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주석> 장자 내편 - 2 - 제물론 - 1 - 자기와 자유가 인뢰, 지뢰, 천뢰를 논하다

2021. 9. 10. 10:47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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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9일 12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74

 

장자 내편 - 2 - 제물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32

 

장자 내편 - 2 - 제물론 - 1 - 자기와 자유가 인뢰, 지뢰, 천뢰를 논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7?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2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2-1

 

內篇 齊物論第二

 

南郭子綦隱机而坐,仰天而噓,嗒焉似喪其耦。顏成子游立侍乎前,曰:

 

「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机者,非昔之隱机者也。」

 

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女聞人籟而未聞地籟,女聞地籟而未聞天籟夫!」

 

子游曰:「敢問其方。」

 

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爲風。是唯無作,作則萬竅怒呺。而獨不聞之翏翏乎?

 

山林之畏佳,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枅,似圈,似臼,似洼者,似汚者;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宎者,咬者,前者唱于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眾竅爲虛。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

 

子游曰:「地籟則眾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

 

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已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내편 제물론 제2[각주:1]

 

 

남곽의 자기가 안석에 기대 앉아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있었는데, 멍하니 있는 꼴이 자기 자신을 잊어 먹은 것 같았다.[각주:2] [이에] 안성의 자유가 [그] 앞에서 [자기를] 모시고 있다가 말했다.[각주:3]

 

"왜 그러고 있느냐. [너의] 모습은 진정 메마른 나무 같다고 할 만하구나. 그런데 [사람의 몸이야 고목처럼 말라 붙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정신도 진정 타고 남은 재처럼 될 수 있단 말인가.[각주:4] 지금 안석에 기대 있는 사람은 예전에 안석에 기대 있던 사람이 아니로다.[각주:5]"

 

자기가 말했다.[각주:6]

 

"언아, [니가] 내가 달라졌다고 한 점을 짚어 물은 점이 진정 뛰어나도다. 지금 나는 나를 잊었다. 너는 이 말을 이해하겠느냐.[각주:7] [아마] 너는 인뢰에 대해 들어 보았겠지만 하지만 지뢰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없었을 것이요, [또] 니가 지뢰에 대해 들어 보았다고 하더라도 천뢰에 대해 아직 들어 본 적은 없었을 것이로다.[각주:8]"

 

자유가 말했다.[각주:9]

 

"인뢰, 지뢰, 천뢰의 뜻을 감히 묻고자 한다.[각주:10]"

 

자기가 말했다.[각주:11]

 

"저 대괴는 숨을 내뿜는데, [우리는] 이 숨을 바람이라고 한다.[각주:12] 바람은 다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일어나기만 하면 [대괴의] 온갖 구멍들이 세차게 소리를 내지른다.[각주:13] [이처럼 대괴의 온갖 구멍에서 세차게 소리가 날 것인데,] 그런데도 [니가] 어찌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겠느냐.[각주:14]"

 

<자기의 말 이어짐>

 

"산 속 깊숙한 곳에 있는[각주:15] [둘레가] 백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나무의 구멍들은 [생긴 것이] 코 같기도 하고, 입 같기도 하며, 귀 같기도 하고, 호리병 같기도 하며, 그릇 같기도 하고, 절구 같기도 하니, [이처럼] 우묵한 것 같기도 하고, 오목한 것 같기도 한데[각주:16], [그 구멍들에서 나는 소리는] 세차기도 하고, 휙 거리기도 하며, 거칠기도 하고, 가늘기도 하며, 높이 울려 퍼지기도 하고, 탁하게 웅얼거리기도 하며, 깊게 머무르는 듯하기도 하고, 맑게 지저귀는 것 같기도 하다.[각주:17] [그리하여 어떤] 구멍이 먼저 우우 하고 소리를 내면, [다른] 구멍이 뒷따라 우우 하며 [화답하듯] 소리를 내는 것이다. [먼저] 영풍이 불면 [구멍들은] 작게 화답하고, [먼저] 표풍이 불면 [구멍들은] 크게 화답한다.[각주:18] [하지만 이윽고] 여풍이 멎으면 뭇 구멍들은 텅 비게 된다.[각주:19] 그러니 니가 어찌 [바람이 불 때 만물이] 이렇듯 요동치거나,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겠느냐.[각주:20]"

 

자유가 말했다.[각주:21]

 

"[땅이나 나무에 있는] 뭇 구멍들에서 나오는 소리가 바로 지뢰고, 비죽에서 나오는 수리가 바로 인뢰구나. [인뢰, 지뢰에 대해 알았으니, 이번에는] 천뢰에 대해 삼가 묻겠다.[각주:22]"

 

자기가 말했다.[각주:23]

 

"[만물이 내쉬는] 바람은 모두 같지 않지만, [만물은 하나 같이] 자기 소리를 내고 있도다.[각주:24] [이렇듯 만물이] 전부 그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는데, [만물의 소리를 일으키는] 세찬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각주:25]"

 

 

  1. 內篇齊物論第二, ◈◈ 郭象은 夫自是而非彼/美己而惡人/物莫不皆然//然/故是非雖異而彼我均也,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力頓反//李如字, '{...}'라고 하였다. ◈◈ 蘇輿는 天下之至紛/莫如物論//是非太明/足以累心//故視天下之言/如天籟之旋怒旋已/如鷇音之自然/而一無與於我//然後忘彼是/渾成毀/平尊隸/均物我/外形骸/遺生死/求其眞宰/照以本明/游心於無窮//皆莊生最微之思理//然其爲書/辯多而情激/豈眞忘是非者哉//不過空存其理而已,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天下之物之言/皆可齊一視之/不必致辯/守道而已,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逍遙遊」에서 마음가짐을 설명한 莊子는 「齊物論」에서 본격적으로 道에 대해 설명을 해 나가기 시작한다. {...} 莊子는 이 점을 不用而寓諸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본문으로]
  2. 南郭子綦隱机而坐/仰天而噓/荅焉似喪其耦, ◈ 南郭은 '{...}'이다. 南은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郭은 체언으로, '{...}'이다. 아마 子綦의 號였을 것이다. ◈ 子綦는 사람 이름이다.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人間世」와 《雜篇》 「徐無鬼」에는 南伯子綦라는 사람이 나오고, 「大宗師」에는 南伯子葵라는 사람이 나온다.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道를 깨달은 사람으로 나온다. 그러면 이 子綦는 어떤 사람일까. 楚나라 昭王 시기에 子綦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史記》에는 子綦라고 되어 있고, 《春秋左氏傳》, 《國語》에는 子期라고 되어 있다. 《史記》 「陳杞世家」에 二十三年/楚之白公勝殺令尹子西子綦/襲惠王, '{...}'라는 말이 있다. 또, 《史記》 「楚世家」 중, 昭王이 隨나라로 도망간 대목에 王從臣子綦乃深匿王/自以爲王, '{...}'라는 말이 있고, 또 昭王이 죽은 직후에 乃與子西子綦謀/伏師閉涂/迎越女之子章立之/是爲惠王, '{...}'라는 말이 있으며, 또 白公의 난에 대한 대목에 白公勝怒/乃遂與勇力死士石乞等襲殺令尹子西子綦於朝/因劫惠王/置之高府/欲弒之, '{...}'라는 말이 있다. 또, 《史記》 「伍子胥列傳」에 隨人欲殺王/王子綦匿王/己自爲王以當之, '{...}'라는 말이 있고, 또 其後四歲/白公勝與石乞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於朝, '{...}'라는 말이 있다. 王子 綦와 子綦는 같은 사람일 것이다. 「楚世家」와 「伍子胥列傳」을 대조해 보면 王子 綦와 子綦가 같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상기하였듯, 子綦는 《春秋左氏傳》과 《國語》에는 子期라고 되어 있다. 예를 들어, 《春秋左氏傳》 「哀公」 6년에 與子西子期謀/潛師閉塗/逆越女之子章/立之而後還, '{...}'라는 말이 있고, 《國語》 「楚語」에는 及白公之亂/子西子期死, '{...}'라는 말이 있다. 즉, 子綦는 子期다. 그런데 이 子綦, 즉 楚나라의 司馬 子綦가 「齊物論」에 나오는 子綦는 {...} 기록이 전무하다. 그러나 이 子綦, 즉 子期를 제외하면, 「齊物論」의 子綦라고 볼 만한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楚昭王之庶弟/楚莊王之司馬/字子綦//古人淳質/多以居處爲號/居於南郭/故號南郭/亦猶市南宜僚/東郭順子之類//其人懷道抱德/虛心忘淡/故莊子羨其清高而託爲論首, '{...}'라고 하였다. 市南宜僚는 《外篇》의 「山木」, 《雜篇》의 「徐無鬼」, 「則陽」에 등장한다. 東郭順子는 《外篇》 「田子方」에 등장한다. 《春秋左氏傳》 「哀公」 16년에 市南有熊宜僚者, '{...}'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 이 熊宜僚가 《莊子》의 市南宜僚일 것으로 보인다. 《戰國策》 「秦策 陘山之事」에 齊懼/令田章以陽武合於趙/而以順子爲質, '{...}'라는 말이 있는데, 이 順子가 《莊子》의 東郭順子인지도 모르겠다. 「田子方」에서는 田子方이 자신의 스승을 東郭順子, "{...}"라고 하는데, 田子方은 田氏이므로 齊나라 사람이고, 《戰國策》에서도 順子는 齊나라의 귀족일 것이므로, 아마 같은 사람이라고 볼 정황이 있다 하겠다. 陸德明은 音其//司馬云/居南郭/因爲號, '{...}'라고 했다. ◈ 隱은 용언으로, 어딘가에 '{...}'라는 말이다. 《孟子》 「公孫丑 下」에 坐而言/不應/隱几而臥, '{...}'라는 말이 있다. 趙岐와 孫奭은 모두 隱几를 隱倚其几, '{...}'라고 풀이하였는데, 이 풀이에서 隱倚는 한 단어로 쓰였고, 이는 같은 의미의 글자를 연용해서 이루어진 단어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隱도 倚와 같고, '{...}'는 말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朱熹는 隱을 憑, '{...}'라고 풀이하였다. 成玄英은 憑, '{...}'라고 했다. 陸德明은 於靳反/馮也, '{...}'라고 하였다. ◈ 机는 체언으로, '{...}'이다. 벽에 세워 두고 몸을 기대는 방석 같은 것이다. 陸德明은 音紀//李本作几, '{...}'라고 했다. 盧文弨는 案今本作几, '{...}'라고 하였다. 几는 机의 가차자일 것이다. ◈ 隱机而坐의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仰天而噓의 而도 마찬가지다. ◈ 坐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仰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天은 체언으로, '{...}'이다. 따라서 仰天은 '{...}'라는 말이다. ◈ 噓는 용언으로, 숨을 '{...}'는 말이다. 탄식하며 한숨을 '{...}'는 뜻이다. 成玄英은 嘆,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音虛//吐氣爲噓//向云/息也, '{...}'라고 했다. ◈ 荅焉은 아마 '{...}'을 이를 것이다. 문맥상 그렇게 해석이 된다. 荅焉似喪其耦, '{...}'라고 하였으니, 荅焉은 '{...}'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곧 '{...}'이다. 焉은 然과 같다. 용언 뒤에 붙어서 형용하는 말로 바꾸어 주는 표현이다. 즉, 荅焉은 荅然과 같다. 成玄英은 解釋貌, '{...}'이라고 했다. 陸德明은 本又作嗒/同//吐荅反/又都納反//注同//解體貌,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今本作嗒//案解體/即趙岐孟子注所云解罷枝也, '{...}'라고 했다. 《孟子》 「梁惠王 上」에 爲長者折枝,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趙岐는 案摩折手節解罷枝也, '{...}'라고 하였다. 아마 荅에서 '{...}'라는 뜻이 嗒으로 분화되었고, 이에 어떤 판본에는 荅이 嗒으로 적히게 된 듯 보인다. 그런데 《孟子》의 그 句에는 荅이나 嗒이라는 글자가 나와 있지 않은데, 왜 盧文弨가 저 말을 인용해 두었는지 모르겠다. 郭慶藩은 慧琳一切經音義八十八終南山龍田寺釋法琳本傳卷四引司馬云/荅焉/云失其所/故有似喪耦也///釋文闕, '{...}'라고 했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似는 '{...}'라는 말이다. ◈ 喪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 其는 子綦를 가리킨다. ◈ 耦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耦는 원래 '{...}'을 의미한다. 成玄英은 耦/匹也/謂身與神爲匹/物與我爲耦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本亦作偶/五口反/匹也/對也//司馬云/耦/身也/身與神爲耦, '{...}'라고 했다. 한편 俞樾은 俞樾曰/喪其耦/即下文所謂吾喪我也//郭注曰若失其配匹/未合喪我之義//司馬云耦身也/此說得之//然云身與神爲耦則非也//耦當讀爲寓//寓/寄也/神寄於身/故謂身爲寓, '{...}'라고 했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하면, '{...}'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이 말은 본문 이 부분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뒷부분에 나오는 眞君이나 眞宰를 를 고려해야 한다. {...} 아마 俞樾이 寄라고 한 이유도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한다. 즉, 嗒焉似喪其耦라는 말은, {...}을 형용했다고 하겠다. 쉽게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의 成心, 고집, 편견, 아집을 버렸다고 보아도 타당하다. ◈◈ 郭象은 同天人/均彼我/故外無與爲歡/而荅焉解體/若失其配匹,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子綦憑几坐忘/凝神遐想/仰天而歎/妙悟自然/離形去智/荅焉墜體/身心俱遣/物我兼忘/故若喪其匹耦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事又見徐无鬼篇/郭作伯/机作几, '{...}'라고 했다. 「徐无鬼」는 《雜篇》에 속한다. 「徐無鬼」라고 하기도 한다. 뒤의 말은 荅焉似喪其耦 부분이 「徐無鬼」에는 없다는 뜻이다. ◈◈ 孃破案 : 王先謙이 지적한 것처럼, 《雜篇》 「徐無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만 {...} 초점이 있다. 비교해서 읽어 볼 만하다. [본문으로]
  3. 顏成子游立侍乎前/曰, ◈ 顏成子游는 사람 이름이다.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成玄英은 姓顏/名偃/字子游, '{...}'라고 했다. 이름이 偃이라는 점은 아랫쪽 대화에 드러나 있다. 陸德明은 李云/子綦弟子也/姓顏/名偃/諡成/字子游, '{...}'라고 했다. ◈ 立侍는 용언으로, 높은 사람을 '{...}'라는 말인 듯하다. 子游가 子綦를 '{...}'라는 말이다. 立과 侍를 따로 떼서 '{...}'라고 보아도 좋겠지만, 立侍 그 자체를 {...}이 더 낫겠다. 《禮記》 「鄉飲酒義」에 鄉飲酒之禮/六十者坐/五十者立侍/以聽政役/所以明尊長也, '{...}'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孔穎達은 立侍/是陪侍之儀, '{...}'라고 하였다. 여기서 陪侍는 높은 사람을 '{...}'는 뜻이다. 즉, 立侍 역시 높은 사람을 '{...}'라고 풀이해야 하겠다. ◈ 立侍乎前의 乎는 於와 같다. '{...}'라는 말이다. 前을 받는다. ◈ 前은 체언으로, '{...}'이다. 子綦의 '{...}'을 이른다. [본문으로]
  4. 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 ◈ 何는 의문사로, '{...}'라는 말이다. ◈ 居는 용언으로, 어떠하게 '{...}'는 말이다. 子綦가 왜 멍하니 '{...}' 물은 말이다. 成玄英은 安處, '{...}'라고 했다. 陸德明은 如字/又音姬//司馬云/猶故也, '{...}'라고 했다. ◈ 何居乎의 乎는 의문사다. ◈ 形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心固의 心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 固는 부사어로 '{...}' 따위의 말이다. ◈ 可使如槁木의 可는 '{...}'라는 말이다. 使如槁木을 받는다. ◈ 使如槁木의 使는 '{...}'는 말이다. 如槁木을 받는다. ◈ 如槁木의 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槁木을 받는다. 즉, 可使如槁木는 '{...}'라는 말이 된다. ◈ 槁木은 명사구로, '{...}'다. 木은 체언으로, '{...}'다. 槁는 관형어로, '{...}'이라는 뜻이다. 《孟子》 「滕文公 下」에 夫蚓/上食槁壤/下飲黃泉, '{...}'라는 말이 있는데, 朱熹는 槁壤/乾土也, '{...}'라고 하였다. 즉, 槁는 乾, '{...}'라는 뜻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古老反//注同, '{...}'라고 하였다. ◈ 而心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心은 체언으로, '{...}'이다. 子綦의 '{...}'을 이른다. ◈ 可使如死灰의 可는 '{...}'라는 말이다. 使如死灰를 받는다. ◈ 使如死灰의 使는 '{...}'는 말이다. 如死灰를 받는다. ◈ 如死灰의 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死灰를 받는다. 즉, 可使如死灰는 '{...}'라는 말이 된다. ◈ 死灰는 명사구로, '{...}'를 뜻한다. 死는 관형어로, '{...}'이다. 여기서는 灰, 즉 '{...}'에 대해 사용되었으므로, '{...}'처럼 해석해야 한다. 灰는 체언으로, '{...}'다. ◈ 使如死灰乎의 乎는 의문사다. ◈◈ 郭象은 死灰槁木/取其𡧘莫無情耳//夫任自然而忘是非者/其體中獨任天眞而已/又何所有哉//故止若立枯木/動若運槁枝/坐若死灰/行若遊塵//動止之容/吾所不能一也//其於無心而自得/吾所不能二也, '{...}'라고 했다. ◈◈ 成玄英은 方欲請益/故起而立侍//如何安處/神識凝寂/頓異從來/遂使形將槁木而不殊/心與死灰而無別//必有妙術/請示所由,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徐无鬼篇作顏成子入見, '{...}'라고 하였고, 또 徐无鬼篇作夫子物之尤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또, 文子道原篇引老子曰/形若槁木/心若死灰///徐无鬼篇與此二句同/木作骸///知北遊篇/形若槁骸/心若死灰///庚桑楚篇/亦有二句/槁骸作槁木之枝///達生篇亦云/吾執臂也/若槁木之枝//是此槁木即槁木之枝//槁骸/亦槁枝也//以下異, '{...}'라고 하였다. 지금 《文子》 「道原」에는 形若枯木/心若死灰라고 되어 있다. 뜻은 같다. 枯도 '{...}'는 뜻이다. 《雜篇》 「徐无鬼」에는 形固可使若槁骸/心固可使若死灰乎라고 되어 있다. 「知北遊」와 「庚桑楚」는 각각 《外篇》과 《雜篇》에 속한다. 「知北遊」에는 形若槁骸/心若死灰, 「庚桑楚」에는 身若槁木之枝/而心若死灰라고 되어 있다. 達生은 《外篇》에 속한다. 「達生」의 吾執臂也/若槁木之枝는 '{...}'라는 뜻이다. ◈◈ 孃破案 : 본문 중 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라는 문구는 여러 곳에서 보인다. 王先謙은 《文子》 「道原」에서 {...} 하였다. 작성 연대를 따져 볼 때, 《淮南子》를 만들 때 《文子》나 《莊子》의 문구를 인용하였을 것이다. [본문으로]
  5. 今之隱机者/非昔之隱机者也, ◈ 今은 '{...}'이다. ◈ 今之의 之는 {...}다. 昔之의 之도 마찬가지다. ◈ 隱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机는 체언으로, '{...}'이다. ◈ 今之隱机者의 者는 '{...}'이다. 隱机를 받는다. 따라서, 今之隱机者는 '{...}'이 된다. 昔之隱机者의 者도 마찬가지다. 隱机를 받는다. 따라서 昔之隱机者는 '{...}'이 된다. ◈ 非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昔之隱机者를 받는다. ◈ 昔은 '{...}'이다. ◈◈ 郭象은 子游嘗見隱机者/而未有若子綦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子游昔見坐忘/未盡玄妙//今逢隱机/實異曩時//怪其寂泊無情/故發驚疑之旨,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6. 子綦曰 [본문으로]
  7. 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 ◈ 偃은 子游를 이른다. 아마 子游의 이름일 것이다. ◈ 不亦 A 乎는 '{...}', 즉 '{...}'와 같은 뜻이다. 善은 용언으로, '{...}'는 말이므로, 不亦善乎는 '{...}'와 같은 표현이라 하겠다. ◈ 善乎의 乎는 감탄사다. ◈ 而問의 而는 2인칭 대명사로, 子游를 가리킨다. 而, 若, 女, 汝, 爾 등이 모두 2인칭 대명사로 사용된다. 成玄英은 而/猶汝也, '{...}'라고 하였다. 王先謙도 而同爾, '{...}'라고 하였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問之의 之는 子游가 今之隱几者/非昔之隱几者也라고 한 말을 가르킨다. ◈ 而問之也의 也는 者와 같다고 보아야 한다. '{...}'이라는 말이다. 而問之를 받는다. 《禮記》 「檀弓」에 古者冠縮縫/今也衡縫, '{...}'라는 말이 있고, 《論語》 「陽貨」에는 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들에는 모두 古者와 今也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이로써 볼 때 今也는 앞의 句를 따라 今者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고, 실제로 의미 자체도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예시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也」에 들어 있다. ◈ 今은 '{...}'이다. ◈ 今者의 者는 때나 시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今者, 昔者처럼 사용된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子綦를 가리킨다. ◈ 喪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成玄英은 喪/猶忘也, '{...}'라고 하였다. ◈ 我는 1인칭 대명사로, 子綦 자신을 가리킨다. ◈ 汝는 2인칭 대명사다. 子游를 가리킨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知之의 之는 吾喪我를 가리킨다. ◈ 汝知之乎의 乎는 의문사다. ◈◈ 郭象은 吾喪我/我自忘矣//我自忘矣/天下有何物足識哉//故都忘外內/然後超然俱得,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許其所問/故言不亦善乎//而子綦境智兩忘/物我雙絕/子游不悟/而以驚疑/故示隱几之能/汝頗知不.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吾喪我는 「齊物論」 전체의 주제를 드러내는 말이다. 이것이 {...}을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본문으로]
  8. 女聞人籟而未聞地籟/女聞地籟而未聞天籟夫, ◈ 女聞人籟의 女는 2인칭 대명사로, 子游를 이른다. 女聞地籟의 女도 마찬가지다. 陸德明은 音汝//下皆同//本亦作汝,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上汝知何以不一律作女, '{...}'라고 하였다. 盧文弨의 말은 아마 今者吾喪我/汝知之乎에서는 汝로 적고는, 뒤에는 女로 적은 점이 일관성이 없다고 하는 의미로 보인다. ◈ 聞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籟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 보면, 퉁소라는 '{...}'가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를 뜻함을 알 수 있다. 즉, 人籟는 '{...}', 地籟는 '{...}', 天籟는 '{...}'가 된다. 郭象은 簫,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籟/簫也/長一尺二寸/十六管/象鳳翅/舜作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力帶反/簫也, '{...}'라고 하였다. ◈ 聞人籟而未聞地籟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聞地籟而未聞天籟의 而도 마찬가지다. ◈ 未는 부정어다. 따라서 未聞은 '{...}'라는 말이 된다. ◈ 天籟夫의 夫는 {...}처럼 사용된다. 陸德明은 音扶, '{...}'라고 했다. 扶처럼 읽으면 上聲이 된다. 夫는 平聲일 때는 '{...}'를 뜻하고, 上聲일 때는 '{...}'이나 {...}를 뜻한다. 여기서는 {...}한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 郭象은 夫簫管參差/宮商異律/故有短長高下萬殊之聲//聲雖萬殊/而所稟之度一也/然則優劣無所錯其閒矣//況之風物/異音同是/而咸自取焉/則天地之籟見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簫管參差/所受各足/況之風物/咸稟自然/故寄此二賢以明三籟之義//釋在下文,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9. 子游曰 [본문으로]
  10. 敢問其方, ◈ 敢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其는 人籟, 地籟, 天籟를 가리킨다. ◈ 方은 체언으로, '{...}'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成玄英은 道術, '{...}'이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雖聞其名/未解其義/故請三籟/其術如何,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1. 子綦曰 [본문으로]
  12. 夫大塊噫氣/其名爲風,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로 보아도 좋겠다. ◈ 大塊는 명사구로, '{...}'를 이른다. 大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塊는 체언으로, '{...}'를 뜻한다. 즉, 大塊는 '{...}'라는 말인데, 이는 곧 '{...}'라는 의미다. 大塊라는 표현은 「大宗師」에도 나온다. 「大宗師」에는 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 '{...}'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大宗師」에서 大塊는 道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大塊者/造物之名/亦自然之稱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苦怪反//李苦對反//說文同/云/俗凷字也///徐口回反/徐李又胡罪反//郭又苦猥反//司馬云/大朴之貌/眾家或作大槐/班固同//淮南子作大昧//解者或以爲無/或以爲元氣/或以爲混成/或以爲天/謬也, '{...}'라고 했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雜篇》의 「外物」에 大槐라는 말이 나온다. 司馬彪는 班固도 大槐라고 썼다고 했는데, 아마 《漢書》 「五行志 中之下」에 山陽橐茅鄉社有大槐樹, '{...}'라는 말을 이르는 듯하다. 이 외에도 荀悅의 《前漢紀》 「孝元皇帝紀 下」에도 山陽社中大槐樹, '{...}'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 《淮南子》에는 大昧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俶眞訓」에 夫大塊載我以形, '{...}'라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의 大塊가 옛날 판본에 大昧라고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郭慶藩은 慧琳一切經音義九十五正誣經卷五引司馬云/大塊/謂天也///與釋文所引異, '{...}'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을 이른다. 한편 俞樾은 大塊者/地也//塊乃凷之或體//說文土部/凷/墣也///蓋即中庸所謂一撮土之多者/積而至於廣大/則成地矣/故以地爲大塊也//司馬云大朴之貌/郭注曰大塊者無物也/並失其義//此本說地籟/然則大塊者/非地而何,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 噫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듯하다. 《說文解字》 「口部」에는 噫/飽食息也//从口意聲, '{...}'라고 하였다. 배부르게 먹고 쉬는 숨은 '트림'이다. 《釋名》의 「釋言語」에는 噫/憶也/憶念之故發此聲意之也, '{...}'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아마 '{...}'을 뜻하는 듯하다. 그러나 트림이든 한숨이든, '{...}'임에는 같고, '{...}'으로 본다면 噫氣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陸德明은 乙戒反//注同//一音蔭, '{...}'라고 하였다. ◈ 氣는 체언으로, '{...}'이다. 氣息이라는 말과 같다. ◈ 其는 氣를 가리킨다. ◈ 名은 체언으로, '{...}'이다. ◈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風은 체언으로, '{...}'이다. 大塊가 내뿜는 숨을 사람들이 '{...}'이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 郭象은 大塊者/無物也//夫噫氣者/豈有物哉//氣塊然而自噫耳//物之生也/莫不塊然而自生/則塊然之體大矣/故遂以大塊爲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自然之理通生萬物/不知所以然而然//大塊之中/噫而出氣/仍名此氣而爲風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3. 是唯無作/作則萬竅怒呺, ◈ 是는 風, 즉 '{...}'을 가리키는 말 같다. 成玄英은 是者/指此風也, '{...}'라고 하였다. ◈ 唯는 부사어로, '{...}'이다. ◈ 無는 부정어다. 作을 한정한다. ◈ 作은 용언으로, 사건이나 일이 '{...}'는 말이다. 成玄英은 起, '{...}'라고 하였다. ◈ 則은 '{...}'이다. ◈ 萬竅는 '{...}'이다. 萬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竅는 체언으로, '{...}'이다. 陸德明은 苦弔反, '{...}'라고 하였다. ◈ 怒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呺는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일 것이다. 문맥상 그렇게 해석된다. 陸德明은 胡刀反/徐又許口反/又胡到反, '{...}'라고 하였다. ◈◈ 郭象은 言風唯無作/作則萬竅皆怒動而爲聲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此大風唯當不起/若其動作/則萬殊之穴皆鼓怒呺叫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4. 而獨不聞之翏翏乎, ◈ 而獨의 而는 아마 역접으로 보인다. '{...}'처럼 해석된다. 而를 2인칭 대명사로 보고, 子游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처럼 {...}는 말이므로, 역접으로 해석하고, 이 節의 주어인 子游가 생략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듯하다. ◈ 獨은 부사어로, '{...}'라고 보면 좋겠다. ◈ 聞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聞之의 之는 {...}를 가리킨다. 王先謙은 之/猶其//下同, '{...}'라고 하였다. ◈ 翏翏는 '{...}'처럼 세차게 부는 바람의 소리를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 듯하다. 翏는 아마 飂의 가차자일 것이다. 《說文解字》 「風部」에 飂/高風也,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後漢書》 「張衡列傳」에 인용되어 있는 「思玄賦」에 戫汨飂戾沛以罔象兮, '{...}'라는 말이 있는데, 李賢은 戫音一六反/汨音于筆反/飂音遼/沛音普蓋反/並疾貌也, '{...}'라고 하였다. 「思玄賦」는 《文選》에도 인용되어 있는다. 이에 대해 李善은 皆疾貌//罔象/即仿像也//楚辭曰/沛罔象而自浮///戫/一六切//飂/力凋切//淚/音戾, '{...}'라고 하였다. 《楚辭》 인용구는 「遠遊」다. 「遠遊」에는 沛𣶈瀁而自浮, '{...}'라고 되어 있다. 李善과 李賢이 모두 '{...}'이라고 하였으니, 飂 역시 바람이 '{...}'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주석을 보면, 陸德明은 {...} 해석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 대해 郭象은 長風之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良救反/又六收反//長風聲也//李本作飂/音同//又力竹反,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長風之聲,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闕誤引李本翏作飂/力救切, '{...}'라고 하였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를 이른다. 《李本》은 아마 陸德明이 인용한 《李頤本》일 듯하다. ◈ 翏翏乎의 乎는 {...}다. [본문으로]
  15. 山林之畏佳, ◈ 山林之畏佳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大木百圍, 즉 百圍大木을 한정하는 표현이다. 즉, '{...}'가 있는 곳이 바로 山林之畏佳다. 이 점을 감안해서 해석해야 하겠다. ◈ 山林은 체언으로, '{...}'이다. '{...}'을 이른다. ◈ 之는 아마 도치된 문구임을 표시하는 글자인 것 같다. 즉, 山林之畏佳는 본래 畏佳山林일 것이고, 이는 '{...}'이라는 말이 된다. 나는 '{...}'처럼 의역하였다. ◈ 畏佳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畏는 㟪 또는 嵔의 가차자일 것이다. 㟪와 嵔는 같은 글자로, '{...}'을 이른다. 주석을 보면, 陸德明은 《崔譔本》에 畏가 {...} 이루어진 단어가 된다. 그러면 嵔가 '{...}'라는 말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史記》 「司馬相如列傳」에 崴磈嵔瘣, '{...}'라는 말이 있는데, 張守節은 崴/於鬼反//磈/魚鬼反//嵔/烏罪反//瘣/胡罪反//皆高峻貌, '{...}'라고 하였다. 그러면 崔가 '{...}'라는 말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詩》 「國風 齊風」 「南山」에 南山崔崔,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郭象은 大風之所扇動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畏佳/扇動之貌,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畏에 대해서는 於鬼反//郭烏罪反//崔本作嵔, '{...}'라고 하였고, 佳에 대해서는 醉癸反//徐子唯反//郭祖罪反//李諸鬼反//李頤云/畏隹/山阜貌, '{...}'라고 했다. 盧文弨는 佳/舊本作隹/今莊子眾家本皆作佳//韻會支韻內引此/似亦可讀追//此所音雖皆仄聲/然實與佳本音皆相近/故從眾家本改正, '{...}'라고 하였다. 《韻會》는 元代의 黃公紹가 펴 낸 《古今韻曾》를 이르는 듯하다. 《經典釋文》을 보면 畏佳가 아니라 畏隹라고 되어 있는데, 盧文弨가 《經典釋文》까지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옛 판본 그대로 隹라고 되어 있는 것인 듯하다. 王先謙은 即崔/猶崔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而翏翏清吹/擊蕩山林/遂使樹木枝條/畏佳扇動//世皆共睹/汝獨不聞之邪//下文云,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6. 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枅/似圈/似臼/似洼者/似污者, ◈ 大木百圍之竅穴은 百圍大木之竅穴, '{...}'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百圍는 大木을 {...} 한 설을 소개해 두었는데, 이 설이 타당하다. ◈ 大는 관형어로, '{...}'이다. ◈ 木은 체언으로, '{...}'다. ◈ 圍는 둘레를 표현하는 단위다. '{...}'이다. ◈ 之는 {...}인 듯하다. ◈ 竅穴은 체언으로, '{...}'이다. 竅와 穴은 모두 '{...}'을 뜻한다. 나무에 나 있는 '{...}' 같은 것을 이르는 듯하다. 成玄英은 樹孔,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崔本作窾, '{...}'라고 하였다. 窾은 '{...}'을 의미한다. 즉, '{...}'이다. 「養生主」에 道大窾, '{...}'라는 말이 있는데, 이 窾 역시 '{...}'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史記》 「太史公自序」에 實不中其聲者謂之窾, '{...}'라는 말이 있는데, 裴駰은 徐廣曰/音款/空也///駰案/李奇曰/聲別名也, '{...}'라고 했다. 이름을 부르니 {...} 잘못 이해한 듯 보인다. 司馬貞은 窾音款//漢書作款//款/空也//故申子云/款言無成/是也//聲者/名也//以言實不稱名/則謂之空/空有聲也, '{...}'라고 하였다. 《申子》는 申不害가 지은 책이다. 款言無成은 逸文이다. 즉, 窾 역시 '{...}'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 似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枅는 체언으로, '{...}'을 이르는 듯하다. 본래는 '{...}'를 뜻한다. 《字林》에서는 柱上方木, '{...}'이라 하였다. 上方木은 上引枋에 쓰는 나무인데, 上引枋은 '{...}'를 뜻한다. 成玄英은 枅/柱頭木也/今之斗㭼是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雞/又音肩//字林云/柱上方木也//簡文云/欂櫨也, '{...}'라고 했다. 欂櫨는 '{...}'로, 들보 {...}를 뜻한다. 또, 安東林은 洪頤煊이 枅을 鈃, '{...}'이라고 했다는 설을 소개해 두었다. 호리병도 上引枋처럼 길기는 마찬가지다. 아마 莊子는 枅를 '{...}'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나는 洪頤煊을 따랐다. ◈ 圈은 체언으로, '{...}'일 것이다. 成玄英은 圈/畜獸闌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起權反//郭音權/杯圈也//徐其阮反/言如羊豕之闌圈也, '{...}'라고 하였다. 安東林은 盞, '{...}'이라고 했고, 安炳周와 田好根은 棬, '{...}'이라고 했다. '{...}'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듯 보인다. 따라서 '{...}'이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 臼는 체언으로, '{...}'다. 陸德明은 其九反, '{...}'라고 하였다. ◈ 似洼者와 似污者는 {...}을 정리하는 표현이다. 莊子는 이 句에서 {...}라고 하며 정리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 洼者는 명사구로, '{...}'이다. 者는 '{...}'이다. 洼를 받는다. 洼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洼는 아마 窪의 가차자일 것이다. 《道德經》 22장에 窪則盈,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窪는 '{...}'라는 말이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烏攜反/李於花反/又烏乖反/郭烏蛙反//司馬云/若洼曲, '{...}'라고 하였다. 宣穎은 深池, '{...}'이라고 했다. ◈ 污者는 명사구로, '{...}'이다. 者는 '{...}'이다. 污를 받는다. 污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일 것이다. 污者는 洼者와 대조되고 있는데, 洼者가 '{...}'이었으니, 污者는 '{...}'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音烏//司馬云/若污下, '{...}'라고 하였다. 宣穎은 窊也, '{...}'라고 했다. 也는 池의 오기가 아닌가 싶다. ◈◈ 郭象은 此略舉眾竅之所似,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木既百圍/穴亦奇眾/故或似人之口鼻/或似獸之闌圈/或似人之耳孔/或似舍之枅㭼/或洼曲而擁腫/或污下而不平//形勢無窮/略陳此八事//亦猶世閒萬物/種類不同/或醜或妍/蓋稟之造化, '{...}'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司馬云/言風吹竅穴動作/或似人鼻/或似人口, '{...}'라고 하했다. ◈◈ 宣穎은 三象身/三象物/二象地/皆狀木之竅形, '{...}'라고 하였다. 窊也는 窊池의 오기가 아닌가 하다. ◈◈ 孃破案 : 이 부분에 나온 말들은 모두 {...}을 형용한 표현들이다. [본문으로]
  17. 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宎者/咬者, ◈ 앞의 鼻, 口, 耳 등이 {...}을 형용하는 말이었다면, 이 부분의 激, 謞 등은 모두 {...}를 형용하는 말이다. 이에 맞추어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激者는 '{...}' 보다는, '{...}'처럼 해석해야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나는 대체로 宣穎의 설을 따랐다. ◈ 激者는 명사구로, 바람이 '{...}'를 뜻한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激을 받는다. 激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激은 본래 '{...}'는 뜻이다. 宣穎은 如水激聲,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如水湍激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經歷反/如水激也//李古弔反//司馬云/聲若激喚也///李又驅弔反, '{...}'라고 하였다. 郭慶藩은 慧琳一切經音義六十八阿毘達摩大婆沙論卷四引司馬云/流急曰激也///七十八音經律異相卷十四/九十/高僧傳十三引並同//又文選盧子諒時興詩注/玄應眾經音義十四引亦同//與釋文所引異, '{...}'라고 하였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眾經音義》는 《衆經音義》와 같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謞者는 명사구로, 바람이 '{...}'일 것이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謞를 받는다. 謞는 관형어로, 아마 '{...}' 같이 소리의 모습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謞는 원래 '{...}'는 말이다. 여기서 謞는 '{...}'라고 읽는데, 아마 '{...}' 같은 소리를 표현한 말인 듯하다. 宣穎은 如箭去聲,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如箭鏃頭孔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孝//李虛交反//簡文云/若箭去之聲///司馬云/若讙謞聲, '{...}'라고 했다. 盧文弨는 舊音考/訛//今注本音孝/從之, '{...}'라고 하였다. ◈ 叱者는 명사구로, '{...}'를 이를 것이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叱을 받는다. 叱은 관형어로, 아마 '{...}'이라는 말일 것이다. 叱은 본래 '{...}'는 말이다. 그러나 바람 소리가 {...}처럼 들릴 수는 없으니, '{...}'처럼 해석해야 할 것이다. 宣穎은 出而聲粗,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咄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昌實反//徐音七//司馬云/若叱咄聲, '{...}'라고 하였다. ◈ 吸者는 명사구로, 바람이 '{...}'일 것이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吸을 받는다. 吸은 원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해야 할 듯하다. 宣穎은 入而聲細,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如呼吸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許及反//司馬云/若噓吸聲也, '{...}'라고 했다. ◈ 叫者는 명사구로, '{...}'를 뜻하는 듯하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叫를 받는다. 叫는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해야 할 것이다. 宣穎은 高而聲揚,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如叫呼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古弔反//郭古幼反//李居曜反//司馬云/若叫呼聲也, '{...}'라고 했다. ◈ 譹者는 명사구로, '{...}'인 듯하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譹를 받는다. 譹는 원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叫와 대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나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하였다. 安東林은 '{...}'라고 하였고, 宣穎은 下而聲濁,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哭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豪//郭又戶報反//司馬云/若譹哭聲, '{...}'라고 했다. 盧文弨는 舊脫者字/今增/與眾句一例, '{...}'라고 하였다. ◈ 宎者는 명사구로, '{...}'를 뜻하는 듯하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宎를 받는다. 宎는 본래 방의 '{...}'이라는 말이다. 나는 뒤의 咬者와 대조된다고 보았다. 咬者는 '{...}'다. 따라서 宎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해야 한다. 安東林은 '{...}'이라고 하였다. 宣穎은 深而聲留,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宎者/深也/若深谷然,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於堯反//一音杳//又於弔反//司馬云/深者也/若深宎宎然, '{...}'라고 했다. ◈ 咬者는 명사구로, '{...}'를 뜻하는 듯하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라고 해석해야 한다. 咬를 받는다. 咬는 '{...}'를 뜻한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되어야 한다. 《詩》 「國風 秦風」의 「黃鳥」에 交交黃鳥라는 말이 있는데, 交交를 黃鳥가 우는 소리라고 해석하고, 이 交가 咬의 가차자라고 본다면, 咬 역시 '{...}'가 되어야 한다. 王先謙의 설이다. 安東林은 '{...}'라고 하였다. 宣穎은 鳴而聲淸,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哀切聲,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於交反//或音狡//司馬云/聲哀切咬咬然///又許拜反,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交交黃鳥/三家詩作咬咬, '{...}'라고 하였다. 《三家詩》는 《魯詩》, 《齊詩》, 《韓詩》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王先謙이 인용한 交交黃鳥는 《詩》 「國風 秦風」의 「黃鳥」에 나오는 어구이다. 毛亨은 《毛詩》에서 交交/小貌, '{...}'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毛詩正義》에서 黃鳥/小鳥也/故以交交爲小貌, '{...}'라고 하였다. 그런데 《詩》 「小雅 桑扈之什」의 「桑扈」에 交交桑扈, '{...}'라는 구절에 대해, 鄭玄은 交交/猶佼佼/飛往來貌, '{...}'라고 하였다. 한편 朱熹는 《詩集傳》에서 交交/飛而往來之貌, '{...}'라고 하였는데, 설명이 같은 것을 보면 朱熹가 鄭玄을 {...} 분명하다. 따라서 「齊物論」의 이 구절에서도 咬는 宣穎처럼 {...}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 郭象은 此略舉眾竅之聲殊,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略舉樹穴/即有八種//風吹木竅/還作八聲//亦猶人稟分不同/種種差異/率性而動/莫不均齊//假令小大夭壽/未足以相傾, '{...}'라고 하였다. ◈◈ 宣穎은 皆狀竅聲,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나는 激, 謞, 叱, 吸, 叫, 譹, 宎, 咬를 풀이할 때, 글자의 {...} 않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8. 前者唱于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 ◈ 前者는 명사구로, '{...}'이다. 먼저 {...}을 이른다. 隨者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前은 관형어로, '{...}'이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구멍을 가리킨다. ◈ 唱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陸德明은 如字, '{...}'라고 하였다. ◈ 于는 '{...}' 같은 의성어다. 于于처럼 {...} 이루고 있다. 安東林은 '{...}'이라고 하였다. ◈ 前者唱于而隨者唱喁의 而는 '{...}'이다. 則과 같다. 《禮記》 「喪服小記」에 士妾有子而爲之緦/無子則已, '{...}'라는 말이 있고, 《墨子》 「明鬼 下」에 非父則母/非兄而姒也, '{...}'라는 말이 있으며, 《史記》 「季布欒布列傳」에 與楚則漢破/與漢而楚破, '{...}'라는 말이 있다. 예문들에서 而는 모두 '{...}'으로, 則과 의미가 같다. 而가 則과 서로 교차되어 쓰인 사례도 있다. 《禮記》 「樂記」에 喜則天下和之/怒則暴亂者畏之,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荀子》 「樂論」에는 喜而天下和之/怒而曓亂畏之라고 되어 있다. 《孟子》 「公孫丑 上」에 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 '{...}'라는 말이 있는데, 《孟子》 「萬章 下」에는 이 말이 可以速而速/可以久而久/可以處而處/可以仕而仕라고 되어 있다. 而와 則이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소개되어 있다. ◈ 隨者는 '{...}'이다. 나중에 {...}을 이른다. 前者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隨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구멍을 가리킨다. ◈ 喁도 '{...}' 같은 의성어로 해석해야 하겠다. 喁喁처럼 보아야 한다. 安東林은 '{...}'이라고 하였다. 다만 于와 喁가 의성어로 {...} 상정하고 于와 喁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陸德明은 五恭反//徐又音愚//又五斗反//李云/于喁/聲之相和也, '{...}'라고 하였다. ◈ 泠風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 같다. 泠風則小和, '{...}'라고 하였으니, 小和의 의미를 감안하여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된다. 반대로 바로 뒤에는 飄風則大和, '{...}'라고 하였으니, 飄風은 '{...}'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泠은 본래 '{...}'라는 말인데, 상기하였듯, 여기에서는 관형어로 '{...}'처럼 해석해야 한다. 風은 체언으로, '{...}'이다. 成玄英은 小風,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零//李云/泠泠/小風也, '{...}'라고 하였다. ◈ 則은 '{...}'이다. ◈ 小和의 小는 부사어로, '{...}'다. 和를 한정한다. ◈ 和는 용언으로, 아마 '{...}'는 말인 것 같다. 陸德明은 胡臥反//下及注皆同, '{...}'라고 하였다. ◈ 飄風은 명사구로, '{...}'이다. 飄風은 본래 '{...}'를 이른다. 《說文解字》 「風部」에는 飄/回風也//从風㶾聲, '{...}'라고 되어 있고, 《爾雅》 「釋天」에는 迴風爲飄, '{...}'라고 되어 있다. '{...}'은 물론 '{...}'를 이른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飄風은 泠風과 대구를 이루고 있고, 泠風이 '{...}'을 뜻하기 때문에, 飄風은 '{...}'이 되어야 한다. 즉, 飄는 관형어로 '{...}'이 되고, 風은 체언으로, '{...}'이 된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大風,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鼻遙反/又符遙反//李敷遙反//司馬云/疾風也///爾雅云/回風爲飄, '{...}'라고 하였다. ◈ 大和의 大는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郭象은 夫聲之宮商雖千變萬化/唱和大小/莫不稱其所受而各當其分,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于喁/皆是風吹樹動前後相隨之聲也//故泠清風/和聲即小//暴疾飄風/和聲即大//各稱所受/曾無勝劣/以況萬物稟氣自然,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9. 厲風濟則眾竅爲虛, ◈ 厲風은 명사구로, '{...}'이라는 말이다. 厲는 烈과 통용된다. 《詩》 「大雅 文王之什」의 「思齊」에 烈假不瑕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은 鄭讀烈假爲厲瘕, '{...}'라고 하였다. 물론 이 경우는 烈이 「思齊」 안에서 일종의 병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고, 厲에 역시 병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鄭玄이 차용한 것이겠으나, 烈을 厲의 의미로 사용하였다면, 厲를 烈의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는 법이다. 즉, 厲는 '{...}'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風은 체언으로, '{...}'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厲/大也/烈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厲風에 대해 司馬云/大風///向/郭云/烈風, '{...}'라고 하였다. ◈ 濟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詩》 「國風 鄘風」의 「載馳」에 既不我嘉/不能旋濟, '{...}'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毛亨은 濟를 止, '{...}'라고 풀이하였다. 郭慶藩도 이 시를 예로 들었다. 郭慶藩은 厲風濟/濟者止也//詩鄘風載馳篇旋濟/毛傳曰/濟/止也///風止則萬籟寂然/故曰眾竅爲虛, '{...}'라고 하였다. 「載馳」은 「國風」에 속한다. 《毛傳》은 毛亨의 《傳》을 뜻한다. 郭象은 止, '{...}'라고 하였다. 成玄英도 止,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子細反//向云/止也, '{...}'라고 했다. ◈ 則은 '{...}'이다. ◈ 眾竅는 명사구로, '{...}'이다. 眾은 관형어로, '{...}'이다. 竅는 체언으로, '{...}'이다. ◈ 爲는 '{...}'는 말로 보인다. ◈ 虛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郭象은 烈風作則眾竅實/及其止則眾竅虛//虛實雖異/其於各得則同,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大風止則眾竅虛/及其動則眾竅實//虛實雖異/各得則同耳//況四序盈虛/二儀生殺/既無心於亭毒/豈有意於虔劉,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風止則萬竅寂然,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0. 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 ◈ 而獨不見의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而를 2인칭 대명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子游를 이르는 말이 된다. 成玄英은 而/汝也, '{...}'라고 하였다. ◈ 獨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之調調의 之는 是처럼 '{...}'처럼 번역해야 한다. 「逍遙遊」에 之人也, '{...}'이나, 之二蟲, '{...}'라는 표현이 있었다. 之刁刁의 之도 그렇다. ◈ 調調와 刁刁는 '{...}'처럼 {...}는 모습을 표현한 말 같다. 刁刁는 《經典釋文》과 《莊子集解》에는 刁刁라고 되어 있는데, 《莊子集釋》에서는 刀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盧文弨가 舊俱作刁/俗//今改依正體, '{...}'라는 말이 있다. 또, 郭慶藩은 刀字依世德堂本及盧校改/下注及疏文並同, '{...}'라고 하였다. 나는 刁를 그대로 따랐다. 郭象은 調調刀刀/動搖貌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調調刀刀/動搖之貌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音條//徐都堯反//向云/調調刁刁/皆動搖貌, '{...}'라고 하였다. ◈ 乎는 {...}다. ◈◈ 郭象은 言物聲既異/而形之動搖亦又不同也//動雖不同/其得齊一耳/豈調調獨是而刀刀獨非乎,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物形既異/動亦不同/雖有調刀之殊/而終無是非之異//況盈虛聚散/生死窮通/物理自然/不得不爾/豈有是非臧否於其間哉,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21. 子游曰 [본문으로]
  22. 地籟則眾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 ◈ 地籟는 명사구로, '{...}'다. 地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籟는 체언으로, '{...}'다. ◈ 則은 '{...}'이라는 말이다. 即과 같다. ◈ 眾竅는 명사구로, '{...}'이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 보면, '{...}'라고 번역해야 할 듯하다. 眾은 관형어로, '{...}'이다. 竅는 체언으로, '{...}'이다. ◈ 是已는 '{...}'라는 표현 같다. 즉, 地籟則眾竅是已는 '{...}'가 되는데, 이는 사실 '{...}'라는 뜻이다. 따라서 地籟則眾竅是已는 '{...}'가 아니라, '{...}'처럼 이해해야 하겠다. 人籟則比竹是已도 그렇다. 是已에 대해서는, 「逍遙遊」에 湯之問棘也是已, '{...}'라는 말이 있고, 《外篇》 「胠篋」에 自三代以下者是已, '{...}'라는 말이 있으며, 《列子》 「黃帝」에 孔墨是已, '{...}'라는 말이 있다. 《呂氏春秋》 「仲春紀 當染」에 六君者是已, '{...}'라는 말이 있다. ◈ 比竹은 체언으로, 아마 '{...}' 같은 악기의 이름으로 보인다. 比는 '{...}'는 말이고, 竹은 '{...}'다. 퉁소는 {...}고 하여서 比竹이라고 한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 比竹은 人籟를 뜻하므로, 아마 '{...}'을 비유한 표현일 것이다. 王先謙은 以竹相比而吹之,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毗志反//又必履反//李扶必反//注同, '{...}'라고 하였다. ◈ 敢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問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成玄英은 地籟則竅穴之徒/人籟則簫管之類/並皆眼見/此則可知//惟天籟深玄/卒難頓悟/敢陳庸/昧請決所疑,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앞의 글에서는 地籟에 대한 설명만 나오기 때문에, 人籟에 대한 글이 실전된 게 아닌가 의뭉스럽다. 人籟를 比竹이라 하기는 {...} 주목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憨山은 人籟比竹/雖是人爲/曲屈而無機心/故不必說, '{...}'라고 하였다. {...} 그러나 나는 憨山의 의견으로 人籟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 해소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23. 子綦曰 [본문으로]
  24. 夫吹萬不同/而使其自已也, ◈ 夫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 吹는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체언으로 '{...}'으로 보아야 한다. 앞에서 大塊噫氣/其名爲風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의 噫와 吹가 의미가 같다. ◈ 萬은 부사어로, '{...}' 같은 표현이다. 郭慶藩은 吹萬에 대해 文選謝靈運九日從宋公戲馬臺集送孔令詩注引司馬云/吹萬/言天氣吹煦/生養萬物/形氣不同//已/止也/使各得其性而止///謝靈運道路憶山中詩注/江文通雜體詩注引同//釋文闕, '{...}'라고 하였다. 「九日從宋公戲」는 《文選》의 「九日從宋公戲馬臺集送孔令詩」를 이른다. 《文選》에는 「九日從宋公戲馬臺集送孔令詩」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72번 째의 謝宣遠이 쓴 시이고, 다른 하나는 74번째의 謝靈運이 쓴 시다. 謝宣遠이 謝靈運의 집안 형이다. 인용된 시는 謝靈運이 쓴 것이다. 《文選》의 注는 李善의 注를 이른다. 「雜體詩」는 30首가 등장하는데, 江文通의 것은 「張廷尉綽」이다. 「道路憶山中」에는 吹萬/言天氣吹煦/生養萬物/形氣不同이 빠져 있고, 「張廷尉綽」에는 吹萬이 빠져 있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不은 부정어다. ◈ 同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而使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使는 용언으로, 아마 爲처럼 '{...}'라는 말 같다. 내용을 따져 보면, 소리를 '{...}'라고 해석될 것이다. ◈ 其는 아마 竅穴, 즉 '{...}'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앞에서 바람이 구멍에 들어가서 소리를 일으킨다고 했다. '{...}'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 自는 체언으로, '{...}'를 이르는 듯하다. '{...}'라고 보면 바람이 없어도 소리가 난다는 말이 되는데, '{...}'는 내용에 모순된다. ◈ 已는 아마 '{...}'와 같은 어미일 것이다. 吹萬 부분에서 郭慶藩이 인용한 말을 보면, 司馬彪는 已/止也/使各得其性而止, '{...}'라고 했다고 한다. 已를 '{...}' 같은 용언으로 본다면, 使其自已는 '{...}'처럼 번역될 것이다. ◈◈ 郭象은 此天籟也//夫天籟者/豈復別有一物哉//即眾竅比竹之屬/接乎有生之類/會而共成一天耳//無既無矣/則不能生有//有之未生/又不能爲生//然則生生者誰哉//塊然而自生耳//自生耳/非我生也//我既不能生物/物亦不能生我/則我自然矣//自己而然/則謂之天然//天然耳/非爲也/故以天言之//以天言之所以明其自然也/豈蒼蒼之謂哉//而或者謂天籟役物使從己也//夫天且不能自有/況能有物哉//故天者/萬物之總名也/莫適爲天/誰主役物乎//故物各自生而無所出焉/此天道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天者/萬物之總名/自然之別稱/豈蒼蒼之謂哉//故夫天籟者/豈別有一物邪//即比竹眾竅接乎有生之類是爾//尋夫生生者誰乎/蓋無物也//故外不待乎物/內不資乎我/塊然而生/獨化者也//是以郭注云/自己而然/則謂之天然//故以天然言之者/所以明其自然也//而言吹萬不同//且風唯一體/竅則萬殊/雖復大小不同/而各稱所受/咸率自知/豈賴他哉//此天籟也//故知春生夏長/目視耳聽/近取諸身/遠託諸物/皆不知其所以/悉莫辨其所然//使其自己/當分各足/率性而動/不由心智/所謂亭之毒之/此天籟之大意者也, '{...}'라고 하였다. 亭之毒之라는 말은 《道德經》 51장에 나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亭毒을 '기르다'라고 보지만, 해석에는 이견이 있다. 「人間世」의 無門無毒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라. [본문으로]
  25. 咸其自取/怒者其誰邪, ◈ 咸은 부사어로, '{...}'다. 아마 {...}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고, {...}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怒者其誰邪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 더 타당할 듯하다. ◈ 咸其自取의 其는 咸이 포괄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아마 '{...}'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其가 대명사라면, 其自가 체언으로서 이 문장의 주어 역할을 해야 할 텐데, 其를 일반적으로 이렇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뭉스럽다. 그래서 혹시 其가 '{...}'나 '{...}' 같은 부사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 自는 체언으로, '{...}'라는 말이다. ◈ 取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여기서는 소리를 '{...}'처럼 해석하면 좋겠다. 그러면 咸其自取는 '{...}'라는 말이 된다. 成玄英은 自取/猶自得也, '{...}'라고 하였다. ◈ 怒者는 명사구로, '{...}'을 이르는 듯하다. 怒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者는 '{...}'인데, 여기서는 아마 '{...}'을 가리키는 말 같다. ◈ 其誰는 '{...}'라는 말이다. 其誰의 其는 '{...}'처럼 지시하는 말이다. 誰는 '{...}'다. ◈ 邪는 반문하는 의문사다. '{...}'라고 읽는다. ◈◈ 郭象은 物皆自得之耳/誰主怒之使然哉//此重明天籟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言風竅不同/形聲乃異/至於各自取足/未始不齊/而怒動爲聲/誰使之然也//欲明群生糾紛/萬象參差/分內自取/未嘗不足/或飛或走/誰使其然/故知鼓之怒之/莫知其宰//此則重明天籟之義者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待風鳴者地籟/而風之使竅自鳴者/即天籟也//引子綦言畢,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此文以吹引言//風所吹萬有不同/而使之鳴者/仍使其自止也//且/每竅各成一聲/是鳴者仍皆其自取也//然則/萬竅怒呺/有使之怒者/而怒者果誰邪//悟其爲誰/則衆聲之鳴皆不能無所待/而成形者/更可知矣//又/何所謂得喪乎//怒者其誰/使人言下自領/下文所謂眞君也, '{...}'라고 하였다. 나와 의견이 같지는 않지만, 王先謙 역시 莊子가 이 글에서 바람과 구멍을 통해 道를 드러내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 孃破案 : 莊子는 구멍에서 나는 소리가 {...} 화답할 소리를 낼 수가 없다. 莊子는 「人間世」에서 心齋에 대해 {...} 眞宰나 眞君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眞宰와 眞君의 역할 또한 天籟와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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