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2 - 수신 - 4 - 예를 따르면 기운이 다스려지고 마음가짐이 길러진다(재번역 예정)

2021. 10. 5. 07:54순자 이야기(** 수신편 번역 중 잠정 중단)/원문 번역

반응형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7일 12시 2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98

 

순자 - 2 - 수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02

 

<하단 주석> 순자 - 2 - 수신 - 4 - 예를 따르면 기운이 다스려지고 마음가짐이 길러진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治氣養心之術:血氣剛强,則柔之以調和;知慮漸深,則一之以易良;勇膽猛戾,則輔之以道順;齊給便利,則節之以動止;狹隘褊小,則廓之以廣大;卑溼、重遲、貪利,則抗之以高志;庸衆駑散,則刦之以師友;怠慢僄弃,則炤之以禍災;愚款端愨,則合之以禮樂,通之以思索。凡治氣養心之術,莫徑由禮,莫要得師,莫神一好。夫是之謂治氣養心之術也。志意修則驕富貴,道義重則輕王公,內省而外物輕矣。傳曰:君子役物,小人役於物。此之謂矣。

 

[이번에는 자기] 기운을 [잘] 다스리고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길러 내는(治氣養心, 이 부분에서는 血氣, 知慮, 勇膽, 齊給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氣와 心은 태도와 사고방식 전반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방법에(術)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혈기가 [너무] 강강하다면(血氣剛强, 剛과 强은 모두 '세다', '강하다'는 뜻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調和, 調와 和는 모두 '어울리다', '화합하다', '조화를 이루다'라는 뜻이다.) 혈기를(之, 血氣) 유하게(柔, '부드럽다', '약하다') 만들고, 지려가 [지나치게] 점심해 있다면(知慮漸深, 郝懿行과 王念孫은 《한시외전》에는 漸深이 潛深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漸을 潛으로 간주했다. 深은 '깊다', 潛은 '잠기다', '가라앉다'이다. 그래서 知慮漸深이란, '생각이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다면'이라는 뜻이다.) 평온하고 신실한 자세로(易良, 《한시외전》에는 易良이 易諒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易諒은 무슨 뜻일까. 郝懿行은 《예》 「악기」에서 易直子諒之心이라고 한 점을 들어, 易는 '이'로 읽고 '온화하다', '편안하다'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했으며, 諒은 '성실하다', '신실하다'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郝懿行을 따른다.) 지려를(之, 知慮) 다잡게 해야(一) 하며, 용담이 [너무] 맹려하면(勇膽猛戾, 勇膽은 '용기와 담력', 猛戾는 '사나워서 도리에 어긋나는 것') 이끌고 깨우쳐서(道順, 俞樾은 道를 導로, 順을 訓으로 보았다. 《국어》 「주어」에 能導訓諸侯者라는 말이 있는데, 《사기》 「노주공세가」에는 能道順諸侯者라는 말이 있다. 이 두 부분은 모두 주나라 宣王이 노나라를 정벌한 사건을 설명하는 대목이므로, 두 구절이 뜻하는 바가 같다. 따라서 導訓은 道順과 같다. 「수신」 본문만 고려하더라도 道를 '도리'라고 해석하기 보다 '이끌어 주다'라고 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道를 '도리'라고 하였으면 모를까 導로 해석한다면, 順 역시 訓이라고 해야 매끄럽다. 나는 俞樾을 따른다.) 용담을(之, 勇膽) 바로잡아 주어야(輔, '바로잡다', '보완하다') 한다.

 

[한편 행위가 지나치게] 제급하고 편리하다면(齊給便利, 楊倞은 《이아》를 인용해 齊를 疾이라고 했다. 釋詁」에서 肅/齊/遄/速/亟/屢/數/迅/疾也라고 했다. 給은 원래 '말을 잘하다'는 뜻인데, 이 뜻에서 파생되어 '말을 빨리 하다', '빠르다'는 뜻으로도 사용된 것 같다. 예를 들어 《논어》 「공야장」에서 口給이라고 하여 '말을 잘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후한서》 「문원열전 하」에서는 言論給捷이라고 하였는데, 기본적으로 '말을 잘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捷이 '빠르다'는 뜻이므로, 給도 같은 뜻으로써 捷과 붙어 단어를 이루었을 것이다. 便은 '즉시', '곧장'이다. 利는 '날래다', '빠르다'는 뜻이다. 《회남자》 「지형훈」에서 輕土多利/重土多遲라고 하였으니, 利가 遲와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遲는 '더디다', '느리다'는 뜻이다. 즉, 齊給便利는 네 글자 모두 '빠르다'는 의미다.) 행동을 멈추게 하여서(動止) 행위에(之, 이 문구 및 아래 두 구에는 지시 대상이 본문에 없다.) 절조가 있게(節, '끊겨 있는 것'을 뜻한다. '절조', '절제', '법도'이다.) 만들어 주어야 하고, [도량이 너무] 협애하고 편소하다면(狹隘褊小, 狹과 隘는 모두 '좁다'는 뜻으로, 狹隘는 '마음이 좁다', '속이 좁다', '도량이 좁다'는 의미다. 褊小도 같다. 褊은 '좁다', 小는 '작다'는 뜻으로, 褊小 역시 '도량이 좁다'는 말로 사용된다.) [아량을] 넓히고 키워서(廣大) 도량을(之) 너그럽게(廓, '너그럽다', 廓에는 '넓히다', '키우다'는 뜻도 있지만, 그렇게 보면 廣大와 의미가 겹치므로 '너그럽다'라고 번역했다.) 만들어 주어야 하며, [의지 문제가 있어서] 비습하고(卑溼, '낮고 습하다', 주로 '땅이 낮고 습한 것'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기》 「굴원가생열전」에서 長沙卑溼이라고 하였고, 「원앙조조열전」과 「남월열전」에는 南方卑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땅이 낮고 습하다는 것은' 단점이다. 《사기》, 《한서》, 《후한서》에서 卑溼이 모두 장강 이남을 주로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것은, 당시 강남 지역이 개발되지 않아서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溼, 즉 땅이 습하게 된 것은, 땅이 낮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낮아야 물이 모이기 때문이다. 결국 溼도 '낮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郝懿行은 卑溼을 卑下라고 했고, 王念孫 역시 志意가 卑下, 즉 '의지가 낮다'는 뜻이라고 했다. 郝懿行과 王念孫이 타당하다. 나는 '의지가 박약한 모습'이라고 이해하였다.), 중지하며(重遲, 重은 '무겁다', 遲는 '더디다'는 뜻이다. 《사기》 「혹리열전」에 重遲라고 하였으니, '신중하고 판단이 느리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굼뜬 모습', '느릿느릿한 모습'을 뜻할 것이다.), 탐리한다면(貪利, '잇속을 탐하다'), 마음을 고취시켜서(高志) 의지를(之) 견인해 주어야(抗, '나아가게 하다', '들어 올리다', '돕다', 王念孫은 舉, 즉 '들어 올리다'라고 하였는데, '의지가 낮다'는 뜻에 반대되므로 여러 뜻 중 가장 타당하다.) 한다.

 

[재주가] 용중하면서도(庸衆, 庸은 '평범하다', 衆은 '많은 사람들'을 이른다. 그러므로 衆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다'는 말이다.) 노산하려 든다면(駑散, 駑은 '둔하다', '노둔하다', '어리석다', '느리다'는 말이다. 楊倞은 散을 不拘檢이라 하여, '경계하고 단속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자기 멋대로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駑散은 '어리석어서 자기 멋대로 군다'라는 뜻이 된다. 나는 楊倞을 따른다.), 스승과 벗을 붙여서(師友) 용중함과 노산함을(之, 앞의 여섯 문구를 고려하면 之는 이 문구에서 따지고 있는 '사람됨'을 가리켜야 하지만, 술어가 刦이기 때문에 이 之는 문맥상 庸衆駑散을 가리켜야 한다. 문장 구조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의뭉스럽다.) 없애 버려야(刦, 원래는 '빼앗다', '으르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을러서 쫓아 버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庸衆駑散함을 없애 버리는 것'을 뜻한다.) 하고, 태만하고(怠慢, '게으르다') 표기하다면(弃, 楊倞은 僄를 輕, '경박하다'고 했다. 弃는 棄와 같은데, '버리다' 외에도 '경시하다', '가볍게 여기다'는 뜻이 있다. 《춘추좌씨전》 「환공」에 隨張/必棄小國이라 하였으니, '수나라가 자만하면 반드시 주변 소국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즉, 弃는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경박하게 여겨서 멋대로 해 대는 것'을 이른다.) 태만하고 표기한 행동 때문에(之, 怠慢僄弃) 화와 재앙을 당할 수 있음을(禍災) 일깨워 주어야(炤, '조'로 읽는다. '비추다', '밝게 하다'는 뜻이다. '어떤 사실을 비추어 준다'는 말은 '상기시키다', '일깨워 주다'는 뜻이다.) 한다. [끝으로, 됨됨이가] 우관단각하다면(愚款端愨, 이 네 글자는 怠慢僄弃 등과 달리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款은 誠으로, '진정성이 있다'는 말이고, 端은 '단정하다', '올바르다'는 의미이며, 愨은 '성실하다'이다. 따라서 愚도 '어리석다' 보다는 '융통성이 없다', '우직하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즉, 愚款端愨은 '요령은 없는데 기본은 된 모습'을 뜻한다.) 예악을 가지고(禮樂, 《장자 내편》 「대종사」에서는 顏回가 坐忘하면서 仁義와 禮樂을 잊었다고 하였는데, 仁義를 잊은 것을 好라고 하였고, 禮樂을 잊은 것을 無常이라고 하였다. 즉, 禮樂은 常이다. 常은 法으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법도'를 뜻한다. 즉, 禮樂은 '제도'이다. 사람이 성실한데 요령이 없다면, 세상의 제도를 가지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관단각함이(之, 愚款端愨)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잘] 맞도록 다듬어(合, '합치되다') 주고, 깊게 생각하게 하여(思索) [세상 돌아가는 모습과 잘] 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通) 주어야 한다.(愚款端愨/則合之以禮樂 다음에 通之以思索이 붙어 있는데, 사실 이 말은 불필요하기도 하고, 通之以思索 때문에 지금까지 기술되었던 8개 구문과 비교했을 때도 형식이 맞지 않게 된다. 《한시외전》에도 通之以思索이라는 말은 없다. 또한 楊倞도 通之以思索에 대해 기술하지 않았다. 俞樾은 이를 근거로 通之以思索이 적어도 楊倞 보다 후대에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가짐]을 길러 내는 방법[은 그 구체적인 내용]이(治氣養心之術) 어떻든 간에(凡, '모두') 예법을 따르는 것 만큼 빠른 방법이 없고(莫徑由禮, 徑은 '지름길'이다.), 모범으로 삼을 사람을 구하는 것 만큼 중요한 방법이 [또] 없으며(莫要得師, 師는 「권학」에 나왔던 其人과 같다. 師는 '스승'이기도 하지만, '모범으로 삼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훌륭한 사람에게 본 받는 것'을 뜻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력하기를] 즐기는 것 만큼 신묘한 방법이 [다시] 없도다.(莫神一好, 神은 '신묘하다', '신비하다', 一은 '전일하다', '한결같다', '일관되다') 무릇(夫) 이것이야말로(是, 상기한 9가지 해법과 由禮, 得師, 一好를 뜻한다.)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가짐]을 길러 내는 방법이라 할 만하겠다.

 

[이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잘 수양하였다고 하자. 그래서] 지의가 [제대로] 닦였다면(志意修, 志意는 意志, 즉 '의지'를 뜻한다. 만약 修志意였다면 '지의를 닦으면'이 되겠지만, 志意修이기 때문에 '지의가 닦였다면'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부유하거나 존귀한 자들 앞에서도 씩씩하게 있을 수 있고(驕富貴, 이 다음에 王公이 나오기 때문에, 富貴는 '부귀'가 아니라 '부귀한 사람'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驕는 '교만하다', '경시하다'는 뜻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말로 사용되었다. '주눅들지 않는다', '씩씩하다'라고 해석해야 가장 타당하다.), 도의가 [충분히] 두텁다면(道義重, 道義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리'이다.) 왕공[처럼 높은 자들]조차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길 수 있다.(輕, '경시하다') [왜 그럴까. 사람이 자기] 내면을 [잘] 돌아 볼 줄 알게 되면(內省, 省은 '돌아 보다', '살피다', '반성하다', 여기서는 修身을 뜻한다.), 외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外物輕, 輕은 '가볍다', '경시하다', 앞의 驕와 같다.) [이에 대해] 내려 오는 말이 있다.(傳曰)

 

"군자는 [외]물을 좌우하고, 소인은 [외]물에게 좌우된다.(君子役物/小人役於物, 物은 外物로, 앞에 나온 富貴와 王公을 뜻한다. 役은 본래 '일을 시키는 것', '부리다'를 뜻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주체성'이 있거나 없는 것을 뜻하므로 나는 '좌우하다'라고 번역했다. 小人은 富貴한 사람이나 王公 앞에서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君子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