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순자 - 2 - 수신 - 8 - 예법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스승이다(재번역 예정)

2021. 10. 5. 10:10순자 이야기(** 수신편 번역 중 잠정 중단)/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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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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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5월 7일 12시 2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98

 

순자 - 2 - 수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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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94

 

순자 - 2 - 수신 - 8 - 예법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스승이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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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法而行,士也;篤志而體,君子也;齊明而不竭,聖人也。人無法,則倀倀然;有法而無志其義,則渠渠然;依乎法而又深其類,然後溫溫然。禮者,所以正身也;師者,所以正禮也。無禮何以正身?無師,吾安知禮之爲是也?禮然而然,則是情安禮也;師云而云,則是知若師也。情安禮,知若師,則是聖人也。故非禮,是無法也;非師,是無師也。不是師法而好自用,譬之是猶以盲辨色,以聾辨聲也,舍亂妄無爲也。故學也者,禮法也。夫師 以 身爲正儀 而 貴自安者也。《詩》云:不識不知,順帝之則。此之謂也。

 

예법을 숭상하고 [예법 대로] 실천한다면[각주:1] 선비[각주:2]이고, 식견이 견실하여 [아는 대로] 이행할 줄 안다면[각주:3] 군자[각주:4]이며, 지혜[를 내는 양태]가 기민하고 [또한] 끝이 없다면[각주:5] 성인[각주:6]이[다. 이처럼 사람은 예법, 식견, 지혜를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만약] 사람에게 예법이 없다면[각주:7], [그 사람의 행동거지는] 갈팡질팡하게 될 것이고[각주:8], [사람에게] 예법은 있는데[각주:9] [그 사람이] 예법의 뜻을 [올바르게] 알지 못한다면[각주:10] [그 사람의 행동거지는] 난잡해질 것이다.[각주:11] [따라서 모름지기 사람은] 예법을 따르고[각주:12] 또한[각주:13] 그 법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행을[각주:14] 지혜롭게 풀어 나갈 수 있어야[각주:15] 한다. 그러한 뒤에야[각주:16] [행동거지에] 여유가 생기게 된다.[각주:17]

 

[사람에게] 예[법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법을 자기 멋대로 옳다고 하고 다니면 누구의 예가 옳고, 누구의 예가 그른지 알 수 없게 되지 않겠느냐. 예를 배우더라도 모름지기 반드시 스승을 본 받아서 예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라는 것은[각주:18] [사람이 자기] 몸가짐을 바로잡는 방법이고[각주:19], 스승이라는 것은[각주:20] [사람이] 예를 바로잡는 방법이다.[각주:21] [만약 사람에게] 예가 없다면[각주:22], [사람이] 어찌[각주:23] [자기] 몸가짐을 바로잡을 수 있겠으며, [내게] 스승이 없[었]다면, 내가[각주:24] 어찌[각주:25] 예가 옳다는 것을[각주:26] 알고 있을[각주:27] 수 있겠느냐. [우리가] 예를 있는 그대로 실천해 나간다면[각주:28], 이로써[각주:29] [우리는 언젠가] 마음으로 예를 즐기게 될 것이요[각주:30], [우리가] 스승이 말하는 대로 [스승처럼] 말을 해 나간다면[각주:31], 이로써[각주:32] [우리] 식견도 [언젠가] 스승[의 식견]과 같은 수준에 오를 것이다.[각주:33] [마침내 그리하여] 마음으로는 예를 즐기고, 식견은 스승과 같아진다면, 이로써[각주:34] [언젠가는] 성인이 될[각주:35] 것이로다.

 

따라서[각주:36] [사람에게] 예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각주:37], [사람에게] 법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요[각주:38], [사람에게] 스승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각주:39], [사람에게] 모범으로 삼을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다.[각주:40] [따라서] 스승과 법도를 인정하지 않고[각주:41] 자기 멋대로 굴기만[각주:42] 좋아한다고[각주:43]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각주:44] 소경이 색깔을 분별하고[각주:45], 귀머거리가 소리를 변별한다고[각주:46] 하는 말을 옳다고[각주:47] 하는 짓과 같으니[각주:48], [이런 놈들은 자기 자신의] 난망한 점을 극복하려 해도[각주:49] [결코] 극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각주:50]

 

그래서[각주:51] 공부를 보고[각주:52] [스승에게서] 예법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각주:53] 그래서[각주:54] [공부하는 자들은 스승을] 본받음으로써[각주:55] [자기] 몸가짐을 법도에 맞게 바로잡고[각주:56] 스스로 [예를] 즐기는 모습을 소중하게 여긴다.[각주:57]

 

[이에 대해] 《시》에 이런 말이 있다.

 

"[나 자신조차] 알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각주:58] 하느님의[각주:59] 법도를[각주:60] 따르게 되었도다.[각주:61]"[각주:62]

 

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1. 好法而行, 好는 '훌륭하게 여기다', 王先謙은 法을 禮라고 했다. 禮도 규칙이고, 法도 규칙이며, 「권학」에 나왔듯 類도 규칙이다. 王先謙을 따를 만하다. [본문으로]
  2. 士, 楊倞은 士를 事라고 하여, '일을 다스릴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본문으로]
  3. 篤志而體, 篤은 '견실하다', '단단하다', 志는 아래의 無志其義를 고려하면 知, '지식', '식견'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의지'가 아니다. 體는 履, '실천하다', '행하다', '이행하다', 王念孫의 설이다. 《시》 「국풍 衛風」의 「氓」에는 體無咎言이라는 말이 있는데, 王念孫은 같은 구절이 《예》의 「방기」에 履無咎言로 되어 있다고 했다. 또한 《관자》 「내업」에 戴大圜而履大方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구절이 「심술」 戴大圓者體乎大方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王念孫을 따른다. [본문으로]
  4. 君子 [본문으로]
  5. 齊明而不竭, 明은 '명철하다', '명민하다', 나는 '지혜'라고 번역했다. 齊는 齊給便利에서처럼 疾, 즉 '빠르다', 竭은 '다하다' [본문으로]
  6. 聖人 [본문으로]
  7. 人無法 [본문으로]
  8. 倀倀然, 倀은 '갈팡질팡하다', '갈피를 잡지 못하다' [본문으로]
  9. 有法 [본문으로]
  10. 無志其義, 其는 法, 志는 知, '알다' [본문으로]
  11. 渠渠然, 楊倞은 渠를 遽, '어수선하다'라고 하였고, 陳奂은 瞿, '두려워하다'라고 했다. 내용을 볼 때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난잡하다'라고 해야 더 자연스럽다. 나는 楊倞을 따른다. [본문으로]
  12. 依乎法, 依는 '의지하다', 여기서는 '따르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13. [본문으로]
  14. 其類, 其는 法, 類는 「권학」에서처럼 '관행', '관습', '세칙'을 뜻한다 [본문으로]
  15. 深, 위의 구절에서 순자가 法, 志, 明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 구절에서도 法과 志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明이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아마 深은 明이지 않겠나 하다. [본문으로]
  16. 然後, 然은 依乎法而又深其類을 뜻한다. [본문으로]
  17. 溫溫然, 溫은 '온화하다', '넉넉하다', '두텁다'는 뜻이다. 楊倞은 '潤澤이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나는 '여유롭다'라고 해석했다. [본문으로]
  18. 禮者 [본문으로]
  19. 所以正身, 身은 '자신', '몸가짐', 그러나 여기서는 '몸가짐'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겠다. 所以는 '~하는 것', 나는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본문으로]
  20. 師者 [본문으로]
  21. 所以正禮, 사람이 禮法을 따르려 하더라도 禮法이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순자는 바로 그 역할을 師, 즉 '스승'이 한다고 생각했다. [본문으로]
  22. 無禮 [본문으로]
  23. [본문으로]
  24. [본문으로]
  25. [본문으로]
  26. 爲是, 是는 '옳다' [본문으로]
  27. [본문으로]
  28. 禮然而然, '禮를 그대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29. 則是, 是는 乃로 보아서 '이에'라고 해도 되겠지만, 是則이 도치된 문구로 보면 더 자연스럽겠다. '이로써'라고 번역했다. [본문으로]
  30. 情安禮, 安은 '즐기다', '즐거워하다' [본문으로]
  31. 師云而云, 云은 '말하다' [본문으로]
  32. 則是는 是則 [본문으로]
  33. 知若師 [본문으로]
  34. 則是는 是則 [본문으로]
  35. 聖人 [본문으로]
  36. [본문으로]
  37. 非禮, 非는 '~에 맞지 않다'로 보면 타당하겠다. 즉 非禮는 '사람에게 禮가 적합하지 않다는 말은', '사람에게 禮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38. 是無法, 是는 '긍정하다'라고 보면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게 보면 是無法은 '無法을 긍정하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39. 非師 [본문으로]
  40. 是無師, 是는 '긍정하다', 師는 '본 받다', '모범으로 삼다', 즉 是無師는 '無師를 긍정하다'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41. 不是師法, 是는 '긍정하다', '인정하다' [본문으로]
  42. 自用 [본문으로]
  43. [본문으로]
  44. 譬之, 譬는 '비유하다', 之는 不是師法과 好自用를 지칭한다. [본문으로]
  45. 盲辨色, 盲은 '소경', '장님' [본문으로]
  46. 聾辨聲 [본문으로]
  47. 是, '긍정하다' [본문으로]
  48. 猶는 同, '같다' [본문으로]
  49. 舍亂妄, 亂은 '문란하다', '어지럽다', '혼잡하다', '어지럽다', 妄은 '망령되다', '도리에 맞지 않다', 즉 두 글자 모두 '도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舍는 '버리다'는 뜻이다. 舍는 문맥상 '亂妄한 성질을 버리는 것', 즉 '나쁜 성질을 버리는 것'이므로, 나는 '극복하다'라고 해석했다. [본문으로]
  50. 無爲, 無는 '~할 수 없다', 爲는 앞의 舍를 뜻한다. [본문으로]
  51. [본문으로]
  52. 學也者 [본문으로]
  53. 禮法也, 楊倞은 禮가 體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篤志而體에서 體가 履의 뜻이었음을 감안하면 體가 맞다고 볼 근거가 있다. 禮法을 體法으로 보고, '예법'이 아니라 '예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글의 의미도 타당해지고, 이 문단을 篤志而體 문단과도 이어서 읽을 수 있게 된다. 나는 禮를 體로 보았다. [본문으로]
  54. [본문으로]
  55. 師以, 여기서 師는 '본 받는다'는 동사다. 일반적으로 이 구문을 學也者/禮法也//夫師/以身爲正儀/而/貴自安者也로 끊어 읽는데, 일반적인 방식을 취하면 學也者와 夫師를 '학문이라는 것은', '스승이라는 것은'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學과 師가 대구를 위해서 병치되었다고 보기에는 學也者와 夫師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따라서 學也者와 夫師는 대구로써 병치된 개념들이 아닐 것이다. 사실 해석도 이상하다. 夫師/以身爲正儀/而/貴自安者也 부분을 金學主는 '스승이란 자신을 올바른 의표로 내세우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편안한 것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다'라고 했고, 宋基采는 '스승이란 자신이 모범이 되어서 스스로 예법에 편안한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다'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순자는 스승을 본 받아서 예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식견을 넓혀 간다고 했으니, 만약 金學主나 宋基采처럼 번역하더라도 貴自安者, 즉 '편안한 것을 귀중히 여긴다'는 말의 주체는 반드시 '학생'이 되어야 한다. '스승'이 왜 '스승' 자신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왜 귀중히 여겨야 할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學也者/禮法也/夫師以/身爲正儀/而/貴自安者也라고 보고, 夫師以의 師를 '본 받다'라고 이해했다. 그러면 夫師以 뒷부분의 주어도 여전히 '공부하는 학생'이니, 身爲正儀와 貴自安者의 주체도 모두 '학생'으로 해석된다. 그러면 내용이 정합적이고 자연스러워진다. 楊倞이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올바른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참고할 만하다. [본문으로]
  56. 身爲正儀, 身은 '몸가짐', 儀는 '거동'이라고도 하지만, '법도', '법식', '예절에 맞다'라고 봐야 타당하겠다. [본문으로]
  57. 貴自安者, 貴는 '귀중하다', '소중하다', 自는 '자기 자신', '스스로', 安은 '편안하다', '즐겁다', 나는 自安者를 앞에서 情安禮라고 한 것과 같게 보았다. [본문으로]
  58. 不識不知 [본문으로]
  59. 帝, '하느님', '상제' [본문으로]
  60. 則은 法, '칙'으로 읽는다. [본문으로]
  61. [본문으로]
  62. 출전은 《시》 「대아 문왕지십」 「皇矣」다. 이 시는 원래 '주나라가 건국되고 주변을 평정할 때 宰가 주나라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宰는 '주재자', '우리 모두를 총괄하는 존재'이다. 쉽게 말해 '하느님'을 뜻한다. 이 구절은 宰가 주나라 文王에게 어떻게 하라고 방법을 일러 주는 부분이다. 원문에서 不은 勿, 즉 '하지 마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不識不知는 '識과 知를 쓰지 말라', 즉 '사사로운 지식을 따르지 말라'는 말이다. 따라서 不識不知/順帝之則은 원래 '사사로운 지식을 따르지 말고 帝의 법도를 따라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수신」에 인용된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楊倞은 순자가 師과 法의 관계를 이 시를 인용해서 '文王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天道와 합치되었다'는 점에 비유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순자는 師, 즉 스승을 본 받는 사이에 '身爲正儀하고 貴自安者한다', 즉 '몸가짐을 법도에 맞게 바로잡게 되고, 스스로 예를 즐기는 모습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楊倞이 추상적으로 설명하기는 했어도 순자의 뜻을 잘 잡아 냈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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