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0. 11:48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1년 8월 12일 9시 53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8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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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07
장자 내편 - 6 - 대종사 - 9 - 자여가 자상을 문병하다(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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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6-9
子輿與子桑友,而霖雨十日,
子輿曰:「子桑殆病矣!」
裹飯而往食之。至子桑之門,則若歌若哭,鼓琴曰:「父邪!母邪!天乎!人乎!」
有不任其聲而趨舉其詩。焉子輿入,曰:「子之歌詩,何故若是?」
曰:「吾思夫使我至此極者而弗得也。父母豈欲吾貧哉?天無私覆,地無私載,天地豈私貧我哉?求其爲之者而不得也。然而至此極者,命也夫!」
자여와 자상은 친구였다. 장마가 열흘이나 이어지자 자여가 말했다. 1
"자상은 [가난하니] 십중팔구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2
[그러고는] 먹을 것을 싸 가지고 자상을 먹이러 갔다. [그런데] 자상네 집 문으로 들어가려 하니, 노래 같기도 하고, 곡소리 같기도 한 것이 거문고 소리와 함께 들려 왔다. 3 4
"아버지 때문인가, 어머니 때문인가, 하늘 때문인가, 사람 때문인가." 5
[하지만 자상은] 자기가 내는 소리조차 감당하지 못해서 부르던 시를 [노래 같지 않게] 급하게 읊조릴 뿐이었다. 자여가 들어가서 말했다. 6 7
"내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가 [나를] 이리도 극심한 지경에 몰아 넣었는지를 정말 모르겠다. [나의 부모 때문일까. 그러나 내] 부모가 어찌 나를 가난하게 만들고 싶어 했겠느냐. [그러면 천지일까.] 하늘은 [만물을] 사사롭게 감싸 주거나 [감싸 주지 않거나] 하지 않고, 땅도 [만물을] 사사롭게 지탱해 주거나 [지탱해 주지 않거나] 하지 않으니, 천지에게 어찌 사사로운 뜻이 있어서 나를 가난하게 만들려 했겠느냐.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를 [이런 식으로 골몰하고 또] 골몰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극심한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은 [도가 내린 운]명인가 보다." 10
- 子輿與子桑友//而霖雨十日//子輿曰, ◈ 子輿는 사람 이름이다. 아마 子祀 이야기에 나오는 子輿와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 與는 '{...}'다. ◈ 子桑은 사람 이름이다. 그러나 앞에 나왔던 子桑戶와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子桑은 {...}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 友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나는 '{...}'처럼 의역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霖雨는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霖은 '{...}'를 뜻한다. 《說文解字》 「雨部」에는 霖/雨三日已往//从雨林聲, '{...}'라고 되어 있다. 《春秋》 「隱公」 9년에 三月癸酉/大雨震電/庚辰/大雨雪, '{...}'라는 말이 있는데, 《春秋左氏傳》에서는 이에 대해 凡雨/自三日以往爲霖/平地尺爲大雪, '{...}'라는 말이 있다. 이에 더해서, 《書》 「商書 說命 上」에 若歲大旱/用汝作霖雨,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孔安國은 霖/三日雨/霖以救旱,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隱九年/左傳云///凡雨自三日已往爲霖, '{...}'라고 했다. 이 말은 《國語》 「楚語 上」에는 若天旱/用女作霖雨, '{...}'라고 인용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韋昭도 雨三日已上爲霖,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雨經三日已上爲霖,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本又作淋/音林//左傳云/雨三日以往爲霖, '{...}'라고 하였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위에 인용한 「隱公」 9년의 기사를 이를 것이다. 郭慶藩은 趙諫議本作淋, '{...}'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陸德明이 판본에 따라 淋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고 했던 사례일 것이다. 王先謙은 雨三日以往爲霖, '{...}'라고 하였다. ◈ 十日은 '{...}'이다. [본문으로]
- 子桑殆病矣, ◈ 殆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近, '{...}'라고 하였다. ◈ 病은 용언이다. 본래는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春秋左氏傳》 「襄公」 24년에 范宣子爲政/諸侯之幣重/鄭人病之, '{...}'라는 말이 있다. 病은 '{...}'는 말이다. 《孟子》 「公孫丑 上」에 今日病矣, '{...}'라는 말이 있는데, 趙技는 病/罷也, '{...}'라고 하였고, 孫奭은 罷倦成病, '{...}'라고 하였다. 朱熹는 病/疲倦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裹飯而往食之, ◈ 裹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音果, '{...}'라고 하였다. ◈ 飯은 체언으로, '{...}'이다. '{...}'이라고 보면 좋겠다. 陸德明은 音嗣//注同, '{...}'라고 하였다. ◈ 而는 순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食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는 子桑을 가리킨다. ◈◈ 郭象은 此二人相爲於無相爲者也//今裹飯而相食者/乃任之天理而自爾耳/非相爲而後往者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子桑家貧/屬斯霖雨/近於餓病//此事不疑於方外之交/任理而往/雖復裹飯/非有相爲之情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子輿는 {...} 간 것이다. [본문으로]
- 至子桑之門/則若歌若哭/鼓琴曰, ◈ 至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子桑之門을 받는다. ◈ 子桑之門의 之는 {...}다. ◈ 門은 체언으로, '{...}'이다. 아마 {...}을 이를 것이다. ◈ 則은 '{...}'이라는 말이다. 卽과 같다. ◈ 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歌는 체언으로, '{...}'다. ◈ 哭은 체언으로, '{...}'이다. ◈ 鼓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琴을 '{...}'라고 보면 좋겠다. ◈ 琴은 체언으로, '{...}'다. [본문으로]
- 父邪//母邪//天乎//人乎, ◈ 父는 체언으로, '{...}'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父邪는 {...}도 그렇다. ◈ 母는 체언으로, '{...}'다. ◈ 天은 체언으로, '{...}'이다. ◈ 乎는 '{...}'처럼 {...}으로 볼 수도 있고, 앞의 邪처럼 {...}로 볼 수도 있다. {...}으로 본다면 天乎는 '{...}'라는 뜻이 될 것이고, {...}로 본다면 '{...}'라는 뜻이 될 것이다. {...}로 보는 편이 좋겠다. 人乎에서도 그렇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孃破案 : 사람이 {...}는 말은 「養生主」에도 있었다. 公文軒은 右師가 외발인 것을 보고, 是何人也//惡乎介也//天與/其人與, '{...}'라고 하였다. 子桑은 자신이 {...}으로 수렴된다. [본문으로]
- 有不任其聲而趨舉其詩, ◈ 이 句는 본래 有不任其聲而趨舉其詩焉이나, 나는 끝의 焉을 뒤의 句에 붙여서 해석하였다. 焉은 '{...}'라는 말이다. ◈ 有는 又로 보고, '{...}'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을 듯하다. 王引之는 《經傳釋詞》 「有」에서 有/狀物之詞也, '{...}'라고 하였다. 王引之는 「桃夭」를 예로 들었다. 《詩》 「國風 周南」의 「桃夭」에 有蕡其實, '{...}'라는 말이 있는데, 有는 뒤의 蕡을 {...}는 것 같지는 않다. 有에 대해서는 毛亨, 鄭玄, 朱熹 모두 특별히 해설해 두지는 않았다. 본문인 有不任其聲의 有 역시 不任을 {...}되지는 않는다. ◈ 不은 부정어다. 任을 한정한다. ◈ 任은 용언이다.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는 말로 보아야 할 듯하다. 즉, 不任은 '{...}'라는 말이다. 《文選》에 수록되어 있는 王粲의 「登樓賦」에 孰憂思之可任, '{...}'라는 말이 있는데, 李善은 杜預左氏傳注曰/任/當也, '{...}'라고 하였다. 《左氏傳》은 《春秋左氏傳》이다. 그러면 李善이 인용한 글은 어느 부분일까.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 重怒難任/背天不祥/必歸晉君,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杜預는 任/當也, '{...}'라고 하였다. 이를 이를 것이다. 두 句에서 任은 모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堪,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壬, '{...}'라고 하였다. ◈ 其聲의 其는 子桑을 이른다. 其詩의 其도 그렇다. ◈ 聲은 체언으로, '{...}'다. {...}를 뜻한다. ◈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趨는 부사어다. 본래 '{...}'는 말이다. 여기서는 '{...}', 부사어로, '{...}'라는 의미라고 해석해야 한다. 《荀子》 「哀公」에 趨駕召顏淵,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趨/讀爲促速也, '{...}'라고 하였다. 《禮記》 「樂記」에는 衛音趨數煩志, '{...}'라는 말이 있다. 鄭玄은 趨數讀爲促速/聲之誤也, '{...}'라고 했고, 이에 대해 陸德明은 趨音促/數音速, '{...}'라고 하였다. 孔穎達 역시 既促且速, '{...}'라고 풀이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卒疾,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七住反, '{...}'라고 하였다. ◈ 舉는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용언으로, '{...}'라고 보아야 한다. {...}라고 해석하면 더 타당할 듯하다. 《禮記》 「雜記 下」에 過而舉君之諱/則起,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과 孔穎達은 모두 舉/猶言也, '{...}'라고 하였다. ◈ 詩는 체언으로, '{...}'다. 여기서는 '{...}'라고 하면 좋겠다. 子桑이 父邪/母邪/天乎/人乎라고 한 말을 이른다. ◈◈ 成玄英은 子桑既遭飢餒/故發琴聲/問此飢貧從誰而得/爲關父母//爲是人天//此則歌哭之辭也//不堪此舉/又卒爾詩詠也,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崔云/不任其聲/憊也//趨舉其詩/無音曲也, '{...}'라고 했다. ◈◈ 孃破案 : 子桑의 상태가 {...}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 焉子輿入/曰, ◈ 焉은 '{...}'라는 말이다. 乃, 則, 於是 같은 말들과 같다. 《國語》 「晉語」에 盡逐群公子/乃立奚齊/焉始爲令/國無公族焉, '{...}'라는 말이 있고, 《墨子》 「魯問」에 公輸子自魯南游楚/焉始爲舟戰之器, '{...}'라는 말이 있으며, 또, 《國語》 「齊語」에 五家爲軌/軌爲之長//十軌爲里/里有司//四里爲連/連爲之長//十連爲鄉/鄉有良人//焉以爲軍令, '{...}'라는 말이 있다. 또,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 晉於是乎作爰田, '{...}'라는 말이 있고, 또 晉於是乎作州兵, '{...}'라는 말이 있는데, 《國語》 「晉語」에는 焉作轅田, '{...}'라고 되어 있고, 또 焉作州兵, '{...}'라고 되어 있다. 焉이 於是, 즉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글자가 바뀌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즉, 焉은 於是와 같고, 또 乃와 같으며, 또 則과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焉」에 수록되어 있다. ◈ 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子桑의 집에 '{...}'는 의미다. [본문으로]
- 子之歌詩/何故若是,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子桑을 이른다. ◈ 之는 {...}다. ◈ 歌詩는 체언으로, '{...}'다. 歌는 본래 '{...}'다. 詩는 옛날에는 {...}라고 할 수 있겠다. '{...}'라는 말이 있다. ◈ 何故는 '{...}'라는 말이다. 何는 의문사로, '{...}'이다. 故는 체언으로, '{...}'이다. ◈ 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是를 받는다. ◈ 是는 지시대명사다. 子桑이 父邪/母邪/天乎/人乎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 郭象은 嫌其有情/所以趨出遠理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一於死生/忘於哀樂/相與於無相與/方外之交//今子歌詩/似有怨望/故入門驚怪/問其所由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 물었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 曰 [본문으로]
- 吾思夫使我至此極者而弗得也//父母豈欲吾貧哉//天無私覆/地無私載/天地豈私貧我哉//求其爲之者而不得也//然而至此極者/命也夫,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子桑을 이른다. ◈ 思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夫使의 夫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孰처럼 '{...}'라는 말이 되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사례를 찾을 수 없어 다소 의뭉스럽다. ◈ 使는 '{...}'는 말이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子桑을 이른다. ◈ 至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此極者를 받는다. ◈ 此는 {...}을 가리킨다.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 極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 我至此極者의 者는 '{...}'이다. 此極 혹은 極을 받는다. ◈ 而弗得也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弗은 부정어다. 不 보다 강하게 부정하는 말인 듯하다.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淮南子》 「說山訓」에 吾聞得之矣,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得/猶知也, '{...}'라고 하였다. ◈ 父母는 체언으로, '{...}'다. ◈ 豈는 '{...}'다. ◈ 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명사구인 吾貧을 받는다. ◈ 吾貧은 명사구로, '{...}'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 哉는 {...}이다. 豈와 함께 사용된다. ◈ 天은 체언으로, '{...}'이다. ◈ 無私의 無는 부정어다. '{...}'라는 말이다. ◈ 無私의 私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覆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地는 체언으로, '{...}'이다. ◈ 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天地는 체언으로, '{...}'이다. ◈ 私貧의 私는 부사어로, '{...}'라는 말 같다. ◈ 私貧의 貧은 용언으로, '{...}'라는 말 같다. 我哉의 我를 받는다. ◈ 求는 용언으로, '{...}'라고 해석해야 할 것 같다. 《易》의 「乾」에 同聲相應/同氣相求,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求는 '{...}'는 말이다. ◈ 其爲之者의 其는 부사어로, 아마 '{...}'라는 말 같다. 《儀禮》의 「聘禮」에 君其以賜乎, '{...}'라는 말이 있다. ◈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爲之의 之는 貧我, 즉 '{...}'을 뜻한다. ◈ 者는 '{...}'이다. 其爲之 혹은 爲之를 받는다. ◈ 而不得也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然而는 보통 '{...}'처럼 역접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는 '{...}'으로 해석된다. ◈ 而至此極者의 者는 '{...}'이다. 至此極 전체를 받는 것 같다. 즉, 至此極者는 '{...}'이 된다. ◈ 命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命也夫의 也夫는 한 단어로 {...}이다. {...}과 같다. 《論語》 「憲問」에 莫我知也夫, '{...}'라는 말이 있고, 《史記》 「孔子世家」에 丘之不濟此/命也夫,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命也夫//斯人也而有斯疾/命也夫, '{...}'라는 말이 있다. 夫 혼자 {...}로 해석될 때도 있다. 《史記》 「孔子世家」에 吾歌/可夫,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孔子家語》 「子路初見」에는 吾歌/可乎라고 되어 있다. 夫가 乎처럼 {...}이기 때문이다. 《戰國策》 「齊策」에는 子/靖郭君之所聽愛夫,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夫도 {...}로 사용되었다. ◈◈ 郭象은 言物皆自然/無爲之者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父母慈造/不欲飢凍//天地無私/豈獨貧我//思量主宰/皆是自然/尋求來由/竟無兆朕//而使我至此窮極者/皆我之賦命也/亦何惜之有哉,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知命所爲/順之而已,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子桑은 처음에는 {...}라고 봐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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