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0. 11:18ㆍ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郭象, 成玄英, 王先謙 등의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6월 10일 4시 49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90
장자 내편 - 4 - 인간세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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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84
장자 내편 - 4 - 인간세 - 4 - 장석과 상수리가 무용함에 대해 대담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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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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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자책
3-1.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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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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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4-4
匠石之齊,至於曲轅,見櫟社樹。其大蔽數千牛,絜之百圍,其高臨山十仞而後有枝,其可以爲舟者旁十數。觀者如市,匠伯不顧,遂行不輟。弟子厭觀之,走及匠石,曰:
「自吾執斧斤以隨夫子,未嘗見材如此其美也。先生不肯視,行不輟,何邪?」
曰:「已矣,勿言之矣!散木也,以爲舟則沈,以爲棺槨則速腐,以爲器則速毀,以爲門戶則液樠,以爲柱則蠹,是不材之木也,無所可用,故能若是之壽。」
匠石歸,櫟社見夢曰:
「女將惡乎比予哉?若將比予於文木邪。夫柤梨橘柚,果蓏之屬,實熟則剝,剝則辱;大枝折,小枝泄。此以其能苦其生者也,故不終其天年而中道夭,自掊擊於世俗者也。物莫不若是。
且予求無所可用久矣,幾死,乃今得之,爲予大用。使予也而有用,且得有此大也邪?且也若與予也皆物也,奈何哉,其相物也?而幾死之散人,又惡知散木?」
匠石覺而診其夢。
弟子曰:「趣取無用,則爲社何邪?」
曰:「密!若無言,彼亦直寄焉,以爲不知己者詬厲也。不爲社,者且幾有翦乎?且也彼其所保與衆異,而以義喻之,不亦遠乎!」
장석이 제나라에 가다가 곡원에 이르렀는데, [곡원에서] 신목으로 모신 상수리가 심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크기는 소 수천 마리를 덮을 만했고, [그]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되었다. 1 [또,] 그 높이는 산을 내려다 볼 정도였으니, [밑둥에서] 열 길이나 올라간 뒤에야 가지가 나 있었다. 이에, [상수리로] 배를 만든다면, 장차 십수 척이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2 [상수리가 워낙 커서, 상수리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시장판을 이룰 지경이었다. [그러나] 장석은 [상수리를] 돌아 보지도 않더니, 결국 갈 길을 멈추지조차 않았다. 3 [장석의] 제자는 상수리를 실컷 구경하다가, 달려가서 장석을 따라잡고는 말했다. 4 5
"내가 도끼질을 하면서 선생을 따라 다닌 이래로, 이 상수리처럼 지극하게 훌륭한 재목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선생은 [상수리를] 보려 하지도 않고 갈 길을 멈추지도 않았으니, 왜인가." 6
"그만, 닥치거라. [니가 본 상수리는] 쓸 데 없는 나무로다. [그 상수리를 가지고]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고, 관이나 곽을 만들면 금새 썩어 버릴 것이며 8, 그릇을 만들면 금방 망가질 것이고 9, 문을 만들어도 진액이 나올 것이며, 기둥을 만들어도 좀이 슬어 버릴 것이다. 10 [이처럼] 이 상수리는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다. 쓰일 데가 없으니, 이에 이와 같이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11" 12
[이윽고] 장석이 [집에] 돌아왔는데, 신목으로 모신 상수리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13
"너는 어찌 나를 다른 나무에 [비해 낫거나 못하다고] 비교하려 드느냐. 너는 나를 장차 문목과 비교하려 하느냐. 저 산사나무나 배나무, 귤나무와 유자나무는 [모두] 과실목들이다. 14 [그런데 이런 과실목들은] 열매가 익으면 [사람이나 동물이 그 열매를 따 먹느라 가지가] 찢기는데, [가지가] 찢기면서 구부러지니, 큰 가지는 부러지고, 작은 가지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다. 15 이 과실수들은 자기 쓰임새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괴롭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자신이 타고난 수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해 버리면서, 세상 사람들에게서 해를 입을 일을 자초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과실수뿐만 아니라, 세상의] 만물이 이처럼 자기 쓰임새 때문에 해를 자초하지 않는 경우가 없도다. 16" 17
<상수리의 말 이어짐>
"또, [나는] 내가 쓰일 만한 데가 없기를 바란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오늘 니 제자 때문에] 거의 죽을 뻔하였다가, [니가 나를 두고 쓸 데가 없다고 해 주었기 때문에] 마침내 쓰일 만한 데가 없기를 바란 뜻을 이루었도다. [쓰일 만한 데가 없는 것이야말로] 내게는 대단한 쓰임새인 것이다. 18 만약 내게 쓰임새가 있었다면, [내가] 장차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겠느냐. 19 또한, 너나 나나 모두 [한낱] 사물일 뿐이다. 이에 [똑같은 사물끼리] 어떻게 서로 [유용하니 무용하니 하며, 쓰임새를] 따질 수 있다는 말이냐. 20 [즉,] 너도 죽을 때가 된 [한낱] 쓸 모 없는 인간[일 뿐]인데, 그러면서 [니가] 어찌 [나를] 쓸 모 없는 나무라고 하면서 [나에 대해] 따질 수 있다는 말이냐. 21" 22
장석이 꿈에서 깨서는 [제자에게] 자기 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제자가 말했다. 23 24
"[상수리가] 쓰임새가 없고자 하였다면, 신목이 된 것은 왜일까.“ 25
"닥쳐라, 너는 지껄이지 마라. 저 상수리도 [스스로 신목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옛날부터 자신을] 단지 [신목이라는 지위에] 의탁하고 있었을 뿐이다. [상수리는 니 말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자기를] 모욕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27 [만약 상수리가] 신목이 되지 못했다면, 아마 [어떤 이유 때문에] 나중에 베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8 뿐만 아니라, 저 상수리가 [천수를 누리기 위해] 자신을 보존하는 방법도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랐다. 29 그러니 [보통 사람들의] 기준을 가지고 상수리를 판단한다면, 역시 부당하지 않겠느냐. 30" 31
- 匠石之齊/至於曲轅/見櫟社樹, ◈ 匠石은 '{...}'이라는 말일 것이다. 匠은 '{...}'를 뜻한다. 石은 이름일 것이다. 「養生主」에 庖丁이 '{...}'이라고 사용된 사례가 이미 있었다. 나는 '{...}'이라고 음역하였다. 匠石은 다른 곳에도 등장한다. 《雜篇》 「徐無鬼」에 郢人堊漫其鼻端若蠅翼/使匠石斲之//匠石運斤成風聽而斲之//盡堊而鼻不傷/郢人立不失容, '{...}'라는 말이 있다. 또, 《韓非子》 「大體」에는 使匠石以千歲之壽/操鉤/視規矩/擧繩墨/而正太山, '{...}'는 말이 있고, 또 古之牧天下者/不使匠石極巧以敗太山之體, '{...}'라는 말도 있다. 또, 《漢書》 「揚雄傳 下」에 獿人亡/則匠石輟斤而不敢妄斲, '{...}'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服虔은 獿/古之善塗塈者也//施廣領大袖以仰塗/而領袖不汙//有小飛泥誤著其鼻/因令匠石揮斤而斲/知匠石之善斲/故敢使之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匠是工人之通稱/石乃巧者之私名,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石/匠名, '{...}'라고 하였다. ◈ 之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成玄英은 之/適也, '{...}'라고 하였고, 王先謙은 之/往也, '{...}'라고 하였다. ◈ 齊는 나라 이름이다. 太公이 봉분된 나라로, 山東에 있었다. 《史記》 「齊太公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 至는 용언으로, 어떤 장소에 '{...}'는 말이다. ◈ 於는 '{...}'다. 이 글자는 《莊子集解》에는 乎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於라고 되어 있다. ◈ 曲轅은 지명일 것이다. 《春秋左氏傳》 「哀公」 10년에 於是乎取犂及轅/毁高唐之郭/侵及賴而還,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犂/一名隰/濟南有隰陰縣/祝阿縣西有轅城, '{...}'라고 하였다. 匠石은 齊나라에 {...}다 하겠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音袁//司馬云/曲轅/曲道也///崔云/道名, '{...}'라고 했다. 成玄英은 曲轅/地名也//其道屈曲/猶如嵩山之西有轘轅之道/即斯類也, '{...}'라고 하였다. 轘轅은 길의 이름이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櫟社는 '{...}'라는 말 같다. 이 글에서는 櫟社가 한 단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뒤에 櫟社見夢曰,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역시 한 단어로 사용되었다. 또, 뒷쪽에는 爲社, '{...}'라는 말이 있는데, 이 표현에 착안해 볼 때, 社는 '{...}'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본래 櫟은 '{...}'를, 社는 '{...}'을 뜻한다. 아마 {...}서 풀이해 두었다. ◈ 櫟은 체언으로, '{...}'다. {...}다. 《康熙字典》 「櫟」에서는 邢昺이 似樗之木, '{...}'라고 했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는데, 출전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逍遙遊」에서 莊子가 樗, 즉 '{...}'를 들어서 惠子를 {...}해야 하겠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櫟/木名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力狄反//李云/木名/一云/梂也, '{...}'라고 했다. 盧文弨/梂/眾本作采/訛//今從宋本正, '{...}'라고 하였다. ◈ 社는 '{...}'을 뜻한다. 《說文解字》 「示部」에는 地主也//从示土//春秋傳曰/共工之子句龍爲社神///周禮/二十五家爲社/各樹其土所宜之木, '{...}'라고 하였다. 《春秋傳》은 《春秋左氏傳》을 이른다. 인용문은 아마 「昭公」 29년의 기록을 이르는 듯하다. 29년에는 共工氏有子曰句龍/爲后土, '{...}'라고 되어 있고, 또 后土爲社, '{...}'라고 되어 있다. 《周禮》 인용문은 출전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詩》 「小雅 北山之什」의 「甫田」에 以社以方,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社/後土也, '{...}'라고 하였고, 鄭玄은 秋祭社與四方/爲五穀成熟/報其功也, '{...}'라고 하였다. 또, 孔穎達은 毛氏解社/其言不明/惟此言/社/後土///其義當與鄭同//鄭駁異義以爲/社者/五土之神/能生萬物者/以古之有大功者配之//祭法曰/共工氏之霸九州也/其子曰后土/能平九州/故祀以爲社///昭二十九年傳曰/共工氏有子曰句龍/爲後土則社///鄭志答趙商云/後土爲社/轉作社神///趙商問/郊特牲社祭土而主陰氣//大宗伯職曰/王大封則先告後土//注云/後土/土神也//若此之義/後土則社/社則後土/二者未知云何//敢問後土祭誰//社祭誰乎///答曰/句龍本後土/後遷之爲社//大封先告後土/玄注云/後土/土神/不云後土/社也///田瓊問/周禮大封/先告後土//注云/後土/社也//前答趙商曰/當言後土/土神//言社/非也//檀弓曰/國亡大縣邑//或曰/君舉而哭於後土//注云/後土/社也//月令/仲春命民社//注云/社/後土//中庸云/郊社之禮/所以事上帝也//注云/社/祭地神//不言後土/省文//此三者/皆當定之否///答曰/後土/土官之名也//死以爲社/社而祭之/故曰后土/社句龍爲後土/後轉爲社/故世人謂社爲後土/無可怪也//欲定者/定之亦可/不須由此言//後土者/地之大名也///僖十五年左傳曰/履後土而戴皇天//指謂地爲後土也//句龍職主土地/故謂其官爲後土//此人爲後土之官/後轉以配社/又謂社爲後土//且社亦土地之神//是後土之言/參差不一/故弟子疑而發問也//宗伯大封告後土者/以其大封是上地之事/宜告土神/不告句龍/故云定爲後土/土神//檀弓曰/國亡大縣邑//哭於後土者/以諸侯守社稷失地/哭於社/故云/後土/社也//此文與月令皆謂祭祀后土/則配社之神/故云/社/後土也//中庸云/郊社相對/郊是天/則社是地/故云/社祭土神//以宗伯與左傳皆謂地爲後土/則土神宜稱后土//而中庸言社/不言後土/故云省文//以理皆可通/故云/欲定/定之亦可/不須言也, '{...}'라고 하였다. 《駁異義》는 鄭玄이 지은 《駁五經異義》를 이른다. 「祭法」은 《禮記》의 편 이름이다. 《傳》은 《春秋左氏傳》을 이른다. 《鄭志》는 鄭玄이 지은 책이다. 「郊特牲」은 《禮記》의 편 이름이다. 「大宗伯職」은 《周禮》 「春官宗伯」 중 大宗伯에 대한 내용을 뜻한다. 「檀弓」은 《禮記》의 편 이름이다. 「月令」은 《禮記》의 편 이름이다. 「中庸」은 《禮記》의 편 이름이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社/土神也//祀封土曰社//社/吐也/言能吐生萬物/故謂之社也, '{...}'라고 하였다. ◈ 樹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櫟社樹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 되고, 見櫟社樹는 '{...}'는 말이 된다. ◈◈ 成玄英은 其人自魯適齊/塗經曲道/睹茲異木/擁腫不材//欲明處涉人間/必須以無用爲用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其大蔽數千牛/絜之百圍, ◈ 其는 櫟, '{...}'를 가리킨다. ◈ 大는 체언으로, '{...}'다. ◈ 蔽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墨子》 「所染」에 功名蔽天地,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蔽는 '{...}'는 말이다. 이 말은 《呂氏春秋》 「仲春紀 當染」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高誘는 蔽/猶極也, '{...}'라고 하였다. 그러나 '{...}'가 훨씬 문맥에 잘 맞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必世反//李云/牛住其旁而不見, '{...}'라고 했다. ◈ 數千은 아마 관형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郭慶藩은 世德堂本無數千二字/與釋文同/闕誤引江南李氏及張君房本有,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櫟社之樹/特高常木/枝葉覆蔭/蔽數千牛/以繩束之/圍麤百尺//江南莊本多言其大蔽牛/無數千字/此本應錯//且商丘之木/既結駟千乘/曲轅之樹/豈蔽一牛//以此格量/數千之本是也, '{...}'라고 하였다. 《江南莊本》은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李氏本》이 아닐까 싶다. 數千이 있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주제에도 잘 부합된다. ◈ 牛는 체언으로, '{...}'다. ◈ 絜之百圍은 其絜之百圍이 아닐까 의뭉스럽다. 앞의 {...} 있지 않을까. ◈ 絜은 체언으로, '{...}'다. 成玄英은 絜/約束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向徐戶結反/徐又虎結反//約束也, '{...}'라고 하였다. 그러면 約束이란 무엇일까. 約과 束은 모두 '{...}'는 뜻이다. 예를 들어 {...}기 때문이다. 한편 郭慶藩은 文選賈長沙過秦論注引司馬云///絜/匝也///釋文闕,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賈長沙는 前漢의 賈誼를 이른다. 《文選》의 注는 李善이 단 것이다. 李善은 《莊子》의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司馬彪의 말도 가지고 왔다. ◈ 之는 아마 {...} 같다. ◈ 圍은 {...}로, '{...}'이다. 陸德明은 李云/徑尺爲圍/蓋十丈也, '{...}'라고 했다. 丈을 2.2m라고 생각하면, 상수리의 둘레는 {...} 정도 되겠다. ◈◈ 孃破案 : 미국삼나무는 {...}이 될 듯하다. [본문으로]
- 其高臨山/十仞而後有枝/其可以爲舟者旁十數, ◈ 其高의 其는 櫟, '{...}'를 가리킨다. ◈ 高는 체언으로, '{...}'다. ◈ 臨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說文解字》 「臥部」에는 監에 대해 監/臨下也, '{...}'라고 하였는데, 臨을 다시 臨/監臨, '{...}'라고 하였으니, 臨 역시 監처럼 '{...}'라고 할 수 있겠다. 《詩》 「大雅 文王之什」의 「大明」에 上帝臨女,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臨/視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臨視, '{...}'라고 풀이하였다. 《詩》 「頌 魯頌」의 「閟宮」에도 같은 말이 있다. 《詩》 「國風 邶風」의 「日月」에는 日居月諸/照臨下土, '{...}'라는 말이 있고, 《詩》 「小雅 北山之什」의 「小明」에는 明明上天/照臨下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照臨은 '{...}'라는 말이다. 臨이 '{...}'가 아니라 '{...}'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는 의미로는 같다. ◈ 山은 체언으로, '{...}'이다. ◈ 十仞은 17m 정도다. 仞은 {...}다. '{...}'이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小爾雅云///四尺曰仞///案七尺曰仞//崔本作千仞//或云///八尺曰仞,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七尺曰仞, '{...}'라고 하였다. 《小爾雅》 인용문은 「廣度」다. 「廣度」에 四尺/謂之仞/倍仞/謂之尋//尋/舒兩肱也//倍尋/謂之常, '{...}'라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1仞을 7~8尺으로 보고, 1尺을 22.5cm라고 하면, 10仞은 1687.5cm, 즉 17m 정도 된다. ◈ 而後는 '{...}'라는 말이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枝는 체언으로, '{...}'다. 따라서 十仞而後有枝는 '{...}'라는 말이 된다. {...}을 것이다. ◈ 其可의 其는 부사어로, '{...}'에 가깝다. 乃와 같다. 《禮記》 「月令」에 五者備當/上帝其饗,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僖公」 5년에 鶉之賁賁/天策焞焞/火中成軍/虢公其奔, '{...}'라는 말이 있으며, 《春秋左氏傳》 「宣公」 2년에 非馬也/其人也, '{...}'라는 말이 있고, 《國語》 「晉語」에 喪田不懲/禍亂其興,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其는 모두 乃처럼 '{...}'라고 해석된다. ◈ 可以는 '{...}'라는 말이다. 以는 '{...}'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爲舟를 받는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周禮》 「春官宗伯」에 典同/掌六律六同之和/以辨天地四方陰陽之聲/以爲樂器,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爲/作也, '{...}'라고 하였다. 《爾雅》 「釋言」에는 作/造/爲也, '{...}'라는 말도 있다. ◈ 舟는 체언으로, '{...}'다. ◈ 者는 '{...}'이다. 可以爲舟를 받는다. 즉, 可以爲舟者는 '{...}'이 된다. ◈ 旁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旁은 方과 통용된다. 또, 方은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旁은 '{...}'라는 뜻이다. 이는 俞樾의 설이다. 陸德明은 所具反//崔云/旁/旁枝也, '{...}'라고 했다. 成玄英 역시 '{...}'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俞樾은 旁讀爲方/古字通用//尙書皋陶謨篇方施象刑惟明/新序節士篇方作旁/甫刑篇方告無辜於上/論衡變動篇方作旁/並其證也//在宥篇出入無旁/即出入無方/此本書假旁爲方之證//詩正月篇民今方殆/鄭箋云///方/且也///其可以爲舟者方十數/言可以爲舟者且十數也//釋文引崔曰///旁/旁枝也///蓋不知旁爲方假字/故語詞而誤以爲實義矣, '{...}'라고 하였다. 《新序》는 劉向이 지은 책이다. 「節士」에는 旁施象刑維明으로 인용되어 있다. 「甫刑」은 아마 《書》 「周書 呂刑」인 듯하다. 「呂刑」에는 方告無辜於上이 아니라 方告無辜于上라고 되어 있다. 《論衡》은 後漢의 王充이 지은 책이다. 「變動」에는 旁告無辜于天帝라고 인용되어 있다. 인용된 「正月」은 「小雅 祈夫之什」에 속해 있다. 俞樾이 인용한 인용문들에서도, 方과 傍을 '{...}'라고 하면 대체로 뜻이 잘 통하고, 본문에서도 그렇다. ◈ 十數는 아마 {...}을 뜻하는 말 같다. 따라서 其可以爲舟者旁十數는 '{...}'라는 말이 된다. 이 나무로 {...}이라는 뜻이다. 이에 맞춰서 의역하였다. ◈◈ 成玄英은 此樹直竦崟岑七十餘尺/然後挺生枝榦/蔽日捎雲//堪爲船者/旁有數十木之大//蓋其狀如是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觀者如市/匠伯不顧/遂行不輟, ◈ 觀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陸德明은 古奐反/又音官, '{...}'라고 하였다. ◈ 者는 '{...}'이다. 觀을 받는다. 즉, 觀者는 {...}이라는 말이다. ◈ 如는 '{...}'라는 말이다. ◈ 市는 체언으로, '{...}'이다. {...}을 형용한 말이다. ◈ 匠伯은 匠石을 가리킬 것이다. 伯과 石의 {...}하지 않는다. 陸德明은 伯/匠石字也//崔本亦作石,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文選/何平叔景福殿賦注/王子淵洞簫賦注/嵇叔夜琴賦注/司馬紹統贈山濤詩注/張景陽七命注/並引司馬云///匠石/字伯//釋文闕, '{...}'라고 하였다. 注는 李善의 注다. 《釋文》에는 「贈山濤詩」가 「贈山濤」라고만 되어 있다. 「七命」은 「七命 八首」를 이른다. ◈ 顧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不顧는 {...}는 말이다. ◈ 遂는 부사어로, '{...}'이라는 말이다. 王先謙은 遂/竟也, '{...}'라고 하였다. ◈ 行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行不輟은 行而不輟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遂 때문에 {...}하였을 것이다. ◈ 輟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荀子》 「修身」에 累土而不輟/丘山崇成, '{...}'라는 말이 있고, 《荀子》 「儒效」에 而天下不輟事周, '{...}'라는 말이 있는데, 輟은 모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論語》 「微子」에 耰而不輟,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輟/止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輟/止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丁劣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木大異常/看者甚眾//唯有匠石知其不材/行塗直過/曾不留視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逍遙遊」에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 '{...}'라는 말이 있었다. 惠子가 {...}를 비판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 弟子厭觀之/走及匠石/曰, ◈ 弟子는 {...}를 이른다. ◈ 厭은 부사어로, '{...}'이라는 뜻이다. 즉, 厭觀은 '{...}'는 말이 된다. 《詩》 「小雅 白華之什」의 「湛露」에 厭厭夜飲/不醉無歸,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과 朱熹는 厭厭을 安,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韓詩作愔愔/和悅之貌, '{...}'라고 하였다. 즉, 이 때는 '{...}'는 뜻이 된다. 또, 《史記》 「貨殖列傳」에 原憲不厭糟糠, '{...}'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司馬貞의 《史記索隱》에는 饜으로 되어 있다. 司馬貞은 飽, '{...}'라고 풀이하였다. 또, 《呂氏春秋》 「孟秋紀 懷寵」에 求索無厭, '{...}'라는 말이 있으니, 여기에서도 厭은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於豔反/又於瞻反,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厭/飽也, '{...}'라고 하였다. ◈ 觀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觀之의 之는 櫟, '{...}'를 가리킨다. ◈ 走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及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匠石을 '{...}'라고 보면 타당하겠다. [본문으로]
- 自吾執斧斤以隨夫子/未嘗見材如此其美也//先生不肯視/行不輟/何邪, ◈ 自는 부사어로, '{...}'라는 뜻이다. 吾執斧斤以隨夫子를 받는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을 이른다. ◈ 執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斧와 斤은 모두 '{...}'다. 安東林은 斧를 '{...}', 斤을 '{...}'라고 했는데, 그 출전이 어디인지를 모르겠다. 즉, 執斧斤은 '{...}'라는 의미가 된다. ◈ 以는 '{...}'라는 말이다. 執斧斤을 받는다. ◈ 隨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제자가 {...}을 뜻한다. ◈ 夫子는 {...}이다. 匠石을 이른다. ◈ 未嘗은 '{...}'는 뜻이다. ◈ 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材如此其美也를 전부 받는 듯하다. ◈ 材는 체언으로, '{...}'이다. {...}를 뜻한다. ◈ 如此는 '{...}'는 말이다. 此는 '{...}'처럼 {...}로, 상수리를 가리킨다. ◈ 其는 부사어로, 아마 '{...}'라는 뜻 같다. 綦의 가차자일 것이다. ◈ 美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이 句 안에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되며, 也를 한정한다. ◈ 也는 者와 같다. '{...}'이다. 따라서 材如此其美也는 材如此其美者로, '{...}'이 된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先生은 상대에 대한 경칭이다. 匠石을 이른다. ◈ 不은 부정어다. ◈ 肯은 '{...}'는 말이다. 즉, 不肯視는 '{...}'는 말이다. 《詩》 「國風 魏風」의 「碩鼠」에 三歲貫女/莫我肯顧,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成公」 4년에 楚雖大/非吾族也/其肯字我乎,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廉頗藺相如列傳」에 相如聞/不肯與會, '{...}'라는 말이 있다. 이 예문들에서 肯은 모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사례들은 모두 金元中의 《한문 해석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 視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行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輟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何는 의문사로, '{...}'다. 何故로 보고,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 成玄英은 門人驚櫟社之盛美/乃住立以視看/自負笈以從師/未見材有若此大也//怪匠之不顧/走及/遂以諮詢,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제자가 보기에 {...}한 것이다. [본문으로]
- 曰 [본문으로]
- 已矣/勿言之矣, ◈ 已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已/止也, '{...}'라고 하였다. ◈ 勿은 '{...}'라는 말이다. ◈ 言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따라서 勿言은 '{...}'라는 말이다. ◈ 之는 아마 {...}일 것이다. {...}고 넣었을 것이다. ◈◈ 成玄英은 匠石知大木之不材/非世俗之所用/嫌弟子之辭費/訶令止而勿言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제자는 상수리가 {...}고 한 것이다. [본문으로]
- 散木也/以爲舟則沈/以爲棺槨則速腐, ◈ 散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悉但反/徐悉旦反//下同, '{...}'라고 하였다. ◈ 木은 체언으로, '{...}'다. 즉, 散木은 '{...}'라는 말이 된다. ◈ 以는 '{...}'다. 櫟, 즉 '{...}'를 받는다. 생략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앞의 其可以爲舟者旁十數에 나왔던 爲와 같다. ◈ 舟는 체언으로, '{...}'다. ◈ 則은 '{...}'이다. ◈ 沈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櫟木體重/爲船即沈,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體重, '{...}'라고 하였다. ◈ 棺槨은 시체를 넣는 '{...}'이다. 관은 {...}을 이르는 말 같다. ◈ 速은 부사어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陸德明은 如字//向崔本作數//向所祿反//下同, '{...}'라고 하였다. 《向秀本》과 《崔譔本》의 數은 아마 '{...}'으로 읽을 것이다. ◈ 腐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近土多敗/爲棺槨速折,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多敗,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扶甫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疏散之樹/終於天年/亦是不材之木/故致閒散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以爲器則速毀, ◈ 以는 '{...}'다. 櫟, 즉 '{...}'를 받는다. 생략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器는 체언으로, '{...}'이다. ◈ 則은 '{...}'이다. ◈ 速은 부사어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 毀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人閒器物/貴在牢固//櫟既疏脆/早毀何疑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疏脆,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以爲門戶則液樠/以爲柱則蠹, ◈ 以는 '{...}'다. 櫟, 즉 '{...}'를 받는다. 생략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門과 戶는 모두 체언으로, '{...}'이다. 그러면 뭐가 다르길래 글자가 따로 있을까. 《說文解字》 「戶部」 에 戶/護也//半門曰戶//象形, '{...}'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글자의 모양 그대로, 戶는 '{...}'이고, 門은 '{...}'임을 알 수 있다. ◈ 則은 '{...}'이다. ◈ 液樠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液은 본래 체언으로, '{...}'을 뜻한다. 이 글에서는 용언으로 쓰였으므로, '{...}'처럼 해석해야 한다. 樠은 본래 어떤 나무의 이름을 뜻한다. 《說文解字》 「木部」에는 樠/松心木, '{...}'라고 되어 있다. 《漢書》 「西域傳 下」에 山多松樠,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樠/木名/其心似松/音武元反, '{...}'라고 하였다. 《說文解字》에서 樠을 {...}에서 莊子가 '{...}'라는 뜻으로 樠을 사용한 듯하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樠/脂汗出也, '{...}'라고 하고, 또 爲門戶則液樠而脂出,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亦//亡言反//向李莫干反//郭武半反//司馬云/液/津液也//樠/謂脂出樠樠然也///崔云/黑液出也, '{...}'라고 했다. 樠樠然은 아마 {...}을 뜻하는 말 같다. 한편 李楨은 廣韻二十二元///樠/松心//又木名也///說文///樠/松心木///段注云///疑有奪誤/當作松心也/一曰木名也///陸所據是說文古本//按松心有脂/液樠正取此義//謂脂出如松心也//此莊子字法之妙//疏與釋文義俱不明//又廣韻釋𣓈曰松脂/段云///即樠爲松脂之誤///余疑𣓈爲樠之或體,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疏》는 成玄英의 주석을 이른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松心은 내 생각에 {...}을 뜻하는 말이 아닌가 하다. 脂는 '{...}'이 아니라, '{...}'이다. 즉, 松脂는 '{...}'이다. 중간에 陸德明에 대해 말한 부분은, 아마 陸德明이 樠의 발음을 亡言反//向李莫干反, '{...}'라고 한 점에 대한 의견이 아닌가 하다. 李楨은 液樠을 脂出如松心, '{...}'라고 풀이하였지만, 결국 '{...}'는 점에서는 司馬彪, 崔譔, 成玄英과 같다. ◈ 柱는 체언으로, '{...}'이다. ◈ 蠹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蠹/木內蟲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丁故反,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爲梁柱則蠹而不牢,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蟲蝕,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是不材之木也//無所可用/故能若是之壽, ◈ 是不材의 是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櫟, '{...}'를 가리킨다. ◈ 不은 부정어다. ◈ 材는 용언으로, '{...}'라는 말 같다. ◈ 不材之木의 之는 {...}다. '{...}'이라고 해석된다. ◈ 木은 체언으로, '{...}'다. ◈ 無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所는 '{...}'이다. 可用을 받는다. ◈ 可는 '{...}'는 말이다. 用을 받는다. ◈ 用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無所可用은 '{...}'는 말이 된다. ◈ 故는 '{...}'라는 말이다. ◈ 能은 '{...}'는 말이다. ◈ 若是는 '{...}'다. 是는 {...}을 이른다. ◈ 之는 {...}이다. 원래는 故能壽若是가 되어야 한다. ◈ 壽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不在可用之數/故曰散木,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閒散疏脆/故不材之木/涉用無堪/所以免早夭,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無所可用에 대해 已見逍遙遊諸篇, '{...}'라고 하였다. 無所可用이라는 말은 「逍遙遊」, 「人間世」, 그리고 《外篇》의 「山木」에 등장한다. 그러나 글자가 {...}과는 거리가 있다. [본문으로]
- 匠石歸/櫟社見夢曰, ◈ 歸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아마 {...}는 말일 것이다. ◈ 櫟社는 '{...}'다. {...}를 이른다. ◈ 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으로 읽는다. 陸德明은 胡薦反, '{...}'라고 하였다. ◈ 夢은 체언으로, '{...}'이다. [본문으로]
- 女將惡乎比予哉//若將比予於文木邪, ◈ 女는 2인칭 대명사로, 匠石을 이른다. 汝와 같다. 陸德明은 音汝, '{...}'라고 하였다. ◈ 女將의 將은 부사어로,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그러면 문맥과 잘 합치된다. ◈ 惡乎는 '{...}'라는 말이다. 惡는 의문사로, '{...}'이다. '{...}'라고 읽는다. 乎는 於와 같다. '{...}'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惡乎/猶於何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烏//下同, '{...}'라고 하였다. ◈ 比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을 이른다. ◈ 予는 1인칭 대명사로, {...}를 이른다. 즉, 惡乎比予는 '{...}'라는 말이 된다. 成玄英은 予/我也, '{...}'라고 하였다. ◈ 若은 2인칭 대명사로, 匠石을 이른다. 成玄英은 若/汝也, '{...}'라고 하였다. ◈ 若將의 將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於는 '{...}'다. 文木을 받는다. ◈ 文木은 '{...}'를 이른다. 文木은 앞에 나왔던 散木과 대조되고 있다. 散木이 '{...}'였으므로, 文木은 '{...}'가 되어야 한다. 木은 체언으로, '{...}'다. 文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文은 고대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마 莊子는 이런 의미에서 '{...}'라는 뜻을 파생시켜 사용하였을 것이다. 《禮記》 「樂記」에 禮減而進/以進爲文//樂盈而反/以反爲文,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文/猶美也/善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進文/謂美善之名, '{...}'라고 하였다. 또, 《荀子》 「性惡」에 多言則文而類,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文/謂言不鄙陋也, '{...}'라고 하였다. {...}는 뜻이 된다. 본문에 대해, 郭象은 凡可用之木爲文木,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可用之木爲文木也, '{...}'라고 하였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 成玄英은 匠石歸寢/櫟社感夢/問於匠石//汝將何物比並我哉/爲當將我作不材散木邪/爲當比予於有用文章之木邪,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夫柤梨橘柚/果蓏之屬, ◈ 夫는 '{...}'처럼 {...}이다. ◈ 柤는 '{...}', 梨는 '{...}', 橘은 '{...}', 柚는 '{...}'다. 모두 체언이다. 이 네 가지 나무는 모두 {...}들이다. 陸德明은 側加反//均必反//由救反/徐以救反//徐力果反, '{...}'라고 하였다. ◈ 果蓏는 아마 한 단어로, '{...}'를 뜻할 것이다. 果와 蓏는 모두 '{...}'를 뜻한다. 이 둘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 《說文解字》 「艸部」에 蓏/在木曰果/在地曰蓏, '{...}'라는 말이 있다. 또 《漢書》 「食貨志 上」에 瓜瓠果蓏殖於疆易,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應劭는 '{...}'라고 하였고, 張晏은 '{...}'라고 하였다. 核은 아마 '{...}'일 것이다. 또, 臣瓚은 '{...}'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사과는 {...}에 속할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夫在樹曰果/柤梨之類//在地曰蓏/瓜瓠之徒, '{...}'라고 하였다. ◈ 之는 {...}다. ◈ 屬은 체언으로, '{...}'라는 말이다. ◈◈ 成玄英은 汝豈比我於此之輩者耶,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實熟則剝/剝則辱/大枝折/小枝泄, ◈ 實은 체언으로, '{...}'이다. ◈ 熟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는 뜻이다. ◈ 實熟則剝의 則은 '{...}'이다. ◈ 剝은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열매가 익으면 {...} 만다. 아마 이런 의미일 것이다. 《說文解字》 「刀部」에는 剝/裂也, '{...}'라고 되어 있다. ◈ 剝則辱의 則은 '{...}'라는 말이다. 而와 같다. 則은 而와 통용되었다. 《春秋左氏傳》 「文公」 2년에 勇則害上/不登於明堂,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則은 '{...}'라고 해석된다. 而와 같다. 또, 《春秋左氏傳》 「昭公」 3년에는 寡人願事君/朝夕不倦/將奉質幣/以無失時/則國家多難/是以不獲,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則은 '{...}'처럼 해석된다. 이 역시 而와 같다. 또, 《荀子》 「榮辱」에 夫貴爲天子/富有天下/是人情之所同欲也//然則從人之欲/則埶不能容/物不能贍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然則은 역접으로 해석된다. 즉, 然而와 같다. 이 경우에서도 則과 而는 같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則」에 수록되어 있다. ◈ 辱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인 듯하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을 이르는 듯하다. 《禮記》 「曲禮 上」에 君言至/則主人出拜君言之辱, '{...}'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辱者/言屈辱尊者之命來也, '{...}'라고 하였다. 즉, 辱은 '{...}'라는 의미다. ◈ 大는 관형어로, '{...}'이다. ◈ 枝는 체언으로, '{...}'다. {...}를 이른다. ◈ 折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俞樾은 《詩》 「國風 豳風」의 「七月」을 인용해서, 折을 伐, '{...}'라고 풀이했다. 이 설은 泄 부분에 인용해 두었다. ◈ 小는 관형어로, '{...}'이다. ◈ 泄은 아마 抴이 잘못된 글자일 것이다. 抴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泄는 본래 '{...}'라는 의미이다. 陸德明은 徐思列反//崔云/泄/洩同, '{...}'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본문과 전혀 합치되지 않는다. 그런데 《荀子》 「非相」에 抴이 '{...}'라는 의미로 사용된 예가 있다. 이렇게 보면 小枝泄은 '{...}'라는 의미가 되므로, 문맥과 잘 합치된다. 泄과 抴은 모양이 비슷하므로, 아마 본래 抴이었다가 泄로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荀子》 「非相」에는 故君子之度己則以繩/接人則用抴, '{...}'라는 말이 있는데, 楊倞은 抴/牽引也, '{...}'라고 하였다. 俞樾은 《荀子》에 《詩》를 더 인용하여 안을 냈다. 俞樾은 洩字之義/於此無取/殆非也//泄當讀爲抴//荀子非相篇接人則用抴/楊注///抴/牽引也///小枝抴/謂見牽引也//詩七月篇///取彼斧斨/以伐遠揚///即此所云大枝折也//又曰///猗彼女桑///即此所云小枝抴也//鄭箋云///女桑/少枝///少枝即小枝矣//猗乃掎之假字//說文手部///掎/偏引也///是與抴同義, '{...}'라고 하였다. 인용된 시는 「國風 豳風」의 「七月」이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본문으로]
- 此以其能苦其生者也/故不終其天年而中道夭/自掊擊於世俗者也//物莫不若是, ◈ 此는 柤, 梨, 橘, 柚, 즉 {...}을 가리킨다. ◈ 以는 '{...}'다. 其能을 받는다. ◈ 其能의 其는 此, 즉 {...}을 가리킨다. 其生, 其天年의 其도 그렇다. ◈ 能은 체언으로, '{...}'이다. '{...}'라고 보아도 좋겠다. ◈ 苦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如字//崔本作枯, '{...}'라고 하였다. 枯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이 역시 내용과 잘 합치된다. ◈ 生은 체언으로, '{...}'이다. ◈ 生者也의 者는 也와 같다. {...}다. 즉, 者也는 也也와 같고, 이는 也와 같다. 者를 '{...}'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以其能苦其生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也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였다. ◈ 故는 '{...}'다. ◈ 終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天年은 '{...}'다. 天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年은 체언이다. 본래는 '{...}'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大宗師」에도 天年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大宗師」에는 終其天年而不中道夭者/是知之盛也, '{...}'라는 말이 있다. ◈ 而는 순접으로, '{...}'처럼 해석된다. ◈ 中道는 '{...}'이다. {...}이라는 뜻이다. ◈ 夭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을 이른다. ◈ 自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것 같다. 掊擊於世俗者를 받는다. ◈ 掊擊은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擊은 '{...}'는 말이다. 掊 역시 擊과 의미가 같을 것이다. 즉, 掊擊은 의미가 같은 글자가 모여서 구성된 단어일 것이다. 掊擊이라는 표현은 다른 편들에도 두 차례 나온다. 《外篇》 「胠篋」에 掊擊聖人/縱舍盜賊/而天下始治矣, '{...}'라는 말이 있고, 《外篇》 「知北遊」에 掊擊而知, '{...}'라는 말이 있다. 「胠篋」과 「知北遊」에서 掊擊은 '{...}'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문의 掊擊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掊/打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普口反//徐方垢反, '{...}'라고 하였다. ◈ 於는 '{...}'다. ◈ 世俗은 '{...}'를 이른다. {...}을 뜻한다. ◈ 世俗者의 者는 '{...}'을 이른다. 掊擊於世俗을 받는다. 즉, 自掊擊於世俗者는 '{...}'라는 말일 것이다. ◈ 物은 체언으로, 세상의 '{...}'이다. ◈ 莫不은 '{...}'라는 말이다. ◈ 若是는 '{...}'라는 말이다. 若은 '{...}'는 말이다. 是는 以其能苦其生, 즉 {...}을 이른다. ◈◈ 郭象은 物皆以自用傷,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果蓏之類/其味堪食/子實既熟/即遭剝落/於是大枝折損/小枝發泄//此豈不爲滋味能美/所以用苦其生//毀辱之言/即斯之謂//且春生秋落/乃盡天年//中塗打擊/名爲橫夭//而有識無情/世俗人物/皆以有用傷夭其生/故此結言莫不如是,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掊擊由其自取,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萬物은 모두 장점, 즉 유용성 {...}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且予求無所可用久矣//幾死/乃今得之, ◈ 且는 '{...}'이다. ◈ 予求無所可用이 앞의 節인 且予求無所可用久矣의 주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節의 용언은 久다. ◈ 予는 1인칭 대명사로, 상수리를 이른다. ◈ 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無所可用을 받는다. ◈ 無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所可用을 받는다. ◈ 所可用은 '{...}'이다. 즉, 無所可用은 '{...}'는 말이 되고, 求無所可用은 '{...}'라는 말이 된다. 所는 '{...}'다. 可用을 받는다. 可는 '{...}'라는 말이다. 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久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幾는 부사어로, '{...}'라고 해석된다. 成玄英은 幾/近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祈/又音機//下同, '{...}'라고 하였다. ◈ 死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幾死는 '{...}'라는 말이다. ◈ 乃今은 한 단어로 '{...}'라는 말이다. 《韓非子》 「外儲說 左上」에 寡人出亡二十年/乃今得反國, '{...}'라는 말이 있고, 《韓非子》 「難 三」에 始吾不知水可以滅人之國/吾乃今知之, '{...}'라는 말이 있다. 《春秋左氏傳》 「昭公」 2년에 吾乃今知周公之德與周之所以王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서 乃今은 모두 '{...}'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 得은 용언으로, {...}처럼 해석하면 좋겠다. ◈ 得之의 之는 予求無所可用, 즉 {...}을 가리킨다. ◈◈ 郭象은 數有䁹睨己者/唯今匠石明之耳,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不材無用/必獲全生/櫟社求之/其來久矣//而庸拙之匠/疑是文木/頻去顧盼/欲見誅翦/懼夭斧斤/鄰乎死地,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幾伐而死,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匠石은 櫟社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乃今得之, '{...}'라고 한 것이다. [본문으로]
- 爲予大用, ◈ 爲는 '{...}'이라고 해석된다. 於와 같다. 予를 받는다. 즉, 爲予는 '{...}'이 된다. 爲와 於는 통용되었다. 《春秋左氏傳》 「莊公」 22년에 並于正卿, '{...}'라는 말이 있는데, 陸德明은 並于/本或作並爲/誤, '{...}'라고 하였다. 于는 於와 같으므로, 이 예는 於가 爲로 되어 있기도 하다는 예시가 된다. 《戰國策》 「西周策」에 令弊邑陰合於秦, '{...}'라는 말이 있는데, 《鮑彪本》에는 於秦이 爲秦이라고 되어 있다. 於와 爲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글자를 바꾸어서 사용한 것이다. 또, 《戰國策》 「秦策」에 朝爲天子, '{...}'라는 말이 있고, 《竹書紀年》 「襄王」에 皆降爲秦師, '{...}'라는 말이 있는데, 爲는 모두 '{...}'라는 의미로, 於와 같다. 《竹書紀年》의 저 말은 酈道元의 《水經注》 「涑水」에는 皆降于秦師라고 인용되어 있다. 《竹書紀年》의 爲가 于, 즉 於라는 뜻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水經注》를 제외한 모든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爲」에 수록되어 있다. ◈ 予는 1인칭 대명사로, 상수리를 가리킨다.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 用은 체언으로, '{...}'이다. ◈◈ 郭象은 積無用乃爲濟生之大用,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今逢匠伯/鑒我不材/方得全生/爲我大用,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상수리는 쓸 모가 {...}라는 말이다. [본문으로]
- 使予也而有用/且得有此大也邪, ◈ 使는 '{...}'처럼 가정하는 말이다. ◈ 予는 1인칭 대명사로, 상수리를 이른다. ◈ 也而는 아마 於와 같이 '{...}'라는 뜻으로 사용된 듯하다. {...}처럼 사용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於가 {...}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 ◈ 且는 아마 '{...}'라는 의미일 것이다. 將과 같다. 이 문장에서는 {...}를 가리킨다. {...}는 말이다. ◈ 得은 '{...}'라는 말이다. 可, 能과 같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此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大를 받는다. ◈ 大는 체언으로, '{...}'다. 따라서 得有此大는 '{...}'라는 말이 된다. 나는 국문에 맞게 '{...}'처럼 의역하였다. ◈ 也邪는 {...}다. 也邪의 也는 邪와 같다고 보아야 하겠다. 즉, 也邪는 邪邪로, 邪와 같다. 邪는 '{...}'라고 읽는다. ◈◈ 郭象은 若有用/久見伐,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向使/我是文木而有材用/必遭翦截/夭折斧斤/豈得此長大而壽年乎,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상수리에게 {...}서는 안 된다. [본문으로]
- 且也若與予也皆物也/奈何哉其相物也, ◈ 且는 '{...}'으로 보면 타당하겠다. ◈ 且也의 也는 {...}로 보아야 할 것이다. ◈ 若은 2인칭 대명사로, 匠石을 이른다. ◈ 與는 '{...}'다. ◈ 予는 1인칭 대명사로, {...}를 이른다. ◈ 若與予也의 也는 '{...}'이라는 말이다. 者와 같다. 앞의 未嘗見材如此其美也의 也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皆는 '{...}'다. ◈ 物은 체언으로, 아마 '{...}'이라는 말 같다. {...}라는 말이다. ◈ 皆物也의 也는 {...}다. ◈ 奈何哉는 아마 '{...}'라는 말 같다. 奈何는 '{...}'라는 말이다. 哉는 내 생각에, {...} 같다. 奈何哉라는 표현은 「外物」에도 등장한다. 《雜篇》 「外物」에 聖人躊躇以興事/以每成功//奈何哉其載焉終矜爾, '{...}'라는 말이 있다. 《墨子》에도 柰何哉라는 말이 나온다. 《墨子》 「尙賢 上」에 然則眾賢之術將奈何哉, '{...}'라는 말이 있고, 《墨子》 「非命 上」에 然則明辨此之說將柰何哉, '{...}'라는 말이 있다. 《墨子》에는 이 외에도 柰何哉라는 표현이 더 등장하지만, 이는 《莊子》에 나오는 {...}하지 않는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柰何哉/假問之辭, '{...}'라고 하였다. ◈ 奈何哉其의 其는 부사어로, 아마 '{...}'라는 뜻일 것이다. 乃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오는 其可以爲舟者旁十數의 其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奈何哉 부분에 인용한 《雜篇》 「外物」 인용문 안의 其 역시 '{...}'라고 해석된다. ◈ 相은 부사어로, '{...}'다. ◈ 物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相物은 '{...}'라는 말이 된다. {...}을 이른다. 《周禮》 「地官司徒」에 物其地/圖而授之,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物地/占其形色/知鹹淡也, '{...}'라고 하였고, 賈公彦도 釋曰///經云物/故以占其形色言之, '{...}'라고 하였다. 《經》은 《周禮》 본문을 이른다. ◈◈ 成玄英은 汝之與我/皆造化之一物也/與物豈能相知,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비록 匠石이 쓰일 데가 {...}이 있었다. 「齊物論」에는 可乎可/不可乎不可//道行之而成/物謂之而然, '{...}'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의 요점은 사람들이 {...}에 있다. [본문으로]
- 而幾死之散人/又惡知散木, ◈ 而는 2인칭 대명사로, 匠石을 이른다. 王先謙은 而/汝, '{...}'라고 하였다. ◈ 幾死는 아마 '{...}'이라는 말일 것이다. 幾는 부사어로, '{...}'다. 死를 받는다. 死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王先謙은 幾/近也, '{...}'라고 하였다. ◈ 之는 {...}로, '{...}'이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絕句/向同//一讀連下散人爲句/崔同, '{...}'라고 하였다. ◈ 散人은 '{...}'이라는 뜻이다. 散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앞에 나온 散木의 散과 같다. 人은 체언으로, '{...}'이다. ◈ 又는 부사어로, '{...}'이다. '{...}'처럼 해석하면 좋겠다. ◈ 惡는 의문사로, '{...}'다. '{...}'라고 읽는다. ◈ 知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을 이른다. ◈ 散木은 '{...}'다. ◈◈ 郭象은 以戲匠石,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匠石以不材爲散/櫟社以材能爲無用/故謂石爲散人也//炫材能於世俗/故鄰於夭折//我以疏散而無用/故得全生//汝是近死之散人/安知我是散木耶//託於夢中/以戲匠石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유용함이나 무용함은 {...}는 말이다. [본문으로]
- 匠石覺而診其夢, ◈ 覺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읽는다. 陸德明은 古孝反, '{...}'라고 하였다. ◈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診은 畛과 같다.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는 뜻이다. 이는 王念孫의 설이다. 成玄英은 診/占也,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徐直信反//司馬向云/診/占夢也, '{...}'라고 했다. 그러나 {...}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王念孫은 向秀司馬彪並云///診/占夢也///案下文皆匠石與弟子論櫟社之事/無占夢之事//診當讀爲畛//爾雅云///畛/告也///郭注引曲禮曰///畛於鬼神///畛與診/古字通//此謂匠石覺而告其夢於弟子/非謂占夢也, '{...}'라고 하였다. 畛을 '{...}'라고 풀이한 말은 《爾雅》 「釋詁」에 있다. 「釋詁」에는 命/令/禧/畛/祈/請/謁/訊/誥/告也, '{...}'라고 되어 있다. 「曲禮」는 《禮記》의 편이다. 그런데 「曲禮」를 인용했다는 郭象의 注가 어느 주석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다른 편을 다 보아도, 郭象의 注 중 畛於鬼神이 들어간 注는 없다. 畛於鬼神은 「曲禮 上」에 나오는 말이다. 鄭玄은 畛於鬼神의 畛에 대해, 畛/致也//祝告致於鬼神辭也, '{...}'라고 하였다. ◈ 其는 匠石을 가리킨다. ◈ 夢은 체언으로, '{...}'이다. ◈◈ 成玄英은 匠石既覺/思量睡中/占候其夢/說向弟子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 弟子曰 [본문으로]
- 趣取無用/則爲社何邪, ◈ 趣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명사구인 取無用을 받는다. 《詩》 「大雅 文王之什」의 「棫樸」에 濟濟辟王/左右趣之, '{...}'라는 말이 있는데, 毛亨은 趣/趨也, '{...}'라고 하였고, 鄭玄은 左右之諸臣/皆促疾於事/謂相助積薪, '{...}'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此趣向之趣/義無所取/故轉爲疾趨, '{...}'라고 하였다. ◈ 取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여도 의미에 잘 합치된다. ◈ 無用은 명사구로, '{...}'을 이른다. 따라서 取無用은 '{...}'이 되고, 趣取無用은 '{...}'는 말이 된다.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用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 則은 '{...}'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社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 何는 '{...}'다. ◈ 邪는 {...}다. '{...}'라고 읽는다. ◈◈ 郭象은 猶嫌其以爲社自榮/不趣取於無用而已,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櫟木意趣/取於無用爲用全其生者/則何爲爲社以自榮乎//門人未解/故起斯問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既急取無用以全身/何必爲社木以自榮,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상수리는 神木이 되어 {...}은 것이다. [본문으로]
- 曰 [본문으로]
- 密/若無言//彼亦直寄焉, ◈ 密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는 뜻이 된다. 《禮記》 「樂記」에 使之陽而不散/陰而不密,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密之言閉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도 密/閉也, '{...}'라고 하였다. 아마 이 뜻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猶言秘之, '{...}'라고 하였고, 또 姚鼐의 말을 인용하여, 密/默字通//田子方篇///仲尼曰//默/女無言///達生篇///公密而不應, '{...}'라고 하였다. 「田子方」과 「達生」은 모두 《外篇》에 속한다. 默은 '{...}'는 뜻이다. 王先謙과 姚鼐의 설을 가지고 유추해 보면 이렇다. 密은 '{...}'는 말로써, 아마 '{...}'는 뜻일 것이고, 默은 '{...}'는 말로써, 아마 '{...}'는 뜻일 것이다. ◈ 若은 2인칭 대명사로, 제자를 이른다. 成玄英은 若/汝也, '{...}'라고 하였다. ◈ 無는 '{...}'는 말이다. ◈ 言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彼는 상수리를 가리킨다. 成玄英은 彼/謂社也, '{...}'라고 하였다. ◈ 亦은 부사어로, '{...}'이다. ◈ 直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寄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社自來寄耳/非此木求之爲社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汝但愼密/莫輕出言//彼社之神/自來寄託/非關此木樂爲社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상수리를 {...}을 수 있었다. [본문으로]
- 以爲不知己者詬厲也, ◈ 以爲는 '{...}'는 뜻이다. 명사구인 不知己者詬厲를 받는다. 주체는 상수리다. ◈ 不는 부정어다. ◈ 知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不知는 {...}라는 말이다. ◈ 己는 체언으로, '{...}'이다. {...}를 가리킨다. ◈ 者는 '{...}'이다. 不知己를 받는다. 不知己者는 {...}이 된다. {...}를 이른다. ◈ 詬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같은 의미의 글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단어일 것이다. 따라서 不知己者詬厲는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 된다. 詬은 '{...}'라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哀公」 8년에 曹人詬之,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詬/詈辱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儒行」에 今眾人之命儒也妄/常以儒相詬病,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과 孔穎達은 詬病/猶恥辱也, '{...}'라고 하였다. 또, 《後漢書》 「鄧寇列傳」에 康聞/詬之, '{...}'라는 말이 있는데, 李賢은 詬/罵也/音許遘反, '{...}'라고 하였다. 厲 역시 같은 의미일 것이다. 厲는 '{...}'처럼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病에는 '{...}'는 의미가 있다. 아마 이런 식으로 파생시켜서 이 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儀禮》 「士冠禮」에 恐不能共事以病吾子,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病/猶辱也//古文病爲秉, '{...}'라고 하였다. 또, 《禮記》 「表記」에 君子/不以其所能者病人/不以人之所不能者愧人,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病愧/謂罪咎之,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詬/辱也, '{...}'라고 하였고, 陸德明은 李云/呼豆反///徐音垢//如字//司馬云/詬/辱也//厲/病也, '{...}'라고 했다. ◈◈ 郭象은 言此木乃以社爲不知己而見辱病者也/豈榮之哉,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思此/社神爲不知我以無用爲用/貴在全生/乃橫來寄託/深見詬病//翻爲羞恥/豈榮之哉,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彼亦特寄於社/以聽不知己者詬病之而不辭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상수리는 영예를 {...}였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不爲社/者且幾有翦乎, ◈ 不은 부정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社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者는 아마 부사어로, '{...}'이라는 말 같다. 則과 같다. ◈ 且는 부사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를 이른다. ◈ 幾는 부사어로,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陸德明은 音機/或音祈, '{...}'라고 하였다. ◈ 有는 아마 부사어로, '{...}'라는 말일 것이다. 或과 같다. ◈ 翦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라고 보아야 하겠다. 陸德明은 子淺反, '{...}'라고 하였다. ◈ 乎는 {...}다. 陸德明은 崔本作前于,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郭慶藩은 乎/崔本作于/于即乎也//論語爲政篇書云///孝乎惟孝///皇侃本及漢石經並作于//呂覽審應篇///然則先王聖于///高注//于/乎也//皆其例, '{...}'라고 하였다. 《皇侃本》은 남북조 시대 梁나라의 皇侃이 주석을 단 《論語》다. 《石經》은 오래 전하려고 일부러 돌에 새겨 놓은 경문을 이른다. 일종의 비문이다. 《漢石經》은 漢나라 때 만든 《石經》이라는 말 같은데,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다. 《呂覽》은 《呂氏春秋》다. 「審應」은 「審應覽」에 속해 있다. 然則先王聖于는 然則先生聖于를 잘못 옮긴 말인 듯하다. '{...}'라는 뜻이다. 이 말은 魏나라 昭王이 {...}이 될 수는 없다. ◈◈ 郭象은 本自以無用爲用/則雖不爲社/亦終不近於翦伐之害,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本以疏散不材/故得全其生道/假令不爲社樹/豈近於翦伐之害乎, '{...}'라고 하였다. 그런데 郭象과 成玄英의 주장은 神木이 되어서 상수리가 해를 입지 않았는 내용과는 상반된다. ◈◈ 王先謙은 如不爲社木/且幾有翦伐之者/謂或析爲薪木,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올바로 보고 있다. ◈◈ 孃破案 : 상수리가 神木이 된 {...}을 받았던 것이다. [본문으로]
- 且也彼其所保與衆異, ◈ 且也의 且는 부사어로, '{...}'는 뜻이다. ◈ 且也의 也는 {...}로 보아야 할 듯하다. ◈ 彼는 상수리를 가리킨다. ◈ 其는 아마 之와 같은 말로 보인다. 彼에 대한 주격 조사로 사용되었다. 其와 之는 통용되었다. 《詩》 「小雅 白華之什」의 「魚麗」에 物其多矣, '{...}'라는 말이 있고, 物其旨矣, '{...}'라는 말이 있으며, 物其有矣, '{...}'라는 말이 있다. 其는 모두 之처럼 주격 조사로 사용되었다. 또, 《春秋公羊傳》 「成公」 15년에 爲人後者爲之子也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되물을 때는 爲人後者爲其子라고 해 두었다. 之와 其가 통용되기 때문에 바꿔 쓴 것이다. 즉, 其와 之는 통용된다. 이 사례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所는 '{...}'이다. ◈ 保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與는 '{...}'다. ◈ 衆은 '{...}'를 이른다. 앞에 나왔던 '{...}'을 이른다고 할 수도 있다. 이 글자는 《莊子集解》에는 衆으로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眾으로 되어 있다. 같은 글자다. 衆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成玄英은 文木이라고 보았다. 반면, 郭象과 王先謙은 {...}로 보았다. 王先謙은 특히 城狐, 社鼠라고 집어서 이야기했다. 城狐는 '{...}', 社鼠는 '{...}'을 비유하는 말이다. ◈ 異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彼以無保爲保/而眾以有保爲保,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疏散之樹/以無用保生/文木之徒/以才能折夭/所以爲其異之者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保於山野/究與俗衆異//非城狐社鼠之比,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아마 상수리가 神木이 되어서 {...}을 가지고 與衆異, '{...}'라고 하지 않았나 하다. [본문으로]
- 而以義譽之/不亦遠乎, ◈ 而는 순접이다. ◈ 以는 '{...}'다. ◈ 義는 체언으로, {...}다. 세상 사람들의 '{...}'을 뜻한다. 宣穎은 義/常理, '{...}'라고 하였다. 즉, '{...}'이다. 匠石의 제자는 {...}을 이른다. ◈ 譽는 용언으로, 본래 '{...}'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라고 해석된다. 《禮記》 「表記」에 君子不以口譽人/則民作忠,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譽를 繩, '{...}'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이에 대해 言繩可以度量於物/凡口譽於人/先須付度/亦量之於心//故以譽爲繩也, '{...}'라고 하였다. 반대의 예도 있다. 《春秋左氏傳》 「莊公」 14년에 蔡哀侯爲莘/故繩息嬀以語楚子,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繩을 譽, '{...}'라고 하였다. 이 사례는 반대의 사례이기는 하나, 繩과 譽가 고대에 통용되었음을 증명하는 예라 하겠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音餘//注同, '{...}'라고 하였다. 盧文弨/今本書譽作喻, '{...}'라고 하였다. 喻는 '{...}'는 말이다. 이 글자는 《經典釋文》과 《莊子集解》에 譽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喻라고 되어 있다. 郭慶藩은 喻字依世德堂本及盧校改, '{...}'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 나중 판본에 譽가 喻로 바뀌어 있는 것은, 아마 譽에서 '{...}'는 의미를 따 와서 글자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 譽之의 之는 {...}를 가리킨다. ◈ 不은 부정어다. 遠을 받는다. ◈ 亦은 부사어로, '{...}'다. ◈ 遠은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의미가 '{...}'는 말로 사용되었다. 《漢書》 「公孫弘卜式兒寬傳」에 故法不遠義/則民服而不離//和不遠禮/則民親而不暴,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遠/違也//音于萬反, '{...}'라고 하였다. 遠는 또한 '{...}'는 말이다. ◈ 乎는 {...}다. ◈◈ 郭象은 利人長物/禁民爲非/社之義也//夫無用者/泊然不爲而群才自用/用者各得其敘而不與焉/此無用之所以全生也//汝以社譽之/無緣近也乎,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散木不材/稟之造物/賴其無用/所以全生//而社神寄託/以成詬厲/更以社義讚譽/失之彌遠,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彼非託社神以自榮/而以常理稱之/於情事遠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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