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2 - 수신 - 11 - 군자에게는 사욕 보다 공의가 우선이다(끝)(재번역 예정)

2021. 10. 5. 09:05순자 이야기(** 수신편 번역 중 잠정 중단)/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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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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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5월 7일 12시 2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98

 

순자 - 2 - 수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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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때문에 눈이 아프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209

 

<하단 주석> 순자 - 2 - 수신 - 11 - 군자에게는 사욕 보다 공의가 우선이다(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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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之求利也略,其遠害也早,其避辱也懼,其行道理也勇。君子貧窮而志廣,富貴而體恭,安燕而血氣不惰,勞勌而容貌不枯,怒不過奪,喜不過予。君子貧窮而志廣,隆仁也;富貴而體恭,殺埶也;安燕而血氣不惰,柬理也;勞勌而容貌不枯,好交也。怒不過奪,喜不過予,是法勝私也。書曰:無有作好,遵王之道;無有作惡,遵王之路。此言君子之能以公義勝私欲也。

 

군자는(君子之, 之는 조사로 '~는'처럼 쓰였다.) 이익을 구할 때는(求利) 대강대강 하지만(略, '간략하다', '대강', 早과 대구를 이룬다.), 해악을 피할 때는(其遠害, 其는 君子, 遠은 '멀리한다', '가까이하지 않다', '쫓아 버린다'는 뜻이므로, 나는 避, 즉 '피한다'와 같게 해석하였다. 판본에 따라 글자가 다른 모양이다. 遠害가 「盧校本」에는 遠思로 되어 있다고 하고, 盧文弨는 遠思가 아니라 遠患이어야 한다고 해다.) 기민하게 임한다.(早, '급히', '미리', '일찍', '빨리', 略과 대구를 이룬다.) 군자는 모욕을 피할 때는(避辱, 避는 '피하다', 辱은 '치욕', '더럽히다', '욕보이다') 조심조심 하지만(懼, '두려워하다', '조심하다', 勇과 대구를 이룬다. 王引之는 懼를 怯, 즉 '겁내다'로 보았다.) [올바른] 도리를 실천할 때는(其行道理, 其는 君子) 과감하게 임한다.(勇, '날래다', '용감하다', 懼와 대구를 이룬다.)

 

군자가 빈궁하[게 되]더라도(貧窮, '가난하고 곤란하다') [군자의] 절개는 [여전히] 빛날 것이요(志廣, 志廣을 문자 그대로 '뜻이 넓다'라고 하면 의미가 너무 추상적이다. 나는 志를 '의로움', '절개'라고 보고, 廣을 光으로 보아서, '절개가 빛난다'라고 해석하였다.), [군자가] 부귀하[게 되]더라도(富貴) [군자의] 몸가짐은 [여전히] 공손할 것이다.(體恭, 體는 '몸가짐', '행동거지') [또한 군자가] 안연하더라도(安燕, 安은 '편안하다', '즐겁다', 燕도 '즐겁다', '편안하다', '예쁘다'는 말이다. 따라서 安燕은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뜻한다.) [군자의] 혈기는 나태해지지 않을 것이요(血氣不惰, 性情 같은 말로 표현해도 될 것을 굳이 血氣라고 한 것은 아마도 '세상을 올바르게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를 뜻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다. 惰는 '게으르다', '나태하다'는 뜻이다.), [군자가] 노권하더라도(勞勌, 勞는 '힘들다', '피로하다', '지치다', 勌도 '힘을 다 쓰다', '고달프다', '피곤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勞勌은 '기운을 다 써서 아주 피곤하고 지쳐 있는 상태'를 뜻한다.) [군자의] 용모는 초췌해지지 않을 것이다.(容貌不枯, 容貌는 '외모'다. '외모'를 가리키는 표현이 여럿 있다. 이 부분처럼 容과 貌가 있고, 《장자 내편》 「덕충부」에서는 道與之貌/天與之形라고 하였으니, 貌와 形이 그렇게 사용되었다. 枯는 '마르다', '죽다', '거칠다'는 의미다. 따라서 容貌가 枯하다는 것은 '용모가 초췌하지 않다'는 뜻이다. 王念孫은 枯를 楛, '거칠다', '나쁘다'라는 말로 보았다.) [또한 군자는] 빡치더라도(怒) [재물을] 지나치게 빼앗지는 않고(不過奪, 過는 '과하다', '지나치다'는 말이다. 奪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楊倞은 바로 뒷구인 不過予의 予를 《주례》를 인용해서 설명했는데, 사실 이 부분의 奪도 《주례》에 나오기 때문이다. 《주례》 「천관총재」에는 八柄이라는 말이 나온다. 柄은 '권병', '권력'이라는 뜻이니, 왕이 신하들을 馭할, 즉 '통제'할 수단이다. 따라서 八柄은 여덟 가지 柄이다. 「천관총재」에는 以八柄詔王馭群臣//一曰爵/以馭其貴//二曰祿/以馭其富//三曰予/以馭其幸//四曰置/以馭其行//五曰生/以馭其福//六曰奪/以馭其貧//七曰廢/以馭其罪//八曰誅/以馭其過라고 하였으니, 八柄이라는 것은 爵, 祿, 予, 置, 生, 奪, 廢, 誅인 셈이다. 이 중 여섯 번째가 奪이고, 세 번째가 뒤에 나올 予다. 奪은 재산 같은 것을 빼앗아서 신하들을 貧, 즉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고, 予는 신하들에게 幸, 즉 혜택이나 은총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償罰이다. 순자는 이 부분에서 君子가 감정에 치우쳐서 상과 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不過奪이라고 하고, 뒤에서는 不過予라고 한 것이다.), 기쁘더라도(喜) [재물을] 지나치게 내리지는 않는다.(不過予, 予는 賜, '상을 내린다'는 뜻이다. 자세한 설명은 바로 앞의 不過奪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라.)

 

군자가 빈궁하[게 되]더라도 [군자의] 절개가 [여전히] 빛나는 것은 [군자가] 인을 숭상하기 때문이요(隆仁, 隆은 '높이다', '크게 여기다'), [군자가] 부귀하[게 되]더라도 [군자의] 몸가짐이 [여전히] 공손한 것은 [군자가 자기] 권세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殺埶, 埶는 勢, 즉 '권세'와 같다. 《순자》에서는 埶는 대부분 勢의 뜻으로 사용된다. 殺는 '쇄'로 읽는다. '낮추다', '덜다', '감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殺埶는 '권세가 높으면서, 일부러 권세가 낮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 즉 '겸양하는 모습'을 뜻한다. 나는 '권세를 내세우지 않는다'라고 의역했다.) [또한 군자가] 안연하더라도 [군자의] 혈기가 나태해지지 않는 것은 [군자가 예의] 이치를 [잘] 분간하기 때문이요(柬理, 柬은 '가리다', '분간하다', '선택하다', 理는 뒷구문의 好交의 交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王念孫은 交를 文으로 보고, 이 부분의 理와 文이 모두 禮를 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理는 '禮의 이치'가 된다. 王念孫의 주장이 타당하므로, 나는 柬理도 王念孫을 따라 번역했다. 物雙松, 久保愛, 劉師培는 柬을 閑 또는 嫺으로 보아서 '익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면 柬理는 '理를 익혔기 때문에'가 된다. 그러나 '익혔다'는 말이 너무 포괄적이라서 理를 禮로 본다고 하더라도 柬을 그대로 보는 것만 못하다.), [군자가] 노권하더라도 [군자의] 용모가 초췌해지지 않는 것은 [군자가 예의] 법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好交, 交에 대해 이견이 있다. 楊倞과 郝懿行은 交를  그대로 보았고, 王念孫과 王先謙은 文의 오기라고 보았다. 文은 '제도', '형식', '법도'를 뜻한다. 王念孫은 앞에 나왔던 柬理의 理와 好文의 文이 모두 禮를 뜻한다고 했다. 王念孫을 따르면, '를 좋아하기 때문에 피곤하더라도 용모가 초췌해지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나는 王念孫을 따른다.) [마찬가지로 군자가] 빡쳐도 [재물을] 지나치게 빼앗지는 않고, 기뻐도 [재물을] 지나치게 내리지 않는 것은 [군자가 공적인] 법도를 지키려는 뜻이(是法, 여기서 是는 대명사가 아닐 것이다. 만약 是가 대명사라면 怒不過奪/喜不過予를 가리킬 텐데, 앞의 문구들에서는 군자의 '모습'과 '이유'를 기술할 때 是 같은 대명사를 쓰지 않았다. 예를 들어 富貴而體恭/殺埶也처럼 '모습'과 '이유'가 대명사 없이 그냥 이어져 있다. 怒不過奪/喜不過予에 대해서만 대명사를 쓴다는 점은 이상하다. 게다가 是가 怒不過奪/喜不過予를 가리키는 대명사일 경우, 法이 서술어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모방하다', '본 받다'는 뜻이 되므로, 문장이 말이 안 되게 된다. 是가 앞의 모든 문구들을 가리키는 대명사일 수도 없다. 이미 앞의 문구들에는 '모습'에 대해 '이유'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是는 '인정하다', '긍정하다', '옳다'는 의미로 보아서, 法을 수식하는 말이라고 해야 되지 않겠나 하다. 그러면 是法은 '법도를 따르려는 마음', '법도를 지키려는 뜻'이 된다. 法은 私와 대조되고 있기도 하고, 무엇 보다 뒤에 나오는 公義와 뜻이 같아야 한다. 즉, '공적인 법도'를 뜻한다. 禮와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사사로운 마음을(私) 이겨 내기(勝)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에 이런 말이 있다.

 

"[사사롭게] 좋아하는 일을 벌이지 말고(無有作好, 好는 '좋다', '좋아하다', '좋아하는 것', 그런데 순자는 君子가 치우치지 않는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므로, 好 역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 '치우친 일'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作은 '만들다', '일을 하다', 無는 勿, '~하지 말라'는 뜻이다. 따라서 無有作好는 '作好하는 일이 있게 하지 말아라'는 말이다.) 왕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좇을 것이며(遵王之道, 道는 '길'이다. 뒤에 路가 또 나오기 때문에 '도리'라고 볼 수는 없다. 王之道는 '王이 걸어 가야 할 올바른 길'이다. 遵은 '좇다', '따르다'), [사사롭게] 싫어하는 일을 벌이지 말고(無有作惡) 왕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좇아야 할 것이다.(遵王之路, 路는 '길')"(《서》 「주서 홍범」에 나오는 말이다. 주나라의 文王이 천명을 받고 13년만에 箕子에게 가서 정치의 도리를 묻자, 箕子는 文王에게 禹가 天, 즉 하늘에게서 받은 洪範九疇에 대해서 알려 준다. 疇는 '밭두둑'인데, '경계', '규칙'을 뜻한다. 洪은 '넓다'는 말이고, 範은 '규칙'이므로, 洪範九疇는 '널리 써 먹을 만한 아홉 가지 규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洪範九疇는 아홉 가지이나, 각각의 규칙에 또 세칙들이 있기 때문에 그 모두를 주석에서 소개하는 것은 힘들다. 「수신」에 인용된 부분은 다서 번째 규칙인 建用皇極 부분이다. 일반적으로는 皇을 大, 極을 中이라고 하여, 建用皇極을 '大中을 세우고 쓰는 법'이라고 한다. 建用皇極의 요체는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德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포용해 주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인용된 부분은 建用皇極을 설명하는 말 중 가장 핵심적인 문장에서 골라 낸 부분으로, 無偏無陂/遵王之義//無有作好/遵王之道//無有作惡/遵王之路//無偏無黨/王道蕩蕩//無黨無偏/王道平平//無反無側/王道正直//會其有極/歸其有極에서 두, 세 번째 절이다. 다만 箕子는 文王에게 '위정자로서 치우치지 않고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설명해 주고 있다. 순자는 君子의 일상적인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마지막 두 구인 怒不過奪/喜不過予만이 위정자로서의 모습이다. 이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이 말이야말로(此, 此는 인용구를 가리킨다.) 군자가 공정한 도의로써(公義) 사사로운 욕심을(私欲) 이겨낼(勝) 수 있다는 점을 언술하고 있도다.(言, '설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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