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 1 - 입교 7장

2022. 3. 31. 11:12개인 공부(추후 재배치 예정)/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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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7장>

 

周禮 大司徒 "以鄕三物 敎萬民而賓興之"

《주례》에 대사도(大司徒)에 대해 이런 말이 있다.

 

"[대사도는] 향에 대해서(鄕) 세 가지 측면에서(三物, 物은 '조목'을 뜻한다. 鄭玄은 物을 事, '일'이라고 하였다. 7장은 이 세 가지를 설명한 글이다.) 만민을 교화하고(敎萬民), [향의 백성 중 현명한 자를] 빈객의 예로 천거한다.(賓興之, 鄭玄은 興을 舉, '천거하다'라고 하였다. 賓은 '빈객'으로 보인다. 鄭玄은 民三事教成/鄉大夫舉其賢者能者/以飲酒之禮賓客之/既則獻其書於王矣, '백성들이 세 가지 측면에서 교화되면, 鄉의 大夫는 현명하고 직무를 맡을 만한 사람을 천거하는데, 빈객을 대접하는 예로 술을 마시고, 이윽고 추천서를 王에게 올린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賓興之라고 하였던 모양이다.)"(이 말은 周禮 「地官司徒」에 以鄉三物教萬民而賓興之//一曰六德/知仁聖義忠和//二曰六行/孝友睦姻任恤//三曰六藝/禮樂射御書로 나온다. 大司徒부터가 인용문이 아니라, 以鄕三物부터가 인용문이다.)

 

 

<소학집설>

 

陳氏曰 "周禮 周公所著, 實周家一代之禮也. 大司徒 敎官之長也. 萬二千五百家 爲鄕". 朱氏曰 "物 猶事也. 興 猶擧也. 三事 告成 鄕大夫擧其賢能 而 以禮賓之."

 

진씨(陳氏)가 말했다.

 

"《주례》(周禮)는 주공이 지은 글이다.(周公所著) 주나라 한 대의 예법이(周家一代之禮) 기술되어 있다.(實, '담다', 《맹자》 「등문공 하」에 其君子實玄黃于匪以迎其君子, '진 쪽의 君子는 玄黃를 광주리에 實히야 이긴 쪽의 君子를 맞이했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實은 '담다', '채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대사도(大司徒)는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관직들의 우두머리다.(敎官之長) 12500가(萬二千五百家)를 향(鄕)이라 한다."

 

주씨(朱氏)가 말했다.

 

"물(物)은 일(事)과 같다. 흥(興)은 천거하다(擧)는 말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괜찮다고 이름이 나면(三事告成) 향의 대부(鄕大夫)는 그 지역의 현능한 자를(其賢能, 其는 ) 천거하는데, [이 때] 현능한 사람을 예로써 대우한다.(以禮賓之, 之는 其賢能, 賓은 '손님으로 대우한다', '잘 모신다'처럼 용언으로 보아야 한다.)"(朱氏의 注는 周禮》에 대한 鄭玄의 주를 베낀 것이다.)

 

 

 

 

<입교 7장>

 

一曰 六德 知 仁 聖 義 忠 和

 

"첫 번째는 육덕의 측면이니(一曰六德, 一은 앞에서 三物이라고 한 것의 하나를 이른다. 뒤의 二曰, 三曰의 二, 三도 마찬가지다.), 지, 인, 성, 의, 충, 화다."(知仁聖義忠和, 鄭玄은 知/明於事//仁/愛人以及物//聖/通而先識//義/能斷時宜//忠/言以中心//和/不剛不柔, '知는 사리에 밝은 것이요, 仁은 사랑이 만물에 미치는 것이요, 聖은 선현의 식견에 통달한다는 말이요, 義는 마땅한 점을 가지고 결단할 수 있다는 말이요, 忠은 진심을 말하는 것이요, 和는 너무 굳세지도 않고 너무 유약하지도 않은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한편, 程愈가 인용한 말을 보면 朱氏가 知/別是非//仁/無私欲//聖/無不通//義/有斷制//盡己之心曰/忠//無所乖戾曰/和, '知는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요, 仁은 사사로운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요, 聖은 통달하지 못하는 게 없는 것이요, 義는 결단하여 절제하는 것이다. 또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忠이라고 하고, 어긋나게 구는 일이 없는 것을 和라고 한다'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양측 모두 타당해 보인다.)

 

 

<소학집설>

 

朱氏曰 "六者 出於心, 故曰 德. 知 別是非, 仁 無私欲, 聖 無不通, 義 有斷制. 盡己之心曰 忠, 無所乖戾曰 和."

 

주씨(朱氏)가 말했다.

 

"[이] 여섯 가지는(六者) 마음에서 나온다. 그래서 덕(德)이라고 한다. 지는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요(知/別是非), 은 사사로운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요(仁/無私欲), 성은 통달하지 못하는 게 없는 것이요(聖/無不通), 의는 결단하여 절제하는 것이다.(義/有斷制) [또,]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이라고 하고(盡己之心/曰忠), 어긋나게 구는 일이 없는 것을 화라고 한다.(無所乖戾/曰和)"

 

 

<소학집해>

 

此六者 雖不容驟語於初學, 然 不先有以敎之識其準的, 則 亦 將 何以立志哉

 

이 여섯 가지는(此六者) 비록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於初學) [이렇듯] 갑작스레 이야기해(語, 驟는 '갑작스럽게', '갑자기') 줄 만한 것은 아니다.(不容, '용인되지는 않지만') 그러나(然) 공부하는 데 목표가 될 만한 것이 앞엇 결정되지 않아서야(不先有以敎之識其準的, '가르침을 받는 데 목표가 될 것이 앞서지 않다', 準은 '본받다', 的은 '목표', 즉 準的은 '본 받을 만한 목표'를 뜻한다.) 또한 어찌 [공부에 대한] 뜻을 세울 수 있겠느냐.(何以立志哉)

 

 

 

 

<입교 7장>

 

二曰 六行 孝友睦婣任恤

 

"두 번째는 육행의 측면이니(二曰六行), 효, 우, 목, 인, 임, 휼이다."(孝友睦婣任恤, 글자 자체로만 보자면 睦은 '화목하다', '온화하다', 婣은 '혼인', '결혼', 恤은 '불쌍히 여기다', '구휼하다'는 뜻이다. 鄭玄은 善於父母爲/孝//善於兄弟爲/友//睦/親於九族//姻/親於外親//任/信於友道//恤/振憂貧者, '부모에게 잘 하는 것을 孝라고 하고, 형제에게 잘 하는 것을 友라고 한다. 睦은 九族과 잘 지낸다는 말이고, 姻은 外親과 잘 지낸다는 말이며, 任은 친구와 사귈 때 신의가 있다는 말이요, 恤은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해 떨쳐 일어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九族은 쉽게 말해 '부계 친척'을 이른다.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자기 고조에서 현손까지를 중심으로, 고조의 4대손인 형제, 종형제, 재종형제, 삼종형제를 포함하는 친족을 이른다. 外親은 아마 '외척', 즉 '모계 친척'을 이르는 듯 보인다.)

 

 

<소학집설>

 

朱氏曰 "六者體之於身 故曰行"

 

주씨(朱氏)가 말했다.

 

"[이] 여섯 가지는(六者) 몸에 체득되는 것이다.(體之於身) 그래서 행(行)이라 한다."

 

 

<소학집해>

 

孝 謂 善事父母, 友 謂 善於兄弟, 睦 謂 親於九族, 婣 謂 親於外親, 任 謂 信於朋友, 恤 謂 賑於憂貧 也

 

(孝)는 부모에게 잘 하는 것(善事父母)을 이르고, 우(友)는 형제에게 잘 하는 것(善於兄弟)을 이르며, 목(睦)은 구족과 잘 지내는 것(親於九族)을 이르고, 인(婣)은 외친과 잘 지내는 것을 이르며(親於外親), 임(任)은 친구와 사귈 때 신의가 있는 것(信於朋友)을 이르고, 휼(恤)은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해서 돕는 것(賑於憂貧, 賑은 '구휼하다')을 이른다.(吳訥의 설명은 鄭玄의 注와 거의 같다.)

 

 

 

 

<입교 7장>

 

三曰 六藝, 禮樂射御書數

 

"세 번째는 육예의 측면이니(三曰六藝, 藝는 '재주', '기예'), 예, 악, 사, 어, 서, 수다."(禮樂射御書數, 鄭玄은 禮/五禮之義//樂/六樂之歌舞//射/五射之法//御/五御之節//書/六書之品//數/九數之計, '禮는 五禮의 뜻이요, 樂은 六樂에 맞는 歌舞요, 射는 五射의 법도요, 御는 五御의 절도요, 書는 六書의 부류요, 數는 九數처럼 계산하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五禮는 吉, 凶, 賓, 軍, 嘉의 다섯 禮를 뜻한다. 《사기》 「오제본기」에 修五禮, '五禮를 정비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裴駰은 馬融이 五禮를 吉凶賓軍嘉也, '吉禮, 禮, 禮, 禮, 禮다'라고 하였다고 했고, 張守節은 《周禮》를 인용하여 以吉禮事邦國之鬼神祇/以凶禮哀邦國之憂/以賓禮親邦國/以軍禮同邦國/以嘉禮親萬民, '吉禮를 가지고 邦國의 鬼神祇에 제사를 올리고, 凶禮를 가지고 邦國의 우환 거리를 덜었으며, 賓禮를 가지고 나라들끼리 가까이 지냈고, 軍禮를 가지고 불복하는 놈들에게 위엄을 보였으며, 嘉禮를 가지고 만백성을 친하게 지내도록 만들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周禮》 「春官宗伯」에 띄엄띄엄 나온다. 이 인용문에 대해, 鄭玄은 事를 祀, 祭, 享, 즉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올리다'라고 보았고, 哀는 救患分烖, '걱정 거리를 구제하고 재앙을 덜었다'라고 보았으며, 親은 使之相親附, '사신을 보내서 서로 가까워지게 만든다'라고 하였고, 同은 威其不協僭差者, '복종하지 않고 참람되게 구는 놈들에게 위엄을 보인다'라고 하였다. 張守節의 인용문은 鄭玄의 의견에 따라 번역하였다. 鄭玄은 六樂에 대해서 雲門」, 大咸」, 大韶」, 大夏」, 大濩」, 大武」라고 하였다. 蔡邕의 「獨斷」에서 五帝三代樂之別名//黃帝曰雲門/顓頊曰六莖/帝嚳曰五英/堯曰咸池/舜曰大韶/一曰大招/夏曰大夏/殷曰大濩/周曰大武, '五帝와 三代의 음악에는 다른 명칭들이 있다. 黃帝의 음악은 雲門」이라고 하고, 顓頊의 음악은 六莖」이라고 하며, 帝嚳의 음악은 五英이라고 하고, 堯의 음악은 咸池」라고 하며, 舜의 음악은 大韶」라고 하는데, 大招」라고 하기도 한다. 夏나라의 음악은 大夏」라고 하고, 殷나라의 음악은 大濩」라고 하며, 周나라의 음악은 大武」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 大咸」이 咸池」일 듯하다. 나머지는 대응된다. 鄭玄은 五射에 대해서 白矢, 參連, 剡注, 襄尺, 井儀라고 하였다. 모두 射法, 즉 활을 쏘는 방법인 듯한데, 정확히 어떤 자세를 이르는지는 모르겠다. 鄭玄은 五御에 대해 鳴和鸞, 逐水曲, 過君表, 舞交衢, 逐禽左라고 하였다. 모두 수레를 모는 방법인 듯한데, 정확히 어떤 자세를 이르는지는 모르겠다. 鄭玄은 六書에 대해 象形, 會意, 轉注, 處事, 假借, 諧聲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 한자가 형성되는 원리를 뜻한다. 예를 들어 諧聲은, 한자 한 쪽은 뜻을, 한 쪽은 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른다. 다만 《한서》 「예문지」에서는 教之六書//謂象形/象事/象意/象聲/轉注/假借/造字之本也, '六書를 가르쳤는데, 六書는 象形, 象事, 象意, 象聲, 轉注, 假借이니,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로다'라는 말이 있다. 다만 鄭玄과 班固가 각자 든 六書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뀐 듯하다. 鄭玄은 九數에 대해 九數//方田/粟米/差分/少廣/商功/均輸/方程/贏不足/旁要//今有重差/夕桀/句股也, '九數는 方田, 粟米, 差分, 少廣, 商功, 均輸, 方程, 贏不足, 旁要를 이른다. 지금은 重差, 夕桀, 句股가 또 있다'라고 하였다. 句股는 '직각 삼각형'을 이르는데, 이로써 보면 아마 삼각법 같은 계산 방법, 계산 요령을 뜻하는 말들로 보인다.)

 

 

<소학집해>

 

藝者 見之於事者也. 禮 凡有五, 一曰 吉禮 事邦國之鬼神祗 其目十有二. 以禋祀 祀昊天, 以實柴 祀日月星辰, 以槱燎 祀司中司命風師雨師, 以血祭 祭社稷五祀五嶽, 以貍沈 祭山林川澤, 以疈辜 祭四方百物, 以肆獻祼 享先王, 以饋食 享先王, 與夫春享以祠, 夏享以禴, 秋享以嘗, 冬享以烝也. 二曰 凶禮 哀邦國之憂 其目有五. 以喪禮 哀死亡, 以荒禮 哀凶札, 以弔禮 哀禍災, 以繪禮 哀圍敗, 以恤禮 哀寇亂也. 三曰 賓禮 親邦國, 其目 有八. 春見曰朝 夏見曰宗 秋見曰覲 冬見曰遇 時見曰會 殷見曰同 時聘曰問 殷覜曰視也. 四曰 軍禮 同邦國 其目有五. 大師之禮 用衆也, 大均之禮 恤衆也, 大田之禮 簡衆也, 大役之禮 任衆也, 大封之禮 合衆也. 五曰 嘉禮 親萬民, 其目有六. 以飮食之禮 親宗族兄弟, 以昏冠之禮 親成男女, 以賓射之禮 親故舊朋友, 以饗燕之禮 親四方賓客, 以脤膰之禮 親兄弟之國, 以賀慶之禮 親異姓之國也. 樂 凡 有六. 一曰 雲門 黃帝之樂 言其德如雲之所出也. 二曰 咸池 帝堯之樂 言其德無所不在也. 三曰 大韶 帝舜之樂 言其德能紹堯之道也. 四曰 大夏 大禹之樂 言其德能大中國也. 五曰 大濩 成湯之樂 言能以寬治民其德能使天下得所也. 六曰 大武 武王之樂 言能伐紂除害其德能成武功也. 射 凡 有五. 一曰 白矢 言矢貫侯見其鏃白也. 二曰 參連 言前發一矢後三矢連續而去也. 三曰 剡注 謂 羽頭高鏃低 而 去剡剡然也. 四曰 襄尺, 襄 作讓, 謂臣與君射不敢並立讓君一尺而退也. 五曰 井儀 謂四矢貫侯如井之容儀也. 御 凡 有五. 一曰 鳴和鸞 和與鸞皆鈴也. 和在式 鸞在衡, 馬動 則 鸞鳴而和應也. 二曰 逐水曲 言御車隨水勢之屈曲而不墜也. 三曰 過君表 謂 君表轅門之類 言急驅車走而入門, 若少偏 則 車軸擊門闑而不得入也. 四曰 舞交衢 謂御車在交道旋轉應於舞節也. 五曰 逐禽左 謂 逆驅禽獸 使左 當人君 以射之也. 書 凡 有六. 一曰 象形 謂 日月之類 象以形體也. 二曰 會意 謂 人言爲信 止戈爲武 會人之意也. 三曰 轉注 謂 考老之類 文意相受 左右轉注也. 四曰 處事 謂 人在一上爲上人在一下爲下處得其宜也. 五曰 假借 謂令長之類一字兩用也. 六曰 諧聲 謂江河之類以水爲形工可爲聲也. 數 凡 有九. 一曰 方田 以御田疇界域. 二曰 粟布 以御交貿變易. 三曰 衰分 以御貴賤廩稅. 四曰 少廣 以御積冪方圓. 五曰 商功 以御功程積實. 六曰 均輸 以御遠近勞費. 七曰 盈朒 以御隱雜互見. 八曰 方程 以御錯揉正負. 九曰 句股 以御高深廣遠也.

 

(藝)라는 것은 [세상]사로 드러나는 것(見之於事者, 見은 '드러나다'는 말이다. '현'으로 읽는다.)이다. 예(禮)는 모두(凡)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길례(吉禮)이니, 방국의 귀신지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事邦國之鬼神祗, 鄭玄의 注에 따라 번역하였다.) 길례의 세목에는 12 종류가 있다.(其目十有二, 其는 吉禮, 目은 '세목', '세부적인 분류'를 이른다.) 인사하여 호천에 제사를 올리고(以禋祀/祀昊天, 鄭玄은 禋之言煙/周人尚臭//煙/氣之臭聞者, '禋은 연기를 뜻한다. 周나라 사람들은 냄새를 숭상하였으니, 연기를 내서 냄새의 기운을 하늘에 아뢴 것이다'라고 하였다. 昊天은 '드넓은 하늘'을 이른다.), 실시하여 일월성신에게 제사를 올리며(以實柴/祀日月星辰, 實은 '재물', '재물로 바치다'는 말이다. 實柴에 대해서는 鄭玄이 鄭衆의 말을 인용하여 實牛柴上也/故書實柴或爲賓柴, '재물로 바칠 소를 섶 위에 올려 두는 것이다. 옛 책에는 實柴가 간혹 賓柴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유료하여 사중과 사명, 풍사, 우사에 제사를 올리고(以槱燎/司中司命風師雨師, 燎는 '장작에 붙은 불', '모닥불', '화톳불'이다. 鄭玄은 槱를 積, '쌓는 것'이라고 보고는, 詩曰///芃芃棫樸/薪之槱之///三祀皆積柴實牲體焉//或有玉帛/燔燎而升煙/所以報陽也, '《시》에서 "무성한 棫樸, 뗄나무로 만들어 쌓아 두었다"라고 하였다. 이 세 가지 제사에서는 모두 섶을 쌓아 두고는 제물로 올릴 희생을 올리는데, 제물로는 간혹 玉이나 帛을 쓰기도 한다. 화톳불을 불살라서 연기를 올려 보내는 것으로 陽에 보답한다'라고 하였다. 鄭玄이 인용한 시는 「大雅 文王之什」의 「棫樸」이다. 三祀는 아마 禋祀, 實柴, 槱燎를 이를 듯하다. 이로써 보면 槱燎은 '제물을 올려 둔 섶에 불을 붙이는 방식'을 이른다 하겠다. 司中과 司命은 모두 별의 이름이다. 《風俗通義》에 司命/文昌也//司中/文昌上六星也, '司命은 文昌이다. 司中은 文昌 위에 있는 여섯 별이다'라는 말이 있고, 《사기》 「천관서」에 斗魁戴匡六星曰文昌宮//一曰上將/二曰次將/三曰貴相/四曰司命/五曰司中/六曰司祿, '斗魁는 별 여섯 개가 광주리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文昌宮이라고 한다. 첫 번째 별은 上將, 두 번째 별은 次將, 세 번째 별은 貴相, 네 번째 별은 司命, 다섯 번째 별은 司中, 여섯 번째 별은 司祿이다'라고 하였다. 기록이 정합되지는 않지만, 별 이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혈제하여 사직과 오사, 오악에 제사를 올리며(以血祭/祭社稷五祀五嶽, 鄭玄은 陰祀自血起/貴氣臭也, '陰祀는 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 氣臭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孫詒讓은 社稷五祀五嶽/此皆地之次祀/先薦血以歆, '社稷과 五祀, 五嶽은 모두 땅에 대한 次祀인데, 먼저 피를 올리고는 마신다'라고 하였다. 아마 이것이 血祭의 의미가 아닐까 하다. 鄭玄이 陰祀라고 한 이유는 옛날 중국인들이 天을 陽으로, 地를 陰으로 보았기 때문일 듯하다. 즉, '부정한 제사'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社稷에 대해서는 鄭玄이 土穀之神, '흙과 곡식의 신이다'라고 하였다. 五祀에 대해서는 鄭衆이 五色之帝於王者宮中/曰五祀, '王이 宮中에서 五色의 帝에게 올리기 때문에 五祀라고 했다'라고 하였고, 鄭玄은 五官之神在四郊/四時迎五行之氣於四郊/而祭五德之帝/亦食此神焉, '四郊에 있는 ' 四郊는 五官의 신을 四時에 따라 五行의 氣를 가지고 맞이해서 五德 帝에게 제사를 지내고, 또 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四郊는 '도성 밖의 사방의 교외 지역'을 이른다. 五嶽은 산을 이른다. 鄭玄은 東曰岱宗/南曰衡山/西曰華山/北曰恆山/中曰嵩高山, '동쪽은 岱宗, 남쪽은 衡山, 서쪽은 華山, 북쪽은 恆山, 중앙은 嵩高山이다'라고 하였다.)매침하여 산림과 천택에 제사를 올리고(以貍沈/祭山林川澤, 鄭玄은 祭山林曰埋/川澤曰沈/順其性之舍藏, '山林에 제사지내는 것을 라고 하고, 川澤에 제사지내는 것을 沈이라고 하니, 내재된 성질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아마 埋와 貍는 같을 것이다. 따라서 貍도 '매'로 읽어야 하고, '땅에 묻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貍沈은 '제물을 땅에 묻거나 물에 가라앉히는 것'을 이를 것이다.)벽고하여 사방의 백물에 제사를 올린다.(以疈辜/祭四方百物, 百物은 '온갖 사물들'이다. 여기서는 '잡다한 신명들'로 보인다. 疈에 대해 鄭玄은 疈牲胸也//疈而磔之/謂磔禳及蜡祭, '희생의 흉부를 가르는 것을 이른다. 가르고 찢는 것을 磔禳이라고 했는데, 蜡祭 때도 그렇게 했다'라고 하였다. 鄭衆은 또 故書//祀作禩/疈爲罷, '옛날 책에는 祀는 禩로, 疈은 罷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는데, 鄭衆은 罷辜/披磔牲以祭/若今時磔狗祭以止風, '罷辜는 희생을 찢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니, 요즘 개를 찢어서 제사를 올리고 바람을 그치게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疈과 罷가 같다고 했으니, 罷辜 역시 疈辜와 같을 것이다. 그러면 疈辜은 '제물을 찢거나 갈라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이를 것이다.) [또] 사헌관하여 선왕에게 바치고(以肆獻祼/享先王, 先王은 '선대의 왕'을 뜻한다. 鄭玄은 宗廟之祭/有此六享//肆獻裸/饋食/在四時之上/則是祫也/禘也//肆者/進所解牲體/謂薦孰時也//獻/獻醴/謂薦血腥也//祼之言灌/灌以鬱鬯/謂始獻尸求神時也, '宗廟의 제사에서는 이렇듯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肆獻裸과 饋食는 사철마다 하는 것으로, 이것이 곧 祫이요, 禘다. 肆는 희생을 해체해서 올리는 것이니, 제물을 익혔을 때 바치는 것을 이른다. 獻은 醴를 올리는 것이니, 제물의 피와 날고기를 올리는 것을 이른다. 祼은 강신하다는 말로, 鬱鬯을 가지고 강신하는 것이니, 처음에 尸에다가 강신할 때 바치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즉, 肆獻祼은 祫과 같다. 鬱鬯은 술의 이름이다. 《설문해자》에서 菸을 鬱이라고 했는데, 菸은 '향초'이므로, 鬱도 그런 종류라고 볼 수 있겠다. 《水經注》 「溫水」에는 鬱/芳草也//百草之華/煮以合釀黑黍/以降神者也//或說今鬱金香是也, '鬱은 향기나는 풀이다. 온갖 풀의 꽃에다가 黑黍를 섞어서 삶아 신명을 부른다. 일살에는 지금 鬱金香이 이것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鬯에 대해서는 《설문해자》에 以秬釀𩰪艸/芬芳攸服/以降神也, '𩰪艸를 흑기장과 섞어서 향기가 적당하게 되면, 이를 가지고 신명을 부른다'라고 하였다. 𩰪은 아마 鬱일 것이다. 즉, 鬱鬯은 降神을 위해 쓰는 술일 것이다. 이 제사는 先王에게 바치는 제사이므로, 그 의미가 타당하게 통한다.)궤사하여 선왕에게 바친다.(以饋食/享先王, 앞의 肆獻祼에 대한 주석에서, 鄭玄이 饋食를 禘와 같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肆獻祼이나 饋食나, 올리는 제물이나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 宗廟에서 先王에게 바치는 제사라는 점은 같을 것이다. 大戴禮記》 「曾子天圓」에 士之祭/牲特豕/曰饋食, '士가 제사를 지낼 때 희생으로 특히 돼지를 쓰는 것을 饋食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與夫, '그리고', '및') 봄에는 사를 올리고, 여름에는 약을 올리며, 가을에는 상을 올리고, 겨울에는 증을 올렸다.(春享以祠/夏享以禴/秋享以嘗/冬享以烝, 《爾雅》 「釋詁」에 禋/祀/祠/烝/嘗/禴/祭也, '禋, 祀, 祠, 烝, 嘗, 禴은 제사다'라는 말이 있고, 《시》 「小雅 鹿鳴之什」의 「天保」에 禴祠烝嘗/于公先王, '禴, 祠, 烝, 嘗을 公과 先王께 올린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毛詩》에서는 春曰祠/夏曰禴/秋曰嘗/冬曰烝, '봄에 지내는 것을 祠, 여름에 지내는 것을 禴, 가을에 지내는 것을 嘗, 겨울에 지내는 것을 烝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朱熹도 같다. 즉, 祠, 禴, 嘗, 烝도 모두 先王에게 바치는 제사이며, 다만 지내는 계절이 다를 뿐이라 하겠다.) 

 

두 번째는 흉례(凶禮)이니, [흉례를 지내서] 방국의 우환거리를 덜었다.(哀邦國之憂) 흉례의 세목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其目有五, 其는 凶禮) 상례를 지내 [사람이] 죽은 일을 불쌍히 여겼고(以喪禮/哀死亡, 鄭玄은 哀謂/親者服焉/疏者含襚, '哀는 가까운 사람은 상복을 입고, 먼 사람은 含과 襚를 보내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含은 無窮珠로, 죽은 사람 입에 넣던 까만 구슬을 이른다. 襚는 '수의'다.)황례를 지내서 흉찰을 [당한 일을] 애도하였으며(以荒禮/哀凶札, 鄭玄은 荒/人物有害也//曲禮曰///歲凶/年穀不登/君膳不祭肺/馬不食穀/馳道不除/祭事不縣/大夫不食粱/士飲酒不樂///札讀爲截/截謂疫厲, '荒은 사람과 사물이 해를 입었다는 말이다. 曲禮」에서 "그 해에 흉년이 들어서 곡식이 익지 않았다면, 군주에게는 제사지낸 肺를 올리지 않고, 말에게는 곡식을 먹이지 않으며, 馳道를 除하지 않고, 제사지낼 때는 縣하지 않으며, 大夫는 을 먹지 않고, 士는 술을 樂을 곁들여 마시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札은 截로 읽는다. 截은 疫厲다'라고 하였다. 曲禮」에 대한 鄭玄의 주석을 다시 보면, 除/治也//不治道/爲妨民取蔬食也//縣/樂器鐘磬之屬也//粱/加食也//不樂/去琴瑟, '除는 정비하다는 말이니, 길을 정비하지 않아서 방해되는 잡초들을 백성들이 먹도록 한다. 縣은 鐘磬 같은 악기다. 粱은 더 먹는다는 말이다. 不樂은 琴瑟을 연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馳道는 '왕이 다니는 길'을 이른다. 磬은 '경쇠'로, 치는 악기의 일종이다. 疫厲는 '역병', '역질'이다. 즉, 凶札은 '기근 때문에 생기는 재앙'을 이른다.)조례를 지내 화재를 [당한 일을] 슬퍼하였고(以吊禮/哀禍灾, 灾는 災, 烖와 같다. 吊는 弔와 같다. 鄭玄은 禍烖謂遭水火//宋大水/魯莊公使人弔焉/曰///天作淫雨/害於粢盛/如何不弔//廄焚/孔子拜鄉人/爲火來者拜之/士一/大夫再/亦相弔之道, '禍烖는 물난리나 불난리를 만난 것을 이른다. 宋나라에 홍수가 나자 魯나라 莊公이 사신을 보내 조문하면서, "하늘이 비를 크게 내리셔서 粢盛이 상하고 말았으니, 어찌 조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또 마굿간이 불타 버렸을 때, 공자가 鄉 사람들에게 절을 했는데, 불 때문에 스스로 왔던 사람들에게 절하였으니, 士에게는 한 번, 大夫에게는 두 번 했다. 이 또한 서로 조문하는 도리이다'라고 했다. 粢盛은 제사에 쓰는 기장이나 피를 이른다. 즉, 禍灾는 화재나 수재를 이를 것이고, 吊禮는 이런 자연 재해를 추모하는 예법이었을 것이다.)회례를 지내 위패를 [당한 일을] 애도하였으며(以繪禮/哀圍敗, 鄭玄은 同盟者合會財貨/以更其所喪//春秋襄三十年冬/會于澶淵/宋烖故//是其類, '동맹을 맺은 나라들이 잃은 것을 재물로 배상하는 것이다. 《춘추》 「양공」 30년 겨울에, 澶淵에서 회맹하였는데, 宋나라가 재난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류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어떤 난리가 있어서 나라가 곤경에 처하면, 동맹국이 재물을 내서 이를 돕는 것이 繪禮다. 아마 문맥상 圍敗는 '곤경에 처한 모습'을 뜻하는 말로 보인다. 그런데 鄭玄이 예로 든 저 사건은, 繪禮의 사례이자, 동시에 繪禮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사례였다. 일단 宋烖라는 것은 '화재'였다. 《춘추좌씨전》 「양공」 30년에, 或叫于宋大廟曰//譆譆出出, '누군가 宋나라의 大廟에서 "뜨겁다, 빨리 나가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라는 등의 말이 있는 점을 보면, '화재'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孔子가 晉人/齊人/宋人/衛人/鄭人/曹人/莒人/邾人/滕人/薛人/杞人/小邾人/會于澶淵/宋災故, '晉나라, 齊나라, 宋나라, 衛나라, 鄭나라, 曹나라, 莒나라, 邾나라, 滕나라, 薛나라, 杞나라, 小邾가 澶淵에서 회맹한 것은 宋나라의 재난 때문이었다'라고 한 것이다. 宋나라를 돕기 위해서 저렇게 많이 모인 것은 좋았으나, 旣而無歸於宋, '이윽고 宋나라에 아무 것도 보내지 않았다'라고 했으니, 결국 생색만 내고, 아무것도 해 준 게 없게 되어 버렸다. 《춘추》에서는 일반적으로 회맹이 일어난 사실만 기록하지, 그 사유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 경우는 회맹의 경과가 특히 질이 나빴기 때문에 공자는 이 이유를 송나라의 재난 때문이라고 기록해 두었다. 이 일은 北宋 때 蘇軾이 會于澶淵宋災故襄三十年」을 지어 비판할 정도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휼례를 지내 구란을 [당한 일을] 슬퍼하였다.(以恤禮/哀寇亂也, 鄭玄은 恤/憂也//鄰國相憂//兵/作於外爲寇/作於內爲亂, '恤은 걱정하다는 말이니, 이웃 나라끼리 서로 걱정해 주는 것을 이른다. 외부에서 군대로 침략당한 일을 寇라고 하고, [나라] 안에서 군대 때문에 내란이 생긴 것을 亂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寇亂은 '외적의 침략과 내란'을 이른다.)

 

세 번째는 빈례(賓禮)이니, 나라들끼리 사신을 보내 친근하게 지내는 일이다.(親邦國) 빈례의 세목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其目有八, 其는 賓禮) 봄에 알현하는 것을 조라고 하고, 여름에 알현하는 것을 종이라고 하며, 가을에 알현하는 것을 근이라고 하고, 겨울에 알현하는 것을 우라고 하며, 시현하는 것을 회라고 하고, 성현하는 것을 동이라고 한다.(春見曰朝/夏見曰宗/秋見曰覲/冬見曰遇/時見曰會/殷見曰同, 鄭玄은 此六禮者/以諸侯見王爲文//四方以時分來/或朝春/或宗夏/或覲秋/或遇冬/名殊禮異/更遞而徧, '이 여섯 가지는 諸侯가 王을 알현할 때 행하는 법도다. 사방의 제후들이 때에 따라 찾아 오니, 봄에 朝하기도 하고, 여름에 宗하기도 하며, 가을에 覲하기도 하고, 겨울에 遇하기도 한다. 이름도 다르고, 예법도 다른데, 때에 따라 번갈아가며 두루두루 갖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見은 '알현하다', '뵙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현'으로 읽는다. 또 鄭玄은 朝猶朝也/欲其來之早//宗/尊也/欲其尊王//覲之言勤也/欲其勤王之事//遇/偶也/欲其若不期而俱至, '朝는 아침과 같다. 제후가 일찍 오고자 한다는 말이다. 宗은 높이다는 말이다. 王을 숭상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覲은 부지런하다는 말이다. 제후가 부지런히 王을 섬기려 한다는 말이다. 遇는 우연하다는 말이다. 제후들이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함께 알현하러 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또, 時見에 대해서는 言無常期/諸侯有不順服者/王將有征討之事/則既朝覲/王爲壇於國外/合諸侯而命事焉//春秋傳曰///有事而會/不協而盟///是也, '오히려 기약은 없지만, 천자에게 불복하는 제후가 있을 때 王이 장차 정벌할 것인데, 이에 王이 나라 밖에 壇을 만들어 두면, 제후들이 명을 받들고 王을 섬겨서 朝하고 覲하는 것을 이른다. 春秋傳》에 "사건이 있으면 會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盟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春秋傳》은 춘추좌씨전》으로, 이 문구는 「소공」 1년에 나온다. 즉, 時見은 천자가 외정할 때, 제후들이 봉건의 의무에 따라 천자의 깃발 아래에 모여 천자를 알현하는 일을 뜻한다. 끝으로 殷見에 대해서는, 殷猶眾也//十二歲王如不巡守/則六服盡朝/朝禮既畢/王亦爲壇/合諸侯以命政焉//所命之政/如王巡守//殷見/四方四時分來/終歲則徧, '殷은 많다는 말이다. 만약 12년 동안 王이 천하를 巡守하지 않으면, 六服이 모두 朝한다. 이윽고 朝禮가 끝나면, 王이 또한 壇을 쌓아서, 제후들을 모아서 政을 命한다. 여기서 命하는 政은 王의 巡守 같은 것들이다. 殷見은 사철 동안 사방에서 나뉘어 오는 것이니, 한 해가 끝나면 거의 모든 제후들이 殷見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巡守는 천자가 천하를 돌아 보는 일인데, 천자가 巡守하지 못하면, 대신 각지의 제후들이 와서 상황을 아뢴다는 뜻 같다. 六服은 수도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나누어 놓은 구획에 속한 제후들을 이른다. 《周禮》 「秋官司寇」에 邦畿方千里//其外方五百里謂之侯服/歲壹見/其貢祀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甸服/二歲壹見/其貢嬪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男服/三歲壹見/其貢器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采服/四歲壹見/其貢服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衛服/五歲壹見/其貢材物//又其外方五百里謂之要服/六歲壹見/其貢貨物, '邦畿는 크기가 천 리나 된다. 그 바깥쪽으로 500리 만큼을 侯服이라고 한다. 侯服들은 해마다 한 번 알현하고, 祀物을 조공한다. 또 그 바깥으로 500리 만큼을 甸服이라 한다. 2년에 한 번 알현하고, 嬪物을 조공한다. 또 그 바깥 500리 만큼을 男服이라 한다. 3년에 한 번 알현하고, 器物을 조공한다. 또 그 바깥으로 500리 만큼을 采服이라 한다. 4년에 한 번 알현하고, 服物을 조공한다. 또 그 바깥으로 500리 만큼을 衛服이라 한다. 5년에 한 번 알현하고 材物을 조공한다. 또 그 바깥으로 500리 만큼을 要服이라 한다. 6년에 한 번 알현하고, 貨物을 조공한다'라는 말이 있다. 邦畿는 수도, 즉 周나라를 뜻한다. 邦畿를 제외한 侯服, 甸服, 男服, 采服, 衛服, 要服이 이 글에 나오는 六服이다.)  [또] 시빙하는 것을 문이라고 하고(時聘曰問, 鄭玄은 時聘에 대해 亦無常期/天子有事乃聘之焉//竟外之臣/既非朝歲/不敢瀆爲小禮, '역시 기약하는 일이 아니다. 天子에게 사건이 있어서 제후들을 부르는 일이다.  밖의 신하들은 朝하는 해가 아니면, 작은 禮라도 갖춰서 감히 예법을 어지럽히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竟은 아마 邦畿, 즉 수도 지역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 하다. 즉, 時聘은 유사시에 천자가 제후를 만나 보는 일인 듯하다.)은조하는 것을 시라고 한다.(殷覜曰視, 鄭玄은 殷覜에 대해 謂一服朝之歲/以朝者少/諸侯乃使卿以大禮眾聘焉//一服朝在元年/七年/十一年, '한 服만 朝하게 되는 해에는 朝하는 제후가 적으므로, 이에 제후가 卿을 시켜서 大禮를 갖추어 여럿이 聘하는 것을 이른다. 한 服만 朝하는 해는 원년, 7년, 11년이다'라고 하였다. 위의 주석에서 설명하였듯, 六服은 각자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마다 조공하므로, 조공하는 服이 겹치지 않는 해가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즉위 원년에는 侯服만 朝하게 되고, 즉위 2년에는 侯服과 甸服, 즉위 3년에는 侯服과 男服이 조공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즉위 7년과 11년에는 侯服만 朝하게 되고, 만약 가능하다면, 즉위 49년과 77년에도 侯服만 朝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朝하러 오는 제후가 적을 것이므로, 제후만 오는 것이 아니라 卿도 대동하고 와서, 형식을 있어 보이게 갖춘다는 말로 보인다.) 

 

네 번째는 군례(軍禮)이니, 나라가 하나처럼 힘을 합치는 일이다.(同邦國) 군례의 세목은 다섯 가지가 있다.(其目有五, 其는 軍禮) 대사의 예는 사람들을 많이 동원하는 일이고(大師之禮/用衆也, 鄭玄은 用其義勇, '군대의 의용을 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孫詒讓은 大司馬注云/大師王出征伐也//賈疏云/大師者謂天子六軍/諸侯大國三軍/次國二軍/小國一軍/出征之法, '大司馬에 대한 注에서 "大師는 王이 출정해서 정벌하는 일이다"라고 하였고, 賈公彦은 疏에서 "大師라는 것은 天子의 六軍, 제후 중 큰 나라의 三軍, 그 다음으로 큰 나라의 二軍, 소국의 一軍이 출정하는 법도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즉, 大師는 천자의 출정이고, 用衆은 많은 군대, 혹은 전군을 동원한다는 말로 보인다. 師가 '군대'를 뜻한다.)대균의 예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일이며(大均之禮/恤衆也, 鄭玄은 均其地政/地守/地職之賦/所以憂民, '그 지역의 정치, 수비 상황, 그 지역에서 내야 할 공물을 고르는 일이니, 백성들을 걱정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대전의 예는 사람들을 뽐내는 일이고(大田之禮/簡衆也, 아마 田는 畋, '사냥'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鄭玄은 古者因田習兵/閱其車徒之數, '옛날에는 사냥을 통해 병사를 훈련시키고 車와 徒의 수를 점검하였다'라고 하였다. 車는 '전쟁에서 쓰는 수레', 즉 '병거'를 뜻한다. 徒는 아마도 '보병'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簡도 '가려 뽑다' 보다는 '뽐내다'라고 하는 편이 타당할 듯하다. 사냥을 통해 군대를 사열하여서 위엄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씨춘추》 「恃君覽 驕恣」에서 自驕則簡士, '스스로 교만하게 굴면 선비를 簡하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簡은 '업신여기다', 즉 '교만하다'는 말이다.)대역의 예는 사람들을 부리는 일이며(大役之禮/任衆也, 鄭玄은 築宮邑/所以事民力强弱, '宮이나 邑을 지을 때 백성들의 크고 작은 힘을 事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事는 役, '부리다'라고 보면 타당하겠다. 任 역시 '일을 시키다', '부리다'라고 하면 타당하겠다. 宮邑이라는 표현은 내가 찾기로는 先秦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고, 《春秋繁露》의 「三代改制質文」에 遷宮邑, '宮邑을 옮긴다', 作宮邑於下洛之陽, '宮邑을 洛水 북쪽 아래에 세웠다'는 식으로 몇 차례 사용된다. 따라서 注의 宮邑은 宮과 邑으로 나누어 보는 편이 타당하겠다. 宮은 '궁성', 邑은 '도성'으로, 아마 대규모 토목공사를 이르는 듯하다.), 대봉의 예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大封之禮/合衆也, 鄭玄은 正封疆溝塗之固/所以合聚其民, '封疆과 溝塗가 원래 그러하였던 것처럼 바로잡으니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封疆은 제후들이 봉분된 강역을 뜻한다. 溝는 원래 '도랑'인데, 여기서는 '경계'를 뜻한다. 塗는 途, '길'이다. 즉, 溝塗는 '경계', '영역의 경계'를 이른다. 孫詒讓은 賈疏云//知大封爲正封疆者/謂若諸侯相侵境界/民則隨地遷移者/其民庶不得合聚//今以兵而正之/則其民合聚//故云/大封之禮合眾也, '賈公彦의 疏에서는 "大封을 분별하여 封疆을 바로잡는다는 말은, 제후들이 서로 경계를 침범해서, 백성들이 이 때문에 떠돌아다니게 되어, 백성들이 모일 수가 없게 되는지라, 이제 군대를 가지고 원래의 경계를 바로잡아서 백성들을 원래 살던 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大封의 예가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즉, 오랜 전란으로 천자가 봉분해 준 원래 경계가 어지러워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자기 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 大封이요, 合衆이다.) 

 

다섯 번째는 가례(嘉禮)이니, 만백성들이 가까이 지내도록 만드는 일이다.(親萬民) 가례의 세목은 여섯 가지가 있다.(其目有六, 其는 嘉禮) 음사의 예로 종족과 형제들을 화목하게 해 주고(以飮食之禮/親宗族兄弟, 宗族은 '부계 친척'을 이른다. 鄭玄은 親者/使之相親//人君有食宗族飲酒之禮/所以親之也, '親은 서로 잘 지내도록 만든다는 말이다. 人君은 宗族을 먹이고, 술을 마시게 하는 예법으로 이 사람들이 친해지도록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飮食는 '먹고 마시다'가 아니라 '먹이고 마시게 하다'로 보아야 할 듯하다. 그러면 食은 '사'로 읽어야 하겠다. 嘉禮에 나오는 親은 모두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다.)관혼의 예로 남자와 여자를 [성인으로] 이루고 맺어 주며(以昏冠之禮/親成男女, 冠은 '관례', 昏은 '혼례'를 이른다. 여자에게는 비녀를 꽂는 筓禮가 있다. 冠禮나 筓禮는 남녀 각자의 성인식이다. 昏禮는 남녀가 함께 가정을 이루는 일이고, 따라서 남녀 모두의 성인식이라고 볼 법하다. 아마 그래서 成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鄭玄은 親其恩/成其性, '親은 남녀의 사랑을 이르는 말이고, 成은 남녀의 성품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孫詒讓은 男女必冠筓而後昏嫁//二禮相因/故以親成合言之,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冠禮와 筓禮를 올린 뒤에 昏嫁한다. 이 두 禮는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마땅히 親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빈사의 예로 고구나 붕우와 가까워지고(以賓射之禮/親故舊朋友, 射는 '활을 쏘다'는 말로, 賓射는 상대를 초대해서 서로 활을 쏘면서 우애를 다지던 일을 뜻한다. 鄭玄은 射禮/雖王/亦立賓主也//王之故舊朋友/爲世子時/共在學者//天子亦有友諸侯之義//武王誓曰///我友邦冢君///是也, '射禮 때는 당사자가 비록 王이더라도, 또한 상대를 主로 생각해야 한다. 王의 故舊와 朋友들은 王이 世子가 되었을 때 함께 태학에 있던 사람들이다. 天子 또한 義를 나눈 제후 친구가 있다. 武王이 맹세하면서 "나의 友邦의 冢君들이여"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서》 「주서 泰誓 상」에 나온다. 武王이 군대를 모아서 殷나라를 치기 직전에 했던 연설이다. 孔安國은 冢을 大, '위대하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友邦은 '친구 국가'를 뜻하고, 冢君은 '위대한 군주'라는 뜻이 된다. 鄭玄의 말은 武王이 殷나라를 치기 전에 동맹국을 소집했는데, 이 때 동맹국의 군주들이 곧 武王의 '친구들'이라는 뜻이다. 천자와 제후가 우애를 다진 상태임을 뜻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王도 즉위하기 전에 世子일 때는 동문수학하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이 사람들 역시 王과 우애를 다졌던 사람들이다. 이로써 생각해 보면, 賓射之禮에서 대접하는 故舊와 朋友는 王의 옛 동문들과, 그리고 제후들이라 할 수 있겠다.)향연의 예로 사방의 빈객들과 친해지며(以饗燕之禮/親四方賓客, 饗은 '대접하다', '잔치', 燕도 '잔치'를 뜻한다. 따라서 饗燕은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賓客은 '손님'이다. 鄭玄은 賓客/謂朝聘者, '賓客은 알현하러 온 사람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賓客은 외국이나 제후국의 사신일 것이다.)신번의 예로 형제 국가들과 끈끈해지고(以脤膰之禮/親兄弟之國, 兄弟之國은 말할 것도 없이 姓 제후국을 뜻한다. 脤과 膰은 모두 《설문해자》에 없다. 그러나 《廣韻》에서 脤과 祳이 같다고 하였고, 祳에 대해서는 祭餘肉, '제사를 지내고 남은 고기'라고 하였다. 《설문해자》에서는 祳을 天子所以親遺同姓, '天子가 同姓 제후에게 몸소 남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膰은 《廣韻》에서 祭餘熟肉,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익힌 고기'라고 하였다. 鄭玄은 脤膰/社稷宗廟之肉/以賜同姓之國/同福祿也//兄弟/有共先王者//魯定公十四年///天王使石尙來歸脤, '脤膰은 社稷과 宗廟의 고기로, 同姓 제후국에게 하사한다. 福祿과 같다. 兄弟는 先王이 같은 경우가 있는 경우를 이른다. 魯나라 定公 40년에 "天王이 石尙을 보내 脤을 보내 왔다"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鄭玄의 말과 祳의 풀이가 통한다. 이로써 보면 脤膰之禮는 천자가 社稷이나 宗廟에서 제사를 지내고, 그 남은 고기를 同姓, 즉 姬姓 제후국들에게 음복하듯 나누어 주는 예법이었다. 그리고 이 고기를 당대에는 福祿을 내리는 행위와 동일시하였던 것 같다.)하경의 예로 이성 국가들과도 돈독해진다(以賀慶之禮/親異姓之國, 異姓之國은 姬姓이 아닌 제후국을 이른다. 賀와 慶은 모두 '축하하다', '치하하다'는 말이다. 孫詒讓은 賈公彦이 言賀慶者/謂諸侯之國有喜可賀可慶之事/王使人往以物賀之可施/及異姓之國所以親之也, '賀慶이라고 한 것은, 제후국에 치하할 만하거나 축하할 만한 좋은 일이 있으면, 王이 사신을 보내 축하하면서 은혜가 될 만한 물품을 보내 주니, 異姓의 국가들과도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했다. 앞의 脤膰之禮가 同姓 제후국끼리의 친분을 다지기 위한 예법이라면, 이 賀慶之禮는 異姓 제후국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한 예법이라 하겠다.)

 

악은 모두 여섯 가지가 있다.(樂凡有六) 첫 번째는 「운문」(雲門)이니, 황제의 음악(黃帝之樂)이다. [「운문」은] 황제의 덕이 구름이 피어나는 모습과 같다 점을 뜻한(言其德如雲之所出, 其는 黃帝)다.(鄭玄은 黃帝曰/雲門/大卷//黃帝能成名/萬物以明/民共財/言其德如雲之所出/民得以有族類, '黃帝의 樂은 雲門」 또는 大卷」이라 한다. 黃帝는 명분을 세워 만물을 밝히고, 백성들이 재물을 함께 나누도록 할 수 있었으니, 이로써 黃帝의 덕이 구름이 피어나는 모습과 같아 백성들이 族類를 이루었다는 점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族類는 '종족', '가족', '일가' 같은 친족 집단을 뜻한다. 黃帝의 정치 덕분에 백성들이 친족 집단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하다.) 두 번째는 함지(咸池)이니, 제요의 음악(帝堯之樂, 帝가 '임금'이므로, 帝堯는 '요임금'이라고 보면 타당하겠다.)이다. [함지」는] 제요의 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점을 이른(言其德無所不在, 其는 帝堯)다.(鄭玄은 大咸/咸池/堯樂也//堯能禪均刑法以儀民/言其德無所不施, '大咸」 또는 咸池」는 堯의 음악이다. 堯는 형벌과 법제를 禪均하여 백성들의 모범이 될 수 있었으니, 堯의 덕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점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禪은 아마 '전하다'나 '주다'는 뜻이 아닐까 하다. 均은 '고르다'는 말이므로, 곧 '다스리다', '정비하다'는 뜻과 같다. 그래서 禪均은 아마도 '정비해 주다', '세우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세 번째는 대소(大韶)니, 제순의 음악(帝舜之樂)이다. [「대소」는] 제순의 덕이 요의 도를 잘 이었음을 뜻한(言其德能紹堯之道)다.(鄭玄은 大㲈/舜樂也//言其德能紹堯之道也, '大㲈」는 舜의 음악이다. 舜의 덕이 堯의 道를 잘 이었음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大㲈」가 곧 大韶」일 것이다.) 네 번째는 대하(大夏)니, 대우의 음악(大禹之樂)이다. [「대하」는] 대우의 덕이 중국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었음을 뜻한(言其德能大中國, 其는 大禹)다.(鄭玄은 大夏/禹樂也//禹治水傅土/言其德能大中國也, '大夏」는 禹의 음악이다. 禹는 治水하고 傅土하였으니, 禹의 덕이 中國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었음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治水는 '물을 다스리는 것', 즉 홍수나 가뭄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의 물을 살피고, 조절하는 일을 뜻한다. 傅土에서 傅는 '펴다', '깔다'는 뜻으로, 敷와 같다. 흙을 까는 일이므로, 아마 傅土는 治水를 달리 이르는 말이거나, 기타 토목 공사를 뜻하는 말로 보인다.) 다섯 번째는 대호(大濩)이니, 성탕의 음악(成湯之樂)이다. [「대호」는 성탕이] 백성들을 너그럽게 다스릴 수 있었기에, 이로써 성탕의 덕이 천하를 얻을 만하였음을 뜻한(言能以寬治民其德能使天下得所, 其는 成湯)다.(鄭玄은 大濩/湯樂也//湯以寬治民/而除其邪/言其德能使天下得其所也, '大濩」는 湯의 음악이다. 湯은 백성들을 너그럽게 다스려서, 백성들이 삿되지 않게 하였으니, 이로써 湯의 덕이 천하를 얻을 만하였음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여섯 번째는 대무()이니, 무왕의 음악(武王之樂)이다. [「대무」는 무왕이] 주를 토벌하고 폐단을 없앨 수 있었기 때문에, 무왕의 덕이 무공을 세울 만하였음을 뜻한(言能伐紂除害其德能成武功, 其는 武王)다.(鄭玄은 大武/武王樂也//武王伐紂以除其害/言其德能成武功, '大武」는 武의 음악이다. 武王은 紂를 토벌하여 폐단을 없앴기에, 이로써 武王의 덕이 무공을 이룰 만하였음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에는 모두 다섯 가지가 있다.(射凡有五, 射는 '활 쏘기', '활 쏘는 방법') 첫 번째는 백시(白矢)다. 화살이 과녁을 꿰뚫어서, 화살의 촉이 하얗게 보인다는 뜻(言矢貫侯見其鏃白, 侯는 '과녁', 鏃은 '화살촉', 其는 )이다.(賈公彦은 云白矢者/矢在侯而貫侯過/見其鏃白, '白矢라고 한 것은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고는, 과녁을 꿰뚫고 지나가서, 화살의 촉이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는 삼련(參連, 參은 내용상 '화살 세 발'을 뜻하므로, 三으로 보고 '삼'으로 읽어야 할 듯하다.)이다. 먼저 화살을 한 발 쏘고(前發一矢後, 發은 '보내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화살을 쏘다'는 뜻으로 사용된 듯하다.), 그 뒤에 화살 세 발을 연이어서 쏘는 것(後三矢連續而去, 去도 發처럼 '보내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화살을 쏘다'는 뜻으로 사용된 듯하다.)을 뜻(言)한다.(賈公彦은 云參連者/前放一矢/後三矢連續而去也, '參連이라고 한 것은, 먼저 화살 한 발을 쏘고, 나중에 화살 세 발을 연이어서 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세 번째는 염주(剡注)다. 우두는 높이, 촉은 낮게 해서(羽頭高鏃低, 羽頭는 '화살 깃 중 오늬 가장 윗부분'을 이른다. 鏃은 '화살촉'이다.) 예리하게 쏘는 것(去剡剡然, 《설문해자》에서 剡을 銳利, '예리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剡剡然도 '예리한 모습', '날카로운 모습'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을 이른(謂)다.(賈公彦은 云剡注者/謂羽頭高鏃低而去/剡剡然, '剡注라고 한 것은, 羽頭를 높게 하고, 鏃은 낮게 해서 예리하게 쏘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네 번째는 양척(襄尺)이다. 양(襄)은 양(讓, '사양하다')으로 본다. 신하가 군주와 활을 쏘는데, [신하는] 감히 [군주와] 함께 서지는 않고, 군주에게 한 척을 양보하여 [한 척] 물러나 쏘는 것을 이른(謂臣與君射/不敢並立/讓君一尺而退)다.(賈公彦은 云襄尺者/臣與君射/不與君竝立/襄君一尺而退, '신하가 군주와 활을 쏘는데, 신하가 군주와 같은 자리에 서지 않고, 군주에게 한 척을 양보해서 물러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섯 번째는 정의(井儀, 儀는 '모습'을 뜻한다.)다. 화살 네 발이 과녁을 관통하여, [그 관통한 자국이] 우물 모양처럼 된 것을 이른(謂/四矢貫侯/如井之容儀也, 容儀는 '모습'을 이른다.)다.(賈公彦은 云井儀者/四矢貫侯/如井之容儀也, '井儀라고 한 것은 화살 네 발이 과녁을 관통하여, 그 관통한 자국이 우물 모양처럼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에는 모두 다섯 가지가 있다.(御凡有五, 御는 '수레를 모는 것', '수레를 모는 방법'이다.) 첫 번째는 명화란(鳴和鸞)이다. 화(和)와 란(鸞)은 모두 방울(鈴)이다. 화는 [수레의] 앞부분에 있고(和在式, 式은 軾, '수레의 앞부분'을 뜻한다. 《釋名》의 「釋車」에서 軾을 式이라 했으니, 두 글자는 같다. 그런데 《설문해자》에는 軾이 車前, '수레의 앞부분'이라고 되어 있다.), 란은 [수레의] 가로대에 있다.(鸞在衡, 《시》 「국풍 陳風」의 「衡門」에 대해, 毛亨은 衡門/橫木爲門/言淺陋也, '衡門은 橫木으로 만든 문이니, 천하고 비루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즉, 衡은 橫과 통한다. 따라서 衡은 '가로대'를 뜻할 것이다.) 말이 움직이면 란이 소리를 내고(鸞鳴) 화도 [란에] 응하여 소리를 낸(和應)다.(賈公彦은 云鳴和鸞者/和在式/鸞在衡//案/韓詩云///升車則馬動/馬動則鸞鳴/鸞鳴則和應///先鄭依此而言, '鳴和鸞이라고 한 것은 이렇다. 和는 式에 있고, 鸞은 衡에 있다. 내 생각으로는 《韓詩》에서 "수레에 올라 말을 움직이는데, 말이 움직이면 鸞이 소리를 내고, 鸞이 소리를 내면 和도 이에 응해 소리를 낸다"라고 하였으니, 옛날 鄭玄은 이 말에 의거하여 설을 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韓詩外傳》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실전된 《韓詩》에서 발췌한 듯하다.) 두 번째는 축수곡(逐水曲)이다. 굽어 있는 물길을 따라 수레를 몰면서(御車隨水勢之屈曲) [물로] 떨어지지 않는 것(不墜, 墜는 '떨어지다')을 뜻(言)한다.(賈公彦은 云逐水曲者/無正文//先鄭以意而言/謂御車隨逐水勢之屈曲而不墜水也, '逐水曲에 대해서는 正文이 없다. 옛날 鄭玄은 굽어 있는 물길을 따라 수레를 몰면서, 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뜻하여 逐水曲이라고 말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正文은 '참고할 만한 문헌', '근거로 삼을 만한 글'이다. 즉, 無正文은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세 번째는 과군표(過君表)다. 군표(君表)는 원문 같은 것(轅門之類, 《釋名》 「釋車」에서 轅을 車之大援, '수레의 끌채다'라고 하였다. 轅門은 군영의 문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사냥할 때 진의 입구에다가 수레를 뒤집어서 그 끌채로 방향을 잡아 둔 것을 이른다. 이로써 생각해 보면, 過君表는 사냥할 때 수레를 모는 기예를 뜻하는 듯하다.)을 뜻한다. [과군표는] 급하게 수레를 몰아 달려서 [원]문으로 들어오는데, [이 때 수레가] 조금이라도 치우쳐 있으면(若少偏, 偏은 '치우치다') 수레의 축이 [원]문의 문지방에 부딪칠 것이기 때문에(車軸擊門闑, 軸은 '축', 門은 轅門, 闑은 '문지방') [진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되는 것(不得入)을 뜻한다.(賈公彦은 云過君表者/謂若毛傳云///褐纏旃以爲門/裘纏質以爲槸/間容握/驅而入/轚則不得入///穀梁亦云///艾蘭以爲防/置旃以爲轅門/以葛覆質以爲槷/流旁握/御轚者不得入///是其過君表卽褐纏旃是也, '過君表라고 하는 것은 이렇다. 《毛傳》에서 "베옷을 얽고 旃을 만들고는 문짝으로 삼고, 갖옷을 얽고 質을 덮어서 기둥으로 삼는다. 그 사이는 1握 정도로 한다. 수레를 치달아 들어가려 하면, [기둥에] 부딪쳐서 들어갈 수 없다"라는 말이 있고, 또 《穀梁》에 "艾蘭을 가지고 울타리를 만들고, 旃을 가지고 轅門으로 삼으며, 칡으로 質을 덮어서 기둥으로 삼는다. 사이 공간은 1握 정도로 한다. 수레는 부딪쳐서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러하듯 過君表는 곧 베옷을 얽어서 旃을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용된 《毛傳》은 《시》 「小雅 南有嘉魚之什」의 「車攻」에 달려 있는 傳이다. 旃은 '기', '깃발'이다. 質은 斦, '모탕'을 뜻하는 듯하다. 斦은 나무를 팰 때 밑에 받치는 나무를 이른다. 《穀梁》은 《春秋穀梁傳》으로, 인용된 부분은 「소공」 8년의 傳이다. 艾는 '쑥', 蘭은 '난초'로, 모두 풀을 이른다. 握은 길이의 단위다. 4寸 정도를 이른다. 나는 賈公彦의 설명이 불분명하다고 느껴진다. 아마도 過君表는 수레가 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달리면서도 轅門의 좁은 틈을 통과해서 들어가는 기예를 뜻할 것 같다.) 네 번째는 무교구(舞交衢, 賈公彦은 衢를 道, '길'이라고 했다. 衢는 '네거리' 같이 '교차하는 길'을 이른다.)다. 수레를 교차로에서 몰 때(御車在交道, 交道는 '만나는 길', 즉 '교차로'일 것이다.) 춤출 때처럼 절도 있게 [굽은 길을] 도는 것(旋轉應於舞節, 旋과 轉은 모두 '돌다'는 말이다. 즉, 旋轉은 좌회전이나 우회전처럼 꺾인 길을 돈다는 말이다.)을 이른(謂)다.(賈公彦은 云舞交衢者//衢/道也//謂御車在交道/車旋應於舞節, '舞交衢는 이렇다. 衢는 길이니, 舞交衢는 교차로에서 수레를 몰 때 춤을 추는 것처럼 절도 있게 꺾인 도로를 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섯 번째는 축금좌(逐禽左)다. 금수를 거꾸로 몰아서(逆驅禽獸), [짐승들을] 좌측으로 내몰고(使左, '좌측으로 가게 만들다'), 군주 쪽으로 가게 해서(當人君, 當은 '이르다') [군주가] 짐승을 쏘게 하는 것(以射之, 之는 禽獸)을 이른(謂)다.(賈公彦은 云逐禽左者/謂御驅逆之車/逆驅禽獸/使左/當人君以射之/人君自左射//故毛傳云///故自左膘而射之/達於右腢/爲上殺///又禮記云///佐車止/則百姓田獵///是也, '逐禽左라고 하는 것은 수레를 거꾸로 운전해서는, 禽獸를 거꾸로 몰아서 좌측으로 내몰고, 人君 쪽으로 가게 해서, 人君이 禽獸를 쏘게 하는데, 이 때 人君이 禽獸의 좌측을 직접 쏘는 것이다. 그래서 《毛傳》에서 "그래서 직접 좌측의 膘를 쏴서 화살이 우측 腢에까지 가는 것을 上殺이라고 한다"라고 하였고, 또 《禮記》에서 "佐車가 멈추면 백성들이 田獵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毛傳》은 《시》 「小雅 南有嘉魚之什」의 「車攻」에 달려 있는 傳이다. 膘는 '소의 허구리살'이다. 《설문해자》에서는 膘를 牛脅後髀前合革肉, '소의 겨드랑이 뒷편과 넓적다리 앞부분이 만나는 지점의 가죽과 고기'라고 하였다. 腢는 '어깻죽지'다. 達은 '이르다'이지만, 여기서는 사실 '관통하다'는 말이다. 즉, 좌측에서 소를 쏴서, 소를 관통하고 우측으로 나와야 아주 잘 쏜 것이라는 말이다. 《禮記》 인용문은 「王制」에 나오는 말이다. 田獵은 '사냥하다'는 뜻이다. 佐車는 '도움을 주는 수레'인데, 아마 逐禽左하는 수레가 바로 佐車가 아닌가 하다. 즉, 逐禽左는 짐승들을 잘 몰아서 사냥을 돕도록 하는 기예라 하겠다.)

 

서에는 모두 여섯 가지가 있다.(書凡有六, 書는 篆書 같은 서법이 아니라 '한자의 원리', '한자의 종류'를 이른다. 賈公彦은 云六書象形之等/皆依許氏說文, '象形 등의 六書라고 하는 것은 전부 許氏의 說文》에 근거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許氏는 許愼이고, 說文》은 《설문해자》를 이른다.) 첫 번째는 상형(象形)이다. 일이나 월 같은 부류다.(日月之類) [사물의] 형체를 가지고 [글자의] 모양을 구성했다(象以形體)는 말이다.(賈公彦은 云象形者/日月之類是也/象日月形體而爲之, '象形이라고 하는 것은 日이나 月 같은 부류다. 해나 달을 본떠서 글자의 형체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설문해자》에서는 象形者/畫成其物/隨體詰詘/日月是也, '象形이라는 것은 사물을 그려서 글자를 만들고, 사물의 형체를 따라 굽는 것으로, 日이나 月이 이런 부류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는 회의(會意)다. 인과 언이 신이 되고(人言爲信), 지와 과가 무가 되는 것처럼(止戈爲武), 다른 의미[의 글자]를 합친 것(會人之意, 會는 '합치다'는 뜻으로 보인다. 人은 아마 他, '다르다'는 말인 것 같다.)을 이른다.(賈公彦은 云會意者/武信之類是也/人言爲信/止戈爲武/會合人意/故云會意也, '會意라고 하는 것은 武나 信 같은 부류다. 人과 言이 信이 되고, 止와 戈가 武가 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의미가 합쳐진다. 그래서 會意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설문해자》에서는 會意者/比類合誼/以見指撝/武信是也, '會意라는 것은 [글자들을] 나란히 세우고 의미를 합쳐서 뜻하는 바를 보이는 것으로, 武나 信이 이런 부류다'라고 하였다. 比類에서 類는 '글자의 부류', 즉 '글자'를 듯하는 말 같다. 그러면 比類는 '글자를 나란히 세우다'는 말이 된다.) 세 번째는 전주(轉注)다. 고나 노 같은 부류(考老之類)이니, 글자들이 서로 뜻을 넘겨 주면서(文意相受, 受는 아마 授, '전수하다', '주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뜻이] 주변으로 확장되는 것(左右轉注, 轉은 '구르다', 注는 '주변과 잇닳다'로, 모두 옆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을 이른다. 따라서 轉注는 '확장하다'는 말이다.)을 이른다.(賈公彦은 云轉注者/考老之類是也/建類一首/文意相受/左右相注/故名轉注, '轉注라고 하는 것은 考나 老와 같은 부류다. 글자들을 한 首에 두면, 글자들의 뜻을 서로 넘겨 받으면서 의미가 주변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轉注라고 했다'라고 하였고, 《설문해자》에서는 轉注者/建類一首/同意相受/考老是也, '轉注라는 것은 글자들을 한 首에 두면 통용될 만한 뜻을 서로 넘겨 받게 되는 것이다. 考나 老가 이런 부류다'라고 하였다. 同意는 '같은 의미'가 아니라, '비슷한 의미'라고 해야 할 듯하다. 《설문해자》에서는 同을 合會, '합치다'라고 하였다. 같은 것만 합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비슷한 것도 합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양측의 설명에는 모두 首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首의 뜻이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일반적으로는 樂을 轉注의 예로 든다. 樂은 원래 '음악'이었는데, '즐겁다'는 뜻이 되고, 또 '좋아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樂은 의미에 따라 발음이 바뀌었을지언정 글자 모양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許愼은 考와 老를 예로 들었다. 考는 老에서 파생된 글자로, 老가 다순히 '노인', '늙음'을 뜻하는 데 비해, 考는 '옛 일을 생각하다'처럼 그 의미가 확장되어 있다. 그런데 考와 老는 모양이 서로 다르다. 그러면 許愼은 왜 모양이 다른 글자를 예로 들었을까. 아마 考가 老에서 완전히 파생되어 새 글자가 되기 전에는 老라는 모양을 공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두 글자는 비슷하다. 따라서, 모양이 조금 바뀌었을지언정, 혹은 발음이 조금 바뀌었을지언정, 轉注가 '의미가 파생되는 과정'을 거쳐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면, 파생된, 즉 轉注된 글자들은 항상 파생되기 이전의 본래 글자가 있을 것이다. 考에 대해 老가 있고, 樂에는 '음악'이라는 본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建類一首의 首가 老 같이 파생되기 이전, 즉 근본된 글자를 뜻하지 않겠냐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建類一首/同意相受는 '원래 글자에서 비슷한 의미를 넘겨 준다'는 뜻이 되므로, '파생한다'는 의미와 맞아 떨어진다.) 네 번째는 처사(處事, 指事와 같다.)다. 인이 일 위에 있으면 상이 되고, 인이 일 아래에 있으면 하가 되는 것처럼(人在一上爲上/人在一下爲下, 잘 이해되지 않는다. 옛날에는 上을 𠄞처럼 쓰고, 下를 𠄟라고 썼는데, 혹시 그런 뜻이 아닐까.), [획이] 위치하는 모습이 [글자의] 의미에 타당한 것(處得其宜, 其는 '글자의 의미'를 이르는 듯하다.)을 이른다.(賈公彦은 處事者/上下之類是也/人在一上爲上/人在一下爲下/各有其處/事得其宜/故名處事也, '處事라고 하는 것은 위나 아래에 획을 더하는 부류다. 人이 一 위에 있으면 上이 되고, 人이 一 아래에 있으면 下가 된다. 이처럼 획은 각자 자기 자리가 있으니, 뜻이 자기 의미에 타당해야 한다. 그래서 處事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事는 '뜻', '뜻하다'라고 보면 가장 타당한 듯하다. 그러면 處事는 획이 '의미에 따라 위치하다'는 말이 된다. 《설문해자》에서는 指事者/視而可識/察而見意/上下是也, '指事라는 것은, 살피면 알아 볼 만하고, 생각해 보면 듯이 드러나는 것이다. 上이나 下가 이런 부류다'라고 하였다.) 다섯 번째는 가차(假借)다. 영이나 장 같은 부류처럼(令長之類, 令에는 '하여금'이라는 뜻도 있고, '벽돌'이라는 뜻도 있다. '벽돌'을 뜻할 때는 瓴과 같다. 이처럼 원래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발음이 같을 때 두 글자를 통용할 때가 있다. 를 悌처럼 쓰는 경우도 그렇다. 長은 원래 '길다'는 말이지만, 丈과 통용하여 '어른'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한 글자를 두 가지[의 뜻으]로 쓰는 것(一字兩用, 원래 글자와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됨을 이른다.)을 이른다.(賈公彦은 云假借者/令長之類是也/一字兩用/故名假借也, '假借라고 하는 것은 令이나 長 같은 부류다. 글자 하나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니, 그래서 假借라고 하였다'라고 하였고, 《설문해자》에서는 假借者/本無其事/依聲託事/令長是也, '假借라는 것은, 글자에 본래 그런 뜻은 없으나, 소리에 근거하여 뜻을 기탁하는 것이다. 令이나 長이 이런 부류다'라고 하였다. 《설문해자》 본문의 설명이 가장 나은 듯하다. 賈公彦이나 吳訥은 왜 음이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의뭉스럽다.) 여섯 번째는 해성(諧聲, 形聲과 같다.)이다. 강이나 하 같은 부류를 이른다.(江河之類) [강과 하는] 물이 뜻이고, 공과 가는 소리(以水爲形工可爲聲, '水를 形으로 삼고, 工과 可는 聲으로 삼는다', 形은 명백하게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삼국지 촉지》 「先主傳」에 少語言/善下人/喜怒不形於色, '말은 적었고, 아랫사람에게 잘 대해 주었으며, 喜怒가 안색에 形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이 때 形은 '드러나다'는 뜻이다. '드러내는 바'가 결국 '의미'이자 '뜻'이므로, 이 말에서도 '의미'로 볼 수 있을 듯하다.)다.(賈公彦은 諧聲者卽形聲/一也/江河之類是也/皆以水爲形/以工可爲聲//但書有六體/形聲實多/若江河之類是左形右聲/鳩鴿之類是右形左聲/草藻之類是上形下聲/婆娑之類是上聲下形/疲鄩國之類是外形內聲/闕闠衡銜之類是外聲內形/此聲形之等有六也, '諧聲이라는 것은 곧 形聲과 같다. 예를 한 가지 들어 보면, 江과 河 같은 부류가 이렇다. 두 글자 모두 水이 뜻이고, 工과 可는 소리다. 다만 글자에는 六體가 있기에, 形聲도 실로 다양하다. 江이나 河 같은 부류는 좌측이 뜻이고, 우측이 소리다. 鳩나 鴿의 부류는 우측이 뜻이고, 좌측이 소리다. 草나 藻 같은 부류는 윗쪽이 뜻이고, 아래쪽이 소리다. 婆나 娑 같은 부류는 윗쪽이 소리고, 아랫쪽이 듯이다. 疲나 鄩, 國과 같은 부류는 바깥쪽이 뜻이고, 안쪽이 소리다. 闕, 闠, 衡, 銜 같은 부류는 바깥쪽이 소리고 안쪽이 뜻이다. 이렇듯 무엇이 소리와 뜻을 표현하는지에는 여섯 가지 경우가 있다'라고 하였다. 六體는 문맥상 글자의 모양을 뜻한다고 봐야 할 듯하다. 한자는 좌우로 병기하기도 하고, 상하로 쓰기도 하며, 안팎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에 좌우가 바뀌고, 상하가 바뀌고, 안팎이 바뀌면 총 여섯 가지가 된다. 아마 이를 六體라고 한 듯하다. 《설문해자》에서는 形聲者/以事爲名/取譬相成/江河是也, '形聲이라는 것은 글자가 지칭할 대상을 가지고 뜻으로 삼고, 만들려는 글자와 소리가 비슷한 글자를 가지고 와서,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江이나 河가 이런 부류다'라고 하였다. 譬는 '비유하다'는 말로, 여기서는 소리가 '비슷한 글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相은 '서로'라기 보다는 以事爲名과 取譬를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의미에 가깝다. 名은 보통 '껍데기', '허울'이라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지만, 이 글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글자의 '실체', '뜻'이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왜냐면, 글자를 부르는 이름이 곧 그 글자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事는 글자가 지칭할 '대상', '개념'을 뜻한다.)

 

수에는 모두 아홉 가지가 있다.(數凡有九, 數는 '계산법'이다. 賈公彦은 云九數者/方田已下/皆依九章算術而言, '九數라고 한 것으로 方田 이하의 것들은 모두 九章算術》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九章算術》에는 아홉 가지 셈법이 모두 편으로 분류되어 예와 함께 설명되어 있다.) 첫 번째는 방전(方田, 方은 '각지다'는 말이고, 田은 '밭'이다. 따라서 方田은 '직사각형 모양의 밭'이다. 《九章算術》 「方田」에 有田廣十二步/從十四步/問爲田幾何//答曰/一百六十八步//方田術曰/廣從步數相乘得積步/以畝法二百四十步除之即畝數/百畝爲一頃, '너비가 12步, 세로로는 14步인 밭이 있다. 밭은 얼마나 큰가. 답은 168步다. 方田術로 따져 보면 이렇다. 너비와 세로의 길이를 서로 곱해서 면적을 구한다. 畝로 따지자면, 240步로 나누면 몇 畝인지가 나온다. 100畝는 1頃이다'라는 말이 있다. 廣은 '가로', 從은 '세로', 乘은 '곱하다', 除는 '나누다'는 말이다. 積步는 아마 면적을 뜻하는 듯하다. 畝는 넓이의 단위로, 240步가 1畝다. 밭을 직사각형으로 가정하면, 12x16=168이 답이 된다. 「方田」​에는 이 외에도 예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원이나 반원, 호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도 예를 들어 두있다.)이니, 이 방법을 가지고는 밭의 넓이를 계산한다.(以御田疇界域, 御는 '다스리다'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계산한다'라고 하면 타당하겠다. 田疇는 '밭두둑'으로, '밭의 경계'를 뜻한다. 界과 域은 모두 '경계'이지만, 밭의 경계를 계산한다는 말이 곧 밭이 얼마나 넓은지를 계산한다는 말과 같으므로, 이에 따라 의역하였다. 《九章算術》 「方田」에 있는 예제들도 밭의 넓이를 계산하는 문제들이다.) 두 번째는 속포(粟布, 粟은 '조'고, 布는 아마도 市처럼 '거래하다', '교환하다'로 보아야 하지 않나 하다. 그럼 粟布는 '粟를 거래하는 일'이 된다. 《九章算術》 「粟米」에 今有粟一斗/欲爲糲米/問得幾何//答曰/爲糲米六升//術曰/以粟求糲米/三之/五而一, '粟 1斗가 있는데, 糲米로 바꾸고 싶다.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답은 糲米 6升이다. 풀이는 이렇다. 粟을 가지고 糲米를 구하려 하면 3을 곱하고 5로 나누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三之는 '3을 곱한다'는 뜻이고, 五而一은 '5로 나눈다'는 뜻이다. 「粟米」 첫 부분에 粟米之法//粟率五十/糲米三十, '粟米法은 이렇다. 粟의 비율이 50일 때 糲米는 30이'라는 말이 있다. 즉, 교환 비율이 50:30=5:3이므로, 粟이 a만큼 있을 때, 교환될 糲米의 양 b를 구하면 5:3=a:b처럼 비례식을 세우면 된다. 즉 3a=5b, b=(3/5)a다. 따라서, 粟의 양에다가 3을 곱하고 5를 나누면 되니, 본문의 풀이와 같다. 粟米」는 일종의 비례식 풀이라고 할 수 있겠다.)니, 이 방법을 가지고는 [곡식을] 교무하거나 변역할 때 [비율을] 계산한다.(以御交貿變易, 交와 貿는 모두 '바꾸다'는 뜻이므로, 交貿 역시 '바꾸다'는 뜻이다. 變과 易도 모두 '바뀌다'는 뜻이므로, 變易 역시 '바뀌다'는 뜻일 것이다. 《九章算術》 「粟米」에 나와 있는 예제들에서는 곡식들을 서로 교환할 때의 비율을 묻고 있으므로, 交貿와 變易은 아마 시장에서의 물물교환을 뜻할 것이다.) 세 번째는 쇠분(衰分, 衰는 아마 '차이를 두다', 즉 差와 같은 말로 보인다. 《춘추좌씨전》 「소공」 32년에 天子有命/敢不奉承/以奔告於諸侯//遲速衰序/於是焉在, '天子께서 命을 내리시니 감히 어찌 받들어 제후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작업이 지체되느냐, 빨리 끝나느냐, 衰序하느냐는 周나라의 命에 달려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기사는 축성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杜預는 衰를 差, '차이'라고 보았다. 즉, 衰序는 '축성할 때의 작업량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衰分의 衰도 '차등'으로 보면, 衰分은 '차등적으로 나눈다'는 말이 된다《九章算術》 衰分」에서 今有大夫/不更/簪裹/上造/公士/凡五人/共獵得五鹿//欲以爵次分之/問各得幾何///答曰/大夫得一鹿/三分鹿之二/不更得一鹿/三分鹿之一/簪裹得一鹿/上造得三分鹿之二/公士得三分鹿之一///術曰/列置爵數/各自爲衰/副并法//以五鹿乘未并者/各自實//實如法得一鹿, '大夫, 不更, 簪裹, 上造, 公士 총 다섯 사람이 있다. 함께 사냥해서 사슴 다섯 마리를 잡았는데, 신분에 따라 나눠 가지려고 한다. 각자 얼마나 가져야 하겠느냐. 답은 이렇다. 大夫는 사슴 한 마리와 3분의 2마리를 가진다. 不更은 사슴 한 마리와 3분의 2마리를 가진다. 簪裹는 사슴 한 마리를 가진다. 上造는 사슴 3분의 2마리를 가진다. 公士는 사슴 3분의 1마리를 가진다. 풀이는 이렇다. 爵數에 따라 배분량에 각자 차등을 둘 것이다. 그래서 爵數를 전부 합치고, 이 수로 나누어야 한다. 사슴의 갯수인 5에다가 아직 더하지 않은 爵數들을 곱하면, 이 수들을 피제수로 한다. 피제수를 나누면 각각 사슴을 가져갈 양을 얻는다'라고 하였다. 實은 수학 용어로 '피제수', 즉 '나눠지는 수', 즉 분수로 따지면 '분자에 있는 수'를 이른다. 法은 '나누다'는 말이다. 여기서 爵數라는 것은 관작의 등급에 따라 상정해 둔 배분 비율을 이르는 것 같다. 劉徽는 爵數者/謂大夫五/不更四/簪裹三上造二/公士一, '爵數는 이렇다. 大夫는 5, 不更은 4, 簪裹는 3, 上造는 2, 公士는 1이다'라고 하였다. 일단 비례 배분한다는 취지에서 우리가 배운 대로 계산해 보자. 사슴 다섯 마리를 5:4:3:2:1로 나눠야 하므로, 예를 들어 大夫의 경우, 5마리의 5/(1+2+3+4+5) 만큼 가져가야 한다. 그러면 1/15=1/3이고, 大夫의 몫은 5/3마리이므로, 衰分」의 풀이처럼 1마리에다가 2/3마리를 더 가져가게 된다. 이제 본문의 풀이법을 따라가 보자. 爵數를 모두 더하면 1+2+3+4+5=15다. 이 수로 나눈다고 했으니, 1+2+3+4+5가 나누는 수, 즉 분모에 올 수가 된다. 그리고 사슴의 개수인 5에다가 爵數를 곱한다고 했으므로, 이를 예를 들어 大夫를 상정한다면, 5x5=25, 이것이 바로 實, 즉 피제수가 되어야 한다. 피제수는 각 계층마다 다르다. 예컨대 簪裹 같으면 5x3=15가 피제수가 된다. 이 피제수들을 1+2+3+4+5로 나누자. 그러면 大夫는 25/15=5/3이니, 아까 계산했던 바와 같고, 簪裹 같으면 15/15=1이 바로 그 몫이 된다. 표현 방식은 현대 수학과 다르지만, 그 과정을 따져 보면 같다.)이니, 이 방법을 가지고는 [사람의] 귀천에 따라 [물건을] 나눈다.(以御貴賤廩稅, 貴賤은 '신분'을 뜻한다. 즉, 貴하면 많이 가져 가고, 賤하면 적게 가져 간다는 말이다. 廩은 '갈무리하다', '처리하다'는 뜻이다. 《관자》의 「山國軌」에 泰春/民之且所用者/君已廩之矣, '봄이 되면, 백성들이 앞으로 사용할 물품들을 군주는 미리 廩해 두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廩은 '갈무리하다', '준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稅는 아마 '보내다'는 말인 듯하다. 《예기》의 「檀弓 上」에 未仕者/不敢稅人, '출사하지 않은 사람은 감히 남에게 稅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稅人/謂以物遺人, '稅人은 남에게 물품을 보내는 일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즉, 稅는 '보내다'는 뜻이다. 그러면 廩稅은 '갈무리해서 보내다'는 말인데, 《九章算術》 衰分의 예를 볼 때, '물건을 정리해서 나누는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 하다.) 네 번째는 소광(少廣, 少는 '줄이다', 廣은 '늘이다'는 말이다. 方田이 가로와 세로의 길이를 알고 넓이를 구하는 방법이었다면, 少廣은 반대로 면적과 가로, 또는 면적과 세로를 알 때 나머지 길이 하나를 구하는 방법이다. 즉, 方田이 곱셈이라면, 少廣은 나눗셈이다. 그런데 이 편에서는, 단순한 나눗셈 뿐만 아니라, 분수를 통분하는 방법, 제곱근이나 거듭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九章算術》 「少廣」에서는 少廣術曰//置全步及分母子/以最下分母遍乘諸分子及全步/各以其母除其子/置之於左//命通分者/又以分母遍乘諸分子/及已通者皆通而同之/并之爲法//置所求步數/以全步積分乘之爲實//實如法而一/得從步, '少廣術은 이런 것이다. 정수와 분수를 써 두고, 가장 낮은 분모를 분자들과 정수에 전부 곱한다. 그리고 분모로 분자를 나눌 수 있는 경우가 있으면 나누고, 왼쪽에 적어 둔다. 통분하기 위해서 다시 분모를 분자들에 모두 곱한다. 마침내 통분이 되어서 모든 수가 정수로서 서로 통하게 된다면, 이를 다 더해서 제수로 삼는다. 이제 제시된 넓이를 적어 두고, 아까 곱했던 분모들을 모두 곱해서 제시된 넓이와 곱하고, 이를 피제수로 삼는다. 피제수를 제수로 나누어서 세로의 길이를 구한다'라고 하였다. 全은 分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全은 아마 3, 4, 5 같은 '정수'를 이를 것이다. 分母子는 물론 '분수'를 이른다. 最下分母란, 분모 중 수가 가장 큰 것을 이른다. 예컨대 1/2와 3/7이 있다면 7을 이른다. 法은 '나눈다'는 말로, 여기서는 '제수', 즉 분모에 올 수를 이른다. 實은 '피제수', 즉 나눠질 수, 분자에 올 수를 이른다. 所求步數는 조건에 제시되는 경작지의 넓이를 이른다. 從은 '세로'다. 만약 경지가 지저분하게 나뉘어 있어서, 가로 길이가 1/2+3/5+3/4+2처럼 분수와 정수의 합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세로의 길이를 구하려면, 면적을 가로 길이로 나누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제수가 분수의 합이므로, 계산이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위의 글에서는 이 '분수의 합'을 어떻게 쉽게 계산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분모 중 가장 큰 수를 모든 수에 곱한다. 위의 예에서는 5다. 그러면 5/2, 3, 15/4, 10이 된다. 아직 분수가 있다. 그러면 또 분모를 곱한다. 이번에는 4를 곱해 보자. 그러면 10, 12, 15, 40이 된다. 그럼 모두 정수, 즉 全步가 된다. 이제 이 수들을 모두 더하자. 그러면 10+12+15+40=77이 된다. 77이 바로 제수다. 이제 피제수를 구하자. 아까 곱했던 분모, 즉 5와 4를 곱해서, 또 면적과 곱하면 少廣術에서 설명한 피제수가 된다. 면적을 5라고 가정하면, 5x4x5=100이 피제수다. 이제 피제수를 제수로 나누면, 100/77이 바로 세로의 길이가 된다. 이 방법은 실제로 타당할까. 1/2+3/5+3/4+2를 통분해서 계산하면 (10+12+15+40)/20=77/20이다. 면적은 5였으므로, 세로의 길이는 5x20/77=100/77로 少廣術에서 구한 값과 같다. 그럼 이 과정을 少廣術에서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했을까. 우리는 현대적 기호를 써서 편리하게 계산하지만, 당시에는 아라비아 숫자도 없었을 뿐더러, 분모나 분자를 2/3처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수 기호 없이 분수를 다루자니 복잡하고, 더욱이 대수적 기호 없이 대수적 과정을 설명하자니 더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과정을 도식화해서 결국 '계산법'으로 구체화한 점이 놀랍다 하겠다.)이니, 이 방법으로는 방형이나 원형에 대한 나눗셈이나 거듭제곱근을 계산한다.(以御積冪方圓, 方圓이 어떤 방법을 따로 이르는 것 같지는 않다. 方은 '방형', 즉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 圓은 '원형', 즉 원을 뜻하는 것 같다. 積은 '곱셈'이지만, 사실 이 장에서는 나눗셈을 다룬다. 冪은 '거듭제곱'이지만, 사실 이 장에서는 거듭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을 다룬다.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다섯 번째는 상공(商功, 여기서 商은 '장사'가 아니라 '헤아리다', '계산하다'는 뜻이고, 功은 '사업', '공사'를 이른다. 즉, 商功은 '공사에 대한 일을 헤아리는 방법'이다. 《九章算術》 「商功」에서는 今有城下廣四丈/上廣二丈/高五丈/袤一百二十六丈五尺/問積幾何//答曰/一百八十九萬七千五百尺, '성 아래쪽 너비가 4丈이고, 윗쪽 너비가 2丈이며, 높이는 5丈이다. 길이는 126丈하고 5尺이다. 그러면 城의 체적은 얼마일까. 답은 189만 7500尺이다'라고 하였다. 袤는 '길이'다. 길이 10尺이 1丈이다. 즉, 0.1丈이 1尺이다. 이 성은 일종의 사다리꼴이다. 사다리꼴의 체적은 (윗면 넓이+아랫면 넓이)x높이/2다. 윗면의 넓이는 2x126.5=253이고, 아랫면의 넓이는 4x126.5=506丈이다. 그러면 체적은 (253+506)x5/2=1897.5丈이다. 그런데 丈과 尺은 길이일 때 10:1이었으므로, 체적일 때는 1000:1이 된다. 따라서 1897.5丈=1897.5x1000尺=1897500尺, 즉 189만 7500尺으로, 본문의 풀이와 같다. 나는 쉬운 계산 문제를 가지고 왔지만, 다른 예제들에서는 땅을 파서 얻을 수 있는 모래나 흙의 비율, 공역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사람의 수, 노동량, 원뿔대나 사각뿔대, 원뿔, 사각뿔의 체적, 둘레 등을 다루고 있다.)이니, 이 방법으로는 사업을 벌일 때 일을 잘 진행할 수 있다.(以御功程積實, 功은 '공사'나 '사업'을 이르고, 程은 '법칙', '법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功程은 아마 '토목 공사'나 '사업'을 이르는 것 같다. 積實은 아마도 '결실을 맺다', '일을 잘하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여섯 번째는 균수(均輸, 輸는 '옮기다', '수송하다'는 말이다. 均輸는 아마 '적절하게 수송하는 방법'을 뜻하지 않나 하다. 《九章算術》 「均輸」에는 今有均輸粟//甲縣一萬戶/行道八日//乙縣九千五百戶/行道十日//丙縣一萬二千三百五十戶/行道十三日//丁縣一萬二千二百戶/行道二十日//各到輸所//凡四縣賦/當輸二十五萬斛/用車一萬乘//欲以道里遠近/戶數多少/衰出之//問粟車各幾何//答曰/甲縣粟八萬三千一百斛/車三千三百二十四乘//乙縣粟六萬三千一百七十五斛/車二千五百二十七乘//丙縣粟六萬三千一百七十五斛/車二千五百二十七乘//丁縣粟四萬五百五十斛/車一千六百二十二乘, '粟을 均輸해야 한다. 甲縣은 10000戶요, 수송하는 데 8일이 걸린다. 乙縣은 9500戶요, 수송하는 데 10일이 걸린다. 丙縣은 12350戶요, 수송하는 데 13일이 걸린다. 丁縣은 12200戶요, 수송하는 데 20일이 걸린다. 모두 네 에서 賦를 거둬야 하는데, 총 250000斛을 수송해야 하고, 수레 10000乘을 사용할 것이며, 거리의 遠近, 戶의 多少를 고려해서 차등적으로 거두려 한다. 그러면 각각 粟은 얼마나 거둬야 하며, 수레는 얼마나 써야 하겠느냐. 답은 이렇다. 甲縣에서는 粟 83100斛을 거두고, 수레 3324乘을 써야 한다. 乙縣에서는 粟 63175斛을 거두고, 수레 2527乘을 써야 한다. 丙縣에서는 粟 63175斛을 거두고, 수레 2527乘을 써야 한다. 에서는 粟 40550斛을 거두고, 수레 1622乘을 써야 한다'라는 예제가 있다. 均輸」 본문에는 이 답을 어떻게 계산해 냈는지 나와 있고, 어떻게 가중치를 주어서 세수를 배분했는지도 기술되어 있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인구가 많으면 조세도 많이 거둬야 하고, 반면 수송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 조세는 적게 거둬야 한다. 따라서 호구에는 비례하고, 수송 기간에는 반비례해야 한다. 아마 원리는 이러하지 않을까 한다. 均輸」에는 이 외에도 물자를 수송하거나, 아니면 물류가 이동하면서 변화가 생길 때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에 대해 예제를 들어 두었다.)니, 이 방법으로는 [물류을] 수송할 때 드는 노고와 비용을 계산하였다.(以御遠近勞費, 遠近은 '멀거나 가까운 것'으로, 여기서는 '멀리 옮기거나 가까이 옮기는 것', 즉 '물류를 옮기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일곱 번째는 영육(盈朒, 盈은 '가득하다', 朒은 '모자라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는 충분하고, 어떤 경우는 모자란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사는데, 여러 사람이 돈을 얼마씩 모아 내니 얼마가 남고, 또 얼마씩 모아 내면 얼마가 모자라다. 그러면 조건이 둘이므로, 사람의 수와 물건값을 계산할 수 있다. 《九章算術》 「盈不足」에는 今有共買物//人出八/盈三//人出七/不足四//問人數/物價各幾何//答曰/七人/物價五十三, '물건을 함께 산다고 하자. 사람당 8전씩 내면 3전이 남고, 사람당 7전씩 내면 4전이 부족하다. 사람의 수와 물건 가격은 얼마일까. 답은 이렇다. 7명과 53전이다'라는 예제가 있다. 이원일차연립방정식이다. 사람 수를 a라고 하고, 물건값을 b라고 하자. 그러면 첫 조건에서 8a=b+3을 얻고, 두 번째 조건에서 7a=b-4를 얻는다. 첫째 식에서 둘째 식을 빼면 a=3-(-4)=7을 얻고, 어느 한 식에 대입하면 b=53을 얻는다. 「盈不足」에서는 이런 간단한 연립방정식에서 시작하여 다소 복잡한 문제로까지 옮아 갔다. 내 생각에는 盈朒, 즉 충분하거나 모자란 것은 문제의 조건이 두 개임을 뜻하는 말로 보인다. 두 가지 값을 구하려면 조건도 두 가지 필요하기 때문이다.)이니, 이 방법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고, [또] 뒤섞여 있는 값들을 함께 드러낼 수 있다.(御隱雜互見, 盈朒이 이원일차연립방정식과 그 활용법이기 때문에, 미지수가 많은 모습을 隱雜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互는 相, '서로'라는 말이다. 見은 '드러내다'는 말로 보인다.) 여덟 번째는 방정(方程, 方程이라는 표현은 산술을 다룬 책 이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말이 지금 우리가 쓰는 '방정식'의 의미와 같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方程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문제를 풀 '방법을 찾는 것'일까. 혹은 方과 程을 둘 다 '방법', '규칙', '법도'라고 보아야 할까. 《九章算術》 「方程」 에는 今有上禾三秉/中禾二秉/下禾一秉/實三十九斗//上禾二秉/中禾三秉/下禾一秉/實三十四斗//上禾一秉/中禾二秉/下禾三秉/實二十六斗//問上中下禾實一秉各幾何//答曰/上禾一秉/九斗四分斗之一//中禾一秉/四斗四分斗之一//下禾一秉/二斗四分斗之三, '좋은 벼 3秉, 보통 벼 2秉, 안 좋은 벼 1秉을 거두었더니 익은 것이 39斗였고, 좋은 벼 2秉, 보통 벼 3秉, 안 좋은 벼 1秉을 거두었더니 익은 것이 34斗였으며, 또, 좋은 벼 1秉, 보통 벼 2秉, 안 좋은 벼 3秉을 거두었더니 익은 것이 26斗였다. 이 때 좋은 벼, 보통 벼, 안 좋은 벼 1秉에서 익은 것은 각각 얼마 만큼이겠느냐답은 이렇다. 좋은 벼 1秉에는 9와 1/4斗, 보통 벼 1秉에는 4와 1/4斗, 안 좋은 벼 1秉에는 2와 3/4斗다'라는 예제가 있다. 좋은 벼와 보통 벼, 안 좋은 벼 1秉에서 익은 양을 각각 x, y, z라고 한다면, 이 문제는 3x+2y+z=39, 2x+3y+z=34, x+2y+3z=26을 푸는 것으로 바뀐다. 「盈不足」에서 이원일차연립방정식을 다루었다면, 方程」의 이 문제는 삼원일차연립방정식이다. 연립해서 풀면 x=37/4, y=17/4, z=11/4를 얻는데, 이 값은 九章算術》의 해답과 같다. 물론 고대의 풀이는 더 복잡하겠지만 말이다. 方程」에서는 삼원일차연립방정식뿐만 아니라 사원일차연립방정식, 오원일차연립방정식까지 다루고 있다.)이다. 이 방법으로는 [미지]수를 다뤄서 계산해 낸다.(以御錯揉正負, 正과 負는 각각 '양수'와 '음수'를 뜻한다. 아마 방정식의 미지수를 의미하는 것 같다. 錯는 '다스리다'는 말이고, 揉는 '주무르다'는 말인데, 아마 揉도 '다스리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錯揉는 '다스리다', '다루다'는 말이 된다.) 아홉 번째는 구고(句股, 句는 勾와 같다.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 중 '짧은 변'을 이른다. 股는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변 중 '긴 변'을 이른다. 빗변, 즉 직각의 대변은 弦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句股는 직각삼각형에서 변들의 관계를 표현한 말이다. 《九章算術》 「勾股」에서는 今有勾三尺/股四尺/問爲弦幾何//答曰/五尺, '勾가 3尺, 股가 4尺이다. 그러면 弦의 길이는 얼마일까. 답은 5尺이다'라고 하였다. 물론 이 예제는 피타고라스 정리의 특수하고 간단한 경우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예제가 간단할 뿐, 「勾股」의 다른 예제들은 복잡하고 실용적이다. 삼각법은 토지를 측량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수단이다. 《九章算術》의 예제들의 내용이 대체로 실용적인 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 당시에도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다. 이 방법으로는 높거나 깊은 곳, 넓거나 먼 곳까지의 거리를 계산(以御高深廣遠, 高는 '높다', 深은 '깊다', 廣은 '넓다', 遠은 '멀다'로, 모두 직접 가기 힘든 지역을 뜻한다. 직접 가지 않고도 句股를 통해 거리를 손쉽게 계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한다.(吳訥의 설명은 대부분 《주례》에서 가져 온 것들이다. 따라서 나도 대부분 《주례》에 대한 鄭玄, 賈公彦, 孫詒讓의 注에 맞춰서 번역하였다.)

 

 

<소학증주>

 

禮以制中 樂以道和 射以觀德 御以正馳驅 書以見心畫 數以盡物變, 皆 至理所寓 而 日用不可缺者也

 

예를 실천하여 [자신을] 중용으로 절제하고(禮以制中, 나는 中을 中庸으로 보았다.), 악을 들어서 도리와 어우러지며(樂以道和), 활을 쏘아서 덕행을 살피고(射以觀德行), 수레를 몰면서 급한 마음을 바로잡으며(御以正馳驅, 馳와 驅는 모두 '수레를 빨리 모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마음이 급한 모양'으로 보면 타당하겠다.), 글자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살피고(書以見心畫, 心畫는 아마 '마음의 모습'을 뜻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계산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좇으니(數以盡物變), 전부(皆) 이치가 지극하여(至理所寓, '이치가 지극하게 머무르는 것'), 하루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日用不可缺者, '하루라도 쓰는 데 모자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缺은 '이지러지다', '모자라다'는 말이다.) 하겠다.

 

 

 

 

<입교 7장>

 

以鄕八刑 糾萬民, 一曰不孝之刑 二曰不睦之刑 三曰不婣之刑 四曰不弟之刑 五曰不任之刑 六曰不恤之刑 七曰造言之刑 八曰亂民之刑

 

"향에서는 팔형으로 백성들을 바로잡는다.(以鄕八刑/糾萬民, 糾는 원래 '얽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바루다', '바로잡다'라고 보아야 타당하겠다. 鄭玄은 糾를 割察과 같다고 했는데, 賈公彦은 陸德明이 云糾猶割察也者//謂察取鄕中八種之過/斷割其罪, '鄭玄이 糾를 割察과 같다고 한 말은 鄕에서 일어나는 여덟 가지 문제들을 살펴서, 그 죄과를 처리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割察은 '바로잡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周禮》 「夏官司馬」에 制軍詰禁/以糾邦國, '군대와 금령을 다스려서 邦國을 糾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糾를 正, '바로잡다'와 같다고 보았다. 이 경우에도 그렇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刑은 '형벌' 보다는 '죄', '죄과'라고 보면 타당하겠다. 《장자》 「양생주」에서 遁天之刑, '하늘의 도리에서 도망친 刑'이라 하였으니, 여기서 刑은 '죄'다.)  첫 번째는 불효의 죄다.(不孝之刑, 賈公彦은 有不孝於父母者則刑之//孝經///不孝不在三千者/深塞逆源/此乃禮之通敎///兼戒凡品/故不孝有刑也,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도 죄다. 《효경》에서 "不孝하고 不在하기를 3천 번이나 하면, 도리가 심하게 틀어 막혀서 인간으로서의 근원을 거스르게 되니, 禮를 가지고 교화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모든 경우를 아울러 경계한 말이라 하겠다. 따라서 不孝를 저질라도 죄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不孝와 不在는 서로 병렬적인 개념인 것 같다. 不在는 아마 부모 곁에서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을 이르는 듯하다. 인용된 《효경》은 지금 《효경》에는 전하지 않는 逸文이다.) 두 번째는 불목의 죄다.(不睦之刑, 睦은 '화목하다', 賈公彦은 不相親睦亦刑之, '서로 친하기 지내지 못하는 것 역시 죄다'라고 하였다.) 세 번째는 불인의 죄다.(不婣之刑, 婣은 '인척', 즉 '외가'를 뜻한다. 賈公彦은 不親於外親亦刑之, '외가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 역시 죄다'라고 하였다.) 네 번째는 부제의 죄다.(不弟之刑, 鄭玄은 不弟/不敬師長, '不弟는 스승이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賈公彦 不敬師長亦刑之, '스승이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도 죄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다섯 번째는 불임의 죄다.(不任之刑, 鄭衆은 任謂朋友相任, '任은 朋友끼리 서로 신임하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고, 賈公彦 不信任於朋友亦刑之, '朋友끼리 信任하지 못하는 것도 죄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여섯 번째는 불휼의 죄다.(不恤之刑, 鄭衆은 恤謂相憂, '恤은 사람들끼리 서로 걱정해 주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고, 賈公彦은 謂見災危而不憂恤亦刑之, '다른 사람이 고생하고 있거나 위급한 상황임을 보았으면서도 걱정하지 않는 것도 죄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일곱 번째는 조언의 죄다.(造言之刑, 鄭玄은 造言/訛言惑眾, '造言은 말을 왜곡해서 사람들을 미혹시킨다는 말이다'라고 하였고, 賈公彦은 有造浮僞之言者/亦刑之, '허황되거나 사실이 아닌 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죄다'라고 하였다.) 여덟 번째는 난민의 죄다.(亂民之刑, 鄭玄은 亂民/亂名改作/執左道以亂政也, '亂民은 되도 않은 명분을 만들어서는 左道로 정사를 어지럽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실 鄭玄의 말은 《예기》의 「王制」를 인용한 말이다. 王制」에도 亂名改作/執左道以亂政이 그대로 쓰여 있다. 王制」의 그 부분에 대한 鄭玄의 注를 보면, 左道/若巫蠱及俗禁, '左道는 터무니 없고 미혹스럽기에 세속에서 금지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左道는 '삿된 도리',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도리' 같은 뜻이다. 賈公彦은 謂執左道亂政則刑之, '左道를 가지고 정사를 어지럽히는 것도 죄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소학증주>

 

糾 謂察而正之. 造言 造爲妖妄之言也. 亂民 挾邪道以惑民也.

 

(糾)는 백성들을 살펴서 바로잡는다(察而正之, 之는 萬民)는 말이다. 조언(造言)은 요망한 말을 지어내는 것(造爲妖妄之言, 妖는 '요사스럽다', 妄은 '망령되다')이다. 난민(亂民)은 사도를 가지고 백성들을 미혹시키는 것(挾邪道以惑民, 挾은 '끼다')이다.

 

 

<소학집성>

 

賈氏曰 "此不弟 卽六行之友, 上文 言 友在睦婣之上, 專施於兄弟, 此 變言弟 退在睦婣之下 兼施於師長" 鄭氏曰 "制刑之意 終不爲卑者而罪其長, 故六行則敎兄以友 而制刑則謂之不悌 使少者不敢陵長也"

 

가씨(賈氏, 賈公彦을 이른다.)가 말했다.

 

"여기서 부제(不弟)라고 한 것은 곧 육행(六行) 중 우[와 같]다.(友) 앞의 글에서 우(友)는 목과 인 앞에 있었던 말로(在睦婣之上), 오직 형제에 대한 덕목일 뿐이었다.(專施於兄弟) [그런데] 여기에서는 제라는 말이 바뀌어서(變言弟), 목과 인 아래에 있[게 되었]고(在睦婣之下), 스승이나 어른에 대한 덕목이기도 하게 되었다.(兼施於師長, 兼은 '겸하다')"(이는 賈公彦의 《周禮注疏》에서 부분부분 인용한 말로, 周禮》 본문에 대한 말이 아니라, 사실은 鄭玄의 注에 대한 疏다. 원문에는 云///不弟/不敬師長///者/此不弟/卽上六行友是也//上文在睦姻之上/此變言弟/退在睦姻之下者/上言友/專施於兄弟//此變言弟/兼施於師長/故退在睦姻之下, '鄭玄이 不弟를 스승이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말은 이렇다. 여기에서의 不弟는 앞글의 六行 중 友에 해당된다. 그런데 弟가 앞글에서는 睦姻 위에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弟라는 말이 바뀌어서 睦姻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다. 앞에서는 友의 뜻이니 兄弟에 대한 덕목이었을 뿐이었지만, 이 부분에서는 弟의 뜻이 바뀌어서 스승과 어른에 대한 덕목이기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睦姻 아래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姻과 婣은 서로 통한다.)

 

정씨(鄭氏, 鄭玄이나 鄭衆이 아닌 듯하다. 《周禮注疏》나 《禮記正義》에서는 이 말을 찾을 수 없다. 아마 宋儒 중 한 사람인 듯하다.)가 말했다.

 

"형벌로 다스린다는 말의 뜻은(制刑之意) 비천한 사람을 위해서 높은 사람에게 벌을 준다는 것(爲卑者而罪其長)이 결단코 아니다.(終不, 終은 여기서 '절대'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육행 부분에서는(六行則, 六行은 二曰六行 부분을 가리킨다.) 형과 우애를 다지라고 가르치고(敎兄以友), 제형 부분에서는(制刑則, 制刑은 以鄕八刑 부분을 가리킨다.) 부제에 대해(謂之不悌) 어린 사람이 어른을 감히 능멸하지 못하게 하는 것(使少者不敢陵長)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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