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장자 내편 - 5 - 덕충부 - 2 - 신도가가 자산을 꾸짖다

2021. 9. 10. 11:28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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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7월 27일 11시 5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97

 

장자 내편 - 5 - 덕충부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92

 

장자 내편 - 5 - 덕충부 - 2 - 신도가가 자산을 꾸짖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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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5-2

 

申徒嘉,兀者也,而與鄭子産同師於伯昏無人。子産謂申徒嘉曰:

 

「我先出則子止,子先出則我止。」

 

其明日,又與合堂同席而坐。子産謂申徒嘉曰:

 

「我先出則子止,子先出則我止。今我將出,子可以止乎,其未邪?且子見執政而不違,子齊執政乎?」

 

申徒嘉曰:「先生之門,固有執政,焉如此哉?子而說子之執政而後人者也?聞之曰:『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則無過。今子之所取大者,先生也,而猶出言若是,不亦過乎!」

 

子産曰:「子既若是矣,猶與堯爭善,計子之德不足以自反邪?」

 

申徒嘉曰:「自狀其過以不當亡者衆,不狀其過以不當存者寡。知不可柰何而安之若命,唯有德者能之。遊於羿之彀中。中央者,中地也;然而不中者,命也。

 

人以其全足笑吾不全足者衆矣,我怫然而怒;而適先生之所,則廢然而反。不知先生之洗我以善邪?吾與夫子遊十九年矣,而未嘗知吾兀者也。今子與我遊於形骸之內,而子索我於形骸之外,不亦過乎!」

 

子産蹴然改容更貌曰:「子無乃稱!」

 

 

신도가는 올자였는데, 정나라의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각주:1]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각주:2]

 

"[이 방에서] 내가 먼저 나갈테니 너는 그대로 있어라. 니가 먼저 나간다면 내가 그대로 있겠다.[각주:3]"

 

그 다음날, [자산과 신도가가] 또 학당에 함께 모여서, 같이 자리하고 앉아 있었다.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각주:4]

 

"[이 방에서] 내가 먼저 나갈 테니 너는 그대로 있어라. [만약] 니가 먼저 나간다면 내가 그대로 있겠다. 지금 내가 곧 나가려 하는데, 너는 [내 말을] 받아 들여서 가만히 있겠느냐, 아니면 [내 말을] 듣지 않겠느냐.[각주:5] 또, 너는 집정을 만나고도 [길을] 피하지 않는데, 너는 [스스로 너 자신이] 집정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느냐.[각주:6]"

 

신도가가 말했다.[각주:7]

 

"[백혼무인] 선생의 문하에 원래 집정이고 자시고 하는 것이 있었기에 이 따위로 구는 것이냐.[각주:8] 너는 너 자신이 집정이라는 점에 도취되어서 남을 깔보는 사람인가.[각주:9] '거울이 맑으면 때가 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만약 거울에 때가] 끼었다면, [거울이] 맑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인과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과오를 범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지금 니가 위대한 뜻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백혼무인] 선생인데, [너는] 오히려 그런 말이나 내뱉고 있으니, 또한 [너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백혼무인 선생의] 과오가 크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각주:10]"

 

자산이 말했다.[각주:11]

 

"니 [꼴이] 이미 이러한데도[각주:12], [너는 건방지게도] 오히려 누가 [덕이 더] 나은지 요와 경합하고 있구나. [내가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내 말이] 너 자신의 덕을 헤아리고, [니가 내게 건방지게 군 것에 대해] 자신을 돌이켜 보기에 모자라단 말이냐.[각주:13]"

 

신도가가 말했다.[각주:14]

 

"스스로 자기 과오를 설명하면서 [발을] 부당하게 잃었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각주:15], 자기 과오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발이] 부당하게 잘리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적다.[각주:16] [이처럼 자기 힘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이에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기 운]명으로써 편안하게 받아 들이는 일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바이다.[각주:17] [누군가가] 예의 구중에서 거닐고 있다고 하자. [구중의] 중앙 부분은 [화살이] 적중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게 예의 화살이] 적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일 것이다.[각주:18]"

 

<신도가의 말 이어짐>

 

"사람들 중에는 자기 발이 온전한 점을 가지고, 내 발이 잘렸다는 점을 비웃는 자들이 많다.[각주:19] 나는 [그럴 때마다] 기분이 나빠져서 화가 난다.[각주:20] 그래도 [백혼무인] 선생이 있는 곳에 가면 [노기가] 가라앉아 [평소대로] 돌아간다.[각주:21] [내가 노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던 점이] 선생이 나를 선으로 이끌어 주셨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각주:22], 내가 [백혼무인] 선생과 함께한 지 19년이 지났지만, [적어도 나는 선생과 함께할 동안] 아직까지 내가 올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다.[각주:23] [그런데] 지금 너는 나와 마음으로 교류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외형적인 모습에서나 찾고 있으니, 또한 잘못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느냐.[각주:24]"

 

자산이 [이에] 짜져서는 낯빛과 용모를 고치고 말했다.[각주:25]

 

"[이제 알겠으니] 너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각주:26]"

 

 

  1. 申徒嘉/兀者也/而與鄭子產同師於伯昏無人, ◈ 申徒嘉는 사람 이름이다. 申徒嘉라는 {...} 않는다. 《史記》 「孝文本紀」에 淮陽守申徒嘉, '{...}'라는 말이 나오는데, 《漢書》 「文帝紀」에는 淮陽守申屠嘉, '{...}'라고 되어 있다. 물론 이 申徒嘉가 「德充符」에 있는 申徒嘉와 {...} 昭公 시기 사람이었을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姓申徒/名嘉/鄭之賢人/兀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申徒/氏/嘉/名, '{...}'라고 했다. ◈ 兀者는 명사구로, '{...}'이다. 兀은 관형어로, '{...}'이다. 者는 '{...}'이다. 兀을 받는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與는 '{...}'라는 말이다. ◈ 鄭은 나라 이름이다. 본문에서는 관형어로, '{...}'처럼 사용되었다. 周나라 바로 {...}이었다. 《史記》 「鄭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 子產은 鄭나라의 정치인이었다. 鄭나라의 왕족으로, 姓은 {...} 등장한다. 《春秋左氏傳》 「襄公」 8년에 庚寅/鄭子國子耳侵蔡/獲蔡司馬公子燮/鄭人皆喜/唯子産不順,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子産/子國子, '{...}'라고 하였다. 이 子產이 바로 그 子產이다. 《論語》 「公冶長」에는 子謂子產,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과 朱熹는 모두 子產/鄭大夫公孫僑,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案左傳/子產/穆公之孫/公子發之子/名僑//公子之子稱公孫//襄三十年執鄭國之政/故云鄭大夫公孫僑也//公子發字子國/公孫之子以王父字爲氏/據後而言/故後或謂之國焉, '{...}'라고 하였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孔穎達의 말은 {...} 전한다. 《史記》 중에서는 「循吏列傳」의 {...} 成玄英은 姓公孫/名僑/字子產/鄭之賢大夫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子產의 姓을 公孫이라고 {...} 姓과 氏를 구분했었다. ◈ 同은 부사어로 '{...}'라는 말 같다. ◈ 師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於는 '{...}'라는 말이다. 伯昏無人을 받는다. ◈ 伯昏無人은 사람 이름이다. 成玄英은 伯昏無人/師者之嘉號也//伯/長也//昏/闇也//德居物長/韜光若闇/洞忘物我/故曰伯昏無人, '{...}'라고 하였다. 陸德明과 王先謙은 모두 雜篇作瞀人, '{...}'라고 하였다. 《外篇》 「田子方」과 《雜篇》 「列禦寇」에서는 列子의 {...}을 壺子라고 했고, 이 壺子는 《呂氏春秋》 「下賢」에 나오는 壺丘子林과 같은 {...}과 伯昏瞀人이 友, 즉 친구 사이였다고 했다. 혹시 壺丘子林과 伯昏無人은 같은 사람이 {...}에 가르치는 방식이 비슷했던 걸까. ◈◈ 成玄英은 子產申徒/俱學玄道/雖復出處殊隔/而同師伯昏/故寄此三人以彰德充之義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 子產謂申徒嘉曰, ◈ 謂는 용언으로, '{...}'는 표현이다. [본문으로]
  3. 我先出則子止/子先出則我止, ◈ 我는 1인칭 대명사다. 子產을 가리킨다. ◈ 先은 부사어로, '{...}'다. ◈ 出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는 말 같다. ◈ 則은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止는 용언으로, '{...}'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出의 반의어로, '{...}', 즉 {...}는 말이 된다. ◈◈ 郭象은 羞與刖者並行,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子產執政當塗/榮華富貴//申徒稟形殘兀/無復容儀//子產雖學伯昏/未能忘遣/猶存寵辱/恥見形殘/故預相檢約/令其必不並己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子產은 '{...}'이었고, 申徒嘉는 {...}이었기 때문에, 子產은 {...}을 것이다. [본문으로]
  4. 其明日/又與合堂同席而坐//子產謂申徒嘉曰, ◈ 其는 '{...}'처럼 {...}이다. 我先出則子止/子先出則我止라고 하였던 날을 이른다. ◈ 明日은 '{...}'이다. ◈ 又는 부사어로, '{...}'다. ◈ 與는 부사어로, '{...}'다. ◈ 合堂은 '{...}'는 말일 것이다. 合은 용언으로, '{...}'라는 말 같다. 會合이라는 말과 같다. 堂은 체언으로, '{...}'이다. 여기서는 {...}을 뜻할 것이다. ◈ 同은 부사어로, '{...}'다. ◈ 席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뒤에 坐가 나오기 때문에, '{...}'처럼 보는 편이 좋겠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坐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謂는 용언으로, '{...}'는 표현이다. [본문으로]
  5. 我先出則子止/子先出則我止//今我將出/子可以止乎/其未邪, ◈ 我는 1인칭 대명사다. 子產을 가리킨다. ◈ 先은 부사어로, '{...}'다. ◈ 出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는 말 같다. ◈ 則은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止는 용언으로, '{...}'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出의 반의어로, '{...}'는 말이 된다. ◈ 今은 부사어로, '{...}'이다. ◈ 將은 부사어로, '{...}'다. ◈ 可以는 '{...}'라는 말이다. 可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以는 所以와 같다. '{...}'이다. 止를 받는다. 따라서 可以止는 '{...}'라는 뜻이 된다. {...}고 묻는 말이다. ◈ 乎는 의문사다. ◈ 其는 부사어로, '{...}'이다. 抑과 같다. 《戰國策》 「韓策」에 子以秦爲將救韓乎/其不乎, '{...}'라는 말이 있고, 《史記》 「趙世家」에 秦趙與國/以彊征兵於韓/秦誠愛趙乎/其實憎齊乎, '{...}'라는 말이 있으며, 《晏子春秋》 「內篇 雜下」에 請飲而後辭乎/其辭而後飲乎, '{...}'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其는 모두 抑처럼 '{...}'으로 해석된다. 이 사례들은 모두 金元中의 《한문 해석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 未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可와 대조되는 {...}고 하는 뜻이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 郭象은 質而問之/欲使必不並己,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子產存榮辱之意/申徒忘貴賤之心/前雖有言/都不采領/所以居則共堂/坐還同席//公孫見其如此/故質而問之,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子產이 申徒嘉에게 이미 {...}고 있다. [본문으로]
  6. 且子見執政而不違/子齊執政乎, ◈ 且는 부사어로,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이 때는 '{...}'이라고 읽는다. ◈ 執政은 체언으로, '{...}'이다. '{...}'처럼 이해하면 좋겠다. 子產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執은 용언으로, '{...}', 政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王先謙은 執政/子產自稱, '{...}'라고 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不은 부정어다. 違를 한정한다. ◈ 違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國語》 「周語」에 雖吾王叔/未能違難,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違를 避, '{...}'라고 풀이하였다. 여기서는 {...}는 의미로 보면 좋겠다. 成玄英과 王先謙도 避, '{...}'라고 하였다. ◈ 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王先謙은 同, '{...}'라고 하였다. ◈ 乎는 {...}다. ◈◈ 郭象은 常以執政自多/故直云子齊執政/便謂足以明其不遜,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出處異塗/貴賤殊致//我秉執朝政/便爲貴大//汝乃卑賤形殘/應殊敬我//不能遜讓/翻欲齊己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斥其不遜讓,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7. 申徒嘉曰 [본문으로]
  8. 先生之門/固有執政/焉如此哉, ◈ 先生은 伯昏無人을 이른다. 成玄英은 先生/伯昏也, '{...}'라고 하였다. ◈ 之는 {...}다. ◈ 門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固는 부사어로, '{...}'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는 말에 가깝다. ◈ 焉은 '{...}'라는 말이다. 乃, 則, 於是 같은 말들과 같다. 《國語》 「晉語」에 盡逐群公子/乃立奚齊/焉始爲令/國無公族焉, '{...}'라는 말이 있고, 《墨子》 「魯問」에 公輸子自魯南游楚/焉始爲舟戰之器, '{...}'라는 말이 있으며, 또, 《國語》 「齊語」에 五家爲軌/軌爲之長//十軌爲里/里有司//四里爲連/連爲之長//十連爲鄉/鄉有良人//焉以爲軍令, '{...}'라는 말이 있다. 또,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 晉於是乎作爰田, '{...}'라는 말이 있고, 또 晉於是乎作州兵, '{...}'라는 말이 있는데, 《國語》 「晉語」에는 焉作轅田, '{...}'라고 되어 있고, 또 焉作州兵, '{...}'라고 되어 있다. 焉이 於是, 즉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글자가 바뀌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즉, 焉은 於是와 같고, 또 乃와 같으며, 또 則과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焉」에 수록되어 있다. ◈ 如此는 아마 '{...}' 같은 말인 듯하다. 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此는 {...}를 가리킨다. ◈◈ 郭象은 此論德之處/非計位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先生道門/深明眾妙/混同榮辱/齊一死生//定以執政自多/必如此耶,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伯昏先生之門/以道德相高/固有以執政自多如此者哉,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9. 子而說子之執政而後人者也,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子產을 가리킨다. ◈ 子而說의 而는 {...}로 해석된다. 而는 乃와 통용된다. 乃가 옛 글에서 {...}할 수 있을 듯하다. 《書》 「虞書 舜典」에 帝乃殂落, '{...}'라는 말이 있고, 《書》 「商書 微子」에 我乃顚隮, '{...}'라는 말이 있으며, 《書》 「周書 洪範」에 禹乃嗣興, '{...}'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乃는 {...}처럼 해석된다. 또, 而가 乃와 통용되었다는 점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說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悅과 같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명사구인 子之執政을 받는다. 陸德明은 音悅//注同, '{...}'라고 하였다. ◈ 子之執政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子之執政의 之는 {...}다. ◈ 而後人의 而는 '{...}'라고 해석된다. 以와 같다. 說子之執政을 받는다. 而가 以처럼 사용되었다는 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墨子》 「尙賢 下」에 使天下之爲善者可而勸也/爲暴者可而沮也, '{...}'라는 말이 있고, 또 같은 편에 上可而利天/中可而利鬼/下可而利人, '{...}'라는 말이 있다. 《呂氏春秋》 「孟春紀 去私」에는 南陽無令/其誰可而爲之, '{...}'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可而는 모두 可以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는 뜻이다. 而가 以와 통용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용된 것이다. 또, 《荀子》 「成相」에는 進諫不聽/剄而獨鹿/棄之江, '{...}'라는 말이 있는데, 剄而獨鹿의 而는 以, 즉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고, 또 《荀子》 「成相」의 剄而獨鹿에 대한 王念孫의 주석에도 들어 있다. ◈ 後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즉, 後人은 '{...}'는 말이 된다. ◈ 者는 '{...}'이다. 說子之執政而後人을 받는다. ◈ 也는 乎와 같이 {...}로 사용되었다. ◈◈ 郭象은 笑其矜說在位/欲處物先,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汝猶悅愛榮華/矜誇政事/推人於後/欲處物先//意見如斯/何名學道,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子乃悅愛子之執政/而致居人後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0. 聞之曰/鑑明則塵垢不止///止則不明也//久與賢人處則無過//今子之所取大者/先生也/而猶出言若是/不亦過乎, ◈ 聞之曰은 '{...}'이라는 말일 것이다. 聞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聞之曰의 之는 아마 {...}일 것이다. ◈ 鑑은 체언으로, '{...}'이다. 成玄英도 鏡, '{...}'이라고 하였다. ◈ 明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則은 '{...}'이다. ◈ 塵垢는 체언으로, '{...}'다. 「逍遙遊」에 塵垢粃穅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成玄英은 散爲塵/膩爲垢,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古口反//塵垢/猶染污, '{...}'라고 하였다. ◈ 不止의 不은 부정어다. 止를 한정한다. ◈ 止는 용언으로, '{...}'는 말인데, 여기서는 {...}에 대한 용언이기 때문에, {...}처럼 해석해야 하겠다. 王先謙은 止/猶集也, '{...}'라고 하였다. ◈ 久는 부사어로, '{...}'이다. ◈ 與는 '{...}'다. ◈ 賢人은 명사구로, '{...}'이다. 伯昏無人을 뜻한다. 賢은 관형어로, '{...}'이고, 人은 체언으로, '{...}'이다. ◈ 處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無過의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無過의 過는 체언으로, '{...}'이다. ◈ 今은 부사어로,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子產을 이른다. ◈ 子之所取大의 之는 {...}다. ◈ 所取大는 '{...}'이다. 所는 '{...}'인데, 여기서는 '{...}'이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取大를 받는다. 取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大는 아마 체언으로 '{...}'을 이르는 듯하다. 즉, 取大는 '{...}'는 말이 된다. 宣穎은 取大/求廣見識, '{...}'라고 하였고, 王先謙은 取大/猶言引重, '{...}'라고 하였다. ◈ 者는 '{...}'처럼 해석된다. 《禮記》 「中庸」에 仁者人也/親親爲大//義者宜也/尊賢爲大, '{...}'라는 말이 있는데, 이 중 仁者人也와 義者宜也가 본문과 {...}처럼 해석된다. 본문 역시 子之所取大者/先生也로 되어 있으므로, '{...}'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 先生은 伯昏無人을 가리킨다. ◈ 而猶出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猶는 부사어로, '{...}'다. ◈ 出은 言에 대한 용언이므로,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 言은 체언으로, '{...}'이다. ◈ 若은 '{...}'는 말이다. ◈ 是는 자신이 {...}을 가리킨다. ◈ 不亦過乎의 過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乎는 {...}다. ◈◈ 郭象은 事明師而鄙吝之心猶未去/乃眞過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鏡明則塵垢不止/止則非明照也/亦猶久與賢人居則無過/若有過則非賢哲//今子之所取/可重可大者/先生之道也//而先生之道/退己虛忘/子乃自矜/深乖妙旨/而出言如是/豈非過乎,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明鏡無塵/親賢無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申徒嘉는 거울과 {...}에게 욕을 먹이는 子產이 나쁘다고 하는 말일 것이다. [본문으로]
  11. 子產曰 [본문으로]
  12. 子既若是矣,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既는 부사어로, '{...}'다. ◈ 若是는 '{...}'는 말이다. 이 부분에서 子產은 {...}하고 있다. 若是 역시 {...}이라고 보아야 한다. ◈◈ 郭象은 若是形殘,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既已殘形,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3. 猶與堯爭善/計子之德不足以自反邪, ◈ 猶는 부사어로, '{...}'다. ◈ 與는 '{...}'다. ◈ 堯는 고대의 聖王이다. ◈ 爭은 용언으로, '{...}'는 말이고, 善은 체언으로, '{...}'이다. 즉, 與堯爭善이라는 말은 '{...}'는 뜻인데, 이 말은 申徒嘉가 申徒嘉 자신과 {...} 한 표현이다. 宣穎은 堯乃善之至者/故以爲言,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爭善에 대해 如字, '{...}'라고 하였다. ◈ 計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子之德을 받는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子之德의 之는 {...}다. ◈ 德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 不足以는 , '{...}'는 말이다. 不는 부정어로, 足을 한정한다. 足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以는 所以와 같다. '{...}'라는 말이다. 以는 自反을 받는다. 郭慶藩은 闕誤引文成李張諸本不作□, '{...}'라고 하였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다. □는 아마 {...}차 기재해 둔다. ◈ 以는 '{...}'처럼 보면 좋겠다. ◈ 自는 부사어로, '{...}'다. ◈ 反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反/猶復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言不自顧省/而欲輕蔑在位/與有德者並//計子之德/故不足以補形殘之過,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申徒形殘如是而不自知/乃欲將我並驅/可謂與堯爭善//子雖有德/何足在言//以德補殘/猶未平復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計子之素行/必有過而後致兀/尙不足自反邪,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申徒嘉가 兀者인 {...}로 보인다. [본문으로]
  14. 申徒嘉曰 [본문으로]
  15. 自狀其過以不當亡者眾, ◈ 自는 부사어로, '{...}'다. ◈ 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史記》 「夏本紀」에 巡狩行視鯀之治水/無狀, '{...}'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司馬貞은 言無功狀, '{...}'라고 하였다. 《戰國策》 「楚策」에 春申君問狀, '{...}'라고 하였는데, 狀은 '{...}'을 이른다. 鮑彪는 狀을 事狀, 즉 '{...}'이라고 보았다. 인용한 두 글에서 狀은 체언으로 쓰여, '{...}'처럼 사용되었는데, 이를 용언으로 보면 '{...}'처럼 볼 수 있겠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狀/猶顯白也, '{...}'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는 말이 된다. ◈ 其는 이 문장에서 {...}의 주체다. ◈ 過는 체언으로, '{...}'이다. ◈ 以는 '{...}'로 보면 좋겠다. 自狀其過를 받는다. ◈ 不當亡은 아마 관형어구로, '{...}'이라는 말 같다. 者를 한정한다. 또, 이 안에서, 不當은 亡을 한정하는 부사어구고, 亡은 용언이다. 當은 '{...}'라는 말이다. 따라서 不當은 '{...}'는 말이 된다. 亡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失과 같다. 아마 申徒嘉가 兀者인 것처럼, {...}는 표현인 듯하다. ◈ 者는 '{...}'이다. 自狀其過以不當亡을 받는다. 즉, 自狀其過以不當亡者는 '{...}'이 된다. ◈ 眾은 용언으로, '많다'는 말이다. 眾의 주어는 自狀其過以不當亡者다. ◈◈ 郭象은 多自陳其過狀/以己爲不當亡者眾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自顯言其罪過/以爲不至亡足者多矣//不顯言其罪過/而自反以爲不當存足者少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6. 不狀其過以不當存者寡, ◈ 不狀의 不은 부정어다. 狀을 한정한다. ◈ 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其는 이 문장에서 {...}의 주체다. ◈ 過는 체언으로, '{...}'이다. ◈ 以는 '{...}'다. 不狀其過를 받는다. ◈ 不當存은 아마 관형어구로, '{...}'이라는 말 같다. 者를 한정한다. 또, 이 안에서, 不當은 存을 한정하는 부사어구고, 存은 용언이다. 當은 '{...}'라는 말이다. 따라서 不當은 '{...}'는 말이 된다. 存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라는 표현일 것이다. ◈ 者는 '{...}'이다. 不狀其過以不當存을 받는다. 즉, 不狀其過以不當存者는 '{...}'이 된다. ◈ 寡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寡의 주어는 不狀其過以不當存者다. ◈◈ 郭象은 默然知過/自以爲應死者少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自顯其狀/推罪於他/謂己無愆/不合當亡/如此之人/世間甚多//不顯過狀/將罪歸己/謂己之過/不合存生/如此之人/世間寡少//鄭子產奢侈矜伐/於義亦然者也, '{...}'라고 하였다. 이 말은 申徒嘉가 {...}를 가리켜야 한다. 成玄英은 {...}고 했는데, 이는 틀렸다. ◈◈ 孃破案 : 발이 잘린 申徒嘉 자신을 {...} 있다. [본문으로]
  17. 知不可柰何而安之若命/唯有德者能之,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不可柰何를 받는다. 陸德明은 如字/又音智, '{...}'라고 하였다. ◈ 不可柰何는 명사구로, '{...}'이다. 不可는 '{...}'라는 말이다. 柰何는 '{...}'라는 말이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以처럼 '{...}'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본래 而의 의미만으로 잘 해석되기 때문에 나는 以로 해석하지 않았다. 而가 以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說子之執政而後人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安은 부사어로 '{...}'라는 표현인 듯하다. 安을 용언으로 보고, 「養生主」에 나왔던 安時而處順의 安처럼 '{...}'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若을 {...}로 해석해야 하겠다. ◈ 安之若命의 之는 {...} 같다. 글자 수를 맞추려고 넣은 듯하다. ◈ 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書》 「禹書 堯典」에 乃命羲和/欽若昊天, '{...}'라는 말이 있는데, 이 若에 대해 蔡沈은 順,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도 順, '{...}'라고 하였다. 만약 이 설을 따르지 않고, 若을 以처럼 해석할 수 있다면 安을 용언으로 {...}를 모르겠다. ◈ 唯는 부사어로, '{...}'이다. 이 唯는 《莊子集釋》에는 唯로 되어 있고, 《莊子集解》에는 惟라고 되어 있다. 의미는 동일하다. ◈ 有德者는 명사구로, '{...}'이다.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德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者는 '{...}'이다. 有德을 받는다. ◈ 能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能之의 之는 명사구인 知不可柰何而安之若命를 가리킨다. ◈◈ 成玄英은 夫素質形殘/稟之天命/雖有知計/無如之何/唯當安而順之/則所造皆適//自非盛德/其孰能然, '{...}'라고 하였다. ◈◈ 宣穎은 以兀爲自然之命而不介意/非有德者不能,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人間世」의 葉公 이야기에 知其不可柰何/安之若命이라는 말이 있다. 而가 {...}가 동일하다. [본문으로]
  18. 遊於羿之彀中//中央者/中地也//然而不中者/命也, ◈ 遊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於는 '{...}'다. 羿之彀中을 받는다. ◈ 羿는 사람 이름이다. 활을 잘 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襄公」 4년에 夏訓有之曰/有窮后羿, '{...}'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杜預는 夏訓/夏書//有窮/國名//后/君也//羿/有窮君之號, '{...}'라고 하였다. 아마 이 后羿가 이 부분의 羿인 듯하다. 한편 《書》 「夏書 五子之歌」를 보면, 有窮后羿因民弗忍/距于河/厥弟五人御其母以從/徯于洛之汭//五子咸怨/述大禹之戒以作歌,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孔安國은 有窮/國名//羿/諸侯名//距太康於河/不得入國/遂廢之, '{...}'라고 하였고, 蔡沈은 窮/國名//羿/窮國君之名也//或曰/羿/善射者之名//賈逵說文/羿/帝嚳射官/故/其後善射者/皆謂之羿/有窮之君亦善射/故/以羿目之也//羿因民不堪命/距太康于河北/使不得返/遂廢之, '{...}'라고 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說文解字》를 지은 사람이 許愼인데, 그 許愼의 스승이 賈逵다. 본문에 대해, 郭象은 羿/古之善射者,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羿/堯時善射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詣/徐胡係反//善射人/唐夏有之//一云/有窮之君篡夏者也, '{...}'라고 하였다. 여기서 찬탈 {...} 때문인 듯하다. ◈ 羿之彀中의 之는 {...}다. ◈ 彀中은 명사구로, '{...}'를 뜻한다. 彀은 '{...}'는 말이다. 본문에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된다. 中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郭象은 弓矢所及爲彀中, '{...}'라고 했다. 成玄英은 其矢所及/謂之彀中,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彀에 대해서는 音遘/張弓也, '{...}'라고 하였고, 中에 대해서는 如字, '{...}'라고 하였으며, 또 郭云/弓矢所及爲彀中, '{...}'라고 하였다. 王先謙 역시 中에 대해 如字, '{...}'라고 하였다. 郭嵩燾는 玉篇/彀/張弓弩///漢書周亞夫傳/彀弓弩待滿, '{...}'라고 하였다. 「周亞夫傳」은 「張陳王周傳」을 뜻한다. 「張陳王周傳」에는 彀弓弩/待滿이 아니라 彀弓弩/持滿이라고 되어 있다. 「張陳王周傳」의 해당 부분에 대해 顏師古는 彀/張也//音遘, '{...}'라고 하였다. ◈ 中央은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於良反/舊於倉反,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中에 대해 如字, '{...}'라고 하였다. ◈ 中央者의 者는 '{...}'이다. 뒤의 中地也까지 보면, 앞에 나왔던 子之所取大者/先生也처럼 {...}처럼 해석된다. ◈ 中地는 명사구로, '{...}'이다. 中地의 中은 관형어로, '{...}'이다. 不中의 中도 그렇다. 地는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丁仲反//下不中/注中地/中與不中同,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竹仲反, '{...}'라고 하였다. ◈ 然而는 역접으로, '{...}'라는 말이다. ◈ 不中者는 명사구로, 화살이 '{...}'이다. 不은 부정어다. 中을 한정한다. 中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者는 '{...}'이다. 不中을 받는다. ◈ 命은 체언으로, 道가 내린 '{...}'을 뜻한다. ◈◈ 郭象은 夫利害相攻/則天下皆羿也//自不遺身忘知與物同波者/皆遊於羿之彀中耳//雖張毅之出/單豹之處/猶未免於中地/則中與不中/唯在命耳//而區區者各有所遇/而不知命之自爾//故免乎弓矢之害者/自以爲巧/欣然多己/及至不免/則自恨其謬而志傷神辱/斯未能達命之情者也//夫我之生也/非我之所生也/則一生之內/百年之中/其坐起行止/動靜趣舍/情性知能/凡所有者/凡所無者/凡所爲者/凡所遇者/皆非我也/理自爾耳//而橫生休戚乎其中/斯又逆自然而失者也, '{...}'라고 하였다. 張毅와 單豹는 《淮南子》 「人間訓」에 등장한다. ◈◈ 成玄英은 言羿善射/矢不虛發/彀中之地/必被殘傷/無問鳥獸/罕獲免者//偶然得免/乃關天命/免與不免/非由工拙/自不遺形忘智/皆遊於羿之彀中//是知申徒兀足/忽遭羿之一箭//子產形全/中地偶然獲免//既非人事/故不足自多矣, '{...}'라고 하였다. ◈◈ 郭嵩燾는 玉篇/彀/張弓弩///漢書周亞夫傳/彀弓弩待滿///遊於羿之彀中/觸處皆危機也//而恢恢乎有中地/以自處不中/則上弦下弣/中承箭筈/反有激而傷者矣//均之遊也/中與不中/偶値之數也/不可柰何而安之則命也//言亡足之非其罪, '{...}'라고 하였다. 「周亞夫傳」은 「張陳王周傳」을 뜻한다. 「張陳王周傳」에는 彀弓弩/待滿이 아니라 彀弓弩/持滿이라고 되어 있다. 「張陳王周傳」의 해당 부분에 대해 顏師古는 彀/張也//音遘, '彀는 시위를 거는 것이다. 音은 遘다'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以羿彀喩刑網//言同居刑網之中/孰能自信無過//其不爲刑罰所加/亦命之偶値耳,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羿는 활을 아주 {...}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19. 人以其全足笑吾不全足者多矣, ◈ 人은 체언으로, '{...}'이다. {...}을 이른다. '{...}'처럼 번역하면 좋겠다. ◈ 以는 '{...}'다. 其全足을 받는다. ◈ 其는 人을 가리킨다. ◈ 其全足의 全은 관형어로, '{...}'이다. 여기서는 '{...}'이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其全足의 足은 체언으로, '{...}'이다. ◈ 笑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吾不全足을 받는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가리킨다. ◈ 不全足은 '{...}'일 텐데, 이는 {...}을 뜻한다. 不은 부정어로, 全을 한정한다. 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不全은 관형어구로써 足을 한정한다. 足은 체언으로, '{...}'이다. ◈ 者는 '{...}'이다. 以其全足笑吾不全足을 받는다. ◈ 多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多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郭慶藩은 世德堂本作眾, '{...}'라고 하였다. 眾 역시 '{...}'는 뜻이다. ◈◈ 郭象은 皆不知命而有斯笑矣,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0. 我怫然而怒,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怫然은 '{...}'이다. 然은 {...}으로 바꾸어 주는 말이다. 怫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說文解字》 「心部」에는 怫/鬱也//从心弗聲, '{...}'라고 하였다. 따라서 怫然은 '{...}'을 뜻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怫然/暴戾之心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扶弗反, '{...}'라고 하였다. ◈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子而說子之執政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怒는 용언으로, '{...}' 혹은 '{...}'라는 말이다. ◈◈ 郭象은 見其不知命而怒/斯又不知命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人不知天命/妄計虧全/況己形好/嗤彼殘兀//如此之人/其流甚眾//忿其無知/怫然暴怒/嗔忿他人/斯又未知命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1. 而適先生之所/則廢然而反, ◈ 而適先生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適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先生之所를 받는다. ◈ 先生은 伯昏無人을 이른다. ◈ 之는 {...}다. ◈ 所는 체언으로, '{...}'을 뜻할 것이다. 앞에 {...}과 같다 하겠다. ◈ 則은 '{...}'이다. ◈ 廢然은 아마 {...}을 뜻하는 말 같다. 廢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然은 {...}이다. ◈ 廢然而反의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怫然而怒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反은 용언으로, 아마 {...}는 표현 같다. ◈◈ 郭象은 見至人之知命遺形/故廢向者之怒而復常,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往伯昏之所/稟不言之教/則廢向者之怒而復於常性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2. 不知先生之洗我以善邪, ◈ 不는 부정어다. 知를 한정한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先生之洗我以善을 받는다. ◈ 先生은 伯昏無人을 가리킨다. ◈ 之는 {...}다. ◈ 洗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以는 '{...}'다. 善을 받는다. ◈ 善은 체언으로, '{...}'이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 이 문장에 대해 郭慶藩은 闕誤引張君房本邪下有吾之自寤邪五字, '{...}'라고 했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를 이른다. 吾之自寤邪가 붙은 것이 맞다면 不知/先生之洗我以善邪//吾之自寤邪처럼 읽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는 말이 된다. 뒤의 문맥을 {...}을 따른다. ◈◈ 郭象은 不知先生洗我以善道故耶//我爲能自反耶//斯自忘形而遺累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適師門/入於虛室/廢棄忿怒/反覆尋常//不知師以善水洗滌我心//爲是我之性情能自反覆//進退尋責/莫測所由//斯又忘於學心/遺其係累,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以善道淨我心累,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3. 吾與夫子遊十九年矣/而未嘗知吾兀者也,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與는 '{...}'다. ◈ 夫子는 {...}이다. 伯昏無人을 이른다. ◈ 遊는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이다. 그러나 莊子는 「逍遙遊」의 遊처럼, {...}을 遊로 표현한 적이 많다. 여기서도 {...}라는 의미로 보아야 하겠다. ◈ 十九年은 '{...}'이다. 「養生主」에 今臣之刀十九年矣, '{...}'라는 말이 있었다. 《外篇》의 「在宥」에서도 黃帝立爲天子十九年, '{...}'라는 말이 있다. 莊子는 충분히 긴 시간을 의미할 때 {...} 나오지는 않는다. 「養生主」의 저 부분에서 成玄英은 十/陰數也//九/陽數也//故十九年極陰陽之妙也, '{...}'라고 하였다. {...}이다. 한편, 《雜篇》의 「則陽」에는 遽伯玉을 두고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年非也, '{...}'라는 말을 하였고, 「寓言」에는 孔子를 두고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年非也, '{...}'라는 말이 있다. ◈ 矣는 {...}다. 郭慶藩은 世德堂本無矣字, '{...}'라고 하였다. 뒤로 句가 이어지기 {...}이 낫겠다. 의미에는 큰 차이가 없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未嘗은 '{...}'는 말이다. 知를 한정한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兀은 관형어로, '{...}'이다. 者를 한정한다. 이 글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 모두 兀로 되어 있고, 《經典釋文》에만 介로 되어 있다. 介는 {...}가 있었다. 陸德明은 本又作兀/兩通, '{...}'라고 하였다. 王駘 이야기 중 魯有兀者王駘,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陸德明은 案篆書兀介字相似, '{...}'라고 하였다. 모양이 비슷해서 혼용되었고, 이 때문에 {...}가 있었던 모양이다. ◈ 者는 '{...}'이다. ◈◈ 郭象은 忘形故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我與伯昏遊於道德/故能窮陰陽之妙要/極至理之精微//既其遺智忘形/豈覺我之殘兀,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未聞先生以殘形見擯,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伯昏無人이 申徒嘉가 {...}적이다. [본문으로]
  24. 今子與我遊於形骸之內/而子索我於形骸之外/不亦過乎, ◈ 今은 부사어로,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子產을 이른다. ◈ 與는 '{...}'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좋겠다. ◈ 於는 '{...}'다. 形骸之內를 받는다. ◈ 形骸之內는 명사구로, '{...}'을 이른다. 形骸는 '{...}'을 뜻한다. 形骸之內의 之는 {...}다. 內는 체언으로, '{...}'이다. 郭象은 形骸外矣/其德內也, '{...}'라고 하였는데, 이 설명이 타당하다. 즉, 形骸之內는 {...}을 이른다. 그런데 道를 {...}므로 흥미롭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索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色百反//注同, '{...}'라고 하였다. ◈ 形骸之外는 명사구로, '{...}'이다. 申徒嘉가 兀者임을 이른다. 之는 {...}다. 外는 체언으로, '{...}'이다. 形骸之外는 '{...}'을 뜻한다. ◈ 亦은 부사어로, '{...}'이다. ◈ 過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乎는 {...}다. ◈◈ 郭象은 形骸外矣/其德內也//今子與我德遊耳/非與我形交也/而索我外好/豈不過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郭注云/形骸外矣/其德內也//今子與我德遊耳/非與我形交也/而索我外好/豈不過哉///此注意更不勞別釋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以道德相友/以形迹相繩,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5. 子產蹵然改容更貌曰, ◈ 蹵然은 '{...}'이다. 蹵然은 《莊子集解》에는 蹵然으로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蹴然으로 되어 있다. 《經典釋文》에는 蹵으로 되어 있다. 蹵은 본래 '{...}'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해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蹵은 愀의 가차자로 쓰인 듯하다. 愀는 '{...}'는 말로, 이 부분의 蹵과 의미가 동일하다. 《荀子》의 「修身」에 見不善/愀然必以自省也,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愀然/憂懼貌, '{...}'라고 하였다. 《史記》의 「蘇秦列傳」에는 齊王愀然變色, '{...}'라는 말이 있다. 《禮記》의 「哀公問」에는 孔子愀然作色, '{...}'라는 말이 있고, 《大戴禮記》의 「哀公問於孔子」에도 孔子愀然作色, '{...}'라는 말이 똑같이 있다. 鄭玄은 愀然/變動貌也//作/猶變也, '{...}'라고 하였다. 이 말들을 종합해 보면, 愀然은 '{...}'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본문의 {...} 등장한다. 「大宗師」에서 顏回가 坐忘하였다는 말을 듣고 仲尼蹴然曰, '{...}'라는 말이 있고, 「應帝王」에서 老聃의 비판을 듣고 陽子居蹴然曰, '{...}'라는 말이 있다. 모두 문맥이 동일하다. 발음도 비슷했던 것 같다. 陸德明은 蹵에 대해 子六反, '{...}'라고 하였는데, 《禮記》 「哀公問」의 愀에 대해서는 愀/七小反/舊慈糾反/又在由反/又音秋/又子了反/下同, '{...}'라고 하였다. 子와 六의 반절이면 '{...}'라고 읽힐 것이고, 「哀公問」의 愀는 순서대로 '{...}', '{...}', '{...}', '{...}', '{...}'라고 읽혔을 것이다. {...}기에 가차해서 쓰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蹴然/驚慚貌也, '{...}'이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蹵然起謝, '{...}'라고 했다. ◈ 改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容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 更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으로 읽는다. ◈ 貌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본문으로]
  26. 子無乃稱,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申徒嘉를 이른다. ◈ 無는 '{...}'라는 뜻이다. 勿과 같다. ◈ 乃는 아마 '{...}'라는 말 같다. 王先謙은 乃者/猶言如此//子無乃稱/謂子毋如此言也//大宗師篇/不知其所以乃///亦謂不知其所以如此也, '{...}'라고 하였다. 「大宗師」에는 不知其所以乃라는 말이 없다. 아마 是自其所以乃를 이르는 말이 아닐까 하다. ◈ 稱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國語》 「晉語」에 夫陽子/行廉直於晉國/不免其身/其知不足稱也,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稱을 述, '{...}'라고 하였다. 즉, 이 말은 {...}를 가리킨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如字/舉也//又尺證反, '{...}'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의미가 통한다. ◈◈ 郭象은 已悟則厭其多言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子產未能忘懷遣欲/多在物先//既被譏嫌/方懷驚悚/改矜誇之貌/更醜惡之容/悟知已至/不用稱說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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