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7. 08:27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郭象, 成玄英, 王先謙 등의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6월 10일 4시 49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81
장자 내편 - 3 - 양생주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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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29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3 - 양생주 - 1 - 양생이란 무엇인가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3-1
內篇 養生主第三
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
내편 양생주 제3(內篇養生主第三, ◈◈ 郭象은 夫生以養存/則養生者理之極也//若乃養過其極/以養傷生/非養生之主也,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養生以此爲主也, '養生을 主로 삼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順事而不滯於物/冥情而不攖其天/此莊子養生之宗主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齊物論」에서 道가 무엇인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 莊子는, 이 원칙을 {...}들이 바로 養生主요, 「養生主」의 주제다.)
우리 삶에는 끝이 있지만(吾生也有涯, ◈ 吾는 1인칭 대명사다. 여기서는 '우리'라고 보면 타당하다. ◈ 生은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 也은 者와 같다고 보아야 하겠다. 吾生을 받는다. 그러면 吾生也는 '{...}'이 된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涯는 체언으로, '{...}'이다. 涯는 본래 '{...}'라는 말이다. 《說文解字》 「水部」에는 涯/水邊也//从水从厓/厓亦聲,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라는 것은 '{...}'을 뜻한다. 이에 따라 여기서는 '{...}'이라고 보아야 한다. 陸德明은 本亦作崖/魚佳反, '{...}'라고 하였다. 崖는 '{...}'을 뜻하므로, 이 역시 '{...}' 또는 '{...}'을 뜨한다. 그런데 郭象과 成玄英은 모두 分, '{...}'라고 보았다. 멀리 돌아가 보면, {...}는 말은 '{...}'는 뜻이고, 이는 '{...}'를 뜻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한편 王先謙은 畔岸, '{...}'라고 하고 있다. 나는 '{...}'로 보았다. ◈◈ 郭象은 所稟之分各有極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生也受形之載/稟之自然/愚智脩短/各有涯分//而知止守分/不蕩於外者/養生之妙也//然黔首之類/莫不稱吾/則凡稱吾者/皆有極者也, '{...}'라고 하였다.), 지식에는 끝이 없다.(而知也無涯,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知는 체언으로, '{...}'다. '{...}'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陸德明은 音智//注/下同, '{...}'라고 하였다. ◈ 也는 吾生也의 也처럼 者로 보아야 한다. 知를 받는다. ◈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涯는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夫舉重攜輕而神氣自若/此力之所限也//而尙名好勝者/雖復絕膂/猶未足以慊其願/此知之無涯也//故知之爲名/生於失當而滅於冥極//冥極者/任其至分而無毫銖之加//是故雖負萬鈞/苟當其所能/則忽然不知重之在身//雖應萬機/泯然不覺事之在己//此養生之主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所澟形性/各有限極/而分別之智/徇物無涯//遂使心困形勞/未慊其願/不能止分/非養生之主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生有窮盡/知無畔岸, '{...}'라고 하였다.)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짓은 위태롭다.(以有涯/隨無涯/殆已, ◈ 以는 '{...}'라는 뜻이다. 有涯를 받는다. ◈ 有涯는 명사구로, '{...}'이다. 生, 즉 우리의 '{...}'을 뜻한다. ◈ 隨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無涯는 명사구로, '{...}'이다. 知, 즉 '{...}'을 이른다. ◈ 殆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向云/疲困之謂, '{...}'라고 했다. ◈ 已는 {...}다. '{...}'는 말이다. ◈◈ 郭象은 以有限之性尋無極之知/安得而不困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生也有限/知也無涯/是以用有限之生逐無涯之知/故形勞神弊而危殆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평생 공부해도 {...}는 뜻이다.) [이치가] 이미 이러한데도 [살아가면서] 지식을 추구하려 하는 것은 위태로운 짓일 뿐이다.(已而爲知者/殆而已矣, ◈ 已而는 已然으로 보아야 한다. '{...}'라는 뜻이다. 而, 즉 然은 以有涯/隨無涯/殆已를 가리킨다. 그러면 而가 어떻게 然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書》 「虞書 益稷」에 啟呱呱而泣, '{...}'라는 말이 있고, 《詩》 「國風 召南」에 舒而脫脫兮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이를 脫脫然舒也, '{...}'라고 풀이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 17년에는 鋌而走/險急何能擇,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鋌/疾走貌, '{...}'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然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예시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而는 곧 然이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已를 止, '{...}'라고 하였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 爲知는 '{...}'라는 말이다.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知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者는 '{...}'이다. 爲知를 받는다. ◈ 殆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而已는 {...}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已困於知而不知止/又爲知以救之/斯養而傷之者/眞大殆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無涯之知/已用於前//有爲之學/救之於後//欲不危殆/其可得乎, '{...}'라고 하였다. ◈◈ 郭嵩燾는 營營以求知/而極乎無涯/終乎殆矣//而此營營之知存於心/足以累性而害心//冥然而物化/寂然而神凝/使其知不生於心/成性存存/泯知以全生//故曰已而爲知者殆而已矣,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事過思留/其殆更甚//言以物爲事/無益於性命, '{...}'라고 하였다.)
선을 행하더라도 명성이 알려지지 않게 해야 하고,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을 받게 되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 爲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善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無는 부정어다. '{...}'라는 말이다. 近을 한정한다. 無는 勿과 같다. ◈ 近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附近之近//下同, '{...}'라고 하였다. ◈ 名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近名은 '{...}'라는 의미일 것이다. 郭慶藩은 文選/嵇叔夜/幽憤詩/注引司馬云///勿修名也//被褐懷玉/穢惡其身/以無陋於形也///釋文闕, '{...}'라고 하였다.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文選》의 注에는 첫 구가 勿脩名也라고 되어 있다. 脩와 修는 통용된다. 나머지 글자는 같다. 被褐懷玉은 《道德經》 70장에 나오는 말이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陸德明은 옛 판본들을 모아 그 주석을 전부 수록해 두었는데, 司馬彪의 이 말은 《文選》에서는 《莊子》를 인용하여 실려 있지만, 정작 《經典釋文》에는 빠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 惡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刑은 체언으로, '{...}'이다. 近刑은 '{...}'라는 말일 것이다. ◈◈ 郭象은 忘善惡而居中/任萬物之自爲/悶然與至當爲一/故刑名遠己而全理在身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有爲俗學/抑乃多徒/要切而言/莫先善惡//故爲善也無不近乎名譽/爲惡也無不鄰乎刑戮//是知俗智俗學/未足以救前知/適有疲役心靈/更增危殆, '{...}'라고 하였다. ◈◈ 郭嵩燾와 王先謙은 모두 船山云//聲色之類/不可名之爲善者/即惡也, '{...}'라고 했다. 船山은 明나라의 王夫之를 이르는 듯하다. 또, 王先謙은 二語淺說,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莊子는 善을 {...}는 뜻에 가깝다.) [이처럼 선이든 악이든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 [이를] 법도로 삼아야(緣督以爲經, ◈ 緣督은 명사구로, '{...}'이라는 뜻이다. 緣은 '{...}'라는 말이다. 《管子》 「侈靡」에 故緣地之利, '{...}'라는 말이 있는데, 房玄齡은 緣을 順, '{...}'라고 풀이하였다. 《荀子》 「正名」에는 緣耳而知聲可也/緣目而知形可也,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緣을 因, '{...}'라고 풀이하였다. 한편, 督은 체언으로, '{...}'를 뜻하는 말 같다. 《周禮》 「冬官考工記」에 堂涂十有二分,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分其督旁之脩/以一分爲峻也, '{...}'라고 하였다. 그런데 賈公彦은 다시 이에 대해 名中央爲督//督者/所以督率兩旁,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緣/順也//督/中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緣/順也//督/中也//經/常也///郭崔同, '{...}'라고 하였다. 또, 郭慶藩은 文選左太沖魏都賦注引司馬云///緣/順也//督/中也//順守道中以爲常也///釋文闕, '{...}'라고 하였다. 注는 李善의 注를 뜻한다. 한편 李楨은 素問骨空論///督脈者/起於少腹以下骨中央///靈樞本輸篇///七次脈/頸中央之脈/督脈也///人身惟脊居中/督脈並脊裏而上/故訓中督爲奇經之一脈//莊子正是假脈爲喻/故下爲保身全生等語//郭嵩燾曰///船山云/奇經八脈/以任督主呼吸之息//身前之中脈曰任/身後之中脈曰督//督者/居靜而不倚於左右/有脈之位而無形質//緣督者/以清微纖妙之氣/循虛而行/止於所不可行/而行自順/以適得其中, '{...}'라고 하였다. 《素問》은 《黃帝內經素問》이다. 《靈樞》는 《黃帝內經靈樞經》을 이른다. 《靈樞經》이라고도 한다. 《素問》과 《靈樞經》은 모두 《黃帝內經》의 한 부분이다. 船山은 王夫之일 것이다. 李楨의 말은 의학적으로도 督을 中, '{...}'이라고 볼 근거가 있다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 以爲는 '{...}'는 뜻이다. 以는 '{...}'이라는 말로, 緣督을 받는다.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經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經은 본래 '{...}'을 뜻한다. 베를 짤 때, {...}을 뜻한다. 곧, {...}를 이른다. 成玄英은 常, '{...}'라고 하였다. 緣督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면, 陸德明은 李頤와 崔譔, 郭象이 모두 經을 常, '{...}'라고 했다고 하였다. ◈◈ 郭象은 順中以爲常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善惡兩忘/刑名雙遣/故能順一中之道/處眞常之德/虛夷任物/與世推遷//養生之妙/在乎茲矣,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李頤, 李楨, 王夫之의 말을 인용하고, 深說, '{...}'라고 하였다. 李頤, 李楨, 王夫之의 말은 앞에 전부 인용해 놓았다. ◈◈ 孃破案 : 中은 기계적 중립을 {...}에 가깝다.) 자신을 보전하고, 삶을 온전히 누리며, 부모를 부양하고(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 ◈ 可以는 '{...}'는 뜻이다. 可는 '{...}'라는 말이다. 以는 所以와 같다. '{...}'이다. 可以保身의 以는 保身을 받고, 可以全生의 以는 全生을 받으며, 可以養親의 以는 養親을 받는다. ◈ 保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身은 체언으로, '{...}'라고 할 수도 있고, '{...}'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할 듯하다. 수행하는 입장에서야 '{...}'을 가리킨다고 보고 싶겠지만, 뒤에 나오는 養親, 盡年 같은 단어의 의미를 고려할 때 그런 관점은 너무 편협하지 않나 생각된다. ◈ 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生은 체언으로, '{...}'이다. ◈ 養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羊尙反//注同, '{...}'라고 하였다. ◈ 親은 체언으로, 兩親이라는 말처럼 '{...}'를 뜻한다. ◈◈ 郭象은 養親以適,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可以保身/可以全生에 대해 全其有生之理, '{...}'라고 하였고, 可以養親에 대해서는 以受於親者/歸之於親/養之至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부모를 잘 봉양하는 일은 {...} 같다. 「人間世」의 葉公 이야기에 是以/夫事其親者/不擇地而安之/孝之至也,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莊子는 {...}가 같을 수는 있는 법이다.), 천수를 다할 수 있을 것이로다.(可以盡年, ◈ 可以는 '{...}'는 뜻이다. 可는 '{...}'라는 말이다. 以는 所以와 같다. '{...}'이다. 盡年을 받는다. ◈ 盡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아도 좋겠다. ◈ 年은 체언으로, '{...}'다. 여기서는 '{...}'라고 보아야 하겠다. ◈◈ 郭象은 苟得中而冥度/則事事無不可也//夫養生非求過分/蓋全理盡年而已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惟妙捨二偏而處於中一者/故能保守身形/全其生道//外可以孝養父母/大順人倫/內可以攝衛生靈/盡其天命,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天所與之年/任其自盡/勿夭折之/則有盡者無盡//從正意說入/一篇綱要/下設五喩以明之,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保身, 全生, 養親, 盡年이야말로 「養生主」의 핵심 내용이다. 道에게서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德充符」 마지막 부분에서, 莊子는 吾所謂無情者/言人之不以好惡內傷其身/常因自然而不益生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莊子는 수명을 {...}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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