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이야기(** 수신편 번역 중 잠정 중단)/원문 번역(하단 주석)

<하단 주석> 순자 - 2 - 수신 - 10 - 노인을 잘 모시고, 불초한 자들을 핍박하지 않아야 한다(재번역 예정)

달마시안TV 2021. 10. 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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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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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5월 7일 12시 2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98

 

순자 - 2 - 수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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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196

 

순자 - 2 - 수신 - 10 - 노인을 잘 모시고, 불초한 자들을 핍박하지 않아야 한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老老而壯者歸焉,不窮窮而通者積焉,行乎冥冥而施乎無報,而賢不肖一焉。人有此三行,雖有大過,天其不遂乎。

 

[다른 사람들의 인망을 얻으면서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로,] 노인을 잘 모시면[각주:1] 젊은이들도[각주:2] [이 사람을] 따를[각주:3] 것이요, [두 번째로,] 불초한 자들을 핍박하지 않으면[각주:4] [이치에] 통달한 자들도[각주:5] [이 사람을 흠모하여 그 주변에] 모여들[각주:6]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인을 공경하기를 남에게] 드러나지 않게 실천하고[각주:7], [불초한 자들에게도 아량을] 베풀면서 보답 받을 생각은 하지 않으면[각주:8], 현명한 사람이든, 불초한 사람이든,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사람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각주:9]

 

사람이 이 세 가지를 실천해 나간다[고 해 보자. 그러]면[각주:10], [이 사람이] 설령[각주:11] 과실을 크게 저질렀다고 하더라도[각주:12], 이 자가[각주:13] 잘못되지 않게[각주:14] 하늘이[각주:15] 보살필 것이로다.

 

 

 

  1. 老老, 老가 간혹 老老라고 하여서 '노인을 공경하다'라고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앞의 老가 '공경하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2. 壯者, 《예기》 「곡례 상」에서 壯을 '서른 살'이라고 했고, 《장자 내편》 「인간세」에서는 衛君/其年壯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젊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3. 歸, '귀부하다', '귀순하다', '편들다', '내 편이 되다' [본문으로]
  4. 不窮窮, 窮窮은 老老처럼 보아야 할 것이다. 窮은 '빈궁하다', '곤란하다', '불운하다'는 뜻이므로, '불쌍한 사람', 혹은 俞樾의 해석을 따라 '불초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楊倞은 窮을 鰥寡窮匱, 즉 '홀아비', '과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보았는데, 俞樾은 窮과 대구를 이루는 通의 뜻을 감안할 때, 窮을 鰥寡窮匱로 볼 수 없고, 오직 '不肖한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楊倞처럼 해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으나, 뒷부분의 賢不肖一에 착안하면, 이 글에서는 俞樾의 설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俞樾을 따른다. 그러면 窮窮은 '불초한 사람들을 핍박한다'는 말이 된다. 앞의 窮이 '핍박하다', '쪽을 주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5. 通者 [본문으로]
  6. 積, '쌓이다' [본문으로]
  7. 行乎冥冥, 冥은 '어둡다', '깊숙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冥冥은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서 行은 老老를 뜻한다. 왜 그럴까. 문장 구조를 살펴 보면, 세 번째 문구인 行乎冥冥/而/施乎無報/而/賢不肖一焉은 앞의 두 문구를 종합하는 말이고, 세 번째 문구의 '조건'인 行乎冥冥과 施乎無報는 앞의 두 문구의 '조건'들에 각각 대응된다. 즉, 行乎冥冥의 行은 老老에, 施乎無報의 施는 不窮窮에 해당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不窮窮은 '不肖한 자들을 갈구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곧 '아량을 베푸는 것'이 되고, 이 말은 施의 의미와 들어 맞는다. [본문으로]
  8. 施乎無報, 施는 '베풀다', 報는 '보답'이다. '알리다'라고 해도 말이 통하지만, 그러면 冥冥과 의미가 겹친다. 施는 不窮窮을 뜻한다. [본문으로]
  9. 賢不肖一, 楊倞은 賢不肖同慕而歸之라고 하여, '현명하고 불초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이 사람을 사모하여서 귀부해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行乎冥冥에 대한 주석에서 설명하였듯이, 세 번째 문구는 첫 번째 문구와 두 번째 문구를 종합하는 말이고, 따라서 세 번째 문구의 '조건'인 行乎冥冥과 施乎無報는 앞의 두 문구의 '조건'들인 老老와 不窮窮에 대응되고, 그 의미도 통한다. '조건'들끼리 서로 통한다면, '결과'들끼리도 의미가 통해야 한다. 즉, 세 번째 문구의 '결과'인 賢不肖一은 첫 번째 문구와 두 번째 문구의 '결과'인 壯者歸와 通者積의 뜻과 정합되어야 한다. 살펴보건대, 賢은 通者와 대응하므로, 不肖는 壯과 대응할 것이다. 壯은 '서른 살', '젊은 사람'을 뜻하는데, 다른 의미를 살펴 보아도 '견고하다', '씩씩하다', '기세가 좋다', '왕성하다'처럼 동적인 뜻밖에 없다. 첫 구, 둘째 구, 셋째 구가 서로 대구와 종합 관계를 이룬다는 점은 명백하기 때문에, 이에 끼워 맞춘다면, 젊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해서, 이것을 不肖라고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문으로]
  10. 有此三行, 此三行은 老老와 不窮窮, 그리고 行乎冥冥/施乎無報/賢不肖一을 뜻한다. 有는 '가지다', '갖고 있다'는 뜻이다. 즉, 有此三行을 직역하면 '이 세 가지 행동을 가지고 있다면', 즉 '이 세 가지 행동을 실천한다면'이라는 뜻이 된다. [본문으로]
  11. [본문으로]
  12. 有大過, 俞樾은 過를 禍라고 보았다. 《한서》 「공손홍복식예관전」에 雖陽與善/後竟報其過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내용이 《사기》 「평진후주보열전」에는 雖詳與善/陰報其禍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또한 俞樾은 此三行을 실천할 정도의 사람이 大過, 즉 '큰 잘못'을 저지를 리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過를 禍라고 본다면 뒤의 天其不遂乎와 상충하게 된다. 其는 大過, 즉 大禍를 가리킬 것이므로, 이 문구는 '하늘이 이 사람에게 재앙이 일어나지 않게 보살필 것이다'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禍, 즉 '재앙'이라는 것은 원래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이 재앙을 내리고서, 또 하늘이 재앙을 막아 주게 되므로,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즉, 過는 過 그대로 봐야 한다. 사람이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는 법이다. [본문으로]
  13. 其, 人有此三行의 人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14. 不遂, 遂에 대해 이견이 있다. 俞樾은 成, 즉 '이루다'라고 보았는데, 이는 俞樾이 앞에서 過를 禍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過를 禍라고 하면 俞樾의 의견이 타당하다. 그러나 나처럼 過를 그대로 過로 보면 其가 가리키는 대상이 달라지므로, 俞樾의 의견은 타당하지 않게 된다. 이 부분은 아니지만, 「왕제」의 小事殆乎遂에서 王念孫은 遂를 墜로 본 적이 있다. 이 때 墜는 '떨어지다', '무너지다', '망하다'는 말이다. 王念孫의 의견을 따른다면 이 문장의 의미는 이렇게 된다. 過를 過로 본다면, 其는 人을 가리키게 되고, 그러면 不遂는 人에 대한 서술어로서, '무너지지 않다', '몰락하지 않다'가 된다. 그러면 天其不遂乎는 '하늘이 이 사람이 몰락하지 않게 보살피지 않겠느냐'라는 뜻이 되므로, 문맥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본문으로]
  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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