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0. 11:29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7월 27일 11시 5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97
장자 내편 - 5 - 덕충부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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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93
장자 내편 - 5 - 덕충부 - 3 - 숙산무지와 노담이 중니를 논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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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5-3
魯有兀者叔山無趾,踵見仲尼。仲尼曰:
「子不謹,前既犯患若是矣。雖今來,何及矣!」
無趾曰;「吾唯不知務而輕用吾身,吾是以亡足。今吾來也,猶有尊足者存,吾是以務全之也。夫天無不覆,地無不載,吾以夫子爲天地,安知夫子之猶若是也!」
孔子曰:「丘則陋矣!夫子胡不入乎,請講以所聞!」
無趾出。孔子曰:
「弟子勉之!夫無趾,兀者也,猶務學以復補前行之惡,而況全德之人乎!」
無趾語老聃曰:「孔丘之於至人,其未邪。彼何賓賓以學子爲?彼且蘄以諔詭幻怪之名聞,不知至人之以是爲己桎梏邪。」
老聃曰:「胡不直使彼以死生爲一條,以可不可爲一貫者,解其桎梏,其可乎?」
無趾曰:「天刑之,安可解!」
노나라에 숙산무지라는 올자가 있었는데, 중니를 자주 만나러 갔다. 중니가 말했다. 1 2
"예전에 너는 [너의 행실을]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 죄를 지어 지금과 같은 꼴이 되었다. [그러니] 설사 지금 [무얼 배워 보겠다고 날 찾아] 온들, 뭘 할 수 있겠느냐." 3
"단지 나는 세상일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나 자신을 함부로 놀리다가, 이처럼 발을 잃고 만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은, [세상에] 오히려 발 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기 때문이다. 5 때문에 나는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6 [세상에] 저 하늘이 감싸 주지 않는 것은 없고, [저] 땅이 받쳐 주지 않는 것은 없다. 7 나는 선생을 하늘이나 땅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선생이 [내게] 이렇게 굴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 8" 9
"구의 식견이 짧았다. 선생은 들어오라.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자." 11
[그러나] 무지는 나가 버렸다. 공자가 말했다. 12 13
"제자들은 [무지처럼]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저 무지는 올자인데도 오히려 배우려고 노력함으로써 예전에 저질렀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도다. [이처럼 비천한 올자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덕이 온전한 사람이야 어찌 해야 하겠느냐." 14
"공구는 아마 지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공구는 왜 자주 너에게 [무언가를] 배워 가려고 할까. 공구는 기이하고 헛된 평판이라도 얻으려 하는 모양이다. 지인이 그런 평판을 자신에 대한 질곡이라고 생각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16" 17
"[중니가 그 모양이었다면,] 중니가 생과 사를 한 줄기라고 생각하게 하고, 가와 부를 한 뭉터기라고 보게 하면서, 중니가 매여 있는 질곡을 어찌하여 다만 풀어 주지 않았더냐. 아마 풀어 줄 수 있었을 텐데." 19
"하늘이 공구를 벌하고 있다. 어찌 풀어 줄 수 있겠느냐." 21
- 魯有兀者叔山無趾/踵見仲尼, ◈ 魯는 나라 이름이다. 姬姓 제후국으로, 山東 반도 서부에 있었다. 《史記》 「魯周公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兀者는 명사구로, '{...}'이다. 兀은 관형어로, '{...}'이다. 者는 '{...}'이다. 兀을 받는다. ◈ 叔山無趾는 사람 이름이다. 叔山은 아마 {...} 하나였다. 趾는 '{...}'이다. 《爾雅》 「釋言」에서는 趾/足也, '{...}'라고 하였다. 따라서 無趾는 '{...}'라는 말이 된다. 叔山無趾가 실재했던 사람인지, 莊子가 {...} 일부러 無趾라고 명명한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叔山/字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止//李云/叔山/字/無足趾,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字疑氏, '{...}'라고 하였다. ◈ 踵은 아마 부사어로, '{...}'라는 말 같다. 郭象은 頻, '{...}'라고 하였고, 成玄英도 頻,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朱勇反//向郭云/頻也///崔云/無趾/故踵行, '{...}'라고 하였다. 바로 뒤에서 孔子가 {...}을 알 수 있지 않겠나 하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賢遍反, '{...}'라고 하였다. ◈ 仲尼는 孔子다. 仲尼는 孔子의 字다. ◈◈ 成玄英은 殘兀之人/居於魯國/雖遭刖足/猶有學心/所以接踵頻來/尋師訪道/既無足趾/因以爲其名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无足趾/遂爲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仲尼曰 [본문으로]
- 子不謹前/既犯患若是矣//雖今來/何及矣,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叔山無趾를 이른다. ◈ 不은 부정어다. 謹을 한정한다. ◈ 謹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不謹은 '{...}'는 말로, 叔山無趾가 {...} 행동했다는 뜻이다. ◈ 前는 부사어로, '{...}'이다. 陸德明은 絕句//一讀以謹字絕句, '{...}'라고 하였다. 陸德明처럼 前에서 끊는 편이 좋아 보인다. ◈ 既는 부사어로, '{...}'다. ◈ 犯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 患은 체언으로, 본래 '{...}'인데, 여기서는 '{...}'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 若은 '{...}'는 말이다. ◈ 是는 아마 {...}을 가리키는 듯하다. ◈ 雖는 부사어로, '{...}'이다. ◈ 今은 부사어로, '{...}'다. ◈ 來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문맥상 {...}을 뜻하는 듯하다. ◈ 何는 의문사로, '{...}'다. ◈ 及은 용언으로, '{...}'는 말인데, 아마 {...}는 말로 보인다. 혹은, {...}라고 볼 수도 있겠다. ◈◈ 成玄英은 子之修身/不能謹愼/犯於憲網/前已遭官/患難艱辛/形殘若此//今來請益/何所逮耶, '{...}'라고 하였다. ◈◈ 宣穎은 有尊於足者/不在形骸,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無趾曰 [본문으로]
- 吾唯不知務而輕用吾身/吾是以亡足,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叔山無趾를 이른다. ◈ 唯는 부사어로, '{...}'이다. ◈ 不는 부정어다. 知를 한정한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務를 받는다. ◈ 務는 체언으로, '{...}'이다. 事務, 業務라는 말과 같다. ◈ 而는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輕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用은 용언으로, '{...}'는 말로, 여기서는 {...}라고 보아야 하겠다. 吾身을 받는다. ◈ 吾身은 명사구로, '{...}'이다. 吾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身은 체언으로, '{...}'이다. ◈ 是以는 '{...}'다. 是는 不知務而輕用吾身을 가리킨다. ◈ 亡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足은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人之生也/理自生矣/直莫之爲而任其自生/斯重其身而知務者也//若乃忘其自生/謹而矜之/斯輕用其身而不知務也/故五藏相攻於內而手足殘傷於外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今吾來也/猶有尊足者存, ◈ 今은 부사어로, '{...}'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叔山無趾를 이른다. ◈ 來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今吾來也의 也는 '{...}'이라는 말이다. 者와 같다. 吾來를 받는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猶는 부사어로, '{...}'다. ◈ 有는 아마 부사어로, '{...}'라는 말 같다. 又와 같다. 有를 '{...}'라는 용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을 해석할 방법이 없다. ◈ 尊足者은 아마 尊於足者, '{...}'이라는 말일 것이다. 尊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足은 체언으로, '{...}'이다. 者는 '{...}'이다. 尊足을 받는다. ◈ 存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주어는 尊足者다. 成玄英은 存者/在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刖一足未足以虧其德/明夫形骸者逆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吾是以務全之也,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叔山無趾를 이른다. ◈ 是以는 '{...}'다. 是는 猶有尊足者를 가리키는 듯하다. ◈ 務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全之를 받는다. ◈ 全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之를 받는다. ◈ 之는 尊足者, 즉 尊於足者, '{...}'을 가리킨다. 道다. ◈◈ 郭象은 去其矜謹/任其自生/斯務全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無趾交遊恭謹/重德輕身/唯欲務借聲名/不知務全生道/所以觸犯憲章/遭斯殘兀//形雖虧損/其德猶存/是故頻煩追討/務全道德//以德比形/故言尊足者存//存者/在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夫天無不覆/地無不載,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 天은 체언으로, '{...}'이다. ◈ 無와 不은 모두 부정어로, 無不이라고 하면 '{...}'라는 의미가 된다. ◈ 覆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읽는다. ◈ 地는 체언으로, '{...}'이다. ◈ 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天不爲覆/故能常覆//地不爲載/故能常載//使天地而爲覆載/則有時而息矣//使舟能沈而爲人浮/則有時而沒矣//故物爲焉則未足以終其生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하늘과 땅이 萬物을 {...}인데, 郭象의 해석은 이러한 문맥에도 맞지 않다. [본문으로]
- 吾以夫子爲天地/安知夫子之猶若是也,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叔山無趾를 이른다. ◈ 以는 '{...}'이다. 夫子를 받는다. 뒤의 爲와 함께 사용되면, '{...}'라는 의미가 된다. ◈ 夫子는 {...}이다. 孔子를 이른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天地는 체언으로, '{...}'이다. ◈ 安은 의문사로, '{...}'다. 반문할 때 주로 사용한다. ◈ 知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夫子之猶若是를 받는다. ◈ 夫子之猶若是의 之는 {...}다. ◈ 猶는 부사어로, '{...}'다. ◈ 若은 '{...}'는 말이다. ◈ 是는 {...}를 이른다. ◈◈ 郭象은 責其不謹/不及天地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天地亭毒/覆載無偏/而聖人德合二儀/固當弘普不棄/寧知夫子尙不捨形殘//善救之心/豈其如是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孔子曰 [본문으로]
- 丘則陋矣//夫子胡不入乎/請講以所聞, ◈ 丘는 孔子다. 丘는 孔子의 이름이다. ◈ 則은 乃처럼 {...}로 사용되었다. ◈ 陋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漢書》 「董仲舒傳」에 此臣淺陋之罪也, '{...}'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淺陋의 의미와 같다. ◈ 夫子는 {...}를 부르는 말이다. {...}하는 듯 대하고 있다. 成玄英은 夫子/無趾也, '{...}'라고 하였다. ◈ 胡는 의문사로, '{...}'다. 成玄英은 何, '{...}'라고 하였다. ◈ 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고 하는 말이다. ◈ 乎는 {...}다. ◈ 請은 '{...}'는 말처럼 {...}이다. ◈ 講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以는 '{...}'이다. 所聞을 받는다. ◈ 所는 '{...}'이다. 聞을 받는다.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成玄英은 仲尼所陳/不過聖跡//無趾請學/務其全生//答淺問深/足成鄙陋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孔子는 叔山無趾를 {...}고 청하고 있다. [본문으로]
- 無趾出, ◈ 出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는 의미다. ◈◈ 郭象은 聞所聞而出/全其無爲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仲尼自覺鄙陋/情實多慚/故屈無趾/令其入室/語說所聞方內之道//既而蘧廬久處/芻狗再陳/無趾惡聞/故默然而出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徑去,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孔子曰 [본문으로]
- 弟子勉之//夫無趾/兀者也/猶務學以復補前行之惡/而況全德之人乎, ◈ 弟子는 체언으로, '{...}'다. {...}들을 이른다. ◈ 勉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勖勵, '{...}'라고 하였다. ◈ 之는 아마 {...} 같다. {...}고 넣어 놨을 것이다. ◈ 夫는 '{...}'처럼 {...}이다. ◈ 兀者는 명사구로, '{...}'이다. 兀은 관형어로, '{...}'이다. 者는 '{...}'이다. 兀을 받는다. ◈ 猶는 부사어로, '{...}'다. ◈ 務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學은 체언으로, '{...}'이다. ◈ 以는 '{...}'다. 務學을 받는다. ◈ 復補는 아마 한 단어일 것이다.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前行之惡을 받는다. 補는 '{...}'라는 말이므로, 곧 '{...}'라는 뜻이다. 復은 '{...}'라는 말이므로, 곧 '{...}'라는 말이다. 이 때 復은 '{...}'이라고 읽는다. 復를 부사어로 보고, '{...}'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부사어일 때 復는 '{...}'라고 읽는다. ◈ 前行之惡은 명사구로, '{...}'이다. 前은 관형어로, '{...}'다. 行은 체언으로 '{...}'다.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惡은 체언으로, '{...}'이다. 行에 대해 陸德明은 下孟反, '{...}'라고 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況은 '{...}'다. ◈ 全德之人은 명사구로, '{...}'이다. 全은 관형어로, '{...}'이다. 德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그러면 孔子는 무엇을 두고 '{...}'라고 한 것일까. 孔子는 {...}므로, 이로써 우리는 孔子가 全德을 '{...}'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乎는 {...}다. ◈◈ 郭象은 全德者生便忘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無趾殘兀/尙實全生/補其虧殘/悔其前行//況賢人君子/形德兩全/生便忘生/德充於內者也//門人之類/宜勖之焉,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前惡虧德/求學以補之/況無惡行而全德者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孔子는 叔山無趾에게 {...}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말은 '청소부 아저씨 같이 공부 못한 사람도 살아 갈 수 있게 해 줘야 한다'는 말과 똑같이 {...}하게 묘사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 無趾語老聃曰, ◈ 語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魚據反, '{...}'라고 하였다. ◈ 老聃은 老子다. 이 점에 대해서는 「養生主」에서 이미 논의하였었다. [본문으로]
- 孔丘之於至人/其未邪//彼何賓賓以學子爲, ◈ 孔丘는 孔子다. 丘는 {...}되어 있다. ◈ 之於는 '{...}'다. ◈ 至人은 {...}이다. 즉, 之於至人은 '{...}'처럼 해석될 듯하다. ◈ 其는 아마 부사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殆와 같다. 《禮記》 「檀弓 上」에 子張病/召申祥而語之曰/君子曰終/小人曰死/吾今日其庶几乎,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其는 殆처럼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春秋左氏傳》 「隱公」 6년에 善不可失/惡不可長/其陳桓公之謂乎, '{...}'라는 말이 있고, 《國語》 「周語」에는 我又章之/懼長及子孫/王室其愈卑乎, '{...}'라는 말이 있는데, 두 글에서 其는 모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其와 殆의 의미가 같기 {...}한 사례도 있다. 《易》 「繫辭 下」에 顏氏之子/其殆庶幾乎,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其殆는 '{...}'라는 뜻이다. 이 문장의 {...}이 오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그렇지 않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郭慶藩은 闕誤引張君房本其作□, '{...}'라고 하였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다. □는 {...}을까 추측된다. ◈ 未는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 같다. 즉, {...}라는 표현이다. ◈ 邪는 也처럼 {...}로 해석해야 하겠다. ◈ 彼는 {...}를 가리킨다. ◈ 何는 의문사로, '{...}'다. 賓賓以學子 혹은 以學子를 받는다. ◈ 賓賓은 아마 頻頻의 가차자일 것이다. 부사어로, 아마 '{...}'라는 의미일 것이다. 陸德明은 司馬云/恭貌///張云/猶賢賢也///崔云/有所親疏也///簡文云/好名貌, '{...}'라고 했다. 張云의 張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賢賢은 '{...}'을 뜻할 것이다. 成玄英은 恭勤貌, '{...}'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俞樾은 賓賓之義/釋文所引/皆望文生義/未達古訓//賓賓/猶頻頻也//漢書司馬相如傳仁頻并閭/顏注曰/頻字或作賓/是其例也//詩桑柔篇國步斯頻/說文目部作國步斯矉//書禹貢篇海濱廣斥/漢書地理志作海瀕廣潟//是皆賓聲頻聲相通之證//廣雅釋訓/頻頻/比也//楊子法言學行篇/頻頻之黨/甚於鸒斯//皆可說此賓賓之義, '{...}'라고 하였다. 「司馬相如傳」은 「司馬相如傳 上」을 뜻한다. 顏師古는 仁頻即賔桹也//頻字或作賔, "{...}"라고 했다. 여기서 賔은 賓의 속자이므로, 俞樾의 말처럼 賓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桑柔」는 「大雅 蕩之什」에 속해 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說文解字》의 矉에 대한 설명에 「桑柔」가 國步斯頻이 아니라 國步斯矉으로 인용되어 있다. 「禹貢」은 「夏書」에 속해 있다. 《漢書》 「地理志」는 「地理志 上」을 가리킨다. 顏師古는 海瀕廣潟에 대해 瀕/水涯也//潟/鹵鹹之地//瀕音頻/又音賔//潟音昔, '{...}'라고 하였다. 이처럼 俞樾은 賓賓을 頻頻으로 보고, '{...}'와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다. ◈ 以는 所以와 같다. '{...}'이다. 學子를 받는다. ◈ 學子는 學於子,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學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子는 2인칭 대명사로, 老聃을 이른다. {...}는 말이다. ◈ 彼何賓賓以學子爲의 爲는 {...}다. 《春秋左氏傳》 「襄公」 17년에 而何以田爲, '{...}'라는 말이 있고, 「襄公」 22년에는 我將飮酒/而己雨行/何以聖爲, '{...}'라는 말이 있다. 또, 《國語》 「楚語」에 亡人得生/又何不來爲,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서 爲는 {...}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爲」에 수록되어 있다. ◈◈ 郭象은 怪其方復學於老聃,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玄德之人/窮理極妙/忘言絕學/率性生知//而仲尼執滯文字/專行聖跡/賓賓勤敬/問禮老君//以汝格量/故知其未如至人也/學子何爲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彼且蘄以諔詭幻怪之名聞/不知至人之以是爲己桎梏邪, ◈ 彼는 孔子를 이른다. ◈ 且는 부사어로, '{...}'다. ◈ 蘄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求,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祈,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蘄/期同, '{...}'라고 하였다. ◈ 以는 '{...}'이다. 諔詭幻怪之名聞을 받는다. ◈ 諔詭는 아마 '{...}'는 표현 같다. 成玄英은 諔詭/猶奇譎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尺叔反//九委反//李云/諔詭/奇異也, '{...}'라고 했다. 郭慶藩은 諔詭亦作俶詭//見呂覽傷樂篇//諔/猶俶也///薛綜注西京賦曰/詭/異也///高誘注淮南本經篇曰/詭文/奇異之文也, '{...}'라고 했다. 《呂覽》 「傷樂」은 아마 《呂氏春秋》 「仲夏紀 侈樂」을 뜻하는 듯하다. 「侈樂」에 俶詭라는 말이 있다. 《文選》 「西京賦」에 대한 薛綜의 주석은 西秦豈不詭哉, '{...}'라고 한 부분에 달려 있다. 《淮南》 「本經」은 《淮南子》 「本經訓」이다. 王先謙은 呂覽傷樂篇作俶詭, '{...}'라고 하였다. 《呂覽》 「傷樂」은 아마 《呂氏春秋》 「仲夏紀 侈樂」을 이르는 듯하다. 「傷樂」이라는 편은 없다. 「侈樂」에는 以鉅爲美/以眾爲觀/俶詭殊瑰/耳所未嘗聞/目所未嘗見/務以相過/不用度量, '{...}'라고 되어 있다. 문맥상 俶詭 역시 '{...}'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 俞樾은 淑與詭語意不倫/淑詭當讀爲弔詭//齊物論篇其名爲弔詭/正與此同//弔作淑者/古字通用/哀十六年左傳昊天不弔/周官大祝職先鄭注引作閔天不淑/是其證矣, '{...}'라고 하였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哀」는 「哀公」을 이른다. 「哀公」 16년에는 저런 말이 없고, 「哀公」 13년에 詩曰///不弔昊天/亂靡有定, '{...}'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杜預는 言/不爲昊天所恤/則致罪也//爲明年會向傳, '{...}'라고 하였다. 杜預는 弔을 恤, '{...}'라고 풀이했음을 알 수 있다. 인용된 《詩》는 「小雅 祈父之什」의 「節南山」이다. 《周》 「官」은 아마 《周禮》 「春官宗伯」을 뜻하는 듯하다. 「春官宗伯」의 注에는 春秋傳曰///孔子卒/哀公誄之曰/閔天不淑, '{...}'라고 하였다. 閔天不淑은 《孔子家語》 「終記解」에도 나오는데, 여기에는 昊天不弔이라고 {...} 「齊物論」에 나왔던 弔詭와 연결지어 설명한 점에는 주목할 만하다. ◈ 幻怪 역시 '{...}'는 말일 것이다. 幻은 '{...}'라는 말이고, 怪는 '{...}'는 말이다. 陸德明은 滑辯反//亦作𢆱,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舊本𢆱作𠣎//案說文作/從反予, '{...}'라고 했다. 予가 뒤집어진 모습이란 𠄔을 뜻한다. 𠄔도 幻과 같다. ◈ 諔詭幻怪之名聞의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 名聞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名과 聞은 모두 '{...}'이다. ◈ 不는 부정어다. 知를 한정한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至人之以是爲己桎梏은 至人之以是爲爲己桎梏이 {...}처럼 해석되어야 가장 자연스럽다. 즉, 爲己桎梏은 '{...}'이 된다. 그런데 爲를 '{...}'라고 해석하고서 {...}는 다소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나는 至人之以是爲爲己桎梏처럼 {...}기 때문이다. 아래에 소개하겠으나, 陸德明은 爲를 '{...}'라고 풀이하고 있다. ◈ 至人은 {...}이다. ◈ 至人之의 之는 {...}다. ◈ 以는 '{...}'이다. 是를 받는다. ◈ 是는 諔詭幻怪之名聞을 가리킨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己桎梏을 받는다. 그러면 爲己桎梏은 '{...}'라는 말이 된다. 상기하였듯, 爲를 '{...}'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면 爲己桎梏은 '{...}'이 된다. 陸德明이 爲를 '{...}'라고 해석하고 있다. 陸德明은 于僞反//下者爲人同, '{...}'라고 하였다. 爲人은 아마 與爲人妻寧爲夫子妾의 爲人인 듯하다. 이 句는 다음에 나오는 哀駘它 이야기에 들어 있다. 그러나, 爲를 '{...}'라고 해석하면, 節인 至人之以是爲己桎梏에 {...}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 己는 관형어로, '{...}'다. 桎梏을 한정한다. ◈ 桎梏은 체언으로, '{...}'이다. 桎은 '{...}'로, {...}이다. 梏은 '{...}'으로, {...}다. 즉, 桎梏은 모두 {...}다. 《說文解字》 「木部」에 桎/足械也, '{...}'라는 말이 있고, 또 梏/手械也, '{...}'라는 말이 있다. 《易》 「蒙」에 用說桎梏, '{...}'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在足曰桎/在手曰梏, '{...}'라고 하였다. 또, 《周禮》 「秋官司寇」에 上罪梏拲而桎/中罪桎梏/下罪梏/王之同族拲/有爵者桎//以待弊罪,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鄭司農云/拲者/兩手共一木也//桎梏者/兩手各一木也///玄謂在手曰梏/在足曰桎, '{...}'라고 했다. 鄭司農은 鄭衆을 이른다. 한편, 《周禮》에 대해 陸德明은 梏/古毒反/張揖云/參著曰梏/偏著曰桎, '{...}'라고 하였다. 이 말은 《漢書》 「刑法志」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顏師古는 械在手曰梏/兩手同械曰拲/在足曰桎, '{...}'라고 하였고, 또 梏音古篤反//拲即拱字也//桎音之日反, '{...}'라고 하였다. 拱은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在手曰桎/在足曰梏/即今之杻械也, '{...}'라고 하였다. 杻械 역시 {...}를 이른다. 陸德明은 桎에 대해 之實反/郭眞一反//木在足也, '{...}'라고 하였고, 梏에 대해서는 古毒反/木在手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木在足曰桎/在手曰梏, '{...}'라고 했다. ◈ 邪는 {...}로 보는 편이 낫겠다. ◈◈ 郭象은 夫無心者/人學亦學//然古之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其弊也遂至乎爲人之所爲矣//夫師人以自得者/率其常然者也//舍己效人而逐物於外者/求乎非常之名者也//夫非常之名/乃常之所生//故學者非爲幻怪也/幻怪之生必由於學//禮者非爲華藻也/而華藻之興必由於禮//斯必然之理/至人之所無柰何/故以爲己之桎梏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彼之仲尼/行於聖跡/所學奇譎怪異之事/唯求虛妄幻化之名//不知方外體道至人/用此聲教爲己枷鎖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彼期以異人之名聞於天下/不知至人之於名/視猶己之桎梏邪,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기이한 평판이란, 아마 {...}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孔子와 老子가 만났다는 이야기는 《史記》 「老子韓非列傳」, 《孔子家語》 등에 기록되어 있다. 아마 당대에도 화젯거리였던 모양이다. [본문으로]
- 老聃曰 [본문으로]
- 胡不直使彼以死生爲一條/以可不可爲一貫者/解其桎梏/其可乎, ◈ 胡는 의문사로, '{...}'다. ◈ 不直使의 不는 부정어다. 아마 {...}를 한정하는 것 같다. ◈ 直은 부사어로 '{...}'이다. ◈ 使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彼以死生爲一條/以可不可爲一貫者를 받는다. ◈ 彼는 孔子를 가리킨다. ◈ 以死生의 以는 '{...}'이다. 死生을 받는다. ◈ 死生은 체언으로, '{...}'이다. ◈ 爲一條의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爲一貫의 爲도 그러하다. ◈ 一條는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 된다. 一은 관형어로, '{...}'이다. 條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以可不可의 以는 '{...}'이다. 可不可를 받는다. ◈ 可不可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아마 是非를 뜻하는 말 같다. ◈ 一貫은 명사구로, '{...}'이다. 一은 관형어로, '{...}'이다. 貫은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古亂反, '{...}'라고 하였다. ◈ 者는 '{...}'이다. 以死生爲一條와 以可不可爲一貫를 받는다. ◈ 解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養生主」에 나왔던 {...}일 것이다. ◈ 解其桎梏의 其는 孔子를 가리킨다. ◈ 桎梏은 체언으로, '{...}'이었다. '{...}'를 뜻한다. ◈ 其可乎의 其는 부사어로, 아마 '{...}'일 것이다. 殆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孔丘之於至人/其未邪의 其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可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는 뜻이다. ◈ 乎는 아마 {...}인 듯하다. ◈◈ 郭象은 欲以直理冥之/冀其無跡,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無趾前見仲尼談講之日/何不使孔丘忘於仁義/混同生死/齊一是非//條貫既融/則是帝之縣解/豈非釋其枷鎖/解其杻械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生死是非/可通爲一/何不使以死生是非爲一條貫者/解其迷惑/庶幾可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老聃은 孔子가 {...}고 묻고 있다. [본문으로]
- 無趾曰 [본문으로]
- 天刑之/安可解, ◈ 天은 체언으로, '{...}'이다. ◈ 刑은 용언으로 '{...}'는 뜻 같다. 天刑을 한 {...}라고 의역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天刑之의 之를 해석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天刑은 '{...}'처럼 해석해야 한다. ◈ 之는 孔子를 가리킨다. ◈ 安는 의문사로, '{...}'다. ◈ 可는 '{...}'라는 말이다. 解를 받는다. ◈ 解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는 뜻이다. ◈◈ 郭象은 今仲尼非不冥也//顧自然之理/行則影從/言則嚮隨//夫順物則名跡斯立/而順物者非爲名也//非爲名則至矣/而終不免乎名/則孰能解之哉//故名者影嚮也/影嚮者形聲之桎梏也//明斯理也/則名跡可遺//名跡可遺/則尙彼可絕//尙彼可絕/則性命可全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仲尼憲章文武/祖述堯舜/刪詩書/定禮樂/窮陳蔡/圍商周/執於仁義/遭斯戮恥//亦猶行則影從/言則響隨/自然之勢/必至之宜也//是以陳跡既興/疵釁斯起/欲不困弊/其可得乎//故天然刑戮/不可解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其根器如此/天然刑戮/不可解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莊子》에서 孔子는 {...}하게 묘사된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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