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 1 - 소요유 - 2 - 연숙이 견오를 깨우치다

2021. 7. 19. 10:04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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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1일 16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67

 

장자 내편 - 1 - 소요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19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1 - 소요유 - 2 - 연숙이 견오를 깨우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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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1-2

 

肩吾問於連叔曰:「吾聞言於接輿,大而無當,往而不反。吾驚怖其言猶河漢而無極也,大有逕庭,不近人情焉。」

 

連叔曰:「其言謂何哉?」

 

曰:「藐姑射之山有神人居焉,肌膚若冰雪,綽約若處子,不食五穀,吸風飲露。乘雲氣,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其神凝,使物不疵癘而年穀熟。吾以是狂而不信也。」

 

連叔曰:「然,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豈唯形骸有聾盲哉?夫知亦有之。是其言也,猶時女也。之人也,之德也,將旁礡萬物以爲一,世蘄乎亂,孰弊弊焉以天下爲事!之人也,物莫之傷,大浸稽天而不溺,大旱、金石流、土山焦而不熱。是其塵垢粃糠,將猶陶鑄堯、舜者也,孰肯以物爲事!宋人資章甫而適諸越,越人斷髮文身,無所用之。堯治天下之民,平海內之政,往見四子藐姑射之山,汾水之陽,窅然喪其天下焉。」

 

 

견오가 연숙에게 물었다.(肩吾問於連叔曰, ◈ 肩吾는 泰山의 神이다. 「大宗師」에 肩吾得之/以處大山, '{...}'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는 道를 모르는 사람으로 나온다. 《莊子》에 가끔 나온다. 成玄英은 肩吾連叔/並古之懷道人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賢人也///司馬云/神名, '{...}'라고 했다. 司馬彪는 아마 「大宗師」를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하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 連叔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莊子》 전체에서 {...} 등장한다. 道를 터득한 사람으로 나온다. 陸德明은 李云/懷道人也, '{...}'라고 했다.)

 

"내가 접여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吾聞言於接輿, ◈ 吾는 1인칭 대명사다. 肩吾를 이른다. ◈ 聞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言은 체언으로, '{...}'다. ◈ 於는 '{...}'다. ◈ 接輿는 楚나라의 隱者다. 接輿의 본명은 陸通이다. 楚나라 사람으로, 孔子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列仙傳》 「陸通」에는 陸通者/雲楚狂接輿也//好養生/食橐廬木實及蕪菁子//游諸名山/在蜀峨嵋山上//世世見之/歷數百年去, '{...}'라고 되어 있다. 단순히 接輿가 아니라 狂接輿라고 되어 있는 것은 {...}했기 때문일 것이다. 接輿는 「人間世」에 孔子에게 조언해 주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應帝王」에서는 肩吾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人間世」의 일화는 《論語》 「微子」, 《史記》 「孔子世家」에도 나온다. 《史記》 「魯仲連鄒陽列傳」에는 是以箕子詳狂/接輿辟世/恐遭此患也, '{...}'라는 말이 있다. 裴駰은 張晏曰/楚賢人/詳狂避世也, '{...}'라고 하였고, 司馬貞은 張晏曰/楚賢人///高士傳/楚人陸通/字接輿///是也, '{...}'라고 하였다. 張晏은 後漢 때 사람이다. 《高士傳》은 西晉의 皇甫謐이 지은 책이다. 한편 이 말은 《漢書》 「賈鄒枚路傳」에 是以箕子陽狂/接輿避世/恐遭此患也, '{...}'라고 인용되어 있다. 顏師古는 張晏의 말을 인용한 뒤, 輿音弋於反,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接輿者/姓陸/名通/字接輿/楚之賢人隱者也/與孔子同時//而佯狂不仕/常以躬耕爲務/楚王知其賢/聘以黃金百鎰/車駟二乘/並不受//於是夫負妻戴/以遊山海/莫知所終,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本又作與/同/音餘/接輿/楚人也/姓陸/名通//皇甫謐曰/接輿躬耕/楚王遣使以黃金百鎰車二駟聘之/不應, '{...}'라고 했다. 陸德明은 아마 皇甫謐의 《高士傳》 「陸通」을 인용한 듯하다. ◈◈ 成玄英은 肩吾聞接輿之言過無準的/故問連叔/詢其義旨//而言吾聞言於接輿者/聞接輿之言也//莊生寄三賢以明堯之一聖/所聞之狀具列於下文也, '{...}'라고 하였다.), [접여의 말은] 크기만 하고 이치에 맞지 않아서 [밑도 끝도 없이] 나아가기만 할 뿐,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 말은 은하수와 같아서, 이에 끝이 나지 않으니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大而無當/往而不返//吾驚怖其言猶河漢而無極也, ◈ 大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말의 규모가 '{...}'처럼 해석해야 할 것이다. 大而無當의 而가 역접이어야 하기 때문에 大를 '{...}'처럼 해석하면 안 될 것이다. ◈ 大而無當의 而는 역접이다. 往而不返의 而도 역접이다. 즉, 大而無當은 '{...}'라는 말이 된다. 而를 然으로 보고, 大而無當을 大然無當, '{...}'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大而無當은 往而不返와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往而不返의 而는 然으로 해석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而는 而 그대로 보아야 할 듯하다. ◈ 當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陸德明은 丁浪反//司馬云/言語弘大/無隱當也, '{...}'라고 했다. 王先謙은 底, '{...}'라고 했다. 그러나 '{...}'는 의미로는 뒤에 往이 나오므로, 내 생각에는 當을 '{...}'라고 번역해야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 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返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往而不返은 아마 '{...}'는 말이 아닐까 하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다. 肩吾를 이른다. ◈ 驚怖는 아마 한 단어의 용언일 것이다. '{...}'라는 말일 것이다. 其言猶河漢而無極 전체를 받는 듯하다. 驚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怖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驚怖는 의미가 같은 글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단어일 것이다. 陸德明은 怖에 대해 普布反//廣雅云/懼也, '{...}'라고 했다. ◈ 其言의 其는 接輿를 가리킨다. ◈ 猶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河漢을 받는다. ◈ 河漢은 체언으로, 아마 '{...}'일 것이다. 아니면 따로 떼어 볼 수도 있다. 河는 '{...}', 漢은 '{...}'를 이른다. 黃河와 漢水는 둘 다 중국 안에서 아주 큰 강이다. ◈ 河漢而無極의 而는 '{...}'라고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無極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無는 부정어다. 極은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郭慶藩은 文選劉孝標辯命論注引司馬云/極/崖也/言廣若河漢無有崖也//逕庭/激過之辭也///釋文闕, '{...}'라고 했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辯命論」의 注를 보면, 司馬彪曰/極/崖也/言廣若河漢無有崖也라고만 되어 있지, 逕庭/激過之辭也라는 말은 없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逕庭은 뒷구에 나온다. ◈◈ 成玄英은 所聞接輿之言/恢弘而無的當/一往而陳梗概/曾無反覆可尋//吾竊聞之/驚疑怖恐/猶如上天河漢/迢遞清高/尋其源流/略無窮極也, '{...}'라고 했다.) [또한 그 말에는] 말이 아주 되지 않는 점도 있었고, [보통] 사람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았다.(大有逕庭/不近人情焉, ◈ 大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大에 대해 音泰/徐敕佐反, '{...}'라고 하였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逕庭을 받는다. 즉, 大有逕庭은 '{...}'라는 말이 된다. 宣穎은 大有/謂相遠之甚, '{...}'라고 하였다. 그러나 말이 안 된다는 의미는 逕庭에서 취해야 하기 때문에, 大有에 대한 宣穎의 의견은 아마 틀렸을 것이다. ◈ 逕庭은 아마 체언으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宣穎은 逕/門外路//庭/堂外地,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古定反//司馬本作莖//敕定反//李云/逕庭/謂激過也, '{...}'라고 했다. 成玄英은 逕庭/猶過差/亦是直往不顧之貌也, '{...}'라고 하였다. 즉, 逕庭은 宣穎을 따르면 '{...}'라는 말이 될 것이고, 李頤나 成玄英의 설을 따르면 '{...}'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두 설이 다르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 不은 부정어다. ◈ 近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처럼 해석하면 잘 맞겠다. 陸德明은 附近之近, '{...}'라고 하였다. ◈ 情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 成玄英은 謂接輿之言/不偶於俗/多有過差/不附世情/故大言不合於里耳也, '{...}'라고 하였다.)"

 

연숙이 말했다.(連叔曰)

 

"접여가 무슨 말을 하더냐.(其言謂何哉, ◈ 其는 接輿를 가리킬 것이다. ◈ 言은 체언으로, '{...}'다. ◈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何는 '{...}'이다. 즉, 謂何는 '{...}'는 말이고, 이는 '{...}'라는 말이 된다. ◈ 이 句를 직역하면 '{...}'가 되겠지만,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 成玄英은 陸通之說其若何//此則反質肩吾所聞意謂, '{...}'라고 하였다.)"

 

[견오가] 말했다.(曰)

 

"[접여가 말하기를] 막고야산에 신인이 살고 있는데, [그] 기부는 빙설 같[이 희]고, [그] 용모는 처녀 같[이 앳되]다고 한다.(藐姑射之山有神人居焉/肌膚若冰雪/淖約若處子, ◈ 藐姑射之山은 곧 藐姑射山이다. '{...}'이라고 읽는다. 道를 깨달은 神人들이 사는 곳이다. 《內篇》에 가끔 등장한다. 成玄英은 藐/遠也//山海經云/姑射山在寰海之外/有神聖之人/戢機應物//時須揖讓/即爲堯舜//時須干戈/即爲湯武, '{...}'라고 했다. 그런데 《山海經》에는 이런 말이 없다. 《山海經》 중 「東山經」에 又南三百八十里/曰姑射之山/無草木/多水, '{...}'라는 말이 있고, 또 「東山經」에 又南水行三百里/流沙百里/曰北姑射之山/無草木/多石, '{...}'라는 말이 있으며, 또 「東山經」에 又南三百里/曰南姑射之山/無草木/多水, '{...}'라는 말이 있다. 또, 《山海經》 중 「海內北經」에는 列姑射在海河洲中, '{...}'라는 말이 있고, 또 「海內北經」에는 姑射國在海中/屬列姑射/西南/山環之, '{...}'라는 말이 있다. 이 말들 외에 《山海經》에 姑射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陸德明은 藐에 대해 音邈/又妙紹反//簡文云/遠也, '{...}'라고 했다. 姑射에 대해서는 徐音夜/又食亦反/李實夜反//山名/在北海中, '{...}'라고 하였다. 한편 李楨은 姑射山/釋文云在北海中//下文姑射在汾水之陽//考山海經本有兩姑射//東山經/盧其之山/又南三百八十里/曰姑射之山/無草木/多水//又南/水行三百里/流沙百里/曰北姑射之山/無草木/多水//又南三百里/曰南姑射之山/無草木/多水///海內北經/列姑射在海河洲中/姑射國在海中/屬列姑射/西南山環之///列子黃帝篇/列姑射在海河洲中///與海內北經同[下文山上有神人云云/大致與莊子同//足證音義云姑射在北海中不誤]//唐殷敬順列子釋文引山海經曰/姑射國在海中/西南山環之//從國南水行百里/曰姑射之山//又西南行三百八十里/曰姑射山///郭云河水所經海上也//言遙望諸姑射山行列在海河之閒也//與今本山海經不同//隋書地理志/臨汾有姑射山/此即東山經之姑射///莊子所謂姑射之山/汾水之陽是也//據秦氏恩復列子補注云/臨汾姑射/即今平陽府西之九孔山///前後左右並無所謂南北姑射者//證之殷氏釋文/則東山經北姑射南姑射兩條/當在海內北經西南山環之之下//蓋必有諸姑射環列/而後可以列姑射名之也//且殷所據山海經爲唐時本/度古本元如此/不知何時脫寫/羼入東山經姑射山一條之後/遂成今本//賴有列子釋文/可以正山海經之誤//而莊子兩言姑射/一在北海/一在臨汾/亦免混合爲一[畢氏沅注山海經引莊子/誤混爲一]//雖其文並屬寓言/而山名所在/既皆確有可據/要無妨辨證及之耳,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音義》도 《經典釋文》을 이르는 말 같다. 河水所經海上也 등으로 인용된 郭象의 말은 「逍遙遊」가 아니라 《列子》 「黃帝」에 대한 郭象의 注에서 인용한 말이다. 李頤는 姑射의 위치를 《山海經》과 《列子》, 《列子釋文》, 《列子補注》를 통해 따져 보았다. 이 말들을 가지고 생각해 보건대, 藐姑射山이 등장하는 최초의 출전은 아마도 《山海經》이나 《列子》일 것이다. 또한, 陸德明과 簡文帝의 의견처럼, 藐은 '{...}'는 관형어이고, 실제 산 이름은 姑射로 보인다. 즉, 藐姑射之山은 '{...}'이 된다. 姑射, 列姑射, 北姑射, 南姑射 등의 명칭이 그 증거다. 여기서는 '막고야산'이라고 번역하였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神人居를 받는다. ◈ 神人은 道를 깨달은 사람을 이른다. 至人, 聖人, 眞人과 같다. ◈ 居는 '{...}'는 말이다. 神人居는 명사구로,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따라서 有神人居는 '{...}'가 되는데, 이는 '{...}'라는 뜻이다. ◈ 肌膚는 체언으로, '{...}'다. 肌와 膚는 모두 체언으로, '{...}'을 이른다. 陸德明은 肌에 대해 居其反, '{...}'라고 하였다. ◈ 若冰雪의 若은 '{...}'는 말이다. 冰雪을 받는다. 若處子의 若도 그렇다. 處子를 받는다. ◈ 冰雪은 체언으로, '{...}'이다. 冰은 '{...}'이고, 雪은 '{...}'이다. 얼음은 투명하고 눈은 희다. 冰雪은 피부를 묘사한 말이므로, 아마 '{...}'라는 따위의 말일 것이다. 郭慶藩은 冰/古凝字/肌膚若冰雪/即詩所謂膚如凝脂也[風俗通義引詩云/既白且滑]//說文/冰正字/凝俗字///爾雅冰脂也/孫炎本作凝//冰脂以滑白言/冰雪以潔白言也, '{...}'라고 하였다. 《詩》 인용문은 「國風 衛風」의 「碩人」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風俗通義》에는 既白且滑이라는 말이 없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冰이 정자이고, 凝이 속자라는 말은 《說文解字》의 어느 말을 보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 《孫炎本》은 《爾雅》에 孫炎이 주석을 단 것을 뜻하는 말 같다. ◈ 淖約은 문맥을 따져 볼 때 아마 '{...}' 등을 뜻하는 말 같다. 체언이다. 成玄英은 綽約/柔弱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淖에 대해서 郭昌略反/又徒學反//字林丈卓反//蘇林漢書音/火也, '{...}'라고 하였고, 約에 대해서는 如字, '{...}'라고 하였다. 그리고 淖約에 대해서는 李云/淖約/柔弱貌///司馬云/好貌, '{...}'라고 했다. 《漢書》에 인용된 蘇林의 注 중에서는 淖의 音을 火라고 한 경우가 없다. 다만 《漢書》 안에서 淖의 발음에 대해 이야기가 되어 있는 주석을 찾아 보자면, 「文帝紀」에서 顏師古가 淖/溺也/音女敎反, '{...}'라고 한 예가 있고, 또 「古今人表」에서 顏師古가 淖齒의 淖에 대해 淖音女敎反/字或作卓, '{...}'라고 한 예가 있을 뿐이다. 판본에 따라 淖이 綽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郭慶藩은 淖字依釋文及世德堂本改, '{...}'라고 하였다. ◈ 處子는 체언으로, '{...}'를 뜻한다. 즉, 若處子는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아마 '{...}'라는 뜻인 듯하다. 「大宗師」의 女偊 이야기에서 子葵가 子之年長矣/而色若孺子/何也, '{...}'라고 묻는데, 女偊가 吾聞道矣, '{...}'라고 하는 말이 있다. 즉, 道를 깨우치면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 處子, 즉 '{...}'라는 표현도 그런 맥락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成玄英은 未嫁女, '{...}'라고 하였다. 郭象은 處子者/不以外傷內,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在室女也, '{...}'라고 했다. 옛날 중국에서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 맡았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 郭象은 此皆寄言耳//夫神人即今所謂聖人也//夫聖人雖在廟堂之上/然其心無異於山林之中/世豈識之哉//徒見其戴黃屋/佩玉璽/便謂足以纓紱其心矣//見其歷山川/同民事/便謂足以憔悴其神矣//豈知至至者之不虧哉//今言王德之人而寄之此山/將明世所無由識/故乃託之於絕垠之外而推之於視聽之表耳,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聖人動寂相應/則空有並照/雖居廊廟/無異山林/和光同塵/在染不染//冰雪取其潔淨/綽約譬以柔和/處子不爲物傷/姑射語其絕遠//此明堯之盛德/窈冥玄妙/故託之絕垠之外/推之視聽之表//斯蓋寓言耳/亦何必有姑射之實乎/宜忘言以尋其所況//此即肩吾述己昔聞以答連叔之辭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내 생각에, 肩吾와 連叔의 대화는 물론, 「逍遙遊」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堯의 德을 표현하기 위해 든 것은 전혀 아니다. {...} 郭象과 成玄英이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이들은] 오곡을 먹지 않는다. 바람을 들이마시고, 이슬을 마신다.(不食五穀/吸風飲露, ◈ 不은 부정어다. ◈ 食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五穀은 체언으로, '{...}'이다. 穀은 '{...}'이다. 五穀은 사람들이 흔히 먹는 '{...}'인데, 成玄英은 五穀者/黍稷麻菽麥也, '{...}'라고 하였다. ◈ 吸은 용언으로, 공기를 '{...}', 숨을 '{...}'는 말이다. 陸德明은 許及反, '{...}'라고 하였다. ◈ 風은 체언으로, '{...}'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아도 좋겠다. ◈ 飲은 용언으로, 음료 같은 것을 '{...}'는 말이다. ◈ 露는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俱食五穀而獨爲神人/明神人者非五穀所爲/而特稟自然之妙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神聖之人/降生應物/挺淳粹之精靈/稟陰陽之秀氣//雖順物以資待/非五穀之所爲/託風露以清虛/豈四時之能變也, '{...}'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구름을 타고, 비룡을 몰면서, 사해 밖에서 노닌다고 한다.(乘雲氣/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 ◈ 乘은 용언으로, 차 같은 것을 '{...}'는 말이다. ◈ 雲氣는 체언으로, '{...}'이다. ◈ 御는 용언으로, 차나 말 같은 것을 '{...}'는 말이다. ◈ 飛龍은 '{...}'이다. '{...}'이라는 뜻이다. 飛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고, 龍은 체언으로 '{...}'이다. ◈ 而는 '{...}'라는 말이다. 以와 같다. 乘雲氣와 御飛龍을 받는다. 而와 以는 통용되었다. 《墨子》 「尙賢 下」에 使天下之爲善者可而勸也/爲暴者可而沮也, '{...}'라는 말이 있고, 또 같은 편에 上可而利天/中可而利鬼/下可而利人, '{...}'라는 말이 있다. 《呂氏春秋》 「孟春紀 去私」에는 南陽無令/其誰可而爲之, '{...}'라는 말이 있다. 이 사례들에서 可而는 모두 可以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는 뜻이다. 而가 以와 통용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용된 것이다. 또, 《荀子》 「成相」에는 進諫不聽/剄而獨鹿/棄之江, '{...}'라는 말이 있는데, 剄而獨鹿의 而는 以, 즉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고, 또 《荀子》 「成相」의 剄而獨鹿에 대한 王念孫의 주석에도 들어 있다. ◈ 遊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乎는 於와 같다. '{...}'다. ◈ 四海는 체언으로, 天地처럼 '{...}'을 이른다. 따라서 四海之外라고 하면 '{...}'을 뜻하게 된다. ◈ 之는 {...}다. ◈ 外는 체언으로, '{...}'이다. ◈◈ 成玄英은 智照靈通/無心順物/故曰乘雲氣, '{...}'라고 하였고, 不疾而速/變現無常/故曰御飛龍, '{...}'라고 하였으며, 寄生萬物之上而神超六合之表/故曰遊乎四海之外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乘雲氣三句/又見齊物論篇/御飛龍作騎日月, '{...}'라고 하였다. 세 句란, 乘雲氣/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를 이른다. 이 말은 「齊物論」 중 齧缺과 王倪의 문답에 등장한다. ◈◈ 孃破案 : 앞의 不食五穀/吸風飲露나 乘雲氣/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 등에 등장하는 형용들이 구체화되어 {...} 기술된다.) 신인들이 신비한 힘을 모으면, 만물이 해를 당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오곡을 익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신인에 대한 접여의 말을 허황되다고 느꼈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其神凝/使物不疵癘而年穀熟//吾以是狂而不信也, ◈ 其는 神人들을 가리키는 말 같다. ◈ 神은 체언으로, '{...}'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 凝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神, 즉 '{...}'이 구체화되는 일을 이르는 말로 보인다. 그러면 其神凝은 '{...}'이 된다. 나는 '{...}'이라고 의역하였다. 成玄英은 靜,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魚升反,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其神凝에 대해 三字喫緊//非遊物外者/不能凝於神, '{...}'라고 하였다. ◈ 使는 '{...}'는 말이다. 物不疵癘와 年穀熟을 받는다. ◈ 物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 疵癘는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인 듯하다. 疵는 '{...}'는 말이고, 癘는 '{...}'다. 즉, 疵癘는 아마 생물들이 당할 수 있는 '{...}'를 이르는 말 같다. 成玄英은 疵癘/疾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疵에 대해 在斯反/病也//司馬云/毀也//一音子爾反, '{...}'라고 하였고, 癘에 대해서는 音厲/李音賴/惡病也//本或作厲, '{...}'라고 하였다. ◈ 而年穀熟의 而는 '{...}'다. 與나 及과 같다. 物不疵癘와 年穀熟을 병렬적으로 이어 준다. 《論語》 「雍也」에 不有祝鮀之佞/而有宋朝之美/難乎免於今之世矣, {...}'라는 말이 있고, 《墨子》 「尙賢 上」에 聞善而不善/皆以告其上, '{...}'라는 말이 있으며, 《韓非子》 「說林 上」에는 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 '{...}'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而는 '{...}'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年穀은 체언으로, 아마 '{...}'일 것이다. 年은 아마 {...}가 잘못된 글자일 듯하다.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필사하다가 잘못되었을 것이다. 成玄英은 五穀熟/謂有年也, '{...}'라고 하였다. 즉, 《成玄英本》에는 {...}이라고 되어 있다. 年穀熟과 대구를 이루고 있는 物不疵癘의 구조를 볼 때, 年穀은 物과 대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이 되어야 의미도 올바르고, 대구도 잘 맞게 될 것이다. 원문 그대로 보려고 하면 年을 부사어로 보고, '{...}'라고 해석해야 한다. 時가 '{...}'로, 日이 '{...}'로 쓰이는 것과 같다. 그러면 年穀熟은 '{...}'라는 말이 된다. ◈ 熟은 용언으로, 곡식 같은 것이 '{...}'는 말이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肩吾를 이른다. ◈ 以는 '{...}'이다. 是를 받는다. ◈ 是는 接輿가 肩吾에게 해 주었던 藐姑射山의 神人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 狂은 誑과 같다. 용언으로, '{...}'는 뜻이다. 狂은 아마 爲狂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그러면 '{...}'라는 말이 된다. 陸德明은 求匡反//李云/癡也//李又九況反,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音讀如誑//言以爲誑, '{...}'라고 하였다. ◈ 狂而不信의 而는 乃처럼 '{...}'라고 보아야 하겠다. 즉, 狂而不信은 '{...}'라는 말이 된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河漢而無極의 而 부분에 설명해 두었다. ◈ 不信은 '{...}'라는 말이다. 信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夫體神居靈而窮理極妙者/雖靜默閒堂之裏/而玄同四海之表/故乘兩儀而御六氣/同人群而驅萬物//苟無物而不順/則浮雲斯乘矣//無形而不載/則飛龍斯御矣//遺身而自得/雖淡然而不待/坐忘行忘/忘而爲之/故行若曳枯木/止若聚死灰/是以云其神凝也//其神凝/則不凝者自得矣//世皆齊其所見而斷之/豈嘗信此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聖人形同枯木/心若死灰/本跡一時/動寂俱妙/凝照潛通/虛懷利物//遂使四時順序/五穀豐登/人無災害/物無夭枉//聖人之處世/有此功能/肩吾未悟至言/謂爲狂而不信,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列子黃帝篇///姑射山在海中//山上有神人焉/吸風飲露/不食五穀/心如淵泉/形如處女//不施不惠/而物自足/不聚不斂/而己無愆//陰陽常調/日月常明/四時常若/風雨常均/字育常時/年穀常豐//而土無札傷/人無夭惡/物無疵癘///漆園本此爲說, '{...}'라고 하였다. 《列子》 「黃帝」에는 이 인용문의 첫 부분인 姑射山在海中이 列姑射山在海河洲中, '列姑射山은 海河洲 가운데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는 {...}도 없다. 王先謙이 앞에서 鯤과 鵬에 대해 지적했던 바와 같다.)"

 

연숙이 말했다.(連叔曰)

 

"그러하더냐. 소경은 [아름다운] 무늬의 모습을 즐길 수가 없고, 귀머거리는 종소리나 북소리를 즐길 수가 없다. [그런데] 어찌 사람의 몸에 대해서만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다 하겠느냐. 저 [사람의] 식견에도 또한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는 법이다.(然//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鐘鼓之聲//豈唯形骸有聾盲哉//夫知亦有之, ◈ 然은 용언으로, '{...}' 따위의 말로 보인다. ◈ 瞽者는 명사구로, '{...}'이다. 瞽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瞽者의 者는 '{...}'이라는 뜻이다. 장님을 이른다. 成玄英은 瞽者/謂眼無眹縫/冥冥如鼓皮也, '{...}'라고 하였고, 또 盲者/眼根敗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古//盲者無目/如鼓皮也, '{...}'라고 하였다. ◈ 無以는 '{...}'라는 말이다. 無는 '{...}'라는 말이고, 以는 아마 能, '{...}' 혹은 爲, '{...}'라는 뜻인 듯하다. 즉, 無以與乎文章之觀은 '{...}'라는 말이 되고, 뒤의 句에 있는 無以與乎鐘鼓之聲은 '{...}'라는 말이 된다. 그러한 용례들이 있다. 《論語》 「季氏」에 不學詩/無以言, '{...}'라는 말이 있고, 또 不學禮/無以立, '{...}'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子張」에 無以爲也, , '{...}'라는 말이 있다. 또, 《論語》 「堯曰」에는 不知命/無以爲君子也//不知禮/無以立也//不知言/無以知人也, '{...}'라는 말이 있다. 《荀子》 「勸學」에는 故不積蹞步/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 '{...}'라는 말이 있다. ◈ 與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것 같다. 원래 의미 그대로 '{...}'라고 보아도 의미가 통한다. 《淮南子》 「天文訓」에 聖人不與也,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與/猶說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徐音豫//下同, '{...}'라고 하였다. ◈ 乎文章之觀의 乎는 以처럼 '{...}'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文章之觀을 받는다. 乎鐘鼓之聲의 乎도 마찬가지다. 鐘鼓之聲을 받는다. ◈ 文章은 체언으로, '{...}'를 이른다. 지금은 文章이 '{...}'을 뜻하지만, 본래 의미는 달랐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은 《禮記》에 기재되어 있다. 《禮記》 「月令」에 是月也/命婦官染採/黼黻文章/必以法故, '{...}'라는 말이 있다. 鄭玄은 白與黑謂之黼/黑與青謂之黻/青與赤謂之文/赤與白謂之章, '{...}'라고 하였다. 「月令」에 대해 陸德明은 黼音甫//黻音弗, '{...}'라고 하였다. ◈ 文章之觀의 之는 {...}다. 鐘鼓之聲의 之도 그렇다. ◈ 觀은 체언으로, '{...}' 따위를 이른다. 陸德明은 古亂反, '{...}'라고 하였다. ◈ 聾者는 명사구로, '{...}'다. 聾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聾者의 者는 '{...}'이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聾者/耳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鹿工反/不聞也, '{...}'라고 하였다. ◈ 鐘은 체언으로, 댕댕 울리는 '{...}'이다. ◈ 鼓는 체언으로, '{...}'이다. ◈ 聲은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聲 아래에 崔向司馬本/此下更有/眇者無以與乎眉目之好/夫刖者不自爲假文屨, '{...}'라고 하였다. 眇者無以與乎眉目之好/夫刖者不自爲假文屨는 '{...}'는 말이다. ◈ 豈는 '{...}'는 말이다. 반어의 용도로 哉 같은 말과 짝을 이루어 자주 쓰인다. ◈ 唯는 부사어로, '{...}'다. ◈ 形骸는 체언으로, '{...}'다. 形은 '{...}', 骸는 '{...}'를 이른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盲은 체언으로, '{...}'이다. 그러나 앞에서 瞽者가 예시로 나왔기 때문에, 의미는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 盲 역시 瞽가 되어야 맞지 않겠나 의뭉스럽다. 郭慶藩은 闕誤引天台山方瀛觀古藏本盲作瞽, '{...}'라고 하였는데, 이 판본이 타당하겠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다.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문장이 새로 시작되는 지점이 아니기 때문에 발어사로 볼 수는 없겠다. ◈ 知는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音智//注知之同, '{...}'라고 하였다. ◈ 有之의 之는 有聾盲의 聾盲을 가리킨다. ◈◈ 郭象은 不知至言之極妙/而以爲狂而不信/此知之聾盲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目視耳聽/蓋有物之常情也/既瞽既聾/不可示之以聲色也//亦猶至言妙道/唯懸解者能知//愚惑之徒/終身未悟/良由智障盲闇/不能照察/豈唯形質獨有之耶//是以聞接輿之言/謂爲狂而不信//自此以下/是連叔答肩吾之辭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聾盲은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肩吾가 {...} 비판하였다.) 그 말은 오히려 너에게 정말 딱 들어맞는다.(是其言也/猶時女也, ◈ 是는 아마 부사어로,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아마 寔와 통용되는 글자일 것이다. 其가 지시하는 말이므로, 是도 지시하는 말로써 함께 쓰일 필요가 없다. 만약 是와 其가 모두 지시하는 말이라면, 是其言은 '{...}'이 될 텐데, 이래서는 말이 안 된다. 是와 寔은 통용되었고, 또 實처럼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爾雅》 「釋詁」에 時/寔/是也, '{...}'라는 말이 있다. 《春秋》 「桓公」 6년에 寔來,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 대해 《春秋公羊傳》에는 寔來者何/猶曰是人來也, '{...}'라고 하였고, 《春秋穀梁傳》에는 寔來者/是來也, '{...}'라고 되어 있다. 寔가 是로 풀이됨을 알 수 있다. 또, 《書》 「周書 秦誓」에 是能容之,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大學」에는 實能容之, '{...}'라고 인용되어 있다. 王引之는 「大學」에 寔能容之라고 인용되어 있다고 했는데, 아마 판본에 따라 그렇게 되어 있기도 한 모양이다. 이는 是와 寔가 통용되었고, 또 實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寔實」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是者/指斥之言也, '{...}'라고 하였으나, 아마 틀렸을 것이다. ◈ 其言은 '{...}'이다. 其는 아마 '{...}'처럼 지시하는 말일 것이다. 言은 체언으로, '{...}'다. 바로 앞에서 連叔이 소경과 귀머거리에 대해 한 이야기를 이른다. 그런데 郭象과 成玄英은 {...} 예시였다. 따라서 是其言也/猶時女也의 내용은 {...}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其言이 豈唯形骸有聾盲哉/夫知亦有之를 가리켜야 한다. ◈ 是其言也의 也는 者와 같다. '{...}'이다. 즉, 其言也는 其言者, '{...}'처럼 해석된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猶는 아마 부사어로, '{...}'일 것이다. ◈ 時女는 '{...}'라는 말일 것이다. 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女는 2인칭 대명사로, 肩吾를 가리킨다. 《論語》 「陽貨」에 孔子時其亡也/而往拜之, '{...}'라는 말이 있는데, 時는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漢書》 「元帝紀」에 陰陽和/風雨時/日月光,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時는 '{...}'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時들이 본문의 의미에 가까운 듯하다. 그런데 時女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成玄英은 少年處室之女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猶處女也///向云/時女虛靜柔順/和而不喧/未嘗求人而爲人所求也, '{...}'라고 했다. 한편 郭慶藩은 時/是也//猶時女也/謂猶是女也//猶時二字連讀//易女子貞不字/女即處女也//司馬訓時女猶處女/疑誤//詩大雅綿篇曰止曰時/箋曰/時/是也///是其證, '{...}'라고 하였다. 인용문은 《易》의 「屯」에 있다. 「緜」은 「大雅 文王之什」에 속해 있다. 箋은 鄭玄의 주석을 뜻한다. 司馬彪와 郭慶藩은 둘 다 處女라고 풀이했으나, 郭慶藩은 時가 是라고 하였고, 司馬彪는 時女를 處女라고 했기 때문에, 郭慶藩은 司馬彪를 보고 틀렸다고 한 듯하다. 한편 王先謙은 時/是也//云是其言也/猶是若處女者也//此人也/此德也云云/極擬議之詞, '{...}'라고 하였다. 이 설들에서는 모두 女를 '{...}'로 보고 있는데, 그러면 말이 안 된다. 時女가 處女이든, 是女이든, 이 이야기에서 {...}가 나올 이유가 없다. 處子는 {...}라고 한다면, 是其言也/猶時女也은 '{...}'가 된다. 보다시피 전혀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 郭象은 謂此接輿之所言者/自然爲物所求/但知之聾盲者謂無此理,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指此接輿之言/猶如窈窕之女/綽約凝潔/爲君子所求/但知之聾盲者謂無此理也, '{...}'라고 하였다.)"

 

<연숙의 말 이어짐>

 

"이러한 사람들은 덕을 가지고 만물을 널리 품어 하나로 만들려 한다. 세상 사람들은 [신인들이 세상을] 다스려 주기를 바라지만, [저 신인들 중] 누가 수고롭게도 세상사를 [자신이] 다스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겠느냐.(之人也/之德也/將旁礡萬物以爲一/世蘄乎亂/孰弊弊焉以天下爲事, ◈ 之人也의 之는 是처럼 '{...}'으로 번역해야 할 것 같다. 앞쪽에 之二蟲又何知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곳의 之가 이 부분의 之와 쓰임새가 같다. 즉, 之人也는 '{...}'과 같은 말이다. 成玄英은 之是語助/亦歎美也, '{...}'라고 하였으나, 틀렸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神人을 이른다. ◈ 之人也의 也는 아마 者처럼 '{...}'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있는 是其言也의 也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之德也의 之는 以처럼 '{...}'처럼 해석된다. 之와 以의 모양이 비슷해서 날려서 베껴 쓰다가 글자가 잘못된 듯하다. ◈ 德은 체언으로, 덕목으로써의 '{...}'이다. 神人들이 품고 있는 '{...}'을 뜻한다. ◈ 之德也의 也는 {...}인 것 같다. 者로도 해석될 수가 없고, 也로도 해석할 수가 없다. 따라서 之人也/之德也는 之人者以德, '{...}'라는 의미가 된다. ◈ 將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旁礡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 같다. 李楨의 설이다. '{...}'라고 할 수도 있다. 司馬彪와 成玄英의 설이다. 나는 '{...}'를 따랐다. 成玄英은 旁礡/猶混同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薄剛反/李鋪剛反//字又作磅/同//薄博反/李普各反//司馬云/旁礡/猶混同也, '{...}'라고 했다. 李楨은 漢司馬相如傳旁魄四塞/注/旁魄/廣被也///魄與礡通//揚雄傳旁薄群生/注/旁薄/猶言蕩薄也///蕩薄即廣被之意//旁礡萬物/承上之德也三字/言其德將廣被萬物, '{...}'라고 하였다. 《漢》은 《漢書》를 이른다. 「司馬相如傳」의 注는 顏師古의 注다. 旁魄四塞는 《史記》 「司馬相如列傳」에도 나오는데, 《史記》에는 旁魄에 대한 주석이 따로 없다. 「揚雄傳」은 《漢書》 「揚雄傳」을 이른다. 「揚雄傳」의 注도 顏師古의 注다. 「揚雄傳」에는 旁薄羣生으로 되어 있다. 의미는 같다. 廣被는 '{...}' 蕩薄은 '{...}'라고 보면 타당할 듯하다. ◈ 萬物은 체언으로, '{...}'이다. ◈ 以爲는 일반적으로 '{...}'라고 해석되는데, 여기서는 爲를 '{...}'라고 보고 '{...}'라고 해석하면 잘 합치되겠다. 《周禮》 「春官宗伯」에 典同/掌六律六同之和/以辨天地四方陰陽之聲/以爲樂器,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爲/作也, '{...}'라고 하였다. 《爾雅》 「釋言」에는 作/造/爲也, '{...}'라는 말도 있다. ◈ 一은 체언으로, '{...}'다. 莊子는 道 앞에 만물이 모두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이 점이 바로 그 핵심 사상 중 하나인데, 바로 이 '{...}'을 뜻한다. 즉, 爲一은 '{...}'라는 말이다. 「齊物論」에 故爲是舉莛與楹/厲與西施/恢恑憰怪/道通爲一, '{...}'라는 말이 있다. ◈ 世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蘄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求, '{...}'라고 했다. 陸德明은 徐音祈//李云/求也,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舊蘄作鄿/訛/今從宋本正,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蘄同期, '{...}'라고 하였다. ◈ 世蘄乎亂의 乎는 아마 '{...}'이라는 말 같다. 亂을 받을 것이다. ◈ 亂은 체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世蘄乎亂은 '{...}'라는 말이 된다. 亂은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정반대로 '{...}'라고 해야 내용과 잘 합치된다. 간혹 이렇게 해석될 때가 있다. 《書》 「周書 泰誓 中」에 予有亂臣十人/同心同德, '{...}'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釋詁云/亂/治也///故謂我治理之臣有十人也, '{...}'라고 하였다. 「釋詁」는 《爾雅》 「釋詁」를 이른다. 「釋詁」에는 乂/亂/靖/神/弗/淈//治也, '{...}'라고 되어 있다. 한편 李楨도 以爲一世蘄乎亂/亂/治也/猶虞書亂而敬之亂//舉世望治/德握其符/神人無功/豈肯有勞天下之跡//老子云/我無爲而民自化/此之謂也, '{...}'라고 하였다. 亂而敬은 《書》 「虞書 皋陶謨」에 나온다. 孔安國은 亂/治也//有治而能謹敬, '{...}'라고 하였다. 老子의 말은 《道德經》에서 인용한 것이다. 我無爲而民自化는 《道德經》 57장에 나온다. ◈ 孰은 '{...}'이라는 말이다. 神人들 중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誰, '{...}'라고 하였다. ◈ 弊弊焉은 弊弊然과 같다. '{...}'라는 뜻이다. 弊는 疲弊라는 말처럼, '{...}'라는 뜻이다. 《戰國策》 「西周策」에 兵弊於周/而合天下於齊/則秦孤而不王矣,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弊/罷也, '{...}'라고 하였다. 焉은 然과 같다. 용언 뒤에 붙어서 형용하는 말로 만들어 주는 표현이다. 따라서 弊弊焉은 '{...}'라는 뜻이 된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李扶世反//徐扶計反//簡文云/弊弊/經營貌///司馬本作蔽蔽, '{...}'라고 하였다. ◈ 以天下爲事의 以는 '{...}'이다. 天下를 받는다. ◈ 天下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事를 받는다. ◈ 爲事의 事는 체언으로, '{...}'이다. 따라서 以天下爲事는 '{...}'라는 말이 된다. 事는 '{...}'라는 말이다. 《戰國策》 「秦策」에 齊魏得地葆利/而詳事下吏, '{...}'이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事를 治, '{...}'라고 풀이하였다. 또, 《史記》 「曹相國世家」에 卿大夫已下吏及賓客見參不事事,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事 역시 '{...}'는 뜻이다. 또, 《呂氏春秋》 「孟夏紀 尊師」에 事五穀,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事를 治, '{...}'라고 풀이하였다. ◈◈ 郭象은 夫聖人之心/極兩儀之至會/窮萬物之妙數//故能體化合變/無往不可/旁礡萬物/無物不然//世以亂故求我/我無心也//我苟無心/亦何爲不應世哉//然則體玄而極妙者/其所以會通萬物之性/而陶鑄天下之化/以成堯舜之名者/常以不爲爲之耳//孰弊弊焉勞神苦思/以事爲事/然後能乎,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之人者/歎堯是聖人//之德者/歎堯之盛德也//言聖人德合二儀/道齊群品/混同萬物/制馭百靈//世道荒淫/蒼生離亂/故求大聖君臨安撫//而虛舟懸鏡/應感無心/誰肯勞形弊智/經營區宇/以事爲事/然後能事//故老子云爲無爲/事無事/又云取天下常以無事/及其有事不足以取天下也, '{...}'라고 하였다. 老子의 말은 모두 《道德經》에서 인용한 것들이다. 爲無爲/事無事는 《道德經》 63장에 나오고, 天下常以無事//及其有事/不足以取天下는 《道德經》 48장에 나온다.) 이 사람들은 무엇으로도 해칠 수가 없으니(之人也/物莫之傷, ◈ 之人也의 之는 是처럼 '{...}'으로 번역해야 한다. 앞쪽에 之二蟲又何知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곳의 之가 이 부분의 之와 쓰임새가 같다. 즉, 之人也는 '{...}'과 같은 말이다. ◈ 人은 체언으로, '{...}'이다. 神人을 이른다. ◈ 之人也의 也는 아마 者처럼 '{...}'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있는 是其言也의 也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으로도 해칠 수가 없다는 뜻이다. ◈ 莫은 부정어다. '{...}'는 뜻이다. ◈ 莫之傷의 之는 아마 {...}일 것이다. ◈ 傷은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 郭象은 夫安於所傷/則傷不能傷//傷不能傷/而物亦不傷之也, '{...}'라고 하였다.), 홍수가 크게 나서 [물이] 하늘까지 이르더라도 [신인은] 물에 빠지지 않고, 가뭄이 크게 들어 쇠와 돌이 [녹아] 흐르고, 흙과 산이 불타더라도 [신인은] 뜨겁다 하지 않는다.(大浸稽天而不溺/大旱金石流土山焦而不熱, ◈ 大浸은 '{...}'다. 大는 관형어로, '{...}'이다. 浸은 본래 '{...}'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체언으로 '{...}'를 뜻한다. 陸德明은 子鴆反, '{...}'라고 하였다. ◈ 稽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至, '{...}'라고 했다. 陸德明은 音雞/徐李音啟//司馬云/至也, '{...}'라고 했다. ◈ 而不溺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而不熱의 而도 그렇다. ◈ 不은 부정어다. ◈ 溺은 용언으로, 물에 '{...}'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奴歷反/或奴學反, '{...}'라고 하였다. ◈ 大旱은 '{...}'이다. 大는 관형어로, '{...}'이다. 旱은 날이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체언으로 '{...}'이라고 보아야 한다. ◈ 金은 체언으로, '{...}'다. ◈ 石은 체언으로, '{...}'이다. ◈ 流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너무 덥기 때문에 {...}는 뜻이다. ◈ 土는 체언으로, '{...}'이다. ◈ 山은 체언으로, '{...}'이다. ◈ 焦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熱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無往而不安/則所在皆適/死生無變於己/況溺熱之間哉//故至人之不嬰乎禍難/非避之也/推理直前而自然與吉會, '무엇을 해도 편안히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어디로 가서 어디에 있든, 死와 生도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 하물며 홍수나 더위야 어떻겠느냐. 따라서 至人은 禍難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를 피하지도 않으니, 이치를 올곧게 밀고 나가며 自然스럽게 상서롭게 처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達於生死/則無死無生//宜於水火/則不溺不熱//假令陽九流金之災/百六滔天之禍/紛紜自彼/於我何爲//故郭注云/死生無變於己/何況溺熱之間也哉, '{...}'라고 하였다.) 신인들은 진구나 비강을 가지고서도 장차 요나 순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사람들인데, [저 신인들 중] 누가 세상일을 [자신이] 다스릴 일이라고 생각하려 하겠느냐.(是其塵垢粃穅/將猶陶鑄堯舜者也/孰肯以物爲事, ◈ 是는 神人을 가리킨다. ◈ 其는 아마 '{...}'라는 말 같다. 以처럼 해석된다. 塵垢와 粃穅을 받는다. ◈ 塵垢는 체언으로, '{...}'라는 말이다. 앞의 이론 부분에 나왔던 塵埃와 같은 말일 것이다. '{...}'을 뜻한다. 成玄英은 散爲塵/膩爲垢,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古口反//塵垢/猶染污, '{...}'라고 하였다. ◈ 粃穅은 체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을 이른다. 粃는 '{...}', 穅은 '{...}'다. 成玄英은 穀不熟爲秕/穀皮曰糠/皆猥物也, '{...}'라고 하였다. 《經典釋文》에는 粃로 되어 있다. 陸德明은 이에 대해 本又作秕//徐甫姊反/又悲矣反//字亦作糠/音康//秕糠/猶煩碎,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案說文作秕//舊本糠作康/今依注本改//糠亦俗字//似當云音康/字亦作康爲是/疑後人亂之/而又妄改也//康已從米/何必又贅米旁,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 將은 '{...}'다. ◈ 猶는 '{...}'다. ◈ 陶鑄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陶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鑄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鎔金曰鑄/範土曰陶,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陶에 대해서는 徒刀反/李移昭反//本亦作鋾/音同, '{...}'라고 하였고, 鑄에 대해서는 之樹反, '{...}'라고 하였다. ◈ 堯와 舜은 고대 중국의 제왕들이다. 여기서는 {...}하는 존재로 차용되었다. 成玄英은 諡法/翼善傳聖曰堯/仁聖盛明曰舜, '{...}'라고 하였다. ◈ 者也는 아마 者와 같을 것이다. '{...}'이라는 뜻이다. 其塵垢粃穅/將猶陶鑄堯舜을 받는다. 也는 者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오는 是其言也의 也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也가 者이므로, 者也는 者者가 된다. 이는 곧 者다. ◈ 孰은 '{...}'다. 神人 중 '{...}'라는 말이다. ◈ 肯은 '{...}'라는 말이다. 《詩》 「國風 魏風」의 「碩鼠」에 三歲貫女/莫我肯顧,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成公」 4년에 楚雖大/非吾族也/其肯字我乎,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廉頗藺相如列傳」에 相如聞/不肯與會, '{...}'라는 말이 있다. 이 예문들에서 肯은 모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모두 金元中의 《한문 해석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 以物爲事의 以는 '{...}'이다. 物을 받는다. ◈ 物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事를 받는다. ◈ 爲事의 事는 체언으로, '{...}'이다. 따라서 以物爲事는 '{...}'라는 말이 된다. ◈◈ 郭象은 堯舜者/世事之名耳//爲名者/非名也//故夫堯舜者/豈直堯舜而已哉//必有神人之實焉//今所稱堯舜者/徒名其塵垢粃穅耳,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堯至聖/妙絕形名/混跡同塵/物甘其德/故立名諡以彰聖體//然名者粗法/不異秕糠//諡者世事/何殊塵垢//既而矯諂佞妄/將彼塵垢鍛鑄爲堯/用此秕糠埏埴作舜//豈知妙體胡可言邪//是以誰肯以物爲事者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於煩碎之事物/直以塵垢視之, '{...}'라고 하였고, 또 又引不以天下爲事之神人以明其自全之道, '{...}'라고 하였다.)"

 

<연숙의 말 이어짐>

 

"송나라 사람이 장보를 마련해서는 [팔아 보려고] 월나라로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그림을 그리고 다녔으므로, [마련해 간] 장보를 쓸 수가 없게 되었다.(宋人資章甫而適諸越/越人斷髮文身/無所用之, ◈ 宋人은 '{...}'이다. 宋은 나라 이름이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된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宋나라는 {...}이 퍼져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陸德明은 宋/今梁國睢陽縣/殷後/微子所封, '{...}'라고 하였다. ◈ 資는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는 팔기 위해 '{...}'라는 말이다. 《史記》 「魏公子列傳」에 嬴聞如姬父爲人所殺/如姬資之三年/自王以下欲求報其父仇/莫能得, '{...}'라는 말이 있는데, 司馬貞은 舊解資之三年謂服齊衰也//今案/資者/畜也//謂欲爲父複讎之資畜於心已得三年矣,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貨,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李云/資/貨也,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文選張景陽雜詩注引司馬云/資/取也//章甫/冠名也[嵇叔夜與山巨源絕交書注引同]//諸/於也///釋文闕, '{...}'라고 하였다.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雜詩」에 대한 注에는 莊子曰///宋人資章甫而適諸越/越人敦髮文身/無所用之///司馬彪曰///敦/斷也//資/取也//章甫/冠名也//諸/於也, '{...}'라고 되어 있다. 《司馬彪本》에는 斷髮文身이 아니라 敦髮文身으로 되어 있었던 듯하다. 「與山巨源絕交書」에 대한 注는 莊子曰///宋人資章甫而適越/越人敦髮文身/無所用之///司馬彪曰/敦/斷也//章甫/冠名也라고 인용되어 있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章甫는 체언으로, 冠의 이름이다. 殷나라 사람들이 쓰던 冠이다. 《禮記》 「郊特牲」에 委貌/周道也//章甫/殷道也//毋追/夏后氏之道也, '{...}'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然三代乃俱用緇布/而其形自殊/周爲委貌之形/殷則爲章甫之形/夏則爲毋追之形, '{...}'라고 하였다. 그러면 章甫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郊特牲」 인용문은 《儀禮》 「士冠禮」에도 나와 있다. 「士冠禮」에 대해 鄭玄은 章/明也//殷質言以表明大夫也//甫/或爲父, '{...}'라고 하였다. 즉, 章甫는 명철한 大夫의 모습을 의도하여 만든 冠일 것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章甫/殷冠也//以冠爲貨, '{...}'라고 하였다. 郭慶藩이 인용한 司馬彪의 주석에도 나와 있다. 成玄英은 章甫/冠名也, '{...}'라고 하였다. ◈ 而適諸越의 而는 '{...}'라고 해석된다. {...}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河漢而無極의 而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適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諸는 之於의 줄임말 또는 於의 가차자다. '{...}'라는 뜻이다. 郭慶藩이 인용한 司馬彪의 주석에도 나와 있다. 또 李楨도 諸越/猶云於越//春秋定五年經於越入吳/杜注//於/發聲也///公羊傳/於越者/未能以其名通也/何休注/越人自名於越///此作諸者/廣雅釋言/諸/於也///禮記射義注/諸/猶於也///是疊韻假借, '{...}'라고 하였다. 「定」은 「定公」이다. 《公羊傳》은 《春秋公羊傳》이다. 「射義」에 대한 注는 鄭玄의 注다. ◈ 越人은 '{...}'이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越은 나라 이름이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된다. 越나라는 {...} 유명하였다. 《史記》 「越王句踐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陸德明은 今會稽山陰縣, '{...}'라고 하였다. ◈ 斷髮은 '{...}'라는 말이다. 斷은 용언으로, '{...}'는 말이고, 髮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고대 중국인들은 머리를 기르고 이를 상투로 묶었으므로, 머리를 깎는 일은 예법에 어긋난 짓이었다. 陸德明은 斷에 대해 丁管反//李徒短反//司馬本作敦/云/敦/斷也, '{...}'라고 하였다. 斷髮은 《莊子集解》에는 短髮이라고 되어 있다. 短은 '{...}'라는 말로, 아마 여기서는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 文身은 '{...}'라는 말이다. 文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身은 체언으로, '{...}'이다. 아마 고대 중국에서는 예법에 맞지 않는 행위였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예법에 맞지는 않다. 成玄英은 斷髮하고 文身한 이유에 대해 越國逼近江湖/斷髮文身/以避蛟龍之難也, '{...}'라고 설명하였다. 蛟龍은 아마 '{...}'를 이를 것이다. ◈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所用之를 받는다. ◈ 所는 '{...}'다. 用之를 받는다. ◈ 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이 말은 越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宋나라 사람 입장에서 팔아 먹을 데에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나는 宋나라 사람 입장에서 번역하였다. ◈ 用之의 之는 章甫를 가리킨다. 즉, 無所用之는 '{...}'라는 말이 된다. ◈◈ 成玄英은 此起譬也, '{...}'라고 하고, 또 故孔子生於魯/衣縫掖//長於宋/冠章甫//而宋實微子之裔/越乃太伯之苗/二國貿遷往來/乃以章甫爲貨//且章甫本充首飾/必須雲鬟承冠/越人斷髮文身/資貨便成無用//亦如榮華本猶滯著/富貴起自驕矜//堯既體道洞忘/故能無用天下//故郭注云/夫堯之無所用天下爲/亦猶越人無所用章甫耳, '{...}'라고 하였다. 인용된 郭象의 注는 뒷문장인 堯治天下之民/平海內之政/往見四子藐姑射之山/汾水之陽/窅然喪其天下焉에 달려 있다. ◈◈ 王先謙은 爲無所用天下設喩,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머리를 깎고 문신을 새겼다는 것은 越나라 사람들이 {...} 말과 같다. 즉, 이 설은 {...}하기 위한 이야기다. 「齊物論」의 朝三도 이 경우처럼 통상적인 이해와 문맥적인 해석의 방향이 상이하다.)"

 

<연숙의 말 이어짐>

 

"[식견에 대해 너의 눈과 귀를 띄어 주기 위해서 이번에는 신인들에 대한 일화를 하나 말해 주겠다.] 요가 천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온세상의 정사를 공정하게 처리하고서는, 막고야산의 네 사람을 만나러 떠났다. [그런데 요가 신인들을 만나고서는] 분수 북쪽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신인의 덕에 비해 보잘것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멍하니 세상사를 잊고 말았다.(堯治天下之民/平海內之政/往見四子藐姑射之山/汾水之陽/窅然喪其天下焉, ◈ 堯는 고대의 제왕이다. ◈ 治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治/言緝理//政/言風教//此合喻也, '{...}'라고 하였다. 다만 본문 문장에서 治는 {...}이고, 政은 {...}임에 주의해서 보아야 하겠다. ◈ 天下之民의 天下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天下之民 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海內之政, 汾水之陽의 之도 모두 그러하다. ◈ 民은 체언으로, '{...}'이다. ◈ 平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海內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政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 往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으로 읽는다. ◈ 四子은 '{...}'을 뜻한다. 四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子는 {...}으로, '{...}'이라고 해석된다. 老子, 莊子, 孔子, 荀子, 墨子, 韓非子에 붙는 子들도 모두 {...}이다. 成玄英은 而四子者/四德也//一本/二跡/三非本非跡/四非非本跡也//言堯反照心源/洞見道境/超茲四句/故言往見四子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李云/王倪/齧缺/被衣/許由, '{...}'라고 하였다. 王倪와 齧缺에 대한 이야기는 「齊物論」에 나온다. 「應帝王」에는 蒲衣子와 齧缺이 대화하는 내용이 있는데, 蒲衣子가 아마 被衣일 것이다. 이 네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外篇》 「天地」에 堯之師曰許由/許由之師曰齧缺/齧缺之師曰王倪/王倪之師曰被衣, '{...}'라는 말로 직접 표현되어 있다. ◈ 藐姑射之山은 藐姑射山을 이른다. ◈ 汾水는 강 이름이다. 山西의 {...}에 합류한다. 北魏 사람 酈道元의 《水經注》 「汾水」에 汾水出太原汾陽縣北管涔山//東南過晉陽縣東/晉水從縣南東流注之//又南/洞過水從東來注之//又南過大陵縣東/又南過平陶縣東/文水從西來流注之//又南過冠爵津/又南入河東界/又南過永安縣西//歷唐城東/又南過楊縣東/西南過高梁邑西/又南過平陽縣東/又南過臨汾縣東/又屈從縣南西流/又西過長脩縣南/又西過皮氏縣南/又西至汾陰縣北/西注于河, '{...}'라는 말이 있다. 이는 《水經》 본문일 것이고, 이에 대한 주석에도 汾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남아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汾水出自太原/西入於河//水北曰陽/則今之晉州平陽縣/在汾水北/昔堯都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扶云反/郭方聞反//案汾水出太原/今莊生寓言也//司馬崔本作盆水,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汾水之陽/堯都, '{...}'라고 하였다. 한편 李楨은 東山經之姑射/是否爲冀州域內之山/經文究無可攷//隋志以屬之臨汾/或後世據此篇汾水之陽一語以名其地之山/亦未可知//上文所稱姑射/遠在北海中/故曰藐/藐者遠也//汾陽/堯所居/若有姑射/何爲亦云藐哉//蓋堯之心未嘗有天下/其心即姑射神人之心/其身亦如姑射神人之身/雖垂衣廟堂/如逍遙海外/是以彼山藐遠/無殊近在帝都//四子本無其人/徵名以實之則鑿矣//注疏推闡/並極精妙//余前辨證一條/謂山名不可混合爲一/然恐有失莊生玄旨/故復論及之//汾水/司馬崔本並作盆水/古讀汾如盆/非別一水/說見錢氏大昕養新錄, '{...}'라고 되어 있다. 「東山經」은 《山海經》의 한 편이다. 《隋》 「志」는 《隋書》 「地理志」를 뜻한다. 後世據此篇의 此篇은 아마 「逍遙遊」를 뜻할 것이다. 《注》와 《疏》는 각각 郭象과 成玄英의 주석을 뜻한다. 《養新錄》은 아마 《十駕齋養新錄》을 이르는 듯하다. ◈ 陽은 '{...}' 또는 '{...}'을 이른다. 따라서 汾水之陽은 '{...}'을 뜻한다. 예를 들어 漢陽은 '{...}'이라는 말이다. 《春秋穀梁傳》 「僖公」 28년에 水北爲陽/山南爲陽, '{...}'라는 말이 있는데, 范宁는 日之所昭曰陽, '{...}'라고 하였다. 반대로, 陰에 대해서는 《說文解字》 「𨸏部」에 陰/闇也//水之南/山之北也, '{...}'라는 말이 있다. ◈ 窅然는 '{...}' 따위의 말이다. 그러나 문맥을 감안할 때 '{...}'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堯가 神人들을 만나고, 자신이 다스리겠다고 매달리던 세상사가 무의미함을 깨달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窅는 '{...}'라는 말이다. 《說文解字》 「目部」에 窅/深目也, '{...}'라고 되어 있다. 즉, 窅然은 '{...}'이 된다. 窅은 窈와도 통용된다. 《史記》 「項羽本紀」에 於是大風從西北而起/折木發屋/揚沙石/窈冥晝晦/逢迎楚軍, '{...}'라는 말이 있는데, 裴駰은 徐廣曰/窈亦作窅字, '{...}'라고 하였다. 즉, 窅는 窈와 통용되었을 것이다. 窈는 '{...}'라는 말이다. 《說文解字》 「穴部」에는 窈/深遠也, '{...}'라고 되어 있다. 즉, 窅과 窈 역시 '{...}'처럼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면 窈然이 '{...}'처럼 사용된 사례가 있을까. 《列子》 「力命」에 窈然无際/天道自會,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窈然 역시 '{...}'처럼 해석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窅然者寂寥/是深遠之名,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烏了反//郭武駢反//李云/窅然/猶悵然, '{...}'라고 하였다. 悵은 '{...}'는 말이다. 따라서 悵然은 아마 '{...}'이라는 뜻일 것이다. 盧文弨는 郭必以爲窴/故如此音, '{...}'라고 하였다. 宣穎은 窅然/深遠貌, '{...}'라고 하였다. ◈ 喪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齊物論」에 吾喪我, '{...}'라는 표현이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喪之言忘/是遣蕩之義,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息浪反/注同, '{...}'라고 하였다. ◈ 其天下의 其는 堯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처럼 이해하면 내용과 잘 합치된다. ◈ 其天下의 天下는 체언으로,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喪其天下은 '{...}'라는 뜻이 된다. ◈◈ 郭象은 夫堯之無用天下爲/亦猶越人之無所用章甫耳//然遺天下者/固天下之所宗//天下雖宗堯/而堯未嘗有天下也/故窅然喪之/而嘗遊心於絕冥之境/雖寄坐萬物之上而未始不逍遙也//四子者蓋寄言/以明堯之不一於堯耳//夫堯實冥矣/其跡則堯也//自跡觀冥/內外異域/未足怪也//世徒見堯之爲堯/豈識其冥哉//故將求四子於海外而據堯於所見/因謂與物同波者/失其所以逍遙也//然未知至遠之所順者更近/而至高之所會者反下也//若乃厲然以獨高爲至而不夷乎俗累/斯山谷之士/非無待者也/奚足以語至極而遊無窮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聖人無心/有感斯應/故能緝理萬邦/和平九土//雖復凝神四子/端拱而坐汾陽//統御萬機/窅然而喪天下//斯蓋即本即跡/即體即用/空有雙照/動寂一時//是以姑射不異汾陽/山林豈殊黃屋//世人齊其所見/曷嘗信此邪//而馬彪將四子爲齧缺/便未達於遠理//劉璋推汾水於射山/更迷惑於近事//今所解釋/稍異於斯//故郭注云/四子者蓋寄言/明堯之不一於堯耳/世徒見堯之跡/豈識其冥哉,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堯亦自失其有天下之尊/下此更不足言矣,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堯治부터 喪其天下焉는 {...} 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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