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1 - 학이 - 15 - 빈이무첨

2024. 4. 19. 12:56논어 이야기/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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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논어》 번역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정태현(鄭泰鉉)의 2013년 번역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陸德明의 《經典釋文》, 韓愈의 《論語筆解》, 邢昺의 《論語註疏》, 朱熹의 《論語集註》, 阮元의 《十三經注疏校勘記》, 劉寶楠의 《論語正義》, 俞樾의 《群經平議》, 그리고 주석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참고하였습니다. 본래 《논어》의 주석으로는 朱熹의 《集註》가 유명하지만, 皇侃의 《義疏》에는 南北朝 시대 학자들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고, 邢昺의 《註疏》에는 唐代까지의 정통 官學적 관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經典釋文》과 《校勘記》에는 판본에 따라 글자가 어떻게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가 소개되어 있고, 劉寶楠의 《正義》에는 이전까지의 연구 성과들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고, 또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俞樾의 《群經平議》에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논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참고하여,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설을 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은 한 글자에 대한 풀이인데, 학자들의 설을 각각 구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韓을 풀이하는데, 劉寶楠의 설을 소개하고, 또 俞樾의 설을 소개한다면, 그 사이에 ▼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논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 박정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4년 4월 19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주석을 따로 보고 싶은 분들은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331

 

<하단 주석> 논어 - 1 - 학이 - 15 - 빈이무첨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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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貢曰

:「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

子曰:

「可也。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

子曰:

「賜也,始可與言詩已矣!告諸往而知來者。」

 

 

 

자공이 물었다.(子貢曰, ◈ 판본에 따라 子貢 다음에 問이 있는 경우도 있다. 問이 있으면 子貢問曰이 된다. 阮元의 설을 볼 때, 옛 판본에 問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나는 問이 있다고 보고 번역하였다. ▼ 阮元은 子貢曰에 대해, 皇本作/子貢問曰//案/皇䟽云/子貢問言/若有貧者/能不橫求/何如//故云貧而無諂也///邢䟽云/若能貧無諂佞/富不驕逸/子貢以爲善/故問夫子曰/其德行何如///據此則/古本當有問字, ‘子貢曰이 《皇侃本》에는 子貢問曰로 되어 있다. 皇侃은 “子貢의 질문은, 만약 가난한데도 무리하게 바라지 않는 자가 있다면 어떻겠느냐는 뜻이다. 그래서 貧而無諂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였고, 邢昺은 “만약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자. 子貢은 이런 경지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夫子에게 ‘그런 사람의 德行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은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말들을 살펴 볼 때, 옛 판본에는 분명 子貢問曰이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皇本/子貢下有問字, ‘《皇侃本》에는 子貢 다음에 問이 있다’라고 하였다. ◈ 子貢은 孔子의 제자인 端木賜다. 말을 잘하였고, 재물 관계에 밝았다. 子貢에 대해서는 「學而」 10장인 夫子至於是邦也 부분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였었다. ◈ 問은 용언으로, ‘묻다’는 말이다. ◈ 曰은 용언으로, ‘말하다’는 말이다. 말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지금의 따옴표처럼 사용된다. ◈◈ 邢昺은 此章言貧之與富皆當樂道自脩也, ‘본문의 子曰에서 來者까지에 대한 해설이다. 이 장에서는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모두 마땅히 道를 즐기고,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이 장에서는 君子가 추구해야 할 경지와, 또, 어느 한 경지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 정진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가난하면서도 알랑거리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괜찮겠느냐.”(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 ◈ 貧은 용언으로, ‘가난하다’, ‘빈궁하다’는 말이다. 재정적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말이다. ▼ 皇侃은 屯財曰貧, ‘재물 사정이 어려운 모습을 貧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乏財曰貧, ‘재물이 없는 모습을 貧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說文/貧/財分少也, ‘《說文》에서는 “貧은 재물에 대한 몫이 적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貧은 「貝部」에 있다. ◈ 貧而無諂의 而는 ‘~하더라도’, ‘~하지만’처럼 해석된다. 富而無驕의 而도 그렇다. ◈ 無諂의 無는 부정어로, ‘~하지 않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不과 같다. 無驕의 無도 그렇다. ◈ 諂은 용언으로, ‘아첨하다’, ‘아부하다’는 말이다. 아쉬운 소리를 하며 알랑거리는 짓을 이른다. 《莊子》 「漁父」에 에 希意道言/謂之諂, ‘뜻을 바라고 말을 이끌어 가는 짓, 이를 諂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고, 《荀子》 「修身」에 以不善先人者謂之諂/以不善和人者謂之諛, ‘선하지 않은 의도로 남을 이끌어 가는 짓, 이를 諂이라고 하고, 선하지 않은 의도로 남과 어울리는 짓, 이를 諛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 皇侃은 非分橫求曰諂也, ‘분수에 맞지 않는데도 이치에 맞지 않게 원하는 모습을 諂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范甯云/不以正道求人爲諂也, ‘范甯은 “올바른 도리를 거치지 않고 남에게 바라는 짓을 諂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陸德明은 諂/勑檢反, ‘諂는 勑와 檢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佞說爲諂, ‘알랑거리면서 말을 하는 모습을 諂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諂/卑屈也, ‘諂는 비굴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諂에 대해, 十行本閩本/諂誤謟/後凡諂字二本竝誤//案五經文字云/謟諂上音滔從爫從白//凡字聲近謟者/皆從舀下笞冉反從⺈從臼凡字聲近諂者/皆從臽, ‘《十行本》과 《閩本》에는 諂이 謟로 잘못되어 있다. 뒤에 나오는 諂들도 두 판본에는 모두 잘못되어 있다. 살펴 보면, 《五經文字》에는 “謟諂에 대한 설명이다. 앞의 글자의 音은 滔이고, 爫와 白이 들어 있다. 소리가 謟와 비슷한 모든 글자들에는 모두 舀가 들어 있다. 뒤의 글자는 笞와 冉의 반절로 읽는다. ⺈과 臼가 들어 있다. 소리가 諂과 비슷한 모든 글자들에는 모두 臽이 들어 있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五經文字》는 唐나라의 張參이 776년에 편찬한 자서다. ▼ 劉寶楠은 又/讇/諛也///諂讇或從臽//皇疏引范寧曰/不以正道求人爲諂也, ‘또 “讇은 諛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諂과 讇에는 臽이 글자에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皇侃은 范寧이 “올바른 도리를 거치지 않고 남에게 바라는 짓을 諂이라고 한다”라고 한 말을 인용해 두었다’라고 하였다. 讇/諛也는 《說文解字》 「言部」에 기재되어 있다. ◈ 富는 용언으로, ‘부유하다’, ‘넉넉하다’는 말이다. 재정적 상황에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 皇侃은 積蓄財帛曰富, ‘재물과 비단을 모아 둔 모습을 富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多財曰富, ‘재물이 많은 모습을 富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說文/富/備也/一曰厚也///人財多/當無不備也, ‘《說文》에는 “富는 갖추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두텁다는 뜻이라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사람에게 재물이 많으면, 당연히 갖추지 않은 바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富에 대한 인용문은 「宀部」에 있다. ◈ 驕는 용언으로, ‘교만하다’, ‘오만하다’는 말이다.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멋대로 구는 짓을 이른다. ▼ 皇侃은 陵上慢下曰驕也, ‘윗사람을 능멸하고, 아랫사람에게 거만하게 구는 모습을 驕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傲逸爲驕, ‘오만하고 방종한 모습을 驕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驕/矜肆也, ‘驕는 멋대로 군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驕者/馬高六尺之名//人自高大/故亦稱驕//皇疏/富厚者既得人所求/好生陵慢/是爲驕也, ‘驕는 말의 키가 여섯 자라는 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마찬가지로 驕라고 한다. 皇侃은 “부가 쌓인 경우, 이미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바를 갖춘 셈이므로, 이에 남을 능멸하고, 거만하게 굴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래서 驕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何如는 ‘어떻겠느냐’, ‘괜찮겠느냐’라는 표현이다. 상대방의 평가를 묻는 말이다. 즉, 貧해도 諂하지 않고,富해도 驕하지 않다면, 높은 경지라고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何如는 본래 如何가 되어야 하지만, 何가 의문사라서 도치된 듯 보인다. 何는 의문사로, ‘무엇’, ‘어떤 것’을 이르고, 如는 용언으로, ‘같다’는 말이다. 如가 ‘같다’는 말인데, 若 역시 ‘같다’는 말이므로, 如를 若으로 바꿔서 何若이라고 하기도 한다. 《說苑》 「雜言」에 顏淵之爲人也/何若, ‘顏淵의 됨됨이는 어떠냐’, 子貢之爲人也/何若, ‘子貢의 됨됨이는 어떠냐’라는 말이 있다. ▼ 皇侃은 陳二事既畢/故問云何如也, ‘두 가지 사안을 이미 마쳤으니, 이에 어떠하냐고 물은 말이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何如者/何似也, ‘何如는 무엇과 비슷하냐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貧而無諂에 대해, 乏財者好以非分橫求也//子貢問/言若有貧者能不橫求何如//故云/貧而無諂也, ‘재물이 부족하면, 분수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원한다. 子貢의 질문은, 만약 가난한데도 무리하게 바라지 않는 자가 있다면 어떻겠느냐는 뜻이다. 그래서 貧而無諂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富而無驕에 대해 富積者既得人所求好生陵慢//故云/富而無驕也, ‘부가 쌓인 경우, 이미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바를 갖춘 셈이므로, 이에 남을 능멸하고, 거만하게 굴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래서 富而無驕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言人貧多佞說/富多傲逸//若能貧無諂佞/富不驕逸/子貢以爲善/故問夫子曰/其德行何如, ‘가난하면 알랑거리는 경우가 많고, 부유하면 교만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만약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자. 子貢은 이런 경지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夫子에게 “그런 사람의 德行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은 것이다’라고 했다. ◈◈ 朱熹는 常人溺於貧富之中/而不知所以自守/故必有二者之病//無諂無驕/則知自守矣/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하는 것에 허우적대지만, 자신을 지켜야 할 까닭은 모른다. 이에 이 두 가지가 반드시 병폐가 된다. 알랑거리지도 않고, 교만하게 굴지도 않는다면,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貧富라는 관념 밖으로 초월해 나갈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가난하면 비굴해지고, 비굴해지면 남에게 알랑거리게 된다. 부유하면 자만하게 되고, 자만하면 남에게 교만하게 굴게 된다. 그런데 가난해도 알랑거리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게 굴지 않는다면, 충분히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 높은 자리에 올라 가면 본성이 드러난다는 말이 유행하는데, 바로 富而無驕에 들어 맞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공자가 말했다.(子曰, ◈ 子는 孔子를 이른다.)

 

“좋다. [그러나] 가난하더라도 이치를 즐기고, 부유하더라도 예법을 따르는 경우 보다는 못하다.”(可也//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 ◈ 貧而樂의 樂 다음에 판본에 따라 道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道가 있다면, 貧而樂道/富而好禮가 된다. 道가 있는 판본이 타당할 것이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로, 옛날 판본인 皇侃의 《論語集解義疏》, 즉 속칭 《皇侃本》에는 道가 본문에 들어 있다. 두 번째로, 孔安國이 자기 주석에서 본문을 貧而樂道/富而好禮라고 인용해 두었다. 세 번째로,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이 말이 貧而樂道/富而好禮로 인용되어 있다. 네 번째로, 道가 없으면 貧而樂/富而好禮가 되어 앞뒤 句의 글자 수가 맞지 않고, 문법적 구조도 앞뒤 句가 서로 다른데, 道가 있으면 貧而樂道/富而好禮가 되어 대칭을 이루고, 문법적 구조도 동일하게 된다. 《皇侃本》의 본문에 道가 있었던 점을 보면, 그 당시까지는 道가 들어 있었다가 唐宋 시대에 道가 빠진 판본이 주류가 되면서 본문에서 빠진 모양이다. 陳鱣은 鄭玄이 道가 없는 《魯論》을 참조했고, 孔安國은 《古論》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참고할 만하다. 陳鱣의 설은 劉寶楠이 인용해 두었다. 나는 본문에 道를 추가하지는 않았지만, 번역할 때는 道가 있다고 보고 하였으며, 주석에서도 樂 다음에 道를 해 두었다. 이 道에 대해서는 阮元이 상세하게 설명해 두었다. 阮元의 설은 道 부분에 소개해 두었다. ◈ 可는 ‘옳다’가 아니라 ‘좋다’, ‘괜찮다’는 말이다. 맥락을 살펴 보면, 그 정도도 좋지만, 더 나은 경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可에는 ‘옳다’라는 의미도 있고, ‘좋다’, ‘괜찮다’는 의미도 있다. 《莊子》 「齊物論」에 可乎可/不可乎不可,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것을 옳다고 하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옳지 않다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앞의 可와 不可의 可는 ‘좋다’, ‘괜찮다’는 뜻이고, 뒤의 可와 不可의 可는 ‘옳다’는 뜻이다. ▼ 孔安國은 未足多, ‘충분하게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多는 ‘훌륭하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 皇侃은 荅子貢也//言貧富如此乃是可耳//未足爲多也//范甯云/孔子以爲不驕不諂於道雖可/未及臧也, ‘子貢에 대한 대답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이러하다면 괜찮다는 뜻이다. 그러나 충분하게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范甯은 “孔子는 子貢이 설명한 사람들이 도리에 비추어 볼 때 교만하지도 않고, 아첨하지도 않는 모습이 괜찮다고는 하였으나, 훌륭한 경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邢昺은 此夫子答子貢也//時子貢富/志怠於學/故發此問/意謂不驕而爲美德/故孔子抑之/云/可也///言未足多, ‘이 말은 夫子가 子貢에게 대답한 표현이다. 그 때 子貢은 부유하였고, 子貢의 마음가짐은 공부에 태만하였다. 그래서 아까와 같이, 교만하지만 않으면 美德이라고 할 만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에 孔子는 子貢을 억제하면서, “괜찮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凡曰可者/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 ‘대저, 可라는 말은, 겨우 괜찮을 뿐, 완전하지는 않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可也의 也는 말을 끝내는 조사다. ◈ 未若은 ‘~만 못하다’는 말이다. 不如와 같다. 未는 부정어로, 不과 같다. 若을 한정한다. 若은 용언으로, ‘~와 같다’는 말이다. 貧而樂/富而好禮者를 받는다. ▼ 劉寶楠은 未若/猶言未如//儀禮/有司徹注/今文若爲如///是二字/義同, ‘未若은 未如라는 말과 같다. 《儀禮》 「有司徹」에 대한 주석에서, “今文에는 若이 如로 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두 글자와 의미가 같다’라고 하였다. 《儀禮》 「有司徹」에 대한 주석은 鄭玄의 설명으로, 若是以辯에 달려 있다. ◈ 貧은 용언으로, ‘가난하다’, ‘빈궁하다’는 말이다. ◈ 貧而樂의 而는 ‘~하더라도’, ‘~하지만’처럼 해석된다. 富而好禮의 而도 그렇다. ◈ 樂은 용언으로, ‘즐기다’, ‘즐거워 하다’는 말이다. 樂道의 道를 받는다. ▼ 鄭玄은 樂/謂志於道/不以貧爲憂苦, ‘樂은 道에 뜻을 두되, 가난함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皇侃은 이 주석에 대해 顏愿是也, ‘顏回와 愿憲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顏回와 愿憲은 孔子의 제자 중 특별히 가난했던 사람들이었다. 劉寶楠은 이 주석에 대해, 鄭以樂即樂道/與古論同, ‘鄭玄은 樂을 樂道라고 풀이하였는데, 이는 《古論》과 같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樂音洛/注同, ‘樂은 洛이라고 읽는다. 주석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樂/謂志於善道/不以貧爲憂苦, ‘樂은 善道에 뜻을 두고 있어서, 가난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樂/音洛, ‘樂은 洛이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呂氏春秋/愼人篇/古之得道者/窮亦樂/達亦樂/所樂非窮達也//道得於此/則窮達一也/如寒暑風雨之節矣, ‘《呂氏春秋》 「愼人」에 “옛날 道를 터득한 사람은 가난해도 즐거워하고, 상황이 좋아도 즐거워했으니, 즐겁기가 가난한지, 상황이 좋은지에 달려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이 道를 깨달으면, 가난하건, 상황이 좋건, 모두 같게 되는 것이다. 춥거나 덥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하는 節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呂氏春秋》 「愼人」은 「孝行覽」에 속해 있다. 「愼人」에는 古之得道者/窮亦樂/達亦樂/所樂非窮達也//道得於此/則窮達一也/爲寒暑風雨之序矣라고 되어 있다. 마지막 句의 글자가 조금 다르다. ◈ 道는 체언으로, ‘道’다. 아마 ‘올바른 도리’, ‘올바른 이치’를 이를 것이다. 상기하였듯 이 道는 판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 阮元은 道에 대해, 皇本高麗本/樂下有道字//唐石經道字≪𦜶-⺼≫添//案/唐石經≪𦜶-⺼≫添字多/不足據此道字獨與古合//攷史記仲尼弟子列傳文選幽憤詩註引此文竝有道字/又下二節孔註及皇邢兩䟽亦有道字/俱足爲古本有道字之證, ‘《皇本》과 《高麗本》에는 樂 다음에 道가 있다. 《唐石經》에는 道가 본문 옆에 따로 기재되어 있다. 살펴 보건대, 《唐石經》에는 본문 옆에 따로 기재되어 있는 글자가 많다. 그러므로 《唐石經》만 가지고는 이 道가 옛 판본에도 있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없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본문과, 《文選》 「幽憤詩」의 주석에 이 글이 인용되어 있는데, 모두 道가 있다. 그리고 또, 이 아래의 두 節에 대한 孔安國의 주석 및 皇侃, 邢昺의 주석에서도 모두 道가 있다. 이 점들을 가지고 미루어 볼 때, 옛 판본에는 道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𦜶-⺼≫은 아마 旁과 같은 글자로, ‘곁’이라는 말일 것이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不如貧而樂道라고 인용되어 있다. 「幽憤詩」의 주석은 李善의 주석을 이른다. 이 주석은 樂道閑居, ‘道를 樂하고 한가하게 산다’라는 말에 붙어 있는데, 論語/子曰/貧而樂, ‘《論語》에는 孔子가 貧而樂이라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道가 없다. 이 외에,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 중 原憲 부분에 貧而樂道라는 말이 있다. ▼ 劉寶楠은 道에 대해, 皇本/高麗本/足利本並作樂道//唐石經/道字旁注//陳氏鱣/論語古訓云/鄭注本無道字/集解兼採古論///下引孔曰/能貧而樂道/是孔注古論本有道字//史記所載語亦是古論//仲尼弟子傳引不如貧而樂道/正與孔合//文選/幽憤詩/樂道閑居///注引論語/子曰/貧而樂道///是集解本有道字/今各本脫去//鄭據本蓋魯論/故無道字//今案/作樂道/自是古論//漢書/王莽傳/後漢書/東平王蒼傳注/引並無道字//與鄭本同//下篇/回也不改其樂/樂亦在其中矣/皆不言樂道/而義自可通/故鄭不從古以校魯也//至孔注是後人僞撰/陳君援孔注以證史記/稍誤, ‘《皇侃本》, 《高麗本》, 《足利本》에는 樂이 樂道라고 되어 있다. 《唐石經》에는 道가 옆에 붙은 주석으로 기재되어 있다. 陳鱣의 《論語古訓》에는 “鄭玄이 주석을 단 판본에는 道가 없다. 《集解》는 《古論》에서 글자를 가지고 왔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다음에 인용되어 있는 孔安國의 주석에서는 “가난하더라도 道를 좋아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孔安國이 주석을 단 《古論》에는 道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史記》에 실려 있는 말 역시 《古論》이다. 「仲尼弟子傳」에는 이 글이 不如貧而樂道이라고 인용되어 있으니, 孔安國의 주석과 합치된다. 《文選》에 실려 있는 「幽憤詩」의 “道를 樂하고 한가하게 산다”라는 말에 대한 주석에서는 《論語》를 “孔子는 ‘가난하더라도 道를 樂한다’라고 하였다”라고 인용해 놓았다. 이렇듯, 《集解》에는 道가 있었지만, 지금 판본들에는 빠져 있다. 鄭玄은 아마 《魯論》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鄭玄의 판본에는 道가 없는 것일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해 보건대, 樂道라고 되어 있던 판본은 본래 《古論》이었을 것이다. 《漢書》 「王莽傳」, 《後漢書》 「東平王蒼傳」에 대한 주석에도 이 글이 인용되어 있는데, 모두 道가 없어, 鄭玄의 판본과 같다. 다음 편에 나오는 回也/不改其樂이나, 樂亦在其中矣에서는 모두 “道를 樂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데, 그럼에도 의미가 자연스레 통한다. 그래서 鄭玄은 《古》를 따르지 않고, 《魯》를 가지고 교정했던 것이다. 또, 후세 사람들이 孔安國의 주석을 거짓으로 지어 내기에 이르러서는, 陳君이 孔安國의 주석을 援하여서 《史記》를 증명하려 했으나, 이미 잘못되고 말았다’라고 하였다. 陳鱣은 淸나라 嘉慶帝 때의 학자다. 王念孫, 錢大昕과 교분이 있었다. 《集解》는 何晏의 《論語集解》를 이른다. 「仲尼弟子傳」은 《史記》 「仲尼弟子列傳」이다. 「王莽傳」은 「王莽傳 上」이다. 未若貧而樂/富而好禮라고 인용되어 있다. 「東平王蒼傳」은 「光武十王列傳」을 이른다. 貧而無諂/富而無驕/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라고 인용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주석이 아니라 본문에 있다. 한편, 《後漢書》 「鄭范陳賈張列傳」의 故長陵令張楷行慕原憲, ‘故 長陵令 張楷는 原憲을 行慕했다’의 原憲에 대해, 李賢은 貧而樂道라고 주석을 달았다. 이 말은 《論語》의 이 구절을 직접 인용한 바는 아니지만, 道가 들어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참고차 기재하였다. 回也/不改其樂은 「雍也」에 나오고, 樂亦在其中矣는 「述而」에 나온다. 《古》와 《魯》는 《古論》와 《魯論》을 이른다. 陳君은 아마 陳鱣을 이를 것이다. ◈ 富는 용언으로, ‘부유하다’, ‘넉넉하다’는 말이다. ◈ 好는 용언으로, 아마 ‘좇다’, ‘따르다’는 말일 것이다. ‘좋아하다’처럼 해석해도 좋겠다. 好禮의 禮를 받는다. 《莊子》 「養生主」에 臣之所好者道也, ‘臣이 好하는 바는 道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好는 ‘좇다’, ‘따르다’는 의미에 가깝다. 또, 《荀子》 「勸學」에 學之經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 ‘공부를 빠르게 성취하는 방법으로는, 탁월한 사람을 好하는 것 보다 신속한 방식이 없다. 禮法을 갈고 닦는 일은 그 다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好는 ‘따르다’는 말이다. 또, 《詩》 「小雅 北山之什」의 「小明」에 靖共爾位/好是正直, ‘너희들의 직무를 올곧게 처리하고, 정직한 태도를 好해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好/猶與也, ‘好는 與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 與 역시 ‘따르다’는 말이다. 《國語》 「齊語」에 桓公知天下諸侯多與己也, ‘桓公은 天下의 諸侯이 자신을 與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았다’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無不從也//與/從也,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與는 따르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好/呼報反/下注同, ‘好는 呼와 報의 반절로 읽는다. 아래의 글과 주석에서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好/謂閑習禮容/不以富而倦略, ‘好는 한가하더라도 禮容을 익히기에, 부유하다는 점 때문에 태만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好/去聲, ‘好는 去聲으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禮는 체언으로, ‘禮’, ‘禮法’이다. ◈ 者는 ‘~한 경우’, ‘~한 것’, ‘~한 사람’을 이른다. 관형어구인 若貧而樂/富而好禮가 者를 한정한다. ◈ 富而好禮者也의 也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다. ◈◈ 皇侃은 未若貧而樂道에 대해, 孔子更說//貧行有勝於無諂者也//貧而無諂/乃是爲可然/而不及於自樂也//故孫綽云/顏氏之子/一簞一瓢//人不堪憂/回也/不改其樂也, ‘孔子가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貧하면서도 行한다면, 諂하지 않는 것 보다 나은 면이 있다. 그래서 貧하면서 諂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지는 스스로 樂하는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에 대해 孫綽은 “顏氏의 자제는 대나무 밥그릇과 표주박 물통으로 밥과 물을 먹었다.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나, 回는 이를 즐겁다고 생각하고, 뜻을 바꾸지 않았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論語》 「雍也」에 賢哉回也//一簞食/一瓢飲/在陋巷//人不堪其憂/回也不改其樂//賢哉回也, ‘현명하구나, 回야. 대나무 밥그릇으로 밥을 먹고, 표주박으로 물을 마시며, 누추한 곳에 산다. 다른 사람들은 괴로움을 견딜 수 없을 것이나, 回는 그런 생활이 즐겁다는 생각을 고치지 않는구나. 현명하도다, 回야’라는 말이 있다. 皇侃은 또, 富而好禮者也에 대해 又舉//富行勝於不驕者也//富能不驕/乃是可嘉/而未如恭敬好禮者也//然不云/富而樂道/貧而好禮者/亦各指事也//貧者多憂而不樂/故以樂爲勝//又貧無財以行禮/故不云禮也//富既饒足本自有樂/又有財可行禮/故言禮也, ‘다시 예를 들고 있다. 富하면서도 行한다면, 驕하지 않는 것 보다 나은 면이 있다. 그래서 富하면서 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경스러우면서 禮를 좋아하는 경우 보다는 못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貧而樂道/富而好禮라고 하였지, 富而樂道/貧而好禮라고 하지 않은 까닭은, 역시 각 句들이 내포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걱정거리가 많아 즐거울 수수가 없다. 그래서 즐거워할 수 있는 편이 貧 보다 나은 것이다. 또, 가난한 자들은 禮를 행하기에는 돈이 없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는 禮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부유한 자들은 이미 살림이 넉넉하여, 자연스레 즐겁다. 또, 재물이 있어서, 禮를 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유한 자들에 대해서는 禮를 언급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此則勝於無諂/無驕/故云/未若///言不如也, ‘이 경지가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게 굴지 않는 상태 보다 낫기에, 그래서 孔子가 “이 것들만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못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樂則心廣體胖而忘其貧/好禮則安處善/樂循理/亦不自知其富矣//子貢貨殖/蓋先貧後富/而嘗用力於自守者/故以此爲問//而夫子答之如此/蓋許其所已能/而勉其所未至也, ‘즐거우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은 편안해지니, 가난하다는 점을 잊게 된다. 예를 좋아하면, 펀안하게 선을 따르게 될 텐데, 즐겁게 이치를 따른다면 마찬가지로 자신이 부유하다는 점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된다. 子貢은 돈이 많았는데, 아마도 처음엔 가난했다가 나중에 부유해졌을 것이니, 예전에 자신을 지킨다고 고생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말들을 물은 것이다. 그런데 夫子는 이와 같이 대답하였으니, 대체로 子貢이 이미 해 낸 바를 인정해 주고, 아직 생기지 않은 일을 격려하는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子貢이 가난했다가 부유해졌기 때문에 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라고 했다고 하였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子貢은 富而無驕한 경지에 올랐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貧而無諂은 富而無驕에 대구를 맞춘 말일 뿐이다. ◈◈ 劉寶楠은 坊記/子云/貧而好樂/富而好禮/衆而以寧者/天下其幾矣///是樂道好禮爲人所難能/故無諂無驕者不能及之也, ‘「坊記」에 “孔子는 ‘가난해도 樂을 좋아하고, 부유해도 禮를 좋아하며, 衆한데도 寧을 以하는 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처럼 樂道와 好禮는 사람들이 실천하기 어려운 바이고, 따라서 諂하지 않고, 驕하지 않는 태도가 미칠 수가 없는 경지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坊記」는 《禮記》의 편이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未足多에 대해, 皇本多下有也字, ‘《皇侃本》에는 多 다음에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 鄭玄의 주석 중 不以貧爲憂苦에 대해, 皇本作/不以貧賤爲憂苦也, ‘不以貧爲憂苦는 《皇侃本》에 不以貧賤爲憂苦也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邢昺의 주석 중 好/謂閑習禮容에 대해, 閩本北監本毛本/好下有禮字//案/䟽云/樂謂志於善道/不以貧爲憂苦//好謂閑習禮容/不以富而倦略///樂道好禮相對成文/足證經文本有道字//不知者妄加禮字/誤甚, ‘《閩本》, 《北監本》, 《毛本》에는 好 다음에 禮가 있다. 살펴 보건대, 邢昺은 “樂은 善道에 뜻을 두고 있어서, 가난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好는 한가하더라도 禮容을 익히기에, 부유하다는 점 때문에 태만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樂과 道, 好와 禮가 대구되면서 내용을 이루고 있으니, 經文에 본래 道가 있었다는 점을 이로써 증명할 만하다. 잘 모르는 놈이 함부로 禮를 더 집어 넣었으니, 폐단이 심하도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자신을 절제하기 때문에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 그러나, 道를 즐기고, 禮法을 따르는 모습은 자신을 절제할 뿐만 아니라, 학문을 좋아하고, 또 끝 없이 정진하려는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나올 수 있다. 그래서 孔子가 더 낫다고 한 것이다. 한편, 皇侃은 孔子가 貧而樂道/富而好禮라고 하고, 富而樂道/貧而好禮라고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분석해 두었는데, 이 역시 참고할 만하다. ◈◈ 蜀虎又案 : 子貢은 아마 스스로 富而無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貧而無諂을 대구로 붙여서 貧而無諂/富而無驕한 경지가 어떻겠느냐고 孔子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孔子는 子貢이 그러한 의도로 질문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子貢에게 자신에게 만족하지 말고, 더 나은 경지로 정진해야 한다고 하는 뜻에서 더 높은 경지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子貢曰)

 

“《시》에 ‘자르는 것 같기도 하고, 문지르는 것 같기도 하며, 쪼아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연마하는 것 같기도 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너의 그 말은] 아마 이 구절과 같은 말이 아니겠느냐.”(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 ◈ 詩는 체언으로, 《詩》를 이른다. 《詩經》이다. 子貢이 인용한 詩는 《詩》 「國風 衛風」의 「淇奧」다. ▼ 邢昺은 此衛風淇奧之篇/美武公之德也, ‘이 詩는 「衛風」의 「淇奧」로, 武公의 德을 찬미하는 글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詩衛風淇澳之篇, ‘《詩》 「衛風」의 「淇澳」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毛詩序云/詩者/志之所之也//在心爲志/發言爲詩, ‘《毛詩》 「序」에 “詩라는 것은, 志가 이르는 바이다. 마음에 품고 있는 바를 志라고 하고, 말로 표현된 바를 詩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毛詩》 「序」는 子夏가 썼다는 말도 있고, 東漢의 衛宏이 썼다는 말도 있다. 아마 衛宏의 글일 것이다. ◈ 云은 용언으로, ‘~라고 적혀 있다’, ‘~라고 돼 있다’, ‘~라는 말이 있다’는 말이다. 내 경험으로는, 보통 曰은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 사용되었고, 云은 글의 내용을 인용할 때 사용된 것 같다. 그러나 일관되게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 劉寶楠은 書/微子/馬注/云/言也, ‘《書》 「微子」에 대해 馬融은 “云은 말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書》 「微子」는 「商書」에 속해 있다. 馬融의 주석은 《經典釋文》에 포함되어 있으며, 我舊云, ‘나는 예전에 云하였다’라는 부분에 대해 달려 있다. 《經典釋文》에는 舊云/馬云/言也, ‘舊云에 대해 馬融은 “말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 如切如磋/如琢如磨는 스스로 노력하며 정진해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如는 용언으로, ‘~와 같다’는 말이다. 즉, 예를 들어서 如切如磋는 ‘切하는 것처럼, 磋하는 것처럼’이라는 말이 된다. 切, 磋, 琢, 磨는 각각 ‘자르다’, ‘문지르다’, ‘쪼아 내다’, ‘연마하다’는 뜻으로, 모두 대상을 손질하고 다듬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爾雅》 「釋器」에 金謂之鏤/木謂之刻/骨謂之切/象謂之嗟/玉謂之琢/石謂之磨, ‘쇠에 대해서는 鏤라고 하고, 나무에 대해서는 刻이라고 하며, 뼈에 대해서는 切이라고 하고, 상아에 대해서는 嗟라고 하며, 옥에 대해서는 琢이라고 하고, 돌에 대해서는 磨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와 같다. 뼈, 상아, 옥, 돌은 다듬어지고, 손질되면서 점차 빼어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처럼, 君子가 학문적, 인격적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 나간다는 의미에서 如切如磋/如琢如磨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은 고대에도 학문에 대한 자세를 빗대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論語》의 이 구절은 물론이고, 《荀子》 「大略」에 詩曰/如切如磋/如琢如磨///謂學問也, ‘《詩》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는 말이 있는데, 배운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禮記》 「大學」에 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修也, ‘如切如磋는 학문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요, 如琢如磨는 자신을 수양한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爾雅》 「釋訓」에서는 「大學」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如切如磋/道學也, ‘如切如磋는 학문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또 如琢如磨者/自修也, ‘如琢如磨는 자신을 수양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내용에 대해 郭璞도 의견을 남겼다. 如切如磋/道學也에 대해 骨象須切磋而爲器/人須學問以成德, ‘뼈와 상아는 切되고, 磋되어야 꼭 그릇이 되니, 사람도 꼭 학문을 닦아야 德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如琢如磨者/自修也에 대해서는 玉石之被琢磨/猶人自脩飾, ‘옥과 돌이 쪼이고 갈리는 모습이 사람이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과 같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淇奧」 원문에 대해, 毛亨은 治骨曰切/象曰磋/玉曰琢/石曰磨//道其學而成也//聽其規諫以自脩/如玉石之見琢磨也, ‘뼈를 손질하는 모습을 切, 상아의 경우는 磋, 옥의 경우는 琢, 돌의 경우는 磨라고 한다. 학문을 말하면서 이룬다는 뜻이다. 간언을 받아 들여서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이, 옥이나 돌이 다듬어지는 모습과 같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大學」을 그대로 인용하기만 하였다. 朱熹는 大學傳曰/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脩也, ‘「大學」의 傳에 “如切如磋는 학문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요, 如琢如磨는 자신을 수양한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주석을 참고하면, 皇侃은 爾雅云/治骨曰切/治象曰磋/治玉曰琢/治石曰磨, ‘《爾雅》에는 “뼈를 손질하는 일을 切, 상아를 손질하는 일을 磋, 옥을 손질하는 일을 琢, 돌을 손질하는 일을 磨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陸德明은 切/治骨曰切, ‘切에 대해, 뼈를 손질하는 일을 切이라고 한다’라고 하였고, 磋/七多反//治象曰磋, ‘磋는 七과 多의 반절로 읽는다. 상아를 손질하는 일을 磋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며, 琢/治玉曰琢, ‘琢에 대해, 玉을 손질하는 일을 琢이라 한다’라고 하였고, 摩/一本作磨//末多反//治石曰磨, ‘摩는 어떤 판본에 磨라고 되어 있다. 末과 多의 반절로 읽는다. 돌을 손질하는 일을 磨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治骨曰切/象曰瑳/玉曰琢/石曰磨/道其學而成也//聽其規諫以自脩/如玉石之見琢磨, ‘뼈를 손질하는 모습을 切이라고 하고, 상아를 손질하는 모습을 瑳라고 하며, 玉을 손질하는 모습은 琢, 돌을 손질하는 모습은 磨라고 한다. 이 말들은 武公이 학문의 길을 가서 학업을 이루었다는 점을 뜻한다. 간언을 받아 들임으로써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이, 玉石이 연마되는 모습과 같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磋/七多反, ‘磋는 七과 多의 반절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如琢如磨에 대해, 釋文出摩字云/一本作磨//案/磨摩正俗字, ‘《釋文》에는 摩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 “어떤 판본에는 磨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살펴 보건대, 磨와 摩는 正字와 俗字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 劉寶楠은 衛詩/淇澳篇/文//說文/切/刌也//琢/治玉也///磋/謂治象差次之/使其平滑也//磨/釋文作摩/云/一本作磨///說文/䃺/礱也/礪也///意摩磨即䃺之異體//鄭此注云/切磋琢磨/以成寶器///寶者/貴也//爾雅/釋器/骨謂之切/象謂之磋/玉謂之琢/石謂之磨///郭注/皆治器之名/謂治骨象玉石以成器也///又釋訓云/如切如磋/道學也//如琢如磨/自修也///此本/禮記/大學篇/文//先從叔丹徒君/論語駢枝/據爾雅釋此文云/蓋無諂無驕者/生質之美//樂道好禮者/學問之功//夫子言/十室之邑/必有忠信/不如丘之好學//而七十子之徒/獨稱顔淵爲好學/顔淵以下/穎悟莫若子貢/故夫子進之以此//然語意渾融/引而不發//子貢能識此意/而引詩以證明之/所以爲告往知來///謹案/毛詩傳云/道其學而成也/聽其規諫以自修/如玉石之見琢磨也///又/荀子/大略云/人之於文學也/猶玉之於琢磨也//詩曰/如切如磋/如琢如磨///謂學問也//並同爾雅之義, ‘如切如磋/如琢如磨는 「衛詩」 「淇澳」의 글이다. 《說文》에서는 “切은 끊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琢은 옥을 손질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磋는 상아를 다듬을 때 두 번째로 하는 일로, 평평하고 매끄럽게 만드는 일을 이른다. 磨는 《釋文》에 摩로 기재되어 있고, “어떤 판본에는 磨라고 되어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說文》에는 “䃺는 礱이라는 뜻이고, 礪라는 뜻이다”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摩와 磨는 䃺의 이체자일 것이다. 이에 대해 鄭玄은 “切磋琢磨하여 寶器를 成한다”라고 하였는데, 寶라는 것은 귀중하다는 말이다. 《爾雅》 「釋器」에 “쇠에 대해서는 鏤라고 하고, 나무에 대해서는 刻이라고 하며, 뼈에 대해서는 切이라고 하고, 상아에 대해서는 嗟라고 하며, 옥에 대해서는 琢이라고 하고, 돌에 대해서는 磨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고, 이에 대해 郭璞은 “모두 器를 손질할 때 사용하는 말들로, 뼈와 상아, 옥, 돌을 손질해서 器로 만든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釋訓」에는 “如切如磋는 학문을 공부한다는 뜻이요, 如琢如磨는 자신을 수양한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釋訓」의 이 말은 본래 《禮記》 「大學」에 나오는 글이다. 돌아가신 종숙 丹徒君의 《論語駢枝》에서는, 《爾雅》에 근거해서 이 글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대체로, 諂하지도 않고 驕하지도 않는 태도는 훌륭하게 타고난 바탕이요, 道를 樂하고, 禮를 好하는 태도는 배워서 이룬 공업이다. 夫子는 ‘열 室의 邑에는 분명 忠信한 사람이 있지만, 내가 배우기를 좋아하는 만큼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일흔 제자 중에, 오직 顏淵만이 공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고, 顏淵 밑으로는 子貢 만큼 영리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夫子가 子貢을 이렇게 격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말의 뜻이 잘 어우러져, 인용하였지만 發하지는 않았다. 子貢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詩》를 인용하여 의미를 밝혔고, 그래서 子貢을 두고 ‘지난 일을 알려 주었더니 앞으로 생길 일을 깨달았다’라고 한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毛詩》의 傳에서는, “학문을 배워서 이룬다는 뜻이니, 간언을 들으면서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이 玉石을 갈고 닦는 모습과 같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하였다. 또, 《荀子》 「大略」에는 “사람에게 文學은 玉에게 琢磨하는 일과 같다. 《詩》에 如切如磋/如琢如磨라는 말이 있으니, 학문을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 《爾雅》에서 풀이한 의미와 같다’라고 하였다. 「衛詩」 「淇澳」란, 《詩》 「國風 衛風」의 「淇澳」를 이른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切, 琢에 대한 내용은 각각 「刀部」와 「玉部」에 기재되어 있다. 《釋文》은 陸德明의 《經典釋文》이다. 礱과 礪는 모두 ‘갈다’는 뜻이다. 《說文解字》 「石部」에 礱/䃺也, ‘礱은 䃺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고, 또 礪/䃺也, ‘礪는 䃺라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切磋琢磨/以成寶器라는 주석은 지금 《論語》에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淇澳」에 대해, 孔穎達이 故論語注云/切磋琢磨/以成寶器///是也, ‘그래서 《論語》에 대한 주석에 “切磋琢磨하여 寶器를 成한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 말이다’라는 말이 남아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아마 옛날에는 이 주석이 《論語》에 남아 있었던 듯하다. 先從叔丹徒君이란, ‘돌아가신 從叔 丹徒君’이라는 말이다. 從叔은 ‘사촌 아저씨’를 이른다. 淸나라 乾隆帝 때 학자인 劉台拱을 이른다. 劉台拱은 丹徒縣의 訓導를 역임했었기에, 丹徒君이라고 한 것 같다. 아마 劉台拱이 劉寶楠의 從叔이었기에 이렇게 표현하였을 것이다. 十室之邑 이하 인용문은 《論語》 「公冶長」에 나오는 말이다. 「公冶長」에는 十室之邑/必有忠信如丘者焉/不如丘之好學也, ‘열 室의 邑에는 분명 나처럼 忠信한 사람이 있지만, 내가 배우기를 좋아하는 만큼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毛詩》의 傳은 毛亨의 주석을 이른다. 인용된 주석은 「淇澳」에 달려 있다. ◈ 其는 부사어로, 아마 ‘아마도’라는 말일 것이다. 殆와 같다. 《禮記》 「檀弓 上」에 子張病/召申祥而語之曰/君子曰終/小人曰死/吾今日其庶几乎, ‘子張이 병이 나자 申祥을 불러서는 “君子를 보고는 終한다고 하고, 小人을 보고는 死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君子이기를 其 바랄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其는 殆처럼 ‘거의’ 혹은 ‘아마도’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春秋左氏傳》 「隱公」 6년에 善不可失/惡不可長/其陳桓公之謂乎, ‘善을 잃어서도 안 되고, 惡을 키워서도 안 된다고 하는데, 其 陳나라의 桓公을 보고 한 말이 아니겠느냐’라는 말이 있고, 《國語》 「周語」에는 我又章之/懼長及子孫/王室其愈卑乎, ‘우리가 또 그것을 章하면, 子孫에까지 미칠까 걱정된다. 그러면 왕실의 입지가 其 더욱 낮아지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두 글에서 其는 모두 ‘아마도’, ‘거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其와 殆의 의미가 같기 때문에, 두 글자를 붙여서 한 단어처럼 사용한 사례도 있다. 《易》 「繫辭 下」에 顏氏之子/其殆庶幾乎, ‘顏氏의 자제가 其殆 경지에 가깝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其殆는 ‘거의’ 혹은 ‘아마도’라는 뜻이다. 이 문장의 其는 아마 顏氏之子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가 아닐 것이다. 其가 지시대명사일 때는 항상 ‘~의’처럼 해석되고, 其 다음엔 체언이 오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그렇지 않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其」에 수록되어 있다. ◈ 斯는 지시하는 말로, ‘이것’이다. 謂의 목적어다. 如切如磋/如琢如磨를 가리킨다. ◈ 斯之謂의 之는 도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본래 어순은 謂斯다. ◈ 謂는 용언으로, ‘이르다’, ‘뜻하다’는 말이다. 斯를 받는다. ▼ 劉寶楠은 皇本/謂下/來者下/均有也字, ‘《皇侃本》에는 謂와 來者 다음에 똑같이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皇侃本》에는 其斯之謂與가 其斯之謂與也로, 告諸往而知來者가 告諸往而知來者也로 되어 있다. 아마 이를 가리키는 말 같다. 與 다음에 也가 있는데, 謂 다음에 있다고 했으니, 劉寶楠이 착각한 듯하다. ◈ 與는 반문하는 의문사다. ▼ 陸德明은 謂與/音餘, ‘謂與의 與는 餘라고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與/平聲, ‘與는 平聲으로 읽는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與에 대해, 皇本與下有也字, ‘《皇侃本》에는 與 다음에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 孔安國은 能貧而樂道/富而好禮者/能自切磋琢磨, ‘가난하더라도 道를 좋아할 수 있고, 부유하면서도 禮를 좋아할 수 있는 자는, 스스로 切磋琢磨할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子貢聞孔子/言貧樂富禮竝是宜自切磋之義/故引詩以證之也//爾雅云/治骨曰切/治象曰磋/治玉曰琢/治石曰磨///言骨象玉石四物須切磋乃得成器/如孔子所說貧樂富禮是自切磋成器之義//其此之謂不乎以諮孔子也, ‘子貢은 孔子에게,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면서도 禮를 행한다면, 이 경우는 모두 切磋의 의미에 맞아 들어 가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詩》를 인용해서 이 점을 증명한 것이다. 《爾雅》에는 “뼈를 손질하는 일을 切, 상아를 손질하는 일을 磋, 옥을 손질하는 일을 琢, 돌을 손질하는 일을 磨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뼈와 상아, 옥과 돌, 이 네 가지 사물들은 모름지기 갈고 닦아야 그릇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子貢은 孔子가 말한 바가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禮를 따르는 모습이 스스로 갈고 닦아서 그릇을 만든다는 의미와 같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의미가 아니겠냐고 孔子에게 의견을 구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器」에 金謂之鏤/木謂之刻/骨謂之切/象謂之嗟/玉謂之琢/石謂之磨, ‘쇠에 대해서는 鏤라고 하고, 나무에 대해서는 刻이라고 하며, 뼈에 대해서는 切이라고 하고, 상아에 대해서는 嗟라고 하며, 옥에 대해서는 琢이라고 하고, 돌에 대해서는 磨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 邢昺은 子貢知師勵己/故引詩以成之, ‘子貢은 스승이 자신을 격려한다는 의중을 깨달았기 때문에, 《詩》를 인용해서 스승의 뜻을 완성하였다’라고 하였고, 또 子貢言/貧而樂道/富而好禮/其此能切磋琢磨之謂與, ‘子貢은 “가난해도 道를 즐기고, 부유해도 禮를 따른다면, 이것이 切磋琢磨할 수 있다는 뜻인가”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言治骨角者/既切之而復磋之//治玉石者/既琢之而復磨之//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 ‘이 말은, 뼈나 상아를 손질하는 사람은, 이미 切하였더라도 다시 磋하고, 玉石을 손질하는 사람은 이미 琢하였더라도 다시 磨하니, 이미 정밀하게 손질했더라도, 더욱 정밀한 경지를 바란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또 子貢自以無諂無驕爲至矣/聞夫子之言/又知義理之無窮/雖有得焉/而未可遽自足也/故引是詩以明之, ‘子貢은 알랑거리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는 상태를 스스로 지극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夫子의 말을 듣고, 다시 義理가 끝이 없어서, 비록 깨달은 바가 있더라도, 스스로 단박에 만족할 만하지는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詩》를 인용해서 그 점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熹는 如切如磋와 如琢如磨를, 切이 선행해야 磋할 수 있고, 琢이 선행해야 磨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切, 磋, 琢, 磨는 서로 동등하고 병렬적인 말일 뿐이다. 뼈와 상아, 옥과 돌이 다듬어지고 손질되는 과정이, 곧 학문을 닦고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과 같기 때문에 如切如磋/如琢如磨라고 한 것 뿐이다. 朱熹의 설은 아주 迂闊하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정하였다. ▼ 孔安國의 주석 중 能自切磋琢磨에 대해, 皇本/磨下有者也二字//註琢磨下同, ‘《皇侃本》에는 磨 다음에 者也라는 두 글자가 있다. 註의 琢磨 다음에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註琢磨下同은 이 다음 주석인 來荅以切磋琢磨 뒤에도 者也가 있다는 말이다. ▼ 邢昺의 주석 중 此衛風淇奧之篇에 대해, 閩本北監本毛本/奧作澳//按/澳正字//毛詩作奧/用古文假借字, ‘《閩本》, 《北監本》, 《毛本》에는 奧가 澳로 되어 있다. 내 생각에는, 澳가 正字일 것이다. 《毛詩》에는 奧라고 되어 있는데, 옛날 글에 사용된 가차자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의 주석 중 象曰瑳에 대해, 閩本北監本毛本/瑳作磋//案/古書瑳磋二字多通用, ‘《閩本》, 《北監本》, 《毛本》에는 瑳가 磋로 되어 있다. 살펴 보면, 옛 글에는 瑳와 磋가 통용된 경우가 많았다’라고 하였다. ◈◈ 蜀虎案 : 如切如磋/如琢如磨는 자신을 갈고 닦으며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앞의 可也//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 부분의 주석에서 설명하였듯, 孔子는 子貢이 자기 수준에 만족하지 말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고자 했기 때문에, 子貢이 할 수 있는 貧而無諂/富而無驕 보다 높은 貧而樂道/富而好禮라는 경지를 제시하였을 것이다. 이에, 子貢은 孔子가 자신을 인정하고, 또 동시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자신을 격려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에, 「淇奧」의 如切如磋/如琢如磨를 인용하여, 孔子의 뜻이 자신이 더 노력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드러내었다.)

 

공자가 말했다.(子曰)

 

“사야, 비로소 [너와] 같이 《시》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말을 꺼내었더니, 《시》를 인용해서 응수할 줄 아는구나.”(賜也/始可與言詩已矣//告諸往而知來者, ◈ 賜는 子貢의 이름이다. ◈ 始는 부사어로, ‘비로소’, ‘마침내’다. ◈ 可는 용언으로, ‘가능하다’는 말이다. 言을 받는다. ◈ 與는 부사어로, ‘함께’, ‘같이’다. 言을 한정한다. ◈ 言은 용언으로, ‘논의하다’, ‘토론하다’, ‘의견을 나누다’는 말이다. 議와 같다. 詩를 받는다. 《戰國策》 「秦策」에 使天下之士不敢言, ‘天下의 선비들이 감히 言하지 못하게 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高誘는 言/議, ‘言은 논의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楚辭》 「離騷」에 初旣與余成言兮, ‘처음에 이미 나와 言하였었는데’라는 말이 있는데, 王逸은 言/猶議也, ‘言은 논의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 詩는 《詩》, 즉 《詩經》을 이른다. ◈ 已矣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일 것이다. ◈ 告는 용언으로, ‘알려 주다’, ‘말해 주다’는 말이다. 劉寶楠은 ‘가르쳐 주다’라고 보았는데, 이 역시 타당하다. ▼ 劉寶楠은 廣雅/釋詁/告/敎也, ‘《廣雅》 「釋詁」에 “告는 가르치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 諸은 之於, 之乎와 같은 말이다. 之於, 之乎도 서로 같다. 於와 乎는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편의상 之於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告諸往은 告之於往이 된다. 여기서 之는 子貢을 가리킨다. 告之라고 했으니, ‘子貢에게 告했다’는 뜻이 된다. 於는 ‘~에 대해’, 혹은 ‘~를’이라는 말이다. 於往이라고 했으니, ‘往에 대해’, ‘往을’이라는 뜻이 된다. ▼ 孔安國은 諸/之也, ‘諸는 之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皇侃은 諸/之也, ‘諸는 之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은 諸/之也, ‘諸는 之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往은 체언으로, ‘앞의 말’, ‘지난 말’이다. 往은 본래 ‘지나다’는 말이다. 여기서 往은 孔子가 대답하면서 해 준 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를 가리킨다. ▼ 朱熹는 往者/其所已言者, ‘往은 이미 말한 바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往來/猶言前後也, ‘往來는 앞과 뒤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告諸往而知來者의 而는 ‘이에’, ‘그러니’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이와 같다면 而 孝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이에’, ‘그러면’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而는 乃와 같다’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而는 乃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이미 음식을 치우고 물러나서는, 얼굴에 삼가는 빛이 없다면, 而 근본을 잊은 짓아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에’, ‘그러면’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될 만한지 써 보고 乃 그만 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안 될지 써 보고 而 그만 둔다’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哭이 끝나고 乃 諱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僖負羈를 기용하지 않은 일, 而 乘軒하는 사람이 300명인 일을 數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내가 曹나라의 共公이 僖負羈를 기용하지 않은 일, 乃 乘軒하는 사람이 300명이었다는 일을 尋해 보니’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釐負羈를 기용하지 않은 일, 而 美女로 乘軒하는 사람을 300명 쓴 일을 數했다’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君의 등의 관상을 보니, 귀하여서 乃 말로 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知는 용언으로, ‘알다’, ‘깨닫다’, ‘이해하다’는 말이다. 來를 받는다. ◈ 來는 체언으로, ‘뒤의 말’이다. 來는 본래 ‘오다’는 말이다. 여기서 來는 「淇奧」의 如切如磋/如琢如磨를 가리킨다. ▼ 朱熹는 來者/其所未言者, ‘來는 아직 말하지 않은 바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來는 ‘뒤의 말’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다. ▼ 劉寶楠은 往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면, 來를 ‘뒤에 한 말’이라고 보았는데, 이 설이 타당하다. ◈ 告諸往而知來는 직역하면, ‘앞의 말을 해 주었더니 뒤에 할 말을 안다’는 뜻이다. 즉, 孔子 자신이 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라고 해 주었더니, 子貢이 如切如磋/如琢如磨라고 하며 응수할 줄 알았다는 뜻이다. 나는 직역하자니 어색하여서, 이러한 의미에 맞게 의역하였다. ◈ 告諸往而知來者의 者는 문장을 끝내는 조사다. 也와 같다. 아니면, 來를 받는 말로 보고, 知來者를 ‘來할 것을 知한다’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往이 체언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이와 對를 이루는 來도 체언으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그러면 者를 也로 보는 편이 좋다. 者를 어떻게 也로 해석할 수 있을까. 《論語》 「陽貨」에 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紫가 朱를 奪하는 것이 싫고, 鄭나라의 음악이 雅樂을 어지럽힌다는 점이 싫으며, 달변으로 나라를 뒤집는 짓이 싫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者는 다른 句의 也와 대구를 이루고 있고, 또 그 쓰임 역시 也와 같이 조사다. 王引之는 《皇侃本》에는 者가 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論語集解義疏》, 즉 《皇侃本》에는 也로 되어 있다. 《國語》 「鄭語」에는 公曰/周其弊乎///對曰/殆於必弊者, ‘公이 말했다. “周나라는 망하겠느냐” 그러자 “거의 분명히 망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의 者 역시 也처럼 조사로 사용되었다. 金在烈은 《四部備要本》에 者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四部備要本》을 펴낸 사람이 者가 也의 역할을 하는 줄 모르고 문장을 끝내려고 也를 더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예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者諸」에 수록되어 있다. ▼ 阮元은 者에 대해, 皇本/者下有也字, ‘《皇侃本》에는 者 다음에 也가 있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皇侃本》의 경우, 이 者 다음에 也가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謂 부분에 기재되어 있다. ◈◈ 孔安國은 子貢知引詩以成孔子義/善取類/故然之//往告之以貧而樂道/來荅以切磋琢磨, ‘子貢은 《詩》를 인용해서 孔子의 뜻을 이룰 줄 알았으니, 비슷한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한 것이다. 먼저 가난하더라도 道를 좋아아한다고 告하였고, 나중에 切磋琢磨라고 荅하였다’라고 하였다. 劉寶楠은 이 주석의 往告之以貧而樂道에 대해, 此句下當有/富而好禮/句, ‘주석의 往告之以貧而樂道에 대한 풀이다. 이 句 다음에는 마땅히 富而好禮에 대한 句가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孔安國은 往/告之以貧而樂道/來/答以切磋琢磨, ‘지난 일이란, 가난하더라도 道를 좋아하는 일을 告한 말이요, 앞으로 올 일이란, 切磋琢磨라고 荅한 말이다’라고 풀이하였는데, 본문에서 貧而樂道, 즉 貧而樂과 富而好禮가 대구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往을 貧而樂道라고 풀이했다면, 來는 富而好禮를 가지고 풀이해야 한다는 말 같다. ◈◈ 皇侃은 子曰/賜也/始可與言詩已矣에 대해, 子貢既知引詩結成孔子之義/故孔子美之云/始可與言詩也//言始可者/明知之始於此也, ‘子貢이 이미 《詩》를 인용해서 孔子의 뜻을 완성시킬 줄 알았으므로, 孔子가 이를 칭찬하면서 “비로소 함께 《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라고 한 것이다. 始可라고 한 점으로 보아, 이러한 경우가 처음이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또 告諸往而知來者也에 대해 解所以可言詩義也, ‘《詩》의 의미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겠다는 말을 풀이한 말이다’라고 하였고, 또 言我往告之以貧樂富禮/而子貢來荅知引切磋之詩以起予也//江熙云/古者賦詩見志/子貢意見/故曰/可與言詩矣///夫所貴悟言者/既得其言又得其旨也//告往事而知將來/謂聞夷齊之賢可以知不爲衛君/不欲指言其語/故舉其類耳///范甯云/子貢欲躬行二者/故請問也//切磋琢磨所以成器/訓誘學徒義同乎兹//子貢富而猶恡/仲尼欲戒以禮中//子貢知心厲己/故引詩以爲喻也, ‘이 말은 孔子 자신이 子貢에게 貧樂과 富禮에 대해 알려 주었더니, 子貢이 《詩》의 切磋 부분을 인용해 대답하면서 자신을 분발시켰다는 뜻이다. 江熙는 “옛날에는 賦나 詩를 가지고 자기 뜻을 드러냈다. 子貢의 뜻이 드러났기에, 이에 孔子가 ‘함께 《詩》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겠다’라고 한 것이다. 대저, 중요한 점은 말을 깨닫는 바인데, 이미 말을 이해하였고, 또 그 뜻을 깨달았던 것이다. 앞의 일을 알려 주자 올 일을 알았다는 말은, 伯夷와 叔齊의 현명함에 대해 배우면, 이들이 衛君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니, 그 표현을 지적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한 부류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范甯은 “子貢은 두 가지를 직접 실천하고 싶었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切磋琢磨하여 그릇을 만드는데, 공부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준다는 뜻이 이 말과 같다. 子貢은 부유하였지만 오히려 인색하였기에, 仲尼는 子貢이 禮를 지키도록 훈계하였던 것이다. 子貢은 孔子의 마음을 알고, 자신을 갈고 닦았다. 그래서 《詩》를 인용해서 비유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했다. ◈◈ 邢昺은 子曰/賜也/始可與言詩已矣에 대해, 子貢知引詩以成孔子義/善取類/故呼其名而然之, ‘子貢은 《詩》를 인용해서 孔子의 뜻을 이루어 줄 줄 알았는데, 孔子의 의중과 비슷한 글을 잘 인용하였다. 그래서 孔子가 子貢의 이름을 불러서 저렇게 이야기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告諸往而知來者에 대해서는 此言可與言詩之意, ‘이 句에서는 子貢과 《詩》의 의미에 대해 논의할 만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하였고, 또 謂告之往以貧而樂道/富而好禮/則知來者切磋琢磨/所以可與言詩也, ‘子貢에게 앞의 말, 즉 가난하더라도 道를 좋아하고, 부유하더라도 禮를 따른다는 점을 알려 주었더니, 뒤의 말, 즉 切磋琢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의미로, 이에 《詩》에 대해 의견을 함께 나눌 만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朱熹는 愚按/此章問答/其淺深高下/固不待辨說而明矣//然不切則磋無所施/不琢則磨無所措//故學者雖不可安於小成而不求造道之極致/亦不可騖於虛遠而不察切己之實病也, ‘내 생각은 이렇다. 이 章의 문답은, 그 얕고, 깊고, 높고, 낮은 수준의 정도를 진정 변별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분명하다. 그러한 즉, 切하지 않으면 磋가 시행될 수 없고, 琢하지 않으면 磨가 이행될 수 없다. 따라서 배우는 자는, 비록 작은 성취에 안주하더라도 道의 극치를 추구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虛遠한 학문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자신의 실제적인 문제를 간절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 劉寶楠은 子貢聞一知二/故能告往知來, ‘子貢은 하나를 들으면 둘을 깨달았으니, 그래서 앞의 일을 가르쳐 주면 올 일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阮元은 《十三經注疏校勘記》에서 다음과 같이 교감하였다. ▼ 邢昺의 주석 중 告諸往而知來者者에 대해, 閩本北監本毛本/脫下者字, ‘《閩本》, 《北監本》, 《毛本》에는 뒤의 者가 빠져 있다’라고 하였다. 告諸往而知來者者란, ‘告諸往而知來者라는 구절’이라는 말이다. 邢昺은 《論語註疏》에서 구절별로 끊어서 주석을 달았는데, 구절별로 나눌 때 구문 뒤에 者라는 말을 붙여서 해설문과 구분하고, 그 부분의 소제목으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子曰/可也에 대해 해설할 때는 子曰/可也者라고 소제목을 달았다. 이를 이른다. 나는 《論語註疏》를 인용하면서 이 소제목을 생략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는 告諸往而知來者者 부분이 없다. ◈◈ 蜀虎案 : 孔子가 먼저 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라고 해 주니 子貢은 「淇奧」의 如切如磋/如琢如磨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孔子가 한 말을 이해하였다고 하였다. 孔子는 원칙적인 이야기로 子貢을 격려하였는데, 子貢은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또 《詩》까지 인용하면서 孔子의 뜻을 재확인하였던 것이다. 이에 孔子는 子貢이 《詩》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칭찬하고, 또 문맥에 맞추어 《詩》를 인용할 줄도 안다는 점을 역시 칭찬하였다. ◈◈ 蜀虎又案 : 아마 《詩》와 《書》는, 당시 중국의 ‘교양인’들이 외우고 있던 일종의 箴言이었을 것이다. 서양인들이 툭하면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기 지식을 뽐내듯, 당시 중국인들도 《詩》와 《書》를 인용하며 글의 내용을 종합하고, 또 동시에 자기의 식견을 자랑하였을 것이다. 荀子도 《荀子》에서, 한 節이 끝나면, 그에 맞게 《詩》나 《書》를 인용하여 그 節의 내용을 종합한 사례가 많다. 《春秋左氏傳》에도 大夫들과 제후들이 서로 논의하면서 《詩》나 《書》의 내용을 주고 받는 경우가 가끔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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