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1 - 학이 - 8 - 군자부중즉불위

2024. 4. 10. 02:44논어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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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10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다면 다음 글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322

 

<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8 - 군자부중즉불위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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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君子不重則不威,學則不固。

主忠信,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공자가 말했다.(子曰, ◈ 子는 孔子를 이른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 邢昺은 此章勉人爲君子也, ‘이 장에서는 사람들에게 君子가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이 장에서 孔子는 君子가 평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그리고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군자는 점잖지 않으면, 존경받지 못할 것이요, 배우더라도 [학문이] 정밀해지지 못할 것이다.”(君子不重則不威/學則不固, ◈ 君子은 체언으로, ‘군자’다. ▼ 劉寶楠은 稱君子者/言凡已仕未仕有君師之責者也, ‘君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출사하였거나, 아니면 아직 출사하지 않았거나에 상관 없이, 군주나 스승의 직책을 맡고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표현이다’라고 하였다. ◈ 不重의 不은 부정어다. 重을 한정한다. 不威, 不固의 不도 모두 그렇다. 威, 固를 각각 한정한다. ◈ 不重의 重은 용언으로, 아마 ‘중후하다’, ‘신중하다’, ‘진중하다’, ‘점잖다’는 말인 것 같다. 君子의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 朱熹는 重/厚重, ‘重은 중후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法言/修身篇/或問/何如/斯謂之人//曰/取四重/去四輕//曰/何謂四重//曰/重言/重行/重貌/重好/言重者有法/行重者有德/貌重者有威/好重者有觀///是言君子貴重也//禮/玉藻云/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並言人當重愼之事, ‘《法言》 「修身」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대답했다. ‘四重을 지키고, 四輕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물었다. ‘四重이 무엇이냐.’ 대답했다. ‘重言, 重行, 重貌, 重好다. 重言은 법도가 있다는 말이고, 重行은 德이 있다는 말이며, 重貌는 위엄이 있다는 말이고, 重好는 분별력이 있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바로 君子가 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禮》 「玉藻」에는 “발의 모습은 중후하고, 손의 모습은 공손하며, 눈의 모습은 단정하고, 입의 모습은 가만히 있으며, 목소리의 모습은 靜하고, 머리의 모습은 곧으며, 氣의 모습은 엄숙하고, 서 있는 모습은 德스러우며, 얼굴의 모습은 장엄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사람이 重愼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다’라고 하였다. 《法言》은 《揚子法言》을 이른다. 《禮》 「玉藻」는 《禮記》 「玉藻」를 이른다. ◈ 不重則不威의 則은 ‘그러면’, ‘~하면’이다. 不重하면 不威하고, 學해도 不固할 것이라는 뜻이다. ◈ 不威의 威는 본래 ‘위엄이 있다’는 말인데, 본문에서는 아마 ‘존엄하게 생각되다’, ‘두려움을 받다’, ‘경외를 받다’는 따위의 말일 것이다. 나는 ‘존경받다’라고 의역하였다. 劉寶楠은 威를 威儀, ‘위엄 있는 모습’이라고 하였는데, 문헌적 근거를 들고 있어서 참고할 만하다. ▼ 朱熹는 威/威嚴, ‘威는 위엄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不威에 대해 言無威儀也//左傳/劉康公曰/民受天地之中以生/所謂命也//是以有動作禮義威儀之則/以定命也//是故君子勤禮/勤禮莫如致敬///衛北宮文子曰/有威而可畏謂之威/有儀而可象謂之儀//君有君之威儀/其臣畏而愛之/則而象之/故能有其國家/令聞長世//臣有臣之威儀/其下畏而愛之/故能守其官職/保族宜家//順是以下者皆如是/是以上下能相固也///又云/故君子在位可畏/施舍可愛/進退可度/周旋可則/容止可觀/作事可法/德行可象/聲氣可樂/動作有文/言語有章/以臨其下/謂之有威儀也///又下篇夫子語子張曰/君子正其衣冠/尊其瞻視/儼然人望而畏之/斯不亦威而不猛乎///並言君子有威儀之事//不威由於不重/故言行輕薄之士/必不能遠暴慢鄙倍/雖厲聲色/綦刑罰/人莫之畏矣, ‘위엄 있는 모습을 갖출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左傳》에서 劉康公은 “사람은 天地의 中을 받아서 태어나니, 이를 命이라고 한다. 이에 동작, 예의, 威儀의 則을 가지게 되고, 이로써 命을 定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君子는 禮法을 열심히 이행하는데, 禮法을 실천하는 데에는 극진하게 敬하는 것 만한 방법이 없다”라고 하였고, 衛나라의 北宮文子는 “위엄이 있어서 경외할 만한 모습, 이를 威라고 하고, 법도가 있어서 본받을 만한 모습, 이를 儀라고 한다. 군주가 군주로서의 威儀를 갖추고 있으면, 신하는 군주를 경외하고, 사모하니, 군주를 본받으려 하게 된다. 따라서 군주는 자기 나라를 경영하면서, 명망을 후세까지 떨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하가 신하로서의 威儀를 갖추고 있으면, 그 아랫사람들이 신하를 경외하고 사모하니, 이에 신하는 자기 관직을 보존하고, 친척들을 보전하며,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신하 아래로도 모두 각자에 맞는 威儀가 있고, 이치가 이와 같으니, 이에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각자의 威儀를 지킨다면 체제가 안정될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北宮文子는 또 “따라서 君子가 자기 지위에 있는 모습은 경외할 만하고, 은덕을 베푸는 모습은 사모할 만하며, 進退하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고, 周旋하는 모습도 본받을 만하며, 君子의 태도는 살필 만하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모범으로 삼을 만하며, 德行은 따라할 만하고, 聲氣는 즐거워 할 만하다. 동작에는 조리가 있고, 말에는 법도가 있으니, 이런 모습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 이를 威儀가 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論語》 뒷편에는 夫子가 子張에게 “君子는 의관을 바로 입고, 瞻視를 尊하는데, 근엄하여서 사람들이 이를 보고는 경외한다. 이 역시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모습이 아니겠느냐”라고 하였다. 이 모두 君子가 威儀를 갖춘 모습에 대해 설명하는 말들이다. 위엄이 없는 모습은 중후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언행이 경박한 선비는 못되고 상스러운 태도를 버릴 수가 없다. 목소리를 엄숙하게 내고, 형벌을 극심하게 운용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런 자를 경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劉康公에 대한 인용문은 「成公」 13년에 나오고, 北宮文子에 대한 인용문은 「襄公」 31년에 나온다. 君子正其衣冠 이하 인용문은 《論語》 「堯曰」에 나온다. ◈ 學은 용언으로, ‘배우다’, ‘공부하다’는 말이다. 학문을 ‘배우다’는 말일 것이다. ◈ 學則不固의 則은 본래 ‘그러면’, ‘~하면’인데, 여기서는 ‘~하더라도’처럼 해석된다. 즉, 學則不固는 ‘學하더라도 固하지 않다’는 뜻이다. ◈ 不固의 固는 용언으로, 아마 ‘견고하다’, ‘단단하다’, ‘확실하다’, ‘굳건하다’는 말일 것이다. 본문에서는 배운 학문에 대해 사용되고 있는 표현이므로, ‘정밀하다’, ‘엄밀하다’, ‘치밀하다’, ‘세밀하다’처럼 의역할 수 있겠다. ▼ 孔安國은 固/蔽也, ‘固는 蔽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蔽는 ‘가리다’, ‘덮다’는 말이다. 孔安國이 의도한 뜻은 아마 ‘포괄하다’ 같다. 「爲政」에 詩三百/一言以蔽之, ‘詩 300수를 한 마디로 蔽하면’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蔽는 ‘포괄하다’는 말로 사용되었다. 孔安國은 學則不固를 ‘배우더라도 널리 알 수 없다’, ‘배우더라도 박학할 수 없다’라고 풀이한 듯하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侃案/孔訓固爲蔽/蔽/猶當也//言人既不能敢重/縱學亦不能當道理也//猶詩三百一言以蔽之蔽也, ‘내 생각은 이렇다. 孔安國은 固를 蔽라고 풀이했는데, 蔽는 當과 같다. 사람이 이미 중후해지지 못하여, 학업 역시 도리에 當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 蔽는 “詩 300편을 한 마디로 蔽한다면”의 蔽와 같다’라고 하였다. 내 의견과 같다. 劉寶楠은 孔安國의 주석에 대해, 鄭注曲禮云/固/謂不達於禮也///注祭義云/固/猶質陋也///皆蔽塞之義//下篇夫子告子路曰/好仁不好學/其蔽也愚//好知不好學/其蔽也蕩//好信不好學/其蔽也賊//好直不好學/其蔽也絞//好勇不好學/其蔽也亂//好剛不好學/其蔽也狂///是言不學之蔽/而可知人之成德達才必皆由學矣//中論/治學篇/民之初始/其矇未知/譬如寶在於玄室/有所求而不見/白日照焉/則羣物斯辨矣//學者/心之白日也///是其義也, ‘鄭玄은 「曲禮」에 대해 “固는 禮法에 통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祭義」에 대해서는 “固는 질박하고 고루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모두 꽉 막혀 있다는 뜻이다. 뒷편에는 夫子가 子路에게 “仁을 좋아하고 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愚해지는 것이고, 知를 좋아하고 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蕩해지는 것이며, 信을 좋아하고 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賊해지는 것이고, 直을 좋아하고 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絞해지는 것이며, 勇을 좋아하고 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亂해지는 것이고, 剛을 좋아하고 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狂해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공부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폐단에 대해 설명되고 있으니, 이로써 사람이 德을 이루고, 기량에 통달하는 일들이 모두 꼭 공부하는 데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알 수 있겠다. 《中論》 「治學」에 “백성들은 처음에 몽매하고 아는 게 없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어두운 방에 보물이 있으면,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해가 방을 밝게 비추면, 방 안의 온갖 物들이 이에 구별될 것이다. 이처럼 공부는 마음을 밝게 비추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이 그러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曲禮」는 《禮記》 「曲禮 下」다. 固/謂不達於禮也는 故輟朝而顧/君子謂之固, ‘따라서 朝를 마치고 顧하는 일, 君子는 이를 固하다고 한다’에 달려 있다. 「祭義」는 《禮記》의 편이다. 固/猶質陋也는 孝子之祭也/立而不詘/固也, ‘孝子가 제사를 지낼 때, 서 있으면서 굽히지 않으면 固하다고 한다’에 달려 있다. 好仁不好學 이하 인용문은 《論語》 「陽貨」에 나온다. 《中論》은 東漢의 徐乾이 지은 글이다. 《中論》에는 民之初始가 民之初載로 되어 있다. ▼ 何晏은 固를 ‘제대로 알다’라고 풀이한 설을 소개해 두었다. 何晏은 一曰/言人不能敦重/既無威嚴/學又不能堅固識其義理, ‘어떤 사람은, “이 말은 사람이 돈후하지 못하다면 이미 위엄이 없을 텐데, 그러면 공부하더라도 또 이치를 제대로 깨달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劉寶楠은 何晏의 주석 중 一曰에 대해, 一曰以下/此集解別存一義/非仍前所注之人/下皆放此, ‘一曰 이하의 말은 《集解》에서 따로 소개한 풀이로, 앞의 주석에서 이어지는 말이 아니다. 이후로도 모두 그렇다’라고 하였다. 《集解》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이른다. 또 劉寶楠은 何晏이 소개한 이 주석에 대해, 說文/重/厚也///敦/亦訓厚//故注以敦重連文//詩/天保傳/固/堅也///亦常訓//此以不重不威之人/雖知所學/不能堅固/無由深造之以道而識其義理也//所以然者/以此人學若堅固/必能篤行/其容貌/顔色/辭氣/必不至輕惰若此矣//今不能敦重/無威嚴/故知其學不能堅固也//義與前異/亦略通, ‘《說文》에 “重은 두텁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敦 역시 두텁다는 뜻이다. 즉, 주석 중 敦重이라는 표현은 같은 의미의 글자를 연달아 사용한 단어이다. 《詩》 「天保」에 대한 傳에는 “固는 견고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일반적인 풀이다. 이 말은, 중후하지도 않고, 위엄도 없기 때문에 학식이 있다고 해도 견고할 수가 없고, 道를 통해 깊은 경지로 들어가서 이치를 깨우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이렇다. 학문이 만약 견고하다면, 분명 부지런히 실천할 것이요, 그 사람의 容貌, 顔色, 辭氣도 분명 앞의 경우에서처럼 輕惰한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敦重하지 못하고, 위엄도 없다면, 이 때문에 학문을 깨우쳐도 그 수준이 견고해질 수가 없다. 一曰 부분의 주석은 孔安國의 주석과는 해석이 다르지만, 의미는 대체로 통한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重은 「重部」에 기재되어 있다. 《詩》 「天保」는 「小雅 鹿鳴之什」에 속해 있다. 傳은 毛亨의 주석을 이른다. 固에 대한 주석은 亦孔之固, ‘또 심히 固하다’에 달려 있다. ▼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堅固, ‘견고하다’라고 풀이했다. ▼ 朱熹는 固/堅固也, ‘固은 견고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君子不重則不威에 대해 重爲輕根//靜爲躁本//君子之體/不可輕薄也//君子不重/則無威//無威/則人不畏之也, ‘重은 輕의 근본이 되고, 靜은 躁의 근본이 된다. 君子의 몸가짐은 경박해서는 안 된다. 君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게 된다. 위엄이 없으면 사람들이 君子를 경외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道德經》에 重爲輕根/靜爲躁君, ‘重은 輕의 근본이 되고, 靜은 躁의 君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또 皇侃은 學則不固에 대해 言君子不重/非唯無威而學業亦不能堅固也//故孔後注云/言人不敢重/既無威/學又不能堅固識其義理也, ‘君子가 중후하지 않으면, 다만 위엄이 없게 될 뿐만 아니라, 학업 역시 견고해질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孔安國의 말 뒤에 있는 주석에서, 사람이 감히 중후하지 못하다면, 이미 위엄이 없을 테고, 공부를 하더라도 이치를 견고하게 깨우칠 수 없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其說有二/孔安國曰/固/蔽也//言君子當須敦重//若不敦重/則無威嚴//又當學先王之道/以致博聞強識/則不固蔽也//一曰/固/謂堅固//言人不能敦重/既無威嚴/學又不能堅固/識其道理也//明須敦重也, ‘이에 대해서는 설이 두 가지 있다. 孔安國은 “固는 蔽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君子는 모름지기 중후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후하지 않다면, 위엄이 없게 된다. 君子는 또 마땅히 先王의 도리를 배워야 하니, 그럼으로써 널리 터득하고, 굳건하게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야가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설에서는, “固는 견고하다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이 중후하지 못하면, 이윽고 위엄이 없게 되니, 배우더라도 견고해질 수가 없고, 도리를 깨우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두 설 모두 君子가 모름지기 중후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라고 하였다. 學又不能堅固/識其道理也의 경우, 不能이 堅固와 識其道理를 모두 받는다고 보고 번역하였다. ◈◈ 朱熹는 輕乎外者/必不能堅乎內/故不厚重則無威嚴/而所學亦不堅固也, ‘겉으로 경박하다면, 안에서 견실할 수가 없다. 따라서 중후하지 못하다면 위엄이 없을 테니, 배운 바 역시 견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何晏이 소개한 설 중 言人不能敦重에 대해, 皇本作/言人不敢重//案/敢當作敦字/形相近而訛, ‘言人不能敦重이 《皇侃本》에는 言人不敢重으로 되어 있다. 살펴 보건대, 敢은 마땅히 敦이 되어야 한다.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何晏이 소개한 설 중 既無威嚴에 대해, 皇本/無嚴字, ‘《皇侃本》에는 嚴이 없다’라고 하였다. ▼ 何晏이 소개한 설 중 識其義理에 대해, 皇本/理下有也字, ‘《皇侃本》에는 理 다음에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君子는 점잖아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君子의 태도가 점잖지 않으면, 즉 경박하다면, 평판은 물론이고, 그 학문 역시 정밀해질 수가 없다는 뜻이다.)

 

<공자의 말 이어짐>

 

“[또, 군자는]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하고, 자신 보다 그러하지 못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主忠信/無友不如己者, ◈ 主忠信의 主는 용언으로, 아마 ‘가까이 하다’, ‘친하게 지내다’는 말인 것 같다. 主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가까이 하다’, ‘친하게 지내다’는 말이다. 鄭玄, 邢昺이 이렇게 해석하였다. 俞樾은 ‘의지하다’, ‘의탁하다’라고 보았으나, 근본적으로는 鄭玄의 설에 가깝다. 두 번째는 ‘主하다’, ‘주로 하다’, ‘초점을 맞추다’, ‘집중하다’는 말이다. 皇侃, 朱熹, 游酢이 이렇게 해석하였다. 劉寶楠은 鄭玄의 설을 따르면, 뒷구의 友와 의미가 겹치므로, 皇侃의 해석이 더 낫다고 보았다. 이제 살펴 보자. 主忠信과 無友不如己는, 글자의 수는 비대칭적이더라도, 그 의미는 대칭되고 있는 것 같다. 友는 아마 ‘사귀다’ 혹은 ‘友로 대하다’, ‘가까이 하다’처럼 해석될 것이다. 그렇다면 主 역시 友의 의미에 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無友가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이므로, 主는 이와 반대로 ‘가까이 하다’로 보아야 할 것이다. 俞樾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主를 ‘의지하다’, ‘의탁하다’처럼 해석했다. 내 생각에는 이 主가 俞樾의 의견처럼 ‘의지하다’, ‘의탁하다’는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俞樾은 문헌적 근거를 들고 있고, 또 넓게 보면 같은 의미이므로,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劉寶楠은, 상기하였듯, 오히려 대칭되기 때문에 主를 友와 다르게 해석하였는데,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문은 君子不重則不威/學則不固가 한 문단, 主忠信/無友不如己者가 한 문단, 過則勿憚改가 또 한 문단으로, 총 세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劉寶楠처럼 友 때문에 主를 달리 해석해야 한다면, 主忠信과 無友不如己者는 또 별개의 문단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主忠信은 君子가 지향해야 할 태도를 기술한다고 볼 수 있으니, 앞의 君子不重則不威/學則不固에 붙여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無友不如己者는 혼자 두기도 이상하고, 뒤의 過則勿憚改에 붙여 읽으려 해도 어색하다. 過則勿憚改는 잘못이 있으면 빨리 고치라는 말인데, 그 게 자신만 못한 사람과 사귀지 말라는 말과 무슨 상관이 있겠나. 따라서 글의 전체적인 형식을 감안하더라도, 主忠信과 無友不如己者를 붙여 읽고, 한 문단으로 보는 편이 좋다. 그리고 한 문단으로 읽으려면, 主는 ‘가까이 하다’, ‘친하게 지내다’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 鄭玄은 主/親也, ‘主는 가까이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주석에 대해 皇侃은 鄭心則言當親於忠信之人也, ‘鄭玄의 의도는 마땅히 忠信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점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主忠信을 忠信爲心이라고 풀이하였다. 이렇게 보면 主는 ‘~하게 마음을 먹다’, ‘~하도록 노력하다’는 말이 된다. ▼ 邢昺은 主/猶親也, ‘主는 親과 같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朱熹는 主를 爲主, ‘主로 하다’라고 번역하였다. ▼ 劉寶楠은 主訓親者/引申之義//注意謂人當親近有德/所以謂勝己者也//然下文複言/無友不如己/於意似重/或未必然//皇疏云/以忠信爲百行所主///是言忠信在己不在人/其義較長//周語云/是以不主寬惠/亦不主猛毅///韋昭注/主/猶名也///義可互證, ‘鄭玄은 主를 親이라 풀이했는데, 이는 글자의 뜻을 파생시킨 의미다. 주석의 뜻은, 사람이 마땅히 德을 품은 자를 가까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자신 보다 나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글에 無友不如己라고 다시 말하였는데, 그러면 말의 의미가 主忠信과 중복되는 것 같아, 꼭 鄭玄처럼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皇侃은 “忠信을 가지고 온갖 일을 처리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皇侃의 이 말은 忠信이 자신에 대한 개념이지, 남에게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풀이가 비교적 낫다. 「周語」에 “이런 까닭으로, 寬惠하기로 主하지 않고, 또 猛毅하기로 主하지도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主는 명분으로 삼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의미가 본문과 서로 검증된다’라고 하였다. 鄭玄은 主를 親, ‘가까이 하다’라고 풀이했는데, 그러면 主忠信은 親忠信, ‘忠信한 사람을 가까이 하다’라는 말이 된다. 아마도 忠信, 즉 ‘忠信한 사람’을 劉寶楠은 所以謂勝己者, ‘자신 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그런데 主忠信을 이렇게 ‘자신 보다 나은 사람을 가까이 해라’라고 해석하면, 뒤의 無友不如己者, ‘자신만 못한 사람과 사귀지 말라’라는 말과 의미가 중복되는 듯 보이므로, 劉寶楠은 或未必然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기하였듯, 主忠信을 親忠信이라고 보더라도, 無友不如己者와 의미가 아주 중복되지 않고, 또 의미가 대칭되어 오히려 글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皇侃은 忠信爲心/百行之主也, ‘忠信하게 마음을 먹고, 온갖 일을 이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周語」는 《國語》 「周語 中」이다. ▼ 俞樾은 顔濁鄒와 司城貞子의 사례를 들어 主를 ‘의지하다’, ‘의탁하다’라고 해석하였다. 俞樾은 樾謹按/主與友對//大戴禮記曾子制言篇曰/曾子門弟子或將之晉/曰/吾無知焉///曾子曰/何必然/往矣//有知焉謂之友/無知焉謂之主///此文主字義與彼同/言所主者必忠信之人/所友者無不若己之人//孔子主顔讐由/主司城貞子/卽是主忠信之謂, ‘主와 友는 형식적으로 對를 이루고 있다. 《大戴禮記》 「曾子制言」에 “曾子 문하의 어떤 제자가 晉나라에 가게 되었다. 제자가 말했다. ‘나는 晉나라에 아는 사람이 없다.’ 曾子가 말했다. ‘어찌 꼭 그렇겠느냐. 晉나라로 가라.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의탁하는 일을 友라고 하고, 아는 사람이 없어도 없는 대로 의탁하는 일을 主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본문 중 主忠信의 主의 의미가 인용문의 主와 의미가 같으니, 主한 자는 분명 忠信한 사람이요, 友한 자는 자신만 못한 점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孔子는 顔讐由에게 主하였었고, 司城貞子에게 主하였었다. 곧, 이것이 主忠信의 의미다’라고 하였다. 「曾子制言」은 「曾子制言 上」이다. 顔讐由는 衛나라의 大夫인 顔濁鄒를 이른다. 俞樾은 主와 友를 모두 ‘의탁하다’, ‘의지하다’ 혹은 ‘함께하다’, ‘사귀다’라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는 듯하다. 《大戴禮記》에 나오는 主와 友 역시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즉, 모두 ‘의지하다’는 말인데, 상대방이 忠信한지, 아니면 자신 보다 못한지에 따라 主라고 표현하는지, 友라고 표현하는지를 나누어 기술했다고 본 것 같다. ◈ 忠信은 체언으로, ‘忠信한 사람’, ‘진실되고 신실한 사람’을 이른다. 主를 ‘초점을 맞추다’, ‘주로 하다’처럼 해석한다면, 忠信은 ‘忠信한 태도’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 無友의 無는 ‘~하지 마라’라는 말이다. 毋, 勿과 같다. 無友의 友를 받는다. 여기서는 ‘~해서는 안 된다’라고 번역하였다. ▼ 이 無는 《經典釋文》에는 毋로 되어 있다. 陸德明은 毋音無/本亦作無//下同, ‘毋는 無라고 읽는다. 판본에 따라 無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아래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無/毋通/禁止辭也, ‘無와 毋는 통용된다. 하지 말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釋文出毋友云/本亦作無/下同//案/古書無毋多通用//後子罕篇各本又竝作毋友/唯皇本仍作無//釋文出毋友云/音無, ‘《釋文》에 毋友에 대한 말이 나온다. 《釋文》에서는 “판본에 따라 無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아래로도 그렇다”라고 되어 있다. 살펴 보건대, 옛 글에는 無와 毋를 통용하였던 사례가 많다. 뒤의 「子罕」에는 다른 판본들에는 모두 毋友라고 되어 있는데, 《皇侃本》에서만 毋가 無라고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釋文》에서는 毋友에 대해, “音은 無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劉寶楠은 釋文云/毋音無/本亦作無///宋刊九經本/亦作毋//說文/毋/止之詞也//𣞤/止也///無即𣞤也/隸省//儀禮/士婚禮/公食大夫禮注/並云古文毋爲無//然則毋無亦今古文異, ‘《釋文》에서는 “毋는 無라고 읽는다. 판본에 따라 無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였다. 宋나라 때 간행한 《九經本》에도 毋로 되어 있다. 《說文》에는 “毋는 멈추라는 말이다”라고 되어 있고, “𣞤은 그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無는 곧 𣞤이니, 隸省이다. 《儀禮》의 「士婚禮」, 「公食大夫禮」의 주석에서도 모두 古文에는 毋가 無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즉, 책에 毋라고 되어 있기도 하고, 無라고 되어 있기도 한 것 역시 今文과 古文의 차이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九經本》은 아마 《經典釋文》의 판본인 듯하다. 그렇게 보고 번역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毋는 「毋部」에 기재되어 있는데, 毋/止之也, ‘毋는 멈추다는 말이다’라고 되어 있다. 𣞤은 「林部」에 있는데, 𣞤/豐也, ‘𣞤는 무성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지, 止라고 풀이되어 있지는 않다. 「糸部」에 綝/止也, ‘綝은 止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 劉寶楠이 이 글자를 착각해서 𣞤이라고 쓰지 않았나 의뭉스럽다. 隸省은 아마 당시에 쓰던 서체의 일종으로, 小篆이 隸書로 변하는 중간 과정의 글자인 듯하다. 획을 생략한 서체를 隸省이라고 하고, 획을 더한 서체를 隸加라고 하며, 글자를 가로로 배치하거나, 가로로 배치된 글자의 순서를 바꾼 서체를 隸行이라고 한다. 《儀禮》에 대한 주석은 鄭玄의 주석을 이른다. 예를 들어, 「公食大夫禮」에 庶羞/西東毋過四列, ‘庶羞들은 동서 방향으로 네 列이 넘지 毋하도록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古文/毋爲無, ‘古文에는 毋가 無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友는 용언으로, 친구로서 ‘사귀다’, ‘벗하다’, ‘우애롭다’ 혹은 ‘가까이 하다’, ‘친하게 지내다’는 말일 것이다. 앞의 主와 같다. 명사구인 不如己를 받는다. ◈ 不如는 ‘~만 못하다’는 말이다. 己를 받는다. 不은 부정어이고, 如는 용언으로, ‘같다’라는 뜻이다. ▼ 劉寶楠은 廣雅/釋言/如/均也, ‘《廣雅》 「釋言」에 “如는 균등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己는 체언으로, ‘자신’, ‘자기’다. ▼ 劉寶楠은 己/即我之別稱//說文曰/己承戊/象人腹///是己本象人形/故人得自稱己, ‘己는 자신이라는 말의 별칭이다. 《說文》에서는 “己는 戊를 잇는다. 사람의 배 모양을 본땄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己는 본래 사람의 모습을 본딴 글자이므로, 이에 사람은 자신을 己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己는 《經典釋文》 「己部」에 기재되어 있다. 己承戊라는 말은, 아마 十干이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인데, 여기서 己가 戊 다음에 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 그러면 不如己란, 어떤 면에서 자신만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일까. 내 생각에는 아마 忠信일 것 같다. 즉, 主忠信/無友不如己者는 ‘자신 보다 忠信한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고, 자신 보다 忠信하지 못한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라는 말일 것이다.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 역시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不如己를 ‘자신 보다 그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번역하였다. ◈ 無友不如己者의 者는 아마 也와 같은 말로, 문장을 끝내는 표현일 것이다. 君子不重則不威/學則不固에서 문장이 끊기듯, 主忠信/無友不如己者에서도 문장이 끊긴다. 過則勿憚改는 내용적으로 다르다. 그러면 者를 어떻게 也로 해석할 수 있을까. 《論語》 「陽貨」에 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紫가 朱를 奪하는 것이 싫고, 鄭나라의 음악이 雅樂을 어지럽힌다는 점이 싫으며, 달변으로 나라를 뒤집는 짓이 싫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者는 다른 句의 也와 대구를 이루고 있고, 또 그 쓰임 역시 也와 같이 조사다. 王引之는 《皇侃本》에는 者가 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論語集解義疏》, 즉 《皇侃本》에는 也로 되어 있다. 《國語》 「鄭語」에는 公曰/周其弊乎///對曰/殆於必弊者, ‘公이 말했다. “周나라는 망하겠느냐” 그러자 “거의 분명히 망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의 者 역시 也처럼 조사로 사용되었다. 金在烈은 《四部備要本》에 者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四部備要本》을 펴낸 사람이 者가 也의 역할을 하는 줄 모르고 문장을 끝내려고 也를 더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예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者諸」에 수록되어 있다. ◈◈ 皇侃은 主忠信에 대해, 言君子既須威重/又忠信爲心/百行之主也, ‘君子는 위엄 있더라도, 거기에다 더하여 忠信하게 마음을 먹고, 온갖 일을 이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無友不如己者에 대해서는, 又明凡結交取友必令勝己//勝己則己有日所益之//義不得友不如己/友不如己則己有日損/故云無友不如己者, ‘다시 교분을 맺고 친구를 사귈 때는 꼭 자신 보다 나은 사람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자신 보다 나으면 자신이 나날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자신만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아야 하는데, 친구가 자신 보다 못하면, 자신은 나날이 못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만 못한 자와 사귀지 말라”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또, 이 句에 대해 다른 사람의 설도 여럿 소개해 두었다. 皇侃은 或問曰/若人皆慕勝己爲友/則勝己者/豈友我耶///或通云/擇友必以忠信者爲主//不取忠信不如己者耳/不論餘才也///或通云/敵則爲友//不取不敵者也///蔡謨云/本言同志爲友/此章所言謂慕其志而思與之同不謂自然同也//夫上同乎勝己所以進也/下同乎不如己所以退也//閎夭四賢上慕文王/故四友是四賢上同心於文王/非文王下同四賢也//然則求友之道/固當見賢思齊同志於勝己/所以進德修業成天下之亹亹也//今言敵則爲友/此直自論才同德等而相親友耳/非夫子勸敎之本旨也//若如所云則直諒多聞之益便辟善柔之誡/奚所施也,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해 질문하면서, “만약 사람들이 전부 자신 보다 나은 사람을 친구로 삼으려 한다고 해 보자. 그런데 자신 보다 나은 사람이 어찌 자신과 사귀려 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해설하면서, “친구를 고를 때는 반드시 忠과 信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忠信한 자를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자신만 못한 자를 의미할 뿐이다. 不如己라는 말은 재능에 대해 따지는 표현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을 해설하면서, “대등한 사람을 친구로 삼으라는 말이다. 대등하지 않다면 취하지 말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蔡謨는 “본래 뜻이 같으면 友라고 한다. 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는 그 뜻을 흠모하고, 함께 품고 있는 생각이 같더라도, 자연스럽게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저, 윗사람이 자신 보다 나은 사람과 뜻을 함께 한다면 진보할 것이요, 아랫사람이 자신만 못한 사람과 뜻을 함께 한다면 퇴보할 것이다. 閎夭와 四賢은 위로 文王을 흠모하였다. 四友, 곧 四賢이 위로 文王에 대해 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지, 文王이 아래로 四賢과 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한 즉, 친구를 사귈 때에는, 마땅히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생각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 보다 나은 사람과 뜻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德을 진전시키고, 학업을 닦아, 온세상의 과업들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대등한 사람을 친구로 삼으라는 말이라고 풀이한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본다면 재능과 德이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사귀라는 점에 대해 논하는 말밖에 되지 않으니, 이는 夫子가 가르치고자 하는 본뜻이 아니다. 만약 본문의 주제가 그 말과 같다면, 성실하며, 많이 배우면 도움이 된다고 하고, 편파적이면서 유순하기만 하면 경계하면 될 것을, 어찌 말을 이리 늘어 놓을 필요가 있었겠는가”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閎夭와 四賢이란, 아마 閎夭와 虢叔, 太顚, 散宜生, 南宮适을 뜻하는 듯하다. 모두 文王과 武王을 섬긴 신하들이다. 見賢思齊는 ‘현명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과 같은 바를 생각하다’는 말로, 《論語》 「里仁」에 나온다. 옛날에도 이 말이 孔子의 말이라기엔 다소 편협하다고 생각한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 邢昺은 主忠信에 대해 言凡所親狎/皆須有忠信者也, ‘대체로, 가까이 하는 사람이 모두 모름지기 忠信을 품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無友不如己에 대해서는 言無得以忠信不如己者爲友也, ‘無友不如己라는 말은, 忠信하기가 자신 만하지 못한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程顥는 人道惟在忠信/不誠則無物/且出入無時/莫知其鄉者/人心也//若無忠信/豈復有物乎, ‘사람의 도리는 오직 신실한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신실하지 못하면 物이 없게 될 것이다. 살펴 보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며, 지향하는 바를 알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만약 신실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다시 物이 있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 朱熹는 主忠信에 대해, 人不忠信/則事皆無實/爲惡則易/爲善則難/故學者必以是爲主焉, ‘사람이 신실하지 못하다면, 처리하는 일들에도 모두 실속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악행을 벌이기는 쉬워지고, 선행을 벌이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공부하는 자들은 이 점에 반드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 無友不如己者에 대해, 友所以輔仁/不如己/則無益而有損, ‘友는 仁을 보완해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友가 자신만 못하면, 도움 되는 바는 없고, 방해되는 점만 있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無友不如己者에 대해 문헌적 근거를 다수 들었다. 劉寶楠은 曾子制言中/吾不仁其人/難獨也/吾弗親也///故周公曰/不如我者/吾不與處/損我者也//與我等者/吾不與處/無益我者也//吾所與處者/必賢與我///由曾子及周公言觀之/則不如己者即不仁之人/夫子不欲深斥/故祇言不如己而已//呂氏春秋/驕恣篇引仲虺曰/能自爲取師者王/能自取友者存/其所擇而莫如己者亡///羣書治要引中論曰/君子不友不如己者/非羞彼而大我也//不如己者/須己愼者也//然則扶人不暇/將誰相我哉//我之僨也/亦無日矣///又韓詩外傳/南假子曰/夫高比/所以廣德也/下比/所以狹行也//比於善者/自進之階/比於惡者/自退之原也///諸文並足發明此言之旨, ‘「曾子制言 中」에 “내가 그 사람이 어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혼자 있기 싫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 옛날에 周公은 “나만 못한 사람의 경우, 나는 함께 있지 않으니, 내게 손해가 되기 때문이요, 나와 수준이 같은 사람의 경우, 나는 함께 있지 않으니, 내게 도움이 될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함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보다 현명한 사람 뿐이다”라고 하였다. 曾子와 周公의 말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다. 자신만 못한 사람은 어질지 않은 사람이지만, 夫子는 이런 자들이더라도 심하게 멀리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만 자신 보다 못하다고 표현하였을 뿐인 것이다. 《呂氏春秋》 「驕恣」에는 仲虺가 “자신을 위해 스승을 택할 수 있다면 王이 될 것이요, 직접 친구를 택할 수 있다면 살아 남을 것이지만, 선택한 사람이 자신 보다 못하다면 망하고 말 것이다”라고 한 말이 인용되어 있고, 《羣書治要》에서는 《中論》의 “君子는 자신 보다 못한 자와 사귀지 않는다. 상대를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大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 보다 못한 자는 결국 자신이 愼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즉, 다른 사람을 돕다가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생기지 않게 될 텐데, 그렇다면 장차 누가 자신을 도와 주겠는가. 자신이 나아가기에도 시간이 없다”라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또 《韓詩外傳》에는 南假子가 “대저, 높이 견주어 보면, 德을 넓힐 수 있고, 아래로 견주어 보면 편협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善에 비유하는 일은 자신을 진보시킬 디딤돌이요, 惡에 비유하는 일은 자신을 퇴보시킬 시발이로다”라고 한 말이 있다. 이 글들이 모두 無友不如己者의 요지를 밝히는 데 충분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曾子制言 中」은 《大戴禮記》의 편이다. 周公의 말은 《呂氏春秋》 「先識覽 觀世」에 인용되어 있는데, 《呂氏春秋》에는 故周公旦曰/不如吾者/吾不與處/累我者也//與我齊者/吾不與處/無益我者也//惟賢者必與/賢於己者處라고 되어 있다. 글자는 조금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驕恣」는 「恃君覽」에 속해 있다. 仲虺는 殷나라 湯王 때의 재상이다. 《中論》 인용문은 본래 「貴驗」에 나온다. 《中論》 본문에는 故君子不友不如己者/非羞彼而大我也/不如己者須己而植者也//然則扶人不暇/將誰相我哉//吾之僨也亦無日矣, ‘그러므로 君子는 자신 보다 못한 자와 사귀지 않는다. 상대를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大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 보다 못한 자는 결국 자신이 도와 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즉, 다른 사람을 돕다가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생기지 않게 될 텐데, 그렇다면 장차 누가 자신을 도와 주겠는가. 자신이 나아가기에도 시간이 없다’라고 되어 있다. 글자가 조금 다르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鄭玄의 주석 첫머리의 鄭曰에 대해, 皇本作/鄭元曰/後放此, ‘鄭曰이 《皇侃本》에는 鄭元曰이라고 되어 있다. 이후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지금 《皇侃本》에는 鄭玄曰이라고 되어 있다. ◈◈ 蜀虎案 : 忠信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자신 보다 못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좋아 봐야 현상을 유지할 뿐이고, 재수 없으면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論語》의 내용, 특히 孔子의 말 치고는 너무 편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友가 혹시 다른 글자의 오기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劉寶楠이 인용한 《大戴禮記》, 《呂氏春秋》, 《中論》, 《韓詩外傳》 내용을 살펴 보면, 대체로 無友不如己와 합치된다. 아마 고대 중국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면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無友不如己의 友는, 친구로 ‘사귀다’ 혹은 ‘가까이 지내다’, ‘친하게 지내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자신 보다 못한 사람과 학자로서 깊은 관계를 맺지 말라는 말이지, 이 사람들을 하대하거나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앞쪽 장의 내용 중 汎愛眾/而親仁, ‘사람들을 폭넓게 존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바로 본문과 합치된다.)

 

<공자의 말 이어짐>

 

“[그리고] 잘못하였더라도 바로잡기를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過則勿憚改, ◈ 過는 용언으로, ‘잘못하다’, ‘그르치다’, ‘잘못이 있다’, ‘실수하다’는 말이다. 過失의 過와 같다. ▼ 劉寶楠은 周官/調人注/過/無本意也, ‘《周官》 「調人」에 대한 주석에 “過는 본의가 아니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周官》 「調人」은 《周禮》 「地官司徒」의 일부다. 《周禮》에 대한 주석은 鄭玄의 주석을 이른다. 주석의 過/無本意也는, 過가 곧 ‘과실’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다치게 하려고 하다가 상해를 입혔다는 말이 아니라, 다치게 할 뜻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다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 則은 본래 ‘~하면’, ‘그러면’인데, 여기서는 ‘~하더라도’처럼 해석하는 편이 더 좋다. 學則不固의 則과 같다. ◈ 勿은 ‘~하지 말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無, 毋과 같다. 憚을 받는다. ▼ 皇侃은 勿/猶莫也, ‘勿은 莫과 같다’라고 하였다. 莫 역시 ‘~하지 마라’라는 말이다. ‘막’이라고 읽는다. ▼ 邢昺은 勿/無也, ‘勿은 無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勿/亦禁止之辭, ‘勿 역시 하지 말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詩/東山箋/勿/無也, ‘《詩》 「東山」에 대한 箋에서는 “勿은 無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東山」은 「國風 豳風」에 속해 있다. 箋은 鄭玄의 주석을 이른다. 이 주석은 勿士行枚, ‘士하여 行枚하지 勿하다’에 달려 있다. 鄭玄은 勿/猶無也, ‘勿은 無와 같다’라고 하였다. ◈ 憚은 용언으로, ‘꺼리다’, ‘걱정하다’, ‘두려워하다’, ‘어려워 하다’는 말이다. 改를 받는다. 나는 ‘망설이다’라고 번역하였다. ▼ 鄭玄은 憚/難也, ‘憚은 어렵게 여기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이 주석 중 難에 대해, 難/乃旦反, ‘難은 乃와 旦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憚/難也, ‘憚은 어려워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憚/徒旦反, ‘憚은 徒와 旦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憚/猶難也, ‘憚은 難과 같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憚/畏難也, ‘憚은 어려운 점을 걱정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說文/憚/忌難也//從心/單聲//一曰難也///難/就事言//忌難/謂人忌畏之//詩/云漢箋/憚/猶畏也///是也//此注同許後義/亦通, ‘《說文》에 “憚은 어려운 일을 꺼리다는 뜻이다. 心이 들어 있다. 單이라고 발음한다. 어떤 사람은 어려워하다는 뜻이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어려운 일이란, 일에 대한 표현이고, 어려운 일을 꺼리다는 말은 사람이 꺼리고 걱정한다는 뜻이다. 《詩》 「云漢」에 대한 箋에 “憚은 걱정하다는 말과 같다”라는 말이 있으니, 바로 이런 뜻이다. 憚/難也라는 이 주석은 《說文解字》에 기재되어 있는 풀이 중 뒤의 것과 같고, 본문에 대해 의미 역시 통한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憚은 「心部」에 기재되어 있다. 「云漢」은 《詩》 「大雅 蕩之什」의 「雲漢」을 이른다. 箋은 鄭玄의 주석이다. 이 주석은 我心憚暑, ‘내 마음은 더위를 憚한다’에 붙어 있다. ◈ 改는 체언으로, ‘고치는 일’, ‘고치기’라는 말이다. 본문에서는 잘못을 올바르게 ‘고친다’는 말로 사용되었으므로, ‘바로잡다’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劉寶楠은 說文/改/更也, ‘《說文》에 “改는 고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改는 「攴部」에 기재되어 있다. ◈◈ 皇侃은 友主切磋/若有過失者/當更相諌諍莫難改也//一云/若結友過誤/不得善人/則改易之莫難之也///故李充云/若友失其人/改之爲貴也, ‘벗을 사귀되, 서로 노력해 나가면서, 만약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서로 조언해 주고, 논쟁하면서, 잘못을 고치는 데 어려울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만약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좋은 사람과 사귀지 못한다면, 그 잘못을 고쳐서 좋은 사람을 사귀는 데에 어려움이 없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李充은 “만약 친구가 좋은 사람을 잃었다면, 친구를 고쳐 주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邢昺은 言人誰無過/過而不改/是謂過矣//過而能改/善莫大焉//故苟有過/無得難於改也, ‘이 말은 이러한 뜻이다. 사람이 누가 잘못이 없겠냐만은,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다면, 이는 잘못이다. 잘못하더라도 고칠 수 있다면, 善하기로 이 보다 큰 일이 없겠다. 그래서 진정 잘못이 있다면, 고치는 데에 어려울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程頤는 學問之道無他也/知其不善/則速改以從善而已,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선하지 않은 점을 깨닫고, 빨리 고쳐서 선을 따르는 일일 뿐이다’라고 하였고, 또 君子自修之道當如是也, ‘君子가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이 마땅히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自治不勇/則惡日長/故有過則當速改/不可畏難而苟安也, ‘자신을 다스리는 방식이 勇하지 못하다면, 못된 마음만 나날이 자라날 것이니,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빨리 고쳐야 하고, 어려운 점을 두려워하며 구차하게 안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游酢은 君子之道/以威重爲質/而學以成之//學之道/必以忠信爲主/而以勝己者輔之//然或吝於改過/則終無以入德/而賢者亦未必樂告以善道/故以過勿憚改終焉, ‘君子의 도리는 위엄과 중후함을 근간으로 하여, 배우고, 학문을 이루는 일이다. 학문의 도리로는, 반드시 忠信에 초점을 맞추고, 이로써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을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을 바로잡는 데 소극적으로 군다면, 죽을 때까지 德의 경지에 들어 갈 수 없을 것이요, 현명한 사람이더라도 이 사람에게 좋은 방법을 가지고 즐겁게 충고하려 들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잘못을 고치는 일을 꺼리지 말라고 글을 마무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言人行事/非有意之過/即當改之/不可畏難/複以前行之也//曾子立事篇/太上不生惡/其次能夙絕之/其下複而能改///又下篇子曰/過而不改/是謂過矣///皆言人有過當速改也//皇疏載一說云/若結友過誤/不得善人/則改易之/莫難之也///故李充云/若友失其人/改之爲貴也///案/高誘注呂氏春秋/驕恣篇引無友不如己者過則無憚改/以證所擇而莫如己者亡之義/亦以過謂結友過誤/或漢人有此議/故李充云然//然既知誤交/何難即改//似不足爲君子慮也, ‘이 말은 사람이 일을 처리할 때, 과실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니, 곧 마땅히 과실을 고쳐야 하고, 고치는 일이 어렵다고 걱정하다가 앞서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曾子立事」에 “가장 좋은 경지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 경지는 나쁜 짓을 하더라도 일찍 멈추는 것이며, 그 아래의 수준은 같은 짓을 반복하고서야 고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 뒷편에 “잘못을 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잘못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들은 모두 과실을 지었다면 마땅히 빨리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皇侃은 어떤 사람이 “만약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좋은 사람과 사귀지 못한다면, 그 잘못을 고쳐서 좋은 사람을 사귀는 데에 어려움이 없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한 설을 소개해 두었고, 또 李充이 “만약 친구가 좋은 사람을 잃었다면, 친구를 고쳐 주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라고 한 말도 소개해 두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呂氏春秋》 「驕恣」에 대한 高誘의 주석에서는 본문의 無友不如己者/過則無憚改를 인용해서 “선택한 사람이 자신 보다 못하다면 망하고 말 것이다”의 의미를 증명하였으니, 이 역시 과실을 가지고 교분을 맺을 때 저지르는 過誤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그런데 어떤 漢人이 이 점에 대해 논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李充도 그렇게 의견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교분을 잘못 맺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면, 이 잘못을 고치기까지 무엇이 어렵겠는가. 다만 아마도 君子의 慮라고 하기에 모자라다는 의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曾子立事」는 《大戴禮記》의 편이다. 過而不改/是謂過矣는 《論語》 「衛靈公」에 나온다. 《呂氏春秋》 「驕恣」는 「恃君覽」에 속해 있다. 或漢人은 皇侃이 소개한 一云의 一을 이를 것이다. ◈◈ 蜀虎案 : 잘못을 했으면 망설이지 말고 빨리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잘못을 대면하기 싫어서 피하다 보면, 운 좋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눈덩이처럼 커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또, 君子로서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잘못이란, 당연히 고쳐야 할 일이다. 고치기를 망설이거나, 피한다면, 애초에 君子라고 할 수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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