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12 - 예지용화위귀

2024. 4. 14. 23:23논어 이야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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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14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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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子曰:

「禮之用和為貴。

先王之道斯為美,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유자가 말했다.[각주:1]

 

“[유학자는] 예를 적용할 때 유연한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각주:2]

 

<유자의 말 이어짐>

 

“옛 왕들은 정사를 처리할 때 예법을 훌륭하다고 생각했기에, 작은 사안이든 큰 사안이든 예법에 따라 처리하였는데, [예법만 따르다 보니]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말았다.”[각주:3]

 

<유자의 말 이어짐>

 

“[그래서 예법을 중화하고자, 유연한 태도를 가미하였다. 그런데] 유연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서, [사안들을] 유연하게 처리하되, 예법을 가지고 절제하지 않았더니, 마찬가지로 잘 풀리지 않고 말았다.”[각주:4]

 

 

 

  1. 有子曰, ◈ 有子는 孔子의 제자 有若이다. 有若에 대해서는 「學而」 2장인 其爲人也孝弟 부분에서 상세히 설명하였었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지금의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 邢昺은 此章言禮樂爲用相須乃美, ‘이 장에서는 禮樂을 행할 때, 和를 운용해야 비로소 훌륭해진다는 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用相의 相은 和의 오기인 듯하다. 和로 보고 번역하였다. ◈◈ 蜀虎案 : 이 장에서는 禮와 和를 적절하게 조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본문으로]
  2. 禮之用和爲貴, ◈ 禮之用和爲貴는 문제가 많은 節이다. 본문 그대로 禮之用和爲貴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用을 以로 고쳐서 禮之以和爲貴로 볼 수도 있다. 나는 본래 禮之以和爲貴가 옳다고 생각하였지만, 여러 가지 정황과, 또 증거를 감안할 때, 禮之用和爲貴로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우선 禮之用和爲貴에 대해 대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통설에서는 禮之用/和爲貴처럼 나누고, ‘禮之用에는 和가 貴하게 여겨진다’라고 해석한다. 이 때는 禮之用이 명사구로, 부사어 역할을 한다. 和는 체언으로써 주어 역할을 한다. 爲는 용언인데, 이 때 ‘생각된다’, ‘여겨진다’처럼 해석된다. 貴는 ‘귀종한 것’, ‘중요한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禮之用和爲貴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해석된다. 皇侃, 邢昺, 朱熹, 劉寶楠 모두 이견이 없다. 다만, 문장이 피동형이라서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俞樾은 《禮記》 「儒行」에 근거하여 禮之用和爲貴를 禮之以和爲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하였다. 《禮記》 「儒行」에는 이 말이 禮之以和爲貴라고 되어 있다. 用이 以로 바뀌었다. 고대에는 用과 以를 통용하여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본문의 用, 그리고 《禮記》의 以 중, 어떤 글자가 이 節의 의미에 더 적합할까. 用일 경우에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앞에 제시하였으므로, 이 번에는 《禮記》의 이 말을 있는 그대로, 즉 以를 가지고 해석해 보자. 《禮記》 「儒行」에서는 이 말의 주어가 儒, 즉 ‘유학자’다. 「儒行」은 孔子 魯나라 哀公에게 유학자에 대해 설명해 주는 일화가 수록된 편으로, 대체로 모든 글들이 ‘儒는 ~하다’처럼 구성되어 있다. 禮之以和爲貴 역시 儒, 즉 ‘유학자’가 주어로서 생략되어 있다. 그렇게 보면 禮之以和爲貴는 ‘유학자는 禮之할 때 和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이 된다. 이 경우, 禮는 아마 ‘禮를 적용한다’, ‘禮를 다루다’ 같은 용언일 것이고, 禮之의 之는 禮의 목적어일 것이다. 내 생각에는 본문의 禮之用和爲貴 보다 이 경우가 훨씬 자연스럽고, 의미상으로도 나은 것 같다. 「儒行」은 상기하였듯 孔子와 哀公 사이의 대화를 엮은 편이다. 본문인 《論語》는 孔子 사후에 제자들이 엮은 책이고, 또 본문에서 이 말은 孔子가 아니라 有子의 말로 인용되어 있다. 아마 孔子가 哀公에게 한 말을, 有子가 인용하여 설명하였을 것이고, 이를 기록한 글이 바로 본문의 이 장일 것이다. 따라서 「儒行」 혹은 「儒行」에서 다루고 있는 고사가 禮之用和爲貴의 원전이다. 즉, 원문은 禮之以和爲貴이고, 이 원문을 有子가 禮之用和爲貴로 바꾸었을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자. 俞樾을 따라 禮之以和爲貴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본문을 따라 禮之用和爲貴라고 해석해야 할까. 나는 이 점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는데, 최종적으로는 본문의 禮之用和爲貴을 따르는 편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禮之用和爲貴가 타당하다는 증거가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禮之用和爲貴 뒤에 이어지는 先王之道斯爲美다. 禮之用和爲貴는 ‘禮之用에는 和가 貴로 爲해진다’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先王之道斯爲美 역시 ‘先王之道에서는 斯가 美로 爲해진다’라는 말이다. 이 두 句는 구조적으로 완전하게 동일하다. 禮之用과 先王之道가 각각 부사어 역할을 하고 있고, 和와 斯가 주어이며, 爲가 ‘생각된다’, ‘여겨진다’처럼 해석된다는 점도 같다. 有子는 禮之用和爲貴의 의미를 감안하여, 다음 말인 先王之道斯爲美를 禮之用和爲貴의 형식에 맞추어 표현하였을 것이다. 禮之用和爲貴의 경우, 글자는 以로 다르더라도 「儒行」 같은 원전이 존재하였다. 그러면, 先王之道斯爲美는 어떨까. 《大戴禮記》 「虞戴德」에 先聖之道/斯爲美乎, ‘先聖之道에서는 斯이 美하게 爲해졌느냐’라는 말이 나오니, 이 글이 원전일 것이다. 이 경우에는 以로 바뀔 수 있는 用 같은 글자도 없다. 즉,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論語》 본문은 禮之用和爲貴 그대로 읽어야 한다. 두 번째는 《禮記》 「燕義」다. 《禮記》 「燕義」에 和寧/禮之用也, ‘和寧은 禮의 用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본문의 禮之用和爲貴와 의미가 정합된다. 또, 이 用은 以로 바꿀 수가 없으므로 用이 타당하다는 증거다. 이 말은 劉寶楠 역시 인용해 두었다. 세 번째는 《禮記》 「燕義」에 나오는 禮勝則離, ‘禮가 우세하면 離해진다’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鄭玄은 離/謂析居不和也, ‘離는 나뉘어서 和하지 못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禮를 적용할 때에는 離해지지 않도록 和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직접적인 증거라 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을 邢昺, 程頤, 劉寶楠 같이 여러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고, 또 이 부분에서 논의하고 있는 주제에 정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정황적 증거로 들었다. 따라서, 원전인 「儒行」에서라면 모를까, 본문을 읽는다면 禮之用和爲貴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 이 편이 더 타당하다. 나는, 禮之用和爲貴으로 해석하되, 「儒行」 원문에 생략되어 있던 주어인 ‘유학자’를 밝혀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만약 俞樾을 좇아서 禮之以和爲貴이라고 해석하려면, 禮를 禮法 그 자체로 보지 말고, ‘禮를 적용하는 사람’, ‘禮를 운용하는 사람’처럼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禮之以和爲貴는 ‘禮를 적용하는 사람은 和를 貴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되어, 번역이 아주 자연스러워진다. ◈ 禮는 체언으로, ‘禮’, ‘禮法’을 이른다. 禮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규범이되, 法과는 다르다. 禮에는 상대를 공경하고, 또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전제되어 있다. 法은 그렇지 않다. 내 생각에는, 道가 가장 좋은데, 道를 지키지 못할 때는 仁을 추구해야 하고, 仁을 지키지 못할 때는 禮를 추구해야 하며, 禮를 지키지 못할 때는 法을 추구해야 하는데, 禮로 다스리지 못하고, 法으로 제어해야 할 시기가 오면, 이미 공경심이나 절제심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므로, 마냥 좋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한 하한선은 아마 禮일 것이다. ▼ 朱熹는 禮者/天理之節文/人事之儀則也, ‘禮라는 것은 天理의 節文이요, 人事의 儀則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禮/祭儀云/禮者/履此者也///管子/心術篇/登降揖讓/貴賤有等/親疏有體/謂之禮, ‘《禮》 「祭儀」에는 “禮는 이를 실천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고, 《管子》 「心術」에는 “오르고 내릴 때에는 揖讓해야 하고, 귀하고 천한 데에는 등급이 있으며, 가깝고 먼 사이에도 體가 있으니, 이를 禮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禮》 「祭儀」는 《禮記》 「祭儀」다. 「心術」은 「心術 上」을 이른다. ◈ 之는 관형격 조사다. ‘~의’처럼 해석된다. ◈ 用은 체언으로, ‘작용’, ‘적용’, ‘활용’, ‘사용’ 같은 말이다. 본문의 用은 禮가 실제 세상에 ‘적용될 때’의 상황을 기술하는 표현이다. 나는 ‘적용’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禮之用은 ‘禮의 用’, ‘禮의 적용’이 되는데, 나는 ‘禮가 적용될 때’처럼 의역하였다. 劉寶楠은 《方言》을 근거로 用을 行이라고 풀이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말이다. 상기하였듯 《禮記》 「儒行」에는 禮之用和爲貴가 禮之以和爲貴로 되어 있다. 俞樾은 《禮記》를 근거로 用을 以로 해석하였다. ▼ 劉寶楠은 方言/用/行也///說文/用/可施行也///禮主於讓/故以和爲用, ‘《方言》에서는 “用은 行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說文》에는 “用은 시행할 만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禮法에는 겸양이 중요하니, 그래서 和를 用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用은 「用部」에 기재되어 있다. ▼ 俞樾은 「儒行」에 근거하여 用을 以로 해석하였다. 俞樾은 樾謹按/古以用二字通//周易井九三/可用汲///史記屈原傳引作/可以汲///尙書呂刑篇/報虐以威///論衡譴告篇引作/報虐用威///詩板篇曰/勿以爲笑///荀子大略篇引作/勿用爲笑///竝其證也//禮之用和爲貴/與禮記儒行篇曰/禮之以和爲貴///文義正同/此用字止作以字//解當以六字爲句/近解多以體用爲言/失之矣, ‘고대에 以와 用 두 글자는 통용되었다. 《周易》 井의 「九三」에 “可用汲”이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屈原傳」에는 “可以汲”으로 인용되어 있다. 《尙書》 「呂刑」에 “報虐以威”라는 말이 있는데, 《論衡》 「譴告」에는 “報虐用威”라고 인용되어 있다. 《詩》 「板」에 “勿以爲笑”라는 말이 있는데, 《荀子》 「大略」에는 “勿用爲笑”라고 인용되어 있다. 모두 以와 用이 통용되었다는 증거다. 禮之用和爲貴는, 《禮記》 「儒行」의 禮之以和爲貴라는 말과 글의 의미가 바로 같지만, 이 글에서는 用이 다만 以로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禮之用和爲貴를 해석할 때 마땅히 여섯 글자를 한 句로 보아야 할 텐데, 최근에는 用을 體用의 用처럼 풀이하는 경우가 많으니,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九三」은 井의 「卦辭」를 이른다. 「屈原傳」은 「屈原賈生列傳」이다. 「呂刑」은 「周書」에 속해 있다. 「板」은 「大雅 生民之什」에 속해 있다. 體用이란, ‘본체와 작용’을 이른다. 즉, 體用의 用은 ‘작용’이다. 禮之用和爲貴의 用을 體用의 用, 즉 ‘작용’이라고 해석한다면, 禮之用和爲貴는 ‘禮의 작용에는 和가 貴하게 생각된다’라는 의미가 되고, 이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俞樾은 用을 以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俞樾처럼 해석한다면 禮之用和爲貴는 곧 禮之以和爲貴, ‘禮는 和를 貴하게 爲한다’가 된다. ◈ 和는 체언으로, ‘和’를 이른다. 여기서 和는 ‘조화’, ‘조화시키는 일’, ‘어우러뜨리는 일’, ‘유연한 태도’를 이른다. 나는 ‘유연한 태도’라고 번역하였다. 皇侃과 邢昺은 和를 ‘음악’이라고 해석했다. 제도적, 형식적으로 보았을 때 이 말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朱熹는 ‘관대하고 박절하지 않은 태도’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곧 ‘유연한 태도’다. ▼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和를 樂, ‘음악’이라고 해설하였다. ▼ 邢昺은 和/謂樂也//樂主和同/故謂樂爲和, ‘和는 樂을 이른다. 樂에게는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樂을 和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樂은 ‘음악’인 듯하다. ▼ 朱熹는 和者/從容不迫之意, ‘和라는 것은 관대하여서, 박절하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燕義云/和寧/禮之用也///是也//說文/龢/調也//讀與咊同//盉/味也//和/相應也///三義略同近//今經傳通作和//賈子/道術篇/剛柔得道謂之和/反和爲乖///韋昭/晉語注/貴/重也///高誘/呂氏春秋/尊師注/貴/尙也///和是禮中所有/故行禮在和爲貴, ‘「燕義」에 “和와 寧은 禮의 用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뜻이다. 《說文》에 “龢는 調라는 뜻이다. 咊와 같이 읽는다”라는 말이 있고, “盉는 味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으며, “和는 서로 응하다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세 글자의 의미는 같거나 비슷하다. 지금 經傳들에는 和라고 통용하여 기재되어 있다. 《賈子》 「道術」에는 “강하거나 부드러운 태도가 도리에 맞으면 和라고 한다. 和의 반대를 乖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晉語」에 대해 韋昭는 “貴는 중요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呂氏春秋》 「尊師」에 대해 高誘는 “貴는 숭상하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했다. 和는 禮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에, 禮를 이행할 때 和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燕義」는 《禮記》의 편이다. 龢, 盉, 和는 각각 《說文解字》 「龠部」, 「皿部」, 「口部」에 기재되어 있다. 《賈子》는 賈誼의 《新書》를 이른다. 《新書》에는 剛柔得適謂之和라고 되어 있다. 「晉語」는 《國語》 「晉語 七」을 이른다. 이 주석은 貴貨而易土, ‘재물을 貴하게 생각하고, 토지는 가볍게 생각한다’라는 말에 붙어 있다. 「尊師」는 「孟夏紀」에 속해 있다. 이 주석은 養心爲貴, ‘마음을 기르는 일을 貴하게 생각한다’라는 말에 달려 있다. 한편, 皇侃과 邢昺은 和를 樂, 즉 ‘음악’이라고 해설했는데, 이에 대해 劉寶楠은 皇邢疏以和爲樂/非也//樂記云/禮勝則離///鄭注/離謂析居不和也///又/易/繫辭傳/履以和行///虞翻注/禮之用/和爲貴/故以和行///和是言禮/非謂樂/審矣, ‘皇侃과 邢昺은 和를 樂에 대한 표현이라고 풀이했는데, 틀렸다. 「樂記」에는 “禮가 지나치면 離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離는 나뉘어져서 어우러지지 못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易》 「繫辭傳」에는 “履하여서 和하게 行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虞飜은 “禮의 用에서는 和가 중요하다. 그래서 和하게 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和는 禮에 대한 말이지, 樂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주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樂記」는 《禮記》의 편이다. 「繫辭傳」은 「繫辭 下」를 이른다. ◈ 爲는 용언으로, ‘생각되다’, ‘여겨지다’, ‘간주되다’는 말이다. 貴를 받는다. ◈ 貴는 체언으로, ‘귀중한 것’,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즉, 爲貴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다’, 즉 ‘중요하게 생각되다’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다’는 말이다. ◈◈ 皇侃은 此以下/明人君行化/必禮樂相須//用樂和民心/以禮檢民跡跡/檢心和/故風化乃美/故云/禮之用和爲貴///和/即樂也//變樂言和/見樂功也//樂既言和/則禮宜云/敬但樂///用在內爲隱/故言其功也, ‘이 이하의 글에서는 군주가 교화를 행할 때, 반드시 禮와 樂을 섞어서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樂을 사용하여서 백성들의 마음을 和하게 만드니, 禮를 가지고 백성들을 단속하여 백성들이 불안해지더라도, 그 마음을 풀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풍속과 교화가 선미해질 것이니, 그래서 본문에서 “禮의 운용에는 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한 것이다. 和는 곧 樂이다. 樂을 바꾸어서 和라고 하여, 樂의 효험을 드러낸 것이다. 樂이 이미 和를 뜻하니, 그래서 「禮宜」에서 “敬은 다만 樂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를 운용하여, 마음 속에 품은 것을 隱이라 하니, 이처럼 그 효험을 설명하였다 볼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跡跡은 아마 迹迹과 같은 말로, ‘불안하다’는 말 같다. 《方言》에 迹迹屑屑/不安也//江沅之間謂之迹迹/秦晉謂之屑屑/或謂之塞塞/或謂之省省/不安之語也, ‘迹迹과 屑屑은 불안하다는 뜻이다. 江과 沅 사이 지방에서는 迹迹이라 하고, 秦나라와 晉나라에서는 屑屑이라고 하며, 塞塞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省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불안하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다. 「禮宜」는 어떤 글인지 모르겠다. ◈◈ 邢昺은 夫禮勝則離/謂所居不和也/故禮貴用和/使不至於離也, ‘저, “禮가 우세해지면 離해진다”는 말은, 不和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禮에는 和를 운용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은, 離한 상태에 이르도록 만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禮勝則離는 《禮記》 「樂記」, 《史記》 「樂書」에 나오는 말이다. ◈◈ 范祖禹는 凡禮之體主於敬/而其用則以和爲貴//敬者/禮之所以立也//和者/樂之所由生也//若有子可謂達禮樂之本矣, ‘대체로, 禮의 대체는 敬에 초점이 있다. 그러나 禮를 운용하는 일에서는 和가 중요하다. 敬이라는 것은 禮가 확립되는 바이다. 和라는 것은 樂이 근거하여 생겨나는 바이다. 有子와 같다면, 禮와 樂의 근본에 통달했다고 할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范祖禹의 설이 아주 타당하다. ◈◈ 朱熹는 蓋禮之爲體雖嚴/而皆出於自然之理/故其爲用/必從容而不迫/乃爲可貴, ‘대체로, 禮가 주가 되면, 비록 엄정할지라도, 모든 행위가 자연적 이치에서 나오게 된다. 따라서 禮를 운용하는 모습은 반드시 부드러워지고, 박절하지 않게 되니, 이에 和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和는 ‘유연한 태도’다. 글의 맥락을 살펴 보면, 有子는 禮, 즉 禮法을 적용할 때 和를 병행해야 하지만, 禮法을 가지고 절제하지 않고 和하게만 일을 처리한다면, 일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즉, 和는 일종의 윤활유다. 우리가 禮法이라고 하듯, 禮는 곧 法과 같은 규칙이다. 그러나 禮는 그 자체로 목적인 것은 아니다. 禮를 통해 상대를 공경하고, 자신을 절제할 수 있기 때문에 禮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禮를 이행하면서, 단 하나의 예외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면, 禮를 지킨다고 급급하여서 상대를 공경하지도 못할 것이고, 자신을 절제한다는 의미도 챙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목적을 고찰하며, 빡빡하게 굴지 않고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3.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有所不行, ◈ 禮之用和爲貴 뒤의 句도 숙고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아마 통설은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까지를 한 문장으로 보고, 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까지를 이어서 읽는 방식인 듯하다. 즉,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가 된다. 이렇게 보면, ‘先王之道에서는 斯가 美한 것으로 爲해졌으니, 小大도 之를 由했다. 그런데 不行할 것이 有하니, 和를 知하고, 和하면서, 禮를 가지고 之를 節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行할 수가 없는 것이다’가 된다. 여기서 不以禮節之의 之가 문맥상 和를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句와 節을 이렇게 나누어도 될까. 내 생각에는 안 될 것 같다. 亦不可行也의 亦, 그리고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의 斯와 之 때문에 그렇다. 우선 亦부터 생각해 보자. 亦이란, ‘또한’, ‘역시’, ‘마찬가지로’라는 의미의 부사어다. 앞에서 어떤 상황이 존재하였고, 뒤에 그 상황이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亦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초코는 간식을 먹었다. 멍멍이 역시 간식을 먹었다’나, ‘양파는 멍멍이를 때렸다. 강아지도 마찬가지로 초코를 때렸다’라는 말에서, ‘역시’나 ‘마찬가지로’가 바로 亦이다. 亦不可行也는 ‘마찬가지로 行할 수 없다’는 말이니, 이 앞에서 ‘行할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하였다는 점을 함의하고 있다. 禮之用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중에서 ‘行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은 亦이 들어 있는 亦不可行也와, 小大由之 다음에 있는 有所不行밖에 없다. 만약 有所不行을 뒤의 知和而和와 붙여서 통설처럼 이 글을 읽는다고 하면, 앞의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는 ‘先王之道에서는 斯가 훌륭하게 생각되었으니,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之를 由하였다’라는 말이 되고, 뒤의 말은 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行할 수 없는 바가 있으니, 和를 알고, 和하되,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行할 수가 없다’가 된다. 그런데 이 경우, 亦不可行也의 亦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앞에 ‘行할 수 없다’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말미에 亦이 등장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有所不行을 뒤의 知和而和가 아니라 앞의 小大由之에 붙여서 읽었다. 그러면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先王之道에서는 斯가 훌륭하게 여겨져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之를 由하였는데, 行하지 못할 바가 有하였다. 和를 알고, 和하되,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行할 수가 없다’가 되므로, 亦不可行也의 亦도 실제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아무 문제 없이 해석될까. 아니다.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다. 이제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의 斯와 之에 대해 생각해 보자. 斯와 之는 문맥상 같은 개념을 가리킨다. 또, 문맥상, 斯와 之는 禮와 和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먼저 和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는 ‘先王之道에서는 和가 훌륭하게 여겨져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和를 由하였는데, 行하지 못할 바가 有하였다. 和를 알고, 和하되,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行할 수가 없다’가 된다. 말이 되는 듯하지만,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斯와 之가 和를 가리킨다고 하면, 앞부분인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有所不行과, 뒷부분인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가 사실 같은 말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앞부분에서도 和 때문에 行하지 못하게 되고, 뒤에서도 和 때문에 行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문장이 동어 반복에 지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기껏 의미를 살려 둔 亦도 다시 무의미하게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斯와 之는 禮를 가리켜야 한다.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는 ‘先王之道에서는 禮가 훌륭하게 여겨져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禮를 由하였는데, 行하지 못할 바가 有하였다. 和를 알고, 和하되,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行할 수가 없다’가 된다. 이렇게 보면, 앞부분의 주제는 禮만 따랐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되고, 뒷부분의 주제는 和만 따랐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된다. 마지막에 있는 亦도 ‘유의미’하게 된다. 앞뒤의 내용이 다를 뿐더러, 앞뒤 부분 모두에서 어떤 문제 때문에 ‘行할 수 없다’는 점이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有所不行과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사이에 있어야 할 말이 빠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禮만 따르다가 문제가 생겨서 和를 도입하게 되었을 것이고, 和를 도입했는데 효과가 좋자, 점차 禮를 배제하고 和만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니, 마침내 和가 폭주해서 뒷부분에서처럼 知和而和/不以禮節之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는 중간 과정이 빠져 있다. 이를 보충해 넣어야 經文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정리해 보자. 나는 상기하였듯 有所不行을 앞의 小大由之에 붙여서 읽었다. 또,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의 斯와 之를 和가 아니라 禮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또, 經文에 빠져 있는 ‘중간 과정’을 번역문에 대괄호를 통해 보충해 넣었다. 이 점에 주의하여 본 번역문을 읽어야 할 것이다. ◈ 先王은 ‘옛 왕’이다. 그러나 ‘옛 왕’이라고 하더라도, 桀, 紂나 幽王 같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文王이나 武王, 周公처럼 聖明하였던 왕을 이른다. 先은 관형어로 ‘옛’, ‘옛날의’다. 王을 한정한다. 王은 체언으로, ‘王’이다. ▼ 皇侃은 先王/謂聖人爲天子者也, ‘先王은 聖人으로서 天子가 된 사람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論衡/四諱篇/死亡謂之先///爾雅/釋詁/王/君也///戴氏望/論語注云/先王/謂聖人爲天子制禮者也, ‘《論衡》 「四諱」에는 “죽는 것, 이를 先이라 한다”라는 말이 있고, 《爾雅》 「釋詁」에는 “王은 군주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戴望은 《論語注》에서 “先王은 聖人으로서 天子가 되어 禮를 제정한 사람을 이른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爾雅》 「釋詁」에는 王에 대해 林/烝/天/帝/皇/王/后/辟/公/侯/君也, ‘林, 烝, 天, 帝, 皇, 王, 后, 辟, 公, 侯는 군주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戴望은 浙江의 德淸 사람으로, 淸나라 同治帝 때 학자다. 《論語注》를 지었다. ◈ 先王之道의 之는 관형격 조사다. ◈ 道는 체언으로, 아마 ‘政事’, ‘政敎’, ‘정치’를 이를 것이다. 따라서 先王之道는 ‘先王의 정치에서는’처럼 해석된다. 나는 ‘先王이 정사를 처리할 때에는’처럼 의역하였다. 이 편인 「學而」 5장에 道千乘之國, ‘千乘之國을 道한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道가 ‘다스리다’는 말이었다. 道千乘之國의 道에 대해 馬融은 道/謂爲之政敎, ‘道는 다스리고 교화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莊子》 「齊物論」에 道昭而不道, ‘道가 분명히 드러나면 만물을 道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중 뒤의 道가 바로 ‘바로잡다’, ‘다스리다’는 뜻이다. 본문의 道는 체언이므로, ‘다스리는 일’, ‘교화하는 일’, 즉 ‘정치’, ‘政敎’, ‘政事’가 된다. ◈ 斯는 지시하는 말로, ‘이’, ‘이것’이라는 말이다. 禮를 가리킨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句 첫 부분에 상세하게 해설해 두었다. 斯가 和를 가리킨다고 하면 장의 앞뒤 내용이 같아져서 동어 반복이 된다. 禮를 가리킨다고 하면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 皇侃은 斯/此也, ‘斯는 이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斯를 아마 和로 본 듯하다. ▼ 邢昺은 斯/此也, ‘斯는 이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주석을 참고하면, 邢昺은 斯를 禮樂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간주하였다. 邢昺은 和를 樂이라고 했으니, 邢昺을 따른다면 斯가 禮와 和를 모두 지시하는 말이 된다. ▼ 劉寶楠은 詩/殷其靁/傳/斯/此也, ‘《詩》 「殷其靁」에 대한 傳에서는 “斯는 이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詩》 「殷其靁」는 《詩》 「國風 召南」의 「殷其靁」를 이른다. 「殷其靁」에 대한 傳이란, 毛亨의 주석을 이른다. 이 주석은 何斯違斯/莫敢或遑 부분에 붙어 있다. ▼ 俞樾은 邢昺을 비판하며, 斯가 禮만 가리킨다고 하였다. 俞樾은 邢昺正義曰/斯/此也//言先王治民之道/以此禮貴和美/禮節民心/樂和民聲//禮至則無怨/樂至則不爭/揖讓而治天下者/禮樂之謂也/是先王之美道也, ‘邢昺은 《正義》에서 “斯는 이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先王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이처럼 禮를 적용할 때 和를 중요하게 생각함으로써 훌륭해졌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禮로 節하고, 백성들의 소리를 樂으로 조화시켰다는 뜻이다. 禮가 지극해지면 원망이 없게 되고, 樂이 지극해지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揖讓하고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禮樂을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先王의 훌륭한 도리로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正義》는 《論語註疏》를 이른다. 俞樾은 禮至則無怨/樂至則不爭이라고 인용하였지만, 《論語註疏》에는 樂至則無怨/禮至則不爭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俞樾은 다시, 樾謹按/此斯字專指禮/而言蓋謂先王之道/禮爲最美/小大由之/而有所不行者不和故也//但言有所不行而不言其不行之故/則因禮之用和爲貴已見上文/且下文曰/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行也///亦之一字/彼此貫通義/見於下/故文省於上//古人之辭往往如此也//正義誤解斯爲美句/而此章文義扞格不通矣, ‘본문의 斯는 禮만 가리킨다. 이 말은 아마도 先王의 道에서 禮가 가장 美하게 여겨졌으니,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이를 따랐는데, 이 중 잘 되지 않는 일이 있었으니, 이는 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뜻일 것이다. 다만, 有所不行이라고만 하고, 其不行이라고 하지 않은 까닭은 禮之用和爲貴라는 말이 앞의 글에 이미 나왔고, 또 뒤의 글에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行也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亦 한 글자는 두 句의 의미를 포괄하는데, 아래의 句에 나왔기 때문에, 위의 句에는 생략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말을 간혹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正義》에서는 斯爲美 부분 句를 잘못 풀이했기에, 이 장의 의미가 막혀서 통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正義》는 《論語註疏》를 이른다. ◈ 斯爲美의 爲는 용언으로, ‘생각되다’, ‘여겨지다’, ‘간주되다’는 말이다. 美를 받는다. ◈ 美는 체언으로, ‘훌륭한 것’, ‘좋은 것’이다. 善과 같다. 따라서 爲美는 ‘훌륭한 것으로 생각되다’, 즉 ‘훌륭하다고 생각되다’는 말이다. ▼ 劉寶楠은 周官/大司徒注/美/善也///並常訓//禮有威儀文物/故以美言之, ‘《周官》 「大司徒」에 대한 주석에서는 “美는 善이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 의미가 일반적이다. 禮는 威儀와 文物을 포괄하므로, 이에 美하다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周官》 「大司徒」는 《周禮》 「地官司徒」의 부분이다. 주석은 鄭玄의 주석을 이른다. 이 주석은 一曰媺宮室의 媺에 달려 있다. 아마 옛 판본에는 媺가 美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 小大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작은 사안이든, 큰 사안이든’ 같은 표현이다. 小大는 사안이 크고 작다는 표현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劉寶楠이 잘 설명해 두었다. ▼ 劉寶楠은 小大指人言//下篇/君子無小大///詩/泮水/無小無大/從公於邁///皆以小大指人之證, ‘小大由之의 小大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중 편에 “君子에게는 小하고 大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 나오고, 《詩》 「泮水」에는 “小도 없고, 大도 없이, 公을 따르기로 노력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모두 小와 大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로다’라고 하였다. 君子無小大는 《論語》 「堯曰」의 君子無眾寡/無小大/無敢慢, ‘君子는 사람이 많든 적든, 작든 크든, 감히 교만하게 굴지 않는다’를 이르는 말 같다. 《詩》 「泮水」는 《詩》 「頌 魯頌」의 「泮水」다. 劉寶楠은 또, 史記/禮書云/君臣/朝廷/尊卑/貴賤之序/下及黎庶/車輿/衣服/宮室/飲食/嫁娶/喪祭之分/事有宜適/物有節文///是言小大皆有禮也, ‘《史記》 「禮書」에는 “君臣, 朝廷, 尊卑, 貴賤의 질서에서, 아래로는 黎庶, 車輿, 衣服, 宮室, 飲食, 嫁娶, 喪祭의 分에 이르기까지, 事에는 적합한 바가 있고, 物에는 節文이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이야말로 小한 사람이든, 大한 사람이든, 모두 그에 적합한 禮가 있다는 말이로다’라고 하였다. ◈ 由는 용언으로, ‘근거하다’, ‘따르다’, ‘말미암다’, ‘좇다’는 말이다. 由之의 之를 받는다. 皇侃, 邢昺은 用, 즉 ‘쓰다’라고 풀이했는데, 이 역시 타당하다. ▼ 皇侃은 由/用也, ‘由는 사용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由/用也, ‘由는 쓰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爾雅/釋詁/由/自也///自與從同, ‘《爾雅》 「釋詁」에 “由는 自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 自는 從과 같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는 由에 대해 遹/遵/率/循/由/從/自也, ‘遹, 遵, 率, 循, 由, 從은 自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 由之의 之는 앞의 斯처럼 禮, 즉 禮法을 가리킨다. ◈ 有는 용언으로, ‘있게 되다’, ‘생기다’는 말이다. 명사구인 所不行을 받는다. ◈ 所不行은 ‘행해지지 않는 것’, ‘되지 않는 것’, ‘잘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잘 풀리지 않는 것’처럼 의역하였다. 所는 ‘~한 것’, ‘~한 바’다. 不行을 받는다. 不行의 不은 부정어다. 行을 한정한다. 行은 용언으로, ‘행해지다’, ‘되다’는 말이다. ◈◈ 皇侃은 先王之道斯爲美에 대해 言聖天子之化行禮/亦以此用和爲美也, ‘성명한 天子가 교화할 때는 禮를 행하는데, 先王 역시 이렇듯 和를 운용함으로써 선미해진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小大由之/有所不行에 대해 若小大之事/皆用禮而不用和/則於事有所不行也, ‘크고 작은 사안들에 대해서도, 모두 禮만 사용하고, 和를 운용하지 않으면, 그 사안들에 이행되지 못할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先王之道斯爲美에 대해 言先王治民之道/以此禮貴和美/禮節民心/樂和民聲//樂至則無怨/禮至則不爭/揖讓而治天下者/禮樂之謂也/是先王之美道也, ‘이 말은 先王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이처럼 禮를 적용할 때 和를 중요하게 생각함으로써 훌륭해졌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禮로 節하고, 백성들의 소리를 樂으로 조화시켰다는 뜻이다. 樂이 지극해지면 원망이 없게 되고, 禮가 지극해지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揖讓하고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禮樂을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先王의 훌륭한 도리로다’라고 하였다. 揖讓而治天下者/禮樂之謂也는 《禮記》 「樂記」, 《史記》 「樂書」에서 인용해 온 표현이다. 또, 小大由之/有所不行에 대해 言每事小大皆用禮/而不以樂和之/則其政有所不行也, ‘매사가 크든, 작든, 모두 禮만 운용하고, 樂을 가지고 조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정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先王之道/此其所以爲美/而小事大事無不由之也, ‘先王의 도리에서는 이렇듯 和를 훌륭하게 여겼기 때문에,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和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謂人但循禮/不知用和/故不可行/所謂禮勝則離者也//檀弓云/品節/斯之謂禮///皇疏云/人若知禮用和/而每事從和/不複用禮爲節者/則於事亦不得行也//所以言亦者/沈居士云/上純用禮不行/今皆用和/亦不可行也///案/有子此章之旨/所以發明夫子中庸之義也//說文/庸/用也///凡事所可常用/故庸又訓常//鄭君/中庸/目錄/云/名曰中庸者/以其記中和之爲用也///注君子中庸云/庸/常也//用中爲常道也///兩義自爲引申//堯諮舜/舜諮禹云/允執其中///孟子言/湯執中/執中/即用中也//舜執兩端/用其中於民///用中即中庸之倒文//周官/大司樂/言六德/中和祇庸孝友///言中和又言庸/夫子本之/故言中庸之德//子思本之/乃作中庸//而有子於此章已明言之//其謂以禮節之者/禮貴得中/知所節/則知所中//中庸云/和而不流/強哉矯//中立而不倚/強哉矯///和而不流/則禮以節之也/則禮之中也//中庸皆所以行禮/故禮篇載之//逸周書/度訓云/和非中不立/中非禮不愼/禮非樂不履///樂謂和樂/即此義也, ‘이 말은 사람이 단지 禮를 따르기만 하고, 和를 用할 줄 모른다면, 이 때문에 行할 수 없다는 뜻이니, “禮가 지나치면 離해진다”라는 말과 같다. 「檀弓」에 “品節, 이를 禮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皇侃은 “사람이 만약 禮에 대해 和를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서, 모든 일에 대해 和를 운용하면서 禮를 사용해 다시 節하지 않는다면, 이 사안들에 대해서도 이행되지 못할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설명한 것이다. 沈居士는 ‘앞에서는 禮만 운용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고, 이 번에는 모든 일을 和에 의거하여 처리했을 때도 앞과 같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내 생각은 이렇다. 有子는 이 장에서 夫子의 「中庸」의 뜻을 밝히려 하였다. 《說文》에서는 “庸은 用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모든 일들은 常하게 用할 수 있는 바이니, 따라서 庸은 常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鄭君은 《中庸》 「目錄」에서 “「中庸」이라고 제목을 지은 까닭은, 中和의 爲用에 대해 기록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君子는 中庸하게 행동한다”라는 말에 대한 주석에서는, “庸은 常이라는 뜻이다. 中을 用하여서 常道를 행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두 사례에서 庸은 모두 파생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堯가 舜에게 묻고, 또 舜이 禹에게 물으며 “진정 中을 執하라”라고 하였다. 《孟子》에는 “湯은 中을 執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들에서 “中을 執하다”라는 말은 곧 “中을 用하다”는 말과 같다. 또, “舜은 兩端을 執하고, 백성들에게 그 中을 用했다”라는 말이 있으니, 여기서 “中을 用하다”라는 말은 곧 中庸을 도치한 표현이다. 《周官》 「大司樂」에서는 여섯 가지 德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中, 和, 祇, 庸, 孝, 友를 들었는데, 여기서 中和는 또한 庸을 뜻한다. 夫子가 이에 근본을 두었으니, 그래서 中庸의 德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요, 子思가 이에 근본을 두었으니, 그래서 「中庸」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有子가 이 장에 이미 밝힌 점이었다. 그런데 以禮節之라는 말은, 禮에 中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節해야 한다는 점도 아니, 中한 바를 안다는 뜻이다. 「中庸」에 “和하면서, 流하지 않으니, 굳세고 올바르도다. 中하게 立하고, 倚하지 않으니, 굳세고 올바르도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和하면서 流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곧 禮를 가지고 節한다는 말이요, 禮의 中이다. 「中庸」의 내용은 전부 禮를 행하는 바이므로, 그래서 《禮》의 편으로 실려 있다 하겠다. 《逸周書》 「度訓」에 “和는 中이 아니면 立하지 못하고, 中은 禮가 아니면 愼하지 못하며, 禮는 樂이 아니면 履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樂은 和樂을 뜻하니, 곧 본문의 의미와 같다’라고 하였다. 「檀弓」은 「檀弓 下」를 이른다. 《禮記》의 편이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鄭君은 아마 鄭玄인 듯하다. 允執其中은 《論語》 「堯曰」에 나오는 말인데, 원전은 아마 《書》 「虞書 大禹謨」의 允執厥中인 듯하다. 말의 의미는 允執其中과 같다. 湯執中은 《孟子》 「離婁 下」에 나온다. 舜執兩端/用其中於民은 아마 《禮記》 「中庸」의 執其兩端/用其中於民를 바꾸어 쓴 말 같다. 《周官》 「大司樂」은 《周禮》 「春官宗伯」의 일부분이다. 「春官宗伯」에는 中和只庸孝友라고 되어 있다. 《禮》는 《禮記》다. 《逸周書》 「度訓」은 《逸周書》 「度訓解」를 이른다. ◈◈ 蜀虎案 : 禮法만 따르면 엄정하기만 하고, 상대를 공경하면서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는 본의를 잃게 되기 때문에, 결국 잘 안 되는 일들이 생긴다는 말이다. 劉寶楠은 有子가 이 말을 통하여 中庸에 대해 설명하려 하였다고 보았는데, 이 역시 타당하다. 너무 추우면 온도를 높이고, 너무 더우면 에어컨은 켜서 적정한 상태를 맞춘다. 禮法은 엄정하니 和, 즉 유연한 태도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본문으로]
  4.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 知는 용언으로, 아마 ‘터득하다’, ‘깨닫다’는 말일 것이다. 知和의 和를 받는다. ◈ 知和의 和는 체언으로, ‘유연한 태도’, ‘유연성’이다. 여기서는 사안을 ‘유연하게 처리하는 방법’으로 번역하였다. ◈ 知和而和의 而는 ‘~하고’, ‘~하고서’처럼 해석된다. ◈ 而和의 和는 용언으로, 사안들을 ‘和하게 하다’, ‘유연하게 처리하다’는 말이다. ◈ 不以禮節之의 不은 부정어다. 節을 한정한다. ◈ 以禮의 以는 ‘~를 가지고’, ‘~로써’다.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禮’, ‘禮法’이다. ◈ 節之의 節은 용언으로, ‘절제하다’, ‘가다듬다’는 말이다. ◈ 節之의 之는 ‘和한 태도’, 즉 ‘유연한 태도’를 가리킨다. ◈ 亦은 부사어로, ‘또한’, ‘역시’, ‘마찬가지로’라는 말이다. 여기서 亦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상기하였듯, 이 앞부분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禮만 따랐기 때문에 잘 되지 않았고, 이 부분에서는 和만 따르고 禮로 가다듬지 않았기 때문에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亦이라고 한 것이다. ◈ 不可行의 不은 부정어다. 行을 한정한다. ◈ 可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阮元, 劉寶楠은 《漢石經》에는 이 句에 可가 없어서 亦不行也라고만 되어 있다고 하였고, 俞樾은 이를 근거로 아예 可를 빼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살펴 보면, 이 장 앞부분에도 有所不行이라고만 되어 있지, 有所不可行이라고 되어 있지는 않다. 이 句에는 亦이 붙어 있으므로, 앞부분과 이 부분의 내용이 동일해야 할 텐데, 한 쪽에는 可가 없고, 한 쪽에는 있으며, 그 있다는 可도 판본에 따라 없는 경우가 있으니, 차라리 俞樾처럼 아예 빼 버리고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 阮元은 可에 대해 漢石經/無可字, ‘《漢石經》에는 可가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亦不可行也가 亦不行也가 된다. ▼ 劉寶楠도 漢石經/亦不行也///不下無可字, ‘亦不可行也가 《漢石經》에는 亦不行也라고 되어 있으니, 不 다음에 可가 없다’라고 하였다. ▼ 俞樾은 《漢石經》을 근거로 可를 빼야 한다고 보았다. 俞樾은 樾謹按/隸釋載漢石經作/亦不行也///無可字/當從之//上云/有所不行/此云/亦不行也//兩不行之義/彼此貫通/亦者亦上文而言/上無可字/則此亦無可字//蓋涉馬注而衍//馬注云/不以禮爲節亦不可行//此自用以足句/非其所據經文有可字也, ‘《隸釋》에 기재되어 있는 「漢石經」에는 亦不可行也가 亦不行也로 되어 있으니, 可가 없다. 마땅히 이를 따라야 할 것이다. 앞에서는 有所不行이라고 하였고, 여기에서는 亦不行也이라고 한 것이다. 두 가지 句에 나오는 不行의 의미가 두 구에서 포괄되고 있으니, 亦이 앞의 글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을 텐데, 앞의 글에는 可가 없다. 그러한 즉, 이 句에서도 可가 없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馬融의 주석 때문에 혼동되어 可가 잘못 들어갔을 것이다. 馬融은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으면, 亦不可行하다”라고 하였다. 지금 본문에는 亦不可行也라고 되어 있는데, 馬融의 주석을 句로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經文에 可가 있어서 亦不可行也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다. 《隸釋》은 洪适이 저술한 책이다. 洪适은 趙宋 高宗 때 사람으로, 鄱陽 출신이다. ◈ 行은 용언으로, ‘행하다’, ‘이행하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잘 풀리다’처럼 의역하였다. ◈ 也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다. ◈◈ 馬融은 人知禮貴和/而每事從和/不以禮爲節/亦不可行, ‘사람이 禮에서 和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서, 매사에 和를 따를지라도,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는다면, 또 써 먹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此解知和而和/不以禮爲節義也, ‘이 주석에서는 和만 알고, 和하게만 처리하면서,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上明行禮須樂/此明行樂須禮也//人若知禮用和/而每事從和不復用禮爲節者/則於事亦不得行也/所以言亦者//沈居士云/上純用禮不行/今皆用和亦不可行也, ‘앞의 글에서는 禮를 시행할 때 樂을 함께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이 글에서는 樂을 시행할 때도 禮를 함께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람이 만약 禮에 대해 和를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서, 모든 일에 대해 和를 운용하면서 禮를 사용해 다시 節하지 않는다면, 이 사안들에 대해서도 이행되지 못할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설명한 것이다. 沈居士는 “앞에서는 禮만 운용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고, 이 번에는 모든 일을 和에 의거하여 처리했을 때도 앞과 같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言人知禮貴和/而每事從和/不以禮爲節/亦不可行也, ‘사람이 禮에서 和가 중요한 줄을 알아서, 매사에 和를 따르기만 하고는,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써 먹을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程頤는 禮勝則離/故禮之用和爲貴//先王之道以斯爲美/而小大由之//樂勝則流/故有所不行者/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 ‘禮가 우세하면 離해진다. 따라서 禮를 사용할 때는 和가 중요하다. 先王의 정치에서는 和를 훌륭하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和를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樂이 우세해지면 방탕해지기 때문에, 써 먹을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和에 대해 이해하고, 和하게 하되,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써 먹을 수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承上文而言/如此而復有所不行者/以其徒知和之爲貴而一於和/不復以禮節之/則亦非復理之本然矣/所以流蕩忘反/而亦不可行也, ‘앞의 글을 이어서 말하고 있다. 이와 같다고 하더라도, 행하지 않아야 할 바가 또 있다. 단지 和가 중요하다는 점만 알고, 和 한 가지만 지키고서는, 禮를 가지고 節하지 않는다면, 역시 본연적 이치가 아니게 될 것이니, 멋대로인 상태로 돌아 가게 되어, 써 먹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또, 愚謂嚴而泰/和而節/此理之自然/禮之全體也//毫釐有差/則失其中正/而各倚於一偏/其不可行均矣, ‘내 생각에는, 엄격하면서도 태연하고, 和하면서도 節한 모습은, 자연스러운 이치이자, 禮의 전체적인 모습인 것 같다. 털 끝 만큼이라도 차이가 생기면, 中正을 잃고, 각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니, 장차 균일하게 이행할 수가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馬融의 주석 중 亦不可行에 대해, 皇本/行下有也字, ‘《皇侃本》에는 行 다음에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옛날에는 禮만 따랐는데, 너무 엄정해서 오히려 본의를 잃고 말았고, 그 뒤에는 和를 가미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제 멋대로여서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禮와 和는 상반되지만, 상보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둘을 조율해서, 상대를 공경하고, 자신을 절제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간의 적정한 범위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맞추기가 어렵다. 본의는 좀 다르지만, 莊子 역시 비슷한 뜻을 피력한 적이 있다. 《莊子》 「養生主」에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 ‘善을 행하더라도 명성이 알려지지 않게 해야 하고, 惡을 행하더라도 형벌을 받게 되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善이든 惡이든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 이를 법도로 삼아야 자신을 보전하고, 삶을 온전히 누리며, 부모를 부양하고, 천수를 다할 수 있을 것이로다’라는 말이 있다. 道家든, 儒家든, 중간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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