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당의 대 발해 동맹(삼국사기 성덕왕본기 중)

2020. 4. 28. 10:37삼국사기 이야기/신라본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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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나오는 지명들을 다음 지도를 통해 이해하시면 글을 한층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달마시안의 한국 고대 지도 링크

 

 

우리는 남북국시대에 대해 잘 모릅니다. 남국은 그럭저럭 아는데 북국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죠.

 

발해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게 없습니다.

 

단편적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점들은 있습니다.

 

 

 

신라는 성덕왕 때 발해와 전쟁을 벌일 뻔 했던 일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전쟁을 한다고 하긴 했는데 실제적으로 교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발해가 건국된 것은 698년입니다. 신라에서는 효소왕이 재위 중이었습니다.

 

나당전쟁에 676년인가에 끝났죠? 이 때 이미 평양 이북, 요하 이동 지역은 무정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탁발부는 안동도호부, 웅진도독부를 요동, 요서에 남겨 두긴 했지만 어떤 병신이 그게 진짜 기능하는 관청이라고 믿었을까요? 정말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와중에 696년에 요서에서 거란족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반란의 주모자들은 이진충과 손만영입니다.

 

거란족들은 기주, 유주, 평주(북경~요서?) 지역을 휩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697년에 손만영이 피살되면서 끝났습니다. 탁발부는 돌궐 친구들을 끌어들여 진압하는 데 성공하죠.

 

기주, 유주, 평주가 난장판이라는 것은 그 동북 지역은 말 할 것 없이 무주공산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거란족의 반란을 틈타 고구려 유민, 말갈 칭구들은 대조영, 걸걸중상, 걸사비우 등을 중심으로 모여 만주로 탈출합니다.

 

탁발부에서는 민족반역자 이해고(거란족임)를 보내 이들을 잡으려 하지만 천문령(길림성 어딘가?)에서 크게 지고 결국 동북 지역은 정말 문자 그대로 '무주공산'이 되고 말죠. 실오라기처럼 남아 있었을 탁발부의 군정 통치가 붕괴한 것입니다.

 

사실 회전 한 번으로 나라를 세운다는 게 좀 의아할 수 있겠지만, 나당전쟁 이후로 평양 이북 지역의 통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대조영은 698년에 발해를 세웁니다.

 

한편 신라에서는 702년에 성덕왕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성덕왕 재위 후부터 탁발부와 신라 사이의 교류가 급격하게 늘죠.

 

신라와 탁발부는 나당전쟁이 끝난 이후로 형식적으로 오가기만 했지 아주 냉랭했던 것 같습니다.

 

 

 

성덕왕 재위 후 탁발부와 신라의 교류는 아마도 발해를 견제하기 위함이 아닌가 합니다. 발해의 위치상 발해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문명 세력'은 신라밖에 없으니까요. 돌궐이나 흑수말갈 같은 야만족 친구들도 있는데 이 친구들은 야만좇이지 인간이 아니므로 논외임.

 

발해와 탁발부 사이는 꾸준히 좋지 않았습니다. 무왕 때는 흑수말갈을 누가 지배하느냐를 경쟁한답시고 사이가 아주 나빠졌습니다. 이 와중에 무왕의 동생인 민족반역자 대문예가 탁발부로 망명했고 갈등은 더욱 커지죠. 아마 이것이 726년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탁발부는 728년에 흑수말갈을 유주도독 관할 하에 두기도 했답니다. 발해는 더욱 빡쳤겠죠.

 

 

 

그러던 와중에 사건이 터집니다.

 

730년에 거란족이 돌궐에 붙고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이 반란을 발해가 지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터지고 난 이후에는 지원해 주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732년에는 발해가 탁발부를 아예 공격해 버립니다. 산동의 등주를 공격해 불태우고 자사를 죽여 버린 것이죠.

 

이 와중에 탁발부는 신라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합니다. 733, 탁발부의 현종은 김사란을 보내 발해의 남부 도읍을 치도록 합니다.

 

남부 도읍이 어딘지는 모릅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三十二年, 秋七月, 唐玄宗以渤海靺鞨越海入寇登州, 遣太僕貟外卿金思蘭歸囯, 仍加授王爲開府儀同三司·寧海軍使, 發兵擊靺鞨南鄙. 㑹大雪丈餘, 山路阻隘, 士卒死者過半, 無㓛而還. 金思蘭夲王族, 先因入朝, 恭而有禮, 因留宿衛. 及是, 委以出疆之任.

 

 

아마 국내성을 이르는 게 아닐까 합니다. 어쨌건 거기도 큰 도시니까요.

 

신라에서는 이를 받고 실제로 발해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길 가던 중에 눈이 많이 와서 그냥 되돌아 왔다고 합니다. 지고서 변명했는지도 모르죠.

 

오랜만의 신라의 출병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났지만, 탁발부와 신라 사이는 그 이후에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한편 탁발부와 발해도 싸움을 오래 지속하진 않았습니다. 730년에 터졌던 거란의 반란은 736년에 진압됩니다. 발해와 탁발부사이에 완충 지대가 사라져 버린 거죠.

 

아마 두 나라는 모두 전면전 대신 화친을 택했습니다. 포로를 돌려 보내고, 대충 서로 사과 하고 없던 것처럼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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