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렴 사건(삼국사기 경덕왕본기 중)

2020. 4. 28. 10:43삼국사기 이야기/신라본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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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시안의 한국 고대 지도 링크

 

 

* 김태렴 사건은 삼국사기가 아니라 속일본기에 나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간접적이고 정황적인 증거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경덕왕본기 753년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十二年, 秋八月, 日本國使至, 慢而無禮. 王不見之, 乃迴.

 

 

경덕왕 12, 가을 8월에 왜놈들 사신이 왔는데 싸가지가 없어서 맞이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보다 앞선 742년에도 왜놈 사신이 왔는데 받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753년 기사처럼 싸가지가 없다고 적혀 있진는 않죠. 좀 이례적인 셈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왜 왜놈들이 싸가지가 없었는지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속일본기에 이에 대한 단서가 있습니다.

 

속일본기의 752년 기록(효겸천황)을 보면 신라 왕자 김태렴이라는 사람이 대재부를 통해 와서 700여 명을 이끌고 조공했다고 했습니다. 김태렴이 올린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6己丑 新羅王子 金泰廉 등이 조정에 배알하고 아울러 調를 바쳤다. 그리고 아뢰기를 신라국왕이 일본을 통치하는 천황의 朝庭에 말씀드립니다. 신라국은 옛부터 대대로 끊이지 않고 배와 노를 나란히 하여 가서 國家를 받들었습니다. 이번에 국왕이 몸소 가서 朝貢하고 調를 바치려고 하였으나 생각해보니 하루라도 임금이 없으면 국정이 해이 해지고 문란해질까 염려됩니다. 이 때문에 왕을 대신하여 王子 韓阿湌 泰廉을 우두머리로 하여 370을 거느리고 가서 入朝하게 하고 겸하여 여러 가지 調를 바치고 삼가 아뢰게 합니다라 하였다. 조를 내리기를 신라국은 옛부터 늘 끊이지 않고 국가를 받들어 왔다. 이제 다시 왕자 泰廉을 보내어 入朝하고 겸하여 調를 바치니 왕의 정성에 은 기쁠 뿐이다. 지금부터 길이 오래도록 마땅히 위로하고 보살피겠다라 하였다. 泰廉이 또 아뢰기를 하늘이 두루 덮고 있는 밑에 王土 아님이 없고 육지가 연속해 있는 한의 바닷가까지 왕의 신하 아님이 없습니다. 泰廉은 다행히 聖世를 만나 조정에 와서 받드니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가 몸소 갖추어온 국토의 미미한 물건을 삼가 바칩니다라 하였다. 조를 내리기를 泰廉이 아뢴 바는 들었다라 하였다.

 

六月己丑 新羅王子金泰廉等拜朝 幷貢調 因奏曰 新羅國王言日本照臨天皇朝庭 新羅國者 始自遠朝 世世不絶 舟檝竝連 來奉國家 今欲國王親來朝貢進御調 而顧念 一日無主 國政弛亂 是以 遣王子韓阿湌泰廉 代王爲首 率使下三百七十餘人入朝 兼令貢種種御調 謹以申聞 詔報曰 新羅國始自遠朝 世世不絶 供奉國家 今復遣王子泰廉入朝 兼貢御調 王之勤誠 朕有嘉焉 自今長遠 當加撫存 泰廉又奏言 普天之下無匪王土 率土之濱無匪王臣 泰廉幸逢聖世 來朝供奉 不勝歡慶 私自所備國土微物 謹以奉進 詔報 泰廉所奏聞之

 

(속일본기 원문 및 번역문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가져옴)

 

 

글로만 봐도 김태렴이 효겸천황의 엉덩이를 얼마나 사정없이 핥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왜놈서기처럼, 속왜놈기의 기록 역시 왜놈의 입장에서 윤색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극진한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효겸천황 당시 왜놈들의 정치는 어지러웠다고 합니다. 천황의 권위가 떨어졌고, 대신 귀좇들의 권위는 올라갔습니다.

 

효겸천황 당시 전권을 휘둘렀던 권신은 등원중마려藤原仲麻呂[후지와라노나카마로]라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사실 서로서로 지나가는 개 보듯 하던 신라의 사신이 와서 천황을 띄워 주니 효겸천황은 아주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효겸천황은 다음부터 신라가 '입조'할 때에는 '신라왕'이 직접 오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제가 속왜놈기 원문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이후에 김태렴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752724일까지 김태렴은 원숭이섬에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724일에 난파에 있는 김태렴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거든요.(戊辰 泰廉等還在難派館 勅遣使賜絁布幷酒肴) 그런데 난파라는 곳이 지금의 대판(오사카) 서부의 해안가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 때가 귀국할 시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7538월에 왔다는(삼국사기) 왜놈 사신들은 어쩌면 김태렴 일행에 대한 답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답사가 맞다면, 왜놈들 입장에서는 빳빳하게 굴던 신라가 드디어 무릎을 꿇은 것이니 아주 오만방자하게 굴었겠죠. 물론 사신을 받은 경덕왕 입장에서는 원숭이들이 싸가지 없게 굴기에 상대하지 않고 되돌려 보냈겠습니다.

 

 

 

김태렴이 신라에서 파견한 사신이었다면 사실 좀 과장되었더라도 경덕왕이 보낸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경덕왕은 왜놈 답사를 상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습니다.

 

그럼 반대로 경덕왕이 왜놈 답사를 상대하지 않고 돌려보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어쩌면 김태렴 일행이 신라에서 보낸 사신들이 아니기 때문 아닐까요?

 

장사치들이 사기 치러 간 거죠.

 

물론 이것은 가정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김태렴 사건에 대해 떠도는 웹상의 글에는 진실인 것처럼 나와 있죠.

 

이 가정에는 정황증거가 있습니다.

 

김태렴의 신분이 구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일단 속왜놈기에서 알 수 있듯, 김태렴은 '왕자'이자 한아찬이라고 했습니다. 은 크다는 말이니 와 통합니다. 따라서 한아찬은 대아찬입니다.

 

하지만 신라본기에서는 김태렴이 대아찬이었는지 나와 있지 않고, 사실 김태렴이라는 왕자가 있었는지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혜공왕은 경덕왕의 아들인데, 혜공왕이 태자로 책봉된 것이 760년이고, 경덕왕이 죽은 것이 765년입니다. 그런데 혜공왕 즉위기에서는 혜공왕이 즉위할 때 나이가 8살이라고 했어요. , 혜공왕이 태자로 책봉된 760년일 때는 2~4살쯤 되는 아이였을 것이고, 5살도 안 된 애를 태자로 책봉한다는 것은 다른 애가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혜공왕은 경덕왕의 유일한 적자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왕자들 기록은 없거든요.

 

물론 김태렴이 경덕왕의 서자이거나 사생아 같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기록으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애장왕본기 김균정의 경우처럼 가왕자일 가능성도 있음.)

 

 

 

그럼 김태렴은 왕자가 아니고, 효겸천황과 왜놈 조정은 꼼짝없이 사기꾼에게 속은 것이냐?

 

일방적으로 그렇게 몰아 갈 수도 없습니다.

 

김태렴이 삼국사기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그게 없는 사람인 것은 아니니까요.

 

일단 한국사데이터베이스상으로 확인할 때, 김태렴이라는 이름이 속왜놈기에 이후에도 몇 번 나옵니다.

 

7609월에 신라에서 사신으로 온 김정권에게 왜놈들은 '왕자 태렴'의 입조를 명시하며 신라가 김태렴이 한 약속을 안 지킨 것을 책망합니다. 그러자 김정권은 '田守(신라에서 쫓겨났던 원숭이)가 왔을 때 저는 外官으로 나가 있었고 또한 미천한 사람이므로 자세한 일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며 의아해 합니다.

 

779421일에는 '왕자 태렴'과 발해 사신의 예의를 비교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78015일에는 급찬 김엄 등이 사신으로 오자 다시 '태렴'을 운운하며 김태렴 이후에는 예의를 차린 신라 사신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다시 780215일에는 신라 사신(아마 김엄?)이 돌아가는 길에 '새서'(칙서 비슷한 거?)를 함께 주었는데, 그 내용 중에 다시 '태렴'을 운운하며 예의를 논합니다.

 

이 외에 김태렴에 관한 기록이 속왜놈기에 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원문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서 알 수가 없네요.ㅡㅡㅡ

 

 

 

어쨌거나 이로 볼 때, 효겸천황 이후 조정은 김태렴이 진짜 신라 사신이자 왕자였다고 아주 굳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김태렴이 사기꾼이고, 그걸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면 그 뒤에 수 차례 인지부조화적인 기록을 남기진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이런 정황은 왜놈들이 김태렴을 굳게 믿었다는 증거이지, 김태렴이 사기꾼이거나 사기꾼이 아니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속왜놈기에서 알 수 있듯이, 왜놈 조정에서는 신라 사신에게 직접적으로 김태렴을 언급하고, 또 어떤 때는 '왕자 태렴'이라고 언급하지만 정작 신라 사신 입장에서는 그에 대해 한 번도 반론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김태렴이 경덕왕의 왕자가 아니었다면 '김태렴이한테 사기 당했네, 등신들'이라고 했을 법도 한데 말이죠. 사신 입장이다 보니 그렇게 말 했다가는 죽을까봐 아무 말도 안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김태렴이 왜놈들에게 갔을 때, 속왜놈기 기록으로는 700여 명과 함께 갔다고 합니다. 700명은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바다 건너 가기엔 더더욱 더 그렇죠. 김태렴이 사기꾼이라면 사기꾼이겠지만, 어떤 사기꾼이 700명이나 동원해서 해외까지 나가겠습니까.

 

그래서 김태렴이 사기꾼은 사기꾼이더라도, 정황상 어떤 식으로든 귀족의 반열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 외교 사절을 흉내내려면 어쨌거나 예법도 알아야 할 것이고, 수사도 알아야 합니다. 700명을 동원하려면 재력도 있어야 하고, 명망도 있어야겠죠.

 

이런 사람이 신라본기에 단 한 번도 안 나온 것은 그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김태렴 말고 발에 채일 듯이 많았기 때문이거나, 김부식이와 친구들의 정보망에 안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이상 파고 들기는 힘들 것 같네여.

 

사실 제 유튜브 영상에는 사기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 적혀 있는 건 그 이후에 분석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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