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왕대의 귀족 반란들(삼국사기 혜공왕본기 중)

2020. 4. 28. 10:48삼국사기 이야기/신라본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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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나오는 지명들을 다음 지도를 통해 이해하시면 글을 한층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달마시안의 한국 고대 지도 링크

 

 

혜공왕은765년에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8살이랬습니다.

 

8살이 정치를 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태후가 섭정했답니다. 아마도 태후는 혜공왕의 엄마인 만월부인일 것입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너무 어리거나 정통성이 없으면 보통 나라가 파탄이 납니다. '저런 놈도 왕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과연 4년만?768년에 일길찬 대공과 그 동생인 아찬 대렴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대공과 대렴은 반란을 일으키고 33일 동안이나 왕궁을 포위했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관군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하고, '구족'을 목 잘라 죽였답니다.

 

 

 

 

9족을 잡아 죽인 것은 좀 이례적입니다. 보통 반란을 일으켜도 3족을 멸하는 데서 그치거든요. 몇 족이니 하는 것은 친인척들을 어느 범위까지 잡아 죽이느냐 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9족이면 자기 집안, 처가 집안 등등을 거의 다 몰살시킨 셈입니다.

 

 

 

삼국사기에서 대공, 대렴의 난 기록은 다음 한 줄 뿐입니다.

 

 

秋七月, 一吉飡大恭與弟阿飡大廉叛. 集衆圍王宫三十三日, 王軍討平之, 誅九族.

 

 

9족을 잡아 죽인 반란 치고는 좀 기록이 소략하죠? 김부식이와 친구들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맞습니다, 김부식은 능력이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삼국유사에도 대공, 대렴의 난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七月三日大恭角干賊起, 王都及五道州郡并九十六角干相戰大乱

 

 

대충 73일에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수도와 5도 주와 군들의 96각간들이 서로 싸워 난리가 크게 났다는 내용입니다.

 

'각간'은 이벌찬의 별칭입니다. 따라서 각간이 96명이나 됐을 리는 없으나, 어쨌거나 이를 좇아 대공, 대렴의 난은 96각간의 난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삼국유사로써 생각하면, 대공, 대렴의 난은 수도에서 일어난 분란이 아니라 전국 단위로 일어났던 큰 난리였습니다. 온 나라가 혜공왕편, 반란군편으로 나뉘어 싸웠던 것이죠. 그래서 진압 후 대공, 대렴의 9족이 다 뒤졌던 것입니다.

 

 

 

혜공왕이 유능했거나, 그 엄마인 만월부인이 유능했다면 반란은 한 번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혜공왕대에는 이 이후에도 연이어 귀좇 반란이 터지죠.

 

 

1. 대공, 대렴의 난

 

2. 770년에는 대아찬 김융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3. 775년에는 김은거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4. 마찬가지로 775년에 염상, 정문이 반란을 모의했다가 잡혀 뒤집니다.

 

5. 780년에는 김지정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중 눈여겨 볼 만한 것은 김지정의 난입니다.

 

 

 

 

왜냐면, 김지정의 난 때문에 혜공왕이 죽기 때문이죠.

 

삼국사기에는 혜공왕이 반란군에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김양상과 김경신이 반란군을 진압했다고 하죠.

 

 

伊飡志貞叛, 聚衆圍犯宫闕. 夏四月, 上大䓁金良相與伊飡敬信舉兵, 誅志貞䓁, 王與后妃, 爲亂兵所害. 良相䓁謚王爲惠恭. 王元妃新寳王后, 伊飡維誠之女. 次妃伊飡金璋之女. 史失入宫歳月.

 

 

그런데 삼국유사 기록은 좀 색다릅니다.

 

 

故國有大乱, 修爲宣徳與金良相所弑.

 

 

삼국유사에서는 김양상에게 혜공왕이 시해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김양상이 바로 혜공왕이 죽은 뒤에 왕으로 오른 선덕왕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왕위에 오른 원성왕이 바로 김경신이죠. 각이 좀 나오죠?

 

따라서 정황상으로는 반란은 김지정이 일으켰으되. 반란을 김양상과 김경신이 진압하면서 그 와중에 혜공왕도 죽여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원조 하나회 새끼들은 혜공왕이 죽은 뒤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 김양상이 바로 선덕왕입니다. 그리고 김양상이 죽은 이후엔 친구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죠. 원성왕입니다.

 

김양상이 대머리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작 선덕왕본기를 보면, 김양상은 왕위에 오른 뒤 제대로 위세를 펴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죽습니다.

 

혜공왕이 죽음으로써 무열왕계는 끊어집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 이후의 신라 역사를 우리는 하대로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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