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1 - 학이 - 11 - 부재관기지

2024. 4. 14. 00:46논어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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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14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주석을 따로 보고 싶은 분들은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325

 

<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11 - 부재관기지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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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공자가 말했다.(子曰, ◈ 子는 孔子를 이른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지금의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 蜀虎案 : 이 장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효자’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장의 초점은 부친의 뜻이나, 부친의 방식이 아니라, 자식이 부친의 뜻과 방식을 이행하는지, 그리고 이어 나가는지에 맞춰져 있다.)

 

“[자식이 효자인지를 살피려면, 부친의 뜻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부친이 살아 있을 때는 자식의 뜻을 살핀다.”(父在觀其志, ◈ 이 장은 보통 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을 묶어서 보고,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를 묶어서 본다. 孔安國 역시 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에 대해 주석을 기술하고,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에 대해 다시 주석을 기술하였다. 皇侃, 邢昺 모두 그렇게 해설하고 있다. 尹焞, 游酢, 劉寶楠은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에 초점을 맞추어 해설하였는데, 이 역시 앞의 학자들과 동일하다. 내 생각에는, 제일 앞의 句인 父在觀其志를 따로 보고, 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를 함께 보아야 할 듯하다. 이 장에서 孔子는 어떤 사람이 효자인지를 판단하려면, 어떤 점을 살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父在觀其志는 부친이 살아 있을 때 효자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이고, 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는 부친이 죽었을 때 효자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이 장 마지막 부분에 기재해 두었다. 나는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로 句를 나누되, 편의상 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에 대한 옛 학자들의 주석은 父在觀其志 부분에,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에 대한 옛 학자들의 주석은 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부분에 기재해 두었다. ◈ 父在觀其志는 父在則觀其志, ‘父在하면 觀其志한다’처럼 해석해야 한다. ◈ 父는 체언으로, ‘아버지’, ‘아빠’, ‘부친’이다. ◈ 在는 용언으로, ‘살아 있다’, ‘살아 계시다’는 말이다. 父沒觀其行의 沒과 대조된다. ▼ 劉寶楠은 爾雅/釋詁/在/存也///說文同, ‘《爾雅》 「釋詁」에는 “在는 존재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說文》에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는 徂/在/存也, ‘徂, 在는 存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在는 「土部」에 기재되어 있다. ◈ 觀은 용언으로, ‘자세히 보다’, ‘살피다’는 말이다. 觀察이라고 할 때의 觀과 같다. 其志를 받는다. ▼ 劉寶楠은 又/觀/諦視也///穀梁/隱五年傳/常視曰視/非常曰觀, ‘《說文》에는 또, “觀은 상세하게 보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穀梁》 「隱」 5년의 傳에는 “일상적으로 보는 일을 視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고, 또 “일상적이지 않게 보는 일을 觀이라 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觀은 「見部」에 기재되어 있다. 《穀梁》 「隱」은 《春秋穀梁傳》 「隱公」이다. 常視曰視은 「隱公」 5년에 常事曰視라고 되어 있다. 常事曰視, 非常曰觀은 《春秋穀梁傳》 「莊公」 23년 기사에도 나온다. ◈ 其志의 其는 父의 자식을 가리킨다. ▼ 皇侃은 其/其於人子也, ‘其는 자식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 志는 체언으로, ‘뜻’, ‘의향’을 이른다. ▼ 皇侃은 志/謂在心未行也//故詩序云/在心爲志///是也, ‘志는 마음에 품고 있되, 아직 이행하지 않은 바를 이른다. 《詩》 「序」에 “마음에 품고 있는 바를 志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뜻이다’라고 하였다. 《詩》 「序」는, 《毛詩》의 「序」를 이른다. 「序」에는 詩者/志之所之也/在心爲志/發言爲詩, ‘詩라는 것은, 志가 이르는 바이다. 마음에 품고 있는 바를 志라고 하고, 말로 표현된 바를 詩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序」는 子夏가 썼다는 말도 있고, 東漢의 衛宏이 썼다는 말도 있다. 아마 衛宏의 글일 것이다. ▼ 邢昺은 在心爲志, ‘마음에 담아 둔 것을 志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毛詩/序/在心爲志///廣雅/釋詁/志/意也, ‘《毛詩》 「序」에는 “마음에 품고 있는 바를 志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廣雅》 「釋詁」에는 “志는 뜻이라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孔安國은 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에 대해, 父在/子不得自專/故觀其志而巳//父沒乃觀其行, ‘부친이 살아 있으면, 자식은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래서 부친의 뜻을 살핀다고 하였을 뿐이다. 부친이 죽으면 이에 자식의 행위를 살필 수 있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孔安國의 주석 중 觀其志에 대해 志若好善/聞善事便喜//志若好惡/聞善則不喜也, ‘志가 善을 좋아한다면, 善을 듣고 모시면서 즐거워할 것이요, 志가 만약 惡을 좋아한다면, 善을 듣고도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고, 觀其行에 대해 得專行也, ‘자식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에 대해, 此明人子之行也, ‘이 글에서는 자식의 행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고, 또 言人子父在/則己不得專行/應有善惡/但志之在心//在心而外/必有趣向意氣/故可觀志也//父若已沒/則子得專行無憚/故父沒則觀此子所行之行也, ‘자식에게, 부친이 살아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고, 善이나 惡에 대해서도 자식 본인의 판단은 마음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바가 밖으로 드러나면, 반드시 의지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그래서 그 志를 살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부친이 만약 이미 죽었다면, 자식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또 거리낄 바도 없다. 그래서 부친이 죽으면 그 자식의 행동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此章論孝子之行, ‘이 장에서는 효성스러운 자식의 행동거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또, 父在觀其志에 대해서 父在/子不得自專/故觀其志而己, ‘부친이 살아 있을 때는, 자식이 자기 멋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志를 살피면 될 뿐이다’라고 하였고, 父沒觀其行에 대해서는 父沒可以自專/乃觀其行也, ‘부친이 죽으면 자식이 멋대로 할 수 있으니, 이에 그 행실을 살피면 된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父沒乃觀其行에 대해, 皇本/行下有也字/下之道下同, ‘《皇侃本》에는 行 다음에 也가 있다. 아래에 나오는 之道 다음에도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父沒乃觀其行이 父沒乃觀其行也로, 그리고 無所改於父之道가 無所改於父之道也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 蜀虎案 : 부친이 살아 있을 때 자식이 효자인지를 살피려면, 자식이 부친의 뜻을 어기지 않고 잘 따르는지를 살핀다는 말이다. 부모를 따르고, 거스르지 않는 태도가 바로 孝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말 이어짐>

 

“[그러나 부친이 죽으면, 자식이 이행할 부친의 뜻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에는 자식이 부친의 방식을 이어 가는지를 살펴야 한다. 따라서] 부친이 죽었을 때는 자식의 행실을 살피는데, [자식이] 3년 동안 부친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효자라고 할 수 있겠다.”(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 父沒觀其行은 父沒則觀其行, ‘父沒하면 觀其行한다’처럼 해석해야 한다. ◈ 父는 체언으로, ‘아버지’, ‘아빠’, ‘부친’이다. ◈ 沒은 용언으로, ‘죽다’는 말이다. 父在觀其志의 在와 대조되고 있다. 이 沒은 원래 ‘물에 빠지다’라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아마 歿의 가차자로 사용된 것 같다. 歿도 ‘죽다’는 말이다. 글자의 모양이 비슷해서 혼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沒은 옛날부터 ‘죽었다’는 말로 사용되었다. 《爾雅》 「釋親」에 姑舅在則曰君舅君姑//沒則曰先舅先姑, ‘姑와 舅가 在하면 君舅, 君姑라고 부르고, 沒하면 先舅, 先姑라고 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爾雅》에도 沒과 在가 ‘죽었다’, ‘살아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禮記》 「玉藻」에는 父歿而不能讀父之書/手澤存焉爾//母歿而杯圈不能飲焉/口澤之氣存焉爾, ‘부친이 歿하면 부친의 글을 읽을 수 없으니, 手澤이 存하기 때문이요, 모친이 歿하면 杯圈으로 마실 수가 없으니, 口澤의 기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고, 《大戴禮記》 「曾子大孝」에는 父母既歿/愼行其身, ‘父母가 이미 歿하였다면, 자기 행실을 조심한다’라는 말이 있고, 《大戴禮記》 「曾子疾病」에는 親戚既歿/雖欲孝/誰爲孝, ‘親戚이 이미 歿하였다면, 孝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 孝하겠느냐’라는 말이 있다. 이 글들에서 歿은 모두 ‘죽다’, ‘죽었다’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 劉寶楠은 說文/歾/終也///𣨏/歾或從𠬸/今字作歿//隸體小變/𣴬/沈也///別一義/蓋叚借也, ‘《說文》에는 “歾은 終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歾은 간혹 𠬸이 들어가서 𣨏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나, 지금은 歿이라고 쓴다. 《隸體小變》에는 “𣴬은 가라앉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따로 있는 의미일 것이고, 아마 가차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隸體小變》은 아마 책 이름인 듯한데, 어떤 책인지 모르겠다. ◈ 觀은 용언으로, ‘자세히 보다’, ‘살피다’는 말이다. 觀察이라고 할 때의 觀과 같다. 其行을 받는다. ◈ 其行의 其는 父의 자식을 가리킨다. ◈ 行은 체언으로, ‘행동거지’, ‘행위’, ‘행실’을 이른다. ▼ 朱熹는 行/去聲, ‘行은 去聲으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禮/坊記注/行/猶事也, ‘《禮》 「坊記」의 주석에는 “行은 事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禮》 「坊記」는 《禮記》 「坊記」다. 주석은 鄭玄의 주석이다. 이 주석은 無辭而行情則民爭, ‘사양하지 않고 뜻한 바를 情을 行한다면, 백성들이 다툴 것이다’라는 말에 달려 있다. ◈ 三年는 부사어로, ‘3년 동안’, ‘세 해 동안’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왜 하필 3년일까. 君子라면, 부모가 죽은 지 적어도 3년 동안은 부모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陽貨」에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宰我가 三年之喪/期已久矣, ‘삼년상은 기한이 너무 길다’라고 하자, 孔子는 食夫稻/衣夫錦/於女安乎,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면, 니가 편안하겠느냐’라고 하였다. 宰我가 그렇다고 하자, 孔子는 女安則爲之//夫君子之居喪/食旨不甘/聞樂不樂/居處不安/故不爲也//今女安/則爲之, ‘니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해라. 君子는 상을 치를 때,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있지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가 않으며, 사는 것도 편하지가 않다. 그래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니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라고 하였다. 宰我에게 孔子가 ‘해라’라고 한 말에는 아마 다소 냉소가 섞여 있었겠으나, 어쨌거나 3년이라는 기준이 이러한 근거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 주석을 참고하면, 孔安國은 이 三年을 在喪, ‘상을 치르는 중’이라고 풀이하였다. 이에 대해 劉寶楠은 注以三年是居喪之期/故云在喪也//宋氏翔鳳/發微說/按七略/春秋經十一卷/出今文家//繫閔公篇於莊公下/博士傳其說曰/子未三年/無改於父之道///傳曰/則曷爲於其封內三年稱子//緣孝子之心/則三年不忍當也///又/漢書/師丹傳/丹上書曰/古者諒闇不言/聽於冢宰/三年無改於父之道///皆以三年就居喪言/與此注同, ‘주석에서는 본문의 3년을, 喪을 치르는 기간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在喪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宋翔鳳의 《發微》에는 “《七略》과 《春秋經》 열 한 권을 살펴 보니, 今文 학파에서 나온 글이다. 「閔公」을 「莊公」 아랫부분에 묶고는, 博士들이 그 말들을 풀이했는데, ‘子는 3년이 되지 않으면, 부친의 道를 고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傳》에는 ‘왜 봉해진 지 3년 안에 子라고 칭하는가. 孝子의 마음 때문에, 子를 맡기를 3년 동안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또, 《漢書》 「師丹傳」에는 師丹이 상서하며, “옛날에는, 상을 치를 때는 말을 하지 않고, 총재의 의견을 들으며, 3년 동안 부친의 道를 바꾸지 않았다”라고 한 말이 적혀 있다. 이 글들에서는 3년을 모두 喪을 치르는 기간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니, 孔安國의 주석과 같다’라고 하였다. 宋翔鳳은 江蘇의 長州 사람으로, 淸나라 嘉慶帝 때의 학자다. 《發微》는 宋翔鳳의 《論語發微》를 이른다. 솔직히 宋翔鳳의 말은 전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傳》은 아마 《春秋公羊傳》을 이르는 듯하다. 그런데 《傳》이라고 인용된 이 글은 「閔公」이나 「莊公」이 아니라, 「文公」 9년에 기재되어 있다. 《漢書》 「師丹傳」은 「何武王嘉師丹傳」에 포함되어 있다. ▼ 尹焞은 如其道/雖終身無改可也//如其非道/何待三年//然則三年無改者/孝子之心有所不忍故也, ‘만약 타당하다면, 죽을 때까지더라도 바꾸지 않아야 옳을 것이다. 만약 타당하지 않다면, 어찌 3년을 기다려야 하겠느냐. 그러한데도, 3년 동안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효자의 마음으로 견딜 수 없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 游酢은 三年無改/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 ‘3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말은, 마땅히 고쳐야 할 바가 있더라도, 고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뜻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年에 대해, 爾雅/釋天/夏曰歲/商曰祀/周曰年/唐虞曰載///郭注解/周曰年/云/取禾一熟///義本說文, ‘《爾雅》 「釋天」에는 “夏나라에서는 歲라고 했고, 商나라에서는 祀라고 했으며, 周나라에서는 年이라고 했고, 唐虞는 載라고 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郭璞은 周曰年에 대해 “벼가 한 번 익는 주기에서 따 왔다”라고 하였다. 이 풀이는 《說文》에 근거한 바이다’라고 하였다. 劉寶楠은 年에 대한 郭璞의 풀이가 《說文解字》에 근거했다고 했는데, 「禾部」의 秊/穀孰也, ‘秊은 곡식이 익다는 뜻이다’를 뜻하는 듯하다. 秊의 속자가 年이다. 劉寶楠은 또 三年에 대해 汪氏中釋三九曰/三年者/言其久也//何以不改也//爲其爲道也//若其非道/雖朝死而夕改可也//何以知其然也//昔者鮌湮洪水/汩陳其五行//彜倫攸斁/天乃不畀洪範九疇/鮌即殛死//禹乃嗣興/彜倫攸敘/天乃畀禹洪範九疇//蔡叔啓商/惎閒王室/其子蔡仲/改行帥德//周公以爲卿士/見之王而命之以蔡//此改乎其父者也//不寧惟是/虞舜側微/父頑母嚚象傲/克諧以孝/烝烝乂/不格姦/只載見瞽瞍/夔夔齊栗/瞽瞍亦允諾//曾子曰/君子之所謂孝者/先意承志/諭父母以道///此父在而改其子者也//是非以不改爲孝也//然則何以不改也//爲其爲道也/三年云者/雖終其身可也//自斯義不明/而後章惇高拱之邪說出矣///案/汪說是也//漢書/五行志/京房/易傳曰/幹父之蠱/有子/考亡咎///子三年不改父道/思慕不皇/亦重見先人之非///南史/蔡廓子興宗傳/先是/大明世奢侈無度/多所造立/賦調繁嚴/征役過苦/至是發詔/悉皆削除//自孝建以來/至大明末/凡諸制度/無或存者//興宗慨然曰/先帝雖非盛德/要以道始終/三年無改古典所貴///二史所言/皆以無改爲孝/不複計及非道//則自漢以來/多不知此義矣//禮/坊記/子云/君子弛其親之過/而敬其美///論語曰/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弛過敬美/正是擇善而從即夫子論孟莊子之孝/不改父臣與政爲難能//亦是以獻子之臣與政/本不須改/而莊子所能繼父業/所以爲孝//若父之道有所未善/而相承不變/世濟其惡/又安足貴乎, ‘汪中은 「釋三九」에서 “3년이라는 말은, 오랜 시간이라는 뜻이다. 왜 改하지 않아야 한다고 할까. 부친의 道를 爲하기 때문이다. 만약 道가 아니라면, 아침에 죽더라도 저녁에는 고쳐야 옳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을까. 옛날에 鮌이 홍수를 湮하여서 五行의 배열을 어지럽혔다. 그러자 彜倫이 무너지고, 이에 하늘이 洪範九疇를 내려 주지 않아, 鮌은 곧 사형을 받아 죽고 말았다. 그런데 禹가 일을 이어서 해내자, 彜倫이 바로잡히고, 하늘이 이에 禹에게 洪範九疇를 내려 주었다. 또, 蔡叔은 商나라를 啓하고, 王室을 미워하였는데, 그 자식인 蔡仲은 행실을 고치고 德을 좇았다. 周公이 蔡仲을 卿士라고 생각하여, 王에게 알현시키고, 蔡에 命하였다. 이 사례는 자기 부친의 업을 고친 사례이다. 어찌 이 사례밖에 없겠는가. 虞舜은 출신이 미천했다. 부친은 완고하고, 모친은 어리석었으며, 象은 교만했다. 그러나 克諧함으로써 효도하고, 烝烝하게 바로잡아, 姦하기에 格하지 않았다. 瞽瞍를 載見하고, 조심스레, 그리고 엄숙하게 대했으니, 瞽瞍 역시 虞舜을 진정으로 믿게 되었던 것이다. 曾子는 ‘君子가 孝라고 하는 바는, 부모의 뜻을 먼저 헤아리고, 그에 따라 처리하며, 부모를 올바른 도리로 이끌어 나가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 글들에서는 부친이 살아 있는데도 자식은 그 도리를 고치고 있다. 이처럼, 부친의 도리를 고치지 않는다고 孝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 본문에서는 왜 부친의 도리를 고치지 말아야 한다고 할까. 부친의 道를 爲하기 때문이다. 3년이라고 하였지만, 비록 자신이 죽어서야 가능할 일이다. 이 때부터 이 글의 의미를 분명히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章惇이나 高拱의 삿된 설이 출몰하고 만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는 汪中의 설이 타당하다. 《漢書》 「五行志」에는 “京房의 《易傳》에는 ‘부친의 사업을 주관하는 일은 아들의 의무이지만, 아들의 잘못을 추궁하지는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아들이 3년 동안 부친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데, 이는 부친을 그리워하여 한가할 틈이 없기 때문으로, 부친의 잘못이 여러 차례 드러나더라도 그렇다”라는 말이 있고, 《南史》 「蔡廓子興宗傳」에는 “이 보다 앞서서, 大明 시대에는 사치하기가 정도가 없었고, 造立한 바가 많았으며, 賦調는 많고 엄격하였고, 征役은 지나쳐 괴로웠다. 이 때에 이르러 조서를 내려서, 모두 감면시켰다. 孝建 때부터 大明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도들이 존치된 경우가 없었다. 蔡興宗은 이에 개탄하며, ‘선제 때는 德이 흥성하지는 못했지만, 일의 시작과 끝을 道에 따라 다듬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옛 제도를 3년 동안 고치지 않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두 가지 사서에서는 모두 고치지 않는 일을 孝라고 간주하고 있고, 도리가 아닌지에 대해서까지는 다시 고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漢나라 이래로 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禮》 「坊記」에는 “孔子가 ‘君子는 부모의 잘못에 관대하니, 그 美를 敬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論語》에 ‘3년 동안 부친의 방식을 바꾸지 않아야, 孝라고 할 수 있겠다’라는 말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잘못에 관대하고, 美를 공경한다는 말이, 바로 좋은 점을 가려 따른다는 뜻이다. 이는 곧 夫子가 孟莊子의 孝에 대해 논하면서, 부친의 신하와 정사를 고치지 않는 일이 해 내기 어렵다고 한 말과 같다. 孟莊子는 孟獻子의 신하와 정사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孟莊子는 그 부친의 사업을 이어 갈 수 있었으며, 그래서 夫子는 이를 孝라고 한 것이다. 만약 부친의 道에 미진한 점이 있더라도, 이어서 고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쁜 점을 고쳐 줄 테니, 또한 어찌 이 주제가 중요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汪中은 江都 사람으로, 淸나라 乾隆帝 때의 학자다. 君子之所謂孝者 이하 曾子의 말은 《大戴禮記》 「曾子大孝」에 나온다. 章惇은 趙宋의 정치인이다. 高拱은 明나라 正德帝, 萬曆帝 때의 정치인이다. 「五行志」는 「五行志 下之上」을 이른다. 京房은 西漢 사람으로, 元帝 때의 학자다. 《易傳》은 아마 京房이 지은 《京氏易傳》을 이를 것이다. 《南史》 「蔡廓子興宗傳」은 「列傳第十九」에 속해 있다. 大明과 孝建은 모두 劉宋의 孝武帝 때 사용했던 연호다. 大明은 457년에서 464년, 孝建은 454년에서 456년을 가리킨다. 孟莊子는 魯나라의 大夫로, 孟獻子의 아들이다. 孟莊子에 대해서는 《論語》 「子張」에 吾聞諸夫子/孟莊子之孝也/其他可能也/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是難能也, ‘내가 夫子에게서 들었는데, 孟莊子의 孝는 다른 것은 쉽지만, 부친의 신하와 부친의 정사를 바꾸지 않는 일이 하기 어렵다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 無는 부정어다. 不과 같다. 改를 한정한다. 아니면, 無를 ‘없다’라는 용언으로 보고, 改於父之道를 받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때는 改於父之道를 명사구로, ‘父之道에서 改하는 일’처럼 해석해야 한다. ◈ 改는 용언으로, ‘고치다’, ‘바꾸다’는 말이다. ◈ 於父之道의 於는 ‘~를’이다. 父之道를 받는다. 즉, 改於父之道는 ‘父之道에서 改한다’라는 말이 된다. 아니면, 於를 乎로 보고, ‘~를’이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그러면 改於父之道는 ‘父之道를 改한다’라는 말이 된다. 모두 의미는 동일하다. 그러면 乎를 어떻게 ‘~를’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論語》 「爲政」에 攻乎異端/斯害也已, ‘異端을 攻하면 해로울 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乎는 ‘~를’이라고 해석된다. ◈ 父之道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라고 해석된다. ◈ 父之道의 道는 체언으로, 아마 ‘방식’을 이를 것이다. 다만 이 道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이 장을 大夫나 제후의 입장에서 풀이한다면, 부친의 자리를 계승한 자식이 부친의 ‘정무적 방침’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道는 일반적인 행동거지에 대한 ‘방식’, ‘도리’라고 해석될 것이다. 皇侃이 道를 ‘정무적 판단’이라고 해석하였다. 孔安國, 邢昺, 朱熹은 모두 일반적인 ‘방식’으로 해석하였다. 劉寶楠은 양측의 입장을 절충해서 해설한 것 같다. 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풀이했다. ▼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道를 風政, ‘정치’라고 풀이했다. ◈ 可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謂를 받는다. ▼ 劉寶楠은 可者/深許之辭//說文/可/肎也, ‘可는 아주 괜찮다고 하는 말이다. 《說文》에는 “可는 옳다고 생각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可는 「可部」에 기재되어 있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표현하다’, ‘~라고 하다’는 말이다. 孝를 받는다. ◈ 孝는 체언으로, ‘孝子’를 이른다. ◈ 矣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다. ◈◈ 孔安國은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에 대해, 孝子在喪/哀慕猶若父存/無所改於父之道, ‘효성스러운 자식은 상을 치르면서, 부친이 살아 있는 것과 같이 슬퍼하고, 그리워하니, 부친의 도리에서 고칠 바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此如後通也, ‘이 글은 뒤의 말과 같이 통한다’라고 하였다. 劉寶楠은 孔安國의 주석 중 哀慕猶若父存/無所改於父之道에 대해, 謂人子居喪/猶若父存時/己仍爲子//若曲禮言居喪之禮/升降不由阼階/出入不當門隧///皆若父存/不敢遽當室也//此說於義似通//然居喪不敢改父之道/喪終自仍宜改//改與不改/皆是恒禮//奚足以見人子之孝/故知此注尙未然也, ‘자식이 喪을 치를 때는, 부친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자식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뜻이다. 「曲禮」에는 喪을 치르는 중에 “오르고 내릴 때에는 阼階를 쓰지 않고, 들어 오고 나갈 때에는 門隧를 當하지 않는다”라고 한 말과 같다. 모두 부친이 살아 있을 때처럼, 室을 감히 거연히 當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이 孔安國의 주석과 의미가 비슷하게 통한다. 그러나, 喪을 치르는 중에는 감히 부친의 道를 바꾸지 않더라도, 喪이 끝나면 자기 뜻에 따라 도리를 바꿀 수 있다. 바꾸든, 바꾸지 않든, 모두 일반적인 禮에 맞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점을 가지고 자식이 孝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 충분하겠는가. 이와 같이, 이 주석이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曲禮」는 「曲禮 上」을 이른다. 《禮記》의 편이다. ◈◈ 皇侃은 제후나 大夫의 입장에서 이 글을 해석하고 있다. 皇侃은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에 대해, 謂所觀之事也//子若在父喪/三年之內/不改父風政/此即是孝也//所以是孝者/其義有二也//一則/哀毀之深/豈復識政之是非/故君薨/世子聽冢宰三年也//二則/三年之內/哀慕心事亡如存/則所不忍改也//或問曰/若父政善/則不改爲可//若父政惡/惡敎傷民/寧可不改乎///荅曰/本不論父政之善惡/自論孝子之心耳//若人君風政之惡/則冢宰自行政//若卿大夫之心惡/則其家相邑宰自行事//無關於孝子也, ‘자식이 벌이는 일을 살핀다는 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식이, 그 부친이 살아 있는 것처럼 상을 치르는데, 3년 동안 부친의 風政을 바꾸지 않는다면, 孝하다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孝라고 한 말에는 의미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렇다. 슬픈 마음이 깊으니, 어찌 정무가 옳은지, 그른지를 또 구별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군주가 죽으면, 세자는 冢宰의 의견을 3년 동안 듣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렇다. 3년 동안, 슬프고 그리워하여, 부친이 살이 있는 것처럼 죽은 부친을 섬기니, 부친의 방식을 바꾸는 일을 참지 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이에 대해 물었다. “만약 부친이 정치를 잘하였다면, 고치지 않아야 옳겠으나, 부친이 정치를 잘못하였다면, 어찌 그 방침을 고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나는 “본래 부친의 정치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따지지 않으니, 이것이 孝子의 마음이다. 만약 군주의 정치가 나빴다면, 冢宰가 스스로 정무를 볼 것이요, 卿과 大夫의 마음가짐이 나빴다면, 家相이나 邑宰가 알아서 일을 처리할 것이니, 부친이 일을 잘 처리했는지, 못 처리했는지는 孝子와 관계가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라고 하였다. 즉, 자식이 부친의 방침을 고수하는 까닭은 부친의 뜻을 기리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설혹 부친의 방침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재상이 옆에서 보좌하고, 바로잡을 것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참고할 만한 설이라고 생각한다. ◈◈ 邢昺은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에 대해, 言孝子在喪三年/哀慕猶若父存/無所改於父之道/可謂爲孝也, ‘孝子는 3년 동안 상을 치르는데, 그 동안 부친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리워하고, 부친의 방식을 고치지 않는다. 이 정도는 해야 孝라고 할 만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父在/子不得自專/而志則可知//父沒/然後其行可見//故觀此足以知其人之善惡/然又必能三年無改於父之道/乃見其孝/不然/則所行雖善/亦不得爲孝矣, ‘부친이 살아 있을 때는, 자식이 자기 멋대로 할 수가 없으니, 부친의 뜻을 알 만하다. 부친이 죽으면, 그런 뒤에 자식의 행실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점을 살피면, 그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를 알 만하다. 그리고 또, 부친의 도리를 3년 동안 고쳐서는 안 되니, 이로써 효성스러운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행실이 선하더라도, 효성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鄭注云/孝子/父在無所自專/庶幾於其善道而已///此僞孔所襲//韓詩外傳/孔子曰/昔者周公事文王/行無專制/事無由己/可謂子矣///是父在子不得自專也//庶幾於其善道/謂但觀其志/有善道/無行事可見也//朱子或問引范祖禹說/以人子於父在時/觀父之志而承順之/父沒/則觀父之行而繼述之///與鄭孔注義異//錢氏大昕/潛研堂文集/極取范說曰/孔子之言/論孝乎//論觀人乎//以經文可謂孝矣證之/其爲論孝不論觀人/夫人而知之也//既曰論孝/則以爲觀父之志行/是也//不論觀人/則以爲觀人子之志行/非也//子之不孝者/好貨財/私妻子/父母之養且不顧/安能觀其志//朝死而夕忘之/安能觀其行//禮曰/視於無形/聽於無聲///觀其志之謂也//又曰/善繼人之志/善述人之事///觀其行之謂也//孟子論事親爲大/以曾元之賢/僅得謂之養口體//則孔子之所謂養其志者/惟曾子之養志足以當之//如是而以孝許之/奚不可乎///案/范說亦通//但論孝即是觀人//既觀其行/而知三年無改於父之道/故以孝許之//鄭孔義本不誤/故仍主鄭孔而以范說附之, ‘鄭玄은 “부친이 있으면 멋대로 할 수 있는 바가 없으니, 그 善道에 庶幾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 주석은 孔安國의 가짜 주석 내용을 따르고 있다. 《韓詩外傳》에는 “孔子가 ‘옛날 周公이 文王을 모실 때, 멋대로 하는 바가 없었고, 자의적으로 모시는 일도 없었으니, 子라고 할 만하였다’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鄭玄의 주석에서 부친이 있을 때는 자기 멋대로 할 수가 없다고 한 말과 같다. 鄭玄의 주석에서 그 善道에 庶幾할 뿐이라는 말은, 다만 그 뜻을 살피고, 善道를 품고 있으니, 어떤 行이나 事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朱子는 누가 물었다고 하면서 范祖禹의 설을 인용했는데, 范祖禹는 “자식으로서는, 부친이 있을 때 부친의 뜻을 살피고, 이어서 따라야 한다. 부친이 죽었다면, 부친의 행위를 살피고, 받들어서 따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鄭玄이나 孔安國 주석의 의미와는 다르다. 錢大昕은 《潛研堂文集》에서 范祖禹의 설을 크게 지지하면서, “孔子는 이 말을 통해 孝를 논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을 살피는 방법을 논하고 있는가. 본문의 可謂孝矣를 가지고 설명해 본다면, 아마 孝에 대해 논하려 하였지, 사람을 살피는 방법에 대해 논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范祖禹는 이 점을 알았을 것이다. 이미 孝에 대해 논하고 있으니, 부친의 뜻과 행위를 살핀다고 생각해야 옳을 것이요, 다른 사람을 살피는 방법을 논한다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자식이 품고 있는 뜻과 행위를 살핀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다. 자식이 불효한 사람이라서, 재물을 좋아하고, 처와 자식을 私하며, 부모를 모시는 일은 또 돌아 보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어찌 그 부친의 뜻을 살필 수 있겠는가. 부모가 아침에 죽었는데, 저녁이면 잊어 버린다고 하자. 그러면 어찌 그 부친의 행위를 살필 수 있겠는가. 《禮》에 ‘드러나기 전에 보고, 소리가 나기 전에 듣는다’는 말이 있으니, 觀其志의 뜻이요, 또 ‘사람의 뜻을 잘 잇고, 사람의 일을 잘 잇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觀其行의 뜻이다. 孟子는 부모를 모시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曾元은 현명하였지만, 겨우 부모의 口體를 봉양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한 즉, 孔子가 養其志라고 한 말은, 오직 曾子가 曾晳을 모신 정도는 되어야 孔子의 의도에 타당할 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曾元처럼 모셔도 孝라고 표현해 준다면, 孝라고 할 수 없을 것이 무엇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 생각은 이렇다. 范祖禹의 설도 의미가 통한다. 다만, 孝를 논하는 일이 곧 다른 사람을 살피는 일이다. 부친의 행위를 이미 살폈으니, 3년 동안 부친의 道를 고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요, 그래서 孝라고 해 준 것이다. 鄭玄과 孔安國의 풀이는 본래 틀리지 않았으므로, 이에 鄭玄과 孔安國에 주안점을 두고 보되, 范祖禹의 설은 참고하면 좋겠다’라고 하였다. 朱子는 朱熹다. 그런데 이 설은 朱熹의 《論語集註》에 실려 있지 않다. 孔安國과 鄭玄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부친의 道와 行을 살핀다고 하고 있지만, 范祖禹는 자식의 입장에서 그런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劉寶楠이 다르다고 한 것이다. 錢大昕의 말 중 夫人而知之也의 夫人은 아마 ‘저 사람’이라는 말로, 孔安國과 鄭玄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겠고, 范祖禹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나는 范祖禹로 보고 번역하였다. 視於無形과 聽於無聲은 《禮記》 「曲禮 上」에 나온다. 善繼人之志/善述人之事는 《禮記》 「中庸」에 나온다. 孟子와 曾元에 대한 이야기는 《孟子》 「離婁 上」에 나온다. 또, 錢大昕이 지적한 것처럼, 孔子는 이 말을 통해 분명 孝에 대해 논하고 있지, 다른 사람을 살펴서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孔子가 의도한 주제가 孝일지라도, 孔子는 외부의 관찰자 입장에서, 아들이 그 부친의 道와 행위를 잘 따르고 지켜 나가는지의 여부를 통해서, 그 아들이 孝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주석들을 비교하자면, 孔安國과 鄭玄의 주석이 다른 주석들에 비해 원문의 취지에 합치된다. 范祖禹의 주석은 틀렸다. 또, 錢大昕의 경우는, 《禮記》 「曲禮 上」과 「中庸」에 나오는 視於無形, 聽於無聲, 善繼人之志/善述人之事의 사례, 그리고 曾元에 대한 孟子의 평가를 가지고, 겉모습을 가지고는 孝를 판단할 수 없으며, 진정 孝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내면을 살펴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그 말이 타당하지만, 이 말은 《論語》 본문의 취지와는 정합되지 않는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猶若父存에 대해, 皇本/存作在//北監本存誤母, ‘《皇侃本》에는 存이 在로 되어 있다. 《北監本》에는 存이 母로 잘못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고대의 孝라는 것은, 부모를 잘 따르고, 그 뜻을 어기지 않는 일이었다. 《大戴禮記》 「曾子大孝」에 父母愛之/喜而不忘//父母惡之/懼而無怨//父母有過/諫而不逆, ‘父母가 좋아하면 기뻐하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요, 父母가 미워하면 두려워하며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父母에게 잘못이 있다면 간하되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것이 孝다. 지금 우리 시대, 그리고 우리 세대의 孝와는 아주 다르다. 즉, 이 고대의 孝를 부모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부친이 살아 있을 때 그 뜻을 잘 받들어 이행하는지를 살펴야 하니 父在觀其志라고 한 것이요, 부친이 죽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은 부친의 방식을 고치지 않고 이어 나가는지를 살펴야 하니, 그래서 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라고 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句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만 보고는 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를 하나로 보고,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로 보니, 말의 의미도 이상해지고,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고 말았다. 특히 朱熹는 거기다가 부친이 죽은 뒤에는 자식의 진짜 행실이 드러나므로, 그 자식이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孔子가 이 장에서 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지, 善惡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蜀虎又案 :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라는 말은 「里仁」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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