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 1 - 입교 2장

2022. 3. 20. 17:38개인 공부(추후 재배치 예정)/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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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2장>

 

內則曰 凡 生子 擇於諸母與可者 必求其寬裕慈惠溫良恭敬 愼而寡言 者 使爲子師

 

「내칙」(內則, 《예기》의 편 이름이다. 內則은 '집 안에서 지켜야 할 법도'라는 뜻이다. 이에 則은 '칙'이라고 읽는다.)에 이런 말이 있다.

 

"대저(凡) 아이를 낳으면(生子), [아이의 유모가 될 사람으로] 제모들이거나(於諸母, 程愈는 諸母를 衆妾, '여러 첩들'이라고 하였다. 與는 여기서는 '또는'이라고 보면 타당하다.) [제모가 아닌 사람 중] 괜찮을 만한(可) 사람(者)을 가려 택하되(擇), 반드시(必) 관유하고(寬裕, '너그럽다'), 자혜로우며(慈惠, '자애롭고 은혜롭다'), 온량하고(溫良, '온화하고 사람됨이 좋다'), 공경스러우며(恭敬, '공경스럽다', '삼가다', 다만 뒤에 愼이 있으므로, '공경스럽다'라고 해야 타당하겠다.), [스스로] 삼가 말이 적은(愼而寡言, 寡는 '적다') 사람(者)을 아이의 유모(子師, 程愈가 인용한 陳氏의 말을 보거나, 혹은 程愈가 婦德 운운한 한 점을 볼 때, 여기서 師는 '글을 가르치는 선비'가 아니라, 갓난아이를 돌보는 '유모'나 '보모'로 보아야 한다. 또, 程愈가 司馬光의 말을 인용한 부분에 司馬光이 乳母 운운한 점을 보아도 이 점은 분명하다.)가 되도록(爲) 해야(使) 한다."

 

 

<소학집설>

 

陳氏曰 "內則 禮記篇名, 言 閨門之內 軌儀 可則也". 諸母 衆妾也. 可者 謂 雖非衆妾而可, 爲子師者 寬裕 慈惠 溫良 恭敬 愼而寡言 者 婦德之純也. 故 使之爲子師 以敎子焉. 司馬溫公 曰 "乳母 不良 非惟 敗亂 家法 兼令 所飼子 類之"

 

진씨(陳氏)가 말했다.

 

"「내칙」은 《예기》의 편(篇) 이름이다. [「내칙」에는] 규문 안의(閨門之內, 閨門은 '부녀자가 기거하는 안방'이므로, 따라서 閨門之內는 '집안'이다.) 궤의(軌儀, 軌는 '수레 바퀴'를 뜻한다. 고대의 수레는 곧 지금의 차와 같은데, 바퀴의 규격이 다르면 도로에서 원활하게 통행할 수 없다. 따라서 軌는 '일정하게 지켜야 하는 규격', 곧 '법도', '제도'를 이른다. 儀도 '거동', '법도'다. 따라서 軌儀도 '법도', '제도'를 뜻한다.) 중 규칙으로 삼을 만한(可則) 것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言)"

 

제모(諸母)는 첩들(衆妾)을 이른다. 가(可)라는 것은, 비록(雖) [유모를] 여러 첩들 중에서 고르지 않더라도(非衆妾) 괜찮다(可)는 말이다. 자식의 유모가 될 사람이(爲子師者) 관유하고, 혜자하며, 온량하고, 경신하며, [스스로] 삼가 말이 적다는 점은(者) [그 사람의] 부덕이 순수하다는(婦德之純, 婦德은 '부녀자의 덕', '부인의 덕') 뜻이다. 그래서(故) 이 사람을(使之의 之) 아이의 유모로 삼게(爲子師) 하여서(使) 아이를 가르치게 하는 것이다.

 

사마온공(司馬溫公, 司馬光을 이른다.)이 말했다.

 

"유모(乳母, 앞의 師와 같다.)가 불량하면(不良), 집안의 법도를 패란시킬(敗亂家法, 敗는 '부수다', '깨뜨리다', 亂은 '어지럽히다', '혼란시키다', 따라서 敗亂은 '어지럽히다', '망치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非惟) 이와 동시에(兼, '겸하다') [자신이] 기르고 있는 아이도 자신처럼(類之, 之는 子, '아이'를 가리킨다. 類는 '같은 부류게 되게 만든다'는 말이다.) [불량하게] 만들어(令은 使, '~하게 하다') 버린다."

 

 

 

 

<입교 2장>

 

子能食食 敎以右手 能言 男唯女兪 男鞶革 女鞶絲

 

아이들이 [스스로] 식사할 수 있게(能食食, 뒤의 食은 '사'로 읽는다. '밥'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食食는 '밥을 먹는다'는 말이 된다.) 되면, [식사를] 오른손으로 하도록(以右手) 가르친다. 말을 할 수 있게 되면(能言) 남자는 '유'하여 대답하게 하고, 여자는 '유'하여 대답하게 한다.(男唯女兪, 吳訥은 唯를 應之速, '빨리 대답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兪를 應之緩, '천천히 대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설문해자》에서는 諾, '대답하다'라고만 되어 있고, 《서》 「우서」의 「요전」에는 帝曰兪, '帝가 兪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도 兪는 '대답하다'는 말로 쓰였다. 唯와 兪는 어쩌면 발음인 '유'를 '대답하는 소리'로 쓰면서 '대답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입교」 이 부분에서도 唯와 兪는 '대답하는 소리'로서 의성어로 사용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의성어라면, 兪가 唯 보다 부드러운 소리일 것이다.) [또] 남자는 반혁(鞶革, 鞶은 '큰 띠'를, 革은 '가죽'을 뜻한다. 따라서 鞶革은 '커다란 가죽띠'다. 아마 허리띠일 것이다.)을 매게 하고, 여자는 반사(鞶絲, 鞶은 '큰 띠'를, 絲는 '명주실'이다. 따라서 鞶絲는 '비단으로 만든 큰 띠'다. 아마 허리띠일 것이다.)를 매게 한다.

 

 

<소학집해>

 

食 飯也. 右手 取其便 男女同也. 唯 應之速, 兪 應之緩, 鞶 大帶也. 革 皮也. 一說, 鞶 小囊 盛帨巾者, 男用 皮, 女用 繒帛, 皆有剛柔之義, 男女異也. 司馬溫公 曰 "子能言 稍有知 則 敎以恭敬尊長 有不識尊卑長幼者 則 嚴訶禁之"

 

(食)는 밥(飯)이다. 오른손으로 하라고 한 것은(右手) 편한 방식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이니(取其便, 便은 '편하다', 오른손잡이가 많으니까, 아마 오른손이 편하다고 일괄 생각하고, 왼손을 쓰는 것은 '불편하다'고 간주하였던 모양이다.), 남자와 여자가 같도록 한다. 유(唯)는 재빨리 대답하는 것(應之速), 유(兪)는 느긋하게 대답하는 것(應之緩)을 이른다. 반(鞶)은 큰 띠(大帶)다. 혁(革)은 가죽(皮)이다. 일설에는(一說), 반(鞶)은 소낭(小囊, '작은 주머니')이니, 세건(帨巾, '수건')을 담아 두는(盛, '담다') 물건인데, 남자는 가죽으로 된 것을 쓰고, 여자는 증백(繒帛, '비단', '견')으로 된 것을 쓴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법도에는(皆) 강유의 의(剛柔之義, 剛은 '굳세다', 柔는 '부드럽다', 각각 남자와 여자를 뜻한다. 남녀 사이의 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가 있기(有) 마련이니, 남자와 여자가 쓸 것을 다르도록(異) 한 것이다.

 

사마온공(司馬溫公, 司馬光을 이른다.)이 말했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작게나마(稍) 식견이 생기니(有知), 이에(則) 존장(尊長, '친척이 아닌 웃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만약 아이가] 존비(尊卑)나 장유(長幼)의 이치를 모르는(不識, '알지 못하다') 경우(者)가 있다면(有), 지엄하게 꾸짖어(訶, '꾸짖다') 그러지 않도록(禁之, 之는 不識尊卑長幼者를 가리킨다. 禁은 '금하다', '금지하다', '못하게 하다'이므로, 이 말은 '不識尊卑長幼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쉽게 말하면, 아이들이 '識尊卑長幼하게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해야 할 것이다."

 

 

<소학집성>

 

顔氏家訓 曰 "敎婦初來 敎兒嬰孩", 故 在 謹其始 此其理也. 若夫 子之初生也, 使之 不知尊卑長幼之禮, 遂 至 侮詈父母 敺擊兄姊, 父母 不知訶禁 反笑而獎之, 彼 旣 未辨好惡 謂 禮當然. 及 其旣長 習已成性, 乃 怒而禁之, 不可 復制. 於是 父嫉其子 子怨其父 殘忍悖逆 無所不至, 此蓋 父母無深識遠慮 不能防微杜漸溺 於 小慈養成其惡故也.

 

《안씨가훈》(顔氏家訓, 본래 남조의 梁나라 사람이었던 顔之推가 쓴 책이다. 顔之推는 梁나라에서 태어나, 北齊와 北周에서 벼슬하고, 마지막에는 隋나라에서 벼슬하다 죽었다.)에 이런 말이 있다.(顔氏家訓 「敎子」에 나오는 말이다.)

 

"며느리는 처음 [시집] 왔을 때 가르치고(敎婦初來, 婦는 '며느리'), 아이는 아주 어릴 때 가르쳐야(敎兒嬰孩, 兒는 '아이', 嬰은 '갓난아이', 孩는 '젖먹이', 따라서 嬰孩는 '아주 어린 모습'이다.) 한다."

 

이처럼(故) [교육이 잘 될지, 안 될지는] 처음 시작할 때 엄하게 하는 바(謹其始, 謹은 '엄하다'는 말이다. 《순자》 「왕제」에서 謹其時禁, '其를 시기에 따라 謹하게 禁한다'라고 하였는데, 楊倞은 謹을 嚴, '엄하다'라고 하였다.)에 달려 있으니, 이것이(此) 가르치는(其, 敎) 원리다.(理) 그런데(若夫), 아이가 처음 태어났는데, 아이에게 존비나 장유에 대한 예(尊卑長幼之禮)를 가르치지 않아서(使之不知, 직역하면 '아이에게 알지 못하게 하다'가 된다. 之는 子, '아이'를 카리킨다.), 끝내는(遂, '드디어', '마침내') 부모를 모리하고(侮詈父母, 侮는 '업신여기다', 詈는 '꾸짖다', '욕하다', 즉 侮詈는 '깔보다'는 말이다.), 형자(兄姊, 姊는 '누나')를 구격(敺擊, 敺는 '내쫓다', '축출하다', 擊은 '치다', 따라서 敺擊은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을 이른다.)하는데도, 부모는 [이런 짓을] 꾸짖거나 막을(訶禁, 訶는 '꾸짖다') 줄도 모르고, 도리어(反) 웃기만 하면서 아이를(之, 子) 칭찬한다면(獎, '칭찬하다', '권면하다'), 아이는(彼, 子를 가리킨다.) 이미(旣) 좋고 나쁜 것도 구별하지 못하면서(未辨好惡) [이런 짓을] 예(禮)에 들어 맞는다(當然)고 여길 것이다.(謂) [그리고] 나중에(旣) 아이가(其, 子) 어른이 되었을 때는(長) [이러한] 습관이(習) 이미(已) [아이의] 성품이 되어 있기에(成性) 이를 터인데(及), 그 때 가서(乃, '이에') 빡쳐서는 이런 습관들을 막으려 한들(怒而禁之, 之는 侮詈父母, 敺擊兄姊 같은 습관을 이른다.), 다시 바로잡을 수(復制, 制는 '바로잡다') 없을 것이다.(不可)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면(於是) 부모는 자기 자식을 미워하고(父嫉其子, 嫉은 '미워하다'), 자식은 자기 부모를 원망하게(子怨其父) 되니, [그 꼴이] 잔인하고 패역하기가(殘忍悖逆, 殘忍은 '인정 없이 모진 모습', 悖逆은 '도리를 거스르는 모습') 비길 데가 없게 될 것이다.(無所不至) 이렇게 되는 것은(此) 대체로(蓋) 부모에게 심식(深識, '탁월한 식견')이나 원려(遠慮, '깊은 생각', '넓은 안목')가 없어서, [자식에 대한] 하찮은 자양 때문에(於小慈養, 慈養은 '자애롭게 키우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감싸 주지 말아야 할 것들을 오냐오냐 해 주는 것'을 이른다.) [문제가] 미세할 때 막지 못하고(防微), [또] 점점 심해질 때 막지 못하여서(杜漸溺, 杜는 '막다', 漸은 '점점', '점차', 溺은 '잠기다'), [끝내는] 자식의 성품을(其는 子의 性을 뜻한다.)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故) 하겠다.

 

 

 

 

<입교 2장>

 

六年敎之數與方名

 

6살이 되면 아이들에게(之, 子)(數)와 방위명(方名)을 가르쳐 준다.

 

 

<소학집설>

 

陳氏曰 數 謂 一十百千萬, 方名 東西南北 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수(數)는 일, 십, 백, 천, 만을 이른다. 방명(方名)은 동, 서, 남, 북을 이른다."

 

 

 

 

<입교 2장>

 

七年 男女不同席 不共食

 

7살이 되면, 남자와 여자는 자리를 같게 앉히지 않고(不同席, 席은 '자리', '앉을 자리'),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不共食, 程愈는 不共器而食, '같은 그릇으로 먹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므로, 共食은 아마 '겸상'을 이르는 말이 아닐까 하다.)

 

 

<소학집설>

 

陳氏曰 不同席而坐 不共器而食 敎之有別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자리를 같게 앉히지 않고, 같은 그릇으로 먹지 않게 하여, [남녀 간에] 구별되는 것이 있다는 점을 가르친다.(敎之有別, 之는 대명사 보다는 조사로 보아야 타당하겠다. 之를 대명사로 보면, 뒤의 有別을 독립된 절처럼 해석해야 한다.)"

 

 

 

 

<입교 2장>

 

八年 出入門戶 及 卽席 飮食 必後長者 始敎之讓

 

8살이 되면, 문호(門戶, '집을 드나드는 문')로 출입하거나(及, '그리고'), 자리에 나아가거나(卽席, 卽은 '자리에 나아가다', '참석하다'), 먹고 마실 때에도(飮食)(必) 어른이 한 뒤에 하도록(後長者) 하니, 처음으로(始) 양보에 대해 가르친다.(敎之讓)

 

 

<소학집설>

 

陳氏曰 耦曰 門, 奇曰 戶. 卽 就也. 後長者 謂 在長者之後也. 讓 謙遜也. 方氏 謂 出入門戶 則 欲其行之讓也. 卽席 則 欲其坐之讓也. 飮食 則 欲其食之讓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문 중에] 짝이 있는 것(耦, '짝')을 문(門)이라고 하고, 한 짝만 있는 것(奇, '홑')을 호(戶)라고 한다. 즉(卽)은 나아가다(就)는 말이다. 후장(後長)이라는 것은 어른의 뒤에(長者之後) 있어야 한다(在)는 말이다. 양(讓)은 겸손(謙遜)이다. 방씨(方氏)는 [이에 대해] '문호로 다닐 때에도(出入門戶) 아이들의 몸가짐을(其行, 其는 아이들을 이른다.) 겸양하게(讓) 만들고자(欲) 하고, 자리에 나아갈 때도(卽席) 아이들이 앉는 모습을 겸양하게 만들고자 하며, 먹고 마실 때에도(飮食)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겸양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입교 2장>

 

九年敎之數日

 

9살이 되면 날짜를 세는 법(數日, 數는 '세다')을 가르친다.

 

 

<소학집설>

 

陳氏曰 數日 知朔望與六甲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수일(數日)은 삭망(朔望, 朔은 '음력 초하루', 望은 '음력 보름', 즉 '날짜'를 뜻한다.)과 육갑(六甲, '육십갑자')을 분별하는 것(知)이다."

 

 

 

 

<입교 2장>

 

十年 出就外傅 居宿於外,  學書計,  衣 不帛襦袴, 禮帥初, 朝夕學幼儀, 請 肄 簡諒

 

10살이 되면, [집을] 나가서 외부(外傅, 傅는 '스승', 外는 아마 '집안 사람이 아닌 사람'을 뜻하는 듯 보인다.)를 따르고(就, '좇다'), [집] 밖에서 거숙하며(居宿, 居는 '살다', 宿은 '자다'), 글씨와 계산법을 배운다.(學書計, 程愈가 陳氏를 인용한 말을 보면, 書를 六書라고 했다. 六書는 六藝의 六書를 이르는 듯하다. 鄭玄은 六書를 象形, 會意, 轉注, 處事, 假借, 諧聲이라고 하였다. 計는 '계산하다'는 말인데, 역시 程愈가 陳氏를 인용한 말을 보면 九數라고 했다. 九數는 《九章算術》을 이른다. 《九章算術》은 前漢 시대에 작성된 수학책이다.) 옷은 비단으로 만든 것이 아니어야 하며(不帛, 帛은 '비단'), 유와 고(襦袴, 襦는 '저고리', 袴는 '바지', 《예기》 「내칙」에는 袴가 褲라고 되어 있다. 의미는 같다.)를 입는다. 예에 대해서는 처음 [배운] 대로 따르고(禮帥初, 帥은 率, '따르다'), [또] 조석으로 유의(幼儀, '어릴 때 따라야 할 거동')를 배우는데, 간량한 것들부터(簡諒, 簡은 '간략하다', 諒은 '신실하다', '어질다', 따라서 簡諒은 '쉽고 신실하다'이다.) 배우기를(肄, '익히다') 청해야 한다.

 

 

<소학집설>

 

陳氏曰, 外傅 敎學之師也. 書 謂 六書, 計 謂 九數, 襦 短衣, 袴 下衣, 不以帛爲襦袴 爲 其太溫也. 禮帥初 謂 行禮動作 皆循習初敎之方也. 幼儀 幼事長之禮儀也. 肄 習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외부(外傅)는 학문을 가르쳐 주는 스승(敎學之師)이다. 서(書)는 육서(六書)를 이른다. 계(計)는 구수(九數, 《九章算術》)를 이른다. 유(襦)는 짧은 옷(短衣)이요, 고(袴)는 아래에 입는 옷(下衣)이다. 유와 고(襦袴)를 비단으로 만들지 않는다(不以帛爲襦袴)는 말은, 유와 고를 비단으로 만들면(其, 以帛爲襦袴) 너무 따뜻하기(太溫, 太는 '심하다') 때문이다. 예솔초(禮帥初)는 예에 따라 행동하되(行禮動作), 전부(皆) 처음에 가르쳐 준 방법(初敎之方)을 익혔던(習) 대로 따르라는(循, '좇다') 말이다. 유의(幼儀)는 아이가 어른을 섬기는(幼事長) 예의(禮儀, '예에 맞는 거동', '예에 맞는 몸가짐')를 이른다. 이(肄)는 익히다(習)는 말이다.

 

 

<소학집성>

 

孔氏曰 "童子 未能致文 故 姑 敎之以簡, 童子 未能擇信 故 且使之守信". 陸氏曰 "請 習 簡而易從, 諒而易知 之事"

 

공씨(孔氏, 孔穎達을 이른다.)가 말했다.

 

"동자(童子)가 아직 글을 쓸 만하지 않다면(未能致文), 이에(故) 먼저(姑, '우선') 간단한 것들을 가르쳐야 하고(敎之以簡), [또] 동자(童子)가 아직 믿을 만한 것[과 못 믿을 만한 것]들을 가려내지 못한다면(未能擇信), 이에(故) 먼저(且, '우선') 동자가(之, 童子) 수신하도록(守信, '절개와 의리를 지키다', '신뢰를 지키다') 시켜야 한다.(使)"

 

육씨(陸氏, 王安石에게서 배운 陸佃을 이른다.)가 말했다.

 

"간단하고 따르기 쉬우며(簡而易從), 신실하여 분별하기 쉬운(諒而易知) 것들부터(事) 익히기를(習) 청해야 한다.(請)"

 

 

 

 

<입교 2장>

 

十有三年, 學樂 誦詩 舞勺. 成童 舞象 學射御

 

13살이 되면(十有三年, 十有三에서 有는 又와 같아서, '또'라는 말이다. 즉, '10 하고도 또 3'이니, 13이 된다.), 악을 배우고(學樂, 程愈가 吳訥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樂을 八音之器, '八音을 내는 악기들'이라고 하였다. 吳訥이 맞다면, 樂은 '음악'이 아니라 악기의 일종일 것이다. 八音은 '여덟 음'이 아니라, '여덟 가지 음색'이다. 金, 石, 絲, 竹, 匏, 土, 革, 木을 이른다.), 시를 외우며(誦詩) 작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한다.(舞勺, 程愈가 吳訥의 말을 인용해 놓은 것을 보면, 勺을 卽酌周頌酌詩, '곧 酌이니, 「周頌」의 「酌」이라는 詩다'라고 하였다. 「酌」은 「周頌 閔予小子之什」에 있는 시다. 그 내용은 周나라의 武王에 대한 칭찬이다.) 성동이 되면(成童, 程愈가 吳訥의 말을 인용해 놓은 것을 보면, 成童을 十五以上, '15살 이상'이라고 하였다.) 상에 맞춰 춤을 추고(舞象, 程愈가 吳訥의 말을 인용해 놓은 것을 보면, 象을 周頌武詩, '「周頌」의 「武」라는 詩다'라고 하였다. 「武」는 「周頌 臣工之什」에 있는 시로, 「酌」처럼 그 내용은 周나라의 武王에 대한 칭찬이다.), 활 쏘는 법과 수레 모는 법을 배운다.(學射御, 射는 '활 쏘기', 御는 '수레 몰기', 모두 六藝에 해당한다. 六藝는 禮, 樂, 射, 御, 書, 數다.)

 

 

<소학집설>

 

吳氏曰 "樂 八音之器也. 詩 樂歌之章也. 勺 卽酌 周頌酌詩也. 舞勺者 歌酌爲節 而 舞, 文舞也. 象 周頌武詩也. 舞象者 歌象爲節 而 舞, 武舞也. 文舞 不用兵器 十三尙幼, 故 舞 文舞也. 成童 十五以上也. 則稍長矣 故舞武舞焉."

 

오씨(吳氏, 吳訥을 이른다.)가 말했다.

 

"악(樂)은 팔음을 내는 악기(八音之器)다. 시(詩)는 악가의 장(樂歌之章, 樂歌는 '악곡에 맞춰 부르는 노래'다.)이다. 작(勺)은 곧 작(酌)이니, 「주송」의 「작」이라는 시(周頌酌詩)다. 무작(舞勺)이라는 것은 박자에 맞춰서(爲節, 節은 '박자') 「작」을 노래하며(歌酌) 춤을 춘다(舞)는 말이다. [이 춤은] 문무(文舞, 죽은 사람의 文德을 칭송할 때 추는 춤이다. 이와 대비되는 말로 武舞가 있다.)다. 상(象)은 「주송」의 「무」라는 시(周頌武詩)다. 무상(舞象)이라는 것은 박자에 맞춰서(爲節, 節은 '박자') 「상」을 노래하면서(歌象) 춤을 춘다(舞)는 말이다. [이 춤은] 무무(武舞, 죽은 사람의 武德을 칭송할 때 추는 춤이다.)다. 문무를 출 때는(文舞) 병기를 쓰지 않는다.(不用兵器, 아마 武舞에는 칼 같은 병기가 쓰이나 보다.) 13살은 또한(尙) 어리므로, 이 때문에(故) 문무를 추게 하는 것이다.(舞文舞) 성동(成童)은 [나이가] 15살 보다 높은(十五以上) 것을 이른다. [15살을 넘으면] 이미(稍, '이미', '벌써') 자란 것이니(長), 따라서(故) 무무를 추게 하는 것이다.(舞武舞)"

 

 

<소학집해>

 

張子曰 "古者, 敎童子 先以舞者 欲柔其體也. 心下 則 氣和, 氣和 則 體柔. 古者 敎冑子 必以樂者 欲其體和也. 學者, 志則欲立 體則欲和也."

 

장자(張子)가 말했다.

 

"옛날에 동자(童子)를 가르칠 때는, 먼저 춤을 가르쳐서(以舞者, '춤으로써') 몸을 유연하게 만들고자(欲柔其體, 柔는 '부드럽다') 하였다. 심하하면(心下, 아마도 '마음이 이완된다', '마음이 안정된다'는 말로 보인다.) 기화하게(氣和, 아마 '기가 조화를 이룬다'는 말로 보인다.) 되고, 기화하면 몸이 유연해진다.(體柔) [또한] 옛날에 주자(冑子, '제왕이나 경, 대부의 맏아들')를 가르칠 때는 반드시 음악을 가르쳐서(以樂者, '음악으로써') 몸이 조화를 이루게 만들고자(欲其體和) 하였다. [이처럼] 배우는 자의(學者) 뜻은 세우고, 몸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려(欲) 하였다."

 

 

 

 

<입교 2장>

 

二十而冠, 始學禮 可以 衣裘帛 舞大夏 惇行孝悌 博學不敎 內而不出

 

20살이 되면 관례를 올리니(冠, '관례'), 비로소(始)(禮, 吳訥은 五禮라고 하였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 禮는 일반적인 '예법'과는 다를 것이다.)를 배운다. 갖옷이나 비단옷을 입어도 좋다.(可以衣裘帛, 可以는 '~해도 좋다', '~할 수 있다', 裘는 '갖옷', 帛은 '비단'인데, 裘와 병치되어 있으므로 '비단옷'이라고 봐야 하겠다.) [이 나이가 되면] 「대하」에 따라 춤을 추고(舞大夏, 大夏는 禹가 만든 음악의 이름이다.), 효제를 돈독히 실천하며(惇行孝悌, 惇은 '도탑다'), 넓게 배우되(博學) [아직 남을] 가르치지는 않아야 하니(不敎), [학식을 안에] 품고 있기만 하지,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內而不出, 內는 納, '간직하다', '들여 놓다'라고 봐야 할 듯하다.)

 

 

<소학집해>

 

冠 加冠也, 始學禮 以冠者成人 兼習五禮也. 裘 皮服. 帛 繒帛. 大夏 禹樂, 樂之文武兼備者也. 惇 厚也. 博 廣也. 不敎 恐所學未精, 不可以爲師而敎人也. 內而不出 言 蘊蓄其德美於中 而 不自表見其能也.

 

(冠)은 [관례를 치른 뒤에] 관을 쓴다(加冠)는 말이다. [관을 쓴 뒤에야] 비로소 예를 배운다(始學禮)는 말은, 관을 쓰는 것으로(以冠者) 성인(成人)이 되는데, [성인은] 오례(五禮, 六藝 중 하나인 禮를 이른다. 禮에는 吉禮, 凶禮, 軍禮, 賓禮, 嘉禮의 다섯 종류가 있기 때문에 五禮라고 한 듯하다.)를 함께 익혀야 한다는 점을 이른다. 구(裘)는 가죽옷(皮服)이다. 백(帛)은 비단옷(繒帛, '견직물', '비단', 여기서는 '비단옷'을 이른다.)이다. 대하(大夏)는 우의 음악(禹樂)인데, 문무를 겸비한(文武兼備) 사람의 음악이다. 돈(惇)은 두텁다(厚)는 말이다. 박(博)은 넓다(廣)는 말이다. 불교(不敎)는 배운 것(所學)이 아직 면밀하지 않아서(未精, 精은 '면밀하다') 스승으로써 남을 가르칠 만하지 않다(不可以爲師而敎人, 不可以는 爲師而敎人 전체를 받는다.)는 말이다. 내출불입(內而不出)은 자신의 덕과 미를(其德美) [마음] 속에(中) 온축해(蘊蓄, 두 글자 모두 '쌓다'는 말이다.) 두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其能) 스스로(自) 겉으로 드러내지(表見, 見은 '현'으로 읽는다. '드러내다'는 뜻이다.) 않는다는 말이다.(言)

 

 

 

 

<입교 2장>


三十 而有室 始理男事 博學無方 孫友視志

 

30살이 되면, [규]실을 두고(有室, 室은 '아내'다. 吳訥이 陳氏의 말을 인용하기를, 室은 妻, '처'와 같다고 하였다.), 처음으로(始) 남사(男事, 吳訥이 陳氏의 말을 인용하기를, 男事를 受田/給政役, '전지를 받아서 政役에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하였다. 政役은 아마 賦役을 이를 것이다. 成百曉는 '軍役과 力役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으나, 政을 征으로 보고 征役, 즉 賦役으로 봐야 타당하겠다'라고 하였다.)를 다스려야(理) 한다. 넓게 배우고 자유롭게 배우며(博學無方, 吳訥이 인용하기를, 陳氏는 方을 常과 같다고 보았다. 여기서 常은 '일정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無方은 무슨 말일까. 지금까지는 스승 밑에서 교육 과정에 따라 일정하게, 즉 常하게 배웠으므로,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완전히 상반되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순자》의 「대략」에 多知而無親/博學而無方/好多而無定者/君子不與, '多知하되 親하지 않고, 博學하되 方하지 않고, 好多하되 無定한 사람은 君子가 함께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구문 중 博學而無方의 方에 대해, 楊倞은 法, '법도'라고 하였다. 그러면 博學而無方은 '박학하되 법도를 따르지 않는다'라는 뜻이 된다. 「대략」의 이 문구는 아마도 《예기》 「내칙」에서 따 온 것일 텐데도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方은 의미가 많은 글자로, '법도'라는 의미도 있고, '일정한 경지'라는 의미도 있는데, 법을 뜻하는 法과, 일정한 경지를 뜻하는 常이 또 통한다. 常에는 '일정한 도덕', '일정한 법칙'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즉, 方을 본래 常의 의미로 썼는데, 이를 法으로 혼동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자》 「대략」의 이 문구는, 이런 식으로 글자와 의미가 꼬이다 보니, 의미가 원전과는 정반대로 꼬이게 되지 않았나 하다.), 친구를 따를 때에는 [친구될 사람의] 뜻을 [먼저] 살펴야 한다.(孫友視志, 孫은 順, '따르다')

 

 

<소학집해>

 

陳氏曰 "室 猶妻也. 男事 受田 給政役也. 方 猶常也. 遜友 順交朋友也. 視志 視其志意所尙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실(室)은 처(妻)와 같다. 남사(男事)는 전지를 받아서(受田) 정역(政役, 政은 征, '구실', '세금'을 뜻한다. 따라서 政役은 '세금과 부역'이다.)에 힘을 보탠다(給, '공급하다', '더하다', '보태다')는 말이다. 방(方)은 일정하다(常)는 말과 같다. 손우(遜友)는 붕우를 따르다(順交朋友)는 뜻이다. 시지(視志)는 드높은(所尙) 지의(志意)를 살핀다(視)는 말이다."

 

 

<소학증주>

 

博學無常 惟善是師, 遜友視志 惟善是取

 

박학하되 일정한 경지에 머무르지 않으면서(博學無常) 오직(惟)(善)을 스승으로 삼고(是師, 是는 '~이다'), 친구를 사귈 때는 [그] 뜻을 살피면서(遜友視志) 오직 선[한 점](善)을 취해야 한다.(是取)

 

 

 

 

<입교 2장>

 

四十 始仕, 方物 出謀 發慮, 道合則服從 不可則去

 

40살이 되면 비로소(始) 출사하여(仕), 일에 대해(方物, 程愈가 인용하기를, 朱熹는 方을 對, '대하다', 物은 事, '일', '사건'이라고 했다고 한다. 朱熹를 따르면 方物은 對事, '일에 대하여'라는 말이 된다.) 계책을 내고(出謀), 의견을 개진하여(發慮), 도리에 합당하면(道合) [계속 그 일을] 좇을 것이요(服從, '복종하다', '좇다', '따르다'), [도리에] 타당하지 않으면(不可) [자리를 버리고] 떠나야(去) 한다.

 

 

<소학집설>

 

朱子曰 "方 猶對也. 物 猶事也, 隨事謀慮也.

 

주자(朱子, 朱熹를 이른다.)가 말했다.

 

"방(方)은 대하다(對)와 같고, 물(物)은 일(事)과 같으니, [방물은] 일에 따라(隨事) 계책이나 의견을 낸다(謀慮)는 말이다."

 

 

<소학집해>

 

方氏曰 "服 謂服其事, 從 謂從君也."

 

방씨(方氏)가 말했다. "복(服)은 그 일을 좇는 것(服其事)을 이른다. 종(從)은 군주를 따르는 것(從君)을 이른다."

 

 

 

 

<입교 2장>

 

五十 命爲大夫 服官政 七十致事

 

50살이 되면 명을 받아(命) 대부가 되어서(爲大夫), 관정(官政)에 종사해야(服, '좇다', '일하다', '처리하다', 吳訥이 인용하기를, 陳氏는 任, '맡다'라고 했다고 한다.) 한다. 70살에는 치사한다.(致事, 여기서 致는 '반납하다'는 말이다. 鄭玄은 致事를 還君事, '군주에게 일을 되돌려 준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致事는 '일을 반납하다', 즉 '사직하다'는 뜻이다.)

 

 

<소학집설>

 

陳氏曰 "服 猶任也. 上言 仕者 爲士 以事人 治官府之小事也. 此言 服官政者 爲大夫 以長人 與聞 邦國之大事者也. 致事 謂致還其職事於君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복(服)은 맡다(任)는 말이다. 앞의 구절에서(上言, 40살에 대한 문구를 이른다.)(仕)라는 것은, 사가 되어서(爲士) 다른 사람을 섬기며(事人) 관부(官府)의 작은 일들을 처리한다(治)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此言) 복관정(服官政)이라고 한 것은 대부가 되어서(爲大夫) 어른으로써(以長人) 방국의 대사(邦國之大事, 邦과 國은 모두 '나라'를 뜻한다.)에 참여하는(與聞, '참여하다') 것을 이른다. 치사(致事)는 자기 직위와 일을(其職事) 군주에게(於君) 되돌려 주는 것(致還)을 이른다."

 

 

 

 

<입교 2장>

 

女子 十年 不出. 姆敎婉娩聽從, 執麻枲, 治絲繭, 織紝組紃, 學女事 以共衣服, 觀於祭祀 納酒漿 籩豆醢 禮相助奠.

 

여자(女子)는 10살이 되면 [집을 함부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不出) 보모(姆, '보모', 程愈가 陳氏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姆를 女師, '여자 스승'이라고 하였다. '보모'라는 말이 옛날에는 이런 뜻으로 사용되었던 모양이다.)는 [여자에게] 완면함(婉娩, 婉은 順, '순하다', 娩은 '유순하다', '순박하다', 즉 婉娩은 '순하다'는 말이다. 鄭玄은 婉을 貌, '용모에 대한 말'이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按九嬪注云//婦德貞順/婦言辭令/婦容婉娩/婦功絲枲//則婉娩合爲婦容, '「九嬪」의 注를 살펴 보면, "婦의 德은 貞順해야 하고, 婦의 말은 辭令해야 하며, 婦의 용모는 婉娩해야 하고, 婦의 일은 絲枲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에 따라 婉娩는 모두 婦의 용모에 대해 이야기 한 말이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한편 程愈가 陳氏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婉은 言語, '말'에 대한 말, 娩은 容貌, '용모'에 대한 말이라고 하는데, 《설문해자》에는 婉만 順, '순하다'라고 하였을 뿐, 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옛날에는 용모에 대한 말로 쓰였고, 훨씬 나중에 말과 용모로 구별된 듯하다. 나는 孔穎達을 따른다.)과 [말을] 들으면 따를 일(), 마와 시로 길쌈하는 일(執麻枲, 두 글자 모두 '마'를 뜻한다. 그런데 程愈가 陳氏의 말을 인용한 말을 보면, 陳氏는 枲를 麻之有子, '麻에 씨가 있는 것'이라고 하여 麻와 구분하였고, 執은 麻枲績事, '麻와 枲로 길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따른다.), 사와 견을 치는 일(絲繭, 絲는 '생사'다. '생사'는 아직 '삶기 전의 명주실'을 이른다. 繭은 '누에 고치'다. 생사와 고치가 있으면, 이를 '쳐야' 한다. 따라서 治는 '치다'는 말이다. 아마 '기른다'는 뜻인 듯하다.), 비단과 천, 끈을 짜는 일(織紝組紃, 의견이 다양하게 있다. 鄭玄은 紃絳, '紃은 絳이다'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組紃俱爲絳也//紝爲繒帛/故杜注左傳//紝謂繒帛//皇氏云//組是綬也//然則薄闊爲組/似繩者爲紃, '組와 紃은 모두 絳하는 것을 이른다. 紝은 繒帛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좌전》에 대 杜預가 "紝은 繒帛을 이른다"라고 주를 달았던 것이다. 皇侃은 "組는 끈이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얇고 넓게 짠 것을 組라고 하고, 노끈처럼 짠 것을 紃이라고 하겠다'라고 하였다. 鄭玄의 注에서 絳은 '솔기'다. 《설문해자》에서 絀을 絳이라고 하였는데, 絀은 '꿰메다', '꿰멘 부분', 즉 '솔기'다. 따라서 絳도 '솔기'라고 보아야 한다. 즉, 孔穎達을 따르면, 紝은 繒帛, 즉 '비단'이나 '견직물'을, 組는 '천'을, 紃은 '끈'을 이른다. 織만 '짜다'는 뜻의 술어다. 한편 程愈가 陳氏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組亦織, '組도 짠다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므로, 孔穎達과는 다르다. 그러면 鄭玄은 紃을 '솔기'라고 하였는데, 孔穎達은 '끈'이라고 했다. 왜 다를까. 이에 대해서는 程愈가 陳氏의 말을 인용한 것에, 紃/似絛/古人以置諸冠服縫中者, '紃은 끈과 비슷한데, 옛 사람들이 관복의 솔기 중간에다가 달던 끈이다'라고 한 말을 참고할 만하다. 나는 鄭玄과 孔穎達을 따른다.) 같은 여자가 할 일(女事)을 배우게(學) 해서, 의복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보태게(共衣服, 共은 供, '이바지하다', '도움을 보태다') 해야 한다. [또] 제사 지내는 것을 살피면서(觀於祭祀) [제상에] 술과 장(酒漿, 漿은 원래 '즙'이나 '음료수'를 뜻한다. 程愈는 陳氏의 말을 인용해서 醋水, '식초'라고 하였다.)을 올리고(納, '바치다'), 변과 두에(籩豆, 모두 '제기'의 일종이다. 《설문해자》에서 豆를 古食肉器, '옛날에 먹을 고기를 담아 두던 그릇'이라고 하였고, 《爾雅》의 「釋器」에서는 木豆/謂之豆, '나무로 만든 豆를 豆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爾雅》의 「釋器에서는 竹豆/謂之籩, '대나무로 만든 豆를 籩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제사 이야기가 나오므로, 籩과 豆는 모두 제기로 해석해야 하는데, 상기한 것처럼 용도나 재질이 서로 달랐던 모양이다.) 저와 해를(醢, 《설문해자》에서는 菹를 酢菜, '나물에다가 식초를 버무린 것'이라고 했다. 《설문해자》에서는 또, 䓜를 菹라고 하기도 했는데, 䓜는 '김치'다. 菹는 즉, '야채로 만든 젓갈'이라고 하겠다. 또 《설문해자》에서는 醢를 肉𨡓, '고기로 담근 장'이라고 하고, 또 𧗎를 醢라고 하기도 했는데, 𧗎는 '젓갈'이다. 따라서 醢는 '고기로 만든 젓갈', '고기로 담근 장'이다. '장조림' 같은 것을 이르는 것 같다.) 올려야 하니, [이로써] 예에 맞게 [음식을] 올릴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禮相助奠, 奠은 '제사를 지내다', '제물을 올리다')

 

 

<소학집설>

 

陳氏曰 "不出 常處於閨門之內也. 姆 女師也. 婉 謂言語. 娩 謂容貌. 司馬公云 柔順貌, 此敎以女德也. 枲 麻之有子者. 執 麻枲績事也. 治 絲繭蚕事也. 紝 繒帛之屬. 組 亦 織也. 紃 似絛 古人以置諸冠服縫中者. 此敎之學女事也. 納 進也. 漿 醋水. 竹 曰籩. 木 曰豆. 淹菜 曰. 肉醬 曰醢. 奠 薦也. 禮相助奠 謂 以禮 相長者而助 其奠. 此 敎以祭祀之禮也.

 

진씨(陳氏)가 말했다.

 

"불출(不出)은 항상(常은 恒) 규문 안에(閨門之內) 있어야(處) 한다는 말이다. 모(姆)는 여스승(女師)이다. 완(婉)은 언어(言語)에 대해 이르는 말이고, 면(娩)은 용모(容貌)에 대해 이르는 말인데, 사마공(司馬公, 아마 司馬光을 이를 것이다.)은 '유순한 모습(柔順貌)'이라고 하였으니, 이 말들은(此, 婉과 娩에 대한 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여자의 덕을 가르치기(敎以女德) 위한 글이다. 시(枲)는 마에(麻之, 麻는 '마', '삼', '삼베') 씨가 있는(有子, 子는 식물의 '자식'이므로 '씨앗'이 되어야 한다.) 것을 이른다. 집(執)은 마시(麻枲)로 길쌈하는(績, '길쌈하다', '실로 옷감을 만드는 것') 일을 이른다. 치(治)는 사견(絲繭, 絲는 '생사', 繭은 '고치', 즉 絲繭은 '누에고치'다.)과 누에(蚕은 蠶, '누에')를 치는 일(事)을 이른다. 임(紝)은 증백 같은 부류(繒帛之屬, 繒帛은 '견직물')이다. 조(組) 또한 짠다는 말이다.(組亦織)(紃)은 끈(絛, '끈', '줄')과 비슷한(似) 것이다. 옛 사람들은 천(紃)을 관복들의 솔기 중간에다(諸冠服縫中, 諸는 之於의 줄임말로, '~에'라는 말이다. 縫은 '솔기', '꿰맨 부분'이다.) 달았다.(置, '두다') 이 말들은(此) 여자가 배워야 할 일(學女事, '배워야 할 여자의 일')을 가르친(敎) 글이다. 납(納)은 나아가다(進)는 말이다. 장(漿)은 초수(醋水, 醋는 '식초', 따라서 醋水는 '식초를 탄 물' 또는 '식초'를 이른다.)다. [제기 중] 대나무로 된 것(竹)을 변(籩)이라고 하고, 나무로 된 것(木)을 두(豆)라고 한다. [젓갈 중] 채소를 담근 것(淹菜, 淹은 '담그다', 菜는 '채소')을 저(菹)라고 하고, 육장(肉醬, 醬은 '장', '장조림')을 해()라고 한다. 전(奠)은 바치다(薦, '올리다', '바치다')는 말이다. 예에 따라 서로 도우며 올린다(禮相助奠)는 말은, 예로써(以禮) 서로 어른을 돕우면서(長者而助), [제상에] 음식을(其, 菹나 醢 등을 가리킬 것이다.) 올리는(奠) 것을 이른다. 이 말들은(此) 제사 지낼 때의 예(祭祀之禮)를 가르친 말이다."

 

 

<소학집해>

 

司馬溫公曰 "女子 六歲 可習 女工之小者. 七歲 誦 孝經 論語 列女傳 之類, 略曉大意, 蓋 古之賢女 無不觀圖史以自鑑戒. 如 蚕桑 績織 裁縫 飮食 之類, 不惟 正是其職, 盖 必 敎之 早習, 使 知 衣食所來之艱難 而 不敢爲奢靡焉. 若夫 纂繡 華巧 之物 則 不必習也." 愚謂 小學之道 在於早諭敎, 蓋 非唯男子爲然 而 女子亦莫不然也. 故 自能言卽 敎以 應對之緩. 七年 卽 敎以 男女異席 而 早其別. 八年 卽 敎以 出入飮食之讓. 至于十歲 則 使不出閨門 朝夕聽受姆師之敎, 敎以 女德, 敎以 女工, 敎以 相助祭祀之禮, 凡 所聞見 無一不出于正 而 柔順貞靜之德 成矣. 迨夫 旣 笄而嫁, 故 能助相君子 而 宜其家人. 豊城 朱氏 所謂 孝不衰於舅 姑敬不違於夫子 慈不遺於卑幼 義不咈於夫之兄弟 而 家道成矣. 世變日下 習俗日靡 閨門之內至, 或 敎之習俗樂攻歌曲 以蕩其思, 治纂組事華靡 以壞其質, 養成驕恣妬悍之性 以敗人之家 殄人之世者 多矣. 嗚呼, 配匹之際 生民之始 萬福之原 爲人父母 可不戒哉.

 

사마온공(司馬溫公, 司馬光을 이른다.)이 말하였다.

 

"여자는 6살이 되면, 여자가 할 일 중 작은 것들(女工之小, 工은 '일', '재주', '기능'이다. 따라서 女工은 '여자가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을 배울(習) 수 있다. 7살이 되면 《효경》(孝經), 《논어》, 《열녀전》 같은 책들을 외워서(誦), [그 책들의] 큰 뜻을(大意) 대체적으로(略, '대략') 깨우쳐야(曉, '깨우치다') 한다. 대체로(蓋) 옛날 현명한 여자들은(賢女) 서적이나 역사서들을(圖史, 圖는 '서적') 보고 자신의 감계로 삼지(自鑑戒, 鑑은 '비추어 보다', 戒는 '경계하다')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如) 잠상을 치거나(蚕桑, 蚕은 '누에', 桑은 '뽕나무') 길쌈이나 천을 짜는 일(績織, 績은 '길쌈하다', 織은 '천을 짜다'), [옷감을] 마르거나 꿰메는 일(裁縫, 裁는 '옷감을 마르다', 縫은 '꿰매다'), 음식을 마련하는 일(飮食) 같은 부류(類)는 바로(正, '마침', '딱', '바로') 여자의 직분(其職, 其는 女, 職은 '직분', '직무')이다.(是, '~이다') [그런데] 또한(不惟,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들을 [여자들에게] 대개(盖) 반드시(必) 가르쳐서(敎之, 之는 蚕桑績織裁縫飮食之類) 어릴 때 익히게 하는데(早習, 早는 '이르다'), 옷이나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衣食所來) 간난하다(艱難, 두 글자 모두 '어렵다'는 말이다.)는 점을 알게 하여서(使知), 감히 사미하지(奢靡, 奢는 '사치하다', 靡는 '호사하다', 따라서 奢靡는 '사치하다', '낭비하다'는 말이다.) 않게 하기(使) 위해서이다. 그러나(若夫) [이 일들에 비해] 찬수처럼(纂繡, 두 글자 모두 '수를 놓다'는 말이다.) 화교한 일들(華巧, 華는 '화려하다', 巧는 '예쁘다')은 반드시 익힐 필요는 없다."

 

[내가] 어리석은 견해로 생각하건대(愚謂, 여기서 愚는 「소학집설」을 지은 程愈 자신을 이른다.), 「소학」의 도리는 [사람들을] 어린 나이에(早) 유교하는(諭敎, 諭는 '깨우치다', 敎는 '가르치다', 즉 諭敎는 '가르치다'는 말이다.) 데 [초점이] 있으니(在), [그 내용을 살피자면] 대개(蓋) 남자에게 타당한 내용(男子爲然, 爲然은 '그러하게 여기다', '옳다고 여기다', 여기서는 '적당한 내용', '타당한 내용'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만인(唯) 것은 아니고(非), 여자에게도 또한 타당하다(莫不然, '그러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타당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하겠다. 그래서(故)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自能言, 自는 '~로부터') [남에게] 응대하는 법을 천천히 가르치고(敎以應對之緩, 緩은 '느리다', 직역하면 '가르치기를 응대하는 법을 천천히 하는 것으로써 한다'가 되겠다.), 7살이 되면 남자와 여자를 다른 자리에 앉게 해서(男女異席), 남자와 여자 사이에 구별이 있다는 점을(其別, 其는 男女) 빨리(早) 가르친다. [또] 8살이 되면 [집을] 출입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양보하는 법(出入飮食之讓)을 가르치고, 10살이 되기까지는(至于十歲) 규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不出閨門) 하되, 조석으로(朝夕) 모사(姆師, 본문에 나왔던 '여스승'이다.)에게 가르침을 듣도록(聽受) 해야 하니, [모사는 아이에게] 여자의 덕을 가르치고(敎以女工), 여자의 일을 가르치며(敎以女工), 제사의 예법을 이행하는 데 [어른과] 서로 돕도록 가르친다.(敎以相助祭祀之禮) 무릇(凡) [이렇게] 듣고 보[면서 배우]는 바(所聞見)가 올바른 도리에서(于正) 나오지 않는 경우가 하나도 없으니(無一不出), [여자 아이는] 유순하고 정정한 덕(柔順貞靜之德, 柔順은 '유순하다', 貞靜은 '올곧고 정숙하다')을 갖추게(成) 되니, 이윽고() 비녀를 꽂을(笄, '비녀', '비녀를 꽂다') 정도로 크면(迨夫, 迨는 '이르다'는 말이다. 夫는 迨를 강조는 어기사로 보인다.) 시집을 갔다.(嫁, '시집 가다') 그래서(故) [결혼한] 군자와 서로 도우며(助相君子, 君子는 여기서 '남편'을 뜻하는 듯하다.) 시댁 사람들과(其家人, '그 집안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宜, '화목하다', '화순하다') 수(能) 있는 것이다. 풍성 주씨(豊城朱氏)가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효도하기를 못하지 않고(孝不衰於舅姑, 衰는 '쇠하다', 舅는 '시아버지', 姑는 '시어머니'), 서방님을 공경하기를 어긋나게 하지 않으며(敬不違於夫子, 敬은 '공경하다', '삼가다', 違는 '어긋나다', 夫子는 '남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항렬이] 낮은 사람이나 어린 아이에게도 자애를 아끼지 않고(慈不遺於卑幼, 遺는 '남기다', 즉 不遺는 '남기지 않는다', '아낌 없이 한다'는 말이다. 幼는 '어린 아이'고, 卑는 '항렬이 낮은 사람', 즉 卑幼는 '자신 보다 낮은 사람'을 뜻한다.), 남편의 형제들에게도 [행실을] 올바르게 하기를 어기지 않으면(義不咈於夫之兄弟, 咈는 '어기다') 집안의 도리가 이루어지리라(家道成矣)라고 하였던 바와(所謂) 같다. [그런데] 세상이 나날이 비루하게 변해가고(世變日下, 下는 '낮다'는 말로, 卑와 같다고 보아야 하겠다.), [사람들의] 습속도 나날이 쇠미해지니(習俗日靡, 靡는 '쓰러지다', 靡를 '사치하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겠다. 나는 '쓰러지다'로 보았다.), [이런 현상이] 규문 안에까지 이르러서(閨門之內至), 간혹 [여자에게] 악기를 두드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습속을 가르쳐서 여자들의 생각을 방탕하게 만들고(以蕩其思, 其는 閨門之內 혹은 女를 가리킨다.), [좋은 비단을 가지고] 찬수하는 일을 익히고(治纂組, 治는 '일을 익히다', 纂은 '수를 놓다', 組는 '직물을 짜다'는 말이다. 《한서》 「경제기」에 錦繡纂組/害女紅者也, '錦繡에다 纂組하는 일은 女紅을 망치는 짓이다'라는 말이 있다. 錦繡는 '화려한 직물' 또는 '비단'을 이른다. 女紅은 女功과 같아, '여자의 일', '여자의 직분'을 뜻한다. 「경제기」나 이 부분에 나온 纂組는 문맥상 '사치하는 일'의 범주에 들어간다. 본문에서 奢靡라고 한 것과 같다 하겠다.) 화미한 일을 시켜서(事華靡, 華는 '화려하다', 靡는 '사치하다', 事는 '일을 시키다') 여자들의 본바탕을 무너뜨리고는(以壞其質, 質은 '바탕', 其는 閨門之內 혹은 女를 가리킨다.), 교자하고 투한한 성품을 길러내(養成驕恣妬悍之性, 驕는 '교만하다', 恣는 '방자하다', 따라서 驕恣는 '교만하고 방자하다'는 말이다. 妬는 '샘내다', '질시하다', 悍은 '사납다', 따라서 妬悍은 '사납게 투기하다'는 말이다.) 남의 집안을 망치고(敗人之家) 남의 대를 끊는(殄人之世, 世는 '대를 잇다'라고 할 때의 '대'다. 殄은 '끊다'는 말이다.) 경우가 많다.(吳訥이 '남의 집안을 망친다'라고 하거나, '남의 대를 끊는다'라고 한 이유는 여자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생긴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嗚呼), 배필을 얻[어서 혼인하]는 일은(配匹之際, 際는 '즈음', '때'이지만, 나는 '일'로 의역하였다.) 백성들이 태어나는 시원[적 사건]이니(生民之始, 生民은 '백성을 낳다', '백성이 태어나다'), 온갖 복의 근원이로다.(萬福之原) [그러니] 부모들이(爲人父母, '부모된 자들은') [이 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可不戒哉)

 

 

 

 

<입교 2장>

 

十有五年 而 笄, 二十 而 嫁, 有故 二十三 而 嫁

 

15살이 되면 비녀를 꽂고(笄, '비녀를 꽂다'), 20살이 되면 시집간다.(嫁) [다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이 있다면(有故, 鄭玄은 故를 父母之喪, '부모의 상'이라고 하였다.) 23살에 시집을 간다.

 

 

<소학집설>

 

陳氏曰 "笄 簪也, 婦人 不冠 以簪 固䯻而已 故曰笄. 故 謂 父母之喪"

 

진씨(陳氏)가 말했다.

 

(笄)는 비녀를 꽂는다(簪)는 말이다. 부인(婦人, '결혼한 여자')은 관을 쓰지 않고 비녀를 가지고(以簪) 머리를 묶어둔 것을 고정해(固䯻, 固는 '단단히 하다', '고정하다', 䯻는 원래 '상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머리를 묶어 둔 것'을 뜻한다. 《설문해자》에서 䯻를 緫髮이라고 하였는데, 髮은 '머리카락'이고, 緫은 '묶다'는 말이다.) 둘 뿐이니, 그래서(故)(笄)라고 한 것이다. 고(故)는 부모의 상(父母之喪)을 뜻한다.

 

 

 

 

<입교 2장>

 

聘則 爲妻, 奔則 爲妾

 

찾아가서 처로 삼고(聘則爲妻, 聘은 '찾아 가다', '안부를 묻다', 鄭玄은 聘/問也//妻之言齊也/以禮則問/則得與夫敵體, '聘은 방문하다는 말이다. 妻는 동등하다는 말이니, 예를 갖춰 방문하여 남편과 대등한 입장이 된다'라고 하였다.), 달려 가서 첩으로 삼는다.(奔則爲妾, 奔은 '빨리 가다', '달려 가다', 鄭玄은 妾之言接也//聞彼有禮/走而往焉/以得接見於君子也//奔/或爲衒, '妾은 가까이 하다는 말이다. 저쪽 집에 예를 갖춰 묻고는, 달려서 간다. 妾은 君子를 가까이 할 수 있다. 奔은 간혹 衒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달려 가서 맞이하기 때문에 奔이라고 한 듯하다.)

 

 

<소학집해>

 

妻 之爲言齊也 以禮聘問 而 得 與夫敵體也. 奔 趨也. 妾 之爲言接也. 得接見君子 而 不得伉儷也.

 

처(妻)는 동등하다는 말이다.(爲言齊) 예를 갖춰 빙문하[여 혼인하]니(以禮聘問, 聘問은 '예를 갖춰 방문하는 것'), 남편과 대등한 입장(與夫敵體, 夫는 '남편', 敵은 '대적하다', '대등하다')이 된다. 분(奔)은 달려 가다(趨)는 말이다. 첩(妾)은 가까이 하다는 말이다.(爲言接) 첩은 군자를 만날(接見君子) 수는 있지만(得), 항려가 될 수는 없다.(不得伉儷, 伉과 儷는 모두 '짝'으로, '부부'를 뜻한다. 즉, 妾은 와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소학집주>

 

奔 非失禮. 只 是分卑耳.

 

(奔)은 예를 갖추지 못했다는(失禮) 말이 아니다.(非)(是, 奔을 가리키는 듯하다.)은 다만(只) 신분이(分) 낮을(卑)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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