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3. 11:32ㆍ순자 이야기(** 수신편 번역 중 잠정 중단)/원문 번역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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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1년 10월 5일 10시 32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0
순자 - 3 - 불구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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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47
<하단 주석> 순자 - 3 - 불구 - 7 - 군자 주변엔 사람들이 모여 든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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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絜其辯而同焉者合矣,善其言而類焉者應矣。故馬鳴而馬應之,非知也,其埶然也。故新浴者振其衣,新沐者彈其冠,人之情也。其誰能以己之潐潐,受人之掝掝者哉!
군자는 그 자신이 바로잡혀 있다면(絜其辯, 其는 君子를 지칭한다. 絜은 '결'로 읽는다. '깨끗하다'는 뜻이다. 楊倞은 修整, '잘 다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시외전》 「권1」에는 이 구절이 潔其身이라고 되어 있다. 絜과 潔은 같다. 辯과 身이 다르다. 辯으로 보면 '언변을 가다듬다'가 되고, 身으로 보면 '자신을 수양하다'가 된다. 게다가 바로 다음 구절이 善其言으로 시작하는데, 辯이라고 보면 言과 뜻이 겹친다. 王先謙은 《한시외전》을 따랐다. 나도 《한시외전》을 따른다.) [군자와 마음이] 같은 자들이(同焉者, 여기서 同은 絜其身, 즉 '바로잡힌 모습'이 君子와 같은 사람을 뜻할 것이다.) 모여 들게 되고(合), [마찬가지로] 말재주가 좋다면(善其言) [군자와 뜻이] 같은 자들이(類焉者, 類는 '같은 무리', '같은 종류', '같은 부류') 호응해 오게 된다.(應)
[이렇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릇, 한 마리] 말이 울[기 시작하]면 다른 말이 따라 울고, [한 마리] 소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소가 따라 우는 법[이다. 말과 소는 왜 따라 울까. 다른 말이나 다른 소가 울면 따라 울어야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한 마리가 울면 그 기세 때문에 다른 말이나 소도 울게 되는 것]이다.(馬鳴而馬應之, 鳴은 '짐승이 우는 소리'를 뜻한다. 《한시외전》 「권1」에는 이 말 다음에 牛鳴而牛應之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나는 《한시외전》을 따른다. 두 구가 함께 있으면 훨씬 안정적이다.) [군자가 바로잡혀 있고, 말재주가 좋을 때 사람들이 군자에게 모여 드는 까닭은,] 이처럼(故, 故는 원래 馬鳴而馬應之 앞에 있으나, 馬鳴而馬應之를 근거로 非知也/其埶然也를 주장하는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非知也, 楊倞은 知를 智, '지혜롭다'라고 보았지만, '알다'라고 봐야 더 타당하다.) 군자의 단정하고 말재주가 좋은 모습에서 생겨난 기세가 다른 사람들을 모여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其埶然也, 埶은 勢, 원래 '형세', '기세'라는 뜻이다. 《순자》에서 埶은 거의 항상 勢로 사용된다. 다만 뒤에 이어지는 말을 보면, 순자는 사람들이 '깨끗한 것은 좋아하고, 지저분한 것은 꺼린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埶은 이 점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埶는 其는 絜其辯과 善其言을 지칭한다. 然은 同焉者合과 類焉者應을 뜻한다.)
이처럼(故, 是故) 새로 씻은 사람이(新浴者, 浴은 '목욕하다', '몸을 씻다') [입기 전에] 자기 옷을 털고(振其衣, 振은 '떨치다', 其는 新浴者),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이(新沐者, 沐은 '머리를 감다') [쓰기 전에] 자기 관을 터는(彈其冠, 彈은 '털다', '두드려서 털다', 其는 新沐者) 것[처럼, 사람들이 올바르고 말주변이 좋은 사람 곁에 모여 들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의 [일반적인] 정리이다.(情, '감정', '생각', '느낌') [세상 어느] 누가(其誰, '그 누가', '누가', '무엇'이라는 의문사로 자주 쓰인다. 《장자 내편》 「제물론」에도 咸其自取/怒者其誰邪, '이렇듯 만물이 전부 자기 소리를 내고 있는데, 만물의 소리를 일으키는 세찬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라고 쓰인 적이 있다.) 자신은(己) [천하의 이치에] 통달해 있으면서(潐潐, 潐는 '밝은 모양'이다. 《설문해자》에서는 盡과 같다고 했다. 楊倞은 《설문해자》를 근거로 潐潐를 明察之貌, '사리를 잘 살피는 모습'이라고 보았다. 《한시외전》에는 皭皭이라고 되어 있는데, 郝懿行과 王先謙 모두 皭도 盡과 같다고 보았다. 문맥상으로도 타당하므로, 나는 楊倞을 따른다. 潐潐는 《초사》를 함께 보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문단 끝의 주석을 참고하라.), 다른 사람이(人) 미욱한 꼴을(掝掝, 掝은 '어둡다', '흐릿하다'는 뜻이다. 《한시외전》에는 混污이라고 되어 있다. 郝懿行은 掝掝과 混污이 같다고 보았다. 한편 楊倞과 王先謙은 掝이 원래 惑이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王先謙은 惑을 惐이라고 쓰다가 掝으로 와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맥상 掝掝은 潐潐와 대비되어야 하므로, 惑惑으로 보면 타당할 것이다. 나는 '미욱한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掝掝은 《초사》를 함께 보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문단 끝의 주석을 참고하라.) 감내하기를(受, '참다', '견디다') 참으려(能은 耐로 보면 타당하겠다. '견디다', '참다'라는 뜻이다.) 하겠느냐.(원전은 《초사》 「어부」다. 新浴者振其衣/新沐者彈其冠, 그리고 誰能以己之潐潐/受人之掝掝者哉 부분의 내용이 《초사》 「어부」에 나온다. 완전히 같지는 않다. 순자는 이 부분에서 '君子가 정결하기 때문에 君子 주변에도 정결한 사람들이 모여 든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정결한 자신에게 미욱한 자가 붙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이것을 '평범한 사람들의 정리'라고 했다. 비슷한 말이 「권학」에도 있었다. 순자는 物各從其類也, '같은 유에 속하는 현상들끼리 원인과 결과를 구성하게 된다'라고 하였었다. 그러나 「어부」의 주제는 전혀 다르다. 屈原이 三閭大夫로 재직하다가 쫓겨나 강가를 거닐고 있다가 漁父를 만난다. 屈原과 漁父는 屈原의 처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漁父는 세상이 깨끗하거나 혼탁함에 따라 거기 맞춰서 변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屈原은 자신은 정결한데 어떻게 세상을 따라 더러운 척을 하겠냐고 하면서, 吾聞之//新沐者必彈冠/新浴者必振衣//安能以身之察察/受物之汶汶者乎라고 한다. 즉, 순자는 '君子처럼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 말을 인용했고, 屈原은 '세상이 더럽다고 어떻게 거기 맞춰서 자신도 더럽게 되겠느냐'라고 하며 이 말을 하였다. 전달하려는 의미가 다르므로, 단어의 의미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부」의 察察이 「불구」에서는 潐潐가 되었고, 「어부」의 汶汶이 「불구」에서는 掝掝가 되었다. 察察과 汶汶은 각각 屈原 자신과 세상을 뜻하는 말로, 문맥상 '깨끗하다'와 '더럽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察은 본래 '생각을 깊이 한다', '명철하다'는 뜻이므로, 순자가 그래서 察을 '깨끗하다'라고 보지 않고 盡의 뜻으로 간주하여 潐라고 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汶汶은 '지저분하다', '더럽다'는 말이지만, 이미 察을 盡으로 보았으므로, 순자는 汶을 盡, 潐의 반의어인 惑惑으로 사용했으리라 보인다. 그 이후에는 王先謙의 의견처럼 惑을 惐으로 쓰다가, 掝으로 와전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순자는 《시》를 인용할 때도 《시》 원전의 의미 보다는 자신이 의도한 바에 끼워 맞춰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의 《초사》 역시 그런 사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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