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2 - 수신 - 2 - 예를 따르면 만사가 두루두루 잘 풀린다

2021. 10. 5. 07:52순자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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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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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5월 7일 12시 2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98

 

순자 - 2 - 수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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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00

 

<하단 주석> 순자 - 2 - 수신 - 2 - 예를 따르면 만사가 두루두루 잘 풀린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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扁善之度,

以治氣養生則後彭祖,以修身自名則配堯、禹。宜於時通,利以處窮,禮信是也。

凡用血氣、志意、知慮,由禮則治通,不由禮則勃亂提僈;食飲、衣服、居處、動静,由禮則和節,不由禮則觸陷生疾;容貌、態度、進退、趨行,由禮則雅,不由禮則夷固僻違,庸衆而野。故人無禮則不生,事無禮則不成,國家無禮則不寧。

詩曰:

禮儀卒度,笑語卒獲。

此之謂也。

 

 

[만사가] 두루두루 잘 풀릴 만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扁善之度, ◈ 이 문단은 《韓詩外傳》에도 인용되어 있다. 《韓詩外傳》의 내용과 대조하며 설명해 보겠다. ◈ 《韓詩外傳》에 이 句는 君子有辯善之度라고 되어 있다. ◈ 扁은 부사어로, 아마 ‘두루두루’라는 말일 것이다. 徧, 遍과 같다. 善을 한정한다. 《韓詩外傳》에는 辯이라고 되어 있다. 이 辯에 대해서는 楊倞, 盧文弨, 郝懿行, 王念孫이 각자 풀이해 두었고, 또 王先謙이 언급하였듯, 顧炎武 역시 논증해 두었다. 扁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楊倞은 辨, ‘변별하다’라고 풀이하였다. 盧文弨는 平, ‘고르다’라고 풀이하였다. 郝懿行은 平, ‘고르다’나 治, ‘다스리다’라고 풀이하였다. 王念孫은 徧, ‘두루두루’라고 하였다. 이어지는 내용을 살펴 보면, 荀子는 禮에 근거할 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禮에 근거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扁은 王念孫처럼 ‘두루두루’라고 해석해야 가장 타당하겠다. 의미를 조금 확장해 보면, 平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平은 ‘고르다’는 말이므로, 곧 여러 가지를 ‘고르게’ 잘하다라고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루두루’ 잘하다는 말이나, ‘고르게’ 잘하다는 말이나, 차이는 크게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둘 중의 하나를 고른다면 ‘두루두루’가 본문의 의미에 더 합치될 것 같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扁/讀爲辨//韓詩外傳曰/君子有辨善之度, ‘扁은 辨으로 본다. 《韓詩外傳》에 “君子에게는 좋은 것을 변별하는 방법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韓詩外傳》에는 君子有辯善之度라고 되어 있는데, 辯은 辨과 통용되는 글자다. 盧文弨는 案/扁/外傳作辯/則扁當訓平//尙書平章平秩/古作辯章辯秩//此謂隆禮之人/有平善之度/不當作辨別解, ‘살펴 보면 扁은 《外傳》에는 辯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한 즉, 扁은 마땅히 平이라고 풀이해야 한다. 《尙書》에 나오는 平章, 平秩이라는 말은 엣날에는 辯章, 辯秩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 글은 禮를 隆하는 사람에게는 고르게 잘하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辯을 변별이라고 풀이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外傳》은 《韓詩外傳》이다. 平章과 平秩은 《書》 「虞書 堯典」에 나오는 말이다. 郝懿行은 扁/當爲辯//韓詩外傳一作辯/是也//辯訓平也治也//楊讀爲辨而訓別/非//荀書多以辨爲辯, ‘扁은 마당히 辯이 되어야 한다. 《韓詩外傳》에 辯이라고 되어 있기도 한데, 그 점과 같다. 辯은 平이나 治로 풀이된다. 楊倞은 辯을 辨이라고 보고, 변별하다는 의미로 풀이했는데, 틀렸다. 荀子의 글에는 辨을 辯이라고 쓴 경우가 많다’라고 하였다. 마지막의 荀書多以辨爲辯, ‘荀子의 글에는 辨을 辯이라고 쓴 경우가 많다’라는 말은, 아마 이러하기 때문에 楊倞이 辯을 辨으로 오해했다는 의미로 사용된 듯하다. 이처럼 楊倞, 盧文弨, 郝懿行 모두 《韓詩外傳》에 근거하여 풀이하고 있으나, 그 해석은 다르다. 王念孫 또한 《韓詩外傳》에 근거하고 있으나, 세 사람과는 의견이 또 같지 않다. 王念孫은 扁/讀爲徧//韓詩外傳作辯/亦古徧字也[說見日知錄]//徧善者/無所往而不善也//君子依於禮則無往而不善//故曰/徧善之度///下文以治氣養生六句/正所謂徧善之度也//楊讀扁爲辨而訓爲辨別/則與之度二字不貫//盧讀扁善爲平善/亦非下六句意, ‘扁은 徧으로 본다. 《韓詩外傳》에는 辯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辯 역시 옛 徧이다.[王先謙의 부연 : 이에 대한 설명은 《日知錄》에 나온다.] 徧善이라는 말은,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뜻이니, 君子가 禮에 근거하면,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徧하게 잘 풀릴 방법”이라고 한 것이다. 다음에 있는 治氣養生에 대한 여섯 句들이 바로 徧善之度가 뜻하는 바이다. 楊倞은 扁을 辨이라고 읽고, 변별하다라고 풀이했는데, 그러면 之度 두 글자와 내용이 합치되지 않는다. 盧文弨는 扁善을 平善이라고 풀이했는데, 마찬가지로 아래에 이어지는 여섯 句들의 내용과 맞지 않다’라고 하였다. 《日知錄》은 顧炎武의 저술이다. 辯에 대한 논증은 《日知錄》 「辯」에 나오는데, 다소 길지만 참고차 인용해 본다. 《日知錄》 「辯」에는 鄉飲酒禮/鄉射禮/其於旅酬/皆言辯//注云/辯衆賓之在下者///此辯非辨察之辨//古字辯與徧通//經文言辯者非一//燕禮注/今文辯皆作徧///是也//曲禮/主人延客食胾/然後辯殽///內則/子師辯告諸婦諸母名///宰辯告諸舅名///玉藻/先飯辯嘗羞/飲而俟///樂記/其治辯者其禮具[注辯徧也]///左傳定公八年/子言辯舍爵於季氏之廟而出[注辯猶周徧也]///史記禮書/瑞應辯至, ‘「鄉飲酒禮」와 「鄉射禮」에서 旅酬에 대한 글에는 모두 辯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주석에서는 “빈객들이 아래에 있는 경우 辯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辯은 변별한다고 할 때의 辨이라는 말이 아니다. 옛 글자에서, 辯과 徧은 통용되었다. 經文에서 辯을 이런 식으로 사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燕禮」의 주석에, “지금 글에는 辯이 모두 徧이라고 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있는데, 바로 이를 이른다. 「曲禮」에 “주인이 객을 이끌어서 胾를 먹이고, 그런 뒤에 殽를 辯한다”라는 말이 있고, 「內則」에는 “아이의 스승은 諸婦와 諸母에게 이름을 辯하게 告한다”라는 말이 있고, 또 “宰는 諸舅에게 이름을 辯하게 告한다”라는 말이 있다. 「玉藻」에는 “먼저 밥을 먹고, 羞를 辯하게 嘗하며, 마시고 기다린다”라는 말이 있다. 「樂記」에는 “其 治가 辯한 까닭은 其 禮가 갖춰졌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顧炎武의 부연 : 주석에서는 “辯은 徧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左傳》 「定公」 8년에 “子言은 季氏의 廟에 辯하게 舍爵하고서 나왔다”[顧炎武의 부연 : 주석에서는 “辯은 周徧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史記》 「禮書」에는 “瑞應이 辨하게 至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鄉飲酒禮」와 「鄉射禮」는 모두 《儀禮》의 편이다. 주석은 아마 鄭玄의 말일 것이다. 辯衆賓之在下者라는 주석은 「鄉飲酒禮」의 辯/卒受者以觶降/坐奠於篚, ‘辯하고, 마지막으로 받은 자가 觶를 내려서 篚에 坐奠한다’라는 말에 달려 있다. 「燕禮」도 《儀禮》의 편이다. 今文辯皆作徧은 「燕禮」 중 大夫辯受酬/如受賔酬之禮/不祭//卒受者以虛觶降尊於篚, ‘大夫가 辯하고 受酬하는데, 빈객이 酬할 때의 禮와 같이 하고, 祭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받은 자가 빈 觶를 내려서 篚에 尊한다’라는 말에 달려 있다. 「曲禮」, 「內則」, 「玉藻」, 「樂記」는 모두 《禮記》의 편들이다. 「曲禮」는 「曲禮 上」을 이른다. 「曲禮」 인용문의 辯에 대해, 孔穎達은 辯/匝也, ‘辯은 두루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內則」에는 宰辯告諸舅名이 아니라, 宰辯告諸男名이라고 되어 있다. 「內則」 인용문의 辯에 대해, 陸德明은 辯音遍/下同, ‘辯은 遍이라고 읽는다. 아래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遍은 ‘두루’라는 뜻이다. 孔穎達 역시 遍, ‘두루’라고 풀이하였다. 「玉藻」 인용문의 辯에 대해, 陸德明은 音遍, ‘遍이라고 읽는다’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徧, ‘두루’라고 풀이하였다. 「樂記」의 辯에 대해, 顧炎武가 인용해 두었듯 鄭玄은 辯/徧也, ‘辯은 徧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辯/遍也, ‘辯은 遍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經典釋文》에는 辯이 辨으로 인용되어 있는데, 陸德明은 辨/本又作辯/舊音遍//按/廣雅/辨/徧也///薄莧反, ‘辨은 판본에 따라 辯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옛날에는 遍이라고 읽었다. 살펴 보건대, 《廣雅》에는 “辨은 徧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薄과 莧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廣雅》에는 周/帀/辨/接/選/延/徧也, ‘周, 帀, 辨, 接, 選, 延은 徧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 陸德明은 鄭玄의 주석에 있는 徧에 대해, 徧音遍, ‘徧은 遍이라고 읽는다’라고 하였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春秋左氏傳》 주석은 杜預의 주석을 이른다. 《春秋左氏傳》 인용문의 辯은 판본에 따라 辨이라고 되어 있기도 한 것 같다. 杜預의 주석에도 辯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고, 辨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周徧은 ‘두루’라는 말이다. 《經典釋文》에는 辨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陸德明은 辨舍/上音遍/注徧同, ‘辨舍에 대해, 앞 글자는 遍이라고 읽는다. 杜預의 주석에 있는 徧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지금 《史記》에는 瑞應辨至라고 되어 있다. 판본에 따라 辯이라고 되어 있기도 한 모양이다. 張守節은 辨音遍, ‘辨은 遍이라고 읽는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辯, 辨이 옛날에 徧, ‘두루’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治氣養生에 대한 여섯 句란, 아마 以治氣養生부터 不由禮則夷固僻違庸眾而野를 이를 것이다. 以治氣養生/則後彭祖가 하나, 以脩身自名/則配堯禹가 둘, 宜於時通/利以處窮/禮信是也가 셋, 凡用血氣志意知慮/由禮則治通/不由禮則勃亂提이 넷, 食飲衣服居處動靜/由禮則和節/不由禮則觸陷生疾이 다섯, 容貌態度進退趨行/由禮則雅/不由禮則夷固僻違庸眾而野가 여섯이다. 한편 宋基采는 扁이 秦漢 시대 문헌에 徧, 辯, 辨과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다고 하고, 본문의 扁을 ‘두루’라고 번역하였다. 宋基采의 견해는 顧炎武와 王念孫이 논증한 바와 같다. ◈ 善은 용언으로, ‘잘하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잘 되다’, ‘잘 풀리다’처럼 해석된다. ◈ 之는 관형격 조사다. ‘~할’, ‘~한’이라고 해석된다. ◈ 度는 체언으로, ‘방법’이다. 楊倞은 法이라고 풀이했는데, 法 역시 ‘방법’을 이른다. ◈◈ 楊倞은 言君子有辨別善之法/卽謂禮也, ‘君子에게는 좋은 것을 변별하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곧, 禮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扁善之度, 즉 ‘두루두루 잘 풀릴 방법’이란, 곧 禮法을 따르는 일을 이른다. 「勸學」에서 이미 여러 차례 강조되었듯, 荀子의 이론적 핵심에는 언제나 禮法 혹은 《禮》가 있다. ◈◈ 蜀虎又案 : 宋基采가 지적하였듯, 이 扁善之度라는 말은 일종의 소제목 역할을 하고 있다. 즉, 扁善之度는 ‘扁善한 度가 있다’ 같은 문장이 아니라, ‘扁善할 度’처럼 체언 형태의 문단 제목이라는 뜻이다. 나는 제목으로 번역하지 않고, 문장으로 풀어서 글이 이어지도록 번역하였다. 이 외에도 이 편 뒷부분에 治氣養心之術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소제목으로 사용되었다.)

 

이 방법을 가지고 기운을 다스리고 품성을 바로잡으면 [그 수명은] 팽조를 뒷따르게 될 것이요, 이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단련하면 [그 명성은] 요, 우에 필적하게 될 것이다.(以治氣養生則後彭祖/以修身自名則配堯禹, ◈ 이 節은 《韓詩外傳》에 以治氣養性則身後彭祖/修身自強則名配堯禹라고 되어 있다. ◈ 以治氣養生의 以는 ‘~를 가지고’라고 해석된다. 以修身自名의 以도 그렇다. 扁善之度를 받는다. 즉, 以治氣養生은 ‘扁善之度를 가지고 治氣하고 養生한다’라는 말이고, 以修身自名은 ‘扁善之度를 가지고 修身하고 自名한다’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이 방법을 가지고’, ‘이 방법을 사용하여’처럼 의역하였다. 《韓詩外傳》에는 以治氣養生의 以는 같지만, 以修身自名의 以는 빠져 있다. ◈ 治는 용언으로, ‘다스리다’, ‘안정시키다’, ‘단속하다’는 말이다. 氣를 받는다. 기운을 ‘다스리다’는 말이다. ◈ 氣는 체언으로, ‘기운’, ‘기’다. ◈ 養은 용언이다. 본래 ‘기르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다스리다’, ‘수양하다’, ‘바로잡다’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生을 받는다. 품성을 ‘수양하다’, 품성을 ‘바로잡다’는 말이다. ◈ 生은 아마 性의 가차자인 듯하다. 체언으로, ‘품성’이다. 《韓詩外傳》에는 生이 性으로 되어 있다. 「勸學」에 君子生非異也, ‘君子의 生은 異하지 않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글에서 生은 性, 즉 ‘품성’이라고 풀이되었었다. 고대에는 生이 性의 가차자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 「勸學」의 글은 《大戴禮記》 「勸學」에는 아예 性으로 바뀌어 있다. 또, 「勸學」의 生에 대해 王念孫은 生/讀爲性//大戴記作性, ‘生은 性이라고 읽는다. 《大戴記》에는 性이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大戴記》는 《大戴禮記》다. 또, 《書》 「周書 君陳」에 惟民生厚/因物有遷, ‘백성들은 태어나면서 돈후한데, 物 때문에 바뀐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孔安國은 言人自然之性敦厚/因所見所習之物有遷變之道, ‘사람이 타고난 性은 돈후한데, 보고, 겪는 物 때문에 바뀌게 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蔡沈은 言斯民之生/其性本厚/而所以澆薄者/以誘於習俗/而爲物所遷耳, ‘백성들이 태어났을 때, 그 性은 본래 돈후하지만, 야박하게 변하는 까닭은, 세상의 습속에 꾀이기 때문이니, 物 때문에 바뀌었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이 부분의 生 역시 본문의 生처럼 性과 같이 해석된다. ◈ 則은 ‘그러면’, ‘~하면’이다. ◈ 後는 용언으로, ‘뒷서다’, ‘뒷따르다’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의 행적을 따르다’, ‘~의 자취를 따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彭祖를 받는다. 彭祖를 ‘뒷따르다’, 彭祖‘처럼 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韓詩外傳》에는 後 앞에 身이 있어, 後彭祖가 아니라 身後彭祖라고 되어 있다. 身後彭祖는 ‘身은 彭祖를 뒷따를 것이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身은 ‘수명’을 이른다. 즉, 彭祖처럼 오래 살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의미가 《荀子》와 모순되지 않고, 또 문맥과도 잘 합치된다. 《論語》 「雍也」에 非敢後也/馬不進也, ‘감히 後하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나아가지 않았을 따름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後는 ‘뒤에 서다’, ‘뒤에서 따르다’, ‘뒷따르다’는 말이다. 이 말은 大夫인 孟之反이 성으로 퇴각할 때, 병사들이 후미에 있으면서 가장 마지막에 성으로 들어 왔다는 뜻이다. ◈ 彭祖는 장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莊子》 「逍遙遊」에 대한 주석에 彭祖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므로, 이를 인용해 두겠다. 「逍遙遊」에는 而彭祖乃今以久特聞/眾人匹之/不亦悲乎, ‘그런데 요즘에는 彭祖가 장수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며, 뭇사람들도 彭祖에 비기려 드니, 역시 한심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成玄英은 彭祖者/姓籛/名鏗/帝顓頊之玄孫也//善養性/能調鼎/進雉羹於堯/堯封於彭城/其道可祖/故謂之彭祖//歷夏經殷至周/年八百歲矣, '彭祖의 姓은 籛이고, 이름은 鏗이다. 제왕이었던 顓頊의 玄孫이다. 자신의 性을 기르기를 잘하고, 정사를 돌볼 만하여, 堯에게 꿩과 국을 진상하니, 堯가 彭祖를 彭城에 봉하였고, 또 그 道가 시조가 될 만하였기에, 그래서 彭祖라고 불렀다. 夏나라, 殷나라를 지나고 周나라에 이르기까지, 800년을 살았다'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名鏗//堯臣/封於彭城//歷虞夏至商/年七百歲/故以久壽見聞///世本云/姓籛/名鏗/在商爲守藏史/在周爲柱下史/年八百歲///籛/音翦//一云/即老子也///崔云/堯臣/仕殷世/其人甫壽七百年///王逸注楚辭天問云/彭鏗即彭祖/事帝堯//彭祖至七百歲/猶曰悔不壽/恨枕高而唾遠云//帝嚳之玄孫, '彭祖에 대해 李頤는 "이름은 鏗이다. 堯의 신하로, 彭城에 봉분 받았다. 虞夏를 지나 商나라에 이르기까지, 700년을 살았다. 따라서 오래 산 것으로 유명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世本》에서는 "姓은 籛이고, 이름은 鏗이다. 商나라 때는 守藏史가 되었고, 周나라 때는 柱下史가 되었다. 나이는 800살이었다"라고 하였다. 籛의 音은 翦이다. 어딘가에서는 "곧, 老子다"라고 하였다. 崔譔은 "堯의 신하다. 殷나라 때 출사하였으니, 700년을 살았다"라고 하였다. 《楚辭》의 「天問」에 대한 王逸의 注에서는 "彭鏗은 곧 彭祖다. 帝堯를 섬겼다. 彭祖는 700살이나 살았는데, 오히려 '수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안일했던 것을 한탄한다'라고 하면서 길게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帝嚳의 玄孫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世本》은 秦나라 때 편찬했다는 사서다. 지금은 망실되었다. 守藏史는 아마 도서관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보인다. 또, 郭慶藩은 神仙傳曰/彭祖諱鏗/帝顓頊之玄孫/至殷末年/七百六十七歲而不衰老/遂往流沙之西/非壽終也///今案史記楚世家/顓頊生稱/稱生卷章/卷章生重黎//重黎爲帝嚳所殺/以其弟吳回後重黎爲火正//吳回生陸終/陸終生彭祖//以世系推之/彭祖乃顓頊玄孫陸終之子/禮所謂來孫也//成疏緣神仙傳作顓頊之玄孫/誤//釋文引王逸楚辭章句/以爲帝嚳之玄孫/亦非[帝嚳爲顓頊之姪/名夋//彭祖乃顓頊子稱之玄孫/帝嚳之姪玄孫也], '《神仙傳》에서는 "彭祖의 諱는 鏗이다. 帝顓頊의 玄孫이다. 殷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767년 동안 노쇠해지지 않았으나, 마침내 서쪽으로 사막으로 갔으니, 수명을 마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 《史記》의 「楚世家」를 살펴 보건대, 顓頊은 稱을 낳았고, 稱은 卷章을 낳았으며, 卷章은 重黎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重黎는 帝嚳에게 죽었기 때문에, 그 아우인 吳回에게 重黎의 뒤를 잇게 하여 火正으로 삼았다. 吳回는 陸終을 낳았고, 陸終은 彭祖를 낳았다. 世系를 따라가 보면, 彭祖는 顓頊의 玄孫인 陸終의 아들이다. 그러니 《禮》에서 소위 來孫이라고 한 것이 되어야 한다. 成玄英의 《疏》에서는 《神仙傳》에 근거하여 顓頊의 玄孫이라고 하였으나 틀렸다. 《釋文》에서는 王逸의 《楚辭章句》를 인용해서 彭祖를 帝嚳의 玄孫이라고 하였으나, 또한 틀렸다.[郭慶藩의 부연 : 帝嚳은 顓頊의 조카다. 이름은 夋이다. 彭祖는 도리어 顓頊의 아들인 稱의 玄孫이요, 帝嚳의 조카의 玄孫이 된다.]'라고 하였다. 《神仙傳》은 東晉의 葛洪이 지은 책이다. 《禮》는 《禮記》다. 來孫에 대한 이야기는 「祭法」에 나온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楚辭章句》는 王逸이 《楚辭》를 정리하고, 주석을 달아 펴낸 책이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彭祖/堯臣/名鏘/封於彭城//經虞夏至商/壽七百歲也, ‘彭祖는 堯의 신하다. 이름은 鏘이다. 彭城을 봉분 받았다. 虞나라, 夏나라를 거쳐 商나라에 이르기까지 700년을 살았다’라고 하였다. 虞는 아마 舜을 이를 것이다. 舜을 虞舜, 有虞氏라고 하기도 한다. ◈ 修는 용언으로, ‘수양하다’, ‘바로잡다’, ‘단속하다’는 말이다. 身을 받는다. ◈ 身은 체언으로, ‘자신’이다. ◈ 自는 체언으로, ‘자신’이다. 名의 목적어다. 自가 사용될 때는 어순이 도치된다. 즉, 自名은 사실 名自가 되어야 할 것이다. 自를 부사어로 보고, ‘스스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 治氣, 養生, 修身이 용언과 목적어로 구성된 데 비해, 自名만 부사어와 용언으로 구성된 표현이 되어, 대구가 안 맞다. ◈ 名은 용언으로, 아마 ‘키우다’, ‘크게 만들다’, ‘성장시키다’는 말일 것이다. 名은 고대에 大와 통용되었다. 《韓詩外傳》에는 自名이 自強으로 되어 있어, 자신을 ‘強하다’, 즉 자신을 ‘굳세게 하다’, 자신을 ‘단련하다’라고 풀이된다. 이 強 역시 ‘키우다’는 의미와 통한다. 그러면 名이 大와 통용되었다는 점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莊子》 「人間世」에 三圍四圍/求高名之麗者斬之, ‘세 아름이나 네 아름 되는 것들은, 高하고 名한 마룻대를 구하는 자들이 베어 버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名에 대해 郭慶藩은 名/大也//謂求高大之麗者/用三圍四圍之木也[謂大爲名/說見天下篇名山三百下], '名은 크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높고 커다란 麗를 구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세네 아름이나 되는 나무를 쓰는 것이다.[郭慶藩의 부연 : 名이 大를 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天下」의 名山三百에 대한 주석을 보라]'라고 하였다. 《雜篇》 「天下」에 名山三百/支川三千/小者無數, '名山이 300개요, 支川이 3천 개다. 작은 것은 셀 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名과 支는 小와 대구를 이루는 글자로, 문맥상 大, '크다'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郭慶藩은 名川/大川也//禮禮器///因名山升中於天///鄭注/名/猶大也//高注淮南墬形篇亦曰//名山/大山也//王制言名山大川/月令言大山名源/其義一也//魯語取名魚/韋注/名魚/大魚也//秦策///賂之一名都///高注/名/大也[魏策/大都數百/名都數十也]//此皆訓名爲大之證, '名川은 큰 강이라는 뜻이다. 《禮》 「禮器」에 "名山에 의지하여 하늘에 오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名은 大와 같다"라고 주석하였으며, 《淮南》 「墬形」에 대한 高誘의 注에서도 또한 命山을 大山라고 하였다. 「王制」에 名山大川이라는 말이 있고, 「月令」에는 大山名源이라는 말이 있으니, 그 뜻은 모두 같다. 「魯語」에 "名魚를 잡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名魚를 大魚라고 주석하였다. 「秦策」에는 "名都 하나를 뇌물로 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名을 大라고 주석하였다. [郭慶藩의 부연 : 「魏策」에는 "大都는 수 백 개요, 名都는 십수 개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 모두가 名이 大라는 뜻임을 증명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禮》는 《禮記》다. 지금 「禮器」에는 因名山升中於天이 아니라 因名山升中于天으로 되어 있다. 의미는 같다. 《淮南》 「墬形」은 《淮南子》 「墬形訓」을 이른다. 「墬形訓」에 대한 高誘의 注는 禹乃以息土塡洪水以爲名山, '禹는 이에 息土를 가지고 洪水를 메워서 名山을 만들었다'라는 구절에 대한 注를 이른다. 「王制」와 「月令」은 《禮記》의 편이다. 「月令」에는 大山名源은 없고, 大川名源이라는 말이 있다. 「魯語」는 《國語》의 편이다. 「秦策」과 「魏策」은 《戰國策》의 편이다. 「魏策」 인용문의 경우, 본문이 大都數百/名都數十가 아니라 大縣數百/名都數十이라고 되어 있다. 郭慶藩이 잘못 옮긴 모양이다. 만약, 名을 名 그대로 해석하려 한다면, ‘공적을 세우다’, 혹은 ‘유명해지다’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그러면 의미야 끼워 맞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韓詩外傳》의 強과 정합되지 못하게 된다. ◈ 配는 용언으로, ‘짝을 이루다’, ‘상대하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필적하다’라고 보면 좋겠다. 堯禹를 받는다. 즉, 堯, 禹와 ‘필적하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韓詩外傳》에는 配 앞에 名이 더 있어서, 名配라고 되어 있다. 즉, 名配堯禹이니, 이는 ‘명성이 堯, 禹와 필적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韓詩外傳》 내용은, 그 의미가 《荀子》와 모순되지 않고, 또 문맥과도 잘 합치된다. 王引之 역시 《韓詩外傳》을 따랐다. 王引之는 以修身自名/文義未安/當有脫誤//楊云/以修身自爲名號///則所見本已同今本//韓詩外傳作以治氣養性[與生同]/則身後彭祖/以修身自強[今本脫以字]/則名配堯禹///於義爲長//王霸篇云/名配堯禹///又云/名配禹舜, ‘以修身自名이라는 말의 의미가 완전하지 않다. 빠지거나 잘못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楊倞은 “자신을 바로잡고 명성을 쌓는다면”이라고 하였으니, 楊倞이 보았던 판본은 이미 지금 판본과 같았을 것이다. 《韓詩外傳》에는 이 글이 “이 방법을 가지고 기운을 다스리고 품성을 바로잡으면[王先謙의 부연 : 性은 生과 같다.], 수명은 彭祖를 뒷따를 것이요, 이 방법을 가지고 자신을 수양하고 단련하면[王先謙의 부연 : 지금 판본에는 以가 빠져 있다.], 名은 堯, 禹와 필적하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의미가 낫다. 「王霸」에는 “名이 堯, 禹와 필적한다”라는 말이 있고, 또 “名이 禹, 舜과 필적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堯는 전설 속의 제왕이다. 《書》 「虞書 堯典」, 《史記》 「五帝本紀」 등에 행적이 간략하게 전한다. ◈ 禹는 夏나라의 시조다. 《史記》 「五帝本紀」, 「夏本紀」 등에 행적이 전한다. ◈◈ 楊倞은 言若用禮治氣養生/壽則不及於彭祖/若以修身自爲名號/則壽配堯禹不朽矣//言禮雖不能治氣養生/而長於修身自名/以此辨之/則善可知也, ‘만약 禮를 사용하여서 기운을 다스리고, 품성을 기른다면, 수명이 彭祖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을 바로잡고 명성을 쌓는다면, 壽가 堯, 禹와 필적하여 퇴색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禮가 비록 기운을 다스리거나 품성을 바로잡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수양하고 자기 명성을 쌓을 때에는 禮를 가지고 그 방법들을 변별한다면,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감안할 때, 楊倞의 말은 다소 이상하다. 본문에서는 扁善之度를 가지고 治氣養生하면 後彭祖한다고 하였고, 또 修身自名하면 配堯禹한다고 하였는데, 楊倞은 오히려 扁善之度를 가지고 治氣養生하더라도 後彭祖할 수 없지만, 修身自名하면 配堯禹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앞의 句인 以治氣養生則後彭祖의 내용과는 楊倞의 주석이 배치되고, 뒤의 句인 以修身自名則配堯禹와는 楊倞의 주석이 합치된다. 아마 楊倞이 보았던 《荀子》 내용이 지금 《荀子》 내용과는 달랐던 것 같다. 楊倞의 주석에 근거해 볼 때, 楊倞이 보았던 《荀子》에는 以治氣養生則後彭祖가 가능하지 않다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앞 句와 뒤의 句가 정확히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나중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 때문에 본문을 고친 것 같다. 그러면 楊倞의 주석을 좇아서 본문 내용을 고쳐야 할까. 내 생각에는 그래선 안 될 것 같다. 楊倞은 唐代 사람이고, 《韓詩外傳》을 지은 韓嬰은 西漢 文帝 때 사람이다. 이 부분에서 인용한 《韓詩外傳》 내용은 《荀子》에서 발췌한 말일 텐데, 《韓詩外傳》 내용은 지금 《荀子》 본문과 정합되고, 楊倞의 주석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즉, 《韓詩外傳》이 훨씬 오래 전 글이므로, 楊倞과 《韓詩外傳》 중 하나를 좇아야 한다면 《韓詩外傳》을 좇아야 할 것인데, 《韓詩外傳》 내용은 지금 《荀子》와 정합되므로, 楊倞을 따를 이유가 없다. ◈◈ 盧文弨는 後彭祖/則得年亦永矣/然壽身之益尙小/壽世之益更大也, ‘彭祖를 뒷따른다면, 수명도 길어질 것이다. 그러나 수명이 길어지는 이점이 오히려 중요한 것이 아니요, 세상에 유명해지는 이점이 도리어 중요하다 하겠다’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後彭祖라는 말은, 彭祖처럼 수명이 길어진다는 데 초점이 있기 보다는, 彭祖와 같은 명성을 얻는 데 초점이 있다고 풀이하였다. ◈◈ 蜀虎案 : 彭祖 만큼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다. 어떻게 사람이 7, 800년을 살겠는가. 禮를 따르면 남에게 맞아 죽을 일이 없으므로 彭祖처럼 오래 산다고 한 것이요, 禮를 따르면 올바르다고 세상 사람들이 숭상할 것이므로 堯나 禹처럼 명망을 얻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 방법은] 처지가 순조로울 때에도 적합하며, 처지가 곤란할 때에도 유용하다. 예법이야말로 진정 [만사가] 두루두루 잘 풀릴 만한 방법이다.(宜於時通/利以處窮/禮信是也, ◈ 이 節은 《韓詩外傳》에 宜於時則達/厄於窮則處/信禮者也라고 되어 있다. 盧文弨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盧文弨는 案/韓詩外傳作/宜於時則達/厄於窮則處, ‘살펴 보면, 《韓詩外傳》에는 宜於時則達/厄於窮則處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宜는 용언으로, ‘마땅하다’, ‘타당하다’, ‘적합하다’, ‘적당하다’는 말이다. ◈ 宜於時通의 於는 ‘~에’, ‘~한 상황에’라는 말이다. 時通을 받는다. ◈ 時는 處와 같다. 체언으로, ‘처지’라는 말이다. 時가 處와 같다는 점은 王引之가 설명해 두었다. 王引之는 時/亦處也//言旣宜於處通/而又利以處窮也//莊子逍遙遊篇/猶時女也///司馬彪曰/時女/猶處女也///是時與處同義//大雅緜篇/曰止曰時///猶言爰居爰處耳[說見經義述聞]//韓詩外傳/作宜於時則達/厄於窮則處///未達時字之義而增改其文/蓋失之矣, ‘時 역시 處라는 뜻이다. 이 방법이 본래 처지가 원활할 때에도 적합하고, 또 처지가 궁벽할 때에도 이롭다는 뜻이다. 《莊子》 「逍遙遊」에 猶時女也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司馬彪는 “時女는 處女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時와 處는 의미가 같다. 「大雅」의 「緜」에 曰止曰時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爰居爰處라는 말과 같다.[王先謙의 부연 : 이에 대한 논증은 《經義述聞》에 있다.] 《韓詩外傳》에는 作宜於時則達/厄於窮則處라고 되어 있는데, 時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문을 늘여서 고친 것이다. 아마 틀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逍遙遊」에 나오는 猶時女也를 나의 경우 ‘오히려 너에게 들어맞는다’라고 번역하였는데, 猶를 ‘같다’라는 용언으로 보고 時女를 받는다고 하면, ‘時女와 같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후자처럼 번역하였을 경우를 이른다. 司馬彪의 주석은 陸德明의 《經典釋文》 안에 포함되어 있다. 陸德明은 司馬云/猶處女也///向云/時女虛靜柔順/和而不喧/未嘗求人而爲人所求也, '司馬彪는 "處女와 같다"라고 하였고, 向秀는 "時女는 虛靜하고 유순하여, 온화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司馬彪 외에도 成玄英은 少年處室之女也, '나이가 어려서 집에 있는 여자다'라고 하였으니, 成玄英 역시 處女라고 풀이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王引之는 이를 근거로 時를 處와 같다고 추측한 것이다. 나는 물론 「逍遙遊」의 時女를 處女라고 풀이하지 않았고, 또 郭慶藩과 王先謙은 時女의 時를 是라고 풀이하고 있어, 時女가 處女라는 점이 분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時女가 處女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時가 고대에 處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는 있고, 또 이렇게 풀이하면 《荀子》 본문의 문맥과 잘 합치되기 때문에, 「逍遙遊」라는 사례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時가 處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緜」은 《詩》 「大雅 文王之什」에 속해 있다. 《經義述聞》은 王引之가 자신과 王念孫의 설들을 모아 기술한 책이다. 曰止曰時가 爰居爰處와 같다는 말은, 曰이 爰, 즉 ‘이에’라는 뜻이고, 止가 居, 時가 處라는 뜻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논증은 王先謙이 부연하였듯 《經義述聞》에 기재되어 있다. 다소 내용이 길지만, 참고차 인용해 두겠다. 《經義述聞》 「毛詩述聞」에서 王引之는 曰止曰時//箋曰/時/是也//曰可止居於是///正義曰/如箋之言/則上曰爲辭/下曰爲於也///引之謹案/經文疊用曰字/不當上下異訓/二曰字皆語辭//時/亦止也//古人自有復語耳//爾雅曰/爰/曰也//曰止曰時/猶言爰居爰處//玉篇曰/爾雅/室中謂之跱///跱/止也[廣雅同//玉篇又曰/跱/止不前也]///今本爾雅/跱作時//爾雅又曰/雞棲于弋爲榤/鑿坦而棲爲塒///王風君子于役/釋文塒作時//棲止謂之時/居止謂之時/其義一也//莊子逍遙遊篇曰/猶時女也///司馬彪注曰/時女/猶處女也///處/亦止也//爾雅曰/止/待也///廣雅曰/止/待逗也///待與時聲近而義同//待亦通作時//廣雅曰/㱖/離/待也///方言/㱖作萃/待作時/皆古字假借//或以時爲待之/譌非也[「蹇」象傳/宜待也///張璠本/待作時//「歸妹」象傳/有待而行也///一本待作時], ‘曰止曰時에 대한 내용이다. 箋에서는 “時는 是라는 뜻이다. 이 말은 是에 止居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正義》에서는 “箋의 설명과 같다. 곧, 앞의 曰은 조사이고, 뒤의 曰은 於다”라고 하였다. 내가 삼가 살펴 보건대, 經文에서 曰을 여러 차례 사용한 경우, 여러 曰들이 다르게 풀이될 수는 없다. 曰止曰時에서, 두 曰들은 모두 어조사다. 時 역시 止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이 원래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였을 뿐이다. 《爾雅》에서 “爰은 曰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曰止曰時는 爰居爰處라는 말과 같다. 《玉篇》에는 “《爾雅》에는 ‘집 안에 있는 것, 이를 跱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王引之의 부연 : 《廣雅》에도 똑같이 풀이되어 있다. 《玉篇》에는 또 “跱는 止하여, 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爾雅》에는 跱가 時라고 되어 있다. 《爾雅》에는 또 “닭이 弋에서 棲하는 것을 榤이라고 하고, 坦을 뚫어서 棲하는 것을 塒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王風」의 「君子于役」의 경우, 《釋文》에는 塒가 時로 인용되어 있다. 棲止하는 것을 時라고 하고, 居止하는 것을 時라고 하니, 의미가 같은 것이다. 《莊子》 「逍遙遊」에 猶時女也라는 말이 있는데, 司馬彪는 “時女는 處女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處 역시 止라는 뜻이다. 《爾雅》에 “止는 待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廣雅》에는 “止, 待는 逗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待와 時는 소리가 비슷하고 의미는 같다. 그래서 待 역시 時로 통용하여 사용되었을 것이다. 《廣雅》에는 “㱖, 離는 待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方言》에는 㱖가 萃로 되어 있고, 待가 時로 되어 있다. 모두 옛날에 가차해서 쓰던 글자들일 것이다. 時를 待라고 해 둔 경우도 있는데, 와전되어서 잘못된 사례이다.[王引之의 부연 : 「蹇」에 대한 象傳에 宜待也라는 말이 있는데, 《張璠本》에는 待가 時로 되어 있다. 「歸妹」에 대한 象傳에 有待而行也라는 말이 있는데, 판본에 따라 待가 時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였다. 曰止曰時는 《詩》 「大雅 文王之什」의 「緜」에 나오는 말이다. 箋은 「緜」에 대한 鄭玄의 주석이다. 鄭玄은 時/是//茲/此也//卜從則曰可止居於是/可作室家於此/定民心也, ‘時는 是라는 뜻이고, 茲는 此라는 뜻이다. 卜從이 “是에 止居할 수 있다. 此에 室家를 지을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民心을 定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正義》는 孔穎達의 《毛詩正義》다. 《爾雅》 「釋詁」에 粵/于/爰/曰也, ‘粵, 于, 爰은 曰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玉篇》은 蕭梁의 顧野王이 엮은 자전이다. 《玉篇》에는 跱에 대해, 除几切//爾雅曰/室中謂之跱///跱/上也, ‘除와 几의 반절로 읽는다. 《爾雅》에는 “집 안에 있는 것, 이를 跱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跱는 上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나는 《廣雅》에서 跱에 대해 저런 풀이를 찾지 못했다. 또, 부연 설명 중에 있는 止不前也라는 풀이는, 《玉篇》에 있기는 하지만, 跱에 붙은 말이 아니라, 歭에 붙은 설명이다. 室中謂之跱라는 표현은 《爾雅》 「釋宮」에 나오는데, 王引之가 지적한 대로 跱가 時로 바뀌어 있다. 즉, 室中謂之時라고 되어 있다. 雞棲에 대한 말도 《爾雅》 「釋宮」에 나온다. 「釋宮」에는 雞棲於弋爲榤/鑿垣而棲爲塒라고 되어 있다. 「君子于役」은 《詩》 「國風 王風」에 속해 있는 詩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王引之가 갑자기 「君子于役」을 인용한 까닭은, 「君子于役」 안에 雞棲于塒, ‘닭이 塒에서 棲한다’라는 句가 있는데, 《經典釋文》에는 塒가 時로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陸德明은 塒, 즉 時에 대해, 如字//本亦作塒/音同//爾雅同//玉篇/持理反//鑿牆以棲雞, ‘글자 그대로 읽는다. 판본에 따라 塒로 되어 있기도 하다. 발음은 같다. 《爾雅》에서도 똑같이 읽는다고 했다. 《玉篇》에서는 持와 理의 반절로 읽는다고 했다. 담을 파 내서 닭을 棲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 𩓣/俟/替/戾/底/止/徯/待也, ‘𩓣, 俟, 替, 戾, 底, 止, 徯는 待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廣雅》에는 止/待/立/逗也, ‘止, 待, 立은 逗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逗는 ‘머무르다’는 말이다. 《廣雅》에는 㱖/離/空/稗/臺/待也, ‘㱖, 離, 空, 稗, 臺는 待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方言》에는 萃/離/時也, ‘萃, 離는 時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蹇」, 「歸妹」는 모두 卦의 이름으로, 《易》에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時는 處와 같다. ◈ 通은 용언이다. 본래 ‘막히지 않다’, ‘통하다’는 말로, 여기서는 상황이 ‘원활하다’, ‘순조롭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時通은 명사절로, ‘처지가 순조로울 때’라는 말이 된다. 이 通은 窮과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通이 상기하였듯 ‘막히지 않다’, ‘통하다’는 말이라면, 窮은 ‘통하지 않다’, ‘막히다’라는 말이다. 한편 《韓詩外傳》에는 時通이 時則達이라고 되어 있다. 達은 通達이라는 말처럼 通과 같다. 또, 則은 아마 之와 같은 글자로, 주격 조사일 것이다. 그러면 時則達 또한 본문의 時通과 같다. 之와 則은 통용되었다. 《春秋左氏傳》 「僖公」 9년에 東略之不知/西則否矣, ‘동쪽을 정벌하는 일은 모르겠으나, 서쪽은 정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고, 《國語》 「晉語」에 華則榮矣/實之不知, ‘겉은 화려하였지만, 실체는 모르겠다’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之과 則은 모두 ‘~는’과 같이 사용되었으며, 같은 형식의 句에서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다. 則과 之가 옛날에 서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之」에 수록되어 있다. ◈ 利는 용언으로, ‘이롭다’, ‘유리하다’, ‘유용하다’, ‘도움이 되다’라는 말이다. 《韓詩外傳》에는 利가 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厄은 ‘해롭다’는 말로, 利의 의미와 배치되고, 또 扁善之度라는 주제와도 모순된다. 厄은 다른 글자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어떤 글자의 가차자로 사용된 듯한데, 내 식견으로는 그 내막을 알 수가 없다. ◈ 利以處窮의 以는 아마 於의 오기인 듯하다. ‘~에’, ‘~한 상황에’라는 말이다. 處窮을 받는다. 宜於時通과 利以處窮은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宜於時通이 ‘時가 通할 때에 宜하다’라고 풀이되므로, 利以處窮 역시 ‘處가 窮할 때에 利하다’라고 풀이되어야 한다. 이 때 以는 於로 풀이된다. 《韓詩外傳》에는 올바르게 於로 되어 있다. 宋基采는 冢田虎가 以를 於가 잘못된 글자라고 하였다는 설을 소개해 두었다. ◈ 處는 체언으로, ‘처지’다. ◈ 窮은 용언으로, ‘궁벽하다’, ‘막히다’, ‘통하지 않다’, ‘곤란하다’는 말이다. 즉, 處窮은 명사절로, ‘처지가 곤란할 때’라는 말이 된다. 通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한편 《韓詩外傳》에는 處窮이 窮則處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의 處窮이 주어와 용언으로 구성된 명사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窮則處는 아마 處則窮이 잘못된 말일 것이다. 또, 則은 之와 같은 말로, 주격 조사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通 부분의 주석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禮는 체언으로, ‘예법’, ‘예의범절’이다. 《禮》, 즉 《儀禮》를 이른다고 할 수도 있다. ◈ 信은 부사어로, ‘진실로’, ‘진정’이라는 말이다. 楊倞은 信/誠也, ‘信은 誠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誠 또한 ‘진실로’, ‘진정’이라는 말이다. ◈ 是는 扁善之度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禮誠是也의 서술어 역할을 하고 있다. 즉, 禮信是也는 ‘禮가 진정 이러한 방법이다’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는 대명사로 번역하지 않고, 扁善之度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였다. 한편 《韓詩外傳》에는 禮信是也가 信禮者也라고 되어 있다. 信禮者也는 ‘진정 禮다’, 즉 ‘이러한 방법은 진정 禮다’라는 말일 것이다. 者也는 也와 같다. 者가 也와 같기 때문이다. 즉, 者也는 也也이고, 곧 也가 된다. 《論語》 「陽貨」에 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紫가 朱를 奪하는 것이 싫고, 鄭나라의 음악이 雅樂을 어지럽힌다는 점이 싫으며, 달변으로 나라를 뒤집는 짓이 싫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者는 다른 句의 也와 대구를 이루고 있고, 또 그 쓰임 역시 也와 같이 조사다. 王引之는 《皇侃本》에는 者가 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 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國語》 「鄭語」에는 公曰/周其弊乎///對曰/殆於必弊者, ‘公이 말했다. “周나라는 망하겠느냐” 그러자 “거의 분명히 망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의 者 역시 也처럼 조사로 사용되었다. 金在烈은 《四部備要本》에 者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四部備要本》을 펴낸 사람이 者가 也의 역할을 하는 줄 모르고 문장을 끝내려고 也를 더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예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者諸」에 수록되어 있다. ◈◈ 楊倞은 言所用修身及時通處窮/禮誠是也//孟子曰/君子窮則獨善其身/達則兼善天下, ‘자신을 수양하거나, 형세가 원활하거나, 처지가 궁벽할 때 사용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禮가 진정 이러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孟子》에 “君子는 窮하면 그 자신을 홀로 바로잡고, 達하면 天下를 함께 바로잡는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孟子》 인용문은 「盡心 上」에 나온다. 다만 문구는 조금 다르다. 「盡心 上」에는 古之人/得志/澤加於民//不得志/脩身見於世//窮則獨善其身/達則兼善天下, ‘옛 사람은 뜻을 이루면 백성들에게 은택을 더 베풀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을 수양해서 세상에 드러냈다. 窮하면 그 자신을 홀로 바로잡았고, 達하면 天下를 함께 바로잡았다’라고 되어 있다. ◈◈ 蜀虎案 : 어떤 일을 처리하든 禮法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勸學」 뒷부분 내용 중, 대화 태도가 禮法에 근거하지 않은 놈들과는 이야기를 나누지도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내용과 통한다. 荀子는 무엇에 대해 논증하든, 언제나 禮를 전제한다.)

 

[예를 들어,] 혈기와 의지, 판단력을 운용할 대개의 경우에도 예법을 따르면 순탄해지지만, 예법을 따르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게 되거나 [태도가] 해이해진다.(凡用血氣志意知慮/由禮則治通/不由禮則勃亂提僈, ◈ 이 節은 《韓詩外傳》에는 凡用心之術/由禮則理達/不由禮則悖亂이라고 되어 있다. ◈ 凡은 부사어로, ‘대체로’, ‘대체적으로’, ‘대개’라는 말이다. 凡用血氣志意知慮는 본래 같으면 ‘대체로 血氣, 志意, 知慮를 用할 때’처럼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하면 凡이 가장 앞에 풀이되면서 의미가 모호해진다. 따라서 나는 凡을 血氣와 志意, 知慮를 用하는 ‘대개의 경우’처럼 의역하였다. ◈ 用은 용언으로, ‘운용하다’, ‘사용하다’는 말이다. 血氣, 志意, 知慮를 모두 받는다. ◈ 血氣는 체언으로, ‘혈기’, ‘열정’을 이른다. 여기서는 ‘혈기’라고 음역하였다. ◈ 志意는 체언으로, ‘의지’다. 志와 意는 모두 ‘의지’, ‘의향’을 이른다. 志意를 거꾸로 적으면 意志가 되는데, 이 말이 바로 ‘의지’다. ◈ 知慮는 체언으로, ‘판단력’을 이른다. 知는 ‘헤아리다’, ‘분별하다’, ‘변별하다’는 말이다. 慮역시 ‘헤아리다’, ‘꾀하다’, ‘계산하다’는 말이다. 《方言》에 慮/謀思也, ‘慮는 꾀하는 생각이다’라는 말이 있고, 《說文解字》 「思部」에도 慮/謀思也//从思虍聲, ‘慮는 꾀하는 생각이다. 思가 들어가 있다. 虍라고 발음한다’라는 말이 있다. 또, 《爾雅》 「釋詁」에 靖/惟/漠/圖/詢/度/咨/諏/究/如/慮/謨/猷/肇/基/訪/謀也, ‘靖, 惟, 漠, 圖, 詢, 度, 咨, 諏, 究, 如, 慮, 謨, 猷, 肇, 基, 訪은 꾀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같은 편에 懷/惟/慮/願/念/惄/思也, ‘懷, 惟, 慮, 願, 念, 惄은 생각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즉, 知와 慮는 모두 단순하게 ‘생각하다’는 말이 아니라, 변별이나 분별, 계산, 판단 등의 지적 작용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知慮 역시 그 점을 고려하여 번역해야 하겠다. ◈ 血氣, 志意, 知慮를 《韓詩外傳》에서는 心之術, ‘마음의 術’이라고 해 두었다. 여기서 術은 아마 ‘작용’이라는 말일 듯하다. 血氣, 志意, 知慮는 각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정신적인 작용이라는 점에서 동일 범주에 속해 있다. ◈ 由는 용언으로, ‘말미암다’, ‘근거하다’, ‘따르다’는 말이다.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예법’이다. ◈ 則은 ‘그러면’, ‘~하면’이라는 말이다. ◈ 治通은 용언으로, ‘잘 풀리다’, ‘원활해지다’는 말이다. 治는 ‘다스려지다’, ‘안정되다’, ‘화평하다’는 따위의 말이고, 通은 ‘막힌 바가 없다’, ‘통하다’, ‘뚫려 있다’, ‘화통하다’라는 따위의 말이다. 治通은 《韓詩外傳》에 理達로 되어 있다. 治와 理는 의미가 같고, 通과 達 역시 서로 의미가 같다. 따라서 理達은 治通과 같은 말이다. 王引之는 韻을 고려하였을 때, 理達의 達을 따라서 본문의 治通을 治達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王引之는 下文以節疾爲韻/雅野爲韻/生成寧爲韻/唯此二句韻不相協//通疑當依外傳作達[此涉上宜於時通而誤]/達與僈爲合韻//凡願月二部之字/古聲或相通//若勞心怛怛之怛[齊甫田]/字從旦聲/而與桀爲韻//故事可勸也之勸[禮運]/與列藝爲韻[藝/古讀爲臬]//不賞而民勸[中庸]/與鉞爲韻//以按徂旅之按[大雅皇矣]/孟子引作遏[梁惠王]//皆其例也//外傳作不由禮則悖亂/亂與達亦合韻, ‘아랫쪽 글에서는 節과 疾이 韻을 이루고, 雅와 野가 韻을 이루며, 生, 成, 寧이 韻을 이루는데, 오직 이 두 句의 글자들만 韻이 맞지 않다. 通은 아마 《外傳》에 근거해서 達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王先謙의 부연 : 이 글자는 앞에 나온 宜於時通 때문에 잘못되었을 것이다.] 達과 僈은 韻이 맞다. 대체로, 願과 月 두 部에 속한 글자들은 옛 발음이 서로 통하는 경우가 있었다. 勞心怛怛의 怛 같은 글자는[王先謙의 부연 : 「齊」의 「甫田」이다.] 旦처럼 소리가 나니, 桀과 韻을 이룬다. 故事可勸也의 勸은[王先謙의 부연 : 「禮運」이다.] 列, 藝와 韻을 이루고[王先謙의 부연 : 藝는 옛날엔 臬처럼 읽었다.], 不賞而民勸의 勸은[王先謙의 부연 : 「中庸」이다.] 鉞과 韻을 이룬다. 以按徂旅의 按은[王先謙의 부연 : 「大雅」의 「皇矣」다.] 《孟子》에 遏이라고 인용되어 있다.[王先謙의 부연 : 「梁惠王」이다.] 이 모두 그 사례들이다. 《外傳》에는 不由禮則悖亂이라고 되어 있는데, 亂과 達 역시 韻이 맞다’라고 하였다. 節과 疾은 由禮則和節/不由禮則觸陷生疾을, 雅와 野는 由禮則雅/不由禮則夷固僻違庸眾而野를, 生, 成, 寧은 故人無禮則不生/事無禮則不成/國家無禮則不寧을 이른다. 《外傳》은 《韓詩外傳》이다. 「齊」의 「甫田」이란, 《詩》 「國風 齊風」의 「甫田」을 이른다. 「甫田」에 維莠桀桀이라는 句가 있고, 그 다음에 勞心怛怛이라는 句가 있는데, 桀桀과 怛怛이 서로 韻이 맞다고 설명한 것이다. 「禮運」은 《禮記》의 편이다. 「禮運」에는 故事可勸也//以日星爲紀/故事可列也//月以爲量/故功有藝也라는 말이 있는데, 이 중 勸, 列, 藝가 韻을 이룬다는 말이다. 「中庸」은 《禮記》의 편이다. 「中庸」에 是故君子不賞而民勸/不怒而民威於鈇鉞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중 勸과 鉞이 韻을 이룬다는 말이다. 「大雅」의 「皇矣」란, 《詩》 「大雅 文王之什」의 「皇矣」를 이른다. 「梁惠王」은 「梁惠王 下」다. 「梁惠王 下」에 以按徂旅가 以遏徂莒라고 인용되어 있다. 본문의 由禮則治通/不由禮則勃亂提僈이 《韓詩外傳》에는 由禮則理達/不由禮則悖亂이라고 되어 있는데, 《韓詩外傳》의 達과 亂이 韻이 맞으므로, 韻을 따지자면 본문의 通 역시 《韓詩外傳》에서처럼 達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通과 達은 의미가 같기에, 글자를 바꾸든, 놔두든 본문의 뜻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句들의 韻을 따져 볼 때, 王引之의 설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宋基采는 《韓詩外傳》의 理逹이 본래 治逹이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唐 高宗의 이름이 治이므로, 唐代에 治를 피휘해서 理로 고쳤기 때문이다. ◈ 不由禮의 不은 부정어다. 由를 한정한다. ◈ 勃亂은 悖亂과 같은 말일 것이다. 용언으로, ‘어지러워지다’, ‘어그러지다’, ‘잘 안 되다’, ‘잘 안 풀리다’는 말이다. 亂은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어그러지다’는 말이다. 勃은 본래 ‘일어나다’, ‘노하다’, ‘발끈하다’는 말인데, 亂과 의미를 끼워 맞추려고 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아주 일치하지는 않는다. 勃은 아마 悖와 같은 글자인 듯하다. 悖는 誖와 같은 말로, ‘어지럽다’, ‘어그러지다’, ‘도리를 벗어나다’, ‘거스르다’는 말이다. 亂과 통한다. 한편, 《韓詩外傳》에는 勃亂이 悖亂으로 되어 있는데, 이 역시 勃이 悖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겠다. 즉, 勃亂은 悖亂과 같은 말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어그러지다’, ‘어지러워지다’라는 따위의 표현일 것이다. 정황적 증거들은 좀 더 있다. 勃亂이라는 표현은 《荀子》 안에서는 이 외에 등장하지 않는데, 悖亂은 몇 차례 등장한다. 「性惡」에 悖亂而不治, ‘悖亂하여 다스려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몇 차례 나오니, 荀子가 悖亂과 治를 대비시켜 사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른 문헌들에서도 悖亂은 ‘어지러워지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賈誼의 《新書》 「禮」에 處無禮即上下踳逆/父子悖亂/而況其大者乎, ‘禮를 따르지 않으면 곧 上下의 질서가 踳逆하고, 父子 사이가 悖亂해질 것이니, 하물며 더 중요한 일들이야 어떻겠느냐’라는 말이 있고, 《論衡》 「恢國」에는 周成王管/蔡悖亂/周公東征, ‘周나라 成王이 管할 때, 蔡나라가 悖亂하였기에, 周公이 東征하였다’라는 말이 있으며, 《呂氏春秋》 「愼大覽 察今」에 故治國無法則亂/守法而弗變則悖/悖亂不可以持國,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법제가 없으면 亂해지고, 법제를 견지하면서 절대 變하지 않으면 悖해지는데, 悖亂하면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또, 《漢書》 「五行志 中之上」에는 景帝三年二月/邯鄲狗與彘交//悖亂之氣/近犬豕之禍也//是時趙王遂悖亂/與吳楚謀爲逆, ‘景帝 3년 2월에, 邯鄲의 개와 돼지가 교접했다. 悖亂한 기운이 개와 돼지의 禍에 近한 것이다. 이 때 趙王은 마침내 悖亂하여, 吳, 楚와 역모를 꾸몄다’라는 말이 있고, 《漢書》 「霍光金日磾傳」에는 爲人臣子當悖亂如是邪, ‘신하라는 놈이 이렇게 悖亂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말이 있다. 이 글들에서 悖亂은 모두 ‘어지러워지다’ 혹은 ‘어지럽히다’, ‘반란을 일으키다’ 따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悖亂이 ‘어지럽히다’, ‘어그러뜨리다’라는 의미라는 점은 분한데, 그러면 勃亂도 悖亂과 같은 말이라는 증거가 더 있을까. 앞의 인용문 중 《漢書》 「五行志 中之上」의 내용이, 《前漢紀》 「孝景皇帝紀」에 二月辛巳朔日有食之//邯鄲有狗與豕交//本志以爲趙王勃亂失類, ‘2월 辛巳 朔日에 食이 있었다. 邯鄲에 개와 돼지들이 교접하는 사건이 있었다. 本志는 趙王이 勃亂하여 법도를 잃었다고 생각하였다’라고 되어 있으니, 《漢書》의 悖亂이 《前漢紀》에는 勃亂이라고 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後漢書》 「吳蓋陳臧列傳」에 比敕公千條萬端/何意臨事勃亂, ‘온갖 일들에 대해 公을 자주 敕하였는데, 일을 벌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勃亂하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이 勃亂 역시 일을 ‘망치다’, ‘어그러뜨리다’, ‘어지럽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니, 悖亂과 같다. 본문에 대해, 郝懿行은 勃與悖/僈與嫚/竝同, ‘勃과 悖, 僈과 嫚은 모두 같다’라고 하였다. 즉, 勃과 悖는 통용되었던 글자다. 이 설은 提僈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 提僈은 용언으로, ‘해이해지다’, ‘태만해지다’는 말일 것이다. 提는 본래 ‘끌다’, ‘끌어 당기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媞와 같은 말로, ‘느긋하다’, ‘느릿하다’는 뜻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楊倞이 잘 설명해 두었다. 僈은 본래 ‘업신여기다’, ‘얕보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慢과 같은 말로, ‘태만하다’, ‘게으름을 피우다’는 말이다. 즉, 提는 ‘느긋하다’, ‘느릿하다’는 말이고, 僈은 ‘태만하다’, ‘게으르다’는 말이니, 提僈은 ‘해이해지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僈을 어떻게 慢과 같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荀子》 안에서 僈이 慢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사례가 있다. 「不苟」에 君子寬而不僈, ‘君子는 寬하지만 僈하지는 않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楊倞은 僈與慢同/怠惰也, ‘僈은 慢과 같다. 태만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寬 역시 ‘느긋하다’는 말이므로, 이 말은 ‘태도가 느긋하지만 태만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非十二子」에 勞而不僈, ‘수고롭더라도 僈하지 않다’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僈을 弛慢, ‘해이해지다’라고 풀이하였다. 「富國」에 芒軔僈楛, ‘芒하고, 軔하며, 僈하고, 楛하면’이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僈/與慢同, ‘僈은 慢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식이다. 郝懿行의 경우, 僈을 嫚과 같다고 보았는데, 嫚은 ‘업신여기다’, ‘깔보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提와 의미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提僈을 한 단어로 풀이할 수 없다. 한 단어로 풀이할 수 없다면 앞에 나온 治通, 勃亂과 대구가 맞지 않게 된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提/舒緩也//爾雅/媞媞/安也///詩曰/好人提提///皆舒緩之義, ‘提는 느긋하다는 뜻이다. 《爾雅》에 “媞媞는 느긋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詩》에 “좋은 사람은 提提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느긋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訓」에 懨懨/媞媞/安也, ‘懨懨과 媞媞는 느긋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楊倞은 提에 대해 논증하다가, 왜 갑자기 媞에 대한 글을 가지고 왔을까. 《爾雅》 지금 판본에는 媞媞라고 되어 있지만, 판본에 따라 提提라고 되어 있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인용된 《詩》를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인용된 《詩》는 「國風 魏風」의 「葛屨」다. 「葛屨」의 提提에 대해 毛亨은 提提/安諦也, ‘提提는 느긋하게 살핀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孔穎達은 毛亨의 주석에 대해, 釋訓云/提提/安也///孫炎曰/提提/行步之安也///言安諦/謂行步安舒而審諦也, ‘「釋訓」에는 “提提는 느긋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孫炎은 “提提는 느긋하게 걷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安諦라는 말은, 느긋하고 느릿하게 걸으면서 살핀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釋訓」은 《爾雅》 「釋訓」을 이른다. 즉, 孔穎達이 본 《爾雅》 「釋訓」에는 媞媞/安也가 아니라, 提提/安也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 楊倞이 보았던 《爾雅》에도 提提/安也라고 되어 있었을 텐데, 나중 사람이 《爾雅》에 媞媞/安也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고친 듯하다. 그러나 提, 媞가 원래 아주 상이한 글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통용되었기 때문에, 판본에 따라 글자가 바뀌어서 전수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郝懿行은 勃與悖/僈與嫚/竝同//嫚謂相侮易也//荀書多以僈爲嫚/或以爲慢//慢/謂惰也//提者/詩小弁傳/提提/群貌///箋云/提提然樂///然則/提者/群居相樂//僈者/狎侮相輕//皆不由禮使然, ‘勃과 悖, 僈과 嫚은 모두 같다. 嫚은 서로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荀子의 글에는 僈이 嫚의 의미로 풀이된 경우가 많다. 僈이 慢으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慢은 게으르다는 뜻이다. 提라는 말에 대해서는, 《詩》 「小弁」에 대한 傳에, “提提는 모여 있는 모습이다”라는 말이 있고, 箋에는 “提提하게 즐겁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한 즉, 提는 함께 있으면서 서로 즐거워한다는 뜻일 것이고, 僈은 깝치면서 서로 업신여긴다는 말일 것이다. 모두 禮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小弁」은 《詩》 「小雅 小旻之什」에 속해 있다. 「小弁」에는 歸飛提提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郝懿行이 「小弁」을 인용한 것이다. 傳이란, 毛亨의 주석을 이른다. 箋이란, 鄭玄의 주석을 이른다. 즉, 郝懿行은 提를 ‘모여서 즐거워하는 모습’이라고 보았고, 僈을 ‘업신여기다’라고 풀이하였다. 王先謙은 下文/難進曰偍///注云/偍與提媞皆同/謂弛緩也///是提僈二字義同//故與勃亂對文//言不由禮則血氣強者多悖亂/弱者多弛慢也//郝說非, ‘아랫쪽 글에 “進하기 어려운 상태를 偍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偍, 提, 媞는 모두 같은 말이다. 해이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提와 僈 두 글자의 의미는 같다. 따라서 提僈은 勃亂과 대구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禮에 근거하지 않았을 때, 血氣가 강한 자는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고, 血氣가 약한 자는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郝懿行의 설은 틀렸다’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提와 僈의 의미가 같아서, 提僈이 한 단어로 사용된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였다. ◈◈ 王先謙은 提僈 부분의 주석에 인용되어 있듯, 言不由禮則血氣強者多悖亂/弱者多弛慢也, ‘이 말은 禮에 근거하지 않았을 때, 血氣가 강한 자는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고, 血氣가 약한 자는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血氣에 대해서만 언급하였지만, 이 말은 志意, 知慮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즉, 血氣, 志意, 知慮, 곧 혈기, 의지, 판단력이 강하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약하면 해이해진다는 말이다. 정도가 강한지, 약한지에 따라 나누어 분석하였다고 荀子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王先謙처럼 해석하면 글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 蜀虎案 : 일을 처리할 때, 禮를 따르면 일이 잘 풀리고, 禮를 따르지 않으면 일을 망치게 되거나 게을러져서 일이 잘 풀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禮를 따르지 않으면 너무 성급해지거나 너무 해이해진다. 바꿔 말하면, 禮란, 사람이 너무 성급해지거나 해이해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규범인 것이다. 예를 들어, 개와 고양이들은 모두 사람과 발을 맞추지 못한다. 고양이들은 너무 앞서 나가다가 자기 혼자 길을 잃게 되고, 개들은 너무 뒷서가다가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개와 고양이가 禮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다.) [또,] 먹고 마시는 일, 옷을 입는 일, 집에 있을 때 하는 일, [심지어는 일체의] 동정까지도, 예법을 따르면 적합해지지만, 예법을 따르지 않으면 잘못을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食飲衣服居處動静/由禮則和節/不由禮則觸陷生疾, ◈ 이 節은 《韓詩外傳》에는 飲食衣服動靜居處/由禮則知節/不由禮則墊陷生疾이라고 되어 있다. ◈ 食飲은 체언으로, ‘먹고 마시는 일’을 이른다. 食은 ‘먹다’, 飲은 ‘마시다’는 말이다. ◈ 衣服은 체언으로, ‘옷을 입는 일’을 이른다. 衣와 服은 모두 옷을 ‘입다’는 말이다. ◈ 居處는 체언으로, ‘거주하는 일’, ‘집에 있을 때 하는 일’을 이른다. 居와 處는 모두 어떤 장소에 ‘머무르다’, ‘살다’는 말이다. 《韓詩外傳》에는 居處 자리에 動静이 들어가 있다. 즉, 居處, 動静의 위치가 반대다. ◈ 動静은 체언으로, ‘동정’,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이른다. 動은 ‘움직이다’는 말이고, 静은 ‘가만히 있다’는 말이다. 아마 여기서는 일체의 자질구레한 행위, 즉 가만히 있을 때의 자세가 어떤지, 그리고 일상적인 동작이 어떤지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韓詩外傳》에는 動静 자리에 居處가 들어가 있다. 즉, 居處, 動静의 위치가 반대다. ◈ 由는 용언으로, ‘근거하다’, ‘따르다’는 말이다.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예법’, ‘예의범절’이다. ◈ 則은 ‘그러면’, ‘~하면’이다. ◈ 和節은 용언으로, ‘적합하다’는 말일 것이다. 和는 和合이라는 말처럼, ‘들어 맞다’, ‘적합하다’는 말이다. 節 역시 ‘절도에 맞다’, ‘적합하다’는 말이다. 《呂氏春秋》 「孟春紀 重己」에 非好儉而惡費也/節乎性也, ‘儉을 好하지도 않고, 費를 惡하지도 않지만, 性에 節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節/猶和也//和適其情性而巳/不過制也, ‘節은 和와 같다. 성정에 맞아 들어 가는 일일 뿐, 지나치게 制한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즉, 和, 節이 모두 適, ‘적합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和節/猶和適, ‘和節은 적합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韓詩外傳》에는 和節이 知節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 和와 知의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된 듯하다. 宋基采는 和를 ‘조화롭다’라고 보고, 음식과 의복이 ‘조화를 이룬다’라고 하였고, 節을 일상 생활이나 행동거지가 ‘적합하다’라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和節은 한 단어로 해석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和와 節을 따로 떼서 풀이해서는 안 된다. ◈ 不由禮의 不은 부정어다. 由를 한정한다. ◈ 觸陷은 ‘잘못을 저지르다’는 말일 것이다. 觸은 용언으로, 본래 ‘닿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범하다’라고 해석된다. 陷는 체언으로, ‘실수’, ‘잘못’이다. 陷 역시 용언으로 보고, ‘잘못하다’, ‘실수하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觸陷은 ‘잘못하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대구를 이루고 있는 生疾과 형식이 안 맞기 때문에, 원안 대로 보는 편이 좋겠다. 生疾은 ‘疾을 生하다’라는 말이다. 《韓詩外傳》에는 觸陷이 墊陷이라고 되어 있다. 墊은 ‘빠지다’는 말이고, 陷 역시 ‘빠지다’는 말이니, 墊陷은 ‘빠지다’, 즉 ‘잘못을 저지르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뒤의 生疾은 《韓詩外傳》에도 生疾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墊陷이라고 하면 生疾과 형식적으로 대구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陷이 ‘빠지다’는 말이므로, 아마 이 글자와 의미가 같은 글자인 墊을 가지고 와서 觸을 바꾸어 버린 듯하다. ◈ 生疾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生은 용언으로, 아마 ‘만들다’, ‘낳다’, 즉 ‘일으키다’라는 말일 것이다. 疾은 체언으로, ‘문제’, ‘하자’다. ◈◈ 蜀虎案 : 일상적으로 행동할 때도 禮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용모와 태도, 진퇴, [사소한] 걸음걸이까지도 예법을 따르면 우아해지지만, 예법을 따르지 않으면 거만해지고, 간사해져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투박해진다.(容貌態度進退趨行/由禮則雅/不由禮則夷固僻違/庸衆而野, ◈ 이 節은 《韓詩外傳》에 容貌態度/進退移步/由禮則夷國이라고 되어 있다. ◈ 容貌는 체언으로, ‘용모’다. ‘낯빛’을 이른다. ◈ 態度는 체언으로, ‘태도’다. ◈ 進退는 체언으로, ‘진퇴’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을 이른다. 아마 어떤 일에 나서야 하고, 어떤 일에 나서야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 같다. ◈ 趨行은 체언으로, ‘걸어 다니는 일’, ‘걸음걸이’라는 말이다. 趨는 ‘집 밖에서 걷는 일’이고, 行은 ‘집 안에서 걷는 일’을 이른다. 《爾雅》 「釋宮」에 室中謂之時/堂上謂之行/堂下謂之步/門外謂之趨/中庭謂之走/大路謂之奔, ‘집 안에 있는 것을 時라고 하고, 堂 위에 있는 것을 行이라 하며, 堂 아래 있는 것을 步라고 하고, 문 밖에 있는 것을 趨라고 하며, 뜰에 있는 것을 走라고 하고, 큰 길에 있는 것을 奔이라 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곧 堂 위, 즉 집 안에서 걷는 일이 行이고, 문 밖에서 걷는 일이 趨임을 알 수 있다. 또, 《周禮》 「夏官司馬」에 行以肆夏/趨於采薺, ‘「肆夏」에 行하고, 「采薺」에 趨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行謂大寢至路門/趨謂路門至應門, ‘行은 大寢에서 路門까지를 이르고, 趨는 路門에서 應門까지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肆夏」와 「采薺」는 아마 악곡의 이름일 것이다. 이처럼, 行과 趨는 모두 ‘걷는다’는 말인데, 고대 중국인들은 걷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賈公彦은 鄭玄의 주석에 대해 상기한 《爾雅》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行雖在堂/亦人之行由堂始/故發堂至門皆謂之爲行/故云行謂大寢至路門/趨謂路門至應門也, ‘行은, 堂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堂의 가장자리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였을 것이므로, 이에 堂에서 시작해 門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鄭玄은 行이 大寢에서 路門까지, 趨는 路門에서 應門까지라고 표현하였다’라고 하였다. 《禮記》 「玉藻」에도 行以肆夏/趨以采薺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孔穎達 역시 《爾雅》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門內謂之行/門外謂之趨, ‘문 안에서 하는 것을 行, 문 밖에서 하는 것을 趨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한편, 《韓詩外傳》에는 趨行이 移步라고 되어 있다. 步는 ‘걸음’이다. 아마 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移의 경우, ‘옮기다’는 말인데, 말을 끼워 맞춰서 ‘위치를 옮기다’, 즉 ‘걷다’라고 볼 수야 있겠지만, 석연치 않다. 내 생각에, 移는 趍가 잘못된 글자이거나, 아니면 趍의 가차자일 듯하다. 이 移는 《荀子》 본문의 趨에 대응된다. 그런데, 앞에 인용하였던 《禮記》 「玉藻」의 趨에 대해, 鄭玄은 門外謂之趍, ‘문 밖에서 하는 것을 趍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趍/七須反/本又作趣, ‘趍는 七과 須의 반절로 읽는다. 판본에 따라 趣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즉, 趨와 趍, 趣는 아마 다 통용되었던 말일 것이다. 韓嬰은 이 점을 가지고 趨를 趍로 바꾸었을 텐데, 나중에 베껴 쓰면서 趍가 다시 移로 바뀐 것 같다. ◈ 由는 용언으로, ‘따르다’는 말이다.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예법’, ‘예의범절’이다. ◈ 則은 ‘그러면’, ‘~하면’이다. ◈ 雅는 용언으로, ‘올바르게 되다’, ‘우아해지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雅는 庸衆而野의 野와 대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우아해지다’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낫겠다. 野는 거칠고 형식이 갖춰 지지 않은 모습을 이른다. 郝懿行은 雅/對野言/則兼正也嫺也二義//野者反是, ‘雅는 野에 대조되는 표현으로, 올바르다, 우아하다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野는 이에 반대된다’라고 하였다. 한편, 《韓詩外傳》에는 由禮則雅가 由禮則夷國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夷國에서 節이 끝난다. 雅와 夷國은 글자 수도 맞지 않고, 의미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 夷國은, 《荀子》 본문 중 不由禮則夷固의 夷固가 잘못된 표현일 것이다. 韓嬰이 《荀子》를 잘못 이해했었을 수는 있어도, 글의 구조가 이렇게 망가졌는데에도 잘못되었다는 점을 몰랐을 리는 없으므로, 아마 나중 사람이 《韓詩外傳》을 베껴 적다가 문제가 생겼거나, 아니면 착간 문제가 생겨서 본문의 由禮則雅/不由禮則夷固僻違/庸衆而野가 통째로 由禮則夷國으로 축약되고, 잘못된 듯 보인다. ◈ 不由禮의 不은 부정어로, 由를 한정한다. ◈ 夷固는 용언으로, ‘거만하다’는 말일 것이다. 夷와 固는 모두 ‘거만하다’는 뜻이다. 夷에 대해서는 楊倞이, 固에 대해서는 王引之가 설명해 두었다. 雅 부분에 기재하였듯, 《韓詩外傳》에는 夷固가 夷國이라고 되어 있는데, 두 말 할 것 없이 國은 固가 잘못된 글자일 것이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夷/倨也//論語/原壤夷俟///固/陋也, ‘夷는 거만하다는 말이다. 《論語》에 “原壤이 夷하면서 기다렸다”라는 말이 있다. 固는 비루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原壤夷俟는 《論語》 「憲問」에 나오는 말이다. 夷에 대해, 馬融은 夷/踞, ‘夷는 踞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孔穎達은 乃申兩足/箕踞以待孔子也, ‘이에 양발을 펴고, 箕踞하면서 孔子를 기다렸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하였다. 箕踞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다’는 말이다. 楊倞은 이 말에서 ‘거만하다’라고 의미를 유추한 듯하다. 王引之는 夷가 ‘거만하다’는 말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였으나, 固 역시 ‘거만하다’는 말이라고 주장하였다. 王引之는 楊分夷固爲二義/非也//夷固猶夷倨也//夷固辟違/猶言倨傲僻違//不苟篇云/倨傲僻違/以驕溢人///是也//修身篇又云/體倨固而心埶詐[今本埶譌作執/辯見後執詐一條]///是固與倨同義[楊注/固/鄙固也///亦非]//祭義曰/孝子之祭也/立而不詘/固也///詘/卑詘也/固/倨也[立而不詘/是倨傲也//鄭注/詘/充詘/形容喜貌也///固/猶質陋也///皆失之]//大戴禮曾子立事篇曰/弗知而不問焉/固也///固亦倨也[不肯下人/是倨傲也//曾子制言篇曰/今之弟子病下人/不能事賢/恥不知而又不問], ‘楊倞은 夷固를 나누어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보았지만, 틀렸다. 夷固는 夷倨와 같다. 夷固辟違라는 말은, 倨傲僻違와 같다. 「不苟」에 “倨傲하고 僻違하게 굴면서 남에게 驕溢하게 군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과 같다. 「修身」에는 또 “몸가짐이 倨固하면 마음가짐이 埶詐해진다”라는 말이 있다.[王先謙의 부연 : 지금 판본에는 埶가 執으로 잘못되어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執詐 부분에 나온다.] 이처럼, 固와 倨는 의미가 같다.[王先謙의 부연 : 楊倞은 固를 鄙固라고 풀이하였는데, 마찬가지로 틀렸다.] 「祭義」에 “孝子가 제사를 지낼 때에는, 서 있으면서 詘하지 않으면 固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詘은 몸을 굽히다는 말이고, 固는 거만하다는 뜻이다.[王先謙의 부연 : 꼿꼿이 서 있으면서 몸을 굽히지 않으니, 거만한 모습이다. 鄭玄은 “詘은 완전히 굽히다는 말로, 겉모습이 기뻐 보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固는 기질이 비루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두 틀렸다.] 《大戴禮》 「曾子立事」에 “알지도 못하면서 묻지 않는 짓은 固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固 역시 거만하다는 뜻이다.[王先謙의 부연 : 다른 사람을 下하려 하지 않으니, 거만한 태도다. 「曾子制言」에 “요즘 제자들은 아랫사람들을 모욕하면서, 현명한 사람을 섬길 줄은 모르고, 부끄럽게도 알지 못하면서도 묻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執詐에 대한 설명은 어차피 「修身」의 體倨固而心執詐 부분을 번역하면서 또 번역하게 될 것고, 이 부분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므로, 이 부분에서는 따로 인용하지 않겠다. 「祭義」는 《禮記》의 편이다. 立而不詘에 대해 인용한 주석 중, 詘은 鄭玄의 주석이 아니라 孔穎達의 주석이다. 孔穎達은 詘/謂充詘/形容歡喜之貌라고 하였다. 《大戴禮》는 《大戴禮記》를 이른다. 「曾子制言」은 「曾子制言 上」을 이르니, 《大戴禮記》의 편이다. 「曾子制言 上」에는 인용문 중 不能事賢이 不知事賢이라고 되어 있다. ◈ 僻違는 용언으로, ‘간사해지다’는 말이다. 僻과 違는 모두 ‘간사하다’, ‘삐뚤어지다’는 말이다. 「修身」 뒷부분에 辟違而不愨, ‘辟違하여서 愨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辟違 역시 僻違와 같다. 辟은 僻의 가차자일 것이다. 僻違의 의미에 대해서는, 辟違而不愨의 辟違 부분에서 王念孫이 상세하게 설명해 두었다. 그 주석을 그대로 옮겨 둔다. 王念孫은 僻違/皆邪也//周語/動匱百姓/以逞其違///晉語/若有違質/敎將不入///韋注竝曰/違/邪也///堯典/靜言庸違///史記五帝紀作/共工善言其用僻///是僻即違也//上文曰/不由禮則夷固辟違/庸衆而野///不苟篇曰/倨傲僻違/以驕溢人///非十二子篇曰/甚僻違而無類///昭二十年左傳曰/動作辟違/從欲厭私///義竝與此同//成相篇曰/邪枉辟囘失道途///辟囘即僻違[小雅鼓鍾篇/其德不囘///毛傳曰/囘/邪也///大雅大明篇/厥德不囘/毛傳曰/囘/違也///堯典/靜言庸違///文十八年左傳作靜譖庸囘///杜注曰/囘/邪也///昭二十六年左傳/君無違德///論衡變虛篇作囘德], ‘僻과 違는 모두 간사하다는 말이다. 「周語」에 “걸핏하면 百姓을 匱하여서 그 違를 逞한다”라는 말이 있고, 「晉語」에 “만약 違한 質을 가지고 있다면, 교화가 작용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모두 “違은 간사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堯典」에 “가만히 있으면 말하지만, 庸하면 違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五帝紀」에는 “共工은 말을 잘하지만, 그 用은 僻하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僻은 곧 違와 같다. 앞의 글 중, “禮를 따르면 거만해지고, 辟違해져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野해진다”라는 말이 있었고, 「不苟」에 “倨傲하고 僻違하게 굴면서 다른 사람을 驕溢한다”라는 말이 있으며, 「非十二子」에 “아주 僻違하여서 類가 無하다”라는 말이 있다. 또, 「昭」 20년에 대한 《左傳》에 “행동이 辟違하여서 욕망을 따라 私를 厭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辟違, 僻違의 의미가 모두 이 글과 같다. 「成相」에는 “邪枉해지고 辟囘해져서 道途를 잃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辟囘는 곧 僻違다.[王先謙의 부연 : 「小雅」의 「鼓鍾」에 “그 德은 囘하지 않다”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囘는 邪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大雅」의 「大明」에는 “그 德은 囘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囘는 違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堯典」의 “가만히 있으면 말하지만, 庸하면 違한다”라는 말은, 「文」 18년에 대한 《左傳》에는 “가만히 있으면 譖하지만, 庸하면 囘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杜預는 “囘는 邪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昭」 26년에 대한 《左傳》에는 “君은 德을 違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論衡》 「變虛」에는 違德이 囘德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周語」, 「晉語」는 모두 《國語》의 편이다. 「堯典」은 《書》 「虞書」에 속해 있다. 「五帝紀」는 「五帝本紀」다. 上文이라고 인용된 不由禮則夷固辟違/庸衆而野은 바로 본문의 이 글을 이른다. 본문에는 辟違가 아니라 僻違라고 되어 있다. 《左傳》 「昭」는 《春秋左氏傳》 「昭公」이다. 「鼓鍾」는 《詩》 「小雅 北山之什」에 속해 있다. 「大明」은 《詩》 「大雅 文王之什」에 속해 있다. 지금 「鼓鍾」와 「大明」, 「大明」의 주석에는 囘가 아니라 回로 되어 있는데, 이 둘은 같은 글자다. 「文」은 「文公」이다. 「文公」 18년에는 靜譖庸囘가 아니라 靖譖庸回라고 되어 있다. 杜預의 주석에도 囘가 回로 되어 있다. 《論衡》 「變虛」에도 囘德이 아니라 回德이라고 되어 있다. ◈ 庸衆而는 아마 庸衆然으로, ‘평범한 사람들처럼’이라는 말일 것이다. 즉, 庸衆而野는 ‘庸衆한 사람들처럼 野해진다’라는 말이 된다. 庸은 ‘평범한 사람’을 이르고, 衆은 ‘보통 사람’을 이른다. 즉, 庸衆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점은 楊倞의 설과 같다. 而의 경우, 아마 단어 뒤에 붙어서 형용하는 말로 바꾸어 주는 글자인 듯하다. 然과 같다. 《書》 「虞書 益稷」에 啟呱呱而泣, ‘啟는 呱呱하게 울었다’라는 말이 있고, 《詩》 「國風 召南」에 舒而脫脫兮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이를 脫脫然舒也, ‘脫脫하게 舒한다’라고 풀이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 17년에는 鋌而走/險急何能擇, ‘鋌하게 도망가는데, 위험하고 시급한 상황에 무엇을 가릴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鋌/疾走貌, ‘鋌은 빨리 달리는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然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만약 而를 然이 아니고, ‘그리고’처럼 순접으로 해석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庸衆과 野는 모두 체언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不由禮則夷固僻違/庸衆而野는 ‘禮를 따르지 않으면, 夷固해지고, 僻違해져서, 庸衆 그리고 野다’가 되는데, 이래서는 말이 안 된다. 庸衆而野를 ‘庸衆처럼 野해진다’라고 풀이해야 훨씬 더 낫다. 주석을 보면, 楊倞은 庸衆과 野를 모두 체언으로 풀이하였는데, 庸衆은 그렇더라도, 野는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庸/凡庸//衆/衆人, ‘庸은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고, 衆은 보통 사람들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野는 용언으로, ‘투박해지다’, ‘막되게 되다’라는 말이다. 雅와 형식적으로 대구를 이루고, 의미적으로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楊倞은 野/郊野之人, ‘野는 교외에 사는 사람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상기하였듯, 野는 용언으로 풀이해야지, 체언으로 보아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郝懿行은 雅 부분에서 野는 雅에 반대되는 표현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타당하다. ◈◈ 蜀虎案 : 용모, 걸음걸이처럼 상대적으로 사소한 일들조차도 禮法을 따라야 우아해지고, 禮法을 따르지 않으면 투박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가 없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살아갈 수가 없고, 예가 없이는 [어떤] 일[이라]도 이루어질 수가 없으며, 예 없이는 [어떤] 나라[라]도 안녕해질 수가 없도다.(故人無禮則不生/事無禮則不成/國家無禮則不寧, ◈ 이 節은 《韓詩外傳》에 政無禮則不行/王事無禮則不成/國無禮則不寧/王無禮則死亡無日矣라고 되어 있다. 본문의 事無禮則不成/國家無禮則不寧과 《韓詩外傳》의 王事無禮則不成/國無禮則不寧이 거의 같을 뿐, 다른 句들은 다르다. 본문의 故人無禮則不生은 《韓詩外傳》의 政無禮則不行에 대응되는데 내용이 다르고, 《韓詩外傳》의 王無禮則死亡無日矣은 본문에 대응되는 句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 이 節은 또, 《荀子》 「大略」에 故人無禮不生/事無禮不成/國家無禮不寧이라고 인용되어 있는데, 則만 빠져 있고, 나머지 글들은 같다. 그러나 「大略」 부분에는 주석이 따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 故는 ‘그러므로’, ‘따라서’다. 《韓詩外傳》에는 故가 없다. ◈ 人은 체언으로, ‘사람’이다. 《韓詩外傳》에는 人이 政으로 되어 있다. 政은 ‘정치’, ‘정무’다. ◈ 無는 용언으로, ‘없다’는 말이다.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예’, ‘예법’이다. ◈ 則은 ‘그러면’, ‘~하면’이다. ◈ 不은 부정어다. 각각 生, 成, 寧을 한정한다. 이 節에서는 ‘~할 수 없다’처럼 해석된다. ◈ 生은 용언으로, ‘살다’, ‘살아 가다’는 말이다. 《韓詩外傳》에는 生이 行으로 되어 있다. 行은 ‘이행되다’는 말이다. ◈ 事는 체언으로, ‘일’을 이른다. 여기서는 ‘萬事’로 보고 번역하였다. 《韓詩外傳》에는 事가 王事로 되어 있는데, 王事는 ‘王의 사무’, ‘王의 사업’일 것이므로, 아마 ‘정무’를 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政無禮則不行의 政과 내용이 겹친다. ◈ 成은 용언으로, ‘이루어지다’ 혹은 ‘다스려지다’는 말일 것이다. ◈ 國家는 체언으로, ‘나라와 집안’이다. 그런데 앞의 句에서는 주어가 人, 事로 한 글자였는데, 이 句만 유독 國家로, 두 글자이니, 대구가 불완전해서 의뭉스럽다. 「大略」에도 國家로 인용되어 있다. 이 외에는 인용되어 있는 문헌이 《韓詩外傳》밖에 없다. 《韓詩外傳》에는 國家가 國이라고만 되어 있다. ◈ 寧은 용언으로, ‘편안해지다’, ‘안정되다’는 말이다. ◈ 본문은 寧에서 끝나지만, 상기하였듯 《韓詩外傳》에는 이 뒤에 王無禮則死亡無日矣, ‘王은 禮가 없으면 죽기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된다’라는 말이 더 있다. 그러나 말의 의미가 본문과 어울리지 않고, 또 수준이 낮다. ◈◈ 蜀虎案 : 凡用血氣志意知慮 부분부터 僻違/庸衆而野 부분까지의 내용이 종합되는 문장이다. 세상 누구라도, 세상 어떤 일을 하더라도 禮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시에 이런 말이 있다.(詩曰, ◈ 이 句는 《韓詩外傳》에도 詩曰로 되어 있다. 다만 《韓詩外傳》에는 「國風 鄘風」의 「相鼠」가 인용되어 있다. ◈ 詩는 체언으로, 《詩》, 즉 《詩經》을 이른다. 인용된 詩는 「小雅 北山之什」의 「楚茨」다. 楊倞은 詩/小雅楚茨之篇, ‘詩는 「小雅」의 「楚茨」다’라고 하였다. ◈ 曰은 말을 표현하거나, 다른 곳의 글을 인용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예의도 모두 법도에 맞고,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도 모두 적합하도다.”(禮儀卒度/笑語卒獲, ◈ 상기하였듯 《韓詩外傳》에는 「楚茨」가 아니라 「相鼠」가 인용되어 있다. 《韓詩外傳》에는 人而無禮/胡不遄死, ‘사람이면서 禮를 지키지 않으면, 어찌 빨리 죽지 않겠느냐’라고 되어 있다. 遄은 速, ‘빠르다’는 말이다. 참고차 기재해 둔다. ◈ 禮儀는 체언으로, ‘예의’, ‘예의범절’을 이른다. 「楚茨」의 내용으로 유추해 볼 때, 이 禮儀는 주인과 손님이 술을 주고 받는 ‘예절’을 이른다. ◈ 卒은 부사어로, ‘모조리’, ‘전부’, ‘모두’다. 鄭玄과 朱熹는 모두 卒/盡也, ‘卒은 모조리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卒/盡也, ‘卒은 모조리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度는 용언으로, 아마 ‘법도에 맞다’라는 말 같다. 毛亨과 朱熹는 모두 度/法度也, ‘度은 법도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度/如字, ‘度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孔穎達 역시 法度, ‘법도’라고 풀이하였다. ◈ 笑語는 체언으로, ‘웃고 이야기하는 일’을 이른다. 술자리에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 獲은 용언으로, ‘적합하다’, ‘때에 맞다’, ‘타당하다’라는 말이다. 웃고 즐기는 모습도 지나치지 않고, ‘적당하다’는 뜻이다. 毛亨은 獲/得時也, ‘獲은 때에 맞게 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獲/得其宜也, ‘獲은 타당하게 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楊倞은 獲/得也, ‘獲은 맞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상기하였듯, 출전은 《詩》 「小雅 北山之什」의 「楚茨」이다. 원래 詩는 물질적으로 풍족해서, 법도에 맞게 의식도 치르고, 제사도 올리며 신명이 복을 내리기를 비는 글이다. 무엇이든 간에 禮에 정합되어야 아름답고, 안녕할 수 있다는 점을 뜻한다. 「修身」 이 부분의 내용과도 잘 합치된다.)

 

[이 시가 바로] 이런 뜻이다.(此之謂也, ◈ 此는 어떤 일을 하든, 禮法을 따라야 적합해진다는 점을 이른다. 이 부분의 주제다. ◈ 之는 도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원래는 謂此也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뜻하다’, ‘표현하다’는 말이다. 謂의 주어는 생략되어 있는데, 바로 앞에서 인용한 「楚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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