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1 - 학이 - 7 - 현현역색

2024. 4. 5. 11:56논어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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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5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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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7 - 현현역색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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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言而有信。

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

 

 

 

자하가 말했다.(子夏曰, ◈ 子夏는 孔子의 제자인 卜商이다. 文學에 뛰어났다고 한다. 《論語》 「先進」에 德行/顏淵/閔子騫/冉伯牛/仲弓//言語/宰我/子貢//政事/冉有/季路//文學/子游/子夏, ‘德行으로는 顏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이, 言語로는 宰我, 子貢이, 政事로는 冉有와 季路가, 文學으로는 子游. 子夏가 뛰어났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文學은, 아래에 인용한 《孔子家語》 기록을 감안할 때, 《詩》를 잘 해석했다는 말일 것이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卜商字子夏//少孔子四十四歲, ‘卜商은 字가 子夏다. 孔子 보다 44살 어렸다’라는 말이 있다.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에는 좀 더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孔子家語》에는 卜商/衛人/字子夏//少孔子四十四歲//習於詩/能通其義/以文學著名//爲人性不弘/好論精微/時人無以尙之, ‘卜商은 衛나라 사람으로, 字는 子夏였다. 孔子 보다 44살 어렸다. 《詩》를 익혀서, 그 의미를 잘 알아, 文學을 잘 안다고 유명하였다. 그러나 됨됨이가 넓지 않았고, 세세한 점에 대해 따지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子夏를 존경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한편, 《史記》에 대해, 裴駰은 家語云衞人//鄭玄曰溫國卜商, ‘《家語》에서는 衛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鄭玄은 溫國의 卜商이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司馬貞은 按/家語云衞人/鄭玄云溫國人/不同者/溫國今河內溫縣/元屬衞故, ‘생각해 보건대, 《家語》에서는 衛나라 사람이라고 하였고, 鄭玄은 溫國 사람이라고 했으니, 같지 않다. 이는 溫國이 지금 河內의 溫縣인데, 본래 衛나라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家語》는 앞서 인용한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를 이른다. ▼ 孔安國은 子夏/弟子卜商也, ‘子夏는 弟子인 卜商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姓卜名商字子夏/言以至善也/此注如前通也, ‘姓은 卜이고, 이름은 商이며, 字는 子夏다. 말을 아주 잘하였다. 이 주석은 앞의 글들과 의미가 통한다’라고 하였다. 此注란, 子夏에 대한 孔安國의 주석을 뜻한다. ▼ 陸德明은 夏/戸雅反, ‘夏는 戸와 雅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案/史記/仲尼弟子傳云/卜商字子夏/衛人也//少孔子四十四歲//孔子既沒/居西河敎授/爲魏文侯師, ‘살펴 보면,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卜商은 字가 子夏다. 衛나라 사람이다. 孔子 보다 44살 어렸다. 孔子가 이윽고 죽자, 西河에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魏文侯의 스승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衛人也가 나오지 않는다. 나머지 인용구들은 모두 나온다. 子夏가 衛나라 사람이라는 말은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에 卜商/衛人/字子夏, ‘卜商은 衛나라 사람으로, 字는 子夏다’라고 나온다. ▼ 朱熹는 子夏/孔子弟子/姓卜/名商, ‘子夏는 孔子의 제자로, 姓은 卜이고, 이름은 商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史記/弟子列傳/卜商/字子夏/少孔子四十四歲///集解引鄭說/溫國卜商///溫是衛邑//稱國者/或本爲國/從其初名之也//家語/弟子解/以爲衛人/與鄭目錄合//孔穎達/檀弓/疏/則云魏人/又唐贈衛侯/宋封魏公//據史記及呂氏春秋/舉難/察賢篇/並言子夏爲魏文侯師/是子夏固嘗居魏/魏衛同音/故誤以爲魏人耳, ‘《史記》 「弟子列傳」에 “卜商은 字가 子夏고, 孔子 보다 44살 어렸다”라는 말이 있다. 《集解》에서는 鄭玄이 “溫國의 卜商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해 두었다. 溫이 衛나라의 邑이다. 溫國, 즉 國이라고 하였고, 어떤 판본에는 𡈑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처음 상황에 따라 명명하였기 때문이다. 《家語》 「弟子解」에서는 衛나라 사람이라고 보고 있으며, 鄭玄의 《目錄》과도 합치된다. 그런데 孔穎達은 「檀弓」에 疏에서 魏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 唐나라 때는 子夏에게 衛侯의 작을 내렸으며, 宋나라 때는 魏公을 봉하였었다. 《史記》와 《呂氏春秋》 「舉難」, 「察賢」을 가지고 생각해 보건대, 저 글들에서는 모두 子夏가 魏나라 文侯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한 즉, 子夏는 분명 魏나라에 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魏와 衛는 발음이 같으니, 그래서 孔穎達이 魏나라 사람이라고 오해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弟子列傳」은 「仲尼弟子列傳」을 이른다. 《集解》는 裴駰의 《史記集解》를 이른다. 한편 司馬貞은 《史記索隱》에서 家語云衛人/鄭玄云溫國人/不同者/溫國今河內溫縣/元屬衛故, ‘《家語》에는 衛나라 사람이라고 되어 있고, 鄭玄은 溫國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말이 같지가 않다. 이는 溫國이 지금의 河內 溫縣인데, 본래 衛나라에 속했던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참고차 기재해 둔다. 從其初名之也는 아마, 溫이 衛나라에 속하기 전에는 독립국이었다는 의미 같다. 《家語》 「弟子解」는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를 이른다. 《目錄》은 鄭玄의 《論語孔子弟子目錄》을 이른다. 「檀弓」은 「檀弓 上」으로, 《禮記》의 편이다. 「舉難」은 「離俗覽」에 속해 있다. 「舉難」에는 文侯師子夏/友田子方/敬段干木, ‘文侯는 子夏를 스승으로 모셨고, 田子方과 사귀었으며, 段干木을 공경했다’라는 말이 있다. 「察賢」은 「開春論」에 속해 있다. 「察賢」에는 魏文侯師卜子夏/友田子方/禮段干木, ‘魏나라 文侯는 卜子夏를 스승으로 보시고, 田子方과 사귀었으며, 段干木을 禮로 대했다’라는 말이 있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 蜀虎案 : 이 장에는 子夏가 ‘배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가 드러나 있다.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여 자신을 절제할 줄 알고, 孝와 忠을 성심성의껏 실천하며, 교우 관계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

 

“현명한 이를 존경하여서, [현명한 이를 대할 때 존경하는 태도로] 낯빛을 바꾸고,”(賢賢易色, ◈ 내 생각에, 賢賢易色은 賢賢乃易色, ‘賢賢하여서 이에 易色한다’처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 賢賢 중 앞의 賢은 용언으로, 아마 ‘존경하다’ 혹은 ‘친애하다’, ‘좋아하다’, ‘가까이 하다’, ‘교분이 두텁다’라는 말일 것이다. 뒤의 賢을 받는다. 《戰國策》 「秦策」에 諸侯相親/賢於兄弟, ‘제후들이 서로 가까워져서 형제 사이 보다 賢하게 되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賢/猶厚也, ‘賢은 두텁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관계가 ‘두텁다’는 말일 것이다. 관계가 ‘두텁다’는 말은 곧 ‘친애하다’, ‘좋아하다’는 말이고, 이를 ‘친애하고 싶다’, ‘좋아하고 싶다’라고 풀이하면, 곧 ‘존경하다’는 말과 통한다. 親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문맥상 賢賢易色의 賢은 이렇게 해석해야 가장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유사한 사례를 《戰國策》 외에선 찾을 수 없으니 다소 의뭉스럽다. ▼ 皇侃이 소개한 일설에서는 上賢字猶尊重也, ‘앞의 賢은 존경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上賢/謂好尙之也, ‘앞의 賢은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賢賢 중 뒤의 賢은 체언으로, ‘현명한 사람’을 이른다. 즉, 賢賢은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다’,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다’, ‘현명한 사람을 친애하다’라는 말이 된다. ▼ 皇侃이 소개한 일설에서는 下賢字謂賢人也, ‘뒤의 賢은 현명한 사람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下賢/謂有德之人, ‘뒤의 賢은 德을 품은 사람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朱熹는 뒤의 賢을 人之賢, ‘다른 사람의 賢’이라고 풀이하였다. ▼ 劉寶楠은 賢賢을 함께 풀이했다. 劉寶楠은 周官/太宰/鄭注云/賢/有善行也///賢賢者/謂於人之賢者賢之/猶言親親/長長也, ‘《周官》 「太宰」에 대한 鄭玄의 주석에는 “賢은 善을 지닌 행위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賢賢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賢을 賢한다는 뜻이니, 곧 親親이나 長長 같은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周官》 「太宰」는 《周禮》 「天官冢宰」의 일부다. 그러나 賢/有善行也라는 주석은 없다. 三曰進賢, ‘세 번째는 進賢이다’에 賢/有德行者, ‘賢은 德을 품은 행위다’라는 말이 있으니, 아마 劉寶楠이 이를 착각한 듯하다. ◈ 易은 용언으로, ‘바꾸다’는 말이다. ‘역’이라고 읽는다. 色을 받는다. ▼ 邢昺은 易/改也, ‘易은 바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漢書/李尋傳/引此文/顔師古注/易色/輕略於色/不貴之也///公羊/文十二年傳/俾君子易怠///何休注/易怠/猶輕惰也///是易有輕略之意//又廣雅/釋言/易/如也///王氏念孫/疏證/引之云/論語賢賢易色/易者/如也//猶言好德如好色也///此訓亦通, ‘《漢書》 「李尋傳」에는 이 말이 인용되어 있는데, 顏師古는 “易色은 色에 대해 소홀하게 한다는 뜻으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公羊》 「文」 12년에 대한 傳에 “君子를 易怠하게 만들다”라는 말이 있는데, 何休는 “易怠는 輕惰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易에는 소홀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 《廣雅》 「釋言」에 “易는 같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王念孫의 《疏證》에서 이 말을 인용해서는 “《論語》에 나오는 賢賢易色의 易도 같다는 뜻이니, 德을 좋아하는 모습이 色을 좋아하는 모습과 같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풀이해도 의미가 통한다’라고 하였다. 《漢書》 「李尋傳」은 「眭兩夏侯京翼李傳」을 이른다. 《公羊》 「文」은 《春秋公羊傳》 「文公」이다. ‘소홀하다’고 풀이될 때, 易는 ‘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다. 弛와 통용하여 썼을지도 모르겠다. 《疏證》은 王念孫이 지은 《廣雅疏證》을 이른다. ◈ 色은 체언으로, ‘낯빛’, ‘안색’이다. 곧, 易色은 자기 ‘낯빛을 바꾸다’, 자기 ‘안색을 바꾸다’는 말이다. 그런데 色을 ‘여색’, 즉 ‘예쁜 여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면 易色은 ‘여색을 보고 낯빛을 바꾸듯 한다’처럼 해석된다. 邢昺은 ‘여색’으로 풀이하였고, 그 외에도 주석을 참고하면, 孔安國, 皇侃, 朱熹가 모두 色를 ‘여색’이라고 풀이하였다. ▼ 邢昺은 色/女人也//女有姿色/男子悅之/故經傳之文通謂女人爲色, ‘色은 여자라는 뜻이다. 여자가 예쁘면, 남자는 기뻐한다. 따라서 經傳의 글들에서는 여자를 色이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孔安國은 言以好色之心好賢則善, ‘여색을 좋아하는 자세로, 현명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좋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孔安國의 주석 중 好에 대해, 好/呼報反//下章好學同, ‘好는 呼와 報의 반절로 읽는다. 다음 글 중 好學이라는 말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劉寶楠은 이 주석에 대해, 此以易爲更易/義涉迂曲/今所不從, ‘이 풀이에서는 易을 바꾸다는 의미로 해설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본문의 의미가 어그러지고 만다. 이에 여기서는 이 설을 따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凡人之情/莫不好色/而不好賢//今若有人/能改易好色之心以好於賢/則此人便是賢於賢者/故云賢賢易色也//然云賢於賢者亦是奬勸之辭也, ‘보통 사람들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없지만,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금 어떤 사람이 있는데,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도록 바꿀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사람이 곧 현명한 사람을 존경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여,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바꾼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을 존경한다는 말 역시 장려하는 말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또, 다른 설을 소개해 두었는데, 이 설에서는 然云賢於賢者亦是奬勸之辭也//又一通云/上賢字猶尊重也/下賢字謂賢人也//言若欲尊重此賢人/則當改易其平常之色更起莊敬之容也,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을 풀이하면서, “앞의 賢은 존경하다는 말과 같고, 뒤의 賢은 현명한 사람을 이른다. 이렇듯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려 한다면, 마땅히 평소의 낯빛을 엄숙한 모습으로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소개된 설은 내 의견과 같다. ◈◈ 邢昺은 人多好色不好賢者/能改易好色之心以好賢/則善矣//故曰賢賢易色也, ‘사람이 여자는 좋아하면서,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만약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바꾸어 현명한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 하겠다. 그래서 賢賢易色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賢人之賢/而易其好色之心/好善有誠也, ‘다른 사람의 賢을 賢하여서, 여자를 좋아하는 자세도 고친다면, 善을 좋아하는 데 진정성이 있다 하겠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宋氏翔鳳/樸學齋劄記/三代之學/皆明人倫/賢賢易色/明夫婦之倫也//毛詩序云/周南召南/正始之道/王化之基/是以關雎樂得淑女以配君子/憂在進賢/不淫其色/哀窈窕/思賢才/而無傷善之心焉//是關雎之義也///此賢賢易色/指夫婦之切證///陳氏祖范/經咫/管氏同/四書紀聞/略同//今案/夫婦爲人倫之始/故此文敘於事父母/事君之前, ‘宋翔鳳은 《樸學齋劄記》에서 “三代의 학문은 모두 人倫을 밝히고, 賢賢易色하며, 夫婦의 倫을 밝히는 바였다. 《毛詩》 「序」에 ‘「周南」과 「召南」은 始를 바로잡는 도리요, 王이 교화할 기반이니, 이에 「關雎」에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淑女를 얻어서 君子에게 짝지어 주며, 賢을 進할 일을 걱정하며, 色을 탐하지 않았다. 정숙한 사람을 사모하고, 현명한 인재를 생각하니, 善한 마음을 손상시키는 바가 없었다. 이것이 「關雎」의 의미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賢賢易色은 부부 사이의 切證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陳祖范의 《經咫》, 管同의 《四書紀聞》에도 대체로 비슷하게 설명되어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夫婦는 인륜의 시초다. 따라서 이 賢賢易色이 부모를 모시고, 군주를 섬기는 일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宋翔鳳은 江蘇의 長州 사람으로, 淸나라 嘉慶帝 때의 학자다. 「關雎」는 《詩》 「國風 周南」에 속해 있다. 陳祖范은 江蘇 사람으로, 淸나라 雍正帝 때의 학자다. 管同은 南京 사람으로, 淸나라 乾隆帝 때의 학자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則善에 대해, 皇本/善下有也字//下其身下同, ‘《皇侃本》에는 善 다음에 也가 있다. 이 다음 주석의 其身 다음에도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則善이 則善也로, 不愛其身이 不愛其身也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 孔安國의 好에 대한 陸德明의 주석 중 下章好學同에 대해, 舊章誤至/盧文弨刻本校改, ‘옛 판본에는 章이 至로 잘못되어 있었다. 《盧文弨刻本》에서 교정하고 고쳤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자신을 절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賢賢易色은 아마 현명한 사람을 친애하고, 또 존경하여서, 현명한 사람을 대할 때, 존경하는 태도를 갖추어 낯빛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 듯하다. 자기 감정 때문에 상황을 가리지 못하고 낯빛을 구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을 보고 존경하는 태도를 갖출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을 절제하고, 가다듬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色을 만약 ‘여색’이라고 번역한다면, 이 구절은 자신을 절제한다기 보다는, 현명한 사람을 여자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친애한다고 해석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사람이 현명한 사람을 깊이 좋아한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 함의가 자신을 절제할 수 있다고 풀이할 수 있었던 앞의 경우 보다 못하다.)

 

“부모를 모실 때에는 자기 힘을 다하며,”(事父母能竭其力, ◈ 事는 용언으로, ‘섬기다’, ‘모시다’는 말이다. 父母를 받는다. ◈ 父母는 체언으로, ‘부모’다. ▼ 劉寶楠은 曲禮記云/生曰父曰母///說文/父/矩也/家長率敎者//從又/舉杖//母/牧也/從女/象褱子形//一曰/象乳子也, ‘「曲禮記」에 “살아 계시면 父라고 부르고, 母라고 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說文》에는 “父는 법도이니, 집의 어른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교화하는 사람이다. 又가 들어 있고, 지팡이를 들고 있다”라는 말이 있고, “母는 기르다는 말이다. 女가 들어 있다. 자식을 품은 모습을 본땄다. 어떤 사람은 젖을 주는 모습을 본땄다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曲禮記」는 《禮記》 「曲禮 下」를 이른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父, 母는 각각 「又部」, 「女部」에 기재되어 있다. ◈ 能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竭을 받는다. ◈ 竭은 용언으로, ‘다하다’는 말이다. 힘을 ‘다하다’, 최선을 ‘다하다’는 뜻이다. 其力을 받는다. 能致其身의 致와 같다. 劉寶楠은 《說文解字》에서 竭이 짐을 ‘지고 든다’는 의미로 풀이되었다는 점을 인용해 설명하였는데, 결국 자식은 부모를 업고, 들며 모시게 되므로, 이 역시 타당하다. ▼ 劉寶楠은 說文又云/竭/負舉也///負舉者必盡力/故竭又訓盡//此文義得兼之//曾子本孝云/庶人之孝也/以力惡食///盧辯注/分地/任力/致其甘美///又曾子大孝云/小孝用力/慈愛忘勞/可謂用力矣///孔氏廣森/補注/庶人之孝///孟子/萬章篇/言舜事云/我竭力耕田/供爲子職而已矣///是竭力爲庶從孝養之事也, ‘《說文》에는 또 “竭은 지고 든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짐을 지고, 들고 있는 사람은 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竭은 다하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다. 이 글에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내재되어 있다. 「曾子本孝」에 “庶人의 孝는 힘을 다하더라도 食을 惡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盧辯은 “농사를 짓고, 노동하여서 맛있는 음식을 올리도록 노력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또, 「曾子大孝」에는 “小孝는 用力하는 일이니, 사랑하여 수고를 잊으면, 用力한다고 할 수 있겠다”라는 말이 있는데, 孔廣森은 《補注》에서 “庶人의 孝에 대해서는 《孟子》 「萬章」에서 舜에 대해 ‘나는 힘을 다하여 밭을 갈고, 供하게 아들로서의 직분을 이행할 뿐이다’라고 한 말이 있으니, 이처럼 힘을 다하는 일이야말로 庶人이 효성스럽게 부모를 모시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竭은 「立部」에 나온다. 「曾子本孝」는 《大戴禮記》의 편이다. 盧辯은 北周의 학자다. 「曾子本孝」의 惡食에 대해, 孔廣森은 惡食言養以甘美/自食其惡者也, ‘惡食은 맛있는 음식으로 모시더라도, 스스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아무리 음식이 좋아도, 자식의 입장에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같다. 「曾子大孝」는 《大戴禮記》의 편이다. 《補注》는 孔廣森의 《大戴禮記補注》를 이른다. 盧辯의 주석에다가 孔廣森이 자기 의견을 보충하였다. 「萬章」 인용문은 「萬章 上」에 나온다. 「萬章 上」에는 供爲子職而已矣가 共爲子職而已矣로 되어 있다. ◈ 其力의 其는 子夏가 이 글에서 예로 들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力을 받는다. ◈ 力은 체언으로, ‘힘’이다. ◈◈ 皇侃은 子事父母/左右就養/無方是能竭力也,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데, 곁에서 모신다면, 이처럼 힘을 다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다음의 事君能致其身에 대한 皇侃의 주석에도 이 句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바란다. ◈◈ 邢昺은 事父母/能竭其力者/謂小孝也//言爲子事父/雖未能不匱/但竭盡其力/服其勤勞也, ‘事父母/能竭其力이라는 말은 小孝를 이른다. 자식이 되어 부모를 모시는데, 비록 모자란 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기 힘을 다하여 해야 할 일을 따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부모를 모시는 일은 곧 孝다. 성의를 다하여 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하의 말 이어짐>

 

“군주를 섬길 때에는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고,”(事君能致其身, ◈ 事는 용언으로, ‘섬기다’, ‘모시다’는 말이다. 君을 받는다. ◈ 君은 체언으로, ‘군주’다. 士의 입장에서는 卿이나 大夫일 것이고, 卿과 大夫의 입장에서는 제후, 제후의 입장에서는 王을 이른다. ▼ 劉寶楠은 儀禮/喪服/傳/君/至尊也///鄭注/天子諸侯及卿大夫有地者皆曰君, ‘《儀禮》 「喪服」에 대한 傳에 “君은 지극히 존귀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天子, 諸侯, 그리고 卿, 大夫 중에서 자기 땅이 있는 자를 모두 君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儀禮》의 傳은, 子夏의 해설이다. ◈ 能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致를 받는다. ◈ 致는 용언으로, ‘다하다’, ‘지극하게 하다’는 말이다. 其身을 받는다. 能竭其力의 竭과 같다. 앞의 竭과 번역이 겹치므로, 나는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처럼 의역하였다. ▼ 皇侃은 致/極也, ‘致는 다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致/猶委也//委致其身/謂不有其身也, ‘致는 맡겨 두다는 말과 같다. 자신을 맡겨 둔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이 없는 듯 군주를 모신다는 뜻이다. 이 句에 대해 孔安國은 不愛其身,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과 같다. ▼ 劉寶楠은 說文/致/送詣也, ‘《說文》에 “致는 보내서 도달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致는 「夊部」에 기재되어 있다. ◈ 其身의 其는 子夏가 이 글에서 예로 들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身을 받는다. ◈ 身은 체언으로, ‘자신’이다. ◈◈ 孔安國은 盡忠節/不愛其身, ‘忠節을 다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孔安國의 주석 중 盡에 대해 陸德明은 盡/津刃反/下注同, ‘盡은 津과 刃의 반절로 읽는다. 아래의 글 및 주석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士見危/致命/是能致極其身也//然事君雖就養/有方亦宜竭力於君親/若患難//故宜致身/但親主家門非患難之所/故云竭力//臣主捍難禦侮/故云致身也, ‘선비가, 위태로워지더라도 자신의 命을 다하는 것이 자신을 다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군주를 섬기면서도 비록 부모를 모실 방법이 있다고 한들, 또한 마땅히 군주와 부모 모두에게 힘을 다해야 하는데, 이 일은 어려워서 고난과 같다. 그래서 자신을 다하되, 다만 부모는 집에 살게 하고, 걱정될 만한 곳에 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힘을 다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신하는 환난을 막고, 치욕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다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事君/能致其身者/言爲臣事君/雖未能將順其美/匡救其惡/但致盡忠節/不愛其身/若童汪踦也, ‘事君/能致其身이라는 말은, 신하가 되어 군주를 섬기는데, 비록 군주의 훌륭한 점을 따르지 못하거나, 군주의 나쁜 점을 바로잡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충절을 다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童汪踦와 같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童汪踦는 童子 汪踦를 이르는 말이다. 魯나라 사람이다. 齊나라가 魯나라를 공격했는데, 이에 魯나라에서 汪踦가 출전해서 싸우다 죽었다. 《禮記》 「檀弓 下」에 이 일화가 나오고, 또 《春秋左氏傳》 「哀公」 11년 기사에도 나온다. 《禮記》에는 童汪踦로 기재되어 있으며, 《春秋左氏傳》에는 僮汪錡라고 되어 있다. ◈◈ 劉寶楠은 詩/四牡云/四牡騑騑/周道倭遲//豈不懷歸//王事靡盬/我心傷悲///毛傳云/思歸者/私恩也//靡盬者/公義也//傷悲者/情思也//無私恩/非孝子也//無公義/非忠臣也//君子不以私害公/不以家事辭王事///是言事君不得私愛其身/稽留君事也, ‘《詩》 「四牡」에는 “四牡이 달려도 周道는 倭遲하다. 어찌 돌아 가고 싶은 마음 없겠느냐. 王事가 盬하지 않으니, 내 마음 슬프도다”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傳에서 “돌아 가고 싶다는 생각은 사사로운 마음이고, 盬하지 않다는 점은 공적인 일이다. 슬프다는 말은 마음 상태를 이른다. 사사로운 마음이 없으면 孝子가 아닐 것이요, 공무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忠臣이 아닐 것이다. 君子는 사사로운 일 때문에 공무를 그르치지 않고, 집안의 일 때문에 王의 일을 거절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군주를 섬기면서 자기 자신을 사사롭게 아끼고, 군주의 일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四牡」은 「小雅 鹿鳴之什」에 속해 있다. 《毛詩正義》에는 思歸者/私恩也//靡盬者/公義也//傷悲者/情思也 부분은 毛亨의 傳으로, 無私恩/非孝子也//無公義/非忠臣也//君子不以私害公/不以家事辭王事 부분은 鄭玄의 箋으로 되어 있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盡에 대한 陸德明의 주석 중 津刃反의 刃에 대해, 舊忍作刃//盧本據書內音校改, ‘옛 판본에는 忍이 刃으로 되어 있었다. 《盧本》에서는 《書內音》에 근거하여 교정하고 고쳤다’라고 하였다. 《書內音》은 글이나 책 제목 같은데,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忍이어야 맞다는 말 같다. ▼ 邢昺의 주석 중 若童汪踦也에 대해, 十行本閩本/汪踦誤注錡, ‘《十行本》과 《閩本》에는 汪踦가 注錡로 잘못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군주를 모시는 일은 곧 忠이다. 성의를 다하여 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하의 말 이어짐>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신의가 있다면,”(與朋友交言而有信, ◈ 與朋友의 與는 ‘~와’다. 朋友을 받는다. ◈ 朋友은 체언으로, ‘친구’를 이른다. 《周禮》 「地官司徒」에는 五曰聯朋友, ‘다섯 번째는 朋友를 聯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同師曰朋/同志曰友, ‘스승이 같으면 朋이라고 하고, 뜻이 같으면 友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交는 부사어로, ‘서로’, ‘함께’다. 言을 한정한다. 《春秋左氏傳》 「隱公」 3년에 故周鄭交質, ‘이에 周나라와 鄭나라가 交 인질을 잡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交는 ‘서로’라고 해석된다. 또, 《春秋左氏傳》 「襄公」 11년에 武濟自輔氏/與鮑交伐晉師, ‘武는 輔氏에서 강을 건너서 鮑와 交 晉나라 군대를 伐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交는 ‘함께’라고 해석된다. 《孟子》 「梁惠王 上」에는 上下交征利而國危矣,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交 잇속을 征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交는 ‘함께’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은 모두 金元中의 《한문 해석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 言은 용언으로, ‘말하다’, ‘이야기하다’는 말이다. ▼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交言을 交接, ‘교류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交言而有信의 而는 순접으로, ‘~하면서’라고 해석된다. ◈ 有는 아마 용언으로, ‘있다’는 말일 것이다. 有信의 信을 받는다. ◈ 信은 체언으로, ‘신의’다. ◈◈ 皇侃은 入則事親/出則事君/而與朋友交接義主不欺/故云必有信也, ‘집에 들어 가면 부모를 모시고, 집에서 나가면 군주를 모시면서도,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의로워야지, 속이면 안 된다. 그래서 꼭 “신의가 있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與朋友交/言而有信者/謂與朋友結交/雖不能切磋琢磨/但言約而每有信也, ‘與朋友交/言而有信이라는 말은, 친구와 교분을 맺을 때, 비록 아주 신중을 기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말을 할 때 언제나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신의를 가지고 친구와 교분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이 句는 「學而」 4장, 즉 吾日三省吾身의 與朋友交而不信乎와 의미가 동일하다. 與朋友交而不信乎는 반문하는 투고, 본문의 與朋友交言而有信은 평서문이라는 점만 다르다. 이를 고려해서 풀이해야 하겠다.)

 

<자하의 말 이어짐>

 

“[이 사람이] 비록 못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는 꼭 그 사람을 배운 사람이라고 이르겠다.”(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 ◈ 雖는 ‘비록’, ‘~한다고 하더라도’처럼 해석된다. ▼ 劉寶楠은 廣雅/釋詁/雖/詞也, ‘《廣雅》 「釋詁」에 “雖는 어조사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曰은 ‘~라고 하다’는 말이다. 명사구인 未學을 받는다. 이 曰은 謂, 爲와 같다. ◈ 未學은 ‘공부하지 않은 사람’, ‘못배운 사람’이다. 未는 부정어다. 未學의 學을 한정한다. 學은 용언으로, ‘배우다’, ‘공부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未學은 명사구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 ‘못배운 사람’이 된다. ▼ 劉寶楠은 當時多世卿廢選舉之務/雖不學亦得出仕/故有未學亦事君也, ‘당시에 世卿이 選舉할 의무를 져 버린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출사할 수 있었으니, 그래서 배우지 않고서도 군주를 섬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다. 子夏 자신을 이른다. ◈ 必은 부사어로, ‘꼭’, ‘반드시’라고 해석된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표현하다’는 말이다. 謂之의 之를 받는다. ▼ 劉寶楠은 廣雅/釋詁/謂/說也, ‘《廣雅》 「釋詁」에는 “謂는 말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謂之의 之는 子夏가 이 글에서 예로 들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앞에 나온 其力, 其身의 其와 같다. ◈ 謂之學의 學은 체언으로, ‘배운 사람’을 뜻한다. 雖曰未學의 未學과 대조를 이룬다. ◈◈ 皇侃은 假令不學而生知如前/則吾亦謂之學也//此勸人學故也//故王雍云/言能行此四者/雖云未學/而可謂已學也//生而知者/上學而知者/次若未學而能知/則過於學矣//蓋假言之以勸善行也, ‘예를 들어, 공부를 하지 않고도 이전과 같이 나면서부터 알고 있다면, 자신 역시 그 사람이 공부했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글이 사람들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王雍은 “이 네 가지를 이행할 수 있다면, 공부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공부했다고 할 만하다는 뜻이다. 나면서부터 알게 되었든, 공부를 해서 알게 되었든, 공부하지 않고 깨달을 수 있는 경우 보다는 못하니, 이 경우가 공부한 경우 보다 낫다. 아마 말을 가정해서 善行을 권면하려 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皇侃과 王雍은 공부를 하지 않고도 식견을 타고난 상황을 생각한 듯한데, 내 생각에 본문 내용은 그렇지 않다. 내 의견은 마지막 부분에 달아 두었다. ◈◈ 邢昺은 此章論生知美行之事, ‘이 장에서는 사람이 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美行에 대해 논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生知라는 말은 ‘나면서 안다’는 말이다. 《論語》 「述而」에 我非生而知之者,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고, 또 《論語》 「季氏」에 生而知之者/上也,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제일 낫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 邢昺이 말한 生知도 이 生知를 이를 듯하다. 邢昺은 또, 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者/言人生知行此四事/雖曰未嘗從師伏膺學問/然此爲人行之美矣/雖學亦不是過/故吾必謂之學矣, ‘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라는 말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네 가지 일을 행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으니, 비록 스승을 따르면서 학문을 삼가 마음 속에 품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렇듯 그 행위가 훌륭하기 때문에, 학문은 역시 이에 지나지 않더라도, 자신은 반드시 이 사람이 배웠다고 말할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皇侃, 王雍의 의견도 이와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朱熹는 四者皆人倫之大者/而行之必盡其誠/學求如是而已//故子夏言有能如是之人/苟非生質之美/必其務學之至//雖或以爲未嘗爲學/我必謂之已學也, ‘네 가지는 모두 인륜의 요체이니, 이를 이행할 때는 꼭 진정을 다해야 한다. 배우고자 할 때도 이러한 자세와 같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子夏는 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타고난 質이 진정 훌륭하지 않더라도, 공부에 노력하는 자세는 분명 지극할 것이다. 그러니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공부한 적이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나는 꼭 그 사람이 공부를 끝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四者란, 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言而有信을 이른다. ◈◈ 游酢은 三代之學/皆所以明人倫也//能是四者/則於人倫厚矣//學之爲道/何以加此//子夏以文學名/而其言如此/則古人之所謂學者可知矣//故學而一篇/大抵皆在於務本, ‘유씨 : 三代의 학문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 네 가지를 이행할 수 있다면, 인륜이 두터워질 것이다. 학문을 실천하는 도리가 이 점에서 뭐가 더 있겠느냐. 子夏는 文學으로 유명하였는데, 子夏의 말이 이와 같았으니, 옛 사람들이 공부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었지를 알 만하다. 따라서 「學而」 한 편은 대체로, 모든 글이 근본에 힘쓰는 내용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四者란, 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言而有信을 이른다. ◈◈ 吳棫은 子夏之言/其意善矣//然辭氣之間/抑揚太過/其流之弊/將或至於廢學//必若上章夫子之言/然後爲無弊也, ‘子夏의 말은 의미가 좋다. 그러나, 辭氣에 또 아주 지나친 점이 있다. 그러한 부류의 문제 때문에, 공부를 접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앞의 글에 나오는 선생의 말을 반드시 고심해 보아야 하고, 그런 뒤에야 이러한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必若上章夫子之言은 必苦上章夫子之言의 오기로 보여, 苦로 보고 번역하였다. 吳棫은 子夏의 말이 지나치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지나치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 劉寶楠은 子夏以此人所行/於人倫大端無所違失/與已學無異/故云必謂之學//必謂者/深信之辭//春秋繁露/玉杯篇/禮之所重者/在其志/志敬而節具/則君子予之知禮//志和而音雅/則君子予之知樂/志哀而居約/則君子予之知喪///董之所言正謂與之義同, ‘子夏는 이 사람의 행동이 人倫이나 大端을 위배하는 경우가 없으니, 이미 배운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 그 사람이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必謂는 깊이 신뢰한다는 표현이다. 《春秋繁露》 「玉杯」에 “禮의 핵심은 志에 달려 있다. 志가 공경스럽고 절도가 갖춰졌다면, 君子는 그 사람이 禮를 안다고 인정할 것이요, 志가 조화롭고 音이 아름답다면, 君子는 그 사람이 樂을 안다고 인정할 것이요, 志가 슬프고 모습이 검약하다면, 君子는 그 사람이 喪을 안다고 인정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董仲舒의 말이 바로 본문의 의미와 같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서생들처럼 공부하지 않더라도, 현명한 사람을 존경할 때 존경하는 태도를 보일 정도로 자신을 절제할 수 있고, 부모와 군주를 성심성의껏 모시며, 친구들과 신의로써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경지가 공부를 이미 이룬 사람과 같다는 뜻이다. 이 말은 반대로, 공부해서 이뤄야 할 목표가 이 덕목들이라는 점을 뜻하기도 한다. ◈◈ 蜀虎又案 : 邢昺이 이 부분의 주석에서 지속적으로 生知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皇侃, 王雍 역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子夏가 이 행위를 나면서부터 안다고 표현한 적도 없는데, 굳이 이 글을 ‘나면서부터 안다’라는 전제를 통해 이해해야 할까. 아마 邢昺은 性善에 입각하여, 사람은 선하니까, 배우지 않아도 이러한 美行들을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안다고 전제한 모양이다.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본문에 그런 말이 없기 때문에, 본문을 이런 식으로 해설해서는 안 된다. 즉, 본문에 生知 같은 표현이나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데, 邢昺이 무리하게 生知에 입각하여 본문을 해설하였기 때문에, 邢昺의 해설은 오히려 번잡해지고, 난해해지고 말았다. 나는 性善을 전제하여 이 구절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위에 밝혔듯, 단지 공부의 목표가 저러한 행동들에 있다는 점을 밝힌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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