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 1 - 소요유 - 3 - 장자와 혜자가 박을 가지고 대담하다

2021. 7. 19. 10:08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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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1일 16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67

 

장자 내편 - 1 - 소요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20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1 - 소요유 - 3 - 장자와 혜자가 박을 가지고 대담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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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1-3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大瓠之種,我樹之,成而實五石,以盛水漿,其堅不能自舉也。剖之以爲瓢,則瓠落無所容。非不呺然大也,吾爲其無用而掊之。」

 

莊子曰:「夫子固拙於用大矣。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世世以洴澼絖爲事。客聞之,請買其方百金。聚族而謀曰:『我世世爲洴澼絖,不過數金;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客得之,以說吳王。越有難,吳王使之將。冬,與越人水戰,大敗越人,裂地而封之。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洴澼絖,則所用之異也。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惠子謂莊子曰, ◈ 惠子는 {...} 당대에는 아주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荀子》 「非十二子」에도 관련한 기술이 있는데, 「非十二子」에는 不法先王/不是禮義/而好治怪說/玩琦辭/甚察而不惠/辯而無用/多事而寡功/不可以爲治綱紀//然而其持之有故/其言之成理/足以欺惑愚衆/是惠施鄧析也, '{...}'라고 되어 있다. 또, 《雜篇》 「天下」에도 惠子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일부만 발췌해 보면, 惠施日以其知/與人之辯/特與天下之辯者爲怪/此其柢也//然惠施之口談/自以爲最賢/曰/天地其壯乎///施存雄而無術, '{...}'라고 하였다. 「天下」는 莊子가 직접 썼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전국시대 말기 즈음의 莊子의 제자들이 惠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자료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의 행적은 《戰國策》 「楚策」, 「魏策」 등 곳곳에 전한다. 成玄英은 姓惠/名施/宋人也/爲梁國相,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姓惠/名施/爲梁相, '{...}'라고 했다. ◈ 謂는 '{...}'는 뜻이다. 成玄英은 語, '{...}'라고 했다.)

 

"위나라 왕이 내게 커다란 박 종자를 주었다.(魏王貽我大瓠之種, ◈ 魏는 {...} 梁나라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惠子가 魏나라에서 벼슬을 했던 때가 {...} 때였으므로, 여기서 魏王도 이 둘 중 한 명을 이를 것이다. 《史記》 「魏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成玄英은 魏王即梁惠王也//昔居安邑/國號爲魏/後爲強秦所逼/徙於大梁/復改爲梁/僭號稱王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梁惠王也//案魏自河東遷大梁/故謂之魏/或謂之梁也, '{...}'라고 하였다. ◈ 貽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遺, '{...}'라고 했다. 陸德明은 徐音怡/郭與志反/遺也, '{...}'라고 했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惠子를 이른다. ◈ 大瓠는 체언으로, '{...}'일 것이다.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瓠는 아마 '{...}'의 일종일 것이다. 成玄英은 匏之類,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徐音護,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瓠/瓜也/即今葫蘆瓜, '{...}'라고 하였다. ◈ 大瓠之種의 之는 {...}다. ◈ 種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陸德明은 章勇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惠子所以起此大匏之譬/以譏莊子之書/雖復詞旨恢弘/而不切機務/故致此詞而更相激發者也, '{...}'라고 하였다.) 내가 [그] 종자를 심었더니, 잘 자라나서 다섯 석이나 되는 열매가 열렸다. [그런데 이 박에다가] 마실 것을 담아 두어도 박이 물렁물렁해서 직접 들어 올릴 수가 없고(我樹之/成而實五石/以盛水漿/其堅不能自舉也,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惠子를 이른다. ◈ 樹는 용언으로, 나무나 식물을 '{...}'는 뜻이다. 成玄英은 藝植之謂, '{...}'라고 하였다. ◈ 樹之의 之는 大瓠之種을 가리킨다. ◈ 成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은 본래 '{...}'라는 말이다. 그러나 여러 상황에 대입되면서 다양한 맥락에서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풀이나 나무가 '{...}'지면 '{...}'지고, 물이 '{...}'지면 그 속에 사는 어류들이 '{...}' 된다. 이처럼 成이라는 말은 어떤 것이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박에 대해 사용되었으므로, '{...}'처럼 해석해야 할 것이다. 《呂氏春秋》 「季春紀 先己」에 丘陵成而穴者安矣/大水深淵成而魚鱉安矣/松柏成而塗之人已蔭矣,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松柏成의 成에 대해 成/茂, '{...}'라고 하였다. 아니면, 盛의 가차자로 보고, '{...}'라고 해석해도 되겠다. ◈ 成而實의 而는 '{...}'처럼 해석해야 하겠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에', '그러면'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實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成玄英은 子,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實中容五石, '{...}'라고 했다. ◈ 五石은 '{...}'이다. 五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石은 체언으로, '{...}'이다. 체적의 단위다. 1石이 19리터 정도라고 한다. ◈ 以는 '{...}'라는 말이다. 實五石 부분에서 열렸다는 박의 열매, 즉 박을 받는다. ◈ 盛은 용언으로, 그릇이나 병에 '{...}'는 말이다. 陸德明은 音成, '{...}'라고 하였다. ◈ 水漿은 체언으로, '{...}'을 총칭하는 말이다. 水는 '{...}'이고, 漿은 '{...}'다. ◈ 其는 아마 부사어일 것이다. '{...}'처럼 역접으로 해석해야 하겠다. 무거워서 '{...}'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 堅은 용언이다. 아마 不堅이 잘못된 말이 아닌가 의뭉스럽다. 堅은 '{...}'라는 말이므로, 不堅이라고 하면 '{...}'라는 뜻이 된다. 본문에는 '{...}'라고 하였는데, '{...}'라고 하면 말이 된다. 堅 그 자체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면, 堅을 '{...}'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堅이 '{...}'라는 의미로 사용된 사례를 찾지는 못했다. 成玄英은 虛脆, '{...}'라고 하였는데, 이 설이 타당하다. ◈ 不은 부정어다. ◈ 能은 '{...}'라는 말이다. ◈ 自는 부사어로, '{...}'이라는 뜻이다. ◈ 舉는 용언으로, 물건을 '{...}'라는 말이다. ◈◈ 成玄英은 惠施既得瓠種/藝之成就/生子甚大/容受五石/仍持此瓠以盛水漿/虛脆不堅/故不能自勝舉也, '{...}'라고 하였다.), 박을 쪼개서 바가지로 쓰려 했지만, 평평해서 [물을] 담아 둘 공간이 없었다. [이처럼 이 박은] 진정 의미 없이 크기만 했기에, 나는 [박이] 아마 쓰일 데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는, 이에 박을 부숴 버렸다.(剖之以爲瓢/則瓠落無所容//非不呺然大也/吾爲其無用而掊之, ◈ 剖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는 뜻이다. 成玄英은 分割之,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普口反, '{...}'라고 하였다. ◈ 剖之의 之는 박의 열매, 즉 박을 이른다. ◈ 以爲는 '{...}'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 정도로 보면 잘 맞겠다. 瓢를 받는다. ◈ 瓢는 체언으로, '{...}'다. 成玄英은 勺,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毗遙反//徐扶堯反, '{...}'라고 하였다. ◈ 則은 '{...}'처럼 역접으로 해석해야 한다. 而와 같다. 則은 而와 통용되었다. 《春秋左氏傳》 「文公」 2년에 勇則害上/不登於明堂,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則은 '{...}'라고 해석된다. 而와 같다. 또, 《春秋左氏傳》 「昭公」 3년에는 寡人願事君/朝夕不倦/將奉質幣/以無失時/則國家多難/是以不獲,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則은 '{...}'처럼 해석된다. 이 역시 而와 같다. 또, 《荀子》 「榮辱」에 夫貴爲天子/富有天下/是人情之所同欲也//然則從人之欲/則埶不能容/物不能贍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然則은 역접으로 해석된다. 즉, 然而와 같다. 이 경우에서도 則과 而는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則」에 수록되어 있다. ◈ 瓠落은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이 아닐까 하다. 成玄英은 平淺,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瓠에 대해서는 戶郭反/司馬音護//下同, '{...}'라고 하였고, 瓠落에 대해서는 簡文云/瓠落/猶廓落也///司馬云/瓠/布護也//落/零落也///言其形平而淺/受水則零落而不容也, '{...}'라고 했다. 廓落은 '{...}'는 뜻이다. 郭慶藩은 文選謝靈運之郡初發都詩注引司馬云/瓠/布護//落/零落也//枵然/大貌//掊/謂擊破之也//喻莊子之言大也/若巨瓠之無施也///較釋文引爲詳, '{...}'라고 하였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郡初發都」는 《文選》에는 「永初三年七月十六日之郡初發都」로 되어 있다. 「永初三年七月十六日之郡初發都」의 注에는 司馬彪曰///瓠/布濩//落/零落也//枵然/大貌//掊/謂擊破之也//喻莊子之言大也/若巨瓠之無施也로 되어 있다. 布護와 布濩가 다른데, 아마 護는 濩의 가차자로 쓰인 듯하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無所容의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所는 '{...}'라는 말이다. ◈ 容은 용언으로, 容器라는 말처럼 '{...}'라는 말이다. 즉, 所容은 물을 '{...}'을 이른다. ◈ 非不은 '{...}'라는 말로, 즉 '{...}'라는 뜻이다. ◈ 呺然은 아마 '{...}'을 뜻하는 것 같다. 成玄英은 虛大,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本亦作号//徐許憍反//李云/号然/虛大貌///崔作𧦢/簡文同, '{...}'라고 하였다. 𧦢는 '{...}'라는 말이다. 위에 인용한 郭慶藩의 《文選》 주석 인용문에서는 司馬彪가 枵然/大貌, '{...}'라고 했다고 한다. 《司馬彪本》에는 呺가 枵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枵는 '{...}'라는 말이다. 한편 俞樾은 說文/号/痛聲也///呺𧦢/說文所無/蓋皆号之俗體/施之於此/義不可通//文選謝靈運初發都詩李善注引此文作枵/當從之//爾雅釋天/玄枵/虛也//虛則有大義/故曰枵然大也//釋文引李云号然虛大貌/是固以枵字之義說之,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初發都」은 《文選》에는 「永初三年七月十六日之郡初發都」라고 되어 있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俞樾의 말처럼 《說文解字》에 呺와 𧦢는 없다. 그러나 枵는 있다. 枵에 대해서는 木根也//从木号聲//春秋傳曰/歲在玄枵///玄枵/虛也, '{...}'라고 되어 있다. 《春秋傳》은 아마도 《春秋左氏傳》을 이르는 것 같다. 《春秋穀梁傳》이나 《春秋公羊傳》에는 歲在玄枵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고, 玄枵라는 말도 등장하지 않는다. 《春秋左氏傳》에는 歲在玄枵가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襄公」 28년에 歲在星紀/而淫於玄枵, '{...}'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 아래에는 玄枵/虛中也,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玄枵三宿/虛星在其中, '{...}'라고 설명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說文解字》의 玄枵/虛也의 虛는 '{...}'는 말이 아니라, 28宿 중 하나인 虛星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아마 俞樾이 《爾雅》 「釋天」에서 인용한 玄枵/虛也 역시 의미가 같을 듯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俞樾처럼 玄枵를 일반적인 표현인 虛로 볼 수 있을지 의뭉스럽다. ◈ 大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惠子를 이른다. ◈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于僞反,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읽으면 爲는 '{...}'라는 말이 된다. 그러면 陸德明처럼 해석한다면 吾爲其無用而掊之는 '{...}'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吾爲其無用과 掊之가 而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爲는 {...} 때문이다. ◈ 其無用의 其는 아마 부사어로, '{...}'일 것이다. 殆와 같다. 惠子가 그 박을 '{...}' 쓸 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말이다. 其는 지시대명사가 아닐 것이다. 其가 지시대명사로 사용될 때는, 항상 '{...}'처럼 해석되는데, 爲가 용언일 때 其는 그렇게 해석될 수가 없다. 陸德明처럼 爲를 {...}로 해석했을 때는 其를 지시대명사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럼 其를 어떻게 殆와 같다고 볼 수 있을까. 《禮記》 「檀弓 上」에 子張病/召申祥而語之曰/君子曰終/小人曰死/吾今日其庶几乎,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其는 殆처럼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春秋左氏傳》 「隱公」 6년에 善不可失/惡不可長/其陳桓公之謂乎, '{...}'라는 말이 있고, 《國語》 「周語」에는 我又章之/懼長及子孫/王室其愈卑乎, '{...}'라는 말이 있는데, 두 글에서 其는 모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其와 殆의 의미가 같기 때문에, 두 글자를 붙여서 한 단어처럼 사용한 사례도 있다. 《易》 「繫辭 下」에 顏氏之子/其殆庶幾乎,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其殆는 '{...}'라는 뜻이다. 이 문장의 其는 아마 顏氏之子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가 아닐 것이다. 其가 지시대명사일 때는 항상 '{...}'처럼 해석되고, 其 다음엔 체언이 오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그렇지 않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無用은 명사구로, '{...}'이다. 無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고, 用은 체언으로, '{...}'다. ◈ 而掊之의 而는 '{...}'라는 말이다. 乃와 같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成而實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掊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成玄英은 打破,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方垢反//司馬云/擊破也, '{...}'라고 했다. 위에 인용한 郭慶藩의 《文選》 주석 인용문에서는 司馬彪가 掊/謂擊破之也, '{...}'라고 했다고 한다. ◈ 掊之의 之는 박을 가리킨다. ◈◈ 成玄英은 用而盛水/虛脆不能自勝//分剖爲瓢/平淺不容多物//眾謂無用/打破棄之//刺莊子之言/不救時要/有同此瓠/應須屏削也, '{...}'라고 하였다.)"

 

장자가 말했다.(莊子曰)

 

"선생은 [만물을] 크게 쓰기에는 포부가 작구나. [어떤] 송나라 사람이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은] 대대로 솜 빠는 일을 가지고 먹고 살고 있었다.(夫子固拙於用大矣//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世世以洴澼絖爲事, ◈ 夫子는 {...}이다. 惠子를 가리킨다. ◈ 固拙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固는 '{...}'는 말이고, 拙은 '{...}'는 뜻이다. ◈ 於는 '{...}'다. ◈ 用大는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大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박을 이르지만, 사실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道다. ◈ 宋人은 '{...}'이다. 宋은 관형어로, '{...}'라는 말익, 人은 체언으로, '{...}'이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善爲不龜手之藥者를 받는다. ◈ 善은 부사어로 '{...}'이라는 말이다. 爲를 한정한다. ◈ 善爲의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그러면 善爲는 '{...}'는 말이 된다. 不龜手之藥를 받는다. 《周禮》 「春官宗伯」에 典同/掌六律六同之和/以辨天地四方陰陽之聲/以爲樂器,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爲/作也, '{...}'라고 하였다. 《爾雅》 「釋言」에는 作/造/爲也, '{...}'라는 말도 있다. ◈ 不은 부정어다. 龜를 한정한다. ◈ 龜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로 보인다. 龜는 '{...}'인데, 거북이 {...} 말일 것이다. 陸德明은 愧悲反//徐舉倫反//李居危反//向云/拘坼也///司馬云/文坼如龜文也//又云/如龜攣縮也, '{...}'라고 하였다. 한편 俞樾은 釋文引司馬云文坼如龜文也/又云如龜攣縮也/義皆未安//向云如拘坼也/郭注亦云能令手不拘坼/然則龜字宜即讀如拘//蓋龜有丘音/後漢西域傳龜茲讀曰丘慈/是也//古丘音與區同/故亦得讀如拘矣//拘/拘攣也/不龜者/不拘攣也//龜文之說雖非/攣縮之說則是/但不必以如龜爲說耳,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域傳」은 「西域傳」을 뜻한다. 「西域傳」에 焉耆/龜茲/攻沒都護陳睦,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李賢은 龜茲讀曰丘慈/下並同, '{...}'라고 주석을 달아 두었다. 俞樾의 주장은 이에 근거한 말이다. 그러나 거북이든 아니든, 龜가 {...}을 형용한 말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李楨은 龜手/釋文云徐舉倫反/蓋以龜爲皸之假借//按龜皸雙聲//眾經音義卷十一/皸/居雲去雲二反///通俗文/手足坼裂曰皸/經文或作龜坼///下引莊此文及郭注爲證//是玄應以龜皸音義互通//集韻十八諄/皸/區倫切/皴也///漢書趙充國傳/將軍士寒/手足皸瘃/文穎曰/皸/坼裂也//瘃/寒創也///唐書李甘傳/凍膚皸瘃///不龜手/猶言不皸手耳//皸/說文作䠅//鈕氏樹玉/鄭氏珍以韗下或體〈韋皮〉爲皸字/不足據,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眾經音義》는 아마 玄應의 《衆經音義》로 보인다. 眾과 衆은 같다. 《通俗文》은 東漢의 服虔이 지은 자서다. 玄應의 《音義》는 《衆經音義》일 것이다. 「趙充國傳」은 「趙充國辛慶忌傳第三十九」를 이른다. 文穎과는 별개로 顏師古는 皸音軍//瘃音竹足反, '{...}'라고 해 두었다. 《唐書》 「李甘傳」은 아마 《舊唐書》 「列傳第一百二十一」을 뜻하는 듯하다. 그런데 「李甘傳」에는 凍膚皸瘃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說文解字》에는 䠅에 대해 瘃足也//从足囷聲, '{...}'라고 되어 있다. ◈ 手는 체언으로, '{...}'이다. ◈ 龜手之藥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처럼 해석된다. ◈ 藥은 체언으로, '{...}'이다. 즉, 不龜手之藥은 '{...}'이 된다. ◈ 者는 '{...}'이다. 여기서는 '{...}'처럼 해석해야 하겠다. 善爲不龜手之藥을 받는다. 즉, 善爲不龜手之藥者는 '{...}'이 된다. ◈ 世世는 代代와 같다. 즉, 부사어로, '{...}'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年, '{...}'라고 하였다. ◈ 以洴澼絖의 以는 '{...}'이다. 명사구인 洴澼絖을 받는다. ◈ 洴澼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洴과 澼은 모두 면이나 견을 '{...}'는 뜻이다. 成玄英은 洴을 浮, '{...}'라고 하였고, 澼은 漂, '{...}'라고 하였다. 즉, 洴澼은 '{...}'는 말이 된다. 그런데 成玄英은 또 又云/澼/擗也//絖/䌤也//謂擗䌤於水中之故也, '{...}'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안이 나은 듯하다. 陸德明은 徐扶經反//普歷反//徐敷歷反//郭李恪歷反/澼/聲,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案今本書作澼聲/疑洴澼是擊絮之聲//洴澼二字本雙聲/蓋亦象其聲也, '{...}'라고 하였다. ◈ 絖은 체언으로, '{...}'이다. 즉, 洴澼絖은 '{...}'이 된다. 成玄英은 絮,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音曠//小爾雅云/絮細者謂之絖///李云/洴澼絖者/漂絮於水上///絖/絮也, '{...}'라고 하였다. ◈ 爲事의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事는 체언으로, '{...}'다. '{...}'이라는 뜻이다. 즉, 爲事는 '{...}', 이 일을 해서 '{...}'라는 말이 된다. ◈◈ 郭象은 其藥能令手不拘坼/故常漂絮於水中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宋人隆冬涉水/漂絮以作牽離/手指生瘡/拘坼有同龜背//故世世相承/家傳此藥/令其手不拘坼/常得漂絮水中/保斯事業/永無虧替, '{...}'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객이 송나라 사람이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방법을 백금에 팔라고 부탁했다.(客聞之/請買其方百金, ◈ 客은 체언으로, '{...}'이다. '{...}'을 이른다. ◈ 聞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聞之의 之는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를 가리킨다. ◈ 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買其方百金을 받는다. ◈ 買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其方의 其는 '{...}'처럼 지시하는 말로 보아도 좋고, 爲不龜手之藥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겠다. ◈ 方은 체언으로, '{...}'이다. 즉, 其方은 {...}을 이른다. 郭慶藩은 闕誤引江南古藏本方下有以字, '{...}'라고 하였다. 以가 있으면 請買其方以百金이 되는데, 그러면 {...}해진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다. ◈ 百金은 아주 많은 돈을 이른다. 金은 단위인데, 1金이 금 250g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 百金은 25000g이니, 곧 25kg이 된다. 최근 시세 대로 1g에 85000원이라고 하면, 25kg은 약 21억 2500만 원 정도가 된다. 成玄英은 金方一寸重一斤爲一金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金方寸重一斤爲一金//百金/百斤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他國遊客/偶爾聞之/請買手瘡一術/遂費百金之價者也, '{...}'라고 하였다.) [이에 송나라 사람이] 집안 사람들을 모아 놓고 상의하며 말했다. '우리 집안은 [약을 만드는 비법을 가지고] 대대로 솜 빠는 일을 해 왔는데도 [번 돈은] 몇 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갑작스럽게 [약을 만드는] 기술을 백금에 팔게 되었으니, [이 참에] 기술을 넘겨 버리자.(聚族而謀曰/我世世爲洴澼絖/不過數金/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 ◈ 聚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族은 체언으로, '{...}'이다. ◈ 聚族而謀의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謀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宋나라 사람과 그 가족들을 이른다. ◈ 世世는 代代와 같다.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洴澼絖을 받는다. ◈ 洴澼는 용언으로, 솜이나 옷을 '{...}'라는 말이다. ◈ 絖은 체언으로, '{...}'이다. ◈ 不은 부정어다. ◈ 過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過는 '{...}'는 말이다. ◈ 數는 관형어로, '{...}'이다. 陸德明은 色主反, '{...}'라고 하였다. ◈ 金은 체언으로, 당시 재물의 단위다. 금 250g을 이른다. 不過數金은 아마 솜 빠는 일을 해서 번 돈이 '{...}'라는 말일 것이다. ◈ 今은 부사어로, '{...}'이다. ◈ 一朝而는 아마 一朝然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라는 말일 것이다. 一朝는 '{...}'이라는 말이다. 而는 然과 같다. 말 뒤에 붙어서 상태를 형용하는 말로 바꿔 주는 표현이다. 만약 而가 '{...}'처럼 사용되었다면, 今一朝 중 용언 역할을 하는 글자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러면 而는 어떻게 然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書》 「虞書 益稷」에 啟呱呱而泣, '{...}'라는 말이 있고, 《詩》 「國風 召南」에 舒而脫脫兮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이를 脫脫然舒也, '{...}'라고 풀이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 17년에는 鋌而走/險急何能擇,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鋌/疾走貌, '{...}'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然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 鬻은 용언으로, 물건을 '{...}'는 말이다. '{...}'으로 읽는다. 《春秋左氏傳》 「昭公」 3년에 有鬻踴者,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陸德明은 鬻/羊六反/賣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賣,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育//司馬云/賣也, '{...}'라고 했다. ◈ 技는 체언으로, '{...}'이다. 약을 만드는 '{...}'을 이른다. 陸德明은 本或作伎/竭彼反, '{...}'라고 했다. 伎 역시 '{...}'을 이른다. ◈ 請은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가족들에게 '{...}'처럼 사용되었다. ◈ 與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與之의 之는 {...}을 가리킨다. ◈◈ 成玄英은 估價既高/聚族謀議//世世洴澼/爲利蓋寡/一朝賣術/資貨極多//異口同音/僉曰請與, '{...}'라고 하였다.)' [이렇게] 객은 약을 만드는 기술을 얻고는, 이를 가지고 오나라 왕에게 가서 유세했다. [이윽고] 월나라에 전쟁이 터지자, 오나라 왕은 객을 장군으로 삼았다. [객은 장군이 되어] 겨울에 월나라 사람들과 수전을 벌였는데, 월나라 사람들을 크게 이겼다. [이에 오왕은] 땅을 나누어 객을 [제후로] 봉하였다.(客得之/以說吳王//越有難/吳王使之將/冬與越人水戰/大敗越人/裂地而封之, ◈ 得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得之의 之는 {...}을 가리킨다. ◈ 以는 '{...}'라는 뜻이다. 之, 즉 {...}을 받는다. ◈ 說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라고 읽는다. {...}를 이른다. 陸德明은 始銳反/又如字, '{...}'라고 하였다. ◈ 吳王은 '{...}'이다. 吳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王은 체언으로, '{...}'이다. 吳는 나라 이름이다. 당시 {...} 것이다. 《史記》 「吳太伯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 越은 나라 이름이다. 당시 야만스러운 나라로 吳나라와 쌍벽을 이루었다. 《史記》 「越王句踐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 有는 용언으로, 어떤 사건이 '{...}'라는 말이다. 《春秋》 「僖公」 12년에 日有食之, '{...}'라고 하였는데, 이 有는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 難은 체언으로, '{...}'이다. 즉, 有難은 '{...}'라는 말이다. 《春秋公羊傳》 「隱公」 4년에 請作難/弒隱公, '{...}'라는 말이 있는데, 何休는 難/兵難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乃旦反, '{...}'라고 하였다. ◈ 使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使之의 之는 客을 가리킨다. ◈ 將은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子匠反, '{...}'라고 하였다. 즉, 使之將은 '{...}'라는 말이다. ◈ 冬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與는 '{...}'다. ◈ 越人은 '{...}'이다. 越은 관형어로, '{...}'이고, 人은 체언으로, '{...}'이다. ◈ 水戰은 '{...}'이다. 水는 관형어로, '{...}'이고, 戰은 체언으로, '{...}'이다. {...}에서 싸웠다는 뜻이다. ◈ 大는 부사어로, '{...}'다. '{...}'라고 읽어야 할 듯하다. ◈ 敗는 용언으로, '{...}'가 아니라 '{...}'는 말이다. 陸德明은 必邁反, '{...}'라고 하였다. ◈ 裂은 용언으로, '{...}'는 말인데, 여기서는 땅을 '{...}'로 해석해야 하겠다. ◈ 地는 체언으로, '{...}'다. ◈ 裂地而封之의 而는 '{...}'처럼 해석된다. ◈ 封은 용언으로, 제후로 '{...}'는 뜻이다. 吳王이 客을 제후로 임명했음을 의미한다. ◈ 封之의 之는 客을 가리킨다. ◈◈ 成玄英은 吳越比鄰/地帶江海/兵戈相接/必用艫船/戰士隆冬/手多拘坼//而客素稟雄才/天生睿智/既得方術/遂說吳王//越國兵難侵吳/吳王使爲將帥/賴此名藥/而兵手不拘坼//旌旗才舉/越人亂轍//獲此大捷/獻凱而旋/勳庸克著/胙之茆土, '{...}'라고 하였다.) 손을 트게 하지 않는 재주는 똑같은데, 누구는 제후가 되었고, 누구는 솜 빠는 일에서조차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이는 곧 [재주를] 사용한 곳이 달랐기 때문이다.(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洴澼絖/則所用之異也, ◈ 能不龜手는 명사구로, 주어 역할을 하고 있다. ◈ 能은 '{...}'는 말이다. ◈ 不은 부정어다. ◈ 龜은 용언으로, 손을 '{...}'라는 말이다. ◈ 手는 체언으로, '{...}'이다. 즉, 能不龜手는 '{...}'라는 말이 된다. ◈ 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或은 '{...}'과 같은 말이다. 或以封의 或은 {...}을, 或不免의 或은 {...}을 가리킨다. 成玄英은 不定, '{...}'라고 하였다. ◈ 或以封의 以는 '{...}'처럼 해석된다. 爲와 같다. 그러면 以封은 爲封으로, '{...}'라는 말이 된다. '{...}'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以와 爲가 통용되었다는 사례를 들 수는 있다. 《詩》 「大雅 蕩之什」의 「瞻卬」에 天何以刺,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以는 '{...}'라고 해석된다. 《論語》 「先進」에 如或知爾/則何以哉,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以는 爲처럼 '하다'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以와 爲는 통용되었다. ◈ 封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免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洴澼絖을 받는다. ◈ 洴澼은 용언으로, 옷이나 솜을 '{...}'라는 말이다. ◈ 絖은 체언으로, '{...}'이다. 洴澼絖은 명사구로, '{...}'이다. ◈ 則은 '{...}'이다. 即과 같다. '{...}'처럼 해석된다. ◈ 所用은 '{...}'다. 所는 '{...}'이다. 用은 용언으로, '{...}'라는 것이다. ◈ 所用之異에서 之는 {...}다. ◈ 異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成玄英은 方藥無工拙而用者有殊/故行客得之以封侯/宋人用之以洴澼/此則所用工拙之異, '{...}'라고 하였다.) 지금 니가 다섯 석짜리 박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너는] 어찌 [그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어 강호에 띄워 둘 일은 생각하지 않고선, 오히려 [박이] 평평해서 [음료를] 담을 데가 없을 것이라는 점만 걱정하고 있느냐. 이는 곧, 다만 선생이 구부러진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로다.(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 今은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惠子를 이른다. ◈ 有五石之瓠의 有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五石之瓠의 之는 {...}다. ◈ 瓠는 체언으로, '{...}'이다. ◈ 何는 '{...}'라는 의문사다. ◈ 不은 부정어다. ◈ 慮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以爲大樽而浮乎江湖를 받는다. 成玄英은 慮者/繩絡之也, '{...}'라고 하였다. 樽 부분에 인용해 둔 陸德明의 말을 보면, 司馬彪가 慮/猶結綴也, '{...}'라고 했다고 한다. ◈ 以爲는 '{...}'라는 말이다. 大樽을 받는다. ◈ 大樽의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 樽은 체언으로, 아마 '{...}'일 것이다. 成玄英은 樽者/漆之如酒罇/以繩結縛/用渡江湖/南人所謂腰舟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本亦作尊//司馬云/樽如酒器/縛之於身/浮於江湖/可以自渡///慮/猶結綴也//案所謂腰舟,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縳舊作縛/今從宋本正,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所謂腰舟, '{...}'라고 하였다. 여기서 뒤웅박은, 물을 건널 때 허리에 차는 조그마한 박을 이르는 듯하다. ◈ 樽而浮의 而는 순접으로, '{...}'처럼 해석된다. ◈ 浮는 용언으로, 물에 '{...}'는 말이다. ◈ 浮乎江湖의 乎는 於와 같다. '{...}'라는 말이다. 江湖를 받는다. ◈ 江湖는 체언으로, '{...}'다. 江은 '{...}', 湖는 '{...}'다. ◈ 而憂其瓠落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憂其瓠落無所容의 其는 부사어로,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吾爲其無用而掊之의 其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瓠落은 용언으로, '{...}'는 뜻일 것이다. ◈ 無所容는 물이나 음료를 '{...}'라는 말이다.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所는 '{...}'이다. 容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則夫子의 則은 아마 '{...}'일 것이다. 即과 같다. '{...}'처럼 해석된다. ◈ 夫子는 상대에 대한 경칭이다. 惠子를 이른다. ◈ 猶는 부사어다. '{...}'처럼 해석하면 잘 합치된다. ◈ 有蓬之心의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마음에 대한 표현이므로,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 蓬之心은 명사구로, 아마 '{...}'일 것이다. 蓬은 체언으로, '{...}'이다. 쑥은 구불구불하게 자란다. 之는 관형격 조사다. 따라서 蓬之心은 '{...}'을 뜻한다. 郭象은 蓬/非直達者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蓬/草名/拳曲不直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郭云/蓬/生非直達者///向云/蓬者短不暢/曲士之謂,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士/舊訛土/今改正, '{...}'라고 하였다. 曲士는 '{...}'를 뜻할 것이다. ◈ 也夫는 한 단어로 {...}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의미는 {...}과 같다. 《論語》 「憲問」에 莫我知也夫, '{...}'라는 말이 있고, 《內篇》 「大宗師」에 然而至此極者/命也夫,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孔子世家」에 丘之不濟此/命也夫, '{...}'라는 말이 있고,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命也夫//斯人也而有斯疾/命也夫, '{...}'라는 말이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夫/歎也, '{...}'라고 했다. ◈◈ 郭象은 此章言物各有宜/苟得其宜/安往而不逍遙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大瓠浮汎江湖/可以舟船淪溺//至教興行世境/可以濟渡群迷//而惠生既有蓬心/未能直達玄理/故妄起掊擊之譬/譏刺莊子之書//爲用失宜/深可歎之, '{...}'라고 했다. ◈◈ 王先謙은 言惠施以有用爲無用/不得用之道也,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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