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4 - 인간세 - 7 - 접여가 공자에게 유세하다

달마시안TV 2021. 9. 10. 11:24
반응형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는 주석 안에서 내용이 나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나 단어, 구를 설명하다가, B라는 글자, 단어, 구로 바뀌는 지점에 ◈를 넣었습니다. 구, 절 단위로 주석을 재편하면서, 주석 하나에 설명해야 할 점들이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를 넣어서 구별하였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郭象, 成玄英, 王先謙 등의 주석 중, 구나 절 전체를 총괄하는 주석들은 대체로 전부 주석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일괄 넣어 두었습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6월 10일 4시 49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90

 

장자 내편 - 4 - 인간세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88

 

장자 내편 - 4 - 인간세 - 8 - 접여가 공자에게 유세하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7?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2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4-7

 

孔子適楚,楚狂接輿遊其門,曰:

 

「鳳兮鳳兮,何如德之衰也!來世不可待,往世不可追也。天下有道,聖人成焉,天下無道,聖人生焉。方今之時,僅免刑焉。福輕乎羽,莫之知載;禍重乎地,莫之知避。已乎已乎,臨人以德!殆乎殆乎,畫地而趨!迷陽迷陽,無傷吾行!吾行卻曲,無傷吾足!」

 

 

공자가 초나라에 갔다. [그런데] 초나라의 미친 접여가 공자가 머무르고 있는 곳의 문에 대고 이야기하였다.[각주:1]

 

"봉황아, 봉황아, [너의] 덕은 어찌 하여 쇠하고 말았더냐.[각주:2] [앞으로 닥쳐] 올 일은 [미리] 대비할 수 없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은 [뒤]쫓아 갈 수가 없다.[각주:3]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이 [세상을] 다스릴 것인데, 천하에 도가 없으니, 성인은 [그저] 살아갈 뿐이로다.[각주:4] [성인은]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형벌이나 겨우 면할 뿐이겠다.[각주:5] 복은 깃털 보다도 가벼운데 [사람들은 복을] 손에 넣을 줄을 모르고[각주:6], 화는 땅덩이 보다도 무거운데 [사람들은 화를] 피할 줄을 모른다.[각주:7] 때려 치워라, 때려 치워라, 사람들을 덕으로 다스리려 하기를.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땅에 금을 그어 두고 달려 가는 꼴이여.[각주:8] 미친 척이나 하자, 미친 척이나 하자. [그러면] 내 [살아] 가는 길에 탈 없으리라.[각주:9] 나는 살아 가며 [세상에 나 자신을] 굽히고, [도에게서 내려 받은] 나의 근본을 상하게 하지 않으련다.[각주:10]"

 

 

  1. 孔子適楚/楚狂接輿遊其門曰, ◈ 이 이야기는 《論語》 「微子」에도 나오고, 《史記》 「孔子世家」에도 나온다. 그러나 내용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또, 「微子」와 「孔子世家」에는 이야기의 일부만 기록되어 있다. 즉, 「人間世」의 내용이 더 상세하고, 자세하다. 물론 상세하고 자세하다고 「人間世」가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莊子가 원래 있는 이야기에 말을 덧붙이지 않았으리라고 확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微子」와 「孔子世家」에 대한 주석들을 참고하여 본문의 번역을 보조하였다. ◈ 孔子는 '{...}'다. 儒家의 시조다. ◈ 適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適/之也, '{...}'라고 하였다. ◈ 適楚의 楚는 나라 이름이다. 長江 중류 지역에 근거하였다. 《史記》 「楚世家」에 그 연혁이 전한다. ◈ 楚狂의 楚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다. 狂接輿를 한정한다. ◈ 狂接輿는 사람 이름이다. 狂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로, 당대 사람들이 接輿를 부르던 일종의 호칭이었던 듯하다. 接輿는 楚나라의 隱者였다. 孔子와 동시대 {...}으로 등장한다. 西晉 시대 皇甫謐의 《高士傳》 「陸通」에 그 행적이 전한다. ◈ 遊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孔子에게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라는 말 자체가 {...}을 이른다. ◈ 其는 孔子를 가리킨다. 아마 {...}을 뜻할 것이다. ◈ 門은 체언으로, '{...}'이다. 아마 {...}을 이를 것이다. ◈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는 이 말이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라고 되어 있다. 《論語》 「微子」에 대해 孔安國은 接輿/楚人//佯狂而來歌/欲以感切孔子, '{...}'라고 하였다. 邢昺은 接輿/楚人/姓陸名通/字接輿也//昭王時/政令無常/乃被髮佯狂/不仕/時人謂之楚狂也//時孔子適楚/與接輿相遇/而接輿行歌從孔子邊過/欲感切孔子也, '{...}'라고 하였고, 또 知孔子有聖德/故比孔子於鳳, '{...}'라고 하였다. 朱熹는 接輿/楚人/佯狂辟世//夫子時將適楚/故接輿歌而過其車前也, '{...}'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 대해 裴駰은 孔安國曰/接輿/楚人也//佯狂而來歌/欲以感切孔子也, '{...}'라고 했다. ◈◈ 孃破案 : 孔子는 왜 楚나라로 갔을까. 이에 대한 정황이 《史記》 「孔子世家」에 나와 있다. 「孔子世家」에는 於是使子貢至楚//楚昭王興師迎孔子/然後得免//昭王將以書社地七百里封孔子//楚令尹子西曰/王之使使諸侯有如子貢者乎///曰/無有///王之輔相有如顏回者乎///曰/無有///王之將率有如子路者乎///曰/無有///王之官尹有如宰予者乎///曰/無有///且楚之祖封於周/號爲子男五十里//今孔丘述三五之法/明周召之業/王若用之/則楚安得世世堂堂方數千里乎//夫文王在豐/武王在鎬/百里之君卒王天下//今孔丘得據土壤/賢弟子爲佐/非楚之福也///昭王乃止//其秋/楚昭王卒于城父, '{...}'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孔子는 {...}을 읽어야 하겠다. [본문으로]
  2. 鳳兮鳳兮/何如德之衰也, ◈ 鳳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상서롭고, 또 전설적인 새다. 孔子를 빗댄 말이다. ◈ 兮는 조사다. 주로 운문에 {...}하면 타당하겠다. 즉, 鳳兮는 '{...}' 혹은 '{...}' 같은 뜻이다. ◈ 何如는 아마 何之如일 것이다. 何之如의 之는 {...}이다. 즉, 何之如는 如何와 같다. '{...}'다. 아마 {...}하였을 것이다. 成玄英은 何如/猶如何也, '{...}'라고 하였다. 如何는 '{...}'라는 말이다. ◈ 德은 체언으로, 道家적인 '{...}'을 뜻한다. 앞의 支離疏 이야기 가장 마지막 부분에 夫支離其形者/猶足以養其身/終其天年/又況支離其德者乎, '{...}'라는 말이 있었는데, 여기서의 德과 같다. ◈ 德之衰의 之는 {...}다. ◈ 衰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는 이 말이 鳳兮鳳兮/何德之衰, '{...}'라고 되어 있다. 《論語》 「微子」에 대해 孔安國은 比孔子於鳳鳥//鳳鳥待聖君乃見/非孔子周行求合/故曰衰, '{...}'라고 하였고, 邢昺은 伹鳳鳥待聖君乃見/今孔子周行求合諸國/而每不合/是鳳德之衰也, '{...}'라고 하였다. 朱熹는 鳳有道則見/無道則隱/接輿以比孔子/而譏其不能隱爲德衰也, '{...}'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 대해 裴駰은 孔安國曰/比孔子於鳳鳥/待聖君乃見//非孔子周行求合/故曰衰也, '{...}'라고 했다. ◈◈ 郭象은 當順時直前/盡乎會通之宜耳//世之盛衰/蔑然不足覺/故曰何如,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時孔子自魯之楚/舍於賓館//楚有賢人/姓陸/名通/字接輿/知孔子歷聘/行歌譏刺//鳳兮鳳兮/故哀歎聖人/比於來儀應瑞之鳥也/有道即見/無道當隱/如何懷此聖德/往適衰亂之邦者耶, '{...}'라고 하였다. 應瑞之鳥는 鳳의 다른 이름이다. ◈◈ 孃破案 : 孔子가 道家적인 德을 {...}한 말이다. ◈◈ 孃破又案 : 郭象은 장자가 {...}므로, 郭象의 의견은 말이 되지 않는다. 莊子가 {...}은 天下有道/聖人成焉//天下無道/聖人生焉, '{...}'라고 한 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본문으로]
  3. 來世不可待/往世不可追也, ◈ 來世는 '{...}'을 뜻한다. 來는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世는 체언으로, '{...}'다. '{...}'이라고 보면 좋겠다.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는 世가 者라고 되어 있다. ◈ 不可는 '{...}'라는 말이다. ◈ 待는 용언으로, 아마 '{...}'라는 말인 듯하다. 《國語》 「楚語」에 其獨何力以待之,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待/禦也, '{...}'라고 하였고, 또 《國語》 「魯語」에 其誰云待之, '{...}'라는 말이 있는데, 韋昭는 待/猶禦也, '{...}'라고 하였다. 또, 《墨子》 「七患」에 夫桀無待湯之備/故放, '{...}'라는 말이 있는데, 孫詒讓은 王引之云/禦敵謂之待//魯語/帥大讎以憚小國/其誰云待之///楚語/其獨何力以待之///韋注/竝云/待/禦也, '{...}'라고 하였다. ◈ 往世는 '{...}'을 뜻한다. 往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世는 체언으로, '{...}'다. '{...}'이라고 보면 좋겠다. 상기하였듯, 世는 체언으로, '{...}'다. '{...}'이라고 보면 좋겠다. ◈ 追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아마 {...}을 追라고 표현한 듯하다. ◈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는 이 말이 往者不可諫/來者猶可追, '{...}'라고 되어 있다. 《論語》 「微子」에 대해 孔安國은 已往所行/不可復諫止//自今已來/可追自止/辟亂隱居, '{...}'라고 하였다. 邢昺은 諫/止也//言已往所行者/不可復諫止也//自今已來/尢可追而自止//欲勸孔子辟亂隱居也, '{...}'라고 하였다. 朱熹는 來者可追/言及今尙可隱去, '{...}'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 대해 裴駰은 孔安國曰/已往所行/不可復諫止也//自今已來/可追自止/避亂隱居, '{...}'라고 했다. ◈◈ 郭象은 趣當盡臨時之宜耳,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當來之世/有懷道之君可應聘者/時命如馳/故不可待//適往之時/堯舜之主/變化已久/亦不可尋//趣合當時之宜/無勞瞻前顧後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앞으로 올 세상은 {...}야 할지에 있다. ◈◈ 孃破又案 : 그런데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는 이 말이 往者不可諫/來者猶可追, '{...}'라고 되어 있다. 「人間世」에는 {...}고 되어 있지만, 《論語》와 《史記》에는 {...}고 되어 있는 것이다. 즉, 《論語》와 《史記》의 초점은 지금까지야 {...}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4. 天下有道/聖人成焉//天下無道/聖人生焉, ◈ 天下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道는 이치로써의 '{...}'다. ◈ 聖人은 {...}이다. 至人 같은 부류를 이른다. ◈ 成은 본래 '{...}'는 뜻인데, 여기서는 용언으로, '{...}'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春秋左氏傳》 「桓公」 2년에 三月/公會齊侯陳侯鄭伯于稷/以成宋亂, '{...}'는 말이 있는데, 杜預는 成을 平, '{...}'라고 하였으니, 이는 곧 '{...}'는 뜻이다. {...}라는 의미일 것이다. 成은 본래 '{...}'라는 말이므로, 이를 좇아서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聖人은 이미 道를 {...}와 같아진다. 成은 뒤의 生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본문에 대해 宣穎은 成其功, '{...}'라고 하였다. ◈ 焉은 {...}다. '{...}'처럼 보면 의미에 잘 부합된다. ◈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生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이 句에서는 成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成이 {...}라는 말이라면, 生은 {...}라는 말일 것이다. 宣穎은 全其生, '{...}'라고 하였다. ◈ 이 句는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 나오지 않는다. ◈◈ 郭象은 付之自爾/而理自生成//生成非我也/豈爲治亂易節哉//治者自求成/故遺成而不敗/亂者自求生/故忘生而不死, '{...}'라고 하였다. 郭象은 내용을 전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 成玄英은 有道之君/休明之世/聖人弘道施教/成就天下//時逢暗主/命屬荒季/適可全生遠害/韜光晦跡, '{...}'라고 하였다. ◈◈ 蘇輿는 莊引數語/見所遇非時//苟生當有道/固樂用世/不僅自全其生矣,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接輿는 孔子에게 이 나라, 저 나라 {...}라고 하고 있다. ◈◈ 孃破又案 : 道家적 聖人의 정치는 《內篇》의 중심 주제이지만, 《內篇》에 정치 {...}는 편이다. 또, 「大宗師」에 以刑爲體/以禮爲翼/以知爲時/以德爲循, '{...}'는 말이 있으니, 이 역시 {...} 문구에서 而人眞以爲勤行者也, '{...}'까지 계속 이어진다. 특히 「大宗師」에서 莊子는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으로]
  5. 方今之時/僅免刑焉, ◈ 方今은 '{...}'이다. 成玄英은 方/猶當, '{...}'라고 하였는데, 當今 역시 '{...}'이다. ◈ 之는 {...}다. ◈ 時는 체언으로, '{...}'다. 즉, 方今之時는 '{...}'라는 말이다. ◈ 僅은 부사어로, '{...}'다. 陸德明은 音覲, '{...}'라고 하였다. ◈ 免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고 보아도 좋겠다. ◈ 刑은 체언으로, '{...}'이다. 즉, 免刑은 '{...}'라는 뜻이다. 앞의 顏回 이야기 중, 孔子가 顏回에게 若殆往而刑耳, '{...}'라고 한 말이 있었다. ◈ 이 句는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 나오지 않는다. ◈◈ 郭象은 不瞻前顧後/而盡當今之會/冥然與時世爲一/而後妙當可全/刑名可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今喪亂之時/正屬衰周之世/危行言遜/僅可免於刑戮/方欲執跡應聘/不亦妄乎//此接輿之詞/譏誚孔子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家적 聖人이 당시 {...} 참고차 인용하였다. [본문으로]
  6. 福輕乎羽/莫之知載, ◈ 福은 체언으로, '{...}'이다. 뒷구에 나오는 禍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 輕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속뜻은 아마 '{...}'일 것이다. {...}는 뜻이다. ◈ 乎는 '{...}'처럼 비교하는 말이다. 於와 같다. 羽를 받는다. ◈ 羽는 체언으로, '{...}'이다. ◈ 莫은 '{...}'는 뜻이다. ◈ 之는 {...}인 듯하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載는 원래 '{...}'는 말인데, 여기서는 체언으로, '{...}'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즉, 知載는 '{...}'가 되고, 莫之知載는 '{...}'가 된다. 나는 '{...}'이라고 의역하였다. 《書》 「虞書 益稷」에 乃賡載歌,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과 蔡沈은 모두 載/成也, '{...}'라고 하였다. 본문의 載를 '{...}'라고 해석해도 의미가 통한다. 그러면 莫之知載는 '{...}'가 된다. 《周禮》 「春官宗伯」에 大賓客/則攝而載果,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載/爲也, '{...}'라고 하였다. 즉, 載果는 '{...}'라는 말이 된다. 《書》 「虞書 皐陶謨」에 乃言曰載采采, '{...}'라는 말이 있는데, 孔安國과 蔡沈은 모두 載/行//采/事也, '{...}'라고 하였다. 본문에 대해, 王先謙은 取, '{...}'라고 풀이하였는데, 이 역시 내용과 잘 부합한다. ◈ 이 句는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 나오지 않는다. ◈◈ 郭象은 足能行而放之/手能執而任之/聽耳之所聞/視目之所見/知止其所不知/能止其所不能/用其自用/爲其自爲/恣其性內而無纖芥於分外/此無爲之至易也//無爲而性命不全者/未之有也//性命全而非福者/理未聞也//故夫福者/即向之所謂全耳/非假物也/豈有寄鴻毛之重哉//率性而動/動不過分/天下之至易者也//舉其自舉/載其自載/天下之至輕者也//然知以無涯傷性/心以欲惡蕩眞/故乃釋此無爲之至易而行彼有爲之至難/棄夫自舉之至輕而取夫載彼之至重//此世之常患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易取不取,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道를 따라 {...}는 뜻이다. [본문으로]
  7. 禍重乎地/莫之知避, ◈ 禍는 체언으로, '{...}'이다. 福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 重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속뜻은 아마 '{...}'일 것이다. {...}는 뜻이다. ◈ 乎는 '{...}'처럼 비교하는 말이다. 於와 같다. 地를 받는다. ◈ 地는 체언으로, '{...}'를 뜻한다. ◈ 莫은 '{...}'는 뜻이다. ◈ 之는 {...}인 듯하다. ◈ 知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避는 체언으로, '{...}'이라는 말이다. 陸德明은 舊本作寘/云/置也, '{...}'라고 했다. 寘는 본래 '{...}'라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寘는 避가 잘못된 글자일까. 그렇지 않다. 寘는 '{...}'라고 해석될 수 있다. 즉, 避와 문맥상 의미가 같다. 《詩》 「國風 周南」의 「卷耳」에 寘彼周行, '{...}'라는 말이 있는데, 朱熹는 寘/舍也, '{...}'라고 하였다. 다만, 毛亨은 寘/置, '{...}'라고 하였다. 또, 《周禮》 「秋官司寇」에 寘之圜土, '{...}'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寘/置也, '{...}'라고 하였다. 그러나 寘之圜土의 寘은 '{...}'라는 의미에 가깝다. '{...}'라는 말도 결국 '{...}'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아마 그래서 寘를 '{...}'처럼 전용하였던 듯하다. ◈ 이 句는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 나오지 않는다. ◈◈ 郭象은 舉其性內/則雖負萬鈞而不覺其重也//外物寄之/雖重不盈錙銖/有不勝任者矣//爲內/福也/故福至輕//爲外/禍也/故禍至重//禍至重而莫之知避/此世之大迷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夫視聽知能/若有涯分//止於分內/可以全生//求其分外/必遭夭折//全生所以爲福/夭折所以爲禍//而分內之福/輕於鴻毛/貪競之徒/不知載之在己//分外之禍/重於厚地/執迷之徒/不知避之去身//此蓋流俗之常患者也/故寄孔陸以彰其累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當避不避,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세상이 無道한데 나라를 떠돌면서 자기 뜻을 펼 수 있게 해 달라고 유세하는 짓은 아주 위험하다. 결국 유세나 하다가 禍나 {...}는 뜻이다. [본문으로]
  8. 已乎已乎/臨人以德//殆乎殆乎/畫地而趨, ◈ 已乎已乎/臨人以德과 殆乎殆乎/畫地而趨는 {...}고 보아야 하겠다. 즉, 본래 已乎已乎/臨人以德는 臨人以德/已乎已乎로, 殆乎殆乎/畫地而趨는 畫地而趨/殆乎殆乎라고 보아야 한다. ◈ 已乎는 '{...}'라는 말이다. 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乎는 아마 {...}일 것이다. 成玄英은 已/止也, '{...}'라고 하였다. ◈ 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臨은 본래 '{...}'는 뜻이다. 臨은 본래 '{...}'라는 말이다. 《說文解字》 「臥部」에는 監에 대해 監/臨下也, '{...}'라고 하였는데, 臨을 다시 臨/監臨, '{...}'라고 하였으니, 臨 역시 監처럼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은, 爲政者가 백성들을 {...}이다. 臨人은 '{...}'라는 말이므로, 이는 곧 '{...}'는 뜻이 된다. ◈ 以는 '{...}'라는 말이다. 德을 받는다. ◈ 德은 세속적인 덕목으로써의 '{...}'이다. {...}을 이른다. ◈ 殆乎는 '{...}'라는 말이다. 殆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乎는 아마 {...}일 것이다. 成玄英은 殆/危也, '{...}'라고 하였다. ◈ 畫地는 '{...}'라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 {...}을 표현한 말인 듯하다. 畫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이라고 읽는다. 地는 체언으로, '{...}'이다. 이 句에서는 아마 '{...}'을 뜻할 것이다. 《漢書》 「賈鄒枚路傳」에 畫地而不犯,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畫地不犯者/法制之行也, '{...}'라고 하였다. 《史記》 「魏其武安侯列傳」에 不仰視天/而俯畫地/辟倪兩宮閒/幸天下有變/而欲有大功, '{...}'라는 말이 있는데, 裴駰은 張晏曰/視天/占三光也//畫地/知分野所在也//畫地諭欲作反事, '{...}'라고 하였다. 즉, 《漢書》에서 畫地는 '{...}'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史記》에서 畫地는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모두 '{...}'이 전제되어 있다. 또, 《文選》에 실려 있는 司馬遷의 「報任少卿書」에 故有畫地爲牢勢不可入/削木爲吏議不可對/定計於鮮也,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畫地爲牢는 '{...}'는 뜻인데, 이 역시 '{...}'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아마 司馬遷은 莊子의 이 말에서 소재를 찾지 않았을까 한다. 이 말은 《漢書》 「司馬遷傳」에는 故士有畫地爲牢勢不入/削木爲吏議不對/定計於鮮也라고 되어 있다. 본문에 대해 陸德明은 音獲, '{...}'라고 하였다. ◈ 而는 순접으로, '{...}'처럼 해석된다. ◈ 趨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라는 뜻인 듯하다. 郭象은 循, '{...}' 成玄英은 走逐, '{...}'라고 하였다. 아마 名 같은 것을 {...}이 더 직설적이고, 더 분명할 듯하다. 아마 {...}을 묘사한 듯하다. ◈ 이 句는 《論語》 「微子」와 《史記》 「孔子世家」에는 已而/已而//今之從政者殆而, '{...}'라고 되어 있다. 《論語》 「微子」에 대해 孔安國은 已而已而者/言世亂已甚/不可復治也//再言之者/傷之深也, '{...}'라고 하였다. 邢昺은 言世亂已甚/不可復治也//再言之者/傷之深也//殆/危也//言今之從政者皆無德/自將危亡無日/故曰殆而//而皆語辭也, '{...}'라고 하였다. 朱熹는 已/止也//而/語助辭//殆/危也//接輿蓋知尊孔子而趨不同者也, '{...}'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 대해 裴駰은 孔安國曰/言已而者/言世亂已甚/不可復治也//再言之者/傷之深也, '{...}'라고 했다. 한편, 《論語》 「微子」에는 孔子下/欲與之言//趨而辟之/不得與之言, '{...}'라는 말이 더 있다. 이 말은 「人間世」에는 나오지 않는다. 「人間世」에는 아래에 이어지듯, 迷陽迷陽 이하 몇 句가 더 붙어 있고, 接輿의 말 외의 다른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史記》 「孔子世家」에는 이 말이 孔子下/欲與之言//趨而去/弗得與之言이라고 되어 있다. 글자가 조금 다를 뿐, 의미는 《論語》와 동일하다. 《論語》 「微子」에 대해 包咸은 下/下車, '{...}'라고 하였다. 邢昺은 下/謂下車//孔子感其言/故下車/欲與語//趍/謂疾行也//疾行以辟孔子/故孔子不得與之言也, '{...}'라고 하였다. 朱熹는 辟/去聲//孔子下車/蓋欲告之以出處之意//接輿自以爲是/故不欲聞而避之也, '{...}'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 대해 裴駰은 包氏曰/下/下車也, '{...}'라고 했다. ◈◈ 郭象은 夫畫地而使人循之/其跡不可掩矣//有其己而臨物/與物不冥矣//故大人不明我以耀彼而任彼之自明/不德我以臨人而付人之自德/故能彌貫萬物而玄同彼我/泯然與天下爲一而內外同福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仲尼生衰周之末/當澆季之時/執持聖跡/歷國應聘/頻遭斥逐/屢被詆訶//故重言已乎/不如止而勿行也//若用五德臨於百姓/捨己效物/必致危己/猶如畫地作跡/使人走逐/徒費巧勞/無由得掩/以己率物/其義亦然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亟當止者/示人以德之事//最可危者/拘守自苦之人,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이 두 句를 통해 接輿는 孔子의 {...}한 말이다. [본문으로]
  9. 迷陽迷陽/無傷吾行, ◈ 迷陽은 아마 '{...}'라는 말 같다. 迷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陽도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즉, 迷陽은 '{...}'라는 말이 된다. 《漢書》 「魏豹田儋韓王信傳」에 儋陽爲縛其奴,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陽即僞耳, '{...}'라고 하였다. 또, 《漢書》 「高帝紀 上」에 陽尊懷王爲義帝/實不用其命,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陽 역시 '{...}'라는 말이다. 또, 《韓非子》 「說難」과 《史記》 「老子韓非列傳」에 陽收其身/而實疏之, '{...}'라는 말이 있으니, 陽은 '{...}'는 말이다. 본문에 대해, 郭象은 迷陽/猶亡陽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迷/亡也//陽/明也/動也, '{...}'라고 하였다. 그러면 郭象이 亡陽이라고 한 말은 '{...}'라는 말이 된다. 陸德明은 司馬云/迷陽/伏陽也/言詐狂, '{...}'라고 했다. 즉, 郭象과 成玄英은 '{...}'라는 뜻으로 풀이하였고, 司馬彪는 '{...}'라고 풀이하였다. 말은 달라 보여도, 이 둘의 의미는 통한다. 정치의 {...}기 때문이다. 그런데 王先謙은 전혀 다른 설을 제시했다. 王先謙은 謂棘刺也//生於山野/踐之傷足//至今吾楚輿夫遇之/猶呼迷陽踢也//迷音讀如麻, '{...}'라고 하여, 迷陽을 '{...}'이라고 했다. 輿夫는 아마 接輿를 이를 것이다. 이 소위 '{...}' 설은 글자의 {...}까 말이다. 安東林, 安炳周와 田好根 모두 迷陽을 '{...}'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타당하긴 한데, 그 근거를 모르겠다. 기타 문헌들에는 迷陽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王先謙처럼 迷를 麻로 바꾸어서, 麻陽이라고 해 보아도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荊州에 麻陽縣이라는 지명은 있다. 《通典》 「州郡 古荊州」에 盧溪五縣, '{...}'으로, 沅陵, 漵浦, 辰溪, {...} 않다. 그런데 또 王先謙은 무엇을 근거로 棘刺, '{...}'이라고 했는지를 밝혀 두지 않았다. 安炳周와 田好根은 池田知久와 曹礎基, 方勇, 陸永品의 설을 인용해 두었는데, 이 역시 2, 3차 인용에 불과하다. 끼워 맞추려면 이런 설도 가능하다. 《周禮》 「春官宗伯」에 六曰瞢/七曰彌, '{...}'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故書彌作迷, '{...}'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 彌는 관직 이름이므로, 迷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들, 그냥 발음을 빌린 가차자에 불과하겠지만, 만약 이를 근거로 {...}이 된다. 또, 앞에서 《漢書》 「魏豹田儋韓王信傳」 등을 인용하여 밝혔듯, 陽은 僞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彌陽은 彌僞가 되고, 이는, '{...}'는 말이 된다. '{...}'라는 표현을 애둘러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더라도 결국 郭象과 成玄英, 司馬彪의 설과 의미상 별 차이도 없을 뿐더러, 괜히 복잡하게 끼워 맞춘 것밖에 되지 않는다. ◈ 無는 '{...}'라는 말이다. ◈ 傷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接輿를 이른다. 여기서는 관형어로, 行을 한정한다. ◈ 行은 체언으로, '{...}'을 뜻한다. ◈◈ 郭象은 亡陽任獨/不蕩於外/則吾行全矣//天下皆全其吾/則凡稱吾者莫不皆全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陸通勸尼父/令其晦跡韜光/宜放獨任之無爲/忘遣應物之明智/既而止於分內/無傷吾全生之行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정치의 {...}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10. 吾行卻曲/無傷吾足,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接輿를 이른다. ◈ 行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吾行卻曲은 吾行而卻曲처럼 해석하면 타당할 듯하다. 而는 '{...}'다. ◈ 卻曲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의미가 같은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일 것이다. 曲은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曲/從順也, '{...}'라고 하였다. 卻은 본래 '{...}'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라고 해석된다. {...}라는 뜻이다. 《漢書》 「爰盎晁錯傳」에 盎引卻愼夫人坐,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卻謂退而卑之也, '{...}'라고 하였다. 《漢書》의 卻은 {...}는 말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莊子集解》에는 卻이라 되어 있고, 《莊子集釋》에는 郤이라 되어 있다. 《經典釋文》에도 郤이라고 되어 있다. 郭慶藩은 闕誤引張君房本吾行作郤曲, '{...}'라고 하였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를 이른다. 卻은 상기하였듯 '{...}'라는 뜻이고, 郤은 '{...}'을 이른다. 의미에 차이가 있다. 成玄英은 空, '{...}'이라고 풀이했는데, 郤이라고 본 듯하다. 陸德明은 去逆反//字書作≪乚只≫//廣雅云/≪乚只≫/曲也, '{...}'라고 했다. 상기하였듯 《經典釋文》에는 郤이라고 되어 있는데, 曲, '{...}'라고 풀이한 점을 보면, 실제로는 陸德明이 卻을 의도하지 않았나 의뭉스럽다. 盧文弨는 案今說文廣雅俱作𨒅, '{...}'라고 하였다. 《說文》은 《說文解字》다. 한편 郭慶藩은 郤/釋文引字書作爲𨒅/是也//說文/𨒅/曲行也/從辵/只聲//廣雅/𨒅/曲也//集韻作𨒅/云/物曲也/一曰曲受也//玉篇音丘戟反//說文又云/乚/匿也/象𨒅曲隱蔽形//字本從乚作≪乚只≫/今作𨒅, '{...}'라고 하였다. 즉, 陸德明과 郭慶藩은 郤으로 보고, '{...}'라고 풀이하였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卻曲 혹은 郤曲은 한 단어로 '{...}'는 뜻이 된다. 成玄英을 따른다면 '{...}'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 無는 '{...}'라는 말이다. ◈ 傷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吾는 1인칭 대명사로, 接輿를 이른다. 이 句에서는 관형어로, 足을 한정한다. ◈ 足은 체언으로, 아마 '{...}'을 이를 것이다. 아마 {...}을 이르는 말 같다. 《釋名》의 「釋兵」에 木以下爲本/本以根爲足也, '{...}'는 말이 있다. 迷陽을 王先謙처럼 '{...}'로 본다면, 足은 문자 그대로 '{...}'로 해석되어야 한다. 郭象과 成玄英은 自足, '{...}'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설도 타당하지만, 이렇게 보면 {...}할 수밖에 없게 된다. ◈◈ 郭象은 曲成其行/自足矣,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虛空其心/隨順物性/則凡稱吾者自足也, '{...}'라고 하였다. ◈◈ 宣穎은 卻步委曲/不敢直道,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자신의 뜻을 펴지 않고, 자신을 굽혀서 세상의 풍파를 피하며, 자기 자신을 {...}에 대해 接輿와 의견을 함께 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接輿와 孔子의 일화에다가 자신의 의견을 조금 보충하여 「人間世」에 이 이야기를 수록해 두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반응형