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13 - 신근어의

2024. 4. 16. 10:50논어 이야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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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16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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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1 - 학이 - 13 - 신근어의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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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子曰:

「信近於義,言可復也;

恭近於禮,遠恥辱也;

因不失其親,亦可宗也。」

 

 

 

유자가 말했다.[각주:1]

 

“믿음직한 태도가 도의에 가까우면 [그 사람의] 말은 이행될 것이[니, 존경할 만하]다.”[각주:2]

 

<유자의 말 이어짐>

 

“공손한 태도가 예법에 가까우면 [그 사람은] 치욕을 멀리하게 될 것이[니, 존경할 만하다]다.”[각주:3]

 

<유자의 말 이어짐>

 

“[또, 이러한 자세를 지키면, 처지가] 곤궁해졌더라도 [사람들의] 신임을 잃지 않을 것이니, [이] 역시 존경할 만하겠다.”[각주:4]

 

 

 

  1. 有子曰, ◈ 有子는 孔子의 제자인 有若이다. 有子에 대해서는 「學而」 2장인 其爲人也孝弟 부분에서 상세히 설명해 두었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지금의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 邢昺은 此章明信與義/恭與禮不同/及人行可宗之事, ‘이 장에서는 信과 義, 恭과 禮가 같지 않다는 점, 그리고 사람의 행위 중 근본으로 삼을 만한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此言人之言行交際/皆當謹之於始而慮其所終/不然則因仍苟且之間/將有不勝其自失之悔者矣, ‘이 장에서는, 사람이 말이나 행동을 하거나, 교분을 나눌 때, 모든 경우에 대해, 처음에는 마땅히 삼가고, 끝이 어떻게 될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리멸렬하게 굴다가, 자신이 실패했다는 후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우선, 이 장에서 有子가 사용하고 있는 화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有子는 세 가지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信近於義/言可復也가 하나, 恭近於禮/遠恥辱也가 둘, 因不失其親/亦可宗也가 셋이다. 信近於義/言可復也와 因不失其親/亦可宗也는 언뜻 보기에 의미가 와닿지 않지만, 恭近於禮/遠恥辱也는 쉽다. 恭近於禮/遠恥辱也는 ‘공손한 태도가 禮에 가까우면, 恥辱을 멀리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有子가 본래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는 이 명제의 裏인 듯하다. ‘p이면 q다’라는 명제가 있을 때, ‘q이면 p다’를 원명제의 逆이라고 하고, ‘p가 아니면 q가 아니다’를 원명제의 裏라고 하며, ‘q가 아니면 p가 아니다’를 원명제의 對偶라고 한다. 恭近於禮/遠恥辱也의 裏는 ‘공손한 태도가 禮에 가깝지 않으면, 恥辱을 멀리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데, 간단히 써 보면, ‘공손한 태도가 禮에 합치되지 않으면, 恥辱을 당할 수 있다’가 된다. 다른 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면 물론 좋지만, 그 공손함이 필요를 넘게 되면 비굴해지고 만다. 따라서 恥辱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裏를 有子의 취지라고 가정한다면, 有子는 恭近於禮/遠恥辱也를 통해서 ‘공손한 태도는 禮에 합치되어야 한다’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裏가 원명제 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또 이해하기 쉬운 것 같다. 그러면, 이 裏의 내용이, 有子가 본래 의도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형식논리학적으로, 원명제와 진리치가 동등한 명제는 그 명제의 對偶다. 逆과 裏는 서로 對偶 관계이기 때문에, 형식적 진리치가 동일하지만, 원명제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에게 밥을 먹으라는 취지에서 ‘밥을 안 먹으면 키가 크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고, 학생들에게 담배를 피지 말라는 취지에서 ‘담배를 피면 뼈가 삭는다’라고 이야기하듯, p를 주장하기 위해 p의 부정을 전제하고, p의 부정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유도해 내는 일은 흔하다. 아마 有子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설명한 것 같다. [본문으로]
  2. 信近於義/言可復也, ◈ 마지막 句에 있는 亦에 근거하여, 이 句 뒤에 可宗也처럼 ‘존경할 만하다’라는 표현이 있다고 간주하고 번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亦 부분에 설명해 두었다. ◈ 信은 체언으로, ‘신뢰성’, ‘신의’, ‘믿음직한 태도’를 이른다. 有子는 어떤 사람을 가정하고, 그 사람의 信, 즉 ‘신의’가 어떠하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朱熹는 ‘약속’이라고 해석하였는데, 나는 따르지 않았다. 우선, 信近於義와 대구를 이루고 있는 恭近於禮에서, 恭은 분명 사람의 ‘태도’나 ‘자세’를 기술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句의 信 역시 사람의 태도나 자세를 기술하는 말이 되어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또, 信을 ‘약속’이라고 본다면, 言可復也의 言도 아마 ‘약속’이라고 해석되어야 할 듯한데, 같은 개념을 信, 言이라는 다른 글자로 표현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句를 ‘약속’에 대해 해석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言可復也의 言을 ‘언약’, ‘약속’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 皇侃은 信/不欺也, ‘信은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人言不欺爲信, ‘사람이 말을 할 때 속이지 않는 모습을 信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信/約信也, ‘信은 약속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近은 용언으로, ‘가깝다’는 말이다. ▼ 陸德明은 近/附近之近//下及注同//又如字, ‘近은 附近의 近이다. 아래의 글 및 주석에서도 그렇다. 글자 그대로 읽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近遠/皆去聲, ‘近과 遠은 모두 去聲으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說文曰/近/附也, ‘《說文》에서는 “近은 가까이 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近은 「辵部」에 있다. ◈ 於는 ‘~에’다. 於義의 義를 받는다. ◈ 義는 체언으로, ‘義’, ‘의리’, ‘도의’다. ‘마땅한 바’, ‘옳은 바’를 이른다. ▼ 皇侃은 義/合宜也, ‘義는 합당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於事合宜爲義, ‘일을 할 때 도리에 맞게 하는 모습을 義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義者/事之宜也, ‘義라는 것은, 세상일에서 마땅한 바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誼/人所宜也//義/己之威儀也///二字義別/今經傳通作義//禮/中庸記云/義者/宜也///表記曰/義者/天下之制也///言制之以合宜也, ‘《說文》에서는 “誼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라고 하였으며, “義는 자신의 威儀다”라고 하였다. 誼와 義 두 글자는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지금 經傳들에는 義로 통용해서 사용되고 있다. 《禮》 「中庸記」에는 “義는 마땅한 바이다”라는 말이 있다. 「表記」에는 “義는 天下의 制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天下를 制하여서 마땅한 바에 합치되게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誼, 義는 각각 「辵部」, 「言部」, 「我部」에 기재되어 있다. 《禮》 「中庸記」는 《禮記》 「中庸」을 이른다. 「表記」는 《禮記》의 편이다. ◈ 言은 체언으로, ‘말’, ‘언사’다. 앞에서 信을 논했던 사람의 ‘말’을 이른다. ◈ 可는 아마도 ‘~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 같다. 이 可는 아마 가능성 보다는, 가능성에 대한 추측에 그 주안점이 있는 것 같다. 復을 받는다. ◈ 復은 용언으로, 아마 ‘실행되다’, ‘이행되다’, ‘실천되다’는 말일 것이다. 復에는 이설이 많다. 何晏, 邢昺, 劉寶楠은 ‘뒤엎다’라고 하였고, 皇侃은 ‘검증하다’, 韓愈, 朱熹는 ‘이행하다’라고 하였다. 나는 결과적으로 韓愈와 朱熹의 설을 따른 셈이 되었다. 劉寶楠의 경우, 문헌적 근거를 들고 있는데, 그 설을 눈여겨 볼 만하다. 劉寶楠의 설은 이 句 말미에 기재해 두었다. 《史記》 「季布欒布列傳」에 夫婢妾賤人感慨而自殺者/非能勇也/其計畫無復之耳, ‘저 婢妾과 賤人들이 感慨하여서 자살하는 까닭은 용기를 낼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계획이 復될 수가 없기 때문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復은 ‘이행되다’, ‘이루어지다’라는 따위의 뜻이다. 《韓非子》 「解老」에는 聖人之復恭敬盡手足之禮也不衰, ‘聖人의 恭敬을 復하는 일, 手足의 禮를 다하는 일은 衰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復은 ‘이행하다’는 뜻이다. ▼ 何晏은 復/猶覆也, ‘復은 엎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何晏의 주석 중 覆에 대해 覆/芳服反/下同, ‘覆은 芳과 服의 반절로 읽는다. 아래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李翶는 이 주석에 대해, 馬云/反覆///失其旨矣, ‘馬融은 뒤엎다라고 풀이했는데, 문장의 요지를 놓쳤다’라고 하였다. 《論語筆解》에는 復/猶覆也가 馬融의 주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李翶가 馬云이라고 한 것이다. ▼ 皇侃은 復/猶驗也, ‘復은 검증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韓愈는 反本要終謂之復//言行合宜終復乎信/否則小信未孚//非反覆不定之謂, ‘근본을 돌이켜서 끝까지 타당하게 이행하는 일을 復이라고 한다. 언행이 마땅한 이치에 합치되면서, 끝까지 믿을 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보잘 것 없는 信이라, 믿을 만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즉, 復은 反覆이나 不定이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要終은 《易》 「繫辭 下」에서 따 온 말 같다. 「繫辭 下」에는 原始要終, ‘처음에 근본하여 마지막까지 要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要는 當과 같은 말로, ‘마땅하게 하다’, ‘알맞게 하다’라는 말이다. 小信未孚라는 말은 《春秋左氏傳》 「莊公」 10년에 나오는 말이다. ▼ 邢昺은 復/猶覆也, ‘復은 뒤엎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復/踐言也, ‘復은 말을 이행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鄭注/復/覆也///言語之信可反覆//案/復覆/古今語//爾雅/釋言/復/返也///返與反同//說文/復/往來也///往來/即反復之義, ‘鄭玄은 주석에서 “復은 뒤엎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말을 믿을 만한지의 여부는 뒤집힐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復과 覆은, 각각 옛날에 쓰던 표현과 지금 쓰는 표현이다. 《爾雅》 「釋言」에는 “復은 돌이키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返과 反은 같다. 《說文》에는 “復은 갔다가 온다는 말이다”라고 되어 있다. 갔다가 온다는 말은 곧 되돌린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釋言」에는 還/復/返也, ‘還과 復은 돌이키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復은 《說文解字》 「彳部」에 기재되어 있다. ◈ 也는 말을 끝내는 조사다. ◈◈ 何晏은 義不必信/信非義也//以其言可反覆/故曰近義, ‘義가 꼭 信한 것은 아니고, 信이 꼭 義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말은 엎어질 수 있으니, 그래서 義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韓愈의 《論語筆解》에는 이 주석이 馬融의 주석이라고 되어 있다. 이 점은 阮元 역시 지적해 두었다. 阮元의 말은 뒷구에 기재해 두었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若如注意/則不可得爲向者通也//言信不必合宜/雖不合宜而其交是不欺/不欺則猶近於合宜/故其言可覆驗也, ‘주석의 의미를 따른다면, 앞의 말과 합치되게 풀이할 수 없다. 信이 꼭 마땅한 도리에 합치될 필요는 없지만, 도리에 합치되지 않더라도 그 관계에서 서로 기만하지 않을 수는 있다. 기만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도리에 합치되는 모습에 비슷해진다. 그래서 말이 覆驗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何晏은 言可復也의 復을 覆, 즉 ‘뒤엎다’라고 풀이하였는데, 皇侃은 覆驗이라고 풀이하였다. 皇侃은 覆驗이라고 풀이해야 본문의 信近於義와 합치되게 풀이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邢昺은 이 주석의 義不必信에 대해, 若春秋晉士匄帥師侵齊/聞齊侯卒/乃還//春秋善之//是合宜不必守信也, ‘《春秋》에 晉나라의 士匄가 군대를 거느리고 齊나라를 공격했다가, 齊侯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돌아 갔다는 말이 있는데, 《春秋》에서는 좋게 평가하였다. 이 말이야말로 사리에 마땅하면, 信을 꼭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례이다’라고 하였다. 士匄 이야기는 《春秋》 「襄公」 19년에 晉士匄帥師侵齊/至穀/聞齊侯卒/乃還, ‘晉나라의 士匄가 군대를 거느리고 齊나라를 공격했는데, 穀에 이르렀다가 齊侯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에 돌아갔다’라고 실려 있다. 邢昺은 또, 이 주석의 信非義也에 대해, 史記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柱而死//是雖守信而非義也, ‘《史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尾生과 女子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女子가 오지 않았다. 물이 차 올랐지만, 尾生은 떠나지 않고, 기둥을 끌어 안고 죽었다. 이 이야기야말로, 信을 지켰더라도 義에는 합당하지 않는 사례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尾生 이야기는 《史記》 「蘇秦列傳」에 그대로 나온다. 劉寶楠은 何晏의 주석에 대해, 邢疏云/義不必信者/若春秋晉士匄帥師侵齊/聞齊侯卒/乃還//春秋善之/是合宜不必守信也//云信非義也者/史記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柱而死//是雖守信而非義也///案/注以近義是由復言後觀之/蓋知其人言可反覆/曉其近於義也//下注/以其能遠恥辱/故曰近禮///義同, ‘邢昺은 “義不必信에 대해 말해 보겠다. 《春秋》에 晉나라의 士匄가 군대를 거느리고 齊나라를 공격했다가, 齊侯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돌아 갔다는 말이 있는데, 《春秋》에서는 좋게 평가하였다. 이 말이야말로 사리에 마땅하면, 信을 꼭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례이다. 信非義也에 대해 말해 보겠다. 《史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尾生과 女子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女子가 오지 않았다. 물이 차 올랐지만, 尾生은 떠나지 않고, 기둥을 끌어 안고 죽었다. 이 이야기야말로, 信을 지켰더라도 義에는 합당하지 않는 사례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은 이렇다. 주석에서는 義에 가깝다는 점을 말을 뒤집은 후 살필 수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의 말이 뒤집힐 수 있는지를 알고서, 그 사람이 義에 가까운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 다음 주석에서는 “그러나 그 사람이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禮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주석과 의미가 같다’라고 하였다. 士匄 이야기는 《春秋》 「襄公」 19년에 晉士匄帥師侵齊/至穀/聞齊侯卒/乃還, ‘晉나라의 士匄가 군대를 거느리고 齊나라를 공격했는데, 穀에 이르렀다가 齊侯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에 돌아갔다’라고 실려 있다. 尾生 이야기는 《史記》 「蘇秦列傳」에 그대로 나온다. ◈◈ 皇侃은 夫信不必合宜/合宜不必信//若爲信近於合宜/此信之言乃可復驗也//若爲信不合宜/此雖是不欺而其言不足復驗也//或問曰/不合宜之信云何///荅曰/昔有尾生與一女子期於梁下/每期每會//後一日急暴水漲/尾生先至/而女子不來/而尾生守信不去/遂守期溺死//此是信不合宜/不足可復驗也, ‘대저, 信이 꼭 합당할 필요가 없고, 합당한 일이 꼭 信할 필요는 없다. 만약 信이 합당한 처사에 가깝다고 한다면, 이 信은 復驗할 수 있게 된다. 만약 信이 합당하지 않다고 한다면, 비록 속이는 말이 아니더라도, 그 말이 復驗할 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합당하지 않은 信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옛날에 尾生과 여자가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약속할 때마다 만났는데, 하루는 갑자기 물이 불어나 넘쳤다. 尾生이 먼저 도착했는데, 여자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尾生은 약속을 지킨답시고 떠나지 않았다. 마침내 尾生은 약속을 지키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 경우야말로 信이 마땅하지 않은 경우요, 復驗할 만하지 않은 경우로다”라고 대답하였다’라고 했다. ◈◈ 李翶는 尾生之信/非義也//若要終合宜/必不抱橋徒死, ‘尾生의 信은 義가 아니었다. 만약 尾生의 약속이 要終하고 마땅한 바에 합치되었다면, 절대 다리를 끌어 안고 공연히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若爲義事/不必守信/而信亦有非義者也//言雖非義/以其言可反復不欺/故曰近義, ‘만약 義로운 일을 하였다면, 꼭 信을 지킬 필요는 없으니, 信에는 義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말이 義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말을 바꿔서 남을 속이지 않을 수 있으니, 그래서 有子가 “義에 가깝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言約信而合其宜/則言必可踐矣, ‘약속하였는데 도리에 맞다면, 말은 반드시 이행될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信近於義에 대해, 孟子/離婁篇云/大人者/言不必信/唯義所在///是信須視義而行之/故此言近於義也, ‘《孟子》 「離婁」에는 “大人은 그 말이 꼭 信하지는 않지만, 오직 義만은 내재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믿을 만하더라도 마땅히 義로워야지 이행해야 하니, 그래서 言近於義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지막의 言近於義은 信近於義의 오기일 것이다. 「離婁」는 「離婁 下」를 이른다. 「離婁 下」에는 大人者/言不必信/行不必果/惟義所在, ‘大人은 그 말이 꼭 信하지는 않고, 그 행위가 꼭 果하지는 않지만, 오직 義만은 내재되어 있다’라고 되어 있다. 劉寶楠은 또 言可復也에 대해 人初言之/其信能近於義/故其後可反復言之也//曾子立事篇云/久而復之/可以知其信矣///又云/言之必思復之/思復之必思無悔言/亦可謂慎矣///思無悔言/亦謂之以義裁之//否則/但守硜硜之信/而未合於義/人將不直吾言/吾雖欲復之/不得也, ‘사람이 처음 말을 할 때에는, 그 말의 信이 義에 가까울 수 있다. 그렇기에 나중에 말을 뒤엎을 수 있는 것이다. 「曾子立事」에는 “오래되었는데 뒤엎었다면, 그 사람의 信을 알 만하다”라는 말이 있고, 또 “말하면서는 꼭 말을 뒤집을 일을 생각하고, 뒤집을 일을 생각하면서는 꼭 했던 말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역시 신중하다 할 수 있겠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했던 말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는 말 역시 義를 가지고 절제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 했던 말에 얽매인다면, 사소한 신의를 고수한다고 義를 위배하게 될 것이니,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지 않게 될 것이요, 그렇다면 자신이 자신의 행동을 뒤엎고 싶다 하더라도 그럴 수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曾子立事」는 《大戴禮記》의 편이다.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하다고 평판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했던 말을 한두 번 뒤집어도 여전히 사람들이 신임할 것이라는 말 같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何晏의 주석 중 信非義也에 대해, 皇本作/信不必義也, ‘信非義也가 《皇侃本》에는 信不必義也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何晏의 주석 중 故曰近義에 대해, 皇本作/故曰近於義也, ‘故曰近義가 《皇侃本》에는 故曰近於義也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신의가 의롭지 않다면, 즉 사람에게 신의가 없다면, 그 사람의 말이 이행될 수가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아마 신의 없는 놈은 한 말을 지키지 않을 것이므로, 그 말이 이행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 같다. 이 말은 곧, 믿음직한 태도가 의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朱熹처럼 信을 ‘약속’이라고 해석한다면, ‘약속이 의롭지 않다면, 약속 대로 이행할 필요가 없다’처럼 볼 수도 있겠다. [본문으로]
  3. 恭近於禮/遠恥辱也, ◈ 마지막 句에 있는 亦에 근거하여, 이 句 뒤에 可宗也처럼 ‘존경할 만하다’라는 표현이 있다고 간주하고 번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亦 부분에 설명해 두었다. ◈ 恭은 체언으로, ‘공손한 태도’다. ▼ 皇侃은 恭是遜從, ‘恭은 겸손하게 순종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恭/致敬也, ‘恭은 공경을 다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近은 용언으로, ‘가깝다’는 말이다. ◈ 於는 ‘~에’다. 於禮의 禮를 받는다. ◈ 禮는 체언으로, ‘禮’, ‘禮法’을 이른다. ▼ 皇侃은 禮是體別, ‘禮는 격식을 나누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禮/節文也, ‘禮는 節文이다’라고 하였다. ◈ 遠는 용언으로, ‘멀리 하다’는 말이다. ‘피하다’라고 번역해도 좋겠다. 恥辱을 받는다. ▼ 陸德明은 遠/于萬反, ‘遠은 于와 萬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近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면, 遠을 去聲으로 읽는다고 하였다. ▼ 劉寶楠은 廣雅/釋詁/遠/離也, ‘《廣雅》 「釋詁」에는 “遠은 떨어뜨리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恥辱은 체언으로, ‘치욕’, ‘부끄럽고 욕된 일’이다. 恥는 ‘부끄럽다’는 말이고, 辱은 ‘욕되다’는 말이다. 곧, 恥辱은 ‘부끄럽고 욕된 일’을 이른다. 그러나, 劉寶楠이 설명하듯, 恥와 辱은 근본적으로 같은 말이다. ▼ 劉寶楠은 說文/恥/辱也//辱/恥也, ‘《說文》에는 “恥는 辱이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고, “辱은 恥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恥, 辱은 각각 「心部」와 「辰部」에 기재되어 있다. ◈ 也는 말을 끝내는 조사다. ◈◈ 何晏은 恭不合禮/非禮也//以其能遠恥辱/故曰近禮也, ‘공손하지만 禮에 맞지 않다면, 禮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禮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의 《論語集解義疏》에는 이 주석이 苞咸, 즉 包咸의 주석이라고 되어 있다. 韓愈의 《論語筆解》에는 이 주석이 馬融의 주석이라고 되어 있다. 이 점은 阮元 역시 지적해 두었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此注亦不依向通也//故言恭不合禮/乃是非禮而交得遠於恥辱//故曰/近禮也//即是危行言遜得免遠恥辱也, ‘이 주석 역시 앞의 말과 정합되지 않는다. 苞咸은 恭이 禮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禮에 맞지 않더라도 그 관계에서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苞咸이 “禮에 가깝다”라고 한 것이다. 곧, 위태롭게 행동하더라도, 말이 공손하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는 말이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若遽從不當於體/則爲恥辱//若遜從近禮/則遠於恥辱//遜從不合禮者/何猶如遜在牀下及不應拜而拜之之屬也, ‘만약 순종하지만 격식에 합당하지는 않다면, 치욕을 당하게 된다. 만약 겸손하게 순종하면서, 그 모습이 격식에 가깝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겸손하게 순종하는 모습이 禮에 맞지 않다면, 이 어찌 자신을 평상 보다 낮추어 겸손을 떠는 모습이나, 절에 응할 때가 아닌데 절을 하는 부류와 같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평상 보다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굴거나, 절에 응할 때가 아닌데 절을 하는 부류는 모두 겸양이 지나친 사례이다. ◈◈ 韓愈는 禮/恭之本也//知恭而不知禮/止遠辱而已//謂恭必以禮爲本, ‘禮는 恭의 근본이다. 恭을 알고서 禮를 모르면, 치욕을 멀리하는 데 그칠 뿐이다. 즉, 이 말은 공손하게 행동할 때는, 반드시 禮를 그 행위의 근본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李翶는 晉世子申生恭命而死/君子謂之非禮//若恭而不死則得禮矣, ‘晉나라의 世子 申生은 命을 공손하게 받들었으나, 죽고 말았다. 君子들은 이를 禮가 아니라고 한다. 만약 申生이 공손하게 행동하면서도 죽지 않았다면, 禮라고 할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恭惟卑巽/禮貴會時/若巽在牀下是恭/不合禮則非禮也//恭雖非禮/以其能遠恥辱/故曰近禮, ‘恭은 오직 태도를 낮추는 행위일 뿐이다. 禮는 때에 맞는 모습이 중요하다. 만약 유순한 모습이 평상 아래로 내려갈 정도라면, 恭이라 할 수 있겠지만, 禮法에 맞지 않다면, 禮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恭이 禮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有子가 “禮에 가깝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巽在牀下는 《易》 「巽」에 나오는 말이다. 「巽」에는 巽在床下라고 되어 있다. 鄭太鉉과 李聖敏은 공손해야 할 때, 陽이 陰의 자리인 二爻에 있으니 지나치게 공손한 모습이라고 하였다. 겸양은 좋은 태도이지만, 겸양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겸양하면, 겸양이 아니라 비굴이 된다. ◈◈ 朱熹는 致恭而中其節/則能遠恥辱矣, ‘지극하게 공경스러운데 절도에 맞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表記云/恭以遠恥///亦謂恭近於禮以行之也//否則/雖恭敬於人/不能中禮/或爲人所輕侮/而不免恥辱//下篇云/恭而無禮則勞///亦此意也, ‘「表記」에는 “恭함으로써 恥를 멀리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역시 恭을 禮에 가깝도록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恭이 禮에 가깝지 않다면, 남에 공경스럽게 대하더라도, 禮法에 맞지 않을 테니, 간혹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할 짓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치욕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음 편의 글 중에 “恭하더라도 禮에 맞지 않으면 고생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의미가 같다’라고 하였다. 「表記」는 《禮記》의 편이다. 恭而無禮則勞는 《論語》 「泰伯」에 나온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何晏의 주석 중 故曰近禮也에 대해, 皇本/近下有於字/又此節註苞氏曰//按/僞昌𥠖論語筆解/此節及上節註竝作馬曰, ‘《皇侃本》에는 近 다음에 於가 있다. 또, 이 주석이 苞咸의 주석이라고 되어 있다. 생각해 보건대, 僞作인 昌𥠖의 《論語筆解》에는 이 주석과 앞의 주석이 모두 馬融의 주석이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昌𥠖는 韓愈를 가리킨다. 𥠖는 黎와 같다. ◈◈ 蜀虎案 : 공손한 태도가 禮法에 합치되지 않으면, 恥辱을 당하게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상기하였듯, 다른 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면 물론 좋지만, 그 공손함이 필요를 넘게 되면 비굴해지고 만다. 따라서 恥辱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공손한 태도는 禮法에 합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4. 因不失其親/亦可宗也, ◈ 因不失其親은 아마 因而不失其親, ‘因하면서도 不失其親하면’, ‘因하더라도 不失其親하면’처럼 해석해야 할 것이다. ◈ 因은 아마 困이나 固의 오기가 아닐까 추측된다. 글자의 모양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본다면, 困이 좀 더 타당하겠다. 困은 용언으로, 처지가 ‘곤궁하다’, ‘곤고하다’, ‘위태롭다’, ‘어렵다’는 뜻이다. 因은 본래 ‘따르다’, ‘좇다’, ‘근거하다’인데, 이 의미를 대입해 보아도 말의 내용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 때문에 이 因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孔安國은 親과 같게 보았는데, 그러면 ‘가까이 하다’, ‘친하게 지내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因不失其親은 ‘가까이 지내면서도 친분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데, 말이 그럴듯해 보여도, 문맥상 나올 만한 말인지 의뭉스럽다. 나처럼 성격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서야, ‘가까이 지내더라도 친분을 잃지 않는다’는 점을 가지고 존경하기까지야 할 만하겠는가. 그러나 皇侃, 邢昺, 劉寶楠은 모두 孔安國의 설을 따르고 있다. 내 생각에, 만약 孔安國처럼 이 因을 親이라고 본다면, 不失其親의 親을 規의 오기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이렇게 보면, ‘친하게 지내면서도 법도를 잃지 않는다면 존경할 만하다’는 말이 되어, 이 句가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는 뜻을 권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韓愈와 李翶는 因을 ‘근거하다’, ‘서로 근거하다’는 의미로 보았다. 이 설은 앞에 나온 信近於義, 恭近於禮의 내용이 이 句와 이어진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즉, 세 句가 독립적이지 않고, ‘앞의 두 句 내용에 따라 처신하면서 不失其親한다’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확히 누구의 설인지는 모르겠으나, 因을 용언으로 보지 않고, 乃처럼 ‘이에’라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이 설도 韓愈와 李翶와 취지가 같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설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면, 信近於義, 恭近於禮 句의 내용은, 정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기는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처신하면서 不失其親한들, 이를 존경할 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서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자기 멋대로 굴면서 不失其親하면 존경할 만하다’처럼, 이 장은 전제가 부정적이어야 의미가 자연스러워진다. 따라서 因을 韓愈, 李翶처럼 보거나, ‘이에’처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韓愈와 李翶의 설에서, 마지막 句 내용이 앞의 句와 상관성이 있다는 논지는 고려해 볼 만하다. 朱熹는 因을 依, 즉 ‘의지하다’라고 해석하였다. 朱熹는 세 句를 독립적으로 풀이한 것 같다. 朱熹는 또 뒤에 나오는 宗을 主라고 해설했는데, 이 主는 아마 ‘상전으로 모시다’는 말일 것이다. 朱熹의 설을 따르면 이 句는 ‘의지하면서도 不失其親하면 모실 만하다’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의지하면서도 ‘친분’이나 ‘신임’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이 설 역시 그럴듯해 보이지만 부자연스럽다. 또, 劉寶楠은 桂馥이 因을 姻의 가차자로 보았다는 설도 소개해 두었는데, 그러면 이 句는 유부남들에게 타당하겠으나, 문맥을 살펴 볼 때 그런 뜻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因을 困의 오기로 보았다. 옛 설들 중 내킬 만큼 타당한 설이 없었고, 또 因과 困의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될 여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또, 韓愈와 李翶처럼, 앞의 두 句와 이 마지막 句가 상관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信近於義하고, 恭近於禮한 자세를 지키면’이 이 句에 전제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 이 말은 ‘信近於義하고, 恭近於禮한 자세를 지키면 곤궁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사람들의 신임을 잃지 않을 것이니, 역시 존경할 만하다’는 말이 된다. 나는 이렇게 번역하였다. ▼ 孔安國은 因/親也, ‘因은 가까이 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因/猶親也, ‘因은 가까이 한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韓愈는 因을 아마 ‘근거하다’라고 해석한 것 같다. 韓愈는 因訓親/非也//孔失其義//觀有若/上陳信義恭禮之本/下言凡學必因上禮義/二說//不失親師之道/則可尊矣, ‘孔安國은 因을 가까이 하다라고 풀이하였지만, 틀렸다. 孔安國은 본의를 놓쳤다. 앞에서는 信과 義, 恭과 禮의 근본에 대해 나열하였고, 뒤에서는 배우는 자가 반드시 앞에서 기술한 禮義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 보면, 이 장에는 두 가지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스승을 가까이 모시는 도리를 잃지 않으면, 존경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李翶는 因之言/相因也, ‘因이란, 서로 근거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因/親也, ‘因은 가까이 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因/猶依也, ‘因은 의지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詩/皇矣/因心則友///傳/因/親也///此文上言因/下言親/變文成義, ‘《詩》 「皇矣」에 “心을 因하면 友가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傳에서 “因은 親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본문의 因不失其親을 보면, 앞에서는 因이라고 하고, 밑에서는 親이라고 하니, 글자를 바꾸어서 의미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皇矣」는 《詩》 「大雅 文王之什」에 속해 있다. 傳은 毛亨의 주석을 이른다. ◈ 不은 부정어다. 不失의 失을 한정한다. ◈ 失은 용언으로, ‘잃다’는 말이다. 其親을 받는다. ◈ 其는 이 장에서 有子가 설명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親을 받는다. ◈ 親은 체언으로, ‘친분’, ‘신임’을 이른다. 만약 因을 孔安國처럼 親으로 본다면, 나는 이 親을 規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規는 ‘법도’, ‘정도’라는 뜻이다. ◈ 亦은 부사어로, ‘역시’, ‘또한’, ‘마찬가지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 글에서 亦은 信近於義하였을 때 言可復也할 수 있고, 恭近於禮하였을 때 遠恥辱也할 수 있었으므로, 因不失其親하였을 때에도 ‘역시’ 可宗也할 수 있겠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可宗也에서 宗은 ‘존경하다’는 뜻으로 상대에 대한 태도를 표현하지만, 言可復也와 遠恥辱也는 상대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므로, 의미상 對가 맞지 않다. 내 생각에는 言可復也와 恭近於禮 부분에 본래 可宗也처럼 ‘존경할 만하다’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가 실전된 듯하다. 나는 이에 따라 앞의 두 句 뒤에도 ‘존경할 만하다’라는 말을 붙여서 번역하였다. ▼ 皇侃은 然云/亦可宗者/亦/猶重也//能親所親/則是重爲可宗也, ‘그런데 亦可宗에서, 亦은 거듭이라는 뜻이다. 가까운 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말이므로, 거듭 宗할 만하다는 말로 풀어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言亦者/人之善行可宗敬者非一/於其善行可宗之中/此爲一行耳/故云亦也, ‘亦可宗也에서 亦이라고 한 까닭은 이렇다. 사람의 선행으로, 宗敬할 만한 점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선행으로, 宗할 만한 점들 중, 이 점은 하나의 행위일 뿐이니, 그래서 有子가 “또한”이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可는 ‘~할 수 있다’, ‘~할 만하다’는 말이다. 宗을 받는다. ◈ 宗은 용언으로, ‘존경하다’, ‘높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皇侃의 《論語集解義疏》에는 宗이 宗敬으로 되어 있다. 阮元과 劉寶楠 역시 이 점을 지적해 두었다. 朱熹는 ‘모시다’처럼 해석했는데, 이 역시 의미가 다르지 않다. ▼ 朱熹는 宗/猶主也, ‘宗은 主라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 主는 아마 ‘상전으로 모시다’는 말일 것이다. ▼ 阮元은 宗에 대해 皇本/宗下有敬字, ‘《皇侃本》에는 宗 다음에 敬이 있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皇本/宗下有敬字, ‘《皇侃本》에는 본문의 亦可宗 다음에 敬이 있다’라고 하였고, 또 說文/宗/尊祖廟也///宗有尊訓//此言宗敬者/引申之義, ‘《說文》에는 “宗은 조상의 묘를 숭상하다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宗에는 높이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본문의 宗은 宗敬이라는 뜻인데, 이는 원래 의미에서 파생된 뜻이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宗은 「宀部」에 기재되어 있다. 劉寶楠은 또 桂馥이 因을 姻, ‘혼인하다’라고 해석한 설을 인용해 두었다. 劉寶楠은 桂氏馥/羣經義證/解此注云/詩/皇矣正義曰/周禮六行/其四曰姻//注/姻/親於外親//是姻得爲親///據此/則因即姻省文//野客叢書/引南史王元規曰/姻不失親/古人所重/豈得輒昏非類///張說之碑亦云/姻不失親/官復其舊///又徐鍇/說文通論/禮曰/姻不失其親///故古文肖女爲妻///邢皇二疏/俱失孔恉///今案/孔注因親/是通說人交接之事//其作姻者/自由後世所見本不同//然婚姻之義/於注本得兼之/皇邢依注爲訓/未爲失恉, ‘桂馥은 《羣經義證》에서 이 주석을 “《詩》 「皇矣」에 대한 《正義》에서는, ‘《周禮》에 六行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중 네 번째가 姻이라는 것이다. 주석에서는 “姻은 外親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姻도 親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근거해 보면, 因은 곧 姻의 女가 생략된 글자일 것이다. 《野客叢書》에는 《南史》 「王元規」의 ‘姻하면서 親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옛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바이다. 그러니 어찌 번번이 非類를 昏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인용되어 있고, 또 「張說之碑」에도 ‘姻하면서 親을 잃지 않아야 하니, 官에서도 옛 관습을 되돌려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또, 徐鍇의 《說文通論》에는 ‘《禮》에 “姻하면서 親을 잃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옛날에는 文肖女를 妻로 삼았던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邢昺과 皇侃은 모두 孔安國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라고 풀이하였다. 내 생각은 이렇다. 孔安國은 因을 親이라고 풀이하였는데, 이 설은 사람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의미가 통한다. 因이 姻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는 본래 후세에 보이는 판본들과는 같지 않다. 그런데, 婚姻이라는 의미는 주석에도 본래 포함되어 있고, 皇侃, 邢昺 역시 주석에 근거하여 풀이하고 있기 때문에, 皇侃과 邢昺이 孔安國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겠다’라고 하였다. 桂馥은 淸나라 雍正帝, 乾隆帝, 嘉慶帝 시기의 학자다. 《詩》 「皇矣」에 대한 《正義》는 《毛詩正義》를 이른다. 六行 이야기는 《周禮》 「地官司徒」 부분에 나온다. 六行에 대한 주석은 鄭玄의 주석을 이른다. 《野客叢書》는 南宋의 王楙가 저술한 책이다. 「王元規」는 《南史》 「列傳第六十一」의 일부다. 《南史》 본문에는 姻不失親이 아니라 因不失親이라고 되어 있다. 徐鍇는 南唐의 학자다. ◈ 也는 말을 끝내는 조사다. ◈◈ 孔安國은 言所親不失其親/亦可宗敬, ‘가까이 하면서도 교분을 잃지 않는다면, 존경할 만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亦會二通//然喪服傳云/繼母與因母同/是言繼母與親母同//故孔亦謂此因爲親/是也, ‘이 역시 두 가지 경우와 부합되어 의미가 통한다. 「喪服」의 傳에서는 繼母가 因母와 같다고 하였는데, 이는 繼母가 親母와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孔安國 역시 본문의 因을 親이라고 풀이했던 것이다. 이 뜻이다’라고 하였다. 「喪服」은 《儀禮》 「喪服」을 이른다. 傳은 子夏가 지었다는 해설이다. ◈◈ 皇侃은 人能所親得其親者/則此德可宗敬也//親不失其親/若近而言之/則指於九族宜相和睦也//若廣而言之/則是汎愛衆而親仁乃義之與比/是親不失其親也, ‘사람이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 까닭은, 그 德이 宗敬할 만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지내면서도 가까운 관계를 망치지 않는다는 말은 이렇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눈다고 한다면, 곧 九族이 마땅히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점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또, 먼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다고 한다면, 곧 사람들을 폭넓게 사랑하고, 어진 사람과 가까이 한다는 말일 것이니, 의로운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것이 가까이 지내면서도, 친한 관계를 망치지 않는다는 말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 李翶는 信義而復本禮/因恭而遠嫌/皆不可失斯/迺可尊, ‘信하고 義하면 다시 禮에 근본을 둘 수 있고, 禮를 恭에 근거하면 혐의를 멀리 할 수 있으니, 모든 경우에 이 점을 충실히 지키면, 존경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所親不失其親/言義之與比也//既能親仁比義/不有所失/則有知人之鑒/故可宗敬也, ‘가깝게 지내면서 친분을 잃지 않는다는 말은, 義로운 사람과 한 편이라는 뜻이다. 이미 어진 사람과도 가까이 지낼 수 있고, 義로운 사람과도 한 편이 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친분을 잃지 않는다면, 사람을 알아 보는 식견이 있다는 말이요, 그러므로 宗敬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所依者不失其可親之人/則亦可以宗而主之矣, ‘의지하는 바가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을 정도라면, 역시 근본으로 여기고 모실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曾子立事云/觀其所愛親/可以知其人矣///謂觀其所愛親之是非/則知其人賢不肖//若所親不失其親/則此人之賢可知/故亦可宗敬也, ‘「曾子立事」에 “그 사람이 愛親하는 사람을 살피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 사람이 愛親하는 사람의 是非를 살피면, 그 사람이 현명한지 불초한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만약 가까이 지내는 사람과 친분을 잃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현명한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宗敬할 만하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曾子立事」는 《大戴禮記》의 편이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亦可宗敬에 대해, 皇本/敬下有也字, ‘《皇侃本》에는 敬 다음에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처지가 좋으면 없던 사람도 모여들지만, 처지가 나쁘면, 즉 곤궁하면 있던 사람도 떠나간다. 그런데 信近於義하고, 恭近於禮한 자세를 견지하면, 처지가 곤궁해지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신임을 거두지 않고 이 사람을 여전히 가까이 대할 것이므로, 존경할 만하다고 한 것이다. 이 장은 전체적으로 난해하지만, 세 번째 句는 특히 어렵다. 나는 因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因을 困으로 바꾸어 보았지만, 그래도 아주 석연치는 않다. 이 句의 앞이나 중간에 누락된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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