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장자 내편 - 3 - 양생주 - 2 - 포정이 소를 잡다

2021. 9. 10. 11:06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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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郭象, 成玄英, 王先謙 등의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6월 10일 4시 49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81

 

장자 내편 - 3 - 양생주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77

 

장자 내편 - 3 - 양생주 - 2 - 포정이 소를 잡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7?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2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3-2

 

庖丁爲文惠君解牛,手之所觸,肩之所倚,足之所履,膝之所踦,砉然嚮然,奏刀騞然,莫不中音。合於《桑林》之舞,乃中《經首》之會。

 

文惠君曰:「譆!善哉!技蓋至此乎?」

 

庖丁釋刀對曰:「臣之所好者道也,進乎技矣。始臣之解牛之時,所見無非牛者。三年之後,未嘗見全牛也。方今之時,臣以神遇,而不以目視,官知止而神欲行。依乎天理,批大郤,道大窾,因其固然。技經肯綮之未嘗,而況大軱乎!良庖歲更刀,割也;族庖月更刀,折也。今臣之刀十九年矣,所解數千牛矣,而刀刃若新發於硎。彼節者有閒,而刀刃者無厚,以無厚入有間,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

 

雖然,每至於族,吾見其難爲,怵然爲戒,視爲止,行爲遲。動刀甚微,謋然已解,如土委地。提刀而立,爲之四顧,爲之躊躇滿志,善刀而藏之。」

 

文惠君曰:「善哉!吾聞庖丁之言,得養生焉。」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았다.[각주:1] [포정의] 손이 닿는 곳, 어깨가 기대는 곳, 발로 밟는 곳, 무릎으로 의지하는 곳마다 [살과 뼈를 바르는 소리가] 쩍쩍 메아리치고, 칼 쓰는 소리가 쓱쓱 났는데[각주:2], [이 소리들이 모두] 음률에 맞지 않는 경우가 없었으니, 「상림」의 춤에도 들어 맞았고, 「경수」의 박자에도 들어 맞았다.[각주:3] 문혜군이 말했다.[각주:4]

 

"아아, 대단하구나. [포정의] 기예가 어찌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말인가.[각주:5]"

 

[이에] 포정이 칼질을 멈추고 대답했다.[각주:6]

 

"신이 좋아하는 것은 도인데, [도는] 기예 보다 심오한 것이다.[각주:7] 신이 소를 처음 잡기 시작했을 때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전히 소가 아닌 것이 없었다.[각주:8] [그러나] 3년이 지나자 소의 온전한 모습은 [신에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각주:9]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는 [소를] 정신으로만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각주:10] [소를 잡을 때] 감각이나 지각은 [더 이상] 쓰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이행하는 것이다.[각주:11] [소에 나 있는] 본래의 결을 따라[각주:12], [고기들 사이의] 큰 틈에 [칼을] 밀어 넣고[각주:13], [소 안에 있는] 커다란 공간으로 [칼을] 이끌어 가는데[각주:14], 소가 원래 그러한 바를 따를 뿐이다.[각주:15] [이렇게 나는] 고기와 힘줄이 얽힌 곳이나, 뼈에 고기가 감겨 있는 부위도 범하지 않는데[각주:16], 그런데 하물며 저 멀리 따로 떨어져 있는 뼈야 어떻겠느냐.[각주:17] 솜씨가 좋은 백정은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칼날이] 상하기 때문이요[각주:18], 범상한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니, [칼이] 부러지기 때문이다.[각주:19] [그러나] 지금 신의 칼은 19년이나 되었고, [그 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나 되지만[각주:20], 칼날은 숫돌로 새로 간 것 같다.[각주:21] [어찌 새로 간 것과 같을 수 있는가.] 저 [소의] 관절[들 사이]에는 벌어진 곳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다.[각주:22] 두께가 없는 것을 가지고 여유롭게 틈을 파고 드니, 장차 칼날이 [관절 사이를] 돌아 다니더라도 남는 공간이 반드시 있게 된다.[각주:23] 그래서 19년이 지났는데도 칼날이 숫돌에서 새로 간 것과 같[은 것이]다.[각주:24]"

 

<포정의 말 이어짐>

 

"하지만, [경락이나 살, 뼈가] 뭉친 데에 이르면, 나도 늘 소를 잡는 일이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각주:25] 조심스레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하여, 시선은 멈추고[각주:26], 손놀림은 신중하게 하면서[각주:27], 칼을 조심조심 움직여 [뭉친 부분을] 쓱쓱하며 해체하면[각주:28] [고기가 잘 썰려서] 흙을 땅에 내버려 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된다.[각주:29] [그러면]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 보고, [잠시] 시간을 가지다가, [곧] 만족하고는[각주:30], 칼을 닦아서 보관해 둔다.[각주:31]"

 

[그러자] 문혜군이 말했다.[각주:32]

 

"대단하구나. 내가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할 방법을 깨달았도다.[각주:33]"

 

 

  1. 庖丁爲文惠君解牛, ◈ 庖丁은 아마 '{...}'이라는 말 같다. 庖는 본래 '{...}'을 뜻하는데, '{...}'를 뜻하기도 한다. 《史記》 「老子韓非列傳」에 伊尹爲庖/百里奚爲虜, '{...}'라는 말이 있는데, 張守節은 '{...}'라고 하였다. 이 말이 곧 庖가 '{...}'라는 뜻이다. 「殷本紀」는 《史記》 「殷本紀」를 이른다. 그러나 「養生主」 본문의 내용을 따져 보면, 이 글의 庖는 일반적인 '{...}' 보다는 '{...}'이라는 말에 가깝다. 그러면 庖를 '{...}'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庖는 胞와 통용된다. 《漢書》 「百官公卿表 上」에 又胞人/都水/均官三長丞,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胞人/主掌宰割者也//胞與庖同, '{...}'라고 하였고, 또 《漢書》 「東方朔傳」에 館陶公主胞人臣偃昧死再拜謁,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또 胞與庖同, '{...}'라고 하였다. 그러면 胞는 백정일까. 《禮記》 「祭統」에 夫祭有畀輝胞翟閽者/惠下之道也, '{...}'라는 말이 있고, 또 胞者/肉吏之賤者也, '{...}'라는 말이 있다. 盧文弨 또한 禮記祭統煇胞/亦與庖同, '{...}'라고 인용해 두었다. 지금 「祭統」에는 輝胞라고 되어 있다. 이로써 보면 胞는 '{...}'임이 분명하다. 丁은 사람 이름이다. '{...}'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 더 나을 것이다. 즉, 丁은 {...}으로 보는 편이 좋겠다. 나는 '{...}'으로 {...}하였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庖丁/謂掌廚丁役之人/今之供膳是也//亦言/丁/名也, '{...}'라고 하였다. 供膳은 '{...}'는 말로, '{...}'를 이른다. 陸德明은 崔本作胞/同//白交反//庖人/丁其名也//管子有屠牛坦一朝解九牛/刀可剃毛, '{...}'라고 하였다. 저 말은 《管子》 「制分」에 나오는데, 지금 《管子》에는 屠牛坦朝解九牛/而刀可以莫鐵, '{...}'라고 되어 있다. ◈ 爲는 '{...}'는 뜻이다. 陸德明은 于僞反, '{...}'라고 하였다. ◈ 文惠君은 아마 魏나라의 {...}의 행적은 《史記》 「魏世家」에 전한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崔司馬云/梁惠王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도 文惠君/即梁惠王也, '{...}'라고 하였다. ◈ 解는 용언으로, 본래 '{...}'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라는 말로 보아야 한다. 支解와 같다. 《漢書》 「傅常鄭甘陳段傳」에 怒殺康居王女及貴人人民數百/或支解投都賴水中,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支解/謂解截其四支也, '{...}'라고 하였다. 《漢書》 「五行志 下之下」에는 董仲舒劉向以爲後邾支解鄫子,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十八年/邾人戕鄫子于鄫/支解而節斷之/謂解其四支/斷其骨節, '{...}'라고 하였다. 또 《韓非子》 「問田」에는 然而吳起支解而商君車裂者/不逢世遇主之患也, '{...}'라는 말이 있고, 《淮南子》 「主術訓」에는 吳起張儀/智不若孔墨/而爭萬乘之君/此其所以車裂支解也, '{...}'라는 말이 있으며, 《淮南子》 「繆稱訓」에는 故商鞅立法而支解/吳起刻削而車裂, '{...}'라는 말이 있다. 이로써 생각해 보면, 支解는 {...}되었던 듯하다. 즉, 解는 截처럼 '{...}'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宰割之, '{...}'이라고 하였다. ◈ 牛는 체언으로, '{...}'다. ◈◈ 孃破案 : 고대 중국인들은 庖丁 같은 {...}지도 모르겠다. 《呂氏春秋》 「季秋紀 精通」에는 宋之庖丁好解牛/所見無非死牛者//三年而不見生牛/用刀十九年/刃若新磨硎/順其理/誠乎牛也, '{...}'라는 말이 있다. 아마 「養生主」 이 부분에 나오는 庖丁 이야기일 것이다. 또, 東漢 초기 사람인 王充의 《論衡》 「訂鬼」에는 傳曰/伯樂學相馬/顧玩所見/無非馬者//宋之庖丁學解牛/三年不見生牛/所見皆死牛也///二者用精至矣/思念存想/自見異物也//人病見鬼/猶伯樂之見馬/庖丁之見牛也//伯樂庖丁所見非馬與牛/則亦知夫病者所見非鬼也, '{...}'라고 되어 있다. 《傳》은 《呂氏春秋》 「季秋紀 精通」을 이른다. 이 역시 「養生主」의 庖丁 이야기다. 한편, 《管子》에는 屠牛 坦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管子》 「制分」에는 屠牛坦朝解九牛/而刀可以莫鐵/則刃游閒也, '{...}'라는 말이 있다. 屠牛는 '{...}'을 이른다. 그런데 屠牛 坦은 庖丁과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 《淮南子》 「齊俗訓」에는 屠牛吐一朝解九牛/而刀可以剃毛//庖丁用刀十九年/而刀如新剖硎//何則//遊乎眾虛之間, '{...}'라고 되어 있다. 吐는 坦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만약 屠牛 坦이 庖丁과 같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달리 나누어서 기술해 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屠牛 坦에 대해서는 몇 곳에 기록이 또 남아 있다. 西漢 초기 사람인 賈誼의 《新書》 「制不定」에는 屠牛坦一朝解十二牛/而芒刃不頓者/所排擊所剝割皆象理也, '{...}'라는 말이 있고, 또 《漢書》 「賈誼傳」에도 이 말이 屠牛坦一朝解十二牛/而芒刃不頓者/所排擊剝割/皆眾理解也, '{...}'라고 인용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西漢 초기 사람인 韓嬰의 《韓詩外傳》에도 屠牛 坦에 대한 말이 있다. 《韓詩外傳》에는 屠牛 吐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韓詩外傳》에는 齊王厚送女/欲妻屠牛吐/屠牛吐辭以疾//其友曰/子終死腥臭之肆而已乎//何爲辭之///吐應之曰/其女醜///其友曰/子何以知之///吐曰/以吾屠知之///其友曰/何謂也///吐曰/吾肉善/如量而去苦少耳//吾肉不善/雖以吾附益之/尙猶賈不售//今厚送子/子醜故耳///其友後見之/果醜, '{...}'라고 되어 있다. 딸이 예쁘면, 대등하게 시집을 보내도 아쉬울 것이다. 그런데 齊王은 자기 딸을 천한 백정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면서, 거기다가 대우를 후하게 해 주려 하고 있다. 이는 딸이 못생겼기 때문이다. 屠牛 坦은 분명히 지혜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手之所觸/肩之所倚/足之所履/膝之所踦/砉然嚮然/奏刀騞然, ◈ 手는 체언으로, '{...}'이다. ◈ 手之의 之는 {...}다. '{...}'로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肩之, 足之, 膝之의 之도 모두 그렇다. ◈ 所는 '{...}'이다. ◈ 觸은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康熙字典》에는 《玉篇》에서 觸을 據, '{...}'라고 풀이했다고 인용해 두었는데, 이 말이 본문에 맞다. 觸과 대구를 이루고 있는 倚, 履, 踦 역시 다른 것에 '{...}'을 이르는 표현이다. 觸은 손으로 하는 행위이니, '{...}'라고 보면 타당하겠다. 즉, 手之所觸은 '{...}'이 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搏觸, '{...}'라고 하였다. ◈ 肩은 체언으로, '{...}'다. ◈ 倚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肩之所倚는 '{...}'이 된다. 陸德明은 徐於綺反/向偃彼反/徐又於佇反/李音妖, '{...}'라고 하였다. ◈ 足은 체언으로, '{...}'이다. ◈ 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足之所履는 '{...}'이 된다. ◈ 膝은 체언으로, '{...}'이다. ◈ 踦는 용언으로, 본래 '{...}'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처럼 보아야 할 듯하다. 《文選》에 실려 있는 左思의 「魏都賦」에 山阜猥積而踦𨄅, '{...}'라는 말이 있는데, 李善은 廣雅曰/踦𨄅/傾側也, '{...}'라고 하였다. 《廣雅》는 魏나라의 張揖이 지은 책이다. 《韓非子》 「亡徵」에는 亡王之機/必其治亂/其强弱相踦者也, '{...}'라는 말이 있는데, 이 踦는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踦를 몸을 '{...}'라고 생각하면, {...}에 잘 맞다. 즉, 膝之所踦는 '{...}'이 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下角刺,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居彼反/向魚彼反//李云/刺也, '{...}'라고 하였다. 刺는 아마 '{...}'는 뜻인 것 같다. 蘇輿는 說文/踦/一足也///膝舉則足單/故曰踦, '{...}'라고 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한 발로 {...}하고 있게 될 것이다. ◈ 砉然은 '{...}'처럼 {...}를 뜻한다. 문맥상 그렇게 해석된다. 庖丁이 {...}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 글자는 「養生主」 외의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陸德明은 向呼鶪反/徐許鶪反/崔音畫/又古鶪反/李又呼歷反//司馬云/皮骨相離聲, '{...}'라고 했다. 盧文弨는 舊鶪皆從貝/非//今正從狊//下並同, '{...}'라고 하였다. ◈ 嚮然은 소리가 '{...}'을 이른다. 響의 가차자일 것이다. 「應帝王」의 陽子居 이야기 중 嚮疾強梁, '{...}'라는 말이 있는데, 그 嚮 역시 響의 가차자로, '{...}'라는 뜻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許丈反/郭許亮反//本或無然字, '{...}'라고 하였다. ◈ 奏刀는 아마 '{...}'라는 말 같다. 奏는 '{...}'처럼 {...}이다. 奏는 용언이고, 刀는 체언으로, '{...}'일 것이다. 陸德明은 如字//崔云/聞也, '{...}'라고 했다. ◈ 騞然은 '{...}'처럼 {...}를 이른다. 奏刀를 바로 받는 말이다. 劉武는 《莊子集解內篇補正》에서 騞然/係狀其刃過之速, '{...}'라고 하였다. 《列子》 「湯問」에 其觸物也/騞然而過, '{...}'라는 말이 있다. 其는 宵練이라는 명검을 뜻한다. 唐나라의 殷敬順은 騞/呼麥反/破聲, '{...}'라고 하였다. 楊伯峻은 상기한 劉武의 말을 인용해 놓고는, 蓋惟其刃過之速/所以爲寶劍也, '{...}'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騞은 {...}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 같다. 이 글에서는 {...}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呼獲反/徐許嬖反/向他亦反//又音麥//崔云/音近獲/聲大於砉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庖丁善能宰牛/見其閒理/故以其手搏觸/以肩倚著/用腳蹋履/用膝刺築/遂使皮肉離析/砉然嚮應/進奏鸞刀/騞然大解//此蓋寄庖丁以明養生之術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 莫不中音/合於桑林之舞/乃中經首之會, ◈ 莫不은 '{...}'는 뜻이다. ◈ 中音의 中은 용언으로, 的中이라는 말처럼 '{...}'라는 뜻이다. 中經首之會의 中도 그렇다. 《春秋左氏傳》 「定公」 원년에 子家子亟言於我/未嘗不中吾志也, '{...}'라는 말이 있다. 陸德明은 丁仲反//下皆同, '{...}'라고 하였다. ◈ 音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桑林之舞와 經首之會를 가리킨다. ◈ 合은 용언으로, 符合이라는 말처럼 '{...}'라는 뜻이다. 中과 의미가 같다. 《孟子》 「離婁 下」, 《荀子》 「儒效」, 《淮南子》 「兵略訓」, 「人間訓」, 《漢書》 「杜周傳」 등에 若合符節, '{...}'라는 말이 있는데, 이 合은 '{...}'는 뜻이다. ◈ 於는 '{...}'다. 桑林之舞를 받는다. ◈ 桑林은 {...}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10년에 宋公享晉侯于楚丘/請以桑林, '{...}'라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桑林/殷天子之樂名, '{...}'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宋是殷後/得用殷樂/知桑林是殷天子之樂名也//經典言/樂殷爲大護///而此復云桑林者/蓋殷家本有二樂/如周之大武象舞也//名爲大護/則傳記有說//湯以寬政治民/除其邪虐/言能覆護下民/使得其所/故名其樂爲大護//其曰桑林/先儒無說//唯書傳言///湯伐桀之後/大旱七年/史卜曰/當以人爲禱//湯乃翦髮斷爪/自以爲牲/而禱於桑林之社/而雨大至/方數千裏///或可禱桑林以得雨/遂以桑林名其樂也//皇甫謐云/殷樂一名桑林///以桑林爲大護別名/無文可馮/未能察也, '{...}'라고 하였다. 또, 《呂氏春秋》 「愼大覽 愼大」에는 命封夏后之後於杞/立成湯之後於宋以奉桑林,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桑山之林/湯所禱也/故使奉之, '{...}'라고 하였다. 또, 《呂氏春秋》 「季冬紀 誠廉」에는 世爲長侯/守殷常祀/相奉桑林,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使奉桑林之樂, '{...}'라고 하였다. 이 말들을 보면, 「桑林」이 殷나라 {...}이 있을까. 《呂氏春秋》 「季秋紀 順民」에는 昔者湯克夏而正天下/天大旱/五年不收/湯乃以身禱於桑林/曰/余一人有罪/無及萬夫//萬夫有罪/在余一人//無以一人之不敏/使上帝鬼神傷民之命///於是翦其髮/𨟖其手/以身爲犧牲/用祈福於上帝/民乃甚說/雨乃大至,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桑林/桑山之林/能興雲作雨也, '{...}'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淮南子》 「脩務訓」에도 있다. 「脩務訓」에는 湯旱/以身禱于桑山之林, '{...}'라고 되어 있는데, 高誘는 桑山之林能興雲致雨/故禱之, '{...}'라고 하였다. 즉, 殷나라에 가뭄이 들었을 때, 湯이 {...}이었을 것이다. 《墨子》 「明鬼 下」에는 宋之有桑林, '{...}'라는 말이 있는데, 孫詒讓은 상기한 문헌들 및 「養生主」 본문을 들면서, 杜預司馬彪/並以桑林爲湯樂//左傳孔疏引皇甫謐說/又以桑林爲大濩別名//以此書及淮南書證之/桑林蓋大林之名/湯禱旱於彼/故宋亦立其祀//左昭二十一年傳云/宋城舊鄘及桑林之門///當即望祀桑林之處//因湯以盛樂禱旱於桑林/後世沿襲/遂有桑林之樂矣, '{...}'라고 하였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이고, 「昭」는 「昭公」을 이른다. 《淮南書》는 《淮南子》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司馬云/湯樂名//崔云/宋舞樂名//案即左傳舞師題以旌夏是也, '{...}'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앞에다가 인용해 둔 《春秋左氏傳》 「襄公」 10년 기사를 이른다. 成玄英은 桑林/殷湯樂名也, '{...}'라고 하였다. ◈ 桑林之舞의 之는 {...}다. 經首之會의 之도 그렇다. ◈ 舞는 체언으로, '{...}'이다. ◈ 乃는 而와 같다. '{...}'라는 뜻이다. 《禮記》 「文王世子」에 文王九十七乃終/武王九十三而終, '{...}'라는 말이 있는데, 두 句에서 乃와 而는 같은 위치에 있고, 의미도 동일하다. 乃와 而가 서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儀禮》 「燕禮」에는 大夫不拜/乃飲,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乃/猶而也, '{...}'라고 하였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乃」에 수록되어 있다. ◈ 經首는 樂章, 즉 {...}인 것 같다. 陸德明은 向司馬云/咸池樂章也//崔云/樂章名也//或云/奏樂名, '{...}'라고 했다. 王先謙은 向秀와 司馬彪의 말을 인용하며, 即堯樂, '{...}'라고 하였다. 「咸池」는 堯의 음악이다. 《周禮》 「春官宗伯」에 以樂舞敎國子/舞/云門/大卷/大咸/大韶/大夏/大濩/大武,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大咸/咸池/堯樂也//堯能禪均刑法以儀民/言其德無所不施, '{...}'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악곡이 있으면, 그 악곡에 가사가 {...}였을 것이다. 成玄英은 經首/咸池樂章名/則堯樂也, '{...}'라고 하였다. 그러나 司馬彪와 向秀가 무엇에 근거하여 {...}이라고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 會는 체언으로,아마 '{...}'인 것 같다. 宣穎은 節, '{...}'라고 하였다. ◈◈ 郭象은 言其因便施巧/無不閑解/盡理之甚/既適牛理/又合音節,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庖丁神彩從容/妙盡牛理//既而宰割聲嚮/雅合宮商/所以音中桑林/韻符經首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4. 文惠君曰 [본문으로]
  5. 譆/善哉//技蓋至此乎, ◈ 譆는 독립어로, '{...}'처럼 감탄하여 내는 소리다. 陸德明은 徐音熙//李云/歎聲也, '{...}'라고 했다. 成玄英도 歎聲, '{...}'라고 하였다. ◈ 善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哉는 {...}다. ◈ 技는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具綺反//下同, '{...}'라고 하였다. ◈ 蓋은 '{...}'다. '{...}'이라고 읽는다. ◈ 至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此는 {...}을 가리킨다. ◈ 乎는 감탄사로 보아도 좋고, 의문사도 보아도 된다. ◈◈ 成玄英은 惠君既見庖丁因便施巧/奏刀音節/遠合樂章/故美其技術一至於此者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6. 庖丁釋刀對曰, ◈ 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書》 「虞書 大禹謨」에 釋茲在茲,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과 孔穎達은 釋을 廢, '{...}'라고 풀이했다. ◈ 刀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釋을 '{...}'라고 해석한다면, 刀는 '{...}'이 되어야 한다. ◈ 對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본문으로]
  7. 臣之所好者道也/進乎技矣, ◈ 臣은 {...}는 표현이다. 庖丁을 이른다. ◈ 之는 {...}로 보아도 좋고, {...}도 보아도 좋겠다. ◈ 所는 '{...}'이다. 好를 받는다. ◈ 好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즉, 所好는 '{...}'이 된다. 陸德明은 呼報反//注同, '{...}'라고 하였다. ◈ 者는 '{...}'이다. 所好를 받는다. ◈ 道는 체언으로, {...}다. ◈ 進은 용언으로, '{...}'는 의미로 보인다. 《漢書》 「游俠傳」에 宣帝微時與有故/相隨博弈/數負進, '{...}'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顏師古는 進者/會禮之財也/謂博所賭也/解在高紀//一說進/勝也/帝博而勝/故遂有所負, '{...}'라고 하였다. 「高紀」는 아마 「高帝紀」를 이르는 듯하다. 이에 의거하여 進을 勝으로 본다면, '{...}'는 뜻이 된다. 成玄英은 進獻, '{...}'라고 보기도 하였고, 過, '{...}'라고 보았다. 過라고 하면 勝과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처럼 의역하였다. ◈ 乎는 비교하는 말로, 於와 같다. '{...}'라는 말이다. ◈ 技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郭象은 直寄道理於技耳/所好者非技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捨釋鸞刀/對荅養生之道/故倚技術/進獻於君//又解//進/過也//所好者養生之道/過於解牛之技耳,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8. 始臣之解牛之時/所見無非牛者, ◈ 始는 부사어로, '{...}'다. ◈ 臣은 {...}는 표현이다. 庖丁을 이른다. ◈ 臣之의 之는 {...}다. ◈ 解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牛는 체언으로, '{...}'다. ◈ 解牛之時의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 時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所는 '{...}'이다. 見을 받는다. ◈ 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따라서 所見은 '{...}'이 된다. ◈ 無非는 '{...}'는 뜻이다. ◈ 無非牛의 牛에 대해, 郭慶藩은 全字依趙諫議本補, '{...}'라고 하고, 非와 牛 사이에 全을 넣어 두었다. 즉, 無非全牛가 된다. 庖丁의 말 뒷부분으로 갈수록 {...}처럼 번역하였다. ◈ 所見無非牛者의 者는 也처럼 문장을 끝내는 말이다. 《論語》 「陽貨」에 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者는 다른 句의 也와 대구를 이루고 있고, 또 그 쓰임 역시 也와 같이 조사다. 王引之는 《皇侃本》에는 者가 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 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國語》 「鄭語」에는 公曰/周其弊乎///對曰/殆於必弊者,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의 者 역시 也처럼 조사로 사용되었다. 金在烈은 《四部備要本》에 者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四部備要本》을 펴낸 사람이 者가 也의 역할을 하는 줄 모르고 문장을 끝내려고 也를 더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예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者諸」에 수록되어 있다. ◈◈ 郭象은 未能見其理閒,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始學屠宰/未見閒理/所睹惟牛//亦猶初學養生/未照眞境/是以觸途皆礙,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처음 소를 {...}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9. 三年之後/未嘗見全牛也, ◈ 三年之後의 之는 아마 {...}일 것이다. ◈ 後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未嘗은 '{...}'는 뜻이다. ◈ 見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未嘗見은 '{...}'는 말이 된다. 문맥상 '{...}'라고 해석해야 타당하겠다. ◈ 全은 관형어로, '{...}'이다. {...}를 뜻한다. ◈ 牛는 체언으로, '{...}'다. ◈◈ 郭象은 但見其理閒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操刀既久/頓見理閒/所以纔睹有牛/已知空郤//亦猶服道日久/智照漸明/所見塵境/無非虛幻,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全牛, 즉 눈에 보이는 {...}는 말이다. [본문으로]
  10. 方今之時/臣以神遇而不以目視, ◈ 方今은 한 단어로, '{...}'이다. ◈ 方今之時의 之는 {...}인 듯하다. ◈ 時는 체언으로, '{...}'다. ◈ 臣은 {...}이다. 庖丁을 이른다. ◈ 以神의 以는 '{...}'다. 神을 받는다. 不以目視의 以도 그렇다. 이 以는 目을 받는다. ◈ 神은 체언으로, '{...}'이다. ◈ 遇는 용언으로,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待遇라는 말처럼 '{...}'라고 보아야 한다. {...}라는 말이다. 諸葛亮의 「出師表」에 蓋追先帝之殊遇/欲報之於陛下也,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遇는 '{...}'다. 待와 통한다. 《史記》 「楚世家」에서는 復搏其士卒以與王遇, '{...}'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遇가 對,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對와도 통한다. 본문에 대해, 郭象, 成玄英, 向秀는 모두 會, '{...}'라고 하고, 理會 또는 會理,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소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속뜻은 會일지라도, 나는 待나 對로 번역하였다. ◈ 而는 역접이다. ◈ 不은 부정어다. 視를 한정한다. ◈ 目은 체언으로, '눈'이다. ◈ 視는 용언으로, '보다'라는 말이다. ◈◈ 郭象은 闇與理會,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經乎一十九年/合陰陽之妙數/率精神以會理/豈假目以看之//亦猶學道之人/妙契至極/推心靈以虛照/豈用眼以取塵也,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인용하기를, 向云/暗與理會/謂之神遇, '{...}'라고 하였다. 이는 郭象의 설과 같다. 아마 郭象이 向秀를 베꼈을 것이다. [본문으로]
  11. 官知止而神欲行, ◈ 官知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官은 '{...}'이고, 知는 '{...}'이다. 《孟子》 「告子 上」에 耳目之官不思/而蔽於物/物交物/則引之而已矣, '{...}'라는 말이 있다. 趙技는 官/精神所在也/謂人有五官六府, '{...}'라고 하였고, 朱熹는 官之爲言司也//耳司聽/目司視/各有所職而不能思/是以蔽於外物, '{...}'라고 하였다. 이처럼 官은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知는 본래 '{...}'라는 말이다. 체언으로는 '{...}'이 될 것이니, 곧 '{...}'을 의미하게 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官者/主司之謂也/謂目主於色耳司於聲之類是也, '官이라는 것은 主司하다는 뜻이니, 눈으로 色을 주관하고, 耳를 가지고 소리를 주관하는 부류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결국 '감각'이라는 뜻이다. 陸德明은 如字//崔云/官知/謂有所掌在也//向音智/專所司察而後動/謂之官智, '{...}'라고 했다. 이 역시 '{...}'는 뜻으로 보인다. 王先謙은 官/承上/專以目言, '{...}'라고 하였다. ◈ 止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 神欲은 神之欲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명사구로, '{...}'을 뜻한다. 神은 '{...}'이다. 欲은 '{...}'을 뜻한다. 陸德明은 如字//向云/從手放意/無心而得/謂之神欲, '{...}'라고 했다. ◈ 行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郭象은 司察之官廢/縱心而理順,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既而神遇/不用目視/故眼等主司/悉皆停廢/從心所欲/順理而行//善養生者/其義亦然,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目方覩其迹/神已析其形,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감각과 {...}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12. 依乎天理, ◈ 依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아도 좋겠다. ◈ 乎는 於와 같다. '{...}'다. 依를 '{...}'라고 본다면, 乎는 '{...}'이라고 해석된다. ◈ 天은 天然이라는 말과 같다. 관형어로, '{...}'이라는 뜻이다. 理를 받는다. ◈ 理는 체언으로, '{...}'가 아니라 '{...}'을 뜻한다. 즉, 天理는 '{...}'이 된다. 《荀子》 「正名」에 形體色理/以目異, '{...}'는 말이 있는데, 理에 대해 楊倞은 文理, '{...}'라고 하였고, 王引之는 色理/膚理也//榮辱性惡二篇竝云/骨體膚理//彼言骨體膚理/此言形體色理/形體/猶骨體也//色理/猶膚理也, '{...}'라고 하였다. 膚理는 '{...}'이다. 또, 《史記》 「扁鵲倉公列傳」에 君有疾在腠理/不治將深,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張守節은 腠理에 대해 上音湊/謂皮膚, '{...}'라고 하였다. 腠가 {...}라면, 理는 '{...}'이 되어야 한다. 理가 '{...}'라면, '{...}'가 되는데, 그러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 郭象은 不橫截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依天然之腠理/終不橫截以傷牛//亦猶養生之妙道/依自然之涯分/必不貪生以夭折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무언가를 자를 때, {...} 타고난 결, 즉 天理일 것이다. [본문으로]
  13. 批大郤, ◈ 批는 용언으로, 본래 '{...}'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고 보아야 하겠다. 陸德明은 備結反/一音鋪迷反//字林云/擊也/父迷父節二反, '{...}'라고 했다. 문맥을 볼 때, 批는 칼을 大卻에 넣는다는 뜻이 되어야 하므로, '{...}' 그대로 보는 대신 '{...}'라고 하면 타당할 듯하다.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뜻이다. 郤을 받는다. ◈ 郤은 체언으로, '{...}'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莊子集解》에는 郤이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卻이라고 되어 있다. 陸德明은 郤이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郤을 두고 徐去逆反/郭音卻//崔李云/閒也, '{...}'라고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盧文弨는 從谷從卩//舊從谷從阝/非//今改正, '{...}'라고 하였다. 郭象과 成玄英은 각각 際와 閒卻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모두 '{...}'를 뜻한다. 그럼 卻일까, 郤일까. 이 글자는 {...}임이 분명하다. 《說文解字》 「卩部」에는 卻에 대해 卻/節欲也//从卪谷聲, '{...}'라고 하였다. 즉, 卻은 '{...}'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批大卻은 '{...}'는 뜻이 되어야 한다. 보다시피 {...}되었던 것 같다. 「人間世」에는 吾行卻曲/無傷吾足,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卻은 {...}이므로, 나는 다시 郤으로 바로잡았다. ◈◈ 郭象은 有際之處/因而批之令離,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閒郤交際之處/用刀而批戾之/令其筋骨各相離異//亦猶學道之人/生死窮通之際/用心觀照/令其解脫,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소를 잡으려면, 고기와 {...}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4. 道大窾, ◈ 道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칼을 '{...}'라고 보아야 하겠다. 導와 같다. 《莊子集解》에는 道라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導라고 되어 있다. 陸德明은 道로 인용하고는, 音導/注同,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今本道作導, '{...}'라고 하였는데, 이로써 보건대 옛 판본에는 道라고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道와 導는 통용된다. ◈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뜻이다. 郤을 받는다. ◈ 窾은 체언으로, '{...}'이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窾을 空,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窾에 대해 徐苦管反/又苦禾反//崔郭司馬云/空也//向音空,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說文無窾字/當作款//史記太史公自序/實不中其身者謂之窾/漢書司馬遷傳/窾正作款//服虔注/款/空也//爾雅釋器/鼎款足者謂之鬲//注/款/空也//淮南說山/見款木浮而知爲舟//高注/款/空也//管子國蓄/大國內款//楊注/內款/內空也//是其證, '{...}'라고 하였다. 《管子》의 楊注는 아마 楊忱의 주석으로 보인다. 楊忱은 趙宋 사람이다. 또, 인용구 중 《史記》 「太史公自序」의 實不中其身者謂之窾​은, 실제로는 實不中其聲者謂之窾으로 되어 있다. 身이 아니라 聲이 맞다. ◈ 庖丁이 {...}을 묘사하는 말들이다. ◈◈ 郭象은 節解窾空/就導令殊,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骨節空處/就導令殊//亦猶學人以有資空/將空導有,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소의 체내에 {...}이기 때문이다. ◈◈ 孃破又案 : 批大郤과 道大窾은 {...} 이어지는 因其固然, '{...}'라는 말로 또한 분명해진다. [본문으로]
  15. 因其固然, ◈ 因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其는 牛, '{...}'를 가리킨다. ◈ 固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然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따라서 其固然은 '{...}'라는 말이 된다. ◈◈ 郭象​은 刀不妄加,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因其空郤之處/然後運刀//亦因其眼見耳聞/必不妄加分別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批大郤하거나 道大窾한 것이 {...}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본문으로]
  16. 技經肯綮之未嘗, ◈ 技經은 아마 枝經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명사구로, '{...}', 즉 '{...}'을 이른다. 枝는 옆으로 뻗은 '{...}'이고, 經은 '{...}'을 뜻한다. 즉, 枝經은 {...}을 이른다. 이는 俞樾의 설이다. 陸德明은 技에 대해 本或作猗/其綺反//徐音技, '{...}'라고 했다. 郭象은 技를 문자 그대로 '{...}'로 보고, 經은 '{...}'로 보았다. 郭象은 注에서 技之妙也/常遊刃於空/未嘗經概於微礙也, '{...}'라고 하였는데, 아마 郭象은 技經肯綮之未嘗을 技未嘗經肯綮의 도치된 표현으로 본 듯하다. 技未嘗經肯綮이라고 하면, '{...}'라는 뜻이 된다. 成玄英도 郭象과 비슷하게 본 것 같다. 한편 俞樾은 郭注以技經爲技之所經/殊不成義//技經肯綮四字/必當平列//釋文曰/肯/說文作肎/字林同/著骨肉也//一曰/骨無肉也//綮/司馬云/猶結處也//是肯綮並就牛身言/技經亦當同之//技疑枝字之誤//素問三部九候論/治其經絡//王注引靈樞經曰/經脈爲裏/支而橫者爲絡//古字支與枝通//枝/謂枝脈//經/謂經脈//枝經/猶言經絡也//經絡相連之處/亦必有礙於游刃//庖丁惟因其固然/故未嘗礙也,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素問》은 《黃帝內經素問》이고, 《靈樞經》은 《黃帝內經靈樞經》이다. 이처럼 俞樾은 技經을 {...}으로 보았다. {...}은 {...}가게 된다. 한편 또 李楨은 俞氏改技爲枝/訓爲經絡/說信塙矣, '{...}'라고 하였다. 나도 俞樾을 따른다. 한편 王先謙은 言枝經肯綮/皆刃所未到, '{...}'라고 하였다. ◈ 肯綮은 肯𦅾라고 보아야 한다. 𦅾는 '{...}'라고 읽는다. 명사구로, '{...}'을 이르는 말 같다. 技經처럼 다루기 까다로운 부분이다. 肯은 《說文解字》에 肎으로 되어 있다. 《說文解字》 「肉部」에는 骨閒肉肎肎箸也, '{...}'라고 되어 있고, 또 一曰骨無肉也, '{...}'라고 하였다. 綮는 아마 '{...}'는 의미일 것 같은데, 그 용례가 「養生主」밖에 없으니 의심스럽다. 綮은 아마 𦅾와 같은 글자인 듯하다. 내 생각에는 {...}는 무슨 뜻일까. 《史記》 「太史公自序」에 名家苛察繳繞, '{...}'라는 말이 있는데, 裴駰은 服虔曰/繳音近叫呼/謂煩也///如淳曰/繳繞猶纏繞/不通大體也, '{...}'라고 하였다. 纏繞는 '{...}', 즉 '{...}'을 뜻한다. 한편, 이 말은 《漢書》 「司馬遷傳」에도 동일하게 인용되어 있는데, 顏師古는 如淳이 繳繞猶纏繞, '{...}'라는 말을 인용하고, 繳/公鳥反, '{...}'라고 하였다. 즉, 繳는 '{...}'라는 뜻으로, '{...}'라고 읽는다. 肯이 '{...}'을 뜻했던 점을 생각하면, 肯綮, 즉 肯𦅾는 '{...}'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肯綮/肉著骨處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肯에 대해 徐苦等反//說文作肎/字林同/口乃反/云//著骨肉也/一曰/骨無肉也//崔云/許叔重曰/骨間肉//肯/肯著也,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許叔重은 《說文解字》를 지은 許愼이다. 綮에 대해서 陸德明은 苦挺反/崔向徐並音啟/李烏係反/又一音罄//司馬云/猶結處也, '{...}'라고 했다. 啟는 '{...}'는 뜻이고, 罄은 '{...}'는 뜻이다. 綮을 '{...}'라고 하면, 칼을 쓰기 {...}이 가장 낫다. ◈ 之는 {...}다. 技經肯綮之未嘗은 본래 未嘗技經肯綮이다. ◈ 未嘗은 '{...}'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는 '{...}'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未嘗은 일반적으로 '{...}'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경우, 未嘗 뒤에 용언이 하나 붙는다. 예를 들어 未嘗食이라면, '{...}'는 말이 된다. 그런데 본문과 같은 경우는 뒤에 용언이 없다. 따라서 {...}라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晉侯在外十九年矣/而果得晉國/險阻艱難/備嘗之矣,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嘗은 '{...}'라는 말이다. 《戰國策》 「秦策」에는 利則行之/害則舍之/疑則少嘗之,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嘗은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未嘗은 '{...}'라는 뜻이 된다. 본문에 대해, 李楨은 未嘗二字/須補訓義//依俞說/嘗當訓試//說文/試/用也//言於經絡肯綮之微礙/未肯以刀刃嘗試之//所謂因其固然者,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王先謙도 嘗을 試로 보았다. 정리하자면, 嘗을 試라고 보고, 다시 《說文解字》를 근거로 試를 用으로 보는데, 用을 '{...}'는 뜻으로 보면, 技經肯綮之未嘗은 '{...}'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잘 통하게 된다. ◈◈ 郭象은 技之妙也/常遊刃於空/未嘗經概於微礙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言枝經肯綮/皆刃所未到,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技經은 {...}는 뜻이다. [본문으로]
  17. 而況大軱乎, ◈ 而는 역접이다. ◈ 況은 '{...}'다. ◈ 大軱는 명사구로, 아마 '{...}'를 뜻하는 말 같다. 大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軱는 체언으로, 아마 '{...}'이라는 말 같다. 문맥상 軱는 {...}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軱가 '{...}'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陸德明은 音孤//向郭云/觚/戾大骨也//崔云/槃結骨, '{...}'라고 했다. 郭象은 軱/戾大骨/衄刀刃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大骨, '{...}'라고 하였다. 이처럼, {...}지는 모르겠다. 軱라는 글자는 「養生主」에만 등장한다. 나는 '{...}'라는 의견을 따르지만, '{...}'가 아니라 '{...}'라고 해석하였다. ◈ 乎는 {...}다. ◈◈ 成玄英은 夫伎術之妙/遊刃於空/微礙尙未曾經/大骨理當不犯//況養生運智/妙體眞空/細惑尙不染心/麄塵豈能累德,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8. 良庖歲更刀/割也, ◈ 良은 관형어로, '{...}'이다. 여기서는 庖를 한정하므로, '{...}'이라고 보면 좋겠다. 成玄英은 良善,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司馬云/良/善也, '{...}'고 하였다. ◈ 庖는 체언으로, '{...}'이다. ◈ 歲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日이 부사어로 '{...}'라고 쓰이는 것과 같다. ◈ 更은 용언으로, 새 것으로 '{...}'라는 말이다. 즉, 更刀는 '{...}'라는 말이 된다. ◈ 割은 용언으로, 아마 칼날이 '{...}'라는 말인 듯하다. 고기를 '{...}'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칼을 바꾸는 까닭은 {...}할 필요는 없겠다. 《書》 「虞書 堯典」에 湯湯洪水方割,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은 割/害也//言大水方方爲害, '{...}'라고 하였다. 孔穎達은 刀害爲割/故割爲害也, '{...}'라고 하였다. 《道德經》 28장에는 故大制不割, '{...}'라는 말이 있는데, 河上公은 割을 傷割, '{...}'라고 풀이하고 있다. 《漢書》 「揚雄傳 下」에는 東方朔割名於細君,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割/損也//言以肉歸遺細君/是損割其名,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司馬云/以刀割肉/故歲歲更作//崔云/歲一易刀/猶堪割也, '{...}'라고 했다. ◈◈ 郭象은 不中其理閒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良善之庖/猶未中理/經乎一歲/更易其刀//況小學之人/未體眞道/證空捨有/易奪之心者矣,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庖丁은 소에 {...}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19. 族庖月更刀/折也, ◈ 族은 관형어로, 아마 '{...}'이라는 말 같다. 내용상, 族庖는 {...}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周禮》 「地官司徒」에 二曰族墳墓,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族/猶類也, '{...}'라고 하였다. 또, 《春秋左氏傳》 「成公」 4년에 非我族類/其心必異, '{...}'라는 말이 있는데, 族과 類가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族類라는 한 단어로 사용된 것이다. 한편, 《淮南子》 「要略」에는 浸想宵類,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類/衆也, '{...}'라고 하였다. 즉, 다소 무리하기는 하더라도, 族은 衆과 같다고 볼 수 있겠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司馬云/族/雜也//崔云/族/眾也, '{...}'라고 했다. ◈ 月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日이 부사어로 '{...}'라고 쓰이는 이치와 같다. ◈ 更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更刀는 '{...}'라는 말이 된다. ◈ 折은 용언으로, {...}라는 말 같다. {...}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割 부분에서도 설명하였었지만, 칼이 {...}할 필요가 없다. 郭象은 中骨而折刀也, '{...}'라고 했다. 그런데 俞樾은 郭注曰/中骨而折刀也/此於文義未合//上文云良庖歲更刀割也//割以用刀言/則折亦以用刀言//折/謂折骨/非謂刀折也//哀元年左傳曰///無折骨, '{...}'라고 하였다. 즉, 郭象은 '{...}'이라고 본 것이고, 俞樾은 본문처럼 '{...}'이라고 본 것이다. 《左傳》은 《春秋左氏傳》을 이른다. ◈◈ 成玄英은 況凡鄙之夫/心靈闇塞/觸境皆礙/必損智傷神,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0. 今臣之刀十九年矣/所解數千牛矣, ◈ 今은 '{...}'이다. ◈ 臣은 {...}이다. 庖丁을 이른다. ◈ 臣之刀의 之는 {...}다. ◈ 刀는 체언으로, '{...}'이다. ◈ 十九年은 '{...}'라는 말이다. 莊子는 {...}하는 경향이 있다. 「德充符」에서도 申徒嘉가 子産에게 吾與夫子遊十九年矣, '{...}'라는 말이 나온다. 夫子는 伯昏無人이다. 《外篇》의 「在宥」에서는 黃帝立爲天子十九年, '{...}'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왜 하필 19년일까. 成玄英은 十/陰數也//九/陽數也//故十九年極陰陽之妙也, '{...}'라고 하였다. 道敎적 입장에서의 설명이다. 한편, 《雜篇》의 「則陽」에는 遽伯玉에 대해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年非也, '{...}'라는 말이 있고, 또 《雜篇》 「寓言」에는 孔子에 대해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年非也, '{...}'라는 말이 있다. 참고할 만하다. ◈ 所는 아마 '{...}'이라는 말 같다. 解數千牛를 받는다. ◈ 解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본문으로]
  21. 而刀刃若新發於硎, ◈ 而는 역접이다. ◈ 刀刃은 명사구로, '{...}'이다. 刀는 관형어로, '{...}'다. 刃은 체언으로, {...}이다. ◈ 若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 新은 부사어로, '{...}'라는 뜻이다. ◈ 發은 아마 撥의 가차자일 것이다.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이 경우의 發은 칼날에 대한 표현이므로, '{...}'라고 보면 좋겠다. 《釋名》 「釋言語」에 發/撥也/撥使開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王制」에는 有發/則命大司徒教士以車甲,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有發/謂有軍師發卒,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有發謂國有軍旅/以發士卒/是司馬之事, '{...}'라고 하였다. 이 경우에도 發은 '{...}'는 뜻이다. 한편, 《呂氏春秋》 「季秋紀 精通」에도 이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는데, 「精通」에는 用刀十九年/刃若新磨硎, '{...}'라고 되어 있다. 즉, 發은 磨, '{...}'는 뜻과 같다. ◈ 於는 '{...}'다. ◈ 硎은 체언으로, '{...}'이다. 《淮南子》 「齊俗訓」에 庖丁用刀十九年/而刀如新剖硎,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硎/磨刀石,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音刑/磨石也//崔本作形/云/新所受形也, '{...}'라고 했다. 崔譔의 말은 19년을 써도 새 칼 같다는 뜻이다. 郭象은 砥石, 成玄英은 砥礪石이라 하였는데, 모두 '{...}'을 뜻한다. 郭象의 砥石에 대해 陸德明은 또 音脂/又之履反//尙書傳云/砥細於礪/皆磨石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是以年經十九/牛解數千/遊空涉虛/不損鋒刃/故其刀銳利/猶若新磨者也//況善養生人/智窮空有/和光處世/妙盡陰陽//雖復千變萬化/而自新其德/參涉萬境/而常湛凝然矣,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2. 彼節者有閒/而刀刃者無厚, ◈ 彼는 牛, '{...}'를 가리킨다. ◈ 節은 체언으로, '{...}'를 뜻한다. 즉, {...}을 이른다. 成玄英과 王先謙은 骨節, '{...}'이라고 하였다. ◈ 彼節者의 者는 '{...}'이다. 彼節을 받는다. 刀刃者의 者도 그렇다. 刀刃을 받는다. ◈ 有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閒은 체언으로, '{...}'이다. ◈ 而는 역접이다. ◈ 刀刃은 명사구로, '{...}'이다. 刀는 관형어로, '{...}'다. 刃은 체언으로, {...}이다. ◈ 無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厚는 체언으로 '{...}'다. [본문으로]
  23. 以無厚入有閒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 以는 '{...}'라는 말이다. 無厚를 받는다. ◈ 無厚는 명사구로, '{...}'이다. 여기서는 {...}을 가리킨다.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厚는 체언으로, '{...}'다. ◈ 入은 용언으로, '{...}'는 뜻인데, 여기서는 {...}라고 하면 의미에 잘 부합하겠다. ◈ 有閒은 명사구로, '{...}'이다. 여기서는 {...}를 뜻한다.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閒은 체언으로, '{...}'이다. ◈ 恢恢乎는 恢恢然과 같다. '{...}'을 뜻한다. 恢는 '{...}'라는 말이다. 《說文解字》 「心部」에는 恢/大也//从心灰聲, '{...}'라고 되어 있다. 《道德經》 73장에 天網恢恢/疎而不失, '{...}'라는 말이 있는데, 河上公은 恢恢를 甚大, '{...}'라고 풀이했다. 《荀子》 「解蔽」에는 恢恢廣廣/孰知其極, '{...}'라는 말이 있는데, 恢恢와 廣廣은 모두 '{...}'는 말이다. 恢恢乎는 以無厚入有閒에 붙여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뒷구에 붙이면 문장이 난잡해진다. ◈ 其於의 其는 아마 '{...}'라는 부사어로 보인다. {...}라고 하는 편이 가장 타당할 듯하다. 문장을 끝내는 말이 矣이기 때문에, '{...}'라고 볼 수는 없다. '{...}'가 되려면, 문장이 矣로 끝나는 평서문이 아니라, 乎나 與로 끝나는 의문문이어야 한다. 《書》 「虞書 皋陶謨」에 天工人其代之, '{...}'라는 말이 있고, 《書》 「商書 湯誓」에 予其大賚汝, '{...}'라는 말이 있으며, 《書》 「商書 盤庚 上」에 天其永我命于玆新邑, '{...}'라는 말이 있고, 《春秋左氏傳》 「隱公」 11년에 吾子孫其覆亡之不暇/而況能禋祀許乎,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其는 모두 將, '{...}'라는 뜻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於는 '{...}'다. 遊刃을 받는다. ◈ 遊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刃은 체언으로, '{...}'이다. ◈ 必은 부사어로, '{...}'이다. ◈ 有餘의 有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 餘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地를 받는다. ◈ 地는 체언으로, '{...}'이다. ◈◈ 成玄英은 彼牛骨節/素有閒郤/而刀刃鋒銳/薄而不厚//用無厚之刃/入有閒之牛/故遊刃恢恢/必寬大有餘矣//況養生之士/體道之人/運至忘之妙智/遊虛空之物境/是以安排造適/閒暇有餘/境智相冥/不一不異, '{...}'라고 하였다. 그런데, 道를 완전히 체득하면, 만물과 하나가 될 텐데, 왜 成玄英은 不一不異, '{...}'라고 하였는지 의뭉스럽다. [본문으로]
  24.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 ◈ 是以는 '{...}'다. ◈ 十九年는 '{...}'라는 말이다. ◈ 而는 역접이다. ◈ 刀刃은 명사구로, '{...}'이다. 刀는 관형어로, '{...}'다. 刃은 체언으로, {...}이다. ◈ 若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新은 부사어로, '{...}'다. ◈ 發은 撥의 가차자일 것이다.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라고 보면 좋겠다. ◈ 於는 '{...}'다. ◈ 硎은 체언으로, '{...}'이다. ◈◈ 成玄英은 重疊前文/結成其義,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5. 雖然/每至於族/吾見其難爲, ◈ 雖然은 역접이다. '{...}'이라는 말이다. ◈ 每는 부사어로, '{...}'이다. ◈ 至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於는 '{...}'다. ◈ 族은 체언으로, 아마도 '{...}'을 뜻하는 듯하다. {...}을 이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郭象은 交錯聚結爲族, '{...}'라고 하였고, 成玄英은 節骨交聚磐結之處/名爲族也, '{...}'라고 하였다. 앞에서도 庖丁은 技經이나 肯綮에서도 실수한 적이 없다고 했지, 어렵지 않다고 하지는 않았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庖丁 자신을 이른다. ◈ 見은 용언으로, 아마 '{...}'로 보아야 할 듯하다. 《三國志》 「魏志 鍾繇華歆王朗傳」에 明帝時大司農弘農董遇等/亦歷注經傳/頗傳於世,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한 裴松之의 주석에 讀書百徧/而義自見, '책{...}'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見은 '{...}'는 말로 사용되었다. ◈ 其는 겉으로는 '{...}'을 가리키고, 속으로는 '{...}'을 뜻한다. ◈ 難은 체언으로, '{...}'이다. ◈ 爲는 {...}인 듯하다. 《春秋左氏傳》 「襄公」 17년에 而何以田爲, '{...}'라는 말이 있고, 「襄公」 22년에는 我將飮酒/而己雨行/何以聖爲, '{...}'라는 말이 있다. 또, 《國語》 「楚語」에 亡人得生/又何不來爲,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서 爲는 모두 {...}로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의문문에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爲」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으로]
  26. 怵然爲戒/視爲止, ◈ 怵然은 '{...}'이다. 怵은 '{...}'는 뜻이다. 《說文解字》 「心部」에는 怵/恐也//从心术聲, '{...}'라고 되어 있다. ◈ 爲戒는 '{...}'라는 뜻이다. 爲戒의 爲는 '{...}'다. 戒는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于僞反//下皆同, '{...}'라고 하였다. 爲가 于와 僞의 반절이면, 去聲으로, '{...}'가 아니라 '{...}'라는 말이 된다. 戒는 '{...}'라는 말이다. 즉, 爲戒는 '{...}'라는 뜻이 된다. 아마 자신을 '{...}'는 뜻일 것이다. ◈ 視는 체언으로, '{...}'을 이른다. ◈ 視爲止의 爲는 '{...}'라는 말 같다. 使와 같다. 《易》 「井」에는 井渫不食/爲我心惻, '{...}'라는 말이 있는데, 王弼은 爲/猶使也, '{...}'라고 하였다. 또, 《國語》 「魯語」에 其爲後世/昭前之令聞也/使長監於世,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爲/猶使也, '{...}'라고 하였다. 「魯語」의 爲는 '{...}'처럼 해석하는 편이 문맥과 합치되는 하나, 韋昭가 爲를 使라고 한 것은, 당시에 爲가 使로 사용되었었기 때문일 것이다. ◈ 止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不復屬目於他物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27. 行爲遲, ◈ 行은 체언으로, '{...}'를 이른다. 문맥에 맞게 보면 '{...}'이라고 할 수 있겠다. ◈ 行爲遲의 爲는 '{...}'라는 말 같다. 使와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 나온 視爲止의 爲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遲는 '{...}'는 말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呂氏春秋》 「審分覽 審分」에 公作則遲/有所匿其力也,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遲/徐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郭象은 徐, '{...}'라고 보았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 郭象은 徐其手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雖復遊刃於空/善見其郤/每至交錯之處/未嘗不留意艱難/爲其怵惕戒愼/專視徐手//況體道之人/雖復達彼虛幻/至於境智交涉/必須戒愼艱難/不得輕染根塵/動傷於寂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집중해서 손을 신중하게 놀린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28. 動刀甚微/謋然已解, ◈ 動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刀는 체언으로, '{...}'이다. ◈ 甚은 부사어로, '{...}'다. ◈ 微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謋然은 아마 磔然인 듯하다. 磔然은 '{...}'처럼, {...}을 뜻한다. 磔은 '{...}'라는 말이다. 謋然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謋然을 '{...}'이라고 보는 설이다. 成玄英은 謋/化百反//謋然/骨肉離之聲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謋與磔同/解脫貌, '{...}'라고 하였다. 여기서 磔은 '{...}'는 뜻이므로, 解脫은 {...}이 아니라, {...}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두 번째는 謋然을 '{...}'이라고 보는 설이다. 《類篇》에서는 霍虢切//謋然/速也//又/迄逆切/疾意, '{...}'라고 했다. 그러면 謋然은 '{...}'이 된다. 《類篇》은 趙宋 때 지은 책이다. 그러면 어느 설을 따라야 할까. 내 생각에는 成玄英과 王先謙의 설이 타당할 듯하다. 앞의 動刀甚微가 '{...}'라는 의미임을 생각하면, 謋然은 {...}이라고 해석되어야 좀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한편 陸德明은 化百反/徐又許百反, '{...}'라고 발음만 밝혔다. ◈ 已는 아마 以의 가차자인 것 같다. 순접으로, '{...}'처럼 해석된다. 그러면 謋然已解는 謋然以解가 되고, 이는 '{...}'라는 뜻이 될 것이다. ◈ 解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陸德明은 音蟹//下皆同, '{...}'라고 하였다. ◈ 郭慶藩은 闕誤引文如海劉得一本此句下有牛不知其死也六字, '{...}'라고 했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를 이른다. 牛不知其死也는 '{...}'는 뜻으로, 있으면 글이 잘 이어지나, 반드시 필요한 말은 아니다. ◈◈ 郭象은 得其宜則用力少,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9. 如土委地, ◈ 如는 '~와 같다'는 말이다. 명사구인 土委地를 받는다. ◈ 土는 체언으로, '{...}'이다. ◈ 委地는 委於地로, 아마 '{...}'라는 말인 듯하다. 委는 '{...}'라는 뜻이다. 地는 '{...}'이다. 《孟子》 「公孫丑 下」에 委而去之, '{...}'라는 말이 있는데, 朱熹는 委를 棄, '{...}'라고 하였다. ◈◈ 郭象은 理解而無刀跡/若聚土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運動鸞刀/甚自微妙/依於天理/所以不難/如土委地/有何蹤跡//況運用神智/明照精微/涉於塵境/曾無罣礙/境智冥合/能所泯然,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원래 흙은 땅에 있다. 즉, 흙이 {...}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30. 提刀而立/爲之四顧/爲之躊躇滿志, ◈ 提는 용언으로, 원래 '{...}'는 말이나, 여기서는 '{...}'로 사용되었다. 《國語》 「越語」에 范蠡乃左提鼓,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提를 挈, '{...}'라고 하였다. 《說文解字》 「手部」에는 提/挈也//从手是聲, '{...}'라고 되어 있다. 挈 역시 '{...}'라는 말이다. 《禮記》 「王制」와 《漢書》 「食貨志」에 班白不提挈, '{...}'라는 말이 있는데, 提挈 역시 '{...}'라는 말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徐徒嵇反, '{...}'라고 하였다. ◈ 刀는 체언으로, '{...}'이다. ◈ 而는 순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立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 爲之는 '{...}'는 말 같다.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고, 之는 아마 {...} 같다. 四顧와 躊躇滿志가 爲의 목적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之는 {...}가 아니다. 아마 이 문구는 '{...}'는 식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예를 들어, 爲之四顧와 爲之躊躇는 '{...}'는 뜻일 것이다. ◈ 四顧는 '{...}'라는 말이다. 四는 부사어로, '{...}'이고, 顧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四顧라는 표현은 《外篇》에서 두 차례 더 쓰인 사례가 있다. 《外篇》 「天地」에 方且四顧而物應, '{...}'라는 말이 있고, 《外篇》 「田子方」에는 方將躊躇/方將四顧/何暇至乎人貴人賤哉, '{...}'라는 말이 있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 이런 식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躊躇滿志는 '{...}'라는 의미인 듯하다. 爲之躊躇滿志는 爲之躊躇而滿志로, 躊躇와 滿志를 분리해서 보아야 하겠다. 그러면 爲之躊躇滿志는 '{...}'라는 말이 된다. 躊躇는 '{...}'라는 말이다. 아마 {...}을 표현한 듯하다. 滿志는 '{...}'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은 아닐 것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直留反//直於反, '{...}'라고 하였다. 躊躇 역시 다른 편들에 사용된 사례가 있다. 먼저 四顧 부분에서 인용하였듯, 《外篇》 「田子方」에 方將躊躇/方將四顧/何暇至乎人貴人賤哉, '{...}'라는 말이 있다. 王先謙 역시 田子方篇亦云///方將躊躇/方將四顧, '{...}'라고 하였다. 또, 《雜篇》 「外物」에는 聖人躊躇以興事/以每成功, '{...}'라는 말이 있다. 참고할 만하다. ◈◈ 郭象은 逸足容豫自得之謂,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解牛事訖/閒放從容/提挈鸞刀/彷徨徙倚//既而風韻清遠/所以高視四方/志氣盈滿/爲之躊躇自得//養生會理/其義亦然,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1. 善刀而藏之, ◈ 善은 용언으로, '{...}'라는 뜻인 듯하다. 郭象과 成玄英은 모두 拭, '{...}'라고 하였다. 陸德明 역시 善/猶拭也, '{...}'라고 하였다. 그러면 善刀는 '{...}'는 말이 된다. 成玄英은 善刀를 善能保愛/故拭, '{...}'라고 본 듯하다. 《荀子》 「彊國」에 善日者王/善時者霸,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楊倞은 善/謂愛惜不怠棄也, '{...}'라고 하였다. 이 설은 善의 원래 의미에도 가깝다. 반면 善이 拭으로 쓰인 사례는 「養生主」 외의 {...}되기 때문이다. 나는 郭象과 陸德明을 따라 拭, '{...}'로 보았다. ◈ 刀는 체언으로, '{...}'이다. ◈ 而는 순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藏은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 之는 刀를 가리킨다. ◈◈ 郭象은 拭刀而弢之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善能保愛/故拭而弢之//況善攝生人/光而不耀,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32. 文惠君曰 [본문으로]
  33. 善哉//吾聞庖丁之言/得養生焉, ◈ 善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哉는 감탄사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文惠君을 이른다.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之는 {...}다. ◈ 言은 체언으로, '{...}'이다. ◈ 得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淮南子》 「說山訓」에 吾聞得之矣, '{...}'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得/猶知也, '{...}'라고 하였다. ◈ 養生은 명사구로, '{...}'을 뜻한다. 養生은 '{...}'을 이른다. ◈◈ 郭象은 以刀可養/故知生亦可養,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魏侯聞庖丁之言/遂悟養生之道也//美其神妙/故歎以善哉,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牛雖多/不以傷刃//物雖雜/不以累心//皆得養之道也, '{...}'라고 하고, 一喩,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자신이 타고난 결을 {...}이 또한 養生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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