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9. 11:05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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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5월 9일 12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74
장자 내편 - 2 - 제물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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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24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2 - 제물론 - 3 - 장자의 도론 두 번째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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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2-3
夫道未始有封,言未始有常,爲是而有畛也。請言其畛:有左,有右,有倫,有義,有分,有辯,有競,有爭,此之謂八德。
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春秋經世,先王之志,聖人議而不辯。故分也者,有不分也;辯也者,有不辯也。曰:何也?聖人懷之,眾人辯之以相示也。故曰:辯也者,有不見也。
夫大道不稱,大辯不言,大仁不仁,大廉不嗛,大勇不忮。道昭而不道,言辯而不及,仁常而不成,廉清而不信,勇忮而不成。五者园而幾向方矣。
故知止其所不知,至矣。孰知不言之辯,不道之道?若有能知,此之謂天府。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此之謂葆光。
故昔者堯問於舜曰:「我欲伐宗、膾、胥敖,南面而不釋然。其故何也?」
舜曰:「夫三子者,猶存乎蓬艾之間。若不釋然,何哉?昔者十日並出,萬物皆照,而況德之進乎日者乎!」
저 도는 원래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고(夫道未始有封,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 道는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다. ◈ 未始는 '{...}'라는 말이다. 有를 받는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封은 체언으로, '{...}'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30년에 田有封洫,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封을 疆, '{...}'라고 하였다. '{...}'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 郭象은 冥然無不在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道無不在/所在皆無/蕩然無際/有何封域也,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崔云/齊物七章/此連上章/而班固說在外篇, '{...}'라고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장 말미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齊物」은 「齊物論」이다.), 설은 원래 [도처럼] 불변적인 것이 아니었다.(言未始有常, ◈ 言은 체언으로, '{...}'이다. ◈ 未始는 '{...}'라는 말이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常은 체언으로, '{...}'이다. 바로 뒤에 나오는 爲是而有畛也의 의미를 고려할 때, 여기서는 '{...}'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즉, 未始有常은 '{...}'는 뜻이 된다. ◈◈ 郭象은 彼此言之/故是非無定,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道理虛通/既無限域/故言教隨物/亦無常定也, '{...}'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설로 도를 설명하려 했고, 결국] 이 때문에 [세상 만물에는] 구분이 생기고 말았다.(爲是而有畛也, ◈ 爲는 '{...}'라는 말이다. 是를 받는다. 陸德明은 于僞反, '{...}'라고 했다. ◈ 是는 상기하였듯, {...}는 차이를 가리킨다. ◈ 而는 아마 '{...}'라는 말 같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有는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 같다. '{...}'처럼 해석해도 좋다. ◈ 畛도 封처럼, 체언으로 '{...}'를 뜻한다. 《春秋左氏傳》 「定公」 4년에 封畛土略/自武父以南及圃田之北竟,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畛/塗所徑也//略/界也, '{...}'라고 하였다. {...}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界畔, '{...}'라고 했다. 陸德明은 徐之忍反/郭李音眞//謂封域畛陌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道無封/故萬物得恣其分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理無崖域/教隨物變/爲是義故/畛分不同, '{...}'라고 했다. ◈◈ 王先謙은 爲言無常/而後有畛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에는 {...} 莊子라기 보다는 老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만물이 구별된 양상에 대해 말해 보겠다.(請言其畛, ◈ 請은 {...}로, '{...}'는 뜻이다. ◈ 言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其畛을 받는다. ◈ 其는 {...}을 가리킨다. ◈ 畛은 체언으로, '{...}'다. ◈◈ 成玄英은 假設問旨/發起後文也, '{...}'라고 했다.) 좌가 생기고 우가 생겼으며(有左/有右,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崔本作宥/在宥也, '{...}'라고 하였다. 有를 有 그대로 보면 {...}이 될 듯하다. 盧文弨는 舊作崔本作有/訛//案下云在宥也/則當作宥明甚//今改正, '{...}'라고 하였다. ◈ 左와 右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成玄英은 左/陽也//右/陰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各異便也, '{...}'라고 했다. ◈◈ 成玄英은 理雖凝寂/教必隨機//畛域不同/昇沈各異/故有東西左右/春秋生殺, '{...}'라고 했다. ◈◈ 王先謙은 或袒左/或袒右, '{...}'라고 하였다.), 논이 생기고 의가 생겼으며(有倫/有義,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倫과 義는 체언으로, {...}를 각각 뜻한다. 본래 {...}를 뜻한다. 成玄英은 倫을 理, '{...}'라고 하고, 義는 宜, '{...}'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래서는 서로 구분되고 대립된다고 볼 수가 없다. 倫은 아마 論의 가차자이고, 義는 議의 가차인 것 같다. 첫 번째 증거는 {...} 차이가 있을 것이다. 陸德明은 崔本作有論有議, '{...}'라고 하였다. 이 역시 증거다. 한편 俞樾은 釋文云/崔本作有論有議/當從之//下文云/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又曰/故分也者/有不分也//辯也者/有不辯也//彼所謂分辯/即此有分有辯//然則彼所謂論議/即此有論有議矣,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王先謙도 上言有畛/倫義非畛也//當從兪說, '{...}'라고 했다. ◈◈ 郭象은 物物有理/事事有宜,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群物糾紛/有理存焉/萬事參差/各隨宜便者也, '{...}'라고 했다.), 분이 생기고 변이 생겼으며(有分/有辯,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分과 辯은 체언으로, 각각 '{...}'을 뜻한다. 分은 '{...}'이다. 辯은 辨과 같다. '{...}'이다. 모두 '{...}'라는 의미이겠으나, 아마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成玄英은 辯을 別,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如字//注同,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分者異視/辯者剖別, '{...}'라고 하였다. ◈◈ 郭象은 群分而類別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飛走雖眾/各有群分//物性萬殊/自隨類別矣, '{...}'라고 하였다.), 경이 생기고 쟁이 생기고 말았다.(有競/有爭,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競과 爭은 체언으로, 모두 '{...}'을 뜻한다. 본래 競과 爭은 모두 {...}는 말이다. 아마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郭象은 並逐曰競/對辯曰爭,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爭鬥之爭//注同,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競者對競/爭者羣爭,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物性昏愚/彼我封執/既而並逐勝負/對辯是非也, '{...}'라고 하였다.) 이것들을 팔덕이라고 한다.(此之謂八德, ◈ 此는 {...}을 가리킨다. ◈ 之는 {...}이다. 본래 대로라면 謂此八德이 되어야 한다. ◈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八德은 명사구로, '{...}'이다. 八은 관형어로, '{...}'라는 말이고, 德은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道德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德이라는 말은 보통 {...} 가끔 있다. 「德充符」에 故/聖人有所遊/而知爲孽/約爲膠/德爲接/工爲商,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德은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內篇》에서 道가 {...} 예와 통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成玄英은 德者/功用之名也, '{...}'라고 하였다. 功用은 아마 {...}을 가리키는 듯하다. 王先謙은 德之言得也//各據所得/而後有言//此八類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略而判之/有此八德,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群生功用/轉變無窮/略而陳之/有此八種//斯則釋前有畛之義也, '{...}'라고 했다. ◈◈ 孃破案 : 앞에서 12개 감정들을 기술하면서도 {...} 논증 방식이 《道德經》과 더 비슷한 듯 보인다.)
[그러나 만물은 본래 도 앞에 하나이므로, 구분하려 해도 완벽히 구분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육합 밖에 대해서는 그대로 둘 뿐 대강이라도 따지지 않았으며(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 ◈ 六合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成玄英은 六合者/謂天地四方也//六合之外/謂眾生性分之表/重玄至道之鄉也, '{...}'라고 하였다. ◈ 之는 {...}다. ◈ 外는 체언으로, '{...}'이다. ◈ 聖人은 {...}이다. ◈ 存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 같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不은 부정어다. 論을 한정한다. ◈ 論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듯하다. 八德 중 倫과 같다. ◈◈ 郭象은 夫六合之外/謂萬物性分之表耳//夫物之性表/雖有理存焉/而非性分之內/則未嘗以感聖人也/故聖人未嘗論之//若論之/則是引萬物使學其所不能也//故不論其外/而八畛同於自得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玄宗罔象/出四句之端//妙理希夷/超六合之外//既非神口所辯/所以存而不論也, '{...}'라고 하였다.), 육합의 안에 대해서는 대강 따졌을 뿐, 논의하지는 않았던 것이다.(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 ◈ 六合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之는 {...}다. ◈ 內는 체언으로, '{...}'이다. 成玄英은 六合之內/謂蒼生所稟之性分, '{...}'라고 하였다. ◈ 聖人은 {...}이다. ◈ 論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인 듯하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不은 부정어다. 議를 한정한다. ◈ 議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듯하다. 八德 중 義와 같다. ◈◈ 郭象은 陳其性而安之,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云云取捨/皆起妄情/尋責根源/並同虛有//聖人隨其機感/陳而應之//既曰馮虛/亦無可詳議/故下文云/我亦妄說之, '{...}'라고 하였다.) [또] 성인들은 춘추에 있는 정치 이야기나, 선왕의 기록들에 대해서는 논의하였을 뿐, 파고 들지는 않았던 것이로다.(春秋經世先王之志/聖人議而不辯, ◈ 春秋經世는 아마 春秋之經世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成玄英은 先王之志의 志를 誌, 즉 '{...}'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그러면 앞의 말인 春秋經世 역시 '{...}'처럼 해석되어야 대구가 맞을 것이다. ◈ 春秋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여기서는 '{...}'을 이르는 말 같다. 成玄英은 先王之志의 志를 誌, 즉 '{...}'이라고 풀이하였는데, 이를 보면 {...} 더 있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孟子》 「離婁 下」에 王者之迹熄而詩亡/詩亡然後春秋作//晉之乘/楚之檮杌/魯之春秋/一也, '{...}'라는 말이 있다. 아마 詩亡然後春秋作의 春秋라는 것은 {...}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닐까 하다. 그래서 {...}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春秋者/時代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春秋經世/謂有年時以經緯世事/非孔子所作春秋也, '{...}'라고 하였다. ◈ 經世는 명사구로, '{...}'라는 말 같다. 經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世는 체언으로, '{...}'이다. 그러나 위에 설명하였듯, 經世는 {...}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成玄英은 經者/典誥也, '{...}'라고 하였다. {...}를 이르는 듯하다. 만약 經을 '{...}'라는 용언으로 보지 않고, '{...}'이라는 체언으로 본다면, {...} 동의하지 않는다. ◈ 先王은 명사구로, '{...}'이다. 先은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王은 체언으로, '{...}'이다. 고대의 聖王들을 이른다. 成玄英은 先王者/三皇五帝也, '{...}'라고 하였다. ◈ 之는 {...}다. ◈ 志는 誌의 가차자다. 체언으로, '{...}'이다. 成玄英은 誌/記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本》에는 誌로 되어 있었던 듯하다. ◈ 聖人은 {...}이다. ◈ 議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인 듯하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不은 부정어다. 辯를 한정한다. ◈ 辯은 辨과 같다. 용언으로, '{...}'는 말이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아마 議 보다 더 {...}는 표현일 것이다. ◈◈ 郭象은 順其成跡而凝乎至當之極/不執其所是以非眾人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祖述軒頊/憲章堯舜/記錄時代/以爲典謨/軌轍蒼生/流傳人世//而聖人議論/利益當時/終不執是辯非/滯於陳跡, '{...}'라고 하였다. 軒은 黃帝인 公孫軒轅을, 頊은 顓頊을 뜻한다. 「謨」는 《書》의 「大禹謨」와 「皐陶謨」를 이르는 듯하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성인과 달리 만물을 구분하려 하지만, 만물은 본래 도 앞에 하나이므로, 사람들이] 구분한 데에는 [오히려] 구분하지 못한 점이 있었고, [또, 사람들은 만물을 변별하려 하지만, 만물은 본래 도 앞에 하나이므로, 사람들이] 변별한 데에는 [오히려] 변별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故分也者/有不分也//辯也者/有不辯也, ◈ 이 앞의 句까지는 {...} 辯之의 辯이다. ◈ 故는 '{...}' 보다는 아마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상기하였듯, 앞의 {...} 역접으로 보아야 한다. ◈ 分也者는 分者와 같다. '{...}'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일 것이다. 分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也者에서 也는 者와 같다. 따라서 也者는 者者, 즉 者가 된다. '{...}'이라는 말이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如字//下及注同, '{...}'라고 하였다. ◈ 有不分也의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不分을 받는다. 有不辯也의 有도 그러하다. 不辯을 받는다. ◈ 不分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는 말 같다. ◈ 辯也者는 辨者와 같다.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일 것이다. 辯, 즉 辨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也者에서 也는 者와 같다. 따라서 也者는 者者, 즉 者가 된다. '{...}'이라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있는 分也者의 也者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有不辯의 不辯은 명사구로, 不辨과 같다. '{...}'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 있다는 뜻이다. ◈◈ 郭象은 夫物物自分/事事自別//而欲由己以分別之者/不見彼之自別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理無分別/而物有是非//故於無封無域之中/而起有分有辯之見者/此乃一曲之士/偏滯之人/亦何能剖析於精微/分辯於事物者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以不分爲分/不辯爲辯, '{...}'라고 하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曰何也, ◈ 何는 의문사로, '{...}'이다. 何也는 '{...}'와 같은 말이다. ◈◈ 成玄英은 假問質疑/發生義旨,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자문자답하는 형식이다. {...} 대해 설명하려 하고 있다.) 성인은 만물을 [구별짓지 않고] 품을 뿐이지만(聖人懷之, ◈ 聖人은 {...}이다. ◈ 懷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懷之의 之는 萬物을 가리키는 듯하다. ◈◈ 郭象은 以不辯爲懷耳/聖人無懷,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達理聖人/冥心會道/故能懷藏物我/包括是非/枯木死灰/曾無分別矣, '{...}'라고 했다. ◈◈ 王先謙은 存之於心,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아마 {...}는 말 같다.), 뭇 사람들은 서로서로 과시하기 위해 상세히 따지고 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이런 말이 있다. '[만물을] 상세히 변별하려고 해도 [만물은 도 앞에 하나이므로, 변별된 점이 만물에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眾人辯之以相示也//故曰辯也者有不見也, ◈ 眾人은 명사구로, '{...}'이다. 眾은 관형어로, '{...}'이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眾은 《莊子集解》에 衆으로 되어 있다. ◈ 辯之의 辯은 辨과 같다.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辯也者의 辯도 그렇다. ◈ 辯之의 之는 萬物을 가리킨다. ◈ 以는 '{...}'와 같은 말이다. 眾人辯之를 받는다. ◈ 相은 부사어로, '{...}'다. ◈ 示는 용언이다.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道에 따라 {...}는 뜻이다. 王先謙은 相夸示, '{...}'라고 하였다. ◈ 故曰은 '{...}'와 같은 말인데, 나는 '{...}'처럼 의역하였다. ◈ 辯也者는 辨者와 같다.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일 것이다. 辯, 즉 辨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也者에서 也는 者와 같다. 따라서 也者는 者者, 즉 者가 된다. '{...}'이라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있는 分也者의 也者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不見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道 앞에 {...}는 말이다. 不은 부정어다. 見을 한정한다. 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 郭象은 不見彼之自辯/故辯己所知以示之,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眾多之人/即眾生之別稱也//凡庸迷執/未解虛妄/故辯所知/示見於物/豈唯不見彼之自別亦乃不鑒己之妙道/故云有不見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不見道之大/而後辯起, '{...}'라고 했다. ◈◈ 孃破案 : 보통 사람들은 {...}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저 위대한 도는 [말로] 부를 수가 없고(夫大道不稱,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道를 한정한다. ◈ 道는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다. ◈ 不은 부정어다. 稱을 한정한다. ◈ 稱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稱은 '{...}'이기도 하므로, '{...}'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陸德明은 尺證反/注同, '{...}'라고 하였다. ◈◈ 郭象은 付之自稱/無所稱謂,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大道虛廓/妙絕形名/既非色聲/故不可稱//謂體道之人/消聲亦爾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無可名, '{...}'라고 하였다.), 위대한 논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며(大辯不言,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辯을 한정한다. ◈ 辯은 체언으로, 아마 '{...}'을 뜻하는 듯하다. ◈ 不은 부정어다. 言을 한정한다. ◈ 言은 용언으로, 아마 말로 '{...}'라는 말 같다. ◈◈ 郭象은 已自別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妙悟眞宗/無可稱說/故辯彫萬物/而言無所言,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使其自悟/不以言屈, '{...}'라고 하였다.), 위대한 인은 어질지 않고(大仁不仁,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大仁의 仁을 한정한다. ◈ 大仁의 仁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 不은 부정어다. 不仁의 仁을 한정한다. ◈ 不仁의 仁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儒家적인 仁을 뜻하지 않나 하다. 儒家에서는 {...}이 아닐까 한다. ◈◈ 郭象은 無愛而自存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亭毒群品/汎愛無心/譬彼青春/非爲仁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大宗師」에 有親/非仁也,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문단의 초점이 仁을 {...}할 만하다. 또한 「大宗師」에는 利澤施乎萬世/不爲愛人, '{...}'라는 말도 있다. 이 말도 참고할 만하다.), 위대한 청렴은 모나지 않으며(大廉不嗛,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廉을 한정한다. ◈ 廉은 체언으로, '{...}'이다. ◈ 不은 부정어다. 嗛을 한정한다. ◈ 嗛은 용언인데, 사실 {...}라고 판단할 단서가 너무 적다. 安東林도 그렇고, 安炳周와 田好根 역시 嗛을 謙으로 보고 '{...}'라고 풀이하였다. 安炳周와 {...}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郭欺簟反//徐音謙, '{...}'라고 하였다. ◈◈ 郭象은 夫至足者/物之去來非我也/故無所容其嗛盈,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玄悟之人/鑒達空有/知萬境虛幻/無一可貪/物我俱空/何所遜讓, '{...}'라고 하였다.), 위대한 용기는 [다른 것을] 해치지 않는다.(大勇不忮,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勇을 한정한다. ◈ 勇은 체언으로, '{...}'라고 볼 수 있겠다. ◈ 不은 부정어다. 忮를 한정한다. ◈ 忮는 용언으로, 남을 '{...}'는 말이다. 《詩》 「國風 邶風」의 「雄雉」에 不忮不求/何用不臧,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과 朱熹는 모두 忮/害,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忮/之跂反/字書云/很也///韋昭音洎,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逆,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之豉反/又音跂/李之移反//害也//李云/健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無往而不順/故能無險而不往,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內蘊慈悲/外弘接物/故能俯順塵俗/惠救蒼生/虛己逗機/終無迕逆,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無客氣害人之心, '{...}'라고 하였다.) [또한] 도가 분명히 드러나면 [만물을] 다스릴 수가 없을 것이요(道昭而不道, ◈ 道는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다. ◈ 昭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音照, '{...}'라고 하였다. ◈ 而은 '{...}'이라고 해석된다. 則과 같다. 《禮記》 「喪服小記」에 士妾有子而爲之緦/無子則已, '{...}'라는 말이 있고, 《墨子》 「明鬼 下」에 非父則母/非兄而姒也,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季布欒布列傳」에 與楚則漢破/與漢而楚破, '{...}'라는 말이 있다. 예문들에서 而는 모두 '{...}'으로, 則과 의미가 같다. 而가 則과 서로 교차되어 쓰인 사례도 있다. 《禮記》 「樂記」에 喜則天下和之/怒則暴亂者畏之,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荀子》 「樂論」에는 喜而天下和之/怒而曓亂畏之라고 되어 있다. 《孟子》 「公孫丑 上」에 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 '{...}'라는 말이 있는데, 《孟子》 「萬章 下」에는 이 말이 可以速而速/可以久而久/可以處而處/可以仕而仕라고 되어 있다. 而와 則이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소개되어 있다. ◈ 不은 부정어다. 不道의 道를 한정한다. ◈ 不道의 道는 용언인데, 이 역시 의미가 불분명하다. 道가 용언으로 사용될 때는 일반적으로 '{...}' 같이 해석된다. 사실 무엇으로 {...}라고 해석했다. 《論語》 「學而」에 道千乘之國, '{...}'라는 말이 있는데, 馬融은 道/謂爲之政教, '{...}'라고 하였고, 包咸과 朱熹는 모두 道/治也, '{...}'라고 하였다. ◈◈ 郭象은 以此明彼/彼此俱失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明己功名/炫燿於物/此乃淫僞/不是眞道,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以道炫物/必非眞道, '{...}'라고 하였다.), 설이 탁월하면 [의미하려는 바에] 미치지 못할 것이요(言辯而不及, ◈ 言은 체언으로, '{...}'이다. ◈ 辯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而은 '{...}'이라고 해석된다. 則과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道昭而不道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不은 부정어다. 及을 한정한다. ◈ 及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라는 의미일 것이다. ◈◈ 郭象은 不能及其自分,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不能玄默/唯滯名言/華詞浮辯/不達深理, '{...}'라고 하였다. ◈◈ 宣穎은 不勝辯, '{...}'라고 하였다.), 인이 일관되면 공평하지 못할 것이요(仁常而不成, ◈ 仁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 常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이 '{...}'는 말은, 특정한 {...} 사용된 말일 듯하다. ◈ 而은 '{...}'이라고 해석된다. 則과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道昭而不道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不은 부정어다. 成을 한정한다. ◈ 成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일 듯하다. 平과 같다. 儒家에서는 {...}는 뜻이다. 成을 {...}가 너무 추상적이다. 이에 대한 정황 증거가 또 있다. 郭慶藩은 闕誤引江南古藏本成作周, '{...}'라고 하였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다. 周는 '{...}'라는 뜻이므로, 이 역시 '{...}'라는 의미의 平과 의미가 통한다. 그러면 成을 어떻게 平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春秋》 「桓公」 2년에 三月/公會齊侯陳侯鄭伯于稷/以成宋亂, '{...}'라고 하였는데, 杜預는 成을 平, '{...}'라고 하였다. 한편, 《春秋》 「宣公」 4년에는 公及齊侯平莒及郯, '{...}'라는 말이 있는데, 《春秋穀梁傳》에는 平者/成也, '{...}'라고 하였다. 여기서 成은 '{...}'라는 말이다. 平과 成이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郭象은 物無常愛/而常愛必不周,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不能忘愛釋知/玄同彼我/而恆懷恩惠/每挾親情/欲效成功/無時可見,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仁常은 {...}이 아닐까 하다.), 청렴이 [너무] 깨끗하면 [오히려] 믿을 수 없게 될 것이요(廉清而不信, ◈ 廉은 체언으로, '{...}'이다. ◈ 清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라는 말 같다. ◈ 而은 '{...}'이라고 해석된다. 則과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道昭而不道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不은 부정어다. 信을 한정한다. ◈ 信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皦然廉清/貪名者耳/非眞廉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皎然異俗/卓爾不群/意在聲名/非實廉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外示皦然/則中不可知, '{...}'라고 하였다.), 용기가 [남을] 해친다면 성숙될 수 없을 것이로다.(勇忮而不成, ◈ 勇은 체언으로, '{...}'다. ◈ 忮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는 말인 듯하다. ◈ 而은 '{...}'이라고 해석된다. 則과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道昭而不道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不은 부정어다. 成을 한정한다. ◈ 成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일 듯하다. ◈◈ 郭象은 忮逆之勇/天下共疾之/無敢舉足之地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捨慈而勇/忮逆物情/眾共疾之/必無成遂也, '{...}'라고 하였다.) [이상] 다섯 가지는 [본래] 둥글지만 모나게 되기 쉽다.(五者园而幾向方矣, ◈ 五者는 명사구로, '{...}'다. {...}을 이른다. 五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고, 者는 '{...}'이다. 成玄英은 五者/即已前道昭等也, '{...}'라고 하였다. ◈ 园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圓과 같은 말일 것이다. 成玄英은 圓,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崔音刓//徐五丸反//司馬云/圓也///郭音團, '{...}'라고 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幾는 부사어로, '{...}'다. 成玄英은 近,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其衣反, '{...}'라고 하였다. ◈ 向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처럼 해석될 것이다. 陸德明은 本亦作嚮/音同//下皆放此, '{...}'라고 하였다. ◈ 方은 체언으로, '{...}'이다. 즉, 幾向方은 '{...}'라고 해석된다. '{...}'라는 뜻이다. ◈◈ 郭象은 此五者/皆以有爲傷當者也/不能止乎本性/而求外無已//夫外不可求而求之/譬猶以圓學方/以魚慕鳥耳//雖希翼鸞鳳/擬規日月/此愈近彼/愈遠實/學彌得而性彌失//故齊物而偏尙之累去矣, '{...}'라고 하였다. 「齊物」은 「齊物論」을 이른다. ◈◈ 成玄英은 夫學道之人/直須韜晦//而乃矜炫己之能/顯燿於物其於道也/不亦遠乎//猶如慕方而學园圓/愛飛而好游泳/雖希翼鸞鳳/終無鶱翥之能/擬規日月/詎有幾方之效故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五者本渾然圓通/今滯於迹而近向方/不可行也, '{...}'라고 하였다. 迹은 '{...}'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으로 사용된 듯 보인다. ◈◈ 孃破案 : 道, 言, 仁, 廉, 勇이 {...}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는 [사람들이 함부로] 알지 못할 곳에 남겨 두어야 지극해질 것이로다.(故知止其所不知/至矣, ◈ 故는 '{...}'다. ◈ 知止의 知는 체언으로, '{...}'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 止는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처럼 해석해야 하겠다. ◈ 其所不知의 其는 아마 於나 之於처럼 '{...}'라는 의미일 것이다. 所不知를 받는다. 其는 之와 통용되는데, 之는 바로 之於, '{...}'처럼 해석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其가 之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詩》 「小雅 白華之什」의 「魚麗」에 物其多矣, '{...}'라는 말이 있고, 物其旨矣, '{...}'라는 말이 있으며, 物其有矣, '{...}'라는 말이 있다. 其는 모두 之처럼 {...}로 사용되었다. 또, 《春秋公羊傳》 「成公」 15년에 爲人後者爲之子也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되물을 때는 爲人後者爲其子라고 해 두었다. 之와 其가 통용되기 때문에 바꿔 쓴 것이다. 즉, 其와 之는 통용된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所不知는 '{...}'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에 숨겨 놓아야 한다는 말 같다. 所는 '{...}'이다. 不는 부정어다. 不知의 知를 한정한다. 所不知의 知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至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所不知者/皆性分之外也//故止於所知之內而至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境有大小/智有明闇/智不逮者/不須強知//故知止其分/學之造極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 言, 仁, 廉, 勇는 쉽게 {...}는 말 같다.) [세상 어느] 누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변설과,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도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그러한데도] 만약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변설과,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도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을 천부라고 할 것이다.(孰知不言之辯/不道之道//若有能知/此之謂天府, ◈ 孰은 '{...}'다. 成玄英은 誰, '{...}'라고 하였다. ◈ 孰知의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不言之辯과 不道之道를 받는다. ◈ 不言之辯은 명사구로, '{...}'이다. 不은 부정어로, 不言之辯의 言을 한정한다. 言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辯은 체언으로, '{...}'이다. ◈ 不道之道은 명사구로, 아마 '{...}'다. 不은 부정어로, 不道의 道를 한정한다. 道는 용언이다. {...}인 듯하다.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之道의 道은 체언으로, 이치로써의 '{...}'다. 그러면 道를 어떻게 '{...}'라고 풀이할 수 있을까. 《荀子》 「榮辱」에 故君子道其常/而小人道其怪,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道/語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大學」에 如切如磋者/道學也,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道/猶言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不道/即上不稱, '{...}'라고 하였다. ◈ 若은 아마 '{...}'일 것이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能은 '{...}'는 말이다. ◈ 能知의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知의 목적어는 {...}이 된다. ◈ 此는 能知, 즉 {...}을 가리킨다. ◈ 此之謂의 之는 {...}이다. 본래는 謂此天府가 되어야 한다. ◈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天府는 '{...}'을 비유하는 표현일 것이다. 天은 관형어일 텐데, 아마 '{...}'이라는 말 같다. 府는 체언으로, '{...}'를 뜻한다. 成玄英은 天을 自然, '{...}'라고 하였다. ◈◈ 郭象은 浩然都任之也, '{...}'라고 했다. ◈◈ 成玄英은 誰知言不言之言/道不道之道//以此積辯/用茲通物者/可謂合於自然之府藏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渾然之中/無所不藏, '{...}'라고 하였다.) [천부는] 아무리 부어도 가득 차지 않을 것이요,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을 것인데(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 ◈ 注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徐之喻反, '{...}'라고 하였다. ◈ 注焉의 焉은 {...} 같다. 나는 注焉는 '{...}'라고 번역하였다. 酌焉의 焉도 마찬가지다. 나는 酌焉을 '{...}'라고 번역하였다. ◈ 注焉而不滿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酌焉而不竭의 而도 마찬가지다. ◈ 不滿의 不은 부정어다. 滿을 한정한다. ◈ 滿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酌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南史》 「列傳第三十八 陸慧曉」에 故命駕往酌而飲之,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酌은 '{...}'는 말로 사용되었다. ◈ 不竭의 不은 부정어다. 竭을 한정한다. ◈ 竭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至人之心若鏡/應而不藏/故曠然無盈虛之變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天府에 대해 설명하는 말이다.), 천부의 내막은 알 수가 없으니(而不知其所由來,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不는 부정어다. 知를 한정한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其所由來를 받는다. ◈ 其는 아마 {...}를 가리키는 듯하다. ◈ 所由來는 명사구로, '{...}'을 뜻한다. 所는 '{...}'이다. 由來를 모두 받는 것 같다. 由來는 '{...}'라는 말이다. 所由來라는 표현은 다른 곳에서도 간혹 나온다. 《荀子》 「正論」에 殺人者死/傷人者刑/是百王之所同也/未有知其所由來者也, '{...}'라는 말이 있고, 또 《韓非子》 「解老」에 恬淡平安/莫不知禍福之所由來, '{...}'라는 말이 있다. ◈◈ 郭象은 至理之來/自然無跡,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巨海深弘/莫測涯際/百川注之而不滿/尾閭泄之而不竭//體道大聖/其義亦然//萬機頓起而不撓其神/千難殊對而不忤其慮/故能囊括群有/府藏含靈//又譬懸鏡高堂/物來斯照//能照之智/不知其所由來/可謂即照而忘/忘而能照者也, '{...}'라고 하였다.), [천부의] 이러한 모습을 보광이라고 한다.(此之謂葆光, ◈ 此는 天府가 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하면서도 而不知其所由來한 모습을 가리키는 듯하다. ◈ 之는 {...}이다. 본래 대로라면 謂此葆光이 되어야 한다. ◈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葆光은 명사구로, '{...}'이다. 葆는 본래 '{...}'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葆光은 {...}한 말이다. 《禮記》 「雜記 下」에 匠人執羽葆御柩, '{...}'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羽葆者/以鳥羽注於柄頭/如蓋/謂之羽葆//葆/謂蓋也, '{...}'라고 하였다. 즉, 葆는 '{...}'라는 말이다. 《文選》에 실려 있는 張衡의 「西京賦」에 垂翟葆/建羽旗, '{...}'라는 말이 있는데, 薛綜은 謂垂羽翟爲葆蓋飾/建隼羽爲旌旗也, '{...}'라고 하였다. 葆와 蓋가 함께 쓰인 것을 보면, 葆가 蓋처럼 '{...}'라는 뜻일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葆를 蔽, '{...}'라고 하였다. ◈◈ 郭象은 任其自明/故其光不弊也, '{...}'라고 했다. ◈◈ 成玄英은 至忘而照/即照而忘/故能韜蔽其光/其光彌朗//此結以前天府之義,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音保//崔云/若有若無/謂之葆光, '{...}'라고 했다. ◈◈ 孃破案 : 天府는 오묘한 道의 이치를 {...}으로 표현한 듯하다. 그래서 葆光이다.)
이에 대해 옛날에 요가 순에게 물은 말이 있었다.(故昔者堯問於舜曰, ◈ 故昔者의 故는 '{...}'처럼 해석하면 좋겠다. ◈ 昔은 '{...}'이다. ◈ 者는 {...}을 표현하는 말이다. ◈ 堯는 聖王인 堯를 이른다. ◈ 問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於는 '{...}'다. 舜을 받는다. ◈ 舜은 聖王인 舜을 이른다. 成玄英은 舜者/顓頊六世孫也//父曰瞽瞍/母曰握登/感大虹而生舜//舜生於姚墟/因即姓姚/住於嬀水/亦曰嬀氏/目有重瞳子/因字重華//以仁孝著於鄉黨/堯聞其賢/妻以二女/封邑於虞//年三十/總百揆/三十三/受堯禪//即位之後/都於蒲阪//在位四十年/讓禹//後崩/葬於蒼梧之野, '{...}'라고 하였다.)
"나는 종과 회, 서오를 치고 싶다. [그런데 내가 천자로서] 남면하고 있음에도 즐겁지가 않다. [내가] 즐겁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我欲伐宗膾胥敖/南面而不釋然//其故何也,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堯를 가리킨다. ◈ 欲은 '{...}'는 말이다. ◈ 伐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宗, 膾, 胥敖는 모두 나라 이름이다. 成玄英은 宗/膾/胥敖/是堯時小蕃三國號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宗膾에 대해 徐古外反, '{...}'라고 하였고, 胥에 대해서는 息徐反//華胥國, '{...}'라고 하였으며, 敖에 대해서는 徐五高反, '{...}'라고 했다. 그리고 이 세 나라에 대해서는 司馬云/宗/膾/胥敖/三國名也//崔云/宗一也/膾二也/胥敖三也, '{...}'라고 하였다. 胥를 설명할 때 나온 華胥國은 아마 華胥氏之國을 이르는 듯하다. 《列子》 「黃帝」에 晝寢而夢/遊於華胥氏之國//華胥氏之國在弇州之西/台州之北/不知斯齊國幾千萬里, '{...}'라는 말이 있다. 王先謙은 案人間世篇/堯攻叢枝/胥敖/國爲虛厲, '{...}'라고 했다. 「人間世」는 《內篇》에 속한다. 「人間世」에는 昔者/堯攻叢枝胥敖/禹攻有扈/國爲虛厲/身爲刑戮, '{...}'라고 되어 있다. ◈ 南面은 '{...}'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는 말이다. 成玄英은 君位, '{...}'라고 하였다. ◈ 而는 역접일 듯하다. '{...}'처럼 해석된다. ◈ 不釋然은 아마 '{...}'라는 말인 것 같다. 不은 부정어다. 釋을 한정한다. 釋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일 듯하다. 그런데 然이 왜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不은 용언을 한정하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然을 붙이지 않고 不釋이라고만 해도 '{...}'라는 말이 된다. 然은 아마 {...} 의뭉스럽다. 成玄英은 釋然/怡悅貌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釋同懌, '{...}'라고 하였고, 또 語又見庚桑楚篇, '{...}'라고 하였다. 「庚桑楚」는 《雜篇》에 속한다. 「庚桑楚」에는 庚桑子聞之/南面而不釋然, '{...}'라는 말이 있다. ◈ 其는 南面而不釋然, 즉 {...}는 점을 가리킨다. ◈ 故何의 故는 체언으로, '{...}'이다. ◈ 何는 의문사로, '{...}'이다. ◈◈ 郭象은 於安任之道未弘/故聽朝而不怡也//將寄明齊一之理於大聖/故發自怪之問以起對也, '{...}'라고 했다. ◈◈ 成玄英은 而三國貢賦既愆/所以應須問罪/謀事未定/故聽朝不怡//欲明齊物之一理/故寄問答於二聖,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是未從舜言矣, '{...}'라고 하였다.)"
[이에] 순이 말했다.(舜曰)
"[니가 치려는] 저 세 자들은 다만 미개한 곳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夫三子者/猶存乎蓬艾之間,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 三子는 {...}을 가리키는 말 같다. 三은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子라는 것은 체언으로, {...}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하다. 예를 들어, 형식적으로 {...}라고 부른다. 成玄英은 三子/即三國之君也, '{...}'라고 하였다. ◈ 者는 '{...}'이다. 三子를 받는다. ◈ 猶는 부사어로, 아마 '{...}'이라는 뜻 같다. ◈ 存은 용언으로, {...}라고 보면 좋겠다. 王先謙은 存/猶在也, '{...}'라고 하였다. ◈ 乎는 '{...}'다. 於와 같다. 蓬艾之間을 받는다. ◈ 蓬艾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이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蓬과 艾은 모두 '{...}'이다. ◈ 蓬艾之間의 之는 {...}다. ◈ 間은 체언으로,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 郭象은 夫物之所安無陋也/則蓬艾乃三子之妙處也, '{...}'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니가 기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왜일까.(若不釋然/何哉, ◈ 若은 2인칭 대명사로, 堯를 가리킨다. ◈ 不釋然은 '{...}'이다. 釋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 何는 의문사로, '{...}'다. ◈◈ 成玄英은 言蓬艾賤草/斥鴳足以逍遙/況蕃國雖卑/三子足以存養/乃不釋然/有何意謂也, '{...}'라고 했다. ◈◈ 孃破案 : 宗, 膾, 胥敖의 군주들이 {...}는 말인 듯하다.) 옛날에 태양 열 개가 한꺼번에 떠서 만물이 모두 비춰진 적이 있었다.(昔者十日並出/萬物皆照, ◈ 昔은 '{...}'이다. ◈ 者는 {...}하는 말이다. ◈ 十日은 명사구로, '{...}'이다. 十은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日은 체언으로, '{...}'이다. ◈ 並은 부사어로, '{...}'다. 《楚辭》 「九章 懷沙」에 古固有不並兮, '{...}'라는 말이 있는데, 王逸은 並을 俱, '{...}'라고 하였다. 앞쪽의 天地與我並生에서도 並은 그렇게 사용되었었다. ◈ 出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는 뜻이다. ◈ 皆는 부사어로, '{...}'다. ◈ 照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夫重明登天/六合俱照/無有蓬艾而不光被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淮南子云/昔堯時十日並出/焦禾稼/殺草木/封狶長蛇/皆爲民害//於是堯使羿上射十日/遂落其九//下殺長蛇/以除民害, '{...}'라고 하였다. 이 말은 《淮南子》 「本經訓」에 나온다. 원문을 온전히 옮긴 것은 아니다. ◈◈ 王先謙은 淮南子/堯時十日並出/使羿射落其九///故援以爲喩,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중국의 고대 신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論衡》 「說日」, 《淮南子》 「本經訓」에 나온다. 그러나 「說日」에서는 《淮南子》의 내용을 인용하여 논평하고 있을 뿐이므로, 신화가 온전히 실려 있는 「本經訓」만 확인해 보겠다. 「本經訓」에는 逮至堯之時/十日並出/焦禾稼/殺草木/而民無所食//猰貐/鑿齒/九嬰/大風/封豨/修蛇/皆爲民害//堯乃使羿/誅鑿齒于疇華之野/殺九嬰于凶水之上/繳大風於青丘之澤/上射十日而下殺猰貐/斷修蛇於洞庭/禽封豨于桑林//萬民皆喜/置堯以爲天子, '{...}'라고 되어 있다. 10개를 다 쐈으면 {...}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태양이 너무 많아서 태양빛 때문에 만물이 말라 죽었기 때문에 아홉 개를 쏴 떨어뜨리고 한 개만 남겨 두었다. 이처럼 덕이 과하면 오히려 온세상이 해를 입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니가 세상을 다스리는 천자의 입장에서] 하물며 태양 보다도 덕[업]을 더 많이 이룬다면 [천지 만물은 장차] 어찌 되겠느냐.(而況德之進乎日者乎, ◈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況은 '{...}'다. ◈ 德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 德之進의 之는 {...}로 보아야 할 듯하다. ◈ 進은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過, '{...}'라고 하였다. ◈ 德之進乎日의 乎는 '{...}'처럼 비교하는 말이다. 於와 같다. ◈ 日은 체언으로, '{...}'이다. ◈ 者는 '{...}'이다. 德之進乎日을 받는다. 따라서, 德之進乎日者는 '{...}'이라는 말이 된다. {...}를 뜻한다. ◈ 日者乎의 乎는 {...}다. ◈◈ 郭象은 夫日月雖無私於照/猶有所不及/德則無不得也//而今欲奪蓬艾之願而伐使從己/於至道豈弘哉//故不釋然神解耳//若乃物暢其性/各安其所安/無遠邇幽深/付之自若/皆得其極/則彼無不當而我無不怡也, '{...}'라고 했다. ◈◈ 成玄英은 夫十日登天/六合俱照/覆盆隱處/猶有不明//而聖德所臨/無幽不燭/運茲二智/過彼三光/乃欲興動干戈/伐令從己/於安任之道/豈曰弘通者耶, '{...}'라고 하였다. ◈◈ 郭嵩燾는 伐國者/是非之見之積而成者也//而於此有不釋然/左右倫義分辯競爭八德/交戰於中而不知//夫三子者/蓬艾之間/無爲辯而分之//萬物受日之照而不能遯其形/而於此累十日焉/皆求得萬物而照之/則萬物之神必敝//日之照/無心者也//德之求辯乎是非/方且以有心出之/又進乎日之照矣//人何所措手足乎, '{...}'라고 하였다. ◈◈ 郭慶藩은 文選謝靈運出游京口北固應詔詩注引司馬云/言陽光麗天/則無不鑒//釋文闕, '{...}'라고 하였다. 「出游京口北固應詔」는 《文選》에는 「從遊京口北固應詔」라고 되어 있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王先謙은 堯舜一證, '{...}'라고 하였다. 나는 王先謙과 달리 {...}고 보았다. ◈◈ 孃破案 : 舜은 堯가 지금도 정치를 {...}를 부르고 만다. ◈◈ 孃破又案 : 夫道未始有封부터 堯와 舜의 대화까지는 내용과 문체가 앞부분과 다소 이질적이다. 앞부분에서 莊子는 {...}과 유사하다. 그런데 陸德明은 《經典釋文》에서 夫道末始有封에 대해 崔云/齊物七章/此連上章/而/班固說/在外篇, '{...}'라고 했다. 《漢書》를 지은 사람이 바로 班固다. 그러나 《漢書》 「藝文志」에 莊子五十二篇, '{...}'라고 하였을 뿐, 《莊子》에 대해 다른 말이 적혀 있지는 않다. 그러나 보다시피, 이 글은 {...} 생각해 보아야 한다. 陸德明은 《經典釋文》 「序錄」에서 漢書藝文志/莊子五十二篇/即司馬彪孟氏所注/是也, '{...}'라고 하였다. 그런데 뒤에는 崔撰注/十卷/二十七篇//向秀注/二十卷/二十六篇//司馬彪注/二十一卷/五十二篇//郭象注/三十三卷/三十三篇//李頤集解/三十卷/三十篇//孟氏注/十八卷/五十二篇//王叔之義䟽/三卷, '{...}'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崔撰은 崔譔과 같을 것이다. 즉, 漢代에는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이 점을 감안해야 뜻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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