(이덕성)

2022. 3. 5. 08:10개인 공부(추후 재배치 예정)/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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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製小學序, 李德成

 

어제소학서, 이덕성

 

 

小學 何爲而作也. 古之人 生甫八歲 必受是書 即三代敎人之法也

 

《소학》은 왜(何爲, '어찌 하여') 지었을까.(作) 옛 사람들은 [사람이] 태어나고서 갓(甫, '갓', '막', '겨우') 여덟 살이 되면, 이 책을 반드시 받[아서 공부하]게 하였다.(受, '받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받아서 익히다', '받아서 공부하다'라는 뜻이 숨어 있다고 보아야 타당하겠다.) [이 책은] 곧(即, '곧', '바로') 삼대 때(三代, 아마 夏, 殷, 周를 이를 것이다.) 사람들을 가르쳤던 방식(法)이었던 것이다.

 

 

自嬴秦坑焚以來 經籍蕩殘 存者幾希 此新安朱夫子之所以慨然乎世敎之陵弛, 輯舊聞 而牖來學者也.

 

영씨의 진나라(嬴秦, 嬴은 秦나라의 姓이다.)가 갱분했던(坑焚, 坑은 '구덩이', '구덩이에 파묻다', 焚은 '불태우다', 즉 坑焚은 焚書坑儒를 뜻한다. 먼저 焚書하고, 다음해에 坑儒했다고 한다. 따라서 순서만 따지면 焚坑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왜 坑焚이라고 했을까. 坑焚의 발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뒤로부터 경적들이(經籍, '경전과 서적', 經은 공자 같은 성인을 거친 글을 이르고, 籍은 나머지 문서들을 이른다. 經에 대한 말은 《문심조룡》에 보인다.) 탕잔하게 되어서(蕩殘, 蕩은 '흩어지다', '없어지다', 殘은 '훼손되다', '상하다') 보전된 것들이(存者) 대체로(幾, '거의') 드물게(希는 稀, '드물다') 되었다. 이 《소학》이라는 책은(此, 《소학》을 가리킨다.) 신안의 주 선생(新安朱夫子, 朱熹다. 朱熹의 본관이 新安이다. 夫子는 '선생'이라는 경칭이다.)이 [이러하듯] 세상의 교화가 쇠퇴하다는 점을(陵弛, 陵은 '욕되다', '쇠퇴하다', 弛는 '헤이하다', 혹은 陵弛를 陵夷라고 보아서 '언덕이 평평해졌다'라고 보아서 '쇠퇴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 여겨서(慨然, '원통한 모습', '분개한 모습') 옛날에 공부하였던 것들을 모아(輯舊聞) 후세의(來) 학자들을 깨우치기(牖, 원래는 '들창'이지만, 여기서는 '깨우치다'는 말이다.) 위해 만든 것(所以)이다.(此/新安朱夫子之所以慨然乎世敎之陵弛/輯舊聞/而牖來學者也에서 此가 經籍蕩殘/存者幾希世를 가리킨다고 보고, 所以를 敎之陵弛를 받는 말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상황이 이러하였기에, 신안의 주 선생은 세상의 교화가 쇠퇴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가 되어서 내용이 앞문장과 잘 이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보면 뒤의 輯舊聞/而牖來學者也가 독립된 절로 기능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者로 끝나는 명사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명사구를 앞의 此/新安朱夫子之所以慨然乎世敎之陵弛에 붙는 구로 봐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所以는 世敎之陵弛/輯舊聞/而牖來學者까지 모두 받는 말이 되어야 하고, 此는 《소학》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장이 절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긴 구를 포함하고 있어서 다소 혼동된다.)

 

 

嗚呼 是書也, 規模節次 粲然俻具 有內外之分 有本末之序, 曰立敎 曰明倫 曰敬身 玆三者 內也夲也, 次言稽古 所以摭往行而證之也, 曰嘉言 曰善行 玆二者 外也末也.

 

아아(嗚呼), 이 책으로 말하자면, [그] 규모와 차례가(規模節次, 規模는 '전체적인 범위', 節次은 '상세한 세목') 정갈하게(粲然, 粲은 '밥'이다. '조촐하고 산뜻한 모양', '정갈한 모양'이다.) 갖춰져 있고(俻具, 俻는 備, '갖추다'), 안팎의 구별되어 있고, 본말의 순서도(本末之序, 序는 '순서') [갖춰져] 있다. 「입교」니, 「명륜」이니, 「경신」이니 하는데, 이 세 편은(玆三者, 立敎와 明倫, 敬身은 모두 《소학》의 편 이름이므로, '편'으로 의역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稽古, 嘉言, 善行 역시 모두 편의 이름이다.) 안이요, [그리고] 근본이다.(內也夲也, 내편?, 內과 夲은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이] 다음에 나오는 「계고」는 옛[날 성현들]의 몸가짐을(往行, 往은 '과거'를 뜻한다. 여기서는 '본 받을 성현'이라고 이해하면 타당하겠다.) 모아서(摭은 取, '취하다', '줍다'), [학생들에게] 「입교」, 「명륜」, 「경신」에서 배운 것들을(之, 「입교」, 「명륜」, 「경신」을 지칭한다.) 증명하게(證, '증명하다') 한 것이다. [또한] 「가언」이니, 「선행」이니 하는데, 이 두 편은(玆二者) 밖이요, [그리고] 끄트머리다.(外也末也, 外와 末은 덜 중요하거나 부수적이라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果能於斯三者 沉濳反覆 驗之于身, 則二者 不過推廣而實之而已. 譬如綱擧則目張, 根培則支達. 此正小子入道之初程, 蒙養之聖功, 豈易言哉.

 

만약(果, 뒤에 則二者에서 則이 나오므로, 果는 '만약'처럼 가정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이 세편(斯三者, 상기한 「입교」, 「명륜」, 「경신」을 이른다.)에 몰입하고(沉濳, 두 글자 모두 '잠수하다', '물에 잠기다'는 뜻이다.) 반복해서 익혀서(反覆) 스스로 체득할(驗之于身, 驗은 '효과를 보이다') 수 있다면, [뒤의] 두 편은(二者) 세 편을(之) 확장하고(推廣) 실증하는(實) 일에 지나지 않을(不過) 뿐이게(而已) 되니, 비유하자면(譬) [그물을 들 때] 벼리를 들면 작은 줄도 따라오고(綱擧則目張, 綱은 '벼리'다. '벼리'는 그물을 지탱하는 큰 줄이다. 目은 그물에서 큰 줄에 매달려 있는 '작은 줄'이다. 條라고 하기도 한다. 따라서 綱은 '핵심', 目은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根培則支達와도 뜻이 통한다. 綱을 '대강', 目을 '상세한 부분'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뒤의 말과 대구가 잘 안 이루어진다.), 뿌리를 [잘] 기르면 가지도 [잘] 뻗어 나가는 것과(根培則支達, 支는 枝, '가지', 이 말은 「小學題辭」에 나왔었다. 達은 '뻗어 나가는 모양'으로 보면 좋겠다.) 같다(如) 하겠다. 이것이야말로(此) 아이들을(小子) 바로잡아서(正) [학문의] 길에 들이는(入道) 첫 여정(初程)이요, 동몽들을 가르쳐서(蒙養, 蒙은 童蒙, '아이들'이다. 혹은 蒙을 '어리석다'로 보아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養은 '기르다', 나는 '가르치다'라고 하였다.) 공적을 위대하게 이루도록(聖功) 하는 방법일 테니, 어찌(豈) 쉽게 입에 올리리라(易言) 하겠느냐.

 

 

若夫敬身一篇 儘覺緊切. 盖嘗論之, 敬者 聖學之所以 成始成終 徹上徹下, 而敬怠之間 吉凶立判.

 

그런데(若夫) 「경신」 한 편은 [특히] 신각하고(儘覺, '깨달음이 지극하다'), 긴절하다.(緊切, '요긴하다') 그래서(盖) 이에 대해 따져 보겠다.(嘗論之, 嘗은 경험을 뜻한다. '한 번 해 보다', '해 본 적이 있다', '시험삼아 해 보다' 같은 뜻이다. 여기서는 '지금 ~해 보겠다'는 말로 보인다.) [모름지기] 경(敬, 문맥상 여기서는 '삼가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뒤의 敬怠之間에서 怠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怠는 '게으라다', 즉 '절제가 없다', '삼가지 않다'는 뜻이다.)이라는 것은 성학(聖學, '성인의 학문')의 처음이자 끝을 이루며(成始成終, '처음을 이루고, 마지막을 이룬다'), 아래위로 통하니(徹上徹下, '위로 통하고 아래로 통한다', 徹은 '통하다', '밝히다', 여기서 上과 下는 '형이상'과 '형이하'를 뜻한다. 즉, 「경신」에 '형이상학적 이치'와, '형이하학적 실제' 모두가 나온다는 뜻이다.), 경하냐, 태하냐에 따라서(敬怠之間) 길할지, 흉할지가 판가름나고 만다.(吉凶立判)

 

 

是以 武王踐阼之初 師尙父之所以惓惓陳戒者 不越乎是, 學者誠有味于斯, 動靜必於敬, 造次必於敬, 收吾出入之心, 立吾正大之本, 今日下一功, 明日做一事, 於不知不覺之中, 靈臺泰然, 表裏洞徹, 則進, 乎大學所謂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 特一擧而措之矣. 其於風化, 烏可少補云爾.

 

이렇게 생각해 보면(是以) [주나라] 무왕이(武王) 천조했을(踐阼, '임금 자리를 물려 받는 것') 당시에는(初), 사상보(師尙父, 呂尙을 이른다. 師尙父에서 尙은 呂尙의 이름이다. 父가 '부모'가 아니라 '존칭'으로 사용될 때는 '보'라고 읽는다. 甫도 '~님'처럼 존칭으로 쓰인다. 이 때 父는 甫와 같다.)가 [무왕]에게 간절하게(惓惓, '정성스럽게') 진계한(陳戒, '경계할 것을 늘어 놓다', 혹은 '경계할 것을 베풀다', 즉 '정치에 주의할 것들을 알려 주었다'는 말이다.) 일도 삼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도다.(不越乎是, 越은 '넘다'는 말이므로, 過와 같다. 즉, 不越은 不過다. 是는 앞의 敬을 가리킨다.) [따라서] 배우는 자들은 진정으로(誠) 삼가기를 [마음 속에] 새겨야 하니(有味于斯, 斯는 敬을 가리킨다. 味는 '맛보다', '음미하다', '뜻을 파고 들다'는 말이다. 有는 '두다', 즉 有味于斯는 '斯에 관심을 두다'라는 뜻이다.), 동정할 때도 반드시 삼가야 하고(動靜必於敬, 動靜은 '움직이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 즉 '행동거지 일체'이다.), 조차간에라도 반드시 삼가야 한다.(造次必於敬, 造次는 '잠시간', 이 때는 造와 次 모두 '잠시', '잠깐',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른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자기 마음을 정리하고(收吾出入之心, 收는 '정제하다', '수습하다'), 정대한 근본을 자신에게 세워서(立吾正大之本), 금일에는 한 가지를 공부하고(下一功, 下는 '하다', 功은 '공부'), 명일에는 일을 하나 이루어 내야(做一事, 做는 '짓다', '하다') 하니, 부지불각 중에(於不知不覺之中,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靈臺, '신령스러운 집', '마음'을 형상화한 표현이다.) 태연해지고(泰然, 여기서 泰는 '편안하다'는 말이다.), 표리가(表裏, '겉과 속') 통하게 되어야(洞徹, 두 글 자 모두 '이어지다', '통하다'는 말이다. 이 때 洞은 '통'으로 읽는다. 通과 같다.) 한다. 그러면(則) 정진하여서(進), 《대학》에서(乎大學, 乎는 於) 소위 수신하고, 제가하고, 치국하고, 평천하할 도리를(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 곧(特은 乃) 일거에(一擧) 이룰(措, '처리하다') 수 있지 않겠느냐. [배우는 자들이] 이 도리를 이룬다면(其) [백성들의] 풍속을 교화하는 데(風化) 어찌(烏는 何) 조금밖에 도움이 되지(少補) 않는다 할 뿐이겠느냐.

 

 

歲在甲戌 春正月 哉生魄, 序

 

갑술년 봄 정월 재생백(哉生魄, '음력 16일'을 이른다. 哉는 '비로소', 魄은 원래 '음의 기운'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달의 검은 부분'을 이른다. 따라서 哉生魄은 '비로소 달에 검은 부분이 생겼다'는 뜻이다. 출전은 《서》다.)에 서(序)를 쓰다.

 

 

通政大夫 兵曹參知 臣 李德成奉敎書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지(兵曹參知) 신(臣, 자신을 낮추는 표현이다.) 이덕성(李德成), 교서를 받들다.(奉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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