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7. 10:56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郭象, 成玄英, 王先謙 등의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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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6월 10일 4시 49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90
장자 내편 - 4 - 인간세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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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39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4 - 인간세 - 6 - 나무의 유용성과 치질의 유용성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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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4-6
宋有荊氏者,宜楸柏桑。其拱把而上者,求狙猴之杙者斬之;三圍四圍,求高名之麗者斬之;七圍八圍,貴人富商之家求樿傍者斬之。故未終其天年,而中道之夭於斧斤,此材之患也。
故解之,以牛之白顙者,與豚之亢鼻者,與人有痔病者,不可以適河。此皆巫祝以知之矣,所以爲不祥也。此乃神人之所以爲大祥也。
支離疏者,頤隱於臍,肩高於頂,會撮指天,五管在上,兩髀爲脇,挫鍼治繲,足以餬口;鼓筴播精,足以食十人。
上徵武士,則支離攘臂而遊於其間;上有大役,則支離以有常疾不受功;上與病者粟,則受三鐘與十束薪。夫支離其形者,猶足以養其身,終其天年,又況支離其德者乎。
송나라에 형씨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 지역은] 호두나무나 잣나무, 뽕나무를 기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宋有荊氏者/宜楸柏桑, ◈ 宋은 나라 이름이다. 殷나라의 유민들이 宋 땅에 봉분받았다. 莊子도 宋나라 사람이다. 《史記》 「宋微子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荊氏者를 받는다. ◈ 荊氏는 지명인 듯하다. 「人間世」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成玄英은 荊氏/地名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地名也///一曰里名, '{...}'라고 했다. ◈ 者는 '{...}'이다. 荊氏를 받는다. 즉, 荊氏者는 '{...}'이 된다. ◈ 宜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는 말로 사용되었다. 陸德明은 崔云/荊氏之地/宜此三木, '{...}'라고 했다. 王先謙도 宜此三木, '{...}'라고 하였다. ◈ 楸, 柏, 桑은 모두 나무 이름이다. 楸는 '{...}', 柏은 '{...}', 桑은 '{...}'다. 陸德明은 李云/三木/文木也, '{...}'라고 했다. {...}는 뜻일 것이다. 盧文弨는 今本書秋作楸, '{...}'라고 하였다. 옛 판본에는 秋라고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楸는 《經典釋文》, 《莊子集解》, 《莊子集釋》에 모두 楸라고 되어 있다. ◈◈ 成玄英은 宋國有荊氏之地/宜此楸柏桑之三木/悉皆端直/堪爲材用//此略舉文木有材所以夭折/對前散木無用所以全生也,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나무들 중, 크기가] 한 아름 보다 큰 것들은 원숭이[를 묶어 둘] 말뚝을 구하는 사람들이 [다] 베어 버렸고(其拱把而上者/求狙猴之杙者斬之, ◈ 其는 부사어로, '{...}'처럼 역접으로 해석된다. ◈ 拱把는 명사구로, '{...}'을 이른다. 拱은 '{...}'는 말이고, 把는 '{...}'라는 말이다. 《淮南子》 「繆稱訓」에 交拱之木/無把之枝,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拱/抱也//把/握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兩手曰拱/一手曰把,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恭勇反//百雅反//徐甫雅反//司馬云/兩手曰拱/一手曰把, '{...}'라고 했다. '{...}'가 아니라 '{...}'라고 해야 타당할 듯하다. ◈ 而上은 '{...}'이다. {...}는 말이다. 陸德明은 時掌反, '{...}'라고 하였다. ◈ 者는 '{...}'이다. 拱把而上을 받는다. 즉, 拱把而上者는 {...}을 이른다. ◈ 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狙猴는 체언으로, '{...}'다. 狙도 '{...}'이고, 猴도 '{...}'이다. 成玄英은 狙猴/獮猴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七餘反//音侯, '{...}'라고 하였다. ◈ 狙猴之杙의 之는 {...}다. ◈ 杙은 체언으로, {...}이다. 즉, 狙猴之杙는 '{...}'인데, 아마 {...}을 의미하는 말인 듯하다. 《史記》 「西南夷列傳」에 牂柯江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張守節과 司馬貞은 모두 崔浩云/牂柯/繫船杙也, '{...}'라고 하였다. 또, 《漢書》 「地理志 上」에 牂柯郡이 있는데, 顏師古는 牂柯/係船杙也, '{...}'라고 하였다. 즉, 杙이라는 말이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成玄英은 杙/橛也/亦杆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以職反/又羊植反//郭且羊反//司馬作朳/音八//李云/欲以栖戲狙猴也///崔本作柭/音跋/云/枷也, '{...}'라고 했다. 枷는 '{...}'로, {...}을 이른다. 예를 들면 T 모양의 {...}다. 宣穎은 杙/繫橛也, '{...}'라고 하였다. ◈ 求狙猴之杙者의 者는 '{...}'이다. 求狙猴之杙을 받는다. ◈ 斬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는 뜻이다. ◈ 斬之의 之는 拱把而上者를 가리킨다. ◈◈ 成玄英은 拱把之木/其材非大/適可斬爲杆橛/以擊扞獮猴也, '{...}'라고 하였다.), [그 둘레가] 세 아름이나 네 아름 되는 것들은, 높고 거대한 마룻대를 구하는 자들이 [다] 베어 버렸으며(三圍四圍/求高名之麗者斬之, ◈ 三圍四圍는 '{...}'이라는 말이다. 圍는 {...}로, '{...}'이다. 成玄英은 圍를 '{...}'라고 보고, 成玄英은 三圍四圍를 三尺四尺之圍, '{...}'라고 풀이했는데, 아마 틀렸을 것이다. 陸德明은 崔云/圍環八尺爲一圍, '{...}'라고 했다. 崔譔의 말을 따르고, 1尺을 {...}가 된다. ◈ 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高는 '{...}'는 말이다. ◈ 名은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 말은 麗, 즉 '{...}'를 한정하는 표현인데, 마룻대가 {...}는 없다. 名은 大와 같다. 이는 郭慶藩의 설이다. 郭慶藩은 名/大也//謂求高大之麗者/用三圍四圍之木也[謂大爲名/說見天下篇名山三百下], '{...}'라고 하였다. 《雜篇》 「天下」에 名山三百/支川三千/小者無數,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名과 支는 小와 대구를 이루는 글자로, 문맥상 大, '{...}'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郭慶藩은 名川/大川也//禮禮器///因名山升中於天///鄭注/名/猶大也//高注淮南墬形篇亦曰//名山/大山也//王制言名山大川/月令言大山名源/其義一也//魯語取名魚/韋注/名魚/大魚也//秦策///賂之一名都///高注/名/大也[魏策/大都數百/名都數十也]//此皆訓名爲大之證, '{...}'라고 하였다. 《禮》는 《禮記》다. 지금 「禮器」에는 因名山升中於天이 아니라 因名山升中于天으로 되어 있다. 의미는 같다. 《淮南》 「墬形」은 《淮南子》 「墬形訓」을 이른다. 「墬形訓」에 대한 高誘의 注는 禹乃以息土塡洪水以爲名山, '{...}'라는 구절에 대한 注를 이른다. 「王制」와 「月令」은 《禮記》의 편이다. 「月令」에는 大山名源은 없고, 大川名源이라는 말이 있다. 「魯語」는 《國語》의 편이다. 「秦策」과 「魏策」은 《戰國策》의 편이다. 「魏策」 인용문의 경우, 본문이 大都數百/名都數十가 아니라 大縣數百/名都數十이라고 되어 있다. 郭慶藩이 잘못 옮긴 모양이다. 「天下」에 名이 大로 쓰인 사례가 있고, 郭慶藩의 논의가 타당하므로, 여기서도 名을 大, '{...}'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고대에는 통용되었던 모양이다. 成玄英은 高名을 榮顯, '{...}'라고 풀이하였다. ◈ 高名之麗의 之는 {...}로, '{...}'이라고 해석된다. ◈ 麗는 체언으로, '{...}'다. 집을 지을 때, 긴 {...}를 이른다. 成玄英은 麗/屋棟也/亦曰小船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如字/又音禮//司馬云/小船也/又屋檼也, '{...}'라고 했다. ◈ 者는 '{...}'이다. 求高名之麗를 받는다. ◈ 斬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는 말이다. ◈ 斬之의 之는 三圍四圍, 즉 '{...}'를 가리킨다. ◈◈ 成玄英은 三尺四尺之圍/其木稍大/求榮華高屋顯好名船者/輒取之也, '{...}'라고 하였다.), [그 둘레가] 일곱이나 여덟 아름 되는 것들은 귀인과 부상의 집안에서 선방을 구하는 자들이 [모두] 베어 버렸다.(七圍八圍/貴人富商之家求樿傍者斬之, ◈ 七圍八圍는 '{...}'이다. 상기한 것처럼 1圍은 {...} 정도이므로, 아주 큰 나무다. ◈ 이 句는 求樿傍者於貴人富商之家斬之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求樿傍者는 貴人富商之家에서 온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 貴人은 아마 '{...}' 같은 부류를 이를 것이다. 貴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 富商은 '{...}'이다. 富는 관형어로, '{...}'이고, 商은 체언으로, '{...}'이다. ◈ 貴人富商之家의 之는 {...}다. ◈ 家는 체언으로, '{...}'이다. ◈ 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樿傍은 아마 '{...}'을 이르는 듯하다. 傍은 '{...}'이다. 陸德明은 本亦作擅/音膳//薄剛反,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舊本樿從示/訛//注同//今改正, '{...}'라고 하였다. 盧文弨의 말은 《經典釋文》의 옛 판본에는 樿이 아니라 禪으로 쓰여 있었는데, 이는 잘못되었으므로, 樿으로 바로잡았다는 뜻이다. 또, 그 의미에 대해 陸德明은 崔云/樿傍/棺也///司馬云/棺之全一邊者/謂之樿傍, '{...}'라고 했다. 한편 成玄英은 樿旁/棺材也//亦言/棺之全一邊而不兩合者謂之樿旁, '{...}'라고 하였는데, 崔譔과 司馬彪의 말을 인용하였을 것이다. 成玄英은 樿傍이 아니라 樿旁이라고 하였는데, 傍과 旁이 통용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로써 볼 때, 樿傍이 관에 관련된 말임은 분명해 보인다. 나무의 크기를 생각하면, 관을 아주 크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 者는 '{...}'이다. 求樿傍을 받는다. ◈ 斬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는 말이다. ◈ 斬之의 之는 七圍八圍, 즉 '{...}'를 가리킨다. ◈◈ 成玄英은 七圍八圍/其木極大/富貴之屋/商賈之家/求大板爲棺材者/當斬取之也, '{...}'라고 하였다.) 결국 [형씨의 나무들은] 자기 천수를 마치지 못하고, [모두] 도끼에 베여 중도에 요절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쓸 모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다.(故未終其天年/而中道之夭於斧斤/此材之患也, ◈ 故는 '{...}'다. '{...}'이라고 하면 의미에 잘 부합되겠다. ◈ 未는 부정어다. ◈ 終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其天年의 其는 {...}을 가리킨다. ◈ 天年은 '{...}'다. 天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年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而는 순접이다. ◈ 中道는 '{...}'이다. '{...}'을 뜻한다. ◈ 中道之의 之는 '{...}'라는 말이다. 於와 같다. 中道를 받는다. 之와 於는 통용된다. 그래서 之는 於의 뜻으로, 반대로 於의 之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春秋左氏傳》 「昭公」 11년에 王貪而無信/唯蔡於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於는 {...}처럼 사용되었다. 感은 恨을 뜻한다. 이 사례는 王引之의 《經傳釋詞》 「之」에 수록되어 있다. 之가 於처럼 사용되듯, 반대로, 於가 之처럼 사용된 예도 있다. 《大戴禮記》 「曾子事父母」에 養之內/不養於外/則是越之也//養之外/不養於內/則是疏之也, '{...}'라는 말이 있는데, 養之內와 不養於外, 그리고 養之外와 不養於內는 모두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고, 之가 於의 의미라고 해석되고 있다. 《荀子》 「勸學」에 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도 之는 於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大戴禮記》의 사례는 王引之의 《經傳釋詞》 「於」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이 글자는 《莊子集釋》에는 {...}에 已라고 잘못 기재되었을 것이다. ◈ 夭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夭於斧斤의 於는 '{...}'다. 斧斤을 받는다. ◈ 斧斤은 '{...}'다. ◈ 此는 未終其天年/而中道之夭於斧斤, 즉 {...}을 가리킨다. ◈ 材는 체언으로, '{...}'다. ◈ 材之患의 之는 {...}다. ◈ 患은 체언으로, '{...}'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좋겠다. ◈◈ 郭象은 有材者未能無惜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爲有用/故不盡造化之年/而中途夭於工人之手/斯皆以其才能爲之患害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쓸 모가 있기 때문에 {...}를 누리게 된다.)
[형씨의 나무는 쓸 모가 있어서 자신을 보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쓸 모가 없어서 자신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다.] 원래 해를 지낼 때에는 이마가 하얀 소, 코가 높이 솟아 있는 돼지, 치질이 있는 사람을 황하에 바쳐서는 안 되었다.(故解之/以牛之白顙者/與豚之亢鼻者/與人有痔病者/不可以適河, ◈ 故는 아마 부사어로,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固와 같다. 앞뒤 내용 사이에 {...}되었을 것이다. 《禮記》 「哀公問」에 今之君子/好實無厭/淫德不倦/荒怠傲慢/固民是盡,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固/猶故也, '{...}'라고 하였다. 固는 '{...}'라는 말로 해석된다. 《春秋左氏傳》 「襄公」 9년에 然故不可誣也, '{...}'라는 말이 있는데, 王引之는 或作固/又作顧, '{...}'라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되어 있는 판본을 찾지는 못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故」에 수록되어 있다. 또, 《荀子》 「性惡」에 凡禮義者/是生於聖人之僞/非故生於人之性也,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故/猶本也, '{...}'라고 하였다. 本 또한 '{...}'라는 말이다. ◈ 解는 {...}이다. '{...}'를 이른다. 郭象은 巫祝解除,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巫祝陳狗以祠祭, '{...}'라고 하였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方勇과 陸永品의 《莊子詮評》을 {...}이라고 하였다. 《漢書》 「郊祀志」에 古天子以春解祠, '{...}'라는 말이 있고, 《淮南子》 「修務訓」에는 禹之爲水/以身解於陽眄之河, '{...}'라는 말이 있다. 이것의 方勇과 陸永品의 근거라고 한다. 지금 《淮南子》 「修務訓」에는 禹之爲水/以身解于陽盱之河라고 되어 있다. 글자가 {...} 듯하다. 그런데 이 解가 封禪 같은 고유명사인지에 대해서는 의뭉스럽다. 《史記》 「封禪書」에도 古天子以春解祠, '{...}'라는 말이 나온다. 《漢書》 「郊祀志」와 같다. 이 구절에 대해 司馬貞은 謂祠祭以/解殃咎/求福祥也, '{...}'라고 하였다. 또, 《漢書》 「郊祀志」의 해당 부분에 대해 顏師古는 解祠者/謂祠祭以解罪求福, {...}'라고 하였다. 《淮南子》 「修務訓」의 저 부분에 대해 高誘는 解/禱以身爲質//解讀解際之解, '{...}'라고 하였다. 解際는 郭象의 注에 나온 解除와 같은 말로 보인다. 아마 '{...}'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郭象의 풀이와 비슷해진다. 이제 생각해 보면 高誘, 顏師古, 司馬貞 모두 解를 {...}를 올리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解가 封禪 같이 고유한 제사라면, 《禮記》의 「郊特牲」이나 《國語》, 《春秋》 같은 곳에 한 번 정도 등장할 법한데, 그런 {...} 바치는 것을 모두 解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徐古賣反/又佳買反//注同//向古邂反, '{...}'라고 하였다. ◈ 故解之以의 之以는 《莊子集解》에는 之以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以之라고 되어 있는데, 郭慶藩은 之以二字依世德堂本互易, '{...}'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解之以, 즉 之以가 맞을 듯하다. 解는 {...}이다. 따라서 解之/以牛之白顙者/與豚之亢鼻者/與人有痔病者/不可以適河는 '{...}'라는 말이 된다. ◈ 解之以의 以는 상기하였듯 '{...}'이다. 牛之白顙者, 豚之亢鼻者, 人有痔病者를 받는다. ◈ 牛는 체언으로, '{...}'다. ◈ 牛之의 之는 {...}다. 豚之의 之도 그렇다. ◈ 白은 관형어로, '{...}'이다. ◈ 顙은 체언으로, '{...}'다. 成玄英은 顙/額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息黨反//司馬云/頟也, '{...}'라고 했다. ◈ 顙者의 者는 '{...}'이다. 白顙을 받는다. 따라서 牛之白顙者는 '{...}'가 된다. ◈ 與는 '{...}'다. ◈ 豚은 체언으로, '{...}'다. ◈ 亢은 관형어로, '{...}'이다. 成玄英은 亢/高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古葬反//司馬云/高也/額折故鼻高///崔云/仰也, '{...}'라고 했다. ◈ 鼻는 체언으로, '{...}'다. ◈ 鼻者의 者는 '{...}'이다. 亢鼻를 받는다. 따라서 豚之亢鼻者는 '{...}'가 된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痔病은 '{...}'이다. 《說文解字》 「疒部」에는 痔/後病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痔/下漏病也, '{...}'라고 하였다. 치질이 생기면, 항문 {...}한 듯하다. 陸德明은 徐直里反//司馬云/隱創也, '{...}'라고 했다. 創은 瘡과 통용된다. '{...}'를 뜻한다. 隱은 '{...}'으로, 아마 {...}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說文解字》에서 後病이라고 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라고 해석해야겠다. 盧文弨는 舊脫云字/今增, '{...}'라고 하였다. 司馬云이 司馬라고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 病者의 者는 '{...}'이다. 따라서 人有痔病者는 '{...}'이 된다. ◈ 不可以는 '{...}'라는 말이다. 不은 부정어다. 可는 '{...}'라는 말이다. 以는 所以처럼 '{...}'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즉, 不可以는 '{...}'가 된다. 適河를 받는다. ◈ 適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의미일 듯하다. 정황상 그러한데 {...}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謂沈人於河祭也, '{...}'라고 했는데, 司馬彪 역시 適을 '{...}'라고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 河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즉, 適河는 '{...}'가 되고, 不可以適河는 '{...}', 즉 '{...}'가 된다. ◈◈ 郭象은 巫祝解除/棄此三者/必妙選騂具/然後敢用,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巫祝陳狗以祠祭/選牛豕以解除/必須精簡純色/擇其好者/展如在之誠敬/庶冥感於鬼神//今乃有高鼻折額之豚/白額不騂之犢/痔漏穢病之人/三者既不清潔/故不可往於靈河而設祭奠者也//古者將人沈河以祭河伯/西門豹爲鄴令/方斷之/即其類是也, '{...}'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史記》 「滑稽列傳」에 나와 있다. ◈◈ 孃破案 : 荊氏의 나무 이야기는 {...}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다.) 무당이나 축관들은 이런 것들을 [황하에 던지지 않도록] 이미 모두 가려 내고 있었다. [이마가 하얀 소, 코가 높은 돼지, 치질에 걸린 사람 같은 것들이] 상서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此皆巫祝以知之矣/所以爲不祥也, ◈ 此는 {...}를 가리킨다. ◈ 皆는 부사어로, '{...}'다. ◈ 巫는 체언으로, '{...}'이다. 《淮南子》 「精神訓」에 鄭之神巫相壺子林,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高誘는 神在男曰覡/在女曰巫, '{...}'라고 하였다. 覡은 '{...}'라고 한다. 즉, {...}이라고 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女曰巫/男曰覡, '{...}'라고 했다. ◈ 祝은 원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체언으로, 아마 '{...}'을 뜻한다. {...}을 이른다. 成玄英은 祝者/執板讀祭文者也, '{...}'라고 하였다. ◈ 以는 아마 부사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已와 같다. 《禮記》 「檀弓 下」에 則豈不得以,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以與已字本同爾//㠯/古以字, '{...}'라고 하였다. 즉, 以는 已, '{...}'라는 뜻이다. 이 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㠯以已」에 수록되어 있다. 王先謙은 以/已同, '{...}'라고 하였다. ◈ 知는 용언으로, '{...}'라고 보아도 좋고, 아니면,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 知之의 之는 知를 '{...}'라고 해석한다면 {...}고 해야 하고, 知를 '{...}'라고 해석한다면 {...}고 해야 한다. ◈ 所以는 '{...}'라는 말이다. ◈ 爲는 '{...}'라는 말이다. ◈ 祥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成玄英은 祥/善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巫祝於此亦知不材者全也, '{...}'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인들은 오히려 이런 것들을 아주 상서롭다고 생각했다.(此乃神人之所以爲大祥也, ◈ 此는 {...}를 가리킨다. ◈ 乃는 역접으로, '{...}'라는 말이다. ◈ 神人은 {...}이다. ◈ 神人之의 之는 {...}다. ◈ 所以는 '{...}'이다. 爲大祥을 받는다. ◈ 爲는 '{...}'라는 말이다. ◈ 大는 부사어로, '{...}'라는 뜻이다. 아마 '{...}'라고 읽을 것이다. ◈ 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이 문장은 직역하면 '{...}'가 된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 郭象은 夫全生者/天下之所謂祥也/巫祝以不材爲不祥而弗用也/彼乃以不祥全生/乃大祥也//神人者/無心而順物者也//故天下所謂大祥/神人不逆,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巫師祝史解除之時/知此三者不堪享祭/故棄而不用/以爲不善之物也//然神聖之人/知侔造化/知不材無用/故得全生//是知白顙亢鼻之言/痔病不祥之說/適是小巫之鄙情/豈曰大人之適智//故才不全者/神人所以爲吉祥大善之事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可全生/則祥莫大焉,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길할 것 같지 않지만, 자신을 {...}이 아니다. 자신을 보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본질이다.)
[쓸 모가 없어서 자신을 보전한 사례로, 또 지리소가 있었다.] 지리소라는 사람은 턱이 배꼽에 가려져 있었고, 어깨가 정수리 보다 높이 있었으며(支離疏者/頤隱於臍/肩高於頂, ◈ 支離疏는 사람 이름이다. 支離는 {...}이고, 疏는 그 {...}일 것이다. 支는 '{...}'를 뜻한다. 枝와 같다. 離는 '{...}'는 말이다. 따라서 支離는 '{...}'이 된다. 「德充符」에 闉跂支離無脤이라는 사람이 나왔는데, 이 支離에 대해 陸德明은 崔云/支離/傴者也, '{...}'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가 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四支離拆/百體寬疏,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形體支離不全貌///疏/其名也, '{...}'라고 했다. 그러면 왜 {...}고 하였을까. 이에 대한 말은 뒤에 이어진다. ◈ 者는 '{...}'이다. 支離疏를 받는다. ◈ 頤는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以之反, '{...}'라고 하였다. ◈ 隱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앞의 子綦 이야기에서 隱將芘, 즉 將隱芘라고 하였을 때의 隱芘와 같다. 隱芘 역시 '{...}'는 의미였다. ◈ 於臍의 於는 '{...}'다. 臍를 받는다. ◈ 臍는 체언으로, '{...}'이다. 즉, 頤隱於臍은 '{...}'는 말이다. ◈ 肩은 체언으로, '{...}'다. ◈ 高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頂의 於는 비교하는 말이다. '{...}'라고 해석된다. 頂을 받는다. ◈ 頂은 체언으로, '{...}'다. 즉, 肩高於頂은 '{...}'라는 뜻이다. 陸德明은 如字//本作項/亦如字//司馬云/言脊曲頸縮也///淮南曰脊管高於頂也, '{...}'라고 했다. 《淮南》은 《淮南子》다. 인용구는 《淮南子》 「精神訓」에 나온다. ◈◈ 成玄英은 四支離拆/百體寬疏/遂使/頤頰隱在臍間/肩膊高於頂上//形容如此/故以支離名之, '{...}'라고 하였다.), 상투는 하늘을 가리켰고, 오장의 혈은 [몸] 윗쪽에 있었으며, 양측 넓적다리는 겨드랑이처럼 보였다.(會撮指天/五管在上/兩髀爲脇, ◈ 會撮은 '{...}'다. 이설들이 있다. 陸德明은 古外反/徐古活反/向音活//子外反//向徐子活反//崔云/會撮/項椎也///司馬云/會撮/髻也//古者髻在項中/脊曲頭低/故髻指天也///向云/兩肩竦而上/會撮然也, '{...}'라고 했다. 崔譔이 든 項椎는 아마 '{...}'인 것 같다. 項은 '{...}'이므로, {...}는 의미일 것이다. 《後漢書》 「張法滕馮度楊列傳」에 椎髻鳥語之人, '{...}'이라는 말이 있는데, 李賢은 椎를 獨髻, '{...}'라고 하였다. 즉, 椎도 '{...}'다. 成玄英은 會撮/高豎貌, '{...}'라고 하였으니, 向秀와 의견이 같다. 한편 李楨은 崔云/會撮/項椎也///說是[大宗師篇///句贅指天///李云/句贅/項椎也///其形如贅//證知崔說是]//素問刺熱篇///項上三椎陷者中也///王注/此舉數脊椎大法也//沈氏彤釋骨曰///項大椎以下二十一椎/通曰脊骨/曰脊椎///崔知會撮是此者/難經四十五難///骨會大杼///張注/大杼/穴名/在項後第一椎/兩旁諸骨/自此檠架往下支生/故骨會於大杼//據此/知會撮正從骨會取義/又在大椎之間/故曰項椎也//撮/唐徐堅初學記卷十九引作樶//玉篇///樶/木樶節也///與脊節正相似/從木作樶/於義爲長//按/頤肩屬外說/會撮五管屬內說//頤隱/故肩高/項椎指天/故藏腧在上/各相因而致者也[靈樞背腧篇///肺腧在三椎之閒/心腧在五椎之閒/肝腧在九椎之閒/牌腧在十一椎之閒/腎腧在十四椎之閒]//司馬訓髻/是別一義//詩小雅///臺笠緇撮///傳云/緇撮/緇布冠也//正義曰/言撮/是小撮持其髻而已//據此/則以會撮爲髻/當亦是小撮持其髮/故名之//會與䯤通//說文///䯤/骨擿之可以會髮者///衛風///會弁如星///許氏引作䯤//周禮///會五采玉琪///注/故書會作䯤//又士喪禮///鬠弁用桑///疏云/以髻爲鬠/取以髮會聚之意//會與鬠亦通//集韻有𩯉字/音撮/髻也//當是俗因會撮造爲頭髻專字, '{...}'라고 하였다. 《素問》은 《黃帝內經素問》이다. 沈彤은 淸나라 사람이다. 《釋骨》은 沈彤이 《黃帝內經》과 《鍼灸甲乙經》을 풀이한 책이다. 《難經》은 《八十一難經》이다. 《黃帝八十一難經》이라고 하기도 한다. 《初學記》 「권 19」에는 樶가 아니라 撮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아마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靈樞》는 《黃帝內經靈樞經》을 이른다. 《靈樞經》이라고도 한다. 《素問》과 《靈樞經》은 모두 《黃帝內經》의 한 부분이다. 앞에 인용된 《詩》는 「小雅 都人士之什」의 「都人士」다. 《傳》은 朱熹의 《詩集傳》을 이른다. 《正義》는 아마 《毛詩正義》인 듯하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뒤에 인용된 시는 「國風 衛風」의 「淇奧」다. 許愼은 《說文解字》를 지은 사람이다. 인용되어 있는 《周禮》는 「夏官司馬」다. 인용 문구의 琪는 綦나 璂로 되어 있기도 하다. 《集韻》은 宋나라 인종 때 丁度가 만든 韻書다. 또, 郭慶藩은 釋文引崔云/會撮/項椎也//字當作𣠹//玉篇///𣠹/木椎也/徂活切///撮𣠹聲近//尸子行險以撮//撮/乘載器/音與鑽同//周禮喪大記///君殯用楯欑///注/輴/乘柩之車/欑/猶菆也//尸子所謂樶/即禮之欑,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玉篇》은 梁나라의 顧野王이 만든 자전이다. 《周禮》 「喪大記」라고 인용된 부분은 《周禮》가 아니라 《禮記》 「喪大記」다. 인용된 문구도 君殯用楯欑이 아니라 君殯用輴欑으로 되어 있다. 輴과 楯은 통용되는 듯하다. 《尸子》에서는 撮라고 하였는데, 왜 마지막에 《尸子》에서 樶라고 했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郭慶藩의 착각인 듯하다. 정리해 보자면, 李楨은 項椎를 '{...}'가 아니라 '{...}'라고 이해한 듯하다. 척추를 脊椎라고 쓰는 것처럼, 椎는 '{...}'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項椎는 '{...}'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술한 것처럼 項椎는 '{...}'라고 볼 수 있다. 《後漢書》에 項椎가 '{...}'로 쓰이고 있는데, 崔譔은 東晉 시대 사람이고, 《後漢書》 역시 東晉 시대의 저작이다. 이를 감안하면 項椎는 '{...}' 보다는 '{...}'라고 보아야 한다. 李楨 본인 스스로도 '{...}'라는 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郭慶藩은 '{...}'로 본 듯하다. 아마 '{...}' 같은 것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會撮을 '{...}'로 이해하겠다. 고대 중국의 상투는 {...}가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 비정상이다. ◈ 指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天은 체언으로, '{...}'이다. ◈ 五管은 '{...}'이다. 成玄英은 五管/五臟腧也//五臟之腧/並在人背/古人頭髻/皆近頂後,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崔本作筦, '{...}'라고 하였다. 管과 筦 모두 '{...}'를 뜻한다. 속뜻은 '{...}'일 것이다. 또 陸德明은 李云/管/腧也///五藏之腧皆在上也, '{...}'라고 했다. ◈ 在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上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아마 {...}을 의미할 것이다. ◈ 兩은 관형어로, '{...}'이다. ◈ 髀는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本又作牌/同//音陛//徐又甫婢反//崔云/僂人腹在髀裏也, '{...}'라고 했다. ◈ 爲脇은 '{...}'라는 말일 것이다. 爲는 용언으로, 아마 '{...}'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脇은 체언으로, '{...}'다. 즉, 爲脇은 '{...}'는 말로, 이는 '{...}'라는 뜻이다. 몸이 이상하게 {...}는 말일 것이다. 《禮記》 「檀弓 下」에 夫子爲弗聞也者而過之, '{...}'라는 말이 있고, 《史記》 「范睢蔡澤列傳」에는 於是范睢乃得見於離宮/詳爲不知永巷而入其中, '{...}'라는 말이 있다. 두 문장에서 爲는 모두 '{...}'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陸德明은 許劫反//司馬云/脊曲髀豎/故與脇並也, '{...}'라고 했다. ◈◈ 成玄英은 今支離殘病/傴僂低頭/一使臟腧頭髻悉皆向上/兩腳髀股攣縮而迫於脇肋也, '{...}'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생겼으되, 지리소는 삯]바느질을 하거나, 헌 옷을 세탁하면서 입에 풀칠은 할 만하였고(挫鍼治繲/足以餬口, ◈ 挫鍼은 아마 '{...}'라는 말인 듯하다. {...}을 이를 것이다. 鍼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挫는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인 듯한데, 그러한 의미로 {...} 참고하면, 崔譔은 挫를 이를 案, '{...}'라고 풀이했는데, 그러면 挫鍼은 '{...}'라는 말이 되고, 이를 '{...}'라고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挫를 본래 의미인 '{...}'라고 풀이하여서, 挫鍼을 '{...}'라고 해야 할까. 문헌을 뒤져 보아도 挫는 대체로 '{...}'라는 의미로 사용될 뿐이다. 바늘과 {...}의 여지가 없다. 陸德明은 徐子臥反/郭租禾反//崔云/案也///執金反//司馬云/挫鍼/縫衣也, '{...}'라고 했다. 成玄英은 挫鍼/縫衣也, '{...}'라고 하였다. ◈ 治繲는 아마 '{...}'라는 말 같다. 治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繲는 체언으로, '{...}'이다. 즉, 治繲는 '{...}'라는 뜻이다. 陸德明은 佳賣反//司馬云/浣衣也///向同//崔作𦇫/音綫,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治繲/洗浣也, '{...}'라고 하였다. ◈ 足以는 '{...}'라는 말이다. 足은 '{...}'라는 뜻이다. 以는 所以로 보고, '{...}'이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 餬口는 '{...}'라는 말로, 어떻게든 {...}을 이른다. 餬는 아마 糊와 통용되는 글자일 것이다. 糊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7년에 饘於是/鬻於是/以糊余口,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饘鬻/餬屬//言至儉, '{...}'라고 하였다. 그런데 孔穎達은 釋言云/糊/饘也///郭璞云/糜也///又云/鬻/糜也///孫炎曰/淖糜也///然則糊饘鬻糜/相類之物//稠者曰糜/淖者曰鬻//糊/饘是其別名//將糜向口/故曰以糊餘口/猶今人以粥向帛粘/使相著/謂之糊帛, '{...}'라고 하였다. 「釋言」은 《爾雅》의 「釋言」이다. 지금 「釋言」에는 餬/饘也, '{...}'라고 되어 있다. 孫炎은 曹魏 사람이다. 糊帛이라는 표현은 아마 唐代 사람들이 사용했던 표현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라는 의미일 것이다. 孔穎達의 말에 근거해 보면, 糊, 饘, 鬻, 糜는 모두 '{...}'을 뜻한다. 즉, 糊도 '{...}'이고, 餬 역시 '{...}'일 것이다. 莊子는 이를 '{...}' 같은 용언으로 전용하였을 것이다. 즉, 餬는 支離疏가 {...}을 표현한 말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餬/飼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音胡//李云/食也///崔云/字或作互/或作≪食古≫, '{...}'라고 했다. ◈◈ 成玄英은 庸役身力以飼養其口命也, '{...}'라고 하였다.), 점대를 두드리고, 산가지를 흩어서 점괘를 가려 내어 열 사람을 먹여 살릴 만하였다.(鼓筴播精/足以食十人, ◈ 鼓筴은 '{...}'라는 말이다. 鼓筴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먼저, '{...}'라고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鼓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는 말은 {...}이 갈린다. 成玄英은 筴/小箕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初革反/徐又音頰//司馬云/鼓/簸也//小箕曰筴///崔云/鼓筴/揲蓍鑽龜也, '{...}'라고 했다. 司馬彪와 成玄英은 '{...}'라고 하였고, 崔譔은 '{...}'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支離疏의 {...}를 수밖에 없다. 근거도 있다. 우선 《廣韻》에서는 筴을 卜筮筴也, '{...}'라고 하였다. 《禮記》 「曲禮 上」에 先生書策琴瑟在前/坐而遷之/戒勿越, '{...}'라는 말이 있는데, 策에 대해 陸德明은 筴/本又作策/初革反/編簡也, '{...}'라고 하였다. 이로써 볼 때, 策과 筴은 서로 통용되었으며, 또 '{...}'이라고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또 「曲禮 上」에 龜爲卜/策爲筮, '{...}'라는 말이 있는데, 策과 筴이 통하였으므로, 筴도 또한 '{...}'가 되어야 한다. 즉, 筴은 '{...}'인 것이다. 또, 《儀禮》의 「士冠禮」에 筮人執筴,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역시 筴이 '{...}'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播精은 아마 '{...}'라는 말 같다. 播精도 '{...}'와 '{...}'라는 설로 나뉜다. 陸德明은 如字//一音所/字則當作數//精/司馬云/簡米曰精///崔云/播精/卜卦占兆也//鼓筴播精/言賣卜, '{...}'라고 했다. 成玄英은 精/米也, '{...}'라고 하였다. 司馬彪를 따른 듯하다. 郭慶藩은 精當爲糈之誤//郭璞注南山經曰/糈/先呂反/今江東音取[釋文音取/字當作糈//精字古無取音/與糈字形相似而誤]//說文/糈/糧也, '{...}'라고 하였다. 「南山經」은 《山海經》의 한 편이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陸德明이 精의 音을 取라고 한 말이 없는데, 郭慶藩이 무엇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郭慶藩 역시 '{...}'라는 설을 따르고 있다. 나는 이번에도 '{...}'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精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說文解字》 「米部」에는 精/擇也, '{...}'라고 하였다. 播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본래는 '{...}'는 의미로 쓰였지만, 이 의미가 '{...}'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禮記》 「禮運」에 播五行於四時, '{...}'는 말이 있는데, 陸德明은 播/彼佐反/舒也, '{...}'라고 하였다. 또, 이 부분에 대해 孔穎達은 播/謂播散五行金木水火土之氣/於春夏秋冬之四時也, '{...}'라고 하였다. 또, 「禮運」에 本仁以聚之/播樂以安之, '{...}'라는 말 있는데, 孔穎達 播를 布, '{...}'라고 하였다. 이로써 생각해 보건대, 播精은 {...}는 뜻이 아닌가 하다. ◈ 足以는 '{...}'라는 말이다. 足은 '{...}'라는 뜻이다. 以는 所以로 보고, '{...}'이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 食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音嗣, '{...}'라고 하였다. ◈ 十人은 '{...}'이다. 支離疏가 {...}는 모르겠다. 아마 전자일 듯하다. ◈◈ 成玄英은 言其掃市場/鼓箕筴/播揚土/簡精麤也//又解/鼓筴/謂布蓍數卦兆也//播精/謂精判吉凶辨精靈也//或掃市以供家口/或賣卜以活身命/所得之物可以養十人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대체로 司馬彪를 따르기는 하지만, 어느 뜻이라고 확신하기 보다는 주석들을 정리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
[그런데] 나라에서 병졸들을 징집하면, 지리소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징집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를 쏘다녔고(上徵武士/則支離攘臂而遊於其間, ◈ 上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면 잘 어울리겠다. ◈ 徵은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 武士는 체언으로, '{...}'이다. 武와 士는 모두 '{...}'이다. 士는 春秋戰國時代의 계급 중, {...}을 이르는 말이었다. 《荀子》 「王制」에 故王者富民/霸者富士,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士/卒伍也, '{...}'라고 하였다. 이와 같다. 武 역시 체언으로, '{...}'을 뜻한다. 《淮南子》 「覽冥訓」에 勇武一人, '{...}'이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武/士也//江淮間謂士曰武, '{...}'라고 하였다. ◈ 則는 '{...}'이다. ◈ 支離는 아마 支離疏를 가리키는 말 같다. ◈ 攘臂는 '{...}'라는 말이다. 攘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臂는 체언으로, '{...}'이다. 그러면 攘臂는 '{...}'라는 말이 되는데, 이는 무슨 의미일까. 《漢書》 「賈鄒枚路傳」에 攘袂,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顏師古는 攘/卻也//袂/衣袖也//攘袂//猶今人云掉臂耳, '{...}'라고 하였다. '{...}'는 말은, '{...}'는 뜻이다. 아니면 顏師古처럼 '{...}'라고 보아도 타당하다. 아마 {...}이었을 것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如羊反, '{...}'라고 하였다. ◈ 而는 '{...}'처럼 해석된다. ◈ 遊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판본에 따라 而遊가 없기도 하다. 《經典釋文》에는 臂於其閒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陸德明의 주석을 보면, 《崔譔本》에는 攘臂於其開라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郭慶藩은 攘臂而遊에 대해 世德堂本無而遊二字, '{...}'라고 하였는데, 아마 《世德堂本》에 而遊가 없는 까닭은, 顏師古의 말처럼 攘袂, 이 경우에는 攘臂라고만 해도 '{...}'는 의미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而遊를 넣어서 번역하였다. ◈ 於는 '{...}'다. ◈ 其는 武士, 즉 {...}을 가리킨다. ◈ 間은 체언으로, '{...}'다. {...}를 뜻한다. 이 글자는 《經典釋文》에는 閒이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는 間이라고 되어 있다. 같은 글자다. 陸德明은 如字//司馬云/閒/裏也///崔本作攘臂於其開/云/開/門中也, '{...}'라고 하였다. 司馬彪나 崔譔은 閒을 門 또는 門中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아마 {...}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다. ◈◈ 郭象은 恃其無用/故不自竄匿,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邊蕃有事/徵求勇夫/殘病之人/不堪征討/自得無懼/攘臂遨遊/恃其無用/故不竄匿, '{...}'라고 하였다.), 나라에 큰 노역이 있으면, 지리소는 [자신의] 지병을 핑계로 일을 받지 않았으며(上有大役/則支離以有常疾不受功, ◈ 上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면 잘 어울리겠다. ◈ 上有의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해도 좋겠다. ◈ 大는 관형어로, '{...}'이다. ◈ 役은 체언으로, '{...}'이다. {...}을 이른다. ◈ 則은 '{...}'이다. ◈ 支離는 아마 支離疏를 가리키는 말 같다. ◈ 以는 '{...}'다. 有常疾을 받는다. ◈ 有常疾의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常疾은 '{...}'을 이른다. 常은 본래 '{...}'처럼 사용되는 {...} 관형어로, '{...}'처럼 해석해야 하겠다. 疾은 체언으로, '{...}'이다. ◈ 不은 부정어다. ◈ 受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功은 체언으로, '{...}'이다. {...}을 이른다. 《周禮》 「天官冢宰」에 九嬪/掌婦學之法/以教九御婦德婦言婦容婦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功은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郭象은 不任徭役故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國家有重大徭役/爲有痼疾/故不受其功程者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不任功作,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노역이나 요역은 {...}도 되었다.), [또] 나라에서 환자들에게 곡식을 내리면, [지리소는 곡식] 세 종과 땔나무 열 묶음을 받아 갔다.(上與病者粟/則受三鍾與十束薪, ◈ 上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면 잘 어울리겠다. ◈ 上與의 與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病者는 '{...}'다. ◈ 粟은 체언으로, '{...}'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이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 則은 '{...}'이다. ◈ 受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鍾은 {...}다. 成玄英은 六石四斗曰鍾,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六斛四斗曰鍾, '{...}'라고 했다. 盧文弨는 舊本六訛斛/今改正, '{...}'라고 하였다. 원래 斛斛이라고 되어 있던 모양이다. ◈ 與十束薪의 與는 '{...}'라는 말이다. ◈ 十束은 관형어구로, '{...}'이다. 薪을 한정한다. 束은 본래 용언으로, '{...}'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체언으로 '{...}'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 薪은 체언으로, '{...}'다. ◈◈ 郭象은 役則不與/賜則受之,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君上憂憐鰥寡/矜恤貧病/形殘既重/受物還多//故郭注云/役則不預/賜則受之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支離疏는 그 외형 때문에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저 [지리소와 같이] 모습이 온전치 않은 자도 오히려 충분히 자기 일신을 부양하고, 천수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덕이 지리한 사람이야 하물며 어떠하겠느냐.(夫支離其形者/猶足以養其身/終其天年/又況支離其德者乎, ◈ 夫는 '{...}'처럼 {...}이다. 支離其形者를 전부 받는다. ◈ 支離其形는 其形支離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뒤의 養其身, 終其天年과 {...} 따라 풀이하였다. ◈ 支離는 支離疏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 같은 용언으로 보아야 한다. 아마 '{...}'라는 의미일 것이다. ◈ 其는 支離疏를 가리킨다. ◈ 形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者는 '{...}'다. 支離其形을 받는다. 즉, 夫支離其形者는 '{...}'라는 말이 된다. ◈ 猶는 '{...}'라는 말이다. ◈ 足以는 '{...}'라는 말이다. 足은 '{...}'라는 뜻이다. 以는 所以로 보고, '{...}'이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나는 '{...}'처럼 부사어로 의역하였다. ◈ 養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其身의 其는 夫支離其形者, 즉 支離疏를 가리킨다. 其天年의 其도 그렇다. ◈ 身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養其身은 '{...}'라는 말이다. ◈ 終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天年은 '{...}'를 이른다. 天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年은 체언으로, '{...}'이다. ◈ 又況은 '{...}'와 같다. 보통 況만 사용하는데, 간혹 {...}하는 모양이다. 《墨子》 「非攻 下」에 死命爲上/多殺次之/身傷者爲下/又況失列北橈乎哉, '{...}'라는 말이 있고, 《戰國策》 「魏策」에 此於其親戚兄弟若此/而又況於仇讎之敵國也, '{...}'라는 말이 있다. 又況은 모두 '{...}'라고 해석된다. ◈ 支離其德者는 支離其形者처럼 어순을 바꿔서 {...}가 자연스러워진다. ◈ 支離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句의 支離其德者는 사실 {...}해 보일 것이다. ◈ 其德의 其는 神人이나 至人처럼 {...}을 가리킨다. ◈ 德은 덕목으로써의 '{...}'이다. {...}을 뜻한다. ◈ 者는 '{...}'이다. 支離其德을 받는다. 支離其德者는 '{...}'가 된다. ◈ 乎는 {...}다. 養其身과 終其天年에 대해 반문하는 말이다. ◈◈ 郭象은 神人無用於物/而物各得自用/歸功名於群才/與物冥而無跡/故免人閒之害/處常美之實/此支離其德者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支離其形/猶忘形也//支離其德/猶忘德也//而況支離殘病/適是忘形/既非聖人/故未能忘德//夫忘德者/智周萬物而反智於愚/明並三光而歸明於昧/故能成功不居/爲而不恃/推功名於群才/與物冥而無跡/斯忘德者也//夫忘形者猶足以養身終年/免乎人間之害/何況忘德者邪//其勝劣淺深/故不可同年而語矣//是知支離其德者/其唯聖人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支離疏는 支離其形者, 즉 '形이 支離한 사람', '모습이 支離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莊子는 {...}를 이른다고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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