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 15:48ㆍ잡서/소학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小學》은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원문은 학민문화사에서 나온 영인본을 참고하기도 하고, 또 동양고전종합DB에 업로드되어 있는 글을 참고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현토는 뺐습니다.
* 《小學》은 朱熹와 劉淸之가 여러 글들을 짜깁기하여 만든 책입니다. 필요할 때는 그 글의 원전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한 만큼, 주석을 달 때 《莊子》나 《荀子》에서처럼 복잡한 방식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 《小學》에는 여러 사람이 주석을 달았습니다. 何士信이 《小學集成》을, 吳訥이 《小學集解》를, 陳祚가 《小學集解正誤》를, 陳選이 《小學增註》를, 程愈가 《小學集說》을 지었습니다. 모두 明代 학자들입니다. 朝鮮의 李珥는 이 책들을 참고하여 《小學諸家集註》를 저술했습니다. 《小學諸家集註》에는 상기된 주석서들의 내용과, 李珥 본인의 의견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본 번역에서는 이 《小學諸家集註》를 번역합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小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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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5년 6월 1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明倫 43장>
<명륜 43장>
入公門/鞠躬如也/如不容
공문(公門)에 들어갈 때는, 몸을 굽히는 듯하였는데, 마치 [공문이 작아서] 들어가지 못할 듯[이 조심]하였다.
** 《論語》 「鄕黨」에 나오는 말이다.
** 公門 : 아마 제후가 있는 궁성의 문을 이를 것이다. 孔穎達은 公/君也, ‘公은 군주다’라고 하였다.
** 鞠躬 : ‘몸을 굽히다’는 뜻이다. 아마 지금 목례하듯, 간단하게라도 禮를 표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鞠은 ‘굽히다’, ‘구부리다’는 말이다. 孔穎達은 鞠/曲斂也, ‘鞠은 굽혀서 자신을 단속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鞠躬如의 如 : 아마 然처럼, 말 뒤에 붙어서 형용하는 말로 바꾸어 주는 표현일 것이다.
** 容 : 본래 ‘용인되다’, ‘용납되다’, ‘허용되다’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公門에 ‘들어갈 만하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곧, 如不容이란, 문이 커서 충분히 지나갈 만한데도, 오히려 좁아서 못 들어 갈 것처럼 행동거지를 단속했다는 뜻이다. 孔穎達은 君門雖大/斂身如狹小不容受其身也, ‘君門이 크기는 하지만, 孔子는 몸을 단속하였으니, 협소해서 몸이 그 문에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 행동하였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집설>을 보면, 朱熹 역시 이렇게 풀이했다.
<집설>
朱子曰/鞠躬/曲身也
朱子가 말했다. 鞠躬이란, 몸을 굽혔다는 뜻이다.
** 朱子 : 趙宋의 朱熹를 참칭하는 표현이다. 宋儒들은 자기 스승을 子로 참칭하기도 하였다.
公門高大而若不容/敬之至也
公門은 높고 큰데도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 하였으니, 이는 군주에 대한 공경심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명륜 43장>
立不中門/行不履閾
서 있을 때는 문 중간에 있지 않았고, 걸을 때는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
** 中 : 아마도 ‘중간에 있다’ 같은 표현일 것이다.
** 履 : 발로 ‘밟다’는 뜻이다.
** 閾 : ‘문지방’이다. 孔安國은 閾/門限, ‘閾은 門限이다’라고 하였다. 門限은 아마 ‘문지방’일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어른들에게 문지방을 밟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왜 문지방을 밟으면 안 될까. 孔穎達은 閾/門限也//出入不得踐履門限/所以爾者/一則自高/二則不淨/竝爲不敬, ‘閾은 문지방이다. 출입할 때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 되는데, 그 까닭은, 첫 째로 자신을 높이는 짓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정결하지 못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모두 불경한 짓이다’라고 하였다. 所以爾의 爾는 然, 즉 ‘그러하다’는 말과 같다. 곧, 所以爾는 所以然, ‘그렇게 한 까닭’이라는 뜻이다.
<집설>
朱子曰/中門/中於門也//閾/門限也
朱子가 말했다. 中門은 문 중간에 있다는 뜻이다. 閾은 문지방이다.
謝氏曰/立中門則當尊/行履閾則不恪
謝氏가 말했다. 서 있을 때 문 중간에 서 있는 짓은 자신을 높이는 짓이요, 다닐 때 문지방을 밟는 짓은 자신을 삼가지 않는 짓이다.
** 謝氏 : 趙宋의 謝良佐를 이른다.
** 當 : 아마 1인칭 대명사가 아닐까 하다. 謝良佐는 아마 孔穎達의 一則自高/二則不淨을 표절한 듯하다. 當尊은 自高에 해당하는데, 尊은 高와 의미가 같다. 따라서 當 역시 自와 같은 말이 아닐지 의뭉스럽다. 나는 이렇게 보고 번역하였다. 當을 1인칭 대명사로 보지 않는다면, 當尊은 ‘尊을 當하다’는 의미일 텐데, ‘높은 사람에 대적하다’처럼 번역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 恪 : ‘삼가다’, ‘조심하다’는 말이다.
<명륜 43장>
過位/色勃如也/足躩如也//其言似不足者
[제후가 자리에 없을 시 제후의] 자리를 지낼 때, 안색은 가다듬는 듯하였고, 발걸음은 머뭇거리는 듯하였다. 그 언변은 어눌한 듯하였다.
** 位 : ‘자리’, ‘公位’를 이른다. 여기서는 제후가 자리에 없을 때를 상정한 말이다. 包咸은 過君之空位, ‘군주의 비어 있는 자리를 지날 때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집설>을 보면, 朱熹 역시 이렇게 풀이하였다.
** 勃 : 명륜 42장에 나왔듯, ‘낯빛을 바꾸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가다듬었다’처럼 의역하였다.
** 勃如와 躩如의 如 : 아마 然처럼, 말 뒤에 붙어서 형용하는 말로 바꾸어 주는 표현일 것이다.
** 躩 : 명륜 42장에 나왔듯, ’머뭇거리다’는 뜻이다. 머뭇거리는 까닭은 조심하기 때문이다.
** 不足 : ‘부족하다’, ‘모자라다’는 말이다. 孔子는 유창하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오히려 모자란 듯 말한 까닭은, 자신을 겸양하고, 군주를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기서는 ‘어눌하다’처럼 번역하였다.
** 者 : 也와 같다.
<집설>
朱子曰/位/君之虛位//君雖不在/過之必敬/不敢以虛位而慢之也//言似不足/不敢肆也
朱子가 말했다. 位란, 군주의 빈 자리를 이른다. 군주가 부재하더라도, 지나갈 때는 꼭 삼가야 하니, 빈 자리라고 하더라도 감히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언변이 모자란 듯하게 한 것은 감히 멋대로 굴지 않았다는 뜻이다.
<명륜 43장>
攝齊升堂/鞠躬如也//屛氣/似不息者
옷을 걷어 올리고 당 위에 올라 갈 때는 몸을 굽혔다. 숨소리를 감추는 모습은 숨을 쉬지 않는 듯할 정도였다.
** 攝齊 : ‘옷을 걷어 올리다’는 뜻이다. 攝은 ‘걷어 올리다’는 뜻이다. 齊는 ‘옷의 아랫단’을 이른다. 孔安國은 衣下曰齊//攝齊者/摳衣也, ‘옷의 아랫부분을 齊라고 한다. 攝齊란, 옷을 걷어 올린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鞠 : ‘굽히다’는 말이다.
** 如 : 然과 같다.
** 屛氣 : ‘숨소리를 감추다’는 뜻이다. 屛은 ‘감추다’, ‘가리다’는 말이다.
<집설>
朱子曰/攝/摳也//齊/衣下縫也//禮/將升堂/兩手摳衣/使去地尺/恐躡之而傾跌失容也//屛/藏也//息/鼻息出入者也//近至尊/氣容肅也
朱子가 말했다. 攝은 걷어 올리다는 뜻이다. 齊는 옷 아래의 꿰맨 부분이다. 예법에서는 당 위로 오를 때에는 두 손으로 옷을 걷어 올려서, 옷 아랫단이 땅에서 한 자 정도 떨어지도록 하는데, 옷자락을 밟고 거꾸러져서 몸가짐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屛은 감추다는 뜻이다. 息은 코로 내쉬거나 들이쉬는 숨을 이른다. 至尊을 가까이 할 때는 숨소리도 삼가야 한다.
** 去地尺 : ‘땅에서 尺 만큼 떨어지다’는 의미일 것이다.
** 躡 : ‘밟다’는 말이다.
** 傾跌 : ‘쏠리다’, ‘기울어지다’, ‘거꾸러지다’는 말이다. 傾은 ‘기울다’는 말이고, 跌은 ‘거꾸러지다’는 말이다.
** 肅 : ‘삼가다’처럼 보면 좋겠다.
<명륜 43장>
出/降一等/逞顔色/怡怡如也//沒階/趨/翼如也//復其位/踧踖如也
[당에서] 나와서 한 계단을 내려 가면, [삼갔던] 낯빛을 펴고, 즐거워하였다. 계단을 다 내려 가면, 빨리 걸었는데, [그 모습은 새가] 날개를 편 듯하였다. [나중에 제후의] 자리에 돌아 갔을 때는 [몸가짐을 다시] 조심하는 듯하였다.
** 出 : 당에서 ‘나오다’는 말이다. 降과는 의미가 별개다.
** 降 : 계단을 ‘내려 가다’는 말이다.
** 等 : 級과 같다. 계단의 ‘층계’를 이른다.
** 逞 : ‘즐거워하다’, ‘쾌하다’는 말로, 곧 삼갔던 낯빛을 ‘펴다’는 말이다.
** 怡 :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온화하다’는 따위의 표현이다.
** 怡怡如, 趨翼如, 踧踖如의 如 : 아마 然과 같을 것이다.
** 沒 : 계단을 ‘다 지나다’는 말이다. 孔安國은 沒/盡也//下盡階, ‘沒은 다하다는 뜻이다. 내려 가다가 계단을 다 지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집설>을 보면, 朱熹가 孔安國의 주석을 표절해 두었다.
** 趨 : ‘종종’ 걸어 갔다는 뜻이다. 빠른 걸음을 이른다.
** 翼 : 아마 ‘화창하게 걸어 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翼은 ‘날개를 펴다’는 뜻이다. 孔穎達은 下盡階/則疾趨而出/張拱端好/如鳥之舒翼也, ‘내려 가다가 계단을 다 지나면, 빨리 종종 걸어서 나갔는데, 모으고 있던 손을 풀고, 단정하였으니, 그 모습은 새가 날개를 편 모습 같았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하였다.
** 復 : ‘돌아 오다’는 말이다. 나중에 다시 왔다는 뜻이다. 孔安國은 來時所過位, ‘나중에 제후의 자리를 지날 때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 踧踖 : ‘삼가다’, ‘조심하다’는 뜻이다. 踧과 踖은 모두 ‘삼가다’는 말이다.
<집설>
朱子曰/等/階之級也//逞/放也//漸遠所尊/舒氣解顔//怡怡/和悅也//沒階/下盡階也//趨/走就位也//踧踖/恭敬不寧之貌//復位踧踖/敬之餘也
朱子가 말했다. 等은 계단의 층계다. 逞은 푼다는 말이다. 제후의 처소에서 점차 멀어질수록, 자신의 기운을 펴고, 낯빛을 푼 것이다. 怡怡는 온화하고 즐겁다는 뜻이다. 沒階란, 내려 가다가 계단을 다 지났다는 뜻이다. 趨는 달려서 자리로 나아갔다는 뜻이다. 踧踖은 조심하고 편하게 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후의 자리에 되돌아갔을 때 踧踖한 것은 제후에 대한 공경심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 敬之餘也 :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공경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중에 갔을 때 조심한다는 말은, 나중에 갔을 때는 처음의 경우에서처럼 공경심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말일까. 아니면, 평생 대전에 들어간 횟수를 세면서, 한 번씩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공경심을 처음만 못하게 줄여 간다는 말일까. 宋儒들이 가끔 ‘~之餘’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나는 餘를 ‘남아 있다’라고 보고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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