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6 - 제자입즉효

2024. 4. 3. 11:15논어 이야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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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3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주석을 함께 보시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74

 

논어 - 1 - 학이 - 6 - 제자입즉효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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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弟子入則孝,出則弟,

謹而信,汎愛眾,而親仁。

行有餘力,則以學文。」

 

 

 

공자가 말했다.[각주:1]

 

“자제들은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집에서] 나오면 공경해야 한다.”[각주:2]

 

<공자의 말 이어짐>

 

“[몸가짐은] 삼갈 것이요, [말은] 신실하게 할 것이며, 사람들을 폭넓게 존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각주:3]

 

<공자의 말 이어짐>

 

“[이 사항들을 다 실천하고도] 행동에 여력이 있다면, 기예를 배울 수 있겠다.”[각주:4]

 

 

 

  1. 子曰, ◈ 子는 孔子를 이른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지금의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본문으로]
  2. 弟子入則孝/出則弟, ◈ 弟子는 체언으로, ‘자제’, 즉 ‘자식’과 ‘연소자’를 뜻한다. 스승과 제자라고 할 때의 ‘제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제’가 더 적합하다. 바로 뒤에서 入則孝/出則弟라고 하였는데, 이는 집에 入하면 孝하고, 밖에 出하면 弟하라는 말로, 곧 子, ‘자식’이 부모에 대해 지켜야 할 덕목이자, 弟, ‘연소자’가 연장자에게 지켜야 할 덕목을 이른다. 따라서 弟子는 子弟로 보아야 한다. 皇侃, 邢昺 모두 ‘자제’로 해석하고 있다. ▼ 皇侃은 弟子/猶子弟也, ‘弟子는 子弟와 같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男子後生爲弟, ‘남자로서 나중에 태어난 사람을 弟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弟子之弟/上聲, ‘弟子의 弟는 上聲으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弟子者/對兄父之稱/謂人幼小時爲弟爲子時也//儀禮/特牲饋食禮注/弟子/後生也///大射儀注/弟子其少者也, ‘弟子는 兄父과 對를 이루는 명칭이다. 사람이 어릴 때는 다른 사람의 동생이나 자식이었다는 점을 이른다. 《儀禮》 「特牲饋食禮」에 대한 주에 “弟子는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大射儀」에 대한 주석에는 “弟子는 그 중 어린 쪽을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儀禮》에 대한 주석은 鄭玄의 주석이다. 이 주석은 兄弟弟子洗酌於東方之尊, ‘兄弟와 子弟들은 東方의 尊에게 洗酌한다’에 달려 있다. 「大射儀」는 아마 「大射」를 이를 것이다. 《儀禮》의 편이다. 이 주석은 勝者之弟子洗觶, ‘이긴 사람의 弟子가 觶을 洗한다’라는 부분에 달려 있다. ◈ 入은 용언으로, ‘들어가다’는 말이다. 집에 ‘들어가다’는 뜻이다. ▼ 皇侃은 父母在閨門之內/故云入也, ‘부모가 규문 안에 있으니, 이에 “들어 간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은 入事父兄, ‘들어가서 父兄을 모신다’라고 풀이하였다. ▼ 劉寶楠은 禮/內則云/異爲孺子室於宮中///是父子異宮/則入謂由所居室至父母所也, ‘《禮》 「內則」에 “따로 孺子室을 宮中에 마련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이 父子가 서로 宮을 다르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즉, 入則孝에서 入은 살고 있는 집에서 부모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는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禮》는 《禮記》다. ◈ 則은 ‘~하면’이다. ▼ 劉寶楠은 諸言則者/急辭也, ‘入則孝와 出則弟의 則들은 急辭다’라고 하였다. 急辭는 아마 ‘재촉하는 말’, ‘질책하는 말’을 이르는 듯한데, 정확히 어떤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 孝는 용언으로, ‘효도하다’는 말이다. 부모에게 잘하라는 뜻이다. ▼ 皇侃은 前句已决子善父母爲孝/善兄爲悌, ‘앞의 句에서 이미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을 孝라고 하고, 형을 잘 모시는 모습을 悌라고 했었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또, 父親故云入, ‘부모는 가까우니 “들어 간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出은 용언으로, ‘나오다’는 말이다. 집에서 ‘나오다’, 집 밖으로 ‘나오다’는 말이다. 劉寶楠은 《禮記》 「內則」과 《大戴禮記》 「保傅」에 근거해서, 집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집 밖으로 ‘나가’ 小學이나 大學에서 공부할 시기를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는데, 생각해 볼 만하다. ▼ 皇侃은 兄長比之疎外/故云出也, ‘兄長은 집 밖에 모여 있으니, 그래서 “나간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또, 兄疎故云出也, ‘형은 머니 “나간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은 出事公卿, ‘나가서 公卿을 모신다’라고 풀이하였다. ▼ 劉寶楠은 內則又云/十年出就外傅/居宿於外///大戴禮/保傅云/古者八歲而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而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是出謂就傅/居小學大學時也, ‘「內則」에는 또, “10살이 되면 나가서 外傅를 따르고, 집 밖에 산다”라는 말이 있고, 《大戴禮》 「保傅」에는 “옛날에는 8살이 되면 나가서 外舍를 따르며, 小藝를 배우고, 小節을 실천한다. 머리를 묶을 정도가 되면 大學에 가서, 大藝를 배우고, 大節을 실천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처럼 出則弟의 出은 傅를 따르면서, 小學이나 大學에 거처하는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內則」는 《禮記》의 편이다. 《大戴禮》는 《大戴禮記》다. ◈ 弟는 용언으로, ‘공경하다’는 뜻이다. 형 같이 또래에서부터, 부모가 아닌 연장자 일체를 ‘공경하다’는 말로 사용된다. 悌와 같다. 《說文解字》 「心部」에 悌/善兄弟也//从心弟聲//經典通用弟, ‘悌는 兄弟와 잘 지낸다는 뜻이다. 心이 들어 있고, 弟라고 발음한다. 經典들에는 弟로 통용해 사용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皇侃은 「學而」 앞부분의 其爲人也孝弟에서 善事父母曰孝/善事兄曰悌也, ‘부모를 잘 모시는 모습을 孝라고 하고, 형을 잘 모시는 모습을 悌라고 한다’라고 하였었다. 한편, 邢昺은 弟를 公卿을 모시는 태도로 풀이하였다. 邢昺은 弟를 연소자가 연장자를 모시는 태도라고 단순히 풀이하지 않고, 士나 大夫의 입장에서 상급자를 모시는 태도로 풀이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順, ‘온순하다’라고 해석하였다. 이 설은 숙고할 만하다. 邢昺도 인용해 두었지만, 「子罕」에 出則事公卿/入則事父兄, ‘出하면 公卿을 섬기고, 入하면 父兄을 섬긴다’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 孝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善兄爲悌, ‘형을 잘 모시는 모습을 悌라고 했었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弟音悌/本亦作悌, ‘弟는 悌라고 읽는다. 판본에 따라 悌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弟/順也, ‘弟는 온순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則弟之弟/去聲, ‘則弟의 弟는 去聲으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皇本十行本/弟作悌//案/釋文出則弟云/本亦作悌, ‘《皇侃本》과 《十行本》에는 弟가 悌로 되어 있다. 살펴 보건대, 《釋文》에도 弟에 대한 말이 있다. 《釋文》에서는 “판본에 따라 悌로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劉寶楠은 弟者/言事諸兄師長皆弟順也//敎弟子先以孝弟者/孟子言/孩提之童/無不知愛其親/及其長也/無不知敬其兄///是孝弟本人所自具/因弟子天性未離而敎導之//曲禮/內則/少儀/弟子職/所述皆其法也, ‘出則弟의 弟는 형과 스승, 어른을 섬긴다는 말이니, 모두 弟順한 행동이다. 子弟들에게 먼저 孝弟를 가르치는 까닭은 이렇다. 《孟子》에 “어린아이는 자기 부모를 사랑할 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야 하고, 자라나기에 이르면 兄을 공경할 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이 孝弟가 원래 사람이 자연스럽게 갖추어야 할 바라는 뜻이다. 이에 子弟들이 天性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孝弟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曲禮」, 「內則」, 「少儀」, 「弟子職」에 모두 그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孟子》 인용문은 「盡心 上」에 나온다. 「曲禮」, 「內則」, 「少儀」는 모두 《禮記》의 편이다. 그런데 「弟子職」은 《禮記》에 없다. 《管子》에 「弟子職」이라는 편이 있다. ◈◈ 皇侃은 言爲人子弟者/盡其孝悌之道也, ‘아들이나 동생의 입장에서 孝悌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此章明人以德爲本/學爲末, ‘이 장에서는 사람이 德을 근본으로 생각하고, 學을 말단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라고 하였고, 또 言爲人弟與子者/入事父兄則當孝與弟也/出事公卿則當忠與順也, ‘이 문장은 사람의 동생이나 자식인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서 父兄을 모실 때에는 마땅히 孝하고 弟해야 하며, 집에서 나와 公卿을 섬길 때에는 마땅히 忠하고 順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邢昺은 入不言弟/出不言忠者/互文可知也//下孔子云/出則事公卿/入則事父兄///孝經云/事父孝/故忠可移於君/事兄弟/故順可移於長///是也, ‘入 부분에는 弟가 언급되어 있지 않고, 出 부분에는 忠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본문이 사실 이러한 뜻이라는 점은 글들을 교차해서 알아 낼 수 있다. 아랫쪽 글에서 孔子가 “나가면 公卿을 모시고, 들어 오면 父兄을 모신다”라고 한 말이 있고, 《孝經》에는 “부친을 모시는 모습이 孝하기에, 忠한 마음이 군주에게 옮겨질 수 있고, 형을 모시는 모습이 弟하기에, 順한 마음이 어른에게 옮겨질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러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互文은 ‘글을 교차하다’는 말이다. 본문에는 入則孝/出則弟라고 되어 있으므로, 본문의 의미만 따지면 父兄에게는 孝하고, 公卿에게는 弟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邢昺은 이를 父兄에게는 孝弟하고, 公卿에게는 忠順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出則弟의 弟를 順이라고 풀이하였다. 互文可知라는 표현은, 이러한 邢昺의 설이 타당하다는 점을 ‘다른 글들을 교차해서 알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그리고 互文可知 뒤에 이어지듯, 邢昺은 「子罕」과 《孝經》을 근거로 들었다. 出則事公卿/入則事父兄은 《論語》 「子罕」에 나오는 말이다. 《孝經》 인용문은 「廣揚名」에 나온다. 「廣揚名」에는 君子之事親孝/故忠可移於君//事兄悌/故順可移於長, ‘君子는 부모를 모시기가 孝하기에, 그 忠한 마음이 군주에게 옮겨질 수 있고, 兄을 모시기가 悌하기에, 그 順한 마음이 어른에게 옮겨질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李隆基는 以孝事君則忠, ‘孝를 가지고 군주를 모시니 忠하다’고 하였고, 또 以敬事長則順, ‘敬을 가지고 어른을 모시니 順하다’라고 하였다. 즉, 父兄을 모시는 태도가 孝와 弟인데, 이를 밖에다 적용하면 각각 忠과 順이 된다. 그래서 邢昺이 入則孝/出則弟를 入事父兄則當孝與弟也/出事公卿則當忠與順也라고 해석하였던 것이다. ◈◈ 蜀虎案 : 子弟들이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식이기에, 집에 들어가면 부모에게 孝해야 하고, 밖에 나가면 어른들에게 弟, 즉 悌해야 한다. 「學而」 2장에 有子가 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 ‘그 됨됨이가 孝弟하다면, 윗사람을 거스르려 하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라고 하였었고, 또 孝弟也者/其爲仁之本與, ‘孝弟는 아마 仁의 근본일 것이다’라고 하였었다. 이처럼, 孝弟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본문으로]
  3. 謹而信/汎愛眾/而親仁, ◈ 謹은 용언으로, ‘삼가다’, ‘조심하다’는 말이다. 邢昺은 말에 대한 표현으로, 朱熹와 劉寶楠은 행동에 대한 표현이라고 하였다. 나는 朱熹, 劉寶楠을 따랐다. ▼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은 謹과 信을 言恭謹而誠信, 즉 ‘말이 공손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謹者/行之有常也, ‘謹이라는 말은, 행동에 일관성이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詩民劳箋/謹/猶愼也///謹於事見, ‘《詩》 「民劳」에 대한 箋에 “謹은 愼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謹은 일을 처리할 때 드러나는 태도다’라고 하였다. 「民劳」은 「大雅 生民之什」에 속해 있다. 箋은 鄭玄의 주석이다. 이 주석은 以謹無良, ‘이로써 無良을 謹한다’에 달려 있다. ◈ 謹而信의 而는 ‘그리고’처럼 해석된다. 謹과 信을 병렬적으로 잇는다. ◈ 信은 용언으로, ‘신실하게 하다’, ‘미쁘게 하다’는 말이다. 邢昺, 朱熹, 劉寶楠 모두 말에 대한 표현이라고 풀이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은 信을 言恭謹而誠信, 즉 ‘말이 신실하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信者/言之有實也, ‘謹이라는 말은 말에 진정성이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信於言見也, ‘信은 말을 할 때 드러나는 태도이다’라고 하였다. ◈ 汎은 부사어로, ‘널리’, ‘폭넓게’, ‘두루두루’라는 말일 것이다. 愛를 한정한다. ▼ 皇侃은 汎/廣也, ‘汎은 넓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汎/孚劍反, ‘汎은 孚와 劍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汎者/寬博之語, ‘汎은 너그럽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邢昺은 너그럽게 ‘포용한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 朱熹는 汎/廣也, ‘汎은 넓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說文/汎/浮貌///引申爲普遍之義//廣雅/釋言/汎/博也///左襄/二十八年傳/引此文作/氾愛///說文/氾/濫也///義亦通, ‘《說文》에 “汎은 물에 떠 있는 모습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의미를 파생시키면, 두루두루 통한다고 풀이할 수 있겠다. 《廣雅》 「釋言」에는 “汎은 博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左》 「襄」 28년에 대한 傳에는 이 글이 氾愛로 인용되어 있다. 그런데 《說文》에는 “氾은 넘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의미도 통한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汎은 「水部」에 기재되어 있는데, 《說文解字》 본문에는 貌가 皃로 되어 있다. 의미는 같다. 《左》 「襄」은 《春秋左氏傳》 「襄公」이다. 그런데 《春秋左氏傳》 「襄公」 28년에는 氾愛라는 말이 없고, 다만 慶封氾祭, ‘慶封이 氾하게 祭했다’라는 말만 있다. 한편, 《莊子》 「天下」에 氾愛萬物, ‘萬物을 氾하게 愛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氾은 《說文解字》 「水部」에 기재되어 있다. ◈ 愛는 용언으로, 아마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다’, ‘존중하다’는 말인 듯하다. 愛는 본래 ‘사랑하다’, ‘아끼다’는 말인데, 이 의미를 그대로 대입해 보면 汎愛眾은 ‘眾을 널리 사랑해야 한다’, ‘眾을 널리 아껴야 한다’는 따위의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의미상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한다’, ‘아끼다’는 말 자체가 본문에 합치되지 않는다. 이 장에서 孔子는 弟子, 즉 子弟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을 다스리는 입장인 제후나 大夫에게 하는 이야기면 모를까, 남의 밑에서 일하고, 경험을 쌓을 子弟들이 보통 사람들을 널리 ‘아끼’거나 ‘사랑’해서 무엇하겠는가. 예수처럼, ‘魯나라의 王’이라는 누명을 쓰고 못박혀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다. 이 汎愛眾는 뒤의 而親仁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而親仁은 무슨 말인가. 而親仁은 말할 것도 없이 ‘仁을 親하다’, 곧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다’는 말이다. 즉, 而親仁은 ‘어진 사람’에 대한 태도를 규정한 표현이다. 그러면 汎愛眾은 어떤 말이 되어야 할까. 바로 眾, 즉 ‘보통 사람’에 대한 태도를 규정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보통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지한 무지랭이들이니 무시해야 할까. 아니면, 하대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존중해 주어야 한다. 弟子가 나중에 士가 되든, 大夫가 되든, 상급자의 명령을 받고, 또 하급자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이 때 하급자인 백성들, 즉 眾을 대해야 하니, 그에 대해 孔子가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학문을 배우는 弟子의 입장에서, 어진 사람은 가까이에서 모시고, 배워야 하고, 보통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하대하지 말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汎愛眾의 愛는 바로 이런 뜻이다. 즉, 愛는 ‘소중하게 대하다’, ‘존중하다’,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처럼 해석할 수 있겠다. ◈ 眾은 체언으로, ‘많은 사람’, ‘보통 사람’을 이른다. 大眾의 眾과 같다. ▼ 朱熹는 眾/謂眾人, ‘眾은 여러 사람들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爾雅/釋詁/眾/多也///周語/人三爲眾///引申之/人在眾中/無以表異於人/亦得稱眾, ‘《爾雅》 「釋詁」에는 “眾은 많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周語」에는 “사람이 셋이면 眾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의미를 확장해 보자. 사람이 여러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표나지 않을 것이니, 이 역시 眾이라 할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는 裒/眾/那/多也, ‘裒, 眾, 那는 많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周語」는 《國語》 「周語 上」이다. ◈ 而親仁의 而는 ‘그리고’처럼 해석된다. 汎愛眾과 親仁을 병렬적으로 잇는다. ◈ 親은 용언으로, ‘가까이 하다’는 말이다. 邢昺처럼 ‘사귀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親仁의 仁을 받는다. ▼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은 親을 親而友之, ‘가까이 하고 사귄다’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親/近也, ‘親은 가까이 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廣雅/釋詁/親/近也, ‘《廣雅》 「釋詁」에는 “親은 가까이 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仁은 체언으로, ‘仁한 사람’, ‘어진 사람’을 이른다. ▼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仁을 有仁德者, ‘仁德을 품은 사람’이라고 풀이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은 仁을 有仁德者, ‘어질고 덕스러운 사람’이라고 풀이하였다. ▼ 朱熹는 仁/謂仁者, ‘仁은 어진 사람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仁則眾中之賢者也, ‘而親仁의 仁은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현명한 사람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謹而信, 汎愛眾, 而親仁을 따로 풀이했다. 謹而信에 대해서는 向明事親/此辨接外也//接外之禮/唯謹與信也//外能如此/在親可知也, ‘앞에는 부모를 모시는 일에 대해 밝혔고, 이 부분에서는 외부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외부 사람과 만날 때의 禮는 오직 삼가고, 미쁘게 행동하는 일 뿐이다. 밖에서 이와 같이 행동한다면, 부모 곁에 있을 때도 어떻게 할지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汎愛眾에 대해서는 君子尊賢容衆/故廣愛一切也, ‘君子는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보통 사람들을 포용하니, 드넓게 만민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而親仁에 대해서는 君子義之與比/故見有仁德者/而親之也//若非仁親/則不與之親/但廣愛之而已, ‘君子는 의로운 사람과 잘 지낸다. 그러므로 仁德을 품고 있는 사람을 보면,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만약 君子가 상대가 어질지 않은데 가까이 지낸다면, 이는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들을 널리 아끼는 데에서 나오는 행위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義之與比는 《論語》 「里仁」에 나오는 표현이다. ◈◈ 邢昺은 謹而信, 汎愛眾, 而親仁을 따로 풀이했다. 謹而信에 대해, 理兼出入/言恭謹而誠信也, ‘이치가 겸비된 채 집에 있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기도 하니, 말이 공손하고, 믿음직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汎愛眾에 대해, 君子尊賢而容眾/或博愛眾人也, ‘君子는 현명한 자를 존경하면서도 보통 사람들을 포용한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而親仁에 대해서는 有仁德者則親而友之, ‘어질고 덕스러운 자가 있다면, 가까이 하고, 사귀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君子尊賢而容眾/故於眾人使弟子汎愛之//所以養治其血氣/而導以善厚之敎/又使之親近仁者/令有所觀感也//大戴禮/保傅云/故孩提/三公三少固明孝仁禮義/以導習之也//逐去邪人/不使見惡行//於是比選天下端士/閑博有道術者/以輔翼之/使之與太子居處出入/故太子乃目見正事/聞正言/行正道/左視右視/前後皆正人//夫習與正人居/不能不正也//猶生長於楚/不能不楚言也///亦言敎太子當孩提時宜近正人/此敎弟子親仁之意也, ‘君子는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대중을 포용하니, 眾人에 대해 그 子弟들이 폭넓게 사랑하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혈기를 다스렸기 때문에, 선하고 두터운 교화로 이끌어 주게 되고, 또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보고 느끼는 바가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다. 《大戴禮》 「保傅」에는 “그러므로 어린아이는 三公, 三少, 그리고 孝仁禮義에 박식한 사람들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못된 놈들은 쫓아 버려서 못된 짓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天下의 올바른 선비들과, 박식하여 道術을 품은 사람들을 가려서, 교육을 보조하게 해야 한다. 이들을 太子의 거처에 출입하게 하여, 太子가 올바른 일들을 보게 하고, 올바른 말들을 듣게 하며, 올바른 도리를 행하게 하여, 왼쪽을 보든 오른쪽을 든, 보이는 자들이 모두 올바른 사람이도록 해야 한다. 올바른 사람과 살면서 공부하면, 올바르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楚나라에서 자라난다 하더라도, 楚나라 말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역시 太子를 가르칠 때는 어릴 때부터 마땅히 올바른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뜻이요, 이 글에서 子弟들에게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라고 가르치는 의미와 같다 하겠다’라고 하였다. 《大戴禮》는 《大戴禮記》를 이른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邢昺의 주석 중 或博愛眾人也에 대해, 浦鏜云/或疑故字誤, ‘浦鏜은 “或은 故가 잘못된 글자가 아닐까 의뭉스럽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浦鏜은 淸나라 乾隆帝 때의 학자다. 내용상 浦鏜의 설이 타당한 듯하다. 或과 故의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되었을 것이다. 故로 보고 번역하였다. ◈◈ 蜀虎案 : 앞 句에서는 집 안과 집 밖에서 효도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점을 밝혔었다. 이 句에서는 행동과 말에 대한 일반적 지침, 그리고 보통 사람과 어진 사람을 대할 때 취해야 할 방식을 밝히고 있다. 행동은 조심하고, 말은 신실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되고, 어진 사람은 가까이 하며 보고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본문으로]
  4. 行有餘力/則以學文, ◈ 行은 체언으로, ‘행동’이다. ‘행동에’처럼 해석된다. 위에서 들었던 일들, 즉 入則孝와 出則弟, 謹而信, 汎愛眾과 親仁을 모두 이행한 뒤의 상황을 이른다. 이 사항들을 실천하는 일이 우선이고, 學文, 즉 文을 學하는 일이 그 다음이라는 말이다. 皇侃의 풀이가 타당하다. ▼ 皇侃은 行者/所以行事/已畢之跡也, ‘行이라는 말은 일들을 이행하여서, 이미 그 과정들이 끝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行/下孟反//下云/觀其行///并注同, ‘行은 下와 孟의 반절로 읽는다. 아래의 글 중 觀其行과 주석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皇侃의 의견을 그대로 따랐다. 劉寶楠은 皇疏云/行者/所以行事已畢之跡也, ‘皇侃은 “行이라는 말은 일들을 이행하여서, 이미 그 과정들이 끝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有는 용언으로, ‘있다’, ‘존재하다’는 말이다. 남아 ‘있다’라고 보아도 좋겠다. 명사구인 餘力을 받는다. ◈ 餘力은 ‘남은 힘’, ‘여력’이다. 餘는 관형사로, ‘남은’이다. 力을 한정한다. 力은 체언으로, ‘힘’, ‘가력’을 뜻한다. 한편, 行有餘力/則以學文은 《後漢書》 「循吏列傳」에 有閑暇/則以學文라고 인용되어 있다. 의미가 같다고 가정하면, 餘力은 곧 閑暇과 같은데, 閑暇은 ‘한가한 때’, ‘한가한 겨를’을 이른다. 이 역시 타당하다. 朱熹는 餘力을 ‘한가한 날’이라고 풀이했는데, 이는 《後漢書》와 같다. 劉寶楠은 劉寶楠은 餘를 ‘넉넉하다’라고 풀이했는데, 이 역시 괜찮다. ‘한가한 때’는 다소 의역이므로, 나는 ‘여력’이라고 음역하였다. ▼ 朱熹는 餘力에 대해, 餘力/猶言暇日, ‘餘力은 한가한 날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說文/餘/饒也///凌氏鳴喈/論語解義/有餘力/謂僮子精力有餘也, ‘《說文》에서는 “餘는 넉넉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凌鳴喈의 《論語解義》에서는 “有餘力은 아이의 힘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餘는 「食部」에 기재되어 있다. 凌鳴喈는 淸나라 嘉慶帝, 道光帝 때의 학자다. ◈ 則은 ‘그러면’, ‘~하면’처럼 해석된다. ◈ 以는 아마 能과 같은 말로, ‘~할 수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學을 받는다. 가능성이 여럿 있다. 상기하였듯 以를 能으로 볼 수도 있다. 또, 以를 爲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以를 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能의 경우는 이렇다. 이 글은 《前漢紀》 「孝元皇帝紀 下」에 行有餘力/則可以學文이라고 인용되어 있으니, 《前漢紀》를 지은 荀悅이 이 以를 可以라고 풀이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可以는 곧 可能과 같은 말로, 이 때 以는 能과 같다. 이 경우, 以學文은 能學文이 되고, 이는 ‘文을 學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외에도 以가 能처럼 풀이된 사례들은 많다. 《論語》 「季氏」에 不學詩/無以言, ‘詩를 배우지 않으면 言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고, 또 不學禮/無以立, ‘禮를 배우지 않으면 立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子張」에 無以爲也, ‘爲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堯曰」에는 不知命/無以爲君子也//不知禮/無以立也//不知言/無以知人也, ‘命을 모르면 君子라고 爲할 수가 없고, 禮를 모르면 立할 수가 없으며, 言을 모르면 사람을 知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荀子》 「勸學」에는 故不積蹞步/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 ‘이처럼, 반걸음이라도 나아가지 않으면 천릿길을 갈 수가 없고, 실개천들을 합치지 않고서는 강이나 바다를 만들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한편 《莊子》 「逍遙遊」에는 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 ‘瞽者는 文章의 경관에 기뻐할 수가 없고, 聾者는 鍾鼓의 소리에 기뻐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두 번째로, 以를 爲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以學文은 爲學文이 되고, ‘學文을 爲하다’, 즉 ‘文을 學하기를 하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해석할 수는 있지만, 용언이 의미 없이 이중으로 겹치게 된다. 그러면 以를 어떻게 爲로 해석할 수 있을까. 《詩》 「大雅 蕩之什」의 「瞻卬」에 天何以刺, ‘하늘이 무엇으로 刺하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以는 ‘하다’라고 해석된다. 《論語》 「先進」에 如或知爾/則何以哉, ‘만약 어떤 사람이 너를 알아 준다면, 무엇을 以하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以는 爲처럼 ‘하다’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㠯以已」에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以를 用으로 해석할 수 있다. 以와 用은 고대에 자주 통용되었다. 朱熹는 以를 用으로 해석했는데, 이 때는 以學文이 以餘力學文, 즉 用餘力學文, ‘餘力을 써서 文을 배운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보아도 말은 되지만, 餘力이 以의 앞이나 뒤에 있다고 간주해야 할 텐데, 본문은 行有餘力/則以學文이므로, 則이 없다면 모를까, 則으로 句가 이미 나뉘어 있으니 다소 억지스럽다. 세 사례를 비교했을 때, 以를 能으로 보는 편이 가장 낫다. 나는 이를 따랐다. 참고로, 이 말은 餘力 부분에 인용하였듯, 《後漢書》 「循吏列傳」에 有閑暇/則以學文이라고 인용되어 있는데, 則以學文 부분은 동일하므로 《後漢書》를 통해 새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없다. 李賢 역시 以에 대해 주석을 남기지 않았다. ▼ 朱熹는 以/用也, ‘以는 사용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學은 용언으로, ‘배우다’, ‘공부하다’는 말이다. 文을 받는다. ◈ 文은 체언으로, 아마 ‘道藝’로, ‘기예’를 이를 것이다. 六藝라고 할 때의 바로 그 ‘기예’다. 文에는 설이 크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五經 또는 六經을 이른다는 설이다. 皇侃은 五經과 六籍이라 하였고, 邢昺은 六經이라고 했다. 여기서 六經은 《詩》, 《書》, 《禮》, 《樂》, 《易》, 《春秋》를 이른다. 五經은 이 중 《樂》을 뺀 《詩》, 《書》, 《禮》, 《易》, 《春秋》를 이른다. 六籍은 일반적으로 《詩》, 《書》, 《禮》, 《樂》, 《易》, 《春秋》을 이르는데, 이는 五經과 겹친다. 皇侃이 언급한 五經과 六籍이 각각 무엇을 이르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道藝’, 즉 ‘기예’라는 설이다. 鄭玄은 文을 ‘道藝’라고 하였고, 또 朱熹는 《詩》와 《書》 중 六藝에 대한 글들이라고 하였다. 馬融은 예로부터 내려 온 글이라고만 보았다. 나는 鄭玄과 朱熹가, 구체적으로는 鄭玄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선 鄭玄이 든 道藝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道藝라는 말은 본래 《周禮》에 여러 차례 나오는 표현이다. 《周禮》 「天官冢宰」에 會其什伍而敎之道藝, ‘什과 伍를 會하여서 道藝에 대해 가르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鄭司農云/道謂先王所以敎道民者/藝謂禮樂射御書數, ‘鄭司農은 “道는 先王이 백성들을 敎道한 바를 이르고, 藝는 禮, 樂, 射, 御, 書, 數를 이른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鄭司農은 東漢의 鄭衆을 이른다. 즉, 道藝는 道와 藝를 함께 아우르는 말인데, 藝는 六藝를 뜻하고, 道는 先王의 교화를 뜻한다. 한편, 《周禮》 「地官司徒」에는 以考其德行/察其道藝, ‘그러함으로써 德行을 考하고, 道藝를 察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道藝에 대해 賈公彦은 六藝라고 풀이했으니, 이 경우 道藝는 곧 六藝와 같은 말로 사용된 것 같다. 정리해 보면, 「天官冢宰」에 대한 주석에 나왔었듯, 道藝는 六藝를 아우르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六藝를 주로 뜻하도록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본문의 文에 대해 鄭玄이 언급한 道藝는 무엇을 뜻할까. 아마 六藝를 주로 뜻하는 말일 것이다. 본문의 文은 德行을 실천한 뒤에 배울 만한 일들이다. 따라서 先王의 敎道를 뜻하는 道가 그 道藝 속에 포함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포함되어 있다면, 德行 보다 先王의 敎道가 후위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제 다시 본문과 결부지어 생각해 보자. 위에서 인용하였던 《周禮》의 以考其德行/察其道藝에서, 德行은 道藝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德行과 道藝를 모두 익힐 분야이되, 서로 상보적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번 장의 앞부분에 나왔던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眾, 親仁은 모두 德行에 해당한다. 따라서 孔子가 子弟들에게 이렇듯 德行을 이행하고, 그 뒤에 여력이 있다면 六藝를 익히라 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鄭玄은 본래 禮法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이 말이 道藝를 이른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朱熹 역시 이 점을 알았지만, 文이라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詩書六藝之文, ‘《詩》와 《書》에 있는 六藝에 대한 글’이라고 해설하였을 것이다. 《論語》 「述而」에 志於道/據於德/依於仁/游於藝, ‘道에 뜻을 두고, 德에 근거하며, 仁에 의지하고, 藝에 노닌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孔子는 익히고, 또 따라야 할 덕목으로 道, 德, 仁, 藝를 꼽았다. 이번 장의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眾, 親仁과 비교해 보자면, 아마 德과 仁에 해당할 것이다. 남은 것은 道와 藝이니, 곧 道藝다. 이 역시 鄭玄의 설이 타당하다는 하나의 정황적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정황적 증거가 하나 더 있다. 則以學文의 以 부분에서, 나는 이 글이 《後漢書》 「循吏列傳」에 有閑暇/則以學文이라고 인용되어 있다고 하였었다. 李賢은 有閑暇/則以學文의 以에 대해서는 주석을 남기지 않았으나, 文에 대해서는 文/謂道蓺者也, ‘文은 道蓺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道蓺는 道藝와 같다. 李賢은 아마 鄭玄의 주석을 보았을 것이고, 그 주석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鄭玄과 같이 풀이하였을 것이다. ▼ 馬融은 文者/古之遺文, ‘文은 예로부터 내려 온 글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劉寶楠은 이 주석에 대해, 凡文皆古人所遺/故言遺文//馬以弟子所學/別有一書/如弟子職之類/後或失傳//故衹言古之遺文而已//鄭注云/文/道藝也///周官/保氏/養國子以道/乃敎之六藝/一曰五禮/二曰六樂/三曰五射/四曰五馭/五曰六書/六曰九數///是藝爲六藝也//藝所以載道/故注道藝/連文//其義與馬氏並通也, ‘모든 文들은 전부 옛 사람들이 남긴 것이므로, 그래서 遺文이라고 한 것이다. 馬融은 子弟들이 배우는 교재가 「弟子職」처럼 따로 있었는데, 나중에 실전되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만 古之遺文이라고만 한 것이다. 鄭玄은 “文은 道藝다”라고 하였다. 《周官》 「保氏」에 “國子를 道로 기르고, 이에 六藝를 가르친다. 하나는 五禮요, 둘은 六樂이요, 셋은 五射요, 넷은 五馭요, 다섯은 六書요, 여섯은 九數로다”라는 말이 있다. 鄭玄이 이야기한 藝가 바로 이 六藝다. 藝는 道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鄭玄 주석의 道藝는 한 단어로 보아야 한다. 이 주석과 馬融의 주석은 모두 본문과 통한다’라고 하였다. 道藝는 ‘학문과 기예’를 이른다. 《周官》 「保氏」는 《周禮》 「地官司徒」의 일부다. ▼ 皇侃은 即五經六籍也, ‘곧, 五經과 六籍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文/馬曰/文/古之遺文也///鄭云/文道藝也, ‘文에 대해, 馬融은 “文은 예로부터 내려 온 글을 이른다”라고 하였고, 鄭玄은 “文은 道藝를 이른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道藝는 학문과 기예를 이른다. ▼ 邢昺은 則詩書禮樂易春秋六經是也, ‘곧 《詩》, 《書》, 《禮》, 《樂》, 《易》, 《春秋》의 6경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文/謂詩書六藝之文, ‘文은 《詩》와 《書》에 있는 六藝에 대한 글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若行前諸事畢竟/而猶有餘力/則宜學先王遺文五經六籍/是也, ‘만약 앞서 일들을 끝냈는데도, 오히려 여력이 있다면, 마땅히 先王이 남긴 글인 五經과 六籍을 공부해야 하니, 바로 이 말이다’라고 하였다. 五經은 아마 《詩》, 《書》, 《禮》, 《易》, 《春秋》를 이를 것이다. 六籍은 《詩》, 《書》, 《禮》, 《樂》, 《易》, 《春秋》를 이른다. 《樂》 대신 《周禮》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皇侃은 또, 或問曰/此云/行有餘力/則以學文後//云/子以四敎文行忠信///是學文或先或後/何也///荅曰/論語之體/悉是應機適會敎/體多方隨須/而與不可一例責也,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이 글에서는 行하고서 여력이 있으면 文을 나중에 배운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孔子는 文, 行, 忠, 信의 네 가지를 가르쳤다’라는 말도 있으니, 文을 배우는 일이 어떤 경우에는 다른 일 보다 앞서 언급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나중이라고 언급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왜인가” 이에 대해 나는 “《論語》의 내용은, 모두 이처럼 상황에 맞게, 때에 맞게 가르쳐서, 시기에 따라 방법을 강구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한 개의 사례만 가지고 문제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라고 하였다. 子以四敎/文行忠信은 《論語》 「述而」에 나온다. ◈◈ 邢昺은 能行已上諸事/仍有間暇餘力/則可以學先王之遺文//若徒學其文而不能行上事/則爲言非行僞也, ‘이상 기술한 여러 가지를 이행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틈이 나고, 힘이 남는다면, 그 때서야 先王의 遺文을 공부할 수 있다. 만약 다만 그 글을 공부하기만 하고, 앞의 것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말은 그릇되고, 행동은 거짓되게 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 程氏는 爲弟子之職/力有餘則學文/不修其職而先文/非爲己之學也, ‘弟子가 해야 할 일을 이행하면서, 힘에 여유가 있다면, 文을 배워야 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文을 본받는다면, 자신을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주석은 朱熹의 《論語集註》에 程子의 말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程顥의 말인지, 程頤의 말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程氏라고만 밝혀 두었다. ◈◈ 尹焞은 德行/本也//文藝/末也//窮其本末/知所先後/可以入德矣, ‘德行이란, 근본적인 것이고, 文藝란, 말단적인 것이다. 本末을 다하고,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알면, 德의 길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 洪興祖는 未有餘力而學文/則文滅其質//有餘力而不學文/則質勝而野, ‘여력이 없는데도 文을 배운다면, 그 때 공부하는 文의 경우, 文의 質이 어그러져 버릴 것이다. 여력이 있는데도 文을 배우지 않는다면, 質이 우세해져서, 野해져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雍也」에 나온다. 「雍也」에 質勝文則野/文勝質則史//文質彬彬/然後君子, ‘質이 文 보다 우세해지면 野해지고, 文이 質 보다 우세해지면 史해진다. 文과 質이 彬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君子답다 하겠다’라는 말이 있다. ◈◈ 朱熹는 愚謂力行而不學文/則無以考聖賢之成法/識事理之當然/而所行或出於私意/非但失之於野而已, ‘내 생각에는, 노력을 들이면서도 文을 배우지 않으면, 聖賢이 이루어 놓은 법도를 고찰해 볼 수가 없고, 사리의 마땅한 이치를 알 수도 없으니, 행동이 사사로운 뜻에서 튀어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단지 野해져서 일을 그르치는 결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曲禮云/人生十年曰幼/學///內則云/十年學書計/朝夕學幼儀/請肄簡諒//十有三年/學樂/誦詩/舞勺/成童舞象///是故敎幼學之法//此言/行有餘力/則以學文/亦是學幼儀既畢/仍令學文也//言有餘力學文/則無餘力不得學文可知//先之以孝弟諸行/而學文後之者/文有理宜/非童子所知/若敎成人/則百行皆所當謹/非敎術所能徧及//故惟翼其博文/以求自得之而已//此夫子四敎/先文後行/與此言敎弟子法異也, ‘「曲禮」에 “사람이 태어나고 10년이 되면 幼라고 한다. 이 때는 공부를 한다”라는 말이 있고, 「內則」에는 “10살에 글과 계산을 배우고, 조석으로 幼儀를 배우되, 간단하고 좋은 것들을 익히도록 한다. 13살에는 《樂》을 배우고, 《詩》를 외우며, 「勺」을 춘다. 成童이 되면 「象」을 춘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옛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방법이었다. 본문에서 行有餘力/則以學文이라고 한 말 역시 이런 뜻으로, 이는 幼儀를 배우는 일이 끝나면, 이에 文을 배우도록 하게 한다는 뜻이다. 여력이 있으면 文을 배우라고 한 것은, 여력이 없으면 文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겠다. 孝弟한 행동을 앞세우고, 文을 배우는 일을 뒷세운 까닭은, 文에는 理宜가 있으나, 아이들이 알 만한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성인에게 文을 가르친다면, 그 온갖 행동거지가 모두 올바르게 될 것이니, 이는 術을 가르쳐서 편향적으로 이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博文을 도와서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夫子의 四敎에서는 文이 앞서고, 行이 뒷서니, 이 글에 나온 子弟들을 가르치는 방법과는 다르다’라고 하였다. 「曲禮」는 「曲禮 上」으로, 《禮記》의 편이다. 「內則」도 《禮記》의 편이다. 四敎란, 文, 行, 忠, 信을 이른다. 四敎에 대해서는 《論語》 「述而」에 나온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馬融의 주석 중 古之遺文에 대해, 皇本/文下有也字//案/釋文引馬註/亦有也字, ‘《皇本》에는 文 다음에 也가 있다. 살펴 보건대, 《釋文》에서도 馬融의 주석을 인용해 두었는데, 이 인용문에도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蜀虎案 : 尹焞은 이 장을 本末의 문제, 그리고 德行과 文藝의 우선 순위 문제라고 풀이하였는데, 이 설이 좋다. 상기하였듯, 이 장 앞부분에 나왔던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眾, 親仁은 모두 德行에 해당한다. 德行과 文藝는 물론 상보적이고, 그리고 둘 모두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만, 둘 중 무엇이 우선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누구나 德行이 우선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文 부분의 주석에 인용하였던 「述而」의 志於道/據於德/依於仁/游於藝만 보더라도, 孔子 역시 藝를 좋아하고, 즐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藝를 익힌다 하더라도, 그 시점은 먼저 사람으로서 지키고 실천해야 할 도리를 지킨 다음일 것이다. 그것이 德行이다. 顏回는 德行으로 유명하였는데, 어쩌면 그래서 孔子가 顏回를 가장 높이 평가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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