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1 - 학이 - 9 - 신종추원

2024. 4. 11. 02:04논어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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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11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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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9 - 신종추원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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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子曰:

「慎終追遠,民德歸厚矣。」

 

 

 

증자가 말했다.(曾子曰, ◈ 曾子는 孔子의 제자인 曾參이다. 曾子에 대해서는 「學而」 4장인 吾日三省吾身 부분에서 상세히 설명하였었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지금의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 蜀虎案 : 이 장에서는 제후가 상례나 장례를 치를 때, 禮를 갖추고, 알맞은 마음을 보이면, 백성들도 그 德에 감화되어서, 백성들의 德 역시 두터워질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상례를 신중하게 지내고, 제사를 극진하게 지내면, 백성들의 덕도 마침내 두터워질 것이다.”(愼終追遠/民德歸厚矣, ◈ 愼終은 ‘상례를 조심해서 지내다’, ‘상례를 신중하게 지내다’는 말일 것이다. 愼은 용언으로, 아마 ‘삼가 하다’, ‘신중하게 하다’, ‘조심해서 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終을 받는다. 終은 본래 ‘마치다’, ‘끝나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체언으로, ‘마치는 것’, ‘끝나는 것’, 즉 ‘죽음’을 뜻한다. 《禮記》 「檀弓 上」에서 子張이 君子曰終/小人曰死, ‘君子는 終이라고 하고, 小人은 死라고 한다’라고 한 말이 있다. 死가 일반적인 표현일 것이고, 終은 보다 격식 있는 표현일 것이다. 그에 대해 鄭玄은 死之言澌也//事卒爲終/消盡爲澌, ‘死는 澌라는 뜻이다. 사명을 마쳤으니 終이라고 하고, 생명이 소진되었으니 澌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澌는 ‘다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심해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본문의 終은 ‘상례’를 이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子張이 終을 ‘죽음’이라는 말로 사용한 점을 보면, 子張과 같은 세대였을 曾子 역시 終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아마 당대 사람들 사이에 사용되었던 표현이었을 듯하다. 愼終 중 終이 ‘상례’라면, 愼은 무엇을 뜻할까. 아마 슬픈 마음을 다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을 것이고, 상례에 대한 禮를 잘 지킨다는 의미도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孔安國과 皇侃은 슬픈 마음을 극진하게 한다고 풀이했고, 邢昺은 슬픈 마음도 다하거니와, 禮法도 잘 지켜야 한다고 했다. 朱熹는 禮法만 언급했다. ▼ 孔安國은 愼終者/喪盡其哀, ‘愼終이라는 말은 상을 치를 때, 슬픈 마음을 극진히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劉寶楠은 이 주석에 대해, 祭統云/是故孝子之事親也/有三道焉/生則養/歿則喪/喪畢則祭//養則觀其順也/喪則觀其哀也/祭則觀其敬而時也//盡此三道者/孝子之行也///是喪當盡哀/祭當盡敬//然此文愼終/不止以盡哀言//禮/雜記云/子貢問喪//子曰/敬爲上/哀次之/瘠爲下///敬與謹同/即此文所云愼也//言君者/以曾子言民德/民是對君之稱/蓋化民成俗/必由在上者有以導之也, ‘「祭統」에 “이처럼, 孝子가 부모를 모시는 데에는 세 가지 도리가 있다. 살아 계실 때에는 모시고, 돌아 가시면 喪을 치르며, 喪이 끝나면 제사를 지낸다. 모실 때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는지를 살피고, 喪을 치를 때에는 자식이 슬퍼하는지를 살피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자식이 공경하는지, 그리고 제사의 때를 맞추는지를 살핀다. 이 세 가지 도리를 극진히 하는 일이 바로 孝子의 행동거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喪을 치를 때에는 마땅히 극진하게 슬퍼해야 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는 마땅히 극진하게 공경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글의 愼終은 극진하게 슬퍼하는 데에 그친다는 말이 아니다. 《禮》 「雜記」에 “子貢이 喪에 대해 물었다. 孔子가 대답했다. ‘공경하는 일이 우선이고, 슬퍼하는 일은 다음이며, 수척해지는 일은 나중이다’”라는 말이 있다. 敬과 謹은 의미가 같은데, 이것이 곧 이 글에서 愼이라고 하는 말의 뜻이다. 주석의 君能行此二者에서 군주라고 하며 설명한 까닭은, 曾子가 백성들의 德을 언급했는데, 백성이라는 말은 군주와 대응되는 말이므로, 아마 백성들을 교화해서 풍속을 개선한다면, 이는 분명 군주의 자리에 있는 자가 백성들을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祭統」은 《禮記》의 편이다. 《禮》 「雜記」는 《禮記》 「雜記 下」를 이른다. ▼ 皇侃은 愼終/謂喪盡其哀也//喪爲人之終//人子宜窮其哀戚/是愼終也, ‘愼終은 상을 치를 때 슬픈 마음을 극진하게 한다는 말이다. 자식은 마땅히 슬픈 마음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愼終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終/謂父母之喪也//以死者人之終/故謂之終//執親之喪/禮須謹愼盡其哀也, ‘終은 부모의 초상을 이른다. 죽음으로써 사람이 끝나니, 그래서 終이라고 한다. 부모의 상을 치르는 동안, 禮는 모름지기 謹愼해야 할 것이요, 슬픈 마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愼終者/喪盡其禮, ‘愼終이라는 말은 상을 치를 때 禮를 극진히 지킨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爾雅/釋詁/愼/誠也///說文/愼/謹也///誠謹義同//周官/疾醫/死終則各書其所以///鄭注/老死曰終///禮記/檀弓云/君子曰終/小人曰死///此對文異稱//檀弓又云/曾子曰/喪三日而殯/凡附於身者/必誠必信/勿之有悔焉耳矣//三月而葬/凡附於棺者/必誠必信//勿之有悔焉耳矣///皆是言愼終之事, ‘《爾雅》 「釋詁」에는 “愼은 誠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說文》에는 “愼은 謹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誠과 謹은 의미가 같다. 《周官》 「疾醫」에는 “死終하면 각각 까닭을 기록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늙어서 죽은 것을 終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에는 “君子에 대해서는 終이라 하고, 小人에 대해서는 死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글들에서 가리키는 바가 서로 다르다. 「檀弓」에서는 또 “曾子가 말했다. ‘喪을 치를 때는, 사흘 뒤에 殯한다. 시신에 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 반드시 성의를 다하고, 신실하게 하여,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3개월 뒤에는 장사를 지내는데, 관에 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 반드시 성의를 다하고, 신실하게 하여,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본문의 愼終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는 允/愼/亶/誠也, ‘允, 愼, 亶은 誠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誠은 ‘진정’, ‘진실로’라는 말이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愼은 「心部」에 기재되어 있다. 《周官》 「疾醫」는 《周禮》 「天官冢宰」의 일부다. 鄭玄은 老死曰終가 아니라, 少者曰死/老者曰終, ‘젊은 경우를 死라고 하고, 늙은 경우를 終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의미는 老死曰終과 같다. 君子曰終/小人曰死이 기재되어 있는 「檀弓」은 「檀弓 上」을 이른다. 喪三日而殯 이하 인용문이 기재되어 있는 「檀弓」 역시 「檀弓 上」인데, 曾子가 아니라 子思의 말이라고 되어 있다. ◈ 追遠은 ‘제사를 극진하게 지내다’는 말일 것이다. 追는 용언으로, ‘추모하다’, ‘그리워하다’는 말일 것이다. 遠을 받는다. 遠은 본래 ‘멀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체언으로 아마 ‘부모가 죽은 지 오래된 상태’를 이르는 말 같다. 孔安國, 皇侃, 朱熹는 遠을 따로 풀이하지 않고 다만 追遠을 합쳐서 ‘제사’라고 설명하였고, 邢昺은 遠을 ‘부모가 죽어 장례를 치른 지 오래된 상태’라고 설명하였다. 劉寶楠도 邢昺처럼 설명하였다. 邢昺, 劉寶楠의 설이 타당한 듯하다. 즉, 追遠은 ‘죽은 지 오래된 부모를 추모하다’, ‘죽은 지 오래된 부모를 그리워하다’는 뜻이다. 부모를 추모하면서 하는 행위가 무엇인가. 무덤 앞에서 우는 일일까. 아니다, 바로 제사다. 즉, 이 追遠은, 본래 ‘부모를 추모하다’는 말이지만, 앞의 愼終과 對를 맞추어, ‘제사를 극진하게 지내다’와 같이 의역할 수 있겠다. 추모하는 마음도 가져야 할 것이고, 또 제사에 대한 禮法도 잘 지켜야 할 것이다. 다만, 愼終의 경우, 그 부분에 인용해 두었듯이, 終이 ‘죽음’을 뜻한다는 데에는 문헌적 증거가 있었다. 그러면 追遠은 어떨까. 遠에 대해서는 邢昺과 劉寶楠이 이미 설명하였다. 追에 대해서도, 追가 고대에 ‘제사’와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있다. 《周禮》 「春官宗伯」에 追享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鄭玄은 追享/謂追祭遷廟之主/以事有所請禱, ‘追享은 遷廟의 主를 추모하고 제사지냄으로써, 청하는 바에 힘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鄭司農, 즉 鄭衆은 追享에 대해 追享/朝享/謂禘祫也, ‘追享과 朝享은 禘祫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禘祫은 조상들을 합쳐서 함께 제사지내는 일을 이른다. 이는 劉寶楠도 언급하였다. ▼ 孔安國은 追遠者/祭盡其敬, ‘追遠이라는 말은, 제사를 지낼 때, 공경하는 마음을 극진히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追遠/謂三年之後爲之/宗廟祭盡其敬也//三年後去親轉遠/而祭極敬/是追遠也//一云/靡不有初/鮮克有終/終宜愼也//久遠之事録而不忘/是追遠也, ‘追遠은 3년 뒤에 하는 것으로,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공경하는 마음을 극진하게 한다는 말이다. 부모를 떠나 보낸 지 3년이 지나면 한 층 더 멀어지는데, 이에 제사를 지내며 극진하게 공경하는 것이 追遠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이 있지 않은 경우는 없고, 끝이 있을 수 있는 경우는 적다. 그러나 終할 때는 마땅히 삼가야 한다. 모신 지 오래 되었으면서도 기억하고 잊지 않으니, 이것이 追遠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邢昺은 遠/謂親終既葬/日月已遠也//孝子感時念親/追而祭之/盡其敬也, ‘遠은 부모가 죽어서 이미 장례를 지냈는데, 그 때부터 시일이 이미 멀어진 상태를 이른다. 효성스러운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를 느끼고, 부모를 생각하며,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에 공경을 다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追遠者/祭盡其誠, ‘追遠이라는 말은, 제사를 지낼 때 정성을 극진히 들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追遠者/說文/追/逐也///詩/鴛鴦箋/遠/猶久也///並常訓//言凡父祖已歿/雖久遠/當時追祭之也//荀子/禮論云/故有天下者事十世/有一國者事五世/有五乘之地者事三世/有三乘之地者事二世///又周官/司尊彜/言四時追祀/有追享//鄭康成注以爲/祭遷廟之主///則此文追遠/不止以父母言矣, ‘追遠에 대한 풀이다. 《說文》에는 “追는 뒷따르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고, 《詩》 「鴛鴦」에 대한 箋에서는 “遠은 久와 같다”라고 하였다. 모두 일반적인 풀이다. 부친이나 조부가 이미 돌아가셨다면, 비록 그 시기가 오래되었더라도, 마땅히 때에 따라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荀子》 「禮論」에 “이처럼 天下를 가진 자는 열 세대를 섬기고, 한 나라를 가진 자는 다섯 세대를 섬기며, 병거 다섯 乘 만큼의 땅을 가진 자는 세 세대를 섬기고, 병거 세 乘 만큼의 땅을 가진 자는 두 세대를 섬긴다”라는 말이 있다. 또 《周官》 「司尊彜」에는 사철 동안 지내야 할 追祀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데, 이 중 追享이 있다. 鄭康成은 주석에서 “遷廟의 主에 제사지낸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즉, 본문의 追遠은 다만 부모에 대해서만 지낸다는 의미에서 사용한 표현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追는 「辵部」에 기재되어 있다. 《詩》 「鴛鴦」은 「小雅 桑扈之什」에 속해 있다. 箋은 鄭玄의 주석을 이른다. 이 주석은 宜其遐福, ‘그 遐한 福을 宜하다’라는 말에 달려 있다. 鄭玄은 遐/遠也//遠/猶久也, ‘遐는 遠이라는 뜻인데, 遠은 久와 같다’라고 하였다. 《周官》 「司尊彜」는 《周禮》 「春官宗伯」의 일부다. 鄭康成은 鄭玄이다. 康成이 字다. 鄭玄은 追享/謂追祭遷廟之主/以事有所請禱, ‘追享은 遷廟의 主를 추모하고 제사지냄으로써, 청하는 바에 힘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鄭司農, 즉 鄭衆은 追享에 대해 追享/朝享/謂禘祫也, ‘追享과 朝享은 禘祫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禘祫은 조상들을 합쳐서 함께 제사지내는 일을 이른다. 이 역시 참고할 만하다. ◈ 民德은 ‘백성들의 德’이다. 民은 관형어로, ‘백성들의’다. 德을 한정한다. 德은 체언으로, ‘德’이다. 民德은 명사구로, 民德歸厚矣의 주어 역할을 하고 있다. ▼ 劉寶楠은 德에 대해, 樂記云/德者/性之端也///淮南子/齊俗訓/得其天性謂之德, ‘「樂記」에는 “德은 性의 단서다”라는 말이 있다. 《淮南子》 「齊俗訓」에는 “타고난 性을 깨닫는 일, 이를 德이라 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樂記」는 《禮記》의 편이다. ◈ 歸는 아마 부사어로, ‘결국’, ‘마침내’, ‘끝내’라는 말일 것이다. 厚를 한정한다. 劉寶楠은 이 글을, 당시 사람들이 부모에게 각박하게 구는 경우가 많아서, 제후가 愼終과 追遠을 통해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사람들도 옛날처럼 부모에게 孝할 것이라고 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歸가 ‘마침내’, ‘결국에는’이라는 의미라는 점이 더욱 타당하다. 歸와 厚를 모두 용언으로 보고, ‘귀부해 오고 후해질 것이다’처럼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문장이 다소 어색해져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내 생각에는 復처럼, ‘다시’라고 번역해도 좋을 듯한데, 그러한 사례를 찾을 수 없어서 언급만 하고 유보해 둔다. 《孟子》 「萬章 上」에 聖人之行不同也/或遠或近/或去或不去/歸潔其身而已矣, ‘聖人의 行은 일률적이지 않다. 遠하기도 하고, 近하기도 하며, 去하기도 하고, 去하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歸 자기 자신을 潔하게 될 뿐이다’라는 말이 있고, 《後漢書》 「劉焉袁術呂布列傳」에 雖假符僭稱/歸將安所容哉, ‘符를 假하여 참칭하더라도, 歸 앞으로 누가 용인해 주겠느냐’라는 말이 있다. 이 글들에서 歸은 모두 ‘마침내’, ‘결국에는’처럼 해석된다. 이 사례들은 모두 金元中의 《한문 해석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 劉寶楠은 穀梁/僖二十八年傳/歸者/歸其所也, ‘《穀梁》 「僖」 28년의 傳에는 “歸는 자기 자리로 돌아 간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穀梁》 「僖」은 《春秋穀梁傳》 「僖公」을 이른다. ◈ 厚는 용언으로, ‘두터워지다’, ‘넉넉해지다’, ‘도타워지다’, ‘후해지다’는 말이다. 백성들의 德이 옛 시대처럼 ‘두터워질 것이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당시에는 백성들이, 그리고 백성들의 德이 아주 각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劉寶楠은 墨子/經上/厚/有所大也, ‘《墨子》 「經 上」에는 “厚는 크기가 있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矣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다. ◈◈ 孔安國은 君能行此二者/民化其德/皆歸於厚也, ‘군주가 이 두 가지를 이행할 수 있다면, 백성들은 그 德에 감화되어, 모두 성품이 후덕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此是前通也, ‘이 주석은 앞의 글들과 의미가 통한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明人君德也, ‘군주의 德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또, 愼終追遠에 대해 故熊埋云/欣新忘舊/近情之常//累信近負遠義/士之所棄//是以愼終如始則尠有敗事/平生不忘則久人敬之也, ‘이에 대해 熊埋는 “새로운 일을 기뻐하고, 오래된 일을 잊는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 감정에 가깝다. 오랫동안 信하다가도, 負를 가까이 하고, 義를 멀리 하니, 선비들이 쉽게 방기하는 바이다. 이 때문에 처음 그러하였던 것처럼 愼終하면, 일을 망치는 경우가 적을 것이요, 그렇게 하기를 평생토록 잊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民德歸厚矣에 대해서는, 上之化下如風靡草/君上能行愼終追遠之事/則民下之德日歸於厚也//一云/君能行此二事/是厚德之君也//君德既厚/則民咸歸依之也, ‘윗사람이 化하면, 아랫사람은 바람 앞의 풀과 다를 바가 없다. 군주가 愼終하고 追遠할 수 있다면, 백성들의 德도 나날이 두터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군주가 이 두 가지 일을 실천할 수 있다면, 德이 두터운 군주일 것이다. 군주의 德이미 이미 두터우니, 백성들도 모두 그 군주에게 귀의해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邢昺은 此章言民化君德也, ‘이 장에서는 백성들이 군주의 德에 감화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또, 民德歸厚矣에 대해, 言君能行此愼終追遠二者/民化其德/皆歸厚矣//言不偷薄也, ‘군주가 이 愼終, 追遠 두 가지를 실천할 수 있으면, 백성들은 군주의 德에 감화되어, 모두 마음을 후덕하게 먹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백성들이 야박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라 할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民德歸厚에 대해 民德歸厚/謂下民化之/其德亦歸於厚, ‘民德歸厚라는 말은, 비천한 백성들이 감화되어, 백성들의 德 또한 돈후한 경지로 돌아 갈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또 전체 내용에 대해 蓋終者/人之所易忽也/而能謹之//遠者/人之所易忘也/而能追之//厚之道也//故以此自爲/則己之德厚/下民化之/則其德亦歸於厚也, ‘대체로 終은, 사람이 소홀히 하기 쉬운 바이지만, 도리어 삼가야 하고, 遠이라는 것은 사람이 잊기 쉬운 바이지만, 도리어 염두에 두여야 한다. 익서이 德이 돈후해지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를 스스로 이행한다면, 자신의 德이 돈후해질 것이요, 비천한 백성들도 감화될 것이니, 백성들의 德 역시 돈후한 경지로 돌아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중 能은 ‘~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 劉寶楠은 當春秋時/禮敎衰微/民多薄於其親/故曾子諷在位者/但能愼終追遠/民自知感勵/亦歸於厚也//禮/坊記云/修宗廟/敬祭祀/敎民追孝也///又祭統云/夫祭之爲物大矣/其興物備矣/順以備者也/其敎之本與//是故君子之敎也/外則敎之以尊其君長/內則敎之以孝於其親//是故明君在上/則羣臣服從//崇事宗廟社稷/則子孫順孝//盡其道/端其義/而敎生也/是故君子之敎也/必由其本//順之至也/祭其是與/故曰/祭者/敎之本也與, ‘春秋時代 때는 禮法과 교화가 쇠미해져서, 백성들 중, 자기 부모에게 박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曾子는 제후들이 다만 愼終하고 追遠할 수 있기만 하더라도, 백성들이 스스로 깨달아 고무될 것이요, 또 厚에게 귀부해 올 것이라는 점을 제후들에게 풍간한 것이다. 《禮》 「坊記」에는 “종묘를 修하고, 제사를 공경스럽게 지내는 일은 백성들에게 追孝를 가르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祭統」에는 “대저, 제사에 사용하는 物은 중요하다. 제물을 준비하고, 禮에 따라 준비하는 일, 그런 것이 교화의 근본이 아니겠느냐. 이런 까닭에, 君子는 교화할 때, 밖으로는 군주와 어른을 존숭하도록 가르치고, 안으로는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이유로, 명군이 재위하고 있으면 신하들이 복종하는 것이다. 종묘와 사직을 잘 모시면, 자손들도 順孝하게 된다. 그 도리를 다하고, 그 義를 올바로 하면, 교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고로, 君子는 교화할 때, 반드시 근본에 근거한다. 禮를 지극하게 이행하는 행위, 제사가 이런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앞에서 祭가 교화의 근본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던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禮》 「坊記」는 《禮記》 「坊記」를 이른다. 「坊記」에는 敬祭祀가 아니라 敬祀事라고 되어 있다. 의미는 같을 것이다. 「祭統」은 《禮記》의 편이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喪盡其哀에 대해, 皇本/哀下有也字/下其敬下同, ‘《皇侃本》에는 哀 다음에 也가 있다. 다음에 있는 其敬 다음에도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愼終者/喪盡其哀//追遠者/祭盡其敬가 愼終者/喪盡其哀也//追遠者/祭盡其敬也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 孔安國의 주석 중 君能行此二者에 대해, 皇本/君上有人字, ‘《皇侃本》에는 君 앞에 人이 있다’라고 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皆歸於厚也에 대해, 皇本/皆上有而字, ‘《皇侃本》에는 皆 앞에 而가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劉寶楠은 이 글을 이렇게 분석했다. 曾子가 살았던 당시에 禮法과 敎化가 쇠미해져서, 백성들이 부모에게 각박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曾子는 제후들이 愼終과 追遠, 즉 상례를 신중하게, 그리고 제사를 극진하게 지냄으로써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그리하여 백성들이 다시 부모에게 孝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맥락을 고려할 때 劉寶楠의 설명이 가장 타당하다. 愼하고, 追해야 하는 까닭을 생각한다면 皇侃의 설명이 가장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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