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을 읽기 전에

2020. 5. 1. 16:41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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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1일 16시 41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장자는 송나라 사람입니다. 생몰년이 아주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원전 369년에 태어났고, 기원전 286년에 죽었다고 봅니다. 전국시대의 시점이 기원전 450년 또는 400년 즈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장자는 전국시대가 시작되고도 수십 년이 지나 태어났던 것입니다. 맹자가 기원전 372년에서 기원전 289년까지 살았고, 맹자를 전국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학자라고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자 역시 전국시대 중기, 그리고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순자는 기원전 298년에 태어나 기원전 238년에 죽었다고 보는데, 제가 《순자》를 해설하면서 여러 차례 주지한 것과 같이, 순자가 죽은 직후 진나라(秦)가 전국을 통일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순자는 전국시대의 가장 마지막 시대를 살다 간 것이 됩니다. 맹자는 유학자로서, 장자는 자유인으로서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두 사람이 살았던 시기가 적어도 순자가 살았던 시대 보다는 다소 여유로웠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장자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자는 아주 똑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장자는 자기 생각을 직접 드러내기 보다는, 대체로 우화나 비유를 사용합니다. 《내편》 중에는 「제물론」에 장자의 직접적인 논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제물론」도 뒷부분은 대체로 우화로 들어차 있습니다. 우화를 통해 주장을 드러내는 기법은 아주 세련되고 고급스럽습니다. 술자의 식견이 부족하면, 우화의 주제와 원래 술자가 의도한 주제가 맞지 않거나, 그 점을 사람들이 매끄럽게 이해하지 못해 해석이 아주 엉터리가 되어 버립니다. 즉, 술자의 역량이 받쳐 주어야 비로소 좋은 우화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애들이 보는 동화책도 요점은 우화와 같습니다. 동물들의 이야기, 혹은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깨달을 만한 교훈 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입니다. 동화책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아주 쉬운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주제 역시 기초적인 사회 도덕이라는 점에서 쉽다고 할 수 있지만, 장자의 생각은 사회 도덕처럼 쉽거나 간단한 것도 아니요, 주제가 간단하지 않은 만큼 우화의 난이도도 동화책 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朝三'입니다. 우리에게 '朝三暮四'로 더 유명한 얘기죠. 원래는 「제물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는데, 처음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니까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다 좋아했다는 말이죠. 사실 먹이는 전자나, 후자나 합해서 7개로, 본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들은 빡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했죠. 우리는 보통 이 이야기의 의미를 얄팍한 꾀로 다른 사람을 속이면 안 된다, 혹은 그런 것에 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고 배우고, 그리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자가 의도한 것은 다소 상이했습니다. 「제물론」 전반에서 장자는 '道'를 통해 만물이 하나로 통하는 요체가 있다는 설을 주장합니다. 서시 같은 미인과 문둥이 같은 추한 자가 서로 통하는 요체가 있다는 점은 아주 이상하지만, 실제로 「제물론」에서 장자가 예시로 드는 사례이기도 하죠. 그런데 장자는 본질적으로는 모두가 같은데, 드러난 현상 같은 것만 가지고 이것이 맞고, 저것은 틀리다, 이것은 이러하고, 저것은 저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朝三'은 그 점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장자가 만들어낸 우화인 것입니다.

 

조삼모사에 대한 '상식'과는 아주 차이가 크죠? 그 때문에 첫 편인 「소요유」에서 시작해서, 《내편》의 마지막 편인 「응제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가 느낀 우화의 의미가 글의 전체 맥락과 잘 어울리는지를 항상 고민하며 읽어야 합니다. 만약 '朝三'과 '朝三暮四'의 사례처럼, 글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부분적인 우화만 떼 와서는 이것이 장자의 뜻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 우화를 달리 해석해서 조삼모사처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 어떻겠냐만은, 철학의 범주에서는 그런 영역이 적어도 원전의 내용과는 상이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두 영역이 서로 섞이거나 혼동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글의 문맥과는 안 맞는 우화가 있다면, 극단적으로는 그 편이 위작이거나, 그 부분이 원전 외부에서 잘못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장자》를 읽어야 할까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치 철학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양서입니다. 다만 수양서로 보는 관점은, 적어도 지금은 도교적 색체가 많이 가미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수양서로써 《장자》를 생각한다면, '心齋'나 '坐忘' 같은 말들을 들고 와서는, 여기에다가 특별한 동작법, 섭식법 등을 붙여서 도를 깨닫는 방법이랍시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자》 원문에는 그렇게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心齋'는 「인간세」에 나옵니다. 안회가 위나라(衛)로 가려 하자, 공자가 안회를 저지하며 어떻게 처세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조언하면서 등장하죠. 심재의 본질은 마음을 '虛'하게 비우는 것입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한다면, '成心', '師心' 같은 것들을 내려 두는 것인데, 이것들은 사람의 편견, 자아, 선입견, 고집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장자는 마음을 비우랬지, 수은을 마시라거나, 벽을 보고 수련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재처럼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내편》 전체에 걸쳐 등장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도를 따르는 방법으로 장자가 제시한 것도 맞긴 합니다. 하지만 심재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인간세」에서 처세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단 한 번 뿐입니다. 심재가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장자》 그 자체가 심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심이나 사심을 내려 두고 마음을 비운다는 관념을 취하는 것은 좋지만, 심재라는 개념에 매달려서 이러이러하게 수행하고, 저러저러한 것들을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새로운 '成心'을 만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장자》 등이 수양서로써 해석되는 데는 역사적 맥락도 있습니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한나라가 섰을 때, 《도덕경》에 대한 하상공의 주를 시작으로, 자칭 '도사'들의 수련서로써 '도가' 서적들을 해석하는 풍조가 많이 퍼졌던 것 같습니다. 한편 《태평경》처럼 도교의 독자적인 서적도 생기기 시작했죠. 이런 경향은 위진 시대 초기에 왕필이나 곽상 같은 현학자들이 잠시 뒤집기도 했지만, 현학자들이 뒤집은 방향도 올바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진 도가 사상서들을 도교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현학자들 이후에도 수당 시대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일관되게 유지되었습니다. 가면 갈수록 종교적인 색체도 짙어졌습니다. 불교의 공격에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원치 않게 형이상학적인 이론들도 많아졌습니다. 그 와중에 명성, 명예 같은 것이 무상하고,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장자는 '南華仙'이라고 하여 드높은 신선이 되어 《삼국지연의》 같은 유명한 소설에도 등장해 버렸으니, 아마 지하에서 이를 갈며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도교적 수행법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 시기에 생겼고, 따라서 시간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장자가 의도했던 《장자》 원전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장자》를 수양서로 본다 하더라도 철학적으로 바르게 《장자》를 해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지, 무작정 도교적 수련법을 따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저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기한 것처럼 《장자》를 정치 사상서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순자》나 《맹자》, 《논어》, 《묵자》를 정치 사상서로 이해하는 것처럼요. 유가나 묵가는 항상 적극적인 정치, 혁신을 그 모토로 내세웠습니다. 묵자 본인도 아주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사람이었고, 공자를 비롯해 그 제자들도 표면적으로는 '보수적'이었지만,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정치의 혁신과 개혁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춘추전국시대 당대에는 정치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사상가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장자는 도가에 속하죠. 도가는 유묵에 비해 사상적 경향도 다소 달랐고, '학파'의 성격도 다소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묵가는 묵자를 시조로 해서 그 학풍, 사상이 대체로 일관되게 전해 내려 왔습니다. 유가 역시 그랬습니다. 시조인 공자에서부터 세세한 차이는 있더라도 대체로 일관되게 학풍과 사상이 쭉 이어졌죠.

 

하지만 도가는 달랐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家' 운운하는 백가에 대한 범주 체계는 사마천의 아버지인 사마담이 만든 것입니다. 사마담은 《논육가요지》라는 글을 써서 음양가, 도가, 유가, 명가, 법가, 묵가를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도학파, 즉 '道家'라는 말은 사마담 이전에는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노자, 양주, 장자 등이 모두 '道'를 운운하기 때문에 사마담은 이들을 도가라고 합쳐서 그 요지를 기술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묵의 시조가 분명한 데 비해, 도가의 시조는 노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노자가 아닐 수도 있는 겁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를 주장합니다. 판본에 따라 맥락상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통치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같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장자》에서 대체로 한 개인의 입장에서, 혹은 '피'통치자의 입장에서 자기 설을 기술합니다. 양자는 책이 전하지 않아 분명하진 않지만, 장자와 같은 계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노자와 장자는 모두 '道'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외에는 다소 상이해 보입니다. '道'조차도, 전체적인 관념은 비슷해도 의미를 따져 보면 다른 부분이 많을 겁니다. 따라서 《장자》를 우리가 정치 사상서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도덕경》 같은 다른 '도가' 서적들의 정치적 요점과 《장자》의 요점을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장자》는 《장자》이고, 《도덕경》은 《도덕경》이고, 《황로백서》는 《황로백서》인 것입니다. 유가 서적을 이해하듯, 《논어》가 이랬으니까 《순자》도 대체로 이럴 것이라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도가 외적 시각에서 보면 장자는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보입니다. 자유를 추구하지요. 다만 장자는 세상을 벗어나 사려는 은둔 거사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 안에서 도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장자는 자유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무정부주의나 자유지상주의 같은 부류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간혹 장자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잘못된 해석이라는 점을 저는 분명히 하고 싶군요.

 

 

 

하지만 애초에 《장자》, 특히 《내편》을 수양서로 이해하려 했든, 정치 철학서로 이해하려 했든, 《내편》에는 이 중 한 가지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둘 다 있습니다. 장자는 분명히 수양하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정치 이념에 대해서도 기술했습니다. 동양 철학에서 수양과 정치는 따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 이렇습니다. 인간이 덜 된 놈이 정치해 봤자 평균 이상의 결과가 나오겠냐는 말입니다. 위정자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싶어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바로잡고, 그 이후에 세상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자기조차 바로잡지 못했는데, 남을 바로잡을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유학자들도 '修身'하고, 그 이후에 '平天下'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장자도 구조는 똑같습니다. 다만 장자의 경우에는 '道'를 깨우치는 것이 그 내용일 뿐입니다.

 

「인간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天下有道/聖人成焉//天下無道/聖人生焉' 여기서 '成'은 '治'로 봅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겠으나, 천하에 도가 없으니 성인조차 세상을 다스리기는커녕 숨 죽이고 살아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당대 정치 상황에 대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장자의 생각이 드러난 말은 그 어디에도 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양'의 측면에서 도를 이루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있었지만, 장자식으로 '정치'를 완성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선진 도가와 묵가, 그리고 유가는 정치적 입지를 위해 춘추전국시대 동안 경쟁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의 주도권을 가져간 것은 법가와 결합한 유가적 통치였습니다. 중국이 통일된 이후, 선진 도가 사상은 온전히 보존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장자의 '정치 사상'적 학풍도 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제대로 전해지지는 못했습니다. 학맥이 온전히 이어졌는지도 불분명하고요. 그 유명한 《도덕경》조차도 판본에 따라 내용이 상이한 경우가 있으니, 말할 것도 없겠죠. 하지만 정황을 볼 때 다행히도 《장자》는 문자로써는 온전하게 전해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나라 때는 도교도들이 깽판을 치고 다녔고, 위진 시대 이후로는 현학자들이 노자와 장자의 이름을 빌려서 망상을 폈으니, 제대로 글을 해석하지 못해서 아주 잘못된 선례를 후대에 남기고 말았습니다.

 

다시 장자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天下有道/聖人成焉//天下無道/聖人生焉'은 도가적 입장에서 정치를 펼 상황이 아닐 때, 시국이 여의치 않을 때는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양생주」 첫 머리에서 장자는 선을 행하되 명성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악을 행하더라도 벌을 받지는 않게 하여, 자신을 보존하고, 삶을 온전히 지키며, 부모를 봉양하고, 천수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야말로 장자의 '소박'한 이념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도를 깨우치며 조용히 살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날아 올라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소박하게 견디고, 필요하다면 호랑이처럼 덮쳐야 합니다. 장자의 수양론, 정치론과 별개로, 장자와 그 당시 도가 사상가들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동양철학서를 읽을 때, '철학서'를 읽는다고 접근하기 보다는, 그냥 《좋은생각》처럼 '좋은 글', '교훈집'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국가》나 《대화》, 《리바이어던》, 《군주론》을 읽을 때 단순히 좋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철학서로써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장자》를 비롯한 동양철학서도 제대로 보려면 분석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물론 화장실 한 켠에서 탐독하다가 '고까운 교훈' 하나를 얻을 수야 있겠지만, 그건 개인적인 경험일 뿐, 학문적 자세로서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장자》를 읽어 나가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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