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9. 15:18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30일 11시 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16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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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63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7 - 응제왕 - 6 - 지인은 만물의 본질을 비춰 주는 사람이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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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7-6
無爲名尸,無爲謀府;無爲事任,無爲知主。體盡無窮,而遊無朕;盡其所受乎天,而無見得,亦虛而已。
至人之用心若鏡,不將不迎,應而不藏,故能勝物而不傷。
[도를 깨달으려면] 명성에 얽매이지 말고(無爲名尸, ◈ 無는 부정어로, '{...}'라는 말이다. 勿과 같다. 爲名尸를 받는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名尸를 받는다. ◈ 名尸는 아마 名之尸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명사구로, '{...}'라는 뜻이다. 名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尸는 본래 용언으로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체언으로, '{...}'이라고 할 수 있겠다. 《詩》 「國風 召南」의 「采蘋」에 誰其尸之,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과 朱熹 모두 尸를 主, '{...}'라고 풀이하였다. 또, 「逍遙遊」에 夫子立而天下治/而我猶尸之, '{...}'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尸 역시 '{...}'라는 말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尸/主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因物則物各自當其名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身尙忘遺/名將安寄/故無復爲名譽之主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名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逍遙遊」에 聖人無名, '{...}'라는 말이 있었다. ◈◈ 孃破又案 : 無爲名尸는 직역하면, '{...}'라는 말이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이 다음에 {...}해야 자연스럽겠다.), 일을 꾸미려 들지도 말며(無爲謀府, ◈ 無는 부정어로, '{...}'라는 말이다. 勿과 같다. 爲謀府를 받는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謀府를 받는다. ◈ 謀府는 謀之府로 보아야 한다.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謀는 체언으로, '{...}'이라는 뜻이고, 府 역시 체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使物各自謀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虛淡無心/忘懷任物/故無復運爲謀慮於靈府耳,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無爲謀慮之府,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의 命을 {...}는 뜻이다. 「德充符」에는 聖人不謀/惡用知라는 말이 있었고, 「大宗師」에는 眞人에 대해 不謨士라는 말이 있었다. 여기서 士는 事다. 그런데 '{...}'는 것은 {...}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구태여] 일을 맡으려 하지도 말고(無爲事任, ◈ 無는 부정어로, '{...}'라는 말이다. 勿과 같다. 爲事任을 받는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事任을 받는다. ◈ 事任은 명사구다. 다른 句들처럼 事之任으로 보아야 {...}이라는 말이 된다. 아마 出仕를 뜻할 것이다. ◈ 無爲事任, 일을 맡는 {...}이다. 「逍遙遊」에 神人無功이라는 말이 있었다. ◈◈ 郭象은 付物使各自任,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各率素分/恣物自爲/不復於事/任用於己,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일을 맡는다는 말은, 곧 {...}이다. 「逍遙遊」에 神人無功, '{...}'라는 말이 있었다.), 지식에 매달리지도 말아야 한다.(無爲知主, ◈ 無는 부정어로, '{...}'라는 말이다. 勿과 같다. 爲知主를 받는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知主를 받는다. ◈ 知主는 知之主와 같다. 명사구로, '{...}'라는 말일 것이다. 知와 主는 모두 체언이다. 陸德明은 知에 대해 音智//注同, '{...}'라고 하였다. ◈◈ 郭象은 無心則物各自主其知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忘心絕慮/大順群生/終不運知/以主於物,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가 내린 命을 {...} 멋쩍다. 「養生主」 첫 부분에 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 '{...}'라는 말이 있었고, 또 「人間世」의 顏回와 衛나라 이야기 중에 名也者/相札也//知也者/爭之器也//二者凶器/非所以盡行也, '{...}'라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는] 온몸으로 [도가 내리는] 끝 없는 변화를 남김 없이 받아들여서(體盡無窮, ◈ 이 문장은 體가 盡하는 {...}해야 한다. ◈ 體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 盡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타당할 듯하다. 無窮을 받는다. ◈ 無窮은 명사구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 즉 {...}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변화는 '{...}'하기 때문이다. 나는 {...}라고 해석하였다. ◈◈ 郭象은 因天下之自爲/故馳萬物而無窮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體俉眞源/故能以智境冥會/故曰皆無窮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體悟眞源/冥會無窮, '{...}'라고 하였다.) [만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어긋날] 기색조차 없는 경지에 오르고(而遊無朕, ◈ 而는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명사구인 無朕을 받는다. ◈ 無朕은 명사구로, {...}를 뜻한다. 無는 '{...}'는 뜻이고, 朕은 '{...}'를 뜻한다. 朕은 아마 {...}을 뜻하는 말 같다. 至人은 {...}다. 그러한 경지가 道다. 成玄英은 朕을 跡,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直忍反/崔云/兆也, '{...}'라고 했다. ◈◈ 郭象은 任物/故無跡,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雖遨遊天下/接濟蒼生/而晦跡韜光/故無朕也, '{...}'라고 하였다.), [또한] 하늘에게서 내려 받은 본질을 극진히 여겨야 한다.(盡其所受乎天, ◈ 盡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其所受乎天을 받는다. ◈ 其는 '{...}'를 가리킨다. 이 말 자체가 '{...}'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 {...}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所受乎天을 받는다. ◈ 所는 '{...}'이다. 受乎天을 받는다. ◈ 受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乎는 於와 같다. '{...}'다. 天을 받는다. ◈ 天은 체언으로, '{...}'이다. 道를 뜻한다. 所受乎天은 '{...}'으로, 바로 {...}을 이른다. 「大宗師」의 大情, 宗, 그리고 季咸과 壺子 이야기 중 나왔던 審이나 淵과 의미가 같다. ◈◈ 郭象은 足則止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所稟天性/物物不同/各盡其能/未爲不足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가 내린 {...}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또 무언가를] 터득했다고 여기지는 말 것이요(而無見得, ◈ 而는 아마 역접일 것이다. '{...}'처럼 해석된다. 無見得/亦虛而已의 뜻이 앞의 體盡無窮/而遊無朕/盡其所受乎天과 상반됨을 뜻한다. 앞의 體盡無窮/而遊無朕/盡其所受乎天은 사람이 {...}를 이른다. ◈ 無는 부정어로, '{...}'는 말이다. 勿과 같다. 見得을 한정한다. ◈ 見得은 아마 한 단어일 것이다.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見과 得은 모두 '{...}'는 말이다. 「大宗師」에 道를 터득한 경지를 표현한 見獨이라는 말이 있었다. 《三國志》 「魏志 鍾繇華歆王朗傳」에 明帝時大司農弘農董遇等/亦歷注經傳/頗傳於世,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한 裴松之의 주석에 讀書百徧/而義自見, '{...}'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見은 '{...}'는 말로 사용되었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得을 利로 보았는데, '{...}'는 뜻으로는 통하는 면이 있다. ◈◈ 郭象은 見得則不知止,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目視之所見/雖見不見//得於分內之得/雖得不得//既不造意於見得/故雖見得而無見得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全所受於天/而無自以爲得之見, '{...}'라고 하였다.), 다만 [마음을] 비워야 할 뿐이다.(亦虛而已, ◈ 亦은 부사어다. '{...}' 보다는 '{...}'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安東林은 唯와 亦의 발음이 비슷해서 통용될 때가 있다고 했다. ◈ 虛는 용언으로, {...}는 말일 것이다. 즉, {...}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 而已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不虛則不能任群實,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所以盡於分內而無見得者/直自虛心淡忘而已,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無爲名尸, 無爲謀府, 無爲事任, 無爲知主, 體盡無窮, 而遊無朕, 盡其所受乎天은 道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 도를 깨달은 뒤에는 만물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지인은 만물을 거울처럼 대한다.(至人之用心若鏡, ◈ 至人은 {...}이다. ◈ 之는 {...}다. ◈ 用心은 명사구로, '{...}'을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의미가 불분명해진다. 차라리 '{...}'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 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鏡을 받는다. 若의 주어는 至人之用心이다. ◈ 鏡은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 郭象은 鑒物而無情,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懸鏡高堂/物來斯照/至人虛應/其義亦然,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사람들은 사물을 {...} 이어지는 不將不迎, '{...}'나 應而不藏, '{...}'라는 말을 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무엇이든 구태여] 떠나 보내려 하지도 않고, [애써] 맞아 들이려 하지도 않으니, [이처럼 만물을] 비출 뿐,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는다.(不將不迎/應而不藏, ◈ 不는 부정어다. '{...}'라는 말이다. 각각 將과 迎을 한정한다. ◈ 將은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詩》 「國風 召南」의 「鵲巢」에 之子於歸/百兩將之,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將/送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夫人將之/謂送夫人, '{...}'라고 하였다. 朱熹 역시 將/送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送, '{...}'라고 하였다. ◈ 迎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郭慶藩은 世德堂本作逆, '{...}'라고 하였다. 逆은 '{...}'라는 말인데, 의미야 끼워 맞출 수 있겠지만, 將과 대구를 이루지는 못한다. 迎과 逆의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되었을 것이다. ◈ 應은 용언으로, 對應이라는 말처럼, {...}라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莊子는 {...}라고 하였다. 이 점을 감안하면 應을 {...}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藏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그런데 莊子는 {...}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應而不藏은 '{...}'라는 뜻이다. 陸德明은 如字//本又作臧/亦依字讀, '{...}'라고 하였다. 臧은 藏의 가차자일 것이다. ◈◈ 郭象은 來即應/去即止,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物有去來而鏡無迎送/來者即照/必不隱藏//亦猶聖智虛凝/無幽不燭/物感斯應/應不以心/既無將迎/豈有情於隱匿哉,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至人이 만물을 {...}이라고 한 것이다. 應而不藏이야말로 至人의 마음 자세이고, 이 편의 제목이 '應帝王'인 이유일 것이다. 즉, '응제왕'이라는 제목은 '{...}'는 뜻이다. ◈◈ 孃破又案 : 「人間世」에 孔子가 顏回에게 衛나라에 가서 어떻게 할지에 대해 알려 준 말 중 無門無毒, '{...}'라는 말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하라는 말이다. 「大宗師」의 女偊 이야기에는 攖寧을 설명하면서 其爲物/無不將也/無不迎也//無不毀也/無不成也, '{...}'라고 한 적이 있었다. 모두 不將不迎과 의미가 같다.) [지인은 이와 같이 만물을 거울처럼 대하기 때문에,] 이에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견뎌내어 [도에게서 내려 받은 자기 본성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다.(故能勝物而不傷, ◈ 故는 '{...}'다. ◈ 能은 '{...}'라는 말이다. ◈ 勝物은 '{...}'라는 뜻이다. 속뜻은 '{...}'라는 말일 것이다. 物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勝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詩》 「小雅 祈父之什」의 「正月」에 靡人弗勝,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勝은 '{...}'라는 뜻이다. 勝은 任이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說文解字》 「力部」에는 勝/任也//从力朕聲, '{...}'라는 말이 있고, 《詩》 「頌 商頌」의 「正月」에 武王靡不勝,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勝을 任이라고 풀이했다. 여기서 任 역시 '{...}'라는 뜻이다. 《文選》에 수록되어 있는 王粲의 「登樓賦」에 孰憂思之可任,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李善은 杜預左氏傳注曰/任/當也, '{...}'라고 하였다. 《左氏傳》은 《春秋左氏傳》이다. 그러면 李善이 인용한 글은 어느 부분일까.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 重怒難任/背天不祥/必歸晉君,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杜預는 任/當也, '{...}'라고 하였다. 이를 이를 것이다.「大宗師」 마지막 부분에 不任其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任 역시 '{...}'라는 뜻이다. 즉, 勝은 任이라는 뜻인데, 任은 '{...}'라는 말이다. 따라서 勝도 '{...}'라는 뜻이 된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勝을 萬物의 위에 '{...}'라고 풀이했는데, 至人과 道에 대한 莊子의 지론을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라고 보는 편이 낫겠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不傷은 '{...}'는 뜻이다. 不은 부정어다. 傷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즉, 不傷은 '{...}', {...}라는 뜻이 된다. 傷을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면 不傷은 {...}라는 말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앞의 勝을 '{...}'처럼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勝物은 '{...}'라는 말이므로, 不傷을 {...}라고 풀이한다면, 勝物而不傷은 '{...}'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 곧 {...}이므로, 勝物과 不傷은 같은 말이 된다. 그러면 굳이 而로 연결해서 勝物而不傷이라고 병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不傷을 {...}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 같다. ◈◈ 郭象은 物來乃鑒/鑒不以心/故雖天下之廣/而無勞神之累,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物有生滅/而鏡無隱顯/故常能照物而物不能傷//亦猶聖人德合二儀/明齊三景/鑒照遐廣/覆載無偏//用心不勞/故無損害/爲其勝物/是以不傷,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此段正文, '{...}'라고 하였다. 《莊子》는 주제를 빗댄 우화와, 莊子 혹은 다른 저자가 직접 요지를 기술한 이론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王先謙은 이론 부분을 正文, '{...}'이라고 부른다. ◈◈ 孃破案 : 至人은 萬物을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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